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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鄭鎭奭대주교 부활절메시지

    정진석(鄭鎭奭)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부활절을 일주일 앞둔 17일 2000년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우리 모두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며 나눔을 실천하자”고 촉구했다. 정 대주교는 “지난 4·13총선에서 각 정당은 상호비방을 일삼고 지역감정을 부추겨,국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이 더욱 팽배해졌다”면서 “올바른 정치에 기초한 풍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정 대주교는 또 “분단 이후 반세기만에 처음 이루어지는 남북 정상회담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남북의 여러 회담들이 성공할 수있도록 먼저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역·계층간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를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학가 ‘통일동아리’ 활기

    대학가의 통일 관련 동아리와 학술모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사회주의적 통일론을 답습하기 보다 통일에대비하고 적극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학생들로부터도 폭넓은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달 1일 활동을 시작한 서울대 통일 소모임 ‘링고(RINGO·Reunification Inspiring NGO)’는 학생들을 상대로 통일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하루에 5분만이라도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함께 고민하자고 호소하고 있다.지난 8일에는 홈페이지(www.ringo.or.kr)도 개설했다.이들은 통일 비용에 보태기 위해 ‘통일기금 저금통’을 만들어 500원씩 받고 나눠주고 있다.벌써 500개나팔았다. 학생들은 저금통에 모은 돈을 통일기금으로 기증하게 된다. 이 모임 대표 조지영(趙智英·22·여·물리교육과 4학년)씨는 1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도 통일 붐이 일고 있다”면서 “통일분야의 비정부기구(NGO)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북한문제 학술 소모임인 ‘겨레화합 연구학회’는 남북분단이나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매주 토론을 한다.이 학교 북한학과 영화소모임 ‘플리커(flicker)’도 전공을 살려 최근 한 인터넷업체로부터 북한 영화 관련컨텐츠 제작을 의뢰받아 작업중이다. 명지대 북한학과 학회 ‘형설지공’은 96년 발족한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으나 올들어 다시 신입생을 받았다.학생들은 북한 문화나 정치·경제는물론,북한과 관련된 국제정세 등도 공부한다.지난 10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주제로 토론하는 등 매주 토론회를 열어 회원들간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조선대 동아리 ‘통일21’은 지난 12일 신입생들과 남북정상회담을 주제로토론회를 가졌다.이 동아리는 남북관련 국제정세나 북한 역사 등을 주제로매주 토론회를 열고 있다.국정은(鞠廷恩·22·북한학과 3학년) 회장은 “신입생이 6명이나 가입할 정도로 후배들이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조선대 ‘한국정치연구회’와 ‘제3세계’ ‘정치경제연구’ 등 통일과 남북한의 정치·경제 등을 공부하는 학술 동아리들도 최근 조성되고 있는 통일붐에 고무돼 신입 회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연어의 회귀를 기다리며

    21세기 희망을 담은 ‘2000년 봄 연어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 2월10일 경북 울진 왕피천을 시작으로 3월5일 섬진강,3월17일 양양,4월15일 비무장지대인 남강에서 총 1,900만 마리의 연어치어가 방류됐다. 지난 84년 강원도 양양군 남대천에 국립수산진흥원 양양내수면연구소가 처음 생기면서 시작된 연어방류 행사는 최근들어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연어축제로 발전,분단국토의 통일과 민족의 화합단결을 모색하는 화합축제의 마당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때문에 이 행사는 단순히 어린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주는 ‘방류행위’를넘어 다양한 시대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연어를 바다에 보내고 3·4년 후에 돌아오는 연어를 마중하는 것은 단순히연어 치어를 방류하고 바다에서 자란 연어를 다시 거두어 들이는 사업이 아니다.이것은 약속의 물고기인 연어를 매개로 인간의 꿈과 희망을 심고 이를가꾸어 성취하는 상징적인 축제인 것이다. 깊은 바다 거센 물결을 헤치고 마침내 모천에 돌아와 알을 낳고 한 세대를마감하면서 새로운 세대를준비하는 영원한 모성을 보여준다. 연어는 약속을 지킨다.동해안을 빠져 나가 수만리 북태평양 깊은 바다에서성장한 연어가 때를 맞춰 모천에 회귀하는 이 신비로운 현상을 접할 때마다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감탄한다.연어를 방류해 고갈되는 어족자원을 늘려 간다는,인간의 단순한 논리와 욕심에 부끄러워지고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넓은자연의 현상 앞에 머리가 숙여진다. 연어방류 행사를 계기로 우리는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방류한 연어가 돌아오는 확률은 2%이내에 불과하다.그만큼 우리의내와 강이 오염됐다는 이야기다.따라서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는 연어를 지표생물로 삼아 우리의 강을 1급수로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한 의지와 참여를 일깨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연어 방류행사가 단순히 어족자원을 확보한다는 측면의 접근이 아닌 환경과인간, 사랑과 용서가 담긴 전 국민의 축제로,민족 화합의 장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2000년 봄,나는 동서화합과 통일의 꿈,미래에 대한 신념을 담아 연어를보낸다.3·4년후엔 통일의 연어,국민 대화합의 연어가 되어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李恒圭 해양부장관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1)부시‘고르비 정상회담

    세계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대좌가 있었다.살벌한 군비경쟁속에 인류를 이념의 틀에 얽어맸던 냉전체제도 강대국 정상들의 결단에 의한 회담으로 무너졌다.관계가 소원하기만 했던 나라들의 해빙(解氷)무드 역시 지도자들의 ‘만남’을 필요로했다.정상간의 대화는 묵었던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월12일의 한반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천년의 기억 한편에 물러서 있는 세기의 정상회담을 돌아보고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89년 美·蘇정상회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4주 뒤인 1989년 12월2일,지중해의 휴양지 몰타해변.정박중인 소련 순양함 ‘막심 고리키’호의 카드놀이방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앉았다.주위에는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얘기가 잘 안되면 책상을 발길로 걷어 찰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군요.”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고르비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정상회담 얘기가 나가자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자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오늘 만남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대화의 연장선 같습니다.” 헝가리의 국경 개방,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의 벽들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속에서 구질서의 양대 축인 미·소의 정상은 이렇게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취임한 이후 10월 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추진해 온 정상회담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부시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준비한 양국 무역협상 개시,소련의 최혜국 대우를 금지시킨 잭슨-바닉 수정안 해제 등 고르비 최대의 관심사항인 경제 제안들을한꺼번에 제시했다. 부시는 무기감축에 관해서도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는과거 냉전에서 얻은 교훈들을 토의할 필요가 있으며,대립의 정치학인 냉전적방법론은 전략적 패배를 맞고 있습니다.” 고르비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으로대신하며 대화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몰타의 기상은 최악이었다.미국의 순양함 벨크냅호와 소련 함정 슬라바호를 오가며 갖기로 한 정상회담은 폭풍우를 꺼린 고르비의 제안으로 장소가 고리키호로 변경됐다. 이튿날 회의에서 고르비는 미·소관계의 이정표를 긋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우리는 미국이 유럽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며 이것은 유럽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언쟁도 있었다.아프카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두고 설전이 오갔으며,동독의 변화를 서방의 가치에 기초를 둔 변화라는 부시의 언급에 고르비가 “우리도 민주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되받는 등 한때 공기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부시는 고리키호를 떠나지 않으려는 고르비를 위해 이틀 동안 거센 파도속에 함재정을 타고 밸크냅호와 고리키호를 오가,이를 TV로 지켜보던 미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몰타회담의 하이라이트는 12월3일 열린 사상 최초의 미·소 정상 공동 기자회견.고르비의 전격 제안이었다. 부시가 기자들에게 “미·소 관계개선으로 고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세계,특히 유럽에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고르비는 “우리 두 사람은 세계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영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두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몰타를 떠날 때 회담 내내 멈추지 않던 폭풍우는 빛나는 태양에 그 자리를 내줬다. 45년간 지구촌을 갈라놓은 냉전시대 구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조지 부시,냉전해체과정 충격없이 연착륙시킨 주역. 미국 41대(1989∼1992) 대통령.89년 1월23일 취임,동구 민주화 도미노,베를린 장벽 붕괴 등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냉전 해체 과정을 충격 없이 연착륙시킨 당사자다. 76세.매사추세츠주 밀튼 출생으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텍사스에서 정유사업으로 부를 축적,64년 상원의원 출마로 정치에 입문했다.닉슨 대통령 시절주 유엔 대사를 거치고 7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국경 개방 이후 선물받은 ‘헝가리 철조망조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해 당시 외교 결실에 따른 보람을 은근히 내비쳤다. 98년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당시를 기록한 회고록 ‘세계의 대전환(A World Transformed)’을 펴냈다. 동구 해체시의 위기관리 능력과 91년의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미 경제의 침체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무렵 인기가 급추락했다.아들인 조지 W부시가 공화당 후보로 올 대선에 출마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냉전해체 1등공신…90년 노벨평화상 수상.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년),옛 소련 대통령(1990∼1991년).명실상부한 냉전해체의 일등 공신으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69세.스타프로폴의 농가 출신.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52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후견인인 안드로포프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 위치가 급상승했다.이때부터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개혁을 시도,명성을 얻었다. 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는 80년대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강경파와 개혁파들 사이에서 입지가 흔들렸고 91년 8월강경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개방정책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소련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경제는 피폐해졌다.서방에서는 ‘칙사’ 대접을,러시아내에서는 러시아 추락의주범이라는 원성을 듣고 있다.지난해 9월 부인 라이사가 암으로 사망,쓸쓸한말년을 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 북한학 남북정상회담 ‘특수’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바빠진 사람들이 있다.바로 북한학 연구자들이다.북한학계로선 지난 94년 김일성주석 사망에 이어 두번째 ‘특수’인 셈.북한·통일관련 학계는 벌써부터 학술회의 기획안을 내놓거나 준비중인데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학술세미나가 홍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북한학’이 독립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80년대 후반 이념서적의 해금으로 북한연구가 시작된 이후 정치,경제,사회,군사학 등의 주변학문에서 분리돼 5∼6년전부터 독립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그러나 통일연구원 전현준 박사는 “북한은 우리 영토의 일부인데다 북한문제 역시 한국문제의 연장으로 인식돼 아직 독립학문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동국대에 국내 처음으로 북한학과가 생긴 것은 지난94년.또 소장파 연구자들의 총집결체인 북한연구학회가 탄생한 것은 96년이며,경남대에 북한학대학원이 개설된 것은 그 이듬해인 97년 10월이다.결국독립학문으로서의 북한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학계는 노·장·청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1세대의 경우 대개 보수·반북적 경향을 보여 왔는데 이는 이들이 대부분미국 유학파인데다 이북출신인 점과 무관치 않다.국내파로는 언론인 출신의양호민씨,김창순 북한연구소장,정용석 단국대 교수,민병천 전동국대 총장,김남식 전평화연구원 수석연구원 등과 해외파로 이정식(펜실베니아대)·고병철(일리노이주립대)·서대숙교수(전 하와이대·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등이 있다.2세대는 주로 미국에서 정치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50대들로 양성철 전국회의원,박재규 통일부장관,이상우 서강대교수,곽태환 통일연구원장등.소장연구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3세대는 학과·전공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이들은 96년 북한연구학회를 결성,북한연구의 다양성을 모색하고 있다. 학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강성윤 동국대 교수를 비롯해 유석렬·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통일연구원 전현준 박사,류길재(경남대)·정해구(성공회대)·강정구(동국대)·김영수교수(서강대) 등. 한편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냉전논리하의 보수 일색이던 북한학계는 90년대 들어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는 “사회주의 붕괴와94년 김일성주석 사망 이후 북한의 장래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쏟아졌다.그러나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체제에 큰 변화가 없자 이후부터는 보다 차분한 자세로 ‘북한바로보기’로 연구방향이 전환됐다.이 무렵부터 연구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영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연구자는 줄잡아 2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북한관련 박사학위논문은 98년 2월 현재 140편 정도다.국내에 북한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6곳이며,북한을 주제로한 일반·특수대학원은 경남대,동국대를 비롯해 10곳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연구는 정치학계가 중심이 돼 북한의 외교정책이나 대남전략및군사정책,주요인물 연구가 대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동안의 연구가주로 ‘대결’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민족의 동질성 모색에 초점을맞춰야한다는 지적이다.특히 언어,스포츠,예술,고고인류학 등 문화분야에대한 연구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유영구 중앙일보 통일문제 전문위원은“북한의 신문·방송에 대한 매체분석이 그동안 소홀했다”면서 “언론학계에서 전문적인 매체분석을 통해 북한의 정책동향이나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국가보훈 외면한 제2건국 없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물질지상주의,맹신적 지연주의,애국애족정신의 결핍,모함과 사이비가 판치는 혼탁한 우리의 현실에서,분단극복의 역사적 과제와 제2건국운동의 추진을 위해 진정한 민족공동체 의식과 민족정기의 함양을 바탕으로 한 국민통합이 절박히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문제해결에 큰 역할을 맡아야 할 국가보훈처가 ‘중장기보훈정책’을 제시한 것은 늦은 감은 있으나 매우 적절한 일로서 크게 환영하는 바이다.분단국이란 특수상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는 그 위상이나 예산·인력 등이 열악한데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성과를 바탕으로의욕적 발전방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이번 중장기 발전방안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시대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민족정기 함양과 보훈문화의 확산에 대한 접근이다.민족정기함양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국내외 독립운동 유적지를 비롯해 호국 시설물,사적지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조사와 활용계획을 수립한 것과 범정부적 추진체계를 마련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시한 것은 매우 의의있고 현실성있는 대목이다. 또 독립유공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포상하고 국가유공자 범위를 재조정해독립운동 관련 건국 포상자와 대통령 표창자를 새로 포함한 것과 전·공상군경의 부상 인정수준을 국제기준으로 상향조정하는 등 해묵은 민원을 적극수용한 것도 매우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아울러 참전군인들에 대한 생계보조및 의료지원,안장지원 등 체계적 지원시스템 마련,국가유공자의 노령화에대비한 의료및 복지시설의 확충계획,제대군인의 사회복귀 지원시책 강화계획등은 비록 충분하지 못한 수준이긴 하지만 단계적으로 꾸준히 개선하려는 의욕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발전방안에서 미흡한 점과 누락된 점이 있어 이를 지적하고,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국가유공자 및 유족의 예우에서 선진국 수준의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청사진의 제시가 미흡하다.이를테면 주택,건강,교육,취업,휴양,생활안정,그리고 품위유지 등 기본적인 생활영역의 전반에 걸쳐 선진국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을 구체적으로예시,이에 필요한 예산액을 제시해야 한다.그리고 그실현방안들이 단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둘째,중국·러시아 등 해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적극적인 본국이주지원 및 생활지원과 사적지 보존관리 등 해외보훈사업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이는 민족공동체의식 확산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이라는 차원에서도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셋째,현재 각 부처에 산재한 독립기념관,전쟁기념관,국립묘지 등 민족정기관련 시설들이 민족정기 함양사업의 활발한 추진을 위해 보훈처로 통합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흡하다.결론적으로 자칫 민족애와 정체성을 망각하기 쉬운 개방화시대에 국가유공자들의 애국애족정신을 확산하여제2건국을 성공적으로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지도층의 결단과 모든 국민의 의식전환이 절대로 필요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남현욱 세종대교수·행정학
  • 특별기고/ ‘相生의 정치’ 열어가야

    21세기를 맞이하여 처음 실시된 이번 선거 결과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구도로 나타났다.민주당은 충청,강원,제주에서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전국 정당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지만,영호남 사이의 철벽 구도를 허물지는 못했다.한나라당은 영남권을 석권하면서 과반수 의석에 약간 못미치는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이 결과는 양당이 전통적으로강세를 보여온 지역에서 의석을 대부분 차지하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전의 어느 총선 때보다 지역대결구도가 강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양당구도로의 재편은 15대 국회에서 보여주었던 여야의 극단적인 대립과 대결 양상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과거 국회에서보여준 것처럼 16대 국회가 원(院)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임기 초반부터 공전되거나 난항을 거듭하는 일이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여야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태의 발생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정상적인국회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성에 기초한 양당체제의 등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지역감정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의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무한경쟁의 21세기를 맞아 국내적으로 사분오열된 상태로는 국력의 결집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따라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상생의 국내정치를 이룰 수 있는 큰 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말아야 할 것이다.김대통령의 경우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앞둔 시점에서 내부적 벽을 허물지도 못하고 분단의 벽을 허물려고 시도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이회창 총재도 여야총재회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역감정 문제를 해소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 나타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제16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너무나도 크다.IMF 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중산층의 몰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새 국회는즉시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후보자 신상공개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납세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회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제16대 국회가 정치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신속하게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새 국회는 부정부패방지법을 제정하여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선거법을 원구성 즉시 대폭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과거처럼 선거에 임박해서는 여야의 극심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목적한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기가 매우어렵기 때문이다.새 국회는 IMF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장기실업자 문제와 청년실업의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7.2%로서 역대 총선거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냉소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새 국회는민생법안과 정치개혁법안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통과시킴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그렇지 못할 경우 이번 시민단체 활동의 활성화에서 보는 것처럼 제도정치권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110명 이상의 신진 의원들과 다수의 386세대들이 새 국회에 진출하게되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희망을 걸고 있다. 이들이 전문화와 정보화 시대인21세기에 발맞추어 폭로성 정치를 지양하고 분야별로 전문성을 확보하여 뚜렷한 정책적 소신과 비전을 갖고,파벌과 보스에의 맹종에서 탈피하여 당내민주화와 국회 활성화에 기여한다면 새로운 21세기형 정치를 새 국회에서도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金暎浩 성신여대 정외과교수
  • [외언내언] 김정일 위원장

    오는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마주 앉게 될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한 인물평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분단사상 55년 만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배경에는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긍정적 인식과 우호적인 평가가 바탕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이 북한체제의 실질적 통치자라는 현실인식에 기초해 그와의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해왔다. 지난달 28일 독일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북한에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94년의 제네바 핵합의를 지키고 있으며 미사일 발사실험 유보를 결정했다.나는 그가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김위원장이 판단력과 식견 등을 갖춘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64년 북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金日成)종합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73년 당중앙위원회 비서,74년 당정치국위원이 되면서 ‘당중앙’으로 불리는 북한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다.또 80년 노동당 6차당대회를 통해 북한 권력의 실질적인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김위원장이 북한 권력반열에 진출한 이후 ‘80년대 속도창조운동’ 등 속도전 방식의 동원형 부흥운동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음악과 영화를 비롯한문화예술 분야에서 기여한 업적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엄밀하게 보면 과거 남북 냉전체제 아래서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고 고의로 비하된 경우도 적지 않다.김위원장은 7세이던 49년 생모인 김정숙(金正淑)이 사망한 뒤 계모 밑에서 자라는 바람에 성격이 난폭하다는 평판을들어왔다.또 즉흥적이며 인정이 없다는 비판도 들었다.특히 군(軍)에 대한카리스마가 약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도 들어왔다.이같은 김위원장에 대한 인물평 때문에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위원장의 리더십과정치기반이 조기에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김주석 사망 이후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노련한 정치력을 과시했다. 핵(核)과 식량문제를 위기론으로 연결시켜 자신의 영향력이취약했던 노동당을 장악했으며 이어 군권(軍權)도 손에 넣고 막후통치를강화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과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국정지표를 통해 주민들의 불만과 체제동요를 극복하는 통치력을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정일위원장의 정치적 자질이나 대남인식과는 관계없이 그는 2,300만 북한주민들을 통치하는 최고통치자라는 점이다.오는 6월 그가 북한 최고권력자로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한반도 평화공존의 역사적 새 장(章)을 여는 성과를 이끌어내 주기를 기대하는 바다. 張淸洙 논설위원csj@
  • 남북 정상회담/ 4강의 반응

    *미국의 반응.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해빙의 시작’ ‘남북관계의 전환점’이라며 환영과 지지를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11일자 사설에서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늦기는 했지만 남북관계에서 희망적 해빙의 시작이 될 수 있다.이는 또 냉전의 마지막 군사적대치의 장에서 긴장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그러나 북한은 아직 위험하고 예측불가능한 만큼 한국은 정상회담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남북한간의 첫 정상회담은 분단 한반도의 관계를 개선하는 긴 과정의 중요한 한 조치로만 끝날 수도 있지만 동북아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고보도했다. 한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1일자 사설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지구상의 한 위험지역에서 미해결 상태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돌파구가 될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정상회담 성사는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이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햇볕정책이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정상회담에 너무큰 기대를 갖는 것은 아직 무리이며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통일이 금방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통일이 된다면 6월 정상회담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는 완만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남북한이서로 신뢰를 구축해나각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한국으로선 남북관계의 급격한 발전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여유를 가지고서서히 추진하다 보면 이산가족 상봉,편지 교환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일본의 반응. 일본 언론도 12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면서 현재 진행중인 북·일 수교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朝日)는 사설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북한의대남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포용정책’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요미우리(讀賣)도 “남북회담의 합의는 한·미·일의 3개국이 협조를 강화하고 북한에게 대화를 촉구해온 결과”라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종결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북한은 외교적으로 큰 전기를맞고 있다.북한측에서 보면 우선 대미관계를 개선한 뒤 일본,마지막으로 한국이라는 종래의 외교방침을 역전시켜 남북을 기점으로 대일,대미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 한다는 점에서 남북회담은 전략적인 전환이다. 그 배경에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재편하고 나아가 경제를재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 북한이 경제재건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인프라 정비,특히 에너지 지원을 한국측에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북한은 결단을 내리기 앞서 ‘한국은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켜봤을 것이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사이타마대 교수 정상회담 후속으로 총리급의실무적인 회담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정상회담이 1회에 그칠지 계속 이어질지 현재로선 불투명하지만 그 회담이 ‘결렬’이라든지 ‘실패’라든지 하는평가는 이를 것이며 북한과의 채널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황성기기자 marry01@. *중국의 반응. 중국의 언론과 한국문제 전문가들은 12일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가 한반도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역사적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남북한이 평화·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데 대해 환영과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新華)통신은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가오랫동안 남북한이 공동 노력,신뢰를 구축해온 결과로 긴장 완화라는 국제환경 및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추이잉주(崔應九)교수(베이징대학 조선문화연구소 명예소장)정상회담은 민족사와 동북아 국제관계사에서 크게 평가돼도 지나침이 없다.대결과 분단의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1961∼64년 북한 유학시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다녔다. 김 위원장은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안다. ●쉬바오캉(徐寶康) 인민일보 논설위원 남북한이 외부의 개입없이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실현,자주 평화통일에 큰 도움을줄 것으로 본다. ●장스화(張世和)교수(지린대학 조선·한국연구소) 정상회담은 시대조류에부합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과 안정이 확보돼 외국자본이 북한에 투자될 것이다.남북 양측에 말은 적게 하고 일은 많이 한다(少說多作)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을 전하고 싶다. ●브라이언 브리지박사(홍콩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정부의일관된 화해정책의 결실이라고 평가하고 남북관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정상회담까지는 2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고 남북관계의 여러 변수도고려해야 하는 만큼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린추산(林秋山) 박사(타이완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양측 지도자가 만나 화해를 도모하는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둬야하며 회담 성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김규환기자 khkim@. *러시아. 러시아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및 이에 따른 대외개방 움직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11일 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하며,자체 미사일 개발을 자국에 대한경제지원을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북한의 대외개방 움직임이 베를린 선언을촉매로 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외무부국장(한반도 담당) 북한이 전례없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채택,결단력과 선견지명을 보여줬으며 1년전부터 추진해온 자체 대외정책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했다.북한은 한국 총선에서 김 대통령의입지가 강화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 대통령이계속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게오르기 쿠나제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대학 부총장(초대 주한 러시아 대사) 정상회담 합의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추구해온 대북(對北) 정책에 부합한다.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간 나이차를 감안하지 않고 평양방문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용기와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 줬다.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두나라 국민들의 운명에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면실망도 클 수 밖에 없다.남북한은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국가이며이념적으로 다른 체제를 보유하고 있고 전쟁을 치른 적도 있는 등 모든 점등이 갑작스런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유리 바닌 러시아 학술원 산하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 남북 정상은회담을 통해 군사분야에서 38선내 군사긴장 해소와 안정,상호신뢰를 위한 방안 수립 문제를,경제적으로는 햇볕정책의 기조가 되는 경제협력관계의 실현방안을,인도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거론할 수 있다. 김규환기자
  • 남북스포츠교류 활짝/ (하)교류 약사

    남과 북은 정치성이 배제된 체육회담을 수차례 가졌지만 결국 정치 상황과궤를 같이해 스포츠를 교두보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던 국민들에게 기대와 좌절을 번갈아 안겨줬다. 최초의 체육교류는 1929년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개최된 서울과 평양의 축구인들이 벌인 ‘경평축구’.도시대항전이었지만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혼의 단결장’이 된 스포츠 제전이었다.이 대회는 46년까지 이어오다 남북이분단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두절됐다. 분단 이후 남북 체육교류는 냉각기가 지속되다 63년 1월 제59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권고안의 통과와 함께 스위스 로잔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회담을 가졌다.그러나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성과없이 끝났다.또 79년 2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 파견,84년 10월 서울올림픽의 북한 분산 개최가 논의 됐으나 북한의 보이콧으로 역시 무산됐다. 그러나 남북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공동응원단 구성을 계기로 스포츠교류에 급물살을 탔다.아시안게임 직후인 10월 11일과 23일 평양 5.1경기장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2차례 ‘통일축구’가 열려 분단이후 처음으로 한반도는 감동과 흥분에 휩싸였다.게다가 당시 고문자격으로 평양대회에 참가한 이회택 포철감독이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 이용진씨를 만나 한맺힌 눈물을 쏟아냈고 아버지 용진씨도 아들 생일상을 차려준 뒤 울음을 터뜨려이산가족의 아품을 온 국민이 되새겼다. 이듬해 2월 남북체육회담에서는 일본 지바 탁구세계선수권대회(4월)와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5월)에 단일팀 ‘코리아’를 구성키로 합의,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부추겼다.분단 46년만에 큰 결실이었다.특히지바대회에서는 김희진 북측 탁구협회 서기장이 7세 때 헤어진 남쪽 누나 김화진씨와의 ‘눈물의 상봉’,여자복식 파트너였던 현정화와 북쪽 리분희의‘눈물의 이별’ 장면은 남북이 ‘한핏줄’임을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 하지만 그 해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유도선수 이창수가 한국으로 망명하자 북한은 곧바로 남북 체육교류를 전면중단했다. 이후 8년동안 단절된 체육 교류는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민간차원의 노동자축구대회로 해빙 무드가 조성됐고 대북 경협사업과 연계해 지난해 9월와 12월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통일농구대회’가 열림으로써 마침내 남북정상 회담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놓게 됐다. 김민수기자
  •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LA타임스 기고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1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을 여는데 기여해 왔다며 미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다음은 그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간추린 것.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는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한반도 분단 이후남북한 정상회담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으며 남북한은 55년간 서로 상대를비난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전 발발 50주년에 즈음해 열린다는 상징적 의미외에김정일(金正日)의 공식적인 국제사회 데뷔 무대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남북화해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91년말 남북기본합의서,94년 김일성(金日成)의 남북정상회담 제의 등으로 희망이 부풀었으나 무산됨으로써 ‘획기적인’ 원칙들도 잊혀졌다.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몇년간의 외교활동,남한과 미국의 극적인 정책변화,고집세고 심술궂은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북한의타협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른 의미를 지닌다. 3년간 끝었던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94년6월 전쟁위기까지 갔으나 줄기찬외교노력으로 북한의 핵발전프로그램을 동결시켰고 이는 아직도 유효하다.북한은 97년 4자회담에 동의함으로써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닌 남한과 대화 거부라는 종전 입장을 버렸다.98∼99년 북한의 대규모 지하 핵시설 의혹 소동은 미국의 사찰 허용으로 마무리됐고 미국은 작년 9월 미사일 시험 중단 대가로 50년만에 대북경제제재를 완화키로 합의했다.북한정부는 최근 이탈리아와 수교 이후 독일,프랑스,영국,호주 등과 관계개선 회담을 진행하고 있으며고위급 대표단이 다음달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어느 역대 한국 및 미국 대통령보다도 정책 변화를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98년2월 취임식에서 북한과 능동적 화해 및 협력을추구하고 전임자들과는 달리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 시도를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김대통령은 98년6월 방미 때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한첫 한국대통령이었다.그는 북한에 양보를 요구하지 않고 식량과 원조품을 전달했다.그의 ‘햇볕정책’은 오랜 남북문제 연구와 지도자로서의 경륜 끝에나온 것이다. 김대통령은 아직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국전을 마무리한 사람으로서 이임하길 바라고 있다.이는 긍극적인 화해와 통일에 필수적인 전제요건이다.미국 정치인들은 김대통령의 이런 야심을 시기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그를지지하고 밀어줘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연합
  • 남북 정상회담/ 청와대의 밑그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청사진이 조금씩 제시되고있다.아직 전체적인 밑그림은 그려지지는 않은 상태이나 큰 골조는 세우기시작한 것 같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민족화합,상호불가침,교류협력의 3대 남북기본합의서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무력대치 상황을 전환할 한반도 평화의 틀을 구축하는 합의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고했다.또 남북 상호연락사무소 설치와 군비·병력 감축,올 시드니 올림픽 단일팀구성 및 2002년 월드컵 분산 개최,문화·예술분야 교류 등이 이뤄질 것임도내비쳤다. 김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특사교환 등 베를린 선언의 4개항을 주 의제로 다룰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렇게 볼때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분단 55년만의 첫 정상회담이라는역사적 의미를 살려 남북현안을 폭넓게 다룰 것임을 알 수 있다.한 관계자도“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김 대통령의확고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대통령의 기본 구상은 역시 평화체제로의 전환으로 보인다.한 고위관계자는 “평화체제의 큰 틀은 전쟁의 공포가 해소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상은 당연히 군비감축 논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윈윈정책’인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가 줄 것은 확실히 약속하고,대신 받을 것,즉 핵무기 개발,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하겠다는 의지다. 김 대통령은 이런 방안이 남북에 똑같이 이익이 되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있다.“긴장이 해소되면 IBRD(세계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북한 경제개발에 참여할 것이다.이런 외국인 투자는 우리 기업과의 공동진출 증가로 이어져 남북한 공히 증가할 것”이라는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의 설명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현재 진행중인 북·미 고위급회담과 북·일 수교협상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협상속도가 매우 빨라져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이발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 정상회담/ DJ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남북정상 회담의 성사를 통한 남북화해와 한반도 긴장완화 모색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11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회와 이전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을 요약한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져 민족의 화해와 협력 문제,한반도평화와 통일문제를 논의하게 됐다.남북간 오랜 적대관계와 그동안의 불신을생각하면 이번 합의는 참으로 민족적인 경사이다.나름대로 통일문제에 몸을바쳐온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도 감개무량하다.합의 소식을 듣고 뜨거운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성과는 우리 한민족이 신라통일 이래 1,300년 동안 통일국가를 이뤄온조상들의 음덕이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55년 동안의 분단 때문에 통일민족이 영원히 갈라설 수는 없지 않은가.이제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을 이루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지난 2년 동안 햇볕정책을 주장하고 추진하면서 일관성과 인내심,그리고 성의를 갖고 임했다. 마침내 햇볕정책에대해 북한이 그 진의를 이해하게 됐다.이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흔들림없이햇볕정책을 지지해주었기 때문이며,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또한 국제적으로도 모든 나라가 빠짐없이 평가하고 지지해 준 게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민족적 대과업이다.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으로 지원이 있어야 한다.당리당략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남북이 평화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나갈 수 있도록 이제부터 정부와 여야,국민들이 협력해 주길 바란다.(2000년 4월 11일 청와대 국무회의)□남북 문제를 풀어가려면 김정일 총비서와 대화를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없다.북한의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추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2월2일 도쿄방송 회견)□우리는 정상회담을 포함해 모든 남북회담에 대해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앞으로 남북 당국자간 대화,혹은 경우에 따라 정상간의 대화도 배제할 수 없을것으로 본다.(99년3월3일 KBS회견)□정상회담이 발표된 1994년 6월18일은 후일에 보면 우리 민족과 동시아의평화에서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남북정상이 만난다는 자체가 매우 중요하며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것이다.(94년 6월20일 아태재단이사장 시절 종교협의회 초청 강연)
  • 남북 정상회담/ 金대통령의 구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베를린선언 4개항의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합의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회담의 주 의제와 전망을 제시한 것이다.남북간 화해와 협력,경협,특사교환,이산가족 상봉이라는 4개항이 실현된다면 한반도는 급속히 냉전구도 해체의 분위기로 접어들게 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상회담 합의를 ‘민족적 경사’로 표현했다.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해 뜨거운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이제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장정에 들어갔다. 특히 실무진이 건의한 의제 외에 정상간의 합의라는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고 있다.한 핵심참모 역시 “30여년 동안 온갖 고초 속에서 일관되게걸어온 통일관이 실현되는 중앙에 서 있다는 것을 잘아는 김대통령이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불문가지”라고 말해 정상회담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짐작케 했다. 취임 이후 전개한 김대통령의 4강외교는 남북간 화해·협력시대의 도래에대비해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을 우군화(友軍化)한 측면도 없지 않다.그만큼주도면밀한 준비를 마친 상황이다. 특히 지난 94년 카터 전미대통령의 중재로 성사됐던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와는 달리 자주적으로 회담에 합의한 대목에 고무된 듯하다.이날 국무회의에서도 “우리 민족문제를 우리끼리”라고 유독 이 대목을 강조했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은 전 국민의 지지를 정상회담의 힘으로 삼으려는 것같다.총선이 끝난 뒤 전직대통령은 물론 여야 등 정치권과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으려는 데서도 이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다.특히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어쨌든 남북문제 해결의 최대 방안은 정상회담이라고 여겨온 김대통령으로서는 국민적 기대 만큼이나 전방위적인 교류·협력을 일궈내야 하는 부담도안고 있다.무엇보다 정상회담은 그가 구상해온 ‘3단계 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교류와 협력의 ‘남북연합 단계’로 가는 첫 코스다. 그런 점에서 정상회담은 3단계 통일방안의 실현여부를 가늠할 ‘데뷔무대’라고도 할 수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주목받는 'DJ통일관'. 남북정상회담 개최발표를 계기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통일관에 관심이쏠리고 있다.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은 햇볕정책의 시험대이자 김대통령 통일관의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무대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이 남북문제를 본격 언급한 것은 지난 71년 대선 때이다.김대통령은 당시 야당 대선후보로 ‘4대국에 의한 한반도 평화보장’ ‘남북간의 평화 교류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처음으로 제창했다. 그 뒤 72년 이를 토대로 이른바 ‘3단계 통일방안’을 최초로 제시했다. 동시에 남북한 기자교류,체육·문화 분야의 교류를 비롯,사회 각 분야의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평화통일을 실현하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브란트 서독수상의 동방정책과 같은 탈냉전의 국제조류와 달리 남과 북의 상황은 왜곡된 반공이데올로기와 혁명전쟁을 위한 ‘4대군사노선’으로 첨예한 대치를 이뤘다.당연히 김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정권의정치적 탄압수단으로 활용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도 김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우리 정치의 변화와 더불어 체계화되고 발전을 거듭한다.70년대의 통일관이 초기 구상단계로 싹을 틔운 시기라면,80년대는 발전기로 현실성을 불어넣기 위한 제도적 접근을 모색한 단계로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동시 UN가입 등이 실현되면서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이제시됐다.1단계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국가(남북한)의 협력관계를 제도화해 형식적 통합을 이룩하는 ‘남북연합’이며,2단계는 내정은 남북이 각각분담하고 외교는 연방정부가 담당하는 ‘연방단계’이다.마지막 3단계는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중앙집권제 또는 세분화된 연방제의 완전통일단계이다. 정부의 햇볕정책은 김대통령의 이러한 통일관에서 나온 정책적 산물이다.7·4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려면 북한당국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게 김대통령의 생각이었다.그 고리가 햇볕정책이었고,김대통령 스스로가 대화 주자로 나선 것이다. 양승현기자
  • [분단을 넘어 화해로](2)냉전체제 단계적 해법

    남북정상회담은 50년 동안 지속돼온 적대관계의 고리를 푸는 계기란 점에서무게를 갖는다.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적 대치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과 상호 의존적인공동 번영의 틀을 만들어 나가자는 게 정상회담의 주요 목표다.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이같은 방향의 냉전체제 해체문제는 이산가족상봉,경제공동체 형성방안과 함께 의제의 주요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주변 냉전의 틀을 벗겨보려는 시도가 다각적으로 논의될것임을 뜻한다. 이같은 문제들은 남북 최고 지도자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의 의미는 더욱 강조된다.진정한 화해를 위해선 남북은 내부 법령과상대방에 대한 인식변화를 필요로 한다.따라서 정상간의 만남은 내적 변화의계기와 추진력 제공의 전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어떤 결과를 일궈내든 냉전체제 종식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기대된다.정상회담에서 냉전의 틀을 벗기고 평화적 교류의 포괄적인 틀을 만든다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발전도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간경제교류의 경우,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당국간의 문제를최고위층에서 일괄적으로 논의,해결하는 틀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반도 냉전의 틀은 남북관계와 국제적인 차원에서 함께 접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주도 아래 이뤄진 북한에대한 한·미·일의 포괄적 접근,‘페리프로세스’도 같은 원칙 아래 진행됐다. 세계 각국이 지역적·기능적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며 공동 번영을추구해나가는 상황에서 국력 소모적인 군사대치의 냉전체제는 타파돼야 한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민족의 자존과 생존을 위협하는 냉전체제는 어떤 형태로든 극복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냉전체제해체 노력은 이미 남북간 화해와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란 두 점을향해 진행되고 있다.냉전시대와 달리,한국이 이 과정을 주도하고 미·일의대북 접근을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미국·일본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국교수립과 관계정상화를 진행시킨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남북한 차원에선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과 대결상황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자는 것이 큰 방향이다.대화를 재개하고 교류를 확대해 신뢰를 쌓아나가겠다는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의이행 등 과거 합의내용의 이행이 주 내용을 이룬다. 우선 과제는 전쟁위협과 불신 감소로 요약된다.첫 단계는 북한이 파기한 군사정전체제를 회복하고 대화통로를 재개하는 것이다.북한은 지하핵시설 등대량 살상무기개발 의혹을 국제적 검증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다. 두번째 단계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화해·군사·경제교류·사회문화·핵통제 등 5개 공동위원회를 가동해 실질적인 교류상황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 완화 등도 함께 병행된다.셋째 단계는 정전체제가 아닌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삼성, 평양서 전자제품展 추진

    삼성전자가 다음달중 평양에서 대규모 전자제품 전시회 개최를 추진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11일 “5월쯤 평양에서 종합 전자제품 전시회를 개최하고 싶다는 의사를 지난달 북한쪽에 보내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아직북한쪽으로부터 ‘OK사인’이 나지 않아 5월 성사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최근정상회담 성사 등 남북관계의 호전상황에 비춰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다는게 삼성측 판단이다. 성사만 되면 국내 업체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자사제품으로 전시회를 갖는것은 전 산업계를 통틀어 분단이후 처음이 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북한에 소니 필립스 등 외국산 제품이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국내업체들만 유독 브랜드를 내걸지 못하고 있어 기업과 제품 PR 차원에서 전시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북한과의 계약에 의해 컬러TV 등의 임가공에 들어가 다음달 10일쯤 1차로 북한 ‘대동강TV공장’에서 생산된 컬러TV 160대 시제품을 들여온 뒤 다음달말 2,000대로 물량을 확대해 본격적으로 국내 판매에 돌입할 계획이다. 박홍환기자
  • 4·13총선 D-1/ ‘정상회담’ 변수… 票心 이동조짐

    4·13총선을 이틀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이 막판 최대쟁점으로 급부상함에 따라 일부 경합지역의 당락을 가를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전체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1일 여야 각당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접경(接境)지역인 경기 서북부 등 수도권 일부와 강원도에서 민주당후보의 상승세가 감지되고 있다.호남권에도 영향을 미쳐 일부 무소속후보에게 뒤져 있던 민주당후보들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은 민주당, 한나라당,자민련후보가 치열한 3파전을 벌이는 지역구를중심으로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반면 한나라당 우세지역인 영남권은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여야는 이날 수도권 등지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정과 대북이면합의 여부,발표 시점 등을 놓고 전날에 이어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정상회담 실현 및 향후 성과에 대한 대승적 차원의 접근을 촉구했다.이인제(李仁濟) 선대위원장은 안양만안 정당연설회에서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각 정당이 정파의 이익을 떠나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한길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번 회담은 50년만에 도래한 평화정착의 최대 기회이자 분단과 6·25 이후 민족사의 가장 큰 갈림길”이라고 야당의 자세전환을 주문했다.‘총선용’ 주장에 대해서도 “이런 중대한 문제일수록 선거 전에 알려 국민들의 의견이 투표에 반영되도록 하는 게 옳다”고 반박했다. 이에 한나라당,자민련,민국당 등 야3당은 일제히 지도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용 정략’으로 규정하고 발표시기 및 이면거래 가능성에 대한 진상공개 등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모든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면서도 “그러나 정상회담 합의는 명백히 선거용 정략일뿐 아니라 합의 배경과 내용에 있어서도 수많은 의혹과 문제점이 있다”고말했다.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도 “이번 회담은 결국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한 김정일(金正日)의 위상을 높여주고 북한의 체제선전에 이용될 수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이날 국회에서 양당 선대본부장 접촉을 갖고 총선이끝나는 대로 합의추진과정 및 이면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규명키로 하는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채택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후보등록과 함께 시작된 공식선거운동은 12일 밤 12시에종료된다. 한종태기자 jthan@
  • 남북 정상회담/ 적막한 판문점에 고향 꿈 심어

    “이 길로 내 고향 영변까지 내달렸으면 좋으련만,그리고 돌아올 때는 약산에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 안고 오고 싶어.” 11일 판문점을 견학하기 위해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안의 평안남도부녀회 회원 71명은 고향이라도 가는 듯 들떠있었다.고향이 있어도 가보지 못하고 어느덧 할머니가 돼버린 이들에게 전날의 남북정상회담 소식은 수없이 꿈속에서 소리쳐 본 통일의 메아리로 들린다. 할머니들은 버스 안에서 ‘고향의 봄’‘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불렀다.모란봉,진남포의 금제련소,흥남 부두,광량만의 질 좋은 소금,평양한복판에 우뚝 섰던 화신백화점….할머니들의 고향 얘기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버스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들의 표정은 이내굳어졌다.철책선과 적막을 깨는 북한의 선전방송은 할머니들의 가슴을 얼음장으로 만들었다. 남쪽 자유의 집과 마주 보고 있는 북쪽 통일각,대성동 마을에서 펄럭이는태극기와 기정동 선전마을에 높게 게양된 인공기,판문점 회담장 건물 사이를가로지른 노트북 컴퓨터두께의 콘크리트판을 사이에 두고 얼어 붙은 듯 서있는 남과 북의 병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분단의 현실을 대변한다. 판문점 견학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인 제3초소. 북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김경옥(金景玉·65)씨의 흰 머리카락이 휘날렸다.“아버지는 숨을 거둘 때도 ‘네 고향은 강동이다.평양에서 50리 떨어진 강동이란다’라며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어요.이 바람이 강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닐는지요.”김씨는 충혈된 눈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 너머북쪽 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은 희망을 접지 않았다. 군사회담장의 테이블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전화선을 만지작거리던 송경복(宋敬福·72)부녀회장은 “이까짓 전화선 하나를 못넘고 죽을 순 없지.정상회담에서 아무래도 큰 선물이 나올 것 같아”라며 활짝 웃었다. 4남매를 모두 실향민 집안과 결혼시킨 평남 성천 출신의 오보길(吳寶吉·70)할머니는 1·4후퇴 때 흥남에서 내려온 안사돈 최금순(崔金順·65)씨와 두딸,두 며느리를 모두 데리고 판문점에 왔다. 오씨가옆자리에 앉은 최씨에게 “사돈의 칠순 잔치는 흥남에서 해야지요”라고 말하자 최씨는 “제 칠순은 서울에서 지낼지 몰라도 사돈의 팔순 잔치는 꼭 성천에서 하게 될 겁니다”라며 오씨의 손을 꼭 잡았다. 3시간의 짧은 견학을 마친 할머니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북녘 땅에서 자꾸멀어졌다.하지만 할머니들의 마음은 통일이 돼 고향을 달리고 있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 정상회담/ 올브라이트 美국무 CNN회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출연,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을 수락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정상회담 자체가역사적으로 중요한 첫걸음으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주디 우드러프 앵커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일문일답을 간추렸다. □남북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돌파구로 생각하는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남북대화를 권고해왔다.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관건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를 위해 남북한 관계자 및 일본과 논의를 해왔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물밑 노력이 진행돼 왔다는 얘기인데 왜 북한이 이를 수용했다고 보나. 북한은 폐쇄된 사회라 왜 이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때부터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북한이 경제 난관을 타개하고 지원을 더 얻기 위한 하나의 책략으로 정상회담에 동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북한의 경제가 어렵고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은 역사상 중요한 첫걸음으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북한의 의도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 파악할 수있다고 본다. □수주내로 미국서 북미당국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선례를 따라 미국에서북미간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고위급 회담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북한이 언젠가는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 개발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북한이 일단 한가지는 실행했다.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영변 핵프로그램도 합의된 틀안에서 동결됐고 금창리 핵사찰 방문도 5월 이뤄질 것이다. □북한을 불투명한 폐쇄사회라고 했는데 김정일(金正日)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우리 모두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나는 그의 인물됨을 김대중 대통령과 실제 정상회담을 할때 알게 될 것으로 본다.그러나 정상회담은 진일보한 것이다.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우리는 협상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상기할 점은 대북관계를 둘러싸고 한·미·일 삼각공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김 대통령은 늘 우리와 접촉해왔고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과도 긴밀한 협조를 유지해왔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美國의 시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남북정상회담 발표에 즉각 환영 성명을 낸 미국은향후 한반도에서 전개될 상황을 다각도로 계측해보고 있다. 10일 오전 이례적으로 환영의 성명을 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두 정상의만남을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표현하는 등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역시 “한반도 평화정착에 남북정상의 만남은관건이었다”며 그동안 한국정부를 비롯한 일본정부와의 긴밀한 외교 공조노력의 결실로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또 미국이 그동안 추구해온 핵확산 방지와 대량살상 무기개발저지 노력이 미국내 정책테이블 위가 아닌 이념대결로 지구상 가장 뜨거운 한반도 한복판에서 해결의 실타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98년 8월 북한의 신형미사일 발사실험과 11월 금창리지하 핵의혹시설 등 잇따른 의혹에 ‘북한위협감축법안’과 ‘북한미사일 방어망실험법안’을 제출,북한유화정책에 제동을 걸며 강공을 주장해왔던 공화당측에 입막음할 기회를 남북정상회담에서 얻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초부터 일관되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이 주효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로서도 오랫동안 북한에권고해왔다”며 미국측 노력을 은근히 강조한 점도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한반도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성명을 내 클린턴 행정부를 공박하던 벤저민길먼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공화·뉴욕주)은 이번에는 아직 아무런 성명도 내지 않고 있다. 분단 이후 이뤄질 사상 첫 정상회담이라는 의미에 주목했던 미국의 시각은곧이어 과연 이번 회담이 어떤 주제를 다뤄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로 옮겨지고 있다. 단번에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된다는 성급한 기대는 자제하면서도 미국으로서는 일단 상호존중 태도의 확인과 대화유지에 따른 화해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에는 확신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디려는 의도를 보였고 한국의 진정한 평화노력의 의도도 인식한 것으로 보여진 만큼 92년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이 다시한번 강조돼 상호신뢰가 더욱 깊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이와함께 남북경협을 둘러싼 실질적인 화해협력이 최근 미국과 진행되고 있는 경제제재 완화 내지는 더 나아가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과연 남북회담 이후에 요구될 단계는 어떤 것인지도 관심을 갖고 있다. 고위급회담이 테러지원국 명단제외에서 제동이 걸려있는 와중에 북한은 이보다 훨씬 비중있는 남북대화로 단계를 높였기 때문이다. hay@
  • 남북 정상회담/ 특별좌담

    오는 6월 분단 반세기만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11일 정치·외교·경제전문가 등을 초청,이에 대한 의미와 전망 등을 집중 점검하는좌담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와 전망,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 가능성,남북한 경제협력과 공동이익,한반도 주변정세에 끼칠 영향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좌담에는 강만길(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와 강정모(姜正模)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치외교학과교수가 참석했다. □강만길 이번 남북정상 회담 합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지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4자회담이니 6자회담이니 여러가지 방법이 시도됐지만 이번만큼은 한반도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춧돌을 놓았기 때문입니다.외세를 배제하면서 월남과 같은 무력통일도,독일과 같은 흡수통일도 안된다는 차원에서 수립된 포용정책,즉 적극적 화해정책이 열매를 맺은게 이번 정상회담 성사인 것입니다. □임혁백 그렇습니다.94년정상회담 성사는 사실 외세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당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서울 불바다 발언 등으로 고조된 위기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 결과였습니다.이번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응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습니다.기본적으로 김정일 체제는 유훈(遺訓)통치체제입니다.모든 것이 김일성(金日成)의 유훈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분단과 냉전의 해체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라는 것이 김일성의 유훈이었습니다.그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 체제를 굳힌 결과,자신있게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강정모 북한에게 남한과의 정상회담,즉 정치·경제·문화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문제 때문입니다.인민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정권에 무슨 힘이있겠냐는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현 정부가 그런 사정을 잘 파악한결과로 볼수 있습니다. 서해교전,잠수함 침투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일관되게 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남북간 신뢰 관계가 공고해졌습니다.특히남북 경제공동체라는 틀 속에서 협력을 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물론, 국방비등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진 것도 북한이 정상회담에 합의한 계기라고 봅니다. □강만길 이번 정상회담은 동북아 냉전체제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건입니다.현재 한·소,한·중 관계는 정상화됐지만 북·일,북·미 관계는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북·일,북·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관계가 화해분위기로 돌아서야 완전한 냉전체제의 해소가 이루어집니다.남북관계는 이를위한 연결고리입니다.이런 점에서 북·일,북·미관계 호전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우리의 민족적 문제를 우리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입니다.지금까지는 주변 국가의 대북정책에 따라가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남북문제가 앞서 해결되고 북·일,북·미 관계가 뒤따라오는 구도로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한반도가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를 해소함으로써 비로소 세계평화,동북아 사회에기여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혁백 좋은 지적이십니다.그동안 북·미 관계에서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사가 있더라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아무래도 북한보다는 한국이 중요한 때문이지요.그것이 국제구도의 틀이었습니다.한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굳이 한국의 결정권을 침해하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그래서 북·일,북·미의 관계 개선이 지연됐던 것이지요.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에 그러한 심리적 장애를 제거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모두 이 지역의 냉전구도 해체를 원합니다.물론 통일된 한국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경쟁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도 냉전구도 해체는 모두에게 이익입니다.단적으로 동아시아 시장 형성을 막아온장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이는 동북아 철도망 연결,비행항로 개설 등 물자수송 장벽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현 정부의 평화체제 구축 정책이주변국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통일한국 건설’보다는 ‘냉전해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강정모 경제적으로 봐도 세계는 지금 지역 경제협력의 방향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북미의 나프타(NAFTA)나 유럽연합(EU) 등은 각각 49%,62%의 역내의존도를 보이는 반면 동북아는 29%에 불과합니다.왜 역내 의존도가 낮은가하면 냉전체제 지속과 북한의 폐쇄주의 때문에 교류협력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탓입니다.북한이 개방으로 가면 동북아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강만길 회담성사에 제일 조급해지는 사람들은 역시 이산가족들이지요.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문제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됩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것도 안된다’ ‘남북대화도,비료를 주는 일도 안된다’는 식으로 가서는 안되지요.이는 당사자들도 이해를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정부 대북정책의 장애가 된다는 것은 이산가족 자신들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순리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인정적인문제인지라 거론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냉철하게 다뤄야 합니다. □임혁백 이산가족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인권·인도적인 문제로 해결돼야 한다는데는 동감하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지금까지 이산가족 교류가 제대로 안된 것은 북한 체제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때문에 이는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냉전체제가 해체되더라도 단숨에 해결되지 않습니다.따라서 그때까지는 현실적인입장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안되면 모든게 안된다는 식의 접근방법은 버려야할 것입니다.오히려 어떤 시점에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할지에 대해 세부전략을 세우는게 중요합니다. □강만길 우리는 기나긴 통일여정의 첫걸음에 들어섰습니다.그 지향점은 ‘비흡수 평화통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닙니다.이를 위해 첫단계로 정착시켜야 할게 평화공존 체제입니다.이를 위해 가장중요한게 기간을 길게 잡고,인내해야 하고,타협과 호혜의 원칙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입니다.우리 국민의 통일의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정부는 우리의 통일교육의 방향을 지금의 대결의식의 틀이 아닌 호혜의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또 걱정되는 점은 정권이 바뀌면 통일·대북정책이바뀌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이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될 것입니다. 현 정권이 있는 동안 적극적 화해 정책이 최대한 정착돼야 합니다.그런 면에서 이번 발표 시기를 총선에 결부시켜 문제삼는 것은 대단히저(低)차원적인 안목입니다. □강정모 그런 소모적인 논쟁들은 남북통일,국가 단일 공동체로 가는데 있어떨쳐버려야 할 일들입니다. 남북한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서로 공동체로서 이익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사실 남북한은 양보가 필요없다고 봅니다.서로 물러서지 않아도 많은 이익을 얻게 돼있는데 무슨 양보가 필요하겠습니까.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당국자와 주민간의 상호 신뢰입니다.서로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의논해 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임혁백 전술·전략적으로 협상의상대방이 이야기한게 과연 지켜지느냐는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이를테면 야당이 집권을 했을 경우,현재의 대북 햇볕정책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 같으면 북한이 협상할리 없습니다.진지한 협상 상대로 인식하도록 하려면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초당적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세계사적으로는 냉전 종식,민족사적으로는 분단 해체라는 이 역사적 상황을 앞두고 여야 구분없이 지지를 보내서 우리 당국자들이 좋은 위치에서협상을 할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강만길 우리는 갑자기 오는 통일을 지향하지 않습니다.서서히 단계적으로오는 통일이어야 합니다.아마 후세의 역사가들이 남북합의로부터 통일이 시작됐다고 말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이번 회담 합의는 남북합의서 교환이래 두번째로 온 통일의 기회입니다.우리가 지향하는 화해통일에 최대한 접근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임혁백 남한·북한과 대만·중국을 예로 들겠습니다.남북한은 고위수준에서 상당히 많은 대화를 했지만,교류·교역·여행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있습니다.반면,대만과 중국은 대화는 없는데도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교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결국 우리는 대화는 많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다는것입니다.이미 우리는 남북 기본합의서라는 훌륭한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때문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더 이상 원칙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구체적인 성과,즉 이산가족이나 사회간접자본 연결 등 실질적인 문제를 토의해야 할 것입니다.남북화해는 우리가 IMF를 돌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신발·섬유산업에서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며 사회간접자본(SOC)개발로는 중동특수를 넘어서는 성과가 가능합니다.북의 토지와 인력에 남의 자본과지식이 혼합되면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동시에 당장의 이익 확보보다는 통일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의 접근도 필요합니다.북한이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 이르도록 협력하는 것이 향후 통일부담을 감소의 관건입니다. □강정모 남북관계의 가장 큰 틀은 공존체제입니다.공동번영과 균형발전이공동체의 핵심입니다.하지만 쉬운 것부터 시작해 서로에게 이익이되는 것을우선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양쪽의 사회기반시설을 속히 연결해야 합니다.외국이 북한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또 북한이 식량사정을 개선할수 있도록 농업을 살리고 경공업을 육성해야 합니다.다행히 우리의 산업 사이클이 경공업을 다른 나라로 넘겨줘야 하는 시점입니다.그런 산업구조를 북한에 넘기고 철도·도로·통신·에너지·전력만 연결시키면 여기서 오는 경제이익은 계산할 수 없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정리 김태균 이지운기자 wind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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