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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칼럼] 민족사의 새 지평 연 2000년

    새 천년의 첫해 2000년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불신과 반목,대립으로점철됐던 민족사를 화해와 협력,그리고 상생(相生)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역사적인 의미를 남긴 한해였다.분단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채택,장관급회담과 국방장관회담 등 다양한 당국간 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등 대북정책의 획기적인성과들은 먼 훗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으로 기록될 것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이뤄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의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남북한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 장관급회담 4회,국방장관회담 1회,외무장관회담 1회,경제협력 실무 접촉 2회,군사 실무회담 2회 등 올해 개최된 각종 남북 대화는 지난 1990년대 초 고위급회담 이래 최대 규모였다.또 두 차례실시된 이산가족 교환 방문은 온갖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시드니올림픽 개막식 공동 입장과 남북경협 제도화 장치를 위한 투자보장,이중과세 방지 등 4개 합의서 타결역시 실질적 차원의 성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올해 남북 교역은 사상 처음으로 4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올 남북 경협은 남북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확고히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남북관계의 발전은 국민의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북포용정책에 북측 또한 나름대로 실리주의로 호응함에 따라 이루어진것이다.특히 남북의 두 정상이 직접 서명,발표한 6·15공동선언은 조항 하나하나의 세세한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있지만 과거 남북 기본합의서와 달리 실천성을 담보하고 있다.또 남북 정상회담 전후에 실현된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중국 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 및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 등으로 대변되는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 노력은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 주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남북 두 정상이 물꼬를 튼 남북관계 진전은 양측 모두가 아직은 조심스레 가꿔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있다. 올해 남북관계는 최근 몇가지 돌출사태가 발생하고 남쪽의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다소 주춤거리고 있고,일부 혼선이 빚어지고있다. 그동안 남북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및 서신 교환, 경제시찰단과 한라산관광단 방문,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 서울 방문 등의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4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이 내년 초까지 50만㎾의 전력 지원을 요청한 것도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북 전력 지원문제는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다는 일부의 비판과 어려운 경제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 부담이 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50만㎾ 전력 지원 비용이 7,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면에서 실제 전력 지원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더욱이 북측이 한적 총재의 월간지 인터뷰 내용이나 우리 국방백서의‘주적’표현 등을 놓고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남북관계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못하다는 판단이다. 한편 북·미관계가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공화당 행정부 출범이 자칫 한반도의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 움직임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이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켰으면 한다. 남북한은 제4차 장관급회담에서 형성된 불신과 오해를 불식시키고대화 저해 요인을 제거해서 새해에는 한 차원 높은 교류,협력관계를이루어 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장청수 객원논설위원 csj@
  • [대한광장] 김수영 시인에게

    김수영 시인! 당신은 말했죠.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우리 민족을 사랑한다며 그 사랑의 폭과 깊이에 비하면 제3인도교의 철근기둥도 좀벌레의 솜털에 지나지 않는다고.민족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는 순간,아니 우리 민족이 살아온 세월을 실존적으로 이해하는 순간 그 어떤 외방인의 기준이나 잣대란 무의미한 것이라고.그래서 남들이후진국이라거니 모자란 민족이니 말해도 우리 민족의 가장 후미진 유산과 삶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한다고. 그랬습니다.나는 학생들에게 당신의 ‘거대한 뿌리’를 읽히면서 거기에 나오는 요설과 욕설이 얼마나 통쾌하냐고,적어도 자기 삶과 역사를 이 정도는 사랑해야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그로부터 40년이 지났습니다.그런데도 당신이타매해 마지 않던 사회현실은 계속되고 당신이 그토록 저주해 마지않던 국가 외적 현실 또한 변함없이 의연합니다. 특히 분단 상황은 여전하고 그것을 바꿔보려는 노력은 여전히 해괴한 힘에 의해 지지부진하거나 왜곡돼 가고 있습니다.지식인은 여전히비겁하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그 모양이고 민중의 살림살이 또한 대부분 그모양 그꼴입니다. 그래요,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당신은 꿈에서조차 이북 땅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남 땅의 한 대통령이 거기에 가서 열렬히 환영받고 공동선언까지 발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후 이산가족 상봉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지요.처음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반세기만의 상봉이라고,그 어떤 연극이나 소설도 이처럼 감동적일 수 없다고.사람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경의선을 잇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환영받고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게다가 이런 일련의 일에 감동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로공표하여,건물 곳곳은 물론이요 이른바 극단적인 보수세력으로 불리는 곳조차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축하 플래카드를 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빨갱이라며 극단적으로 기피하던 사람에게 앞다투어 머리 숙이며 축하의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역사는 전진하는 것이며 진보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야말로 잠시였습니다.축하 플래카드의 석유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람들은 덩달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쪽도 먹고 살기 힘든데 이쪽 능력은 헤아리지 않고 노벨평화상받으려고 북한에 마구 퍼주었다’고.나라가 어지러우니 상받으러 나가지 말라고. 그래요 거기까지도 나는 참겠습니다,우리는 이렇게도 후안무치하다며,그 뻔뻔스러움도 황송하다며 참겠습니다.그러나 요즈음 우리 모두가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정신이 있는 민족인지 의심스럽습니다.정권을 잡는 것이 정당의 목표이지만 상대당이 잘하는 일이건아니건 무조건 흠집을 내느라 바쁘고,일반 국민은,개혁은 해야 하지만 이해와 관련된 문제는 절대 안된다는 태도로 이른바 결사항전을하면서 정부를 비판하고 나섭니다. 전체적으로 이전 정권에 비해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심리는 높으면서도 제 이해관계는 이기적 기준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니무슨 수로 무엇을 할 수있단 말일까요. 게다가 의견 표출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뿐입니까.언론은 폭로정치인의 나팔이 되어 실컷 떠들다가 ‘아니면 그만’이라고 슬그머니 딴 얘기를 하면서 시선을 돌려놓음으로써 공식적인 유언비어 제조창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관료들은 ‘정권은 짧고 내자리는 영원하다’는 굳은 신념으로 검소한 척하며 가정식 백반이나먹고 세월만 보내니 위로부터 아래까지 어디로 가야겠다는 굳은 의지 하나 없는 망망대해의 해파리가 돼버렸다는 생각입니다. 김수영 시인,이런 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그래도 황송하다며 저 흐린 세모의 저녁하늘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요. 강 형 철 숭의여대교수·시인
  •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화제

    언론학자 리영희교수의 사회비평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한국 지성계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편향을 지적한 것으로,국내 역사학계로 치면 ‘사회주의 배제’의 ‘외눈박이 역사관’을 질타한 것으로 볼 수 있다.한국 현대사에서 ‘사회주의’에 관한 연구는 운동차원과는 별개로 학문연구에서도 지나치게 배제된 감이 없지 않다.독립운동사 서술은 사회주의자들이 한 일을 거의 뺀 채 민족주의 세력의활동만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해방공간과 그 이후 역사서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특히 분단체제하에서 남한의 북한연구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나머지 사회주의 사상·운동을 합리적인 바탕에서 연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것이 사실이다. 최근 성대경 전 성균관대 사학과교수와 박사학위를 가진 그 제자들이중심이 돼 간행한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역사비평사 펴냄)는우리 역사학계의 ‘이데올로기 편식’현상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논문 9편을 실었다.제1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편에서 ‘조선공산당 제1차 당대회’(전명혁)‘꼼뮤니스트그룹의 당재건운동’(최규진)은 1920∼30년대 주요 사건들에 대해 참신한 자료발굴과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며,‘1920년대 경북지역의 사회주의운동’(김일수)은 20년대 경북지역의 사회주의운동에 주목하여,지방사연구의 어려움을 딛고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다. 제2부 ‘망명지의 사회주의자들’편에서는 만주 일본 소비에트러시아등 해외 망명지에서 전개된 사회주의운동에 주목한 글들을 실었다. ‘조선공산당 일본총국과 김천해’(김인덕)‘동북항일연군과 허형식’(장세윤)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적 사회주의운동 지도자에 대한 사례연구이다. 허형식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인물이나 중국에서는 거물 사회주의혁명가로 꼽힌다. 임경석의 ‘이르쿠츠크파 공산주의그룹의 기원’은 러시아 지역 한인공산주의자 단체인 전로(全露)한인공산당 중앙총회의 ‘회의록’분석을 통해 현지 러시아공산당과의 관계 등을 꼼꼼히 분석하여 주목된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해방직후의 분단고착화 과정에서 사회주의가 수행한 역할을 조명하였다.‘미군정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정치·경제적 지향’ (안태정)‘여순사건 당시의 민간인학살’(김득중)‘한국전쟁 직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의 성격과 통일정책’(이신철)등.책을 엮은 성대경교수는 서문에서 “한국사회와 역사학계의 현황을 되돌아볼 때 한국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현대사의 이성적인 재구성과 평화통일의 기운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석유 의존도를 줄이자

    새천년 첫해를 실로 의미 있게 보냈다. 분단 50년을 뛰어넘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세계의 주목을받았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자긍심을 한껏 드높였다.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개최는 각국 지도자의 찬사를 받아 우리의 국가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배럴당 10달러 내외이던 유가가 작년말부터 오르기 시작해 한때는 30달러를 웃돌았다.다행히 지금은 23∼24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잠재한 ‘고유가 가능성’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을 이루려는 우리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유가가 치솟던 때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는 ‘고유가시대와 에너지자원의 확보’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어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참여한 가운데, 이러한 에너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지금의 유가가 다소 진정된다 하더라도 아주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과거에도 유가가 올라 석유 수입국이 어려움을 겪은 때가 있으나 이번 유가상승은 전쟁이나 정치적 불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산유국들의 생산능력이 정체해 늘어나는 석유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1960∼70년대 이룩한 경제성장은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대량 투입하여 수출품 생산에 주력한 데 바탕을 두고 있다.이러한 과정에서 에너지는 싼 값에 마음대로 소비할 수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소비효율화를 추진한 결과 이번과 같은 고유가에도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어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이번 유가상승은 산유국의 생산능력이 정체되어 늘어나는 공급을 맞출 수 없는 데 큰 원인이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고 보면, 우리도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에너지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석유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후변화 협약이다.선진국들이 의무부담을 요구하는 첫번째 목표가 바로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저유가시대’는 끝나간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이제는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라도 생산을 많이 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라,가능한 한 석유에너지를 탈피하고 환경을오염시키지 않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로 성장의 기본원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에너지 여건이 비슷한 일본 프랑스 같은 나라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선진경제를 구축하였는가.이 나라들의 특징은원자력발전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두 나라의 드골과 나카소네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원자력의 필요성을일찍이 이해하고 확고한 정책의지를 가졌다는 것도 공통점이다.당시에는 자원의 확보라는 축면만이 강조되던 시기였다.지금은 있는 자원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시대이다. 에너지를 씀으로써 환경을 훼손한다면 탄소세 같은 것을 부과해서라도 연료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 분위기이고 신경제질서의 흐름이다. 경제성장이 안정단계에 있는선진국과는 달리 한동안 과거와 같은에너지 수요를 갑자기 줄일 수 없는 우리나라가 고유가의 벽을헤치고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을 확대해야 한다. 김장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 EU, 동유럽 가입 승인

    서유럽으로만 이뤄졌던 절반의 유럽통합이 동유럽을 포함한 완전한유럽통합으로 발전할 기틀을 마련했다.2차대전 후 냉전에 따른 동·서 유럽의 분단을 55년만에 깨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11일 새벽(현지시간) 18시간의 마라톤회담끝에 EU회원국 확대에 대비한 기구개혁안에 합의했다.이에 따라 중부및 동유럽의 옛 공산주의국가 12개국은 빠르면 2004년께부터 순차적으로 EU에 가입하게 된다. 이번 회담은 EU 최고의결기구인 각료회의 투표권 배분을 놓고 벨기에,포르투갈 등 군소국가들이 반발해 한때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막판에 의장국 프랑스의 안을 수용,성공적으로마무리됐다.EU 가맹국 확대에 필요한 기구개혁도 순조롭게 이뤄지게됐다. 이번 회담에서는 중요사안이었던 투표권 배분 외에 ▲가중다수결 (인구비례에 따라 국가별 가중치에 따른 다수결) 의결 분야 확대 ▲EU집행위원 수 조정 ▲통합 심화를 위해 회원국들 중 ‘핵심그룹’을설정하는 내용의 ‘협력강화’ 문제 등에 합의했다. 정상들은 6만명 규모의신속대응군 창설 문제에도 합의했다.또 ‘EU미래에 관한 선언’을 채택,2004년 EU개혁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EU의 확대·강화 및 미국 주도의 국제정책 추종에서 벗어나 유럽의 목소리를 담은 독자노선 추구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동시에진작부터 유럽의 독자방위노선에 경고를 보내온 미국과의 마찰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각료회의에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각각 29표,스페인은 27표,네덜란드는 13표,그리스,벨기에,포르투갈은 각각12표,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10표,덴마크,핀란드,아일랜드는 각각 7표,룩셈부르크는 4표를 갖게 됐다. 가입협상 국가인 폴란드에 27표,루마니아에 14표,체코와 헝가리에각각 12표,불가리아 10표,슬로바키아와 리투아니아 7표,라트비아,슬로베니아,에스토니아,키프로스 각 4표,그리고 몰타에 3표씩이 할당됐다. 그러나 회담에서 드러난 회원국들간 주도권 다툼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앞으로 하나의 유럽의 성패를 가름할 최대변수가 될 것이다.특히유럽의 맹주 자리를 놓고 벌어질 독일과 프랑스,영국간의 다툼이 문제다. 이진아기자 jlee@
  • [사설] 남북 장관급회담과 새 청사진

    오늘부터 15일까지 3박4일간 평양에서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린다.회담은 올해 남북대화의 성과를 총결산하고 내년도의 개선 방향을 정하는 ‘징검다리 회담’의 성격을 지닌다.우리는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면서 성장하듯이 남북이 올 한해의 남북관계를 정리하고,이를토대로 한 차원 높은 새 교류·협력 청사진을 수립하기 바란다. 돌이켜 보면 올해는 남북간 각종 대화와 교류가 숨가쁘게 이루어진한해였다.역사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이산가족 방문단을 두 차례교환하고 경의선 복구에 합의했다.어디 그 뿐인가.총부리를 맞대던남북 군수뇌부도 제주도에서 만났다.분단 반세기를 통틀어 유례없을정도로 괄목할 만한 관계 개선이었다.그러나 남북간 원칙적 합의에도불구하고 끝내 이행되지 않은 교류·협력 사업도 적지 않다.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생사·주소 확인 및 북한 경제시찰단 방남(訪南)등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이 과정에서 몇가지 불협화음도 불거졌다.장충식(張忠植) 한적 총재의 월간지 인터뷰 파문과,2차 이산가족 교환 때 북측 인사들의 정치색 짙은 발언이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번 4차 회담에서는 남북관계에 끼어든 장애물과 거품을 말끔히 제거해야 한다.이를 토대로 남북은 21세기 첫해인 새해엔 화해·협력구도를 한층 심화·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이번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 일정 등 남북관계 개선에 탄력을 붙일 수 있는 합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이는 남북이 6·15공동선언에 합의할 당시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가능한 일이다.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를 일궈나가자는 게 공동선언의 근본 취지가 아닌가.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오슬로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남북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에 남북이의기투합해야 할 때다.
  • [발언대] ‘대일선전포고’ 정신 되새기자

    민족의 웅비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시작한 새 천년의 첫해가 저물어 간다.벌써 100여년전 ‘요즘 사람들은 유시유종(有始有終)이 드므오’라 하신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말씀처럼 얼마나 많은 계획들이 처음에 시작된 대로 끝을 맺었는지 돌아볼 때다. 새 천년의 희망처럼 민족단합의 대기류와 노벨상 수상 같은 감동과감격의 시간도 있었고 그와는 달리 어려워진 경제여건 때문에 사회가많이 위축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1941년 12월9일 주권국가로서 조국의 근세사에 처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는 상승된 통일무드에 박차를 가하고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힘을 실어주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 35년의 고난사에서도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시작으로민족의 정신적 응집력을 키워 왔으며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수많은 의열사들이 쾌거를 이어왔다.1940년 광복군을 창군한 것은 그간의독립투쟁을 위한 민족 의지와 힘이 하나로 뭉쳐 탄생한 결정체였다. 1년 후인 1941년12월9일의 대일 선전포고는 명실상부한 주권국가로서의 첫번째 발동이었다.이것은 작게는 조선이 자주국임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음과 동시에 넓게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인류의 인도적 세계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대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민족 대단합의 통일을 민족 지상과제로 삼고 있으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경제국가로의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이 두가지 목표를 위해서는 외부 지원과 자구적인 능력개발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다.그러나 하마터면 세계사에서 민족이 사라질뻔한 위기 상황에서 발동한 대일 선전포고에는 조국과 세계평화를 위한 민족의 집념과 의지가 담겨 있다. 이를 시원적 원동력으로 삼아 50년 분단의 벽을 넘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고,작은 경제위기를 극복해 보다 큰 국가의 힘을 만들어낼수 있는 생산적 가치창출을 기해야 할 것이다. 권오석[청주보훈지청 관리과장]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한칼럼] 통일기반 조성위한 새 통일교육

    정부는 7일 통일교육심의위원회에서 새해 통일교육 기본계획 및 지침을 확정·발표했다.내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6.15남북정상회담 등 올해 진전된 남북관계를 대폭 반영하고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축으로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높이는 내용의 통일교육을 실시키로 했다.새 통일교육 기본계획은 과거의 통일교육이 불행했던 민족사와 냉전적 안보 틀에서 이루어졌던 점에 비해 남북화해와 민족동질성 회복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정부의 새 통일교육 기본계획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합리적이고전향적 정책결정으로 평가된다.우리가 민족의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 남북한 민족구성원들간에 오랜 단절로 인해 가치관과 사고방식,행동양식 등이 다르고 민족의 뿌리인역사,용어,고유문화까지도 공유하지 못하는 민족 이질성의 심화를 극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육은 통일과업의 주체인 국민들에게 통일 지향적 가치관을 심어주고,언젠가 통일이 실현되는 날을 큰 혼란과 충격없이 맞이하기 위한 사전 대비 작업으로 중요하다.다시 말해 통일교육은 통일추진과정과 통일이후 민족사회에 나타날 여러가지 갈등과 혼란을예견하여 이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극소화시킬 수 있는 정신,문화적기반요소들을 국민교육을 통해 미리 튼튼히 길러주는 일이다.즉 통일후 민족전체의 삶이 보다 평화스럽고 복된 것이 되도록 민족사회의내부적 통합에 필요한 건전한 민족의식과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사업이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경우를 보면 1972년 동·서독간에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래 18년동안 상호교류와 협력이 유지되는가운데 민족동질화 노력과 치밀한 준비과정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서독 주민간에 심각한 심리적 괴리감과 갈등이 존재하고,체제통합에 따른 사회·문화적 충격이가시지 않고 있다.이로 인한 독일사회의 내부적 통합의 어려움은 우리 통일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같은 맥락에서 새 통일교육은 특히 그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북한의 현실과 통일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합리적인 판단과 비판,이것이 통일교육의 기초가 돼야한다.이를 토대로 통일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태도와 의지를 고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통일교육은 또 남북 화해를 촉진하는 교육이 돼야한다.남북한 주민들의 의식속에 잠재한 상호불신·적대감 등 통일 저해요인을 밝혀내고 이것을 시정해 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확신과 통일사회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심어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통일 이후 우리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뿐만아니라,민족의 발전역량을 배가 시키고 현재보다 발전된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통일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2세국민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육의 목표다. 따라서 새 통일교육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열악한 통일교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교육자료의 부족,북한정보에 대한 접근제한,시청각 교재의 미흡등은 통일문제를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있어큰 장애가 되고 있다. 통일문제의 중요성과 방대성에 비추어볼때 통일교육은 체계적이고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통일교육은 이제 소극적인 분단극복 차원을 넘어 적극적 통일 모색과 아울러 모든 통일후계세대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교수기법의 개발 보급에도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전향적 새 통일교육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의 차질없는 이행과 지속적 남북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장청수 객원논설위원 ccj@
  • 납북자문제 北과 인내심 갖고 대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처음으로 성사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가족상봉과 해결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산물로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상처를 상징하고 있는 이들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해법을 살펴본다. 2차 이산가족 방문(11월30일∼12월2일) 때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짐으로써 남북의 납북자 문제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납북어부 상봉은 북한을 꾸준히 설득,납북자를 이산가족의 틀에 넣어 상봉부터 시키자는 우리 정부의 신중한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가능했다. 그러나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과 ‘비전향장기수북송’과 맞먹는 피랍자 송환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고민도 크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는 다른 남북 현안들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를 해나간다는 전략이다.특히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의 우선순위도 높게 잡고 있다. 납북자란 넓은 의미에서 분단 이후 한국국민으로써 북한에 억류돼사망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북 당시의 신분,납북지역,시기,상황 등에 따라 세분되며 이를 유형별로 보면 ▲국군포로 ▲한국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 ▲납북어부 ▲외국에서 강제납치된 민간인 ▲항공기 피랍자 ▲북송 재일교포 ▲북파공작원 등으로 나뉜다. 납북자에 대한 정의는 관계기관마다 다르다.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군포로의 경우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공식확인한 국군포로는 351명에 불과하다.북파공작원은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차이때문에 전체규모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납북억류자 현황자료에서 정전협정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90명이며 이 중 13%인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에는 어부(3,692명),69년 KAL기 피랍에 따른승무원과 승객(51명),함정 피랍군인 및 경찰관(22명)등이 포함돼있다. 북한은 납북자의 북한거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납북자가아니라 공화국을 동경해 자진 월북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겐 공식적으로 ‘의거입북자’‘의용군’‘통일의 역군’‘통일용사’ 등으로 호칭한다.납북자들은 대부분 대남선전에 활용된다.납북자를 회유,협박해 자진월북했다는 기자회견을 시키고 월북자들의 생활상을 TV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체제에저항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납·월북자 22명 수용확인)하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의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정전협정체결 이후 포로교환을 통해 남으로 갈 사람은 다 갔으므로 법적으로 국군포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납북자 가족도 상봉신청하면 만남 기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6일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규정된절차에 따라 상봉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북측과 납북자의 상봉확대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한적과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별도 생사확인과 면회소를 통한 상봉기회가있을 때에도 포함시키는 등 납북자 가족 상봉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납북자 상봉을 이산가족 해법과 별도 의제로 풀어나가자’는 일부주장에 대해 박총장은 명분론적인 접근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납북자들이 ‘왜 북한땅에 있느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가족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다. 2차 상봉에서 납북자 가족상봉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질문에 박총장은 ‘북에 납북자는 없다’는 북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측도 인도적인 문제에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며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적이 북측과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지난 6월 말 1차 적십자회담때.비공식적인 입장 전달 수준에 그쳤지만 북측은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그뒤 9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다시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북측 반응이 많이 누그러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군포로의 상봉문제에 대해선 “국군포로의 가족상봉 문제도일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사회담을 통해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방장관급 회담 등 다른 정부채널에서 해결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전협정후 끌려간 사람들 이산과 별개”.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취급해선 안됩니다” 87년 백령도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이자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인 최우영(崔祐英·30·여)씨는 “납북자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납북자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범위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최씨는 “이산가족들 중에는 6·25 때 자진 월북한경우도 있지만 납북자는 모두 정전 이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북에끌려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납북자가 이산가족과 같이다뤄지면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처럼 가족간에 일회성 만남은 가능하겠지만 남쪽으로의 송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최씨는 “지금까지 남북간에 있었던 300회 이상의 협상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 정부는 92년에는 이인모씨,올해는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북으로 보내 주면서도 남측의 납북자 생환에 대해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최씨는 또 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정책기구나 전담부서의 필요성을강조했다. “우리 정부에는 납북자 문제 담당직원이 통일부 인도지원국 사무관 한명이 고작”이라면서 “지원정책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는 지난 9월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생환한 이재근씨에게 탈북자에 준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최씨는 “통일이란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먼저 사람의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근래 남북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도 더 잘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납북자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분단강조’ 교과서 내용 줄인다

    내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북한의 일상적인 삶과 주민 생활상을알리는 내용이 늘어나고 ‘분단의 고통’ ‘한국전쟁’ 등 분단을 강조하는 내용은 줄어든다. 또 6·15 남북정상회담,장관급회담 등 올해 일어난 남북관계를 대폭반영하고 남북관계를 대화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정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의 새해 통일교육기본계획 및 지침을 확정하고 오는 7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재로 열리는 통일교육심의위원회의를 거쳐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2001년도판 중학교용 새 윤리 교과서에 이같은 원칙을 반영,우리실정과 비교한 북한 청소년들의 생활 내용을 대폭 반영하기로 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여성 선언]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두번째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추락하는 각종경제지표 때문에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신문지상에서 그리 큰지면을 차지하지 못했다.그들의 눈물이 우리를 감동시키기에는 주변상황도 마음도 얼어붙은 탓일까. 그럼에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연이 있었다.두 동생을 남겨두고 부모와 함께 월남한 맏형이 50년 만에 따온‘알밤’때문이다.사연인즉슨 맏형은 월남할 때 외가에 맡긴 동생들이 따라나서겠다고 조르자“뒷산으로 알밤 따러 간다”고 속여 떼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동생들을 속이고 부모와 월남한 맏이,뒷산에 간 부모와 형을 기다리며 50년 세월을 보내야 한,이제는 늙어버린 동생들.그 동생들을 생각하며 평생‘알밤’을 가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형.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면‘가족’이란 무엇일까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세기 동안 타의에 의해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이산가족들,그 켜켜이 쌓인 한으로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야 했던 사람들.그들에게 가족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가장따뜻하고 근본적인 어떤 곳이다. 그러나 한 집안에 같이 살아도 늘 헤어지기만을 꿈꾸는 가족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가. 지난 1일에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석씨가 사형을 선고받았다.얼마 전엔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때려죽인 며느리의 이야기가 보도됐고, 딸을 매매춘에 나서게 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어린 아이를 폭행한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지난 80년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감격적으로상봉한 가족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재산상의 문제 때문에 또한번의 상처를 입고 헤어져야 했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유비통신을타고 있다. ‘혈육의 본능적인 정’‘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논리가무력해지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영혼에 상처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가정은 사회의온갖 스트레스를 떠안은 구성원들이 정신과 몸을 무장해제하고 속내를 드러낼 수있는 곳이기에 가장 편안한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양면성을 외면한 채 가정의 행복한 측면만 자꾸 부각하다 보면그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젠‘가족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하다’고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가족들이 생겨난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우선 이산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졌으면 좋겠다.그들의 아픔을 단지‘본능적인 혈육의 정’을 끊어놓은 것으로만 설명하려는 감정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맞서는 분단 국가에서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겪어야 한 고통,사회가 만들어준 다른 체제에 대한 미움과 적의,국가 복지시스템으로 메워주지 못한 고난에찬 삶 등도 그들의 설움에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이 기회에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대량 해고사태가 또 살벌하게 벌어질 판이다.그렇게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노숙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적지 않을것이다.그들에게 보내는시선이‘깨진 가족’에 대한 동정심만으로일관할 때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난다.‘경제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사회 구성원’이라는 상처 위에‘동정이나 받아야 할 불행한 가족’이라는 상처를 덧입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개인의 고통과 생계 부양자인 부모의 책임만 남고 사회구조적인 책임,국가의 극빈자에 대한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족 때문에 느낄 결핍감을 최소화하는 것은 언론과 국가 복지정책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 박미라 페미니즘잡지 IF 편집위원
  • 1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국가보훈처는 3일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내며 독립외교 활동을 벌였던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네살 때 미국선교사 언더우드목사에게 입양돼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경술국치후 국내 독립운동 기반이 붕괴되자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동제사에 가입했다.이후 프랑스,미국,러시아 등지를돌며 한국독립운동의 지지와 적극적 지원을 호소했다.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1930년 초 민족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됐다. 선생은 광복후 임정요인으로 귀국,민족분단을 막고자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이다 6·25전쟁중에 납북됐다.50년 12월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정부는 지난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외언내언] 천주교의 참회

    가장 큰 과오는 과오를 범하고도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슨 일이 잘못된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잘못한사람이 없는 데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도 바로 이 부분에서 꼬였는지 모른다.IMF,5·16,5·18-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의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 누구도 진심으로 용서를 빈 적이 없기 때문이다.참회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데서 오는 갈등이 오늘우리가 처한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뿐이랴.오직 ‘네 탓’만 있는 것이 인간들이 경영하는 세계의특징이다.서구 강대국 어느 나라도 오늘 제3세계 국가들의 내전과 굶주림이 자신들의 침략과 식민지배 후유증임을 고백한 나라가 없지 않은가.대희년을 맞아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 사건은 그래서 신선하다. 3일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될‘쇄신과 화해’라는 7개 항의 반성문은한국 천주교 200년사 전체에 대한 참회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3월 카톨릭교회가 2천년 역사에서 잘못한 점에 대해 전 세계를 향해 용서를 청한데 따른 것이다. 반성문은 구체적인 사건을 적시하진 않았다.그러나“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병인양요사건 당시 외세에 의존하고,안중근(安重根)의사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하며,독립운동을 홀대한 과오 등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반성문은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과오에 대해서도 진솔한고백을 담았다.분단 극복과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에 소홀했으며 지역과 계층,세대간 갈등 해소,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노력도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주교회의 반성문에 대해 “참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해 파문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모호하고,천주교에서 특히 심한 여성 차별문제 등의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교황청은 절대 무오류,절대권위의 상징이었다.다른 종교에서도 절대권위에 둘러싸인 교회와 성직자가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범하고 있는오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그런 의미에서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교회의 과거사 참회는 대사건이다.부모도 과오가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가족간의 신뢰가 두터워지듯 교회의 참회가 인류사에 커다란전환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세계화와 블록화] (3)하나로 뭉치는 유럽, 위협인가 본보기인가

    * ‘하나의 유럽' 장밋빛 실험 가속. 광우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자 유럽연합(EU)은 11월29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긴급대책을 내놓았다.광우병 확산의 주범으로 꼽힌 동물성사료의 일시적 사용중지였다.9월 석유값 폭등에 항의하는 트럭 운전사들의 차량 시위가 유럽의 발을 꽁꽁 묶어놓았을 때도 재빨리 머리를 맞댔다.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찾지 못했으나 EU의 신속대응은 전례없는 주목을 받았다. 2002년 7월 1일이면 유럽 각국의 화폐는 유로화로 통일된다.독일의마르크나 프랑스의 프랑,이탈리아의 리라 등은 법적 효력을 잃는다.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추진돼 온 ‘하나의 유럽’이 마침내 한 획을 긋는다.덴마크가 9월29일 유로화 가입을 부결시키고 영국이 통합에 소극적이지만 큰 물줄기는 ‘유럽합중국’이다. 유럽통합의 시발점은 프랑스 외무성이 1950년 5월9일에 발표한 ‘슈망 플랜’.당시 프랑스 외상인 로베로 슈망은 “독일과 프랑스의 철강 생산을 관리하는 공동관리청을 두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독일을 향한 프랑스의 관대한 제스처’로표현된 이 제안에 영국과소련을 제외한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환영했다. 이후 50년간 유럽통합은 유럽인들의 지상과제이자 꿈이었다.프랑스드골 대통령이 60년대 ‘국가 중심의 유럽’을 제창,한때 통합이 뒷걸음질치기도 했다.그러나 92년 단일통화 창설을 골간으로 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유럽을 내무·외교·사법분야 등에서 하나로 묶는 구체적 길을 제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1일 출범한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제를직접 받아 통합의 총아로 떠올랐다.2002년 6월말까지 각국 통화와 함께 쓰이다 7월1일부터는 유로화 하나만 통용된다. 영국,스웨덴,덴마크가 유로화 가입에 반대하지만 나중에 ‘유로랜드’ 회원국이 되면 유럽은 세계 최대의 단일통화권이 된다.이 경우 유럽의 국민총생산(GDP)은 5%,1인당 실질소득은 1,000달러 이상씩 늘전망이다.환거래 비용이 줄어 현재 60% 남짓인 EU의 역내 교역 비중도 7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 금융시장의 판도도 바뀌어 45%를 웃도는 국제 외환시장에서의달러화 결제 비중도 상당부분 유로화로 대체될 것이다.환 위험이 사라져 역내 주식투자와 채권거래도 늘어 금융시장으로서 옛 영화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로화 도입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두이젠베르크 ECB 총재도 유로화의 성공 여부에 “단정적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유로당 1.08달러로 출발한 유로화는 11월30일 0.87달러로 마감,유럽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통합의 원동력인 독일과 프랑스의 불화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인구증가를 빌미로 독일이 EU에서의 의사결정 투표권을 늘리고 집행위원장을 선출직으로 뽑으려 하자 위베르 베드랭 프랑스 외무장관은 요쉬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을 ‘피리부는 사나이’로 격하시켰다.영국은7일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공공연히말하고 있다.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역내 빈부격차가 심해 유럽통합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얘기다.결속력이 떨어져 국제사회에 위협적이지도 못하다는 지적이다.그러나 문화·역사적 배경이 같은 유럽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공을거두면 유럽통합의 힘은 배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문일기자 mip@. *獨·英 ‘유로랜드 맹주' 힘겨루기. ‘주도권 쟁탈전?’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놓고 독일과 영국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유럽통합의 핵심이자 유럽의 정치적 단일화를 주장하는 독일의 야심과 유럽의 자존심으로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영국의 구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독일은 두차례 세계대전의 장본인이자 동·서독 분단의 희생자로서그동안 제 목소리를 변변히 내지 못했다.그러다 통독(統獨)을 계기로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주도하며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복귀를꿈꾸고 있다. 지난해 1월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키며 유럽의 경제적 통합을 주도했던 독일은 “유럽은 느슨한 형태의 국가간 연합에서 벗어나 단일연방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의 야심은 유로화 폭락으로 난관에 부딪쳤다.단일통화가탄생하면 정치적 통합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유로화 폭락으로정치적 단일체는 커녕 유럽이 ‘방대한’ 자유무역지대로 전락할 위험에 봉착했다. 통합에 소외됐다는 불만을 표출해 온 영국은 이같은 ‘통합의 시련’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통합의 강도가 셀수록 통합의 원동력인독일과 프랑스에 힘이 실린다고 보기 때문이다.프랑스도 독일의 독주에 견제를 보내기 시작,영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정치적 통합체보다 모든 장벽이 철폐된 ‘자유무역지대’로 그리고 있다.경제·문화적 통합만으로도 충분하다는것이다.영국은 현재 12개국으로 구성된 ‘유로랜드’의 가입에 부정적이다.역내 빈부격차로 자기들의 경제가 타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그러면서도 EU에서의 핵심적 지위는 그대로 지키려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을 인내심으로 이겨낸 영국의 행보가향후 통합의 관건이 되고 있다. 이동미기자 eyes@
  • “널 보려고 100살을 살았다”

    “살아 있었구나” “이제야 가족이 다 모였다”“형님, 왜 닷새를못기다렸소” “임자,그 곱던 모습이…”. 코흘리개 소년이 반백의 노인으로,신혼 새댁이 주름살투성이 할머니로 바뀌어 50년 만에 꿈에 그리던 부모형제와 배우자를 만났다.울다가 웃었고,얼굴을 더듬다 또 부둥켜 안았다. 내민 손과 손,흘러내리는 눈물 앞에선 이념도,철책선도 존재하지 않았다.서울과 평양에선 모진 세월을 뛰어넘은 혈육의 정이 ‘통곡의강물’이 되어 다시 흘렀다. 반세기 동안 헤어져 살았던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30일 서울과 평양에서 가족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지난 8월15일 상봉이 이뤄진이후 두번째,85년 첫 상봉 이후 통산 세번째 만남이었다. 이날 남측 이산가족들은 평양 고려호텔에서,북측 이산가족들은 서울반포 센트럴 시티에서 애타게 찾던 가족들과 단체로 각각 상봉,잠시나마 이산의 한과 아픔을 달랬다. 평양에서는 올해 100세로 남측 방문단중 최고령자인 유두희(강원도원주시 문막읍)할머니가 아들 신동길씨(75)를,서울에서는 북측 방문단중 김일성종합대 교수인 김영황씨(69)가 가족과 얼싸안는 등 눈물의 상봉이 줄을 이었다. 단체상봉에 이어 북측 방문단은 센트럴 시티 5층 메이플 홀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주최하는 만찬에,남측 방문단은 평양에서 북한적십자회중앙위가 마련한 만찬에 각각 참석한 뒤 서울과 평양에서 감격의 첫밤을 보냈다. 남북 상봉단은 이날 대한항공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경유,분단의 장벽을 넘어 고향땅에 도착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2박3일간의 상봉일정에 들어갔다. 남측 방문단은 이날 낮 12시45분 대한항공 특별기 편으로 서울을 출발,1시간여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숙소인 고려호텔에 여장을풀었다.북측 방문단도 같은 비행기로 오후 5시8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남측 방문단은 오전 9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평양 순안공항에 낀짙은 안개 때문에 지연됐다. 북측 방문단의 서울 방문일정도 함께 순연돼 예정됐던 단체 상봉시간이 4시간여 가까이 늦어졌다. 이석우기자·평양공동취재단swlee@
  • [사설] 이산의 恨 모두 풀자면

    분단 반세기 동안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어제 꿈에 그리던 혈육과 만났다.100세나 된 남쪽의 어머니는가슴속에 홍안의 청년으로 묻어두었던 북녘의 늙은 아들을 부여잡고오열했다.이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풀어놓은,하나같이 안타깝고 기막힌 가족사는 다시 온겨레의 가슴을 적셨다.우리는 지난 8·15에 이어두번째로 성사된 이번 2차 방문단 교환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데안도한다.이산가족 상봉사업의 정례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1차 방문단 교환 때만 해도 한차례 일과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이나 열기는 1차 때에 비해 아무래도 못한듯 하지만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감격이야 매한가지일 것이다.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부담이나 정치적 잡음의 소지를 줄여 상봉사업의지속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끼 만찬 비용에만 1억5백만원이 들었던 지난 8·15 서울 상봉 때의전례가 되풀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나아가 장충식(張忠植) 한적총재의 월간지 인터뷰와 같이 공연히 남북간 분란의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북한측이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는 바람에 장총재가이번 상봉기간 중 해외출장을 떠나는 어색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하는 얘기다. 상봉단 교환방식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이번 행사에 드는 전체 비용을 1차 때에 비해 절반으로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누차 지적한 것처럼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육로 방문 대신 굳이 서해직항로를 선택한 것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당장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로 상봉단을 태운 비행기 출발이 4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불편을 겪지 않았는가. 앞으로 긴 환영행사 등 허례는 줄이고 가족들간 만남은 자연스럽고밀도있게 하는 방향으로 행사 방식을 더욱 개선해 나가야 한다.3차때부터는 호텔 상봉 방식 보다는 고향방문을 하거나 상봉 가족을 동숙(同宿)하게 하는 등 한층 인도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이산가족 교류 인프라를 구축할 때라고 본다.상호 방문을 통한 시범적 상봉은 그것대로 규모와 횟수를 늘려가야 하겠지만 우편물 교환소와 상시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남북이 합의해야 한다는 뜻이다.남쪽에 사는 이산1세대만 해도 12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이들이 단 한번이라도 북쪽의 피붙이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매달 100명씩 상봉시키더라도 천년이 걸린다.북측은 상설 면회소라는 이산가족들을 위한 ‘만남의 오작교’를 놓는 데 적극성을 보이기를 바란다.
  • 한국천주교 반성문건 발표…3일 참회의식

    한국 천주교가 천주교 도입때부터 최근까지 지난 200여년간 교회의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민족에 저질렀던 잘못을 총체적으로 참회하는반성문건을 30일 발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박정일 주교)는 오는 3일 전국 각 교구·본당별로 이 문건을 토대로 참회의식을 갖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원한다. ‘쇄신과 화해’란 제목의 반성문건은 모두 7개 항목으로 천주교가박해받던 시절 외세에 힘입어 교회를 지키고자 우리 사회에 고통과상처를 준 것을 제일 항목으로 택했다.또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교회의 안녕을 위해 민족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제재한 것도 반성하고있다. 광복이후 분단상황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소홀히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아파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이밖에우리사회가 지닌 지역·계층·세대간 갈등해소나 장애인·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복지증진 노력도 부족했다고 참회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문건 말미에서 “이렇듯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한다”면서 교회의 무관심과 방관,잘못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거듭 용서를 청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광장] 10차 SOFA협상 주도하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위한 10차 공식 협상이 29일 시작해12월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그동안 한·미간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논의의 초점이 새로운 국내외 정세 변화에 맞는 한·미간의 근본적인 관계가 아니라,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개별조항에만 너무 치우친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렇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다 보니 우리정부가 협상의 큰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SOFA의 본 협정과 합의의사록은 냉전이 극치를 이룬 1966년에 체결된 것이다.그 이전에 있던 대전(大田)협정은 50년 전시중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군측에 전용형사관할권을 허용한명백히 불평등한 협정이었다.이 불평등한 대전협정 때문에 한국인 범죄 피해자들은 53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측의 일방적인 형사재판권 횡포에 속수무책이었다.그후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취약성 때문에 미국측에 평등한 한·미 관계를 요구할수 없었다.미국측은 6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 기본조약을 무조건 체결하고,한국군을 월남에파병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그대가로 시혜적 차원에서 66년 한·미행정협정을 체결해 주었다.다시말해 한·미행정협정에는 60년대 당시 한·미 관계의 일방적 특혜·시혜적인 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물론 91년 형사관할권 자동포기 조항 등 그후 몇가지 점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SOFA의 근본적 불평등의 상징인 본협정과 합의의사록은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태다.게다가 91년 개정협정에는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새로이 부담하는 방위비특별분담 부속협정까지 끼어들었다.따라서 현행 한·미행정협정에는 한·미간 동등한 상호관계가아닌 66년 당시의 불평등 요소가 형사,민사,시설 및 구역,노무, 환경,통관 관세 등 모든 영역에 깔려 있다.더욱이 SOFA의 모법인 한·미방위조약(1953년)도 이러한 일방적 한·미 시혜관계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더구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실질적으로 북한을 가상적으로 간주해 체결한 조약이다.그런데 90년 10월 독일통일,동유럽의 개혁과 개방은 국제적 차원에서 탈냉전·탈이념을 향한 역사의 큰 흐름이었다. 한반도는 분단으로 인해 이 국제적 흐름에 유일하게 동참하지 못한지역이었다.그러나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막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공존의 기반을 합의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와북·미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이에 따라 이제 주한미군의위상도 국내외 정세에 맞게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됐다.남북한간에는제2차 국방장관회담이 예정돼 있고 남북 군사실무회의도 구성,가동되고 있다.북·미관계에서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문제에 대해 이미개발 유보를 선언했고 향후 수출포기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미국도 북한을 테러 대상국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이렇게 SOFA의 모법인 상호방위조약의 전제조건인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8월2일 제8차 협상이 끝나고 발표된 공동발표문 제2항은 한·미 군사안보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뿐 동북아에서의 지역세력 균형자 내지는 평화유지자로서 주한미군의 변화된 역할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주한미군의 근본적 위상변화와 한·미 두나라간의 관계정립에 대한 양국간 근본적 이해의 조율 없이 무조건한·미 공조만 강조하는 SOFA협상의 진행은 시대착오적이며,6·15 공동선언의 실현과 변화된 국제정세에도 역행한다.따라서 한국측은 미국측에 변화한 국내외 정세에 맞는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환기시키고,이에 상응하도록 한·미관계의 기본 틀인 상호방위조약 개정 등근본적 문제의 개선도 요구해야 한다.항상 미국측의 주장이 최선은아니다.당연히 미국 대표는 미국 국익을 옹호할 것이다.우리 대표도이제 행정협정상 개별조항 개정과 더불어 6·15 공동선언 실천이라는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동반자 관계 정립이라는 한·미관계의 근본문제에 대해서도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알려야 할 것이다.협상에 임하는 한국측 관계자의 역사의식 제고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국제법
  • [대한포럼] SOFA개정, 시대에 맞게

    올해는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에 큰 지각변동이 시작된 한해였다.분단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간 만남이 그 상징적 징표다.어디 그 뿐이랴.총부리를 겨눴던 북한과 미국의 군수뇌부와 국무장관이 워싱턴과평양을 교차 방문했다. 그러나 전통적 우방인 한·미간에는 유독 유쾌하지 않은 일들로 얼룩졌다.뒤늦게 확인된 한국전 당시의 노근리 양민학살 문제,매향리오폭 사건,주한 미군 독극물 방류 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따랐다.언제 한·미간에 ‘좋은 시절’(벨 에포크)이 있었느냐는 생각이들 정도였다. 까닭에 “주한 미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의문이제기된다.이 땅의 우리는 이에 대한 논리적 답변에 앞서 저마다의 추억을 안고 있다.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40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군은 ‘풍요의 상징’이었을 법하다.미군 지프를 향해 “기브 미 추잉검”이라며 손을 흔들 때마다 그들이 던져주던 캔디나 껌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더러 그러한 풍요로움이 어두운 이미지와 겹치기도 한다.기지촌 정경을 그린 김명인 시인의시 ‘동두천·1’의 한 구절을 읽어보자.[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역두(驛頭) 저탄더미에 떨어져/…/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한 아이들도/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더는 소식도 모르는 이 바닥에서] 이 시에는 혼혈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미군 주둔지역인 기지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SOFA) 개정협상이 29일 다시 시작된다.올들어 8월,10월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협상을 벌이고도 원칙합의 수준에서 맴돌았던 협상이 재개된 것이다.이번엔 실질적 성과를거둬 한·미 양국에 모두 손해인 반미(反美) 감정을 잠재우는 계기가되기를 바란다.그런 점에서 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 등 양국 당국자가 연내 타결의지를 밝힌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최근 양국 대표단이 공식 테이블이 앉기도 전에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다.막후 샅바 잡기 단계에서 미국측이 개정형식면에서 SOFA 본문은 고치지 않고 부속문서만 수정하겠다는 안을 들고나왔다는 소식이 그것이다.물론 전향적 개정의지의 진실성이 중요하지 본문에 담느냐,아니면 합의의사록이나 교환각서 등에 넣느냐는 부차적 문제일 수 있다.다만 그같은 협상원칙이 SOFA의 불평등 조항을온존한 채 한국의 불만을 미봉하려는 발상에서 나왔다면 시대착오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현행 SOFA는 범세계적 냉전이 극에 달했던 지난 1966년 골격이 잡혔다.하지만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지하던 한국이 1991년 이후 주한 미군 주둔 경비를 상당부분 부담할 정도로 한·미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따라서 이번 SOFA 개정은 한·미 관계의 변화상과 한반도 탈냉전이라는 시대 정신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그 첫단추는 주둔국의 주권이 철저히 존중돼는 데서 끼워져야 한다. 특히 이 땅에서 한국인과 관련해 일어나는 미군범죄는 마땅히 한국이사법권을 관할하는 방향으로 SOFA를 개정해야 한다. 그 동안 각종 미군 범죄로 인해 미군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의미까지 용훼된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이번 협상에서 변화된 한·미 관계를담아낼 여지는 더 있다.각종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환경조항과 미군부대 반입농산물의 검역조항 신설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SOFA협상이 현 클린턴 행정부 임기 내에 매듭지어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미국의 새 행정부와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해 건설적 협력관계를 제대로 다질 수 있다고 본다.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한·미 관계도 21세기에는 달라져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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