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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육로관광 北개방 전기로

    북한 상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35마일 해상을 새벽에무단 침범한 14일 저녁 금강산 유람선 설봉호는 그 NLL을유유히 넘어 북한 장전항으로 향했다.남쪽이 북한 상선의NLL 재침범에 따른 안보논쟁으로 들끓던 15일 금강산에서는 남북의 민간단체 대표 640여명은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열어 6·15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축하했다.안보논쟁과민족화해의 노래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이 모습이 오늘의한반도 현실이다. 금강산호텔 앞마당에서 펼쳐진 ‘민족통일대토론회’는실로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남북의 대표 640여명은열렬한 박수와 포옹으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이 화합을 염원한 그곳,온정리는 아쉽게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또 다른 ‘우리’에 불과했다.그들의힘찬 외침은 비로봉을 넘고 휴전선을 건너 뛰어 평양과 서울로 퍼져가기엔 힘이 부쳤다.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머지않아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재개될 전망이다.한푼의 달러도 아쉬운 북측과 사업수익을 내야 하는현대의이해타산이 접점을 찾은 결과다.여기에 금강산 관광이 지니는 남북화해의 상징성이 협상의 뒤를 받쳤다. 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그동안 남측 관광객 40만명에게 북녘땅을 밟을 기회를 주었다.그러나 그 40만명 가운데북한 주민을 만나 통일을 얘기한 사람은 거의 없다.온정리를 둘러싼 철책이 여전히 또다른 분단의 벽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육로관광을 앞두고 남북 당국은 이제 새로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남북한 주민들이 살갗을 부딪치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서로 만나 무엇이 같고,무엇이 다른지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풀기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협상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있다. 그러나 15일 열린 금강산 토론회 같은 행사가 더이상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금강산 관광이 진정한 민족화해의 수단이 되도록 우리 정부는 힘을 쏟아야 한다.북한을 열어야 한다. [진 경 호 정치팀기자] jade@
  • 軍 말못할 속사정 있나

    북한 상선이 해상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또다시침범했으나 정부와 군 당국이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있다. 지난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발표와 지난 5일김동신(金東信)국방장관의 ‘향후 재발시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강력 대응’ 천명이 ‘공언(空言)’에 그친 셈이어서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NLL 침범 첫 인정] 지난 4일 북한 상선의 NLL 첫 침범 이후 일관되게 ‘NLL 통과 또는 월선’이라는 표현을 썼던 합참은 14일 처음으로 ‘침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군의 평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합참은 남포2호의 NLL 월선을 침범으로 규정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다만 동해에 그은 218마일의 NLL을 모두 수호할 수 없는 해군전력의 한계 등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듯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이에 따라 NLL에 대한 전면 재조정작업과 이를 수호토록 규정한 합참작전예규에 대한 수정작업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군의 무기력한 대응 조치] 합참의 조치는 그동안 호언장담했던 ‘강력 대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포2호가 지난 13일 원산에서 동쪽으로 40마일 지점에서최초 발견된 후 남하,NLL 근접 침범이 예상됐는데도 1,200t급 해군 초계함 1척만 배치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NLL 통과이후에도 추가 함정 배치 없이 초계함 1척이 교신을 통해 NLL을 넘어가도록 요구한 것이 군 초동 조치의 전부라 할 수있다.합참 관계자들은 “남포2호가 우리측 요구에 따라 순순히 퇴각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북의 속셈은] 지난 2일 청진2호의 첫 월선 이후 백마강호,대홍단호,청천강호,대동강호 등 북한 상선이 ‘줄줄이’ NLL을 월선하면서 분단 이후 50년간 지켜온 NLL의 빗장이 사실상 무효화하는 사단이 벌어졌지만 우리 군은 이를 저지할 만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영길(曺永吉)합참의장은 “북·미 협상을 앞둔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 뒤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벌이는 ‘정치적 게임’에 군이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면서“한반도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은 이를 빌미로 우리를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주석기자 joo@
  • 6·15 1주년/ 전문가 대담

    *北 ‘평화 화답’ 없인 경협 한계. 대한매일은 14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강성윤(姜聲允)동국대 교수(북한연구학회 회장)와 박영규(朴英圭)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초빙,지난 1년간 남북관계의 진전을 평가하고 향후 과제와 전망 등을 들어봤다.좌담 내용을 간추린다. ◆지난 1년 남북관계를 평가하면. [강성윤 교수]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55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를 기록했다는 평가에 걸맞게 남북간 다양한 채널의 대화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특사·장관급·국방장관·군사실무자·경제·적십자회담 등 6개 차원의 회담이 이뤄졌고,가시적 성과도 있었다.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 장기수송환 등 인적 교류와 왕래가 이뤄진 것은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평가할 만하다. [박영규 연구위원]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경협과 관련,투자보장과 이중과세방지등 4개항의 합의는 앞으로 남북간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지난 3월 이후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화해와 협력의 계기가 마련된것은 틀림없다.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에 빠진 국내외적 요인은. [강 교수] 한반도문제는 북·미,한·미 관계 속에서 처리될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부시 미 행정부의 등장은 남북관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북한을 상대로 엄격한 상호주의와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북·미 관계가 틀어졌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생겼다. [박 위원] 북한이 지난해 정상회담을 수용한 근본원인 중 하나가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그런 시각에서 볼 때 최근한국 경제가 침체상태에 들어갔고,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싼 국민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서두를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강 교수]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경제적 지원이 목적이라면 당국간 회담이면 충분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험을무릅쓰고 직접 대화에 나선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통일문제에 관한 합의 등 김 위원장이 대화 전면에 나섬으로써 얻은정치적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답방 가능성은.[강 교수] 2차 정상회담을 했을 때 김 위원장이 정치·경제적으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한다. [박 위원] 북·미 대화가 재개되고 금강산 문제가 해결국면으로 들어간 점 등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금년내 답방할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북·미 대화가 순탄하게 진전될 가능성이 적고,경제난으로 대북지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년 답방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 답방시 효과는. [박 위원] 김 위원장이 답방한다면 우리가 북한에 요구할 게 더 많을 것이다.화해와 교류협력의 기반은 지난해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들어졌지만 불가침 분야에서는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군사적 긴장완화와 관련,김 위원장의 양해를 얻어내야 대북 포용정책의 국민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을것이다. [강 교수] 그동안 남북은 경제적인 ‘공영’문제는 다뤘지만 군사·평화적인 ‘공존’측면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이끌지못했다.김 위원장 답방시 우리가 해결할 과제다.덧붙인다면2차 회담은 예측이 가능하도록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북·미 대화 재개의 의미는. [강 교수] 부시 대통령이 대화재개를 발표하고 경제제재 완화와 대북지원 등 몇가지 당근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당초 강경자세에서 큰 변화가 없다. [박 위원] 대화재개를 선언했지만 사실은 조건이 붙어 있다. 북한이 먼저 성의있는 조치를 취해야 당근을 주겠다는 것이다.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미·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우리의 역할과 해법은. [강 교수] 실질적 한·미 공조를 위한 역할분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예를 들어 대북 대량살상 무기협상은 미국이,재래식 무기 협상은 한국이 맡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전략’ 차원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박 위원] 남·북·미 3자 회담을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상황과 부시 대통령이 대북 협상의제에 재래식 무기 문제를 포함시킨 점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남북간 군사협상이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은. [강 교수] 새로운 합의를 양산하기보다 기존 합의를 이행·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남북대화에서 회담 일정의 불예측성,합의의 불이행,남북한 합의문의 불일치 등 ‘3불(不)현상’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또 통일문제를 정치문제와 분리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박 위원]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경제협력을 대가로 안보협력을 받아내는 문제를 국민에게 꾸준히 인식시켜야 한다.동시에 정책의 목적과 수단을 혼용해서는 안된다.예를 들면 경협 자체를 목적으로 인식하면 ‘일방적 퍼주기’라는 강박관념에 얽매이게 된다.2차 정상회담도 공존 공영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과 과제는. [강 교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촉 재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진전될 것이다.또 금강산 육로관광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들이 남북대화 재개를 희망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요인이다.부시행정부와의 의견조율이 앞으로의 주요 과제다. [박 위원] 정부가 그동안 대북관련 정책과 평가를 너무 장밋빛으로 홍보하는 바람에 역효과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정치권은 이분법적 시각과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진보가 보수를냉전주의자로,보수가 진보를 용공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대북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정리 박찬구 홍원상기자 ckpark@
  • [기고] 6·15선언과 이 시대 의무

    우리 민족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될 6·15선언의 본질은 오로지 하나 즉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다.이를 위해 남북 양 정상이 합의한 두 가지 원칙은 첫째,‘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일의 방향 그리고 단계·형태는 남측의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제안한 ‘연합제안’과북측이 80년 10월10일 제안한 연(련)방제를 완화·수정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한 것이다. 이 선언은 그 직후 남측에서 여론조사 결과 95.8%의 절대적인 찬성과 지지를 얻었다.전세계 주요국가의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이를 지지하고 협력을 표명했다.한 개인,단체나 회사를 막론하고 인간의 조직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고 동시에이를 달성할 시간계획이 있다.또 있어야 한다.물론 이 목표달성의 구체적 계획은 여의치 못한 외부적 여건에 의해 차질이 있어 계획보다 늦어질 수 있고,때로는 여건호전으로 인해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다.모든 기관이나 국가나 민족은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간단 명료해야 한다.도달 목표나 지시명령이 간단 명료하고 정의로워야 민족의 모든 능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나팔소리가 분명치 않을 때 누가 전투준비를 옳게 할 수 있습니까.’(고린도 전서 14장 8절) 한반도의 안정 여부는 바로 세계적 평화 여부와 직결돼 있다.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근자에 와서 청일전쟁,러일전쟁,일본의 조선침략,중일전쟁이 그렇다.적나라한 물리적 힘이 작용하는 국제사회에서,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강국의 이해충돌의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떳떳하고 자랑스런 국제사회 일원으로 기여하기 위해,우리는 하루속히 이 분단과 냉전의 비극과 낭비를 지양해야 한다.이를 위해 6·15선언에서 천명한 바에 충실하게 남북은 조속히 당국을 비롯한 각계 각층 대표인사들의 중지를 모아 통일의 구체적 방안,형태와 시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과거사는 간단없이 닥쳐온 외부침략과 민족국가들에 대한 항쟁의 역사이며 생존의 역사이다.또 지난 5,000년간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문자·전통을 유지,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또한 승리의 역사이기도 하다.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은 대국의 한 종속국으로서의 편안함보다도 희생이 따르고 고되더라도 떳떳한 주인으로 남으려 노력해 왔다. 인구팽창,식량부족,자원고갈,환경오염,종교·민족분쟁,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 부수적 일면의 증오,오해,잔인성과 침략,정쟁 등으로 21세기가 한반도에 반드시 평화와 안정,번영을 보장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우리 세대에 있는 분단과희생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우리 세대에 있는 비극을 우리세대가 해결해야 한다는 무한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이를 위해 우리는 겸허하게 6·15선언의 본질을 살피고 선언에 명시된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지향한 통일국가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과 시간계획을 남북공동으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이것이 6·15선언의 본질이자 우리 민족이 떳떳이 살 길이며,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존경받는 길이다. △손장래 민화협 상임의장
  • [데스크 칼럼] 신명잃은 ‘휘파람’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한국기자로서는 첫 근접 취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던 감격과흥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결사옹위,김정일’을 외치며 꽃술을 쉼없이 흔들던 평양시민들의 함성 속에 홀연히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기자에게는 특종을 능가하는 설렘이었다.그런데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기자는 방북취재단중 유일하게 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사진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6월14일 우리측이 주최한 평양목란관 만찬 당시 특별수행원들 사이에 재빨리 끼어들어 찍은 것으로 한동안 집안 응접실에 자랑처럼 걸어놓은 적이있다. 단독취재의 하나여서 같이 간 타사 동료들로부터 당시 얼마나 원성을 들었던지…. 남북 평양정상회담은 취재의 긴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도‘김정일 신드롬’을 낳을 만큼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통일소녀가 부른 북한 노래 ‘휘파람’이 한때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 우선 순위에 오를 정도로 북녘 땅은 분단 반세기를 건너뛰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섰다. 이러한 민족적 화해무드는 결국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오랜 민주역정과 어우러져 노벨평화상으로 귀결되는 것을보고 기자는 취재현장을 떠나 데스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흥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회담때 김 위원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풍산개 ‘두리’가 지난 10일 서울대공원에서 새끼 5마리를 낳았다는 소식이 한돌을 기념하는 작은 경사다.학술단체들의 세미나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뿐 이렇다 할 기념행사나 축하모임하나 없다.청와대 역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북·미 뉴욕 실무접촉이 14일 재개되고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남북 당국자간 협상이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어서 대화기류에 호전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하지만 남북대화가 지지부진하고,경제상황도 좋지 않은 데다 가뭄·파업사태까지 겹치면서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한 것 같다.최근 북한상선의 영해침범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은 베일에 가려 온갖 추측을 자아낸 김 위원장을 ‘합리적인 지도자’로 우리네 안방까지 불러들였다. 북한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 놓았고 북한의 개혁·개방 추구를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도 가져왔다.1년반 만의 외환위기극복 선언이 개혁의 필요성을 반감시켰다는 지적이 있다.이러한 흐름이 의보재정 위기와 같은 실책과 얽히면서 결과적으로 ‘개혁 피로 증후군’을 불러왔다고 봐야 한다.남북관계도 정부 관계자들이 보수세력의 비판에 대응하면서 기대감을 부풀려 놓은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장관급 회담 등 모든 게 눈높이에 못미치는 답보상태다.결국 북한의 불확실성만 증폭시켰고 이로 인해 ‘북한 피로증후군’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이 사라진 현실에 아쉬움을 느낀다.한반도 냉전체제 해체가 꼭 남북간의 문제만은 아니므로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7·4 공동성명 이후 남북관계가 늘성공적으로 진전돼온 것도 아니고,50년간의 반목과 갈등이하루아침에 치유될 성질의 것도 아닌 까닭이다. 다만 역사는 퇴행과 굴절을 반복하는 것같이 보이지만,긴눈으로 보면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곱씹어보고 싶은 아침이다. 양승현 정치팀장 yangbak@
  • ‘시대의 증언’채록 2권 출간/ 현대사 공백 메우는 ‘구술역사’

    한국 근세사를 치열하게 산 ‘시대의 증인들’의 구술이기록돼 단행본으로 나왔다. 도서출판 선인은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편)과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김석형 구술,이향규 녹취·정리)를 동시에 펴냈다.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은 정신문화연구원이 구술자료총서 제1권으로 독립운동가,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정치인,군 원로,비전향장기수,원로 음악가 등 8명의 ‘예사스럽지 않은’ 개인사를 기록한 것이다. 조문기(75) 선생은 일제하 마지막 국내의열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는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독립운동’은 계속되고 있다.그는 작년부터 친일파 전문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타계한 송남헌 선생은 1943년 ‘경성방송국 단파방송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미군정 당시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의장을 지낸 우사 김규식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1948년 남북협상때 우사를 모시고 방북한 인물. 교사출신으로올해 91세인 김선 할머니는 해방후 정당에서 활동한 기억을 증언하고 있으며,일본 니혼대학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 해방을 맞은 백남권(79)예비역 장군은 1943년 11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 도툐로 건너와 “학병 나가라”고 권유연설을 하길래 춘원에게“옛날의 이광수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3공 당시 내무장관 3회,체신장관 1회,교통장관 1회 등 한정권에서 무려 다섯번이나 장관을 지낸 박경원(78)전 장관은 창군시절,한국전쟁,5·16과 정치참여 등을 비교적 진솔하게 토로했다. 함북 학성 태생으로 북한 김책공대 출신의 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74)는 1963년 5·16주체세력이자 당시 현역 사단장이었던 숙부 최주종씨(작고)를 만나 통일문제를 협의하려왔다가 체포돼 반공법위반으로 35년간 감옥생활을 마치고지난해 9월 평양으로 송환된 인물이다.이밖에 남쪽출신의비전향장기수 허영철씨(81),음악계의 원로 박용구씨(87) 등의 숨가쁘게 살아온 생애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었소!’는 이규향 박사(경남대 북한대학원 객원교수)가 작년 9월 2일 평양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석형씨(87)의 구술을 5년간에 걸쳐 채록,정리한 것이다. 김씨가 자신이 죽거나 북으로 송환된 뒤에 공개해 달라고요청해 그동안 이박사의 서랍속에 잠자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정신문화연구원의 구술채록작업 실무책임자인 정용욱 교수(민족문화연구팀장)는 “구술자료는 기억의부정확성,주관성 등으로 인해 검증과 치밀한 비판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자료제공과 묻혀진 과거사 복원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의 구술을 채록하는 작업은 공식적인역사기록의 ‘사각지대’를 메운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특히 외세지배와 분단상황으로 점철된우리 현대사의 경우 곳곳에 공백지대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사설] 금강산 육로관광 기대 크다

    중단 위기에까지 몰렸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육로 관광과 관광특구 지정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현대아산은 어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측과 방북협상을 통해 합의한 구체 내용을 발표,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육로로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고 향후 2개월내 북한이 금강산관광특구를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또 금강산관광대가의 연체금 2,200만달러는 이달말까지 지급하되 앞으로는 관광객수에따라 지불키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 남북당국간 협의를 거쳐 육로 관광을 뒷받침하면,금강산관광사업은 수익이 남는 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현대의 기대처럼 일부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컨소시엄을만들어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계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면 인기관광코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해서는 강원도 간성에서 금강산 온정리까지 불과 14㎞의 도로를 연결하면 된다.이번 육로 개설 합의는 분단 반세기만에처음으로 휴전선이 뚫린다는 민족사적인 의미도 지닌다고 할수 있다. 무엇보다 육로관광이 이뤄지려면군사분계선을 일부라도 헐어야 하고,환경영향평가나 지뢰제거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3월이후 중단된 장관급회담이나 국방장관회담 등 남북당국간의 공식대화가 필수불가결하다.남북은더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남북화해의 물꼬를 열었던 금강산관광사업이 이제는 침체된 남북대화를 활성화하는 촉매제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금강산관광 살리기’ 의지가 확인된 만큼 정부와현대측도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할 것이다.연체된 대북지불금의 조속한 송금을 위해서는 현대의 자구 노력과 함께 금융기관을 통한 융자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또 600억∼1,000억원에 이를 도로개설 공사비는 남북협력기금에서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차제에 현재 북측이 공사를 중단하고있는 경의선복원사업 등도 재개되도록 남북 양측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 [기고] ‘無害통항’ 대승적 대처를

    북측상선이 제주해협 영해통과로 나라안이 어수선하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 50년동안 북한의 민간선박이 사전 허락도 없이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통과한 것은 분단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제주해협이 우리 영해라 하더라도군함 및 정부선박이 아닌 외국 민간선박에게는 국제해양법제17조에서 연안국은 무해통항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는점도 생각해야 한다.문제는 그동안 남북관계가 50년동안 적대적 대치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우리 영해안에 이러한 무해통항허용을 상상도 못한 데 불과하다. 자 이제 우리의 생각과 사상의 지평을 넓게 보자.90년대이후 국제사회는 지구촌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라는보편적 가치추구로 치닫고 있다.이에 동참못한 한반도의 우리도 지난해 6·15 공동선언이후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동참할 뿐더러 평화를 나누어 주는 나라로서 대승적인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잘못한 것은 엄중 경고하고,북한이 잘 한것은 인정,민족화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건은 적극적으로 기회를놓치지 말고적극 대응해야 한다.북한상선의 제주해협과 북방한계선(NLL)통과도 과거 남북관행에는 벗어나 돌출적으로행동한 것은 명백히 북한이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배가 북한지원 물자를 싣고 북한 영해에 들어 갈 때 북한은 항상 사전허가를 요구했기 때문에,북한도 제주해협통과에 우리와 충분한 사전 양해를 구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국제해양법(제17조)적으로 볼 때 북한 민간상선은 제주해협의 영해에서 무해통항권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우리 영해 및 접속수역법(1977) 제5조도 외국의 민간선박은 평화,공공질서,안전보장을 해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영해를 무해통과할수 있으며, 사전 허가 승인 사전동의를요구하지 않고 있다.그리고 명백히 북방한계선(NLL)은 정전협정상 아무런 근거가 없고,국제연합사령부(UNC)가 1953년8월30일 내부적 작전 규칙으로 작성한 것을 북측에 정식으로 통고하지도 않았다.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상 제2장의 부속합의서 제10조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해상불가침구역은해상불가침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여기서 서해의 해상 불가침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과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에 NLL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그 이유는 NLL이 남북사이에 경계선이 되려면 쌍방이 합의하고 인정해야 하는데,UNC가 내부작전규칙으로 NLL을 설정,해군부대에만 시달하였고 상대방인 북한에는 통고조차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북한상선의 NLL 통과는 영해 침범은 아니고 월선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식량난·에너지난 극복을 위해경제적 항로를 개척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남북한해운협정을 맺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협상으로 활용해볼 필요도 있다.남북한의 상호 직항로 개설은 쌍방 모두에게 물류비용을절감할 수 있는 큰 이점이 있다.정부는 북한 상선 제주해협통과와 NLL 월선에 대한 국제법적인 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깊은 우려도 아울러 깊이 고려하는 유연하고 차분한 대응을 하는 것이필요하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 800년간 佛에 비친 한국의 정체성

    흔히 유럽에서 ‘은자(隱者)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한국인의 정체성은 언제,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일까? 이 물음에 속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연구서가 출간됐다.한국외국어대 불어과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교수의 ‘착한 미개인동양의 현자’(청년사 펴냄)가 그것.비교문학자이자 문화과학자인 불레스텍스 교수는 지난 16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정체성,즉 ‘한국성’에 대해 인상적인 차원을 넘어학술적 과업으로 이를 천착해왔다.이번에 그가 펴낸 책은소르본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논문 가운데 전문적인 내용을 뺀 것이다.대상시기가 13세기부터 현대까지 무려 8세기에걸쳐 있다는 점이 독자를 압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1254년 유럽 성직자들과 함께 선교활동차 몽골에 들렀던 기욤드 루브룩.그는 당시 몽골의 제4차 고려 침입 후 끌려온 고려인 포로들을 만났다.드 루브룩은 ‘몽골제국 여행기’에서 고려인에 대한 인상을 ‘미개한’,그러면서도 ‘문명화한’민족으로 기록했다.구체적으로는 “체구가 작고 스페인 사람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이 사제들처럼 갓을 쓰고 다니는데 검은 니스를 칠해 뻣뻣해진 외올베로 만든 갓들은 어찌나 윤을 냈는지 햇빛에 반사되면 마치 거울이나잘 닦은 군모처첨 반짝인다.” 한국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야기와 묘사는 네덜란드인상인 헨드릭 하멜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1653년 제주도남쪽 해안에 표착한 하멜은 일본으로 탈출하기까지 13년간한국에 머문 후 ‘제주도난파기’‘조선왕국기’등을 남겼다.이는 한국에 관한 최초의 ‘인류학적’ 자료다.한국에대한 하멜의 생각과 관찰은 ‘착한 미개인’‘동양의 현자’라는 두 이미지가 형성되는 출발점이 됐다. 프랑스가 한국과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접촉을 이룬 계기는 1866년 ‘병인양요’였다.프랑스 제국주의가 파견한 프랑스인(주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은 서서히 국제사회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당시 프랑스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뛰어난 손재주,예술적 취향 등을 특징으로 꼽았다.이어 20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을 찾는 유럽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한국은 ‘조용한아침의 나라’와 ‘은둔의 왕국’이라는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굳히기 시작했다.현대에 들어 한국의 이미지는 또다른 모습으로 비쳐졌다.해방과 독립,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로 다시 자리매김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은 과거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퇴색하고,전쟁을 거친 후 북한의 모습을 통해 ‘은둔의 왕국’이란 이미지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 비친 한국·한국인의 이미지를 연구해온 저자는 “한국은 프랑스와 극동지역의 종교·상업·학문적 이해관계와 인접국과의 지정학적 균형관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고 결론내렸다. 지난 85년 파리 국립도서관 지하열람실에서 한 고서를 통해 우연히 ‘미지의 국가’ 한국을 처음 만난 이후 저자는센 강변의 고서점,런던·로마도서관,박물관은 물론 여행객,산책가,옛 지도제작자,호기심 많은 지리학자,인류학자,판화가,사진작가 등의 발자취를 찾아 상상 속의 한국의 이미지를 추적해 왔다.저자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2단계로 ‘한국성(Koreanity)’의 개념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탐험에 나설 계획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北주민 남한법원에 첫 소송

    이산가족인 S씨의 호적정리 및 재산분배 사건과 관련,법원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 살고 있는 S씨 가족들의 인적사항과 거주지 등 사실조회를 북측에 요청한 데 이어(대한매일 6월2일자 18·19면 참조) S씨의 북측 동생들이 남한 법원에 지난해 사망한 아버지와의 부자관계를 주장하는 소송을 냈다.북한 주민이 원고가 돼 남한 법정에 소송을 낸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북한 황해도에 거주하는 S씨(59) 등 3명은 5일 “지난해사망한 S씨는 우리 아버지”라며 서울지검 검사를 상대로서울가정법원에 친생자 인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법원의 북한 주민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과 맞물려 북한 주민의 남한내 법적 지위 확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S씨측은 위임장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위임장을 받아온 사람이나 북한 주민을 우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어 주목된다. S씨 등은 소장에서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는 맏형과 막내 동생을 데리고 간신히 월남했으나 남한에서 호적을 정리하면서 북에 남기고 온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연좌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북에 있는 가족들을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아버지는 지난 1936년 조선호적령에 따라 당시 황해도 군수에게 어머니 J씨와 혼인신고를했으며 우리와 남쪽에 살고 있는 두 형제 등 3남2녀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제3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S씨 등 3명의 자필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는 위임장을 건네 받았으며 위임장에는 S씨의 옆집에 사는 ‘가구공장 로동자 L씨’가 입회인으로서명날인했다”면서 “S씨 등은 친자 입증을 위한 유전자감식을 위해 머리카락까지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한에 살고 있는 S씨의 북측 가족들의 취적허가신청과 아버지의 혼인무효소송 등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가정법원 고의영(高毅永)수석부장판사는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법정에 출석치 않고 위임장을 통해변호사에게 사건을 일임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사설] 北 상선 ‘무해통항’의 전제

    북한 상선 3척이 2일 제주해협을 무단 통과해서 서해와 남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간 데 이어 4일 또 다른 상선 1척이 소흑산도 인근 영해를 침범했다.정부는 당초 북한 선박들이 생필품을 실었고 적대행위를 하지 않았음에 비춰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영해통과를 허용했다.그러나 북 상선의 재차 영해침범이 확인되자 앞으로는 사전통보와 허가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같은 사건이 재발할 경우 교전규칙 적용 등 강력 대응키로 하고 이를 대북통지문을 통해 북측에 전달하는 한편 유사사태 방지를 위한해운합의서의 조속한 체결을 제의했다. 우리는 남북 직항로가 개설되고 금강산 관광선이 운항되는현실에서 북한 상선에 대한 영해 통과 허용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통과하면 시간과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남북화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몇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첫째,분단 이후 최초로 제주해협 통과를 시도한 북한의 의도다.북한 선박들은 우리 해군의 통신 검색에는 순순히 응하면서도 “상부의 지시에 의한 항로”라며 퇴거 지시에 불응했다.국제법상 ‘무해(無害)통항권’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게다가 선박 2척은 우리 북방한계선(NLL)을 무단 통과했다.정전협정과 직접 관련되는 문제다.국제법상 인정되는 무해통항권은 평시(平時)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남북한은 정전상태라는 특수상황에 있다.따라서 북한 선박에 대한 영해 통과 허용은 두가지 사항을 전제로 해야 한다.먼저 남북 당국간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남북한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한다. 또 현존 정전협정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 남북 당국간 협의를 통해 인천항∼남포항·해주항 항로가이미 개설돼 있는 마당이다.이같은 사실을 모를 턱이 없는북한이 당국간 협의도 거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무해통항권을 주장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더구나 북방한계선 무단 통과는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해 일을 더욱꼬이게 할 뿐이다.북한은 이성적인 자세로 우리 당국과 협의에 나서기 바란다.정부도 공식 협의와 함께 북한에 대해 추궁할 것은 추궁해서 영해 침범이나 무단 통과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지구촌 문제 인간이 해결해야”

    [새천년평화재단 이승헌 총재]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평화,환경문제의 해결자는 다름아닌 인간입니다.그동안 문제해결 과정에서 정작 해결주체인인간이 소외된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에서 제1회 ‘휴머니티 컨퍼런스-지구인선언대회’를 개최하는 새천년평화재단 이승헌총재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구촌 문제의 해결에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우리 전통사상인 홍익인간 사상이바로 그 요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최근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그의 저서 ‘힐링 소사이어티’도 다름아닌 인간중심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국가,종교끼리의 무한경쟁 속에서 대립을 극복할가치의 중심은 바로 인간입니다.특히 지구촌의 마지막 분단국가이며 많은 문제를 갖고있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 총재가 주장하는 해결책은 바로 우리 건국철학인 ‘천지인’의 홍익인간 사상.자신이 홍익철학의 진정한 의미를깨달은뒤 한국인의 긍지를 느꼈고 그 긍지가바로 자신이창시한 단학의 세계화로 이어진 원동력이라고 귀띔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北상선 3척 영해 침범

    쌀과 소금을 실은 북한 상선 3척이 지난 2일 제주해협을무단 침범,최대 27시간여 항해한 뒤 서·남해 공해상으로각각 빠져 나갔다. 3일 합참에 따르면 지난 2일 선원 30∼40명이 탄 청진2호(1만3,000t급)와 령군봉호(6,700t급),백마강호(2,700t급) 등북한 상선 3척이 동·서해 공해를 항해하던중 각각 남해안영해를 침범했다. 북측 선박이 제주해협을 무단 통과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이날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 주재로 청와대에서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정부대책을 논의,황의돈(黃義敦) 국방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성명에서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금번에 한해 영해통과를 허용했다”면서 “향후에는사전통보 및 허가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차후재발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정리는 향후 북한이 협의에 응해올 경우 선박의 영해 통항을 허용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돼 냉각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제주해협은 국제법상 ‘무해(無害)통항권’이 인정되는지역으로 군함을 제외한 외국 상선은 연안국에 해를 끼치지않는한 사전 통보 없이 통과할 수 있다. 군 당국은 그러나정전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북한선박의 운항을 규제해왔다. 이날 해군은 북한선박을 나포하거나 정선시키는 등 강제조치를 취하지 않고 P-3C 해상초계기와 초계함,경비함 등을긴급 출동시켜 경계,감시활동을 펴는 한편 무선교신을 통해영해이탈을 유도했다. 군당국은 북한이 민간선박의 운항 경비 및 시간절감을 위해 ‘무해통항권’을 인정받겠다는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법원, 북한에 첫 재판자료 요청

    법원이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호적에 올려달라”는 이산가족의 취적허가 신청을 받아들여 역사상 처음으로 북 한 이산가족의 인적사항 조회를 통일부를 통해 북한측에 공 식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우리 법원이 북한에 재판 자료 를 요청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부장 高毅永)는 지난달 18일 “S씨 의 취적허가 사건 심리에 필요하다”며 통일부를 통해 북한 에 살고 있는 S씨의 어머니 J씨(84)와 동생 3명에 대한 사 실조회를 북측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북측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이 이번 요청을 받아들여 자료를 보내준다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호적에 넣어달라는 이산가족들의 신청이 봇 물을 이룰 전망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조성된 남북화 해 분위기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남북 이산가족간 상속과 호적 정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보 인다. 법원은 요청서에서 S씨가 생존 사실을 확인한 가족 4명의 이름과생년월일,주소와 본적 등 인적사항을 명시한 뒤 ▲ 북한 주민 여부 조회 ▲인적사항 사실 여부 조회 ▲신분관 계와 거주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의 사본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상 북한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라면서 “S씨가 북측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호적에 올리려는 것은 아버지의 유산을 나눠주기 위한 것인 만큼 실제 가족들이 북한에 거주하는지를 확인 할 필요가 있어 사실조회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법원 에 6·25 당시 월남해 호적신고를 하면서 누락된 가족들의 추가 등재 방법과 절차를 문의한 결과,북측에 가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자료를 첨부해 제출하면 된다는 회답 을 듣고 사실조회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S씨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J씨와 결혼해 3남2녀를 낳았으나 6·25때 두 아들만 데리고 월남한 뒤 L씨와 재혼, 다시 아 들 둘을 낳았다.S씨는 남한에서 새 호적을 만들면서 연좌제 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호적 에 올리지 않은 채 지난해 사망했다. S씨의 장남은 “북측 가족들에게도 재산을 물려주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법원에 L씨와 아버지의 혼인무 효소송과 취적허가 신청 등을 제기했다. 이상록 조태성기자 myzodan@
  • 철원군, 3일 금강산서 남북 벼품종 공동개발 실무접촉

    강원도 철원군이 남·북 공동의 벼 품종개발과 학술조사등을 위해 3일 북한 금강산에서 첫 실무접촉을 갖는다. 철원군은 “분단된 남·북 철원지역에 벼 우량품종 전시포 설치와 농자재 북한지원 등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실무협의는 철원군이 교류의사를 북측에 타진하고 북한의대남 교류담당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가 초청장을 보내오면서 급진전됐다.6일까지 3일동안 열리며 철원군 기획감사실장과 남북강원도문화교류재단 이사장 등 남측 2명이 방북한다. 철원군은 이번 실무접촉에서 분단된 남·북 철원지역에 각각 1곳씩의 벼 우량품종 전시포를 설치하는 것을 비롯,북철원에서 생산되는 삼지구엽초(음양곽)를 남한에서 명품화하는 사업과 북한에 농자재 지원 등을 제의할 예정이다. 철원 조한종기자 bell21@
  • 독도박물관서 일제강점 남북공동자료展

    평양에서 열린 바 있는 ‘일제의 한국강점 불법성에 대한남북공동자료전시회’가 독도박물관에서 열린다. 독도박물관은 지난 3월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소개됐던 일제의 한반도 침탈의 불법성을 뒷받침하는 생생한 자료들을오는 23일부터 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전시자료들은 일본의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제기된 정한론과 강화도조약에서부터 국권침탈까지 일제의 치밀한 준비 및 무력을 앞세운 강압행위 등을 폭로하는 것들이다. 또 이번 전시회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남북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 전문과 평양에서 전시된 북한의 사진 및 신문,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억지를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자료들이 함께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국치일인 8월 29일 서울로 이동,북한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토론회와 병행해 개최되는 등 오는 10월까지계속될 것이라고 독도박물관측은 밝혔다.박물관 관계자는 “독도박물관이 영토수호의 역사적 소명을 바탕으로 건립된 만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한 평양전시회의 연장선상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울릉 김상화기자 shkim@
  • 비무장지대 녹색순례 르포

    비무장지대(DMZ)의 하늘은 참으로 푸르렀다.남북도,분단도 따로 없었다.백로 몇 마리만 한가로이 자리를 지키고있을 뿐이었다. ‘2001 생명과 평화의 DMZ 녹색순례단’은 지난 14일 임진각을 출발,22일 통일전망대까지 휴전선 155마일을 도보로 횡단한다. 순례 이틀째인 15일 경기도 연천군 삼곶리 태풍전망대에서 시작된 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비바람과 구름에 가려끝이 보이지 않는 급경사가 이어졌다.순례단은 비무장지대에서 한가롭게 서있는 고라니 3∼4마리와 멀리 보이는 북한군 병사를 향해 두손을 힘껏 흔들었다.곧이어 중면 합수리에 펼쳐진 엄청난 규모의 습지.김경화 대안사회국장(30·여)의 설명이 시작됐다. 김 국장은 “습지가 있어야만 다양한 동·식물의 형성과보전이 가능하다”면서 “경제적인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무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계속된 강행군 속에서도 노루오줌 등 식물도감에서만 봤던 진귀한 식물들이 순례단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부산녹색연합 김은정 간사(29)는 “지표식물인 관중 무더기와난쟁이붓꽃,둥글레의 군락을 보고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오후 6시30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2리 마을회관에도착한 순례단은 저녁식사와 평가시간을 가졌다.순례 사흘째인 16일 단원들은 어느 누구도 오전 6시 기상시간에 늦지 않았다.도보행진의 시작은 강원도 철원군 노동당사. 녹색순례단 깃발과 녹색연합 깃발을 앞세우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섰다. 민통선 안에서 2만여평의 벼농사를 짓는다는 손용목(孫容睦·68·강원도 철원군 동성읍)씨는 논에물을 대기에 바빴다.손씨가 모는 트랙터 옆으로 백로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지난 1월 명지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에반 초크(25·호주)는 “비무장지대는 5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보고”라면서 “행운이라 생각하며 흔쾌히 녹색순례대열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출정식에서 자유의 다리‘소원의 벽’에 소망을 적은 단체옷 한벌을 내건 뒤 대장정을 시작한 이들은 평화의 댐 등을 거쳐 22일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통일전망대에 다다른다. 철원 박록삼기자 youngtan@. *한상민 순례단장 “값진 보물 확인 감동의 연속”. “생태계의 보고(寶庫)를 직접 발로 누비면서 가슴 벅찬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1 생명과 평화의 DMZ 녹색순례단’ 한상민(韓相民·28) 단장은 17일 “단원들이 지난 4일 동안 하루 평균 30여㎞를 강행군하느라 많이 지쳤지만 ‘값진 보물’을 접하는 기쁨에 다들 들떠있다”고 전했다. 한 단장은 “비무장지대의 생태계가 더욱 풍요로운 것이사실이지만 민간인통제구역(CCZ) 안의 생태계도 감동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순례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내의 생태계에대한 기초 조사라는 점 외에 DMZ가 부분적으로나마 민간인에게 열리는 순간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면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이곳에 대한 관심이 한반도에서도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장담했다. 박록삼기자
  • 국내·日총련계 초등교 첫 결연

    전교조 출신 첫 초등학교 교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는다. 경기도 성남시 은행초등학교 이상선(李相善·61) 교장은16일 “우리 아이들에게 북한과 총련 재일동포 친구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갈 ‘형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18일일본을 방문,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시의 조총련계시코쿠(四國) 초등학교와 결연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내년 8월이면 정년이 되는 이 교장은 지난 87년 6월 항쟁때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를 시작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그는 지난 98년 전교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장에 임명됐다. 이 교장이 총련동포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3월말 마이러브코리아(www.mylovekorea.net)라는 재일동포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송재근(宋在根·27)씨의 제의를받으면서.학생수 부족과 재정난,정보 부족으로 우리말과 우리문화에 대한 교육이 어려워 나날이 일본화되어가는 총련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주자는 송씨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교장은 “일본 사회에서 온갖 멸시를 견디며 우리글과우리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해온 총련학교 선생님,학생들과함께 독도·위안부문제·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나유달리 교육분야만은 협력이 부진했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고착화시킨 사상의 벽을 넘어 함께 어깨동무할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서울 고교생 285명 금강산서 통일 글·그림대회

    ‘기쁜 우리의 만남이 슬픈 잿빛을 띠지 않기를… 지금수줍게 내민 너의 손을 힘있게 잡아 놓지 않게 하소서.’(반포고 김성한군·‘만남’·운문 금상) 지난 13∼16일 금강산에서 열린 ‘서울학생 통일 체험 한마당’에 참가한 서울시내 고교생 285명은 “금강산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또 북쪽 동포의 생활상을 보고는 하루빨리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듯했다. 학생들은 14∼15일 이틀 동안 금강산 만물상과 해금강,삼일포 등을 둘러봤다.커다란 바위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병풍처럼 펼쳐진 만물상,신선이 사는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하늘문,푸른 동해와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망양대….학생들은 눈 앞에 절경이 펼쳐질 때마다 ‘와’하고 탄성을 터뜨렸다.바위와 계곡마다 전설이 깃든 금강산 1만2,000봉우리에 파묻힌 학생들은 북쪽 관리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여학생들은 북쪽 여성 관리원들을 ‘언니’라고 부르며 손을 잡고 오르내렸다.14일 밤 금강호에서 열린 ‘선상통일대토론회’에서는 북한땅을 밟은 느낌과 통일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이선국(李先國·동성고 3년·18)군은 “남쪽 관광객과 북쪽 주민을 갈라놓은 철조망에서 분단의 비극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하자 신효자(申曉子·용화여고 3년·18)양은 “통일에 대비해 남과 북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양동엽(楊東燁·중대부속고 3년·18)군은 “북쪽 관리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아 교류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워 했다.정해림(鄭海林·경기여고 2년·17)양은 “남북 공동 교과서를 만들어 통일을 앞당겨야 하고,북쪽의 또래 친구들과 만나 얘기하고 싶고,안되면 화상 채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5일에는 해금강과 삼일포에서 글짓기·사생·사진대회를 치른 뒤 평양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했다.박유진(朴有珍·덕원여고 2년·17)양은 16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멋진 교예를 보면서도 왠지 모를 찡한 감정이 솟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애틋한 감정을 털어놨다. 글짓기대회 산문 대상을 차지한 양재고 3년 정다영양(18)은 통일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펼쳤다. “통일을 하게 되면,당장은 이 물질-통일로 인한 문제점-을 품고 있는 진주조개처럼 아프고 쓰라릴지 모르지만,그이물질을 ‘진주’라는,아니 ‘민족의 발전과 번영’이라는 보석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금강산 전영우기자 anselmus@
  •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저자 이구영 선생

    “뭔가 뚜렷한 일도 하지 못한,남 부끄러운 과거이지만,남들이 겪지 못한 경험이 많아 자료적 측면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올해로 만 81세를 맞은 노촌 이구영 선생.그는 이같이 겸손한 한마디로써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책에 담게 된배경을 압축했다.책 제목은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년 이야기’(소나무).선생의 구술을 심지연 경남대 교수가 옮겼다. 이구영 선생은 1920년 의병장 유인석의 활약이 돋보이던충북 제천의 양반집에서 태어났다.자라면서 자연스레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청년기에 사회주의 사상을 만났다.이어 8·15 광복을 맞으면서 사회주의 활동에 나섰고 한국전쟁때 월북,58년에 남파됐다가 경찰에 붙잡혀 22년간 감옥에서 지냈다.80년 가석방된 뒤 서울 홍제동에 이문학회 사무실을 차리고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그의 이런 인생역정은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은 질곡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가 일생동안 만난 사람은 무수히 많다.의병장 유인석의 종사관이 작은 아버지였기에 의병들에 대해서도 면식과기록을 갖고 있다.벽초 홍명희로부터 글을 배웠고,사회주의에 빠져들면서 박헌영 등도 알았다.광복 후에는 김구선생을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시인인 육사 이원록,지훈 조동탁 등과도 알고 지냈다. 그는 책을 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신식공부도 못한 채 커서 세상에 나와 어리둥절하다가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배웠으나 그것도 갈래가 많고,파생되는 일들을 격랑속에서 겪었고 전쟁도 지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하다.” 그는 이번 책을 내자마자 새로운 저술에 나섰다.자신이겪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글을 써보려 했지만 그보다는의병사를 다루기로 했다.지난 93년 ‘호서의병사적’을 출간했으나 의병의 전모를 밝히기에 미흡하다는 안타까움에서다.“사회주의에 대해 실제 겪으면서 갖게 된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데 아직 관련자들의 자제들이 많이 살아있어서….의병활동은 집안에 자료가 있어 먼저 정리하려는 겁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에 쏟은 국민의 관심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그는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분단됐고 외세가 해독을 끼쳤고,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자손들이 좌절하고 피어나지 못했으며,이런 맺힌 것들이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책에 담았다”고 강조했다. 박재범기자 jae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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