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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독주민 탈출­미 지지가 통독 앞당겨/칼 킨더만(지구촌 칼럼)

    ◎한반도통일은 필연… 급속 전개 대비해야 헬무트 콜 독일총리의 회고담을 주축으로 편집돼 최근 발간된 「헬무트 콜:나는 독일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가 독일및 유럽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콜총리는 지난89,90년에 걸쳐 독일통일,보다 광범위하게는 유럽통일의 여러 과정을 직접 겪었다.89년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90년10월3일 통합조약 발효에 이르기까지의 통일은 믿을수 없이 짧은 기간에 이뤄졌다.독일과 한국의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독일통일에 대해 새로이 밝혀진 사실들은 한국인들에게 다가올 미래통일과 관련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콜 총리 회고록 관심 콜 총리는 저서의 전반부에서 고르바초프와의 의견교환 과정을 회고한다.고르바초프가 지난 89년 6월 서독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라인강변을 따라 야간 산보를 했다.고르바초프는 독일의 분단이 「역사전개의 논리적인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콜은 이 말을 듣고 라인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강물을 역사순환의 상징으로 비유,이렇게응답했다.『독일의 통일은 라인강물이 흘러흘러 바닷물이 되는 것처럼 반드시 이뤄질 것이고,유럽통일도 마찬가지다.단하나의 문제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통일을 성사시키느냐는 것이다』그로부터 15개월 이후에 독일 통일은 이뤄졌다. 동독 주민들은 동베를린의 공산정부에 항거시위를 하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한 대량 탈출을 했다.이에 공산당은 89년10월 호네커서기장을 축출하는 유화적 개혁정책을 폈다.콜 총리는 크렌츠 신임 서기장과 전화 회담을 가졌는데 서독의 대동독 2중전략에서 나온 것이다.즉 동독 공산주의 최고지도자와 대화를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동독 주민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이다.호네커 축출에도 불구하고 50만명이 넘는 동독주민들은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속했다. 콜 총리는 국회연설에서 동독이 진정한 개혁을 한다는 조건아래 포괄적인 대동독 원조를 제의했다.동독정부는 콜총리의 연설 하룻만에 여행의 자유를 즉각 보장한다고 발표해 버렸다.모스크바에 사전 통고조차 하지 않은 조치였다.동베를린의 군중들은 그날밤 45년동안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문으로 달려가 국경경찰에게 문을 당장 열도록 했다. ○진정한 개혁땐 원조 콜 총리는 폴란드 방문을 중단하고 서둘러 돌아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동독의 인권존중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우리가 당신들 편에 있습니다.우리는 한 국민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동독주민을 향해 외쳤다.하지만 사민당의 발터 몸페르 베를린시장은 통일이 아닌 통합을 주장했다.콜 총리의 회고록은 사민당 지도자들이 통일의 속도와 방식에 대해 보인 유보적인 입장을 낱낱이 공개했다.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서유럽 정상들은 파리에서 회담을 갖고 사태진전에 우려를 표명했다. 콜총리는 11월29일 10개항의 통일방안을 발표했다.과도기적으로 국가연합을 거쳐 연방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하자는 방안이다.소련·영국·프랑스 등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로지 조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정부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콜에게 신뢰와 지지를 보내왔다. ○콜 외교력 돋보여 콜은 당시 3∼4년후에나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놓고 있다.하지만 동독 주민들로부터의 엄청난 압력,동독의 경제적인 파산,그리고 「민주주의 없이는 원조가 없다」는 콜의 확고한 입장이 동독정부의 독재정권 폐지와 자유선거 실시 동의를 가능케 했다.90년3월18일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기민당을 비롯한 우파연합이 압승을 거뒀고 공산당은 참패했다.그들도 소련도 깜짝 놀랐다.그때부터 7월까지 소련은 독일통일을 제한하려 했다.특히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의 동맹군으로 남지 않기를 원했다.콜은 소련에 대량 경제원조를 약속하면서 스스로 동맹국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어냈다. 독일 통일에는 세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동독 주민의 저항과 콜의 외교력,그리고 부시행정부가 콜에게 보낸 강력한 지지다.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북한 지도부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경우에 예기치 못한 속도로 통일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어느날 남북한의 경제를 흡수합병해야 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강대국들이 미래 남북한 통일에 관여하게 된다면 그들이 중립을 지킬 것인지,아니면 한·미간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통일 한국을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한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남북한 통일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 박상연·이석범/여성편향 문단에 두 신인 남성작가

    ◎내용은 「육중」… 이야기 전개는 「아기자기」/박상연 「D.M.Z」­「절반의 한국인」이 겪는 분단현실/이석범 「윈터스쿨」­입시학원 선생의 교육풍토 고발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성적 글쓰기가 만연해온 문단에 모처럼 신인 남성작가들이 사회문제를 다룬 선굵은 장편 두편을 선보였다.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전재돼 곧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올 박상연씨의 「D.M.Z」와 제3회 상상문학상 수상작인 이석범씨의 「윈터스쿨」(상·하,살림간)이 그것. 나란히 분단문제와 교육현실 등 소재부터 요즘 등단하는 신인들이 기피하다시피 해온 묵중한 것을 택한 두 작품은 이를 요리하는 솜씨 또한 남달리 날렵하다.무거운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 개성있고 흥미로운 상황설정과 사실성으로 이야기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함께 돋우고 있는 것이다. 「D.M.Z」는 중립국 감독위 장교자격으로 한국에 파견나온 독특한 주인공을 설정한 소설.국적상 스위스인이지만 아버지한테 받은 한국피가 흐르고 있어 분단현실에 무관할수 만은 없는 그는 정작 절반 조국의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분단전쟁 당시 남로당 당원으로 싸우다 브라질로 망명한 아버지가 어린 그를 폭행해가면서까지 한국말쓰기를 강요한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비무장지대 북측 구역에서 북한군을 사살하고 돌아온 김수혁이라는 판문점 경비대 소속 상병의 수사책임을 맡게 된다.사건을 두고 남과 북은 각각 납치공작이라느니 정보원 남파 기도라며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펴지만 진상은 전혀 다른데 있었다.우연히 북측 병사와 친구가 된 김수혁이 김일성 사망 이후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에 짓눌려 그만 조건반사적으로 그 북한군에게 총을 쏴버린 것.이와 함께 주인공의 아버지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광적인 살육 현장에서 정신없이 동생을 찔러죽였던 사실도 밝혀진다.소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동족을 학살하도록 조건지어진 비인간적 분단의 심리학을 반쪽 한국인의 각성과정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한편 「윈터스쿨」은 강남의 한 입시학원에 취직한 지방출신 정민수 선생의 눈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한국교육을 고발한다.시인이면서 시라곤 2년동안 「수녀의 거기」 한편만을 쓸 만큼 순되고 어수룩한 정선생은 갖은 권모술수로 패권을 노리는 학원교사떼들,선생을 정답기계 쯤으로 대접하는 머리굵은 재수생들,입시사관학교에 밀어넣고 과외시키는 몇백만원 쯤은 푼돈으로 아는 학부형 등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서울대병으로 앓고 있는 교육현실을 지탄하며 입시와 관련된 행사장마다 폭탄테러를 일으키는 「하니바머」라는 정체모를 인물도 가세,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함도 맛보게 한다.
  • 도 무오이 서기장 만찬사

    각하의 이번 방문은 베트남·한국 관계의 역사적인 계기가 되고 보다 크고 폭넓은 새로운 높은 차원에서 양국 우호협력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은 한국민이 국가발전에서 이룩한 괄목할만한 성공을 높이 평가합니다.천연자원이 부족한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불과 몇십년만에 신공업국으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세계의 선진공업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국토의 분단을 겪은 민족으로서 우리는 귀국민의 정당한 염원인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깊이 공감하고 귀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합니다. 오늘 하오에 있었던 우리 양국 정상회담이 낳은 훌륭한 결과는 앞으로 관계를 더욱 확대하고 평등과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증진시키려는 양측의 의지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나는 대통령 내외분과 한국 귀빈 여러분이 체류기간 동안 모든 베트남사람들의 눈빛에서 평화와 협력에 대한 염원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과 한국민에 대해 품고 있는 우리 국민의 진실한 우호의 정을 느낄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북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발표 저의와 정부대응

    ◎「국제미아」 우려한 벼랑끝 협상전술/긴장유도로 협상고지 선점 노린 “상투 전략” 분석/“잠수함사건 직접사과 없으면 경협은 불가” 확고 북한이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 등 위기국면에서 탈출하려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북한은 19일 평양방송을 통해 20일부터 남북연락사무소 대표 철수 및 업무를 중지한다고 발표했다.유일한 남북 당국자간 대화채널을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은 북한이 보복위협과 함께 우리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북한은 이와함께 이날 사실상 미·북간의 군사채널인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을 통해 잠수함사건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우발적인 사고라면서 사살된 공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또 최근에는 미국측이 경수로 사업 중단 등 미·북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며 핵동결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강경 전술을 두가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하나는 북한이 핵동결 해제 협박등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국제사회에 남북긴장국면을 과장해 양보를 얻어내려는 「벼랑끝 협상 전술」로 보고 있다.또 다른 하나는 연락사무소 폐쇄등 우리정부를 배제하고 미국 등 주변국가들을 상대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30일 외교부 미주국장 이형철과 마크 민턴 미 국무부 한국과장과의 뉴욕접촉에서 잠수함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할 용의가 있다고 미국측을 통해 한국측에 전달한 것은 강온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북한 특유의 협상 전술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북한의 양면전략에 대해 확고한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북한이 잠수함사건에 대해 명시적인 시인과 사과및 재발방지 약속 없이는 절대로 경협재개 등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또 북한의 잠수함침투사건이 명백한 정전협정위반과 주권침해라는 차원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직접 사과 없이 미국 등을 통한 간접적인 유감표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북한이 남북대화 중단 책임을 우리측에 돌리고 일방적으로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쇄한 조치에대해서도 국제적인 공조와 남북경협 중단조치 강화 등 강경하게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남북연락사무소란/92년 개설된 남북당국자 공식대화 채널 남북연락사무소는 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됨에 따라 같은해 5월18일 분단후 최초의 남북 당국자간 공식채널로서 판문점에 개소됐다.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 「남측 연락사무소」가,북측지역 「통일각」에 「북측 연락사무소」가 있다.북측이 연락사무소 업무의 중지를 통보함으로써 판문점에서의 남북간 채널은 이제 적십자사간 창구만 남게 됐다. 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된 연락사무소의 기능은 ▲위임에 따라 남북 사이에 제기되는 제반 연락업무 수행 ▲남북사이의 합의사항 이행과 관련한 실무협의진행 ▲남북사이의 각종 왕래와 접촉에 따르는 안내와 편의 제공 ▲쌍방 연락사무소 사이에 필요한 수의 전화선 가설 운용 등이다.
  • 철과 시멘트의 조화/문인수 개인전

    ◎24일까지… 불균형·불협화음속 리듬 철과 시멘트를 재료로 사용해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문인수씨가 개인전을 지난 14일부터 박영덕화랑(544­8481)에서 갖고있다.24일까지. 문씨는 추상조각을 지키면서 정형적인 비례와 대칭보다는 불균형속의 조화,불협화음속의 리듬감으로 비정형의 조형세계를 소박하고 편안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가.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과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수상,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전당,대전엑스포 미래테마파크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적 시대상황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형상화한 신작 12점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남북분단과 단절된 소통 등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 재선 클린턴에 주문한다(박화진 칼럼)

    탈냉전후 우리는 세계사의 엄청난 변화와 변모를 목격하고 경험했다.소련붕괴와 러시아·동구 민주화,중국·베트남 등의 개방 및 자본주의경제 도입등.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기대와 좌절을 동시에 느끼게하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독일통일의 경우가 아닌가 한다.미·소 이데올로기 냉전의 종식은 당연히 우리에게도 통일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2차대전의 국가전범이랄수 있는 독일보다 먼저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럴 권리를 우리는 갖고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탈냉전은 이데올로기 냉전에 의해 왜곡된 「세계사의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자연과 순리를 거역하고 역행한 인위적 강제통폐합은 분열과 독립으로,분열과 분단은 단합과 통일로,순리에 따라 정상화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옛 소련,체코,유고의 붕괴와 분열이 전자에 속한다면 독일통일 등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다.분열이든 통일이든 그 모든 정상화의 기본정신과 방향은 「자유민주화」에 있었다.그 왜곡되고 모순된 역사 정상화의 순리가 유일하게 인위적으로저지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한반도다.불행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라 하지않을수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후 지난 50년의 세계사를 지배한 것은 미·소 이데올로기대결의 냉전이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그로인해 분단을 강요당했고 골육상쟁의 전쟁까지 치러야했던 우리는 그냉전의 가장 「무고하나 큰」 희생자라 할수 있다.한반도 분단의 책임소재에 대해선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수 있겠지만 근원이 결국은 미·소 이데올로기 대결에 있는 것이라면 결국 미국과 소련에 궁극적 책임이 있고,소련공산주의가 붕괴된 지금,자연과 순리에 역행하는 분단해소 및 통일의 가장 큰 책임과 의무는 당연히 미국에 있다고 할수 있다. 6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재선된 클린턴에게 우리는 이제부터의 한반도정책과 관련해 이점을 명심해 주도록 특별히 주문하고 싶다.지난 4년동안 클린턴 대통령의 미국정부는 그점을 잊고 행동하는 인상을 주어왔다.특히 핵확산방지와 동북아안보전략의 미국 국익차원에만 집착한 나머지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선 유감스럽게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할수있을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물론 통일은 전적으로 우리스스로 달성해야할 책임과제라 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분단이 그랬던 것처럼 통일도 우리의지와 노력만으론 역부족한 면이 많다.미국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은 물론 세계전략과 미 국익차원의 고의적 무관심이나 방해가 있어선 절대 안될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제2기 대북 내지 한반도는 물론 한국정책도 이같은 대전제위에서 구상되고 추진되기를 우리는 바란다.클린턴은 이번 재선으로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중차대한 시기의 세계유일 초강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된 것이다.한반도분단은 미·소 냉전이란 이름의 20세기 세계사가 만들어낸 비극적 모순의 하나라 할수있다.클린턴이 그 비극의 청산에 기여한 미국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대북한 내지 한반도 및 한국정책의 기본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관측이다.그러나 우리는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변화를 원한다.지난 4년간 북한에 끌려 다니기만한 온건일변도 대북정책에는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그러려면 제1기정책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있어야 한다.북한의 연착륙은 정말 가능한 것인가.강력한 통일한국의 출현이 미국의 국익에 대해 갖는 대차대조표는 어떤 것인가. 한번의 실수는 있을수 있으나 같은 실수의 되풀이는 조롱거리다.「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는 공산주의자의 속성은 지난 50년의 냉전사를 통해 배운 역사교훈이다.북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일하면서 잘 배우는 것으로 정평난 클린턴이다.지난 4년의 경험을 통해 북한을 알만큼 알았을 것이다.이제 재선의 부담도 없어졌다.자유로운 입장에서 북한의 민주화 개방·개혁을 유도하고 미국에게도 큰 책임이 있는 한반도 분단의 모순 해소 및 통일촉진을 위한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정책추구가 있기를 우리는 기대한다.〈심의·논설위원〉
  • 고은씨 연작 「만인보」 10∼12권 곧 출간

    ◎시 344수에 실린 ‘70년대 인물들’/정치·문화·종교계 등의 거대한 「인간희곡」/특유의 마당발·입담으로 「촌철살인」 인물평 시인 고은씨가 연작시집 「만인보」 10∼12권을 곧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다.지난 86년 첫 세권이 나온 「만인보」는 89년의 9권까지 주로 분단이전의 민초들이나 역사적 인물의 삶을 그려왔다.하지만 이번엔 20여년을 뚝 건너뛰어 70년대 인물들을 무대앞에 끌어세웠다.때문에 어느때보다 풍성한 화제와 시비거리(?)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신작 세권에 실린 시는 모두 344수.시편마다 현대사의 기록적인 인물이나 추억의 현장을 하나씩 담아 거대한 「인간희곡」을 이루고 있다.시집이라기보다 70년대의 빛바랜 신문철을 들춰보는 기분이다. 수가 방대한만큼 주인공들의 이력도 다채롭다.선우휘,최일남,신경림,송기숙,박목월,송기원,박태순,김병익,염무웅,오윤,박수근,윤이상 등 문인을 비롯한 예인은 물론이고 김수환,함세웅,문익환,서경보,법정 등 종교인,이희승,강만길,박현채,이영희,한완상 등 학자들도 펜의 세례를 받는다.박정희부터 이철까지 전현직 정·관계 인사가 「공주 느림보」나 「중앙시장 과부」같은 필부필부들과 엇갈려 놓이는가 하면 김형욱 부장 등 과거 중앙정보부 직원들도 시인의 펜대를 비켜가지 못한다.무엇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센 격랑의 70년대 동지들의 얘기가 기둥줄기로 흐르고 있다. 「공중변소 낙서꾼」은 음양의 〈박는것./박히는 것〉,〈갖은 욕설〉이나 그려대던 한 장난꾼이 〈괜히/어떤 낙서 유신철폐를 흉내내어/유신철폐를 썼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감옥에 간 씁쓸한 해학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본다.중부전선 참전의 후유증으로 눈이 먼 노인을 다룬 「샛강 봉사」는 〈미칠것만 같았다.그 무자비한 어둠//세월은 그 어둠에도 약이었던가/그저 마음 가라앉아/볼 수 없는 몸으로도 삶을 펄럭이는 천막이었다〉라는 아름다운 구절때문에 민족상처의 뿌리를 더욱 처연하게 드러낸다. 또 「무교동의 밤」「관철동 밤 피리소리」등의 시에서는 취기와 통금사이에서 풀길없는 울분에 갇혔던 유신시절의 사회풍경이 술꾼의 입으로 구슬프게 전해지고 있다. 인심 후하면서도 촌철살인하는 시인의 기질은 특히 유명인들 인물평에서 잘 드러난다.민족문학론의 대부 「백낙청」편에선 〈이 사람 없었던들/…/우리 문학/어쩔 뻔했겠느냐〉는 극찬끝에 〈부탁 하나 있기로는/1년에 폭음 세 번은 있어야 함〉이라는 꼬리가 살짝 붙는다.민주운동가 「이부영」론은 〈내로라 내로라 하고 나서지 않으나/어떤 사건 속에는/반드시 그가 들어 있다/과일 씨처럼〉이라고 경전의 게송처럼 오묘한 시구를 선보이고 있다. 특유의 마당발과 입담으로 현대사의 중요한 시대를 거대한 화폭에 정리하는 작업을 끝낸 고씨는 앞으로 토착적 소재를 다룬 소설 「정선 아리랑」과 수필집 등을 잇따라 펴내 변함없는 건필을 보여줄 계획이다.
  • 생포 이광수·귀순 곽경일씨 기자회견

    ◎“북 잠수함사건뒤 전투준비명령”/대남침투용 1천t급 잠수함 건조중 북한은 지난달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전방 부대에 전투준비 완료 명령을 내리는 등 비상대기 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또 대남 침투를 위해 80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1천t급 잠수함을 건조 중이다.〈관련기사 4·5면〉 생포된 북한 잠수함 승조원 이광수 상위(31·전 정찰국 22전대 2편대 1호 잠수함 조타수)와 지난 13일 귀순한 곽경일 중사(25·전 1사단 민경대대 1중대 3소대 부분대장)는 29일 상오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폭로했다. 이씨는 『올 초 22전대에서 승조원 50여명,공작원 30여명 등 80여명이 한꺼번에 승선할 수 있는 1천t급 침투용 잠수함의 필요성을 정찰국장에게 건의,현재 함남 신포의 「봉대 보이라공장」에서 건조중이며 지난 5월부터 해군 등에서 이 잠수함 운용요원을 뽑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북한은 선박 침투시 공해상을 우회해야 하고 감시망에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90년대 초부터 수중침투용 출입구가 설치된 잠수함을 별도로 건조해 22전대에 4척을 실전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잠수함이 훈련중 표류해 좌초했다는 북한측 주장과 관련,『정찰국장이 환송파티까지 열어 격려했는데 무슨 훈련이냐』며 일축했다. 한편 곽씨는 북한의 「백배 천배 보복」발언과 관련,『지난 20일 잠수함 좌초사실이 알려진 뒤 사단에 대대장 이하 모든 군인들의 정위치 대기,간부 퇴근 금지 등의 명령이 하달됐다』고 전하고 『고사포 등 각종 총포의 전투태세를 완료했으며 사단 작전참모가 직접 남한 정찰에 나서는 등 비상태세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곽씨는 또 『지난해 2월 1사단 민경대대 10중대 2소대 상등병 이봉철(20)이 분대장의 잦은 구타에 앙심을 품고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져 소대원 다수가 사망하는 사고를 낸 뒤 공개총살됐다』고 말했다. 곽씨는 또 북한군은 각종 강연회 및 정치학습 시간을 이용,「총대로 통일해야 한다」 「90년대에 무력으로 분단을 끝내자」는 등 무력통일에 관한 교양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김경운·김태균 기자〉
  • 공로명 외무 OECD가입 수락연설 요지

    ◎“경제규모 걸맞는 개혁정책 추진”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25일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초청 협정에 서명한뒤 가입초청 수락연설을 통해 우리정부가 OECD에 가입하는 의의와 우리나라의 활동방향을 밝혔다.연설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OECD 가입은 한국 외교·경제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21세기를 향해가는 국제사회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국제사회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반드시 필요하다.OECD는 국제사회에서 바로 이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한국은 60년대까지만해도 전형적인 저개발 농업사회였다.그러나 지난 30년동안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한국은 이제 세계무대의 주요한 산업국가로 부상할 수 있게 됐다.한국 경제는 지난해까지 놀라운 성장을 계속했지만 올해들어서는 주춤하고 있다.세계시장과의 격심한 경쟁을 벌이는 이 시점에,한국경제는 총체적인 구조 조정을 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맞이한 것이다.한국 정부는 거시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면서인플레이션을 줄이고 산업경쟁력을 확대하고 시장을 보다 자유화하기 위한 다양한 개혁정책을 이행해오고 있다.우리는 OECD 회원국이 축적,공유하고 있는 가치있는 경험을 통해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한국인은 5천년을 이어온 문화유산을 지닌 민족이다.근래에는 경제적인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다.한국인의 이러한 독특한 경험과 특유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경제규모에 걸맞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며,OECD의 문화적 지평을 한걸음 넓히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과 아시아유럽회의(ASEM)의 회원국으로서도 한국은 OECD의 세계화 촉진 노력에 능동적인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6년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됐지만 분단된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잔재로 남아있다.최근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됐다.한국이 가까운 장래에 통일되는 것이야말로 한국민들의 가장 절실한 염원이다.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OECD 회원국들이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고한반도 문제 해결에 지원해줄 것을 믿는다.한국 정부는 다원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권존중이라는 OECD의 기본원칙을 준수해나갈 것임을 다짐한다.한국은 OECD의 새로운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세계화와 자유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회원국들과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파리=이도운 특파원〉
  • 백범암살의 진상은 묻히는가(사설)

    백범암살의 진상은 묻히는가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의 피살사건은 우리를 참으로 착잡하게 한다.백범을 살해하고도 79세의 나이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 나라의 현실도 그렇지만 끝내 피살이라는 참담한 최후를 갖게 했다는 점도 우리를 새삼 곤혹스럽게 한다. 민족주의자 백범의 암살과 그를 쓰러뜨린 안씨의 피살은 우리에게 새삼 민족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백범은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고착화하려던 49년 안씨의 흉탄에 쓰러졌다.민족통합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려 했던 김구선생의 이상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의 꿈은 한민족통합의 당위성과 남북통일의 정당성을 이 땅에 일깨워줬다.그리고 지금도 그의 민족주의는 통일에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남아 있다. 백범암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러나 안씨는 끝내 「배후」의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안씨는 범행후 줄곧 단독범행임을 주장해왔다.그러나 백범을 살해한 범인이 비록 6·25전쟁 발발이란 명분이 있었으나 투옥 1년여만에 포병장교로 군에 복귀한 사실,51년 제대후에는 당당한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상황은 그가 단독범이 아닐 것이란 심증을 온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9이후 비록 쫓기는 형편이 됐다고는 해도 안씨는 이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진 게 없다.그는 당시 군특무부대사령관 김창용씨 등 몇 사람을 배후인물로 거명하기도 했으나 이내 부인하고 마는 말뒤집기를 되풀이했고 한때는 배후에 커다란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처럼 암시하기도 했으나 어느것도 실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반민족적 범행이 있은 지 반세기가 다 되도록 그 진상이 하나도 속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는 사실도,범인이 법의 심판이 아니라 개인적 테러에 의해 희생된 것도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다만 반민족적 범죄는 법적 처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응징된다는 교훈만은 남긴 셈이다. 반민족적 범죄의 진실은 비록 안두희씨가 갔어도 밝혀져야 한다.배후세력중 어느 구석에서 어떤 단서가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민간기구가 됐든 국회차원에서건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작업은 계속돼야 한다.그래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고야 만다는 진리를 역사에 바로 남겨야 한다.그런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마포포럼 세미나/박동서 행쇄위장 주제발표

    ◎“「민생정치」로 국민신뢰 회복을”/경제 양적 성장보다 내실 기해야 박동서 정부행정쇄신위원장은 25일 마포포럼(회장 이경식) 주관으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다.이날 토론회는 마포포럼이 산하기구로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을 설립하는 것을 자축하기위해 마련됐다.박위원장의 주제발표를 요약한다. 분단과 전쟁의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유교적 전통에 의한 교육열과 의무교육의 확대,발전에 있었다.교육수준의 향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며,교육과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의 중산층과 사회운동을 창출함으로써 자율적이고 평화적인 민주화와 정치발전의 기반을 이룩해왔다.결국 유신체제와 5공정권이 붕괴되었고,6·29선언과 문민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우리는 민주화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민주화의 확대는 권력의 분산과 참여의 확대를 가져왔고 김영삼정부의 출범이후 공직자 재산공개,실명제,권력형 부정비리의 척결은 보다 깨끗한 사회건설을 위한 역사적인 진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그러나 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우리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으며,각 분야별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분야에서는 그동안 민생과 관련이 없는 권력투쟁으로 수많은 자원을 낭비해왔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권력지상주의를 타파하고 민생을 최우선으로 한 정치로의 탈바꿈이 있어야만 민은 정치를 높게 평가하게 될 것이며,신임에 입각한 지지와 정치의 영향력은 향상될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그간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환경변화에 취약한 측면을 노정하고 있다.이는 질적향상을 외면한 단기적 양적성장에 치우친 결과다.경제적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은 일부 소비계층의 무분별한 소비패턴을 부추긴 세금정책과 외화정책에 있다.대다수 성실한 근로자의 사기를 꺾지않도록 하는 경제정책으로의 전환이 진전되어야 한다. 교육분야에서 먼저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기주의적인 점수벌레를 양산한 왜곡된 교육을 시정하고 학생의 자기완성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으로의 개혁이 요구된다는 점이다.이를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개혁과 아울러 학부모와 교직원들의 참여를 통한 이해의 증진과 개혁에의 의지가 요구된다.과학기술분야의 진흥을 위해서는 비교우위를 위한 기술개발이나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대담한 투자전환과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우대정책,과학기술인들의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가 필요하다. 사회문화면에서는 1차집단 중심의 윤리와 소집단 경쟁의 원리가 만연되어 있는 국민들의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 민족공동체 중심의 사회윤리를 정립할 필요가 있으며,언론이나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소속원의 이익이 아닌 국민을 위한 사업을 전개,공익에 도움이 되도록 운영하고 국민들로 부터 신뢰확보가 요구된다. 통일은 중요한 과제이긴 하나,지나치게 서둘러서는 안될 것이다.우리와 생각이 다른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무리하게 추진,자원을 낭비하기 보다는 내치에 우선적으로 충실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기다려야 할것이다.
  • 이 대표 연설 요지/노동비용 안정·기업부담금 축소 노력

    21세기의 대평원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목에서 우리는 남북분단상황과 전쟁위험의 극복,성숙된 선진공동체건설을 위한 국제경쟁력강화라는 두 봉우리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전쟁을 예방해야 한다.힘의 확실한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평화를 깨려는 어떠한 시도도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임을 북한이 실감토록 해야 한다.미국뿐 아니라 일본·중국·러시아 등 모든 관계국이 가지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대북정책에 대한 공조체제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경찰의 대공수사력강화를 위한 조치가 구체화될 것이다.안기부법 개정도 필요하다.과거의 망령에 매달려 새로운 미래의 건설을 포기할 수 없다. 많은 분이 우리 경제를 걱정하고 있다.고비용·저효율구조가 문제다.우선 이자율을 단기적으로는 최소 1∼2%,그리고 가능한 가까운 시일내에 한자리수로 내려야 한다.이를 위해 금융산업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공장용지의 가격도 낮춰야 한다.공단가격을 최소한 20∼30% 내리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노동비용을 안정시키고 사회간접자본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기업에 대한 준조세적 각종 부담금이 줄어들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대해 여야는 모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단지 가입에 수반하는 위험요소에 대한 우려와 가입시기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일부 표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1세기를 향한 선택과 책임정치의 중심무대가 바로 국회다.입법부를 명실상부한 정치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법·정당법·국회법 등의 개정을 포함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97년도 예산안을 비롯한 여러 법안이 차분하고 원만하게 처리되길 기대한다.
  • 서울신문사 「북한인명사전」 개정·증보판

    ◎북한을 움직이는 16,000명 한눈에/사자포함 북녘 엘리트인맥 상세 소개/신포경수로부지 등 생생한 화보 함께 북한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들의 인적 사항을 망라한 「북한인명사전」 96∼97년 개정·증보판이 최근 출간됐다.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소장 김종일)가 펴낸 이 책은 국내 유일의 북한인명사전으로,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인물정보를 낱낱이 담아 판을 거듭할수록 권위를 더해가고 있다. 올 개정·증보판은 96년 7월말을 기준으로 해 북한 각계의 전·현직 요인,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진 엘리트와 당성이 투철한 청년·학생 등 약 1만6천명을 수록했다. 또 이미 사망했거나 생사를 알 수 없더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은 대부분 실어 분단이후 북한 인맥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인명은 북한의 표기법 대신 한글 표준어 표기법을 택했으며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관행을 고려,중국·일본측 자료를 참고해 한자이름을 가능한한 많이 넣었다.뉴스의 초점이 되거나 각종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인물 700명의 인물사진을 싣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함경남도 단천의 마그네사이트 생산기지 전경,최근 개성시 판문군에서 발굴된 고려시대의 문화유물 검은꽃무늬 청자대야,함경남도 신포 경수로발전소 건설예정부지 등 생생한 원색화보를 실어 뉴스적 가치를 높였다. 이밖에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의 경제개발 관련 15개 법령 ▲조선노동당 산하 22개 전문부서 및 정무원 산하 42개 부처의 간부 명단 ▲재일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와 지방본부·산하단체·기업체 임원 명단 등을 부록으로 실어 북한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서울신문사는 지난 90년 「북한인명사전」 첫 판을 낸 이래 해마다 개정·증보판을 발간,북한 바로알기에 큰 몫을 다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개정판은 4×6배판 고급양장에 모두 1천332쪽 분량으로 값은 10만원이다.문의 721­5063∼4.〈김종면 기자〉
  • 「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토론요지

    ◎서울신문 창간51돌 제2회 국제포럼 「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한 제2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이 18일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이날 국제포럼에는 「북한의 위기상황­어디까지 왔나」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의 모색」이라는 두가지 주제가 제시됐다.한국과 중국·일본·미국·러시아 등 5개국 석학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이 있었다.토론자로는 제1주제인 「북한의 위기상황…」에는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과 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교수·하영선 서울대교수·옥태환 민족통일연구원 자료조사실장이 나섰다.제2주제인 「한반도의 항구적…」의 토론에는 서진영 고려대교수와 이경숙 숙명여대총장·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교수·김정환 국방대학원교수·심지연 경남대교수가 참가했다.이어 정태익 외무부기획관리실장이 「한국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제1주제­북한의 위기상황… 어디까지 왔나/개인·물질주의 확산속 최저생계조차 불안/북은 비상사태… 「2개의 한국정책」 분단장기화/종교국가적 측면 강해 신학적 접근 필요 ▲옥태환 교수=주제발표자들은 모두 김정일이 김일성이 죽은뒤 2년3개월 동안 노동당총비서와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당·군·정을 장악한 채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다고 공통되게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어렵다.이를 「구조조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그런데 지난 4월에는 북한의 김책제철소가 문을 닫았다.한국으로 따지면 포항제철,미국같으면 「유에스스틸」에 해당한다.그런데 구조조정으로 이런 공장이 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김정일은 올해 신년사에서 「95년은 건국 이래 가장 어려웠고 이런 어려움은 금년에도 해소될 전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서대숙 교수는 『김정일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려움을 관리할 능력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북한은 과도한 군사비와 고질적 에너지난,심각한 식량난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모두 하루 아침에 선순환될 수 없는 문제다. 또 서교수는 『영토문제에 있어 한국은 남한만,북한은 북한지역만으로 한정하는 것으로 헌법을 바꾸고 서로 수교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이같은 「2개의 한국정책」은 자칫 분단을 장기화할 수도 있지않느냐는 생각이다. ▲강인덕 소장=김학준교수는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3개 그룹으로 ▲김정일의 친인척 ▲항일 빨치산 및 그들의 2세들을 비롯한 군부인사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을 들었다.나는 이 3대 그룹에 김정일이 만든 「3대 혁명소조」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연령구성으로 볼 때는 정책결정 구조의 밑바닥에 해당하지만 정책을 「집행」하는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반대파의) 입을 봉하게 하고 전위부대로서 김정일체제의 안정에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김정일과 군부와의 문제는 상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북한은 지금 비상사태다.어느 나라라도 그같은 상황에서는 군부가 나서기 마련이다.북한이 지금 그렇다.북한은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북한에 관한 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김정일이 바로 김일성 아들이라는 점이다.김정일이 살려면 김일성이 세운 주체사상을 버리고 적극적 개방에 나서야 하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릴 수 없기에 「개혁없는 개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석렬 교수=발제자들의 공통의견은 북한이 결국 「소프트 랜딩」의 길을 택해 다음 세기로 생명을 연장할 가능성이 큰 반면 붕괴가능성은 적다는 것이었다.그런데 북한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평가할만한 기준이 있어야겠다.적어도 효율성과 정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주의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살아남아 왔다.그런데 김정일은 새로운 정책 대신 김일성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답습한다.과도기에는 역할을 하겠지만 이후에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국가보다는 개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암시장과 부정부패 등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확산이 그것이다.이것이 사회주의의 결속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효율성」측면에서도 현재와 같은 군부중심의 비상체제에서 군 상층부로 부터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중하층 인민군으로부터는 자발적인 충성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대외적으로는 벼랑끝 외교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통치수단으로의 식량배급도 이제 불가능하다.이래서는 정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총체적 위기다.획기적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오래 지탱하기 어렵다고 본다. ▲하영선 교수=솔직히 북한전문가가 쓴 글을 잘 읽지않는다.늘 맞는 곳보다는 틀리는 곳이 더 많다.왜 이렇게 됐는지를 심각하게 논의하여야 한다.잠수함 공비침투같은 사건이 있을 때 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북한연구와 대북정책의 빈곤 때문이다.무엇보다 자료,특히 객관적 데이터가 빈곤하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분석틀」이 빈곤하다.그러나 현재 북한에 맞는 분석틀은 보이지 않는다.그 책임의 일단은 흔히 북한을 근대국가로 상정하는 미국식 연구모델에 돌릴 수밖에 없다.북한을 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제대로 못볼 수밖에 없지않느냐는 생각이다.종교국가적인 측면이 너무 간과되어 있다.북한을 이해하는데는 신학적 측면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이렇게 보면 권력승계 문제도 좀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10대 강령」같은 것도 「성경」이나 「4서」처럼 분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2주제­한반도의 평화체제 모색/한반도문제 남북한 당사자 해결이 원칙/4자회담 북·미회담 마당 전락 경계해야/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의연한 자세 긴요 ▲서진영 교수=당면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이다.이에 대해 주제발표자들은 대체로 인내와 끈기로 북한을 포용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부담이 적은 방안이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는 이상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과연 북한의 위협이 실재하는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는가.오로지 한국만이 끊임없는 인내를 시험받고 있으며 박애주의를 강요받고 있다. ▲이경숙 총장=4자회담에 대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제각기 다른 입장이 표출된 듯 하다.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평화적 통일을 위한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다른 4개국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생각된다.특히 4자회담에 있어서 이들 국가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은가.4자회담이 실제로는 북·미회담의 마당만 만들어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북한이 미국접근에만 관심을 두는 한 한국이 더이상 북한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는 어렵다. ▲이서항 교수=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은 북한이다.그동안 한국과 주변국들은 지나치게 형식,즉 평화체제 구축방안에만 관심을 두었다.특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다.아울러 평화협정만 체결하면 곧 평화가 온다는 인식은 잘못이다.남북한의 군사대결 완화와 교류협력 확대 등 평화협정 체결이후의 실질적 실천내용이 중요하다. 4자회담 제의는 실현가능성과 실효성,법리적 타당성등 세가지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우선 북한이 대미접근에만 주력하는 상황에서 주변국의 역할과 남북기본합의서,한반도비핵화선언 등이실천되는 데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곽태환 소장이 제안한 「4개국 다자협정」은 필요성이나 실현가능성이 의문이다.한반도문제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 해결원칙이 존중돼야 하며 북한 스스로 이를 인정해야 한다.이를 위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아직 중국의 자세는 불명확하다. ▲전정환 교수=평화나 통일에 대해 남한과 북한이 과연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지,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남한은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한 교류를 통해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룩한 뒤 합의에 의한 통일을 구상하고 있다.반면 북한은 한반도 상황을 미국의 남한 강점에 의한 긴장상태로 인식,미군철수를 통한 적화통일을 한반도 안정구도로 세워놓고 있다.즉 정전협정을 북·미 평화협정으로 대체한 뒤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자는 계산이다.이런 양립할 수 없는 개념 차이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연 교수=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성 유지와 의연한 자세가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채널에 급급해 하는 인상이다.국민 자존심을 훼손하는 대화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우리 스스로 경제력을 보다 향상시키면 북한은 대화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4자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을 설득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중국은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지 무리하면서까지 북한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북한의 권력투쟁 가능성을 전망한 오코노기교수의 견해에 의문이 든다. ▲오코노기 게이오대 교수(주제발표자)=솔직히 일본은 4자회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당사자인 남북한의 합의가 없이 다국간 안보체제는 실현될 수 없다.순서가 뒤바뀐 것이다.4자회담의 실현가능성도 의문이다.북한은 4자회담을 수용하는 대신 미·북,남·북회담을 병행하는 변칙 3자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4자회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정태익 실장=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한국정부의 목표와 정책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항구적 평화안정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며 이는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것이다.북한은 대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4자회담을 거부하지 못한다.정부는 북한이 4자회담에 응할때 혜택을 고려할 것이다.4자회담의 의제는 당사자가 있으므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다만 남북기본합의서와 평화협정 전환 등의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회담형식은 「2+2」에 얽매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할 것이다.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지지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으나 회담이 성사되면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러시아는 「동북아 포럼」 등의 채널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정리=서동철·진경호 기자〉
  • 열한살의 푸른바다·별볼일없는 4학년/젊은 엄마에게 권하고싶은 책

    ◎또래들의 문제·갈등 등 재미있게 다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책이 재미없는 요즘 아이들.「학원 떠돌기」에 바쁜 탓도 있겠지만 옛날 같지 않게 깜찍해진 아이들에게 전설 같은 권선징악 스토리는 더이상 읽히지 않는 모양이다. 이같은 요즘 어린이의 눈길을 끌만한 창작동화가 나왔다.젊은 소설가 김소진씨의 「열한살의 푸른바다」(국민서관)와 미국 동화작가 주디 블룸이 쓴 「별볼일 없는 4학년」(창작과비평사 윤여숙 옮김).나란히 열살무렵 소년을 앞세운 두권은 그 또래들만의 문제나 갈등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얹어 다루고 있어 아이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데다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이 받는 심리적 도전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볼 만하다. 「열한살의…」는 친구들과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다투고 화해하며 자라나는 4학년 태형이가 주인공.통일이나 민족문제 등을 한 소년의 생활속에 억지스럽지 않게 녹여낸 점이 특징이다.태형네 아파트 경비원 딸기코 할아버지는 분단으로 생이별한 아내와 가족을 40년이 넘도록 가슴에 품고산다.그런가하면 일제시대 잘나가는 법관이었다가 독립투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수치심을 느끼고 출가한 태형이 증조할아버지를 통해 독립운동의 의미를 일깨워주기도 한다.또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아닌 너그럽고 올곧은 덕담으로 태형이를 돌봐주는 연극연출가 삼촌은 엄마들에게 아이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주는 인물이다.이밖에 아사달과 아사녀,봉덕각시,어처구니,밉광스럽다 등 우리 전래의 말이 담뿍 담겨 새록새록 배움의 기쁨을 일으킬 만하다. 한편 「별볼일 없는…」역시 4학년 피터가 주인공이지만 만으로 두살반이 된 동생 퍼지와의 사이에서 일으키는 사건과 말썽 따위가 주를 이룬다.동생을 보살피면서 항상 양보만 해야하는 형 피터의 심리는 모든 동생있는 어린이의 공감을 살만큼 사실적이면서도 익살맞게 그려지고 있다.누구나 겪을법한 별것아닌 일상사에서도 달콤한 에피소드를 끌어내는 지은이의 얘기솜씨가 돋보인다.〈손정숙 기자〉
  • 서울평화상 「국경없는 의사회」/필립 비베르송 회장 기념강연

    ◎“분단국가가 주는 상 기쁜마음으로 수상” 제3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국경없는 의사회」의 필립 비베르송 회장은 지난 11일 하오 신라호텔에서 시상식이 끝난후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과 김운용 대한체육회회장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상기념 강연회를 가졌다. 「인도적 행동이 세계평화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라는 주제로 행한 그의 강연 요지를 정리한다. 모든 자원봉사자를 대표해 서울평화상을 수상하러 이 자리에 선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서울평화상 수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거부당한 채 독재와 폭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줬다.이 점에 대해 「국경없는 의사회」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남북통일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계평화라는 대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은 내일 당장 평화로운 생활이 깨질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세계평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오늘 「국경없는 의사회」가 상을 받았지만 『세계평화』라는 대의에 발벗고 나선 한국인들과 공평히 나눠 갖고 싶다. 동아시아의 다른 신생공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경제발전에 성공해 「개발」이라는 첫번째 관문을 극복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개발」이라는 관문을 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인도적 행동에도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또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용기를 갖게 됐다. 가난과 폭력속에 방치된 어린이들,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창궐하는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이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정리=곽영완 기자〉
  • 대학생들 한총련 호된 비판/한대·중대신문­덕성여대 총학생회 설문

    ◎71%가 “북 주장 동조 탈피 내부혁신 필요”/“북 잠수함은 침투목적” 92%/“기관고장” 서총련 주장 반박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학생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와 관련,한총련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는 등 건전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한양대 학보인 「한대신문」이 대학생 189명을 상대로 『무장한 북한군이 남하한 경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76.2%가 『계획적인 침투 도중 좌초한 것』이라고 답했다. 「기관고장에 의한 것」이라는 서총련의 주장에 동의한 대학생은 5.3%에 불과했다. 또 북한군의 남하목적을 묻는 질문에는 72.9%가 「상시적인 침투 같다」고 지적했으며,19.4%는 「무력행사를 위한 침투」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22.8%는 『무장 북한군의 남하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해야한다』고 답했으며,49.7%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돌아선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한총련 산하 서울지역 총학생회 연합(서총련)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김영삼 정권은 북잠수함좌초사건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북 잠수함 좌초사건은 정부의 최초 발표대로 기관고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어지며,그 이전에 미해군의 대잠 초계훈련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서총련은 이어 『북잠수함 좌초사건은 조국이 분단되어 있고 항상 군사대결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실로 인해 발생한 민족적 비극』이라고 북한을 두둔했었다. 중앙대 학보인 「중대신문」도 이날 6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29.2%가 「한총련의 투쟁방식」,17.2%가 「현실과 괴리된 한총련의 주장」,10.7%가 「한총련의 사상적 편향」을 각각 지적했다. 한총련이 학생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덕성여대 총학생회가 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6.5%의 학생들이 「학생운동이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데 접근방식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며,한총련이 진정한 학생들의 대표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71.1%에 이르렀다.〈박상렬·이지운 기자〉
  • “통일만이 살길”… 주민들 통일지상주의(북한은 지금…:7)

    ◎“방법은 고려연방제로”…철저히 사상무장/“보안법 철폐·주한미군철수” 억지 되풀이/“「남북연합」은 북 흡수통일하려는 불순한 의도” 비난 북한은 지금도 김일성시대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통일정책의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학자나 주민은 한결같이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적 입장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사업을 위해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용정시 개산둔진에서 만난 조선족 안모씨는 『북한주민은 만날 때마다 남조선의 「남북연합」 통일방안이 우세한 경제력으로 북조선을 흡수통일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난하며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북한전문가는 북한당국의 최종목표가 적화통일에 있지만,겉으로는 지난 60년대부터 연방제통일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통일정책의 기조로 삼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고 관측한다.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함택영 교수는 『지난 60년 김일성의 8·15경축사에서 처음으로 제의한 연방제통일방안은 73년 「고려연방제」,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등으로 조금씩 변용,수정돼왔다』고 분석한다.『지난 91년 신년사에서 또다시 수정제의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핵심은 정치·외교·군사문제를 총괄하는 연방상설회의를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에 지역정부를 두는 「1민족­1국­2체제­2정부」를 구성,남한의 흡수통일을 막아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북한전문가는 그러나 연방제통일방안이 자가당착이라고 진단한다.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을 위해 제시한 선결조건과 구성원칙이 서로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선결조건은 인민민주정권으로의 정권교체와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철폐,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 및 주한미군철수 등이다.남한에 용공정권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구성원칙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원칙에 따라 「남북한의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기초」 위에 남북이동등하게 참가,통일정부를 구성하고 그 밑에 남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는 지역자치를 실시하는 것이다.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구성원칙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고 정작 중요한 선결조건에서는 용공정권으로 바꾸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은 대남정책의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북한전문가는 보고 있다.남조선혁명을 위해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대남위장평화공세라는 것이다.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는 『연방제통일방안은 주로 남한의 정치정세가 혼미하던 때 제의됐음을 상기할 때 고도의 심리전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은 남한보다 유리할 때는 공세적인 통일방안을,불리할 때는 수세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는등 강온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아직도 남조선혁명론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주민은 통일에 대해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은 탓인지 고려연방제 통일만 되풀이했다.북한당국이 미국과의 평화협상체결을 통해 김정일체제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반면,그 속내를 모르는 북한주민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중국 화룡시 노과향에서 만난 북한군 초병은 『통일이 되지 않고는 잘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남조선인민의 통일열기가 식어가는 게 안타깝다』고 연길에서 만난 북한접대원도 덧붙인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같다.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김일성 생전의 소원인 적화통일의 혁명위업을 완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뤄져,김일성의 통일정책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사회가 일련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이념논쟁·한총련사태 등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북한당국에 자신들의 통일론에 대한 동조세력이 있는 것으로 오판하게 하고 있다.〈연길(중국)=김규환·최병규 특파원〉 ◎참여교수 시각/북한의 통일정책/최완규 경남대 교수·북한정치/정교한 통일논리 개발/체제유지 정당화 북한은 분단이후 오랫동안 남한보다 통일의 당위론을 강조해오면서 통일을 국내 정치게임에 이용해왔다.사실상 그들은 통일의 당위성을 생존과 결부시켰다.따라서 실현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통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고 분단현실을 인정하는 것 차제를 금기시했다. 북한에서 통일은 체제의 정통성 확보와 인민의 동원 및 일체감 조성,경제적 궁핍을 감내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기제로 작용해왔다.북한을 방문한 많은 사람에 따르면 북한의 관료나 학자는 물론 일반인도 입만 열면 민족·양심·주체·통일·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을 강조한다는 것이다.이것은 일종의 통일의 당위론을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지배집단은 통일을 체제의 존재근거로 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통일논리를 개발해왔다.그 핵심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투쟁론」과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이다.그들은 이같은 통일논리를 바탕으로 정권수립이후 지금까지 통일협상회의,외세배격과 주한미군철수,남조선혁명역량강화,연방제 등의 통일방안과 대남제의를 계속해왔다. 북한의 입장은 김일성 사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김정일이 권력을 승계받을 수 있었던 정당성의 원천은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데 있다.따라서 대내외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김정일은 당분간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의 통일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경제적 어려움과 불리한 국제정세에도 기존의 통일논리와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남인식과 관련이 있다.북한은 남한내에 혁명주의적 요소가 잠재해 있고 그들의 통일논리에 동조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대남인식변화를 유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남한에서 모범적인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남한내의 혁명주의적인 요소는 자연히 없어지고 북한의 통일논리와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 독 통일 6주년/옛 동·서독 주민 “마음은 분단”

    ◎“경제적 집만 커졌다”·“푸대접 여전” 서로 불만/국가위상 제고 불구 파업·시위 끊일날 없어 독일통일 6주년을 이틀 앞둔 1일 독일의 주요도시들은 파업의 몸살을 앓았다.파업의 원인은 병가시 임금을 20% 삭감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정부의 재정긴축법 발효.꼭 이날의 파업 뿐만 아니라 최근 독일 곳곳에서 파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노사관계가 비교적 안정된 것으로 알려졌던 독일에서,주로 옛 서독지역을 중심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이처럼 파업이 늘어난 것은 경제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크게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불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현재 상황으로는 세계경제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독일인들이 느끼는 불만은 어느 정도 통일과도 연관돼 있다.통일에 대한 기대가 배신감으로 바뀌면서 옛 서독인들을 동독에 대한 지원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불만을 표출하게 됐고,옛 동독인들은 서독에 대해 해주는 것도 없이 무시한다고 반발,동·서독인들간에 내부갈등이 일어났다.어려운 경제상황이 이같은 갈등을 통일에 대한 반감으로 증폭시켰다.외형상의 통일은 이뤄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동·서독으로 분단된 현 통일독일의 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 6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노릴 정도로 독일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입김이 커졌고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전투병력의 해외파견이 이뤄지게 됐는데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가 별로 없을 정도로 독일의 위상은 높아졌다.국민 개개인의 불만과는 관계없이 세계속에서의 독일의 위치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국민들의 불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오랜 세월 후에 나타날지도 모를 이득을 위해 현재의 불만을 감수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당장 드러나는 국민들의 불만을 외면하면서 진정으로 통일독일의 앞날을 위한 초석을 닦아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르지만 최근 「나는 통일을 원했다」는 자서전까지 펴낸 콜 독일총리가 이제까지보여준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괸심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아무리 한민족이라 하더라도 45년의 극단적인 분단 세월을 보낸 동·서독이 짧은 시간에 하나로 다시 뭉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결국 분단의 경험을 겪은 세대들이 전면에서 물러나고 통일 이후의 세대들이 주역으로 등장할 때까지 통일에 따른 잡음은 끊임없이 터져나올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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