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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납북자문제 北과 인내심 갖고 대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처음으로 성사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가족상봉과 해결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산물로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상처를 상징하고 있는 이들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해법을 살펴본다. 2차 이산가족 방문(11월30일∼12월2일) 때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짐으로써 남북의 납북자 문제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납북어부 상봉은 북한을 꾸준히 설득,납북자를 이산가족의 틀에 넣어 상봉부터 시키자는 우리 정부의 신중한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가능했다. 그러나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과 ‘비전향장기수북송’과 맞먹는 피랍자 송환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고민도 크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는 다른 남북 현안들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를 해나간다는 전략이다.특히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의 우선순위도 높게 잡고 있다. 납북자란 넓은 의미에서 분단 이후 한국국민으로써 북한에 억류돼사망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북 당시의 신분,납북지역,시기,상황 등에 따라 세분되며 이를 유형별로 보면 ▲국군포로 ▲한국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 ▲납북어부 ▲외국에서 강제납치된 민간인 ▲항공기 피랍자 ▲북송 재일교포 ▲북파공작원 등으로 나뉜다. 납북자에 대한 정의는 관계기관마다 다르다.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군포로의 경우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공식확인한 국군포로는 351명에 불과하다.북파공작원은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차이때문에 전체규모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납북억류자 현황자료에서 정전협정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90명이며 이 중 13%인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에는 어부(3,692명),69년 KAL기 피랍에 따른승무원과 승객(51명),함정 피랍군인 및 경찰관(22명)등이 포함돼있다. 북한은 납북자의 북한거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납북자가아니라 공화국을 동경해 자진 월북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겐 공식적으로 ‘의거입북자’‘의용군’‘통일의 역군’‘통일용사’ 등으로 호칭한다.납북자들은 대부분 대남선전에 활용된다.납북자를 회유,협박해 자진월북했다는 기자회견을 시키고 월북자들의 생활상을 TV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체제에저항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납·월북자 22명 수용확인)하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의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정전협정체결 이후 포로교환을 통해 남으로 갈 사람은 다 갔으므로 법적으로 국군포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납북자 가족도 상봉신청하면 만남 기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6일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규정된절차에 따라 상봉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북측과 납북자의 상봉확대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한적과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별도 생사확인과 면회소를 통한 상봉기회가있을 때에도 포함시키는 등 납북자 가족 상봉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납북자 상봉을 이산가족 해법과 별도 의제로 풀어나가자’는 일부주장에 대해 박총장은 명분론적인 접근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납북자들이 ‘왜 북한땅에 있느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가족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다. 2차 상봉에서 납북자 가족상봉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질문에 박총장은 ‘북에 납북자는 없다’는 북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측도 인도적인 문제에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며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적이 북측과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지난 6월 말 1차 적십자회담때.비공식적인 입장 전달 수준에 그쳤지만 북측은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그뒤 9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다시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북측 반응이 많이 누그러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군포로의 상봉문제에 대해선 “국군포로의 가족상봉 문제도일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사회담을 통해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방장관급 회담 등 다른 정부채널에서 해결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전협정후 끌려간 사람들 이산과 별개”.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취급해선 안됩니다” 87년 백령도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이자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인 최우영(崔祐英·30·여)씨는 “납북자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납북자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범위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최씨는 “이산가족들 중에는 6·25 때 자진 월북한경우도 있지만 납북자는 모두 정전 이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북에끌려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납북자가 이산가족과 같이다뤄지면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처럼 가족간에 일회성 만남은 가능하겠지만 남쪽으로의 송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최씨는 “지금까지 남북간에 있었던 300회 이상의 협상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 정부는 92년에는 이인모씨,올해는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북으로 보내 주면서도 남측의 납북자 생환에 대해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최씨는 또 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정책기구나 전담부서의 필요성을강조했다. “우리 정부에는 납북자 문제 담당직원이 통일부 인도지원국 사무관 한명이 고작”이라면서 “지원정책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는 지난 9월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생환한 이재근씨에게 탈북자에 준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최씨는 “통일이란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먼저 사람의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근래 남북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도 더 잘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납북자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여성 선언]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두번째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추락하는 각종경제지표 때문에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신문지상에서 그리 큰지면을 차지하지 못했다.그들의 눈물이 우리를 감동시키기에는 주변상황도 마음도 얼어붙은 탓일까. 그럼에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연이 있었다.두 동생을 남겨두고 부모와 함께 월남한 맏형이 50년 만에 따온‘알밤’때문이다.사연인즉슨 맏형은 월남할 때 외가에 맡긴 동생들이 따라나서겠다고 조르자“뒷산으로 알밤 따러 간다”고 속여 떼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동생들을 속이고 부모와 월남한 맏이,뒷산에 간 부모와 형을 기다리며 50년 세월을 보내야 한,이제는 늙어버린 동생들.그 동생들을 생각하며 평생‘알밤’을 가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형.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면‘가족’이란 무엇일까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세기 동안 타의에 의해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이산가족들,그 켜켜이 쌓인 한으로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야 했던 사람들.그들에게 가족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가장따뜻하고 근본적인 어떤 곳이다. 그러나 한 집안에 같이 살아도 늘 헤어지기만을 꿈꾸는 가족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가. 지난 1일에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석씨가 사형을 선고받았다.얼마 전엔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때려죽인 며느리의 이야기가 보도됐고, 딸을 매매춘에 나서게 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어린 아이를 폭행한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지난 80년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감격적으로상봉한 가족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재산상의 문제 때문에 또한번의 상처를 입고 헤어져야 했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유비통신을타고 있다. ‘혈육의 본능적인 정’‘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논리가무력해지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영혼에 상처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가정은 사회의온갖 스트레스를 떠안은 구성원들이 정신과 몸을 무장해제하고 속내를 드러낼 수있는 곳이기에 가장 편안한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양면성을 외면한 채 가정의 행복한 측면만 자꾸 부각하다 보면그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젠‘가족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하다’고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가족들이 생겨난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우선 이산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졌으면 좋겠다.그들의 아픔을 단지‘본능적인 혈육의 정’을 끊어놓은 것으로만 설명하려는 감정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맞서는 분단 국가에서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겪어야 한 고통,사회가 만들어준 다른 체제에 대한 미움과 적의,국가 복지시스템으로 메워주지 못한 고난에찬 삶 등도 그들의 설움에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이 기회에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대량 해고사태가 또 살벌하게 벌어질 판이다.그렇게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노숙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적지 않을것이다.그들에게 보내는시선이‘깨진 가족’에 대한 동정심만으로일관할 때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난다.‘경제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사회 구성원’이라는 상처 위에‘동정이나 받아야 할 불행한 가족’이라는 상처를 덧입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개인의 고통과 생계 부양자인 부모의 책임만 남고 사회구조적인 책임,국가의 극빈자에 대한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족 때문에 느낄 결핍감을 최소화하는 것은 언론과 국가 복지정책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 박미라 페미니즘잡지 IF 편집위원
  • ‘분단강조’ 교과서 내용 줄인다

    내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북한의 일상적인 삶과 주민 생활상을알리는 내용이 늘어나고 ‘분단의 고통’ ‘한국전쟁’ 등 분단을 강조하는 내용은 줄어든다. 또 6·15 남북정상회담,장관급회담 등 올해 일어난 남북관계를 대폭반영하고 남북관계를 대화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정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의 새해 통일교육기본계획 및 지침을 확정하고 오는 7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재로 열리는 통일교육심의위원회의를 거쳐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2001년도판 중학교용 새 윤리 교과서에 이같은 원칙을 반영,우리실정과 비교한 북한 청소년들의 생활 내용을 대폭 반영하기로 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1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국가보훈처는 3일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내며 독립외교 활동을 벌였던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네살 때 미국선교사 언더우드목사에게 입양돼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경술국치후 국내 독립운동 기반이 붕괴되자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동제사에 가입했다.이후 프랑스,미국,러시아 등지를돌며 한국독립운동의 지지와 적극적 지원을 호소했다.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1930년 초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됐다. 선생은 광복후 임정요인으로 귀국,민족분단을 막고자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이다 6·25전쟁중에 납북됐다.50년 12월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정부는 지난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외언내언] 천주교의 참회

    가장 큰 과오는 과오를 범하고도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슨 일이 잘못된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잘못한사람이 없는 데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도 바로 이 부분에서 꼬였는지 모른다.IMF,5·16,5·18-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의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 누구도 진심으로 용서를 빈 적이 없기 때문이다.참회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데서 오는 갈등이 오늘우리가 처한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뿐이랴.오직 ‘네 탓’만 있는 것이 인간들이 경영하는 세계의특징이다.서구 강대국 어느 나라도 오늘 제3세계 국가들의 내전과 굶주림이 자신들의 침략과 식민지배 후유증임을 고백한 나라가 없지 않은가.대희년을 맞아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 사건은 그래서 신선하다. 3일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될‘쇄신과 화해’라는 7개 항의 반성문은한국 천주교 200년사 전체에 대한 참회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3월 카톨릭교회가 2천년 역사에서 잘못한 점에 대해 전 세계를 향해 용서를 청한데 따른 것이다. 반성문은 구체적인 사건을 적시하진 않았다.그러나“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병인양요사건 당시 외세에 의존하고,안중근(安重根)의사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하며,독립운동을 홀대한 과오 등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반성문은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과오에 대해서도 진솔한고백을 담았다.분단 극복과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에 소홀했으며 지역과 계층,세대간 갈등 해소,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노력도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주교회의 반성문에 대해 “참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해 파문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모호하고,천주교에서 특히 심한 여성 차별문제 등의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교황청은 절대 무오류,절대권위의 상징이었다.다른 종교에서도 절대권위에 둘러싸인 교회와 성직자가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범하고 있는오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그런 의미에서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교회의 과거사 참회는 대사건이다.부모도 과오가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가족간의 신뢰가 두터워지듯 교회의 참회가 인류사에 커다란전환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세계화와 블록화] (3)하나로 뭉치는 유럽, 위협인가 본보기인가

    * ‘하나의 유럽' 장밋빛 실험 가속. 광우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자 유럽연합(EU)은 11월29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긴급대책을 내놓았다.광우병 확산의 주범으로 꼽힌 동물성사료의 일시적 사용중지였다.9월 석유값 폭등에 항의하는 트럭 운전사들의 차량 시위가 유럽의 발을 꽁꽁 묶어놓았을 때도 재빨리 머리를 맞댔다.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찾지 못했으나 EU의 신속대응은 전례없는 주목을 받았다. 2002년 7월 1일이면 유럽 각국의 화폐는 유로화로 통일된다.독일의마르크나 프랑스의 프랑,이탈리아의 리라 등은 법적 효력을 잃는다.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추진돼 온 ‘하나의 유럽’이 마침내 한 획을 긋는다.덴마크가 9월29일 유로화 가입을 부결시키고 영국이 통합에 소극적이지만 큰 물줄기는 ‘유럽합중국’이다. 유럽통합의 시발점은 프랑스 외무성이 1950년 5월9일에 발표한 ‘슈망 플랜’.당시 프랑스 외상인 로베로 슈망은 “독일과 프랑스의 철강 생산을 관리하는 공동관리청을 두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독일을 향한 프랑스의 관대한 제스처’로표현된 이 제안에 영국과소련을 제외한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환영했다. 이후 50년간 유럽통합은 유럽인들의 지상과제이자 꿈이었다.프랑스드골 대통령이 60년대 ‘국가 중심의 유럽’을 제창,한때 통합이 뒷걸음질치기도 했다.그러나 92년 단일통화 창설을 골간으로 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유럽을 내무·외교·사법분야 등에서 하나로 묶는 구체적 길을 제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1일 출범한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제를직접 받아 통합의 총아로 떠올랐다.2002년 6월말까지 각국 통화와 함께 쓰이다 7월1일부터는 유로화 하나만 통용된다. 영국,스웨덴,덴마크가 유로화 가입에 반대하지만 나중에 ‘유로랜드’ 회원국이 되면 유럽은 세계 최대의 단일통화권이 된다.이 경우 유럽의 국민총생산(GDP)은 5%,1인당 실질소득은 1,000달러 이상씩 늘전망이다.환거래 비용이 줄어 현재 60% 남짓인 EU의 역내 교역 비중도 7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 금융시장의 판도도 바뀌어 45%를 웃도는 국제 외환시장에서의달러화 결제 비중도 상당부분 유로화로 대체될 것이다.환 위험이 사라져 역내 주식투자와 채권거래도 늘어 금융시장으로서 옛 영화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로화 도입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두이젠베르크 ECB 총재도 유로화의 성공 여부에 “단정적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유로당 1.08달러로 출발한 유로화는 11월30일 0.87달러로 마감,유럽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통합의 원동력인 독일과 프랑스의 불화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인구증가를 빌미로 독일이 EU에서의 의사결정 투표권을 늘리고 집행위원장을 선출직으로 뽑으려 하자 위베르 베드랭 프랑스 외무장관은 요쉬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을 ‘피리부는 사나이’로 격하시켰다.영국은7일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공공연히말하고 있다.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역내 빈부격차가 심해 유럽통합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얘기다.결속력이 떨어져 국제사회에 위협적이지도 못하다는 지적이다.그러나 문화·역사적 배경이 같은 유럽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공을거두면 유럽통합의 힘은 배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문일기자 mip@. *獨·英 ‘유로랜드 맹주' 힘겨루기. ‘주도권 쟁탈전?’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놓고 독일과 영국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유럽통합의 핵심이자 유럽의 정치적 단일화를 주장하는 독일의 야심과 유럽의 자존심으로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영국의 구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독일은 두차례 세계대전의 장본인이자 동·서독 분단의 희생자로서그동안 제 목소리를 변변히 내지 못했다.그러다 통독(統獨)을 계기로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주도하며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복귀를꿈꾸고 있다. 지난해 1월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키며 유럽의 경제적 통합을 주도했던 독일은 “유럽은 느슨한 형태의 국가간 연합에서 벗어나 단일연방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의 야심은 유로화 폭락으로 난관에 부딪쳤다.단일통화가탄생하면 정치적 통합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유로화 폭락으로정치적 단일체는 커녕 유럽이 ‘방대한’ 자유무역지대로 전락할 위험에 봉착했다. 통합에 소외됐다는 불만을 표출해 온 영국은 이같은 ‘통합의 시련’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통합의 강도가 셀수록 통합의 원동력인독일과 프랑스에 힘이 실린다고 보기 때문이다.프랑스도 독일의 독주에 견제를 보내기 시작,영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정치적 통합체보다 모든 장벽이 철폐된 ‘자유무역지대’로 그리고 있다.경제·문화적 통합만으로도 충분하다는것이다.영국은 현재 12개국으로 구성된 ‘유로랜드’의 가입에 부정적이다.역내 빈부격차로 자기들의 경제가 타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그러면서도 EU에서의 핵심적 지위는 그대로 지키려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을 인내심으로 이겨낸 영국의 행보가향후 통합의 관건이 되고 있다. 이동미기자 eyes@
  • “널 보려고 100살을 살았다”

    “살아 있었구나” “이제야 가족이 다 모였다”“형님, 왜 닷새를못기다렸소” “임자,그 곱던 모습이…”. 코흘리개 소년이 반백의 노인으로,신혼 새댁이 주름살투성이 할머니로 바뀌어 50년 만에 꿈에 그리던 부모형제와 배우자를 만났다.울다가 웃었고,얼굴을 더듬다 또 부둥켜 안았다. 내민 손과 손,흘러내리는 눈물 앞에선 이념도,철책선도 존재하지 않았다.서울과 평양에선 모진 세월을 뛰어넘은 혈육의 정이 ‘통곡의강물’이 되어 다시 흘렀다. 반세기 동안 헤어져 살았던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30일 서울과 평양에서 가족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지난 8월15일 상봉이 이뤄진이후 두번째,85년 첫 상봉 이후 통산 세번째 만남이었다. 이날 남측 이산가족들은 평양 고려호텔에서,북측 이산가족들은 서울반포 센트럴 시티에서 애타게 찾던 가족들과 단체로 각각 상봉,잠시나마 이산의 한과 아픔을 달랬다. 평양에서는 올해 100세로 남측 방문단중 최고령자인 유두희(강원도원주시 문막읍)할머니가 아들 신동길씨(75)를,서울에서는 북측 방문단중 김일성종합대 교수인 김영황씨(69)가 가족과 얼싸안는 등 눈물의 상봉이 줄을 이었다. 단체상봉에 이어 북측 방문단은 센트럴 시티 5층 메이플 홀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주최하는 만찬에,남측 방문단은 평양에서 북한적십자회중앙위가 마련한 만찬에 각각 참석한 뒤 서울과 평양에서 감격의 첫밤을 보냈다. 남북 상봉단은 이날 대한항공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경유,분단의 장벽을 넘어 고향땅에 도착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2박3일간의 상봉일정에 들어갔다. 남측 방문단은 이날 낮 12시45분 대한항공 특별기 편으로 서울을 출발,1시간여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숙소인 고려호텔에 여장을풀었다.북측 방문단도 같은 비행기로 오후 5시8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남측 방문단은 오전 9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평양 순안공항에 낀짙은 안개 때문에 지연됐다. 북측 방문단의 서울 방문일정도 함께 순연돼 예정됐던 단체 상봉시간이 4시간여 가까이 늦어졌다. 이석우기자·평양공동취재단swlee@
  • [사설] 이산의 恨 모두 풀자면

    분단 반세기 동안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어제 꿈에 그리던 혈육과 만났다.100세나 된 남쪽의 어머니는가슴속에 홍안의 청년으로 묻어두었던 북녘의 늙은 아들을 부여잡고오열했다.이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풀어놓은,하나같이 안타깝고 기막힌 가족사는 다시 온겨레의 가슴을 적셨다.우리는 지난 8·15에 이어두번째로 성사된 이번 2차 방문단 교환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데안도한다.이산가족 상봉사업의 정례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1차 방문단 교환 때만 해도 한차례 일과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이나 열기는 1차 때에 비해 아무래도 못한듯 하지만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감격이야 매한가지일 것이다.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부담이나 정치적 잡음의 소지를 줄여 상봉사업의지속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끼 만찬 비용에만 1억5백만원이 들었던 지난 8·15 서울 상봉 때의전례가 되풀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나아가 장충식(張忠植) 한적총재의 월간지 인터뷰와 같이 공연히 남북간 분란의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북한측이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는 바람에 장총재가이번 상봉기간 중 해외출장을 떠나는 어색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하는 얘기다. 상봉단 교환방식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이번 행사에 드는 전체 비용을 1차 때에 비해 절반으로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누차 지적한 것처럼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육로 방문 대신 굳이 서해직항로를 선택한 것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당장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로 상봉단을 태운 비행기 출발이 4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불편을 겪지 않았는가. 앞으로 긴 환영행사 등 허례는 줄이고 가족들간 만남은 자연스럽고밀도있게 하는 방향으로 행사 방식을 더욱 개선해 나가야 한다.3차때부터는 호텔 상봉 방식 보다는 고향방문을 하거나 상봉 가족을 동숙(同宿)하게 하는 등 한층 인도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이산가족 교류 인프라를 구축할 때라고 본다.상호 방문을 통한 시범적 상봉은 그것대로 규모와 횟수를 늘려가야 하겠지만 우편물 교환소와 상시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남북이 합의해야 한다는 뜻이다.남쪽에 사는 이산1세대만 해도 12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이들이 단 한번이라도 북쪽의 피붙이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매달 100명씩 상봉시키더라도 천년이 걸린다.북측은 상설 면회소라는 이산가족들을 위한 ‘만남의 오작교’를 놓는 데 적극성을 보이기를 바란다.
  • 한국천주교 반성문건 발표…3일 참회의식

    한국 천주교가 천주교 도입때부터 최근까지 지난 200여년간 교회의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민족에 저질렀던 잘못을 총체적으로 참회하는반성문건을 30일 발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박정일 주교)는 오는 3일 전국 각 교구·본당별로 이 문건을 토대로 참회의식을 갖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원한다. ‘쇄신과 화해’란 제목의 반성문건은 모두 7개 항목으로 천주교가박해받던 시절 외세에 힘입어 교회를 지키고자 우리 사회에 고통과상처를 준 것을 제일 항목으로 택했다.또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교회의 안녕을 위해 민족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제재한 것도 반성하고있다. 광복이후 분단상황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소홀히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아파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이밖에우리사회가 지닌 지역·계층·세대간 갈등해소나 장애인·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복지증진 노력도 부족했다고 참회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문건 말미에서 “이렇듯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한다”면서 교회의 무관심과 방관,잘못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거듭 용서를 청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광장] 10차 SOFA협상 주도하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위한 10차 공식 협상이 29일 시작해12월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그동안 한·미간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논의의 초점이 새로운 국내외 정세 변화에 맞는 한·미간의 근본적인 관계가 아니라,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개별조항에만 너무 치우친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렇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다 보니 우리정부가 협상의 큰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SOFA의 본 협정과 합의의사록은 냉전이 극치를 이룬 1966년에 체결된 것이다.그 이전에 있던 대전(大田)협정은 50년 전시중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군측에 전용형사관할권을 허용한명백히 불평등한 협정이었다.이 불평등한 대전협정 때문에 한국인 범죄 피해자들은 53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측의 일방적인 형사재판권 횡포에 속수무책이었다.그후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취약성 때문에 미국측에 평등한 한·미 관계를 요구할수 없었다.미국측은 6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 기본조약을 무조건 체결하고,한국군을 월남에파병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그대가로 시혜적 차원에서 66년 한·미행정협정을 체결해 주었다.다시말해 한·미행정협정에는 60년대 당시 한·미 관계의 일방적 특혜·시혜적인 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물론 91년 형사관할권 자동포기 조항 등 그후 몇가지 점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SOFA의 근본적 불평등의 상징인 본협정과 합의의사록은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태다.게다가 91년 개정협정에는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새로이 부담하는 방위비특별분담 부속협정까지 끼어들었다.따라서 현행 한·미행정협정에는 한·미간 동등한 상호관계가아닌 66년 당시의 불평등 요소가 형사,민사,시설 및 구역,노무, 환경,통관 관세 등 모든 영역에 깔려 있다.더욱이 SOFA의 모법인 한·미방위조약(1953년)도 이러한 일방적 한·미 시혜관계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더구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실질적으로 북한을 가상적으로 간주해 체결한 조약이다.그런데 90년 10월 독일통일,동유럽의 개혁과 개방은 국제적 차원에서 탈냉전·탈이념을 향한 역사의 큰 흐름이었다. 한반도는 분단으로 인해 이 국제적 흐름에 유일하게 동참하지 못한지역이었다.그러나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막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공존의 기반을 합의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와북·미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이에 따라 이제 주한미군의위상도 국내외 정세에 맞게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됐다.남북한간에는제2차 국방장관회담이 예정돼 있고 남북 군사실무회의도 구성,가동되고 있다.북·미관계에서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문제에 대해 이미개발 유보를 선언했고 향후 수출포기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미국도 북한을 테러 대상국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이렇게 SOFA의 모법인 상호방위조약의 전제조건인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8월2일 제8차 협상이 끝나고 발표된 공동발표문 제2항은 한·미 군사안보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뿐 동북아에서의 지역세력 균형자 내지는 평화유지자로서 주한미군의 변화된 역할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주한미군의 근본적 위상변화와 한·미 두나라간의 관계정립에 대한 양국간 근본적 이해의 조율 없이 무조건한·미 공조만 강조하는 SOFA협상의 진행은 시대착오적이며,6·15 공동선언의 실현과 변화된 국제정세에도 역행한다.따라서 한국측은 미국측에 변화한 국내외 정세에 맞는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환기시키고,이에 상응하도록 한·미관계의 기본 틀인 상호방위조약 개정 등근본적 문제의 개선도 요구해야 한다.항상 미국측의 주장이 최선은아니다.당연히 미국 대표는 미국 국익을 옹호할 것이다.우리 대표도이제 행정협정상 개별조항 개정과 더불어 6·15 공동선언 실천이라는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동반자 관계 정립이라는 한·미관계의 근본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알려야 할 것이다.협상에 임하는 한국측 관계자의 역사의식 제고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국제법
  • [대한포럼] SOFA개정, 시대에 맞게

    올해는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에 큰 지각변동이 시작된 한해였다.분단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간 만남이 그 상징적 징표다.어디 그 뿐이랴.총부리를 겨눴던 북한과 미국의 군수뇌부와 국무장관이 워싱턴과평양을 교차 방문했다. 그러나 전통적 우방인 한·미간에는 유독 유쾌하지 않은 일들로 얼룩졌다.뒤늦게 확인된 한국전 당시의 노근리 양민학살 문제,매향리오폭 사건,주한 미군 독극물 방류 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따랐다.언제 한·미간에 ‘좋은 시절’(벨 에포크)이 있었느냐는 생각이들 정도였다. 까닭에 “주한 미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의문이제기된다.이 땅의 우리는 이에 대한 논리적 답변에 앞서 저마다의 추억을 안고 있다.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40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군은 ‘풍요의 상징’이었을 법하다.미군 지프를 향해 “기브 미 추잉검”이라며 손을 흔들 때마다 그들이 던져주던 캔디나 껌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더러 그러한 풍요로움이 어두운 이미지와 겹치기도 한다.기지촌 정경을 그린 김명인 시인의시 ‘동두천·1’의 한 구절을 읽어보자.[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역두(驛頭) 저탄더미에 떨어져/…/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한 아이들도/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더는 소식도 모르는 이 바닥에서] 이 시에는 혼혈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미군 주둔지역인 기지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SOFA) 개정협상이 29일 다시 시작된다.올들어 8월,10월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협상을 벌이고도 원칙합의 수준에서 맴돌았던 협상이 재개된 것이다.이번엔 실질적 성과를거둬 한·미 양국에 모두 손해인 반미(反美) 감정을 잠재우는 계기가되기를 바란다.그런 점에서 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 등 양국 당국자가 연내 타결의지를 밝힌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최근 양국 대표단이 공식 테이블이 앉기도 전에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다.막후 샅바 잡기 단계에서 미국측이 개정형식면에서 SOFA 본문은 고치지 않고 부속문서만 수정하겠다는 안을 들고나왔다는 소식이 그것이다.물론 전향적 개정의지의 진실성이 중요하지 본문에 담느냐,아니면 합의의사록이나 교환각서 등에 넣느냐는 부차적 문제일 수 있다.다만 그같은 협상원칙이 SOFA의 불평등 조항을온존한 채 한국의 불만을 미봉하려는 발상에서 나왔다면 시대착오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현행 SOFA는 범세계적 냉전이 극에 달했던 지난 1966년 골격이 잡혔다.하지만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지하던 한국이 1991년 이후 주한 미군 주둔 경비를 상당부분 부담할 정도로 한·미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따라서 이번 SOFA 개정은 한·미 관계의 변화상과 한반도 탈냉전이라는 시대 정신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그 첫단추는 주둔국의 주권이 철저히 존중돼는 데서 끼워져야 한다. 특히 이 땅에서 한국인과 관련해 일어나는 미군범죄는 마땅히 한국이사법권을 관할하는 방향으로 SOFA를 개정해야 한다. 그 동안 각종 미군 범죄로 인해 미군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의미까지 용훼된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이번 협상에서 변화된 한·미 관계를담아낼 여지는 더 있다.각종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환경조항과 미군부대 반입농산물의 검역조항 신설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SOFA협상이 현 클린턴 행정부 임기 내에 매듭지어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미국의 새 행정부와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해 건설적 협력관계를 제대로 다질 수 있다고 본다.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한·미 관계도 21세기에는 달라져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대한시론] 바람직한 통일에의 길

    1970년대까지 통일론은 상대방을 흡수 대상으로 하는 흡수통일 방안이 대세였다.‘인민해방전쟁’과 ‘북진통일’이 이를 대변한다.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통일론은 통일의 당위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흡수통일 방안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하였으나 통일시기에 관해서는 큰 견해차를 보인다. 신중론은 남북의 체제와 경제적 차이가 해소될 때까지 통일 시기를늦추자는 것이고,적극론은 우선 통일한 다음에 체제와 경제적 차이를해소하자는 것이다.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의 존재를 상호 인정한 터전 위에 통일기구를 두어 통일의 형식을 취하자는 견해는 절충론이라할 수 있다.신중론은 통일 자체를 부정하는 통일부정론이라 할 수 있고,적극론은 현실을 무시한 망상적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의 사회는 과거의 산업사회를 뛰어넘은 정보화사회다.정보화사회에서 부의 기초는 재화가 아니라 정보이므로 인구수와 영토 크기는 국가의 부를 창조하는 데 절대적 요소가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통일 욕구는 산업사회이던 20세기 후반보다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국가는 부의 크기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웃 중국의 역사에서 송과 명이 몽고와 청에 멸망당한 것은 가난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 국가의 발전과 존속은 자족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대외적·지정학적 요소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그런데 현재의 남북 분단은 남에게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지 않는 도서화(島嶼化)를 강요하고,북에게는 대륙의 꼬리에 그치게 하여 해양과의 연결을 차단한다.이러한 상태의 지속이 남북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초래할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으로 하여금 대륙과 연결되게 하고 북으로 하여금 해양에진출하게 하여 상호 발전의 길을 가게 하는 길은 통일 이외에 다른방법이 없을 것이다.다만 통일 방법이 상대방을 흡수하는 것일 경우에는 제2의 남북 무력투쟁이 예고되므로 남북의 체제를 각각 유지하는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체제를 달리하는 여러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이웃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하지만그 체제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수교와 우호관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또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군주국가이면서 이슬람사회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와의 교역과 친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그렇다면 피를 같이나눈 남과 북 사이에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조하는 형태의 통일을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중론과 적극론을 지양하고 절충론에 입각하여하루 빨리 남북을 통일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강대한 중국의 바로 옆에 존재하면서도 5,000년 동안 민족과 국가의 동질성을 유지한 바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반도에서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삼국정립 시대에 신라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제대로 되지 아니하였다면 과연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인 당나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 우리는 현재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장차 후손들에게 국가의 번영과 존립을 남겨줄 숭고한 의무를 지고 있다.현재 우리에게 통일은지상 과제이다. 강현중 국민대 교수·변호사
  • 제설車 출동시간 50분단축

    ‘제설차량 출동,이제 10분이면 OK’ 강서구 공무원들이 염화칼슘을 빠르고 쉽게 실을 수 있는 작업대를개발,제설차량 출동시간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강서구 토목과 직원들이 힘을 모아 개발해낸 ‘염화칼슘 상차 다목적 작업대’는 차량보다 높은 철제 구조물로,그 위에 염화칼슘 2,000포 정도를 보관했다가 투입구를 통해 곧바로 제설차량에 실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이 방법으로 작업인부를 기존의 10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시간도 첫 상차의 경우 60분에서 10분으로 50분 단축시킨 것. 지금까지의 방법은 컨베이어벨트를 가동해 염화칼슘포대를 차량에직접 실은후 포대를 열어 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가동에 7명,차량작업 3명 등 10명의 인력이 필요했고 시간도 초기 상차엔 60분,그 이후엔 30분이나 걸려 신속한 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강서구 관계자는 “눈이 갑자기 내렸을 때 제설차량이 신속히 출동해야 교통대란을 방지할 수 있다”며 “새 작업대 개발로 올해는 눈걱정을 크게 덜게 됐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 [대한칼럼] 盡善盡美한 정책은 없다

    외치(外治)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고 한다.한 나라 안의 총체적인역량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나라 바깥을 향하는 외교적인 힘도그만큼 약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엔 외교는 잘 되고 있는데 나라 안의 사정은 왜 이렇게 부실한가 하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그렇다면 외치와 내치를 잇는 연결고리는 무엇이며 그 양자의 간격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달 중순 아시아·태평양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23일부터는 ‘아세안+한·중·일 3국’회의에 참석하는 등 연이은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다.지난 번 APEC외교에서는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연쇄 개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정착을 위한 외곽 여건을 재조율했고 이번 아세안 외교는 동남아 건설진출 확대,경제위기 공동대처 등 경제외교에 치중하고 있다.이뿐인가. 김대통령은 이미 6·15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화해협력시대를 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 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까지수상했다.외치에 관한 한 더할 나위 없는 업적을 남겼다.최근APEC정상회의에서 각종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보면 우리의 총체적인 국가역량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나라 안의 역량이 바깥에서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지금 일반이 느끼고 있는 내정(內政)은 그렇지가 못한 게 사실이다.대학 졸업생들이 취업을 못해 한숨을 쉬고 있고 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은 정치 싸움에 볼모로 잡혀 있다.농민들은 부채경감을 주장하며 고속도로를 점거하는가 하면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때아닌 동투(冬鬪)를 벼르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분명히 졸업했는데도 서민들의 마음이 답답하기는 3년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빛나는 외교와 따분한 내정 사이에 놓인 갭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정상외교는 대통령 혼자서라도 외롭게 수행할 수 있지만 내정은 대통령 혼자서는 결코 수행할 수가 없다.국무총리 이하 내각과 각 행정부처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며 집권여당이 국회의 입법활동을 통해 이를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렇게 되기위해서는 권력체계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움직여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권력이 제도화되고 제도화된 권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된다는 것이다.권력이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권한이위임되면서 그만큼 책임이 뒤따라야 하며 임기응변식의 문제해결이아니라 법과 원칙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뜻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대단히 나쁜 풍조가 팽배하고 있다.“떼쓰고 시끄럽게 하면 얻게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런 풍조가 생겨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정되는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런 풍조가 점차 만연되어가는 조짐이 보이는 데는 그동안 정부가 구사해 온 문제의 대처방식이 이같은 현상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심사숙고 끝에 정책의 분명한 방향과 원칙을 세웠다면 확실하게 집행해야 신뢰가 쌓인다.그런데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이다.반년 가까이 끌어 온 의약분업이나 대우자동차,현대건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 과연 확고한 문제 해결의방향과 의지가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모든 정책은 선택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떤 정책도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정책은 없으며 51%의 찬성에 의해 채택되면 나머지 49%의 입장을 가급적 반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정부는 각 이해집단에 ‘듣기 좋은 말’만을 해서는 안 된다.‘들어 줄 것과 못들어 줄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하며 이같은 구분은 위 아래 직책간에도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성공한 외치는 그동안 성공한 내치의 탄력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이러한 탄력이 시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원칙과 법에 의해 소신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경형 수석 논설위원 khlee@
  • 서울 공영주차료 10분단위 부과

    오는 30일부터 서울시의 공영주차장 이용요금이 10분 단위로 부과된다.지하철을 환승할 목적으로 이용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주차료가 50% 할인된다. 서울시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주차장설치 및 관리조례안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그동안 최초 30분,추가 10분씩 부과해오던 주차장요금을 10분 단위로 세분화 시킨 것이다.또 장애인및 국가유공자 차량 할인율은 50%에서 80%로 확대되고 지하철 환승목적으로 1회 주차한 차량도 50% 할인된다. 그러나 부제운행차량,카풀차량,모범납세차량 등은 감면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와 함께 3만원 이상 주차요금을 체납한 경우,10만원 이상 주차요금을 정당한 사유없이 미납한 경우는 운행제한장치를 설치하게 된다. 김용수기자
  • [사설] 黃長燁씨에게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씨가 20일 국가정보원측이 최근 자신의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하고 언론과의 자유로운 접촉 허용 등을 요구하고 나서 물의를 빚고 있다.황씨는 언론사에 보낸 성명서를 통해 “국정원은 탈북자 동지회 기관지인 ‘민족통일’6월호에 실린 ‘남북정상회담에 관련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이 일본 언론에 공개된 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며 △정치인과 언론인과의 접견 금지 △외부 강연 출연 금지 △‘민족통일’배포 금지 등 제한조치를 가했다”고 주장했다.이에대해 국정원측은 “황씨는 북한에서 고위직을 맡다가 망명한 특수 신분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당국이 권장해온 ‘자중(自重)’에 반발하여 자의적으로 성명을 냈다고 밝혔다. 황씨의 주장과 국정원의 해명을 들어보면 이번 문제를 보는 양측의시각 차가 상당히 있어 보인다.국정원은 황씨에 대한 문제의 ‘제한조치’가 북한의 테러 위협 가능성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불가피했다고한다.그렇더라도 그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황씨가 비록 ‘보호’받아야 할 특수 신분이라 하더라도 민주시민의 일원으로서 기본권은 누릴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분단 반세기 만에 겨우 싹트기 시작한 남북화해협력시대의 전개를 앞두고 황씨에게 몇 가지 고언(苦言)을 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6·15 남북정상회담이후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고 국제적 성원과 협력 속에 남북 평화체제에로의 전환을 살얼음판 위를걷듯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연한 대화의 상대방인 북한에 대해황씨의 지론인 ‘김정일(金正日)체제의 붕괴론’을 새삼 증폭시킬 필요가 과연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둘째,황씨의 북한체제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 꿈틀거리고 있는보수·진보의 이념적 갈등을 부추겨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시킬 우려는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3년전 죽음을 무릅쓰고 남으로 넘어온황씨는 신념이 확고한 만큼 행동도 사려 깊어야 할 것이다. 황씨의 성명과 관련,야당은국정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등 벌써부터 정치쟁점화를 꾀하고 있다.이같은 사태 진전은 대북문제를 유리그릇 다루 듯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자칫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국론분열이라는 대단히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황씨의 북한체제 붕괴론은 현 시점에서 남북 긴장 완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씨가 진정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남북화해 협력의 진척에 역행하지 않도록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 [데스크 시각] 금강산 관광 2년을 보며

    금강산엔 흰눈이 내려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꼭 2년이 되는 날,3박4일간 금강산엘 다녀왔다. ‘철따라 고운 옷으로 갈아입는’ 금강산은 때마침 내린 눈으로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소복담장(素服淡粧)을 한 채 손님을 맞았다.북쪽에서 겨울 금강을 개골(皆骨)보다는 설봉(雪峰)으로 더 많이 부르는이유를 알 것같았다. 동해항에서 현대 금강호가 뱃길관광의 첫 고동을 울린 게 98년 11월18일.그동안 35만여명이 금강산을 찾았다는 소식이다. 금강산 관광은 아직도 여러가지 불편과 제약 속에서 이뤄진다.세관검사만도 동해항에서 탈 때,고성항(장전항)에서 관광하기 위해 내릴때,관광을 마치고 배로 돌아올 때,이튿날 관광에 나설 때와 돌아올때 등 6차례나 된다. 북측 출입국관리소를 지나 금강산 관광코스로 가는 2차선 이동로(6. 1㎞)도 아스팔트 포장이 잘 돼있지만 어른키 한배 반만한 높이의 철조망이 길 양옆에 쭉 쳐져 있다. 사파리 관광하듯 철조망 너머로 온정리 마을과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주민들,산하의 모습을 훔쳐봐야(?)하는 아쉬움이있다.철저히 차단된 데서 오는 답답함이랄까,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응어리는 관광기간 내내 명치끝에 붙어다닌다.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언사나 큰 바위 곳곳에 새겨진 체제 선전문구를 손가락질하는 일 따위는 관광 초기와 다를 바없이 바로 현장에서 ‘달러 벌금형’이다.비용도 몇박몇일하는 동남아 관광보다 결코 헐하지가 않다. 물론 진전된 것들도 적지 않다.북측 출입국관리와 세관원들의 옷차림이 군복에서 일반복으로 바뀌고,분위기도 온유해졌다.관광코스 곳곳에 배치돼있는 북측 안내원들의 표정 역시 한결 밝아졌다.민영미(閔泳美)씨 억류사건 이후 관광객들의 말수가 적어지고,거꾸로 북측안내원들의 ‘말씨’가 많아졌다고 한다.북측 교예단 공연이나 온천탕도 초기엔 없었다.고성항엔 해상호텔이 들어섰고,지난달부터는 쾌속선 설봉호가 운항을 시작했다.앞으로 총석정,내금강까지 관광코스를 넓히고 고성항 근처에 골프장과 스키장을 세워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현대측 안내원은 전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편의시설과 관광코스가 금강산 관광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듯싶다.35만명의 관광객이 불편을 감수하며 금강산을 찾은 이유는 금강산의 빼어난 풍광도 풍광이지만,무엇보다 분단의 땅과 북녘동포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현장에서 벌금을 물리는 북측 안내원들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한 민족,한 핏줄’이라는 아릿한 감정을 일으켰던 경험을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했으리라. 마침 지난 18일 금강산 온정각에선 관광2주년 맞이 기념식이 조촐하게 열렸다.“금강산 사업은 사업도 사업이지만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고,나아가 통일의 초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지총책인 현대아산 우시언(禹時彦)이사의 축사엔 민간신분임에도 ‘통일외교관’으로서의 자긍심이 물씬 배어나왔다. 알려진대로 대북(對北)사업은 민간이 하기엔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적자가 누적되면 계속되기 어렵다.금강산 관광 등으로 현대는 지금까지 2,270억원의 누적적자를 봤다.초기 투자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도있지만 대북사업이 구조적으로 ‘이문을 남기기 어려운 사업’인 탓도 크다.대북사업 적자는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의 원인(遠因)으로도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누적적자를 단순히 민간기업의 적자로 접근하기보다언젠가 우리가 지불해야 할 통일비용을 선(先)지급했다고 보는 시각이 이제는 필요해 보인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적자를 직접 보전해 줄 수는 없지만,앞으로 늘게 될 외국관광객을 고려할 때 크루즈선이라면 갖추고 있는 카지노나면세점같은 시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그것을 특혜라기보다는 미래에 정부가 맡게 될지 모를 부담을 미리 줄여나가는 측면지원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우리에겐 불편한,북측의 통제도 금강산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충정으로 받아들이자. “동포 여러분,형제 여러분,반갑습니다…” 북측 공연배우들의 ‘통일화합의 노래’가 금강산에서 철마다 울려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권혁찬 디지털팀장]khc@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희망의 여정

    나는 산행을 좋아한다.산에 오르면 신선한 공기와 맑은 하늘,푸른숲….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산길을걷다 보면 어느덧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지나온 모습들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의 삶과 나아가 겨레의 진로까지 고민해볼 수 있는 사색의시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정(旅程) 또는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이는 여행이나 등산이 도달해야 할 어떤 목적지를 미리 정하고 그것에도달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인생도 어떤 목표를 향한 부단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희망의 새 천년 새로운 세기와 함께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평화와통일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써 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시작’이란 말이 함축하고있는 의미와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설렘과 희망을 안겨주게 마련이다.그러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고 말했듯이 처음부터 그릇된길로 들어서면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가 목표한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지혜를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난 55년간 냉전의 굴레 속에 갇혀 있었다.이제 겨우 평화와 번영을 향해 첫 걸음을 떼어 놓았다.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길을가고 있는 것이다.남북간에 진행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경의선 철도 연결과 경제협력 4대 합의서 타결 등이 바로 그것이며,이는 우리가 그동안 북측에 그토록 요구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빠르다” “길을 잘못 든 것 아니냐”며 시작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호흡을 가다듬고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냉정히 파악해야 한다.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우리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으로 마땅히 시작을 한 것이다.멀리 내다보면서 자신감을 갖고 분명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듯이 인생도 많은 변화와 기복을 겪게 된다.남북이 하나 되어 가는 긴 여정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이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인내와 노력,그리고 치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그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많고,갈수록 길은 멀게만느끼게 될 것이다.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자신의 체력에맞게 산을 올라야만 중도에 포기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함께 걷고 있는 화해와 협력,평화와 통일의 길은 우리 민족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듯 민족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을충실히 수행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럴 때 평화와 통일이라는 정상은 어느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가고 있는 길은 더 이상 ‘외로운 여정’이 아닌 ‘희망의 여정’이 될 것이다.남과 북은 든든한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다가서고 있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 [기고] 되돌아 본 선열들의 순국정신

    1세기 전 우리 민족은 세계사의 큰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나라를 잃는 뼈아픈 역사를 맛보았다.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역사적 반성과 함께 강탈당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위국(爲國)헌신하신 애국선열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17일은 제61회 ‘순국선열의 날’이었다.정부는 순국선열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고자 정부기념 행사를 거행한다.그러나 이 날을 기억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같다. 사실 ‘순국선열의 날’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1월17일을 순국선열 공동추모일로 지정하여 추모행사를 거행한 데서 연유한다.이 날로 정한 까닭은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勒結)되어 사실상 국권이 강탈당한 치욕을 씻기 위함이며,그 날을 전후하여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비분강개하여 자결하거나의병투쟁으로 순국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뜻깊은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가 선열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후손된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또한 선열의 거룩한 희생정신의 가르침도 본받아야겠다.새천년을 맞이하여우리 민족에게는 희망찬 일들이 찾아들지만 반면에 일부 어려운 일에도 직면해 있다.무엇보다 민족분단 55년을 뛰어넘어 가슴벅차고 경사스러운 일이 새천년에 찾아왔다.6·15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남북 화해·협력의 실질적 성과가 계속 이어지는 일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위대한 역사를 열어나가는 역사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큰 물결에 도전받고 있으며 사회 각분야에 부패와 물질만능주의,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치관의 부재 등 심한 대립과 갈등 속에 흔들린다.그 원인을 급속한 산업화가 빚어낸 정신문화의 상실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과거 국가발전의 토대가 된 국민정부의 부재가 곧 정치·경제 및 사회 전체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제위기도,직접적인 원인은 각 경제주체의 책임이라 하더라도본질적인 원인은 정신문화의 황폐화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몸이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건전한 정신이 없으면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듯,외형적으로 아무리 큰 나라라 하더라도 올바른 국민정신이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곧 무너지고 만다.우리는 정신문화의 부재로한 시대를 풍미한 나라가 지구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교훈을세계사를 통하여 흔히 보아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선열이 물려주신 훌륭한 정신문화 유산이 있다. 조국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린 선열의 순국정신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덕목이며, 국민정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지금 우리에게 닥친 여러가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사 흐름에 적극 대처하여 1세기 전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나아가 모처럼찾아온 남북통일의 기반조성을 굳건히 세워나가야 한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는 선열의 순국정신을 새롭게 본받고 21세기 위대한 한민족 통일국가 건설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보자. ◆ 양동영 서울지방보훈청장
  •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 언론재단 초청 강연

    우다웨이(武大偉) 주한 중국대사는 16일 한국언론재단 초청으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와 토론을 통해 한·중간 현안에 대한 소신을 적극 피력했다.98년 9월 한국에 부임한 우 대사는 그동안 거침없는 언변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적지않은 화제를 불러모았다.다음은 현안별 우 대사 견해. ◆주한미군 중국 정부는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반대한다는 일관된 자세를 가지고 있다.주한미군 문제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적절히 풀어야 한다.개인적으로는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 뒤 미국이 군대주둔 정책을 조정할 것으로 본다. ◆달라이라마 방한 달라이라마는 59년 미 중앙정보부(CIA)에 의해 인도로 간 후 지난 40여 년간 중국을 분열시키고 티베트를 독립시키려고만 했다.중국의 달라이라마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는 그가 주장하는 잘못된 생각을 바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때만 가능하다.요즘 한국에서 달라이라마 초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달라이라마는 종교라는 외투를 입고 티베트 독립을 주창하고,개인적 영향력 확대 및 활동경비 모금을 위해 방한하려 한다.인위적 분단이라는,중국과 비슷한 역사적 고통을 겪은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줘야 한다. ◆중국의 황사 등 환경문제 경제발전에 따른 환경문제는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명백하고 확고한 정책이다.하지만 중국공장에 많은 탈황설비가 필요한데 설치비용이 너무 비싸 중국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한국과 일본이 이같은 설비를 제공하면 대기오염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황사는 자연현상이므로 중국만의 힘으로는 안된다.조림사업을 포함한 한·중·일간 여러가지 환경보존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있다. ◆미 대선과 미·중 관계 결과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미·중 관계를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누가 돼도 미·중 관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국제적 관심거리는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미국의 선거제도다.미국은 자기의 선거제도가 세계 최고이고 가장 민주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자기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자기의 발전모델과 생각,이데올로기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항상 실패하게 마련이다. ◆한반도 통일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은 중국의 처지에 부합하고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중국은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 과정에서 사리사욕을 채우진 않을 것이다.통일의 시기는 남북 양측의 노력에 달렸다.내가 2006년 퇴직할 때쯤 평화통일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홍원상기자 w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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