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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석탄일 北도 봉축등 설치 신계사등 금강산 4대사찰 복원”

    어쩌면 올 겨울이나 내년 여름쯤 남북 스님들이 함께 안거에 참여해 수행정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동안 연등을 볼 수 없었던 북한의 사찰에서도 일부나마 연등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6·15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에 참가했던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방북 결과를 발표했다. 법장 스님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불교 수장들이 만나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며 “정부 당국간 대화뿐 아니라 불교계를 비롯한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합동법회와 남북 불교회담 등을 통해 논의된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평양지역의 불교문화유적 발굴 조사에 남측 불교계의 참여 및 현재 조계사에 건립 중인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기념전에 북한의 국보급 불교문화재 특별 대여 요청 문제. 이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북남 문화교류를 위해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또 현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신계사를 포함한 금강산 4대 사찰의 복원에 대해서도 양측 대표들이 적극 협조하기로 했으며, 평양 근교의 법운암 단청 회향법회도 함께 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금강산 신계사와 함께 묘향산 보현사에도 봉축등을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북한에서 부처님오신날에 법회 등 행사를 갖기는 하지만 신도들이 참여하는 연등행사는 열지 않아왔다. 이밖에도 신계사에 남측의 스님 한 명과 직원 두 명을 추가로 상주케 하자는 방안, 남북 스님들이 함께 안거에 참여하자는 요청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법장 스님은 “불교 관계자로부터 ‘평양에선 잘 모르지만 시내만 벗어나면 인민들이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불교계 차원에서 무엇이든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계종 차원에서 상설 모금창구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북한 동포들을 돕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반환과 관련,“신사측은 남북간에 반환처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일본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면 반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의 정부당국이 조속히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100년 전 약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온 임진왜란 승전비로, 정부가 반환협의를 위해 북측에 문화재회담을 제의해 놓은 상태다. 마치무라 외상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1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현 상황인 채로 관세협상을 개시하는 데 신중한 자세”라면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초 독도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2005년은 아직 반환점에 오지 않았다. 양국간의 교류를 이어감으로써 우정의 해를 보낸 양국민이 올해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단히 의미가 깊은 한해였다.”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다. 한·일 관계개선에 좋은 복안이라도 있는가. -올해 전반부는 양국관계가 곤란을 겪었다. 양국이 이런 곤란을 뛰어넘어,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동성명에 있는 것처럼 ‘동북아시대를 향한 한·일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간에 더한층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한때의 긴장상태에서 평정한 상황으로, 나아가 양국의 우호협력을 한층 확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지난달 도쿄에서 ‘한반도 출신 옛 군인·군속 및 민간징용자 등의 유골문제에 관한 한·일협의’를 여는 등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착실히 대응하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항구적인 무비자 전환 같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가. -일본 각지에서 ‘가깝고 가까운 나라’로부터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비자면제(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 중 시한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면제에 대해 검토하겠다. ▶한·일 FTA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나. -협상 재개에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두 정상간에 확인된 연내 실질합의를 향해 계속해서 한국과 협력해 갈 생각이다. #역사문제 ▶(주변국 침략과 관련해)일본은 독일보다 사과를 더 했다고 발언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일본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한·일기본조약 등에 따라 국가간 배상 등의 문제를 일괄처리했으나, 독일은 동서로 분단돼 있어 우리같은 국가간 배상문제 등을 일괄처리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 일본과 독일의 대응을 단순히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보는가. -총리 본인이 설명한 대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참배 때마다 ‘부전(不戰·전쟁을 하지 않는다)’을 맹세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미화나 A급 전범을 위한 참배는 아니다. #국제관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은 국제사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일본과 여러 가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해주도록 부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밝혔는데,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실제 외교정책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 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 중요한 과제에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및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가 ‘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것’임을 밝힌 점에 유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관계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중시해 왔다.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이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의 악화를 상정해 관계국의 구체적인 대응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의 목소리가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협상의 조건은 무엇인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성실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한 납치피해자와 관련해 생존자의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촉구해 가겠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우리땅… 거론땐 단호대처” 한·일 양국이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 선정 작업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정부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한 우리나라 영토인 만큼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야스쿠니 문제, 다음에 역사왜곡, 세번째 독도문제”라면서 “특히 독도문제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독도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단호하게 받아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관련, 정부는 이번에 정식의제로 올려 일본의 무성의를 분명히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본은 가능하면 의제에서 제외했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우리 정부는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장관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인터넷방송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검토를 약속한 대로 제3의 추도시설 문제를 검토하도록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마치무라 외상 ‘왜곡 교과서’ 검정때 문부상 역임 마치무라 노부타카(60) 외상은 중의원 7선의 집권 자민당 내 중진이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13년간 공직생활을 했다.1983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문부상을 두 차례 지냈으며, 외무성 정무차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임했다. 2001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지난해 9월 개각의 외교·안보팀 개편 때 외상으로 발탁됐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과제를 떠안고 있으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독도,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겹쳐 유엔에서의 영향력이 큰 중국, 한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4월 “한국인에게 대단한 아픔을 드린 데 반성한다.”고 밝히고 5월 뉴욕의 유엔개혁회의에서는 “일본은 역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독일보다 훨씬 여러 번, 더 많이 사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4월 일본 NHK에 출연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니 이런 바보같은 일도 없다.”고 말해, 외교통상부가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강력 항의하는 공식논평을 낸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최근 한일분쟁 일지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2월25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 “독도는 일본 영토” 발언. ▲4월5일 일본 문부성, 왜곡 교과서 검정. ▲5월11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한국과 북핵 정보 공유 불가” 발언. ▲6월1일 신풍호 한·일 경비정 대치 사건. ▲6월11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발언.
  •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최근 학계의 논쟁 가운데 선 인물이 있다. 바로 서울대 이영훈 교수다. 우리의 근대 경제성장이 식민지 때 시작됐다는 주장에 이어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에서 저임금 등의 꼬리표를 떼내자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런 주장도 주장이지만 그의 특별함은 여기에 실증적 통계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홀로 맞서고 있는 이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악역을 자처한 까닭은. -나는 실증주의자다.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자신과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식민지·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이 사실과 다르며,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자는 것이다. ●70년대 생산성 향상과 임금증가율 비슷 ▶박정희시대 논란은 어떤가. -흔히 저임금과 농어촌·중소기업 배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60년대 데이터를 봤을 때나 맞는 말이다.6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 지난 40여년간 고착화됐다. 상황 변화는 70년대의 고미가 정책과 대기업-중소기업간 산업연계정책인데, 고도성장은 이런 정책으로 가능했다. 저임금 부분도 노동을 한 단위 더 투입하는데 따른 생산성 향상과 임금 증가율이 비슷하게 갔다는 게 중요하다. ▶전태일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전태일로 70년대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70년대의 임금이 생계비의 절반이었다는데 이는 단정하기 어렵다. 정말 그랬다면 빈곤의 세습과 광범위한 슬럼화가 누적되는 이른바 ‘사회적 침전’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뒤집어 보면 분배가 잘됐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통계로 평가할 수 있나.. -통계로 모든 역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법이어서 수많은 신화와 도덕적 허구를 깰 수는 있다. 그게 통계의 힘이다.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통계 수치만 보고 한·일 민족간 차별은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그 지적을 높이 평가한다. 허 교수 자료는 식민시기 생활수준이 최소한 수평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는 수탈론 부정이다. 식민시기 경제성장을 30년대 후반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 ▶경제사 연구에 ‘민족’을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허 교수와 다른 관점인 것 같은데…. -우리는 민족근본주의에 빠져 있다. 모든 기준이 민족이다. 그러나 근본주의, 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박정희 시대를 민주와 인권으로 평가하면 어떤가. -그것도 다시 봐야 한다.10·26 뒤 사면복권된 사람이 800명도 안된다.4000만 인구 중 일부다. 보통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암울했다기보다 외려 자기실현 과정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안 그렇다면 당시 10%대의 고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800여명을 비용으로 중화학·자동차공업, 철강산업을 일으킨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도덕적 관점은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도덕적 잣대로 국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비판자들이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나라 만들기’는 장기적 과정이다. 미국 흑인들은 1950년대에야 공민권을 얻었고 조선도 반석에 오르는 데 70년이 걸렸다. 각 시대는 각각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두번째는 헌법이념과 대의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나설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국민이 있느냐다. 조선시대 소농 중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근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 ▶과거사 문제와 관련, 클린턴처럼 먼저 사과할 수는 없을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했다. 그리고 부패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했다고 본다. ▶결국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보는 관점인 것 같은데. -어떤 사물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20세기 우리 역사도 그렇다. 식민지에, 분단에, 전쟁에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 많았나. 비판할 일이 있으면 해야겠지만 기본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이영훈교수가 주장하는 수량경제사란 이영훈 교수의 접근법은 수량경제사적 관점으로, 이는 서구에서 20세기 초부터 지속되어온 방법이다. 물가, 이윤, 임금 등 장기적인 경제지표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자는 입장이 그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서구의 경우 90년대 들어 거의 폐기됐다는 반론도 있다. 통계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각종 거시경제지표가 건전하다고 발표하지만 서민들은 와닿지 않는다고 아우성이고, 언론은 정부가 실체를 제대로 모른다고 비판하기 일쑤인 점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60년대 이후 일본에서 활발히 다뤄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중반 안병직 교수가 주도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수량경제사가 한국의 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린 것은 90년대 중반.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신력있는 자료와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서구 제국과 달리 근대적 의미의 통계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였으니 그 이전 자료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에 따라 낙성대팀은 양반가와 촌락의 각종 고문서에서 의미있는 통계치들을 추출해 냈다. 지금의 ‘가계부’ 개념과 비슷한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등의 연구물도 이들 고문서에서 추출한 자료를 기초로 했다. 즉, 경북 예천의 박씨가 문헌, 전남 영암의 문씨가 계(契)문서 등을 통해 농촌경제를 분석하고, 족보를 분석해 인구사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비판도 많다. 일본 학계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또 다른 식민주의 폐해라거나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만큼 해석 역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반론 등이 그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유럽헌법 좌초와 한국통일/이덕일 역사평론가

    유럽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잇달아 거부되면서 통합유럽호가 좌초위기를 겪고 있다. 유럽헌법의 핵심조항은 ‘대통령직과 외무장관직 신설, 집행위원회 구성, 상호안보, 기본권 헌장, 이중다수결제도, 핵심정책 거부권 폐지’ 등인데, 이중 핵심정책 거부권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표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유럽헌법이 가져올지도 모를 경제적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5월 동구권 10개국가가 한꺼번에 EU에 가입한 것이 기존 회원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EU의 40% 수준인 동구권 국가들의 가세가 자신들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결국 유럽헌법안 부결의 속내는 통합비용 지불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이는 우리의 통일문제를 돌아보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2004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914달러로 남한의 16분의1 수준이다. 남북이 통일될 경우 한국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 구체적 액수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지만 2003년 홍콩의 HSBC는 통일 첫 해 국내 총생산의 4.4%(236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서울신문 2003년 3월3일자). 마커드 놀랜드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0년간 매년 600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는데,10년간의 통일비용을 원화로 환산하면 약 700조원이었다(매일경제 2003년 10월14일자). 이보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00년 통일 후 10년간 최소 7700억달러(약 855조원)에서 최고 3조 5500억달러(약 3940조원)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문화일보 2000년 4월21일자). 물론 이런 연구 결과들이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통일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들이 경제적 불이익의 발생을 우려해 유럽헌법을 부결시킨 사례는 우리에게 통일문제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다. 군사비와 젊은이들의 의무 징병비용 등 분단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무조건적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반론도 있지만 군사비와 의무 징병비용 등은 분단비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독립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비용이라는 점에서 큰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중국과 일본이 군비경쟁에 나서는 현재의 동북아 상황에서 통일을 달성했다고 우리만 군을 해체하거나 우리 영토를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대폭 축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사적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일을 이룩해야 하지만 자칫 섣불리 접근할 경우 기존의 성과마저 무효로 돌릴 수 있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통일문제는 냉정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통일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이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상호이익이 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일정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우리가 감내할 만한 수준의 피해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류 상황은 로드맵이란 말을 사용하기가 민망하다.20만t의 비료를 갖다 바친 끝에 맺은 합의가 일방적으로 파기되어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수용하는 조공(朝貢)식 교류가 통일 로드맵에 의한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행태가 반복된다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통일에 대한 회의가 확산될 것이 우려된다.‘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던 6·15회담이 몰래 달러를 갖다 바치고야 성사되었다는 사실 하나가 드러나면서 ‘6·15합의’에 감동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지 않았던가. 갈 길이 멀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설계도도 없이 거대한 집을 짓겠다고 덤비다가는 10년 이상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105층짜리 평양 류경호텔 꼴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덕일 역사평론가
  •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전쟁에서 총칼을 겨누었던 참전군인들이 먼저 화해해야 남북 대립을 풀 수 있습니다.”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10일 남측 대표단으로 확정된 윤재철(72·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상이군경회 고문의 소회 속에는 회한과 기대가 동시에 묻어났다. 윤 고문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해 11월 연천지구 전투에서 ‘양 대퇴부 절단’이라는 중상을 입었다.55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오면서 다시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1993년부터 8년 동안 상이군경회 회장을 맡는 동안 2000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 회원단체로 가입하기까지 주변의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에서 민족 공조를 주장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북측과 화해하는 일에 동참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대하던 회원들을 달래는 일이 급선무였다. 윤 고문은 “우리가 먼저 적대적인 감정을 풀지 않으면 영원히 분단국가로 살아야 한다.”라고 전국을 돌며 설득했다.2002년과 2003년 2번의 방북을 결정하면서도 전쟁 희생자가 북측과 교류해 손해날 짓을 왜 하느냐는 거부반응을 이겨내야 했다고 한다. 윤 고문은 앞서 1997년 세계제대군인연맹총회(WVF)를 서울에 유치할 당시에도 북측과 교감있는 스웨덴에 도움을 요청해 북측에 참관자격을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전쟁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탄탄해지는 것을 보며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도 윤 고문의 확신에 힘을 보탰다. 이념과 사상 대립은 또다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윤 고문의 생각이다. 이번 방북길에서는 북측의 전쟁 희생자들을 찾아 실상을 파악해볼 계획이다. 윤 고문은 “진보와 보수로 나눠 갈등만 키우지 말고 숙명적으로 우리 민족은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통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2005년 한반도 그리고 李夏榮 공사/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믿지 마라 미국, 속지마라 소련, 일어 선다 일본, 조심하라 조선” 웬 뜬금없는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이던 1950년대 어른들에게서 흔히 듣던 얘기다. 요즘 들어 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수선하다고 느끼면서 문득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이 담겼음직한 이 네마디 ‘경구’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나라 이름의 자음에 맞춰 붙인 ‘투박한 경고’가 민심 즉 천심까지는 아닐지라도 수십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 후손들에게 묘한 여운들을 남긴다. 조선조 말 중국(청)과 한반도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던 일본쪽의 손을 들어준 미국이다.1905년 7월 미·일간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어 불과 4개월후 일본에 조선을 쇠사슬로 묶는 을사늑약(勒約)을 허용하고 대가로 필리핀을 차지한 미국이고 보면 믿을 만한 나라가 못됐음은 당연하다. 그 후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만든 주역이란 점에서 미·소 양국을 믿지 마라, 속지마라한 것도 쉽게 이해가 간다. 일본이 언젠가는 일어서리라 경고한 것은 우리 선조들의 혜안일 터이지만 다만 중국에 대한 언급은 우리 기억에 없다. 내가 잊었거나 혹여 조상들이 오랜 이웃 대국에의 미묘한 향수로 “중요하다 중국”하고 후손들을 일깨우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중국은 북핵문제나 통상교역 문제뿐 아니라 이래저래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은 항상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현명한 외교를 펴나가지 않으면 편히 살아가기 어렵다는 타이름을 붙였다. 과학이, 병기가 발달해 의미가 없어졌다던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 지정학적 의미는 21세기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마침 금년은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임진왜란, 식민통치, 두 마디면 일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대번 정리된다. 그러나 미국은 간단치 않다.80년 광주까지 오지 않더라도 을사늑약과 관련한 미국의 뒷거래,1919년 3·1만세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위선적 성격 등은 조선 백성의 기대를 반하는 것이었다. 분단 고착화에 이어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은 ‘평화의 사도’로 자리잡아 왔지만 양국 관계는 그러나 애증이 교차하는 미묘한 인연의 연속이었다. 한·미·일 3국관계와 관련해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 조선조 2대 주미공사 이하영(李夏榮)이다.1882년 한·미 수교후 6년 만에 파견된 초대 공사 박정양(朴定陽)에 이어 1889년 서리로 임명된 이 공사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을 억제해보려 백악관과 국무성을 상대로 적극 외교활동을 편 ‘자주외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미측의 냉대만을 기록으로 남겼지만 짧은 1년 임기 중 재외공관 업무의 틀을 마련하고 첫 공사관을 매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다. 청나라 공사가 견제, 조선으로 소환당하는 신세가 됐지만 그뒤 주일본 공사를 거쳐 1905년 법부대신으로 있으면서 을사늑약에 정면 반대하고 나선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이 공사가 116년전 2만 5000달러(당시로는 거금)에 마련한 ‘자주외교’의 상징 워싱턴의 공사관 건물을 다시 매입해 민간교류센터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1981년 말 워싱턴특파원으로 로간서클 15번지의 이 건물을 확인해 특종 보도했던 필자(서울신문 1981년 12월27일자 5면 머릿기사)로선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당시 한·미 수교 100주년 사업으로 매입해 한국문화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주변이 슬럼화해 포기했었다. 이 지역 재개발로 백악관에도 가까운 위치의 이 빅토리아양식 3층 건물은 멋진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불신이다 뭐다하는 한·미간 외교노선의 잡음이나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의미를 중시, 매입할 필요가 있다. 시국과 관련한 노선 문제나 종파문제의 개입이 없도록, 또 이번에는 매입이 반드시 성사되도록 한기총측이 모금이나 서명 캠페인의 폭을 대폭 넓히거나 정부가 나서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 [씨줄날줄] 금강산 관광 100만명/김경홍 논설위원

    강원도 고성 최북단 비무장지대 GOP에서는 전방으로 북한군의 초소도 보이지만 그 뒤편으로는 금강산 옥류봉이 보인다. 동쪽 오른편 해안가로는 남북을 연결하는 7번국도가 이어져 있고, 그 끝쪽으로는 금강산 관광코스의 하나인 삼일포가 보인다. 망원경으로는 관광객들의 움직임도 손에 잡힐 듯하다. 왼쪽으로는 분단의 철책이 있지만 오른쪽으로는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부지런히 오간다. 한 눈에 펼쳐지는 모습이 대치와 교류가 엇갈리는 남북의 현주소다. 이제 교류를 확대하고 대치를 줄여나간다면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지 6년6개월여만인 7일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현대아산측도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수익을 냈다고 한다. 숱한 고비를 넘긴 금강산 관광이 6년여만에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우리의 재산이고 희망이다.8일 오후 금강산 온정각 앞마당에서는 6·15선언 5돌과 관광객 100만 돌파를 기념하는 남북공동 기념식과 ‘열린음악회’가 열린다. 한국의 가수들이 북측 예술단과 합동공연을 펼치고, 남북어린이들이 함께 노래부르는 모습도 전국에 방송될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협력 사업의 성공모델로 평가받아도 될 것 같다. 금강산 관광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남측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팽팽했다. 남남갈등의 와중에서는 대북 퍼주기란 비난도 나왔고, 정부의 관광사업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더욱이 사업의 사령탑이었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금강산 관광사업의 중단까지 거론될 정도로 위기였다. 하지만 2003년부터 시작된 육로관광 등으로 인해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퍼주기사업이 아니라 남북간 평화사업으로 탈바꿈했다. 실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2%, 음식숙박업은 16.3%나 성장했다. 금강산 특구운영이 상당부분 보탬이 됐다는 분석이다. 금강산 관광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현대아산의 끈기와 인내가 있다. 숱한 어려움과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온 결과다. 보여주기나 생색내기식 사업이 아니라 제 살을 깎아먹으면서 버틴 결과다. 정부당국이 직접 나섰다면 정치논리에 밀려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북당국간 협력사업에서도 ‘끈기와 인내’라는 금강산 모델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탄력근무제 30분단위 운영 ‘인기’

    중앙인사위는 직원들이 출근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유형을 기존의 2가지에서 4가지로 다양화해 관심을 끌고 있다. 중앙인사위는 6일,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탄력근무유형을 오전 8시와 10시 출근 2가지에서 오전 8시30분과 9시30분 출근을 추가, 선택의 폭을 넓혀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기존의 1시간 단위의 탄력근무제 시행은 선택의 폭이 좁아 호응도가 낮았지만 30분 단위로 신청을 받은 결과 참가인원도 부쩍 늘었다. 탄력근무 신청자는 지난 2월 27명,3∼5월 23명이었으나 이달 들어 제도보완이 되면서 34명으로 늘었다. 인사위는 그동안 탄력근무 신청을 A형(오전 8시∼오후 5시),B형(오전 10시∼오후 7시) 등 2개 유형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이달부터 A형(오전 8시∼오후 5시),B형(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C형(오전 9시30분∼오후 6시30분),D형(오전 10시∼오후 7시) 등 4개 유형으로 늘렸다. 또 탄력근무자들만 별도로 전자인사관리시스템(PPSS)에 출근시간을 체크하던 것을 출입카드로 대체하고, 탄력근무시간에는 회의나 세미나를 자제하는 등의 개선안도 마련했다. 이에 앞서 인사위는 탄력근무제에 참가했던 9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탄력근무 시간을 30분 단위로 세분하자는 의견에 따라 이를 반영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탄력근무제 운영지침을 확정, 각 기관에 시달하고 유연한 공직문화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적극 운영하도록 촉구했다. 오전 10시∼오후 4시를 ‘공동근무시간’으로 정해 모두 근무하되 나머지 시간은 탄력적으로 운영하라는 것이다. 현재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 곳은 모두 16개 부처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4일 TV 하이라이트]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5시10분)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장병들과 함께 한다. 미팅 코너 ‘청춘!프로젝트 사랑을 위하여’에서는 외롭고 쓸쓸한 병사들을 위한 솔로 탈출 프로젝트가 펼쳐진다.‘사랑하는 아들아’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육성편지가 깜짝 공개되고 이어 모자의 뜨거운 상봉이 이어진다. ●온리 유(SBS 오후 9시45분) 요리 경연대회에 나간 은재는 녹차 티백을 이용한 라면을 만들어 대상을 수상한다. 집에 돌아온 은재는 엄마 앞에 상장을 내밀지만 대학에 불합격한 것도 자랑이냐는 면박만 듣는다. 요리를 포기할 수 없는 은재는 현성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자유로 끝자락의 파주. 가로막힌 철책과 각종 위령탑들, 그리고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그대로 멈춰서 있는 이곳은 국토분단의 현실을 실감나게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 수계를 거슬러 갔다 오는 통일여행을 떠나본다. ●특집 기획-황우석의 도전과 혁명(EBS 오후 7시20분)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로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이룬 황우석 교수의 연구 업적을 집중 조명한다. 또한 영국 월머트 박사팀과 루게릭병 공동연구를 시작한 황 교수팀의 국제 공동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아본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거리에서 홍섭과 마리아의 모습을 목격한 용빈은 호텔로 들어가는 둘을 미행한다. 용빈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 홍섭을 후려친다. 지금까지 홍섭이 자신에게 보인 행동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된 용빈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한편, 용란은 아버지가 한돌을 쫓아냈다는 것을 알고 울부짖는다. ●위험한 사랑(KBS2 오전 9시) 수완은 결혼은 없던 것으로 했으니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고 강제에게 말한다. 간발의 차이로 강제를 늦게 만나게 된 정현은 강제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 놓고, 강제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정현을 보는 게 힘들다. 정현은 생각 끝에 다시 수완을 찾지만, 수완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 분단의 상징 DMZ서 평화의 메시지를

    광복 60주년과 ‘경기방문의 해’를 맞아 경기도가 주최하는 ‘세계평화축전’(Peace Festival 2005)이 8월1일부터 9월11일까지 42일 동안 임진각, 도라산역, 헤이리, 파주출판문화단지 일대에서 펼쳐진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상징 DMZ(비무장지대)를 평화의 의미로 승화시킨다는 취지로 열리는 행사의 주제는 ‘평화·상생·통일·생명’.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평화와 화해, 통일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이 분단현장인 임진각을 넘어 세계인의 마음 속에 전해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행사의미를 설명했다. 문화기획가 강준혁씨의 주도로 개발된 이번 축제 프로그램에는 해외 17개국 17개 단체, 국내 75개 단체 등 국내외 문화예술인 1000여명이 참가한다. 주최측이 가장 역점을 둔 프로그램은 개막식인 8월1일 오후 7시 점등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생명촛불 파빌리온’. 임진각 일대에 3만여평 규모로 조성될 주행사장 내 50m 길이의 파빌리온에 설치된 3000개의 촛불이 행사기간 동안 일반인들의 기부를 통해 밝혀지게 되며, 수익금 전액은 유니세프(UNICEF)에 전달된다. 또 기부금을 받고 기부자의 메시지를 돌판에 새겨주는 ‘통일기원 돌무지’의 수익금은 북한 어린이 돕기에 쓰여질 계획이다. 일반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 부문은 8월14일 광복 60주년 전야제에서부터 봇물 터질 공연무대들. 임진각 주행사장 내 2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에서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공연 100여개가 번갈아 선보인다. 도라산 평화·인권 강연회,DMZ포럼, 세계생명문화포럼 등 학술행사도 다채롭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르타 동티모르 외무부장관,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테드 터너 전 CNN회장, 김지하 시인 등이 참석해 평화담론의 장을 만들 예정이다. 이밖에 세계적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DMZ 사진을 전시하는 ‘하늘에서 본 DMZ展’(7월11일부터), 다양한 인류의 얼굴사진을 보여주는 ‘얼굴展’(7월1일부터), 영상메시지를 통해 국내외 참가자들이 소통하는 ‘메시지展’(8월1일부터) 등이 사전행사로 준비된다. 한편 주최측은 “광복 60주년 전야제에 평양 윤이상오케스트라를 초청하려고 협의 중이나, 아직 참가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술이 술술] 광장/최인훈

    문학작품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상황과 연관돼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 안에 담겨 있는 ‘시대정신’, 즉 당시 사람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고뇌를 온전하고 명료하게 표현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위대한 혁명기의 정신과 인간관의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존경받는다면, 최인훈의 ‘광장’과 그 주인공 이명훈은 분단시대에서 4·19혁명으로 나타난 역사적 전환기의 민족의 사상과 고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4·19혁명의 의미는 단지 부패한 독재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무너뜨린 민주적 정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해방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분단과 그 체제가 강요했던 비민주적 억압을 뚫고 민중 스스로 이 사회의 주인임을 선언하며 나섰던 주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1960년의 위대한 4월은 시인 신동엽의 표현대로 ‘껍데기들’, 곧 분단으로 대표되는 이념적 대립과 갈등, 그에 기생하는 억압적 사회체제와 정치구조를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 민중 자신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회복해야 한다는 방향을 부여해 주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4·19를 여전히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10월 ‘새벽’이라는 잡지에 처음 발표됐다. 이념에 의한 남북 분단과 그로 인한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민족분단의 비극을 이데올로기와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와 결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4·19혁명으로 드러난 의식의 전환과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주인공인 이명준의 행적과 심리적 자의식을 통해 작가는 남과 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현실을 비판한다. 이명준은 나름의 방식으로 남북의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현실에 순응하지도, 현실을 무작정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속한 사회와 현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친일파가 해방 후 고위직에 오르고 타락과 부조리, 방종에 가득 찬 ‘남’이나 경색된 이데올로기, 허위, 부자유가 만연한 ‘북’ 모두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모두 진정한 인간 삶을 충족시키기 어려운데, 그것은 애당초 남과 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모두 사회 성원들의 자생적인 욕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중립국.”…“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중립국.”… “…대한민국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북한 생활과 포로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중립국.” 이명준이 포로수용소에서 나누는 인상적인 이 대화에는 민족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고뇌, 나아가 우리 민족의 고뇌가 응축돼 있다. 이명준이 선택한 ‘중립국’은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남과 북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대립항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준이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치는 것은 민족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학년:중2∼고3 -관련교과:고등 국어, 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정치, 한국근현대사, 사회문화, 한국지리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태백산맥(조정래),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회색인(최인훈), 신동엽 전집(신동엽),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기출논제:고려대 1998학년도 인문계 정시 논술, 가톨릭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연세대 2000학년도 인문계 정시 논술, 서울대 2000학년도 인문계 수시 지필고사, 서강대 2000학년도 1차 모의논술, 경북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생각해보기 -이 작품에서 ‘밀실’과 ‘광장’은 무엇을 상징할까.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역사적 현실에서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과 자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분단’과 ‘통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 늦봄통일상에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이 사단법인 통일맞이(이사장 장영달) 주관 제10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30일 선정됐다. 늦봄통일상 심사위원회는 고 시인이 ▲시집 ‘백두산’‘만인보’ 등으로 민족의 분단체제 극복과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남북작가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앞장선 점 등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시상식은 6월4일 오후 4시 배재빌딩 1층 고급 세미나실에서 있다.
  • ‘장욱진미술관’ 행정도시 유탄

    ‘장욱진미술관’ 행정도시 유탄

    일제의 압제와 분단, 동족상잔의 아픔속에서도 동화처럼 천진난만한 그림으로 세상을 감쌌던 장욱진(1918∼90) 화백. 장욱진 미술관 건립계획이 암초에 부딪혔다. 미술관 터를 제공하겠다던 기증자 가족들이 최근 난색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건립예정 터는 고향인 충남 연기다. 행정수도건설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땅값이 급등한 것이 빌미가 됐다. 장 화백의 친인척과 연기지역 주민들은 2003년 4월 ‘장욱진화백선양사업회’를 만들고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지는 장 화백의 친척 장 모(63)씨가 기증하기로 했다. 연기군 동면 송용리에 있는 나대지 2800여평이다. 화백의 생가와 가까워 미술관 터로는 적격이다. 생가에는 현재 장 화백의 큰어머니가 산다. 하지만 최근 기증자 가족들이 말리고 나섰다. 올해 88세인 그의 노모 역시 “작년에 에미(며느리)도 교직을 그만뒀는데. 변변한 재산도 없으면서 노후를 생각해야지.”라며 기증 반대의 뜻을 밝혔다. 행정수도와 행정도시건립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평당 6만∼7만원이던 이 땅은 현재 30만∼40만원을 호가한다. 26일 송용리에서 만난 기증자 노모는 “장 화백이 6·25 때 피란와 자식이 다니는 근처 연동초등학교에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고 회고했다. 노모는 “사람이 참 착했다.”면서 속마음은 갈등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장 화백은 7살 때 고향을 떠났다가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피란왔다. 학교에 기증한 ‘연동풍경’이란 대작은 그때의 작품이다. 기증자는 “가족을 설득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장 화백의 큰딸 경수(61)씨는 “땅을 기증하겠다는 일가 보기가 민망해 시골을 가기가 겁난다.”고 난처해 했다. 그는 “어머니(사학자 이병도의 딸)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미술관이 완공된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고향인 연기지역이면 어디든 괜찮다.”고 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랐다. 터가 기증되면 연기군은 국비와 도·군비 등 50억원을 들여 지상 2층짜리 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관내에 그렇게 큰 군유지가 없다.”며 “터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 장욱진 화백 ‘나는 심플하다.’를 모토로 향토성과 서정성이 짙은 화풍을 일군 미술 근대화의 선봉이었다. 동양화적인 수법에 동양적인 철학, 사상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동화 같은 순수함 속에서도 사회의식이 명료했다. 김환기, 유영국 화백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1954∼1960) 자리를 6년만에 버리고 자연에서 삶을 위로 받아야 한다며 덕소, 수안보, 신갈 등 외진 산골의 화실에서 타협을 모르고 오로지 그림에 매진했다. 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국제문학포럼 서울평화선언 채택

    고은 시인,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영국 작가 마거릿 드래블, 소설가 황석영(앞줄 왼쪽부터)씨 등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자들이 27일 한반도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했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다양한 토론을 벌인 이들은 판문점 방문 직후 경기도 파주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국제정치의 도구로서의 전쟁 종식’ 등을 포함한 7개 조항의 서울평화선언을 채택했다. 한국전 때 북측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의 제안으로 작성된 서울평화선언은 ▲핵 확산 금지와 전지구적 무장해제를 위한 노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지원 ▲모든 소수인종들에 대한 권리의 존중 등을 담고 있다. 서울평화선언은 포럼에 참가한 국내외 작가 81명 가운데 78명의 서명으로 이뤄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여러분이 가는 길은 매우 힘들고 불편하고 비싼 길이 될 것이며, 여러분의 다리는 매우 아플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삶 자체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 통일의 과정을 축약한 대표적인 독일의 저항 시인 볼프 비어만(69). 그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사흘째인 25일 기자회견에 앞서, 기타를 치며 한국의 저항 시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불러 보였다. 그리고는 특유의 신랄한 어투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동·서독의 경우 보다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처럼 모두 손 잡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단된 옛 독일에서 험난한 인생역정을 경험했는데, 어떤 이유로 서독을 등지고 동독으로 가게 됐는가. -아버지는 파시즘에 대항해 지하운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만 남기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나를 ‘작은 공산당원’으로 키웠고,16살때 동독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국경에서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들어오고 있어 상당히 놀랐다. 동독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이유로 서독으로 추방당했나. -훔볼트 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수학을 공부했다. 베를린 앙상블이라는 악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비판적인 내용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극단은 폐쇄됐고, 대신 체제에 대항하는 시와 노래를 쓰게 됐다. 그 시와 노래들이 수기와 녹음기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결국 서독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동독에서의 대표적인 저항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아침 이슬’에 비견되는 노래로 제목은 ‘격려’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첫번째 두 소절인 ‘이 모진 시대에 그대, 굳어지지 말라’라는 ‘언어유희’에 공감을 느꼈다. 시대적인 ‘경직성’을 언급하기 위한 노래였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많은 양심수의 영혼을 채워주는 ‘빵’같은 역할을 했다. 통일을 열망하는 한국의 국민들과 작가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면. -충고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다른 민족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은 전혀 없다. 한국은 한국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서로 싸우고, 통일을 외치던 사람을 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경고 받은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진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내 경고를 듣고 한국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지기를 바란다. 1935년 옛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첫 시집 ‘철사줄 하프’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내면서 동독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고,1976년 서독으로 추방당하면서 반체제 작가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2년 전부터 김민기와 인연을 맺어 왔으며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시·노래 콘서트 무대를 마련한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클릭 이슈] 한총련 의장 방북 논란

    [클릭 이슈] 한총련 의장 방북 논란

    한총련 의장이 넘은 것은 실정법의 테두리인가, 분단의 굴레인가. 제13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을 맡고 있는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 송효원(22·여)씨가 사상 처음으로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북한을 방문한 것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적·법리적 논쟁뿐 아니라 이념 논쟁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의 동상이몽 송씨의 방북 논란은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충돌하는 데서 시작한다. 송씨의 방북이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면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호창 변호사는 “같은 사안을 두고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을, 검찰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상반된 판단을 해야 하는 우리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면서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평가했다. 반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정을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방북했다면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소속 임광규 변호사는 “이적단체의 대표가 정부의 허가를 받고 반국가단체로 드나드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송씨의 자격이 아니라 방북 내용이 관건 방북을 놓고 판단하는 두 법률이 서로 부딪치는 현실 속에 정부의 입장도 혼선을 빚고 있다. 통일부는 송씨가 대학생 신분의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것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개인자격으로 참가했다는 송씨는 방북을 앞두고 한총련 홈페이지에 ‘남북대학생 상봉모임에 참가하며,13기 한총련 의장 송효원이 전체 청년학생들에게 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겨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은 수배자가 아니라면 해외 출국이나 방북절차상 지장이 없다는 것이지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또 송씨 등 방북단의 활동이 현행법을 위반했다면 처벌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송 의장의 방북도 방북 사실보다는 북한에서 위법이나 불법 활동이 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북한에서 열린 8·15 통일 축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고 방북했던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만경대 방명록에 남긴 글 때문에 형사처벌받기도 했다. ●뜨거운 감자, 한총련 합법화 한총련의 이적단체 여부도 방북 논란을 가열시키는 쟁점이 되고 있다. 대법원은 1998년 제5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인정했으며 지난해 제10기 한총련에 대한 판결에서 “그 강령 및 규약의 일부 변경에도 불구하고 종전에 비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매년 새로 구성된 한총련 집행부를 대상으로 판단해 왔기 때문에 올해 꾸려진 13기 한총련이 이적단체인지는 다시 판결을 받아 봐야 한다. 송 변호사는 “현재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인정된 것은 지난 10기 한총련이 마지막이었다.”면서 “기존의 판결에 근거해 이번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예단하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새로 집행부가 꾸려져 일부 성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한총련이라는 이적단체는 유지된다는 입장 속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13기 한총련의 경우 아직 강령 등이 확정되지 않아 이적성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3기 한총련은 27일 공식 출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송씨의 방북 논란은 이념 논쟁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관계자는 “한총련이 이적성을 벗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정부가 그들의 이적활동을 용인했다.”면서 “한총련의 불법활동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계자는 “시대에 뒤처진 이적성 등에 대한 시비로 이번 대학생 모임의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현대엔 다양한 가상현실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합니다. 전통적 역사개념, 즉 한 개의 현실이 보다 나은 현실을 향해 나간다는 개념의 역사는 정지 또는 단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이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지만 마르크스적 낙관론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1982년 저작 ‘시뮬라시옹’에서 현대를 ‘시뮬라시옹(모사)의 시대’로 규정했던 장 보드리야르(76)는 24일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에서 현실이란 없다. 진실이나 원본도 없고 그 모사물(시뮬라크르)이나 모사물의 모사물만이 존재한다.”며 특유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또 이같은 동시다발적 가상현실이 ‘예측불가능한 현실이면서 두려운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보드리야르는 ‘인간의 삶 자체가 변화·발전의 이어짐 아닌가.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점진적 변화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것으로의 변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또 “진실과 그 모사물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위적 가상현실만 존재하면서 분열과 분절이 일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이에 대해 무조건적 거부와 비관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상황에 대해 그는 “한반도 분단상황은 분명 낡은 개념이고 삘리 해소되기를 희망한다.”면서도 “그러나 분단이 사라진다고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베를린 장벽의 예에서 보듯 동일화로 인해 예전에 겪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대의 트렌드인 세계화는 부와 재화, 인력 교류를 통해 국경과 분단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빈자와 부자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룹간 종교간 등에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차별이 생기면서 테러리즘이 파생되고 있다.”고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시뮬라시옹’이란 독특한 현실인식 이론을 만든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현존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으며,‘사물의 체계’(1968),‘생산의 체계’(1975),‘완전범죄’(1995) 등의 저서를 통해 현대문명의 가상성과 기술문명의 폐해를 비판해 왔다. 글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獨시인 비어만·김민기 27일 콘서트

    독일 반체제 시인 볼프 비어만(69)과 1970∼80년대 저항문화의 상징 김민기(54)가 노래로 만난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하는 볼프 비어만은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자신의 시와 노래로 꾸미는 콘서트 무대에 선다. 1965년 첫 시집 ‘철삿줄 하프’를 발표한 이래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낸 볼프 비어만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7세때인 1953년 동독으로 이주한 그는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이유로 76년 서독으로 추방됐고, 이후에도 서독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독어독문학회(회장 김충남)와 극단 학전(대표 김민기)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콘서트는 비어만과 김민기 대표의 남다른 인연이 계기가 됐다. 몇 해 전 함부르크에서 비어만을 만난 김 대표가 한국에 오면 자신의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비어만은 자신의 글에서 김 대표를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비어만은 콘서트에서 자신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시대별로 선곡한 9곡의 자작시와 자작곡을 들려준다. 마지막엔 김민기의 대표곡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부르고, 이에 화답해 비어만의 곡을 김 대표가 우리말로 번역해 관객과 함께 부를 예정이다. 입장료는 무료.(02)820-510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북한 무용수 조명애 애니콜 광고모델로

    ‘북녀(北女)’가 ‘애니콜’을 타고 온다. 제일기획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의 새 광고모델로 북한 만수대 예술단 소속 무용수 조명애(23)를 캐스팅했다고 17일 밝혔다. 북한 현역 무용수가 우리측 상업 광고 모델로 등장하기는 분단 60여년만에 처음이다. 조명애는 2002년 서울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에서 북측 기수단으로 입장해 우리측에 얼굴을 알린 북한 문화예술계의 간판 스타. ●‘하나의 울림’ 주제… 이효리도 출연 광고는 ‘하나의 울림’이란 주제 아래 만남·화합·교감·희망을 소재로 조명애와 남측 여배우 이효리가 우연히 만나 서로 교감하면서 하나가 돼 가는 과정을 총 4편에 걸쳐 담고 있다.1·2편은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촬영됐다. 조명애와 이효리가 함께 나오는 장면은 3편부터다.3·4편도 상하이에서 촬영된다. 이번 광고 촬영의 북한측 공식 창구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상하이에서 지난달 2∼12일까지 이뤄진 광고촬영 현장에는 이금철(48) 민화협 부장 등 8명이 조명애를 대동하고 직접 참여했다. 이씨는 1989년 임수경씨의 방북시 평양외국어대 학생으로 안내를 맡았던 인물이다. ●“출연료는 통상적인 수준” 제일기획 박용진 국장은 “남측 캐스팅 창구인 ㈜스카이-씨케이가 조명애의 모델권을 갖고 있고, 광고심의에서 북측 모델을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광고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스카이-씨케이와의 계약기간은 1년”이라며 “정확한 광고출연료를 밝힐 수는 없지만 기존 애니콜 모델인 이효리·권상우·문근영 등 특A급 모델이 받는 정도가 아닌 그저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광고는 다음달 말쯤 국내에 TV와 신문을 통해 선보인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교황, 남북 동시방문 긍정적”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한 성염 주 로마교황청 한국대사는 13일 “남북한 동시방문 요청에 대해 교황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성염 대사는 이날 평화방송 시사프로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주 교황청 외교사절단이 12일(현지시간)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성염 대사는 인터뷰에서 “제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에서 왔다.’고 소개했더니 교황께서 제가 한국에서 온 것을 즉시 알고 상당히 반가워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마치 억지로 두 몸으로 갈라진 샴쌍둥이 같은 처지다. 남북 화해를 위해 교황님의 축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교황님이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하시면 한반도 긴장완화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교황께서 ‘제발 그 말씀대로 제게 이뤄지길 바란다.’며 긍정적인 뜻을 담아 답변하셨다.”고 덧붙였다. 성염 대사는 “면담 당시 교황께서 의외로 상당히 밝은 표정으로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유일하게 분단을 겪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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