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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플라자/ 한평생 독립·통일운동 구익균翁 ‘한반도 영세중립’ 꿈꾸는 老사상가

    “백범이 존경하는 사람은 도산뿐이었어요.상하이 임시정부의 정책,활동 방향,경제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도산 선생이 있었죠.”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비서실장으로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具益均·95)옹은 20일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도산 선생이 ‘온건한 계몽주의자’ 정도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구옹은 “이상 사회를 꿈꿨던 혁명가 도산 선생은 민족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민주주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테러리스트까지 포괄했던 큰 인품을 갖춘 지도자”라고 말했다. 도산의 사상을 고스란히 체현한 ‘95세의 노(老) 독립운동가’ 구옹이 요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활동은 바로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이다. 지난 83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91년 뉴욕에서 ‘코리아 영세중립화 추진본부’를 꾸린 뒤 국제사회에 한반도 영세중립국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영세중립통일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을벌이고 있다. 현재 스위스·벨기에·오스트리아 등이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한반도 영세중립화는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또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구옹은 이에 앞서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이념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세중립화가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외국의 도움이나 개입없이 통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구옹은 이어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면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외교와 국방은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주의자도,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니다.그저 같은 민족의 북쪽에 사회주의가 있고,남쪽에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남북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지내며 전쟁과 대결을 거부하기를 바라는 평화주의자일 뿐이다.이와 더불어 지구상 어디에서도 대결과 전쟁도 없이 평화롭게 어울려지내야 한다는 확신과 철학을 지닌 순수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은 도산 선생의 사상과 맥이 맞닿았다고 주장한다. “도산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서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대공주의(大公主義)라고 불렀는데 이건 중국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처럼혼돈된 나라에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상이었어요.” 구옹은 “혁명가로서 도산 선생의 사상이 한국내 흥사단의 친일이나 제자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적 등에 의해 왜곡된 점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혁명적 이상사회를 꿈꾸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사상가이자 모든 사람들을 독립운동의 대열에 세우려 노력했던 품이 넓은 혁명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벌써 잊은 듯 그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외침에도 별울림이 없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요즘도 그는 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영세중립화밖에 없어요.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반도를 어느 특정 외세가 주도한다면 한반도는 항상 분열과 전쟁의 장으로 전락할 위협에 놓이는 거지요.” 박록삼기자 youngtan@ ■구익균옹은 누구 구익균옹은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을 생생히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다.구옹은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1928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시절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는 ‘신의주고보 학생사건’을 주도했고,일제의 검거령이 떨어지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일제에 검거되기 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모시는 등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두 차례나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렀다.또한 중국 광둥 중산(中山)대학에서 조교수를 하며 민족에 힘이 되는 인재를 양성했다. 구옹은 1945년 해방이 된 뒤 1947년 서울로 들어와 남북이통일될 수 있는현실적 방안을 추구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념과 다른 체제로 갈라진 한반도 현실에서 구옹은 ‘이방인이자 범법자’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 영세중립화 통일 및 평화를 주된 가치로 하는 혁신정당 운동에 힘쓰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다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 8·15민족통일대회 결산/ “”획기적 만남”” “”원론수준”” 평가 엇갈려

    지난 16일 폐막된 8·15 민족통일대회에 대한 통일연대·민족화해협의회 등 참석 단체들의 평가 작업이 한창이다. 참석자들은 분단 이후 처음 서울에서 열린 민간행사가 큰 갈등이나 별다른 사고없이 마무리됐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이들은 또 서해교전으로 긴장상태에 있던 남북이 이번 행사를 통해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등 한반도 정세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통일·청년·여성 등 남북 실무자들이 9개 분야별로 각각 모여 진행한 ‘부문별 모임’의 평가는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 일부 여성·청년 단체들은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도출해 냈다.”며 후속조치를 기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만남’이었다고 강조했다. 청년모임의 문성순 청년학생위원회 총무는 “오는 25일 실무자회담에서 세부사항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합의를 이뤘다.”면서 “북측이 통일대회와 관련해 제안문까지 준비해와 내실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여성모임도 다음달 12,13일 금강산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 여성통일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실속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자평했다.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현숙 상임대표는 “산후 휴가,탁아소 문제 등에 대해 북측 대표단이 거리낌없이 답변해 실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도 “남북 민간이 크게 웃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그러나 농민통일대회나 여성기독교인 교류 등 남측의 제안에 대해서는 북한 대표단이“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아 뚜렷한 결론을 맺지 못했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공식 의제가 없었던 만큼 곧바로 성과를 얻기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종단모임에 참석했던 백도웅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도 “1시간 남짓 상봉 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아쉬워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적었던 것은 민감한 사안은 가급적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전 합의 때문이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노동계 모임에 참석한 백순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민간 교류의 첫번째 서울행사가 방해받지 않도록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기로 했었다.”고 귀띔했다. 민족의 진정한 축제가 돼야 할 행사가 지나치게 축소돼 아쉬움이 남는다는의견도 많았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북측 대표단이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떠나기 직전 ‘환송인파 중 경찰의 수가 가장 많다.’는 농담을 건넸다.”면서 “민족통일대회가 호텔내 행사로 국한돼 국민적 관심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최대 결점”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연대 김성윤 대변인은 “첫술에 배부를 리는 없지만 구체적인 논의가 미흡했던 점이 안타깝다.”면서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민간 단체들이 다양한 제안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영규 이세영 박지연기자 anne02@
  • 그룹새벽 ‘남북의 길 국도1호선’

    '8.15민족통일대회'의 막이 오른 지난 14일 서울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는 통일을 기원하는 미술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룹 새벽'의 '남북의 길-국도 1호선 전'이 그것. 국도 1호선은 한반도의 남서단인 목포에서 북서쪽 끝 신의주를 연결하는 '남북의 대동맥'. 국도 2호선이 목포와 부산을 잇는 '남남의 대동맥'인 점을 떠올리면, 국도 1호가 갖는 상징성에는 제법 마음이 찡해진다. 그룹 새벽의 황순칠 회장은 “판문점에서 막혀버린 국도 1호선은 분단의 아픔을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이라며 “예술인도 ‘6·15 남북공동선언’이후 세계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민족적 과제인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설치·회화·조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새벽은 1991년 광주·전남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주축이 돼 창립한 미술단체로 개인전은 순수미술을 지향하지만,단체전은 사회성과 대중성을 강조해 왔다. 회원들은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목포에서 판문점까지 3차례나 답사했다.일제 수탈의 현장인 목포 ‘동양척식회사’터에서 출발,북상하면서 광주금남로,정읍 동학혁명지,천안 독립기념관,오산 미군부대,임진각 자유의 다리,문산 통일전망대에서 공동작업도 했다. 때문에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은 고근호 김기범 김성식 김숙빈 박광구 이기원 전범수씨가 공동작업하고,자유의 다리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참여한 임진각 설치작품이다.목포의 ‘국도 1호선’도로 원표와,자유의 다리 표석·상판·교각에서 떠낸 석고를 먹물빛 30m 길이의 한지에 흩뿌려 놓았다. 한지는 지난 겨울 자유의 다리에 깔아놓고 국내외 관광객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자취다.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에는 민족의 소망이 적힌 오방색 깃발이 빽빽이 꽂혀 있다.“막힌 길은 열려야 한다.”는 외침이다. 작업 현장을 비디오에 생생히 담아 현장사진들과 함께 전시실에서 내내 영상으로 상영한다. 마음 속에 오랫동안 떨림을 유발하는 작품으로는 한희원씨의 ‘아버지의 길’연작을 손꼽을 수 있다.그 가운데 작가가 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는 작품.“선친이 평양 출생으로 평양 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낡은 앨범에서 얼음 덮인 압록강 사진을 꺼내 꿈꾸는 눈으로 바라보던,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 그에겐 곧바로 작품이 됐다. 정용규씨의 ‘길’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 인물을 한폭에 담았다.최병구씨의 ‘꿈-희망’은 지도를 잘게 분할,이리저리 재구성해 남과 북의 분단을 지정학적으로 점검했다. 황순칠씨의 ‘혼불’은 흰색으로 그린 동양척식회사 위로 민족의 붉은 심장같은 획을 쭉 내리그어 민족의 분노를 시원하게 표출했다.서울 전시는 20일까지(02)733-5912,광주 전시는 9월29일부터 10월3일까지 남도예술회관(062)227-1136. 문소영기자 symun@
  • [기고] 남북통일美展 일반인도 보게 전시기간 늘렸으면

    올해로 광복 57주년을 맞았다.민족이 분단되어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며 보낸 시간도 이와 엇비슷하다.광복절을 전후로 남북의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해방과 통일이라는 가치의 무게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8·15민족통일대회에서는 남북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었다.공식명칭은 ‘6·15공동선언실현을 위한 남북통일미술전시회'이다.북한에서 국보급이라고 하는 작품 7점을 포함해 총 107점의 작품이 서울에서 선보였다. 전시된 작품은 조선화가 대부분이지만 유화도 12점이나 되었고,얇은 금박으로 붙여 그린 ‘금니화',색색의 돌가루로 만든 ‘보석화',판화,수예,도자기 작품도 전시되었다. 분단 이후 이런 대규모의 남북한 미술전시는 처음이다.간간이 여러 경로를통해 소개된 북한미술은 있었지만,이번 전시는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다.북한에서 국보로 여겨 좀처럼 밖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을 전시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미술갈래인 ‘조선화'를 정착,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민예술가정종녀,이석호의 초기작품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완성했다는 정영만의 ‘강선의 저녁노을’,또한 아이들의 앙증맞은 키재기 모습을 담은 정현웅의 1963년 창작 수채화 소품 따위가 그것이다.국보급 작품 외의 작품도 최근에 창작된 것이다.과거 몇 년씩 지나거나 오래된 작품을 전시한 것에 비하면 북한이 남북통일미술전을 얼마만큼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이번 남북통일미술전시를 위해 며칠씩밤을 새워 그린 작품도 있다고 한다. 북한미술 하면 보통 수령화나 정치색이 뚜렷한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번 전시는 풍경화나 정물화,춤추는 여성인물화 따위의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작품이 대부분이다.남쪽 사람들의 정서를 배려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조금 부담된다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김일성화(花)',‘김정일화(花)'를 담은 수예작품이다.그러나 제목만 없으면 그냥 화려한 꽃을 수놓았다는 느낌일 것이다.화려한 꽃과 과일을 그린 정물화부터 매의 비상하는 모습,풍산개의 귀여운 모습,춤추는 타조의 모습,아이들의 밝은 웃음 따위의 작품들은 북한미술의 다양함과 서정성을 잘 보여준다. 사실 북한미술의 특징은 높은 기량과 낭만성이다.이런 경향은 미술뿐만 아니라 공연,노래,무용 따위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감성을 자극하는 표정과 화면연출,여기에 오랜 숙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 결합한 것이 북한예술의 두드러진 모습이다. 조선화는 한지와 수성물감을 사용하기 때문에 색이 미려하고 부드럽다.또한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상하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90년대 이후 풍경화가 널리 그려지면서 백두산이나 금강산,묘향산 따위의 절경과 명승지를 담은 작품은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었다.이러한 서정성과 기량을 바탕으로 북한미술품은 여러 나라에 수출이 많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통일미술전시회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일반 사람들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장소나 기간이 없었고,전시장도 호텔 만찬장을 사용해 남북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걸기가 어려웠다. 좋은 의미라면 남북한의 화가들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일반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그러나 아쉬움은 곧 현실의 무게와 같다.통일을 이루는 길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다.통일을 위해서는 서로의 가슴을 믿는 마음이 생겨야 하듯이 이번 통일미술전시회가 예술과 감동을 통해 하나임을 확인하는 수준 높은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심규섭 /화가
  • 8.15 민족통일대회/ 北 공훈화가 김동환, 南 장순업·이숙자교수 만나

    “너무 반가워 가슴이 떨립니다.형님.”“우리 동생,반가워.잘 지냈지?” ‘의형제의 연(緣)’을 맺은 남북의 화가들이 8·15민족통일대회 폐막일에 극적으로 만났다. 16일 오전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북한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 김동환(金東丸·41) 화가는 한남대 미술교육과 장순업(張淳業·46) 교수와 고려대 미대 이숙자(李淑子·50) 교수를 만났다.이들은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나 한듯 손을 맞잡고 감격에 겨워했다. “어떻게 내려왔냐.보고싶었다.”는 남한의 교수와 “선생님들 보고싶어서 왔다.”고 애틋함으로 말하는 북한 화가의 얘기꽃은 시들 줄을 몰랐고 이들사이에는 분단도,서해교전도 없었다. 이들은 지난 97년 일본 도쿄(東京) 통일미술전에서 만난 뒤 무릎을 맞대고 밤을 새워가며 ‘그림’과 남북 미술을 얘기했다.밤이 무르익으며 부모·형제 얘기에 첫사랑 얘기까지 속내를 털어놓았다.장 교수는 김씨와 의형제를 맺었고,이 교수는 김씨를 ‘귀염둥이’라고 부르며 친동생처럼 아끼게 됐다.단 한번이지만 만남의 깊이는 횟수로 재단할 수없는 것이었다. 김씨는 서울에 오자마자 이들을 찾으려 했지만 연락처를 두고와 막막했다.이런 사정은 두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혹시 했으면서도 원칙적으로 대회장통제가 이뤄지는 탓에 김씨를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들의 만남은 지난 15일 김씨가 대한매일 기자에게 “꼭 찾아서 만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면서 이뤄졌다.장 교수와 이 교수는 수소문끝에 연락을 받자마자 댓바람에 달려왔다. 김씨는 북에서 촉망받는 젊은 작가다.이번 민족통일대회에서 ‘향촌의 아침’과 ‘뭇새도 자유로이 날건만’ 두 작품을 전시했다.이 교수와 장 교수 역시 우리 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같은 화가들이다.두 시간여의 만남은 이들에게는 너무 짧았다.공식 행사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김씨는 “헤어지는 아쉬움은 많지만 서울까지 와서 뵙지 못하고 갈 뻔했는데 정말 기쁘다.”면서 “어서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8.15 민족통일대회/ 행사 취재 뒷얘기/“北대표단 大選 질문 공세”

    지난 14일부터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는 분단 이후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남북한 민간차원의 행사라는 의미에 걸맞게 숱한 화제를 낳았다. *북측 기자들의 소회- 이번 대회에 동행한 북측 기자 14명은 남측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 경쟁을 지켜보며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섞인 반응을 보였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의 김지영(36)기자는 15일 사진전 개막식 때 갑자기 남측 취재진이 몰려들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지 기자들 취재하라고 마련된 자리는 아니지 않으냐.”면서 “남측 기자들은 규율성이 너무 없다.”고 꼬집었다. 북한 일간지의 한 기자는 지난 14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 의장이 선친인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는 문제로 북측 대표단과 보도진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자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며 남측 기자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노동신문의 엄일규 기자는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통일을 이루려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남측기자들도 통일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막식 축사를 낭독한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를 가리키며 “저 양반 연설 참 잘한다.”고 관심을 보였으며,남측 기자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지자 “취재하러 왔다가 취재만 당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 기자는 “우리를 반길 것으로 믿었던 서울 시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남한 사정에 밝은 북측 대표단- 행사 기간 동안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극도로 말을 아꼈던 북측 대표단이 정작 각종 행사 참석을 위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고속 소속 버스 운전사 장용길(54)씨는 16일 “북측 대표단이 최근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인기가 오르고 있는 정몽준씨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 등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고 전했다.이들은 이동중에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주변을 지날 때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유례를 설명하고 새로 지은 한강다리의 이름도 척척 얘기하는 등 남측 안내원들을 머쓱하게 했다고 한다. 운전사 장씨는 “간부급들은 서울 토박이보다 서울을 더 잘 아는 것 같다.”면서 “북측 대표들의 인사성 바르고 예의바른 모습은 남한 젊은이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 첫날 점심식사로 쇠고기가 나오자 불교계 대표단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일부 다른 대표단은 “통일을 위해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농담을 건넸다. *눈길 끈 북측 예술단원- 20∼30대 배우들로 이뤄진 북측 예술단원들은 빼어난 미모와 단아한 차림으로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다.이들은 간단한 화장품과 손수건,‘자주통일’,‘민족자주’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한반도기 등이 들어 있는 작은 손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남측 기자들이 “일정이 빡빡한데 몸은 괜찮으냐.”고 묻자 한결같이 “일 없습네다.(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또 “한복을 입으니 곱다.”고 말을 건네자 “무용할 때가 더 고우니 사진도 많이 찍어달라.”며 받아 넘겼다. 행사 이틀째부터는 쏟아지는 질문에 익숙해진 듯 “남한에는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빨리 좋은 가정을 꾸리셔야죠.”라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달걀 할머니- 민족통일대회 본 행사가 시작된 15일 90도 가까이 허리가 굽은 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두리번거리며 호텔 로비와 지하1층 등을 돌아다녀 눈길을 끌었다. 강동구 천호동에 사는 박모(73)할머니는 “북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 왔다.”며 기자에게 북측 대표단의 동정을 물었다.박 할머니는 “배고프면 먹으려고 달걀까지 몇알 삶아 왔다.”면서 “북한 사람들에게도 달걀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박 할머니는 “북한 사람들이 무서웠던 적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민족’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면서 “통일이 돼 북한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다. 구혜영 박지연기자 koohy@
  • 8.15 민족통일대회/ 北미술품 분단후 첫 ‘서울나들이’, 워커힐호텔서 107점 전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쪽 땅에서 북한의 미술작품들이 대거 전시되며 문화예술 교류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 15일부터 이틀동안 서울 워커힐호텔 무궁화볼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조선화 62점,유화 12점 등 모두 107점이 선보였다.이중 국보급 작품이 20점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80년대 이후 작품까지 대거 소개돼 북한 미술계의최근 경향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대부분 작품들은 정치색을 띠지 않으면서도 북한사람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남북이 미술뿐 아니라 서로의 정서,실생활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단연 ‘국보급’으로 평가받는 정영만 화백의 ‘강선의 저녁노을’이 전시돼 주목을 끌었다.인민예술가 정 화백이 그린 이 작품은 대동강변에 있는 강선제강소에 저녁 노을이 지는 모습을 수채화풍으로 아름답게 그렸다. 지난 99년 숨진 정 화백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화창작단단장을 지냈다. 공훈예술가 최상건은 평양미대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되어있는 원로 미술가다.그의 작품인 ‘금강산귀면암’은 ‘총석정’ 등과 함께 그가 천착하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힘이 넘치게 그리며 사람의 감성을 묘하게 휘어잡는 마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 천진난만한 북한 아이들이 서로 키를 재고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슬그머니 웃음짓게 만드는 정현웅 화백의 ‘누구 키가 더 큰가’라는 작품과 인민예술가 김성민의 ‘칼춤’ 등 남측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됐다. 박록삼기자
  • 8·15 민족통일대회 정겨운 만남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이 열린 15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는 분단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한 남북측 인사들의 정겨운 만남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개막식 행사장인 이 호텔 제이드가든에서는 북한의 허혁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부위원장과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의 딸 윤영(19·성공회대 사회과학부 2년)양의 짧은 만남이 있었다. 윤영양은 지난 2월 ‘새해맞이 남북공동행사’ 참석을 위해 금강산에 갔을때 허 부위원장을 처음 만났다.허 부위원장이 남북측 민화협 실무자 모임이있었던 1월 최 사무총장으로부터 딸 얘기를 전해듣고 윤영양을 초청했던 것.이번 행사에도 허 부위원장은 잊지 않고 초청장을 보냈다. 오전 10시30분쯤 북측 대표단이 행사장에 들어오자 윤영양은 환하게 웃으며 허 부위원장에게 다가가 “다시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고,허 부위원장도 금방 최양을 알아 보고 환하게 웃었다. 허 부위원장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 돼라.”고 덕담을 건넸다.그러자 윤영양은 “향기가 아주 좋고 머리를 맑게 하는 차를 준비했다.”며 녹차꾸러미를 전했다.선물을 받아든 허 부위원장은 “고맙다.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고 화답했다. 윤영양은 “좋은 인연에 보답하기 위해 통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이날 남북합동예술공연 도중 북측공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조국통일’ 구호를 외칠 때 지난 89년 방북했던 ‘통일의 꽃’ 임수경씨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 의장에게 아들 최재형(6)군을 소개했다. 임씨를 알아본 여 의장은 “수경이 아들이구나.”라며 최군을 안아들고 볼을 부비는 등 반갑게 맞았다. 남측 대표단의 전국연합 오종렬(64) 의장은 사진전이 열린 무궁화볼룸 앞에서 북측 대표단의 박영희(가명·대외업무 담당)씨를 기다렸다. 박씨는 지난해 5월 북한 노동당 창립기념일 행사 당시 남측 참관단으로 오의장과 함께 방북한 고(故) 이옥순 전국연합 연대사업국장을 도와준 인연으로 오 의장과 친해졌다.당시 폐암으로 고생하던 이 국장은 서울로 돌아온 이후 숨을 거뒀다.오 의장은 “박 선생이 평양 봉화초대소에 머물렀던 이 국장의 허리와 허벅지를 주물러주며 ‘나의 살던 고향’을 불러주는 등 6박7일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이 국장 옆을 지켰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측 방북단이 일정을 마치고 떠날 때 박씨는 이 국장의 손을 꼭 쥐고 “반드시 몸이 나아 아들,딸 훌륭하게 키워야지요.”라고 작별인사를 나눴다는 것이다.오 의장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면서 “어제 공항에서 박 선생을 봤을 때 이 국장이 살아 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날은 서로 일정이 달라 만나지 못했다. 북한의 여성 사상교양단체인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이영희(46) 부위원장은 이날 오찬 장소인 가야금홀에서 지난 6월15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여성단체들의 모임에 참가한 남측 대표들을 찾았다. 이 부위원장은 “우리 남북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통일의 반은 이루어진 것 같았다.”며 당시의 감격을 되살렸다. 이 부위원장은 다음달 남북 여성들 400명이 금강산에서 만나 가슴을 터놓고 한반도여성들의 현실을 얘기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구혜영 유영규 이세영기자 koohy@
  • 조총련학생 분단후 첫 한국에

    북한 국적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후쿠오카(福岡) 조선초급학교학생과 인솔교사 등 17명이 광복절인 15일 낮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했다. 조총련 소속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는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방한은 경남 양산시 영산대학교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문화원(원장 임재춘)이 주관하는 ‘제6회 한·조·일 청소년 자연체험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이뤄졌다.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조총련측에서 17명(학생11명,인솔교사 2명,고문단 4명),일본 29명,한국 50명이 각각 참여한다. 자연체험캠프는 오는 22일까지 부산과 양산,경주 일원에서 열리며 산행과 해양체험,민속문화체험(판소리·민요배우기,장승·달집 만들기),전통무예 택견배우기 등으로 진행된다. 영산대 정성환 홍보팀장은 “조총련 학생들이 처음으로 한국체험을 하는 역사적인 이 행사가 단순한 문화체험을 넘어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화해와 우호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후쿠오카 조선초급학교 6학년 문탁연(12)군은 “한국에 처음 와 무척 기쁘다.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체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8.15 민족통일대회/ 성숙해진 한총련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회)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북측 민간대표단 116명이 서울을 찾아 ‘2002 8·15 민족통일대회’를 갖고 있는 가운데 ‘폭력,친북’ 이미지의 한총련이 우려와 달리 평화적인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 14∼15일 건국대에서 ‘8·15대회 축하한마당’행사를 가진 한총련 학생과 범민련 남측본부 1만 5000여명은 집회와 함께 거리 행진 등을 가졌다.한총련의 통일대회 참가를 불허했던 정부가 잔뜩 긴장하며 행사장 주변에 경찰력을 동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게다가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보수단체들도 한총련 학생들이 친북적인 행동이나 비슷한 조짐을 보이면 실력저지에 나서겠다면서 건국대 주변에 상당수가 모이기도 했다.하지만 이날 행사에 반미(反美)의 내용이 담긴 구호와 노래 등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화염병과 각목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단지 분단 이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민간통일행사를 축하하며 불꽃놀이와 대동놀이로 흥겹고 즐거운 자리를 가졌을 뿐 꼬투리를 잡힐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성숙된 자세를 보였다. 오히려 15일 새벽 3시쯤 전야제가 끝난 뒤 어질러진 건국대 대운동장과 교문앞까지 스스로 청소에 나서 지나는 시민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한총련 관계자는 “현재 남북간 분위기가 6·15회담때만큼이나 최고조로 오르고 있는 만큼 평화적 행사 진행은 물론 행동과 말투를 더욱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유영규기자 youngtan@
  • [시론] 쌀과 철도연결의 함수 풀이

    합의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며 시작된 이번 제7차 장관급회담은 궤도에서 이탈했던 철도차량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이번 회담의 성격은 분명했다.우리는 합의했던 대로 경의선 철도를 연결시키자는 것이었고,북한은 경제협력차원에서 30만t 이상의 쌀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철도연결로 북한을 개방과 교류로 이끌겠다는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창과 쌀을 받아 폐쇄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김정일(金正日)의방패가 다시 한번 힘겹게 맞부딪치는 현장이었다. 특히 정부가 김 대통령 임기내에 남북한 철도연결을 성사시키는 것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햇볕정책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것이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업적의 하나였다.결국 개방과 폐쇄를 가름하는 분수령이었던 경의선 철도연결 문제는 이른 시일내에 군사회담 개최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는 합의로 일단락지었다. 임기가 몇개월 남지 않은 김대중 정부는 임기내 경의선 철도연결을 위해 그동안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경의선 연결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그해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되었던 것이고 곧이은 남북 국방장관회담과 후속 회담에서 연결공사와 관련된 군사보장합의서까지 작성된 바 있었다. 그에 따라 정부는 ‘철의 실크로드’로 이름붙이며 성대한 경의선 연결 기공식으로 그 시작을 알린 바 있었지만 그뒤 북한측의 진전이 없자 지난해 9월 제5차 장관급회담에서 ‘이른 시일내 개통’을 다시 합의했다.그래도 안되자 지난 4월 임동원(林東源)특사를 다시 보내 ‘빨리 연결’하자고 재차 확인하고 합의했던 것이었다. 사실 경의선 철도의 연결은 분명 역사적 의의가 있다.무엇보다 그것은 군사분계선인 비무장지대(DMZ)의 일부구간을 허무는 상징적인 조치이며 끊어져있는 두 체제를 일상적으로 연결하는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다.물자와 사람과 정보가 오고가게 될 것이다.이것은 북한 개방의 상징이며 폐쇄사회가 개방사회와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철도연결 과정은 남북한간 군사적 협력을 불가피하게 만든다.중무장지역을 통과하는 철도공사에는 군사적 안전이 보장돼야 하고 분단과 폐쇄의 상징인 철조망과 지뢰가 제거되어야 한다.그 자체가 군사적 긴장완화다.또 그 과정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전쟁상대는 미국이었고 정전협정도 미국과 맺었으며 군사와 관련한 모든 문제도 미국만 상대할 뿐이라는 기본 구도를 허물지 않으면 안된다.민족끼리 통일문제를 풀어가자고 해놓고 미국 하고만 상대하겠다는 억지를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회담과정에서 보듯 북한은 아직 체제유지와 폐쇄의 관리에 더 무게중심이 있음을 보여주었다.폐쇄를 통한 체제유지를 위해서 쌀 30만t은 필요한 것이지만 철도 및 도로연결은 굳이 추진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달 말에 열릴 예정인 경제협력추진위에서는 일단 도로 및 철도의 착공과 쌀 지원문제만을 매듭짓게 될 전망이고 철도 연결공사와 관련된 군사회담은 앞으로 추가적 반대급부가 없는 한 상당 정도 지연될 것으로 보여진다.그렇기 때문에 이미 2년전에 국방장관끼리 합의한 철도연결과 관련된 군사회담에 대해서조차 북측 대표는 주권 국가의 정부대표 자격이었는지가 의문시되는 ‘군사당국에 건의하겠다.’는 기묘한 발표를 했던 것이다. 폐쇄적 북한사회와 정전체제의 변화를 의미하는 철도연결과 관련하여 앞으로도 여러 합의는 계속될지 모르지만 남북한의 기차들이 도라산역을 오가기까지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철도연결 문제만이 다는 아니었다.그 과정에서 많은 다른 진전이 있었다.아시안게임의 참여는 물론이고 거론조차 말라던 금강산댐의 공동조사를 받아들였으며 이산가족 상봉을 제도화하는 첫발을 내딛는 등 남북한이 여러가지 공동조치를 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 8.15 민족통일대회/ “개최에 의미” 첫출발 합격점

    남북 민간단체 차원의 행사로는 분단 이후 처음 남한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첫날 일정이 15일 비교적 큰 탈 없이 치러졌다. 이번 행사가 민간단체끼리의 행사란 점에서 특별한 ‘성과’보다는 행사 개최 자체에 더 의미를 둔다고 할 때,첫 출발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이는 행사를 추진한 남측 대표단 등 진보세력이 6·29 서해교전 이후 악화된 대북 여론을 의식해 신중한 행보를 한 때문으로 풀이된다.이날 한총련 등 대학생들의 행사장 주변 시위도 없었다. 그러나 북측의 일방적인 체제 선전성 자세와 이에 철저히 대처하지 못한 우리 대표단의 엉성한 준비로 행사에 차질을 빚은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이날 오후 전시회에서 북측은 김일성 주석과 북한체제를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사진 및 사진설명을 게시하려다가 우리측 대표단의 완강한 제지를 받는등 승강이가 벌어졌다. 우리측 대표단은 지난 7월 준비접촉 때 북측과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결론을 내지 못한 채 행사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개막식 때 공동호소문을 채택,낭독했던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북측이 우리와의 사전 협의를 어기고 자신들이 주장했던 ‘금강산에서 9월7∼8일 청년학생통일대회 개최’ 문구를 낭독,일방적으로 날짜를 명시한 것은 호소문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호소문 낭독 후 우리측이 즉각 항의함에 따라 이 일정이 지켜질 가능성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북측에 비해 남측이 청년학생통일대회의 날짜를 명시하길 꺼린 것은,무엇보다 한총련 등의 방북이 남한의 대북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측은 16일 학술토론회를 갖고 독도 문제와 관련한 사상 첫 남북 공동호소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북측의 공식 입장이 주목된다.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면서 ‘조선영토’란 점을 강조해왔다. 김상연기자 carlos@
  • 문화광장/ 연극

    ◇한 여름 밤의 꿈 = 9월1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토 오후 4시30분·7시30분,일 오후4시30분(월 쉼)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02)762-0810.셰익스피어 작,양정웅 연출.농악대들의 흥겨운 장단과 도깨비들의 출연 등 한국적 양식으로 변형.밀양공연예술축제 대상 수상작.극단 여행자. ◇개그 콘서트 = 31일까지 평일 오후 3시·4시30분·6시·7시30분,토·일 오후 1시·2시30분·4시·5시30분·7시·8시30분 코미디아트홀(02)745-6646.KBS ‘개그콘서트’출연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벌이는 한바탕 폭소.극단 연극세상. ◇ 파스 페스티벌= 18일까지 오후 3시·7시30분 국립극장 하늘극장 1588-1555.과장된 표현,엉터리 소동,노골적 농담,황당무계함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의 서민 풍자극 5편을 야외무대에 올림.극단 수레무대. ◇혜화동 파출소2-죽은자를 위한 기도= 9월1일까지 화∼목 오후7시30분,금∼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리듬공간 소극장(02)744-8617.김은숙 작,윤영선연출.죽은 자를 재판하는 파출소의 풍경을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봄.극단 얼·아리. ◇사랑을 주세요 = 9월15일까지 화∼목 오후7시30분,금∼일 오후 4시·7시30분(월 쉼)창조콘서트홀(02)747-7001.닐 사이먼 작,김순영 연출.아내를 잃은데다 빚까지 져 돈을 벌러 떠난 동생의 아이들을 키우는 지체장애인의 사랑.극단 미연.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 = 31일까지 화∼토 오후 4시30분·7시30분,일 오후4시30분(월 쉼)소극장 오늘한강마녀(032)349-6784.공동창작.유창수 연출.타국에서 해방을 맞이한 종군위안부 세 여인의 귀향기.극단 한강. ◇내사랑 DMZ= 25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토 오후 4시30분·7시30분,일 오후 3시·6시(월 쉼)극장 아룽구지(02)745-3967.오태석 작·연출.DMZ를 지키고자 하는 동물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돌아보는 가족극.극단 목화. ◇내 안에 누군가 있다= 9월8일까지 평일 오후7시30분,토·일 오후 4시·7시(월 쉼)대학로 인간소극장(02)742-9966.유록식 작,남궁연 연출.오토바이를 타고 드럼을 즐기는 ‘괴짜’스님의 색다른 포교.극단 예군.
  • 문화광장/ 미술

    ◇남북의 길-국도 1호선= 20일까지 공평아트센터(02)733-5912.그룹 새벽의 창립 12년 기념전.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을 통해 분단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표현한 설치,회화,영상물. ◇익숙한 것들에 대한 추상= 28일까지 목금토갤러리(02)764-0700.양동이 함지박 물주전자 등 생활 용기들을 오브제로 이용한 금속공예작품. ◇윤승희 개인전= 26일까지 갤러리피쉬(02)730-3280.인간의 영혼을 커다란 꽃으로 상징해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표현. ◇한정원전= 21일까지 백악예원(02)734-4205.지난 99년 돌아본 울릉도의 쪽빛 바다와 절벽들을 실경 산수화로 재현.
  • [이경형 칼럼] 다시 광복절을 생각한다

    광복 57주년,대한민국 수립 54주년의 아침이다.광복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먼 것 같다.선열들의 광복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원인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우리 안에 있다.이것이 큰 문제이며,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지난 세기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어 미군정을 거쳐 건국을 이뤘지만 동족상잔으로 엄청난 분단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독재정권과 냉전의 유산으로 고통도 받았다.이제 우리는 21세기 새로운 민족 진운(進運)을 개척하려는 출발선에 서있다.그런데 현 상황은 어떤가. 오늘 서울에서는 8·15 남북 민족통일대회가 남남 갈등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다.행사를 주최하는 진보단체들과 ‘행사 반대’를 천명한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 서로 감시의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어제는 9개월만에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박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이달부터 있을 각종 후속 회담이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마련할 것으로기대되지만,과거처럼 면피용 이벤트식 후속회담만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라 안 사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두고 정치권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싸고 정략적인 공방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차기 정권이 담당해야 할 국가적 의제에 관해 논쟁을 할 때다.아니면 적어도 대통령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하거나,차기 정권이 결정되기 전에 부패의 소지를 없애고 권력의 집중을 막는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어느 한 구석에도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하다.8·8 재보선 이후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은 병역비리 의혹방어에 매달려 있고,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싸고 ‘친노(親盧)반노(反盧)’하며 4분5열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임기말의 현 정부는 행정부처를 장악하기도 힘들어 하고,공직기강 해이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문제만이라도 어느 정도 마무리지어 차기 정부에 물려주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워할 뿐이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과거 식민지 망령의 일본도 아니고,해방 후 군정을 했던 미국도 아니다.남한과 늘 대치해온 북한 때문도 물론 아니다.그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그것도 이 나라를 움직여 온지도층에 있다. 불과 한달반전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와 광장에 넘친 함성이 보여준 비전과 자긍심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태극기 물결과‘대∼한민국’을 외치는 감흥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는다.그렇다면 ‘붉은악마’들의 에너지는 소멸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이 나라 지도층의 무능과 도덕성 결핍,역사관의 부재가 그 에너지의 불을 꺼뜨려 버렸기 때문이다.지도층 중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실종,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되고있는 한심한 안목이 그 에너지를 식게한 것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는 또 있다.역사의 정직성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진정한 친일청산을외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반향은 미미하다.친일의 청산도 후손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찾아 내일의 거울로 삼자는 것이다.“과거에 눈을 감으면 현재의 장님이 된다.”(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충고다. 광복절 아침, 우리 사회를 이끌고,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지도층 인사들은 선열들 앞에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내일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이경형 논설위원실장 khlee@
  • “화해·통일 밑거름” 8·15통일대회 개막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남북이 모두 참여하는 ‘2002 8·15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북측 대표단(단장 김영대 민화협회장) 116명은 14일 오전 고려항공편으로서 해직항로를 이용해 입국,‘2002 민족공동행사 남측추진본부’ 대표영접단40여명의 환대를 받은 뒤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로 이동해 8·15행사 공식일정에 들어갔다. 남북 참가단 540여명과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표,이창복(李昌馥) 민주당 의원 등 초청인사 50여명은 저녁 워커힐호텔에서 개막 사전행사로 남측의 환영공연과 남북공동 만찬 행사를 가졌다.이에 앞서 북측 대표단은 인천공항 도착성명을 통해 “이번 서울 방문을 통하여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조국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몽양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셋째딸 여원구 조국통일민주전선 의장은 이날 오후 7시쯤 서울 우이동 부친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남북은 15일 개막식에서 ‘민간 교류 활성화가 화해와 통일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공동호소문을 통해 재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남남(南南) 갈등’을 우려해 이번 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날 건국대에 모여서 ‘8·15대회 성사 축하한마당’을 가졌으며 북측은 서울 행사와는 별도로 평양에서 8·15민족통일대회를 진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시론] 8·15 민족대회에 담는 소망

    8·15 민족통일 대회가 2001년 평양대회에 이어 2002년 서울대회로 열리게 되었다.6·15 선언 후라 해도 서해교전 직후에는 감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민족대회가 가지는 의미는 우발적이건 그렇지 않건 일단 일어난 충돌사건을 전에 없었던 유감표명으로 풀어냄으로써 성립하게 된 민족대회라는 점에 있다. 휴전조약 후 남북사이에 많은 충돌이 있었으나 솔직한 유감표명으로 문제를 풀어간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다시는 그 같은 충돌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앞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또다시 어떤 일시적 장애요인이 생긴다 해도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쉽게 풀어 가는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민족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 가는 것은 물론 정상회담·장관급회담 등 정부차원 회담이다.그러나 그것들이 가능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남북민간에 의한 통일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번에는 장관급회담과 민간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지만,앞으로는 설령 정부 차원의 접촉이나 회담이 어렵게 된경우라 해도 민간 차원통일운동이 그 실마리를 열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민족통일대회는 지난해 평양대회와 함께 남북의 많은 민간인이 접촉한다는 점에,그리고 특히 남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6·15 공동선언 후 남북 사이의 인적교류가 크게 활성화한 것은 사실이다.평양의 보통강여관에서 자고 아침 먹으려 식당에 가면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모를 정도로 남쪽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란다.그러나 6·15 공동선언 후 급증한 남북 사이의 인적교류,특히 민간교류는 주로 남쪽 사람이 북에 가는 교류에 한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민족대회가 북쪽 사람이 남쪽에 오는 인적교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100명의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오고,앞으로 남북축구대회 및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많은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오게 되었다.특히 아시아경기대회에 응원단이 온다니 북쪽 사람이 남쪽에오는 인적교류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말이 같고 풍습이 같은 동족이지만,남북 사이에는 분단 이후 오랫동안인간적인 진솔한 접촉이 거의 없었으며,그 때문에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겉치레가 앞서게 된다.그러나 몇 번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서의 인간적 신뢰가 쉽게 생기고,동년배면 술자리라도 만들고 말을 놓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체제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을 한 꺼풀만 넘어서면 그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 있고 동족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민족대회는 100명의 북쪽 민간인이 남쪽에 와서 동족으로서의 인간적 교류를 가진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짧은 기간이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 다만 인간으로서의 교류,동포로서의 교류만이 이루어지고,100명의 교류가 앞으로 1000명,1만명,나아가서 7000만의 교류로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경의선과 동해선이 이어지고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열려서 휴전선이 군사대결선이 아닌 이름뿐인 경계선이 되어,남쪽 초·중·고·대학생들이 수학여행 가서 저 웅대하고 화려한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고,북쪽 학생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신라·백제 유적을 보러 수학여행 오는 데까지 남북관계가 진전되기바란다. 남북을 막론하고 그 기성세대는 민족사의 내일을 짊어질 2세 젊은이들에게 조상들이 남겨놓은 값진 문화유산을 고루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어떤 이유로도 거역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엄숙한 민족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이번 8·15 민족대회가 그 책임을 완수하는 데까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
  • 월드컵·붉은악마 서울브랜드 개발한다

    ‘서울 브랜드’가 개발된다. 월드컵을 계기로 서울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서울시가 ‘서울 사랑’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서울시는 13일 “월드컵을 통한 서울의 이미지 제고를 이용해 서울 브랜드를 개발,서울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대대적 마케팅 전략에 나서는 한편 시민통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월드컵연구단이 월드컵기간인 지난 6월14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9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월드컵 이전 72%에서 월드컵 이후 86%로 크게 개선된 반면 부정적 이미지는 28%에서 14%로 줄었다. 서울은 또 월드컵 이전 올림픽(74.2%)과 분단·전쟁(12.5%)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월드컵 이후 월드컵(30.4%),붉은악마(36.7%)의 도시로 바뀌었다. ‘혼잡하고 오염된 도시’라는 인식은 월드컵 이전 17.8%에서 월드컵 이후11.5%로 크게 줄었다.‘한국의 수도’라는 단순한 이미지가 48.4%에서 37.4%로 줄어든 반면‘급성장,번영의 도시’라는 답변은 20.4%에서 35.1%로 늘었다. 도시의 쾌적성에 대해서는 ‘깨끗한 거리’를 꼽은 경우가 10.4%에서 29.3%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혼잡과 과밀 문제를 꼽은 답변이 31.3%나 됐고 교통체증과 과속은 월드컵 이전 5.0%에서 6.5%로 오히려 늘어나는 등 한계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시는 ‘I♥ NY’(뉴욕),‘YES!Tokyo’(도쿄) 등 해외 도시들의 브랜딩 전략 성공 사례들을 벤치마킹,내외국인들을 상대로 ‘Start in Seoul!’(서울에서 시작하세요!)같은 캠페인 슬로건이나 CI를 오는 1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공모하기로 했다. 채택된 CI나 슬로건은 서울 브랜드로 개발해 홈페이지·홍보물·광고캠페인 등을 통해 집중홍보하는 한편 로고나 스티커·셔츠·모자·기념품 등 상품을 제작,국내외 마케팅에 적극 이용키로 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평화여정 나선 한·일대학생

    광복절을 앞두고 한·일 청년 대학생들이 어두웠던 역사의 아픔을 인식하고 공유하며 평화의 미래를 다짐하기 위한 여정을 준비,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한남대를 방문중인 일본 나고야(名古屋) 난잔(南山)대 및 오키나와(沖繩) 국제대학 학생 25명과 한남대 학생 및 임원 15명. 이들은 12일 오전 10시 한남대 대학교회에서 김모(86)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명의 역사적 증언을 들은 뒤 ‘역사의 아픔을 인식하고 평화의 미래로 내달리자.’라는 주제의 세미나로 여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앞으로세계 최초의 성노예 테마 인권박물관인 경기도 퇴촌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하고,10여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 ‘나눔의 집’에서 1박2일 동안 봉사활동을 펼치고 선물과 성금도 전달할 예정이다. 이어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판문점을 방문해 한반도 분단의 책임있는 당사자인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 교육을 촉구하고 냉전체제 종식 및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갖게 된다.이번 여정에 참가한 오키나와 국제대학 사회학과 4학년 야마모토 게이코는 “세미나를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행사가 긍정적인한·일 관계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편집자에게/ ‘인공기 게양’ 관용정신 필요

    -‘인공기 게양과 보안법은 별개’(대한매일 8월12일자 6면 사설)를 읽고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의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입장하는 모습,그리고 7000만 겨레가 흘린 감격의 눈물을 말이다.단일기와 태극기,인공기가 어우러져 펼쳐진 시드니올림픽 응원의 한마당은 50년 분단의 장벽과 민족의 한(恨)을 충분히 허물어뜨릴 수 있었다. ‘6·15남북공동선언’에 이은 이산가족 상봉,북·미 관계의 진전 등 남북의 화해 분위기속에서 시드니의 남북공동응원은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체감하게 했다. 이제 우리는 다음달 29일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벅찬 감격을 기대한다.분단 이후 처음으로 해외가 아닌 한반도에서 남북의 선수단이 두손꼭 잡고 동시에 입장하는 감동의 파노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이는 남북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아시안게임이 단순한 운동경기만이 아닌 민족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데 굳이 50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잣대를 들이밀어 인공기의 게양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며 민족의 하나되는 길을 가로막을 필요가 있을까. 국가보안법을 앞세운다면 인공기의 게양과 북한 국가 연주,북한선수단 응원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나아가 북한의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는 불가능하다.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정부가 북한을 초대했다면 그에 맞는 정당한 활동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또 손님을 맞이하는 우리 국민들이 다른 나라의선수단에게처럼 북한 선수단에게 보내는 응원을 제한해서도 안된다. 만약 국가보안법이 이를 막는다면 이참에 세계평화와 민족의 통일과 화합·번영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남기문 서울 용산청년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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