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
우리는 지난 10년간 저 멀리 유럽 한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독일의통일과 그 이후 통합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분단 극복을 위한 교훈을 얻고자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처음에는 한반도의 분단도 종식되고 곧 통일이 되리라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올랐었다.그리고는 곧바로 막대한 통일비용에 놀라서 주춤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통일 이후 양쪽 지역에 나타나는 사회적 ·심리적 후유증에 ‘내적(內的) 통일’의 어려움이 제기되자 통일은 길고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고 각종 통합 프로그램과 시나리오를 작성해보기도 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통독 10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보다도남북한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통일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북한 경제력의 차이,양쪽의 민주화 수준,사회적 성숙도 등을 고려할 때 그것이 ‘흡수통일’이건 ‘대등한 통일’이건간에 제도적 통일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사회통합 과정에서 양쪽 주민 모두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없는 통일의 후유증을 통일한국에 안겨 주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북한주민들은 보다 경쟁력있는 남한식 자본주의체제로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실업,심리적 불안,남쪽 주민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소외감,열등의식 등을 느낄 것이고 그들만이 변화하려애쓰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남쪽 주민들은 통일비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북한 주민에 대한 이질감,통일로 인한 피해계층의 발생(예컨대 단순노동자나 여성근로자),북한주민의 남쪽지역으로의 유입에 따른 사회적 문제 등의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서로간의 이러한 피해의식과 사회문제의 발생은 통일 이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가 활성화되고 교류협력이 확대되면서 얼마든지 나타날수 있는 남북한간의 갈등요소이자 통일의 장애물이다. 따라서 통일은이러한 문제에 대처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통해서 준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은 첫째,우리 사회의 막연하고도 포괄적인 발전을 통해서 키워질 수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발전,경제발전,사회적·문화적 성숙 등이 진정한통일에 대한 준비이고 이런 준비가 되었을 때 막상 갑자기 통일이 닥치면 그와 관련된 난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남북한 주민들이 상대방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고자 할때,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들을 접근할 때만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통일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나눔의 자세이다.우리 사회에서 남북관계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질 때에는 북한에대한 인도적인 지원 및 남북 경제교류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에 비해 이제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활성화가 가시화되고통일과정이 구체적인 실천의 문제로 부닥치게 되자 남북관계를 이해타산적으로, 눈앞의 이익을 놓고 접근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던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이제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남북관계 활성화를 가장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계층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이들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뿐만 아니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등 북한 경제회복을 직접적으로 도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에 진출해서 이른바 ‘북한특수’를 얻을 꿈에 부풀어 있다.
반대로 남한의 중산층은 남북관계 및 경제교류 활성화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우려,오히려 급진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유보적인 태도를보이고 있다.
우리는 통일과정에서는 물론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북한주민과 나누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사회 내부에서도 더불어 사는 것에 익숙지 않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소형 평수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대형평형 민영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이질적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쪽 사람들과 나눔의 정신 없이는 서로가 영원히 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사회 전체가,그리고 각 개인의 차원에서 이러한통일준비를시작할 때이다.
윤덕희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