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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농민 분단후 첫 ‘포옹’

    남과 북의 농민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통일행사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18일 북한 금강산에서 열렸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전여농),북한의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등 남북 농민단체는이날 오전 9시쯤 금강산 온정리 ‘김정숙휴양소’ 앞 운동장에서 소속 농민 1,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6·15남북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농민통일대회’를 공동 개최했다. 설봉호와 온정리 등 북한 땅에서 하룻밤을 보낸 남한 농민들은 이날 오전 행사장으로 이동,행사장에 미리 도착해 있던 북한 농근맹 소속 농민들과 손을 잡고 행사장에 입장했다. 정광훈 전농 의장은 개막사에서 “조국이 분단된 지 55년만에 성사된 남과 북 농민대중의 첫 만남은 통일의 물꼬를트는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후 “6·15공동선언 이행의 실천을 위해 정치·문화·경제 등 모든 것을총동원,민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주체가 되어 영광된 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말했다. 승상섭 농근맹 위원장은 “북과 남의 농민들은 근면성과땀을 아낌없이 땅에 바쳐가듯이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구슬땀을 바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막식에서는 남한 노래단 ‘소리타래’와 ‘청보리사랑’,북한 공훈배우 김길화 등이 출연하는 남북예술단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남측에서 전농의 정 의장을 비롯해 정용기ㆍ정현찬 부의장,김순옥 전여농 회장 등과 북한측에서 농근맹의 승상섭 위원장,김명철 부위원장,김승현 국제부장 등이 참석했다. 금강산연합
  • 남북관계 오늘과 내일/ “햇볕 쬔 北 다시 외투 안입을 것”

    남북관계가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대화가 중단된 지 넉달이 넘어섰고,금강산 관광사업과 황장엽(黃長燁)씨 방미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남남(南南)갈등마저 낳고 있다.50년 분단사에 새 장을 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1년이 넘어선 지금 남북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지,향후 대북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다. ◆강성학(姜聲鶴) 고려대 교수(정외과)=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과거 대북정책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대단히 의미가 깊다.그러나 개인간의 관계가 그렇듯 대북정책에서도 과거의 행적을 유념해야 한다.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우상화하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점을 전제로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한차례 만나 희망 찬미래를 얘기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해서‘얘기가 통할 사람’이라는 식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것은 상당한 모험과 위험성을 안고 있다. 남한의 경우 대북정책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북한체제와 김 위원장은 한순간에도 대남정책을바꿀 수 있다.가변성이 높은 지도자를 믿고 모든 정책을 추진하다가는 자칫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도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시킬 가능성을 늘 경계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북한학과)=지금의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으로 되돌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최근의 소강국면은 부시 미 행정부 출범과 지난 3월 한미 정상회담을통한 한미공조 강화,원활치 못한 대북지원,이에 따른 북한의 불만,남남 갈등 등이 요인이다.북한은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에야 남북간 대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의 합의사항 이행,즉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대단히 초조해 하는 듯한데 오히려 여유가 없는 쪽은 북한이다.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식량난도 가중될 전망이어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높다.시간은 우리에게 있다.국내 정치일정을 의식하는 듯한데 이는 야당의 공세와 남남갈등의 빌미가 될 뿐이다.대북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급한 쪽은 북한이라는 점을 인식해 정부는 느긋하게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려야 한다.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금강산 관광료 미지급 등의 지체 요인들이 해소된 만큼 이제 남북관계는 대화재개의 국면을 맞았다.북한은 황장엽(黃長燁)씨 방미 문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화시점을저울질하겠지만 이달중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본다. 남북관계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지금의 소강상태도 결코6·15남북공동선언 이전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 대북문제가 지나치게 국내정치에 이용되고 있어 안타깝다.과거엔 집권세력이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활용했는데 지금은 야당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대북정책을 활용하는 양상이다. 이는 결국 대북정책의 추진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정부는 여론을 존중하되 정치적으로 윤색된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의연한 자세로 일관되게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서주석(徐柱錫) 국방연구원북한군사연구실장=7월 중에남북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으나 연락관 접촉 수준이면 몰라도 당장 장관급 회담 등 본격적인 남북대화로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금강산 육로관광만 해도 북한과유엔군사령부간 DMZ(비무장지대) 통과문제 협의와 남북 군사당국간 실무회담 등을 거쳐야 한다.또 북한의 주요 일정만 봐도 9∼10월 중에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정상외교가 예정돼 있다.오는 23일 열릴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의 북·미간,남북간 외무장관 회담이 점쳐지고 있지만 상견례나탐색전 정도로 봐야 한다.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등 본격적인 의제가 논의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남북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부는 남북대화를 서두르기보다 이를 위한 정지작업을 차분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최근 금강산 관광사업의 관광공사 참여문제나 황장엽씨 방미문제 등이 정부에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조급하게 서두르는 측면도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모든 의미를 부여해 김 위원장이 오면 모든 문제가 풀리고,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물론 2차 남북정상회담이열리면 평화선언을 채택할 수도 있고 김정일 신드롬이 다시 일면서 남북간 분위기가 크게 고조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것 역시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파행적 변화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는 절대 이벤트성행사로 진전될 수 없다. ◆김연철(金鍊鐵)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남북대화 재개에는 남한의 대북투자 여력도 주요 변수의 하나다.우리가충분한 투자여력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남북간 경제협력뿐아니라 남북대화,나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북 전력지원이나 개성공단 조성 등을 볼 때 남북경협은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하며 단기적인 경제성을 기대해선 안된다.이를 위해서는 공적 투자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그리고 이는 국민적인 합의와 특히 여야간 협력이 중요하다. 때문에 정부는 북한에 대한 공적 지원 및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다.여야 모두대북정책을 국내정치와 분리시켜 초당적으로 협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경호기자 jade@. ■대북포용정책의 앞날. 국민의 정부가 추진중인 대북 포용정책은 한반도 및 주변정세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사업,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남북 화해와상생의 기류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자리잡은 것은 대북 포용정책의 주요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포용정책과 주변 4강=미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 포용정책은 국제 역학관계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다소 주춤하는 형국을 보여왔다.그러나 조만간 경색국면에 빠진 북·미는 물론 남북한 등 당사국간 공식·비공식 차원의 협의가활발히 전개될 전망이다. 현재 대북 포용정책을 바탕으로 한 남북관계의 진전은 북한 핵과 미사일,재래식 군비 감축 등을 둘러싼 북·미대화의 진행 상황과 직접적인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여기에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정책과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그리고 미국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등에 업고있는 일본의 보수우익 성향이 한반도 정책에어떻게 반영될지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물론 겉으로는 미·일·중·러 등 주변 4강들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표명하고있지만,각국이 계산하는 ‘손익분기점’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이들 4강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탄력적으로 활용하면서 포용정책의 명분과 실리를살려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게 실린 하노이 회동=한반도 주변 역학관계의 추이는남북과 미·중·러 등 관련 당사국 외무장관의 양자회담이연쇄적으로 열리는 오는 23∼26일 하노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를 통해 단초를 드러낼 전망이다. 한승수(韓昇洙) 외교장관과 백남순(白南淳) 북한 외무상간 제2차 남북외무장관 회담,백 외무상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간 북·미 외무회담 등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및 북·미관계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대화재개 제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이번 회의에서 어떻게 드러날지가 향후 한반도의 기류와 대북 포용정책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주요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찬구기자 ckpark@. ■12년째 대북사업 김영일 효원물산 대표. “지금 북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전국에 상설시장이 들어서 있고 각 기업소들은 외화획득에 앞을 다투는 상황입니다” 90년부터 12년째 대북교역 사업을 벌여온 효원물산 대표김영일(金英一·59)씨가 전하는 북한경제의 변화상이다.김씨는 “잇따른 식량난으로 북한의 배급체계가 흐트러지면서 북한 당국도 상설시장을 묵인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신사고’를 바탕으로 부분적인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시장경제화와 이에따른 남북간 교역의 확대가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89년 연간 교역액 1,872만달러로 시작된 남북간 교역은 91년부터 본궤도에 오른 뒤 지난해 2억4,424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신장세를 이어왔다.교역업체도 임가공 무역업체를 포함,500여개에 이른다. 김씨는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이뤄져 온 남북간 교역이이제는 규모에 걸맞게 체계화되고 법과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부는 지난해 북한과 체결한 4대경협 관련 합의서가 조속히 발효되도록 노력해야 하고,각교역업체들은 관행화된 과당 경쟁이나 음해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특히 새로 대북교역에 나서는 업체들은 중국이나홍콩의 중개상들을 통하지 말고 직접 대북접촉에 나설 것을 충고했다.“금강산의 구(舊)세관 자리에 마련된 남북교역상담소를 통해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교역협상을 할 수 있게 된 만큼 중개상의 농간에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색다른 고언(苦言)을 내놓았다.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워 일정한 거리를 두고있지만 금강산사업이 사실상 국가사업인 만큼 정부가 보다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경영하는 효원물산은 남북교역이 막 시작되던 90년 대북사업을 시작,농수산물과 시설재 등을 직교역해 지난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김씨는 남북교역업자 모임인 한민족물자교류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진경호기자.
  • 외세지배·전쟁·분단…한국인 ‘恨’의 20세기

    ■20세기 한국의 야만/ 도서출판 일빛. 원로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세기말인 지난해말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20세기를 ‘한(恨)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그리고 ‘한’의 요체로 외세 지배와 분단을 꼽았다. 도서출판 일빛이 펴낸 ‘20세기 한국의 야만’은 부제 ‘평화와 인권의 21세기를 위하여’에서 보듯 지난 20세기가대다수 민중들에게 ‘한의 한 세기’였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는 인류의 물질문명이 극에달했던 시대이면서도 극단적인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폭력과 전쟁,대량 학살과 고문 등으로 얼룩진 유례없는 ‘폭력의 한 세기’이기도 했다.과학기술은 인류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일면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의 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세기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이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았다.이 과정에서 폭력은 전쟁과 혁명의 동반자였다.한나 아렌트는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는 폭력”이라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 20세기의 한국도 ‘폭력의 세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전반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난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으며,후반부 반세기는 이념갈등과 냉전의 와중에서 다시 그같은 역사를 되풀이 해야만 했다.실로가혹한 한 세기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분단·전쟁·독재·자본의 폭력과 야만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크게 나눠 제1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제2부는 ‘분단·전쟁·독재의 야만’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는 총7편의 글이 실려있다.지수걸(공주대 교수)은일제시대 대표적 악법인 치안유지법과 고등경찰제도가 독립운동가들과 식민지 조선인들을 탄압한 실태를,이정은(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3·1의거 당시 일제의 조선인 탄압실태를 살폈다.또 홍진희(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미림여고 교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실태를,김민영(군산대 교수)은 일제말기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실태및 전후보상 문제를 다뤘다.강정숙(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일본군 성노예(정신대)문제를 여성운동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이밖에 정순훈(배재대 교수)은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최일출(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를 다루면서 피폭자들의 인권회복과 과오 재발방지 차원에서 전후보상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2부는 전후 1945년∼60년까지 국가형성과 6·25전쟁기,그리고 전후 반공이데올로기 체제 아래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문제를 다뤘다.강창일(제주4·3연구소장·배재대 교수)은 미 군정기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제주4·3사건’을,허만호(경북대 교수)는 6·25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문제를각각 국가폭력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또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는 ‘노근리사건’을 통해 한국전 당시 미국범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김동심(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은 해방후 미군이 이 땅에 진주한 이후 오늘까지의 미군범죄 55년사를 망라,미군이 이 땅에 남긴 고통과 상처와 한의 실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이밖에정태영(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판 매카시즘 광란과 그 대표적인 희생 사례로 ‘조봉암사건’을 다루었으며,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은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이승만 정권의 ‘백색테러’의 야만성에 촛점을 맞췄다.학술전문서가 아닌,대중교양서로 만든 이 책은 각 사건의 전반적 개요,실상,의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추가적인 지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참고문헌도 곁들였다.1만3,800원. 정운현기자 jwh59@
  • 정치 뉴스라인

    ■여야 개혁파 중진 의원들과 각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화해와 전진포럼’은 16일 자체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했다.사이트주소는 ‘www.over3.or.kr’.키워드인‘over3’는 ▲남북분단 ▲지역갈등 ▲정당의 1인 보스체제 등 “3개의 벽을 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16일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명예회장 부인의 빈소가 마련된 고대 안암병원에서 6개월여 만에 조우,두 사람간의 ‘화해설‘을 부추겼다. 두 사람은 고인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눴으며, 배석한 김명예회장이 “두분이 따로 말씀을 나누시겠느냐”며 자리를비우려 했으나 이총재가 “오늘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가 아니냐”며 완곡히 사양,단독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고박종웅 의원이 전했다. 김병관 회장은 김 전대통령과 이총재에게 “대통령에게 직보해 달라고 하면서 몇 말씀 드렸다”며 지난 6월9일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을 만난 비화를 소개했다.그는 이어 “안 청장은 직보할 입장이 안 되니 박지원(朴智元) 수석비서관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세무조사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 애플씨어터 ‘강택구’… 탈북 벌목공 극화

    애플씨어터가 지난 7일부터 인켈아트홀에서 공연중인 연극강택구(전훈 작,김노운 연출)는 탈출 벌목공의 인권과 남북분단 문제를 담은 작품이다.전훈이 러시아 유학중이던 지난95년 배우 박신양 김유석,수원여전 교수 김태훈과 함께 현지 쉬예프킨 연극대에서 즉흥극으로 처음 발표했던 것을 국내무대에 올린 것이다.러시아 벌목공과 그의 배다른 형제인 러시아 유학생이 만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을그린다.분단과 인권이라는 주제가 다소 무겁지만 엉뚱한 상황 설정과 쉬운 이야기 전개로 재미있게 다가온다.8월19일까지(월 쉼) 평일 오후7시30분 토 오후4시·7시30분 일 오후4시,인켈아트홀(02)766-2124. 김성호기자 kimus@
  • [씨줄날줄] 독일의회

    독일 연방하원이 한 목소리가 되어 ‘한반도 평화·안정·통일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한다.한국 정부의 남북화해와 협력정책을 지지하면서 독일 정부에도 적극적인 한반도 지원을 촉구했다는 것이다.민족분단을 온몸으로 겪었기에 화해의 시대로 접어든 한반도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독일 의회의 따뜻한 격려와 배려는 참으로 고맙다.그리고 한편으론 부끄럽기 짝이 없다. 냉혹하기로 말하면 국제사회가 아프리카 밀림만 못하겠는가.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부강할수록 벼 한 섬이라도 더 챙기려는 게 국제무대의 세태다.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는 비정의 세계가 국제사회 아닌가.독일 의회가 이 삭막한 틈새를 비집고한반도의 화해와 안정,통일을 격려하며 기원하고 나선 것이다.참 이례적이다. 배고픈 설움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다.독일 의회가 그랬다.그러나 정작 분단을 극복해야 할 당사자들은 아직도 배고픔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민족문제를 정략적인입지를 강화하는 지렛대로 한껏 이용하고 있다. 민족화합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분단의 골을 더욱 깊게 파고 있다.분단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몰지각도 서슴지 않는다.지도층이라는 정치권이 앞장서 선동하고 있다.우리 정치권의 이런 모습을 독일 의회가 눈치라도 챌까 조마조마하다. 차마 고개를 못 들겠다. 생각해보면 우리만큼 분단의 고통을 길고도 뼈저리게 겪고있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정치·경제·군사적으로 낭비되는민족역량은 그렇다 치자.젊은 날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휴전선을 넘었던 사람들이 죽어서도 망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죽어서나마 고향에 가까이 묻히고 싶다는 그들이다.몇푼안 되는 유산이나마 따로 떼었다가 ‘통일이 되거든 북에 두고온 부모 형제들에게 나눠주라’던 그들이다.나라 발전과나라 지키기에 남못지 않게 땀흘리고 피흘린 그들이 아닌가. 민족문제는 이해집단 간에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더구나 정략적 이득을 챙기기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내정은 물론 외교도 민족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데 다른 목소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일 의회의 격려를 새겨보자.그리고 고마워하고 부끄러워하자. 정인학 논설위원
  • [대한칼럼] 통일 베트남 26년과 한국

    “총칼을 들고 오면 적으로 싸우지만,악수하자고 손내밀면 서로 친구가 되지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트란 둑 루옹 국가주석은 지난 21일 집무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한국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나 외세와의 항쟁에 이은 통일베트남의 남북 갈등 극복과 국가발전 과제를 얘기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근 100년간 프랑스와의 식민투쟁에 이어 20년에 걸친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어 통일을 성취한 지 26년이 된 지금,베트남의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최대 화두는 ‘도이 모이’(쇄신)지속과 경제 건설이다. 수도 하노이에서 그리고 옛날 사이공인 호치민시의 전쟁기념관을 각각 찾았을 때 월남전 당시 참전했던 한국군에관련된 기록사진,이른바 ‘양민학살’에 관한 전시물이 있는지를 눈여겨 살펴봤다.그러나 한국군에 관한 단 한 장의 사진도 발견할 수 없었다.미군과 함께 참전한 한국군 부대명이 나열된 조그마한 도표 한 장만 있을 뿐이다.몇년전만 해도 ‘인간이기를 거부한 미 제국주의’ 군대의 잔혹행위와 함께 참전한 국군의 ‘활동상’도 전시돼 있었지만지금은 자취를 감췄다.베트남 정부는 이처럼 한국에 관한 문제는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그만큼 한국과의 교류·협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의 참전 등 ‘과거사’문제에 대해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과거는 제쳐두고 미래를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실제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베트남의 고위인사들도 “과거 양국간에는 불행한 일이 있었으나 이는 양 국민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고 한국군이라고 부르는 대신 여러 문서에도 ‘박정희 용병군’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지금의 한국과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호치민 시내 시장통을 돌아보다 우리나라 탤런트 차인표와 이영애가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코팅된포스터가 진열대에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베트남의젊은이들 사이에 한국 연예인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있는가 하면,베트남의 주요 방송국은 저녁 시간대에 한국드라마 ‘불꽃’을 방영하고 있다.이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호치민 방송국의 팜 칵 사장은 “‘젓가락 사용’ 등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충분한 답변같지는 않았다. 한국이나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받았고 식민통치를 경험했으며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베트남은 비록 ‘통일조국’을 이룩했지만 폐허의 땅에남은 것은 가난뿐이었다.이런 가운데 일본을 배우기는 너무 발전의 격차가 크고 대신 한국의 발전 모델을 원용하고 싶은 ‘염원’이 깔린 것이 아닌가 한다.내년이면 한·베트남 수교도 10주년을 맞는다.근년 들어 우리 업체들의 진출도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이곳의 풍부하고도 근면한 노동력과 결합할 여지는 아직도 많다. 애국심이 강한 베트남 국민들은 자존심이 매우 높다.호치민시 북서쪽 80㎞ 지점에 있는 ‘베트콩’의 지하 갱도 ‘구치터널’을 돌아보고는 미군의 가공할 현대무기들이 왜이곳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작은체구의 베트남 사람만이 이동할 수 있는 땅굴이 총 연장 250㎞에 걸쳐 거미줄처럼 이어진 이터널은 5,000∼6,000명의 병사들이 장기적으로 게릴라전을 펼 수 있는 공간이었다.갱도 곳곳엔 작전회의,외과 수술,공동 취사까지 할 수있는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아무리 융단폭격을 하고 화염방사기로 밀림을 태우고 고엽제로 초토화시켜도 이들의땅굴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게 돼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베트남 국민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한국군 증오’의 과거사가 양국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돼서는안된다.그러기 위해서는 베트남 국민들이 하노이 중심부에 있는 호치민옹의 묘소를 지금도 매일 수백·수천명이 참배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이들의 독립정신과 민족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협력을 심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경형 논설위원 khlee@
  • 금강산 유람선 중단 이모저모

    “썰렁해진 동해항이 하루빨리 금강산 관광객들로 다시 넘쳐나길 바랄뿐입니다” 27일 오후 7시 30분 560여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강원도 동해항을 벗어나는 마지막 유람선 ‘금강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98년 11월 남북분단 이후 처음 금강산 관광객을 태우고 화려한 출항길에 올랐던 유람선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좌초되고 있기 때문이다.유람선이 운항되면서 동해지역은 지금까지 관광객 숙박과 선식·선용품 납품,취항관련 업체 용역비,관광객 쇼핑 등으로 166억3,700만원의 돈을 벌어들이며 금강산 특수를 누려왔다. 그러나 관광객이 줄고 그나마 뱃길마저 끊긴다는 소식에 최근에는 동해항 항만용역업 24개 업체와 물품공급업 22개 업체들도 대부분이 휴업하거나 영업실적이 거의 없는 등 심각한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식당업으로 매달 천만원대의 매상을 올리던 김모(53·천곡동)씨는 “혹시나 했는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종업원들의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할까 걱정스럽다”고 울상을지었다. 평생을 묵호동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모(58·여)씨는 “그나마 유람선 덕분에 쏠쏠히 돈구경을 하고 사는가 했더니 운항중단 소식을 듣고 낙담했다”며 “찾는 손님 가운데절반이상이 유람선 관광객들인데 어디가서 손님을 끌어올지난감하기만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
  • [김삼웅 칼럼] 언론의 길,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한다” 오늘(26일) 서거 52주년을 맞는 백범 김구선생의 말씀이다. 백범은 오랜 망명에서 귀국하여 반성을 모르는 채 날뛰는친일·분단정부 수립 세력을 지켜보면서 ‘정도·사도론’을 폈다. 결국 백범은 ‘사도세력’에 피격되고 이땅은 사도가 지배하는 길고 긴 역설의 현대사가 전개되었다. 우리는 20세기에 봉건왕조-식민지-해방과 분단-동족상잔-군사독재-근대화-민주화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 선진모델을 찾지 못하고 국가적 내홍(內訌)에 시달리고 있다. 역사는 길어도 역사의식이 희박하고,민주제도는 훌륭해도민주질서가 취약하고,학벌 좋은 지식인은 많아도 참된 지성이 드물고,언론기관은 넘쳐도 정론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분단구조의 민족모순, 영호남의 지역갈등, 보수와진보의 이념대결, 자본과 노동의 계급격차, 남녀 성차별에이르기까지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대립과 갈등상을 보이고있다. 이렇게 모순과 갈등이 나선형식으로 겹친 원인과 책임의상당 부분은 언론에 있다. 족벌언론의 특권의식과 식민성에서 기인한다. 정치가 패거리 싸움이고 공직자가 복지부동하고 기업이 부실하고 집단이기주의가 판치더라도 언론이 여론을 선도하고 정론을 편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성을 회복할수 있다. 온 세상이 모두 취하고 혼탁한데 언론만 깨어있겠는가, 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취하고 혼탁시킨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피하기 어렵다. ■비판 비켜간 마지막 성역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한다. 과거 비판에서성역화된 청와대권력이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동안 언론사처럼 무오류의 성역으로 남은 곳이 없다. 오만과 타락은 필연적이다. 남을 비판하면서 내부적으로는탈세·외화도피·자금세탁등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정권이 바뀌고 군벌이 심판받고 재벌이 해체돼도 언벌(言閥)은 철옹성을 지키고 삼권 위에 군림한다. 친일 반민족과권·언유착에도 심판받지 않았고 ‘황제사주’의 전횡도 단죄되지 않았다. 지난 정권때까지도 청와대의 ‘위스키와 캐시(cash:현금)’로 상징되는 1급 로비 대상은 족벌언론사주와 간부들이었다. 청와대팀은 안기부 돈까지 끌어다 로비자금으로 쓴 것이 최근 드러났다. 이렇게 성역화되고 특권화된 언론이 민족의 진로나 민중의 아픔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만들고 북한과는 적당한 위기를 조장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옮기고 지역갈등을부추겨 손쉽게 기득권을 지켜온 것이 족벌언론의 실상이다. 신라가 반도 통일을 하고도 대륙진출은커녕 고구려영토를수복하지 못한것은 골품제 때문이라 한다. 골품제로 얽힌기득권세력이 울타리를 치고 경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6·15선언의 민족사적 성과도‘골품세력’에 발목이 잡히고 북한상선에 총쏘지 않는다고,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고, 퍼준다고, 남북화해의 발목을잡고 대결국면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국민이 지켜본다 국세청이 23개 언론사에 5,056억원의 세금추징을 발표하자어느 족벌신문이 “그 세금 받아 북한 대주려고?”라 썼다. 이 한마디에,반성은커녕 전통적 매카시즘과 특권의식, 기지촌 언론의 식민성이 집약된다. 자신들의 범법을 매카시즘으로 환치하려는 수법이다. 건국 이래 최초의 ‘언론정화’는 가능할까. 족벌언론의필사적 저항이 따르고 야당의 정략적인 비호와 여당 대권주자들의 기회주의가 문제다. 그러나 ‘언론인 100인 선언’에 참여한 용기있는 언론학자들과 깨어있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언론개혁의지와, 과거를 청산하고거듭나려는 양심적 언론사들이 존재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몰아세웠던 일부 족벌언론이 비리 사주를 검찰고발 대상에서만 빼주면 논조 변경과 간부교체도 가능하다고 로비를 벌인다고 한다. 그야말로 ‘갈대논조’이고 ‘하루살이 간부’신세 아닌가. 김대중정부와 모든 언론에 묻는다.“정도냐, 사도냐!” [김삼웅 주필 kimsu@]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6월에 생각한다

    연일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던 지난 10일 행자부 직원과 함께 메말라 가는 고추밭에 물을 준 적이 있다.당시에는 자치단체 공무원 1만여명도 휴일을 반납하고 가뭄 극복에 힘을보태기 위해 나섰다.어디 공무원뿐이겠는가.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가뭄 극복을 위해 성금 모금과 양수기 보내기,일손 돕기 등 온갖 노력을 경주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나선 것은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함께하는 우리 민족만의 아름답고 희망적인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에 감동했는지 며칠 전 비가 내렸다.아무리 큰 가뭄이었지만 우리의 의지만은꺾을 수 없었는가 보다. 그러면서 자칫 소홀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6월이 주는 두 의미 ‘보훈’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되새겨 본다. 6월은 보훈의 달이다.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많은 호국 영령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임을가슴 깊이 되새기는 시기이자 후손들에게 더욱 영광스런 조국을 물려주어야 하는 소명을 다짐하는 시기이다.한편으로는 남북 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민족 공존의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이끌어야 한다는,남북 관계의 진정한 모색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94년쯤일까.한창 남북 관계의 긴장이 고조되어 한반도에서또다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 때문에 방독면을 구입해서 머리맡에 두고 몇 개월 동안 생활했던 때가 있었다.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에 떨었다.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땅에 살고있는 국민이라면 이러한 불안은 한두 번쯤 겪어보았으리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적대적 긴장감 속에서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전환시킴으로써 통일로 가는 초석을 마련했음은 물론 전쟁의 공포로부터 국민들을 벗어나게 하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후 남북 관계와 주변 정세에는 많은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남북한은 각종 회담과 교류를 통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고자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특히 경제교류 협력,이산가족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아쉬운 점은 한반도 냉전 해체의 관건인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간의 신뢰 구축이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듯이 점진적으로 차근차근접근해 가면 이 부분에서도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미완의 합의서이다.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꾸고 살려나가야 할 어린 새싹이며 불씨이다.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우리는 그 날을 위해 인내와 희망을 가지고 새싹을 키우고 불씨를 지펴야 할 것이다. 이근식 행자부장관
  • ‘공동경비구역 JSA’ 시애틀영화제 심사위원상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제27회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2위상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명필름은 지난 17일 폐막된 시애틀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디렉터스 쇼케이스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남북분단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심도있게 구현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 상을 수상했다고 18일 밝혔다. ‘JSA’는 경쟁부문에 오른 12편 가운데 유일하게 매진을기록했다.주연 배우인 송강호는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가리는 관객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15개 부문에 300여편의 영화가 선보인 시애틀 국제영화제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황수정기자 sjh@
  • [오늘의 눈] 육로관광 北개방 전기로

    북한 상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35마일 해상을 새벽에무단 침범한 14일 저녁 금강산 유람선 설봉호는 그 NLL을유유히 넘어 북한 장전항으로 향했다.남쪽이 북한 상선의NLL 재침범에 따른 안보논쟁으로 들끓던 15일 금강산에서는 남북의 민간단체 대표 640여명은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열어 6·15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축하했다.안보논쟁과민족화해의 노래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이 모습이 오늘의한반도 현실이다. 금강산호텔 앞마당에서 펼쳐진 ‘민족통일대토론회’는실로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남북의 대표 640여명은열렬한 박수와 포옹으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이 화합을 염원한 그곳,온정리는 아쉽게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또 다른 ‘우리’에 불과했다.그들의힘찬 외침은 비로봉을 넘고 휴전선을 건너 뛰어 평양과 서울로 퍼져가기엔 힘이 부쳤다.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머지않아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재개될 전망이다.한푼의 달러도 아쉬운 북측과 사업수익을 내야 하는현대의이해타산이 접점을 찾은 결과다.여기에 금강산 관광이 지니는 남북화해의 상징성이 협상의 뒤를 받쳤다. 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그동안 남측 관광객 40만명에게 북녘땅을 밟을 기회를 주었다.그러나 그 40만명 가운데북한 주민을 만나 통일을 얘기한 사람은 거의 없다.온정리를 둘러싼 철책이 여전히 또다른 분단의 벽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육로관광을 앞두고 남북 당국은 이제 새로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남북한 주민들이 살갗을 부딪치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서로 만나 무엇이 같고,무엇이 다른지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풀기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협상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있다. 그러나 15일 열린 금강산 토론회 같은 행사가 더이상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금강산 관광이 진정한 민족화해의 수단이 되도록 우리 정부는 힘을 쏟아야 한다.북한을 열어야 한다. [진 경 호 정치팀기자] jade@
  • [기고] 6·15선언과 이 시대 의무

    우리 민족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될 6·15선언의 본질은 오로지 하나 즉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다.이를 위해 남북 양 정상이 합의한 두 가지 원칙은 첫째,‘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일의 방향 그리고 단계·형태는 남측의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제안한 ‘연합제안’과북측이 80년 10월10일 제안한 연(련)방제를 완화·수정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한 것이다. 이 선언은 그 직후 남측에서 여론조사 결과 95.8%의 절대적인 찬성과 지지를 얻었다.전세계 주요국가의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이를 지지하고 협력을 표명했다.한 개인,단체나 회사를 막론하고 인간의 조직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고 동시에이를 달성할 시간계획이 있다.또 있어야 한다.물론 이 목표달성의 구체적 계획은 여의치 못한 외부적 여건에 의해 차질이 있어 계획보다 늦어질 수 있고,때로는 여건호전으로 인해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다.모든 기관이나 국가나 민족은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간단 명료해야 한다.도달 목표나 지시명령이 간단 명료하고 정의로워야 민족의 모든 능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나팔소리가 분명치 않을 때 누가 전투준비를 옳게 할 수 있습니까.’(고린도 전서 14장 8절) 한반도의 안정 여부는 바로 세계적 평화 여부와 직결돼 있다.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근자에 와서 청일전쟁,러일전쟁,일본의 조선침략,중일전쟁이 그렇다.적나라한 물리적 힘이 작용하는 국제사회에서,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강국의 이해충돌의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떳떳하고 자랑스런 국제사회 일원으로 기여하기 위해,우리는 하루속히 이 분단과 냉전의 비극과 낭비를 지양해야 한다.이를 위해 6·15선언에서 천명한 바에 충실하게 남북은 조속히 당국을 비롯한 각계 각층 대표인사들의 중지를 모아 통일의 구체적 방안,형태와 시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과거사는 간단없이 닥쳐온 외부침략과 민족국가들에 대한 항쟁의 역사이며 생존의 역사이다.또 지난 5,000년간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문자·전통을 유지,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또한 승리의 역사이기도 하다.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들은 대국의 한 종속국으로서의 편안함보다도 희생이 따르고 고되더라도 떳떳한 주인으로 남으려 노력해 왔다. 인구팽창,식량부족,자원고갈,환경오염,종교·민족분쟁,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 부수적 일면의 증오,오해,잔인성과 침략,정쟁 등으로 21세기가 한반도에 반드시 평화와 안정,번영을 보장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우리 세대에 있는 분단과희생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우리 세대에 있는 비극을 우리세대가 해결해야 한다는 무한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이를 위해 우리는 겸허하게 6·15선언의 본질을 살피고 선언에 명시된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지향한 통일국가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안과 시간계획을 남북공동으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이것이 6·15선언의 본질이자 우리 민족이 떳떳이 살 길이며,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존경받는 길이다. △손장래 민화협 상임의장
  • 軍 말못할 속사정 있나

    북한 상선이 해상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또다시침범했으나 정부와 군 당국이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있다. 지난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발표와 지난 5일김동신(金東信)국방장관의 ‘향후 재발시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강력 대응’ 천명이 ‘공언(空言)’에 그친 셈이어서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NLL 침범 첫 인정] 지난 4일 북한 상선의 NLL 첫 침범 이후 일관되게 ‘NLL 통과 또는 월선’이라는 표현을 썼던 합참은 14일 처음으로 ‘침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군의 평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합참은 남포2호의 NLL 월선을 침범으로 규정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다만 동해에 그은 218마일의 NLL을 모두 수호할 수 없는 해군전력의 한계 등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듯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이에 따라 NLL에 대한 전면 재조정작업과 이를 수호토록 규정한 합참작전예규에 대한 수정작업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군의 무기력한 대응 조치] 합참의 조치는 그동안 호언장담했던 ‘강력 대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포2호가 지난 13일 원산에서 동쪽으로 40마일 지점에서최초 발견된 후 남하,NLL 근접 침범이 예상됐는데도 1,200t급 해군 초계함 1척만 배치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NLL 통과이후에도 추가 함정 배치 없이 초계함 1척이 교신을 통해 NLL을 넘어가도록 요구한 것이 군 초동 조치의 전부라 할 수있다.합참 관계자들은 “남포2호가 우리측 요구에 따라 순순히 퇴각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북의 속셈은] 지난 2일 청진2호의 첫 월선 이후 백마강호,대홍단호,청천강호,대동강호 등 북한 상선이 ‘줄줄이’ NLL을 월선하면서 분단 이후 50년간 지켜온 NLL의 빗장이 사실상 무효화하는 사단이 벌어졌지만 우리 군은 이를 저지할 만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영길(曺永吉)합참의장은 “북·미 협상을 앞둔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 뒤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벌이는 ‘정치적 게임’에 군이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면서“한반도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은 이를 빌미로 우리를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주석기자 joo@
  • 6·15 1주년/ 전문가 대담

    *北 ‘평화 화답’ 없인 경협 한계. 대한매일은 14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강성윤(姜聲允)동국대 교수(북한연구학회 회장)와 박영규(朴英圭)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초빙,지난 1년간 남북관계의 진전을 평가하고 향후 과제와 전망 등을 들어봤다.좌담 내용을 간추린다. ◆지난 1년 남북관계를 평가하면. [강성윤 교수]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55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를 기록했다는 평가에 걸맞게 남북간 다양한 채널의 대화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특사·장관급·국방장관·군사실무자·경제·적십자회담 등 6개 차원의 회담이 이뤄졌고,가시적 성과도 있었다.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 장기수송환 등 인적 교류와 왕래가 이뤄진 것은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평가할 만하다. [박영규 연구위원]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경협과 관련,투자보장과 이중과세방지등 4개항의 합의는 앞으로 남북간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지난 3월 이후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화해와 협력의 계기가 마련된것은 틀림없다.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에 빠진 국내외적 요인은. [강 교수] 한반도문제는 북·미,한·미 관계 속에서 처리될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부시 미 행정부의 등장은 남북관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북한을 상대로 엄격한 상호주의와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북·미 관계가 틀어졌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생겼다. [박 위원] 북한이 지난해 정상회담을 수용한 근본원인 중 하나가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그런 시각에서 볼 때 최근한국 경제가 침체상태에 들어갔고,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싼 국민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서두를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강 교수]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경제적 지원이 목적이라면 당국간 회담이면 충분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험을무릅쓰고 직접 대화에 나선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통일문제에 관한 합의 등 김 위원장이 대화 전면에 나섬으로써 얻은정치적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답방 가능성은.[강 교수] 2차 정상회담을 했을 때 김 위원장이 정치·경제적으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한다. [박 위원] 북·미 대화가 재개되고 금강산 문제가 해결국면으로 들어간 점 등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금년내 답방할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북·미 대화가 순탄하게 진전될 가능성이 적고,경제난으로 대북지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년 답방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 답방시 효과는. [박 위원] 김 위원장이 답방한다면 우리가 북한에 요구할 게 더 많을 것이다.화해와 교류협력의 기반은 지난해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들어졌지만 불가침 분야에서는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군사적 긴장완화와 관련,김 위원장의 양해를 얻어내야 대북 포용정책의 국민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을것이다. [강 교수] 그동안 남북은 경제적인 ‘공영’문제는 다뤘지만 군사·평화적인 ‘공존’측면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이끌지못했다.김 위원장 답방시 우리가 해결할 과제다.덧붙인다면2차 회담은 예측이 가능하도록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북·미 대화 재개의 의미는. [강 교수] 부시 대통령이 대화재개를 발표하고 경제제재 완화와 대북지원 등 몇가지 당근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당초 강경자세에서 큰 변화가 없다. [박 위원] 대화재개를 선언했지만 사실은 조건이 붙어 있다. 북한이 먼저 성의있는 조치를 취해야 당근을 주겠다는 것이다.2차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미·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우리의 역할과 해법은. [강 교수] 실질적 한·미 공조를 위한 역할분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예를 들어 대북 대량살상 무기협상은 미국이,재래식 무기 협상은 한국이 맡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전략’ 차원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박 위원] 남·북·미 3자 회담을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상황과 부시 대통령이 대북 협상의제에 재래식 무기 문제를 포함시킨 점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남북간 군사협상이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은. [강 교수] 새로운 합의를 양산하기보다 기존 합의를 이행·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남북대화에서 회담 일정의 불예측성,합의의 불이행,남북한 합의문의 불일치 등 ‘3불(不)현상’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또 통일문제를 정치문제와 분리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박 위원]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경제협력을 대가로 안보협력을 받아내는 문제를 국민에게 꾸준히 인식시켜야 한다.동시에 정책의 목적과 수단을 혼용해서는 안된다.예를 들면 경협 자체를 목적으로 인식하면 ‘일방적 퍼주기’라는 강박관념에 얽매이게 된다.2차 정상회담도 공존 공영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과 과제는. [강 교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촉 재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진전될 것이다.또 금강산 육로관광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들이 남북대화 재개를 희망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요인이다.부시행정부와의 의견조율이 앞으로의 주요 과제다. [박 위원] 정부가 그동안 대북관련 정책과 평가를 너무 장밋빛으로 홍보하는 바람에 역효과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정치권은 이분법적 시각과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진보가 보수를냉전주의자로,보수가 진보를 용공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대북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정리 박찬구 홍원상기자 ckpark@
  • [데스크 칼럼] 신명잃은 ‘휘파람’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한국기자로서는 첫 근접 취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던 감격과흥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결사옹위,김정일’을 외치며 꽃술을 쉼없이 흔들던 평양시민들의 함성 속에 홀연히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기자에게는 특종을 능가하는 설렘이었다.그런데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기자는 방북취재단중 유일하게 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사진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6월14일 우리측이 주최한 평양목란관 만찬 당시 특별수행원들 사이에 재빨리 끼어들어 찍은 것으로 한동안 집안 응접실에 자랑처럼 걸어놓은 적이있다. 단독취재의 하나여서 같이 간 타사 동료들로부터 당시 얼마나 원성을 들었던지…. 남북 평양정상회담은 취재의 긴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도‘김정일 신드롬’을 낳을 만큼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통일소녀가 부른 북한 노래 ‘휘파람’이 한때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 우선 순위에 오를 정도로 북녘 땅은 분단 반세기를 건너뛰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섰다. 이러한 민족적 화해무드는 결국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오랜 민주역정과 어우러져 노벨평화상으로 귀결되는 것을보고 기자는 취재현장을 떠나 데스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흥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회담때 김 위원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풍산개 ‘두리’가 지난 10일 서울대공원에서 새끼 5마리를 낳았다는 소식이 한돌을 기념하는 작은 경사다.학술단체들의 세미나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뿐 이렇다 할 기념행사나 축하모임하나 없다.청와대 역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북·미 뉴욕 실무접촉이 14일 재개되고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남북 당국자간 협상이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어서 대화기류에 호전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하지만 남북대화가 지지부진하고,경제상황도 좋지 않은 데다 가뭄·파업사태까지 겹치면서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한 것 같다.최근 북한상선의 영해침범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은 베일에 가려 온갖 추측을 자아낸 김 위원장을 ‘합리적인 지도자’로 우리네 안방까지 불러들였다. 북한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 놓았고 북한의 개혁·개방 추구를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도 가져왔다.1년반 만의 외환위기극복 선언이 개혁의 필요성을 반감시켰다는 지적이 있다.이러한 흐름이 의보재정 위기와 같은 실책과 얽히면서 결과적으로 ‘개혁 피로 증후군’을 불러왔다고 봐야 한다.남북관계도 정부 관계자들이 보수세력의 비판에 대응하면서 기대감을 부풀려 놓은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장관급 회담 등 모든 게 눈높이에 못미치는 답보상태다.결국 북한의 불확실성만 증폭시켰고 이로 인해 ‘북한 피로증후군’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이 사라진 현실에 아쉬움을 느낀다.한반도 냉전체제 해체가 꼭 남북간의 문제만은 아니므로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7·4 공동성명 이후 남북관계가 늘성공적으로 진전돼온 것도 아니고,50년간의 반목과 갈등이하루아침에 치유될 성질의 것도 아닌 까닭이다. 다만 역사는 퇴행과 굴절을 반복하는 것같이 보이지만,긴눈으로 보면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곱씹어보고 싶은 아침이다. 양승현 정치팀장 yangbak@
  • ‘시대의 증언’채록 2권 출간/ 현대사 공백 메우는 ‘구술역사’

    한국 근세사를 치열하게 산 ‘시대의 증인들’의 구술이기록돼 단행본으로 나왔다. 도서출판 선인은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편)과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김석형 구술,이향규 녹취·정리)를 동시에 펴냈다.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은 정신문화연구원이 구술자료총서 제1권으로 독립운동가,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정치인,군 원로,비전향장기수,원로 음악가 등 8명의 ‘예사스럽지 않은’ 개인사를 기록한 것이다. 조문기(75) 선생은 일제하 마지막 국내의열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는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독립운동’은 계속되고 있다.그는 작년부터 친일파 전문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타계한 송남헌 선생은 1943년 ‘경성방송국 단파방송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미군정 당시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의장을 지낸 우사 김규식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1948년 남북협상때 우사를 모시고 방북한 인물. 교사출신으로올해 91세인 김선 할머니는 해방후 정당에서 활동한 기억을 증언하고 있으며,일본 니혼대학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 해방을 맞은 백남권(79)예비역 장군은 1943년 11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 도툐로 건너와 “학병 나가라”고 권유연설을 하길래 춘원에게“옛날의 이광수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3공 당시 내무장관 3회,체신장관 1회,교통장관 1회 등 한정권에서 무려 다섯번이나 장관을 지낸 박경원(78)전 장관은 창군시절,한국전쟁,5·16과 정치참여 등을 비교적 진솔하게 토로했다. 함북 학성 태생으로 북한 김책공대 출신의 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74)는 1963년 5·16주체세력이자 당시 현역 사단장이었던 숙부 최주종씨(작고)를 만나 통일문제를 협의하려왔다가 체포돼 반공법위반으로 35년간 감옥생활을 마치고지난해 9월 평양으로 송환된 인물이다.이밖에 남쪽출신의비전향장기수 허영철씨(81),음악계의 원로 박용구씨(87) 등의 숨가쁘게 살아온 생애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었소!’는 이규향 박사(경남대 북한대학원 객원교수)가 작년 9월 2일 평양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석형씨(87)의 구술을 5년간에 걸쳐 채록,정리한 것이다. 김씨가 자신이 죽거나 북으로 송환된 뒤에 공개해 달라고요청해 그동안 이박사의 서랍속에 잠자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정신문화연구원의 구술채록작업 실무책임자인 정용욱 교수(민족문화연구팀장)는 “구술자료는 기억의부정확성,주관성 등으로 인해 검증과 치밀한 비판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자료제공과 묻혀진 과거사 복원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의 구술을 채록하는 작업은 공식적인역사기록의 ‘사각지대’를 메운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특히 외세지배와 분단상황으로 점철된우리 현대사의 경우 곳곳에 공백지대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사설] 금강산 육로관광 기대 크다

    중단 위기에까지 몰렸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육로 관광과 관광특구 지정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현대아산은 어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측과 방북협상을 통해 합의한 구체 내용을 발표,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육로로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고 향후 2개월내 북한이 금강산관광특구를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또 금강산관광대가의 연체금 2,200만달러는 이달말까지 지급하되 앞으로는 관광객수에따라 지불키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 남북당국간 협의를 거쳐 육로 관광을 뒷받침하면,금강산관광사업은 수익이 남는 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현대의 기대처럼 일부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컨소시엄을만들어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계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면 인기관광코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해서는 강원도 간성에서 금강산 온정리까지 불과 14㎞의 도로를 연결하면 된다.이번 육로 개설 합의는 분단 반세기만에처음으로 휴전선이 뚫린다는 민족사적인 의미도 지닌다고 할수 있다. 무엇보다 육로관광이 이뤄지려면군사분계선을 일부라도 헐어야 하고,환경영향평가나 지뢰제거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3월이후 중단된 장관급회담이나 국방장관회담 등 남북당국간의 공식대화가 필수불가결하다.남북은더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남북화해의 물꼬를 열었던 금강산관광사업이 이제는 침체된 남북대화를 활성화하는 촉매제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금강산관광 살리기’ 의지가 확인된 만큼 정부와현대측도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할 것이다.연체된 대북지불금의 조속한 송금을 위해서는 현대의 자구 노력과 함께 금융기관을 통한 융자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또 600억∼1,000억원에 이를 도로개설 공사비는 남북협력기금에서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차제에 현재 북측이 공사를 중단하고있는 경의선복원사업 등도 재개되도록 남북 양측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 [기고] ‘無害통항’ 대승적 대처를

    북측상선이 제주해협 영해통과로 나라안이 어수선하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 50년동안 북한의 민간선박이 사전 허락도 없이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통과한 것은 분단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제주해협이 우리 영해라 하더라도군함 및 정부선박이 아닌 외국 민간선박에게는 국제해양법제17조에서 연안국은 무해통항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는점도 생각해야 한다.문제는 그동안 남북관계가 50년동안 적대적 대치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우리 영해안에 이러한 무해통항허용을 상상도 못한 데 불과하다. 자 이제 우리의 생각과 사상의 지평을 넓게 보자.90년대이후 국제사회는 지구촌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라는보편적 가치추구로 치닫고 있다.이에 동참못한 한반도의 우리도 지난해 6·15 공동선언이후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동참할 뿐더러 평화를 나누어 주는 나라로서 대승적인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잘못한 것은 엄중 경고하고,북한이 잘 한것은 인정,민족화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건은 적극적으로 기회를놓치지 말고적극 대응해야 한다.북한상선의 제주해협과 북방한계선(NLL)통과도 과거 남북관행에는 벗어나 돌출적으로행동한 것은 명백히 북한이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배가 북한지원 물자를 싣고 북한 영해에 들어 갈 때 북한은 항상 사전허가를 요구했기 때문에,북한도 제주해협통과에 우리와 충분한 사전 양해를 구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국제해양법(제17조)적으로 볼 때 북한 민간상선은 제주해협의 영해에서 무해통항권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우리 영해 및 접속수역법(1977) 제5조도 외국의 민간선박은 평화,공공질서,안전보장을 해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영해를 무해통과할수 있으며, 사전 허가 승인 사전동의를요구하지 않고 있다.그리고 명백히 북방한계선(NLL)은 정전협정상 아무런 근거가 없고,국제연합사령부(UNC)가 1953년8월30일 내부적 작전 규칙으로 작성한 것을 북측에 정식으로 통고하지도 않았다.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상 제2장의 부속합의서 제10조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해상불가침구역은해상불가침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여기서 서해의 해상 불가침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과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에 NLL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그 이유는 NLL이 남북사이에 경계선이 되려면 쌍방이 합의하고 인정해야 하는데,UNC가 내부작전규칙으로 NLL을 설정,해군부대에만 시달하였고 상대방인 북한에는 통고조차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북한상선의 NLL 통과는 영해 침범은 아니고 월선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식량난·에너지난 극복을 위해경제적 항로를 개척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남북한해운협정을 맺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협상으로 활용해볼 필요도 있다.남북한의 상호 직항로 개설은 쌍방 모두에게 물류비용을절감할 수 있는 큰 이점이 있다.정부는 북한 상선 제주해협통과와 NLL 월선에 대한 국제법적인 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깊은 우려도 아울러 깊이 고려하는 유연하고 차분한 대응을 하는 것이필요하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 800년간 佛에 비친 한국의 정체성

    흔히 유럽에서 ‘은자(隱者)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한국인의 정체성은 언제,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일까? 이 물음에 속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연구서가 출간됐다.한국외국어대 불어과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교수의 ‘착한 미개인동양의 현자’(청년사 펴냄)가 그것.비교문학자이자 문화과학자인 불레스텍스 교수는 지난 16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정체성,즉 ‘한국성’에 대해 인상적인 차원을 넘어학술적 과업으로 이를 천착해왔다.이번에 그가 펴낸 책은소르본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논문 가운데 전문적인 내용을 뺀 것이다.대상시기가 13세기부터 현대까지 무려 8세기에걸쳐 있다는 점이 독자를 압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을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1254년 유럽 성직자들과 함께 선교활동차 몽골에 들렀던 기욤드 루브룩.그는 당시 몽골의 제4차 고려 침입 후 끌려온 고려인 포로들을 만났다.드 루브룩은 ‘몽골제국 여행기’에서 고려인에 대한 인상을 ‘미개한’,그러면서도 ‘문명화한’민족으로 기록했다.구체적으로는 “체구가 작고 스페인 사람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이 사제들처럼 갓을 쓰고 다니는데 검은 니스를 칠해 뻣뻣해진 외올베로 만든 갓들은 어찌나 윤을 냈는지 햇빛에 반사되면 마치 거울이나잘 닦은 군모처첨 반짝인다.” 한국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야기와 묘사는 네덜란드인상인 헨드릭 하멜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1653년 제주도남쪽 해안에 표착한 하멜은 일본으로 탈출하기까지 13년간한국에 머문 후 ‘제주도난파기’‘조선왕국기’등을 남겼다.이는 한국에 관한 최초의 ‘인류학적’ 자료다.한국에대한 하멜의 생각과 관찰은 ‘착한 미개인’‘동양의 현자’라는 두 이미지가 형성되는 출발점이 됐다. 프랑스가 한국과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접촉을 이룬 계기는 1866년 ‘병인양요’였다.프랑스 제국주의가 파견한 프랑스인(주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은 서서히 국제사회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당시 프랑스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뛰어난 손재주,예술적 취향 등을 특징으로 꼽았다.이어 20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을 찾는 유럽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한국은 ‘조용한아침의 나라’와 ‘은둔의 왕국’이라는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굳히기 시작했다.현대에 들어 한국의 이미지는 또다른 모습으로 비쳐졌다.해방과 독립,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로 다시 자리매김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은 과거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퇴색하고,전쟁을 거친 후 북한의 모습을 통해 ‘은둔의 왕국’이란 이미지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 비친 한국·한국인의 이미지를 연구해온 저자는 “한국은 프랑스와 극동지역의 종교·상업·학문적 이해관계와 인접국과의 지정학적 균형관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고 결론내렸다. 지난 85년 파리 국립도서관 지하열람실에서 한 고서를 통해 우연히 ‘미지의 국가’ 한국을 처음 만난 이후 저자는센 강변의 고서점,런던·로마도서관,박물관은 물론 여행객,산책가,옛 지도제작자,호기심 많은 지리학자,인류학자,판화가,사진작가 등의 발자취를 찾아 상상 속의 한국의 이미지를 추적해 왔다.저자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2단계로 ‘한국성(Koreanity)’의 개념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탐험에 나설 계획이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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