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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오마니! 살아계셨군요”

    고희를 넘긴 할아버지(張二允옹·71)가 북녘에 109세 ‘오마니’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 온 국민이 함께 눈물지었다.27일 8·15 방북 이산가족 후보자의 북쪽 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남북 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낀다.각기 월남해서 재혼한 후따로따로 가족을 찾은 부부, 북쪽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을 찾은 남편의 남쪽 아내 등 어느 것 하나 가슴 찡하지 않은 사연이 없다.더욱이 피붙이 모두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는 사람들의 애절함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지난 반세기 동안 쌓인 이 한(恨)을 남북 당국은 옷깃을 여미고 엄숙히 풀어 주어야 할 공동책무를 지고 있다.이 과정에서 양쪽 당국은 이산가족 문제를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인도적 입장에서 접근해야한다.이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대원칙이다.이번에 가족의 생존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할 비운을 겪게 될 이산가족들에게도 이 원칙은 적용되어야 할것이다.즉 남북이 100명씩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방문대상에서 탈락할 남쪽 26명과 북쪽 96명의 이산가족들도 방문단에 포함되도록 양측이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29일부터 남북 장관급회담이 예정돼 있기에하는 제언이다. 그러나 정부나 대한적십자사 등 우리측 관계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이산가족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협상 상대인 북한과 조용한 물밑 대화로 상봉단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타진하되 앞서가는 언행을 삼가야한다는 뜻이다.나아가 상봉단 선정과정에서 투명한 기준을 미리 세워 행여불필요한 잡음으로 이산가족의 가슴에 이중으로 못을 박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야말로 남북관계 현안 중에서 최우선과제임이 분명해졌다. 특히 고령 이산가족들의 상봉은 더없이 절박한 과제임이 재확인됐다고 본다.이들은 자연적 연령으로 보아 조만간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이번에 60대가 주류인 북쪽 후보 가운데 21명이 남쪽의 생존 부모를 찾은 반면 70대 이상이 대다수인 남쪽 후보 중 장이윤 옹만이 북쪽 노모를 찾은 데서도 알 수 있다.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협상을 서둘러야 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오는 8·15에 서울과 평양에서 각기 100쌍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 한반도는 또 한차례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남북 당국은 그러한 일회성 이벤트가 최소한 면회소 설치나 정기적 방문 등으로 제도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산가족의 한을 풀기 위해 남북 당국이 호양의 자세로 협상을 서두르기를간곡히 당부한다.
  • 남북 “국제무대 협력” 합의

    지난달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평양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대결외교’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화해외교’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방콕에서 남북 외무장관이 분단 이후 사상 첫 회담을 가졌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는 주중 남북 대사가 북한대사관에서 처음으로 회동,앞으로의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이날 오후 백남순(白南淳)북한 외무상과방콕 쉐라톤호텔에서 40분간 만나 국제무대에서 남북이 상호 협력하는 것을골자로 하는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이 장관은 ▲남북 재외공관간의 상시 협의 채널 구축 ▲유엔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에서의 외무장관회담 정례화 및 협조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ADB),아·태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기구 가입 지원 등을 제시했다.또 북한과 미·일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지원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백 외무상은 “앞으로 이같은 남북 협력 사안에 대해 의논해 나가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 장관은 백 외무상에게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백 외무상은 미사일 개발은 평화적인용도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배석했던 당국자가 전했다. 백 외무상은 오는 9월 유엔 밀레니엄 총회때 외무장관회담뿐 아니라 만찬과오찬을 함께하자는 이 장관의 제의에 대해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했다고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앞서 이날 오전 권병현(權丙鉉)주중 한국 대사는 다음달 7일 이임하기 앞서주중 외교사절단 단장인 주창준(朱昌駿)북한 대사를 예방, 이임 인사를 했다.주중 한국 대사가 북한대사관 내로 태극기를 단 승용차를 타고 들어간 것은처음이다. 이날 권 대사가 “전세계 남북 대사관끼리 대화 협력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자 주 대사는 “남북 정상이 만났는데 우리들이 못만날 일이없으며 다른 대사관도 나와 같은 권한을 가졌으므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주 대사는 “통일되면 대사관을 같이 쓸 수 있다”고 말했다.주 대사는 88년 9월부터 주중 북한 대사로 있는 외교 실세로 알려져 있다.한편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한·중·일 외무장관은 이날 6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지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했다. 베이징 김규환 방콕 오
  • 정보공개법 개정 공청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범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막연하고 모호한 정보공개법상의 비공개 규정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26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열린 ‘정보공개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국익이나 공익,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을 내세워 국가기밀 사항을 지나치게 넓게 설정하거나 정보공개를 회피해서는 안되며 국가정보원에서도 일부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제 발표에 나선 성낙인(成樂寅) 서울대 교수는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많은 문제점을안고 있다”고 전제한 뒤 “현행 정보공개법상 정보공개는 청구권자의 요구에 의해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정보를 소극적으로 공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이어 “정보공개를 청구하기 이전에 공공기관이 홈페이지 등을이용해 스스로 정보를 공개,적극적으로 국정의 투명성을 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가기밀사항,비공개사항의 범위를 축소하고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한 기관의 관련 정보라도 공개가 가능한 것은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공개법 개정과 운영방향’이라는 발표를 통해 ▲인터넷을 통한전자정보공개 활성화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는 원칙 설정 ▲비공개 정보의 범위 구체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직위·직무수행 관련 사항 공개 ▲정보공개의 절차 간소화 ▲정보공개 감독·권리구제 기구인정보공개위원회 도입 등을 주장했다. 최여경기자 kid@
  • [외언내언] 남북해빙과 휴전47년

    지금 우리민족은 6·25전쟁에 따른 값비싼 피의 희생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세계에서 가장 긴 휴전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3년1개월 이틀 동안 한반도전역을 뒤흔들었던 한국전쟁이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으로 정지상태에 들어간 이후, 지난 47년간의 휴전역사는 도발과 대결로 얼룩진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휴전협정 47주년을 맞으면서 남북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하루속히 마련하는 일이다. 남북해빙 무드 속에서 맞는 올해 휴전협정일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분단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에서 이끌어낸 6·15 남북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휴전선에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40여일간휴전선에서 대남체제 비판과 중상·비방 방송을 일제히 중단했으며 서해상에서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는 등 휴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또 내부적으로도 휴전협정 조인일을‘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제정해 체제유지와대남전략으로 이용해 왔던 정치행사를 올해는 취소했다.북한이 지난 10년 동안 개최해 왔던 대표적 대남전략 행사인 판문점 범민족대회도 올해는 중단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29일부터 서울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이 개최됨으로써 남북공동선언의 구체적 실천조치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군사 핫라인 설치를 비롯,휴전선 공동방제작업 실시 등 휴전선상의 냉전구도를 해체하는 획기적 조치도 예상된다.정상회담을 계기로 지난 반세기동안 대결과 반목으로 얼룩졌던 휴전선의 긴장이 급속히 화해분위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실감하며,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가시적 성과로이해된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두 정상은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통일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6·25전쟁 50주년 기념사를 통해“남북간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긴장완화와 불가침 등 평화를 위한 조치에 적극 협의해 나갈것”임을 밝힌 것도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현실적 대안으로 이해된다.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 속에서 맞는 휴전협정 47주년을 기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47년 동안 계속되는 소리없는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민족적 노력을 적극 경주해야 하겠다. 장청수 논설위원 csj@
  • 특별기고/ 남북이 함께 변하지 않고서는

    분단 55년 만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40여일이 지났다.6·15공동선언은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때와는 달리 후속적인 실천이 뒤따르고 있어 실효성이 가시화되고 있다.상대방에 대한 호칭의 변화,상호 비방 중단,6·25행사 취소,8·15상봉 이산가족 명단 교환,남북한 각료회담 북한측 대표의 서울 방문 등 매우 전향적인 진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부터 보여준 파격적 언동을 두고 남한 내에는‘감동’과‘경계’의 두 흐름이 있고,이른바 진보와 수구세력 간에 논쟁도 있지만 반세기 동안의 대결을 접는 일대 전환기에 그만한 갈등은 있을 법도 하다. 분명해진 것은 김정일 위원장 내지 북한에 대해 부정 일변도의 언론만 접해온 남한도 이제는 균형감각을 갖고 대북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중론이다.종래의 냉전적 사고에 입각한 편견과 적개심을 그냥 두고서는 민족화합의 새 시대를 불러들일 수 없다.북측이 변화되기를 우리가 바라듯이 우리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남북한 어느쪽도 상대방을‘적’ 또는‘반국가단체’로 본다는 것은 피차 간의 공존,교류·협력,평화 정착,나아가서 궁극적인통일을 저해하는 사고방식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남한은 이미 평화애호국가만을 회원국 자격으로 규정한 유엔에 북한과 동시 가입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양측은 각기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인정했고 서로 체제를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마침내는 양측 정상이 직접 만나서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북한을더이상 반국가단체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 변화를 거듭 공식화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따라서 국가보안법상(또는 그 해석상)으로만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으며,지금까지의 대북정책과 남북교류를 스스로 반국가적 범죄라고 자인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법률을 정리함으로써 국가정책과 실정규범 사이의 모순을 입법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세상에는남한식 체제와 북한식 체제만 있는 것도 아니고,제3의 체제도 얼마든지 있다.어차피‘평화통일’은 남과 북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만큼 합의접근이 가능한 모든 길을 모색하고 넓혀 나가야 하며,어느 한쪽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분단국가에서 어느 한쪽의 완승은 다른 한쪽의 항복을 의미하므로 합의에의한 평화통일과는 상치되는 욕심이다. 분단 55년 동안에 악화된 대결상황과 불신감정을 남북정상의 첫 만남에서모두 해결할 수야 없지 않은가.6·15 남북공동선언만큼의 합의도 놀라운 성과임을 온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터이며 남북간의 전쟁억지와 평화보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만도 대단한 성과임에랴. 남북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는‘초당적 협력’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차별성부각에 집념한 탓인지 정쟁적 의도가 밴 언사들이 더러 부침하고 있다. 물론남북문제를 놓고 여야 각계에서 한 목소리만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민족 대화합이라는 역사적 과제 앞에 그릇된 자기 계산에만 끌리는협량(狹量)은 다같이 경계해야 하며,더구나감정적 대결을 부추기는 언동은피차 삼가야 마땅하다.진정 민족의 화합과 번영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승 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 [네티즌 이슈]북한 신드롬

    * 반공교육이 심했다고요?. 일단 ‘학력고사세대’라고 한정을 해놓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봇물처럼 터져나온,그리고 터져나오고 있는 옛날 반공교육 이야기.‘똘이장군을 보면 돼지로 변하는 김일성을 보고 자랐다’,‘북한주민은 다 붉은 늑대인줄 알았다’ 운운.결론은 언제나 격세지감이고,그것으로 끝이다.물론 그렇게 자라기는 했다.하지만 그렇게만 자라지는 않았다.순도 100%의 치기였지만,중학시절 우리는 소련보다 미국을 더 싫어했으며 그 몇 년 후 88올림픽때는 일본이 아닌 중국을 응원했다.그랬다,동정이든 연민이든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말하자면 공산주의국가’인 북한을 ‘더’ 좋아했다. 옛날 이야기,다 과장이고 엄살이다.문제는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격세지감이고,더 큰 문제는 내용없는 북한신드롬이다.세상 많이 달라졌다.맞다.하지만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형태’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국제 자본주의 질서가,분단 모순이,남한사회의 구조악이 달라진 것은아니다. 그래,김정일 팬클럽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세상이다.문제는 그 팬들이 김정일의 저작인 ‘주체사상에 대하여’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철폐논의도 마찬가지다.물론 공평무사한 ‘인권’ 문제가 첫 번째지만,더 본질적인 것은 그 법의 철폐를 통해 이뤄내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명이다. 이제는,옛날 말로 본격적인 선전과 선동을 할 때다.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말하지 못했던 남한사회의 구조적 모순을,그리고 그 모순의 해결 방법을, 그구체적인 해석과 실천의 대안을 공공연하게 선언할 때다. 학자는 도서관에서나오고, 이른바 자유기고가는 장당 5,000원의 제도권 일간지에서 나오고,학생은 읽다가 만 ‘공산당 선언’을 다시 뒤적여야 한다.스스로 자멸하고 있는 극우언론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나,군사정권시절의 난센스를 가지고 술안주를 삼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자기만족밖에 안된다.게바라 티를 입고 술에취해 한남동 사거리를 질주하는 가출 청소년과 무엇이 다른가. 김정일 팬클럽에는 김정일이 들어 있어야 한다.국가보안법 철폐나 반 극우언론 운동에는 새로운 세상이 들어있어야 한다.북한과,남한의 이른바 진보적지식인들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negative-sum game밖에안된다. 화장실에서 웃고 있는 명민한 자본주의가, 그 남한사회의 구조악이보이지 않는가. 김형렬 웹진영화 필자 pissed@chollian.net. *바로잡음과 상호신뢰. 몇 년 전의 일이다.어느 날 뉴스를 보고 있는데 북한의 기아문제를 특집으로 방영하고 있었다.그리고 이 뉴스를 같이 보던 독일친구가 물었다.왜 저지경이 되도록 북한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말이다.그리고 잠시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았다.결국 독일친구도,나 역시도 북한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서로 놀라워 했다.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왔다.그리고 그 다음에 남한에는 김정일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김정일에 대한 호의적인 언론이 주류를 이루었다.이 현상은 결국 남한이 북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한정보를 일부 기득권층이 독점하고 일반대중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아 왔다.얼마전 어떤 신문 만평에 김정일이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사람들이 보면서 ‘어,뿔이 안 달렸네’하고 놀라는 모습을 그렸다.이것이 김정일신드롬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들이 있다.우선 너무 앞서나가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그 다음은 지금 이 상황에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발목잡기를 주로 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데 지장을 주었던 세력이다.이들은 다양한 통일논의를 거부하면서 자기주장만 옳다고 말하고 있다. 그 사람들의 주장을 근 50년 동안 들어왔지만 그게 올바르다면 뭔가 달라졌어야마땅했다.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몇 년 한 것에 비하면 뚜렷한진전을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북한과 어떻게 마주앉아 협상해야 하는지를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유·무형의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물론 비관적인 사람들도 있다.문제는 상대를 인정하고 신뢰를 갖는 일이다.통일은 사회적인 통합까지 끝나야 완성되는 것이다.독일은 통일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동서독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이탈리아는 통일된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남부와 북부 간에 반목과질시가 있다. 통일후 통합에 이르려면 수많은 난관이 있다.이를 위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그리고 이 모든 근거는 상호주의가 아닌 상호신뢰이다.북한 역시 통일을 할 대상이 아닌 통일에 같이 참여해야 할 주체로 인정하는 ‘바로잡음’ 없이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뿐이다. 이기현 독일 유학생 haetgue@hanmail.net
  • 美-日 교포 상공인등 500명 방북 추진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과 일본 등 세계에서 활동중인 한인 상공인들이오는 10월말 판문점을 통한 북한방문을 추진하고 있다.이 계획이 성사되면분단 이후 조총련을 제외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동포 상공인 방북이 된다.한인 상공인 방북준비위원장인 김상호 전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KACCIF) 회장은 22일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원 500여명이 10월29일부터 사흘간서울에서 열리는 총회를 마치고 31일 판문점을 거쳐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준비위는 현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등 북한당국 요로에 평양방문을 타진하고 있는데,김위원장은 “북한당국의 요청으로 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방직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위원장은 “세계에 흩어져있는 한인 상공인들이 남북 화해시대를 맞아 평양에서 북한을 돕고 한인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방북협의 및 총회 참가 독려차 LA를 방문중인 양창영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서울 연차총회에는 100여개국 160개지부에서 500여명의 회원이 참가,남북 통일을 위한 동포들의 역할이 중점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한시론] 이제는 사이버 전쟁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여러가지 후속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이를보는 시각이 보는 이에 따라 무척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세대간의 격차는 차치하고라도 이북에 가족을 두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논리적·이성적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우선 감정이 앞서고 객관적으로 냉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한편으로 반세기에 걸쳐 우리를 철저하게 지배하였던분단 냉전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대부분의 전후세대에게는 너무도 급속하게전개되는 일련의 후속조치들이 그저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굳게 닫혀있던 휴전선이 이제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도그동안 금기시되어 왔고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많은 문제들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모두 공감할 것이다.특히 20세 전후 젊은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인들에게는 졸지에 우리앞에 다가온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에 가슴이 벅차 오름을 억누르기가 힘들 지경이다.그 이유는 분단 50년에 걸쳐서 우리 모든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3년여 기간동안 송두리째 휴전선 철책선에 붙잡아 매어야 하는 실로 암담한 상황에 변화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다.그들의 폭발적이고 무한한 힘과 잠재력을이제는 실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식전쟁,정보전쟁,사이버전쟁에 보다본격적으로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통해 만들어진 사이버공간,일명 온라인(On-line)의 세계는 가시적·물리적 공간,일명 오프라인(Off-line)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나 질서·통념과는 크게 다르다.시공(時空)을 뛰어넘어 그 규모와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면서 오프라인의 가시적 영역을 무서운 속도로잠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아직은 어디까지 잠식해오고 어디까지 확대되어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철책선을 방어하고 해안선을 지키는 것보다는 사이버공간을 만들고확대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국가안보의 요소가 되고 있다.지금의 이 상황은 실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이러한 사이버공간에서의 국가간의 치열한 전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수 있느냐가 21세기 세계의 판도를 결정할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전사는 30대,40대가 아니다.어려서부터 PC에 익숙한 10대,20대들이다.그들에게 M16소총을 들려서 철책선에 보내는 일을 일시에 중단할 수는 없으나,그들을 영어로 무장시키고 손에 마우스를 들려 사이버전쟁에 대거 투입하여야 한다.지식산업사회,정보화사회에서 대학은 사이버전사를 양성하는 훈련소가 되어야 하며,나아가 치열한 사이버전쟁의현장이 되어야 한다. 최근 모 과학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강연 후에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포항공대에 진학하면 군대에 빠질 수있는 길이 열립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너무도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그들이 가야할 길이 사이버전사로서 사이버전쟁터라면 이를 빠져나갈 길을찾겠는가 생각해 본다.온라인으로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잠재력과 힘은 가히 폭발적이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해외 언론사와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루는데 20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측하였다고 한다. 지금 국가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이버전쟁은 20년 이내에 분명 결판이 나고야 말텐데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애시당초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白 聖 基 포항공대 부총장
  • 접경지역 지원법 내일 발효

    그동안 남북분단에 따른 대치상황으로 인해 개발되지 못했던 휴전선 인근 지역의 발전을 촉진할 접경지역지원법이 22일부터 발효된다. 특히 법 시행 시점이 남·북 정상회담 성공개최에 따라 남북간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한껏고조되고 있는 때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접경지역 개발의 물꼬가 터질 것이란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수도권정비법·군사시설보호법 등 상위법의 규제를 피해가며 개발의 여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접경지역지원법= 지난 1월21일 ▲낙후된 접경지역의 경제발전과 주민복지향상 ▲자연환경 보전·관리 ▲평화통일 기반조성 등을 목적으로 의원입법으로 제정됐다. 법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그동안 각종 개발제한 규제에 묶여 불이익을 받아온 접경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사업에 대해 기준 보조율에 20%를더한 국고보조비를 지원하는 등 각종 지원과 혜택을 주게 된다. 또 접경지내에 회사를 설립하거나 공장을 신·증축 이전하는 경우 조세감면 혜택을 주고 근로자 고용안정을 위한보조금을 지원한다.이밖에 산업단지·교통시설·전력·상수도 등 기반시설 설치·유지 및 보수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지방도로 건설비용의 일부도 중앙정부가 지원한다.또 민자투자 업체에대한 지원과 함께 양노원·장애인복지회관·보육원·병원 등 사회복지시설의 설치사업에 대해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우선적으로 지원된다. ◆접경지역 종합계획=접경지역지원법에 따른 각종 지원방안은 접경지역 종합계획 수립으로 구체화된다. 행정자치부는 앞으로 해당 기초자치단체와 광역 시·도로부터 기본계획을받아 1년 이내에 접경지역 경제발전과 자연환경 보전,평화통일 기반조성을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접경지역의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과병원·학교 등 사회복지시설의 신설, 산업단지 조성 등이 담기게 된다. 특히 종합계획에 담긴 사업들이 시장·군수로부터 시행 승인을 받은 경우 보전임지 전용허가나 보안림 해제,농지 전용허가,토지형질변경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돼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이밖에 풍수해 재해방지와 관광자원의 개발과 보존 대책도 추진되며 자연생태자원의 조사와 보전·관리,환경오염 방지사업도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종합계획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접경지역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1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해당 지자체 동향=민통선 이남 20㎞ 이내 지역 가운데 지역여건이 열악한인천시·경기도·강원도의 15개 시·군 106개 읍·면·동이 이달초 접경지역지원법의 적용을 받는 접경지역으로 지정됐다.경기도의 경우 북부 파주시와연천군의 전 지역,동두천·고양·양주·포천과 김포의 일부가 포함된다. 이들 해당 시·군은 자체 중장기계획중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했던 대규모 지역개발사업들을 경쟁적으로 행자부의 종합계획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경기북부 고양·파주시가 추진중인 국제교류·물류유통단지,의정부·동두천·포천의 국도 확장과 연천의 남북 연계 평화공단 조성 등이 그 예다. 경기도 김포시는 양촌면 일대 110만평에 1,300여개의 항공 및 첨단정보산업체가 입주하는 대규모 첨단산업단지를 포함시키려고 적극 뛰고 있다.연천군은 청상면 백의리 등에 6만9,000여명을 수용할 대단위 택지개발을 계획하고있다.또 남북교류에 대비해 연천읍 통현리와 전곡읍 은대리 등에 300만∼500만평의 평화공단을 조성하고 대학을 유치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인천·고양·파주·연천·철원 등은 관내를 통과할 동서고속도로 사업에 큰 기대를걸고 있고 있다. 경기도 제2청은 지난달 3억2,000여만원을 들여 ‘경기도 접경지역 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용역을 경기개발연구원에 의뢰했다.제2청은 이 계획에 ▲동서고속도로 등 SOC 확충 ▲주민불편 해소 ▲남북교류협력에 따른 개발 ▲산업기반시설 확충 ▲환경보전 방안 등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문제점= 접경지역지원법은 접경지역지원에 관한 사항은 다른 법에 우선해적용한다고 규정,특별법의 형태를 띠고 있다.그러나 국토건설종합계획법·수도권정비계획법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 3개 법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상 종합개발계획을 수립,시행할 경우이들 상위법의 규제에 걸릴 사안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접경지역지원법은 접경지역에서 기업체나 공장을 설립하거나 신·증축하면 조세감면 등 세제혜택을 주고 근로자를 위한 보조금도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위법인 수도권정비법은 공장총량규제 등을 통해기업체나 공장의 입주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특히 접경지역 혜택을 받도록 된 대부분의 지역이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해각종 규제를 받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지역개발 과정에서 심각한 마찰이 빚어질 전망이다. 환경단체 등이 환경보전과 오염방지에 대한 법 규정에도 불구,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른 환경파괴도 우려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농림부·국방부·건교부 등 중앙부처와 일일히 행정협의를 거쳐야하는 절차도 그대로여서 ‘부처이기주의’가 여전히 개발의 발목을 잡을 우려도 있다.이처럼 개발과 규제가 동시에 적용되는 관련법의 모순을 어떻게조화롭게 극복하느냐가 접경지역지원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제1의 선결과제가 되고있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 *경기북부31곳 군사시설구역1,576만평 건축고도제한 대폭 완화 경기북부 8개 시·군 31개 지역의 군사시설보호구역 52.1㎢(1,576만평)에대한 건축고도 제한이 대폭 완화된다. 경기도 제2청은 경기북부 81개 지역 군사시설보호구역 285.9㎢(8,648만평)에 대한 건축규제를 완화해 주도록 국방부에 건의한 결과,31개 지역 52.1㎢에 대한 건축고도제한이 크게 완화됐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규제완화 지역에서는 앞으로 건물 신·증축시 군부대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관할 시·군의 허가를 받아 고도제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건축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경기 제2청은 현재 26개 지역 1,406만평에 대해 규제완화에 따른 지역 분석도를 작성,민원실에 비치했으며,나머지 5개 지역 170만평에 대해서는 지역분석도를 작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도제한 규제가 완화된 지역은 파주시 18곳 572만㎡,동두천시 2곳 63만㎡,고양시 4곳 155만㎡,남양주시 1곳 148만㎡,양주군 2곳 158만㎡,연천군 1곳 13만㎡,포천군 2곳 3,878만㎡,가평군 1곳 217만㎡이다. 대상지역은 다음과 같다. ▲동두천시=내행동,상패동 일부 ▲고양시=풍동·일산,덕이동,설문·지영동,관산·내유동 일부 ▲남양주시=진벌·금곡리 일부 ▲파주시=파주읍 백석·연풍·부곡리 일부,법원읍 법원리 일부,탄현면 오금·금승·축현·문지·법흥리 일부,광탄면 발랑리 일부,월롱면 영태·덕은리 일부,교하면 당하리 일부,조리면 죽원리 일부,파평면 두포리 일부,적성면 마지·구읍리 일부,문산시가지 일부,문산읍 선유리 일부 ▲양주군=남면 신산리 일부,은현면 선암리 일부 ▲연천군=연천읍 옥산·현가리 일부 ▲포천군=창수면 운산·후동리 일부,관인면 일부 ▲가평군=가평읍 하색리 일부. 의정부 한만교기자
  • 언론사 사장단 방북 의미

    국내 언론사 사장단의 북한 방문은 남북 언론교류의 물꼬를 트는 전기가 될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대한매일을 비롯,몇몇 언론사 취재진의 방북 취재와 일부 언론사 사장들의 개별적인 북한 방문은 있었다.그러나 이번과 같은 주요 언론사를 총망라한 대대적인 방북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특히 이번 방문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초청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후속 교류사업의 실현과 활성화 기대도 더 높아지고 있다. 8월5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방문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이끄는 언론사 대표자들이라는 점에서 남북한 상호이해를 심화하고 그간의 오해불식을 통한 객관적인 시각의 회복이 일반화될 수 있는 계기로도 기대된다. 이번 방문에서 언론사 사장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담을 비롯,노동신문 등 북한의 주요 언론사 대표자들과의 면담 등도 계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초청에서 특정 언론사가 제외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 당국간절충이 주목된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이 18일 오후와 19일 오전 두 차례 주진우(朱鎭旴)비서실장을 통해 언론사 사장단 방북등 최근의 남북관계 진전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나중으로 미루자’며 면담을 완곡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기자 seokwoo@
  • [외언내언] 連坐制의 어제 오늘

    북한이 보내온 8·15 이산가족 방문단 신청자 200명이 찾고 있는 친족들은대부분 월북자 가족으로 드러났다.그들은 냉전시대 남한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유형무형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연좌제(連坐制) 피해자들이다.지난 반세기 동안 연좌제라는 족쇄에 묶여 우리 사회에서 남모르게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계층이다.연좌제는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특정범위의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 제도로서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한 연좌형이 존재했었다.그러다가 1894년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이선언되면서 폐지되었고, 1905년(광무 9년) 제정·공포된 형법대전(刑法大典)에도 연좌제는 규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과 6·25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에서 사상범,부역자,월북인사 친족에게 사실상 불이익처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예컨대 ‘인민군' 얼굴 한번 못본 친척들까지 해외여행이나 공무원임용에서의 불이익은 물론,사회 진출에서 결정적 제약을 받은 것이다.19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연좌제에 의해 피해를 본 국민의 숫자가 무려 전체 국민의 5%나 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있다. 연좌제 피해 당사자들은 국가가 교육·납세·국방의 의무는 강요하면서 연좌를 빌미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형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반한다면서 연좌제 폐지를 강하게 요구했다.만약 정부가 연좌제를 지속할 경우그 피해자들을 모두 대한민국 국민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주장까지 하며 인권유린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이러한 문제점이 인식되어 1980년 개정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연좌제 폐지를 명문으로 규정했다. 물론 그 후에도 월북자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했으며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또 이같은 사회적 연좌의식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해서 이번에 가족상봉 신청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그런 면에서 북측이 보내 온 월북자들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명단이 남한내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오랜 멍에를 푸는 계기가 되기를바란다.또 남북정상회담의 첫 가시적 성과가 사회적 연좌제를 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기본권이 국가권력에 침해당하는 굴절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다. △ 張淸洙 논설위원 csj@
  • ‘한중 한민족 문화제’ 참가 김종림 흥사단 상임대표

    “스포츠와 문화 교류를 통해 우리 청소년과 중국 조선족 청소년 사이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남북한간 신뢰를 쌓는 조그마한 주춧돌을 놓겠습니다” 20일부터 중국 연변대학교와 연길시 등에서 열리는 ‘제3회 한·중 우리민족 청소년 친선문화제’에 참가하는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김종림(金鍾林·64) 상임대표는 이번 행사의 취지를 이같이 밝혔다. 27일까지 8일 동안 진행되는 친선문화제는 스포츠와 문화행사 등 5개 부분으로 나뉘어 다채롭게 진행된다. 21일부터 3일간은 한국의 김포 통진중학교팀과 중국 선발팀(연길·용정·훈춘)과의 청소년 축구경기가 열린다. 한·중 문화를 비교 체험하는 ‘민속경연대회’에는 한국의 서서울정보산업고 풍물패와 연변대 사물놀이팀,연변 가무단,신안 소학교 무용팀이 참석해기량을 뽐낸다. 김대표는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동포들이 분단으로 인한 대립과 이질감을 극복하는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조선족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청소년들까지 친선문화제에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말했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는 민주·자주·평화의 3원칙을 바탕으로 지난 97년 3월 창립됐다.그동안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일꾼 수련대회’,초·중등학생들이 참여하는 ‘통일백일장’ 등을 열어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해 왔다.98년부터 연변대학교와 공동으로 친선문화제를 열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대한시론] 개혁과 남북통일

    최근 우리사회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만큼 자주 사용되는 용어는 없다.정치개혁,사회개혁,의료개혁,금융개혁…등 용어가 매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개혁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게 뜯어고침’이다.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 개혁의 특징이다. 오늘의 유럽인들은 그리스·로마의 합리정신을 이어받은 라틴족에 게르만이라는 야만족의 고통스런 수혈을 통해,터키 등 중동은 투르크라는 스텝 종족과의 혼혈을 통해,중국 역시 몽골·여진이라는 비문명 종족과의 융합을 통해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 융합과정 역시 큰 개혁의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또한 15세기 이후에 유럽인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그것은 유라시아대륙을 몽골·투르크 등 아시아의 스텝인들이 장악하는 것에반발하여 대양에 진출하는 고통을 감내한 결과이다.이것 역시 유럽인들의 개혁의 성과다. 우리나라도 개혁이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성공과 좌절을 거듭해왔다.1,000여년전 삼국통일이라는 개혁의 고통을 감당하였기에 한민족의 정체성(identity)을유지할 수 있었으나 구한말에는 산업혁명이라는 개혁의 고통을 피하려하였기에 일제의 통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또한 독립을 스스로 쟁취하지못하였기 때문에 남북 분단의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합의와 융합의개혁을 통하지 아니하고 단칼에 쉽게 통일하려 하였기 때문에 6·25사변이라는 전란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후 남북의 전개과정에서 남은 민주화라는 고통스런 개혁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룩하였고,북은 그 개혁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현재의 난국에 처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개혁의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50년 이상 분단된 상태에서 상이한 체제로 생활하여온 한민족이 다시 재결합하려면 말할 수없는 고통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막대한 통일비용을부담하기 위하여 조세의 폭증을 용인하여야 하고 그로 인한 경제의 후퇴를감수하여야 한다.우리는 50년 동안 민주화와 자율화의 훈련을 받아 자기의운명은 자기가 개척하여야 한다는 정도는 인식하고 있으나 북은 국가나 어떤절대자에게 의존하여 생활을 영위하여 왔기 때문에 타율적 생활에 안주하여왔다. 우리는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자기 국가를 다른 국가와. 자기의생활을 다른 생활과 비교하는 상대주의적 세계에서 보낸 데 대하여 북은 자기생각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절대적으로 옳으며,자기국가는 다른 나라보다 언제나 우수하며,자기생활은 다른 생활보다도 언제나 행복하다는 절대주의적 세계만을 경험하여 왔다. 이러한 상이한 체제하의 남북이 실질적으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균열의 봉합,모순의 극복 그리고 갈등의 해소 등 수많은 난관을 타파하여야 한다.거기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푸는 것과 같은 방법은 있을 수 없고 많은고통을 수반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통일은 실로 모든 개혁의 완성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동과 서의 균열조차 봉합하지 못하고 있다.빈과 부의 격차를 좁히는 것마저 주저하고 있다.남녀의 차등 등 봉건의식의 잔재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통일이라는 개혁을 통해 해소될수 있는 것이다.남과 북의 큰 균열을 봉합한다면 아마도 동과 서의 작은균열은 바로 소멸될 것이며 현재의 빈부차이를 내버려두고 북과의 통일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아마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점은 통일과정에서 해소되고,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5,000년 역사를 통하여 신고를 거듭하는 것은 세계역사의 주변국가로서 만 존재하였을 뿐 한번도 세계국가가 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세계국가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도시국가로마·포르투갈·홀랜드·영국 등이 세계국가를 이루었지만 그들의 강역은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작기도 하였다.그러면서도 세계국가의 공통성으로서 포용력과 냉정함을 모두 갖추었다.우리가 통일을 이룸에 있어서는 통일의 문제점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솔직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제시된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포용력과 냉정함으로 해결할 수 있을때에 비로소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쳐야 현재 제기된 모든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국가의 자질을 연마할 것이다.통일이야말로 모든 개혁의 완성이 된다. 姜 玹 中 국민대교수·부정방지대책위원장
  • 초등교 통일교육 어떻게 달라지나

    개편된 초등학교 교과서와 부교재에 나타난 통일교육은 남과 북의 화해·협력·통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2학기에 사용될 2학년 ‘바른생활’의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와 3학년 2학기 실험용 ‘도덕’의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고 치켜올린 사진을 실었다. 특히 2학년 바른생활의 ‘우리는 한 겨레’단원의 서두에서는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지만,우리는 한 겨레입니다.우리는 통일을 바라고있습니다’라고 기술,지향점을 명백히 했다. 이어 남북한의 생활 비교,북한 친구에게 편지쓰기,통일 주사위 놀이·노래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꾸몄다.평양교예단 공연·남북 통일 농구대회·금강산 장전항,북으로 가는 소떼·이산가족 상봉,북한 교과서 등의 사진도 게재했다. 내년에 배포될 3학년2학기 생활의 길잡이 ‘우리의 소원’ 단원에서는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역사적인 ( )을 가져 긴장완화와 평화공존,현실적인통일방안,이산가족의 상봉,화해와 협력,자주적인 통일 노력 등을 제시하였다’라는 문제를 예시하기도 했다.물론 괄호안의 답은 ‘남북정상회담’이다.2학년 교재 보다 사진과 삽화를 줄이는 대신 분단의 아픔 등을 이산가족의 편지 소개와 사례를 통해 소개했다.금강산,북한 가족의 명절과 공연등의 사진을 보며 ‘통일을 이뤄야 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자’는 단락도 있다. ‘보기와 같이 이산가정으로 4행시를 지어 봅시다’에서는 ‘이:이산 가족의 슬픔을 아십메까.산:산천도 이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립메다.가:가족과 헤어진 지 벌써 60년이 넘었습메다.정:정말 이제는 통일이 되어서 헤어진 가족과 함께 살고 싶습메다’라고 적고 있다. 2·3학년 생활의 길잡이에는 안전띠-걸상끈,소프라노-녀성고음,골키퍼-문지기,도넛-가락지빵,도시락-곽밥,라면-꼬부랑국수,소풍-들모임,아이스크림-얼음보숭이 등 달라진 남북한 언어를 소개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초등교 교과서 통일교육 민족공동체 중심 재구성

    초등학교 교과서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실리는 등 초등학교의 통일교육이 획기적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18일 초등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한민족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교과서를 개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배포 중인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교과서 ‘바른생활’과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에서는 7개 단원 가운데 ‘우리는 한겨레’라는 제목으로 1개단원을 통일 교육에 할애했다. 이 단원에서는 남북정상이 두손을 맞잡고 치켜든 사진을 실었다.아울러 남북한의 실상을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과 삽화 26장을 곁들여 ‘남북한의 같은점’‘통일 낱말 알아맞히기’‘통일을 이루기 위해 남북한 사람들이 노력해야 하는 점’ 등을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적고 말하면서 통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꾸몄다. 3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의 실험용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에서도 4개 단원 가운데 ‘우리의 소원’이라는 단원을 통해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필요성’ ‘이산가족의 사연과 편지‘ ‘남북한의 달라진 말’ 등 다양한 내용을 게재했다.6·15 공동선언도 간단하게 소개했으며 남북 정상의 사진도 실었다. 이수일(李修一)교육과정정책심의관은 “제7차교육과정의 지침에 따라 4·5·6학년의 도덕 교과서도 통일의 당위성,안보태세 확립,통일국가에 대한 전망과 대비 등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
  • 월북자가족 ‘차별의 굴레’벗나

    *이산상봉 계기 의식변화.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50년을 숨죽이고 지내온 남북의 월남자·월북자 가족들이 남북화해의 변화속에서 보다 홀가분하게 공개 자리에 서게 됐다.남북 정상회담이후 양측의 신뢰 회복노력에 따라 이들도 그간의 불이익과편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특히 8·15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그런 계기가 되고 있다. ■교환방문과 월북·월남자/ 정부는 16일 북측 이산가족 상봉희망자 200명을공개하면서 모두를 월북자로 분류했다.물론 이들중에는 6·25때 강제징집된의용군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전부를 ‘자진 월북자’로 볼 수는 없다.광의의 개념에서 이른바 월북자로 분류한 셈이다. 북측도 대부분 월남자로 구성된 남측의 상봉 희망자 200명의 북측내 가족찾기에 들어갔다.양측 정부가 이념을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선것이다. 이에따라 오는 8월 15일 서울과 평양에선 각각 월북·월남자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6·15공동선언과 그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양측이 냉전의 상처와 잔재에서 벗어나 보다 전향적인 민족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월북·월남자에 대한 인식변화/ 사회적으로도 월북자에 대한 인식 변화와각종 차별 대우도 줄어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좌제는 지난 80년 폐지됐지만 지금까지도 월북자 가족들은 사찰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떨어왔다.특수한 공직 취임 등에서는 알게모르게차별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북측이 보내온 방문후보자들의 가족을 공개적으로 찾으면서 이같은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사라질것으로 예상된다.실제로 과거 ‘월북자’가족임을 숨기던 사례가 많았던 반면 이번에는 대부분 떳떳하게 가족임을밝히고 나서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아온 월남자 가족들이 경협활성화 등 남북관계발전에 따라 우대받는 사례가 최근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월북·월남자에 대한 편견으로 상징되는 냉전체제의 변화를뜻한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離散 교환방문 문답풀이.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북측 후보자 200명 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잇따르고 있다.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명단에서 북의 가족을 확인한 사람은 8·15 때 전부 만날 수 있나. 아니다.200명 중 100명이 넘게 확인되더라도 실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딱100명이다.지난달 30일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양측이 교환방문 규모를 각 100명씩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따라서 명단에서 북의 가족 이름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8·15때 못만날 수 있다. 정부는 오는 22일까지 명단 확인상황을 최종 집계, 확인된 인원이 100명을넘을 경우 인선기준을 새로 정해 최종 1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인선기준은아무래도 고령자,직계가족 등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것으로 보인다. 100명에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의 가족에 생사여부만 통보된다.정부는 이들에게 향후 면회소 상봉때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6일 교환한 남북 양측의 명단이 겹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측은 월북자 위주로,남측은 월남자 위주로 200명의 후보자를구성했기 때문이다.우리의 경우 월북자 가족들은 평소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서 북의 가족을 확인했지만 만나기 싫다면. 부부간 이산의 경우 남쪽에서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북의 배우자 상봉을 꺼릴 수도 있다.그럴 경우 정부에 상봉 거부의사를 밝히면 된다.그러면정부는 북한당국을 통해 북의 가족에 ‘살아있긴 하지만,만나길 원치 않는다’는 통보를 한다. ■8·15상봉에 대비,목돈을 미리 준비해야 하나. 최종 100명에 선정되더라도 실제 상봉 때 큰 돈은 필요없을 것 같다.단,북의 가족이 서울 워커힐호텔 등에서 묵지만,같이 잠을 잘 수는 없기 때문에지방 거주자의 경우 3박4일간의 숙식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상봉 대상자 100명의 명단은 언제쯤 알 수 있나. 26일 남북 양측은 최종 100명의 명단을 서로 교환하는데 이때를 전후해 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
  • ‘이산가족‘ 박사논문 준비 재미교포2세 김영란씨

    “마지막 분단국이란 오명을 깨려는 한민족의 의지를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실감합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들로 붐비는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구관 2층 민원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서투른 한국말로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수첩에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미교포 2세김영란(Nan Kim·31)씨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이산가족의 개념과 월북가족의 생애사’를 쓰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았다. 김씨에게 남북정상회담과 후속 조치로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은 더없이좋은 기회가 됐다.김씨는 생생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듣고 자료를 수집하기위해 북한이 방문단 명단을 보낸 16일 적십자사로 달려왔고 이산가족들과 더가까워지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김씨는 지난 87년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해 프리랜서 기자 활동과 94년 뉴저지에 있는 ‘더 레코드(The Record)’지 기자 활동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를집중취재했다. “매년 광복절을 취재하면서 분단의 고통을 만났습니다.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고통을 전해주고도 싶었습니다” 김씨는 93년 북한의 핵문제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때 분단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복잡한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남한과 북한을 각기옹호하는 ‘분단된 교포사회’도 김씨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는 한많은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김씨는 95년버클리 대학원에 진학했고 문화인류학을 선택했다.분단의 고통과 이산가족의아픔,그중에서도 특히 월북가족들의 고통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산가족의 개념이나 월북자 가족과 월남자 가족들이 남북한 이념대립에서겪는 고통에 대한 연구가 현재까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는 김씨는 “연좌제라는 기형적인 제도와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이들의 심리적 고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월남자를 배신자라고 여겨왔던 북한의 태도 역시 이산가족 문제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왔다고 김씨는 분석한다. “오는 12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민족의 한이 배어 있는 체계적인 논문을준비하겠다”고 말한 뒤 민원실 창구에서 서성이는 실향민 노인에게로 다가서는 김씨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김삼웅 칼럼] “하늘 안 무섭나”

    “대한매일신보는 한말 국가의 운명이 위급한 지경에 처했던 시기에 구국의필봉으로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민족언론의 본산이었다. 대한매일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04년 7월18일에 창간되어 한일합방이 강제로 체결되던 때까지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항일민족언론의 사명을 다하였다.”(이광린외 ‘대한매일신보연구’) “대한매일신보는 대형4면,국한문 혼용의 신문으로서 처음부터 대표적인 ‘배일지’로서 이채를 띠었다.이 신문이 일제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매국도배들을 반대 배격하는 데서 비교적 예리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 인민의 반일애국투쟁이 더욱 앙양되고 있었던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발간된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이용필 ‘조선신문 100년사’) 오늘(18일)은 대한매일신보가 태어난 지 96주년이다.현재 한국언론사로서는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다.앞서 남북 두 언론학자가 지적했듯이 한말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구국의 필봉으로 일제침략에 저항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반면에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의 부끄러운 전력도 갖고 있다. 오래전 신문학자 곽복산씨는 “신문기자는 민중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성을견지하여야 하는 까닭에 기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말을남겼다. 어찌 기자뿐이겠는가.‘진실성’을 견지하는 직업인이 아니라도 먼저 인간이 돼야 하는 것은 사람의 당위다. 새삼스런 말을 인용한 것은 엄청나게 변하는 남북관계에서 오늘 언론(인)의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피기 위해서다. 6·15선언 이후 우리 언론은 휴전선 이북까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됐다. 따라서 분단시대 언론에서 통일시대 언론으로 시각을 교정하고,냉전논리에서화해협력시대로 인식을 전환하고,내부의 이해다툼에서 민족문제로 시야를 높여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남북한은 그동안 주변 4강의 종속변수 위치에서 주체적 상수로 한반도 문제를 스스로 주도하게 됐다.해방 이후 처음으로 민족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이라는 주체적 변화를 조성해낸 것이다.이것은 실로 대단한 변화다.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문제는 내부적으로 얼마만큼 강고한 통합력으로 북한과 대화를 통해 6·15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평화공존을 이루느냐다.우리 사회의 다양성 때문에 북한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고 분열상을 보일 수도 있다.특히 수구 언론의 변화를 거부하는 냉전논리는 자칫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회귀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민족에게 평화공존 이상의 과제는 다시 없다.언론이 이같은 민족사적 과제를 뒤엎고 여론을 왜곡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경계선을 허문다면 그것은 직업인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못할 짓이다.여기서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의 유효성을찾게 된다. 언론이 비판보도 기능을 넘어 권력화의 기능을 하고,그 종사자들이 언론귀족으로 자리잡고,맹목적 적대감으로 남북화해를 훼방하고,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용지를 오로지 ‘광고유치’ 목적으로 무한정 찍어서 곧바로 폐지장으로 보내는 따위의 폐습을 시정하지 않고는 건전한 언론자율도,여론형성과 수렴도,남북 평화공존도 불가능하다.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선각 언론인들이 나서 구국의 필봉을 날렸듯이 남북이 화해와 평화공존으로 가는 중차대한 시기에 언론(인)의 책임과 사명은실로 막중하다.그 선상에서 대한매일의 책임과 사명 역시 막중하다. 대한매일은 98년 11월11일 공익정론과 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언론으로 거듭나면서 포효하는 호랑이를 심벌로 내세웠다.균형 있는 비판과 대안제시로 공익언론의 참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고 제도언론이 기피해온 일련의 기획 연재를 통해 정체성 회복에 노력했다. 옛글에 ‘화호불성반위구’(畵虎不成反爲狗)란 말이 있다.“호랑이를 그리려다 잘못하여 개를 그리게 된다”는 뜻이다.대한매일은 짧은 기간의 개혁과정에서 미처 호랑이를 그리지 못한 부분은 독립언론으로 새로 나면서 ‘화호점정’(畵虎點睛)하게 될 것이다. 박경리 여사가 소설 ‘토지’에서 토해낸 “하늘 안 무섭나”란 말을 남북화해를 해코지하려는 언론(인)에는 ‘훈계’로,독립언론으로 가는 대한매일은 ‘계훈’으로 삼으면 어떨까. [김삼웅 주필 kimsu@]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독립유공 이젠 이념의 굴레 벗어야

    일제하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가운데는 명백한 독립운동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못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그 이유는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첫째,조선공산당 등에 가입해 좌익활동을 했거나또는 해방후 월북한 자 둘째,건국후 간첩죄 등의 죄명으로 실정법상 처벌을받은 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미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독립유공자 포상은 일제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포상인만큼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포상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경우 좌익활동이 독립운동의 방편이었을 경우 이를이념에 구애없이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최근 남북한 관계개선을 계기로 ‘이념의 굴레’에 묶인 독립유공자에 대해 적극적인 포상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의거 10년 뒤인 1929년 11월 발생한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으로 의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그로 인해 최종선고에서 징역 4년의 최고형을받은 인물로 장재성(張載性)이란 인물이 있다.4·19후 민주당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건국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5·16후인 1962년 3월 1일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주무부처였던 내각사무처는 돌연 장씨에 대한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서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내각사무처는 서훈취소 이유로 신원조회 결과 장씨가 “해방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활약하다가 1948년 2월 월북,공산당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가 남파된 후 체포돼 7년형을 받고 복역중 6·25 후퇴시 피살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동일한 사안에 대해 정권마다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잣대가달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장재성이 반공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면 죽산 조봉암(曺奉岩)은 정치적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일제 당시 3·1의거 참가 등으로 3차례에 걸쳐 8년여동안 옥살이를 했고,해방후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봉암은 독립유공 공적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도 공이 적지않은 인물이다.그러나그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유공자가 달고 있는 ‘빨갱이’ 꼬리표와는 또 다르다.죽산에게는‘간첩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이승만정권 시절 진보당을 창당,급진적 정치노선을 표방했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을 위협하기도 했던 죽산은 ‘국가변란’을 기도한 간첩혐의로 59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러나 그가 이승만의 정적으로 몰려 ‘정치재판’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한편 죽산 사후 그의 동지 및 유족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으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에 대한독립유공 포상 역시 한 발자국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훈당국은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자로서 형을 받은 자는 그 서훈을 취소한다’는상훈법에 의거,그에 대한 포상을 거부하고 있다. 보훈당국으로선 실정법에 의해 사형집행을 받은 자가 사면·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포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그러나 문제는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공적 자체보다는 이념의 굴레와 정치적 잣대에 휘둘려 왔다는 사실이다.현행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보훈처 관계자들 역시 일부 수긍하고 있다.통일시대를 맞아 독립유공자포상과 관련,일대 정책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하겠다.지난 95년광복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포상에서 제외됐던 이동휘(李東輝)선생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실시된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해방후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에 대한 포상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임꺽정’의 저자이자 1927년 결성된 민족 단일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부회장을 지낸 벽초 홍명희(洪命熹·내각 부수상 역임),국어학자 출신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이극로(李克魯·조국전선 의장 역임)선생 등이 대표적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통일시대를 앞두고 민족사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남북간 역사적 동질성을 모색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3년 黃鈺사건 주도 金始顯의사. 생전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24년간 감옥살이를 한 초인적인 애국지사가있다.감옥생활 가운데 16년은 일제하에서 였으니 독립유공 공적이 결코 적지 않다.의열단원 출신으로 1923년 소위 ‘황옥(黃鈺)경부사건’의 주모자로체포된 김시현(金始顯)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의사는 거듭된 거사-투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해방을 맞은,몇 안되는 지사형 애국지사다.그러나 김 의사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유족측은 “보훈처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나머지 서훈이 지연되고 있다”며 보훈당국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김 의사에 대한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김 의사의 공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해방후 김 의사와 관련된 정치사건의 ‘전과딱지’가 김 의사의 독립유공 포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김 의사는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나중에 무기로 감형됨)를 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김 의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짓밟고 독재정치를 펴자 동지유시태(柳時泰)와 함께 그를 처단하려다 미수에 그쳤다.이 일로 구속된 김의사는 4·19의거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석방되었으며,특별사면(1960.6.25)까지 받았다. 김 의사의 아들 김봉년(金峯年·78)씨는 “부친이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동질성 회복 어떻게

    “남북이 하루빨리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과거 남북한의 화해나 통일을 말할 때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전제를 내놓곤 했다.분단 55년만에 남북한은 다시 만나 함께 살기 힘들 만큼 이질적이 된 것일까.그러나‘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이 북한동포들에게 느끼던 이질감은 조금씩동질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남북 사이 문화적 이질화의 실체는 어떤 것이고,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TV로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솜씨에 감탄했던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그리고는 다음 순간 김위원장의 말씨가 우리 이웃에 사는 북한 출신 실향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적지않게 놀라기도 했다. 분단 이후 남북 사이의 언어가 심각하게 이질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곧’을 북한에서는 ‘인차’라고 한다든지,‘몸무게를 줄여야지’를 ‘살을 깎아야지’라고 하는 등 다른 표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렇다해도 서울 토박이와 경남·전남 토박이가 서로 만났을 때보다 결코 이해가 어렵지않다는 것을 김위원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다양해진 언어생활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특히 북한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우리말로 고쳐쓰고 있는 것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표현하는 등 어색한 점도 없지않다지만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을 ‘돌간흙무덤’으로 부르는 등 일부 북한의 우리말고고학 용어들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남쪽학계에 수용되는 추세다. 남북의 다양성은 예술분야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남북예술교류가 시작되면 무용계 사람들은 북한 전통예술인들의 춤사위가 동구의 영향이 진하게느껴지는 데 놀랐다. 반대로 북한쪽에서는 남한의 춤사위에서 서구전통의 개입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냉전 시대라면 ‘이질감의 심화’로 비쳤을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바람직스러운 다양성’으로 해석된다. 생활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최근 북한의 가정을 방문했던 사람들에따르면 저녁식사를 할 때 아버지와 큰아들이 겸상을 하고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다른 상에 모여앉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오히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남쪽보다 북쪽이 더 큰 것 같았다고 전한다. 관혼상제에서도 제사 등의 형식은 달랐지만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민족 고유의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식생활에서도 이른바 밥공장을 이용해야하는 협동농장의 상황이 조금 다르고,남쪽에 조미료를 사용한 짙은 양념에 입맛이 길든 반면 북쪽은 순수 담백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교육면에서 북한은 1945년부터 2년의 유치원 교육과 4년의 인민학교,6년의고등중학교 등 12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100% 문맹퇴치를 1990년에 달성했다.12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하거나,공장·농장에서 일하거나,군대에 입대하는 3개의 길이 열려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 이상 일하면 공장이나 농장에에서 일하는 사람도 직장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북한의 문맹퇴치율은 오히려 남한보다도높다.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남한과 북한의 높은 학력은 통일 이후동질성 회복에 큰 자산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화적 이질감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 혹은 통합과정에서 그렇게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대신 어떤 종류이든 ‘균열’양상이 보인다면 그것은 이질감 보다는 남한 주민들의 북한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도 통일 이후 동독주민들은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설움과 열등감을 맛보았다.서독주민들은 동독 출신과 이웃에 살게 됐을 때 공포심마저느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서독 주민의 긴밀한 교류가 오히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장수현 부산외국어대교수는 “조선족과 북한난민에 대한 남한주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경제적·사회문화적 격차가 심각한 남북주민들이 만날 때 독일보다 훨씬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빚어질 것”이라면서 “따라서 단순한 문화의 이질감 극복이라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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