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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SA는 어떤 곳 / DMZ내 공동경비구역 한국군 현재 ‘을’구 경비

    이르면 내년 후반 우리측에 경비책임이 완전히 넘어오게 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현장이다.행정구역상으론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에 속하며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MDL)상 직경 800m의 타원 형태 구역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총 1076차례의 정전회담이 열렸고,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유엔사와 북한군측이 합의해 남쪽으로 1㎞ 떨어진 곳에 JSA를 만들었다.1976년 8월18일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자르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이른바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어귀의 교동도에서부터 개성 남쪽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김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까지 약 155마일(248㎞)에 이른다.군사분계선의 경계 업무는 현재 대부분 한국군이 맡고 있지만 JSA를 통과하는 1.6㎞만은 예외다.경비구역 가운데 JSA 직후방의 ‘을’구는 이미 90년대 초 한국군에 넘겨졌고 이번에는 JSA 지역인 ‘갑’구까지 이양이 논의된 것이다.미군의 경우캠프보니파스에 소속된 50여명이 JSA 경비를 맡고 있어,한국군으로 대체될 경우 캠프보니파스가 그대로 존재할지,아래쪽 캠프그리피스 부대로 통합될지는 미지수다. JSA에 근무하는 미군들의 경우 수는 적지만 의정부·동두천 지역의 제2사단 미군과 함께 돌발상황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으로 간주돼 왔기 때문에 미측은 가급적 빨리 JSA 경비책임 문제를 넘기려는 입장이었던 반면,우리측은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가중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쪽이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열린세상]北 벗어난 선택과 집중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부터 한 달 간격으로 워싱턴,도쿄,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정상외교를 전개하였다.집권 초기 산적한 국내 현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숨가쁘게 이들 3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의 미래는 이들 주변 강국들과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말이 정상외교이지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3국과의 정책 조율에 모든 역량을 소진한 회담이었다.워싱턴에서는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의 검토’,도쿄에서는 ‘다자대화 프로세스에 대한 강한 기대’를,그리고 베이징에서는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로서 건설적인 역할’ 등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리고 그 의미 해석에 따른 국내외의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핵문제는 자칫 엄청난 사태를 몰고 올 수도 있는 매우 중대하고도 민감한 사항이다.이 문제를 놓고 주변국 모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교차하고 있다.경쟁적인 주변 강국을 상대함에 있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더구나당사자인 북한이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사실도 우리 정부의 고충을 더해주고 있다.그러나 진짜 문제는 북핵문제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목표,정책과 전략,의지와 역량이 부족하고 부실하다는 데 있다.누구를 탓하고 변명하거나 우리끼리 내부 소모전을 벌이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21세기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9·11 이후 본토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은 보통국가화하는 것을 목표로 정치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15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겨룰 세계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좋건 싫건 이러한 국가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21세기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선택은 발상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무엇보다 북한문제를 통해 국제사회를 바라보던 시각부터 교정해야 한다.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는 6·15공동선언의 신화에 묻혀 국가역량을 남북관계 개선에 쏟아 부었고 민족과 통일이란 구호 속에 남남갈등으로 허송세월하였다.서독은 통일보다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에 치중하였고 구호와 상징보다는 실질적인 동독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치중하였다.통일도 민족공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통합유럽의 일원으로서 접근함으로써 평화적으로 달성하였다. 남북관계의 개선도,민족과 통일도 우리에겐 중요한 역사적 과제이다.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사회 내부와 국제사회로부터 남북문제,북한문제,통일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선택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세워야만 21세기 우리의 희망과 미래가 있다. 올바른 선택 다음은 집중이다.미·일·중 3국과의 정상회담 최대 성과는 대통령이 변화하는 주변 3국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21세기의 새로운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하였다는 것이다.미국과의 완전한 동반자 관계,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전면적 협력동반자로서의 한·중 관계는 향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가의 기본 목표이자 생존 전략이다. 지난 시기 우리는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킴으로써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딛고 고도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그러나 남북관계만 잘되면 모든 걸 망쳐도 좋다는 사고가 우리 정부의 관심과 역량을 분산시켰으며 국론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IMF는 성공적으로 극복했으나 정상회담 이후 국민소득 1만달러 고지는 몇 년째 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동굴속의 민족공조’를 접고 국제사회와의 완전한 동반자관계,새로운 파트너십,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역량과 국민의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한다.그러한 선택과 집중만이 북한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민족의 재통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유 호 열 고려대 교수 북한학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씨줄날줄] ‘평양’ 노래자랑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했을 세월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TV 프로그램이 있다.1980년도부터 매주 일요일 낮 안방을 찾아와 남녀노소를 배꼽 쥐게 만들고 있는 KBS의 ‘전국노래자랑’이다.비슷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주부가요열창’이 있었다.요리에 빗대면 ‘주부…’쪽이 알맞게 소금 간해 황백지단 갖은 양념 곱게 얹어 쪄낸 궁중식 도미찜이라면 ‘전국…’은 펄펄 튀는 생선을 아무렇게나 썰어 미나리 오이 생채 넣고 새콤한 초간장에 슥삭 버무려낸 즉석 회무침이라고나 할까.세련된 맛은 없지만 가무의 흥취와 기쁨,낭패감 등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절묘하게 잡아내 시청자까지 웃고 즐기게 만드는 ‘전국…’쪽이 장수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전국…’의 원조는 미국의 ‘공 쇼’(Gong Show,gong은 접시 모양의 종)라 한다.신인 가수 발굴용으로 기획했다가 예선 도전자들의 형편없는 노래실력에 낙담한 제작자가 머리를 싸맨 끝에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었다.이른바 음치들의 노래 자랑.출연자들이 나름대로 흥취가절정에 이른 순간 ‘댕’하고 종을 쳐 ‘퇴출’을 알리는 방식이 이때 나왔다.‘댕’과 ‘딩동댕’ 포맷은 일본 NHK방송 프로그램 ‘노도지만’도 똑같아 ‘전국…’은 일본프로를 베꼈다는 구설수에 말리기도 했다.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감성에 동서(東西)가 따로 있을까.‘뉴스쇼’처럼 ‘전국…’은 보편성을 지닌 인류공통의 양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여기에 각 나라마다 민족 고유의 정서와 음감이 담기면 민족 고유의 프로그램이 되는 것일 터이다. 그 ‘전국노래자랑’이 광복절을 기해 ‘평양편’을 제작 방송한다고 한다.사회자 송해와 함께 초대 가수 송대관 주현미가 함께 가기로 정해졌으나 제작 포맷은 아직 못 정한 모양이다.그러나 ‘댕’과 ‘딩동댕’이 없는 게 어찌 ‘전국노래자랑’이라고 할 수 있으랴.흥겨운 트로트와 빠른 템포의 곡,노래 실력보다는 춤과 제스처,‘댕’과 ‘딩동댕’소리 뒤의 극적인 표정 변화들이 ‘전국노래자랑’의 필수 요소다. 보통사람들은 ‘전국노래자랑’을 보며 보편적인 민족 정서를 확인한다.‘평양’노래자랑에서도 분단을 뛰어넘는 민족 동질성을 느껴보고 싶다. 신연숙 논설위원
  • [열린세상] 재특검법 ‘일사부재리’ 위배

    국회는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법사위 통과 때처럼 민주당의원들이 반대,퇴장한 가운데 대북송금 재특검법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이번 재특검법은 우선 수사대상을 과거보다 확대하거나 중복 규정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재특검법의 수사대상은 ‘대북송금 및 그와 관련된 150억원 사건을 포함한 관련 비리의혹사건,북한의 핵 고폭실험 인지 이후에 제공된 남북협력기금,현대를 통한 대북현금제공 의혹,청와대 등의 비리사건’ 등이다.이로 인해 수사대상이 1차 특검과 중복되면서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헌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의 침해라는 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있다.더구나 이번 재특검에 단서를 제공한 북한의 핵 고폭실험 완료를 한·미양국정부가 검증할 수 없다고 밝힌 마당에 수사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수사기간 연장도 종전에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재특검법은 보고만으로 가능케 해 특검을 국회 정쟁속에 휘말리게 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그리고 지난 특검법에서 위헌요소로 지적되었던 수사완료 전 중간수사결과 발표 조항도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되었다.경제와 민생법안 등 국정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외면하고,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할 대북송금 특검법을 무엇이 급해서 강행처리하였는지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14일 김대중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월26일 노무현 대통령은 문제조항을 개정해줄 것이라는 야당의 정치적 신의만을 믿고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법을 수용했다.그 이후 문제조항의 개정은 고사하고,특검은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이익 및 대외관계발전이라는 양자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물론 70일 동안의 특검수사는 자금조성의 경위와 사용처까지 밝혀내 국민의 알권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그러나 대북송금이 절차상 정당성이 결여됐고,국민적 의견수렴이 많이 부족했다는 이유만으로 소모적 남남갈등을 겪은 결과 정상회담에 관여한 자를 모두 범죄시하는 등 국가적 에너지를 크게 소진시킨 측면도 있다.이로 인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약속했던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는 현재 크게 폄하됐고 실종위기에 놓여 있다.이러한 과정에서 야당은 정상회담 시의 정경유착,북측의 핵폭탄 제조에 남측의 현금이 사용됐을 가능성,그리고 국민의 의견수렴과정 미흡이라는 이유로 재특검법을 제안했다. 그러므로 정상회담과 관련된 대북송금에서 절차상 정당성의 하자는 국회에서 국정감사나 정치력으로 해결하고,정상회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소위 ‘150억원’은 개인비리차원에서 일반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고 처리해야 할 뿐,더 이상의 재특검은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헌법상 평화적 책무를 진 대통령으로서 평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내렸던 정상회담과 그 일련의 정치적 결단은 어떠한 대가를 지불했더라도 공공성을 지니면서 국가의 기본적 대외정책의 정치적 결정행위(헌법 제73조)로 보아야 하며,좁은 사법적 잣대로 재단해서는 아니된다.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신뢰성이 담보된 6·15합의는 그 이후 남북교류에서 어려운 고비마다매듭을 푸는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재특검법 자체의 위헌성 그리고 6·15의 역사적 성과를 폄하할 가능성 그리고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의 관점에서 특검수사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며,재특검법을 거부하는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국민의 알권리도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해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어느 정도 제한이 가능하며,무제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또 제1차 특검이 내세우는 절차적 정당성의 기준인 현행 냉전적 실정법도 분단현실을 돌파하려는 시대정신과 대통령의 헌법상 평화통일책무에 맞게 이제 개정되어야 한다. 이 장 희 한국외대 법대 학장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 신세대 ‘남남북녀’ 사랑이야기/MBC 특집극 ‘新견우직녀’

    MBC가 정전 50주년 특집극으로 18일 오후 9시55분 방송하는 ‘2003 신(新)견우직녀’(극본 홍진아 홍자람,연출 최이섭)는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원과 이를 취재하는 남한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신세대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이연정(최강희)은 좋은 출신 성분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다니는 엘리트.겉으론 수줍음 많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응원단 선발 면접에서 고위 당간부의 부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만큼 당찬 면모를 지닌 외유내강형이다. 프리랜서 기자 신태영(류수영)은 특종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린다.일이든 사랑이든 거침이 없는,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다.그에게 분단현실이나 이산가족,통일은 관심 밖이다. 남북한의 젊은 세대를 유형화한 듯한 두 주인공은 첫 만남부터 사사건건 부딪친다.하지만 연정의 펜던트와 일기장을 태영이 우연히 보는 것을 계기로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70년대 동경에 유학한 남한 남자를 찾아주실 수 있습네까?” 연정은 마침내 남한에 온 진짜 이유를 털어놓는다.어머니는동경유학 시절 만났던 남한 남자가 연정의 친아버지임을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털어놓았다. 연정의 부모는 그들 앞에 놓인 운명에 저항 한번 못하고 서로를 포기해야 했다.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는 딸에게 그때 북한 여자를 만난다는 두려움 때문에 약속을 못 지켰다고 참회한다.하지만 부모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연정과 태영은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최이섭 프로듀서는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남북의 청춘남녀가 겪는 힘겨운 사랑을 통하여 분단 문제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조화유의 소설 ‘다대포에서 생긴 일’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다대포항에 정박한 만경봉호와 미국 유명스포츠업체의 로고가 찍힌 흰색 모자 차림의 응원단 모습 등 당시 전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은 낯익은 장면을 충실하게 재현해냈다.남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묻는 태영의 질문에 ‘손전화’라고 말했던 연정이 휴대전화를 몰래 건네받아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이순녀기자 coral@
  • [씨줄날줄] 교황의 당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 성염 바티칸 주재 한국대사의 신임장을 제정받으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 명심해야 할 중요한 몇가지를 당부했다고 외신은 전한다.교황은 무엇보다 먼저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북핵 문제가 진척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특히 북핵 문제는 “확실하고 균형잡힌 방식으로 핵무기를 점차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그 해결방안까지 제시했다.그렇다면 교황은 지금 당사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방법들은 ‘확실하고 균형잡힌 방법’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북핵 문제와 관련된 당사국들은 바로 이 점에 귀 기울이고 냉철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의 분단이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조성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마주하려는 공고한 의지가 있어 희망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는 교황의 낙관적인 진단은 우리에게 분명 희망을 준다.교황은 그 희망의 표지들을 인내롭고 과감하고 항구하며 사려깊게 진작시켜 나가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남북 대화는 끊어질 둣하면서도 계속되고 이산가족들의 상봉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우리 민족의 의지와 만남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실천인지를 깨닫게 한다.교황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남북한의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화해·협력이 남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 전체의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교황은 남북한의 평화를 향한 노력과 시도라면 자신의 북한방문은 물론 모든 성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고 한다. 1984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방한했던 교황의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성 대사가 한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자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하겠다.”고 한 답변에서도 그 애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그런 관심과 애정으로 교황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생명 문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즉 낙태와 산아제한,사형제도의 존속이 그 것이다.깊이 새겨야 할 교황의 당부다. 최홍운 수석논설위원
  • 뉴스 플러스 / 현대 “北과 1000명 경의선 방북 합의”

    현대아산은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가칭)준공식을 8월에 갖되,준공식에 참석하는 남측의 선수·참관단 1000명이 경의선 임시도로를 통해 오가기로 북한측과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선수단과 민간인 1000명이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어서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 [열린세상] 국적에 관한 인식전환 시급

    김지미의 영화 가운데 ‘명자,아끼꼬,쏘냐’가 있다.주인공 이름의 변천사이지만 이 민족,이 나라의 지난날 자화상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아끼꼬가 명자의 일본 이름이며 쏘냐는 가장 흔한 소련식 이름이다.그나마 극중 명자는 사할린의 북한 국적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지도 못한다.이 땅에 명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그리고 누구나 광복 전 외국에 나갔다면 일장기(日章旗) 사건의 또 다른 손기정이 되었을 터이다. 조선조 말엽 이래 지난 100년의 기구했던 국가 운명에 덩달아 이 민족의 국적도 춤추었다.때로는 스스로,더 많게는 국가 권력의 강제로,하와이에 그리고 러시아령 연해주에,또는 만주와 일본에 보내졌고 끝내 거기에 주저앉아 국적 또한 제각기 달라졌다.남쪽이든 북쪽이든 그동안 이 땅에 머문 사람마저도 지금 예순살 이상이면 한때 일본제국의 국적인이었던 과거를 지울 수 없다. 전쟁 끝에 광복이 되고 어렵게 이룬 국가이기에,바로 그 국가와의 법적 유대관계를 가리키는 국적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정서적 집착이 강한 것 같다.그 결과 국적문제에 관해서만은 편협한 인종민족주의나,적어도 이중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이를테면 이민은 이기적인 배신자들이 하는 선택이고,국적포기는 반민족 행위로 받아들인다.그런가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골퍼 미셸 위는 국적에 관계없이 이 나라의 딸 ‘장영주’,‘위성미’로 끝없이 감싸안는다. 얼마전 외국국적 취득에 따른 병역면제 문제로 물의를 빚은 가수 유승준의 입출국 뉴스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그날 모 방송 사장 아들의 국적 문제가 또 논란이 된 일이 있다.악의적인 병역 기피나 기형적인 원정출산이 왜 문제가 아니겠는가.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국적문제의 본질도,전부도 아니다.국가체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전통적인 영토나 국민,주권개념의 틀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그 변천상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 국적제도이다.현 독일의 집권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선거공약으로 ‘국적법’의 대폭 개정을 내걸었고,이를 실현했다. 요컨대 국적에 대한 전향적 인식 전환이 시급히 요청된다.시대착오적이고,반통일적이라고 불러 마땅한,국적법을 포함한 우리 국적제도는 재편돼야 한다.모계혈통 수용,남녀불평등의 개선,미성년자보호와 같은 수준의 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미 600만을 넘어선 재외동포 코리안은 지난 역사를 어김없이 반영하는,우리 국적인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북한 출생의 북한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 ‘이영순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몇년전 나온 바는 있으나,그런 개별적 판단을 더 이상 법원에 맡길 일이 아니다.이에 우리 국민 수의 반쯤 되는 북한주민에 대한 법적 지위를 전향적으로 가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중국적이나 그에 따른 우리 국적포기를 무작정 매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엄청난 수의 유학생,그리고 기업과 기관 주재원 및 근로자 등이 속지주의 국가에 나가 있다.현재의 추세로는 이중국적자의 증가세를 막을 수도,꺾을 수도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오히려 우수한 한국계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무한경쟁 체제를 강화해야 하며,이를 위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적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아울러 재외국민이 국적 요건에 묶여 받게 되는 각종 불이익과 피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날 ‘명자,아끼꼬‥’를 보고,어제 북한인 탈북자를 보며,또 오늘 유승준을 보면서 그 숱한 비극과 갈등의 귀결점이 바로 ‘국적’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우리의 특수한 역사성과 분단 국가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고,지금은 오늘의 세계화 추세에 못따라가는 우리의 국적제도에 새로운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물론 그에 앞서 더 시급한 것은 인식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권영설 중앙대 헌법학 교수
  • 국립민속박물관 “용산에 새 둥지”

    국립중앙박물관의 2004년 용산 이전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민속박물관과 조선왕궁역사박물관 등 국책 박물관들의 재배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비좁은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는 계획이다.‘민속’을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민족학’ 박물관으로 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민속박물관 이전은 2009년까지 경복궁을 원래 모습대로 되살린다는 방침에 따른 것.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내놓은 이전을 위한 기본계획 보고서에 따라 올해 민속박물관 이전건립추진위원회와 이전건립추진단 구성 및 운영비 예산도 확보해놓았다. 민속박물관이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부지는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캠프 코이너.주한미군사령부의 재배치 방침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이전을 결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람객 연간 230만명 수용 민속박물관은 제대로 된 민족학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부지는 최소한 20만평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다양한 전시공간은 물론 전통적인 논과 밭,그리고 고유수종을 종류별로 모아놓으려면 이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현재의 민속박물관은 1만 3000여평의 부지에 연건평 5000여평 규모.개관 당시 하루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나,현재 하루 1만 2000여명,외국인 70만명을 포함하여 연간 23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등 포화상태다. 이종철 민속박물관장은 “용산이 민족분단에서 비롯된 상처의 현장이지만 미래의 서울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해야 할 곳”이라면서 “나무가 우거진 ‘자연의 숲’과 박물관 같은 ‘문화의 숲’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왕궁역사박물관은 경복궁안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004년 용산으로 이전하면,그 자리에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 문을 연다는 구상이다.현재 덕수궁 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을 확대 개편하는 형식이다. 5대궁 13능원지구에 흩어져 있는 3만 8000여점의 유물을 한데 모아 500년 조선왕조의 역사·문화·생활상을 제대로 복원·소개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궁중유물전시관에는 불과 4000여점의 유물만이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왕궁역사박물관은 기획전시실을 포함한 29개 전시실에 회화·도자·공예·조각·복식 유물과 조선왕조 통치 이념을 엿볼 있는 전적 및 고문서·상징물 등을 전시한다.오례의·종묘제례 등의 궁중풍속 자료도 복원한다. 궁중유물전시관이 조선왕궁역사박물관으로 개편되면 752평인 전시면적은 2113평으로 2.8배 정도 늘어난다.수장고는 495평에서 2348평으로 6.3배나 커지게 된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조성계획에 일부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는 “경복궁 복원의 의미를 살리려면 왕궁박물관으로 쓸 중앙박물관 건물의 지상부는 해체하고 지하만 쓰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北개성공단 착공 전망 / ‘北核’ 곡절속 개성 열렸다

    개성공단조성사업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경협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노동,세금 등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북핵문제 등 한반도 안팎의 정세도 큰 변수다. 이번 착공식은 공사 ‘첫삽’이라기보다는 사업의 ‘첫단추’에 가깝다.일단 임시사무소를 설치,1단계사업 예정지구인 100만평에 대한 측량 및 토질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개발계획과 기본설계·실시설계를 마치는 내년 4월쯤이나 공사 착수가 가능하다. ●남북경협 새장 계기 남북이 분단 50년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수출공업단지를 공동 조성,경협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경협 형태도 종전 단순 임가공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투자 형태로 바뀌는 전환점이 된다.남북경협의 큰 걸림돌이었던 이동시간과 물류비를 대폭 절감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경의선 철도·도로와 연계할 경우 부산∼인천∼서울∼개성∼평양∼신의주를 잇는 거대한 남북 경제축을 형성하고 중국횡단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 등과 연결하면 한반도가 새로운 경제·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북한도 시장경제원리를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0만평중 첫사업 개성직할시 판문군 일대에 조성될 2000만평 가운데 공업단지는 800만∼850만평이고,배후도시는 1150만∼1200만평 규모다.우선 100만평을 개발하는 1단계사업에는 한국토지공사가 사업시행자,현대아산이 시공사로 나서게 되며 올해부터 2007년까지 2200억원이 투입된다. 1단계 사업은 송전시설(송전탑) 없이 배전시설(전봇대)만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용수도 예성강이나 임진강이 아닌 공단 근처 월보저수지 물을 끌어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전력 및 용수 사용량,폐수배출량이 적은 대신 고용효과가 크고 현지에서 원료조달이 가능한 업종부터 단계적으로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1단계 사업 성공여부에 따라 기술집약적 경공업과 내륙형 중공업,산업설비,첨단산업,외국기업 등을 유치할 예정인 2단계(사업착수 후 2∼5년차,200만평),3단계(5∼9년차,550만평) 사업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현대아산은 3단계사업까지 완료되면 2000여 업체가 입주,15만여명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 주도… 삼성·LG 저울질 대기업들은 현대를 빼고는 투자안전판 마련과 인프라 구축이 미흡한 점을 들어 진출 여부를 저울질하는 눈치다.삼성은 삼성전자가 현재 소프트웨어 협력사업과 일부 전자제품 임가공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남북경협에 본격적으로 나서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LG는 LG상사를 중심으로 총 1000만달러 규모의 위탁가공무역을 진행 중이지만 북핵 문제가 풀리고 남북관계가 진전돼 사업 전개의 여건이 마련돼야 개성공단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SK는 국내외 문제가 꼬여 남북경협 사업에는 눈돌릴 겨를이 없다는 입장이다.한화는 지금 당장은 별다른 계획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 일대에 콘도를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현대아산측에 공단 입주를 희망한 업체는 섬유·의류·신발 420여곳,가방·완구·화학 100여곳,전기·전자·금속·기계 230여곳,장신구·문구·안경 150여곳 등 900여개 업체다. ●南北 의회 비준 남아 개성공단 조성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출입·체류·거주 및 노동,세금 등에 관한 규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투자보장,이중과세 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해결 등을 위한 4개 경협 합의서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고 북측에서도 최고인민위원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류찬희기자 chani@ 개성공단 추진 일지 ●2000.8.9 개성에 2000만∼4000만평 규모의 공업지구 건설과 개성 육로관광 실시합의 ●2000.12 개성공단 측량조사 실시 ●2002.8.12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개성공단 건설 및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합의 ●2002.8.30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개성공단 연내 착공 및 개성공업지구법 조만간 제정·공포 합의 ●2002.10.22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12월중 개성공단 착공 합의 ●2002.11.20∼27 북,개성공업지구 지정 및 지구법 제정,발표 ●2002.12.23 북 내각 국토환경보호성,개성공업지구 2000만평에 대한 토지이용증 발급 ●2002.12.27 통일부,개성공단사업 협력사업자 승인 ●2002.12.30 착공식 개최 무산(임시통행로 군사적 보장문제 미해결) ●2003.1.27 남북군사실무회담,임시통행로 군사적 보장문제 해결 ●2003.2.21 개성공업지구 육로답사 ●2003.3.18 통일부,개성관광 협력사업자 승인 ●2003.5.19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개성공단 착공식 6월 하순 개최 합의 ●2003.6.14 경의선 철도연결식 ●2003.6.17 4대 경협합의서 국회 상임위 통과
  • 기고 / 자크 로게 IOC위원장께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을 추구하는 지구촌 축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인류문명사를 돌이켜볼 때 동서 문화의 교류는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다양한 축제 문화를 통해서 동서 문명의 삼각주를 이루어 왔습니다.동양의 문화는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졌으며,서양의 문화는 바닷길을 통해 동양으로 전해졌습니다.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오리엔트 문명은 서구의 휴머니즘 사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서양의 과학적 사고 방식은 동양의 현대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고대 올림픽 정신은 근대 올림픽으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IOC의 위업은 세계 평화와 안녕을 갈구하는 인류의 염원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대한 지구촌 가족의 이목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이 때,4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류 평화를 지향하는 ‘Peace for All’의 실현과 인류 공존을 염원하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청정 도시 강원도 평창에서 대화합의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님!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50년 전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상처받은 폐허의 땅을 일구어 세계사에 기여하는 민주국가로 발전시켜 왔습니다.우리나라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 국가 벨기에를 비롯한 자유 우방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평화 통일을 달성하지 못한 채 남북으로 분단되어 비운의 땅 DMZ를 국토 중앙에 두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우리 강원도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주된 목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핵 무장을 경계함으로써 동양 평화와 나아가 세계 평화를 구현하는 신념을 올림픽 정신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이미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이념 대립을 평화 공존의 장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바 있으며,2002 한·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전 세계인에게 평화와 감동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습니다.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인의 잔치가 아닌,전 인류의 잔치가 되어 동서양 문명 교류의 교두보가 되었으며,평화의 중요성과 인류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축제였습니다.대한민국은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의 의지와 범 국가적 지원,그리고 온 국민의 지지를 인프라로 삼아 유치 성공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0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는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조국의 DMZ에 평화의 새를 날게 할 것입니다.또한 남북으로 이어지는 철로는 아시아의 등불이 되어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는 최첨단 IT과학문명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인의 평화 애호 정신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해져 동서양이 하나가 되는 최상의 인간 정신으로 구현될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 50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의 향기 속에서 다른 대륙에서 누릴 수 없는 정신적 풍요와 경천애인 사상의 진수를 맛볼 것입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전 세계인을 환영할 것이며,친구와 이웃처럼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찬란하게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습니다.우리는 이제 동방의 밝은 빛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피즘을 더욱 빛내기 위해 또 하나의 등불을 밝히려고 합니다.그리하여 온 지구촌 가족이 하나가 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 (Peace for all)의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남북 화해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은 이미 천명된 북한 지도부와 체육계의 지지 속에서 2010년의 대장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은 이미 체코 프라하의 IOC 총회에 집결되어 있습니다.자크 로게 IOC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의 현명한 판단이 21세기 지구촌 평화의 수호신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평화의 땅으로 영원히 번창하게 해 주소서. 한장수 강원도 교육감
  • [열린세상] 2003년의 6·25

    지나다 생각하니 ‘육이오’ 기념일이다. 기념일? 기념이기 보다는 그저 잊지는 않으면서 지나치는 날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달력을 자세히 보니 작은 글자로 ‘6·25 사변일’을 기록하고 있다.발발 53년이 된 6·25 전쟁을 기억하는 기사,논평을 구색 맞춰 게재한 신문도,그냥 지나쳐버린 신문도 있다. 신문이 이 날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이상한 일도 아니다.간접 체험이 아니라 직접 겪었다면 최소한 60세가 훌쩍 넘었어야 한다.이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이제 ‘옛 사람들만이 간직한 희미한 옛 이야기의 그림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그러나 엊그제,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는가.‘아,어찌 잊으랴’를 외치는 군중집회의 들끓음은 무엇인가.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한 물결이 된다.한·미동맹은 더더욱 굳어져야 하는 핏줄 같은 것이다.53년 전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은 것은 미국의 참전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고,그들은 다짐받고 싶어한다. 워싱턴DC에 몇해 전 건립된 한국전참전 기념조형물에는 ‘대가 없는 자유는 없다.’는 뜻의 비명(碑銘)이 있다.대한민국은 거저 지켜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야말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고 한다.그렇지만 그 6·25,또는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위기구조에 대해서 한발짝 물러서서 보자고 옷깃을 잡는 원로 논객이 있다.미국 참전에 감사하는 한편으로,미국 참전의 진정한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은퇴한 리영희 교수의 충고다. ‘미국은 남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다.한반도의 남쪽까지 공산화하면 일본이 위태롭다,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한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미군의 한국 파병이 결정된 논리라는 것이다.그런 결과로 대한민국이 폐허 속에서라도 온전히 생존한 것은 고맙기 그지없어 보은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고마움과,이성적인 사고와 시각으로 내리는 판단은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 리 교수의 말이다. 6·25에 대해서는 논란을 부르는 여러 견해가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3년간의 전쟁과 그 이후 50년간 지속된 정전 체제를 통해서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일촉즉발의 위기 구조는 변한 것이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 한반도는 전쟁국가 체제로의 편입이 강요되고,또 그리로 휩쓸려가고 있는,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다른 복잡한 상황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주한미군의 급격한 군비증강 발표-무려 110억달러를 투입하는 중무장 계획에다,‘그에 상응하는’ 한국군의 군비 증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2004년 한국의 국방예산은 이미 35% 증액이 책정됐다. 미국은 ‘선제적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대량살상무기 거래를 차단한다는 명분의 새로운 국제연대 전략까지 만들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공해상의 정선(停船)과 항공기의 강제착륙,강제 압수수색이 강행된다.일본과 한국은,그로써 동북아시아에 긴장의 파고가 위험수위를 넘을 것이 분명한 데도 이미 MD(미사일 방어)체제에 편입되었다. 강제 정선과 착륙의 전제인 미국의 정보 능력은과연 얼마나 정확한가.미국은 북한이 협박하고 제안하고,또는 애걸하는 ‘직접 대화’를 왜 끝내 마다하는 것일까.이 시점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군비증강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군사비 규모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일본이 한국과 함께 참여하는 MD 체제가,과연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만 그 목적이 있다고 믿어도 좋은 것일까.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하는 2003년의 6·25다. 정 달 영 칼럼니스트
  • 공로명 유치위원장 / ‘평화 올림픽’ 강조 끝까지 최선 다할것

    “인류애와 평화라는 올림픽 이념을 강조해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공로명(사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은 25일 최만립 부위원장,윤강로 사무처장 등과 체코 프라하로 출국하면서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개최돼야 올림픽정신에 부합된다.”면서 “북한과 협조해 올림픽 정신을 부각시키고 차별화된 프리젠테이션으로 개최권을 따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평창과 밴쿠버,잘츠부르크가 경합중인데다 IOC 위원 개인의 특성과 생각,국가 이익 등이 얽혀 있어 섣부른 장담을 할 수 없다.평창은 강원도민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성원속에 비전과 명분을 제시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 달 IOC 평가보고서 발표 이후 판세 변화가 있는가. -평창은 유치 경쟁 초기 국제적인 인지도가 낮아 고전했는데 전방위적인 홍보와 치밀한 대회준비로 평가보고서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유수 통신사와 CNN,LA 타임스 등 외신들도 3개 도시가 경합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 카드가 어떻게 작용할 것으로 보는가. -북한 핵 문제가 대두된 초기에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제는 아니다.IOC 평가보고서에도 평창의 올림픽 개최가 한반도 평화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명시됐다. 경쟁 도시에 견줘 평창의 장점은 무엇인가. -원주에서 강릉까지 동계스포츠 벨트를 건립해 1시간 이내에 모든 경기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또한 모든 경기장과 숙소를 선수 중심의 쾌적한 시설로 꾸며 최상의 상태에서 최고의 기록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무엇보다 전 국민의 97%가 올림픽 개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막판 득표를 위한 비책이 있는가. -투표 당일 열리는 후보도시 프리젠테이션에서 차별화된 전략으로 표심을 붙잡겠다. 박준석기자 pjs@
  • 백제의 古都 공주 연극에 푹~빠지다

    공주는 지금 연극도시다. 이 백제의 고도(古都)를 공연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킨 것은 제21회 전국연극제.지난 12일 막이 오른 이후 공주 시민들은 6월 한달만큼은 한국 연극의 메카라는 서울의 대학로가 부럽지 않다고 뿌듯해하고 있다. 일요일인 22일 공주 시내 곳곳에는 연극제 깃발이 나부끼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연극제가 열리는 웅진동 공주문예회관은 국립박물관을 하나 새로 세워야 했을 만큼 엄청난 부장품이 나온 무령왕릉 바로 길 건너.웅진도서관이 맞닿아 있고 내년이면 문을 여는 새 공주박물관이 지척인 공주의 ‘문화 타운’이다. ●18일동안 33차례… ‘공연 레이스’ 이날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전북 극단 창작극회의 ‘상봉’.분단과 이산,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다루어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지만 관람객은 청소년들이 다수.30∼40대도 적지 않았다.‘무거운 공연’의 10대 관객이나,연극을 보러온 ‘어른’들의 모습은 대학로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연극제에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 대표와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극장,조총련계인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옌볜연극단 등 3개의 해외동포 극단이 참여했다.국내 극단은 2차례,동포 극단은 한차례씩 공연한다.29일까지 18일 동안 33차례 공연이 이어진다. 전국연극제가 기초자치단체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인구 14만명 남짓의 공주가 연극제를 유치한 것은 공연장이 텅텅 빌 수 있다는 점에서 모험이었다.그러나 우려는 보기좋게 빗나갔다.문예회관 대공연장의 객석은 750개.대부분 전석이 매진됐고 몇몇 공연에는 900여명이나 몰리는 바람에 통로까지 완전히 메워졌다. 지난 13일 충남 젊은 무대의 ‘천도헌향가’와 16일 부산 열린무대의 ‘트라우마’,17일 극단 울산의 ‘천년의 수인’,18일 인천 엘칸토의 ‘고목’,20일 대전 마당의 ‘꽃마차는 달려간다’ 등이 그랬다. ●“처음 본 연극, 정말 좋았어요” 입소문이 나면서 관람객은 더 늘어난다.준비된 객석은 모두 2만 5000개.이런 추세라면 3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극제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작품 수준이 높아져 볼만한 공연이 많다는 것이다.연극제 홈페이지에는 “처음 본 연극,정말 좋았어요.”“다시 볼 수 없을까요.” 등 ‘앙코르’를 외치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특색있는 공연도 적지않다.충남의 ‘천도헌향가’와 충북 극단 청년극장의 ‘달의 안해’는 자기 고장 이야기인 백제의 사비천도와 바보 온달을 다루었다.‘달의 안해’가 참가하는 데는 온달성이 있는 단양 주민들이 도움을 주었다.부산의 ‘트라우마’도 연극제에서는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겹치기 참가’도 사라졌다.지난해 전주 연극제까지는 중앙 연극계에서 내용이나 관람객 호응도를 검증받은 작품들이 2∼3개씩 중복 참가하는 바람에 의미가 퇴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싼 티켓값도 지역 애호가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현장에서 표를 사면 어른 8000원,학생 4000원이나 공주시내 지정예매처에서 ‘사랑티켓’으로 구입하면 각각 3000원,1000원에 불과하다. ●충남지역 연극계 새로운 바람 기대 충남에는 새로운 연극바람이 불어올 가능성이 커졌다.연극인들이 지역 연극의 미래에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충남도청 등 공무원들이 연극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놀이성 지역축제 뿐 아니라 순수한 예술축제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전과는 차원이 다른 적극적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연극무대를 얻은 것도 수확.연극제를 위해 다목적공연장이었던 문예회관을 15억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수리했다.‘연극 전용’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다른 지역 연극인들은 모두 부러워한다. 최기선 극단 아산 대표는 “지역 연극인들 사이에 우리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싹텄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면서 “이제부터는 관객을 기다리는 연극보다 거리로,야외로 관객을 찾아가는 연극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한편 29일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모든 참가단체는 한 자리에 모여 뒤풀이를 하며 우의를 다진다.30일 열리는 폐막식에서는 최우수단체에 대통령상이 주어지고,희곡·연출·연기·미술 부문의 개인상 시상도 있다. 남은 연극제 기간 동안에도 공주문예회관 일원에서는 어린이 마임·연극·구연동화 공연과 풍물한마당,거리공연,청소년 어울마당,한밤의 예술무대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펼쳐진다.(041)855-7519.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40여년 민속자료 수집 창고가 박물관 됐지요”심우성 공주 민속극박물관장

    “40년이 넘도록 민속자료들을 얻고,사들이기도 했는데 집에는 놓아둘 곳이 없었어요.그래서 창고나 지어볼까 했는데 박물관이 됐지요.” 민속학자 심우성(沈雨晟·69)씨가 요즘 가장 아끼는 직함은 ‘공주민속극박물관장’.“어떻게 박물관을 지을 생각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껄껄껄 웃으며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실은 오늘날의 희곡과 연극자료까지 모두 다루는 연극박물관을 지으려 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그 ‘꿈’이 아직도 진행형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1996년 문을 연 박물관의 부지는 3000여평.민속극자료관과 농기구자료관이 있는 전시동과 심우성의 공부방이 있는 사무동,그리고 당집을 재현한 ‘돌모루당’을 무대로 쓰는 야외극장으로 구성됐다.돌모루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마을의 이름이다.전시동의 1층은 소극장 아리랑.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여기에 자그마한 2층짜리 전시관을 하나 더 짓고 있다.전통공예관과 토착신앙관으로 한 층씩을 꾸밀 생각이다.오는 10월 아시아일인극제가 열리기 전까지는 문을 열 것이다.그는 아시아일인극협회장으로 올해 8회째 맞는 아시아일인극제를 주도한다. ●민속극과의 운명적 만남 민속극박물관이 있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는 15대를 이어온 심우성의 고향이다.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1995년.50여년 만이었다.고향은 그에게 민속학자로서 오늘이 있게 한 결정적 계기도 만들어 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열일곱살이었어요.서울에서 6년제 휘문중학교의 4학년에 다닐 때지요.거리에서 인민군에 끌려가 방망이 수류탄 하나만 달랑 차고 황간까지 내려갔지요.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명령계통이 사라지자 모두 흩어졌어요.그래서 고향집으로 돌아왔지요.” 집에는 정광진(丁光珍)이라는 병든 머슴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휘문중학 연극반이었던 그는 골방에서 ‘조선연극사’를 찾아냈다.젊은시절 남사당패였다는 정 영감은 탈이며 농악장면이 담긴 책을 보더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늦가을까지 석 달 동안 들려준 남사당패 이야기는 공책으로 8권이 됐다.이후 홍익대 신문학과를 다니며 1954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가 됐다.5년 뒤 아나운서를 그만둔 것은 민속학자 임석재 선생이 “그러다 바람둥이 되겠다.”고 말렸기 때문.그만큼 아나운서는 인기가 높았다. 임 선생의 뜻대로 발로 뛰는 민속학자의 생활이 시작됐다.1965년에는 민속극회 남사당,다음해엔 한국민속극연구소를 만들었다.1974년에는 ‘남사당패 연구’를 펴냈다.정 영감의 이야기를 메모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는 지금도 “정 영감이 나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1963년부터 3년 동안은 요즘 TV코미디에서 종종 패러디되는 국립영화제작소의 대한뉴스 아나운서로 활동했다.KBS와 MBC,지금은 없어진 TBC 등의 TV가 생길 때마다 전통예술 프로그램을 도맡았다.최근까지도 SBS라디오에서 ‘심우성의 서울이야기’를 진행한 ‘민속의 전도사’다. 그는 1980년에는 ‘홍동지의 나들이’로 일인극배우로 ‘데뷔’했다.분단 이후 목숨을 잃은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결혼굿’은 1998년 발표 이후 한 해 4∼5차례는 초청받는 인기 레퍼토리.지난해에는 부산 아시안게임 선수촌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백제 기악 복원 학술심포지엄 주도 민속극박물관에서는 지난 14일 ‘백제 기악(伎樂) 복원을 위한 방안 모색’을 주제로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오는 30일까지 공주 일원에서 열리는 제21회 전국연극제 행사의 하나지만,그에게는 더욱 감회가 깊었다.목각탈제작자로 지난해 작고한 아버지 심이석(沈履錫) 선생의 마지막 작업이 기악탈 복원이었기 때문이다. “백제탈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조선과 그 예술’을 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동생으로 일본 민예관 관장인 야나기 무네미치(柳宗理)였어요.1994년부터 3차례나 일본을 찾아 도쿄국립박물관과 정창원 등에 소장되어 있는 기악탈을 둘러보았지요.” 서연호 고려대 교수와 일본의 기악을 복원한 덴리(天理)대학의 사토 고오지(佐藤浩司) 등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심포지엄은,기악이라는 백제시대 탈놀이의 복원을 위하여 실마리를 찾는 작업.“이런 기회에 기악에 ‘미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바람이다. ●지역청소년 문화운동가로 또다른 삶 심우성은 요즘 ‘지역 청소년 문화 운동가’가 되어 있다.농촌 아이들이 오히려 도회지 아이들보다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그는 “서울 유치원에서는 민요를 가르치지만 농촌 유치원생은 서양노래만 부른다.”면서 “농가부채 탕감도 중요하지만 농촌 청소년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 청소년들이 농기구를 그리는 숙제를 하러 박물관에 찾아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우리 춤의 기본사위와 우리 음악의 기본가락,민요를 가르치는 ‘청소년 어울마당’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교통비만 주면 달려오는’ 제자들이 적지 않아 이런 의미있는 작업도 가능하다. 심우성은 “박물관 운영은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그러지 않아도 박물관 이름이 조금 알려지니 ‘돈 많이 벌겠다.’고 하는 이가 없지는 않다.”고 농담을 했다.그는 “박물관 입장료로는 표파는 직원의 봉급도 안 되니,월급 안 줘도 되는 아들과 며느리를 데려다놓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고는,“정 돈이 떨어지면 청소년수련시설 자리로 생각하고 있는 앞산이라도 팔아서 쓰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웃었다.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우리시대 참어른 강원용 목사의 삶

    한국 개신교의 원로 강원용(86) 목사가 자신의 삶을 정리한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한길사)를 펴냈다.모두 5권으로 된 이 책은 지난 93년 대화출판사에서 나온 자서전 ‘빈들에서’(전3권)를 새롭게 손봐 재출간한 것.저자는 일제 강점기,광복과 분단,한국전쟁을 거쳐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몸소 체험한 것들을 차곡차곡 풀어놓는다. 저자는 1917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나 1931년 기독교에 입교한 뒤 농촌 계몽운동에 힘썼으며 광복 후 좌우합작위원회 위원,경동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교협의회 의장,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방송위원장 등을 지냈다. 목회활동과 별개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친 그는 때로 중간파 혹은 회색분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일반의 오해를 풀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속에서 나는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between and beyond)’ 살고자 했던 나는 항상 양극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그러나 어느 편이 절대 선이고 그 반대편은 절대 악이란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고 보았기에 대화로 각 방면의 대립을 해소하고 화해의 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역대 대통령에 대해 나름의 시각으로 평가한다.한 예로 박정희 대통령은 반공을 국시로 삼았지만 사실은 양공(養共)을 하는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놓고 반공만을 강조했으니 반공이 제대로 됐겠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치했던 18년간은 내 머릿속에 전형적인 빈 들로 남아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박 대통령은 경제만능주의,권력지상주의가 활개를 치는 빈들에서 권력과 황금을 좇는 사냥꾼이었다.”고 회고한다.각권 1만 2000원. 김종면기자
  • 책 /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글·사진 창작과비평사 펴냄 “한 여울의 철교를 얼른 건느니/전곡리의 정거장도 등에 버렸고/연천대광(連川大光) 두 정거장 잠간 거치니/철원색(色)의 번화함이 눈을 흐리네” 용산에서 원산까지의 여정을 15절로 그린 ‘경원철도가’만 보아도 철원이 얼마큼 번화한 도시였는가 금방 알 수 있다.오죽하면 ‘철원색’이라 했을까.노동당사가 있는 관전리에 서던 철원장은 인근 최대의 시장이었다. 1930년대에는 거래액이 130만원을 넘었다.일제가 미국인 제임스 모스로부터 경인선을 사들인 가격이 18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그만큼 철원장의 명성은 전국적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풍요는 식민지배가 계속됨에 따라 심각한 빈부의 분열로 이어졌다.철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진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36).‘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 )을 펴낸 저자는 철원을 ‘통일기행의 일번지’라고 부른다.지난 10년 동안 민통선이라 불리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누빈 그가 유달리 철원에 집착하는것은 그곳이야말로 고달픈 한국현대사와 곧바로 대면할 수 있는 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10년간 철원·강화·백령도등 누벼 저자는 철원의 민통선 여행코스에서 철원역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한다.철원역은 월정리역에서 노동당사로 가다가 구철원시가지로 꺾어질 즈음의 지뢰밭 뒤에 있다.월정리역에 비해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하지만 철원역의 폐허는 전쟁의 상처를 가장 아프게 전해준다.저자는 “월정리기행이 보이는 것과의 만남이라면,철원역기행은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라고 말한다.그의 여행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정지해버린 박물관 같은 구철원시가지,얼음창고터,철원제사공장터,철원제일감리교회,노동당사,백마고지를 도는 행로 곳곳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난다. 어느날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수백명이 몰살됐다는 신탄리 폐터널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그의 연천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신탄리 폐터널이 미국과 인민군의 격전장이었음을 확인한 저자는 이어 연천군 청산면 열화우라늄탄 사고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현대 고달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이라크전쟁 때 미국이 사용해 지탄을 받은 그 열화우라늄탄이 1997년 한반도에서 그것도 ‘사고’로 터졌다는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다.1999년 유고전쟁 이후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나타난 집단 백혈병증세도 열화우라늄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저자는 ‘연천 제1의 볼거리’ 태풍전망대의 선전판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6·15선언 이후 선전판 글귀가 ‘귀순자 대환영’에서 ‘우리는 한 형제’로 바뀐 것.6·15선언의 영향이 가장 빨리 나타난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경원선의 분단풍경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그중 하나가 동두천 미군기지다.저자는 동두천에 이르러 불현듯 소요산의 전설을 떠올린다.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원효대와 요석이 머물렀다는 별궁터,그리고 원효가 사랑하는 요석을 두고 이름을 붙였다는 공주봉이 자리잡은 소요산.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소요하면서도 면벽수도를 할 수 있었다니 원효는진정 고승인가.저자의 이런 낭만적인 상념은 동두천 미군기지의 담벽을 따라 뻗어 있는 경원선에 시선이 미치면서 분노로 바뀐다.의정부에서 신탄리까지 달리는 경원선은 사실 출발부터 미군기지와 함께 있다.의정부역사 양쪽에는 ‘캠프 폴링 워터’라는 미군부대가 있다.저자는 “미군의 군홧발에 채이면서도 능청맞게 달려온” 경원선을 “분단의 상처가 가장 아물지 않은 곳”으로 지목한다. 저자가 민통선 기행 길목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게 유실지뢰 문제다.비무장지대 남쪽에 1만개,후방지역에는 7만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다.파주·연천·양구·고성 등 곳곳에 피해자들이 널려 있다. 저자는 해마다 홍수가 나면 대인지뢰 유실사고 공포에 떠는 신탄리 차탄천을 찾았다.그리고 지뢰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고발하는 산문시 같은 감상적인 글을 남겼다.“아침부터 이장댁 스피커에서 ‘회심곡’이 구슬피 흘러나왔다.지뢰피해자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상주는 돌아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당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행복하다며 내 손을 잡았다.돌아오는 기차에서 보니 지뢰밭이 멀지 않은 동산에서 상여꾼들이 달구질을 하고 있었다.지뢰를 밟고 나서는 인생이 지뢰밭이라고 하더니 그는 죽어서도 지뢰밭에 묻히고 말았다.” 저자는 실제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엄스와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과 함께 한국의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미군기지·유실지뢰 문제 진지한 접근 민통선 기행은 그 자체가 분단극복을 위한 하나의 작은 실천이다.분단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분노는 때로 폭주기관차처럼 불을 뿜는다.양구 평화의 댐에서는 정권의 ‘한판쇼’에 놀아난 씁쓸한 기억을 곱씹으며,동해 북부선 현장과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의 잠수함 승무원들이 사망한 칠성산 억새밭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절규하듯 갈망한다. 이 책은 민통선에 관한 본격적인 기행서로는 국내 처음이다.최초라는 상징성보다는 물론 글에 배어 있는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냉전시대 분단의식을 부추기는 ‘안보관광’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평화운동가로서의 역사인식이 담겨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기고 / 공산당 허용 발언과 헌법논쟁

    국내에 때 아닌 헌법논쟁이 불붙었다.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까지 언급되는 상황에 이르렀다.탄핵 대상으로 논의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9일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에게 “나는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말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국체와 국기문란으로 보고 탄핵소추 검토라는 초강경카드로 으름장을 놓고 있다.일부 언론은 대통령의 경솔함을 조소하며 헌법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직무유기로 몰아치고 있다. 이들의 헌법 짝사랑에 대한 출발점은 우리 헌법에서 명기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이다.이들의 논리는 정도의 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고,그 핵심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이다.공산당은 이를 부정하는 대표선수이고 일본 공산당도 공산당의 명칭을 쓰고 있는 이상 똑같은 집단이다.’라는 것으로 축약된다. 하기야 우리 헌법재판소도폭력적 지배를 배제하는 것,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질서를 지키는 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 내용이라고 한 바 있다.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에 관한 한 그 원조격인 독일의 경우 사유 재산제와 시장경제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라고 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오히려 폭력적 지배의 배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다.폭력적 지배가 나치시대와 같은 인권유린시대를 초래하여 인권보장이라는 근대헌법의 근본이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헌법을 들먹이면서 과거와 같은 색깔논쟁을 재탕하고 있는 으름장파의 헌법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은 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다.인권보장을 위하여 여러 가지 원리 중의 하나로서 민주적 기본질서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일본 공산당의 실체를 보자.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일까.이미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일본 공산당은 1973년에 강령에서 세간의 폭력적 지배와 동일시되고 있는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을 ‘프로레타리아 집권’이라는 말로 대체했다가 1976년에는 아예 빼버렸다.규약 제2조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정당임과 동시에 국민정당임을 내거는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한 바 있다. 또한 1996년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통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근대부르주아 헌법의 이념을 노동자와 일본 국민의 관점에서 계승발전하여 새로운 이념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일본공산당의 관료화,특정세력에 의한 당권의 장기집권도 문제이며,본인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집권과는 상관없는 ‘맛보기 불임정당’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지방의회에서는 집권 자민당보다 오히려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보조금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정당이라는 측면에 한정해서는 정치자금 논의가 한창인 우리나라로서도 오히려 한번쯤 연구해 볼 만도 한 대상이다.일본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도 더 북한의 정권과 인권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다.나아가 우리 모두가 분개하고 있는 일본의유사법제에 대하여 일관되게 반대하여 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일부 정치권이 헌법의 근본이념을 둘러대면서 일왕의 유일체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던 ‘국체’ ‘국기’라는 용어로 과거의 색깔논쟁을 포장,재현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열세에도 일본에 비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남북 분단과 압축된 근대화의 우여곡절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의 근본이념인 인권보장과 이를 위한 평화,그리고 ‘완전한 민주주의’로 역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우리 사회가 한국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와 그에 따른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는 하지만,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헌법논쟁으로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이경주 인하대 교수 헌법학 명예논설위원
  • “공산당 허용돼야 완전한 민주국”盧대통령 방일발언 파문

    |도쿄 황성기특파원·서울 문소영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일본 국회에서 열린 중의원 의장 주최 간담회에서 시이 가즈오 일본 공산당 위원장에게 “한국은 현재 공산당의 활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민주국가로서는 문제”라면서 “내가 일본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산케이 신문이 10일 보도했다.시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관련기사 3면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산케이 신문은 “공산당은 김대중 전 정권 시대부터 대표단의 한국 파견이나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赤旗)’의 서울 지국 개설 등에 의한 한국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완전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이상적 민주주의 제도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한 부분”이라면서 “시이 위원장에게 한 덕담,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윤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정확한 언급은‘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였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내가 일본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답변과 관련해,먼저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한국과 우리 당과의 교류가 진척되길 바란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화답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면 환영할 것이다.나는 방문을 결코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은 “공산당과의 교류·협력은 바람직하지만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정당의 활동은 절대 안된다.”면서 “극심한 이념갈등을 겪는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유럽이나 일본의 흉내를 내겠다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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