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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금강호 선상토론에 다녀와서

    200여명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원들이 지난달 20일부터 3박4일로 금강산을 다녀왔는데,그 첫날밤에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선상토론회가 열렸다.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민화협’은 지난해 9월 이른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을 막론한 민간단체들이 모여 조직한 민간통일운동단체이다. 우리 민간운동단체를 진보적 단체니 보수적 단체니 하고 서슴없이 구분하고 명명할 수 있게 된 일에도 격세지감이 있지만,어쨌든 그 때문에 선상토론장에도 이른바 진보적 인사와 보수적 인사가 자리를 함께하여 옛날에는 감히토론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예사롭게 하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고령의 토론 참가자가 북쪽 김일성주석이 사망했을 때 있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회담을 약속했던 상대방 정상이 사망하여 성사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유감스럽다’ 정도의 의사표시를 남쪽정부가 해야 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가 날마다 걸려온 항의전화 때문에 온가족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토론 참석자는 일반적으로 진보적 인사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데,정작 당사자는 언젠가 필자를 보고 “내가 진보적 인사인가요”하며 자문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또 다른 고령의 토론 참가자는 김주석이 사망했을 때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글을 썼는데 얼마나 많은 항의 협박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했다.이토론 참석자는 6 25전쟁 때의 반공 전사의 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졌는데,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적 인사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험난했던 근·현대사에 비추어 김주석의 죽음에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반대로 유감 표시는 천부당만부당할 뿐 아니라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이들 두 유형의 사람들이 금강산 가는 배를 같이 타고 한자리에 앉아서 얼굴 붉히거나 삿대질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변화,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시대는 변하고 만다는 사실을실감한 일이라 할 것이다.분단 이후 오랫동안,특히 군사독재시대를 통해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민주정권이 정착하면 할수록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일반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은 무력통일론이나 흡수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반해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흡수 평화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으며,세상은 어쩔 수 없이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의 시대로부터 비흡수 평화통일 지향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다시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려놓지 않는 한 우리 역사는 이제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설령 군사쿠데타 같은 것으로또다시 되돌려놓는다 해도 그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며 역사는 결코 영영 되돌아가지는 않는다.이제 무력통일론이 하나의 유물이 된 것처럼 백번 죽어마땅하다는 생각도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선상토론의 한쪽 자리에 참가했던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금강산행은 관광여행이 아니라 거대한 비흡수 평화통일 민간운동이다. 7·4공동성명이나 남북합의서 체결 과정에서는 몇사람의 정부쪽 통일교섭 요원이 북쪽을 다녀왔을 뿐이었다.그러나 금강호나 봉래호를 타고 금강산에 가서 북쪽땅을 밟고 그 안내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하루 1,000명이 넘는 평범한 남쪽 시민들이야말로 비흡수 평화통일 운동원들이다. 강만길 前고려대 교수·한국사학
  • [외언내언]남북노동자 축구대회

    올 광복절을 전후해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한 노동자가 선수로 뛰는 축구대회를 볼 것도 같다.민주노총이 통일부 승인 아래 3·4일 베이징(北京)에서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 대표단과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성사를 위한 실무회담’을 열어 연내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축구교류에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또한 양측은 경기날짜와 선수선발,개최장소 등 구체적 사안을 협의하기 위해 조선직업총동맹이 민주노총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4월중 평양에서 실무회의를 열기로 했다.정부도 민주노총이 초청장 등 구비서류를 갖추면 허가해줄 방침이며 북한노동자 축구선수단의 서울방문은 원칙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성사될 경우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노동자들이 선수로 참가한다는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이같은 축구경기는 분단 이후 누적된 이질감을 극복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몇 차례 결실을 거두었던 남북 체육교류가단절된 남북관계를 해빙시키는 역할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특히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간차원의 경협을 남북 당국간 대화로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체육교류로 이어지는 신뢰는 민족의 일체감을 조성할 수 있어 남북 당국간 회담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민족의 유서깊은 경평(京平)축구대회를 복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체육사업으로 인식된다.그리고 2002년 월드컵 남북한 분산개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鄭夢準대한축구협회장이 오는 19일 북한을 방문하고 월드컵경기중 두경기를 평양에서 치를 것을 북한측에 제의할 것으로 보여 월드컵 남북한 분산개최 가능성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월드컵 남북 분산개최가 실현될 경우 이는 바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보장이라는 역사성을 갖는다. 이밖에 노동자축구대회를 통해 남북한 노동자들의 화합과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그런 맥락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민주노총만의 참가보다는 한국노총까지 참가하는 노동자 대화합의 축전으로 마련돼야 한다.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성사돼야 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 [김삼웅칼럼]화해와 용서의 미학

    어느날 자공(子貢)이 “종평생(終平生)할 수 있는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있습니까?”묻자 공자는‘기여호(其如乎)하라’고 가르쳤다. “용서하라”는 말이다.기독교의 정신도 ‘사랑과 용서’다. 불교를 비롯해모든 종교의 정신이 표현의 차이일 뿐 ‘사랑과 용서’를 본질로 한다. 3월1일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유족 220여명이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인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해 ‘화해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이 부대는 광주항쟁때 도청 최종진압을 맡았던 부대다.그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이 학살됐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같은 날 전남·경북대생 220명이 상대편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입교했다.이번 교류 학생들은 1년간 동일한 학칙을 적용받게 되고 기숙사 무료제공과 등록금 전액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두 대학 학생들은 “영호남 화합디딤돌 될래요”라고 합창했다. 얼만전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화합과 친선의 자매결연을 하고 언론사에 TK·PK·MK 등 지역갈등을 조장하는용어를 삼갈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5일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한 대구와 충북·강원지역 노인복지대학 노인들이 金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도록 성금모금의 뜻을 밝혔다.노인들은 “하의도를 방문했으나 金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아 볼거리가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을 때 생가라도 보고 갈 수 있도록 복원을 위한 작은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일 양국 장군들의 후손 20여명이 서울에서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이 행사에는 우리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5대 후손과 서애(西涯) 유성룡의 14대 후손,일본측에서는 왜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어(宇喜多秀家)의 15대 후손과 경남 사천성 전투의 왜장 시마쓰 요시히로(島津修久)의 14대손 등이 참석한다.일본은 지난해 10월8일 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포용론과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판문점으로 ‘소떼’가 올라갔다.17명의 장기수도석방됐다.玄勝鍾전국무총리가 “나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부끄러운 과거를고백하면서 용서를 빌었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제창했다. 화해와 공존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겪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과정에서 숱한 죽임과 억압,대결과 갈등을 빚었다.이념싸움과 노선투쟁·지역대결과 내부갈등이 그치지 않았다.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찢기고 갈라지면서 원(怨)과 한(恨)을 남겼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독재청산,의문사와 각종 의혹사건 등 청산하고 밝히고 정리해야 할 ‘역사의 빚’이산적해 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원수는 잊기 어렵지만은혜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겠다.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기에 최제우 선생은 일찍이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제창했던 것이다.20세기 원한의 매듭을 모두 풀고 새 천년을 맞았으면 한다.더구나 지금은민족의 대시련기다.민족적 시련과 대결을 화해와 용서로 풀고 남북과 동서가 공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햇볕정책을 통해 북을 포용하고 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동서가 화합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새 세기,새 천년의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나갔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기득권자들이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용서받을 일은 용서받아야 한다.또한 정치인들이 적대의식과 지역감정에서 해방돼 화해와 용서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국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네루)라고 하지 않던가.전직 위정자들을 포함,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인사들은 이 기회에 참회하면서 국난극복에 동참했으면한다. 물론 인간적 동정이나 용서와 역사적·사회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또 원칙없는 온정주의로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렇지만 화해와 용서는 인간의 환치할 수 없는 불변의 가치이고 삶의 미학이 아닐까. 주필 kimsu@
  • 임진각 자유의 다리 관광코스로 개발

    국토분단의 상징이자 판문점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독개다리와 자유의 다리가 체험관광코스로 개발돼 내년초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경기도 파주시는 7일 연간 1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임진각을 세계적인 안보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임진각에서 자유의 다리와 독개다리를 통해 임진강 건너편까지 왕복할 수 있는 도보코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파주l朴聖洙songsu@
  • 가톨릭대 박건영교수‘한반도의 국제정치’

    한반도 문제는 국제화되어 있다.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관계 국가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상호적인 게임’이 되어야 한다.어느 한 쪽이라도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문제를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의 ‘한반도의 국제정치’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오름 1만2,000원).박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로 있다. 그는 안보와 외교를 중심으로 냉전과 탈냉전 시대의 국제정세와 미국·중국의 한반도 정책 및 남북관계 등을 풍부한 지식과 탁월한 분석력으로 설명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방안을 제시한다. 박 교수는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우리는 늘 국제정세에 어두웠다.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두려워했다. 국제정치의 움직임이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늦었음을탄식했다”. 그는 미국의 북한정책은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국가전략인 ‘참여와 확산의 국가안보전략’ 속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참여전략’은 냉전 후에도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역안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안보정책이다.‘확산전략’은 전통적인 비동맹국가와옛 적성국가들을 국제사회에 순치시켜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유도하는 정책이다.미국은 북한도 자신의 주도하에 국제질서에순응하는 안정된 국가로 전환시키려 한다. 미국의 북한정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중국 등 지역 강대국에 대한 예방적 견제정책과 연계된다.“미국은 북한을 자신이 주도하는 동북아 국제질서로 편입시켜 지역 패권 의도와 능력을 키워가는 중국을 ‘필요시’ 견제할수 있기 바랄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분단비용 감축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남북의 경제적 위기는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증진시킨다고 말한다.“남한경제의 여력이 없어 국내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한다는사람도 있으나어려울 때 일수록 남북경제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남한기업은 급락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북한은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여 모두에게 이익이다”. 경제교류는 군사적 긴장의 완화와 군사비의 평화적 전용을 가능케 하여 경제회복에 긍정적인 환류(feedback) 효과를 가져오고 정치적 신뢰구축도 촉진하여 평화공존및 민족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운명을 주어진 구조적 조건이 결정하던 시대는 가고,국가의창의성과 유연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대와 기회가 오고 있다”고말한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발상의 대전환으로 대북정책과 국가전략을세워야 한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 흐름과의 조화 속에 정책을효과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李昌淳 cslee@
  • [사설]의혹사건 진상 규명해야

    국민회의는 48년 8월15일 정부수립 이후 현정부 출범 이전(98년 2월24일)까지의 모든 의문사와 정치적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앞으로 설치되는 국민인권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한다.인권위가 조사하는일반 인권침해의 경우(진정 원인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진정해야 한다)와 별도로,정치적 동기로 공권력에 의해 국민의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가심대하게 침해당한 사건은 진정이 있으면 소급해서 조사할 수 있도록 인권위설치법 부칙에 명기하겠다는 것이다.남북이 분단된 가운데 정부가 수립된 이후 권위주의적인 제1공화국과 군사정권의 3·4·5·6공을 거치는 동안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곧잘 용공으로 몰려 탄압을 받았으며,역대 군사정권이추진한 개발독재는 노동운동분야에서도 많은 희생자를 냈다.그런 희생들이쌓이고 쌓인 끝에 우리는 건국 50년만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갖게 됐다. 집권당인 국민회의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다 돼서야 그동안의 의문사와 정치적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에 눈길을 돌린 것은오히려 때늦은 느낌이다. 뒤늦게나마 49년 백범 金九선생 시해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하고 ‘사법살인’의 혐의가 짙은 59년 진보당 사건의 죽산 曺奉岩씨 사건과 61년 민족일보 조용수씨 사건의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또한 73년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법대 崔鍾吉교수 사건과 75년 張俊河씨 의문사도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88년 전남대 이철규씨와 89년 조선대 이내창씨 의문사의 진상과 80년 全斗煥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정에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해서 강행한 ‘녹화사업’희생자 6명의 의문사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당시 군당국은 이들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한 바 있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약칭범추위)는 무려 42건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가 오늘날 이정도나마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희생된 많은 민족·민주열사들의 덕이다.우리는 의문사와 정치적의혹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과예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촉구한다.진상규명만으로는 열사들의 넋을 달랠 수 없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예우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 [대한광장]對北 포용정책의 인도주의

    최근 미전향장기수의 북송문제가 국내외의 지대한 주목을 받고 있다.정부는 준법서약을 하지 않고 있는 미전향장기수를 본인이 원하고 북한이 국군포로,납북자 등의 송환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전향적 대응조치를 취할 경우 이들을 북한에 보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도 적십자회 명의로 석방되었던 미전향 장기수 17명과 이미 석방된 장기수 3명의 북한송환을 대한적십자사에 요구하였다. 한반도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냉전체제 형성,한국전쟁에 따른 민족상잔의 뼈아픈 경험 등으로 인해 민족분단의 장벽은 높아만 갔다. 여기에다 대북 포위봉쇄정책을 고수해왔던 남한의 대북정책과 대남혁명과대남 분리 차단정책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대남정책은 체제갈등을 부추겨 민족분단의 희생자를 양산해냈다.해방후 혼란기와 한국전쟁기간중 발생한 남·북한의 수많은 이산가족,남쪽의 미전향장기수,북쪽의 국군포로 및 납북자 등이 바로 인간적인 삶을 희생당한 민족분단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한반도 평화·화해·협력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인도주의적 정신에 따라 반인간적인 분단의 벽을 낮추고 분단고통을 가능한 한 감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책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인권 훼손은 방지할 수있으며,더 나아가 화해·협력 기조가 형성될 경우 남북한간 인적·물적교류가 활성화되어 사실상의 통일인 민족통일의 장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단고통의 감소라는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우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체제 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지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적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98년 6월24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등 전후처리 이행문제 및 북한의 국제법 위반에대한 국제여론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우리 정부가 미전향 장기수와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제안하고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우리 정부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추진한다면 내용적으로는 연계송환을 추진하되,형식적으로는 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통해 연계송환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납북자 및 국군포로 남한송환을 체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응해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 북한이 커다란 호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우리 정부는 미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인도함과 동시에,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에 식량 지원 및 농업지원 등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을것이다. 민족분단이 초래한 희생자들의 고통감소를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미전향 장기수 송환문제,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문제 등은 물론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을 덜어주기 위한 식량·비료지원,농업부문 지원 등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조속히 제안해야 한다. 남북간의 인도주의적 사안을 다루기 위한 회담이열릴 경우 상호주의원칙은 신축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인도주의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된다면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평화통일의 초석을 놓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황병덕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대한포럼] 분단책임국의 結者解之 노력

    金大中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분단상태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대립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분단에 상당한 관련이 있는 강대국들이 책임을 통감해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金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천명은 한반도 분단에 직·간접 책임이있는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보장과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원칙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특히 정부수립 이후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분단 책임론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金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론을 공식제기하고 능동적인 협조를 촉구한 것은 시대적 상황에 비춰볼 때 상당한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평가된다.첫째,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분단 때문에 겪고 있는 유형·무형의 고통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성취하는 과제는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결자해지 원칙에서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2차대전 종전처리 과정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분단국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우리민족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본질도 모른 채 분단을 맞게 됐고 동족상잔에 이어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족적 고통이 계속되고있다.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이같은 비극적 분단의 실체는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추구했던 강대국들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강대국에 대한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협조적 노력을 제안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金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대목으로 평가된다. 둘째,앞으로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金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햇볕정책은 아직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본틀을 확실히 마련하지는 못한 상태다.그러나 분단 반세기 만에 금강산관광시대를 개막시켰고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증대시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 사실은 매우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국민의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관계개선을추구하는 정책방향을 큰 틀로 잡고 있다.국민정부의 2기 대북정책 방향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포괄적인 틀에서 운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金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한 대증요법식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라는 햇볕정책의 큰 틀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이같은 대북정책 방향은 金대통령이구상하고 있는 ‘일괄타결’에 접근하는 전향적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해법은 모든 대북현안과 북·미수교,북·일수교 등 북한의 관심사를 함께 푸는 일괄적 타결방안에도 효과적으로 접근할수 있다.따라서 金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미·일에 대한 협력을 공식제의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또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에 포용정책 동참을 설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북·미관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회의 보수주의 인식과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인식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이같은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의 의회·행정부간 상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미·일의 적극적 협조가 수반되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라는 민족적 과제는 우리 정부 힘으로 충분히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張淸洙 논설고문]
  • 李會昌총재 일문일답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2일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 등 정부정책의 비판과더불어 총재회담을 통한 정치복원의 기대를 피력했다.다음은 일문일답. ▒徐相穆의원에 대한 입장은표결처리 입장은 불변이다.徐의원은 이미 조사를 다 받았다.회기가 끝난 뒤재조사하는 것에 납득할 수 없다.徐의원을 구속해 야당의 대선자금을 파헤치려는 정략적 의도이다. ▒당내 비주류와의 관계와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입장은정당에는 다 주류,비주류가 있다.우리당은 각 정당이 모여 구성됐기 때문에좀 특수하다.야당상황에서 민주경선을 통해 선출된 총재의 힘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말은 원래부터 있었다.이에 대한 언급은 앞으로 검토해보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장외집회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결코 아니다.야당파괴를 고발하고 실업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지역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풀 사람은 대통령이다.정권교체후 오히려 지역감정이 심화된 감이 있다. ▒여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정당명부제에 대한 생각과 그 대안은정치개혁은 구태정치를 벗어나 정치틀을 짜는 것이고 서둘러서는 안된다.정당명부제의 취지는 좋지만 지역감정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고 과거 유정회와같이 비쳐질 수도 있다.곧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고비용정치구조 대처방안은우리당은 스스로 규모와 비용을 줄여 정치자금을 줄이려 하고 있다.여야 모두 정경유착을 끊어야 과거와 같은 수난이 없어진다.법으로 진실을 밝혀야할 때는 밝혀야 하지만 국민들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정부의 대북관계에 대한 입장은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의 위기설 제기를 가져왔다.문제는 대북인식이다.대북문제는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현 정부의 정책이 분단고착화하는 방향일지 모른다. ▒내각제에 대한 생각은내각제분란은 국민을 불안케 한다.내각제에 대해 金대통령이 명확히 밝혀야한다.입장은 향후 추이를 보면서 정할 것이다. ▒徐淸源의원 등 비주류 인사를 부총재로 선임할 계획은부총재를 보충영입하는 것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
  • 金대통령 3·1절 기념사 요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7,000만 동포 여러분.우리 민족은 국난에 처할수록 더욱 굳센 애국심을 보여 왔습니다.이 나라에 환란이 닥치자 우리 국민은 일제히 일어섰습니다.20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금을 모았고,일터마다 경제를 살리자는 운동을 힘차게 벌여나갔습니다.우리의 국민적 저력으로 1년 만에 외환위기를 이겨냈습니다. 환란 당시 38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지금 520억달러라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다시 부활시켰습니다.올해는 금융·기업·공공부문과 노동부문 등 4대개혁을 반드시 완성해야 합니다.오직 그 길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국민 여러분의 걱정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노력으로 현재18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금년말까지 150만명으로 감소시키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더욱 안정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일본 등과 긴밀히 협의,세계에서유일하게 남아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합니다.현 단계에선 최소한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민족을 보호해야 합니다.아울러 한반도 분단에 책임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한 이후 남북관계에서는 부정적인 면과긍정적인 면이 모두 나타나고 있습니다.우리는 북한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경고와 함께 단호한 자세를,부정적인 태도에 대해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부조리,부정부패,지역주의,이기주의 등을 청산하고,21세기 세계화시대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 우리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제2의 건국’운동이 힘차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金대통령 3·1절 기념식 치사

    金大中대통령은 1일“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식에서“우리는 이제 미·일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고,협력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3부 요인,시민대표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남산 장충공원에서 열린‘3·1독립운동 기념탑’제막식에 참석,“무엇보다 의식개혁과 국정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과거의 적폐와 악습을 말끔히 청산해야 된다”며 강력한 과거 적폐척결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3·1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탑골공원에서,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같은 장소에서‘범종교 3·1절 기념식’을,‘민중의 기본권보장과 양심수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역광장에서‘3·1절 반외세 민족자주정신 계승대회’를 갖는 등 3·1정신을 추모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 재일교포 인권운동가 徐勝씨“모국방문중 사면·복권돼 기뻐”

    ‘비전향정치범’으로 19년동안 형을 살다 지난 90년 석방됐던 재일교포 국제인권운동가 徐勝씨(54·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교수)가 최근 한국을찾았다.서씨는 지난 71년 동생 俊植씨(인권운동사랑방 대표)와 함께 이른바‘재일교포 학원침투간첩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비전향정치범’으로서는 최초로 석방됐다. 그에게 씌워졌던 혐의는 서울대 안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 반대와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반대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 조사과정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던 중 ‘살아서는 도저히 고문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고문기술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석유를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몇 차례의 수술끝에 겨우 ‘사람모습’을 되찾았지만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나의 얼굴”이라는 서씨의 표현처럼 그의 얼굴은 아직도 흉한 모습이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 94년 일본에서 나온 옥중기의 한국어 번역판 ‘서승의 옥중 19년’(김경자 옮김,역사비평사)출간이 계기가 됐다.출국 전날인 지난달 27일 서울대 호암관에서 그를 만났다. ▒방한 목적과 소감은. 옥중기 출간을 기념하고 서울대학과 ‘한·일간의 법과 정치제도 비교연구’라는 공동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왔다.28일은 내가 출소한 지 꼭 9년째 되는 날인데 한국 체류기간중 3.1절 특사로 나의 사면·복권이 이뤄져 더욱 기쁘다. ▒비전향정치범 출신으로서 이번 비전향장기수 17명의 추가석방을 어떻게 보나. 옥중에서 만났던 ‘선배’들의 석방소식을 듣고 반가워 봉천동 ‘만남의 집’을 찾아가서 만나봤다.이제 늙고 병든 그들에게 남북한 당국의 선처가 있기를 바란다. ▒‘옥중기’는 언제,어떻게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94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친구의 권유로 병실에서 오른쪽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에 담기 시작했다.옥중에 있을 때 집에 보낸 편지,가족의 면회기록 등을 참고해 옥중생활을 재구성한 것인데 더러 희미한 부분은 출소자들을 인터뷰해서 보충했다. ▒94년 일본에서 ‘옥중기’를 냈을 때의 반응은. 그동안 약 5만부(5쇄)가 판매됐다.독자의 편지만을 모아 다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석방된 후 뭘 하고 지냈나. 석방직후 일본에서 타이완(臺灣) 정치범 출신 모씨를 만나면서 동아시아의억압받는 민중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97년 타이완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심포지엄과 이듬해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4·3’ 심포지엄은 모두 이같은 취지에서 조직한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남북의 분단,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일본과 아시아 국가간의 갈등 등 ‘분단문제’를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금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주한미군범죄를 주제로 제3회 국제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서씨는 출소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지난해부터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재직중이다.
  • [사설]3·1 정신으로 제2국난 극복

    기미년 3·1독립항쟁 80주년을 맞는다.남북분단 상태와 우리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북한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정지)상태에서 맞는 3·1항쟁은 과거 어느때보다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3·1항쟁은 개항을 전후하여 외세에 대항하면서 전개된 일련의 민족운동의결과로 민족내부에 축적된 독립운동 역량이 자발적으로 발산된 항일구국투쟁이다. 3·1항쟁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상황을 보면, 집회 1,542회, 참가인원 202만 3,089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피검자 5만 2,770명, 불탄교회 47개, 불탄민가가 715채나 되었다.이러한 수치는 일제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것에 불과하고 실제는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것이다. 비록 3·1항쟁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낸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드러냈으며,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이집트 등 피압박 민족의 해방투쟁의 봉화가 되었다.이런 의미에서 3·1항쟁은 세계피압박민족해방투쟁의 선구적 혁명이라 하겠다. 3·1항쟁은 갑오농민운동·애국계몽운동·의병운동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운동이 집약되고,그 이후의 항일구국운동도 여기서 발원하는 민족운동의 요람이다.계층 노소 지역 성별 신분을 초월한 거족적인 항일투쟁이었다.봉건왕조에서 식민지로 전락한지 9년만에 전민족이 대동단결하여 통일역량을 보여주고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일깨웠던 구국항쟁이었다. 대한민국 존립의 준거 3·1정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존립하는 대한민국의 준거이기도 하다.그것은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임정은 26년 동안이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카이로선언을 계기로 민족해방을 쟁취하게 되었다. 임정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있음을 유의하여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는 카이로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1항쟁은 순수한 민족역량의 자발적인 결집이고 발산이었다.흔히 학계 일각에서는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받아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평가하지만,당시 일제의 철저한언론통제로 파리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됐을 때 유일한 국내 한글신문이었던 총독부기관지는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한국민중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북한 학계일각에서 주장해온 러시아 10월혁명의 영향설도 비슷한 상황으로서 한국 민중이 이를 알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다.당시 러시아 한인사회에서는 국내의 3·1항쟁 소식을 접하고 3월 17일에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축하회를 개최한데서도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국민화합의 가치관 3·1항쟁으로 시작된 민족의 저항은 마침내 8·15해방으로 귀결되었지만 통일조국을 이루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내부분열과 외세개입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단과 동족상쟁과 대결의 시대가 50년 이상 지속되면서 남한의 IMF사태,북한의 모라토리엄상태로 민족적 시련을 겪고 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일제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면서도 겨레가 하나되어 독립항쟁에 나섰던 선열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런 모습이다.분단 남쪽은다시 동서로 갈리고 지역별로 토막쳐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야간의 비생산적인 정파싸움,제 밥그릇 챙기기에 개혁을 거부하며 거리투쟁에 나선 일부 세력,부패와 복지부동의 관료집단,탈세와 외화도피를 일삼는 반사회적 기업가 등 반 3·1정신적인 행태가 도처에서 국난극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80년전 선대들의 애국정신을 회복하는 역사적 결기(結起)가 있어야겠다.망국의 백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일제의 폭압에 맞섰듯이 3·1정신으로 다시하나되어 IMF국난을 극복하고 분단조국 통일의 구심점으로 삼아야겠다. 우리 건국이념이고 민족통합의 원형질인 3·1정신을 화합과 통일이념으로승화시켜야 한다.그리하여 작은 이해와 갈등 따위는 80년전 선대들의 구국정신으로 용해하면서 10개월 후 열리는 2000년대에 한민족이 세계무대에서 우뚝서는 이념적 지표를 세워 나가자. 3·1항쟁과 항일구국투쟁으로 희생된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이 대접받고, 양심적이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이것은 50년 만에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金大中정부의 책무이면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국민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의 정부’를 선택한 것은 바로 3·1정신을 잇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자는 소망의 결집이었다.3·1정신은바로 정직한 사회·정직한 국가를 만들자는 겨레의 소망이며 실천운동의 거대한 축(軸)이다.
  • [외언내언] 왜곡된 북한 3·1운동사

    3·1독립운동이 일어난지 80주년을 맞는다.면면히 흘러오는 민족사에서 보면 3·1운동은 우리 민족운동사의 가장 위대한 봉우리였다.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폭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완전독립을 위해 학생,종교인,지식인,노동자 등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로 일으킨 거족적인 독립운동이었다. 1919년의 시대상황에 비춰볼때 3·1독립운동은 격동의 세계사속에 뚜렷이부각시킨 한민족의 존재선언이며 미래를 줄기차게 헤쳐갈 민족에너지의 표현인 것이다.그래서 3·1운동은 우리민족에 있어 가장 소중한 역사적 사건이며 정신적 자산이라고 평가된다.그런 역사성에서 3·1운동의 정신은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근본적 민족정신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주의의 족쇄는 풀렸지만 나라는 두동강난채 아직 합치지 못하고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고 하나 민족의 마음은 사분오열이 되어 갈등을 거듭하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은 3·1정신의 고양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1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어 안타깝기그지없다. 북한의 3·1운동에 대한 역사왜곡 실태는 발원지와 주동인물에 대한 날조를 비롯해서 철저한 계급투쟁사관 그리고 金日成일가의 신격화를 위한 한낱 도구로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민족대표 33인이 주동돼 서울의 파고다공원에서 시발됐음에도 발원지는 평양,주동인물은 金日成의 아버지 김형직으로 조작,날조하고 있다.심지어는 金日成을 우상화·신격화시키기 위해서 3·1운동때 불과 7살의 어린나이에 새를 잡는 고무줄로 일본헌병의 오른쪽 눈알을 뺏다는 유치한 내용까지 동원하여 역사를 왜곡해 왔다. 북한의 3·1운동에 대한 인식은 金日成정권을 합리화하는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과 조작의 산물로 지적되고 있다.결국북한의 이같은 3·1운동의 왜곡과 민족사의 변조는 유구한 민족의 정통성이오도되고 민족내부의 이질화 현상이 심화되어 통일의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3·1운동 80주년을 맞는 민족적 교훈은 3·1운동과 같은 민족의 저력과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 있기 때문에 민족통일의 희망이있다는 것이다.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승화시켜 분단 반세기를 넘고 있는 민족적 불행을 하루속히 종식시켜야 하겠다./장청수 논설위원
  • 북녘땅서 분단후 첫 대규모 기도회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개신교인들의 기도회가 열렸다.23일 오후 1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주관하고 대한매일이 후원한 한국기독교인 금강산 방문에서 개신교 목사와 신도 100여명은 구룡폭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외금강 관폭정에서 합동기도회를 열고 “통일을 앞당길 수있는 힘과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다. 개신교 목사들이 평양 봉수교회나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올리고 지난해 개신교 대표단이 금강산 상팔담에서 기도회를 가진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의 개신교인이 북녘땅에서 기도회를 개최한 것은 분단이후 처음이다.이에 앞서 22일 오후 5시 30분 동해항에서 봉래호편으로 출항한 400명의 기독교인금강산 방문단은 오후 8시 이유식 기독교 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의 인도로 개회 예배를 올린데 이어 ‘평화통일 음악회-양희은의 그리운 금강산’을 감상했다. 방문단은 출항 이튿날인 23일 구룡폭포 코스로 올라 정철범 KNCC 회장(대한성공회 대주교),김동완총무,백도웅 부총무,박형규 원로목사,박용길장로(문익환 목사 미망인)등 개신교 각교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산상기도회를갖고 하산했다. 또 이날 오후 8시에는 ‘교회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아래 시사평론가 정범구박사의 사회로 선상 토론회를 열고 분단현실에 대한기독교인의 책임과 통일을 위한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방문단은 24일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만물상 코스를 등산한 후 온정리 공연장에서 서커스단인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시범공연을 관람했다.이날 공연은 문익환 목사의 미망인인 박용길 장로를 환영하기 위해 북한측이 특별히 마련한 것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란 평판에 걸맞게 널뛰기,줄타기,공중그네묘기 등 곡예솜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공연직전 단원들은 박용길장로에게뛰어가 부둥켜안고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방문단은 25일 오전 7시 30분 귀환했다. 김동완총무는 “개신교인이 단체로 북녘땅을 밟고 기도를 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면서 “금강산 뱃길이 단순히 돈있는 사람들의 관광코스로 변질되지 말고 민족통일을 위한 수련 프로그램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故문익환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장로님의 금강산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늙으신 몸으로 문목사님의 뒤를 이어 통일을 위해 얼마나 애쓰십니까” 통일꾼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80)장로가 금강산에 올랐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마련한 ‘평화통일염원 기독교인 금강산방문단’의 일원으로 400여명의 교인과 함께 22∼25일 금강산 관광에 나선 박장로를 금강산 안내원들은 열렬하면서도 정중하게 모셨다.89년 ‘분단의 벽을 허문다’며 밀입북,김일성을 만나 통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문목사가 94년 타계한 이듬해 박장로 자신도 북에 들어가 한달여 머물다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내려와 옥고를치렀다. “올해가 문목사 방북 10주년과 타계 5주기를 맞은 해입니다.통일을 위해애쓰시던 목사님이 길을 트신지 10년만에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방문하게 됐으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해요.이렇게라도 이제 뱃길이 열렸으니 목사님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도 머지않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박장로는 팔순의 고령에도 젊은 기자들보다 더 가볍게 구룡폭포와 만물상까지 오르며 문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목사님은 학창시절 폐가 나빠 해금강에서 휴양을 했다고 합니다.그래서통일이 되면 당신이 직접 금강산 관광단을 조직해 안내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지요.금강산에 와보니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간절합니다.이런 절경과 심성을 가진 우리민족이 일제와 분단으로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젠 통일을 이뤄 우리 힘으로 새로운 세기를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외세에 의해 조국해방은 됐지만 통일만은 우리 힘으로 준비해 맞자며 문목사가 타계 10일전에 결성한 ‘통일맞이 7천만 겨레 모임’을 맡아 문목사에이어 통일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장로.지난 5년여동안 이 모임을 이끌어오던박장로는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기념사업’과 함께 하나로 뭉쳐 통일운동을 펼쳐 나가기 위해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얻었다.앞으로 여기서 ‘통일맞이’ 잡지도 내고 통일강좌도 열고 분단현장 여행을 통해 통일기운을 확산시킬예정이다. 朴燦
  • [화제의 책] 백범 김구 연구I

    백범 김구선생의 정치활동을 집중 연구한 ‘백범 김구 연구Ⅰ-정치활동과정치이념’이 최근 신지서원에서 출간됐다.부산 동의대 정경환(鄭京煥) 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신지서원의 기획물 ‘한국인물총서’의 첫 권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 김구’보다는 ‘정치인 김구’에 초점을 맞춰 구한말부터 해방정국까지의 전과정에 걸쳐 백범의 정치역정(歷程)을 분석하고 있다. 백범은 임시정부수립과 한국광복군 창설에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광복군 조직·활동을 둘러싸고 중국 국민당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중일전쟁 이후 백범은 중국측과 한중동맹군을 조직,일제를 타도해야한다는이른바 ‘한중연합론(韓中聯合論)’을 펴기도 했는데 당시 중국측 자료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방공간과 남북분단 과정에서 ‘정치인 김구’의 역할은 시대적 사명이었다. 친일파 처리·토지개혁·신탁통치·좌우합작운동 등 당시의 시국현안에 대한 백범의 인식·대응전략을 당시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것이 돋보인다. 백범의 정치이념을 ▒민족주의론 ▒민주주의론 ▒경제평등론 ▒문화국가론등 크게 네 갈래로 나누고 있는 저자는 “백범은 소년기부터 조선조 사회의신분계급구조와 인간불평등에 강한 의문을 가졌던 인물”이라며 “정치활동전 과정에서 그는 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정치를 신봉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저자는 6월초 후속작업으로 ‘백범 김구 연구Ⅱ-정치사상의 재조명’을 출간할 계획이다.
  •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제

    오늘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지 7주년이 됐다.92년 남북한이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와 이의 실천을 위한 부속합의서를발효시킨 것은 분단 반세기에 걸친 대결의 역사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주적·평화적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부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단 한건의 합의내용도 실현하지 못한 채 합의문 체결 사실조차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남북 당국자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오랜 산고(産苦) 끝에 체결했던 남북기본합의서가 이행되지 못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북한은 동·서 냉전체제 붕괴와 소련(蘇聯)공산당 해체,그리고 한·중 수교라는 충격적 사건 등 내우외환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이에 따라 9차 남북총리회담을 중단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핵충격 속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내팽개치는 불성실한 태도를 취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7주년을 맞음에 따라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복원을 통한 기본합의서 이행이 중요한 현실적 과제로 인식되는 것이다.특히 국민의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대북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일관된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진해 온 결과,대화분위기가 성숙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또한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북·미간의 타협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남북대화 전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예측되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金大中대통령은 지난 13일 LA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멀지않은 장래에 어떤 형식으로든 상당한 수준의 남북 당국간 대화가 가능할 것임을 시사했고 같은날 평양방송이 “어떤 형식의 남북대화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인 점도 남북대화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대목이다.더욱이 정부가 선(先)대북지원이라는 적극적 대화방법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 분위기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은 올 상반기에 대화분위기를 성숙시켜 하반기에 북한이 제의한 남북고위급회담을 기필코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남북고위급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이 의제로 제시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문제가 실질적인 성과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정부의 이같은 대화노력이 결실을 거둬남북기본합의서가 명실상부한 민족통일의 대장전이 되기를 바란다.
  • 李海瓚 교육장관,대학 새내기에 폭력시위 자제 당부

    운동권학생 출신인 李海瓚교육부장관이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생운동을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서신을 보내고 특별강연도 갖는다. 李장관은 내달 5일 한양대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 참석,‘21세기 청소년의역할’이란 주제로 특강한다.한양대 金鍾亮총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지난7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李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일부 운동권 선배들이 북한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불법 폭력시위를 마치 학생들의 권리이자 ‘소외된이웃과 북한 동포를 위한’ 당연한 희생인 것처럼 부추길 것이 예상되므로이같은 논리에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회주의는 미완(未完)의 실험인 상태로 끝났으며,쿠바와 북한에만 남아 있는 공산주의도 한세기를 넘기지 못한 ‘단막극’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李장관은 오는 23일 전국의 대학 신입생들에게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낸다. 李장관은 서한에서 “분단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고 소외계층에 관심을갖는 것은 젊은학생들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에 가입하거나 폭력시위에 참가하면 처벌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하다”고 경고할것으로 알려졌다.
  • 특별기고-민주·통일·인권에 대하여

    요즈음 정가가 지역감정 문제로 다툼을 하여 IMF 극복을 위해 애쓰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주고 있다. 8·15 이후 지금까지 이승만 정권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 역대 정권이 지역감정과 남침위협 주장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연장해왔다는 것은 국민 거의가아는 사실이다.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동서 지역감정의 볼모가 되어 정권이 바뀌고 연장될 때마다,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상모리배와 군정 패거리들에이용당해 왔다. 누구도 이 땅의 사람들은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지역감정이라는 귀신에 들씌워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그 풍토가 새 정권이 들어선 후 사라졌는가 싶었는데 누가 선창만 하면 또 드라큘라처럼 살아나곤 한다.요즈음 또다시 이 나라 일부 국민이 이 유행병에 걸린 것 같다.그것으로살고 나라를 망친 지금 야당의 선창으로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망국병은 남침위협설(대북정책)이다.이 점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심화되었다.그것으로 민족을 분열시키고 권력을 누리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해 왔다.말하자면지역감정과 대북정책은 역대 정권을 유지시켜온 두 수레바퀴였다.걸핏하면 북한이 어쩌고 저쩌고 하여 민중들의 주의 주장을 묵살하고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다.민주화 요구가 있을 때마다,지배자들이 궁지에 몰릴때마다,백성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어김없이 그들은 이 전가의 보도를 사용해 왔다. 이와같이 이 땅 정상배들의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살아있는 한 완전 민주화도,조국통일도,전 국민의 안정과 번영과 행복도 힘들기만 한 일이다.왜냐하면 민주화와 인권·통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완전 민주화가 됐다는 말은 통일이 되었다는 얘기고 통일이 되었다는 얘기는 완전 민주화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선 민주 후 통일,선 통일 후 민주’의 논리는 그래서 힘을 잃은 지 오래다.분단상황에서 민주화나 통일은 하나다.하나가 되지 못할 때 이익을 보는나라와 사람들은 누구이겠는가.그런데도 강대국들의 본질처럼 이 두 가지 지배철학 ‘분열하라 지배할 것이다.상하 동서 좌우로…’를 정치인들이 계속사용한다면 우리 사회 전반적인 발전의 장애가 될 것이다.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청년학생 정치수배자들을 만났다.그들을 보면서 이 나라는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본질적 개혁은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왜곡되고뒤틀린 현상적인 개혁,그것도 말로만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펼치고 있다.그와같은 대북정책은 매우 잘한 일이고 참고 기다리며 계속되어 갈 때 성과가 있을 것이다.이 정책이 남한 내부에도 적용되어 우리사회 곳곳에 펼쳐졌으면 한다. 새로 들어선 정권마다 대물림하는 민주·통일·민생·인권 때문에 생긴 그늘진 곳,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햇볕이 좀 들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한번 약속했으면 또다시 잘못을 범할 때 잡아갈지언정 한번쯤 확풀어주고 확실히 규명(의문사)했으면 한다.다행히도 3·1절 대특사가 있다고 해서 기대해 보지만 또 기대로 끝나선 안될 것이다.김대중 정부도 역대 정권처럼 또 거짓말을 하고 양심수를 계속 양산해낼 것인가.얘기가 진행중인보안법 개정,양심수 석방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저와같은청년 학생들 때문에 이 땅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민간 민선정권이들어서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왜 수배해제에 인색하단 말인가.아직 준비가안됐다는 말인가.그래서 3·1절을 기다려 볼 것이다.한 순간이라도 양심수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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