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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벽’ 넘은 증시] (2) 증시재평가 기류 확산

    [‘10년 벽’ 넘은 증시] (2) 증시재평가 기류 확산

    주가지수는 흔히 경기 흐름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기업의 실적이나 업종의 전망에 주식 가격이 연동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고 침체된 경기가 곧 회복될 것으로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주가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 기업과 경제의 체질 변화에 있다는 분석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물건 좋으면 값은 오른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도 높은 금리와 과도한 부채에 허덕이며, 적자만 아니면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실적개선 노력 등을 통해 해마다 대규모 수익을 내는 글로벌 기업들로 탈바꿈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년전에는 한자릿수에 만족했으나, 올해 국내 기업의 ROE는 14.5%까지 상승했다. 평균 부채비율도 200∼300%에서 70%대로 뚝 떨어졌다. 기업지배구조도 많이 개선된 편이다. 기업들이 증시와 투자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전에는 주가가 오르면 마구잡이 증자로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으나 지금은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에 적극적이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더 많은 이익이 되어 돌아왔다. 올들어 자사주를 취득한 40개 종목의 현재 평가액(2조 7082억원)이 자사주 총 매입액(2조 5128억원)을 웃돌았다. 삼성전자는 1974년 증시에 상장된 이후 발생한 누적순이익 40조 7769억원 가운데 37%(15조 4094억원)를 주주에게 돌려줌으로써 시가총액 1위(83조원) 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삼성전자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9%에 이른다. 이는 미국 뉴욕 증시의 시가총액 1위 기업 엑손모빌의 5분의1 수준이다. 삼성전자·한국전력·포스코 등 국내 상위 30개 기업의 가치를 다 합쳐도 엑손모빌 1개에 미치지 못한다. 실력으로 따지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손색이 없지만 억울하게도 증시에선 그 가치를 저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주가의 적정성을 나타내는 주가수익률(PER)이 올해 한국은 9.0배로 세계 48개국 가운데 두번째로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른바 ‘코리아디스카운트’는 한반도 리스크, 재벌 경영의 불투명성, 경기변동에 민감한 기업이익 구조, 외국인투자에 흔들리는 증시의 수급구조 등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분단국의 지정학적인 문제만 빼면 나머지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증시를 재평가하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포스코의 경우 올 하반기 철강업종의 이익 감소세가 점쳐졌으나,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저평가 부분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한국 기업과 증시를 혹독하게 평가했던 외국계 금융사도 태도를 바꾸고 있다.UBS증권은 “한국 증시는 아직 과열되지 않았다.”면서 “소비가 의미있는 회복세를 보여 추가상승의 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JP모건증권은 “내수 부진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고,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수출 등에서 긍정적 전망을 내린다.”고 밝혔다. ●경기회복의 신호탄 기업의 체질이 바뀌고, 증시 여건이 더욱 투명하게 개선된다면 주가지수가 경기선행 지표로서 제 역할을 할 날도 머지 않았다. 지난 7일 종합주가지수의 최고치 신기록은 그런 점에서 경제적 의미가 크다. 경기회복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낮추면서도 상반기에 3.0%, 하반기에 4.5%로 전망함으로써 하반기 경기회복을 점쳤다. 미국의 경기지표는 별로 좋지 않지만 국내 지표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8월중 수출은 고유가, 원화 강세, 항공파업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연중 최고 증가율을 보였다. 3·4분기 기업의 예상실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4·4분기에는 확연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신증권 김우재 연구원은 “현재 내수 관련주가 강세를 보이는 점에서 하반기에는 내수 경기가 수출 경기를 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경제부 조원동 경제정책국장은 “최근 증시의 강세는 시장의 기초체력이 좋아졌고, 실물 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 애간장 녹이는 자작극

    함경도 실향민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동태순대는 쫀득한 육질과 만두소 같은 속이 어우러진 별미음식이다. 뼈와 내장을 제거한 생태에 돼지고기, 두부, 김치, 된장 등을 버무린 소를 넣고 짱짱하게 얼렸다가 찌거나 끓이면 담백하면서도 칼칼하다. 신기하게도 음식의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떠올리다 보면 그 시절도 함께 떠오르니 맛이 지닌 기억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간 큰 가족’은 통일이 소원인 아버지를 위한 한 가족의 ‘통일 자작극’이다. 통일이 안 되면 유산 50억이 통일부로 ‘올인’될 상황이라 남북단일탁구를 연출하고 평양교예단의 공중그네도 두말 않고 타야 하는 점입가경의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돈이 문제였지만 나중에는 평양 가는 버스표가 있다고 믿는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게 문제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굿바이 레닌’은 심장 약한 어머니를 위해 통일을 숨기고 분단 뉴스를 전하는 아들의 눈물겨운 ‘분단 자작극’이다. 어머니가 늘 먹던 동독 피클을 공수하기 위해 온 상점을 헤매고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빈집을 뒤지는 아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통일과 분단이라는 다른 소재에도 두 영화는 원작과 리메이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았다. 함경도 별미만큼이나 강한 향수와 애틋함이 배어 있다.●간 큰 가족 분단 이후 최초로 금강산에서 촬영된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이 DVD는 흥미롭다. 영화에서 미처 담지 못한 금강산 촬영분량이 부가영상에 수록되었는데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제작 당시부터 비교됐던 ‘굿바이 레닌’에 대한 감독과 프로듀서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몇 해 전 제작 중단된 조명남 감독의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의 프리뷰가 첨가된 것이 특이하다. DVD 안에 있는 엽서로 9월 30일까지 응모하면 5명을 추첨을 통해 2인 금강산 여행권을 증정한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 봐도 좋겠다.●굿바이 레닌 ‘간 큰 가족’의 시나리오가 1997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당선작이라고는 해도, 상당부분 ‘굿바이 레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희화화 대신 뚝심 있는 독일식 유머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코카콜라도 원래는 동독제라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물신화된 미국식 자본주의를 살짝 뒤트는 것도 유쾌하다. 지난 6월 2디스크로 재출시되었는데, 화질과 사운드, 부가영상 모두 기대 이상이다. 조용한 소품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시청각적 매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40분가량의 삭제장면을 비롯한 다양한 부가영상도 알차다.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국제플러스] 타이완 항공기 대륙 영공 첫통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타이완 여객ㆍ화물기들이 5일부터 분단 후 처음으로 중국 영공을 통과, 유럽과 동남아로 운항한다. 타이완 중화항공, 창룽(長榮), 리룽(立榮), 화신(華信)등 4대 항공사는 중국 민항총국으로부터 일주일에 120여편의 여객ㆍ화물기의 대륙 영공 통과 운항 허가를 받고 이날부터 대륙 운항에 나선다.
  • 주한美대사관 관계자 민노당방문 의견교환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들이 2일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처음으로 방문해 북핵 6자회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 이라크 사태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이정미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이번 민노당 지도부의 방북은 분단 이후 57년 만의 남북간 첫 정당 교류로서 의미가 크다.”면서 향후 남북간 화해 협력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 홍승하 대변인은 북핵 6자회담과 관련,“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포기를 6자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면 협상 자체가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계인 조셉 윤 정무담당 공사는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어 주한미군 재배치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여담여담] ‘경계인’과 대연정/구혜영 정치부 기자

    최근 기자는 독일 출장을 간 길에 베를린 시내 호르텐지 거리에 사는 송두율 교수의 집을 찾았다.2003년 한국의 가을을 뜨겁게 달구었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그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독일로 돌아간 지 벌써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불붙었고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40여년 동안 분단조국이 송 교수에게 붙여준 이름은 ‘경계인’이었다. 남과 북 어느 곳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존재, 혹은 기회주의자라는 뜻으로 이해돼온 것이 사실이다. 격변기를 맞고 있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송 교수 스스로가 경계인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부인 정정희 여사와 함께 청바지 차림으로 마중나온 송 교수는 오랜만이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건강해보였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고주택의 방과 마루는 온통 책으로 가득차 있었고 벽에는 김지하·김준태 시인이 써줬다는 시 액자가 눈에 띄었다. 송 교수는 경계인에 대해 ‘생산적인 제3자’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단순히 양쪽의 모순을 해결하는 통합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전망을 열어주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송 교수는 “지난 50여년 동안 현실정치의 덫에 걸려 대통령이 총대를 메는 것이 변하지 않은 한국 정치의 모습”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탈민족의 시대에 민족을 강조해야 하니 세계화의 혼란 속에서 국가가 정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걱정을 이어갔다. ‘대연정’ 논란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송 교수는 “최악의 경우에나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단언한 뒤 “정당정치가 실종된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선명한 정책적 차이도 없고 자신도 없는 한국 정당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는 해석으로 들린다. 분명한 주도권을 갖고 전망을 열어주는 ‘경계인’을 정치판에서 기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까. 구혜영 정치부 기자 koohy@seoul.co.kr
  • [논술이 술술] 부동산 가격과 경기의 상관관계

    [논술이 술술] 부동산 가격과 경기의 상관관계

    포인트 : 부동산 가격 폭등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은 적절한지 생각해 본다.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하자 정부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온갖 대책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내 놓은 ‘8·31대책’도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두고봐야 한다. 세율 인상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들의 비판이 있는 반면에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들대로 그전의 대책들보다 더 약한 대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세금폭탄’이라는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 탓에 한걸음씩 물러나 어정쩡한 대책이 되고 만 것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경제와 사회에 여러모로 악영향을 끼친다. 빈부 격차를 더 벌려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성한다. 더 큰 문제는 거품의 위험성이다. 부동산값이 급상승했다가 급락하면 경기를 악화시키고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따라서 급등세를 진정시켜서 거품 와해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목적이다. ●부동산 가격 급상승이 경제·사회에 미치는 나쁜 영향 일반 물가가 오르듯이 부동산값도 매년 오른다. 그러나 투기적 수요에 의해 급상승하면 또다른 투기를 불러 전국은 부동산 투기장이 될 것이다.2000년 이후 서울 강남권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59%는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이 추가로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강남권 아파트 수요는 상당 부분 투기수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불로소득의 확대로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은 멀어지게 된다. 기업도 여윳돈을 건전한 시설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쓸려할 것이다. 자원배분이 왜곡된다. 임대료 등 생산비용도 오른다. 급상승했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경제는 위축된다. 집값이 떨어지면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자산 가치도 하락한다. 부동산 관련 일자리도 줄어들어 실업자가 생긴다. 융자를 받아 주택을 구입한 개인은 금리를 견디지 못해 집을 팔려고 하고 이익을 실현하려는 사람들도 투매에 동참함으로써 가격하락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에 따라 총수요는 감소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나타나며 금융기관도 동반부실화 된다. ●일본의 교훈 ‘잃어버린 10년’.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10여년간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을 빗댄 말이다.10여년전 부동산 가격이 피크에 올랐을 때를 100으로 보면 지금은 30∼40 정도로 떨어졌다.10분의1까지 떨어진 곳도 허다하다. 전국의 2500개 되는 골프장 가격도 대부분 크게 떨어졌다. 파산한 곳도 많다. 일본에서 부동산값이 급등할 때 은행의 부동산 담보대출이 담보가액의 60%에서 120%까지 치솟았다. 수출 감소를 만회하려고 일 정부는 5%대였던 금리를 86년 1월부터 87년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2.5%로 인하했다. 금리가 내리자 너도나도 융자를 받아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 가격은 매년 치솟았다.86년부터 89년까지 일본에서 땅값이 올라 생긴 자본이득은 1452조 엔.86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1배다. 기업들이 사들인 토지는 84년까지 매년 8500억엔 수준이었지만 85∼90년 사이에는 8배나 되는 연평균 6조 7000억엔 규모로 치솟았다. 도쿄를 포함한 일본 6대 도시 상업지의 평균 땅값은 85년을 100으로 봤을 때 90년 374.6으로 올랐다. 거품이 꺼지자 은행융자를 보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주택가격이 폭락해 빚만 남게 됐다.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기업도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했으며 투자도 축소했다.91년부터 금융회사와 개인의 파산이 속출했다. 이후 10여년간 장기 불황이 이어졌다. ●부동산과 경기 논란 부동산과 경기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떨어지면 소비가 줄어들까.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이 오르면 소득이 오른 것으로 간주해 소비를 늘리는 것을 자산 효과(Wealth Effect)라고 한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소비를 줄여 경기하락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최근 몇년 새 부동산 가격이 올랐을 때 소비가 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91∼92년 아파트 가격이 하락기에 몇 달 동안은 내수가 조금 떨어졌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내수가 살아났다는 것. 다시 말해 집값이 하향 안정되면 내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 줄어 소비를 늘린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는 가계가 은행빚을 많이 지고 있을 때여서 소비가 도리어 줄어든다는 논리다. 금융기관의 충격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본식 거품 붕괴와 같은 현상을 걱정하지 말고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정부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한다. 저금리, 재정 확대 정책을 유지하지 말고 거품을 과감히 뺄 수 있도록 금리인상 등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기와 부동산은 결론적으로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부동산 정책으로 공급확대, 고금리 정책을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8·31 부동산대책’은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로 집약된다. 내년부터는 거래세 산정기준이 실거래가로 바뀌기 때문에 거래 활성화를 위해 거래를 낮출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투기수요 억제와 개발이익 환수다.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거주요건을 강화하고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등을 요구하며 보유단계에서는 기반시설부담금 및 개발부담금으로, 처분단계에서는 양도세 중과로 투기이익을 거둬들인다. 걷은 돈은 낙후시설 개발에 사용된다. 이와 함께 투기우려지역의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서는 종부세와 양도세가 중과세 된다. 종부세는 부과기준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확대되고 양도세는 60% 단일세율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세부담은 최소 50%에서 최대 30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도세제의 핵심은 1가구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다.2주택 중 먼저 파는 주택에 대해 50% 단일세율로 중과세한다. 정부는 또 강남의 중대형 수요를 대체할 수 있도록 택지 200만평을 확보해 공급키로 했으며 9년간 총 4500만평을 공급할 계획이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아나키즘(anarchism).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애착을 가진 이들은 그런 번역을 일종의 오역으로, 심지어는 일제의 잔재로까지 보기도 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이 단어가 제국주의 일본을 거치면서 ‘정부가 없는 무법·혼란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가 짙게 깔린 무정부주의로 번역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 대신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an-archi’라는 어원 그대로,‘지배자 혹은 권력집단이 없는’ 자유로운 개인간의 연대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노엄 촘스키가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체계나 행동양식이라기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경향’으로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살아남기가 버겁다. 체제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냉전 같은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모두에게 ‘체제를 부정하는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시대는 달랐다. 기존 체제를 격렬히 부정했기에 당시 많은 독립지사들은 아나키즘으로 ‘광복 이후’를 상상했다. 잊혀져 가던 이 대목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독립운동사 연구로 유명한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박환 수원대 교수가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선인 펴냄)를 정리해 낸 것. ●제3의 길, 아나키즘 얼마 전 유행했던 말로 치자면 일제시대 아나키즘은 제3의 길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독립운동 진영내 좌우파 대립을 보다 못해 택한 길이 바로 아나키즘이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박 교수는 이들이 왜 제3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집중 조명한다. ‘다물단’‘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남화한인청년연맹’‘한국청년전지공작대’‘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한족총연합회’‘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 등 중국·만주·조선에서 1920년대부터 45년까지 활동한 아나키스트들을 통해서다. 이들이 꿈꾼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도 없고,‘공산주의의 독재’도 없는 국민자치에 의한 연합체였다. 중간에 낀 입장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선택은 다양했다. 사회주의 혹은 민족주의 진영과 힘을 합하는 경우도 있었고, 끝까지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유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잊혀진 운동,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환영받기 힘들었다. 일단 중간자였다. 우파가 보기엔 체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좌파와 별 다를 바 없고 좌파가 보기엔 무모한 행동으로 혁명 역량을 분산시키는 어리석은 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남북분단 뒤 이승만·김일성은 임정 중심의 일부 우익 세력과 제한적인 사회주의 계열에만 정통성을 부여했다. 또 아나키스트들은 행동력에서도 주목받기 어려웠다. 개인 중심의 저항운동이다 보니 순교자적인 행동을 요구했고, 그러니 숫자도 얼마되지 않았는 데다 그나마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아나키스트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을 추가해 놓았다. 바로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숨결이 녹아 있는 각종 문건들을 번역해 놓은 것. 중국의 대문호로 꼽히는 바진, 뤼신이 아나키즘에 대해 남겨둔 글과 조선 아나키스트 기관지 ‘고려청년’의 발간사 등이 각장 뒤에 달려 있다. 박 교수는 “학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글이라도 사료 차원에서 참고자료 삼아 번역해 실어뒀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의 현재적 의미 박 교수가 이렇게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 한국에도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운동으로서 어떤 성과를 냈느냐고 한다면 다소 부족하지만, 새로운 국가 건설론으로 이해하면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름 아닌 중간자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성 존중과 풀뿌리 민주주의”라면서 “다른 체제로 살아온 남북이 통일할 때 한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 교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연대라는 것이 현실성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하기에. 그래도 그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보다 하나의 이상향으로서, 미래지향적으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교수는 책 내용에 조금 불만이 있다.“이번 책은 중국내 한인들의 아나키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다음 번에는 한국내 아나키즘의 수용과 전개에 대해 연구해볼 참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신 타향살이/박홍기 논설위원

    ‘타향살이 몇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로 시작되는 가요 ‘타향살이’.1935년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의 애절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이 노래는 기나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즐겨 불려지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 이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타향살이는 그만큼 낯설기에 외롭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힘겹고 버겁게 느껴진다. 반면 고향은 따뜻하고 아늑한 데다 편안하기 그지 없다. 세상이 변해도 마음 속의 고향은 정겹기만 하다. 그래서 고향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라고들 하는가 싶다. 최근 노년에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 등이 안락한 생활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또는 오랜 기간 살았던 터전을 떠나 실버타운으로 들어가고 있다. 노년에 고향을 떠나거나 거주지를 바꾸는 결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노인복지시설이 주변에 없는 까닭에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이런 세태를 풍자하듯 ‘신 타향살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우리는 지난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섰다. 총 인구 중 7%가 65세 이상인 노인들로 구성돼 있다. 또 머지않아 고령사회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인복지 정책은 아직 미흡하기 짝이 없다. 실버타운 등 유료 노인복지시설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노인들조차 유료 복지시설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더구나 민간자본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서울 등 대도시 인근 지역에 집중해 복지시설을 세우는 바람에 심각한 편중 현상을 낳고 있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마저도 노인 1000명 중 2명 정도의 수용 능력을 갖췄을 뿐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시 실버타운을 찾는 노인들의 ‘신 타향살이’를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고향을 그리고 생각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짐승도 죽을 때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5분 데이트 (14) - 김수경

    5분 데이트 (14) - 김수경

      전형적인「황해도」미인, 미스·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 김수경(金秀敬)양 『태어나긴 황해도 사리원인데 6·25때 월남했으니까 고향의 기억은 없어요. 기억나는 건「트럭」에 실려 흔들리며 월남하던 것 뿐예요』 하는 이 아가씨는「미스」수도여사대(수도여자사범대학) 김수경양. 이제 22세니 월남할 땐 세살박이 귀염둥이였을 것. 워낙은 6남매였으나 황해도 재령에 있는 외할아버지댁에 피난해 있던 3남매는 미처 월남하지 못해 지금은 오빠 한 분과 남동생 하나뿐이라고. 같이 월남했던 아버지는 1·4 후퇴 후 납북(拉北)당했다는 남북분단의 비극을 아주 철저히 겪은 아가씨다. 그러나 김양은 아주 쾌활하다. 『어머니가 하도 잘해주셔서 아빠 생각이 안나요』하면서, 『지금 미국 가있는 오빠가 내년에 돌아오시면 오빠는 건축설계, 저는 실내장식으로 엄마 편케 해드려야죠』한다. 키 158cm에 몸무게 46kg. 덕성여고를 거쳐 수도여사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 이번에 조업한다. 여고시절의 별명은 예쁘다고『꽃경이』. 그런데 살이 쪄서 큰 고민이었다고. 한때 54kg까지 올라갔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는 게 많아지니까 살이 내리더라고. 한때는 1박 2식의 절식(節食)생활도 했고. 『결혼상대자는 제 전공, 특기를 이해하고 권장해줄 수 있는 분이어야겠죠. 수입요? 아껴서 쓰고 조금씩이나마 저축할 수 있다면 좋아요. 단 그 남자가 발전성만은 있어야죠』라면서 김양은 『전 어디가나 복이 많은 얼굴이래요. 그러니까 이번 호「선데이 서울」도 잘 팔릴 거에요』 재치있는 애교 일석(一席). 취미는 군것질. 특히 단 것을 좋아하며「초콜레트」앞에선「완전히 무력」해진다니 연서(戀書) 대신「초콜레트」선사를 부지런히 해야할 듯. 아직 애인은 없다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란다. 귀염성 있고 예쁘고 복스러운 얼굴이 전형적인 황해도 미인의「타입」그대로다. 그토록 민족의 수난을 겪은 아가씨이면서도 한 줄기의 어두운 그늘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대견스럽기도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우리 아빠가 보시면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시겠네』하는 김양에게 진심으로 복있는 내일이 있길. ※ 뽑히기까지 수도여사대 가정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모은「패션·쇼」에서 한복「모델」로 나왔던 것이 뽑히게 된 계기가 되었다.「모델」로 뽑힌 아가씨는 모두 20명. 그 중에서 한복「모델」이 12명인데 이중 심사를 맡았던 교수님들이 의견을 모아 추천해 주신 아가씨가 바로 김수경양. 정초「무드」를 살리기 위해 역시 한복을 입혔다. [ 선데이서울 69년 신년호 제2권 제1호 통권15호 ]
  • 외교관이 ‘독일현대사’ 출간

    독일지역에서 모두 10여년을 근무하며 통일문제 연구에 매진해 ‘학구파’ 외교관으로 꼽히는 손선홍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 홍보과장이 최근 ‘분단과 통일의 독일 현대사’를 펴냈다. 이 책은 독일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 분단과 통일에 이르게 된 과정, 특히 통일 후 통합 과정 등을 주요 문건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한 손 과장은 1980년 외교부에 들어와 프랑크푸르트와 본 등 독일지역에서 10여년간 근무하면서 자료 및 사진수집, 관계자 인터뷰 등 집필 준비를 해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참회의 마라톤’

    “일본이 과거 한국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본 지식인들이 과거를 참회하고 일본과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피스-런’(Peace-run) 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일본 도쿄학예대학 와타나베 마사유키(渡邊雅之ㆍ51) 교수 등 일본인 13명과 서울마라톤클럽 회원 6명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출발해 임진각까지 47㎞ 코스를 완주했다. 참가자들은 찜통 같은 무더위와 습한 날씨 때문에 달리다 섰다를 여러차례 반복한 끝에 출발 8시간만인 오후 4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평화 달리기’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었으며 달리는 내내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임진각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북녘 땅을 향해 묵념을 올린 뒤 평화의 종각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타종 행사를 열었다. ‘피스-런’ 마라톤 행사는 와타나베 교수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지난해 서대문 형무소를 혼자 방문한 그는 한국의 독립 투사들이 일본에 저항하다 숨진 형무소를 보면서 일본인으로서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일본이 한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공무원, 회사원, 교사 등 마라톤 동호회 회원을 모아 한국에서 참회의 마라톤을 열기로 결심했다. 단순한 사죄와 참회에 그치지 않고 양국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행사 이름도 ‘피스-런’으로 결정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6월26일 일본 돗토리현(鳥取縣)에서 열린 100㎞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도 제주도의 민속의상을 입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일본어와 서툰 한국어로 낭독하기도 했다.그는 “일본에 저항하다 사망한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마라톤 출발점을 서대문 형무소로 정했으며 한국 분단에 일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를 임진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조영증의 킥오프] 축구를 정치에 이용했다고?

    지난 14일과 16일 서울월드컵구장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잇따라 열린 8·15민족대축전 남녀 남북통일축구 경기를 지켜봤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축구를 정치에 이용한다.’‘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최종예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경기를 추진했다.’는 식의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비판이 아닌 듯싶다. 인류사에서 ‘축구’라는 운동 종목이 차지하는 역할과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는 일찍이 남북의 화해와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는 민족사적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지난 1990년 11월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치른 남북 통일축구,91년 세계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 구성 등 축구를 통해 반세기 분단에 균열점을 냈고, 그런 축구의 역할로 인해 남북간의 화해 협력 분위기는 91년 12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이어졌다. 14일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6만 5000여 관중은 남북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플레이, 멋진 슈팅이 나올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축구가 남북의 거리를 좁히고, 마음속의 분단 장벽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다른 종목 운동 관계자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민족과 역사에 이처럼 기여할 수 있는 종목은 흔치 않다. 실제 축구의 긍정적 기능은 남북 관계뿐 아니라 그동안 월드컵 등을 거치며 인류와 세계의 평화 매개체로서도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이것이 바로 축구의 특성이자 힘이다. 또한 국가대표팀 일정상으로도 큰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17일 사우디전을 대비해서라도 14일쯤에는 연습경기로 실전 감각 등을 조율하고 축 처진 팀 분위기도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14일 남북통일축구에서 보여준 활발한 몸놀림과 3-0 완승은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자신감, 전술운용, 경기력 면에서 동아시아대회 꼴찌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북한 축구는 기술적인 면이나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 등에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당일 곧바로 바레인으로 이동하는 등 일정상 쫓기긴 했지만, 우리와의 경기 경험을 통해 전력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의 우위를 자랑하는 북한으로서는 한수 위 팀과의 경기 경험이 전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여건이지만 남북이 정기 축구 교류를 갖고, 또 훗날 아예 남북단일팀을 꾸려 월드컵에 출전,16강과 4강을 넘어 우승하는 것도 마냥 꿈만이 아니길 비는 마음이다.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 이후 처음 이뤄진 북측 인사들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놓고 환영과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 화해의 일대 전기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6·25에 대한 참회 없는 참배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소지가 많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학자의 진단을 통해 전환기를 맞은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동족상잔 전쟁 마침표 남북공존 전향적 몸짓”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정부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의 요구가 아니라 북측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점은 더더욱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진전되었지만 양측 모두 금기의 영역이 존재했다.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문제는 직접 건드릴 수 없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 측의 건국 및 호국 인사들이 안치되어 있는 묘소 참배 문제였다. 특히 전쟁까지 직접 치른 남북으로서는 상대방의 국립묘지가 곧 바로 적군의 묘지였고 상대방의 호국영령은 곧 전범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남북 현대사의 멍에와 상처를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전향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은 이제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그 자체도 인정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현충원 참배는 최근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전술적 일회성보다는 구조적 진정성을 기대하고 싶다. 장기 소강국면 끝에 지난 5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었고 이후 진행과정은 오히려 북한이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6·17 평양 면담,15차 장관급 회담,10차 경추위, 개성과 백두산 개방 허용 등이 모두 그랬다. 이같은 적극 행보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결단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6·15 5년을 맞는 지금,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남북관계의 진전은 오히려 북에 절실하고 불가피한 선택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현충원 참배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이념적 화해라는 의미 말고도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과제와 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된 현충탑을 북측 대표단이 참배한 것은 동족 상잔의 전쟁상태를 종료하고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자는 보다 적극적 해석까지 가능한 대목이다. 전쟁이 아직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은 정전체제하에서 실제 교전 당사자인 상대방의 국군묘지에 참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유감표시와 함께 이제 전쟁을 실제적으로 끝내고 평화상태를 회복하자는 간접적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북핵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고 있다. 이번 현충원 참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에 금수산 궁전 참배를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는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일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정말 소심의 극치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대범해야 한다. ■ “반역사적인 무력남침 참회없는 참배 무의미”북한이 6·25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실과 통한의 뉘우침을 담은 사과절차 없이 북측 8·15 축전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같은 행위는 자칫 남과 북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고 김일성 주석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행한 무력도발의 반(反)역사성을 묻히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경계를 요한다. 아직도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신성시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의 본질적인 변화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는 방편으로 민족 감정을 활용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인식과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막말로 해서 항상 전략과 전술로 남북문제를 재단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선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정보의 흐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당국은 이번의 참배를 그들의 구미에 맞게 정치적으로 요리해 체제유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남한의 친북 세력을 지원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북문제로 분열돼 있는, 우리 사회내에서 사상적으로 이질적인 집단간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 갈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도 대북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정된 미국과의 벌어진 틈새가 더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출발점’이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감상적이고 순진한 발언은 앞으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위험한 대북관의 노출이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측의 이러한 참배 제의를 받아 들인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서 아무 곳에도 기댈 곳이 없는 북한체제에는 북한식 통일전선전술의 전개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남아 있는 한·미동맹의 틀을 허물어 가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대북 지원시 엄격한 상호주의의 적용을 주장하는 우리 사회내의 목소리는 반(反)민족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유독 북한의 체제 선동이 지향하는 상호주의는 우리 대표단의 방북 시 김일성 시신 조문 요구 및 기타 지역 참배요구로 연결될 것이다. 현충원 참배가 지금 휴회 중인 6자회담에서 북측이 북핵과 연관시켜서 거론 중인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와 ‘평화협정체결’을 더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선전·선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사전에 정지 작업하는 차원에서 보는 견해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한·미간의 공조 틈이 더 벌어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될 수 있는 북 대표단의 국립묘지 참배 허용을 관련 정부부처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부정적인 여파를 차단하는 후속 대책이 하루 속히 세워지길 바란다.
  •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개통 3일 앞두고 장비 급구… 상봉 못할뻔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개통 3일 앞두고 장비 급구… 상봉 못할뻔

    사상 첫 남북간 ‘화상상봉’이 결실을 거둔 데는 세계 최고수준인 우리의 IT기술이 결정적 몫을 담당했다. KT는 지난 6월29일부터 8월15일까지 남북간의 화상전화 선로를 잇는데 연 인원 2000명을 투입했다. 이들 기술진은 북측과의 통신망 개통, 남측 지역의 상봉시스템 설치·운용, 화상상봉 방송중계 지원 등 기술적인 면을 책임졌다. KT 실무진은 그동안 북측과 4차례의 기술적 만남을 거쳐 지난 달 18일 문산∼개성 광케이블 통신망을 연결했다. 남북간 의사소통 수단으로 민간에서는 분단후 처음 직통전화, 팩스 1대씩을 설치했다. 또 7월5일부터는 남북화상상봉지원 전담반을 편성, 지난달 말 서울∼평양 전송라인 점검을 모두 끝냈다. 50여년 만의 남북간 전화연결이라 어려움도 따랐다. 인터넷주소(IP) 방식을 적용했지만 첫 시도에서 광케이블을 연결하고 IP를 찾아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남북간에 통신장비 연동규격이 다르고 연결 단계가 우리보다 많아 북측의 규격에 맞게 보완해야만 했다. 문산∼개성 광케이블 전송장비 구축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 북측이 장비공개(영국산)를 꺼리면서 10여일 만에 홍콩에서 이 장비를 구입해 오는 급한 사정도 있었다. KT 실무진의 한 관계자는 “광통신망 개통 3일전인 7월15일에서야 장비를 구입해 며칠만 늦었어도 광복절 화상상봉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화상상봉에서 만에 하나의 오류도 방지하기 위해 북측과의 전송회선을 3원화했고, 종합상황실과 지역상황실간에는 23회선의 핫라인을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사설] 화상상봉, 자유면회로 이어져야

    광복 60돌을 맞은 어제 남과 북의 이산가족 40쌍이 화면을 통해 그리던 혈육을 만났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화상상봉은 남북이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또 한걸음 진전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화상상봉이 더욱 발전하여 이산가족들의 희망대로 상시 자유면회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지금까지 남과 북 사이에는 모두 10차례 ‘행사’를 통해 1만여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대한적십자사에 상봉을 신청한 가족이 12만 5000여명에 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봉 실적은 너무 지지부진하다. 특히 이산 1세대 상봉 대기자의 대부분이 70세 이상으로 언제 세상을 하직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개중에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남아 있는 이들만이라도 모두 생전에 헤어진 혈육을 다시 만나 이산의 한을 달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보다 손쉽고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도적인 노력을 더 기울여줄 것을 남북의 당국자들에게 촉구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꼭 광복절이나 설·추석과 같은 명절때만 시혜성 ‘행사’로 이뤄져야 하는가. 이제는 언제든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화상이든 대면이든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남북은 이미 이산가족의 상시 자유면회 실현을 위해 면회소 설치에 합의한 바 있으나 그 진행이 너무 더디다. 이번에 이뤄진 화상상봉도 수시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남북 당국은 다음 주초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확대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 좋은 결실을 거둬주길 바란다.
  • 保·革따로 8·15집회

    남과 북이 함께 한 통일의 메아리도 우리 사회에 가로놓인 ‘이념의 벽’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다. 광복 60주년인 15일 서울 도심에서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8·15 기념행사가 따로따로 열려 좌-우, 보-혁 갈등이 여전함을 새삼 확인시켰다. 이날 진보단체와 보수단체는 비슷한 시각 서울 도심에서 제각각 반전·통일행사와 반핵·반북행사를 가졌다. 양측의 충돌이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일부 보수집회 참석자들은 북한 인공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오전 10시30분 진보단체 모임인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는 서울 대학로에서 ‘8·15 반전평화 자주통일 범국민대회’를 열었다.1만여명이 푸른색 한반도기를 들고 참가한 행사에서는 분단 60년 역사 극복, 자주평화통일, 주한미군 철수, 일본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배상 등 내용을 담은 호소문과 결의문이 발표됐다.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늘 대회는 분단 60년을 청산하고 노동자·농민·민중이 주인이 되는 출발신호를 울리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는 모형배를 선두로 종로5가를 거쳐 종각까지 1시간가량 행진을 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해처럼 성조기를 찢거나 미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는 등 돌출행동은 없었다. 60개 우익단체 연합인 비상국민회의 국민행동본부도 오후 1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2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대회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진보단체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가 물결쳤다. 홍관희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은 “8·15 행사라는 미명 아래 온나라가 친북·반미 광란에 빠져 있다.”면서 “북측대표단의 거짓 참배로 민족의 정신적 보루인 현충원이 능멸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에는 ‘태극기 금지시킨 이해찬 구속하라’ 등 현수막이 걸렸고 친북 발언을 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고발하자는 서명운동도 진행됐다. 또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한겨레 사진기자의 머리채를 잡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 2000여명도 오후 3시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북핵폐기·북한해방을 위한 국민대회’를 열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주최측이 예고했던 대로 인공기를 소각했다. 하지만 처벌근거가 없어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경기도 부천 중동신도시 중앙공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시민통일문화제’가 성공적으로 열려 좌-우, 보-혁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병대전우회, 상이군경 부천지회, 전몰군경유족회 등 보수단체와 부천시민연합, 부천경실련, 남북통일 국민연합, 부천여성노동자회 등 진보단체가 공동기획한 이 행사는 ▲북한음식 체험전 ▲부천-개성 국가유공자 평화적 만남기원 서명 ▲615분 통일비빔밥 만들기 등으로 꾸며졌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北대표단, 서대문형무소 둘러봐

    ‘8·15 민족대축전’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이 분단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파격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립현충원 참배에 이어 광복 60주년인 15일에는 서대문 형무소와 백범기념관을 방문했다.16일엔 국회를 방문하고,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방문할 예정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남북 당국 공동행사에서 “평화를 통해 번영을 누리고 번영을 통해 평화를 공고히 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가자.”고 제의했다.●“김구 선생과 김일성 주석 인연” 북측 대표단은 서울 백범기념관에 도착, 김신 백범기념사업회장 등 김구 선생의 아들·손자와 환담했다. 북측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북측대표단이 온 걸 알면 선친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김 회장 말에 “김 주석의 보천보 무장투쟁에 감격한 김구 선생이 사절을 김일성 장군께 보냈고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성익 조선적십자위 중앙부위원장은 백범기념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쌍방사이 실질 화해와 신뢰의 확고한 구축을 위해 귀측의 국립현충원에 대한 참관도 진행했다.”면서 “체제·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토대해 풀어나가자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의 연설은 사전에 준비돼 배포된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 사전에 참배란 말은 주술적 의미가 깃든 것이라 잘 쓰지 않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관’했다고 표현한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김주석님의 삼촌도 옥사하셨다” 오전 10시50분쯤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기남 단장 등 남북 당국 70여명은 민간 대표단보다 30여분 앞서 도착, 일제 독립투쟁의 상징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봤다. 김기남 단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참관 소감을 나누며 “(일제 때)처형된 선열 중에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다 포함돼 있고 그중에서 김일성 주석님의 삼촌되는 분, 사랑했던 친위군사들도 몇명 있다.”고 밝혔다.●임동옥 부부장 오찬서 자작시 임동옥 북측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15일 정 통일장관 주최 환영오찬에서 자작시를 소개했다. 정 장관이 “북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계시는 ‘무서운 분’인데 이번에 대표단에 포함돼 깜짝 놀랐다.”고 임 부부장을 소개하자, 작은 수첩을 꺼내 “우리는 서울을 보았다/이국의 도시가 아니었다…중략…평양과 서울은/똑같은 우리것/우리 민족의 것이로구나/쭈욱해도(술잔을 들이켜는 것)단번에 너무도 쉽게 통하는/우리는 정말 통일로 살아야 할 하나로구나.”란 시를 낭독했다. 김 단장은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갔다고 하자 “짐승이 아닌 이상 느끼는 바가 있었겠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김수정 나길회기자 crystal@seoul.co.kr
  • 서훈받은 사회주의자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 내한

    서훈받은 사회주의자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 내한

    “항일전선에 바친 아버지의 짧은 삶이 이념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4일 서울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 두번째 고국을 찾은 고영광(68)씨를 위해 조촐한 환영회가 열렸다. 고씨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의 아들. 김산은 남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연안파였다는 이유로 양쪽에서 모두 배척당한채 비운의 생을 살았다. 우리 정부는 올해에야 김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가정체성을 흔든다며 반대도 만만치 않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 때문에 일괄적으로 한 단계 낮춰 훈장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늦게나마 부친생애 되새길 수 있게 돼” 이런 논란에 대해 아들 고씨의 입장을 물었다.“아버지는 민족의 독립에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나, 남북이 분단됐다는 이유로도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경위야 어떻든 2년여 간에 걸친 노력 끝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서훈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늦게나마 드러내 놓고 부친의 생애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의 희생과 도움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고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가 1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1957년 대학 입학 무렵에야 어머니에게서 아버지 얘기를 전해들었다.“일제 침략에 비분강개할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고 하시더군요.” 뒤늦게 여기저기 흩어진 아버지의 흔적들을 모았지만 곧 몰아친 문화대혁명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를 처형한 캉성(康生)은 마오쩌둥의 최측근이자 바로 문혁의 주도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 후 어머니가 재혼한 뒤 성을 고씨로 바꿨고, 그가 ‘장영광’이 아닌 ‘고영광’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문혁의 광풍이 잦아들면서 70년대 말부터 중국정부에 이의를 제기해 80년대 초 마침내 아버지를 복권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호적도 바꿨다. 이제 서른이 넘은 그의 아들들도 모두 할아버지 김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남북 분단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번에야 뒤늦게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다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고씨가 김산의 ‘진짜’ 아들인지 증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번 한국행도 우리 정부의 공식 초청이 아니라 김산을 기념하는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초청으로 이뤄졌다. ●정지영 감독 “김산 영화 내년 촬영” 그러나 김산의 마력은 이미 우리 문화 전반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씨가 ‘토지’를 애초 1권 분량의 소설로 기획했다가 김산의 일대기를 접하고는 만주·연해주·일본·조선을 넘나드는 대하소설로 바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산의 생애는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남부군’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이 나섰다. 정 감독은 “이장호 감독 등 많은 감독들이 욕심을 냈는데 군부독재 때문에 아무도 엄두를 못냈다.”면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온 만큼 누구보다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이미 4년여 동안 김산의 흔적을 찾아 중국 땅을 누비고 다녔다. 연말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고씨의 자문을 받은 뒤 내년부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산은 누구? 평북 용천 출생인 김산은 아나키스트로 독립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때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접하게 된다. 그는 이후 ‘체계적 항일’을 위해 사회주의로 전향, 광둥 코뮌·해륙풍소비에트·대장정 등 중국혁명에 투신했다. 중국혁명이 조선의 광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 동시에 ‘물속의 소금’이라는 그의 화두에서 알 수 있듯 조선민족의 문제가 중국 해방에 녹아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중국 공산당에는 편치 않았다. 스탈린이 끝내 트로츠키를 제거했듯, 중국 공산당은 그를 트로츠키주의자·일본스파이로 몰아 38년에 처형하고 말았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내부의 적들을 숙청하는데, 이 방법을 배워온 인물이 캉성”이라며 김산 처형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치열한 삶에 견줘 죽음은 너무나 허망했지만 권력에 물들지 않았던 순혈의 혁명가 김산에게는 그런 죽음이 더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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