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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이웃 돕고 사회통합에 최선”

    “교회가 개인의 기복(祈福)을 부추기고 교단별로 분열되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교회의 화합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돕고 공존을 위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통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박경조(61) 주교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치열한 반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사회가 가치관의 변화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교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회개의 일성이었다. 박 주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교회가 서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고 털어놨다.“사회가 변하는 만큼 신앙적 가치관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사회 통합을 위해 나서야 할 때이지요.” 특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의 관계에 대해 “같은 뿌리이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접근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그러나 소외된 이웃, 이재민 돕기 등 화합할 수 있는 부분은 힘을 모을 것”이라며 계속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년 부활절 예배를 공동으로 열기로 한 만큼,‘한반도 통일’을 위한 공동예배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주교는 교회 일치운동 및 생명·환경운동에 관심이 많다. 특히 KNCC 일치위원장을 맡아 가톨릭(구교)과 개신교(신교)의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루터교·정교회 등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성공회는 세계적으로 신·구교의 가교·매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회 출신으로 KNCC 회장을 맡은 만큼 한국교회간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는 박 주교는 “후세에게 다양한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세계교회의 화두로 떠올랐다.”면서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생명을 나누고 약자를 위하는 공존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주교는 “6·25 분단 등을 겪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 위하다 보니 종교도 욕심과 탐욕,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변질됐다.”면서 “예수님은 ‘나’와 ‘가족’을 넘어 남을 위해 헌신하는 새로운 길로 가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역설했다. 한편 KNCC는 성공회와 함께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 11월쯤 6자회담 참가국 성공회 대주교들이 만나 북한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론] 친일파 재산과 헌법적 정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시론] 친일파 재산과 헌법적 정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 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자.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 따라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30여년만에 돌아왔을 때, 조국은 이미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점되어 있었다. 이 비탄스럽고 착잡한 현실을 달래며 백범은 자신의 숙소로 찾아와 흔적을 받아 가기를 소망하는 지인들에게 위의 글과 함께 많이 남긴 휘호는 간명하게 쓴 ‘民族正氣’(민족정기)였다. 현재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 한쪽에 돌비로 세워져 있다. 광복 직후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은 ‘친일반민족분자’들에 대한 청산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큰 대륙인 중국만 해도 이 역사적 과업을 철저히 진행하였다. 중국은 직접적 친일행위자뿐만 아니라 ‘친일행위방조자’들마저 혹독한 역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과정이 없이는 헌법적(민족적) 정의 구현이 불가능하게 되고, 헌법적 정의의 수립이 없이는 ‘새로운 국가 창건’ 또한 불가능하게 됨은 자명한 일. 백범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광복 조국의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친일파 청산을 통한 민족정기의 수립이야말로 당면한 최대 과제이며, 조국의 분단 저지 운동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라고 역설하였다. 백범의 ‘민족정기’ 확립의 꿈은 논란은 있지만 남한보다 북한에서 상당부분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를 내세워 민족적 자존감이자 남측에 대한 정신적 우월성으로 강조해오고 있기도 하다. 주변의 역사적 환경이 이러하건만 방성대곡할 일이 친일반민족분자의 후손과 헌법적 정의를 외면하는 ‘일부’ 법관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친일반민족분자의 재산권 반환 청구 소송’과 원고 승소 판결이 그것이다. 대명천지에 이 무슨 후안무치한 소행이란 말인가! 이 모든 일들이 ‘민족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헌정사 뒤안에 남아 있는 부끄럽고 추악한 악취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민족정기’의 소독제로 말끔하게 청산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 오는 후손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분자들의 후손들은 ‘공수래공수거’인 소풍 같은 인생길에서 두고 떠날 재물에 눈이 어두워 대를 이어 ‘반민족분자’로 낙인찍히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법부는 후안무치한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처리함에 있어서 최고 규범인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 때 헌법은 “성문의 헌법 조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정기’에 터잡은 헌법적 정의 구현을 내용으로 하는 ‘실질적 헌법’을 의미한다.”는 국내외 헌법재판의 판례를 명심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하여 친일파 후손들의 손을 들어 주는 법관은 마땅히 반헌법, 반민족적 법관으로 간주하여 국회는 ‘탄핵소추’를, 정의로운 국민들은 해당 법관에 대한 ‘범국민 파면청원’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 모두가 명심할 백범의 유언, 귀담아 실천했더라면 민족사의 획기적 전환을 도모할 수 있었을 유언이 있으니 “현실이냐 비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관건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 학교체험 프로 큰효과

    학교체험 프로 큰효과

    겨울방학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는 학생·학부모들은 각종 캠프에 관심을 기울일 시기다. 여름에 비해 야외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특히 겨울방학에는 영어 등 ‘학습’을 바탕으로 스키 등의 활동을 첨가한 캠프가 많다. 각종 캠프의 특징과 챙겨야 할 점을 알아본다. ■ 공공기관 주관 믿을만 방학 캠프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역시 영어캠프다. 국내와 해외로 구분되며, 기간도 1∼8주 정도로 다양하다. 주관사, 숙박 형태, 커리큘럼 등을 꼼꼼히 살펴 선택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캠프 저렴하고 안정감 국내 캠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아이들도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싸고 믿을만한 것이 각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캠프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영어체험마을과 서울 강서·남부·서부교육청 등의 초등학생 캠프, 경남 창녕 교원단체가 주최하는 캠프가 대표적이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주최하는 캠프도 알차다. 기숙사 등 시설과 교수요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크게 비싸지 않고 특색있는 노하우를 내세우기도 한다. 한국외대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i-외대 이중언어캠프’를 개최한다. 사전에 테스트를 통과해야 참가할 수 있으며, 일반과정 입소자 가운데 10%를 선발해 입소 전 1대1 화상교육으로 영어 두려움을 없애도록 돕고, 캠프 후에는 전원에게 사후 화상교육을 한다. 한영외고에서 열리는 ‘한영 OSP Pre AP 캠프’는 우수한 중학생들을 선발해 한영외고 유학반을 미리 체험해 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캠프 영어·문화 동시체험 해외 캠프는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에는 외국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업에 그대로 참여하면서 방과후 보충수업을 듣는 학교체험프로그램이 크게 늘었다.1∼2명 단위로 홈스테이를 하며,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경우라면 단기간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캐나다 전문 유학원인 서울신문K&C는 캐나다 벤쿠버 서리 교육청 관할 공립학교를 3·6주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현지 교육청이 엄선한 홈스테이 가정에 머물면서 정규 수업에 참여한다. 미국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열리는 ‘디즈니 청소년 영어캠프’도 특색있다. 디즈니의 다양한 놀이시설 및 테마파크를 이용하며 과학의 원리 등을 영어로 배운다. 그동안 미국·캐나다 위주였던 해외 캠프는 최근 호주·뉴질랜드는 물론 필리핀·말레이시아·하와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100만원 안팎의 필리핀 단기 캠프부터 1000만원 가까이 하는 북미 8주짜리까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캠프 선택시 주의점 해외캠프를 선택할 때는 주관사가 믿을만 한 곳인지부터 꼼꼼히 따져야 한다. 자료나 약관을 꼼꼼히 읽고 중도 해약 가능 여부와 환불 조건, 인솔자 동행 여부, 현지 숙박 형태, 보험 가입·병원 이용 여부 등도 체크해야 한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출발전 가족끼리 영어대화 연습을 길어야 한 달 남짓이 대부분인 영어 캠프로 단번에 영어실력이 쑥 늘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캠프 참가를 전후해 간단한 준비와 학습을 곁들여 주면 그 효과를 120%로 만들 수 있다. ●부모도 영어 이메일 연습을 우선 캠프 시작 전까지 영어에 적응하고 친숙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국내 캠프라도 24시간 영어만 사용하는 캠프가 대부분이므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단한 영어회화를 익히고 가는 게 중요하다.‘화장실이 어디죠?’ 등의 필수적인 표현과 간단한 자기소개 정도면 된다.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와 통화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부모도 가급적 영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 보자. 어색하지만 부모와 영어로 대화하다 보면 아이는 마치 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색다른 흥미를 느끼게 된다. ●문화원 행사참여 외국인과 접촉 기회로 캠프를 무리없이 끝내면 이때부터 1∼2주간이 영어에 대한 흥미가 가장 많아지는 시기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영어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 아이들이 캠프 기간에 배운 책의 내용을 관심 있게 보면서,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해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질문해 준다면 캠프기간 중 아이의 수업 태도도 점검할 수 있고 캠프의 수준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캠프 중에 같이 생활했던 반 친구들, 외국인 선생님과의 영어로 메일 주고받기는 흥미 유지와 더불어 친교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 도움말 i-외대 권혁재 사업본부장(한국외대 교수) ■ 아이 의견 존중해 고르세요 영어 외에 역사·문화·과학캠프 등도 다양하다. 한국역사문화학교는 강화도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캠프’를 연다. 한배달역사문화학교는 분단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민족분단체험캠프’를 마련했다. 창의성 계발을 목표로 하는 ‘자신감 리더십 캠프’, 심리기술 훈련으로 집중력을 키우는 ‘NLP 집중력 리더십 캠프’ 등 인성 캠프도 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NASA 우주비행사 캠프’나 ‘천문과학캠프’가 적격이다.‘바이오사이언스 캠프’에서는 동물 해부,DNA 추출 과정 등을 관찰할 수 있다.‘중미산 스키 천문캠프’는 천문과학캠프에 스키 캠프를 접목했다. 캠프를 선택할 때는 나이, 체력, 성격, 지적 능력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활발한 성격이라면 문화·과학 캠프를, 내성적인 아이라면 국토순례·레포츠 등 캠프를 추천할 만 하다.‘캠프나라’ 최선희 대리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선택하고, 주최하는 단체가 믿을만한 곳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송두율칼럼] 예술과 정치

    [송두율칼럼] 예술과 정치

    윤이상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가 남과 북, 그리고 고인이 잠들고 있는 이곳 베를린에서도 있었다. 윤 선생이 영면하던 날 매섭게 몰아쳤던 그 찬 눈보라 대신에 찾아 온 결코 흔치 않은 쾌청한 늦가을 날씨는 마치 지난 10년 동안에 고인을 대하여 왔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국가 공권력의 고인에 가한 부당한 박해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나 복권조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고인의 예술 그리고 이 예술이 고귀하게 승화시킨 그의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 폭 넓은 이해가 그동안에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가 고인과 나눈 숱한 대화는 예술은 물론, 우리의 민족적 현실에 대한 내용이 그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물론 철학자와 예술가가 만나 민족문제를 논할 때 현실 정치인들끼리 만났을 때와는 다른 흐름이 대화의 기저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기저는 니체가 이야기했던 지배적 가치나 도덕체계, 나아가 현실정치의 질서를 파괴하는 철학자의 ‘지독한 귀족주의’나 안하무인격인 예술가의 ‘예술적 폭정(暴政)’은 결코 아니었다. “정치는 예술을 대신할 수 없지만, 예술은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서독의 초대 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 (Th.Heuss)의 주장에 고인이나 필자도 공감했었다.‘정치의 심미화(審美化)’가 아니라 일종의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에 대한 동의라고 볼 수 있다. 일상적 체험이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신선한 심미적인 충격이 상상력이 결여된 지루하고 지저분한 정치의 혁파로 연결되기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도 유럽에서처럼 개인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체험으로부터 빚어진 ‘충격의 미학’이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민족문제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민족문제를 예술과 정치를 매개로 해서 제기한다는 것은 곧 나치의 ‘정치의 심미화’로 오해되는 강한 분위기가 있었기에 고인의 ‘나의 땅, 나의 민족’이나 ‘광주여 영원히’같은 교향시(交響詩)가 일종의 정치적인 ‘프로그램 음악’으로 곡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령 스메타나의 ‘내 조국’이나 시베리우스의 ‘필란디아’도 민요, 민속춤, 설화와 같은 집단적 심미적 체험을 통해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고인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나치 독일의 ‘정치의 심미화’가 여전히 대표적 부정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보여주는 정치의 상업화 내지 상징조작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대량소비사회나 정보사회에서는 정치도 상품이 되어야만 하고, 정치의 내용보다는 이의 포장기술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라는 전통적인 예술의 코드보다는 이제는 어떤 분위기에 ‘어울린다.’ 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코드가 더 많이 작동을 하고 있고, 또 일상적인 모든 사물이 곧 예술로서 해석될 수 있는 예술적 코드의 인플레이션 현상도 바로 이러한 ‘정치의 심미화’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고인이 지향한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는 그러한 상징 조작을 의미한 것은 물론 아니었고, 또 미추(美醜)라는 예술의 전통적인 코드를 완전히 버린 전위적인 체험에 심취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고인의 ‘더 많은 인간성’이라는 예술적 코드는 심미적 체험과 정치를 독특하게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었다. 고인은 민족 분단으로 야기된 비인간적인 고통을 반추(反芻)하지 못하는 심미적 체험이야말로 실로 공허하고 무책임하기가 짝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도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음악제를 열었다. 그때로부터 울려 펴진 남북의 화음은 정치적인 소음을 뚫고 아직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상상력이 메마르고 둔중(鈍重)하기만 한 우리의 정치세계에 던진 고인의 예술적 충격은 -흡사 창공에 흐르는 구름처럼 결코 똑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우리를 계속 깨우쳐 줄 것이다.
  •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남북 분단 이후 막혀 있던 한강∼서해 뱃길이 55년 만에 뚫린다. 서울시는 오는 9일부터 14일까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을 한강∼서해 뱃길을 통해 경남 통영 한산도로 옮길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한강∼서해 뱃길은 세곡 운행 등에 활발히 이용됐으나 한국전쟁 이후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오두산 통일 전망대 앞∼인천 강화군 교동까지 군사분계선이 가운데로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한강에 민간 선박을 운행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협약이 맺어졌으나 그 이후 허가를 받아 운행한 배는 한 척도 없었다. 권종수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은 “군 당국, 통영시, 유엔 사령부과 협의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 뱃길 이용 허가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9일 한강 이촌 나루터를 출발, 만조시간에 맞춰 신곡수중보를 통과한 뒤 이틀 동안 자체 동력으로 인천항까지 이동한다. 이어 3일 동안 예인선 2척에 끌려 통영까지 옮겨질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정부와 유엔군에 한강 뱃길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줄 것을 건의할 것”이라며 “한강 뱃길이 활성화되면 중단된 경인운하의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한강~서해 뱃길 55년만에 뚫린다

    남북 분단 이후 막혀 있던 한강∼서해 뱃길이 55년 만에 뚫린다. 서울시는 오는 9일부터 14일까지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을 한강∼서해 뱃길을 통해 경남 통영 한산도로 옮길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한산도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승을 거둔 곳이다. 한강∼서해 뱃길은 세곡 운행 등에 활발히 이용됐으나 한국전쟁 이후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오두산 통일 전망대 앞∼인천 강화군 교동까지 군사분계선이 가운데로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한강에 민간 선박을 운행할 경우 유엔군사령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협약이 맺어졌으나 그 이후 허가를 받아 운행한 배는 한 척도 없었다. 권종수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은 “군 당국, 통영시, 유엔 사령부과 협의해 55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 뱃길 이용 허가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9일 한강 이촌 나루터를 출발, 만조시간에 맞춰 신곡수중보를 통과한 뒤 이틀 동안 자체 동력으로 인천항까지 이동한다. 이어 3일 동안 예인선 2척에 끌려 통영까지 옮겨질 예정이다. 1990년 교육용으로 건조된 복원 거북선은 전장 34m, 폭 10m, 높이 6.3m에 무게는 180t이다. 통영으로 옮겨진 뒤 3년 동안 한산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거북선 이동을 계기로 한강 수로(水路)이용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시 관계자는 “정부와 유엔군에 한강 뱃길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해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라며 “한강 뱃길이 활성화되면 중단된 경인운하의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CEO칼럼] 일등 브랜드/안용찬 애경 사장

    [CEO칼럼] 일등 브랜드/안용찬 애경 사장

    이제 누구에게나 ‘브랜드’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기업은 일등 브랜드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와 실적을 평가받는다. 좋은 브랜드 만들기에 총력을 쏟는 이유다.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을 갖춘 브랜드는 소비자 마음속에 포지셔닝이 잘 되어 있다.‘치약’ 하면 가장 먼저 ‘2080’이 떠오른다면 그 브랜드는 포지셔닝이 잘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객 마음속에 브랜드를 심는 일은 마케팅의 목표다. 이를 실현하려면 근본적으로 품질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품질에는 속품질과 겉품질이 있다. 속은 내용물의 품질이고 겉은 디자인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 요건 모두 브랜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속품질은 형편 없으면서 겉품질만 가지고 브랜드를 키우려는 근시안적인 마케터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소비자는 한번은 속아도 결코 두번 속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는 어떤가?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는 어떤 브랜드로 포지셔닝되어 있을까. 일등 브랜드는 아니다. 우리가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좋은 브랜드로 각인되어 있다. 얼마전 세계경제포럼에서 한국의 국가경제력이 17위로 발표됐으나 실제로 해외에 나가면 20위,30위,40위 대접을 받는다. 외국인에게 ‘코리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 뿐더러 국가 자체를 모르는 경우나 남한과 북한을 혼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근래에는 한류로 인해 동남아나 중국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북미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고 오세아니아나 유럽, 중남미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자체를 모르는 외국인도 많다. 안다고 해도 ‘사우스코리아’ ‘노스코리아’ ‘분단국가’ 정도다. 우리는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도 개최한 국가다.‘코리아’라는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88년에 신상품 홍보기회가,2002년에는 14년 전의 묵은 브랜드를 리뉴얼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브랜드 이미지는 국제무대에서 취약하다. 국가 브랜드 구축은 관광 부문뿐 아니라 시장확보 및 투자유치 등 다방면으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도 한국 이미지는 주로 노사분규나 북핵 위협을 연상시키는 등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세지는 한류 열풍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류 열풍이 몇년 반짝하는 트렌드가 아닌, 다양하고 탄탄한 작품과 재능있는 배우들에 의한 문화가 될 때, 한류는 ‘다이내믹’한 한국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장수 브랜드가 될 것이다. 월드컵 이후 ‘다이내믹 코리아’를 국가 브랜드로 내세웠지만 외국인은 물론 우리 국민도 잘 모르고 있다. 국가 브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그 나라의 기업과 국민들에게 금전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큰 자산이다. 따라서 국가도 일등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장기전략을 갖고 꾸준히 투자해 나가야 한다. 이런 일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국가브랜드 가치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한 나라의 브랜드 관리 실패는 해당 국가의 산업과 국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우리 기업과 상품이 해외에서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 홍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더욱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11월18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 제고뿐 아니라 브랜드의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안용찬 애경 사장
  • 남한은 2층 북한은 3층 ‘한지붕 경협우정’

    남한은 2층 북한은 3층 ‘한지붕 경협우정’

    “어이, 어디 갔었어?”“아,2층 회의실 좀 점검하느라….”“이 사람, 별 하는 일도 없이 바쁜 척은….” 마치 어느 회사원들의 대화 내용처럼 들리지만 이는 28일 개성공단에 문을 연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서 남북 당국자끼리 나눈 대화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 건물에 상주하게 된 남북 당국자들은 개소식 준비 때부터 친해졌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남북 당국자 간에 귀엣말을 나누거나 파안대소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가슴의 김일성 배지와 태극기 배지가 없다면 소속을 구분키 어려울 정도다. 영화 ‘JSA’에서 보여준 게 음지의 우정이라면 그것이 양지로 나온 게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모두 3층인 경협사무소 건물에서 남측은 2층을, 북측은 3층을 쓴다. 하지만 2층과 3층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경계병도 없다. 서로 비슷한 양복을 입고 수시로 계단을 오르내려 눈길을 끌었다. 황부기 소장을 포함,14명의 남측 당국자나 북측 당국자 12명 모두 사무소 옆에 지은 숙소에서 숙식하는 ‘기러기 아빠’신세다. 황 소장은 “주말에 한번씩은 남측으로 들어가 가족과 회포를 풀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소속인 북측 인사들도 공단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자남산 여관에서 기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오전 치러진 개소식에는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임종석 의원 등 남측 200여명과 김성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 80여명이 각각 참석했다. 남북은 이어 오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제11차 회의를 열어 경공업 분야 원자재 제공과 지하자원 협력, 철도·도로 개통, 수산협력, 임진강 수해방지, 개성공단 2단계 동시 개발 등 의제를 놓고 협의했으나 합의문 도출에는 실패했다. 양측은 제10차 경협위 합의에 따라 남측이 의복류, 신발, 비누 등 경공업 분야의 원자재를 북측에 제공하고 북측은 지하자원 개발 투자를 남측에 보장하기로 하는 문제를 협의했지만 경공업 원자재 제공 규모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북측이 요구한 규모는 신발 원자재 6000만 켤레분, 비누 2만t, 의류 7개 품목에 3만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는 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개성공동취재단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정부당국자 첫 北상주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 지역내에 상주하게 된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27일 “남북 당국간 상시적인 경협 채널 역할을 할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가 28일 오전 개성공단 내에 공식 개소된다.”면서 “분단 이후 최초로 북측 지역에 당국 사무소를 개설하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28일 오전 열리는 경협사무소 개소식에는 남측에서 임채정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비롯한 정·재·언론계 인사 200여명과 북측에서는 김성일 민경협 부위원장을 비롯해 80명가량이 참석한다. 경협사무소는 남측에서 황부기 사업소장을 비롯해 통일부, 재경부, 산자부 소속 관리 14명과 무역협회, 코트라, 중소기업공단, 수출입은행 관계자 4명 등 14명, 북측에서는 민경련 단동대표부 대표를 지낸 전성근 소장 등 10여명이 상주하게 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염주영 칼럼] 진화하지 않는 이념은 공해다

    [염주영 칼럼] 진화하지 않는 이념은 공해다

    지난달 양측은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한판 붙었다. 그 불길이 이번 달에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게로 옮겨갔다. 그가 맥아더 동상 철거 주장을 옹호하는 칼럼을 썼는데 ‘6·25는 통일의 목적을 수행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 불씨가 됐다. 불씨가 던져지자 양측은 다시 격렬하게 타올랐다. 처음에는 강교수라는 특정 개인의 사법처리 문제로 다퉜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거대이슈로 확대포장되는 데는 단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졌고, 법무장관도 물러나라는 요구가 제기되다가 지금은 주춤한 상황이다.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론까지는 안 가는 모양이다. ‘맥아더 동상’과 ‘강교수 칼럼’이 몰고온 두개의 파동이 확산되며 우리 사회를 흔들어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이렇게 일이 커지기만 하는지 혼란스럽다.‘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강교수의 주장은 불쾌하고 공감이 가지 않지만 왜 학문의 잣대로 검증하지 않고 굳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구속하려 하는가. 맥아더가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는데 왜 실력으로 동상을 철거하려고 하는가. 이런 의문들 속에서 한가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증오하는 두 극단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는 합리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집단적 광기를 유발하는 속성이 있다.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퇴화될 위기에 놓인 낡은 것일수록 그런 속성이 강하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낮에는 ‘반동’이, 밤에는 ‘빨갱이’가 설치는 세상을 살았다. 지금까지도 습관성 이념중독자들이 곳곳에서 철 지난 낡은 브랜드의 이념들을 팔기 위해 밤낮으로 확성기를 틀어댄다. 광복 후 60년이 흐른 지금에는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진화하지 않는 이념은 공해다. 이념은 시대상황과 역사의 변천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리하지 못한 이념들은 모두 도태됐음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1990년대 초반 일본계 미국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 될 것이라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럽의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붕괴 후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보다 훨씬 앞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이념 진화의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진화하지 않는 이념은 공해이며 퇴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단·대결 시대의 이념으로 교류·화해의 시대를 열 수 없다. 불필요한 이념갈등을 피하려면 언론과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하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을 지피고 대량생산해내는 이념갈등의 확대재생산 구조는 고쳐져야 한다. 이념도 필요하고, 이념논쟁도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통합의 기능을 수행해야지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표를 모으기 위해 이념갈등을 이용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학자의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책임의 범주 안에서 학문적 논쟁을 통해 개진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를 검증할 책임 또한 학자사회에 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그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회에 직접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 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사회에서 추방하라고 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념논쟁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 타협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상황과 단절된 낡은 이념의 전쟁이 아니라 시대상황을 반영한 이념논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수석논설위원 yeomjs@seoul.co.kr
  • [송두율칼럼] 문화적 투자

    [송두율칼럼] 문화적 투자

    오랜만에 들러본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막을 내렸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되었던 이번 행사는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문화의 아류정도로만 평가받았던 한국의 문화가 객관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많았다. 충분한 준비 없이 치른 행사이다 보니 무엇보다도 이곳에 번역 소개된 도서의 질과 양이 문제였다. 문화는 한 나라의 고유한 상징을 종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나열하는 식으로 그 것도 단기간에 한꺼번에 소개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러한 문화소개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작년에 주빈국이었던 아랍세계가 문화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한국보다는 훨씬 유럽의 관심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년만에 이곳의 출판문화적 관심영역으로부터 사라진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도서전에 맞추어 국제 앰네스티 독일지부가 마련한 남북한의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토론회도 각각 열렸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상충(相衝)하고 있는 문제는 이번 도서전과 관련, 독일의 언론매체가 이미 몇 차례 걸쳐 필자의 쓰라린 경험을 다루었다. 아직은 강교수 문제가 이곳 매체를 타지 않았지만 차분한 논쟁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한 학자의 관점의 문제가 흡사 전 사회가 총동원된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또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은 나라 밖에서는 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분단이라는 현실을 앞세워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변명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 법의 존재를 비교 우위(優位)적 관점에서 옹호할 수도 있다. 국제 앰네스티 독일지부의 남한책임자인 부흐너 박사도 독일의 유력한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의 한 기고문에서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남한에서, 특히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북한보다는 그래도 열악하지는 않다고 비교 우위적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다. ‘쌍윳따니까야’ 속에서 부처는 “나는 우월하다.”,“나는 동등하다.”,“나는 저열하다.”는 세 가지 자만(自慢)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김, 탐구, 정진, 안온(安穩)등의 일곱 가지 깨달음을 가르쳤다. 또 불교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던 쇼펜하우어도 비교는 인간의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이렇게 업보처럼 인간의 사유와 생활 속에 내재하는 비교라면 우리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대상과 비교해서 제자리에 안주하거나 자기위안을 찾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대상과 선의의 경쟁을 해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문제의 기준도 그저 남북한간의 비교 우위적 문제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 인권이 남북한보다 더 잘 지켜지고 있는 나라들과 비교하면서 자기처지의 개선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일 때 문화적 영역에서도 남한은 지금보다 더 많은 보편성과 함께 이에 어울리는 자기정체성도 보여 줄 수 있다. 국제도서전시회에서 왜 난데없이 ‘국가보안법’문제가 제기되어 남한의 국제적 위상에 흠집을 내는가 하는 비난도 있을 수 있지만, 문화는 언어, 신화, 예술, 종교, 철학 등을 포괄하는 세계에 대한 의미부여와 함께 국가, 사회, 법률, 도덕, 경제, 기술 등을 포괄하는 삶의 질서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에 도서전시회야말로 바로 문화전시회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대 어느 주빈국보다도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이번 프랑크푸르트의 국제도서전이 한국문화가 유럽에서 앞으로 제대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문화적 투자도 함께 진행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적 투자는 오히려 이번에 투자한 1500만유로보다 더 훨씬 값진 투자로서 이로부터 생긴 엄청난 문화적 이익금은 곧 환수될 것이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말문터진 개헌… 여도야도 “2007년께”

    말문터진 개헌… 여도야도 “2007년께”

    그동안 간헐적으로만 언급됐던 개헌론이 급물살을 탔다.24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선 여야 국회의원들은 당론과 관계없이 다양한 개헌론을 제안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국민 중심의’,‘통일’,‘복지’ 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한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에 ‘임기 내 개헌 추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점을 상기시키며 ‘개헌논의 2단계 로드맵’을 제안했다. 1단계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향후 개헌논의 일정을 마련하고 내년 1월에 정치권과 헌법기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헌법개정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하는 것이다.2단계로는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 9월 정기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민 의원은 제안했다. 그러면서 “개헌안은 내년 정기국회나 2007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3월쯤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필우 의원은 구체적으로 “당장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로 개헌논의를 시작하자.”면서 “내년 지자체 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안을 내놨다. 윤호중 의원 역시 “17대 국회가 임기를 마치는 2008년은 제헌국회가 60주년을 맞는 해”라면서 “우리 임기 내에 분단극복을 위한 통일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도 맞장구를 쳤다. 권철현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헌법·정치학자 등으로 구성된 ‘헌법연구회’를 설치해 연구하도록 한 뒤 내년 정기국회에서는 이 결과를 토대로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정치권이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어 “2007년 2월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3월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면서 “17대 대통령과 18대 국회의원 임기가 2008년 1월1일부터 시작하도록 해 노무현 대통령과 현재 국회의원의 임기는 조금씩 단축되어야 한다.”는 파격 제안도 내놓았다. 같은 당 정의화 의원은 “4년 중임제의 정·부통령제와 양원제 도입도 논의해야 한다.”며 “당장 국회에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특위’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논의는 내년 지자체 선거가 끝난 뒤 해도 늦지 않다.”면서 “정 필요하다면 국회 안에 연구모임을 만들면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해찬 국무총리는 “대체로 2007년 대선,2008년 총선과 관련해 2007년에 가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이 총리는 그러나 “내년 경제가 상당히 회복될 것 같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개헌이 공론화돼 소모적인 논쟁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기 개헌 논의에는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박찬구 박지연기자 ckpark@seoul.co.kr
  • 美작가가 본 ‘생명공학 한국이 앞서가는 이유’

    서울대의 세계줄기세포연구 허브 건립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다시 한번 ‘왜 한국이 줄기세포 연구의 최선두 주자가 됐는가.’에 대한 정밀분석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출판돼 화제를 모았던 ‘천재 공장: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은행’의 작가 데이비드 플로츠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가 운영하는 인터넷 잡지 ‘슬레이트닷컴’에서 한국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꽃피운 이유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플로츠는 우선 한국에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이 없다는 점을 지목했다. 한국에도 복음주의 기독교도가 25%를 차지하고 천주교 신자도 6%에 이르지만 미국과 달리 낙태 등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보다는 인권, 사회정의, 경제개발 등 보다 실용적인 이슈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때문에 한국의 법체계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만, 정부가 사실상 묵인하기 때문에 선진국 중 낙태율이 가장 높다고 플로츠는 지적했다. 플로츠는 또 한국인의 ‘핏줄’에 대한 관심도 복제의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인은 어느정도 규모가 큰 나라 중 인종적 ‘단일성’이 가장 뚜렷하고 누구나 자기 조상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고 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핏줄 찾기와도 관련이 있는 복제연구에 한국인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인공수정 등 불임 클리닉이 발달한 것도 복제연구의 기초가 됐다고 플로츠는 주장했다. 자신의 진정한 ‘씨’를 이어가기 위해 인공수정 및 시술 방법을 발전시키다 보니 복제를 위한 수정 등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네번째로는 한국인이 ‘의료 행위를 통한 자기 개발’에 매우 개방돼 있는 점을 들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마치 수술을 통해 외모를 개선하는 것을 당연시하듯,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유전자를 개선하는 데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플로츠는 연구소 전체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한국적 연구 시스템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 복제 연구는 일관된 반복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양식의 개인별 연구보다는 한국식의 집단 연구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 내부의 평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플로츠는 한국에서 과학자들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것도 복제연구의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황 교수가 미국의 과학자들은 꿈꾸기도 어려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그의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이 줄 선 것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끝으로 플로츠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성공요인으로 지목했다. 식민통치와 전쟁, 분단으로 얼룩진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 전체가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제1이 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dawn@seoul.co.kr
  • [이런 전공] 북한학

    북한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지역학이다. 통일에 대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둔다. 배우는 내용은 남·북한 현안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북한의 본질과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가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남북분단사나 남북통일 정책론, 한반도 주변정세론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정책에 대한 과목도 개설돼 있다. 지역학적 과목으로는 북한지리, 북한예술론, 북한경제론, 북한청소년 연구, 북한언론, 북한외교론 등 다양하다. 졸업 후 진로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북한학을 계속 연구해 학계에 남거나 민족통일연구소, 통일연수원 등 통일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북한과 교역이 늘면서 북한 전문 무역회사로 진출하기도 한다. 특히 남북교류가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전망도 밝은 편이다. 북한학 전공이 개설된 곳은 서울의 경우 동국대 사회과학부와 명지대 북한학과(주·야간), 사회과학계열(주·야간)이 있다. 관동대(강원)와 선문대(충남)에도 북한학과가 설치돼 있고, 고려대(서창)에는 인문사회학부에 전공이 개설돼 있다. 경쟁률은 학교마다 큰 차이가 난다. 지난해의 경우 고려대가 ‘가’군 6.9대1,‘다’군 10.7대1로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명지대 북한학과(야간)와 사회과학계열(주·야간) 모두 12.3∼32.4대1의 매우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도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책꽂이]

    ●꽃신(김용익 지음, 돋을새김 펴냄)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소설가 김용익(1920∼1995)의 단편집.1956년 발표한 데뷔작 ‘꽃신’은 유명잡지 ‘하퍼스 바자’등 세계 각국의 유명 매체에 소개됐고,‘해녀’는 미국 중고등학교 영문학교과서에 실렸다. 이번 단편집은 두 작품외에 ‘종자돈´ `겨울의 사랑´ `동짓날 찾아온 사람’등 모두 6편을 묶었다.8000원.●해리포터와 혼혈왕자 1·2(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문학수첩 펴냄)발매 첫날 미국에서만 690만부가 팔린 ‘해리포터 시리즈’6탄이 번역돼 나왔다. 전편에 이어 음산하고 암울한 전쟁터를 배경으로 유머와 로맨스, 재기발랄한 대사로 짜릿한 모험의 세계를 펼친다. 늠름한 청소년이 된 해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애쓰는 존재론적 고민이 더해졌다. 각권 8500원.●쏘주 한 잔 합시다(유용주 지음, 큰나출판사 펴냄)중학교 중퇴후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우유배달 등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온 저자가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이후 5년 만에 낸 산문집.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17일 간 항해여정을 기록한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여’를 비롯해 고단한 현실의 속살을 헤집고 따뜻한 시선으로 건져올린 아름다운 이야기 16편을 실었다.9000원.●완벽한 하루(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문이당 펴냄)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오직 자살만을 꿈꾸는 한 남자의 24시간을 그린 소설. 프랑스 문단이 주목하는 신예작가인 저자는 스물다섯 살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실업과 고용불안,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재기발랄하게 풀어낸다.9500원.●피아노 소나타 1987(강유일 지음, 민음사 펴냄)독일의 통일 과정을 지켜 본 재독 작가 강유일이 KAL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한국의 분단현실을 재구성한 소설. 북한의 동유럽 스파이 한세류는 동유럽에 초청받은 남한의 피아니스트 안누항의 공연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민간여객기를 폭파한 한세류는 세월이 흐른 뒤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안누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1만 2000원.
  • 50년기다린 가을, 양구 여행

    50년기다린 가을, 양구 여행

    비무장지대(DMZ)는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땅. 이곳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분단 이후 50년이 넘도록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탓에 오히려 더 아름다운 가을 비경을 뽐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빨갛게 수놓은 단풍은 그 옛날 격전지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강원도 양구는 일반 관광객들이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 DMZ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 특히 민통선에 있는 ‘두타연’은 청정 자연에만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들의 보고다. 또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북녘땅에 붉게 물든 단풍을 감상할 수 있으며,‘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면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DMZ의 특별한 가을 속으로 초대한다. 글 사진 양구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손때를 타지 않은 생명의 땅 구군 방산면 건솔리 두타현으로 가는 31번 국도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이곳 단풍은 ‘물든다’는 표현 대신 ‘핀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답답했던 가슴도 활짝 열린다. 그동안 어떻게 찌든 도심속에서 살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하다. 양구 읍내를 떠난지 20분. 민통선 지역을 통과하는 고방산 초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만 더 올라가면 북녘땅이다. 초소에서 비포장 흙길을 1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두타연. 지난 2003년 6월1일부터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두타연으로 가는 길은 북한의 내금강에서 흘러내려오는 수입천 주위의 단풍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안내를 맡은 이창순(62) 문화해설사의 말처럼 단풍잎은 8가지 색으로 빛났다.“이곳 단풍은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빨간색을 내는 단풍나무 뿐만 아니라 노란색의 갈당나무, 주황색의 참나무들의 기막힌 조화는 언제 봐도 새롭다.”고 자랑한다. 가는 길목마다 ‘지뢰’라고 쓰인 표지판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생물들이 반겼다. 지뢰가 자연의 파수꾼 역할을 한 셈이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은 예산이 없어 포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마지막 흙길로 남겨놓겠다.”는 주민들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흙길에 사방 배수로를 깔아 포장도로에 비해 관리비용도 더 든다고 한다. 차를 세운 뒤 길을 내려가자 두타연 폭포가 시원스레 물길을 가른다. 푸른 두타연 바위마다 붉은 단풍과 물이끼가 파랗게 수를 놓았고 연못에는 멸종위기에 있는 열목어가 대량 서식하고 있다. 두타연은 고려 18대 왕인 의종 4년(1850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기도를 하던 희정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찾아 내려와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두타연에서는 희정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보았다는 보덕굴을 볼 수 있다. 이름은 인근에 있던 두타사라는 사찰과 두레소(용소)라는 옛이름이 합쳐져 두타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두타사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 6·25전쟁 등으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두타연 폭포 위로 올라가면 수입천을 빨갛게 물들인 단풍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DMZ를 따라 차를 타고 10여분 거슬러 올라가니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 나온다. 금강산 장안사가 이곳에서 30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과거에는 양구 주민들이 걸어서 장안사를 다녀왔다고 한다. 또 지금은 북한 땅인 문등리는 양구에서 가장 번화했던 면소재지의 하나로 매년 큰 장이 서던 곳이어서 주민들이 이 길을 따라 걸어갔다고 전해진다. 수입천을 가로지르는 하야교 앞에서 보면 멀리 대우산의 가을 전경이 일품이다. 여기에서 10분쯤 올라가면 나오는 비득재 고개는 6·25 전쟁에서 아군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이다. 앞으로는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을 감상하기 좋다. 이 일대는 두밀령이라고 부르는 곳,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진태(장동건 역)가 죽은 곳이라고 한다. 멸종 위기에 있는 산양과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과 쇠딱다구리, 백로를 볼 수 있다. 겨울에는 방산면 현리 선안지역에 천연기념물 243호인 독수리떼가 매년 겨울에 날아와 월동하고 있다. 두타연은 군사지역에 있어 관광에는 다소 제약이 따른다.2∼3일전 미리 화천군청(033-480-2251)에 신청한 뒤 문화해설사를 동반해 들어갈 수 있다.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으로 군청에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는 당일 오전 9시까지 양구군 특산품전시관인 ‘명품관’에 모여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두타연과 금강산 가는 길목 등을 돌아본 뒤 낮 12쯤 돌아 나온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초등학생은 1300원. ●‘펀치볼’의 붉은 가을 양구읍에서 산령을 굽이굽이 돌아 넘어가면 ‘펀치볼’이라는 이색적인 마을이 나타난다. 해안면 일대 6개의 마을이 가칠봉에서 바라보면 마치 화채그릇처럼 움푹 파인 지형 안에 형성돼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亥·돼지해,安·편안할 안)이라는 이름은 과거 물이 빠지면서 생겨난 뱀들이 주민들을 괴롭혔고 이를 돼지가 잡아먹어 주민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지형 형성 원인으로는 이 일대가 차별 침식으로 생겼다는 설과 운석이 충돌해 파였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해안 분지는 해발 400∼500m 지대에 형성돼 있고, 주위를 둘러싼 산들도 대부분 해발 1000m를 넘는다. 도솔산 고개를 넘어 분지로 내려가거나 을지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면 펀치볼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펀치볼에서는 북녘땅의 가을을 바라보기 좋다. 가칠봉 능선에 자리잡은 을지전망대는 1049m에 위치해 쾌청한 날이면 북쪽으로 금강산 비로봉 등을 볼 수 있다. 휴전선 인근에 있는 23개 전망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농사를 짓는 북한 군인과 예쁜 선녀폭포를 볼 수 있다. 선녀폭포 아래 성내천은 과거 북한이 심리전을 쓰기 위해 북한 여군들을 발가벗겨 목욕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해안면 일대는 ‘평화·통일 관광지’. 부근에 제 4땅굴과 을지전망대, 전쟁기념관 등이 있는데 군통제소에 신고한 뒤 차로 올라가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는 모두를 둘러보는 데 성인 2500원, 초등학생 1300원이다. 제 4땅굴은 지금까지 발견된 4개의 땅굴중 유일하게 전동차가 설치돼 있어 편하게 땅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양구는 역사·문화관광지로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양구는 화가 박수근의 고향으로 지난 2002년 박수근 미술관이 완공돼 문화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박수근은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의 작품 중 ‘강변에서 빨래하는 여인’이 미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31만달러(약 3억 1000만원)에 팔려 주목을 받았다. 미술관에는 선생의 스케치와 드로잉과 같은 습작과 판화, 유화 등 유작 진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양구 선사박물관은 파로호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선사박물관이다. 무문토기와 찌르게 등 650여점의 출토 유물과 고인돌 공원, 석기제작체험관, 움집 등을 볼 수 있다. 향토사료관에서는 양구지역 농기구와 세시풍속자료 등 600여점의 생활민속자료를 볼 수 있으며, 방산 백자 가마터는 고려말부터 백자를 만들어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자 가마터로 금강산에서 발견된 이성계 발원문 백자발을 만들어낸 곳으로 유명하다. ●겨울철 건강식 시래기 양구는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특히 펀치볼에서 생산되는 ‘청정 시래기’는 구수하고 맛이 좋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곳 시래기는 ‘가을무’를 늦게 심어 무뿌리가 자라기 전에 잎을 채취, 무청이 가늘고 연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 시래기는 다른 지역보다 섬유질과 비타민이 더욱 풍부해 겨울철 건강식으로 제격이다. 지역 농민들을 중심으로 4∼5년전부터 통일고랭지채소 영농조합법인(033-481-8850)을 구성, 매년 20∼30t의 시래기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 농협 하나로 마트에만 판매하는데 ‘대암농협 시래기’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조춘자(62) 공장장은 “시래기 잎을 채취한 뒤 45∼60일을 말려야 하기 때문에 12월 중순 이후부터 시래기를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값은 건조된 것은 1㎏당 8000원이고, 삶은 것은 1㎏당 3000원이다. ■ 미리 알고 가세요 어디서 먹고, 묵을까 양구는 1개읍 4개면, 인구 2만 3000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군이지만 깨끗하고 숙박업소가 많다. 특히 지난해 개장한 ‘양구 KCP호텔’(033-482-7700)은 50개의 객실을 갖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과 딜럭스룸, 트윈베드룸, 온돌 등이 있으며, 한식당과 양식당을 갖추고 있다. 호텔 2층에는 모던바 ‘칼라´가 있으며, 사우나와 주점이 있다. 주말에는 12만 8000원이지만 평일(월∼금)에는 6만 4000원으로 50%할인해 준다. 한식당 수련에서는 이 지역 청정 송이버섯으로 만든 송이전골(1인분 1만 8000원)과 송이덮밥(1만 2000원)이 맛있다. 식당은 양구읍내 풍년집(033-481-6050)의 시래기 해장국(4000원)이 일품이다. 여행상품 쉽게 양구 여행을 다녀오려면 DMZ관광(02-706-4851)의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편하다.1박 2일 일정으로 두타연 트레킹(14㎞) 걷기를 포함해 펀치볼, 제 4땅굴, 을지전망대, 박수근 미술관 등을 돌아본다. 성인 6만 5000원. 오전 8시30분에 한국관광 공사앞에서 출발한다. 가는길 서울에서 45번 국도를 따라 춘천을 경유하거나 6번 국도를 타고 홍천으로 들어와 44번 국도를 따라 양구로 들어오면 된다. 서울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에서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7시10분까지 하루 11차례 운행하며, 춘천에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5차례 운행한다. 양구시외버스터미널(033-481-3456).
  • 아리랑국제방송 3부작 다큐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사상 첫 한국인 수상이라는 쾌거가 기대됐으나, 아쉽게도 바람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문단에서는 섣부른 기대를 품기에 앞서 번역 등을 통해 꾸준히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리랑국제방송은 19일부터 3일 동안 매일 오후 9시30분에 3부작 다큐멘터리 ‘한국 문학 60년사’를 내보낸다. 이번주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주간을 맞이하여 마련한 특집 다큐멘터리다. ‘한국’가 주목되는 이유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주관 방송사인 독일 헤센방송국(HR)도 행사 기간 동안 이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방영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출판 올림픽으로 꼽히는 세계 최대 도서전.15세기에 시작됐을 정도로 전통이 있고, 매년 110여 개국 6700여 출판사가 참여해 도서전을 펼친다. 올해 북페어 주빈국으로 초청된 나라는 바로 한국. 이미 지난 3월부터 국내 대표문인들이 독일을 찾아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한국 문학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100회 가까이 제작했던 아리랑국제방송은 ‘한국’를 통해 해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움트기 시작한 한국 문학을 총정리했다. 소설가 박완서 김주영 조정래 이문열 김훈 공지영 조경란, 시인 고은 신경림 김지하, 평론가 이어령 김윤식 백낙청 김화영 정과리 등 문단을 빛낸 우리 문인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나 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해방 직후부터 4·19혁명기를 다루는 1부 ‘환희와 극복의 시대’에서는 반전시 박봉우의 ‘휴전선’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그린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그리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 등을 살피며,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을 걸었던 작가들의 발자취를 돌이켜본다. 2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상실과 격동의 시대’는 5·16혁명에서 출발해 87년 6월까지 기나긴 군사정권 시기를 담았다. 이 시기의 생명파와 해체문학으로 대표되는 순수 문학과 암흑기에 민중에게 등불이 되고자 했던 참여문학을 비교하는 시간이다. 요절 시인 김수영과 이와 관련한 논쟁을 벌였던 평론가 이어령 교수나, 저항문학의 선두에 섰던 고은, 김지하 시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3부는 ‘다양성의 시대’. 거대 담론의 시대가 끝나고 젊은 작가군이 쏟아져 나왔다.90년대 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신경숙 은희경 등 여성작가들을 비롯해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또 ‘퇴마록’ 등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문학의 발전상도 알아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金총장 사표 수리] 국보법 논란 다시 가열될듯

    법무장관의 수사지휘 근거조항인 검찰청법 8조에 대한 개정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수사지휘의 불씨를 제공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에서 촉발된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도 뜨겁다.●“문제 없어서가 아니라 사문화돼서 개정 안된 것”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의 선례는 앞으로 검찰의 중립성 확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조항의 개정이나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 범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하도록 한 8조에 대해 2001년 참여연대는 “검찰의 독립성을 위해 삭제해야 한다.”며 입법청원을 냈다.법무부는 대응논리로 검찰권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고 법무장관이 검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개정논의는 곧 사그라졌다. 조항에 대한 논박할 여지는 있지만, 조항 자체가 사문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핵심은 찬양·고무죄 조항 폐지” 강 교수 사건을 기회로 존폐논란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국가보안법 7조 1항 찬양·고무죄 조항 등의 폐지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연대 김성란 사무총장은 “사회의 개폐 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구속수사를 하려고 했던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국가보안법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국보법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대응논리를 펴고 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평양 문화유적 참관차 10일 오전 방북한 남한 주민 황선(31)씨가 북한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분단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민간단체인 통일연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씨는 북한 노동당 창건 60돌 기념일인 10일 밤 10시 북한 최고의 산부인과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딸을 낳았다고 민간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관계자가 11일 전했다. 전례가 없는 일에 직면한 통일부는 신생아의 국적 문제 등에 관해 법률자문을 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2주간 산후조리 체류연장 고려대 법학과 신영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북한 국적법도 북한 주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한테만 북한 국적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황씨의 딸은 당연히 한국 국적이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황씨의 산후 조리를 위해 평양 체류를 2주 정도 더 허용키로 했고, 육로로 귀환토록 배려했다. 일각에서는 황씨가 1998년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한총련 대표로 불법 입북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데다, 출산일이 임박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방북한 점을 들어 내심 ‘방북 출산’을 희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황씨는 평양으로 떠나기전 “산통이 오면 평양에서 출산했으면 좋겠다.”는 언급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된 출산” “통일둥이” 양론 첫 딸도 제왕절개로 출산한 황씨는 당초 오는 17일 제왕절개 수술 일정을 잡아놔 방북 일정이 무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부모와 함께 방북 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한 황씨는 가벼운 진통을 느껴 북측 의료진으로부터 진찰을 받았으며 이후 저녁 8시부터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결국 공연 중인 9시30분쯤 다시 진통이 엄습, 평양산원으로 옮겨졌다. 황씨는 지난해 2월 서울 덕성여대에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31)씨와 결혼식을 치렀다. 남편 윤씨는 1997년 7기 한총련 의장으로 지명수배된 이래 현재까지 수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45년 동안 동서로 갈라졌던 냉전의 상징 베를린은 분명 상처받은 도시였다. 그러나 1961년 8월13일 이후 베를린 시를 동서로 갈랐던 43.1㎞의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통독 이후 독일의 수도로 다시 태어난 베를린은 1조유로(약 125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 미래 도시에 걸맞은 인프라를 구축하며 주요 행정기관과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다. 분단 도시의 흔적을 지우고 유럽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베를린 장벽의 잔재는 박물관이나 기념물 외에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곳곳에 들어선 다양한 디자인의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미래 지향적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많은 사람들은 베를린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끝없이 건설 중인 도시’라고 표현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한두번만 가보면 이 표현의 적절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버스는 초(동물원)역에서 출발해 티어가르텐, 전승기념탑, 벨뷔 궁전, 세계문화관, 연방의회 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운터 덴 린덴, 박물관 섬, 알렉산더광장 등 시내의 주요 명소를 지나가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1871년 독일이 제국으로 통일된 것을 기념해 지어진 의사당은 통독 이후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옥상에 통독 이후 투명돔이 지어지면서 통독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투명돔은 내부에 거울기둥들이 다양한 각도로 설치돼 있고, 여기서 반사된 햇빛이 본회의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박물관 섬(Museuminsel)’에서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슈프레강 한복판에 있는 이 지역은 이름 그대로 1830년부터 100년 동안 차례로 지어진 4개의 박물관과 1개의 국립미술관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부터 후기 비잔틴을 거쳐 1900년대에 이르는 건축과 미술의 역사를 담고 있다. 베를린시는 밀레니엄을 맞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 10년 안에 8억2900만유로(약 1조원)를 들여 미술관과 박물관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사가 끝나면 박물관 섬에 있는 5개의 건물은 지하 통로로 연결되고 행정동과 기술센터도서관, 교육시설들이 갖춰지게 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쌓여졌던 두텁고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현대식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 지역의 핵심은 포츠다머 광장이다. 1920∼30년대 유럽 최대의 번화가였으나 전쟁과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폐허로 남아 있었다. 베를린시가 도시의 상징적인 광장을 만들기 위해 1991년 주최한 국제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건축가 힐머와 자틀러가 제안한 복원계획이 당선됐고,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가 설계와 건설을 맡았다. 베를린의 미래를 보여주는 포츠다머 광장에는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40억마르크(약 2조 4000억원), 일본 소니가 13억마르크(약 7800억원)를 각각 투자했다. 광장에는 복합 빌딩을 비롯해 고급 쇼핑몰, 영화관, 카지노, 아파트와 사무실 등 17개의 현대식 대형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간판건물로 꼽히는 소니센터는 뉘른베르크 태생의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한 미래형 복합 빌딩으로 유리와 강철로 만든 돔형의 지붕과 7개의 빌딩으로 이뤄져 있다. ●문화 중심지로의 화려한 복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어있는 운터 덴 린덴(‘보리수 나무 아래’라는 뜻)은 베를린 최초의 계획된 산책로로 2차 대전 이전까지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냉전시절 동베를린에 속하면서 낭만을 잃었다가 지금은 고급 부티크와 카페,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즐비한 베를린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삭막해졌던 베를린 시내는 이제 젊은이들과 예술가들, 무궁무진한 문화적 인프라를 향유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베를린에는 3개의 오페라하우스,100개가 넘는 연극 공연장,17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넘치면서 근사한 레스토랑과 바, 카페 등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통독 15주년 국경일인 지난 3일 국립미술관 앞은 고야 특별전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4∼5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며 지루한 줄 모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터시에서 왔다는 프랑크 엡슈타인은 “베를린에는 친구들도 많고 오페라와 연극 등 볼거리도 많아 자주 방문한다.”며 “베를린이 하나로 합쳐진 뒤 문화적 풍요로움이 더해져 즐겁다.”고 말했다. ●유럽 중심도시로 발돋움 독일 통일로 베를린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대 도시가 됐다. 그러나 유럽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베를린의 변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베를린시는 전체 170㏊에 달하는 지역에 총 1000여개의 새 건축물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도시 계획은 전반적인 도시의 밑그림(STEP)을 기준으로 지역계획(FNP), 구역계획(BEP) 등 단계별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다. 내년 완공예정인 베를린 중앙역사를 비롯해 건축아카데미 복원계획, 스프리 강변의 미트지역에 세워질 업무 및 주거 복합빌딩 지르쿠스, 현대적 시설을 갖춘 오스트반호프 실내 체육관, 티어가르텐 서쪽의 특급 호텔 및 위락시설 지역 KPM쿼터, 스프리강변의 미디어센터 등이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건축의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주독 한국대사관의 신동민 전문연구원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베를린은 미래의 유럽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 정보·첨단 IT·교육 등 지식산업시대를 겨냥한 도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같은 도시의 발전은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철거” “보존” 논란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베를린 서쪽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은 운터 덴 린덴 거리를 따라 10분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을 마주한 베를린 대성당이 나오고 그 뒤로 박물관 섬이 보인다. 고색창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맞은 편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를 끼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철거를 앞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옛 동독 공산당사(Republik)다. 군데군데 깨어진 황동색 유리와 강철로 외관이 장식돼 있고 규모는 매우 큰 편이지만 어딘지 황량했다. 심지어 흉물스러워 보인다. 통일 이후 15년간 방치된 탓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달 17일부터 ‘프락탈 Ⅳ’라는 현대미술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젊은 예술가 25명이 ‘죽음’을 주제로 설치, 비디오 아트, 회화,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시대의 흔적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전시장을 찾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런 대로 건물의 모양새를 갖춘듯 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철골 구조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전시장이 아닌 곳은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출입을 금지했다. 이런 분위기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장 안내를 맡고 있는 힐미라는 청년은 “오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공산당사는 문을 닫고 내년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전시 주제가 ‘죽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는 프로이센 왕궁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 실현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사는 과거 프로이센의 왕궁이었던 건물을 헐고 옛 동독 공산당이 새로 지은 건물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 후 과거의 어두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 건물을 헐고 왕궁을 복원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옛 동독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단 보류했다.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종종 현대 미술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는 서독 지역 사람들마저 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질케 블룸은 “프로이센 왕국은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많은 돈을 들여 복원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한다. 건축이 전공이라는 클라우디아 힐가트는 “공산당사가 분단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역사의 일부”라며 “이대로 보존하면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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