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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창 회문산 안보 관광명소로 거듭 난다

    6·25 당시 빨치산 남부군의 본거지였던 전북 순창군 회문산이 국가안보를주제로 한 관광코스로 개발된다. 남원시에 소재한 서부지방산림관리청은 회문산 자연휴양림 안에 빨치산 남부군의 사령부 건물과 빨치산들이 지내던 움막,빨치산 정치학원 등 당시 상황을 알수 있는 각종 시설물을 복원,한국전쟁 발발 50돌이 되는 내년에 개장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주민들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분단의 아픔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산림청은 정확한 고증을 위해 관련자료를 다양하게 수집한 뒤 남부군에 대한 자료를 이곳에 전시할 계획이다. 순창군도 지난해부터 복흥면 추령제에서 열고 있는 비목제를 내년부터 회문산으로 옮겨 개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군은 내년 9월까지 회문산 안에 비목공원(가칭)을 조성한다.공원 안에는 6·25 당시 희생된 영령들을 기리는 위령탑과 나무로 만든 100개의비목 조형물,추모시가 새겨진 비석 등도 세워진다.행사 기간에 비목 깎기 경연대회와 비목 추모 공연,전쟁 사진전 등도 마련된다. 林得春 순창군수는 “회문산을 주민들의 호국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안보관광 코스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회문산은 영화화된 소설 ‘남부군’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 [외언 내언] 금강산 사찰 복원

    금강산관광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현대가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금강산 외금강 지역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돼 터만 남아 있는 신계사(神溪寺)를 비롯해서 내금강의 장안사(長安寺),유점사(楡岾寺),정양사(正陽寺)등 4개 사찰에 대한 복원사업이 그것이다.오는 31일에는 남북한 불교대표들이 4년 만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회담을 갖고 현대가 추진중인 신계사 등 금강산 사찰복원문제를 논의한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인 조계종고산 총무원장과 북한조선불교도연맹 박태호위원장 등이 만나 금강산 사찰복원문제를 비롯,부처님 오신 날 남북한 공동법회 개최 등 양측 불교계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남북한 불교계가 현대에서 추진중인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을 적극 지원키로 한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로 평가된다.금강산지역사찰문화재에 대한 복원사업을 실시키로 한 것은 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이어진 불교문화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금강산은 본래 불교 화엄경사상에서 나온 이름이며 가장 높은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에서 연유되었듯 불국정토의 상징이며 108개의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심산유곡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가히 불교의 성지(聖地)라고 할 만하다. 고려 이후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명산으로 시인 묵객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관동별곡(關東別曲) 같은 가사로,노래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다.금강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번 다녀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신의 조화라는 극찬을 받아왔다.“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蘇東坡의 금강산 회자도 그래서 나왔다.이같은 금강산의 문화유적들이 대부분 전쟁 중 불에 타 없어진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금강산 주변의 사찰을 복원하면 이는 앞으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또 해방 전 남북이 하나였던 시절의 금강산 사찰 원형을 재현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씻어낸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금강산 사찰복원사업 같은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확대는 민족의 동질성과 신뢰회복을 증대시키는 데도크게 기여할 것이다.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기여는 물론 민족통일의 주춧돌이 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이 하루속히 실현돼야 하며 이를 통해 남북 화해시대를 여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장청수 논설위원
  • [프리뷰] 극단 차이무 ‘통일 익스프레스’

    정부의 북한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이 조심스런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반통일 세력’을 다룬 연극 한편이 찾아와 눈길을 끈다.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의 뜻)가 18일부터 정보소극장 무대에 올리는‘통일 익스프레스’(오태영 작·이상우 연출)는 통일을 무겁게 바라보지 않고 가볍게 접근한다.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가상의 집단을 다루면서 음성적으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분단 고착’세력을 양지로 끌어내 웃음거리로 만든다. 무대 연습 첫날인 지난 11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이제 막 얼굴을 드러낸 세트에서 연출을 맡은 이상우씨는 “리듬을 끊지 말고 대사가 없는 간격을 놓치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고 주문하는 등 세부 연기를 다듬으며 배우들과뒹굴고 있다. 동작의 틈을 없애라는 요구는 이 작품의 성격이 슬랩스틱 코미디(치고 받는 희극)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시선을 끌면서 계속 웃음을 주려면 대사 틈새를 동작으로 메우고 동작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 무대는 분단을 가정한 ‘이상한 나라’의 분계선에 자리잡은 ‘조통면옥’가게.간판은 위장이고 냉면도 팔지않는다.사장 우보(민경진)와 안내책 갑산(박원상)은 돈벌이나 특수 임무로 분계선을 넘나드는 사람을 중개해 주며 ‘검은 돈’을 긁어 모은다.보통은 편도 ‘특’은 왕복 손님이다.이들의 상술을 통일사업으로 찰떡같이 믿는 점원 옥화(전혜진)는 때론 수비대에 몸을 제공하여 비밀통로를 확보해 준다. 그러다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돈벌이를 위협받은 우보와 갑산,그리고 이 가게를 이용하던 관료(민복기)와 재벌2세(최덕문)가 모여 ‘통일 반대’음모를 꾸민다. 쉴새 없는 대사와 넉살좋은 연기가 돋보인 민경진과 개그우먼 뺨치는 몸짓·북한 억양으로 무대를 통통 튀어 다니는 전혜진의 대조적 분위기는 극을생생하게 이끌었다.박원상과 최덕문은 ‘비언소’‘강거루 群’등 극단 차이무의 다섯 작품에서 익혀온 팀워크로 웃음의 ‘조미료’역을 톡톡히 해냈다. 이상우씨는 오태영의 대본을 본 순간 “이건 내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함남 흥남 태생이자 북녘에 삼촌과 외삼촌이 있는 이산 가족인그는 이 작품에 거는 남다른 기대를 전한다. “통일을 두려운 것으로 세뇌시키는데 앞장 서온 세력을 상정하고 ‘쥐새끼’같은 이들을 소재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자 한다.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통일이 멀고 낯설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세태에 대한 점잖은 풍자와 코미디로 관객을 사로잡아 온 ‘연극 지킴이’의 ‘웃음 폭탄’은 4월25일까지 이어진다.(02)762-0010
  • [대한광장]우리나라는 半島가 아니다

    헌법까지도 왜색에 물들어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지만,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가 바로 그것이니,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나라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으로 되어 있다.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다.나라의 근본이 되는 법규인 헌법 전문에까지 명토박아 나와 있으니,여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이른바 ‘국가관’이라는 것을 의심받게 될지도 모른다. 진실로 그러한가? 아니다.그렇지 않다.그것은 다만 우리의 주권이 배제된채로 청국과 일본 간에 맺어진 불법적 협정일 뿐이다.일본 제국주의자들이자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경계선일 뿐인 것이다.우리의 강토였던 지금의 중국 동북 삼성 일대를 청국에 떼어주는 대가로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따낸 일제였다. 우리나라의 국경선은 압록강∼토문강∼송화강∼흑룡강이다.숙종 38년 조청(朝淸) 양국의 대표가 합의하여 백두산(白頭山)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운 것이 1712년 5월 15일이었다.두 나라의 국경선을 서쪽으로는 압록강으로 하고동쪽으로는 토문강(土門江)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니,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흐르는 송화강(松花江)의 작은 지류가 토문강이다.두만강(豆滿江)이니 석을수(石乙水)니 하는 따위의 이름은 거론조차 된 바 없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행악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처럼 국경선을 멋대로 잘라버린 일보다 더 큰 죄업은 없을 것이다.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거지반의 사람들이 우리의 국경선이 처음부터 압록강∼두만강인 것으로만 알고 있을 뿐 송화강∼흑룡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으니,헌법 전문에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나와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토개념이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여 주는 한 장의 지도가 있다.1942년 파리에서 발행된 ‘조선의 천주교’라는 책에 실린 지도로서,로마 가톨릭이 조선 선교교구를 표시한 것이다.조선의 교구가 세 개로 나뉘어 있는데,대구교구와 경성교구 그리고 원산교구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원산교구로,함경남북도와 간도성과 길림성과 흑룡강성 일부가 관할로 되어 있다.토문강∼송화강∼흑룡강을 조선의 국경선으로 잡고 있으니,과연 백두산 정계비대로인 것이다.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다.우리가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한반도’라는말 자체가 왜색용어인 것이다.해마다 8·15 해방일이면 울려퍼지는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 또한 일제가 남겨놓고 간 ‘반도사관’이니,나라 전체가 왜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반도 안에서 살고 있다.그나마 반으로 동강나버린 채 분단의 질곡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지만,중요한 것은 자아(自我)의 확인일 것이다.반도인이 아니라 대륙인이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야말로민족사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크게 요동치고 있다.일제가 박아두고 간 뿌리깊은 철주(鐵柱)인 ‘반도사관’에 주박(呪縛)되어 있는 한 민족의 앞날은 없다.갈수록 이땅의 사람들이 여유가 없고 심성이 강퍅해져 가는 것 또한 이‘반도사관’의 왜독(倭毒)과 무관하지 않다.민족의 기상이 활달하냐 협량하냐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의 넓이와 비례한다. 우리는 반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말자. 김성동 작가
  • [기고]”한반도문제 주체는 南北 美 일방적 조치 없어야”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엄 페리가 다녀갔다.관련 사항 몇가지를 살펴본다. 먼저 대북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는 동기가 된,북의 ‘인공위성’발사를 보자.북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결과적으로 무엇을 얻었을까.결산하기는아직 이르다. 그러나 그 ‘모험’으로 인해 있었을 ‘강성대국’의 자존심 고조는 차치하고,후속된 관련국과의 교섭과정은 북이 얻고 있는 것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즉,발사 50일후인 10월에 시작하여 오늘까지 4자회담 2회,북-미협상 4회로 한반도평화체제구축분과위·긴장완화분과위 구성 합의,금창리시설 2회 방문허용(미측은 정규적 사찰 등 요구)에 대한 식량 50만t+α지원이 합의단계에 있다. 또 94년 제네바합의 이후 계속 촉구하던 경제제재 완화, 관계개선 및 수교가 가닥을 잡고 있다. 북의 핵,미사일 개발 수출 등에 대한 미국이나 일본의 시각과 대응 조치가한국과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그럴 필요도 없다.또 상호 강경 온건을 역할분담,보완할 수도 있다.북한에 대한 군사폭격은 그동안의 북의 행동전형으로보아 바로 서울 보복폭격,테러,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방과의 긴밀한협조가 있어야 하나 한반도 문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한반도에 있어 냉전구도의 해체를 주창하였고,애초의 분단에 관련된 강대국의 협력을 호소했다.포용정책의 당위성과 그 효율을 설득하고 제네바합의의 포괄적 접근 이행을 제시했다.페리 방문결과 보도문에서 ‘접근 방법은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기초로 한다’하고,‘그 과정에서긴밀하게 공조한다’고 했다. 한국측이 제시한 포괄적 협상안을 북이 거부할 경우의 대응방안에 있어,한반도의 긴장고조,특히 미국의 대북 군사제재 행동을 분명히 반대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다른 일방적 조치를 취하는 일이 없도록 확인해야 한다. 포용정책이 실패할 경우의 대응방안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책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그 대비책이 있어도 꼭 공개할 필요는 없다.필요시 그 조치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하여 비밀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화해정책을추진하면서 상대를 자극,불신을 초래해야하는가.결혼하면서 ‘당신이 부정을 하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것과 같다. ‘인공위성’발사에 과잉 반응한 일본이지만,고위인사가 평양을 방문,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하고 외상이 대북 대화채널의 확대 필요를 말한 것은 국면의 전환을 보여준다. 일본의 과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54년이 지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있음은 옳은 일이 아니다.민족정기 면에서 한국은 이를 촉구해야 하며,이는상호의 신뢰구축에 이바지한다. 국가와 체제의 안전을 의도하며, 당면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은 미­일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이 목표 추구에 있어 한국의 지원과 포괄적 타결안이 소중하다. 비료·농사기술·전력 지원, 경제협력과 하반기당국자회담 등 활발한 교류가 예상된다. 일부 강경론을 페리조정관의 2단계 정책안에 수용하되 한국이 주창하고 있는 포용정책을 기초로, 남북이 공조의 슬기를 발휘함으로써 한반도는 새로운모습으로 새 천년을 맞이할 것을 기대한다. 손장래 현대정공 상임고문 前말레이시아 대사
  • 통일문학작품집 ‘그날이 오늘이라면’ 잔잔한 파문

    “…꽃 같은 이 강산 너무 슬펐다/쇠울짱 첩첩으로 가로막혀/그 무엇 때문에/그렇게도 미움과 반역의 세월이었던가…그리하여 아직 우리에게는/하나의 감격이 남아 있다/함부로 써버릴 수 없는 그것/그 감격의 날이 남아 있다” 고은 시인이 지난 91년 ‘남북합의서’ 채택에 부쳐 쓴 ‘그날이 오늘이라면’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이 시를 읽으면 1930년대 심훈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을 갈구하며 쓴 시 ‘그날이 오면’이 떠오른다.그 해방이 ‘도둑처럼’ 왔듯,민족의 통일 또한 하얀 눈이 내리듯 그렇게 올지 모를 일이다. 한반도는 더이상 냉전의 섬에 머무를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분단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최근 서점가에 선보인 ‘그날이 오늘이라면’(도서출판 청동거울,김재홍·홍용희 엮음)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통일문학 작품집이다. 분단문학이 전쟁의 비극성과 분단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중심 항목으로 삼는다면,통일문학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 역사가 낳은 이질성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이 작품집에 실린 시와 소설은 통일시대를 향한 문학적 도정을 정직하게 보여준다.수록작품은 남북의 작품 각각 11편·9편씩 모두 20편.소설집 ‘침묵의 성’을 낸 이원규의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북한 작가 림종상의 ‘쇠찌르레기’등 혈육의 정을다룬 8편의 단편과 박덕규의 ‘노루사냥’등 탈북자 소설 2편이 실렸다.또고은의 ‘그날이 오늘이라면’,북한 시인 전병구의 ‘떨어지는 감알’ 등 10편의 시는 분단극복과 통일의 염원을 절절히 노래한 작품이다. 이 가운데 림종상의 ‘쇠찌르레기’는 월남한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가 북녘의 가족에게 새를 통해 교신을 보낸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액자소설의 형식을 띤 이 작품에서 쇠찌르레기는 이산의 아픔을 겪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해후의 다리를 놓아 주는 소품 구실을 한다.극적인 가족사가매개돼 문학적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북한문학의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주제의식을설명적으로 제시하고,주인공을 지나치게 전범화(典範化)하며,결말처리가 정형화돼 있다. 한편 북한의 통일 시편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체험적인 서사성이 가미돼 있으며,구체적인 형상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잡초 무성한 관산나루언덕/분계선이 가로 건너간 곳에/후두둑 후두둑/떨어지는 감알//…안타까워라 감나무야/분렬의 고통을 너도 당하니/언제면 주인을 다시 불러오랴/네 푸른 아지(兒枝)를 타고/즐거이 감을 딸 그날이 오랴”(‘떨어지는 감알’중)감나무에 얽힌 곡진한 추억을 통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비극상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분단문학의 흐름은 90년대 들어서면서 통일문학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분단 극복의 문학 나아가 통일문학은 이 시대 민족문학의 핵심 과제다.통일문학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질적인 남북한 문학의 원형질을찾아내는 길트기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작가들로서는 이산과 상봉 등의 문제 뿐 아니라 북한의 실상과 통일정책까지도 문학적으로 아우르려는 보다 창의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 [대한광장]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난 연말을 전후해 ‘한반도 위기설’이 분분하더니,현재 뉴욕에서는 금창리 문제로 북·미간 회담이 진행되고 있고,서울에서는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한·미의 대북정책을 이른바 ‘포용정책’으로 조율했다.일본에서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설’과 더불어 ‘국교수립’이 검토되고 있다.전쟁과 평화,봉쇄와 수교 양 극단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아니면 이러한 상극이 진실의 두 측면인가. 지난해 11월17일 전쟁시나리오(Op Plan 5027)가 언론에 공개되고 난 뒤 12월 초 북·미간 대립은 극히 첨예하게 전개됐다. 12월2일 북한 중앙방송은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이름으로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을 맹비난하는 성명서를 하루 동안 10회나 방송했다.다음날 북한 인민무력부 정창렬 부상은 “만약 미국이 끝끝내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미국 본토를 통째로 날려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가 표명한 ‘미국 본토공격 주장’이다.이것은 단순한 과장인가,아니면 김정일 주도아래 북한이오랫동안 준비한 군사노선의 귀결인가. 먼저 북한측의 주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1996년에 이미 대륙간 탄도미사일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예컨대 그해 12월 노동신문은 “조선에는 군사적인 기적이 일어났다”고 흥분했으며,다음해 1월1일 사설에서도“적이 지구상 어디에 있더라도 타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다. 한편 미국에선 1997년 7월 전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가 이끄는 탄도미사일위협평가위원회가 “북한이 조만간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미중앙정보국(CIA)은 그것을 ‘십수년 후에나 가능한 일’로 간단히 부인했다.그런데 한 달도 되지 않아 북한이 인공위성을발사하자 CIA의 대북 관련자들은 엉망이 돼버렸다. 이후 북한의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에 대한 CIA의 태도는 전환되기 시작했다.지난해 12월 조지 테닛 CIA 국장이 한국을 방문했고 CIA 요원들을 대북전문가들로 대폭 교체·강화했다.그리고 올 2월3일 미국 상·하원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테닛 국장은 북한이 러시아·중국에 이어 3대 미사일 수출국이며 “북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또한 패트릭 휴즈 미국방정보국(DIA) 국장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믿기 어려울 만큼 폭력적이며 파괴적일 것”이라고 증언했다. 저간의 이러한 군사적 대립이 한편으론 전쟁위기설,다른 한편으론 북·미,북·일 수교 논의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축이 되고 있다. 즉 ‘전쟁위기설’은 한반도의 대립관계를 해소하는 데 기존 방식으로는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고민의 표현이며,‘국교수립’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모색의 표현인 것이다.‘전쟁위기’와 ‘평화 수교’의 동시적 출현은 기존 방식의 끝과 새로운 방식의 처음이 겹치는,과도기 특유의 화전 양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페리의 방문으로 한·미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포용정책’을 기조로하면서 우리 정부의 ‘일괄타결’을 단계적으로 흡수하는 ‘포괄적 접근’으로 조정된 듯하다.레드라인(한계선) 이후 단계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서는 아직 조정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한반도의 주변 정세는 일단 새로운 차원의 평화적 해결 방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북·미,북·일 수교는 우리와 옛소련,또는 중국의 수교와는 비견할수 없는,분단 반세기 한반도 정치 지형의 대변동을 예고할 것이다.그것은 동북아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국내의 광범위한 정치사회적인 변동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이다.코 앞에 다가온 본격적인 변동에 비하면 ‘금강산 관광’은 차라리 군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의 선택은 다가올 세기적변동에 이니셔티브를 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남북정상회담은 그런 변화의 한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한국사
  • [특별기고]금강호 선상토론에 다녀와서

    200여명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원들이 지난달 20일부터 3박4일로 금강산을 다녀왔는데,그 첫날밤에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선상토론회가 열렸다.이미 알려진 것과 같이 ‘민화협’은 지난해 9월 이른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을 막론한 민간단체들이 모여 조직한 민간통일운동단체이다. 우리 민간운동단체를 진보적 단체니 보수적 단체니 하고 서슴없이 구분하고 명명할 수 있게 된 일에도 격세지감이 있지만,어쨌든 그 때문에 선상토론장에도 이른바 진보적 인사와 보수적 인사가 자리를 함께하여 옛날에는 감히토론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예사롭게 하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고령의 토론 참가자가 북쪽 김일성주석이 사망했을 때 있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회담을 약속했던 상대방 정상이 사망하여 성사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유감스럽다’ 정도의 의사표시를 남쪽정부가 해야 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가 날마다 걸려온 항의전화 때문에 온가족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토론 참석자는 일반적으로 진보적 인사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데,정작 당사자는 언젠가 필자를 보고 “내가 진보적 인사인가요”하며 자문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또 다른 고령의 토론 참가자는 김주석이 사망했을 때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글을 썼는데 얼마나 많은 항의 협박전화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했다.이토론 참석자는 6 25전쟁 때의 반공 전사의 한 사람이었다고 알려졌는데,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적 인사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험난했던 근·현대사에 비추어 김주석의 죽음에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반대로 유감 표시는 천부당만부당할 뿐 아니라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이들 두 유형의 사람들이 금강산 가는 배를 같이 타고 한자리에 앉아서 얼굴 붉히거나 삿대질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변화,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무어라 해도 시대는 변하고 만다는 사실을실감한 일이라 할 것이다.분단 이후 오랫동안,특히 군사독재시대를 통해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민주정권이 정착하면 할수록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일반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은 무력통일론이나 흡수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반해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흡수 평화통일론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으며,세상은 어쩔 수 없이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의 시대로부터 비흡수 평화통일 지향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다시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려놓지 않는 한 우리 역사는 이제 무력통일·흡수통일 지향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설령 군사쿠데타 같은 것으로또다시 되돌려놓는다 해도 그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며 역사는 결코 영영 되돌아가지는 않는다.이제 무력통일론이 하나의 유물이 된 것처럼 백번 죽어마땅하다는 생각도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선상토론의 한쪽 자리에 참가했던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금강산행은 관광여행이 아니라 거대한 비흡수 평화통일 민간운동이다. 7·4공동성명이나 남북합의서 체결 과정에서는 몇사람의 정부쪽 통일교섭 요원이 북쪽을 다녀왔을 뿐이었다.그러나 금강호나 봉래호를 타고 금강산에 가서 북쪽땅을 밟고 그 안내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하루 1,000명이 넘는 평범한 남쪽 시민들이야말로 비흡수 평화통일 운동원들이다. 강만길 前고려대 교수·한국사학
  • [외언내언]남북노동자 축구대회

    올 광복절을 전후해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한 노동자가 선수로 뛰는 축구대회를 볼 것도 같다.민주노총이 통일부 승인 아래 3·4일 베이징(北京)에서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 대표단과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성사를 위한 실무회담’을 열어 연내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축구교류에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또한 양측은 경기날짜와 선수선발,개최장소 등 구체적 사안을 협의하기 위해 조선직업총동맹이 민주노총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4월중 평양에서 실무회의를 열기로 했다.정부도 민주노총이 초청장 등 구비서류를 갖추면 허가해줄 방침이며 북한노동자 축구선수단의 서울방문은 원칙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성사될 경우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노동자들이 선수로 참가한다는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이같은 축구경기는 분단 이후 누적된 이질감을 극복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몇 차례 결실을 거두었던 남북 체육교류가단절된 남북관계를 해빙시키는 역할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특히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간차원의 경협을 남북 당국간 대화로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체육교류로 이어지는 신뢰는 민족의 일체감을 조성할 수 있어 남북 당국간 회담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민족의 유서깊은 경평(京平)축구대회를 복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체육사업으로 인식된다.그리고 2002년 월드컵 남북한 분산개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鄭夢準대한축구협회장이 오는 19일 북한을 방문하고 월드컵경기중 두경기를 평양에서 치를 것을 북한측에 제의할 것으로 보여 월드컵 남북한 분산개최 가능성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월드컵 남북 분산개최가 실현될 경우 이는 바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보장이라는 역사성을 갖는다. 이밖에 노동자축구대회를 통해 남북한 노동자들의 화합과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그런 맥락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민주노총만의 참가보다는 한국노총까지 참가하는 노동자 대화합의 축전으로 마련돼야 한다.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남북노동자축구대회는 성사돼야 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 [김삼웅칼럼]화해와 용서의 미학

    어느날 자공(子貢)이 “종평생(終平生)할 수 있는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있습니까?”묻자 공자는‘기여호(其如乎)하라’고 가르쳤다. “용서하라”는 말이다.기독교의 정신도 ‘사랑과 용서’다. 불교를 비롯해모든 종교의 정신이 표현의 차이일 뿐 ‘사랑과 용서’를 본질로 한다. 3월1일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유족 220여명이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인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해 ‘화해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이 부대는 광주항쟁때 도청 최종진압을 맡았던 부대다.그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이 학살됐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같은 날 전남·경북대생 220명이 상대편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입교했다.이번 교류 학생들은 1년간 동일한 학칙을 적용받게 되고 기숙사 무료제공과 등록금 전액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두 대학 학생들은 “영호남 화합디딤돌 될래요”라고 합창했다. 얼만전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화합과 친선의 자매결연을 하고 언론사에 TK·PK·MK 등 지역갈등을 조장하는용어를 삼갈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5일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한 대구와 충북·강원지역 노인복지대학 노인들이 金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도록 성금모금의 뜻을 밝혔다.노인들은 “하의도를 방문했으나 金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아 볼거리가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을 때 생가라도 보고 갈 수 있도록 복원을 위한 작은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일 양국 장군들의 후손 20여명이 서울에서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이 행사에는 우리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5대 후손과 서애(西涯) 유성룡의 14대 후손,일본측에서는 왜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어(宇喜多秀家)의 15대 후손과 경남 사천성 전투의 왜장 시마쓰 요시히로(島津修久)의 14대손 등이 참석한다.일본은 지난해 10월8일 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포용론과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판문점으로 ‘소떼’가 올라갔다.17명의 장기수도석방됐다.玄勝鍾전국무총리가 “나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부끄러운 과거를고백하면서 용서를 빌었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제창했다. 화해와 공존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겪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과정에서 숱한 죽임과 억압,대결과 갈등을 빚었다.이념싸움과 노선투쟁·지역대결과 내부갈등이 그치지 않았다.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찢기고 갈라지면서 원(怨)과 한(恨)을 남겼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독재청산,의문사와 각종 의혹사건 등 청산하고 밝히고 정리해야 할 ‘역사의 빚’이산적해 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원수는 잊기 어렵지만은혜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겠다.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기에 최제우 선생은 일찍이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제창했던 것이다.20세기 원한의 매듭을 모두 풀고 새 천년을 맞았으면 한다.더구나 지금은민족의 대시련기다.민족적 시련과 대결을 화해와 용서로 풀고 남북과 동서가 공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햇볕정책을 통해 북을 포용하고 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동서가 화합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새 세기,새 천년의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나갔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기득권자들이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용서받을 일은 용서받아야 한다.또한 정치인들이 적대의식과 지역감정에서 해방돼 화해와 용서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국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네루)라고 하지 않던가.전직 위정자들을 포함,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인사들은 이 기회에 참회하면서 국난극복에 동참했으면한다. 물론 인간적 동정이나 용서와 역사적·사회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또 원칙없는 온정주의로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렇지만 화해와 용서는 인간의 환치할 수 없는 불변의 가치이고 삶의 미학이 아닐까. 주필 kimsu@
  • 가톨릭대 박건영교수‘한반도의 국제정치’

    한반도 문제는 국제화되어 있다.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관계 국가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상호적인 게임’이 되어야 한다.어느 한 쪽이라도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문제를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의 ‘한반도의 국제정치’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오름 1만2,000원).박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로 있다. 그는 안보와 외교를 중심으로 냉전과 탈냉전 시대의 국제정세와 미국·중국의 한반도 정책 및 남북관계 등을 풍부한 지식과 탁월한 분석력으로 설명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방안을 제시한다. 박 교수는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우리는 늘 국제정세에 어두웠다.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두려워했다. 국제정치의 움직임이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늦었음을탄식했다”. 그는 미국의 북한정책은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국가전략인 ‘참여와 확산의 국가안보전략’ 속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참여전략’은 냉전 후에도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역안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안보정책이다.‘확산전략’은 전통적인 비동맹국가와옛 적성국가들을 국제사회에 순치시켜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유도하는 정책이다.미국은 북한도 자신의 주도하에 국제질서에순응하는 안정된 국가로 전환시키려 한다. 미국의 북한정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중국 등 지역 강대국에 대한 예방적 견제정책과 연계된다.“미국은 북한을 자신이 주도하는 동북아 국제질서로 편입시켜 지역 패권 의도와 능력을 키워가는 중국을 ‘필요시’ 견제할수 있기 바랄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분단비용 감축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남북의 경제적 위기는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증진시킨다고 말한다.“남한경제의 여력이 없어 국내경제 살리기에 몰두해야 한다는사람도 있으나어려울 때 일수록 남북경제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남한기업은 급락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북한은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여 모두에게 이익이다”. 경제교류는 군사적 긴장의 완화와 군사비의 평화적 전용을 가능케 하여 경제회복에 긍정적인 환류(feedback) 효과를 가져오고 정치적 신뢰구축도 촉진하여 평화공존및 민족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운명을 주어진 구조적 조건이 결정하던 시대는 가고,국가의창의성과 유연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대와 기회가 오고 있다”고말한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발상의 대전환으로 대북정책과 국가전략을세워야 한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 흐름과의 조화 속에 정책을효과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李昌淳 cslee@
  • 임진각 자유의 다리 관광코스로 개발

    국토분단의 상징이자 판문점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독개다리와 자유의 다리가 체험관광코스로 개발돼 내년초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경기도 파주시는 7일 연간 1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임진각을 세계적인 안보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임진각에서 자유의 다리와 독개다리를 통해 임진강 건너편까지 왕복할 수 있는 도보코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파주l朴聖洙songsu@
  • [사설]의혹사건 진상 규명해야

    국민회의는 48년 8월15일 정부수립 이후 현정부 출범 이전(98년 2월24일)까지의 모든 의문사와 정치적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앞으로 설치되는 국민인권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한다.인권위가 조사하는일반 인권침해의 경우(진정 원인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진정해야 한다)와 별도로,정치적 동기로 공권력에 의해 국민의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가심대하게 침해당한 사건은 진정이 있으면 소급해서 조사할 수 있도록 인권위설치법 부칙에 명기하겠다는 것이다.남북이 분단된 가운데 정부가 수립된 이후 권위주의적인 제1공화국과 군사정권의 3·4·5·6공을 거치는 동안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곧잘 용공으로 몰려 탄압을 받았으며,역대 군사정권이추진한 개발독재는 노동운동분야에서도 많은 희생자를 냈다.그런 희생들이쌓이고 쌓인 끝에 우리는 건국 50년만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 갖게 됐다. 집권당인 국민회의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다 돼서야 그동안의 의문사와 정치적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에 눈길을 돌린 것은오히려 때늦은 느낌이다. 뒤늦게나마 49년 백범 金九선생 시해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하고 ‘사법살인’의 혐의가 짙은 59년 진보당 사건의 죽산 曺奉岩씨 사건과 61년 민족일보 조용수씨 사건의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또한 73년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법대 崔鍾吉교수 사건과 75년 張俊河씨 의문사도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88년 전남대 이철규씨와 89년 조선대 이내창씨 의문사의 진상과 80년 全斗煥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정에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해서 강행한 ‘녹화사업’희생자 6명의 의문사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당시 군당국은 이들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한 바 있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약칭범추위)는 무려 42건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가 오늘날 이정도나마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희생된 많은 민족·민주열사들의 덕이다.우리는 의문사와 정치적의혹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과예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촉구한다.진상규명만으로는 열사들의 넋을 달랠 수 없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예우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 [대한광장]對北 포용정책의 인도주의

    최근 미전향장기수의 북송문제가 국내외의 지대한 주목을 받고 있다.정부는 준법서약을 하지 않고 있는 미전향장기수를 본인이 원하고 북한이 국군포로,납북자 등의 송환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전향적 대응조치를 취할 경우 이들을 북한에 보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도 적십자회 명의로 석방되었던 미전향 장기수 17명과 이미 석방된 장기수 3명의 북한송환을 대한적십자사에 요구하였다. 한반도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냉전체제 형성,한국전쟁에 따른 민족상잔의 뼈아픈 경험 등으로 인해 민족분단의 장벽은 높아만 갔다. 여기에다 대북 포위봉쇄정책을 고수해왔던 남한의 대북정책과 대남혁명과대남 분리 차단정책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대남정책은 체제갈등을 부추겨 민족분단의 희생자를 양산해냈다.해방후 혼란기와 한국전쟁기간중 발생한 남·북한의 수많은 이산가족,남쪽의 미전향장기수,북쪽의 국군포로 및 납북자 등이 바로 인간적인 삶을 희생당한 민족분단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한반도 평화·화해·협력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인도주의적 정신에 따라 반인간적인 분단의 벽을 낮추고 분단고통을 가능한 한 감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책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인권 훼손은 방지할 수있으며,더 나아가 화해·협력 기조가 형성될 경우 남북한간 인적·물적교류가 활성화되어 사실상의 통일인 민족통일의 장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단고통의 감소라는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우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체제 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지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적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98년 6월24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등 전후처리 이행문제 및 북한의 국제법 위반에대한 국제여론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우리 정부가 미전향 장기수와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제안하고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우리 정부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추진한다면 내용적으로는 연계송환을 추진하되,형식적으로는 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통해 연계송환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납북자 및 국군포로 남한송환을 체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응해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 북한이 커다란 호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우리 정부는 미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인도함과 동시에,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에 식량 지원 및 농업지원 등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을것이다. 민족분단이 초래한 희생자들의 고통감소를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미전향 장기수 송환문제,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문제 등은 물론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을 덜어주기 위한 식량·비료지원,농업부문 지원 등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조속히 제안해야 한다. 남북간의 인도주의적 사안을 다루기 위한 회담이열릴 경우 상호주의원칙은 신축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인도주의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된다면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평화통일의 초석을 놓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황병덕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李會昌총재 일문일답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2일 기자회견에서 대북정책 등 정부정책의 비판과더불어 총재회담을 통한 정치복원의 기대를 피력했다.다음은 일문일답. ▒徐相穆의원에 대한 입장은표결처리 입장은 불변이다.徐의원은 이미 조사를 다 받았다.회기가 끝난 뒤재조사하는 것에 납득할 수 없다.徐의원을 구속해 야당의 대선자금을 파헤치려는 정략적 의도이다. ▒당내 비주류와의 관계와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입장은정당에는 다 주류,비주류가 있다.우리당은 각 정당이 모여 구성됐기 때문에좀 특수하다.야당상황에서 민주경선을 통해 선출된 총재의 힘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말은 원래부터 있었다.이에 대한 언급은 앞으로 검토해보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장외집회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결코 아니다.야당파괴를 고발하고 실업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지역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풀 사람은 대통령이다.정권교체후 오히려 지역감정이 심화된 감이 있다. ▒여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정당명부제에 대한 생각과 그 대안은정치개혁은 구태정치를 벗어나 정치틀을 짜는 것이고 서둘러서는 안된다.정당명부제의 취지는 좋지만 지역감정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고 과거 유정회와같이 비쳐질 수도 있다.곧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고비용정치구조 대처방안은우리당은 스스로 규모와 비용을 줄여 정치자금을 줄이려 하고 있다.여야 모두 정경유착을 끊어야 과거와 같은 수난이 없어진다.법으로 진실을 밝혀야할 때는 밝혀야 하지만 국민들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정부의 대북관계에 대한 입장은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을 비롯한 우방의 위기설 제기를 가져왔다.문제는 대북인식이다.대북문제는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현 정부의 정책이 분단고착화하는 방향일지 모른다. ▒내각제에 대한 생각은내각제분란은 국민을 불안케 한다.내각제에 대해 金대통령이 명확히 밝혀야한다.입장은 향후 추이를 보면서 정할 것이다. ▒徐淸源의원 등 비주류 인사를 부총재로 선임할 계획은부총재를 보충영입하는 것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
  • [대한포럼] 분단책임국의 結者解之 노력

    金大中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분단상태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대립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한반도분단에 상당한 관련이 있는 강대국들이 책임을 통감해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金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천명은 한반도 분단에 직·간접 책임이있는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보장과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원칙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특히 정부수립 이후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분단 책임론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金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론을 공식제기하고 능동적인 협조를 촉구한 것은 시대적 상황에 비춰볼 때 상당한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평가된다.첫째,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분단 때문에 겪고 있는 유형·무형의 고통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성취하는 과제는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결자해지 원칙에서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2차대전 종전처리 과정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분단국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우리민족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본질도 모른 채 분단을 맞게 됐고 동족상잔에 이어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족적 고통이 계속되고있다.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이같은 비극적 분단의 실체는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추구했던 강대국들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으므로 강대국에 대한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협조적 노력을 제안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金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대목으로 평가된다. 둘째,앞으로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金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햇볕정책은 아직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본틀을 확실히 마련하지는 못한 상태다.그러나 분단 반세기 만에 금강산관광시대를 개막시켰고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증대시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 사실은 매우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국민의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관계개선을추구하는 정책방향을 큰 틀로 잡고 있다.국민정부의 2기 대북정책 방향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포괄적인 틀에서 운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金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한 대증요법식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이라는 햇볕정책의 큰 틀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이같은 대북정책 방향은 金대통령이구상하고 있는 ‘일괄타결’에 접근하는 전향적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해법은 모든 대북현안과 북·미수교,북·일수교 등 북한의 관심사를 함께 푸는 일괄적 타결방안에도 효과적으로 접근할수 있다.따라서 金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미·일에 대한 협력을 공식제의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또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미국에 포용정책 동참을 설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북·미관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회의 보수주의 인식과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인식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이같은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의 의회·행정부간 상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미·일의 적극적 협조가 수반되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라는 민족적 과제는 우리 정부 힘으로 충분히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張淸洙 논설고문]
  • 金대통령 3·1절 기념사 요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7,000만 동포 여러분.우리 민족은 국난에 처할수록 더욱 굳센 애국심을 보여 왔습니다.이 나라에 환란이 닥치자 우리 국민은 일제히 일어섰습니다.20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금을 모았고,일터마다 경제를 살리자는 운동을 힘차게 벌여나갔습니다.우리의 국민적 저력으로 1년 만에 외환위기를 이겨냈습니다. 환란 당시 38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지금 520억달러라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다시 부활시켰습니다.올해는 금융·기업·공공부문과 노동부문 등 4대개혁을 반드시 완성해야 합니다.오직 그 길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국민 여러분의 걱정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노력으로 현재18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금년말까지 150만명으로 감소시키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더욱 안정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일본 등과 긴밀히 협의,세계에서유일하게 남아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합니다.현 단계에선 최소한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민족을 보호해야 합니다.아울러 한반도 분단에 책임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한 이후 남북관계에서는 부정적인 면과긍정적인 면이 모두 나타나고 있습니다.우리는 북한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경고와 함께 단호한 자세를,부정적인 태도에 대해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부조리,부정부패,지역주의,이기주의 등을 청산하고,21세기 세계화시대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 우리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제2의 건국’운동이 힘차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金대통령 3·1절 기념식 치사

    金大中대통령은 1일“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식에서“우리는 이제 미·일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고,협력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3부 요인,시민대표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남산 장충공원에서 열린‘3·1독립운동 기념탑’제막식에 참석,“무엇보다 의식개혁과 국정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과거의 적폐와 악습을 말끔히 청산해야 된다”며 강력한 과거 적폐척결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3·1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탑골공원에서,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같은 장소에서‘범종교 3·1절 기념식’을,‘민중의 기본권보장과 양심수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역광장에서‘3·1절 반외세 민족자주정신 계승대회’를 갖는 등 3·1정신을 추모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 재일교포 인권운동가 徐勝씨“모국방문중 사면·복권돼 기뻐”

    ‘비전향정치범’으로 19년동안 형을 살다 지난 90년 석방됐던 재일교포 국제인권운동가 徐勝씨(54·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교수)가 최근 한국을찾았다.서씨는 지난 71년 동생 俊植씨(인권운동사랑방 대표)와 함께 이른바‘재일교포 학원침투간첩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비전향정치범’으로서는 최초로 석방됐다. 그에게 씌워졌던 혐의는 서울대 안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 반대와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반대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 조사과정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던 중 ‘살아서는 도저히 고문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고문기술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석유를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몇 차례의 수술끝에 겨우 ‘사람모습’을 되찾았지만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나의 얼굴”이라는 서씨의 표현처럼 그의 얼굴은 아직도 흉한 모습이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 94년 일본에서 나온 옥중기의 한국어 번역판 ‘서승의 옥중 19년’(김경자 옮김,역사비평사)출간이 계기가 됐다.출국 전날인 지난달 27일 서울대 호암관에서 그를 만났다. ▒방한 목적과 소감은. 옥중기 출간을 기념하고 서울대학과 ‘한·일간의 법과 정치제도 비교연구’라는 공동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왔다.28일은 내가 출소한 지 꼭 9년째 되는 날인데 한국 체류기간중 3.1절 특사로 나의 사면·복권이 이뤄져 더욱 기쁘다. ▒비전향정치범 출신으로서 이번 비전향장기수 17명의 추가석방을 어떻게 보나. 옥중에서 만났던 ‘선배’들의 석방소식을 듣고 반가워 봉천동 ‘만남의 집’을 찾아가서 만나봤다.이제 늙고 병든 그들에게 남북한 당국의 선처가 있기를 바란다. ▒‘옥중기’는 언제,어떻게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94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친구의 권유로 병실에서 오른쪽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에 담기 시작했다.옥중에 있을 때 집에 보낸 편지,가족의 면회기록 등을 참고해 옥중생활을 재구성한 것인데 더러 희미한 부분은 출소자들을 인터뷰해서 보충했다. ▒94년 일본에서 ‘옥중기’를 냈을 때의 반응은. 그동안 약 5만부(5쇄)가 판매됐다.독자의 편지만을 모아 다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석방된 후 뭘 하고 지냈나. 석방직후 일본에서 타이완(臺灣) 정치범 출신 모씨를 만나면서 동아시아의억압받는 민중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97년 타이완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심포지엄과 이듬해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4·3’ 심포지엄은 모두 이같은 취지에서 조직한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남북의 분단,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일본과 아시아 국가간의 갈등 등 ‘분단문제’를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금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주한미군범죄를 주제로 제3회 국제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서씨는 출소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지난해부터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재직중이다.
  • [사설]3·1 정신으로 제2국난 극복

    기미년 3·1독립항쟁 80주년을 맞는다.남북분단 상태와 우리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북한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정지)상태에서 맞는 3·1항쟁은 과거 어느때보다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3·1항쟁은 개항을 전후하여 외세에 대항하면서 전개된 일련의 민족운동의결과로 민족내부에 축적된 독립운동 역량이 자발적으로 발산된 항일구국투쟁이다. 3·1항쟁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상황을 보면, 집회 1,542회, 참가인원 202만 3,089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피검자 5만 2,770명, 불탄교회 47개, 불탄민가가 715채나 되었다.이러한 수치는 일제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것에 불과하고 실제는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것이다. 비록 3·1항쟁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낸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드러냈으며,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이집트 등 피압박 민족의 해방투쟁의 봉화가 되었다.이런 의미에서 3·1항쟁은 세계피압박민족해방투쟁의 선구적 혁명이라 하겠다. 3·1항쟁은 갑오농민운동·애국계몽운동·의병운동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운동이 집약되고,그 이후의 항일구국운동도 여기서 발원하는 민족운동의 요람이다.계층 노소 지역 성별 신분을 초월한 거족적인 항일투쟁이었다.봉건왕조에서 식민지로 전락한지 9년만에 전민족이 대동단결하여 통일역량을 보여주고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일깨웠던 구국항쟁이었다. 대한민국 존립의 준거 3·1정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존립하는 대한민국의 준거이기도 하다.그것은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임정은 26년 동안이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카이로선언을 계기로 민족해방을 쟁취하게 되었다. 임정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있음을 유의하여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는 카이로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1항쟁은 순수한 민족역량의 자발적인 결집이고 발산이었다.흔히 학계 일각에서는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받아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평가하지만,당시 일제의 철저한언론통제로 파리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됐을 때 유일한 국내 한글신문이었던 총독부기관지는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한국민중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북한 학계일각에서 주장해온 러시아 10월혁명의 영향설도 비슷한 상황으로서 한국 민중이 이를 알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다.당시 러시아 한인사회에서는 국내의 3·1항쟁 소식을 접하고 3월 17일에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축하회를 개최한데서도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국민화합의 가치관 3·1항쟁으로 시작된 민족의 저항은 마침내 8·15해방으로 귀결되었지만 통일조국을 이루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내부분열과 외세개입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단과 동족상쟁과 대결의 시대가 50년 이상 지속되면서 남한의 IMF사태,북한의 모라토리엄상태로 민족적 시련을 겪고 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일제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면서도 겨레가 하나되어 독립항쟁에 나섰던 선열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런 모습이다.분단 남쪽은다시 동서로 갈리고 지역별로 토막쳐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야간의 비생산적인 정파싸움,제 밥그릇 챙기기에 개혁을 거부하며 거리투쟁에 나선 일부 세력,부패와 복지부동의 관료집단,탈세와 외화도피를 일삼는 반사회적 기업가 등 반 3·1정신적인 행태가 도처에서 국난극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80년전 선대들의 애국정신을 회복하는 역사적 결기(結起)가 있어야겠다.망국의 백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일제의 폭압에 맞섰듯이 3·1정신으로 다시하나되어 IMF국난을 극복하고 분단조국 통일의 구심점으로 삼아야겠다. 우리 건국이념이고 민족통합의 원형질인 3·1정신을 화합과 통일이념으로승화시켜야 한다.그리하여 작은 이해와 갈등 따위는 80년전 선대들의 구국정신으로 용해하면서 10개월 후 열리는 2000년대에 한민족이 세계무대에서 우뚝서는 이념적 지표를 세워 나가자. 3·1항쟁과 항일구국투쟁으로 희생된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이 대접받고, 양심적이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이것은 50년 만에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金大中정부의 책무이면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국민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의 정부’를 선택한 것은 바로 3·1정신을 잇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자는 소망의 결집이었다.3·1정신은바로 정직한 사회·정직한 국가를 만들자는 겨레의 소망이며 실천운동의 거대한 축(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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