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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淳瑛 외교 ‘21세기 한국의 외교정책’ 강연 요지

    ◎민주주의·시장경제 바탕 ‘계몽된 세계관’ 가져야/확고한 안보 토대 구축/대북 포용정책 지속 추진/독자·창의적 사고 형성/세계 중견국 위상 정립해야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11일 오후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21세기 한국의 외교정책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다음은 강연 요지. 21세기를 여는 한국의 외교정책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먼저,세계화시대에 책임감있고 유능한 행위자가 되기 위해선 우리는 눈앞의 준거기준을 뛰어넘어 보편적 가치 및 규범에 충실한 ‘계몽된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과거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그러나 우리는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민족과 어울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이것이 세계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다.세계화 시대의 보편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우리는 외견상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민주적 가치를 따르는 것을 배워야 한다.시장경제의 규칙과 절차도 수용해야 한다.우리는 최근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OECD에 가입한 것을 후회해서는 곤란하다.오히려 세계가 믿을 수 있는 회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독자적 사고도 형성해야 한다.냉전 최전방에서 우리는 외교무대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우리는 지금 주변 4강과 모두 친교를 맺고 있고 아시아에서 민주화 및 시장경제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정책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는 우리 외교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21세기 한국은 아시아의 지역강국이자 세계중견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한국은 자신을 세계무대의 주행위자로 여겨서는 안되고 동아시아의 중견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동아시아가 번영할 때 우리도 안전할 것이다.미국 주도의 세계질서하에서 우리 외교정책은 미국의 세계전략 맥락안에서 펼쳐져야 한다.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이 한국의 지역전략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이럴때 한국은 독자적 사고와 능숙한 외교를 발휘해야 한다.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우리는 ASEAN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APEC과 같은 역내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EU는 국제문제의 중요 축이다.EU와의 긴밀한 협력은 우리 주변 4강과의 관계와 균형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장려할 만하다.조국의 평화통일 달성은 우리 외교정책의 가장 근본적 동기로서 계속 유지될 것이다.그러나 분단 양 당사자는 통일의 구체적 방법과 통일 후 양측의 공생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후 비로소 통일과정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확고한 안보의 기초 위에 지속적인 포용정책의 추진만이 우리의 최선의 선택이다.통일한국은 기존 국경선을 존중하고 재래식 무기에 한정된 군사력을 보유할 것이며 비핵화를 지향하는 평화국가가 돼야 한다. 외교는 통치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다.외교과제는 국정과제의 중요한 부분이며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위 외교관이다.그렇기때문에 과거 국내정치세력들은 외교현안을 국내 정치목적에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사실상 외교정책은 정부만의 배타적 영역이 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며 집권당과 야당 진영의 사려깊고 책임감있는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그러나 일단 정책결정이 이뤄진 후에는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즉,효과적인 외교가 되기 위해서는 초당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 세계인권선언 50돌/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세계인권선언이 10일로 50돌을 맞았다. “인류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로 시작되는 전문(前文) 및 30조로 된 이 선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권의 국제적 규범이 되어왔다. 제2차 대전의 산물이기도 했던 이 선언은 지난 66년 유엔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각기 채택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양분한 동서냉전체제와 세계도처의 독재정권 출현으로 시민들은 그들의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생존권까지 박탈당하기도 했다. 공산주의국가에서의 인권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었고,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정권 아래서는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이라는 통치도구의 희생물이 되었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지구촌 곳곳의 지역분쟁,종교적 대립,인종적 갈등으로 자유·안전권은 물론 생존권과 복지권이 위협받기 일쑤였다. 캄보디아,르완다,보스니아 등지에서는 수만명이 짐승처럼 죽음을 당했고 바로 지난해만 해도 117개국에서 고문이 자행되었으며 55개국에서 약식 처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도 지킬 수 없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는 세계인구가 15억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지 50돌이 되어도 인류의 진정한 인권보장은 멀기만 하다. 몇해 전만 해도 인권침해국가로 분류됐던 우리나라는 이제 자유국가로서 인권존중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개선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권법 제정을 위한 막바지 조율작업도 그 사례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과거 엄혹했던 독재정권시절의 인권침해 유산이 그대로 널려 있다. 분단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은 더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독재투쟁 과정에서,아니면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학생운동을 하다가 혹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인사들에 대한 사인진상규명도 이뤄져야 한다.이같은 인권침해의 유산을 청산하는 작업에서부터 진정한 인권존중의 국가 건설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이와 함께 세계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북한은 이제 주민들에게 최소한 인간의 존엄권과 생명권,그리고 행동자유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 친일문학인과 문단의 대응(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

    ◎문학가동맹 ‘최남선·박영희 단죄’ 성명/민족 팔고 민주주의 망친 매국노로 규정/당국에 강력히 처벌 요청했으나 무산/민족분단 현실 친일에 대한 면죄부 준 셈 광복 직후 친일문학인들의 대응 자세는 거의 비슷했다.춘원 이광수나 박영희처럼 시골로 내려가 세월을 관망하면서 그동안 친일활동으로 분주해 미루어왔던 글을 쓰거나 구고(舊稿)를 재정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최남선도 그랬다.식민통치아래서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한 처지에 있었던 이들은 학문적 바탕과 각종 자료의 확보등으로 당장 집필활동을 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최남선의 한국사 관련 저서들도 그런 산물의 하나였다.급박했던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친일파의 저서를 금지처분 시키라고 했는데,사실은 저술활동을 통해 이들은 충분한 자기변호를 하고 있다. ○최남선 한국사관 관제사관으로 정착 그러니까 광복 직후 혼란기가 친일파들에게는 자기변호와 재기의 기회로 활용된 것이었다.예를 들면 ‘중등국사’에서 최남선은‘독립의 회복’이란 장(章)에서 “조선 인민이 일본에게 전에 없는 부끄럼을 당하매 잠자던 민족정신이 번쩍 깨어서”라고 서두를 시작한다.침략을 ‘부끄럼’이란 수사로 대치시킨 그는 독립운동의 주류를 “국내에서는 실력양성의 노력과 국외에선 국제정세의 이용”으로 서술하고 있다.이같은 한국사관은 그 뒤 분단시대의 관제사관으로 정착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영희는 또 어떤가.다른 문인과 달리 왼팔이 꺾일 정도의 고문과 강압으로 형식적으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해방직후 춘천으로 내려가 공립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1940년 2∼5월에 걸쳐 ‘문장’에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평론을 정리해 ‘문학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펴냈다. 이광수의 ‘꿈’이 친일행위의 보상이자 자신의 희망이었듯 회월 박영희 역시 이 저서를 통해 마르크시즘을 강력히 비판하는 사회문학을 주장했다.춘원과 회월에 대한 문학가동맹측의 성명은 아래와 같다. ‘지난 36년간 조선은 틀림없이 왜적의 철제(鐵蹄)밑에 잔인하게 짓밟혀온 것이요,그러므로왜적과 왜적의 이익을 위하여 동족을 팔아먹은 친일분자는 한 하늘밑에 함께 복받고 살지 못할 민족의 원수이다.인민을 다시 무서운 함정으로 이끄는 온갖 음모와 책동의 상습범 친일분자에게는 갈구해서 세우는 새나라의 발전을 위해 응당 여러가지 자유가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원수를 번영하게 하는 간계가 실행되고 민족을 파는 흉모(凶謀)가 용인되는 것은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닐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매국노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없어야할 것이다.친일분자의 거두에게 어찌하여 출판의 자유가 용인될 수 있겠는가.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조선에는 친일분자의 전횡이 일제시대를 연상케 한다.정치에 있어 그러하고,경제에 있어 그러하고,우리 문화영역에 있어서도 그들의 파렴치한 작동은 계속하고 있다.금번 이광수의 작품 ‘꿈’과 박영희의 평론집 ‘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발간한 것은 이 가장 큰 예이다. 이광수가 얼마나,소위 대동아전쟁때 왜적의 편으로 조선민족의 고혈을 빠는 일에 열렬하였으며 징병제도를 만들기 위해서얼마나 미친 것처럼 날뛰었고,박영희는 문인보국회의 상무이사로 황민화운동에 얼마나 날뛰었는가(…중략) ○박영희 춘천서 교사하며 집필 활동 우리 조선문학가동맹은 조선의 민주주의 문학인 전부를 대표해서 이광수,박영희의 철면피를 단죄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조치가 있기를 당국에 바라며 일반에게 성명한다. 1.이광수작 ‘꿈’와 박영희저‘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즉시 발매금지 시킬 것. 1.그 출판한 출판사를 엄격하게 처단할 것. 1.이광수 박영희 등 친일파,민족반역자를 반역자 규정에 의하여 처단할 때까지 언론 출판 집필 등 일체 활동을 금지시킬 것. 이 격렬한 성명은 당국에 의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보면 민족분단 현실이 친일에 대한 면죄부를 발급해주고 만 것으로 귀착되었다.문학적 대응이 아닌 정치적 대응이 도리어 친일파 문학을 부추긴 사례의 하나이다.
  • 금강산 환경보전/李世基 논설위원(대한포럼)

    금강산의 청수한 미관에 대해 송강 정철은 1580년에 쓴 ‘관동별곡’에서 ‘맑거든 깨끗치 말거나 깨끗커든 맑지마나’로 읊고 있다. 금강산에 다녀온 사람들은 굽이치는 계곡과 눈부신 폭포,‘백설’과 ‘백옥’으로 표현되는 봉두의 비경과 함께 쓰레기 하나 없는 금강산의 모습을 보고 한결같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옥류천 상류의 물이 얼마나 맑았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니 그 청결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다 남한에서는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크낙새며 진박새,노랑턱 멧새와 흰뺨검둥오리, 물까마귀와 가마우지가 관광코스마다 눈에 잡혔다는 얘기는 듣기만해도 부럽다. ○금강산 보고 한결같이 경탄 외금강 선하골 주변과 만물상 칠층암 계곡에 극상(極狀)을 이룬 미인송과 신갈나무에 매달렸을 설화(雪花)는 어떤 명화에도 비견될 수 없는 한폭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먼저 걱정되는 것은 금강산 자연훼손 문제다. 우리는 망가뜨려도 너무 망가뜨리고 쓰레기를 버려도 국토가 썩을 때까지 버리는 극단적인 일면이 있다. 서울 근교 산자락마다에 취사후 남긴 음식을 몰래 파묻거나 행락철 고속도로의 쓰레기 투기는 고질적인 사회의 병폐로 떠오른지 오래다. 수년전 백두산관광 때도 초기에는 성지 순례라도 나서듯이 수선을 떨며 엄숙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긴장이 풀려서 천지부근은 금세 굿이나 고사를 지내고 버린 돼지머리와 시루떡,빈깡통 등으로 쓰레기더미를 이룬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조심하다가도 방심하면 음주에 고성방가,고스톱에다 춤판까지 먹고 마시는 무질서,난무가 극도에 다다른다. 자유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유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을 모르는 처사다. 어렵게 열린 금강산 길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북측에 있는 금강산을 두고 우리 기준으로 환경문제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광객 집단 탐승에 따른 환경문제와 인근에 각종 위락시설이 건설되기전의 기본적인 환경 영향평가나 생태계 조사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편의’를 전제로 잡다한 시설을 만들 경우 그 자체가 환경파괴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관광객 예고제 도입도 필요 더구나 지금은 금강산 22개 지역중에서 3곳만이 개방되어 좁은 지역에서 매일 1,000명 이상이 부대끼다보면 길가의 풀을 짓밟거나 나무가지를 붙잡다가 부러뜨릴 수도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꼴이 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관광객 수를 줄이고 관광객 예고제 도입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또 관광객 스스로가 금강산의 자연과 환경보호를 인식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한 현대문명속에 살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금강산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편의를 제한하고 불편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뾰족한 대책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돌 하나도 채취해서는 안되고 휴지 하나도 버려선 안된다. 버리면 줍고 버리는 것을 보면 말려야 한다. 금강산이 완벽에 가까운 청결과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 이전에 그곳 주민들의 질서의식과 공중도덕이 몸에 밴 때 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은 이름 그대로 금강석처럼 빛나는 산이다. 가족 상봉과 통일의 문으로 이어질 때까지 ‘맑거든 깨끗치 말거나 깨끗커든 맑지마나’처럼 언제나 처음의 감동과 선모심(羨慕心)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 ‘문학으로 영호남 벽허물기’

    ◎두 지역 작가 120명 참가 전주서 이틀동안/상대 지역 사투리로 시 낭송할 땐 폭소·갈채 ‘인자는 우덜끼리 맘 탁 놓고…’ 지역감정 해소에 문학인들이 앞장서자는 취지로 마련된 제7회 영호남 문학인 대회가 5∼6일 이틀동안 전북 전주 유스호스텔에서 열렸다.행사에는 류명선·이동순·김용택·안도현씨 등 시인과 송기숙·이병천·김병용씨 등 소설가,염무웅·구모룡·임명진씨 등 문학평론가를 비롯,양 지역의 내로라는 문인 120여명이 참가,성황을 이뤘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유명 문인들의 작품을 사투리로 번역(?)한 ‘마음 탁 놓고 놀아 보드라고’가 선보여 흥미를 더했다.먼저 부산·경남 작가회의의 류명선·윤종덕 시인이 무대에 섰다.이들은 광주·전남 작가회의 김준태 시인의 시 ‘호남선’을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몽땅 바꿔 낭송,갈채를 받았다. 이에 뒤질세라 광주·전남 작가회의의 김준태·이대웅 시인이 나서 류시인의 ‘시의 나라’를 “겁대가리 없는 질을 따라(무서움없이 길을 따라)…거그는 어둠이 없습디다(거기엔 어둠이 없습니다)…”식의 전라도 사투리로 구수하게 되엮어 화답했다. 행사를 주최한 전북작가회의 鄭洋 회장은 “남북분단을 음흉하게 돕고 있는 지역감정이라는 악질적 거품을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진정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문인들이 앞장서 더 이상 지역감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6일 전주의 문화 유적을 둘러본 뒤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 남북 ‘민족의 사표’ 학술교류를(金三雄 칼럼)

    어린이는 싸우면서 자라고 분단국가는 싸우면서 통일하는가. 판문점을 통해 기업인이 평양을 다녀오고 동해에는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데 훼방꾼처럼 서해에 간첩선이 나타나 파고를 일으킨다. ‘싸우면서 공존하고 공존하면서 싸우는’역설의 논리가 남북관계다. 지난 정권때까지 남북정책의 기조는 냉풍정책이었다. 또 사안에 따라,풍향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들면서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결과 남북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적대와 이질성만이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다행히 새정부가 많은 비판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햇볕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함으로써 판문점 육로와 동해 뱃길이 트이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비즈니스나 관광차원의 방문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한 학술 문화의 교류로 한단계 발전해야 한다. 그동안 남북한은 체제와 사상의 상이에서 오는 이질성이 각 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도 동질적인 부문이 많이 남아있다. ○민족 동질성 회복의 원천 그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에서 공통으로 평가받는 근·현대사의 인물에 대해 공동연구 또는 학술세미나를 열어 민족적 일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다행히 남북이 모두 높이 평가하는 역사 인물이 있고 이들은 통일조국의 사표(師表)로 삼는데 별로 손색이 없는 분들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학계는 각기 다른 사관으로 역사를 기술해왔기 때문에 같을 인물,같은 사건을 놓고도 큰 차이를 보여 왔다. 남한에서는 민족주의사관을 비롯,실증사관 민중사관 등 다양한 사관이 공존해 왔지만, 북한에서는 초기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사적유물사관에서 근래에는 주체사관에 따른 역사평가가 중심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남북한의 역사인물 평가에는 차이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몇해 전 남한의 한 계간지가 북한의 각종 역사연구논문과 평가동향을 전반적으로 점검한 결과 정약용, 전봉준, 홍범도, 신채호를 ‘통일조국의 사표,남북한이 모두 평가하는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남한에서 존경받는 손병희·김구·박은식 등이 빠진것이 다소 의외이지만 남북한의 역사인물로 네 분을 선정한데는 그 나름대로 평가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들을 민족동질성 회복의 한 준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정약용은 봉건사회 해체기에 민본적 실학운동의 개혁사상가, 전봉준은 반제 반봉건투쟁의 민중혁명지도자, 홍범도는 중원대륙과 삭풍(朔風)의 황야를 무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항일 구국투쟁과 언론활동, 역사연구의 민족주의자라는 분석이 남북한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통일조국의 사표 전쟁과 적대감으로 얼룩진 남북한에서 함께 존경받는 인물이 있다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남북 역사학계는 비록 이념과 사관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들에 대해 공동연구나 공동저술 또는 공동발표를 통해 학문적 교류의 길을 터야 한다. 그리하여 분단사학을 뛰어넘어 통일사학을 새로쓰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지금 세계사는 국제화와 민족화가 원심력과 구심력이 되어 역학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의 물결에 우리만 언제까지 낡은 이념의틀속에 갇혀 적대와 반목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북한 역사학자들이 서울과 평양,또는 판문점이나 금강산 관광선상에서 국민(인민)이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토론하고, 이것이 양쪽 신문과 TV에 보도 방영되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일이 왜 불가능하겠는가.역사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 인권법 시안에 관하여/한충목 열사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예술적 상상력이 아무리 넘쳐흘러도 도화지가 구겨져있다면 화가는 꿈을 이룰 수 없다.사람과 시대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의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그 마음으로 바른세상을 위해 힘을 기울였고 그에 따라 인류역사는 조금씩,그러나 쉼없이 민주주의를 향해 흐르고 또 흘렀다.우리역사도 예외는 아닌데, 분단을 악용하여 인권을 해치는 독재정권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심하게 비틀었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마음들이 모이고모여 50년만의 정권교체에 마침내 당도했다. 그러니 제대로된 인권법을 향한 국민의 요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법무부가 주장하는 인권법 시안은 실망스럽다.인권위원회 상근위원을 세명으로 제한하자며 경제위기 상황을 그 이유로 들었다.그러나 사람의 인권은 그 자체로 숭고한 ‘목적’이며 경제는 다만 사람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 일 뿐이다.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 독재권력의 전횡이었다는 점을 그새 잊었는지 묻고 싶다.법무부 장관이 제청하는 사람을 인권의원으로 삼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소속 각급기들을 살피는 일도 그 업무로 삼으므로 그러한 주장은 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법무부가 말하는 시정권고권은 말 그대로 ‘권고’일뿐 강제력이 없다.인권위원회를 새로 세우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최근 국제사면위원회는 법무부의 인권법 시안을 분석하고 ●충분한 독립성과 조사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권고의 효력을 높일 수 있는 권한도 없어 ●현재 안대로 법이 정해지면 그 인권위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국가기관이 인권침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드는 인권위원회라면 마땅히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성을 지녀야 한다.
  • 일관성 있는 對北 경제교류/安錫敎 한양대 교수·경제학(대한광장)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가 금강산 구경을 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TV를 통해 실향민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는 감동어린 장면을 보면서도 ‘인간과 고향’의 재회사실을 실감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분단의 벽을 넘는데 반세기,북녘의 산하는 우리의 의식속에 현실감을 상실한 상상속의 신화로만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신화는 이제 현실이 되었으며,북한과 합의한 여러 사업들은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의 경제교류에 대한 북측의 자세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김정일체제가 공식출범한 이후 국내에서는 북측의 대남 자세와 전략에 대하여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었다.또한 북한이 우리의‘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반복하면서 남북한간 교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관적이었다.그러나 이번 사업에 대하여 김정일 자신이 보여준 적극적 자세는 앞으로 북한 역시 우리측의 교류제안에 전향적 자세로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결정적 ‘바로미터’로 해석될 수 있다. ○투자 환경·수익률 점차 호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북한간 경제교류 전망에 대해 비관적 시각이 없지 않으며,일부는 교류의 당위성 자체에 대하여도 회의적·비판적이다.자주 거론되는 반론중의 하나는 국내기업이 북한에 진출하는 경우 북한지역의 사회간접자본이 취약하고 기타 투자환경이 열악하여 적절한 투자수익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국내기업의 대북진출을 억제하기 위한 냉전적 사고의 소산이거나,소수의 실패사례를 일반화시킨 경우가 많았다. 북한과의 사업경험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보다 낮은 것은 아니지만,초기의 적응과정을 거치고 나면 빠르게 노동생산성이 상승한다는 점과 북한 근로자의 숙련도와 근로의욕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북한에서 임가공무역을 해온 국내 기업들은 특히 그 성과에 대하여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북한 주민의 소득수준과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내수지향적 투자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으나북한에서 제품을 가공·처리하여 제3국에 수출하면 그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다만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현상을 고려할 때 우리측으로부터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국내 기업의 대북 진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가장 중요한 것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과거 정부에서도 대북교류에 있어 유화적 포용정책을 추진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그러나 대개가 단명으로 끝났다.1994년에도 정부는 북측이 경수로 협정에 응하면서 포괄적인 교류활성화정책을 발표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우리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서독의 대동독 정책은 이 점에서 값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경분리원칙 지켜나가야 과거 동독에 의한 간첩 ‘기욤’사건으로 서독에서는 당시 브란트 총리가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대동독 교류·협력은 별다른 충격없이 지속되었다.이같은 일관된 ‘작은 걸음의 정책’이 결국은독일통일로 이어진 것이다.이렇게 볼 때 정부가 표방하는 ‘정·경분리’ 원칙은 안팎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견지할 필요가 있다.남북한 관계의 개선없이 우리는 21세기에 새롭게 태동할 동(북)아의 신질서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비로봉(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5·끝)

    ◎내금강에 우뚝 솟은 봉우리 내년 봄 오를 날 왔으면… ●왜 터져나오는 울음인가 정말 금강산을 본 것일까.내금강은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으니 먼 눈으로 비로봉의 눈덮인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끝내야 했지만 외금강도 사흘가지고는 주마간산이 아니었던가.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이 열리자마자 첫 산행에 나선 이들은 금강산의 장엄과 신비를 발로 딛고 눈으로 받아들이는 일보다는 반세기 넘게 바라만 보고 살아온 그 분단의 벽을 넘어서는 데에 더 큰 의미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금강산이라는 병풍 속에 담긴 단 하나의 그림 국토,민족,역사,동족상쟁,부모형제,이산가족,고향의 낱말이 그것이다.고향이 해주인 원창성씨(70·남)는 산길에서 만난 북측의 젊은 미화원이 꼭 조카만 같아 껴안고 눈물을 흘리자 그 젊은이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더라며 무언가 손에 쥐어주고 싶었지만 젊은이가 한사코 뿌리쳐서 그냥 돌아왔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뜻을 알겠노라고 했다. 장전항이 고향인 한일환씨(63·남)에게 “이제 고향땅을 밟으셨으니 통일을 만난거나 다름없네요”했더니 “그렇지요.내게는 통일이 반은 된 셈이지요”한다.금강산 관광 안내에서 이미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삼가달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산행에서 겨우 한 두번쯤 만나게 되는 북측 미화원(신분과 직함을 확인할 수 없지만 손에 대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을 붙잡고 피란 오기 전의 주소와 가족 이름들이 적힌 종이를 손에 쥐어주며 “내년 봄에 꼭 올 테니 그때까지 안부를 알아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모습을 보는 일행들은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만물상에서,구룡폭포에서 과일 몇개에 술잔을 올리거나 아니면 얼음 박힌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이들에게 저렇게 울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해준 세월이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원창성씨는 “내가 금강산을 본 것이 아니지요.꿈을 꾼 것이지요”했고 97세의 심재린 할아버지는 “피눈물로 금강산을 올랐다”고 했다. ●비로봉 오를 날을 기약하며 밀리고 밀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곧 다시 돌아올거라고,전쟁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이웃집 마실이라도 가듯 어머니와아들,아버지와 딸,아내와 남편,형과 아우가 그렇게 헤어졌다가 반세기를 넘긴 사람들.사람이 백발이나 200살쯤 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생사를 확인할 것도 없이 이미 수명을 다했을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심경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 개골산(皆骨山)에 왔던 이들은 다시 봄에 오겠다는 말을 한다.적어도 봄,여름,가을,겨울 산의 이름이 바뀌듯이 그 다른 산을 보겠다는 욕심도 들어있지만 더욱 고향이 금강산 가까운 곳이거나 북녘인 사람들은 이제 내디딘 발걸음이니 한 번이라도 더 그리던 땅을 밟아보겠다는 생각에서이리라. 내금강 비로봉구역은 비로봉 정상에 올라 구름의 바다,돌의 바다,물의 바다를 굽어보며 동해 일출을 보는 일말고도 월출봉 일출봉 영랑봉들의 절경을 놓칠 수 없고,만폭동구역에서는 청록감 백록담 흑록담 비파담 진주담 등 폭포와 팬 돌에 솟구치는 물보라와 바위들을 봐야겠고,백운대구역 명경대구역 구성동구역의 장관인들 어찌 빼놓을 것이냐. 내 봄이 오면 다시 가서 비로봉에 오르리라.돌 하나물 하나,나무 하나,흙하나 다시 와서 그 낱낱의 얼굴에 볼 부비고 감추고 있는 말들을 꺼내서 시로 쓰리라.노래부르리라.
  • 금강산에 가는 뜻(張潤煥 칼럼)

    금강산 관광 제1진이 ‘무사히’ 귀환한 데 이어 제2진도 제대로 관광을 마치고 돌아왔다.특히 제2진에는 여야 국회의원들도 들어있었다.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 金日成 주석을 만나 금강산 개발에 합의하고 돌아온 게 盧泰愚 대통령 정부 때인 89년 2월의 일이니,실로 9년만에 뱃길로나마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89년 2월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동안 남북관계는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金泳三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94년 7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뻔 했으나 金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었고,그해 10월 가까스로 제네바 핵합의가 이뤄져 전쟁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상황을 넘긴채 오늘에 이르렀다. ○관광선 보냈더니 간첩선 보내고 올 2월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고,북쪽에서는 金正日 위원장이 ‘유훈통치’를 내세워 권력을 승계했다.金대통령은 대북정책의 기조로 무력도발 불용(不容)과 화해와 협력을 제시했다.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에 힘입어 鄭명예회장은 다시 두번씩이나 소떼를 몰고 방북했다.그리고는 마침내 금강산개발 합의와 함께 관광선을 띄우게 된 것이다.드디어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보이는가 했더니,금창리 핵의혹 지하시설 문제로 다시 한파(寒波)가 일고 있다.한랭전선(寒冷前線)과 온난전선(溫暖前線)의 혼재 상태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대열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북한은 금강산 관광 제1진이 북한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서해안으로 간첩선을 침투시켰다.그러자 극우세력들은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북한의 대남전력은 적화통일이다.햇볕론을 거둬들이라”는 것이다.북한의 대남전략이 적화통일이라는 주장은 맞다.그러나 적화통일이 현실태(現實態)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따라서 그들은 “햇볕론을 펴려거든 안보태세를 더욱 튼튼히 하라”고 주장했어야 옳다.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한 안보태세를 대전제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통일의 씨앗 뿌리는 정부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마저 거둬들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의미를 잃어버린 마당에 계속 대북 대결정책을 밀고 나가란 말인가. 그래서 국경조차 의미가 없게된 이 지구촌시대에 남북이 다 함께 주저앉자는 말인가.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대화와 침투’라는 대남 이중전술을 가까운 시일에 포기할 것으로 믿어서가 아니다.‘햇볕’이 지닌 속성과 위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도 어쩔수 없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미미하게나마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평화와 통일의 씨를 뿌릴 때다.금강산 관광도 통일을 향한 하나의 작은 씨앗이다.금강산가는 길이 예사 관광길인가.이산가족의 한(恨)과 눈물,통일의 열망이 서린 길이다.그래서 금강산에 가는 깊은 뜻은 그한과 열망을 묶어 남북분단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데 있다.극우세력은 관광선을 타지 않아도 좋다.그러나 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정부의노력을 방해하지는 말라.씨앗은 언 땅을 뚫고도 끝내 싹을 틔우게 마련이니.
  • 사상 검증과 인권 침해/黃台淵 동국대 교수·정치학(대한광장)

    과거 서독의 사상검증관행과 ‘방어민주주의’라는 냉전의 유물이 21세기를 코앞에 둔 오늘날 한국에 끌려나와 고생을 하고 있다.독일제도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에 관한 최근 논의의 허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서독은 정부수립과 함께 나치분자의 공직침투를 막으려고 ‘방어민주주의’라는 법이념을 정립하였다. 1950년초 냉전이 격화되자 분단국가 서독은 이 ‘ 방어민주주의’를 확대·적용하여 헌법재판으로 1956년 공산당(KPD)을 불법화하였다.그러나 이 재판에 입각한 안보형법은 곧 ‘생사람 잡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게다가 이 법률은 사민당 정부가 동서해빙을 위해 새로 추진하는 동방정책의 걸림돌이 되었다.이로 인해 사민당 정부는 이 법의 폐지와 함께 새 공산당(DKP)을 다시 합법화하였다.이로써 서독은 이미 1969년에 법적으로 ‘열린 자유민주주의’로의 민주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민주발전 막는 냉전 유물 그러나 나치와 극좌파의 공직 침투를 우려한 주(州)지사들은 ‘우익·좌익과격파의 정치활동에 관한 주(州)정부 수반들의 결의’(1972)를 마련하였다. 이 ‘결의’는 원래 인사상의 신원조회 내규에 불과하였으나 1975년 합헌판결과 함께 마치 사상검증제도처럼 기능하면서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였다.이에 사민당 정부는 1979년 이것을 ‘헌법충성검증 원칙’으로 완화하였다가 1980년대에는 이것마저도 사문화시켰다.사민당은 1989년 베를린강령에서 이 검증정책이 ‘민주주의의 적을 양성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스스로 비판한 바 있다.서독은 통일되기 약10년전 이미 닫힌 ‘방어민주주의’로부터 ‘열린 자유민주주의’로의 완전한 정치발전을 이룩한 것이다.이 시점을 호도(糊塗)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도 독일의 보수적인 주에서는 서면질의 방식의 검증이 있다는 말도 옳지 않다.보수적인 바덴­뷔르템부르크주의 정치교육원 원장인 슐레씨는 지난 11월7일 필자의 질의에 대해 “그런 건 사라졌다”고 확언하였다. 오늘날 독일은 과거 적군파 변호사와 과거 무정부주의자가 장관으로 재직중이고,한주는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의 통치하에 있는 나라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권 중의 인권’이라고 말한 옐리네크에 주목하자.남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다.유일하게 인권유보의 권능을 가진 법률의 근거 없이는 어떤 언론과 국가기관도 사람의 사상을 검증할 수 없다. ○진보학자 언론검증 안될일 이 ‘원칙’을 알고 우리 현실을 보자.한국은 서독과 달리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로서 국가보안법을 짐으로 짊어지고 있다.한국에서 과거 서독의 관행을 빗대 공직자의 사상을 검증할 여지는 있으나,이 비교논의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첫째,이 검증은 극우·극좌파에게만 적용되었다.따라서 훨씬 온건한 진보학자에게 이것을 원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둘째,‘일반공무원’만이 검증의 대상이었다.‘정치공무원’이나 ‘위촉된 민간인’과는 무관한 것이다.이 경우에는 인사권자의 판단이 최종적이다. ‘위촉된 민간인’ 자문위원장의 사상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있을 수 없고 국회의 검증도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이 ‘검증’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한 권능에 속한다.야당과 친야 언론은 ‘위촉된 민간인’에 관해 ‘논란’할 수 있으나 사상검증으로 비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스런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 ‘對北 포용정책’에 모두 동참해야/韓碩鉉(발언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이 차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민화협의 발족에 이어 금강산 관광길이 드디어 열렸다.역사적으로 같은 국토이면서 분단의 높은 장벽에 가리어졌던 ‘세계의 명산’인 금강산이 눈앞에 아련히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니 한국인 치고 누구인들 벅찬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많은 국민들은 남북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방법을 지지하며 기대에 차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 준비에 혈안이 돼 있는 김정일에게 충성 현금이 웬말이냐?’,‘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마당에 한국만 변한다고 진정한 의미의 남북간 화해가 이루어지겠느냐?’는 등의 회의론도 적지 않다. 냉전논리에 어설프게 집착하고 있는 이러한 회의론자들은 북한체제의 경직성을 예로 들며 유화(햇볕)정책이 지니는 위험성을 높은 톤으로 경고하고 있다.북한 체제의 경직성에 어떤 변화의 조짐이 아직 없는 것은 사실이다.북한은 또 군사력 증강에 많은 투자를 해왔으며 북한의 핵의혹도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북한과 군사적 대결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냉전이 무너진이후 국제환경은 크게 변했으며 남북관계도 과거의 냉전적 대결에서 화해로 바뀔 필요가 있다.물론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결코 안된다.철저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국제적 시대상황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며 바람직한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길이라 할수 있다. 야당이나 일부 보수세력도 냉전논리에서 벗어나 남북화해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에 동참해야 한다. 남북관계에 있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야 말로 나라의 보위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도권과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취할 책무이며 최선의 선택이다.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정치논리로 값진 역사의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통일은 거스를 수 없는 ‘민족적 당위’이며 ‘역사적 필연’이라 할 수 있다.
  • 문화예술인 개골산 총집결/성큼 다가운 금강산­첫 관광 이모저모

    ◎李文求씨 등 20명 참가/화단 금강산유파 고무/문단,고뇌속 신중 접근 금강산이 예술혼을 지피고 있다. 분단 50년 만에 비경의 문틈을 살짝 연 금강산이 국내의 내로라 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난 18일 첫 관광에 나선 예술가만도 20여명을 헤아린다.한국화가,소설가,시조시인,교수,극작가,사진작가 등 분야도 다양하다. 한국화가로는 기산 鄭蓂熙,단아 金炳宗씨(서울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소설가는 李文求,李文烈,朴範信,崔仁浩씨 등 인기 작가들이 금강산을 찾았다.李根培씨는 유명한 시조시인.인기 방송작가 金秀賢·미술사학자 兪弘濬씨(영남대 교수)등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다. 가장 감회가 깊은 이들은 한국화가들이다.다양한 장르 가운데 회화가 백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金炳宗 교수는 “금강산은 화가의 상상력으로 따라잡기에는 대상이 너무나 출중하며,무한한 감흥의 대상”이라며 “50년 만에 금강산유파,북방양식의 산수화 맥을 잇게 돼 무척 다행”이라고 말했다.그는 구룡폭포를 화폭에 담으며 “떨어지는 물과 얼음,바위의 속도감을 표현하는데 고심했다”면서 “응축된 기가 솟구쳐 숨가쁘게 나마 구룡폭포를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가들의 손길은 오히려 무겁다. 金笠,楊士彦,崔南善,李殷相,鄭飛石씨 등 조선시대 이래 해방 뒤까지 당대의 문객들이 저마다 금강산을 뽐내는 글들을 수 없이 남겼기 때문이다.혹 ‘짧은 언어’로 누를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金秀賢씨는 鄭周永 명예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鄭명예회장의 자서전을 집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鄭명예회장과 금강산초대소에서 생활을 같이 했다. 금강산기행으로 잘 알려진 兪弘濬 교수는 유람선 상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금강산 강좌를 열고 있다. 대중 연예인으로는 송해씨와 가수 현철,현숙,설운도,임주리씨 등이 유람선상 공연과 함께 금강산에 첫발을 내디뎠다.
  • ‘對北공조’ 굳힌 한미 정상(사설)

    金大中 대통령과 방한중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1일 정상회담에서 한·미간의 긴밀한 대북정책 공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양국 정상은 핵시설 의혹을 받고 있는 금창리의 지하시설에 대한 현장조사를 북한에 강력히 요구하고 미사일 개발등 북한문제 해결에 한·미·일 3국의 공조체제를 다짐했다. 금강산 관광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대북포용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에도 뜻을 함께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강경대응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미 정상이 빈틈없는 대북공조체제를 확인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북한의 핵의혹은 반드시 해소하되 한반도에 필요이상의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한·미간에 대북정책을 두고 갈등이 있지 않나 했던 일부의 우려를 씻어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반도에는 지금 중대하고도 의미있는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상황이다.위기로도 볼 수 있고 화해·협력의 진전으로도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분단이후 50여년동안 굳게 닫혀 있던 금강산 관광길이 마침내 열렸다.남북간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남북관계의 개선에 중국도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한반도의 화해분위기를 기대하게 해주는 현상들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미국의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특사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시설 의혹이 짙은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을 거부하고 있다.북한이 사찰을 계속 거부할 경우 단호한 대처를 하겠다는 미국의 강도높은 경고도 거듭되고 있다.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94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내년 봄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미 정상의 요구대로 북한은 핵의혹 지하시설의 현장조사에 응해야 한다.북한의 주장대로 그것이 민수용이라면 더욱 거부할 이유가 없다.‘자주권 침범’이니 ‘모독’이니 보상 운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더이상 받아들 여질 수 없는 억지일 뿐이다.의혹시설에 대한 사찰거부는 ‘제네바 핵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다.북한이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중유공급의 중단은 물론 경수로 건설 등 제네바 합의의 파기는 불가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남북한은 물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미 정상이 핵의혹시설에 대한 사찰과 함께 지속적인 포용정책을 다짐한 뜻을 북한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 “금강산 바람 셌지만 포근”

    ◎조선일보·KBS 기자 등 20명 하선못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주민들의 대규모 금강산 관광이 19일 시작됐다. 현대 금강호를 타고 이날 오전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관광객과 승무원 1,356명은 입북 수속을 마친 뒤 3조로 나뉘어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및 해금강 지역을 관광했다. 현지에 도착한 현대 직원들은 이날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 정도로 예상보다 따뜻했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고 전해왔다. 금강호는 이날 새벽 2시25분쯤 남북간 해상분계선을 지나 제1도선 지점인 장전항 17마일 밖 해상에 새벽 4시쯤 도착했다. 금강호는 오전 6시50분쯤 제2 도선지점인 장전항 5마일 밖에서 북한 도선사를 만나 7시30분쯤 장전항 임시계류장에 정박했다. 승객들은 장전항 부두까지 이용하게 될 부속선에 8시30분부터 타기 시작해 오전 10시쯤 장전항 선착장을 밟았다. 그러나 통일부 직원 4명,KBS 보도진 15명,조선일보 기자 4명 등 24명은 북한측의 입북 거부로 금강호와 입국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현대측은 金潤圭 현대건설사장 등이 이들의 입북문제를 북한측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측은 이날 금강호 승선자는 관광객 826명,승무원 419명,안내원 47명,안전요원 51명,오락담당자 13명 등이라고 밝혔다. 현대측은 또 금강호 출항에 이어 봉래호가 1,011명을 태우고 20일 하오 5시 동해항에서 두번째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다고 발표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구룡폭포 물줄기 하늘서 쏟아지는 듯”/북,관광객 점심식사 장소 제공/3개조 나눠 코스별 등반/민간인 첫 통화 1분37초 ●금강산 관광 첫날인 19일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로 당초 예상보다 따뜻했다.오후들어 기온은 영상 6∼7도로 오르며 관광하기에 안성마춤인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18일 오후 5시30분 동해항을 출발한 금강산 관광선은 19일 오전 7시30분쯤 장전항의 임시계류장에 무사히 정박.오전 9시부터 30여분간 입북 수속을 마친 관광객들은 구룡연,만물상,해금강 등 3개 관광코스로 나뉘어 버스에 타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버스는 현대가 미리 북한에 보낸 것으로 이날 35대가 운행됐다. 관광객들의 점심은 코스별로 마련된 식당에서 현대측이 준비한 보온도시락(반찬 4가지)으로 해결.북한측은 구룡폭포코스는 목란관,만물상코스는 금강산호텔,해금강코스는 단풍관을 식사장소로 제공하고 물과 국을 나눠줬다. 만물상코스에서 일부 연로한 관광객들은 등산을 포기,버스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도.관광을 마친관광객을 태운 첫 버스가 오후 4시30분쯤 유람선에 도착해 오후 6시에 모든 관광객들이 승선을 완료. ●소설가 이문열씨는 구룡폭포를 다녀온 뒤 전화로 ‘역시 절경이었다”며 “설악산이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소감을 피력. 그는 또 아홉마리 용이 서로 싸우다가 쫓겨가 숨었다는 전설이 담긴 이 폭포는 “두개의 커다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면서 “좌우로 붙어있는 얼음과 함께 장관을 이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강호로 돌아오는 길 양 옆에 있는 철조망과 군복차림의 사람들은 낯선 이국땅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고 지적. ○정 명예회장 북 인사 접촉 안해 ●북한측 고위인사의 재접촉 가능성 때문에 언론의 촉각을 곤두세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관광을 가지 않고 금강산 초대소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장전항 도착 이후 가장 먼저 하선한 정 명예회장이 조선아태평화재단 황철 감사관의 영접을 받았으며 다른 북한측 인사와는 접촉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고 전언. ●금강산관광 첫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친 현대측은 북측과 실무회의를 갖고 관광불편사항을 점검.이날 만물상으로 가는 도로가 일부 얼었다는 지적에 따라 19일 밤 북한과 현대 양쪽 근로자들이 투입돼 모래 등을 뿌렸다. ●순수한 관광을 조건으로 내건 북한측은 우리쪽의 일부 취재진이 점심을 먹다 식당봉사원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즉각 제지.기자들은 이후 관광코스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북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접촉하려 했으나 번번이 북한지도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북 주민과 접촉 제지 ●북한의 입국거부자 숫자를 놓고 현대그룹의 PR사업본부와 대북사업단이 집계한 숫자와 거부경위가 서로 틀리는 등 오락가락해 한동안 혼선. PR사업본부측은 금강호에는 24명이 남아있으며 KBS기자 15명,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 관계자 4명이라고 밝혔다.또 KBS기자 15명 가운데 4명이 배에서 무단하선,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받고 있으며 이들의 거취는 아직 알수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현대 대북사업단은 입국거부자로 분류돼 배에 잔류해 있는 인원이 20명이며 KBS기자 4명은 거부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아 관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최종 확인. ●금강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총 25명으로 확인.이 가운데 애초부터 하선이 금지된 금강호 호텔지배인과 러시아 여성무용수 4명 등 5명을 제외한 언론사관련자는 20명.승선이 거부된 KBS관계자 11명 가운데는 ‘사랑의 리퀘스트’팀 5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중에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도 있어 눈길. 현대측에 따르면 송씨는 북한측에 제출한 신청서의 직장난에 KBS라고 기재,억울한 잔류자가 됐다고. ○20일 671명 떠나기로 ●관광객들은 북측 영해에 들어서기 전까지 선내에 마련된 공중전화 4대를 이용,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장전항 입항부터는 4개 회선의 국제전화를 통해 남쪽 가족과 통화. 처음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화를 한 관광객은 黃규연씨(68·동아수산회장·서울 송파구 문정2동)로 밝혀졌다.黃씨는 19일 오전 8시58분쯤 장전항에 정박 중인 금강호에서 온세통신 교환원을 통해 서울에 사는 아들 黃인성씨(49·동아수산사장)와 1분37초 동안 통화.이날 통화는 분단이후 50여년만에 민간인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 ●20일 출항하는 현대봉래호의 승선인원은 관광객 671명,관광안내원 34명,승무원 288명 등 모두 1,011명.봉래호에 승선할 내·외신 취재진은 88명으로 주로 잡지·지방지 기자로 구성됐다.입북거부 소동을 빚고 있는 조선일보는 출판국 기자 4명이 들어갈 예정이며 KBS는 신청하지 않았다.
  • 이제야 가는 금강산(朴康文 코너)

    일반 관광객을 태운 금강산행 첫 배가 18일 마침내 떠났다. ‘마침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동안 일이 잘 되느니 안 되느니 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이 고향이 아니어서 그런지,당장 가 보고 싶은 열망까지는 없다.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또,이런저런 제약이 많아 퍽 신경 써야 하는 여행이 될것 같은 것도 내키지 않는 이유다. 시일이 한참 지나면 요금도 내리고 제약도 좀 풀릴 것이니 언젠가는 그 곳 절경을 가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금강산 관광길이 하루라도 일찍 열리기를 바란 것은,남북간의 굳은 장벽이 작은 틈새나마 열리고 앞으로 이 틈새가 점점 넓어지면서 양쪽의 신뢰와 이해가 쌓일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다른 많은 분의 생각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남북 ‘신뢰감 구축’ 희망 싹터 금강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등학교 때 배운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하는 노래 구절이다. 어린 시절 배운 이 노래는 강산을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장성해서 들은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그 각인을 더욱 깊게 했다. 여기까지는 국민적인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금강산하면 안춘근이란 분을 생각하게 된다. 몇 년 전에 작고 한 이 분의 고향이 금강산 기슭에 있는 반농반어의 작은 마을이었다. 고서수집가,출판평론가,수필가로 활동한 그는 ‘고향’ ‘언제 고향에 갈수 있을까’ ‘우리들의 자랑 금강산’등 여러 편의 글에 고향 마을과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아호를 출생지인 외금강면 남애리를 따서 남애라고 하면서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금강산 뱃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다. 아마 생존했더라면 이번 첫 배에 꼭 탔을 것이다. 금강산 옛 그림 스무 폭으로 꾸민 병풍과 금강산 흙으로 빚은 불상을 서재에 두고 따뜻한 고향 흙냄새를 맡으려고 했던 그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는 ‘대한팔경’의 “에헤 금강산 일만이천,봉마다 기암이요”하는 구절이 시작되면 어떤 일을 하다가도 일손을 멈추고 듣고,몇 명 모이지 않는 장전 남국민학교 동창회 때는 이노래를 합창한다고 했었다. 고령인데도 이 추운 날씨에 비싼 노자를 들여 금강호에 오른 관광객 가운데는 남애와 같은 심정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육로도 하루빨리 열렸으면 남북이 분단된 지 반세기.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이들은 고령이 되었다. 많은 이가 이미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떴다. 금강산 가는 길이 뱃길만 아니라 육로로도 열리고,금강산뿐만 아니라 북의 다른 지역도 통행할 수 있게 되어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하고 염원하는 이들이 고향에 가 볼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일반 관광객에 앞서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것을 보면,우회도로와 철조망으로 북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없게 해 놓았더라고 하니,이 기원의 실현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누가 알랴. 남한 관광객을 태운 커다란 배가 동해항에서 장전항까지 가게 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듯이,생각보다 빨리 북한의 다른 지역 통행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
  • 클린턴 美 대통령의 방한(사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오늘 우리나라에 온다. 클린턴 대통령은 3박4일의 방한기간중 金大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하루는 미군기지를 방문하여 장병들과 보낸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간의 대북정책 조율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미국의 지원및 협력문제다. 이라크사태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클린턴 대통령이 짧지않은 한국 방문을 강행한 것도 이들 문제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하겠다. 양국 정상회담의 의제도 결국 여기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관련하여 지금 한반도에는 난류(暖流)와 한류(寒流)가 동시에 흐르고 있다. 분단 50여년 만에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협력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라 할 수 있겠다. 반면 북한의 지하핵시설 의혹과 미사일 개발문제는 화해·협력분위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은 사흘에 걸친 찰스 카트먼 미국특사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영변 인근 지하시설의 사찰을거부했다.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제네바 핵합의’를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는 강경 여론까지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간의 대북정책 공조는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대북정책에 관한한 두 나라간에는 긴밀한 공조가 이루어져 왔으며 특별한 이견도 없었다고 본다. 특히 金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최근 상황을 종합하여 대북정책을 조율하길 기대한다. 조그마한 틈새도 없는 긴밀한 공조체제를 재확인해 줄 것으로 믿는다. 지나친 강경대응으로 모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화해기류를 깨뜨리거나,핵시설 의혹에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나 모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이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개혁을 비롯한 그동안의 위기극복 노력을 평가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재확인한다면 우리의 경제회생은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철강과 반도체,투자협정등 두 나라간의 통상현안 해결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라 할 것이다.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중 주요 민간인사들과 갖기로 한 대화는 한국의 민주발전과 위기극복 의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시기 적절한 방한을 환영한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동해항 이모저모

    ◎“평생 그리던 북녘 맘껏 관광”/97세 최고령 한마디/최연소 6살짜리 동승/鄭 회장 3등칸 이용 18일 오후 5시44분 수십발의 축하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뱃고동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현대금강호가 역사적인 첫 출항에 나서자 동해항은 환호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분단 이후 순수 관광목적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나 환송객 모두 흥분과 설레임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탑승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됐으며 97세로 최고령자인 沈在鱗옹(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165)은 오후 4시40분쯤 가수 현숙씨의 도움을 받으며 출입수속대를 통과해 탑승했다. 沈옹은 “평생 그리던 북한 땅을 밟아 본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세월의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모든 관광 코스를 돌아볼 생각”이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0여분 후인 4시50분쯤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측근들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 귀빈실을 통해 금강호에 올랐으며 5시쯤 최연소 관광객인 강한별군(6)이 아버지와 함께 탑승한 것을 끝으로 승선은 마무리됐다. ●금강호가 출발한동해항 여객터미널에는 많은 출영객들과 동해시민들이 나와 역사적인 관광에 나서는 관광객들의 장도를 축하했다. 금강산 관광에 참여한 어머니 秦蔡玉씨(84·충북 청주시 봉명동)를 환송하기 위해 동해항에 나온 金鍾淑씨(47·충북 청주시 봉명동)와 金鍾姬씨(39·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 자매는 “금강호 첫 출항에 어머니를 보내드리게 돼 기쁘다”면서 “우리의 명산 금강산을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선의 출항 직전 관광을 신청한 통일부 관계자 및 일부방송사와 신문사 보도진의 입북을 거부한다는 방침을 전해왔다. 북한은 이날 낮 현대측을 통해 “순수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 금강산을 방문하려는 사람이 많다”면서 모두 19명의 입북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현대측 관계자는 “북한측과 끝까지 협상을 계속해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북이 거부된 일부 보도진 등은 현대측의 협상을 지켜보고 북한이 끝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북한땅에 내리지 않는다는 계획으로 일단 관광선에 올랐다. ●현대금강호 출항장에는 국내외 신문·방송은 물론 미국 CBS와 AP통신,일본 NHK,TBS,TV동경,요미우리신문,동경 신문 등 외국 보도진들이 대거 몰려와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이며 역사적인 출항을 지구촌 곳곳에 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장인 모리치하루기자는 “현대금강호의 출항으로 동해가 남북한의 전진기지로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환동해권의 물류 전진기지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10분부터 30분동안 진행된 출항식에서 鄭 명예회장은 기념사를 통해“민족의 염원을 담은 금강산행 뱃고동은 남북경협의 첫 결실이자 민족화해와 평화시대의 기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鄭명예회장은 최고급 객실을 사용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9개 등급의 객실 가운데 3등급에 해당하는 ‘만다린 스위트’실을 이용했다.
  • 남북화해 뱃길 되기를(사설)

    금강산 관광을 위한‘현대 금강호’가 오늘 마침내 공식적인 첫 출항을 한다. 관광객 수송과 안내에 관한 사전점검 성격의 시험운항을 순조롭게 마치고 본격적인 관광선 운항에 들어감으로써 드디어 금강산 관광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단절과 대결 속에 반세기를 살아온 분단상황에서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고 통일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보도한 만큼 북녘 동포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본다. 이같은 역사성에서 볼 때 금강산 관광사업은 앞으로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된다. 어렵게 성취된 금강산 관광사업이 지속적 성과를 이뤄낼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북한이 추가로 제기한 관광세칙에 대한 보완합의 없이 첫 출항에 들어감으로써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고 부정적 파장을 몰고올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관광객들의 사소한 부주의가 자칫 금강산 관광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경우를 감안해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명분으로 이용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관광객들의 신변안전 각서를 보내왔고 사회안전부가 이를 거듭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관광객들의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 14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금강산을 참관하는 남조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예기치 않은 도발사태에 대비한 만반의 대책은 세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그룹은 자신의 사명과 역할의 막중함을 철저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서 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측 관광객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서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관광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아무튼 정부의대북포용정책이 거둔 값진 결실인 금강산 관광사업의 지속적 성과를 기대하며 오늘 출항하는 관광선의 첫 뱃고동 소리가 북녘땅에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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