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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잠수함·잠수정 92척 ‘물밑작전’

    ‘북한 잠수정의 침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이 공격형 핵잠수함과 순양함,P­3C 대잠(對潛)초계기 등 대잠 장비와 병력을 한반도에 급파,북한 잠수정의 동해 침투에 대비한 한·미 연합작전을 전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자 우리 군이 이를 계기로 ‘잠수정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로 비유되는 북한 잠수정의 탐색 작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지만 해안선을 따라 침투하는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찾아내기는 이론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육지에서 가깝기 때문에 음파탐지기를 통해 적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 70t 규모의 소형 잠수정을 확실하게 탐지할 만한 장비는 미개발 상태이다.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때와 최근 두 차례의 침투 사례에서 보듯 물속에 있는 잠수정을 찾기보다는 물위로 떠오른 잠수정을 탐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다. 이 점에서 민·관·군 통합방위 체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있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우리 군의 대응 전력 및 전술,보완 대책 등을 점검해 본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대부분 노동당작전부 지휘받아/7∼9월 음력그믐 전후 집중/공해서 반잠수정 이용 침투도 관계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동해와 서해에 모두 6개의 해상 침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동당 작전부 313연락소가 동해의 원산과 청진,서해의 남포와 해주기지 등 4곳을,인민무력부 정찰국은 동해의 퇴조와 서해의 남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1,400t 규모의 로미오급 잠수함정 26척,320t규모의 상어급 잠수정 19척,70t규모의 유고급 잠수정 47척 등 잠수함정 92척을 비롯,60∼70t규모의 공작선박 80∼90척 등 북한 해군이 보유한 함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들 기지에 배치,대남 침투 도발에 사용하고 있다. 또 노동당 소속 공작원 1,500명 및 인민무력부 특수전부대 요원 2만여명을 평상시 대남 침투 특수요원으로 투입하고 있다. 북한군의 전시 대비 특수전 요원은 모두 12만명에 이른다. 최근 두차례의 북한 잠수정 침투는 모두 원산에 본부를 둔 노동당작전부에서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전부 요원들만이 사용하는 체코제 기관권총과 사각수류탄 등이 나왔고 침투용 추진기도 발견됐다. 20일 간격으로 같은 부서에서 동일한 장비를 이용해 침투 공작에 나선 것이다. 군 당국은 속초 앞바다에 좌초한 장수정에서 ‘9·9절을 앞두고 충성의 선물을 드리자’는 편지가 나온데 주목하고 있다.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50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선물 마련’ 차원에서 침투 공작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노동당 작전부는 통상 2∼3개월씩 장기 체류하면서 고정간첩과 접선하고 지하망을 새로 구축하거나 기존 지하망을 확인·확장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북한의 경제난에 따라 고정간첩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것도 최근 밝혀진 이들의 주요 임무의 하나이다. 이에 반해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1∼2일 가량 짧게 체류하면서 침투지역의 군사표적을 정찰,군사첩보를 수집하고 무장공비 남파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이를 위해 수중 침투전담 조직인 22전대를 운영하고 있다. 22전대는 지휘부와 1,2,3편대로 구성돼 있으며 인원은 1,2편대 45명씩,3편대 15명 등 모두 110명이다. 1,2편대에는 상어급 잠수정이 2척,3편대에는 유고급 잠수정 1척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는 인민무력부가 주도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시 좌초한 상어급 잠수정은 2편대 소속 1호함으로 94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분단 이후 60년대까지 2,187건,70년대 345건,80년대 205건,90년대 72건 등 모두 2,800여차례나 육상및 해상을 통해 대남 침투도발을 저질러 왔다. 60∼70년대에는 주로 개인 수영장비나 고무보트 등을 이용해 임진강 하류지역에서 김포반도와 강화도지역으로 침투를 시도했었다. 이어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이나 8명이 타는 반잠수정 및 수중 추진기를 개발,침투해왔으나 이들 방식이 은밀성에서 뒤지고 침투지역이 제한되는데다 기동성이 떨어지자 90년대 들어서는 잠수함및 잠수정을 이용한 수중침투로 전환했다. 북한이 최근 집중 침투하고 있는 동해지역은 핵심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는 군사요충지다. 공군기지 및 해군 1함대사령부 등의 군사시설이 있다. 이곳이 점령되면 태백산맥 전체가 북한 수중에 넘어갈 위험이 있으며 태백산맥이 조기에 함락되면 기계화부대가 해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할 수 있다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 집중 침투하는 시기는 7∼9월 사이의 달빛이 없는 음력 그믐 전후. 지난번 속초 침투에서 드러났듯 원산 등 동해기지로에서 출발한 소형 잠수정은 5∼7마일(8∼10㎞)밖에 떨어지지 않는 연안 해로를 따라 잠행,해군의 경계망을 피한다. 이어 고성에서 강릉 사이 해저에 안착한 뒤 심야시간대에 공작조를 침투시키고 있다.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을 이용해 공해상에 도착,자선(子船)인 반잠수정에 의해 내륙을 침투하는 방법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전략/민·관·군 통합 3중 그물 친다/취약지역 연안 정치어망 설치/대잠함·초계기 등 24시간 경계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두차례나 침투 당한 데 대해 울분을 금할 수 없다”. 합참의 고위 관계자는 잇따른 침투도발을 ‘군의 치욕’이라고규정,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철책이 쳐진 휴전선 155마일은 말 그대로 ‘물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으나 동·서·남해안의 수중 침투에 대한 경계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실토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동해안에서 북한의 잠수정을 샅샅이 잡아내려면 이론상 100∼140척의 대잠(對潛)함정,50∼80대의 P­3C 대잠초계기를 수중 및 수상,공중에 깔아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해군의 동해 경비전력은 대잠함 10여척,P­3C 대잠 초계기 10여척,대잠헬기인 링스 10여척에 불과하다. 부족한 대잠 장비로 5,800㎞의 해안선 및 31만㎢의 바다를 완벽하게 지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잠수정 탐지률은 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해안은 한·난류가 교차하고 수중 소용돌이 현상이 발생,음파를 이용한 잠수정 탐지가 곤란한 실정이다. 해저지형이 급경사에다 불규칙하게 분포돼 있어 ‘잠수함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많은 선박이 오고 가며 내는 소음으로 미국의 최신예핵잠수함이든 구식인 북한 상어급 잠수정이든 여간해서는 잘 탐지되지 않는,세계에서 대잠 작전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의 핵잠수함도 1,000t급 이상의 잠수정을 탐지,격퇴시키는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70t짜리 북한잠수정이 바다 밑에 숨어버리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95년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해안경계 병력이 70%까지 감소,동해안의 평시 초소 간격이 최대 770m까지 늘어나는 등 육상경계도 느슨해졌다. 특히 주민들의 편익 증진을 위해 일부 해안경계 철조망이 제거되면서 거의 모든 해안선은 경계 취약지역이 되고 말았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북한 잠수정의 침투에 대비해 상근 예비역을 취약 해안지역에 배치하는 한편 취약지역 연안에 정치어망을 설치하고 민간 어선단을 구성,경계와 신고체계를 조직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정규적인 해상 침투에 완벽하게 대처하려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추가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군은 원칙적으로 정규전에 대비하고 비정규전에 대해서는 주민신고를 받아 신속하게 격퇴하는 민·관·군 통합 방위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여기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때 미국은 많은 양의 대잠전력 외에 바다에 그물망까지 설치하고 대비했는데도 5척의 일본 잠수함이 침투,어뢰공격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말로 대잠 작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을 어부가 발견해 신고,잠수정을 나포했듯이 그물망을 설치하고 주민신고 체제를 확립하는 게 최선의 방비책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잠 장비를 확충,대잠 탐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2/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朴相千 법무장관 보안법관련 특별인터뷰/“용공조작·인권유린 영원히 추방”/“김 대통령 철학은 ‘법이 존중되는 세상’ 보안법 확대 해석·악용 절대 용납못해 국민의 정부선 억울한 희생자 없을것 미전향 장기수 준법서약은 꼭 필요” “국민의 정부 이전에는 ‘rule by law’였지,‘rule of law’는 없었습니다” 朴相千 법무장관은 22일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에서 이같은 명쾌한 법치논리를 폈다. ‘rule by law’는 법을 수단으로 사람이 지배하는 형태로 결국 ‘독재주의’라는 것이다.‘rule of law(법의 지배)’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져오며,그 토대 위에 시장경제를 이룩하자는 게 金大中 대통령의 기본철학이라는 설명이었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논리였다. 법을 확대 해석하거나 악용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朴장관과의 특별회견 내용이다. ○검찰 공안부 대대적 개편 ­사회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전부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부 보안법 조항들이 인권유린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야당때부터 한결같이 주장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의 합심협력을 받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보안법 개폐논쟁을 벌여 국민간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보안법의 확대해석을 금지토록 하고 남용하지 말도록 지난 3월 이미 지시를 내렸습니다. 검찰 공안부도 대대적으로 개편,그런 시비가 있었던 사람들을 바꿨습니다. 과거 공안을 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나 능력면에서 인정받는 검사들로 대폭 교체했습니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을 더욱 신중히 적용해 용공조작,인권 침해 시비가 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남용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개폐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부에서는 ‘신공안개념’ 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아태평화재단 등 일부 개혁적 인사들이 보안법의 대체입법을 주장하기도 하던데요. ▲아직은 개인견해라고 봐야 합니다. 정부의 공식 견해는 아닙니다. 정부는 실업자를 없애고 경제를 살리는데 우선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안법 개폐로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새정부는 보안법을 고친 것과 마찬가지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수와 진보간의 일대 갈등을 야기하면서 개폐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은 남북분단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과 미전향 장기수를 특사로 석방하기에 앞서 준법서약서를 쓰도록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요. ▲사상전향제는 일제때부터 시작돼 60여년 된 제도입니다.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도 위반됩니다. 그래서 이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 도입한 준법서약제는 인간의 내면적 양심,이념을 국가권력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고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실정법에 맞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헌법상 당연한 의무입니다. 때문에 준법서약이 헌법이나 인권에 저촉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이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징역 10년을 받은 사람을 5년만 복역하고 석방하는 특혜를 부여하려 할 때 석방후 범죄행위를 할지를 법무부는 챙겨야 합니다. 더 나가서 범법행위를 할 사람을 사면한다는 것은 행형을 맡은 법무부로서는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방 이후의 범법행위에 대한 예측을 하지않을 수 없고 그때 참고자료로 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야 일부에서는 준법서약 없이 사면을 하도록 요구하는데 석방후 범법행위를 하지않겠다는 약속을 거부하는 사람을 형기 이전에 미리 내보내는 것은 법무부로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분들이 법무부장관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말로 쓴 준법서약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개폐논쟁 국민갈등 유발 ­8·15특사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확실한 규모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공안사범은 준법서약을받아봐야 확정될 것입니다. 일반 사범은 가급적 많이 하려고 계획중입니다. ­새 정부가 약속한 인권위원회 설치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법무부에서는 인권법을 제정하려 합니다. 인권법에는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구체적 규정,그것이 발생했을 때 구제조치,이런 일을 전담할 ‘국민인권위’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을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아니고 특수법인 형태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단체가 되는 거지요. 정기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창립하려고 합니다. 국민인권위에 인권침해 사실을 신고하면 위원회에서 조사하고 고발도 하는 등 적극 구제에도 나서게 되며 죄가 있으면 형법에 따라 처벌받게 됩니다. ○‘국민인권위’ 구성 계획 ­집시법과 보안감찰법,노동법 등에 아직도 이른바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신공안 개념에 입각,지난 시절에 안보를 지킨다는 구실아래 행해진 위헌적 제도와 인권에 반하는 관행 등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정리가 되면고칠 것입니다. 인권법 제정과 국민인권위 설치는 한국이 인권국가로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변호사법 개정 등 법조부조리 개혁도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장관 인기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러나 집시법은 이제 신고제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일부 노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집시법·노동법 등에서 합법적으로 시위·파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불법파업을 합니다. IMF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노동계가 합법적 방법을 통해 자기주장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면서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동자들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햇볕정책의 시련/李孝成 성균관대 교수·언론학(서울광장)

    지금까지 남한의 대북정책이나 북한의 대남정책은 강경론이 주류였다. 일시적으로 온건론이 세를 얻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내 다시 강경론이 주도권을 잡곤하였다. 그 결과로 남북한간에는 해가 갈수록 불신과 적대감이 더 커져왔다. 그래서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었건만 아직도 남북한은 일반인들이 서로 편지 한통,전화 한통 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북한이 상대를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동족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해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강경정책이 주류를 이루어온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 현상의 변화를 꾀하고 통일로 나아가려면 강경정책이 아닌 온건정책이 기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남북한 보수세력 협공 다행히도 국민의 정부는 과거 남한정권들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강경정책을 버리고 온건정책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북한을 개방과 변화로 이끌려는 이른바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려는 온정주의적 정책이다. 이 정책은 남한의 적대성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들볶고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북한의 보수세력으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고약한 정책이다.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이용하여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기득권을 보호해 왔던 남한의 보수세력에게도 심히 못마땅한 정책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현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북한과 남한의 보수세력의 협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의 성공여부는 이들의 협공을 어떻게 잘 견디어 내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의 보수세력은 남한이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강경정책을 채택하도록 갖가지 도발을 벌이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을 공격하며 강경대응책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과 남한의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을 공격하는 데서 또 다시 적대적 의존관계를 맺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최근 잇따른 동해안 침투사건과 그를 빌미로 한 남한 보수세력의 햇볕정책에 대한 공격이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만일 햇볕정책이 이런 협공에 밀리면 통일은 커녕 북한의 개방이나 변화도 유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실향민의 고통의 연장이요 남북한 분단의 고착화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 동서독 관계는 참고할 만하다. 통독 전 동독은 서독에서 사민당의 집권을,사민당 집권후에는 동방정책을 기를 쓰고 막으려 했다. 왜냐하면,사민당은 기민당과는 달리 동독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방정책을 표방한 까닭에 사민당이 지배하는 서독을 대상으로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일으키고 국민들을 닦달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결국 집권하였고 동독과 소련에 대한 헷볕정책이라 할 수 있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다. 동방정책은 그 추진과정에서 많은 훼방과 시련을 맞기도 했지만 의연히 추진된 결과로 동독과 그 종주국인 소련을 개방과 변화로 이끌어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서독의 사민당 정책 교훈 우리의 햇볕정책도 북한의 개방과 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남한의 보수세력의 협공에 굴하지 않는 의연한 추진이 필요하다. 그들은 햇볕정책이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을 당하기 때문에 더욱더 거세게 헷볕정책에 저항할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이런 저항을 예상하고 대비함으로써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金正吉 행자부장관 ‘공직자 국난극복 자세’ 강연

    ◎공직사회가 개혁 모범 보여야 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은 2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나라 미래준비모임(대표 李健介 의원)’의 월례토론회에 참석,‘국난극복을 위한 공직사회의 개혁’을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먼저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지금은 국가경제의 보호장벽이 무너지는 등 최고·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게되어 있다. 이 와중에 IMF라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실업 및 노사문제가 심화되는 등 사회불안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준비된 대통령,확고한 비전과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여소야대,연합정권의 한계로 말미암아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퇴출은행 임직원의 퇴직금 불법인출,업무인계 거부 등으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에 북의 잠수정 사건이나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 등 남북대치의 분단현실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 전반을 과감히 개혁하고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금융 기업 노동 공직 개혁 등 국정전반의 개혁을 추진중이나 강도와 속도가 미흡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외국의 시각이다.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국난 극복의 각오와 의지를 다지는 정신혁명 운동을 펼쳐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공직사회가 먼저 변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회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나는 올해를 ‘공직분위기 일대 쇄신의 해’로 설정했다. 우선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도록 하겠다. 중앙인사위원회와 기획예산처를 설치하는 등 2단계 정부 구조조정과 함께 지방행정 개혁을 추진 중이다. 또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촉진법을 만드는 등 각종 규제를 혁파하고자 한다. 끝으로 권위주의적이고 군림하는 공직자상을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고객 중심의 행정서비스 체제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행정서비스 헌장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국민들이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말로 공직사회가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를 추진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난은 외세가 주요원인이었으나 현재의 국난은 내생적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대통령과 장관의 힘만으로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공직사회가 변해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 무리가 있더라도 개혁의 고삐를 당기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말 파리에서 열린 OECD규제개혁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29개 회원국간 상호평가에서 종합 2위를 차지,개혁추진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99년부터는 국난극복에 전력해 희망의 2000년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朴正熙 살리기’ 똑바로/柳一相(특별기고)

    일부 언론이 ‘박정희 살리기’에 나섰다.마치 오늘의 경제난국을 해결해 줄 천지신명의 반열에 박정희 장군을 올려놓으려는 듯한 느낌이다.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실적위주 결과지상주의 경제개발방식이 오늘의 경제난국을 잉태한 근본원인이었다는 것을 진단해주는 언론논평은 찾아보기 힘들다.역사적 인물 가운데 죽은 자와 산자의 명암이 어쩌면 이렇게 갈리는지 필자는 그 형평성 문제에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일제 치하에서 출세를 위해 교직을 버리고 일제의 위성국가인 만주국의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족치고 해방후 민족분단과정에서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정치군인 박정희의 모습이 축소취급되는 것은 그의 통치 18년이 이미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에게 일정한 관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보아 너그러이 봐주자.그리고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던 그의 약속위반도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대안으로서 국민들이 그의 리더십에 대해 투표로 보여준 간곡한 성원때문이고 더 큰 일을 위해 작은 약속쯤 어길 수 있다는 사회윤리적 방어논리를 편다면 이 역시 일단 수긍해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진정 분노케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과 민족통일이라는 국민의 여망을 자신의 평생 집권을 위한 명분으로 삼아 직접 유신쿠데타를 조직하여 이를 성공시키면서 사회적 생명력을 가진 우리 사회공동체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다.이 분노의 원천은 바로 군관산(軍官産)복합체의 이권 농단과 그것의 분배를 둘러싼 지배집단 내부의 불신과 모함,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집단 감염현상이라고 하겠다. 박정희 집권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으며 오늘의 명성과 권세를 누리게된 일부 언론인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성채의 주인인 고(故) 박정희 장군에게 보내는 존경과 충성심도 이해한다.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산물인 곡필과 아세(阿世)가 깊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후손들에게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혼조를 줄 우려가 크기에 몇가지 증거로 부득이 박정희 칭송론을 반박한다. 첫째,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주역은 당시 자신들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던 민중들,이제는 중년을 넘어섰거나 노년기에 이른 근로대중들이었다.그들은 월남전쟁을 비롯하여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까지 맨몸둥이 하나로 달러를 캐러 나갔다. 둘째,오늘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리는 이만큼의 기본권 역시 한줌의 재가 되고 산천에 썩어 비료가 된 열사들을 비롯하여 피터지게 맞고 조롱당하며,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야 했던 반유신 민주화 투쟁으로 고난받은 이웃들이 치른 거룩한 희생 덕분이다. 이제 언론은 박정희씨의 업적을 홍보함으로써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돌리려 하지 말고,그의 강권억압통치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사람,비인간적 학대로 영육이 망가진 사람,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속죄를 빌어야 한다.
  • 햇볕정책의 변증법/黃台淵 동국대 교수·정치학(서울광장)

    ‘국민의 정부’는 무력도발 불용의 대전제 위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기반한 남북화해·협력으로 요약되는 ‘햇볕’정책을 천명,시행하고 있다.이에 대한 북측의 저항은 잠수정사건 및 간첩시신 발견 등으로 볼때 한동안 아주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북측을 전향시키려면 강력한 안보체제와 대단한 인내심,그리고 고탄력의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 이 전향을 촉진하는 지혜 가운데 하나는 햇볕을 ‘안쪽’의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게도 비추는 것이다.서독은 30년전 동방정책과 병행하여 내부정비 차원에서 인권 확장,공산당 합법화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 조치는 동독 공산당을 전향시켜 동서해빙의 물꼬를 열었고,훗날 무혈승공의 평화통일을 가져왔다.1990년 동독 공산당은 통일 이후에도 공산당까지 포용하는 서독의 선진적 민주체제 하에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에 동독시민들의 통일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을 단념한 것이다. ○햇볕은 민주체제 강화 우리의 경우에도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 대해 ‘더 강한’ 민주논리로 대처해야 승공할 수 있지 않을까?‘안’을 향한 햇볕은 우리 민주체제를 강화하여 필경 대북 햇볕정책을 돕는 변증법적 상승효과를 낼수 있을 듯하다. 물론 전쟁을 겪은 우리의 처지에서는 공산당의 합법화를 거론할 수 없다.또한 ‘안’을 향한 햇볕은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가령 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전쟁포로의 수와 인권상황의 파악작업,미전향수 및 간첩과의 맞교환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도 꺼리지 않는 귀환대책,천신만고 끝에 복귀한 노병들에 대한 특별예우법령 제정 등과 같은 일련의 국가정통성 강화정책이 ‘안쪽’의 햇볕정책을 수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통성 강화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의 미전향수 등 친북세력에 대한 ‘강풍’정책의 재고는 필수적이다.북측은 이 ‘강풍’을 북에 대한 적대행위로 느껴 전쟁포로 등 친남(親南)세력의 탄압강화로 대응해 왔고 앞으로는 대북 햇볕정책을 방해할 것이다.특히 미전향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에 억류된 ‘북측 전쟁포로’라는데 주목해야 하다. 따라서‘안’을 향한 햇볕은 대북정책에 대한 븍측의 호응을 끌어내고 친남세력의 처지를 개선하는 지렛대이다.이 점에서 양심수 대사면,전향서 폐지 등 정부의 전향적 방침은 중요한 ‘안쪽’의 햇볕조치이다.‘준법서약서’는 분단의 ‘한’에 대한 센서로 보고 시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미전향수 등에 관용을 나아가 ‘안쪽’의 햇볕이 장차 더 따뜻해졌으면 싶다.이적단체 단순가담자는 관용으로 대하고 한총련의 경우에는 이들이 학생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또 햇볕으로 기존 이적단체의 점진적 전향을 촉진해야 한다.이 햇볕은 머지않아 이들에 대한 ‘살균효과’를 가져 올 게다.물론 이 대명천지의 햇볕속에서도 스스로 음지로 기어드는 좌익 폭력세력은 논외의 사안이다. ‘안’을 향한 강풍정책은 민주주의를 삭감하는 역효과로 인해 친북세력을 더욱 극렬분자로 만든다.반대로 햇볕은 친북세력을 ‘살균’하여 ‘골동품화’한다.이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선진화하고 승공통일을 앞당기는 지혜일 게다.이 ‘골동품화’정책은 훗날 통일의 길목에서 북측으로 하여금 무력저항을 단념하도록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햇볕은 강풍을 흡수한다/朴宗和 목사(특별기고)

    지난 6월에 이어 이틀전 동해시 묵호동 해변가에서 잠수복차림에 기관권총과 수류탄 등을 휴대한 북한 무장간첩 주검 1구가 발견되어 또다시 난리법석이다. 진상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상응한 강력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잠수정 사건 때문에 연기되어 왔던 鄭周永씨 증여 501마리 소의 북행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시점에 발생했다.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강경파 전략 경계를 첫째로 분단이후 지난 50여년동안 남북쌍방에서 ‘햇볕정책’을 정부당국의 공식 통일정책으로 채택하고 선언한 경우는 현 국민의 정부가 유일무이하다. 그동안 남·북 모두 ‘강풍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 두차례에 걸친 잠수정 관련사건도 변함없는 강풍정책의 표현이다. 이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일련의 사건도 남북간의 냉전적 적대관계 상태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강경파의 정치권력적 생존전략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전략에 힘을 실어줌으로 남북관계를 냉각상태로 몰아가는 우매한 대응은 절대 금물이다. 둘째로는 햇볕론의 엄청난 ‘힘’을 이번 기회에 역으로 넣어줄 필요가 있다. 북쪽은 남한에 중요한 국운을 건 선거의 투표일이 임박하면 늘상 무장공비를 보내고 잠수정 침투를 시도해왔다. 필요한 시기를 노린 이러한 강풍정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아왔다. 남한의 정치문화·선거문화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잠수정 몇척이 침투공비 몇명이 좌우한 셈이다. 이런 현상을 그동안 수구적 집권세력은 얼마나 즐겨왔고 악용해 왔는가? ○강한 햇볕 쬐어줘야 새로 들어선 국민의 정부는 북쪽의 이러한 맛을 톡톡히 들여온 강풍정책이 전혀 씨알도 먹히지않게 하겠다는 분명한 선언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햇볕정책의 큰 힘이다. 솔직히 말해서 햇볕정책은 강풍정책을 비웃을 정도로 힘이 있어야 한다. 정책집행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걸머지고 주체적으로 나설 국민 모두의 정책으로 나서면 힘이 생긴다. 남북통일 전날까지 잠수정 사건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통일전 독일의 경우도 그랬다.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어 교류협력의 햇볕정책이 공식 출범하고서도 통일 전날까지 동독측의 강풍정책은 현란하게 지속돼왔다. 그러나 서독은 햇볕정책의 기저를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허약해서도 아니고 무지해서도 아니다. 햇볕의 원대한 힘에 대한 믿음 때문이고 여야를 초월하여 국민간에 합의된 민주적 의견수렴이 굳센 때문이다. 결과는 햇볕이 강풍을 흡수하고 말았다. ○힘 있어야 햇볕제공 셋째로 햇볕은 힘있는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정책이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자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자기방어용 강풍정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북쪽이 남한에 상호주의 미명하에 강풍정책을 요구한다고 이를 들어줄 남한도 아니며,남한이 상호주의 원칙하에 햇볕정책을 북쪽도 택하라고 요구한다해서 이들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고 힘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햇볕정책이 담고 있는 교류협력의 틀은 지속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북쪽의 강풍지도층의 권력이 지니는 힘도 크지만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갈증으로 고통당하는 2,000만 북한 동포들의 힘은 더욱 크다. 강풍을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강풍대응을,그리고 강풍 때문에 희생당하는 2,000만 동포에게는 보다 따뜻하고 사랑이 깃든 햇볕제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 보험사고 조사차 북한 간다

    ◎제일화재 직원 1명 경수로공사 화재 보상활동 북한에서의 화재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손해보험사 직원이 북한을 방문한다.남북분단 이후 보험사 직원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방북하기는 처음이다. 제일화재 河元道(44) 화재특종업무부장은 13일 함경남도 신포리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의 화재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북경으로 떠났다.15∼16일 이틀간 현장에서 머물다 18일 북경을 거쳐 귀국한다. 사고는 지난 달 17일 공업용수 저장탱크 내부에서 일어났다.보일러와 연관된 전열기가 과열돼 탱크 벽체와 지붕을 태운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전력공사는 공사의 특수성을 감안,비밀에 붙였으나 보험 인수사인 제일화재가 보험감독원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한전은 제일화재에 최고 4,118만7,000달러 어치의 건설공사보험을 들었다.동부와 현대화재도 각각 12.5%의 비율만큼 보험을 공동인수했다. 사고 피해액은 한전측의 조사를 근거로 3,000만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보상 약관에 따라 보험사 직원의 현장 조사가 불가피했다.보험계약 기간은 지난 해 8월16일부터 오는 8월15일까지다. 한전측은 지난 해 계약과 함께 1억3,800만원의 보험료를 냈다.이번 방북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교류의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에서의 사고와 관련한 보험사의 첫 보상 활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헌법정신과 국회상(金三雄 칼럼)

    절대군주제와 식민통치를 거쳐 우리 손으로 헌법을 만들고 헌정을 시작한지 50년이 되었다.봉건적 신민사회에서 신분과 권리가 바뀌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근대적 시민국가로 발돋움한지 반세기가 된 것이다. 헌정 반세기의 역사는 그러나 독재와 반독재 투쟁의 피어린 역정이기도 했다.그 역정의 작용과 반작용의 역학이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들어서고서도 국회가 파행을 면치 못하는 후유증으로 남는다. 우리 헌법은 당초 내각제 시안이 이승만의 권력욕으로 대통령제로 바뀐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독재자들의 장식물이 되어 9차례나 뜯기고 찢기는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헌법이란 용어는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한다. 중국 고전〈국어(國語)〉의 「진어(晋語)」편에는 ‘상선벌간 국지헌법야(賞善罰姦 國之憲法也)’라 하여 “선을 상 주고 간을 벌하는 것이 나라의 헌법이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여졌다.또 에는 ‘능출호령명헌법의(能出號令明憲法矣)’즉 “능히 호령을 내려 헌법을 밝힌다”는 구절이 있다.그리고 에는 ‘헌자법야(憲者法也)’라 하여 “헌은 법이다”는 말이 있다. 이들 고전에 나타난 헌법이란 말을 명법(明法) 또는 엄법(嚴法)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는 성덕태자의 〈17조 헌법〉도쿠가와 시대의 〈헌법부류(憲法部類)〉〈헌법류집(憲法類集)〉,복택유길(福澤揄吉)의 〈율례(律例)〉,가등홍지(加藤弘之)의 〈국헌(國憲)〉,이등박문의 〈명치헌법〉등으로 나타난다. ○부끄러운 국회 모습 우리나라의 경우 1894년 제정된 ‘홍범(洪範)14조’에서는 아직 헌법이란 용어가 쓰여지지 않았지만,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임시헌정’이라 하여 헌법의 의미가 함축된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바 있다.1907년 유진오 박사의 부친 유치형이 처음으로 〈헌법〉이란 교과서를 내고, 1918년 신익희가 보성전문에서 비교헌법을 강의했다. 해방조국은 1848년 6월1일 제헌국회 본회의에서 헌법기초의원 선임을 위한 전형위원의 선출로 헌법제정 작업이 시작돼 7월17일 마침내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이렇게 제정된 헌법은 독재자들에 의해 누더기가 되고 헌정은 상처투성이의 고난을 겪었다.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50년 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분단과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그리고 경제건설의 어지러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르며 민주헌정을 지켜왔다.여야 정권교체도 이루었다.그럼에도 우리 정치는 여전히 한심한 수준이다.몇 달째 원 구성을 못하고 국난극복과 개혁의 앞장은 커녕 발목을 잡고있다.권력형 부정사건에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국회의원이 끼어들고 지역감정 조장발언은 국회의원들의 단골 메뉴처럼 되었다. 국민통합과 화합기능은 커녕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한다.정부기관은 물론 공기업과 사기업이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고 있는 터에 유독 국회만은 이를 외면한 상태에서 정쟁으로 날을 지샌다.동해안에 무장간첩이 출몰하고 노동자들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하는데도 무대책일 뿐인 국회가 제헌 50주년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구조개혁 앞장서라 지난해 외환위기와 증권시장 붕괴를 예측한 바 있는 증권전문가스티브 마빈이 “제2환란이 오고있다”고 경고하고,미국의 여론 주도층은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를 분단이나 노사불안보다 ‘여소야대 등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을 첫째 요인으로 열거한다.정치인들이 각성 발분해야 할 경고의 메시지다. 정치개혁이 선행되지 않고는 어떤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다.특히 지금처럼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를 그대로 두는 국정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150만 실업자와 퇴출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미증유의 국난기에 전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채 정당의 하위기관으로 전락하여 선거지원이나 하는 국회라면 문제는 심각하다.제헌절을 앞두고 “선을 상 주고 간을 벌하는 것이 나라의 헌법”이란 헌법의 의미를 새기면서 국회의 분발을 기대한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2(정직한 역사 되찾기)

    ◎잘못된 법 적용/간첩누명 복역수 가족 비탄의 나날/새법 재정 재구금… 가정 풍비박산/정권안보차원 범죄 날조 처형/김 대통령 한때 사형선고 받아/고문조작으로 10여년째 구금도/심장병·신경질환 등 후유증 심각 비가 오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푸른 수의를 입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 앉아 있다.그는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연신 무죄를 호소한다.그러나 전기스위치가 올려지고,그의 코에 물주전자의 물이 거듭 부어진다.그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옆의 사내가 불러주는 대로 횡설수설 따라 읊는다. “북한의 우순학이 제 처입니다”“저는 30년간 북한의 공작원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을 무대로 지난 9일(목요일)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건장한 사내는 고문기술자 李根安이고 초췌한 남자는 16년째 간첩죄로 복역중인 咸珠明씨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갖는다.이날 집회의 주제는 ‘고문조작 간첩사건 피해자의 석방’.이 자리에는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복역하고있는 14명의 가족들과 민가협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해 새정부의 조속한 석방조치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법과 동일시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악법 논란’은 지난 50년간 끊일 날이 없었다.대부분이 아는 것과 틀리게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법에 대한 사전 합의와 동의의 중요성’이었다. 지난 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유신시절의 비상국무회의,80년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은 국회가 아닌 비정통적인 대의기구들이다.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이런 기구가 쏟아낸 법률들이 사전동의나 합의의 절차를 충실히 거쳤다고 하기는 어렵다.또한 본인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는,고문에 의한 조작 논란이 많았던 사건들도 정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71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金哲씨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북괴를 북한으로 불러야한다’는 발언을 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당시 혐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조항은 국가보안법 7조에 그대로 편입됐다.그러나 남북한 동시가입은 수년후에 이뤄졌고,지금 북한을 공식적으로 북괴라고 호칭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돼왔다는 논란 속에 숱한 인권침해와 위헌시비를 일으켰다. 이종·최남규·김중종씨 등은 50∼60년대 남파돼 체포된 뒤 10여년간 복역을 마쳤으나,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구금됐다가 89년 이 법의 폐지로 다시 석방된 이들이다.출소후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새 법이 제정돼 느닷없이 다시 갇히는 사람들의 황당함은 어떤 것일까. 정권안보차원에서의 범죄의 날조·조작은 법 자체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李承晩 정권은 야당당수였던 曺奉岩 진보당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金大中 대통령도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가지 받았었다. 고문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수십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함주명·이장형씨 처럼 고문기술자 李根安으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함씨는 남파된 뒤 즉시 자수했으나 30년후 재구금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16년째 복역중이다. 이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4년째 구금돼 있는 상태다. 함씨의 누나 함주옥씨(73)는 “너무 억울하다.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하루빨리 재심절차가 있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74년 일본 유학때 조총련계 인사를 접촉한 것이 빌미가 돼 23년간 복역하다가 올 3월 특사때 나온 유정식씨. 南奎先 민가협 총무는 “현재 유씨는 심장병과 신경질환 등 극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함께 나온 재일동포 손유형씨도 후두암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현재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張俊河·白基玩씨 악법철폐 앞장/학생들 민주화투쟁 전위대 역할… 3·4·9차개헌 견인/80년대 후반 민가협 등 수백개 민주단체서 주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1974년 1월에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朴正熙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를 발동했다.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이었다.과거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과 법을 고치고 그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그러나 온갖 탄압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법과 헌법에 대한 저항과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긴급조치가 발표되자 張俊河·白基玩씨 등은 ‘반유신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서명운동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두 사람은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당시 판결은 구형과 판결이 일치하는 이른바 ‘정찰제 판결’로,이후 많은 공안사건의 판결 기준이 됐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그들은 민주화운동과 악법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일부 판·검사들의 ‘정의 투쟁’도 있었다.지난 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서 이용춘·장원찬·김병리검사는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공안사건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지난 96년 유원석 판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충렬·허인회씨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공안사건에서도 ‘증거재판주의’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지난해 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을 벗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의 타락에 맞서 싸운 주체는 학생들이었다.그들은 왜곡된 헌법과 법을 바로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지난 60년 이루어진 3·4차 개헌과 87년 민주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개헌도 사실 학생들이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은 법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제도권에 몸담은 기성세대들이 하기 어려웠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전위대’ 역할도 담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역할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수백여개에 달하는 민주시민단체와 비영리전문단체들이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운동과 악법철폐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며,매주 목요일 주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민변 또한 지난10여년 동안 文益煥 목사 방북사건,姜基勳씨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진상조사 및 변론을 맡았고,국가보안법 개정·폐지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지를 통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간첩 불고지혐의 무죄판결 받은 咸雲炅씨/“명예실추·정신적 피해 상상 초월 보안법 자의적 적용 빨리 고쳐야”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와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습니까.”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咸雲炅씨(34).“재판중에는 모든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당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咸씨는 지난 95년 ‘남파간첩 김동식 사건’과 관련해 불고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남북분단 상황에서 일단 간첩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생활에는 족쇄가 채워집니다.그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지요.” 지난 9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咸씨는 “선거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이 간첩사건에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선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咸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일부 언론사와 국방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피해보상도 요구할 방침이다.언론사에는 재판중인 사건임에도 자신을 완전히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한 책임을,국방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을 사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 사용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수년전보다는 많이 완화돼 과거의 ‘막걸리 보안법’수준은 벗어났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러나 여전히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친척까지도 신고해야하는 불고지죄는 반인륜적이라고 비판했다.유교적 윤리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친척과 친구를 신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이적단체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 등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의 조항이라고 했다.그는 “새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에 의해 보안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수사기관에 시정을 촉구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새 자유의 집(外言內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자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가 판문점이다.때로는 남북간에 일촉즉발의 고성이 오가고 때로는 대치상황을 잊게하는 웃음소리가 나오는, 한반도의 긴장과 화해기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名所)다.그 판문점 안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자유의 집과 북쪽의 판문각이 마주하고 서있다. 남북회담대표를 비롯하여 간간이 남북간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내고 마중하는 연락사무소 겸 휴게소인 셈이다. 우리쪽 자유의 집이 크고 말끔한 새 건물로 지어져 9일 준공식을 가졌다. 지난 65년에 지어진 옛 건물이 낡고 비좁아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것이다.옛 자유의 집이 86평의 2층이었던데 비해 새 집은 1,437평에 4층건물로 규모부터 다르다. 새 자유의 집에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국민들과 우리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우선은 남북연락사무소와 적십자연락사무소가 들어가지만 머지않아 남북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 상봉의 기쁨을 나눌 이산가족면회소와 남북우편물교환소도 이곳에 설치되기를 기대한다. 건물 규모뿐 아니라 모양에도 간절한 통일의 염원이 스며있다.통일의 뜻을 실어 북으로 날리는 마음을 표현한 방패연(鳶)모양의 지붕이 그렇고 건물 양면의 곡선도 통일의 소망을 두손으로 소중히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갔고 금강산 관광길이 오는 가을부터 열리려 하고 있다.동해 간첩선 침투사건도 판문점 장성급회담을 통해 대화로 처리되고 있다.이제 판문점은 더이상 대결과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 교류와 협력의 장소로 바뀌어야 한다.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로 가장 먼저 실현해야할 과제는 수많은 이산가족의 상봉이다.우선 자유로운 서신왕래를 통해 가족들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있는 듯 북한도 지난 5일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처음 방송하고 앞으로 매주 한번씩 방송할 것을 약속했다.“기나긴 세월 갈라진 부모 친척 친우들이 오가지도 못하고 서신거래조차 하지 못하는안타까움을 안고 살아왔다”는 평양방송의 멘트는 백번 옳은 말이다.북한측의 진심이 그렇다면 편지방송만 할 것이 아니라 서신왕래와 가족상봉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새 자유의 집 준공으로 판문점이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 “韓國 IMF체제 극복 亞洲國중 가장 빠를것”

    ◎美 여론주도층인사 여론조사/“김 대통령 방미 한국 이미지 높였다” 85% 미국의 여론 주도층 인사들은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가장 빨리 극복할 것으로 보는 등 한국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 또 지난 달 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무역협회가 여론조사기관인 (주)디비엠 코리아와 미국의 조그비 인터내셔널에 의뢰,지난 달 22일부터 30일까지 미국의 여론 주도층 인사 3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정치인과 기업체 사장급,언론사 편집인 등 응답자들의 50.8%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IMF체제를 극복할 것으로 대답,태국(23.4%)을 꼽은 인사들보다 2배 이상 많았다. 金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서는 85.5%가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고 응답했다.‘투자 유치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인사는 57.1%,‘그렇지 않다’고 보는 의견은 19.1%였다.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는 ▲여소야대 등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28.7%)과 ▲남북분단에 따른 긴장(24.4%) ▲한국인의 배타성과 해고의 어려움(14.5%) ▲노사 불안(9.2%) 등을 지적,정치 군사적 상황이 투자의 걸림돌로 꼽혔다.
  • 美 지도층인사 韓國 장래 낙관

    ◎貿協,여론주도층 303명 대상 전화조사 내용/국정방향·경제개혁 66%가 ‘적절’ 평가/투자에 부정적 요소/정치불안·분단 꼽아 한국무역협회가 9일 발표한 미국 여론 주도층 인사들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는 두가지 측면에서 미국인들의 시각을 드러냈다. 하나는 金大中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장래를 낙관한다는 점이다.金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그의 국정방향과 경제개혁 방향에 대해 각각 66%,66.3%가 ‘옳다’고 답한 데서 잘 나타난다.‘옳지 않다’는 의견은 3.3%,5.6%에 불과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모범이 되겠다는 金대통령의 의지에 대해 52.5%가 ‘그렇게 될 것’으로 전망한 점도 그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 인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장래를 희망적(84.5%)으로 보고 있고,태국(23.4%) 인도네시아(8.3%)보다 한국(50.8%)이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낙관론은 그러나 ‘투자대상지로서의 한국’이라는 측면에서는조금 달라진다.‘金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한국에 대한 투자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57.1%가 ‘그렇다’고 답했다.반면 ‘모르겠다’(23.8%)거나 ‘아니다’(19.1%)라는 부정적 인식도 42.9%로 거의 절반이나 됐다. 金大中 정부에 대한 일반적 신뢰와 달리 투자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요인과도 관계가 있다. 응답자들은 ‘투자지역으로서 한국이 지닌 부정적 요소’로 정치불안(28.7%)과 남북분단(24.4%) 등 정치군사적 상황을 첫째로 꼽았다.‘해고가 어렵고 한국인이 배타적이다’(14.5%),‘노사관계가 불안하다’(9.2%)는 등의 경제적 이유는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정치군사부문의 안정이 투자유치에 있어서 경제부문의 개혁보다 더 시급한 선결과제라는 얘기다.한국의 현 경제개혁 방향에 대해 66.3%가 긍정평가한 점에서 미국의 여론 주도층은 이제 경제개혁에 발맞춰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양심수에 햇볕을(金三雄 칼럼)

    제 2건국을 표방하는 金大中정부가 8·15 건국 50돌을 맞아 단행할 특별사면과 복권에 많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전히 8·15는 우리에게 억압과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출발로 다가온다. 그런 뜻에서 국민정부 출범의 의미를 함께하지 못한 양심수들에게 뒤늦게나마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양심수’를 거론하면 용공으로 몰렸다. 정권교체로 이런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양심수의 사면 복권을 색깔론과 연계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불행한 우리 정치사는 좌우 이념대결과 함께 독재와 반독재의 정치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양심수는 바로 이런 대결과 대립 과정에서 생긴 ‘아웃사이더’들이다. 앰네스티가 정의한대로 “신념 종교 성별에 상관없이 비폭력 수단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사를 표현하다 실정법에 의해 탄압받는”사람이 양심수다. 우리의 특수환경과 관련,국내 인권단체들은 “정의 평화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라 말한다. 군사독재시절 金대통령도 ‘양심수’였고 새정부에는 상당수 양심수 출신이 요직에 앉았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양심수와 그 가족의 아픔을 헤아릴 처지다. ○우리 체제 우월성으로 포용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에 한명의 양심수도 없다고 한다. 어느 시대 관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정권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지난 2월 앰네스티는 한국내 양심수 명단 100여명을 대통령직인수위에 전달한 바 있고, 민가협 등에서는 지난 3월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때 전체 양심수 478명 가운데 15%에 불과한 74명만 석방되었다고 국민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인권단체들의 조사로는 현재 437명의 양심수가 수감중이란 주장이다. 양심수 석방을 둘러싸고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국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나 대남파괴 활동을 벌인 간첩까지 양심수로 부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과 무력대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금 햇볕론을 통해 대북포용정책을 펴고 있다. 북쪽을 포용하면서 남쪽의 반체제를 배제한다면 그건 모순이다. 해외 반체제 망명객들도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전향제 폐지와 함께 우리 체제에서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것은 金대통령 햇볕론의 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전향제 폐지와 함께 ‘준법서약’을 둘러싼 불필요한 공방으로 햇볕정책을 방해하려는 세력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일부 수구세력은 반공을 독점하는 체하면서, 필요하면 적과도 내통하고 개혁세력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려 든다. 정부의 전향제 폐지 조처도 이들에게는 다시없는 색깔론의 대상이다. ○과격한 요구 일 그르쳐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엄격한 ‘준법서약’을 통해 우리 체제에 흡수하고 순수한 양심수는 과감한 사면 복권조치로 해방의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준법서약제는 ‘서약’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서 정부나 양심수측이 너무 극단적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총련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구속자가 바로 한총련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한총련 수감자들은 이번 기회에 가정과 학원으로 복귀돼야 한다. 다만 탈냉전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사회주의의 허상, 굶주림의 동토로 변해버린 주체왕국의 실상을 꿰뚫는 인식의 전환이 따라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난 우리 역사가 남긴 모순구조와 현실의 부조리로 자칫 극단의 모험주의 관념과 허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허망과 절망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부와 기성세대의 포용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땅에 양심수가 존재하지 않도록 화해 정의 평화 인권 같은 보편가치가 더욱 신장돼야 한다. 개혁은 바로 이런 가치구현을 위해 필요하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1(정직한 역사 되찾기)

    ◎法의 어제와 오늘/‘正義의 저울’ 국민의 것이었나/잘못된 권력 정당한 도구로 전락/반대세력 제압 反민주악법 양산/마지막 양심 사법부 제역할 못해/法의 타락·불신 심각한 수준 공감 한국의 현대사는 굴절의 역사로 얼룩져 왔다.일그러진 권력에 의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은 잘못된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의 역할로 전락하기도 했다.제헌절 50주년이 건국 반세기를 자축하는 영광과 함께 역사의 상처가 덧나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서울신문은 제헌절 50주년을 맞아 7월 한달동안 시리즈를 통해 헌법과 대한민국 법 반세기의 영욕을 법과 양심,헌법의 발자취,악법의 상처,거듭나야 할 우리 법조 순으로 재조명해 본다.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게재될 예정이다. ‘법은 조직화된 정의다.’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저명한 판사출신 경제평론가 끌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말하는 법의 개념이다.그는 법이 타락하면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고 정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경고했다.그의 경고는 20세기에도 진리다.법학은 정의를 지키려고 스스로의 타락을 경계해 왔지만 인류의 역사는 법의 타락으로 얼룩져 왔다.한국의 법도 타락과 불신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집권세력의 자의적인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돼온 우리 법의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지난 50년동안 법이 본래의 영역 지키기에 충실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법을 둘러싼 많은 왜곡과 의문이 존재해 왔다.정의를 세우고 지켜야할 법이 오히려 이를 질식시키고,타인의 인격과 재산을 약탈하는 일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았나.약탈행위에 대한 방어를 도리어 범죄로 만들어 처벌한 일은 없었나. 법을 더럽힌 장본인들은 역사적인 평가와 심판을 제대로 받은 것인가.잘못된 법과 법의 오·남용으로 명예를 짓밟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던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명예회복과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았을까.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는 곧 우리 법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모색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金大中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나서 양심수 석방을 거론했다가 벌떼처럼 덤벼드는 사상시비에 곤욕을 치렀던 것이 겨우 반년전 일이다.초등학교 통일교재에 이적성이 담겼다 하여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가 기각당하는 등의 공방도 얼마전에 있었다.지난 95년 43년만에 옥문을 나섰던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도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법체계가 낳은 민족적 불행의 표식이다. 법의 타락은 헌법의 오염으로부터 시작됐다.헌법은 지난 50년간 9번의 손질을 거쳤다.그러나 그중 실질적으로 민의에 의한 개헌은 얼마나 될까.지난 87년 6월 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 개헌과 4·19혁명 직후 이루어진 3차·4차 개헌이 대체로 민의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들도 혁명의 공을 가로챈 정치세력과 위기에 처한 집권세력이 국민을 이용하거나 회유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때문에 사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순수하게 민의만을 반영한 개헌은 없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대부분의 개헌이 소수의 집권세력에 의해 이루어졌고,많은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한발 비켜 있거나,반대편에 서 있었다. 개헌을 통해 권력의토대를 마련한 집권세력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반민주 악법을 양산했다.남북분단이라는 민족적 아픔을 철저히 이용했고,엄청난 수의 양심적 지식인과 학생들이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그러한 법률은 위헌시비 논란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한 형량을 적용해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권력의 이러한 불법적 약탈을 막고 양심을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이지만 법원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해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폭력적 권력에 의해 상처를 입어야 했고,권력에 굴복해 부끄러운 판결을 내려야 했던 것이 바로 우리 사법부는 아니었을까. 검찰도 불법적 수사를 합법화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법원의 판결문이 공소장과 거의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권력에 협조해 정치인으로 변신한 법조인들도 많았다.최근에는 뇌물과 관련,판사가 인사조치되고 변호사가 구속되기도 했다.법이 타락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사회의 잘못된 법의식 때문이다.법을 바로 세우는 길은이러한 잘못된 법의식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별취재반 특별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기고/‘陸法黨’등 軍政엘리트 활개/저항 못한 지식인층에 책임/韓相範 동국대 법학과 교수 근대사회의 시민법학은 악법과 폭정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발전했다.원래 고대 로마법시대부터 “법은 정의(正義)와 형평의 기술(技術)”이라 했고 법학은 그러한 정의 추구를 임무로 자처하면서 타락을 스스로 경계해 왔다.그러한 법학이 관료의 통치기술학으로 발달해 온 한국에서는 법학을 배운 사람이 잘났다고 할수록 권세의 법기술자로 팔렸다.육법당(陸法黨)이란 군정의 엘리트가 바로 그들이다.이들이 한 일은 역사적으로 심판되겠지만,당장 그들의 역기능은 차단돼야 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 ○탈 바꿔쓰고 자리 욕심 지식인의 그러한 부패와 타락은 사회 전반의 비판감각을 둔화시키고 윤리 의식을 마비시켜서 사회를 썩고 뒤틀리게 했다.그런데도 이제까지 그러한 작태를 스스로 반성 자숙하는지식인은 한 사람도 없다.오히려 그러한 죄많은 무리들이 탈을 바꿔쓰고 이미 버스를 갈아 타고 있다. 지식인의 허약한 체질의 문제는 어제 오늘에 비롯된 일은 아니다.1961년 5·16쿠데타 세력이 헌법질서 파괴를 정당화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란 것을 조작해 내자,일부 학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설서를 만들어서 무법(無法)을 합법화시켜주는 일에 한몫 거들었다.그리고 관청에서 주는 벼슬자리를 걸신들린듯 달려들어 종노릇을 했다.쿠데타를 한 군인들은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래서 지식인이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노리개가 되어 갔다. 1972년 유신쿠데타가 일어나자,교수란 이름의 직업인이 그들의 나팔수로 온갖 거짓말을 다하고 다녔다.장사꾼의 거짓말은 사기죄가 되는데,이들의 나라 망치는 거짓말은 아직까지 괜찮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세상이다.당시 국회권한을 대신한다는 ‘비상국무회의’는 개헌안으로부터 시작해 온갖 악법을 제멋대로 만들었다.그것도 1961년 ‘최고회의’처럼 헌법을 유린하고 만든 기관이었다.그런데 지식인은 그에 대해 반대는 커녕 찬사로 아양을 떨었다. 1980년 박정희 사망후에 등장한 신군부도 5·17쿠데타를 고비로 ‘국가보위입법회의’란 무법적 권력기구를 만들어서 무수한 악법을 양산해 냈다.이때에 어느 누구도 삼청교육대나 군법의 감옥이 무서워 항거하지 못했다.지식인 또는 학자,교수란 사람들이 악법과 폭정에 대해 무기력하게 방관 묵인하고,그러한 피바다의 판국속에 칼부림하는 자들은 ‘정의사회구현’을 외쳤으니,이땅의 정의는 결국 피묻은 칼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군정하에서도 미미하지만 법학자들의 약간의 반발은 있었다.법학교수의 체면을 위해서 몇가지 사례나마 적어둔다.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를 정당화하고자 개헌 국민투표를 시도할 때 황산덕은 동아일보 사설에서 ‘국민투표가 만능은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다가 감옥으로 갔다.(그 이후 군정세력 밑에서 장관을 하게 됐지만).1964년 한일협정체결 반대에 나선 교수중 이항녕은 과거 친일행적을 반성하며 앞장섰다가,교수직에서 쫓겨났다.한상범 본인은 1969년 3선개헌에 헌법교수로서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했다.70년대 초 유기천은 박정희 정권의 총통제 음모론을 폭로하고 망명했다. ○日 군국주의 비판 귀감 유신쿠데타 후에도 헌법교수 몇명이 홍보를 거부했다.80년 5·17쿠데타 후에 일부 지식인이 계엄사 합수부로 연행되어 사표를 쓰거나 소추 등 탄압을 받았다.그러나 이런 교수·지식인은 소수이다.대개 부정한 권력에 대해 방관 동조 편승한 실적을 지닌 채 그대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일본제국의 혹심한 탄압하에서도 도쿄대학의 국제법 교수 요코다 기사부로(橫田喜三郞)가 일본군의 진주만공격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의한 것이나,식민정책 교수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가 군국주의를 비판해 탄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한다.그들이 일본의 대학과 지식인의 위상을 지키고 지적 양심과 성실성이 무엇인지 보여줘 일본이 아주 망하지 않게 해준 것이다.우리에게는 그와 비슷한 일도 들수 없다고 하는 지식인의 초라함은 이 시대 우리 자화상이랄까?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인가 배운다고 하면이젠 그대로 넘어가선 안된다.
  • 통일로 가는 길/조비오 신부·가톨릭대학 사회교육원장(서울광장)

    진리도 하나,사랑도 하나,조국도 하나,겨레도 하나이다. 하나가 되는 길이야말로 진리로 가는 길이며,평화로 가는 길이며,통일로 가는 길이다. 진리는 왜곡이 없어야 하며 사랑은 증오가 없어야 하고 일치는 분열이 없어야 한다. 성실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호간에 속임이 없어야 한다. 미움을 거두어야 한다. 남북이 다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면서도 왜 통일이 되지 않는가? 조국산하를 붉은 피로 물들인 동족상잔의 비극과 상처는 이산가족의 아픔과 실향민의 비원만으로가 아니라 민족의 가슴에 한이 되어 남아 있다. 누구 때문인가. 체제 때문인가. 사상과 이념 때문인가. 인위적 장벽과 장애물 때문에 이루지 못한대서야 될 말인가. 통일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민족의 염원이요,당위이다. 진정으로 통일과 민족화해를 원하거든 통일과 화합에 방해되는 그 어떤 음모와 행위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납치행위와 공작원 침투,잠수정 침투와 같은 도발은 통일과 화합을 저해하는 백해무익한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비방 중단 신뢰 쌓아야 남과 북은 다함께 통일의 가치를 민족일치의 최상위 가치로 적립해야 한다. 선정적 충동이나 왜곡비방 수법은 금물이며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신만 조장할 뿐이다. 문화와 역사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일체성 회복을 위하여 유연한 대응으로 상황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햇볕정책은 유효 적절한 처방이라 할 것이다. 남북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발전시켜 통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감정과 수치심과 분노를 자극하는 그 어떤 표현도 삼가함으로써 정서순화와 상처치유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원한을 잊고 통일을 향한 민족적 열정이 피어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1.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서신왕래 및 상호방문을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2.남북한 종교인들을 비롯하여 여러계층과 단체들이 상호방문 및 교류가 순조로워야 하고 우호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사문화 되어버릴 수 있는 문서조약이 아니라 인적·물적교류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가 마련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3.남북한 교역이 원활하게 되도록 개방해야 하며 북한의 농업·공업·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기술 및 재정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떼의 북송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4.남북한이 무력대결을 포기하고 군비축소와 병역감축으로 얻어지는 재정을 국민경제 발전과 평화를 위하여 투여해야 한다. 5.정치·경제·문화·군사·산업·교육 등 제분야의 폐쇄적인 여러겹의 장막을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제거하고 개선해 나가야지 불신의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6.남북 정상회담으로 통일의 큰 틀을 짜고 구체적인 세부 실천사항은 남북고위 당국자와 실무자들의 점진적 협의에 의해 단계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한은 자아본위로만 생각하면 분단 영속화의 책임을 역사와 민족앞에 져야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깊이 명찰해야 한다. “기회가 있는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 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 하십시오.”(에페4:29­32) 우리는 진정한 민주화와 민족적 원의(願意)를 집결하여 다각적으로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 잠수정 시체송환 의미(사설)

    동해안침투 북한잠수정의 승조원 시체 9구가 3일 북한측에 넘겨졌다. 북한측이 지난달 30일 열렸던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이번 사건이 침투목적의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승조원들이 집단자살했다는 유엔사측 주장과 증거제시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않음으로서 사실상 침투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송환이 이루워진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12일만에 시체가 송환된 것은 과거와는 달리 빠른 조치이며 남북관계에 또 하나의 변화로 볼 수 있겠다. 그동안 잠수정 승조원의 시체를 조기에 송환해서는 안된다는 여론도 만만찮았다. 최소한 이번 사건에 대한 북한의 명시적인 시인과 사과는 받은 후 시체를 보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북한의 과거 행적으로 보아 능히 나올만한 의견이고 일리도 있는 말이다. 정부가 이같은 반대여론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승조원 시체를 조기송환한데는 화해와 협력으로 가고있는 남북간의 변화조짐을 이번 사건으로 깨뜨리지 않겠다는 보다 큰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새정부 출범이후 남북관계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화해와협력의 시대가 열리려 하고있다. 온국민의 기대속에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과 소떼의 방북이 이루워졌고 그 성과로 금강산 관광길이 오는 가을에 시작되려 한다. 금강산개발 계획을 구체화할 현대측 실무협상단과 2차분 소떼가 곧 북한으로 간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많은 문화교류·경제협력사업들이 성사를 기다리고 있다. 잠수정침투사건을 일으키긴 했지만 북한도 교류·협력사업에는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승조원 시체송환으로 잠수정침투사건이 어물어물 넘겨져서는 안된다. 북한측에 따질 것은 따지고 받아내야 할 것은 확실히 받아야 한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측의 허점들도 철저히 보완해 안보태세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만 집착하여 모처럼 조성된 화해·협력의 기회를 무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잠수정을 비롯하여 침투행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는이상 시체까지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체의 조기송환이 인도적인 측면에서나 대북협상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승조원시체를 조기에 보내는 우리측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하며 호의를 악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루 빨리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여 남북이 다같이 바라는 화해와 협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대통령의 ‘세계주의시대’ 선언/崔章集 고대 교수·정치학(기고)

    金大中 대통령이 인촌기념강좌에서 “지금은 민족주의 시대가 아니라 세계주의 시대이다”라고 한 선언은 ‘국민의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기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권력과 자식의 화해 그동안 우리나라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대통령과 지식의 중심적 산실인 대학이 반목과 긴장관계를 계속해 왔다.이 갈등적 관계는 권위주의적 정치현실과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사이의 대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이점에서 金대통령의 고려대 강연은 이 양자 사이에 존재해 왔던 갈등의 해소, 권력과 지식의 화해라는 의미를 갖는 하나의 역사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金대통령이 새로운 천년을 여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세계주의 시대’라는 국정운영의 좌표를 제시한 것은 특히 의미깊다. 이는 IMF관리체제라는 국난을 세계주의를 통해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세계주의는 곧 보편주의의 이념이며 원리이다.또한 세계주의는 정경유착과 배제를 통하여 기득이익을 유지,온존시켜왔던 폐쇄성과 배타성을 거부하고 참여와 통합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다.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민족주의의 원리,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강조만으로는 세계의 규범과 세계의 시간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변화,세계화의 파고가 몰고오는 변화에 대응하면서 우리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참여와 통합원리 강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운영기조 역시 이 세계주의에 바탕을 둔다.그러나 이 말이 민족주체성의 부정이나 상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그와 반대로,세계주의는 우리 민족의 수난과 이를 극복했던 집합적 노력의 역사,즉 도전과 응전의 다이나믹스를 국낭의 위기에서 다시금 실험하고자 하는 의지의 천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주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와 실업사태,지역 갈등과 국민분열,남북간 대립과 갈등이 가져오는 위기극복을 위한 개혁의 담화이다.이는 또한 21세기적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지식중심의 유연하고 창발성이 넘치는,그리고 민주적이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갖는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미래지향적 담화이기도 하다. 金대통령이 대학특강이라는 형식을 빌어 국민들에게 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역사적 도전에 직면한 우리의 대응전략이란 다름아닌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민 모두의 창조적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이 전략은 고통받는 모든 이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그 성공의 가치도 고루 나누는 민주주의에 기초한다. 金대통령은 이를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풀이하였다.다시 말해서 우리가 직면한 국가적 위기에서 어떤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한’을 갖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은 기필코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적 에너지 결집 우리가 세계주의로 나아가는 데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보편적인 시민적 덕목이 취약한 우리 사회를 수직적으로 분획해왔던 지역주의이다.지역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현실의 난국을 극복할 에너지를 끌어낼 수도 없고,민족의 염원인 분단극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수도 없는 것이다.즉 세계주의와 지역주의는 결코 양립 가능할 수 없다.
  • 남북 합작 드라마(사설)

    요즘 각 방송사들은 남북합작드라마 제작에 대한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다큐분야 대북교류에 이어 가능하면 2000년 방영을 목표로 한 방송사는 대하소설 ‘장길산’을, 다른 방송사도 고려를 개국한 王建 이야기를 현지로케로 구상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1,2년후 안방에서 남북 방송인들이 연출하고 출연한 드라마를 보게 된다는 것은 금강산 관광만큼이나 가슴 벅찬 일이 아닐수 없다. 합작드라마 추진은 다른 문화교류와 마찬가지로 통일을 향한 작지만 커다란 출발로 받아들여진다. 드라마는 대중과 가깝고 설득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어떤 예술분야보다 시청자의 호응을 받는 장르다. 더구나 드라마속에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언어 습관 사고방식은 물론 희로애락의 표정을 읽을 수 있어 각자 살아온 배경과 체제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분단 반세기를 넘어서면서 우리 남북은 생활의 기틀인 단어선택에서 맞춤법 발음 표현에까지 언어 이질화현상이 심각할 정도다.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마치 외국어를 듣는 듯한 불편함과생소함은 어쩔수 없다. 바로 이런 언어차이와 긴단절에서 온 이질의 골을 드라마가 어느 정도 극복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재가 역사물일 경우 그 시대의 상황을 함께 공유했다는 전제때문에 오늘의 분단현실과 우리가 살아온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공감이 용이해질 수 있다. 만약 어떤 거부감이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는 사실을 가공하여 반영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양보와 이해의 폭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그동안 안기부는 확고한 정보공개 확대 차원에서 북한 방송청취를 허용하는가하면 리틀엔젤스의 북한공연 실황 비디오테이프를 정부의 사전검열없이 방송하게 했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 소’입북과 금강산 관광계획 등도 전 같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적극적이고도 현실적인 협조로 보인다. 이번 드라마합작은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위해 다른 어떤 것보다 바람직한 방법의 하나로 보인다. 다만 남북 모두가 분단에 의한 이질화 내지 차별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합작드라마도 남북 절대 다수 시청자들이 공감하고공유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또 현지로케와 북한 배우캐스팅등 교류를 제약하는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예술인들이 오가며 드라마나 영화를 ‘합작’한다고 해서 당장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출발들이 모여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여 모처럼의 햇살무드를 ‘통일’로 이끄는 바탕이 되게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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