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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미도’ 때문에 아들 파혼이라니…/김신조씨 “35년간의 새삶 물거품… 법적대응 검토”

    “영화 ‘실미도’ 때문에 우리 아들이 파혼당했습니다.어린 외손자들도 이 영화를 통해 할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혹시 뒤바뀌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최근 영화 ‘실미도’의 인기가 날로 치솟으면서 괴로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1968년 1·21사태 때의 유일한 생존자 김신조(사진·62·남양주 성락교회목사)씨.그는 지난 11월말까지만 해도 31살된 아들 결혼식(12월6일 서울팔래스호텔)을 치르기 위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며 들뜬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12월1일 예비사돈댁에서 ‘파혼’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결혼식 날짜를 불과 5일 앞둔 상황이어서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파혼 이유는 영화 ‘실미도’에 등장하는 ‘김신조’라는 이름 석자 때문이었다.개봉을 코 앞에 두고 각 언론매체에서 집중적으로 영화를 다루자 사돈댁에서 ‘재고’를 하게 된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개봉 일주일 뒤인 지난 12월30일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김신조’라는 이름이 꼭 4번 나오더군요.” 이후 김씨는 거의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지난 97년부터 목회활동에 전념하며 새삶을 꾸려온 그에게 까마득히 잊었던 ‘무장공비 김신조’라는 말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들렸기 때문이다.김씨는 “결국 남북대치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희생적인 사건은 많이 생겨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사건 발생 35년이 지난 후 상업적으로 제작된 한 영화로 인해 행복하게 살아온 자신 가족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애써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남북 분단의 현실을 놓고 무분별한 상업적 제작수단은 어느날 그 행복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김씨는 현재 변호사와 법률검토중이며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곧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래저래 김씨는 ‘괴로운 1월’을 보내게 됐다. 김문기자 km@
  • 종로통 노점상 정비계획 市·區 이견조율 안돼

    청계천복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시가 종로통에 대한 노점상 정비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관할구청은 부분단속 입장을 굽히지 않아 시·구간 의견 조율이 시급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6일 “종로에 난립한 노점상에 대한 정비가 전제되지 않는 한 청계천복원 효과는 반감된다.”며 “종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추진시 노점상 일제정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로구에는 2000여개의 노점상이 있으며 이 가운데 500여개가 종로1가∼6가 사이에 몰려 있다.하지만 종로구는 근본적으로 싹쓸이 노점정비는 어렵다며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가로 1m,세로 2m 이상인 대형·기업형 노점상과,통행에 지장을 주거나 민원 발생으로 정비할 수밖에 없는 노점상을 중심으로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에서 일제정비계획을 세웠다면 지난해 11월말 청계천 노점상 정비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명의 경찰력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용규기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월남 파병’등 올 13편 안방노크/여섯돌 MBC다큐 ‘이제는‘

    MBC 현대사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시리즈가 2월29일부터 다시 방송된다.‘이제는…’은 1999년부터 5년간 모두 73편이 방송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일례로 지난 99년 ‘북파 공작원,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를 통해 처음 공론화된 실미도 사건은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져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6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시리즈는 첫회 ‘독립투쟁의 대부,홍암 나철’(연출 박정근)편을 시작으로 모두 13편이 전파를 탄다.지금까지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시급하고 강렬한 이슈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이번에는 좀더 차분한 시선으로 한국 현대사의 근본적인 문제를 응시하는 데 무게중심을 뒀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70년대 월남 파병 문제,12·12와 미국 문제,강남 개발 신화의 역사적 연원,그리고 긴급조치 시대 등이 이런 맥락에서 다뤄진다. 2∼3월에 7편 가량을 먼저 방송하고,6월 이후에 남은 분량을 내보내는 시간차 방송도 눈길을 끈다.시청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피드백을 공유하려는 취지이다. 첫회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독립투쟁공간에서의 대종교 활동상과 홍암 나철의 존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2회는 ‘만주의 친일파’편으로 역사적 쟁점으로 남아있는 친일의 실상을 다루고,이어 소련 점령군의 최초 증언을 취재한 ‘분단의 기원,모스크바 3상 회의’가 방송된다.6∼8월 방송분은 6·25와 관련된 내용과 김일성 사망 10주년에 즈음한 기획으로 꾸며진다. 제작진은 “대표적인 현대사 다큐멘터리로서 차분하게 ‘영상실록 한국현대사’의 빠뜨린 부분을 채워나가는 심정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000년,2002년에 이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를 맡았던 정길화 PD와 제주 4·3사건,보도연맹 편을 연출한 이채훈 PD,역사 다큐멘터리 ‘해상왕 장보고’를 연출한 박정근 PD 등이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
  •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11편 가운데서 4편을 골라 집중적인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그 결과 ‘바늘집’은 늙고 병든 시아버지와 재혼 대상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상의 여인의 심리를 정겹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으나 삶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일상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소품의 인상을 면치 못한다는 점에서,‘눈물 먹는 도마뱀’은 치부와 쾌락에 탐닉하는 한 중년여인의 즉물적 인생관을 통해 세태를 풍자하고 있으나 적나라한 성희 장면의 지나친 등장이 문학적 순수성에 흠집을 남긴다는 점에서,‘장다리흰물떼새’는 분단 비극의 형상화에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낯익은 설정과 남파 공작원의 생포를 둘러싼 전후 사정에 작용하는 우연성이란 약점 때문에 차례로 제외되었다. 마지막 남은 ‘호박(琥珀)’은 늦가을 밤 문경새재 정상에서 30년 주기로 쏟아지는 사자자리 유성우를 관측 촬영하는 손자와 지체장애 할아버지를 통해 외로움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천체를 관측하는 동안에도 손자의 마음은 줄곧 다른 별을향한다.손자의 마음속 일등성은 동아리 선배인 ‘그녀’다.할아버지의 일등성은 등나무집 할머니다.‘그녀’ 또한 자신을 버린 ‘그’라는 다른 일등성을 좇다가 끝내 불행을 겪고 말았다.별을 붙잡지 못하고 우러르기만 하는 삶은 불행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지만 ‘겨울의 대삼각형’을 이룬 채 시리우스를 마주보며 외롭게 반짝이는 프로키온처럼 섬뜩한 아름다움을 띠기도 한다.유성우가 비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의 장관 속에서 저마다 외로운 별로서 존재한다는 인간의 정체성을 선명히 부각시킨 ‘호박’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김윤식 윤흥길
  • ‘한씨연대기’ 19년전 감동 그대로

    1980년대 한국 연극계가 건져올린 귀중한 수확으로 꼽히는 극단 연우무대의 ‘한씨연대기’가 내년 1월8일부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극단 동숭아트센터와 문화창작집단 수다가 지난 20년간 화제작들만을 모아 연중기획한 ‘연극열전’시리즈의 개막작으로 다시 공연되는 것.91년 재공연 이후 13년 만이고,초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20년 세월을 헤아린다. ‘한씨연대기’는 널리 알려졌듯 소설가 황석영이 1972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김일성대학 의학부 교수였던 한영덕이 북측에서 버림받고 단신 월남한 뒤 남측에서도 이방인으로 떠돌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1985년 4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막올린 ‘한씨연대기’는 이듬해 2월 말까지 공연장 여러곳을 옮겨가며 170여회의 장기공연을 기록했다.‘동아연극상’‘오영진연극상’‘백상예술상’등 각종 연극상도 휩쓸었다.여기저기서 빌린 500만원으로 어렵게 시작한 연극은 흥행 성공으로 빚을 다 갚고도,신촌에 소극장을 열 수 있는 목돈까지 마련했다.대학 연극반 학생들 사이에 한 번쯤은 무대에 올려야 할 레퍼토리로 꼽히고 있고,이 작품을 통해 대학로에 발을 붙인 연극인들이 상당수임을 볼 때 ‘한씨연대기’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85년,91년에 이어 세번째 연출을 맡은 김석만(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출가는 “분단 문제를 다룬 연극이 드물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역할바꾸기 등 새로운 공연 양식의 시도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그렇다면 시대가 바뀌고(물론 분단 상황은 변함없지만),연극 양식이 진화를 거듭한 지금도 이 작품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그는 “지난 과거로 인해 우리의 모든 삶은 영향을 받는다.”면서 “한영덕의 삶과 그런 삶을 감싸고 있는 시대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면 지금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연 무대에는 직장생활을 접고 8년 만에 연극판에 돌아온 문성근이 한영덕으로,결혼 후 활동이 뜸했던 양희경이 동생 한영숙으로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이번 공연에도 강신일 이대연 김중기 등 연극과 영화에서 두루 활동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돼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 예상된다.강신일이 한영덕으로,이대연이 친구 서학준을 연기한다.여기에 박남희 서정연,두 여배우가 가세해 1인 다역을 소화한다. 김석만 연출가나 극단 연우무대 못지않게 원작자 황석영에게도 이번 공연은 의미가 남다를 듯싶다.올해 ‘한씨연대기’불어판을 출간한 그는 지난 여름,한 사석에서 김석만 연출가에게 “‘한씨연대기’를 다시 해보면 어떻겠느냐 .”는 뜻을 먼저 내비치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공연 둘째날인 1월9일에 마련된 ‘한씨연대기의 날’에는 황석영,문성근 등 역대 출연 멤버들이 자리를 같이할 예정이다.2월29일까지 .(02)762-0010. 이순녀기자 coral@
  • [열린세상] 韓·美동맹과 정전체제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 저물고 있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해였지만 외교통일분야에서 남남갈등만큼 우리 사회를 뒤흔든 단어는 없는 것 같다.그리고 남남갈등의 쟁점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논란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일년 내내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북핵문제에서도 한·미공조와 남북공조는 남남갈등의 핵심 이슈였고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도 한·미동맹은 최대의 논란거리였다.더불어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이전문제에서도 한·미동맹의 미래모습을 놓고 우리 사회는 홍역을 겪어야만 했다. 올해가 한·미동맹 50주년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번잡할 정도로 많은 학술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올해는 동시에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이라는 역사성을 띠고 있다.한·미동맹 50주년과 정전체제 50주년이 한반도 현대사의 쌍생아라는 사실 자체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의 과도기적 현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미동맹과 정전체제의 동시성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한·미관계에 대한 남남갈등을 배태하고 있는 구조이자 조건이다.그렇기 때문에 분단된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덕분으로 우리가 정치·경제적 발전을 구가했음을 간과할 수 없는 반면,한·미동맹 자체가 바로 정전체제라는 분단의 멍에 위에 형성된 것임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한국은 적잖은 혜택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한·미동맹이 한국의 현대사에 반드시 긍정적 결과만을 양산하지는 않았다.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의 쌍생아라는 본질적 한계로 인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애초부터 갖고 있었다.한·미동맹이 공고해질수록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이 그만큼 어려워졌던 것이 그간의 현실이었다.지금 남북관계 개선 이후 민족화해가 증진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에서 한·미동맹이 적잖이 위협받는 것도 바로 그러한 시대적 한계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미동맹은 우리가 유지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특히사회주의의 실패와 북한체제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목도하면서 향후 우리의 미래는 당연히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한·미동맹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20세기 한·미동맹과 21세기의 그것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20세기가 냉전이라는 대외적 상황과 정치·경제적으로 아직 발전하지 못한 신생국 한국이라는 대내적 상황을 전제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한·미동맹은 다소의 불평등과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탈냉전과 남북관계의 개선 그리고 민족화해의 증대라는 대외적 상황을 맞고 있고 더불어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OECD 국가,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진척되고 있는 정치·경제적 발전상황을 대내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이다.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되 그 내용과 수준을 과거 20세기의 냉전시대와는 다른 21세기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21세기 한·미동맹은 군사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관계에서도 이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새롭게 조정되어야 한다.물론 이것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혜택을 제공했던 한·미동맹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남북관계의 개선과 향후 통일과정을 고려하고 그리고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한국을 감안해 이제 앞으로의 한·미동맹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내용과 수준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 당연히 거기에 맞게 동맹관계도 변화해야 한다.지금의 한국이 과거의 한국이 아니고 지금의 한반도가 과거의 한반도가 아님은 이제 지금의 한·미동맹 역시 과거의 한·미동맹과 질적으로 달라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그리고 그것은 정전체제와 쌍생아를 이루고 있는 분단의 부산물로서의 한·미동맹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분단을 혁파하고 새로운 한반도 질서창출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민족화해와 통일시대에 걸맞은 한·미동맹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 근 식 경남대 교수 극동문제연구소
  • 사고/박완서 칼럼 ‘살아가는 이야기’

    대한매일이 새해부터 서울신문으로 새 출발하면서 우리시대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인 소설가 박완서(72)씨의 칼럼을 싣습니다.‘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이름의 이 칼럼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각이 빛나는 산문의 미학을 전해줄 것입니다. ‘한국 문학의 한 축복’으로 불리는 박완서씨는 분단현실에서부터 가족의 의미,여성문제,자본주의 체제 아래서의 인간소외 등 우리 사회 제반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주는 탁월한 소설들은 물론 목덜미를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듯한 서늘한 감각의 감칠맛 나는 산문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아래 아치울 마을에 사는 박씨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늙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시간과 더불어 원경으로 물러나는 일이고 원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작가의 달관의 경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오늘의 세태를 깊은 통찰력으로 성찰한 사색과 생활의 정경들이 단아하고 유려한 문체로 생생하게 드러날 이 산문은 연륜의 깊이와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격조 높은 글이 될 것입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씨는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엄마의 말뚝’‘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아주 오래된 농담’ 등을 발표했습니다.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새해부터 격주로 월요일에 연재될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사설] 50년만에 귀국한 국군포로

    국군포로 전용일씨가 50년동안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조국으로 돌아왔다.20대 초반 청년으로 포로가 됐된 그가 늦게나마 귀국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그러나 칠순 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과 분단의 비극이 배어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특히 지난 6월 함께 탈북한 아들이 중국 공안에 발각돼 강제 북송됐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아들의 강제 북송과 많은 위기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전씨의 귀국과정은 분단으로 인한 뒤틀린 현대사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다. 전씨의 힘겨운 귀국에는 불성실하고 미온적인 대응을 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국방부는 아주 간단한 국군포로 확인조차 제대로 못했다.주중 대사관과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탈북 국군포로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홀대했다고 한다.조국을 위해 몸바친 사람을 국가가 돌보지 않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는 전씨의 귀국을 계기로 국군포로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추산되고 있다.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탈북 국군포로들을 위한 정부 부처의 협조체제와 중국과의 협력 강화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귀국한 탈북 국군포로 30여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북한은 국군포로가 한 명도 없다는 거짓 주장을 중단하고 진지하게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 나와야 한다.정부도 북한과의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코끝 찡한 ‘생각있는’ 코미디/정준호·공형진 콤비… 31일 개봉 동해물과 백두산이

    스크린 속에서 부쩍부쩍 커가는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보기의 한 즐거움이다.오는 31일 개봉하는 코미디 ‘동해물과 백두산이’(제작 주머니필름·영화사 샘)가 그런 관람포인트를 가진 영화다. ‘두사부일체’‘가문의 영광’ 등 꾸준히 코믹영화를 흥행시켜온 정준호와,최근 ‘별’‘위대한 유산’ 등에서 주인공을 밀어낼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공형진이 콤비플레이를 이룬 작품.감정이나 제스처의 과잉없이 자연스럽게 사실적인 코미디를 구사하는 공형진의 캐릭터가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맛을 우려낸다. 국산 코믹멜로라면 이제 더 볼 게 없을 만큼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설정부터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북한 군 장교와 병사가 실수로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오도가도 못하고 온갖 해프닝을 겪는다는 이야기 얼개다.북한 매봉산 기지에 근무하던 엘리트 인민군 장교 최백두(정준호)와 제대 말년의 병사 림동해(공형진)는 바다낚시를 나갔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그만 동해안 남한구역으로 표류해온다.구사일생의 기쁨도 잠시.한여름피서철을 맞아 온통 비키니 천국이 돼있는 해수욕장에서 둘은 갑작스러운 ‘문화적 충격’에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댄다. 철저히 코미디 정서에 기댔으면서도 영화는 관객들의 공감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요리조리 드라마에 끼워맞췄다.크게는 남북 대치상황을,작게는 청소년 문제를 끌어들여 작품의 공감대를 넓히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동해로 떠내려온 백두와 동해는,경찰 고위간부의 딸이자 가출 여고생인 한나라(류현경)를 만나 비밀리에 도움을 받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두 남자가 다시 북으로 향하기까지의 좌충우돌 해프닝에 큰 비중을 둔 듯하다.여자친구들과 함께 가출해 방황하는 나라와 우정을 쌓는 대목 말고는 진지한 화면을 찾아볼 수 없다.나라를 찾아다니다 백두와 동해 대신 엉뚱하게 간첩으로 몰려 허둥대는 두 형사(박철,박상욱)의 캐릭터도 코미디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흥행은 못했으나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2002년)로 감식안을 인정받은 안진우 감독 연출.남북분단을 소재로 그흔한 멜로 요소 없이 영화를 다듬어낸 데서 신인감독의 배짱이 충분히 읽힌다.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화국 혁명전사들’을 별난 국외자로 묘사했지만,그를 통해 남북의 문화적 간극을 코끝 찡하게 돌아보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요즘 흔한 코미디물처럼 질척한 성적 농담이나 사랑타령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생각없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한 몇몇 설정 탓에 드라마에 사심없이 빠져들기가 어렵다.백두와 동해가 탈없이 남한을 빠져나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나라가 무엇때문에 반항과 갈등을 거듭하는지 등은 관객의 짐작에 맡겨질 뿐이다.윤곽이 뭉개진 두루뭉술한 메시지들이 주제의식을 다잡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황수정기자 sjh@
  • “이번 강의도 약장수처럼 할 것”/MBC서 한국학 특강 맡는 도올 김용옥 교수

    ‘생구라’‘개XX’‘미친X’….툭툭 내뱉는 것은 육두문자뿐만이 아니다.“그 사람(노무현 대통령),나쁜 사람 아니예요.좀 모자란 것 같긴 하지만….” 문제성 발언들이 거의 분단위로 쏟아진다.여기에 바로 앞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는 듯한 대화법,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곁들여진다.만 1년 만에 다시 TV 강단에 서는 도올 김용옥(사진·54) 중앙대 석좌교수는 여전히 천하를 삼킬 듯 기세등등했다. 도올은 내년 1월5일부터 6개월 동안 MBC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한국학 특강 프로그램을 맡는다.총 24회 분량으로 매주 월 오후 11시에 방영된다.도올은 “그동안 유·불·선 등 기초준비만 잔뜩 하다가 이제서야 ‘본론’에 들어간다.”면서 “(한)국학이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국학 붐을 일으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우리 국민들이 제발 자기비하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성취는 그리 대단하게 해놓고 왜 인식은 없는지….”도올은 “이번 특강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울 것”이라면서 “그를 위해 4명의 인물을 엄선했다.”고 말했다.“조선의기틀을 잡은 정도전,서양과학을 주체적으로 소화하려한 최한기,동학의 최제우,사상의학의 이제마입니다.” 도올이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기대하는 대목은 이제마 강의다.“요즘 ‘대장금’이 인기잖아요? 상승효과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합니다.” 도올의 TV 특강은 97년 SBS ‘명의특강―성과 건강’,99년 EBS ‘노자와 21세기’,2000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2002년 EBS ‘도올,인도를 만나다’에 이어 다섯번째다.그동안 평균 시청률이 10%대를 가뿐히 넘겼다.가구수로 따지면 매회 160만 가구가 ‘도올 원맨쇼’(본인 표현)를 시청한 셈이다. “지루한 것은 질색입니다.제 특강은 촬영,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실험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도입하고 있어요.이번에도 직접 찍은 현장 다큐,난상 토론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도올은 지난해 말 EBS 특강 마지막회에서는 ‘종강 공연’이라며 재즈 밴드의 ‘금강경 노래’ 연주,도올 자신의 랩,문화일보 기자 데뷔 선언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사한 바 있다.“이번 강의도 ‘시장 약장수’처럼 하고 싶어요.최대 1000명까지 들어가는 대형 스튜디오에서 방청객들과 난장판을 만들 계획입니다.” 도올은 내년에는 오로지 TV 특강과 중앙대 강의에만 전념할 생각이다.“지난 학기에 ‘역사와 인간’ 강의를 맡았는데 첫날과 마지막날 수강생 수가 499명으로 완벽히 같았죠.탤런트 장나라가 왔던 첫 날과 마지막 날이 차이가 없었어요.” 혹시 출석을 다하면 A학점을 주겠다는 교수의 공언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럼 학점과 상관없는 종강 ‘가든파티’에 그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왔겠어요? 자식들,질서정연하게 와서 겁나게 처먹데….” 도올 교수는 약속을 지킨 수강생 471명에게 모조리 A를 안겼다.“한국 젊은이들,희망이 있어요.옛날 우리 때보다 훨씬 낫지요.” 채수범기자 lokavid@
  • 철학 강연장 된 법정/송교수, 호메로스·칸트 인용 ‘경계인의 고통’ 피력

    “주체사상에 대해 자폐적 한계를 느껴 유럽의 사회 사상과 이론을 북한의 이론가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 철학자 송두율씨는 1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李大敬)의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자신이 수행한 경계인의 역할을 이같이 설명했다. 송씨는 이날 공판에서 북한 주체사상의 한계와 내재적 접근론에 대한 학문적 성과,호메로스의 서사시 등을 통해 복잡한 심경을 표출해 눈길을 끌었다. 송씨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주체사상은 변방의 세계가 자기긍정을 하기 위해 만든 철학으로 긍정적 야만성과 자폐증적 요소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91년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주체사상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어 “검찰은 내재적 접근법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칸트 철학에 기초한 방법론이며 남북 체제 모두에 대한 접근론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한국에서 나온 자생적 이론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검찰의구속기소를 ‘분서갱유’와 ‘마녀사냥’에 빗대 강도높게 비판했다.송씨는 “‘책을 불태우는 자는 언젠가 사람을 불태운다.’는 말처럼 사상 논쟁은 자유에 맡기고 법은 그 테두리 밖에 있어야 한다.”면서 “나를 구속한 것은 책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송씨는 이어 “검찰이 진리와 허위를 규명하는 학문에 적법과 불법으로 나누는 법의 코드를 적용해 중세식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검찰을 정면 비판했다. 법정에서 송씨에 대한 호칭을 놓고 설전도 벌어졌다.검찰은 “교수 송두율이 아니라 피고인으로 재판받는 만큼 변호인이 피고인으로 부르지 않고 송 교수로 호칭하는 것을 제지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송씨는 “오디세이아가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요정 사이렌의 아름다운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돛에 자신의 몸을 매달았다.”면서 “내 삶의 궤적도 분단된 조국을 보면서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주의 연구에 몸을 매단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발언대] 북한의 양면성 잊지말자

    며칠 전 천하의 명산 금강산을 찾았다.민족분단 50여년의 역사가 갈라 놓은 북쪽의 형제 동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였다.체재 3일동안 북한 주민의 생활모습과 금강산을 둘러보고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기교를 보는 순간,민족 이별의 아픔이 가져다 준 현실속의 괴리감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햇볕정책의 후광으로 금강산 관광의 문이 열렸지만,그 아름다운 산하의 방문자는 오직 남쪽의 동포뿐이라는 사실과,모든 관광코스는 남한의 동포만이 이용토록 한 북쪽의 빗장이 얼마나 높은지 아쉽기만 했다. 관광지를 돌아볼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북한 안내원의 외면적인 ‘친절한’모습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찬양글귀는 그들의 감추어진 내면적 슬픔을 함께 볼 수 있게 해줬다.금강산 행로의 북한 주민과 산행길에서의 북한 안내원·접대원 그리고 교예단의 모습은 김일성 주체사상이 만들어 놓은 세계속의 획일화 집단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평양모란봉 교예단은 북한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서커스단이다.500여명의 단원이 4개조로 나뉘어 세계를 돌며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이 교예단은 북한 주민들에게서 보다 더 처절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했다.단원들은 자신들의 영광 등 모든 것은 오로지 ‘영원한 수령 어버이’를 위해 진심으로 열심히 일했기에 이뤄진 것으로 믿고 있었다.인민·공헌배우로 북한의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도 김일성 부자가 만들어준 은덕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완벽한 신앙적 주체사상이 놀랍기만 했다.이 주체사상은 아직도 북한의 체제를 유지케 할 뿐 아니라 언제,어떠한 응집력을 발휘할지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을 계속 주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선물을 주었는데 그 선물로 흉기를 구입해 선물을 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살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선물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햇볕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비쳐지고 있다.그러나 계속해서 북에게 비추고 있는 이 햇볕이 태풍과 해일을 몰아 온다면 햇볕으로서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종국 서울시의회 성동구의원
  • 시의 세계 쉽고 재미있게 재해석/ 김재홍교수 ‘현대시 100년 한국명시 감상’

    “지금까지 시 혹은 문학은 연구실·강의실 수준에서 논의됐는데 이젠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이 뜻을 담아 현대시사 100년을 돌이켜보며 1차로 명시 405편을 골랐습니다.” 문학수첩에서 펴낸 ‘현대시 100년 한국명시 감상’시리즈의 편저자인 문학평론가 김재홍 경희대교수는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덧붙여서 시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평론가의 세계관을 중시하는 재단비평(입법비평)을 벗어나 독자 위주의 감상비평을 중시해온 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또 비평방법 중 ‘통합주의’라는 잣대에 기댄 그의 노력에 힘입어 같은 제목의 시 ‘진달래꽃’을 노래하되 사랑과 이별(김소월),사회주의 선구자(박팔양),실존·배고픔(조연현) 등 다른 빛깔의 시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고은·신경림 등의 민중시인과 이상·김춘수의 모더니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도 비교할 수 있다. “우리 근대사는 죽임(일제 강점기)와 찢김(분단)으로 점철됩니다.그 와중에 문학도 편을 갈라서 사분오열돼 왔습니다.그러나 ‘생명 중시’가 바탕인 시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여기에 바탕해 좌우와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물론 문학내적인 차이인 서정·민중·모더니즘을 망라하는 시를 모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시를 두루 모은 것은 아니다.제대로 된 시를 고르겠다는 김 교수의 노력은 이번 작업에서 새로운 분석을 보태는 데서 잘 드러난다.그는 “한용운의 ‘님’은 연인·조국·민중·불타 등으로 해석했는데 시집 ‘님의 침묵’을 꼼꼼히 분석하면 님은 ‘나’임을 알 수 있다.”며 “결국 만해의 시세계는 ‘너를 통해 나를 찾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그는 김소월의 ‘산유화’는 존재론적인 철학의 면모를,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생의 양면성과 모순성’으로 해석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수첩의 시리즈 분석 대상은 20세기 초 한용운부터 2000년 등단한 젊은 시인까지 포괄한다.4계절에 맞춰 나눈 4권 출간에 이어 앞으로 ‘시란 무엇인가’‘꽃과 나무’‘어머니와 아버지’(가제) 등 약간 전문화되고 세분된 주제로이어지면서 1000편을 소개할 예정이다.
  • [나의 건강보감] 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장 인요한 박사

    “사냥에는 저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습니다.1895년 처음 이 땅을 밟으신 저의 진외증조부(아버지의 외조부) 유진 벨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사냥을 했습니다.그 분들에게 사냥은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는 방편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이해하는 길이었습니다.” 연대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장 인요한(44) 박사.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그를 ‘외국 사람’이라고 한다.금발에 파란 눈,체격도 110㎏이 넘으니 그럴 수밖에.그러나 마주보고 인사 한마디라도 나눈 사람치고 그를 외국인이라고 우길 사람은 없다.확실히 그는 ‘벽안(碧眼)의 한국인’이다. ●진외증조부 이후 5대가 109년간 한국생활 그의 가족은 5대 109년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그와 그 가족들이 이 땅에 씨뿌려 가꾼 사랑이라는 이름의 나무는 어느새 웅숭깊게 자라 그 허구한 세월을 과실처럼 매달고 우뚝 서있다.3대의 조상이 이 강산에 혼백을 묻었음에도 우리에게 더 건 그 무엇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저는 한국과 한국인에게서 받은 게 참 많습니다.이 땅에서 이국의 선교사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라 교육받고 또 이렇게 병마의 고통을 더는 구원의 일까지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딨겠습니까?”그러면서 “제가 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사냥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값진 지침’이다.그래선지 사냥이라면 밥먹다가도 숟가락을 놓는다.“최근엔 가족들이 전남 보성에서 사냥 휴가를 보내고 왔어요.일주일동안 꿩만 열댓마리 잡았지요.”사냥을 위해 여름 휴가를 미뤘다가 수렵장이 개설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가 보성의 산야를 훑고 왔다.네살난 막둥이는 물론 부인 이지나(41)씨도 사냥을 즐겨 최근 수렵 면허시험을 치르기도 했다.해마다 수렵장이 개설되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못가도 스무번은 사냥길에 나선다.“매년 번갈아 순환수렵장이 열리기 때문에 해마다 고을 하나씩을 섭렵할 수 있다.”며 덩치가 집채만한 그가 좋아라 웃는다. 그는 사냥을 ‘단순한 살생’으로 보는 시각에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지금처럼 먹이사슬이 붕괴된 상태에서 사냥은 생태계의 건강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그가 오로지 사냥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그는 산,그중에서도 지리산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 천번넘게 찾아 “제가 지리산을 오른 횟수는 줄잡아 천번이 넘을 겁니다.보통은 수렵기가 끝나는 3월부터 10월 사이에 가는데,사연이 있습니다.”그와 지리산의 인연은 깊다.진외증조부 이래 그의 조상들은 지리산에서 지난한 선교의 영적 힘을 얻었는가 하면 종교적 근신을 하곤 했다. 또 지리산은 그의 선조가 콜레라 등 풍토병을 피하는 피난처이기도 했다.지금도 노고단과 왕시루봉 인근에는 이 땅의 고단한 선교 역사를 증언하는 이들 유적이 남아 있어 그들이 살았던 세월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전 강보에 쌓인 젖먹이때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했어요.그 후 세상에 걷어 차이고 사람 때문에 울고 싶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묵상에 들곤 합니다.묵상 속에서 다시 용서와 화해의 힘,그리고 고난을 이겨내는 용기를 얻곤 하지요.”이를테면 인 교수 가족에게 지리산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그들이 하릴없이 엎어지지 않도록 건강을 준 어머니의 품같은 곳이다.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하나 있다.누군가 그곳에 선대의 희생을 모욕하듯 ‘이 곳은 무엇을 했던 곳일까요?’라는 제목의 안내판을 세운 것.제목 밑에는 선교사들이 마치 외세의 전위대인 것처럼 써놓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이 대목에서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제 선조는 일제로부터 고종 황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고,폐교와 추방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신사 참배를 거부했으며,3·1운동 때는 일제의 학살 만행을 알리기 위해 사선을 넘었습니다.또 저는 부끄럽지만 광주민주화 운동때,그 처절한 살륙의 현장을 지키며 외신 기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다 추방되기도 했고요.전 감히 말합니다.역사는 온당하게 읽어야 한다고.”그 안내판은 그후 슬그머니 철거됐다. ●젓갈없으면 밥 못먹는 ‘진짜 한국인' 인 박사는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순천에서 보냈다.1895년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진외증조부 유진 벨 남장로교 선교사와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아버지 휴 린튼에 이어 그와 그의 자녀들까지 5대가 이 땅을 지키며 산다.처음 한국땅에 들어올 때 유진 벨은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한 전남 지역을 택해 그 소외의 땅에서 눈물겨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이런 선조의 고난을 두고 “그 분들은 이 땅에 간과 쓸개,혼까지 아낌없이 바쳤고,나는 그 분들의 음덕으로 편하게 사는 셈”이라고 회고했다.그러나 그 역시 선대가 그랬듯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진외증조부가 이 땅에 들어온지 100년이 되는 지난 95년 둘째형 스티브 린튼과 ‘유진벨 재단’을 설립,북한돕기에 나섰다. 처음에는 식량을 지원하다가 지금은 결핵 퇴치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그들 형제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지난 6년동안 북한에 물경 300억원이 넘는 의약품을 지원할 수 있었다.이 약품으로 북한의 결핵환자 15만명을 치료,이 가운데 13만여명이 완치됐다며 흐뭇해 했다. 그는 틀림없는 한국인이다.이 땅에서 오래 살았다거나 이름을 바꿨대서가 아니라 한국인과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식사는 한국식으로 합니다.양식은 한두끼만 먹어도 질리는데,한식은 안그래요.젓갈 양념에 버무린 김치와 청국장,보쌈을 모르고 사는 서구인들,불행해요.한번은 뉴욕엘 갔어요. 기내식에 질려 도착하자마자 우래옥이란 한식집을 찾아갔는데,그곳에서 먹었던 알탕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유진벨재단 설립 北에 의약품 300억 지원 젓갈이 없으면 밥을 못먹고,술이라면 청탁을 가리지 않으며,사람을 좋아해 틈만 나면 달려나가 술판을 벌이기 일쑤인가 하면 ‘연세세브란스는 내 모든 것’이라는 한국적 연고의식,그러면서도 북한돕기의 열정을 감추지 않는 심지까지 가진 그가 한국에서 주변인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담소 말미에 덧붙인 그의 얘기는 우리에게 자괴스러운 부끄러움이었다.“북한을 오가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분단의 상처가 이렇게 큰데,지역이 다시 갈려 있다는 건 우리 민족의 건강성을 해치는 고질입니다.이젠 청산해야죠.” 심재억기자 jeshim@ ■사냥 건강예찬 “사냥만 한 스포츠가 어딨습니까?자연과 교감하며 몸과 정신을단련하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도 물에 씻은 듯 털어냅니다.골프처럼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주색잡기처럼 몸이 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종종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사냥터를 누볐다.벌써 초등학교 5학년때 할아버지에게서 20구경 외대 단발총을 넘겨받아 품고 잤던 일도 생생한 기억.젊어서는 훌치기 총인 레밍턴 870을 사용하다가 5년전 거금 200만원을 들여 이탈리아제 베넬리123 자동연발총을 구입했다. 사냥에는 사냥개도 필수.아버지 대까지는 포인터종을 사용했으나 그는 냄새가 싫어 포인터 대신 영국산 코커스패니얼을 택했다.사냥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절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열혈 헌터’답게 그의 사냥건강론은 막힘이 없다.“가장 멋진 매력은 이 땅의 곳곳을 내 눈으로 살피며 애정을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알다시피 사냥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대자연 속에서 지향없이 걷고 뛰며 야성과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그뿐이 아닙니다.표적을 쫓아 격발하는 순간,세상의 모든 일들을 말끔히 잊곤 하죠.” 전국의 수렵장을 돌며 생경한 풍경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도 무시하지 못한다.더러 희귀 조수류와 만나는 것도 기쁨이다.최근에도 오소리와 산까치를 봤다고 자랑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탓에 그의 사냥원칙은 철저하다.아무리 그럴듯한 표적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안전핀을 풀지 않는다. 보호 조수를 지키는 일도 그의 몫.평소 보호 조수를 머릿속에 담아 실수로라도 그것들을 살상하지 않는 철칙을 어긴 적이 없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바이러스성 간병(肝病)이 번져 야생토끼의 개체수가 줄고 있다며 수의사에게 원인 규명을 의뢰할 만큼 그는 지킬 것은 지키는 사냥꾼이다. 심재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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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분단 상황은 자유로운 인문정신을 속박하고 의미 있는 인문학적 활동도 제약했다.인문학이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이태수 서울대 교수(철학),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부활시키는 일이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며-
  • 한나라 이모저모/최대표 쌀뜨물 하루 한잔 마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6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곧바로 7층 대표실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최 대표는 실내벽에 파랑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고 그 앞에 마련된 스티로폼 받침대에 군용모포를 깔아 농성장을 만들었다. 최 대표는 만 65세라는 나이를 의식한 듯 “이런 단식은 생애 처음”이라고 단식 후유증을 다소 우려하면서도 “나라가 제대로 돼야지...”라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김상현의원등 격려방문 단식장에는 민주당 김상현 의원이 제일 먼저 방문,최 대표와 대화를 나눴고,오후부터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김상현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사건특검은 수용해놓고 자신의 측근비리 특검은 수용하지 않은 것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최 대표는 “지난번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는 특검을 받을 것처럼 했는데,특검이 달려들면 무서운 게 있나봐...”라며 특검 거부를 비판했다.김 의원은 “예산안을 심의중인데 제1당 대표가 단식하는 것을 국민이우려하고 불안해 한다.”고 지적하고 자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 단식을 중단시켰다며 “(최대표 단식도) 중지시킬 명분을 만들겠다.”고 조속한 단식중단을 간접 권유했다. 이어 김덕룡·강재섭·김종하·박종웅 의원 등 소속 의원 40여명과 당원들의 방문이 잇따랐다.최 대표는 의사출신인 정의화 의원과 박종웅 의원 등 단식경험이 있는 의원들로부터 단식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특히 이라크 현지 조사활동을 마치고 이날 오후 귀국한 국회 이라크 조사단의 강창희 의원은 공항에서 당사로 직행,최 대표를 위로하고 40여분간 이라크 현지상황을 보고했다. ●인·아들 당사 찾아 저녁 7시50분쯤에는 부인 백영자씨가 둘째아들 선준씨와 함께 옷가지를 챙겨 당사를 방문,1시간 30여분간 머물다가 돌아갔으며 이후 최 대표는 홍사덕 원내총무,이강두 정책위의장과 만나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최 대표는 위염증세가 있기 때문에 당장 식음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이날부터 사흘간은 쌀뜨물을 끓인 것을 하루 한 컵 정도 마시고 이후부터 생수를 제외하고식음을 전폐할 계획이라고 임태희 대표 비서실장은 전했다. 최 대표는 단식 동안 ‘국가전략의 대전환(류상영)’,‘분단과 통일이야기(서원식)’,‘Fit For Life(건강하게 살기)’ 등을 읽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경기자 olive@
  • 한국 연극史 다시 쓴 15편 릴레이공연 반갑다 ‘연극열전’/내년 1월부터 동숭아트센터서

    지난 20여년간 한국 연극사에 큰 획을 그었던 화제의 명 연극들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극단 동숭아트센터(대표 홍기유)와 문화창작집단 수다(대표 장진)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은 연극 15편을 선정,내년 1월부터 ‘연극열전’이란 타이틀 아래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소극장에서 연중 릴레이 공연한다.오태석 이윤택 김광보 박근형 등 내로라하는 연출가들과 명배우 조재현 윤소정 안석환,그리고 목화 미추 연희단거리패 실험극장 연우무대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들이 총출동하는,최고의 연극시리즈이다. ●서울 관객대상 ‘가장 보고싶은 연극' 조사 대극장인 동숭홀에서 공연될 작품은 ‘에쿠우스’‘남자충동’‘햄릿’‘허삼관 매혈기’‘택시드리벌’‘백마강 달밤에’‘오구’‘피의 결혼’ 등 8편.소극장에선 ‘한씨연대기’‘관객모독’‘판타스틱스’‘나잇마더’‘불 좀 꺼주세요’‘청춘예찬’‘이발사 박봉구’ 등 7편이 공연된다. 이들 작품 목록은 역대 화제작을 중심으로 관객의 선호도 조사,연극인 설문,공연제작 가능성 여부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최종 선정됐다.최근 서울지역 관객 500명을 대상으로 15편 가운데 ‘가장 보고 싶은 연극’을 조사한 결과 ‘햄릿’이 1위에 꼽혔고,이어 ‘에쿠우스’‘관객모독’‘청춘예찬’‘오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주최측은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관객을 적극적으로 극장에 끌어들이는 한편 좋은 작품들이 단발성 공연에 그치지않고 외국의 경우처럼 장기 레퍼토리로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연극열전’의 첫 무대를 장식할 ‘에쿠우스’는 실험극장의 대표작.말 여섯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앨런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이 작품은 1975년 초연 당시 공연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번 공연에는 1991년 5대 앨런을 연기했던 조재현이 다시 무대에 오르고,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광보가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남자충동’은 1997년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와 배우 안석환의 이름 석자를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다.가부장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폭력을 휘두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려 그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입소문만 들어왔던 연극 팬들에겐 반가운 무대이다. ●연희단거리패 ‘오구' 10년간 270만 동원 10년 동안 270만 관객을 모은 초대형 흥행작으로,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연희단거리패의 ‘오구’(이윤택 작·연출)와 전통의 미덕 속에 다양한 실험성을 보여주고 있는 극단 목화의 ‘백마강 달밤에’(오태석 작·연출)도 눈길을 끈다.창단 35주년을 맞는 극단 자유의 ‘피의 결혼’은 1980년대 ‘무엇이 될꼬하니’‘달맞이 꽃’에 이은 죽음의 3부작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극장 프로그램의 첫 작품인 연우무대의 ‘한씨연대기’는 한영덕이라는 평양 출신 의사의 삶을 통해 분단 문제를 조망한 작품.황석영의 소설을 무대화한 것으로 91년 재공연 이후 13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관객을 연극에 끌어들이는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은 극단 76단의 ‘관객모독’도 오랜만에 공연된다. ‘나잇 마더’는 ‘엄마,안녕’이란 제목으로 98년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돼 숱한 엄마와 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작품이다.배우 명계남이 연출자로 나서는 이번 공연에는 실제 모녀지간인 윤소정과 오지혜가 동반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햄릿’은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인 이성열 연출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패키지티켓 구입땐 20~30% 저렴 이밖에 90년대 최고의 흥행작인 ‘불 좀 꺼주세요’,배우 박해일을 발굴한 ‘청춘예찬’,만능 재주꾼 장진의 ‘택시드리벌’ 등은 연극 마니아가 아니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화제작들이다.극단 동숭아트센터의 ‘이발사 박봉구’와 극단 미추의 ‘허삼관 매혈기’는 지난해와 올해 초연한 최근작이다. 공연기간 중 극장 로비에서 연극 사진전과 포스터전,연출가와 배우들이 참가하는 벼룩 시장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된다.20장,10장,5장씩 묶은 패키지 티켓을 사면 25∼30%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 있고,‘연극열전’ 회원에 무료 가입하면 전 공연 20%할인 혜택을 받는다.www.idsartcenter.co.kr(02)762-0010. 이순녀기자 coral@
  • 기고/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니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들의 변방사로 편입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중국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전에,솔직히,불쾌하고 불안하다.진짜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아니면 그들 특유의 막무가내식 소행인가. 중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앞선 문명을 갖추었던 나라다.근현대에는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에서 서양의 총포 앞에 철저히 망가졌어도 한 세기 지나지 않아 다시 재기하는 데 상당한 성공도 거두고 있다.세계 경제대국 대열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은 이해하기 힘든 비문명적 행동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저지르는 것 같아 나로서는 수수께끼 국가다.공감하는 세계의 정세로는 50,60년대 전후해서는 식민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는 시기였는데 중국이 티베트를 공산식민화한 것은 이때다.얼마 전에는 티베트의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민간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오려는 계획을 정부에 압력을 넣어 끝내 무산시켰다. 대만은 대만인들이 원해서 중국 본토에서 갈라선 것이고 지금도 다수의 대만주민은 중국과 합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이제는 국호도 중화민국이라고 하지 않고 대만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이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갈라진 그리고 지금 남북 국민 대다수가 통일을 희망하는 남한과 북한의 분단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대만을 수시 위협하고 있다. 인권의 탄압과 유린의 측면에서도 중국은 자유세계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자국내의 정치 사회 종교 활동은 사사건건 제한되고 있다.법륜공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다.2008년 북경올림픽개최는 중국의 인권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이 인권상황을 비판하고 있다.게다가 중국당국은 목숨걸고 북한을 탈출한 망명자들을 실력으로 저지하여 북으로 되돌려보내는 비인도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서해에서는 밤마다 수백 척의 중국 도적선박들이 우리 수역에 쳐들어와 남획과 약탈을 일삼고 있는데도 중국 정부는 모른 체 태연자약하다.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고기의 씨가 마르도록 쓸어가 이웃나라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고서도 사과도 없고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그러더니 이제는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한다.수 양제를 무찌르고 당 태종을 쳐부순 것이 생생한 우리의 산 고구려역사인데 이거 정말로 느닷없고 뜬금없다.일본이 독도를 욕심내는 것보다 중국이 고구려를 강탈하려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열 배는 더 탐욕스러워 보인다. 북경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절대다수의 중국학생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는 특파원의 글을 읽었다.나는 기득의 세대에는 기대가 없어도 새로운 세대에는 늘 희망을 건다.그것이 비단 반도 한국인만이 아니라 중국인이어도 일본인이어도 그렇다.그들로부터는 반도의 통일도 가능하고 세계평화의 대행진을 위한 아시아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믿는다.그들은 미래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순수한 공존공영의 열정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중국이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중국은 자신을돌아볼 필요가 있다.문명국 중국이(문명국을 자부한다면)주변 국가들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그리고 전통적 이웃으로서 남북통일을 비롯한 한반도 제반 문제에 중국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그런데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봄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도 중국이 보낸 황사라는 사실은 아는가. 황필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 소설가 최인훈 19년만에 단편 발표/분단후 현실 그린 ‘바다의 편지’

    소설가 최인훈(사진·67)씨가 1984년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19년 만에 신작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다.장편소설 ‘화두’ 이후 9년 만의 작품이다.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실린 ‘바다의 편지’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 사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요청에 소설로 답한 것이라고 한다. ‘바다의 편지’는 일인용 잠수정을 타고 침투하다 공격을 받아 수장된 한 젊은 수병의 독백을 통하여 분단과 이후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전반부는 바다가 ‘임무를 위한 배들이 숨어다니는’ 분단의 전선이 아니라,‘아름다운 돛배들의 놀이마당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후반부는 ‘양복입은 무당들,높은 담을 지키는 이국종 맹견들,헛소리를 가르치는 학교들,주택부금을 계산하는 전도사들,씨돼지처럼 살찐 왕과 왕비들,그들을 지키는 순라꾼들’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영원한 경계인의 문학적 유서’라는 해제에서 “최인훈에게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는 잠수부는 인생과 세계를 탐사하여 그 비극적 아이러니를 확인하는 문제적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낙타섬에서’라는 단편에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욕심이 하나 있다.잠수함의 승무원 얘기”라고 털어놓았던 작가는 중편 ‘구운몽’에 삽입한 ‘해전(海戰)’이라는 시에서 잠수함에 탄 젊은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해전’은 ‘바다의 편지’에 다시 삽입되어 눈길을 끈다. 이종수기자 vi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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