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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月田 장우성 米壽맞아 신작전

    한국 화단의 최고 원로인 월전(月田) 장우성 화백이 미수(米壽)를 맞아 6월4일부터 18일까지 고서화 전문화랑 학고재(02-739-4937)에서 신작전을 연다. 우리나라에서 화가가 미수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유례가 드문 일. 월전은 이번에 ‘폭발하는 화산’‘학’‘고향의 언덕’‘야우(夜雨)’‘태풍경보’‘명추(鳴秋)’등 문인화와 ‘한벽원사계(寒碧園四季)’‘화노(화奴)’등 글씨를 합쳐 신작 30점을 선보인다. 월전은 1930년대 이당(以堂) 김은호의 문하에서 한국화를 배운 이래 오늘까지 한순간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근대 한국화의 산 증인.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화가로 데뷔한 이래 국전 추천작가,국전 심사위원,서울대미대교수 등을 거치면서 예술가로서 또 미술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월전은 흔히 말하는 문인화의 이상적인 경지로서 시(詩).서(書)·화(^^)를제대로 갖춘 작가다.그는 간결한 필치와 담백한 색채감각을 추구함으로써 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새로운 한국화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40년대 후반과 50년대에는 문인화의 형식미에 현실적 리얼리즘이 융화된 경지를 보여줬으며,80년대에는 공해문제나 남북분단문제 등을 다뤄 그가 단순히 고답적인 이상주의에 만족하는 작가가 아님을 보여줬다.간략한 대상의 선택과 형식적인 면을 극도로 생략하는 감필(減筆),그리고 여백의 미학을 특징으로 하는 ‘월전양식’은 동양화를 그리는 이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작 가운데 월전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은 ‘태풍경보’.21세기에 우리에게 몰아 닥칠지도 모를 비극적 현상을 태풍이라는 상징을 빌려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예언자적 선견이 담긴 일종의 세기말 기상도인 셈이다.또 ‘화노’라는 글씨는 중국의 문인화가로 전각(篆刻)을 했던오창석이 중국 해상화파(海上화派)의 화가 임백년에게 새겨준 도장에 씌어진 말에 공감해 쓴 것이라고 밝힌다.임백년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원하자 “내가 그림 종놈이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월전은 “내 작품이 화단에서 50년 후에나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같다”고 내다보면서도 “서양화나 다른 미술 분야에서 내가 하는 일을 높이 평가하는 이가 있다는 얘기가 있어 반갑다”고 털어놓았다.미수에 이르러서도엄격한 작업태도와 왕성한 창조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월전의 예술혼은 후학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하다.
  • [사설] 조직폭력배가 무장하면…

    조직폭력배가 자동소총으로 중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서울지검은 20일 외제 자동소총과 권총 등을 밀매하거나 사격연습용 실탄을 빼내 유통시켜온 조직과 사격선수 등 불법 총기류 사범 34명을 구속했다.그중 폭력조직 ‘배차장파’ 행동대원 1명이 고성능 조준경·연발소총과 함께 무려 5,000발에 이르는 실탄을 구입해 숨겨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폭력조직이 고성능 외제 총기와 실탄을 대량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지난 94년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던 ‘지존파’ 일당이 기관총 등을구입할 세부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켰고 지난해 일부 조직폭력배가 공기총을 개조한 소총을 지니고 있다가 적발되기도 해 폭력조직의 총기류 무장이 확산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동안 우리나라는 총기류 범죄의 안전지대로 치부돼 왔으나 90년대 들어러시아 등 동구권과 외국 범죄조직으로부터 총기류 밀반입이 늘어나면서 그불법유통이 이제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이다.청계천이나 남대문 시장 등에는 사단규모 병력을 무장시키고도 남을 군수품이 범람하고 있으며 돈만 주면 기관총과 로켓포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이런 상황에서 무장한 폭력배들이 야산에서 사격연습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번에 검거된 조직폭력배도 구입한 실탄 300발을 이미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폭력조직이 이렇게 무장하고 총기류를 범죄에 사용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 안전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범죄자가 총기를 소지해 경찰과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면 미국·일본의 마피아나 야쿠자처럼 유흥가나 야간시간대 특정지역의 지배·통치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게다가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의 특수한 안보문제를 안고 있어 국가치안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사건 수사결과 사격선수와 코치가 태릉국제종합사격장에서 6만발의 실탄을 빼내 총포상에 팔아넘겼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도대체 사격장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한심스럽다. 차제에 범정부차원의 총기류 안전관리대책이종합적으로 수립돼야 할 것이다.폭력조직의 동향을 철저히 감시하고 공항이나 항만을 통한 총기류 밀반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특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마약수사 전담반처럼 조직적인 수사체계를 확보해 불법무기 거래와 제조,유통구조를 지속적으로 감시 단속해야 한다.사격장의 실탄 관리실태를 점검해 그 개선책도 마련해야 함은물론이다.
  • [외언내언] 새천년 맞이

    서양에서는 100년(센추리),1000년(밀레니엄)을 하나의 획을 긋는 해로 기념하지만 우리는 60년 단위로 세월을 나누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환갑(小周甲)을 지내는 풍습이나 300년을 중주갑,600년을 대주갑으로 기념하는 것이 그것이다.지난 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쳤던 것도 그런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2000년 맞이 기념행사를 떠들썩하게 마련하려고 부산떠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일본도 ‘천년왕국’ 개념의 기독교 문화 전통을 지닌 서양과 달리 밀레니엄을 독특한 시각으로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새천년준비위원회가 19일 발표한 기념사업들은 ‘세계기준’의 새 천년 축제에 우리 전통적 정서를 담아내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새 천년의 꿈,두 손을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나타내고자 한상생(相生)의 원리,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열두 대문 건립,고려가요의 용어를 사용한 새 즈믄(千)마을 조성,먼 앞날을 내다 본 선조들의 내리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매향(埋香·沈香)찾기 행사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사업들이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구체화되느냐가 새 천년 맞이 기념행사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전세계가 밀레니엄 맞이에호들갑스러운 것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감을 통해 발전적 변화를 창출하는 정신적 원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서 세계 각국은 몇년 전부터 나름의 사회적·국가적 비전을 세우고 국가 재창조 작업의 일환으로 기념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새천년사업에 뛰어들었다.따라서 자칫하면 국가비전을 세우는 작업보다 행사를 위한 행사에 치우치거나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새천년기념사업을 번드르르하게 치르는 것보다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나누어 갖고 자세를 가다듬어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열두 대문을 100년에 걸쳐 세우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나 그계획 속에는 낭비적인 요소도 없지 않다.특히 평화공원을 별도로 조성해 그곳에 열두 대문을 세울필요는 없을 듯싶다.이미 조성된 통일동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만하다.2002년 월드컵을 염두에 둔 계획이라 해도 통일동산은 월드컵 경기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문제가 없고 오히려 20세기의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의 21세기 통일의지 또는 통일위업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2)-남정현의 ‘분지’(1)

    작가 남정현은 등단 3년만인 1961년 중편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후보작)을 수상할 정도로 그 풍자적 기법이 뛰어났다.5·16군부쿠데타 이후 한국사회가 당면했던 갈등과 모순을 전통적인 골계적 수법으로 날카롭게비판하던 이 인기작가에게 당시의 잡지들은 앞다투어 원고를 청탁했다.1964년 11월 경 그는 ‘사상계’와 ‘현대문학’ 두 잡지로부터 소설을 청탁받고 우선 한 편의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소설이란 우리 인간사에 관한 이야기”란 생각을 가진 작가로서 현실을 관찰하면서 “어찌된 판인지 우리 사회의 요소요소에는 인간의 꿈과 염원을 시중들기 위한 법이며 제도며 그 장치보다는,도리어 인간의 염원을 가로막고 행복을 훼손하려는 장애물이 더 많은 것 같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문학적 상상력은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권력은 이미 나라와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의 손에서 아주 멀리멀리 떠나버린 상태”로 보여 “세세연년 민족자주를 열망하는 전민중적인 희원을 한번 소설화해보고 싶었을 뿐”이어서 쓰게 된 것이 ‘분지’였다.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4·19같은 민족적 희망이 왜 5·16같은 폭압으로 압살당해 버렸느냐를 추구하다가 “그 배후에는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외세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그 답답함과 울분을 기초로 ‘분지’를 구상했던 것이다”(한승헌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분단시대의 피고들’ 참고). 그의 장기인 풍자적 기법으로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 않고도 탈고하게된 이 작품을 작가는 순문학지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했다.1964년 12월 어느날이었다. 소설은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가 어머니의 영전에 하소연하는 형식을 취한 일인칭 독백체로 이뤄져 있다.만수의 아버지는 일제 때 독립운동을 위해나갔으나 해방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그의 어머니는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미군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채 돌아와 정신이상으로 죽는다.고아 남매는외가에서 자라던 중 6.25로 헤어져 만수는 입대했다가 제대했으나 살 길이없는 절망 속에서 스피드상사의 현지처가 된 누이동생 분이를 만나 미군수물자 장사를 하면서 지낸다. 이런 딱한 처지의 만수에게 친구들은 도리어 매부인 스피드상사에게 미국과 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빽을 써대는 현실을 저주하며 만수는 썩어빠진 정치를 규탄하나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누이 분이의 고통이었다. 밤마다 스피드상사는 본국의 본처와 비교하면서 분이의 육체적인 결함을 들어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며 학대해댔기 때문이다.대체 미국 여인들의 육체는 얼마나 황홀하기에 저런가고 고심하던 중 스피드의 본처 비취가 한국으로오자 만수는 그걸 확인하고 싶어졌다. 만수는 한국을 안내해주겠다는 구실로 비취를 향미산으로 데려가 정중하게분이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그녀에게 육체를 보여줄 것을 요청하자,그녀는 다짜고짜 만수의 뺨을 후려갈겼다.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만수는 그녀의 배위를 덮치고 앉아 속옷을 찢어 황홀한 육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나 만수의 손에서 헤어난 비취는 돌연 “헬프미!”를 외치며 산 아래로 내려가 도움을 청했는데 그 결과는 “향미산의 둘레에는 무려 일만여를 헤아리는각종포문과 미사일,그리고 전미군 중에서도 가장 민첩하고 정학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미 제 엑스 사단의 그 늠름한 장병들이 신이라도 나포할 기세로저(만수)를 향하여 영롱한 눈동자를 빛내고”있다. “이 땅 위에서 만수란 이름의 육체와 그의 혼백까지를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 뿌려진 금액이 물경 이삼억 불에 달”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만수가 어머니의 영전에 하소연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채만식의 풍자를 능가하는 완벽한 알레고리로 김지하 풍자문학에 한 발 앞선 성과였다.“앞으로 단 십 초,그렇군요.이제 곧 저는 태극의 무늬로 아롱진 이 런닝셔츠를 찢어 한 폭의찬란한 깃발을 만들”어,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대륙에 닿아 “우유빛 피부의 그 윤이 자르르 흐르는 영니의 배꼽 위에 제가 만든 이 한폭의 황홀한 깃발을 성심껏 꽂아놓을 결심”을 다지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林軒永 문학평론가
  • [외언내언] 밀레니엄 씻김굿

    올해가 지나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세계 각국에서는 새 밀레니엄을 여는 역사적 순간을 놓지지 않기 위해 갖가지 기념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0년 1월1일 0시를 기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기위한 21세기 시계탑이며 밀레니엄 돔, 미래를 향한 회전식 관람차가 등장하는가하면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수교(吊橋)가 세워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아이디어는 오는 12월 31일 밤, 미국 뉴욕 스퀘어광장에서 열리는 ‘과거의영광을 되새기고 미래를 창조하자’는 밀레니엄 전야제와 메릴랜드주의 지난해의 망령을 몰아내기 위한 유령들의 야간행진, 그리고 독일에서는 베를린장벽해체의 상징인 브란덴브르크에서 부끄러운 역사와 결별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나치학살 희생자기념관’이 개관되기도 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미국의 밀레니엄 소사이어티측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이집트의 피라미드, 러시아의 붉은 광장, 중국의 만리장성등 과거 1천년동안의 주요사건과 역사를 만든 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조명한 ‘역사의 순간들’을 방영할 계획이다. 우리도 오는 12월31일 판문점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밀레니엄 비디오 씻김굿’을 대규모로 공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국 BBC와 미국 PBS가공동주관하는 이 행사는 MBC-TV가 생중계하고 전세계 40여개국 방송사가 참가하는 24시간 밀레니엄 축하방송 ‘2000 투데이’의 한국편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날 하오 8시반부터 2001년을 넘기는 3시간반동안 판문점 자유의 집앞마당에서 열리는 밀레니엄 씻김굿은 수백대의 TV모니터를 연결한 메가트론(Megatron)과 레이저를 이용하여 ‘자연·인간존중’ ‘통일과 화합‘ ‘인류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담아 지난 천년의 한(恨)을 풀어내고 새천년의평화시대를 활짝여는 퍼포먼스로 펼쳐지게 된다. 그동안 숱한 기행과 모험적 예술로 화제를 모은 백남준씨는 전세계로부터 수많은 밀레니엄 프로젝트를받았으나 분단 조국에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행사를 거침없이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첨단의 만남을 상징하기 위해 전통예술인 씻김굿과 전위예술인 비디오아트를 결합하는 최첨단 멀티미디오쇼는 냉전시대의 마지막현장인 판문점에서 인류평화를 새천년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세계의 어떤 전야제보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주게 될것이다. 새천년을 여는 희망과 설레임속에서 이 상서로운 행사가 과거를 씻고 남북한 통일의 문을 여는아름다운 가교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세기논설위원
  • [대한포럼] 금강산관광 차질없게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위해 지난 17일 동해안을 떠나려던 현대 풍악호의 운항중단을 요구함으로써 금강산 관광사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북한이 풍악호 입항을 거부한 표면적 사유는 북한 내부의 입항절차가 완료되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3월 스리랑카 해역에서 발생한 남북선박 충돌사고 보상문제와 관련해 풍악호 입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남북선박 충돌사고를 보험회사 조사를 근거로 한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한다는 현대측과 별도의 보상을 의식한 북한측의 이해관계가 상충된사건으로 보여진다. 북한이 현대와의 중국 베이징(北京)접촉에서 풍악호 입항거부가 남북선박충돌사고와 관계있음을 시사한 데서 그같은 속사정을 감지할 수 있다.풍악호의 출항무산 사태는 배경의 근원을 떠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금강산 관광길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중대한 위기로작용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물론 이같은 사건은 정부아닌 민간차원에서 추진된 대북사업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이번 사태의 원인은 북한의 억지와 도식적 행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측의 금강산 관광사업 운영에 문제점이 있음을부인할 수 없다.현대는 풍악호 입항을 거부하는 북한측의 입장을 13일 통보받아 14일이 돼서야 통일부에 보고했다.이어 남북선박 충돌사고 보상문제와 관련지은 입항거부도 15일 통보 받았으나 17일 오전에야 또 뒤늦게 정부에통보한 현대측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한뒤 이번 풍악호 출항무산 사태에 이르기까지 전횡을 일삼았다는 비난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통일부가 대북사업 관리자로서 적극적 역할을 포기한 채 현대측에 떠밀려 다닌다는 비난의 원인도 현대가 되새겨봐야할 대목이다.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은 비록 민간차원의 경협사업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남북당국 사이의 연계와 협조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보였던 독선적 운영방식은 지양돼야 마땅하다. 특히 이번 사태의 경우 현대가 북한과의 협상을 핑계로 내세워 관광객 편의를 무시한 채 잘못되면 돈으로 보상만 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발상을 내비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금강산 관광사업이 다른 대북경제협력사업추진에 걸림돌이 되거나 정부의 대북정책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볼때 더욱 그렇다.따라서 현대측은 발상의 전환없이 대북협상력을 결코 강화하지 못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현대가 분단의 비극을 청산하고 민족공동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했다면 이와 관련된 지속적 성과도 책임져야 한다.특히 금강산 관광사업은 정부 대북포용정책의 가시적 성과의 표본이기도 하며 남북교류협력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통일사업이라는 점에서 통일이 실현될 때까지 차질없이 진행돼야한다. 이같은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이번 풍악호 출항무산에 대해 정부와 국민들은 당혹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지난 6개월간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이 6만명을 넘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금강산 관광은 우리국민들에게 통일의 꿈으로인식되고 있다.더욱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원한의 휴전선 때문에한발자국도 갈 수 없는 북한땅이긴 하지만 금강산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다.북한으로서도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해서는 안될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따라서 현대는 북한과의 원만한 타협을 통해 금강산 관광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의식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분단 이후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진 최초·최대의 통일관련사업인 만큼 모든방법을 동원해서 금강산 관광이 순조롭게 추진되게끔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장청수논설위원csj@
  • 마이클 잭슨 새달 서울공연 세계적 스타 한자리

    다음달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마이클 잭슨의 세계 어린이 돕기 기금 마련 자선공연 ‘마이클 잭슨 앤드 프렌즈-왓 모어 캔 아이기브’의 행사 개요가 공식 발표됐다. 공연 기획사 마마콘서트&라우의 마르셀 아브람대표는 18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행사전반에 관한 내용을 설명했다.주요 출연진은스티비 원더,보이스 투 멘을 비롯해 케니지,글로리아 에스테판,라이오넬 리치,다이아나 로스,바네사 메이,모던 토킹,스콜피언스,록세트 등 14명(팀)이확정됐으며,이외에 5∼6명이 더 참가할 예정이다.또 마이클 잭슨과 친분이각별한 세계적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특별 출연한다.한국 출연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오후 7시부터 4시간동안 진행될 이번 행사에는 남북분단을 상징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무대위에 설치하는 등 특수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한편 3개의 대형 비디오로 유네스코,적십자사,넬슨 만델라 어린이재단 등 자선단체의 활동을 알릴 계획이다.백댄서 9명과 함께 하는 특별 댄스무대도 마련된다.행사 전과정은 전세계에 생중계되며,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모금활동을벌여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마이클 잭슨은 이날 영상메시지를 통해 “한국 친구들의 사랑으로 서울 콘서트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전했다.마이클 잭슨이 주최하는 자선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며,내한공연은 96년에 이어 두번째이다.티켓요금은 8만∼30만원으로 27일부터 한빛은행 전지점을 통해 판매된다. (02)3780-3150. 이순녀기자
  • 정치권 5·18반응

    - 與 “고귀한 희생정신 계승 지역갈등 극복” 野 “화해·용서 할지라도 비극은 잊지말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은 18일 여야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여권은 광주항쟁 정신의 계승을 위해 지역갈등 타파와 개혁작업 추진을 강조하고 나섰다.반면 한나라당은 광주 항쟁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며 정치공세를폈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장영철(張永喆)정책위의장 등 당지도부는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대거 참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보였다.박광태(朴光泰)의원등 광주·전남지역 의원들 대부분도 참석,당시를회상하며 5·18 정신을 기렸다. 국민회의는 특히 5·18 정신을 현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작업과 연결,그 뜻을 되새기는데 초점을 뒀다.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성명에서 “광주 항쟁이없었다면 민주주의의 빛과 혜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광주의 희망이군부독재와 문민독재를 극복,정권교체를 이루게 했다”고 밝혔다.이어 “지역갈등과 분단,개혁 과제들은 광주의 역사적 사명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며 5·18정신의 계승을 강조했다. 자민련 이미영(李美瑛)부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며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참뜻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그들의 고결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 망국적 지역갈등을 깨끗이 없애고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최근 움직임을 꼬집으면서 광주 항쟁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며 여당을 공격했다.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전씨등은 아직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화해와 용서는 할지언정 그날의 비극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정부는 5·18의거는 국민적 자랑이라고 구호만 외치지 말고 실천을 통해 항쟁의 의미를 현재에 살리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망월동 기념식에 이부영(李富榮)총무를 보내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 학술단체협-5·18기념재단 주최 심포지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는가.그리고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학술단체협의회와 5·18기념재단 주최로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5·18은 끝났는가’라는주제로 5·18의 의미와 평가,남은 과제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과)교수는 “5·18은 우리가 추구한 반외세민족자주화를 통한 해방공간에서의 통일국가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복원한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어렵게 복원된 계기가 제대로 성숙해 민족통일의 터전을 닦기도 전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주의 구축 등 세계사적 전환과 IMF 경제신탁통치라는 내외적 강풍에 의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냉전과 탈냉전,동북아 질서의 변화,제3세계와 미국과의 관계,미국의 이윤축적 방식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우리의 민족자주화 운동은 숱한 고난을 겪어왔다”면서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5·18을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로이어진다”면서 “5·18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반도의 탈냉전에 기초한 국가통합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대 랜즈버그(경제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서 분수령적 사건”이라면서“신군부의 압제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대항한 민중의 잠재력을 보여준 항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5·18이 ▲한국 엘리트들의 자본주의적 특권보호를 위한 폭압 ▲한국의 민주발전 촉진을 무시한 미국의 정책 ▲민주주의 발전 현실화의 장애물로 나타난 남북분단이라는 교훈과 통찰력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丁海龜·정치학)연구위원은 5·18이 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갖는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정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배체제를 ‘국가적·체제적지배체제’와 ‘정권적차원의 지배체제’로 나누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배체제의 은폐된본질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또 이렇게 드러난 지배체제의 본질은 결국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급속히 약화시켜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함께 “5·18은 당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던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지역공동체적 차원의 ‘민중’을 형성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각 시대별 민주화운동의 예를 들며 한국 민주변혁운동 자체 맥락 속에서의 5·18의의미도 되새겼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교수는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5·18운동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나교수는 “최근 5·18관련 운동은 유가족과 부상자,구속자 등 5·18 관련단체들이 법인화·통합화하고 기념재단 설립 등을 추진하는 추세”라면서 “5·18관련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96년 ‘5·18재판’을 기점으로 5·18운동의 저항적 투쟁성도 기념사업활동이나 항쟁 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운동적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5·18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구조적 측면의 과제로 ▲관련단체들의내부 통합성 강화 ▲지역사회와의 연대성 강화 ▲비합법적·폭력적 방식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 문제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활동적 측면의 과제로는 ▲진실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한 문제 ▲미완의 처벌과 재심 문제 ▲불완전한 보상에 관한 문제 등 미해결 과제와 ▲각종 조형물을 포함한 기념사업 ▲학술연구회나 토론회 ▲5·18관련 사회운동 등을 제시했다. 나교수는 “이러한 모든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5·18을 포함하는광주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5·18의 기본정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변화된 현재의 환경 속에서 인권·정의·자치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안병욱(安秉旭·국사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민족의 통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한국인들의 대미(對美)인식의 전환문제가 광주항쟁을 통해 어떻게 투영됐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교수는 “민족의 통일로 가는 과정은 또 하나의 변혁운동”이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보편적인 개념이나 이론틀을 내세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자취 속에서 그 구체적 의의를 추구할 때 5·18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과제들을 발전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대한광장] 밀레니엄 유감

    요사이 시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밀레니엄(millenium)’이다.정부는 ‘새천년준비위원회’를 만들어 국가 천년대계의 비전을 설계하고,각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은 예산으로 다채로운 행사와 사업을 준비하고있다. 그런데 최근 밀레니엄이 상업성과 결합해 이벤트 중심으로 흐르는 조짐이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관(官)은 비슷비슷한 일회성 행사에 귀한 예산을 중복투자하고,민간에는 ‘밀레니엄 베이비’라는 웃지 못할 기념아(記念兒) 경쟁까지 일어나고 있다.그야말로 1000년이란 문명적 엄숙함은 역설적이게도 1년,아니 순간을 위한 상업성 이벤트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성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새천년을 맞이하는 철학의 문제이다.1세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1900년 1월1일자 세계 주요신문에는 과학과 문명을 근거로 20세기에 대한 찬미와 낙관적 전망이 줄을 이었다.그리하여 스탠퍼드대학의 조단 총장은 ‘20세기에의 초대’에서 “20세기인(人)은 희망인”이라규정하고 “그는 세계를,세계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세계대전이 일어났고,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일본의 군국주의와 2차세계대전,그리고 긴 냉전이 뒤따랐다.즉 20세기 서양의 현실은 ‘끔찍한 세기’ 또는 ‘극단의 시기’였다. 동양과 아시아의 20세기는 더욱 처참했다.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미국과 베트남 전쟁,중국과 베트남 전쟁,캄푸치아와 베트남 전쟁,이란과 이라크 전쟁,쿠웨이트·미국과 이라크 전쟁,구 소련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의 민족분규,최근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 등 많은 전쟁과 수난이줄을 이었다.특히 한반도에는 일본의 한국 병탄과 잔악한 식민통치,미·소에 의한 분단과 한국전쟁,남북의 냉전 등,다른 어떤 곳보다 잔인하였다. IMF사태 전까지만 해도 21세기에 대한 전망은 20세기보다 더 낙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러한 진단은 한편으로는 정보통신혁명 등 생산력의 확장,냉전체제의 해소와 자유주의의 승리에 따른 정치경제적 변화 등에 기인한 것이지만,다른 한편으로는 현재가 단지 세기적인 전환이 아니라 그 10배인 밀레니엄이라는 마술 때문이기도 하다. 밀레니엄은 흔히 새 것에 대한 찬미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거느리고 다닌다.그러나 묵은 현실을 갈아 엎지 않는 한 미래는 새 것이 되지 않는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바로 묵은 현실의 과제,즉 1~2년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세기를 넘기면서까지 여전한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새 것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 모태인 현실의 역사적 과제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면,그것은 범죄행위요 사기행각이다. 아마도 21세기 한반도에선 20세기에 당면한 과제들이 여전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분단과 통일,민주주의의 확대,주변 4강과 한반도 문제 등이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아니 새천년을 여는 21세기 처음10년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역동적으로 표면화돼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19세기말,그리고 불과 몇년 전,미래에 대한 부박(浮薄)한 기대가 바로 미래에의 몽매를 불러일으켰음을 직시하자. 2세기 전에 태어난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노여워하지 말라’고 노래했다.‘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이기에.그가 노래하고자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부박한 기대가 아니다.아마도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중력(重力)은 없다는 것,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낙관의 신념으로 현실을 개조하자는 것이다.그가 차르(Tsar)를 타도하려는 혁명가 데카브리스트(Dekabrist)였듯이. [都珍淳 창원대 교수·한국사]
  • [金三雄칼럼] 북한, 白凡자료 협력을

    백범(白凡)김구(金九)선생 사후 50년만에 남북한의 추모행사 관련 논의는만시지탄이지만 퍽 다행한 일이다.북한이 지난달 30일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를 통해 평양에서 ‘김구선생 회고모임’을 갖자고 제의한 것을 한국의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7일 김구선생 추모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수정제의했다. 이수성(李壽成)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장은 백범의 묘소와 유가족,비서진 대부분이 생존한 서울에서 추모모임을 갖는 것이 고유의 전통으로 봐도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수정제의 배경을 밝혔다. 우리는 민족 지도자 백범 50주기를 앞두고 남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을 높이평가하면서 양측이 민족지도자를 추앙하는 대승적 입장으로 기일인 6월26일에는 반드시 성사되기를 바란다.아울러 북한당국에 한가지 협력을 제의하고자 한다.다름아닌 백범 관련자료다. 대한매일신보사는 ‘백범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와 함께 백범전집 출간을 준비중이다.국내 자료는 물론 중국·대만·미국·일본에 산일되고 묻혀있는 각종 자료를수집하여 12권짜리 전집을 발간한다. 그동안 남북한에서는 친일파들을 포함하여 각급 인사들의 각종 전집이 출간되었다.반면에 젊어서는 반봉건·반외세투쟁,청장년 시절에는 항일독립전쟁,노후에는 통일정부수립운동에 헌신하다가 비명에 가신 20세기 한민족의 대표적 지도자요 국민의 정신적 지주인 백범의 전집이 아직까지 발간되지 못한것은 남북한이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연유에서 백범과 연고가 각별한 대한매일신보사가 전집을 준비중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백범전집은 실국(失國)시대와 독립운동과 해방과 분단과정에서 항상 의롭고 정도를 걸은 민족지도자의 삶의 궤적을 집대성하는 것은 물론 민족의 근현대 정신사를 정리하는 의미가 새롭다.따라서 이번에 편찬되는 전집에는 백범과 관련되는 모든 자료가 망라돼야 한다.그런데 임시정부와 관련된 많은 자료가 6·25한국전쟁 과정에서 분실되고 그 중 상당 부분이 북한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다. 경위를 살펴보면 이렇다.임시정부가 환국할 당시 임정문서의 책임자는 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趙擎韓)선생이었다.그의 증언에 따르면 1945년 11월 중국 중경(重慶)으로부터 귀국할 때 큰 가죽가방 13개에 임시정부 문서와 임시의정원자료를 간추려 가지고 귀국했다.그 다음해까지는 경교장(백범자택)에 두었으나 정국이 불안해 관계자들의 집으로 자주 옮겼다고 한다.그러다가 임정비서처 서무위원회 용도과장이던 조남직(趙南稷)씨의 집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6·25 때 조씨가 납북되고 그의 부인이 문서들은 모두 타버리고 없다고 했지만,조경한 선생은 보관된 창고나 집에 불탄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전란통에 북한으로 옮겨졌을 것이란 주장이었다. 이 증언이 아니라도 북한에는 백범과 임정 관련의 상당한 자료가 보관돼 있을 터이다.북한 당국은 이 기회에 이들 자료(복사본이라도)를 백범전집편찬위원회에 넘겨서 전집발간에 협력했으면 싶다. 백범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문제”라고 가르쳤다.오늘 남북한이 크게는 민족문제 해결에서 작게는 백범추모모임문제에있어서 이같은 정신으로 접근한다면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한다. 북쪽에서 태어나 제3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남쪽에서 숨진 인물,분단과정에서 그는 남쪽을 택했고 지금 효창원에 잠들어 계시다.그의 추모모임이 북쪽에서 열리면 어떻고 남쪽에서 개최되면 어떤가.장소가 타협이 안되면판문점에서 열어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혹은 소급하여) 민족이 함께 존경하는 인물의 추모모임이 50주기에는 꼭 열려야 한다는 겨레의 소망이다.그에 앞서 북한당국이 백범의 자료를 보내주어 완결된 전집을 놓고 남북의 관계자들이 해주의 생가(터)와 서울 효창원 묘소를 교환 방문하면서 그를 추모하고 그의나라사랑 정신과 통일정부수립의 의지를 이었으면 한다. 50주기와 20세기가 저물기 전에.
  • [화제의 책]『두 아내』전2권 /정소성 지음

    조국의 분단문제에 주목해온 중진 소설가 정소성씨(단국대 교수)가 ‘두 아내’(전2권·도서출판 찬섬)란 장편소설을 냈다.개인사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그리되 체제가 아니라 삶의 기본단위인 가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주인공 철우는 아내를 북에 둔채 남에 정착한 지식인 출신의 사내.한국전쟁전 상머슴의 딸 가영과 결혼한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불가항력으로 남쪽에남게 되고,희애란 여자를 만나 재혼한다.희애는 옛날의 곁머슴이었던 떡쇠의 딸.철우는 떡쇠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자리를 잡으나 갈수록 북의 아내를 잊지 못한다.두 아내를 지켜야 하는 철우는 결국 두만강을 통해 남과북을 오가게 된다.일종의 상황비극인 셈이다. 작가는 전쟁의 처참함과 개인의 의지로 살 수 없는 사회의 혼란상을 특유의 탄탄한 문체로 속속들이 그려낸다.작가는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억수같은 빗줄기를 맞으며 피난대열에 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쟁 당시를회고한다. [정소성 지음 도서출판 찬섬 각권 7,500원]김종면 기자
  • 洪외교 ‘포용정책’ 對美조율 나선다

    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오는 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 홍장관은 17일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비롯해 정·관·학계 인사들을 폭넓게 접촉,우리의 대북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방식에 대한 후속대책을 논의한다.동시에 올 여름으로 예정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협의한다. 특히 이번 방미가 월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과 금창리 현장조사를 앞둔 시점이라 대북 포괄적 접근방식 이행과 대북 권고안을 놓고 집중적 의견조율이 이뤄질 전망이다.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체제는 물론 대북 경제원조와 관계개선 등의 범위와 강도 등이 ‘깊숙한 선’까지 논의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은다. 미국 정계내 대북 ‘강경파’에 대한 설득작업도 주요 과제다.홍장관은 짧은 방미 기간 중에 상당한 시간을 이들에게 할애할 예정이다.미 상·하원 외교분과위원장들을 비롯한 정계 중진지도자들을 두루 접촉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천명한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와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5대 과제’를 중심으로 대북정책의 기본구상을 풀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특히 CNN과 워싱턴포스트 회견 및 조지타운대의 한국 관련 세미나에 참석,우리의 대북 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방식을 간곡하게 설명할 계획이다.조지타운대 세미나의 경우 미국내 ‘싱크탱크’들이 대거 참석,대북정책을 놓고열띤 토론이 예상된다. 홍장관은 방미에 앞서 7일 윌리엄스버그 제주회의에 참석해 15개국 대표들을 상대로 대북 포용정책을 설파했다.홍장관은 “포용정책의 목표는 한반도에서 냉전적 분단구조를 제거하고 평화적 공존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라고강조한 뒤 북-미,북-일간의 관계개선을 환영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홍장관은 이어 “북한의 붕괴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지금으로선 북한에게 우리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주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포용정책은 주고받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崔仁基경찰개혁위원장 일문일답-”경찰 수사권 독립…”

    “내년 7월1일부터 자치경찰제를 시행한다는 목표아래 일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15만 경찰의 숙원인 자치경찰제 도입의 산실인 경찰개혁위원회 최인기(崔仁基) 위원장은 4일 그동안의 강행군에 따른 피로도 잊은 채 자치경찰제 도입의 필요성 등을 하나하나 힘주어 설명해 나갔다. 다음은 최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가 제기됐다.어떤 취지인가. 수사권 독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검찰총장도 만났다.수사권을 경찰에 줘야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 형벌권을 인권보호,사법 서비스 개선,범죄예방및 검거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해 보자는 취지다.지금까지 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없었다.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토론을 해 그 결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수사권 독립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1차적 수사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대신 경찰의 인권침해 소지,법률 소양 부족이나 업무처리 미숙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대륙계 국가도 (경찰이 수사권을)다 갖고 있다.지휘를 받으면 자율과 창의성이 생기지 않는다.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면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자치경찰제의 형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인사·예산에 있어 완전한 자치인 미국식으로 자치경찰을 할 수는 없다.남북분단 상황에다 국토도 좁다.절충형을 택해야 한다.우리나라 지방자치는 분할지배구조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미국식으로 지방경찰이 시·도지사 밑으로 들어가면 큰 일 날 것이다. ●국가 공무원의 범위에 대해 경정 이상이라든지 총경 이상이라든지 말들이많은데. 경정 이상으로 결론났다.시·도에 근무하는 경감 이하는 지방직이 된다.물론 본청에 근무하는 직원은 경감 이하라도 국가직이다. ●국가 차원의 공조체제가 잘 될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완규정을 뒀다.지방청장은 국가비상사태나 대간첩 작전등 국가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나아가 경찰청장에게 특별조치권을 부여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한 일선 경찰의 반응은 어떤가. 경찰들은 좋아한다.일선 경찰관의 전화와 편지를 많이 받았다.인사제도의공정성과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에 대한 것들이었다.자치경찰은 경찰에 크게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 [외언내언] 옥류관 서울분점

    북한 최대 냉면음식점인 평양 옥류관(玉流館) 서울분점이 3일 서울 역삼동에서 문을 열었다.서울분점은 평양냉면 맛을 내기 위해 사리·육수·양념은물론 냉면그릇과 수저 등 일체를 북한에서 계속 들여온다고 한다.냉면 관련재료를 모두 북한에서 공수해 오고 평양냉면의 비법을 전수받은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조리사가 서울에 상주하며 직접 조리한다고 하니 마침내 냉면 본고장 평양의 옥류관 냉면맛을 보게 됐다.92년 9월 제8차 총리회담 지원단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옥류관 냉면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크다. 이번 서울분점 개설은 남북교역업체인 ㈜옥류관과 조선옥류무역의 독점계약 체결에 따른 것이며 서울분점은 북한측에 상표이용과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매출액의 1.5%를 로열티로 지불하기로 했다.또한 북한당국은 상호(商號)이용 권리를 명백히 하기 위해 우리 특허청에 상표등록까지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비록 냉면분점 개설이라는 작은 부분이지만 남북경제협력의 형식과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성과로 여겨진다.서울에 북한 영업점이 들어서는 것은 이번 옥류관 서울분점이 처음으로 남북교류 활성화에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더욱이 아무런 협의채널이 없는 상황에서‘남북간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열게 됐다는점을 고려하면 서울분점 개설은 값진 의미로 평가된다.냉면 사리와 육수의원활한 공급을 위해 평양에 식품공장을 설립하고 양강도에 메밀 계약재배 농장을 만드는 방안까지 북측과 협의하고 있어 단순한 냉면분점 이상의 남북교류 효과도 갖는다.이번 옥류관 냉면분점 개설은 민족음식인 냉면을 분단민족이 같이 맛봄으로써 단일민족의 공감대를 다지고 남북한 음식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특히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반세기 전에 먹었던 평양냉면을 직접 먹어볼 수 있어 망향의 그리움을 덜어주는 정서적 효과도 기대된다.고향은 갈수없어도 고향냉면을 먹으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실향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우리의 전통혼례에서 국수가락을먹는 것은 국수가 갖는 화합동류(同類) 의식의 친밀성 때문이다.지난 69년 미·중 관계를작은 탁구공으로 뚫었듯이 냉면가락에 남북관계 개선과 화합을 위한 한가닥기대를 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평양 옥류관 냉면의 서울 등장이 민족정서 복원과 화해와 화합의 상징적 이정표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주도홍씨 ‘독일통일에‘서 지적-남북한교회 교류길 넓혀야

    “한국교회는 조국통일을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이 질문은 한 신학자가 우리 기독교계의 자성을 요구하며 질타한 외침이다. 기독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이자 기독교북한선교회 연구위원으로 있는 주도홍씨는 최근 ‘독일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 이야기’(기독교문서선교회)를 펴내 한국교회의 분발을 촉구한다.이 책은 10여년간 독일에서 독일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본 주씨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을 보완,출판한 것으로 이 분야 연구서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한 독일은 정치적 통일이전에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사전작업’이 이루어져 왔는데 그 이면에는 동서독 교회의숨은 역할이 지대했었다.동독교회는 공산당의 박해 등 어려운 여건속에서도정규예배와 신학서적도 계속 출간해왔다.이에 부응하여 서독교회는 동독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그는 “독일의 통일은 독일교회가 기도와 땀으로 일구어낸 성과”라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인과 한국교회·성도들에게 귀감이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값 5,400원.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1) 정공채 長詩 ‘미군의 차’:下

    문제의 장시 ‘미8군의 차’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둔/버드나무에 말을 맨/주둔./18년(1945년부터 63년까지의 햇수)의 강하와 그/일월./옛날에는 힘센 장수가/무딘 손으로/말고삐를 매었다./버드나무가 줄줄이 늘어선/우리 조선땅에” 미군 주둔을 버드나무에 말을 맨 수사법으로 시작하면서 그 버드나무가 지닌 역사성을 상기시킨다.서론에 해당하는 4장까지 이 시는 쇄국의 대명사인대원군을 “오늘날은 한번쯤 생각해도…”라며 상기시켜 주면서 민족 주체성의 상징으로 버드나무와 그 버드나무를 닮은 여인을 등장시킨다.이어 6·25를 연상하는 전쟁의 잔혹상을 제시하고는 무대를 산촌으로 바꿔 방방곡곡으로 스며드는 ‘박래(舶來)’풍조(외세란 어휘를 차마 쓰기가 두려웠으리라)를 비꼰다. 5장에서 주인공이 비로소 등장한다.“나”로 상정된 주인공은 바로 시인 자신으로 진주농림학교에 다니며 존경하던 임학(林學)선생 한 분이 민족과 국토를 위해 나무를 심자는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일생을 임학에 바칠 각오를굳힌다.그러나 “이 순백의 고등학생들에게도/번져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려운/세계의 그 사상” 때문에 “진주에서도 지리산/아직 순백의 애들이,엉터리로 들떠서/교실에서는 조림과 삼림보호를 배우던/친구들이./ 산에서/흐르는 작은 별과같이/총을 맞아 죽어갔다” 바로 지리산의 비극적 상황을 연상토록 만드는 이 대목으로 말미암아 시의 주인공인 ‘나’는 “존경하던 우리 임학 선생님을 등지고/수원농과대학의/푸른 산,푸른 강,푸른 조국의/국가백년지대계의/산에 나무 심어 가꾸어 보호하고 자르는/임학을 버리고//찬물을 마시고 취하는 외교와/거짓 술잔을 높이 들고 미소 짓는/그런 정치외교학과에” 투신했다고 썼는데,이 대목은 바로 정시인이 연세대 정외과를 선택한 배경이 된다. 6장에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 모습을 “바퀴는 굴러가다가 용산/바퀴는 굴러가다가 영등포”하는 후렴식으로 부평,오산 등등 미군기지가 있었던 지명을 열거한다.이렇게 미군이 주둔한 뒤의 한국 땅에서 전개되는 삶의 양식이바뀐 모습을 7장에서 “바퀴가 몇만,몇십만 번을 굴렀는데도/꽃같이 아름다운 자유는/빵과 의복과 따뜻한 주소의/열매를 달지는 않았다./다만 탱 빈 마른 나뭇가지”라고 묘사했다. “에르하르트가 있는/싱싱하여 철철 넘쳐 흐르는/라인강 라인강 기적강 기적강/일하는 사람으로 가득 담긴/독일이라는 강물,근로의 나라.//꼭같이 바퀴가 그 나라에도 뒹굴고/우리나라에도 뒹굴었는데/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도/바퀴가 궁굴었는데 패잔병은/잔명은/바로 우리다”(9장)는 대목에서는 여러 미군 주둔국 중에서 한국만이 지닌 특수상황이 빚은 비극을 상기시킨다. 분단으로 인한 남북 대결,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일본이 언급되면서 한국 청년들의 방황과 고뇌가 서술된다.이런 와중에 ‘나’는 여행을 떠나는데 이것은 정신적 방황을 상징한다.돈 때문에 연인은 양공주가 되고,남자는 나락의 운명으로 전락한다(14장).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풍자(“한때 암코양이가 울어”등으로 상징)와 4월혁명 예찬과 좌절(15장)을 겪으며 ‘나’는 도시 소시민적인 삶에 묻혀 연애와 방탕과 방황을 거듭한다(16∼17장).물론 가끔은임학기사가 되려했던 옛꿈을 회상하기도 하지만(19장),“썩은 과일”(20장)과 “아편을 맞고/기분좋게 늘어진 나는/패잔병”으로 현실 속에서 안주한다.그런 안주 속에서 ‘나’는 농촌에서의 이상적인 삶을 설계하곤 하지만 현실은 낙담 뿐이다.그런 삶을 시인은 양공주의 일상으로 상징하여 표현한다.“…소공동에서 소공동에서/꽃을 팔지 말아요./제발 이 거리에서 꽃을 팔지 말아요”(26장)란 대목은 양공주의 삶이 우리 모두의 참담함이며,여러 항구를 떠도는 그녀가 곧 ‘나’의 연인과 누이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패잔병”은 마침내 귀향하여 다시 임학의 꿈을 실현하고자 이를 목관악기의 저음으로 연주한다.그래서 “노오란 자산/미8군의 차보다 큰/교목림으로/이 땅,우리 조국에 가득히/자유의 밭을 이루라./기쁜 밭을 이루라./삼림을이루라”로 이 시는 끝난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기고] 2공화국의 민주주의와 통일문제

    민주당정부 등장직후부터 통일문제는 국가의 근본 존재를 민감하게 건드리면서 전체 사회를 예리하게 가르기 시작했다.한국사회에서 통일은 가장 기저(基底)에 해당하는 문제라 즉각 드러나지는 않으나 일단 드러나면 폭발성을갖는다.게다가 논쟁에 북한이 개입하자 갈등은 증폭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당시 북한의 대남인식은,남북한 국력차를 반영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4·19직후 북한은 남한정부의 통치능력을 전면 부인,임시정부를 구성하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제기했다.남한경제의 피폐상을 언급하며 남한의 경제정책 수립에 직접 개입하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물론 교류협력,주한미군철수,연방제 역시 강도높게 주장했다. 정치·시민사회의 통일논의,연속적인 북한의 제의 및 그들과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의견교환에 대해 정부당국은 공적인 통제기능을 행사하지 못했다.특히 독재타도라는 ‘민주주의 문제’에서 인식이 일치돼 ‘정권형성연합’을이룬 민주당과 사회세력·학생은 ‘통일문제’를 놓고는 정면대립하는 관계로 돌아섰다.정권형성연합의 재빠른 해체는 민주당정부 붕괴의 핵심요인이되었다. 민주당 정부의 수세적 위상은 남한의 국력이 북한보다 열세인 데서 오는 구조적 문제였다.북한의 통일제안은 휴전선 너머에서 그치지 않고 남한내부의논쟁에 깊숙이 들어왔다.급진 통일론은 남한정부의 통일정책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인정,공산세력과의 연립추구,미국 안보우산의 거부,자유민주주의 지양을 담았다는 점 때문에 분단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에게는 북한 주장에 접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5·16군사쿠데타의 첫번째 명분이 ‘반공 국시’라는 점은 민족문제에의 대처가 민주정부를 타도한 논리적 근거가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민사회에서 다양하게 표출된 통일논의가 이념대결 양상을 띠어가며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고,정부가 민주적 방식으로는 이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난 시점에서 제2공화국은 붕괴된 것이다.냉전의 절정에서 등장한제2공화국은 통일문제가 다른 문제를 압도하자 이니셔티브를 상실한 채 그속에 함몰해 버렸다. 그러나 제2공화국이 통일문제 해결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세계 냉전구조의 온존,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상당한 관련성을 갖는다.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소되지 않고는 주변부 국가가 냉전질서를 해체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제2공화국 사례는 보여준다.전방 반공초소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 역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평화 진전에 대한 관심을 압도했다.최근 공개된자료에 따를 때 미국은 박정희가 주도하는 쿠데타 움직임을 한달 전에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부와 박정희 양쪽에게 어떤 적극적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제2공화국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에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북진통일론이 소멸되고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악습이 사라진 것만도 민주화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형성 과정,한국전쟁,그리고 냉전질서에 따른 전초기지로서의 위치 때문에 남한정부는 통일문제에서 선택폭을 제한받을 수 밖에 없었다.분단국가의기본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 극우적인 것만큼이나 급진파들의 통일논의 역시 냉전과 분단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적인 주장이었다.통일지상주의는 단순히 정부정책을 변경하는 수준이 아니라 분단정부와 질서의 근본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분단국가에서 혁명을 이루어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전에 체제의 수용 범위를 넘어선 급진적 민족주의를 제기하는 것은 민주화 자체를되돌릴 수 있음을 장면정부 붕괴 과정은 보여준다. [朴明林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실장]
  • [제2공화국과 張勉]18-봇물터진 통일론(下)

    ‘중립화 통일론’이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장면(張勉)정부는서둘러 불끄기에 나선다.1960년 11월2일 장면총리는 담화를 발표해 오스트리아식의 중립화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장총리는 그 이유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지정학적 차이점을 제시했다.‘소련·중공과 인접한 한국이 전략적인 가치가 훨씬 높다’는 점을 비롯 ▲침략을 당하면 오스트리아는 즉각 지원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지원군이 바다 건너 있다 ▲중립국이 되기 전 오스트리아는 단일정부를 유지했지만 한국은 남북으로 갈려 전쟁까지 치렀다는 사실 들을 지적했다.따라서 “유엔 감시하남북총선거가 현정부의 유일한 통일방안”이라고 장총리는 거듭 강조했다. 같은 날 민의원도 ‘대한민국 헌법 절차에 따라 유엔 감시하에 인구비례로자유선거를 실시하는’통일방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해 이를 제15차 유엔총회에 전달키로 했다.‘대한민국 헌법 절차를 따른다’는 전제조건을 단 민의원 결의는 장면정부의 통일정책보다 더욱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장면정부를 긴장케 한 요인은 혁신계도,중립화 통일론도 아니었다.4월혁명의 주역인 학생세력이 통일논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학생들은 4월혁명으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지자 이에 만족하고 ‘혁명과업 수행’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맡기는 듯했다.이들은 학교로 돌아가 학도호국단 대신 학생회를 구성하고 어용교수 퇴진과 재단 민주화를 요구하는 등 학원민주화운동에 나섰다.또 공명선거·농촌계몽·국산품애용 같은 국민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논쟁이 확산되자 학원가는 그 흡인력에 급속히 빨려들어갔다.각대학에는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가 들어섰고 크고작은 토론회·강연회가 잇따랐다. 11월18일 서울대에서 300여 학생이 참여해 ‘서울대 민족통일연맹(民統)’을 결성했다.이들은 ▲통일에 관한 국민의식을 높이고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며 ▲통일방안을 정부·사회에 제시해 여론을 조성하겠다고 공표했다.아울러 ‘북한 학도’들에게는 “4·19로 이승만정권을 타도했듯이 김일성(金日成)정권을 타도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이들의 통일론은 한마디로 ‘기성 정치인은 믿지 못하니 남북의 학생들이 직접 나서자’는 것이었다. 61년 들어 정부의 ‘유엔 주도하 통일’방안에 충격을 주는 사태가 발생했다.4월12일 제15차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서 한국문제 토의에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자는 안이 나왔다.당시 중립국이던 인도네시아가 제출한 ‘동시초청안’이 높은 지지를 받자 미국대사 스티븐슨은 ‘북한이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수락할 경우에만 초청한다’는 수정안을 냈다.‘스티븐슨 안’은 59대 14로 통과된다. 그동안 유엔이 통한(統韓)문제를 토의하면서 늘 남한 대표만을 초청해 왔기때문에 조건부라 해도 북한이 함께 초청받은 사실은 국내에 큰 영향을 미쳤다.‘스티븐슨 안’자체를 반대하던 장면정부는 막상 수정안이 통과되자 다음날 환영 성명을 발표한다. 장면총리는 “공산측이 기왕의 파괴적 태도를 청산하고 이 획기적인 결의의모든 조건을 성실히 충족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북한이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을 받아들여 그 임무수행을가능케 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는 달리 사회 분위기는 “스티븐슨 안은 미국이 북한과 타협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고 보수계 신문들은 “정치인들이 충격을 받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남한 사회는 이제 통일논쟁으로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혁신계와 급진 학생세력이 ‘어떻게든 통일만은 이루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격적으로나온 반면 장면정부는 기존 원칙만을 고수하며 소극적·방어적으로 대응할수밖에 없었다.북한은 북한대로 혁신계·학생세력을 부추기는 제안을 끊임없이 해댔다.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도 한국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변해갔다. 그 달구어진 용광로의 문을 열어제끼려고 한 세력은 학생들이었다.‘중립화’니 ‘남북교류’니 논쟁 차원에 머물던 통일문제에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4·19 1주년 기념일을 맞아 민통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통일을 기피하고 민족통일세력을 탄압하는 현정권은 피를 보기 전에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어 5월3일 남북문화교류의 전제로서 남북학생 모임을 갖자고 북한 학생들에게 제의했다. 이틀뒤 전국 18개 대학과 경북고 대표가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민통학련)’결성준비대회를 열고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열겠다고 발표했다.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즉각 이를 환영했으나 집권 민주당과 신민당(민주당 구파)등 기성 정치권은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 대변인인 정헌주(鄭憲柱)국무원 사무처장은 ”학생들의 주장은 정부 방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면서 “순진한 학생들이 공산당의 흉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고 단호한입장을 밝혔다. 5월13일 민통학련은 ‘남북학생회담 및 통일축제’개최 원칙을 공개했고 정부는 이에 대해 “학생들이 판문점에 가면 전원 체포하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3일후부터 통일논의는 쿠데타군의 총검에 눌려 전면중단된다. ‘가자 북으로,오라 남으로’를 외치던 학생이건,‘중립화’를 꼭 이뤄야 하느냐 아니냐로 다투던 혁신계건 그 운명은 장면정부와 다르지 않았다.박정희(朴正熙)시대에 ‘통일지상주의자’들은 자유당정권 때보다도 훨씬 가혹한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분단의 역사에서 통일은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임에 틀림없다.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제2공화국에서 통일논의가 최고의 이슈로 떠오른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체제간 경쟁이 엄존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에만 치우친 통일론,자파(自派)의 세력 확장에 급급해 중구난방 식으로 쏟아부은 통일론은 급기야 스스로가 발디딘 토대마저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이용원기자 ywyi@
  • 4者회담 핵심문제는 평행선

    제네바 오일만 특파원 4자회담 개막식에 이어 25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분과위원회가 열렸다.처음으로 실질적 토의에 착수한 만큼기대감도 높았지만 ‘분단의 벽’은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았다. ●긴장완화분과위는 예상대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의제로 명시하자는 북한주장을 놓고 ‘평행선 대립’이 계속됐다.한·미 양국은 “실천 가능한 쉬운 문제부터 논의하자”며 ▲남북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설치 ▲군사훈련의통보 및 군사훈련 참관 허용 ▲군인사 상호 교류 등의 의제 선정을 제의했다. 북한측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 긴장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맞서 이견 해소에 실패했다. 평화체제구축분과위도 난항을 겪었다.평화협정 체결의 주체 선정을 고집한북한에 대해 한·미는 “외국 사례를 검토하면서 평화협정 내용을 토의하자”고 주장,결론을 내지 못했다. ●24일 4자회담 전체회의는 의장국인 미국의 찰스 카트먼 대표의 사회로 각국 대표들의 기조연설과 의제에 대한 각국의 의견교환 순으로 이어졌다. 초반부터 시각 차이가 커 난항을 거듭했지만 구체적 사안은 분과위원회로넘기자고 합의,일단 ‘한고비’를 넘겼다.4국 대표들은 또 분과위원회와 별도로 수석대표회담을 수시로 소집해 합의가능성을 높이도록 했다. 박건우(朴健雨)한국측 수석대표는 “50년 묵은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하는 만큼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군사핫라인 설치 등 3개 항을 제의. 반면 북한 김계관(金桂寬)대표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선행을 주장했다.중국의 첸융넨(錢永年)대표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며 ‘실질적 접근’을 요구하는 한·미 입장을 지지했다. ●회담장소 제공국인 스위스의 적극적인 ‘중재’도 눈길을 끌었다.크리스티앙 뒤낭 대사는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유럽안보협력(OSCE)의진행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며 “4국이 원한다면 스위스 군대를 방문해 OSCE 검증 대표단의 상호 검증 절차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의했다. 스위스측은 ‘판문점 인도적 회랑’설치 방안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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