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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회화록’ 출간

    지식인에게 말은 곧 그 자신이다. 지식인으로서 존재의 표현양식이자 지식인됨의 정체성 자체다. 지식인이 한 시대를 살아가며 대면한 사회와 역사, 시대적 책무에 대한 지적 고뇌는 그의 말 속에 집약돼 나타나고, 지식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무겁게 짊어지며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말과 행동, 비평과 실천이 하나의 길 위에서 합일하는 몇 안 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 백낙청(69) 서울대 명예교수다. 백 교수가 1968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참여한 좌담, 대담, 토론, 인터뷰 등을 모아 엮은 ‘백낙청 회화록(會話錄)’이 15일 창비에서 출간됐다.5권의 책으로 지어진 백 교수 말과 언어의 집이다. 지난 40여년간 한국 사회를 분석한 백 교수의 시각과 사회현실 한 가운데로 뛰어들며 생산해온 담론과 논쟁을 총체적으로 정리했다. 백 교수가 관여한 지적담론은 곧 한국 현대사의 담론이기도 하다. 그의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란 한국사회 두 가지 모순의 한 축을 설명하며 오랜 세월 논쟁을 이끌었다. ‘백낙청 회화록’은 한국 출판사에서 독특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특정 학자가 평생 걸어온 실천적 학문의 길과 그 길에서 탄생한 담론과 논쟁의 자잘한 편린까지 꼼꼼히 수집해 묶었다는 점, 그 대화의 도반(道伴)이 133명에 이른다는 점, 도반의 면면이 백철·김동리·선우휘·박현채 등 작고 인사를 포함해 리영희·강만길·고은·김지하 등 국내 대표 지식인들과 이매뉴얼 월러스틴·프레드릭 제임슨·가라타니 고진 등 외국의 석학까지 망라했다는 점, 백 교수가 흩어놓은 말을 수집·정리하기 위해 별도의 간행위원회(염무웅·임형택·최원식·백영서·유재건·김영희)가 꾸려졌다는 점 등이 책의 특색을 더한다. 5권 말미에 실린 ‘후기’에서 백 교수는 “이 회화록은 나 개인의 업적을 넘어 한 시대의 지성사를 담았다.”면서 “분단과 독재와 갖가지 식민성에 시달리면서도 자주력과 민주주의를 키워온 지식인들과 문학인들의 치열한 이바지에 주목해달라.”고 적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청와대·국방부 또 NLL ‘엇박자’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국방부의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지난 12일 참모진과 3군 참모총장이 모인 자리에서 “11월 국방장관회담에서 NLL을 사수한다는 입장을 지키겠다.”고 거듭 밝힌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청와대는 김 장관의 소신 표명이 “NLL은 영토(영해)선이 아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천호선 대변인은 “일부 언론이 장관 발언을 짜맞춰 보도했다.”면서 “특히 ‘이름을 걸고 NLL을 지키겠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국방부가 전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선 “대통령이 나서 입장을 밝혔는데 ‘사수’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항명이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국방부는 서둘러 봉합에 나섰다. 국방부 관계자는 “NLL 문제는 장관이 참모들과 지혜롭게 풀어갈 테니 장병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영해선’과 ‘해상경계선’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는 기자들 요청에 이 관계자는 “장병들은 (NLL을)영해처럼 생각하고 지키고 있다.”면서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헌법 조항을 계속 얘기하면 혼선이 빚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대통령의 ‘영토선’ 발언에 우회적인 서운함을 내비쳤다.박찬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남·북 함께 DMZ 생태계 연구할 날 어서 오길”

    “남·북 함께 DMZ 생태계 연구할 날 어서 오길”

    남북한이 함께 비무장지대(DMZ) 야생동물을 조사·연구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일본 조선대(총련 계열) 야생생물연구실과 한국수달연구소·한국야생동물연구소는 지난 13일 강원 화천에서 한반도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보호협약을 맺었다. 조선대 야생생물연구실은 이에 앞서 지난 8월 북한 국가 과학원과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이들 기관은 각각 DMZ생태 연구·조사 결과를 정기적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이로써 부분적이나마 남북 학자가 함께 참여하는 DMZ생태계 연구의 첫 단추를 꿰게됐다. 화천에서 열린 제 10회 국제 수달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정종열(62·북한 국적 소유) 조선대 야생생물연구실장은 남북 공동 DMZ 워크숍에서 “한반도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DMZ생태계를 조사·연구해야 한다.”면서 “남북 학자들이 각각 DMZ 북한강·임진강 유역 수달 생태를 조사한 뒤 결과를 2∼3년 안에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현실적으로 자유로운 연구가 어렵기 때문에 남북을 연결해주는 차원에서 협약을 맺게 됐다.”면서 “남북 학자들이 직접 DMZ 생태계를 조사·연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 차원에서 추진하는 DMZ 생태조사는 한계가 따른다.”면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 위해선 남북 정부 당국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한적이나마 학술 교류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남북이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돼 동식물의 이름이나 연구 논문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나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수달총회에 참가한 36개국 전문가들은 평화의 댐 상류 습지와 칠성 전망대를 방문,DMZ 생태 현황을 살폈지만 정 실장은 북한 국적 학자라는 이유로 민통선 출입을 거절당해 평화의 댐에서 돌아서야 했다. 정 실장은 그러나 “현 상황에서 출입 통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초청해줘 고맙다.”면서 “북한 국적 학자가 DMZ 가까운 곳을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고 큰 진전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 DMZ생태 연구를 위해 친선과 통일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밝혔다.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난 정 실장은 일본 조선대를 나와 올 3월까지 이 대학 교육학부 교수(미생물·이과)로 재직하다 퇴임했다. 해마다 2∼3차례 북한을 방문,DMZ 일원 생태계를 조사하고 있으며 두루미와 저어새 서식 실태를 조사·발표하기도 했다. 화천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亞문학 ‘보편제국주의’ 탈피 민족적 특색 살려야”

    “亞문학 ‘보편제국주의’ 탈피 민족적 특색 살려야”

    한국의 고은(74) 시인과 중국의 문학평론가 장종(張炯·74)이 만났다.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위치한 대산문화재단에서였다. 두 사람은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11∼17일 열리는 ‘한·중문학인대회(한국문화예술위원회·대산문화재단·중국작가협회 공동주최)’의 양국 작가단 단장을 맡고 있다. 두 나라 문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들이다. 고은은 올해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후보로 거론된 세계적 시인이고, 중국작가협회(중국공산당 산하기구인 전국 문인협의체) 명예부주석이자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장종은 사회주의 문학론의 탁월한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장종은 국제 케임브리지 전기센터에서 수여하는 ‘20세기 성취상’과 은상 포장을 받은 바 있다. 고은과 장종은 1933년생 동갑내기다. 두 사람이 밟아온 지난 시간은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점철됐다. 유사한 시대적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두 사람은 역사라는 큰 퍼즐 속에 찍어온 각자의 발자국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 양국 문학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역할과 현재 문단이 직면한 과잉 시장주의의 위협을 서로를 통해 거울처럼 비춰봤다. 통역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학과 BK21사업단 권영실 연구교수가 도왔다. 사회 및 정리 이문영기자 ●“역사가 우리 몸과 문학에 새긴 상처” -장종 고은 선생을 매우 존경합니다. 나와 동갑인데도 그토록 많은 작품을 쓰셨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합니다. 선생께서 불교에 귀의했던 동기와 문학을 택해 환속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고은 저의 산중생활은 전적으로 한국전쟁 탓입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 속에서 제가 살아남았습니다. 그때까지 절 행복하게 했던 모든 가치들이 파괴됐습니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됐고, 살아남은 제 마음까지 폐허가 됐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인간됨을 부정하는 모습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산에 들어가 방황하며 10년을 보냈고, 문학은 다시 저를 산에서 내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장종 전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서구 민주주의 사상을 처음 접했어요. 그후 자유와 혁명의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48년 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공산당 활동은 비밀리에 이뤄졌기에 드러내놓고 움직이진 못했습니다. 지하에서 글을 인쇄해 전단지를 만들고 거리에서 몰래 뿌리는 식으로 선전작업을 하곤 했지요. -고은 48년이면 15살 소년입니다. 당시는 나이 어린 소년까지 역사를 정면 대결토록 만드는 시대였지요. 억압받는 식민지 소년에 불과했던 저 또한 한국전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시련의 시간이었고,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엔 각기 자기 나라의 아픔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통해 두 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장종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새겨진 시대적 아픔은 우리 문학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1919년 5·4운동 이후 로마·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서구 문예사조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일본과 소련문학의 영향까지 받으면서 당시 중국문학엔 다양한 문학사조가 한 시대에 공존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루신 선생의 작품만 봐도 ‘축복’과 ‘아큐정전’은 현실주의에 가까운 반면,‘고사신편’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성격을 띱니다. -고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는 서양의 고대문학조차 근대에 와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세문학, 르네상스시대 문학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서구문학이 오랜 시대를 거치며 쌓아온 변화의 흐름을 한꺼번에 만나버린 겁니다. 단테는 옛날 사람인데 근대에 만났기 때문에 단테조차도 근대의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혼란이라 명명하는 게 당연합니다. ●“시장주의에 종속된 문학의 위기” -장종 양국 문학에 정치색이 강한 것은 그런 혼란과 무관치 않습니다.1919년 태동된 중국 ‘신문학’ 이후 약 50년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대혼돈’‘정치·계급투쟁’‘내우외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선 문학은 순수문학의 길만 가라는 목소리가 생겼습니다. 개혁·개방 이후엔 ‘문학은 문학으로 족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서 정치색 없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지요. 하지만 창작을 하면 어떤 현상과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 정치성과 철학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고은 한국문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때론 정치노선을 아예 배격하는가 하면, 때론 지나치게 정치에 밀착되기도 했습니다. 정치 때문에 문학이 죽기도 했고, 정치가 문학을 살리기도 했지요. 민주화 이후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중국처럼 문학이 내면화 경향을 걷고 있어요. 그러나 내면화 경향이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작가입니다. 작가는 마치 딱따구리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쪼아대야 합니다. 자신의 아픔만을 투시하던 문학으로부터 타자의 아픔을 바라보고 그 아픔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야 합니다. 전 향후 문학의 전망을 ‘타자읽기 문학’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 문학이 타자와의 합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장종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중국문학은 생산과 소비에서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어떤 책은 1000만부 이상을 찍기도 합니다. 중국문학 전대미문의 번영기라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문제는 있습니다. 이전엔 정치에 종속돼 있던 문학이 이젠 시장에 종속돼 있습니다. 원고료에 집착한 작가들이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일회성 통속문학에 치중하면서 작품성이 떨어졌고, 지나치게 사회문제를 등한시하면서 사상성과 도덕관념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우려할 일이지요. -고은 한국도 진즉에 겪어온 일입니다. 시대·경제상황이 변하면서 무한한 문학적 가능성을 개척해 왔지만 시장적 가치에 의해 문학의 가치가 좌우되는 현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적 색채 강할수록 세계성 강해” -장종 중국과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려면 민족적 특색을 살려야 합니다. 루신 선생은 지역적 색채가 강할수록 세계성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중국인이 서양인의 문화와 생활을 작품에 쓴다면 서양인이 딱히 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수한 번역인력 양성도 시급합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서부 신강성엔 13개의 민족이 모여 삽니다. 위구르족 하자크족엔 이미 상당 수준의 장편소설이 창작돼 사랑받고 있지만,10억 이상의 중국인들이 이들 작품을 독해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고은 몇 년 전에 나이지리아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레 소잉카와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전 ‘보편성’을 믿지 않는다고 단적으로 말했습니다. 특히 아시아문학이나 아프리카문학에 세계적 보편성이 결여돼 서구문학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럴 듯 해보이지만, 보편성엔 무서운 함정이 있어요. 한마디로 ‘보편제국주의’입니다. 장 선생 말씀처럼 자기 자신의 특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가치가 있습니다. 소잉카도 동의하더군요. 자기 언어와 목소리, 생각을 담지 않으면 서구 문학을 흉내내는 것밖에 안 됩니다. -장종 베이징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밖에 안 걸립니다. 아시아문학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이번 문학인대회를 계기로 양국의 문학교류가 더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고은 한·중 양국은 그간 각자가 너무 아팠습니다. 이웃을 돌보고 쳐다볼 겨를이 없었지요. 장벽도 높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만났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몰랐던 서로를 적극적으로 알아나간다면 분명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문학을 태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2moon0@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 전남 구례군 문수리 영암촌

    그동안 인기리에 연재됐던 ‘산이 좋아 산이’ 코너는 전국의 가볼 만한 명산을 대부분 다뤘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산 소개를 중단하고, 대신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 남도의 주요 산자락에 숨어 있는 ‘산골 마을’을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혹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산골을 지키는 마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등산을 떠날 적에 그곳 주변 마을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다면, 그 보람과 의미 또한 일석삼조이겠지요. 먼저 지리산 지역의 산마을을 10여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구례 최고의 명당이라는 토지면 오미리에서 지리산 품속으로 차를 돌려 닿는 곳이 ‘문수리’인데, 저수지 위쪽의 상죽(웃대내)·중대(영암촌)·불당·밤재 등이 문수리에 속한 마을들이다. 노고단(1507m)∼왕시루봉∼형제봉을 삼각점으로 생성된 이 골짜기의 넓이는 약 2660㏊. 따라서 예부터 좁고 긴 계곡과 동·북·서로 막힌 산자락 때문에 사람이 숨어살기 적당했고, 그것이 또 문수리 일대를 ‘피의 전장’으로 전락시켰다. ●사람 숨기 적당한 지형이 주민에 고통 안겨 해방과 분단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기간은 지리산 촌로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특히 명당 인근에 산다는 문수골 사람들에겐 목숨이 수십 개라도 모자랄 괴로운 시기였다. 지리산과 강 건너 백운산이 여순사건(10·19사건) 때 소위 빨치산과 경찰 토벌대의 피 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구만들을 거쳐 문수골로 숨어든 주민들은 경찰 추산 2000여명. 낮과 밤으로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야 했던 문수골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물론 동네도 급격히 쇠락해 간다. 구례군 토지면 주민들은 1948년부터 약 7년의 세월을 전쟁 속에서 보낸 셈이다. 다시 이념이 갈리고 전쟁이 난다면 그때 또 지리산은 반란군을 품어줄 은신처가 될 것인지, 그때도 이 산은 그들을 잡아내려는 토벌대의 총성과 그 총성 속에 쓰러진 수많은 젊은이의 피로 물이 들 것인지, 이제 문수골은 과거의 일 따위는 잊은 것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청명하다. 문수사로 이어지던 도로 우측으로 ‘영암촌’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기 전에 조금 더 직진하면 폐교된 문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앞에서 내려다보는 영암촌의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영암촌에서 태어나 여태껏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조삼남(87) 할머니는 “타지에선 데려갈 총각이 없어 고향인 이 마을에서 혼례를 치렀다.”고 너스레다.“한때는 35가구쯤 되었던 마을이 여순사건 때 많이 사라졌다.”며 지금도 한숨을 쏟아낸다.“14연대 반란군이 먼저 들어오고 그 후에 군인들이 들어왔지. 바위틈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붙였응께.”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20년 전쯤 영암촌으로 들어온 황창옥(64)·신연남 동갑내기 부부의 어둑한 방안에는 외손자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딸만 넷을 둔 딸부잣집이다. 밤과 한봉, 고로쇠 수액 채취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실 큰돈이 될 만큼은 아니다. “물 좋고 산도 좋지만 노인들은 불편해.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 하거든.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몇 배는 더 비싼께. 노인들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해 전만 해도 다랑이논에 농사도 지었고, 기계가 들어갈 수 없으니 소로 밭을 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땅을 경작할 사람도 없어 경작지라야 텃밭 정도가 고작이다. 작년 추석 즈음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내려와 이곳에서 생포되기도 했다. 도로 끝에 자리한 문수사에선 불자가 방생했다는 곰을 키울 정도니 이래저래 산이 깊긴 깊은 모양이다. ●봄엔 산수유·여름엔 피서인파로 북적 영암촌 곳곳에 멋지게 들어선 집들은 예상대로 외지인들의 별장이다. 번창하던 마을이 주민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바다가 되기도 하였으니, 이 마을에 다시 집이 들어서고 사람이 드나드는 건 차라리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봄이면 마을 곳곳에 핀 산수유 꽃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모이고, 여름엔 계곡을 찾아든 피서 인파로 북적이고, 가을엔 밤과 감을 수확하는 손길로 바쁘고, 겨울이 되어야 그나마 조금 한가해지는 작은 산골마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 노고단 너머로 짧아진 하루해가 황급히 저물고 있었다. ●교통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19번 국도를 지나는 군내버스는 있지만 문수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 구례읍에서 영암촌까지 택시비는 1만원 안쪽.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진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전주∼순천간 4차선 산업도로로 들어서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
  • [CEO칼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빠를수록 좋다/박창규 대우건설 사장

    [CEO칼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빠를수록 좋다/박창규 대우건설 사장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일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시작은 항상 조심스럽고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남북이 분단되고 반세기의 시간을 거쳐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그리고 다시 7년의 세월이 지나 2007년 10월 남북 정상은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북한 또는 통일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연구를 해왔다.2000년 첫 정상회담 이후 7년여 동안 금강산관광사업 시작, 개성공단 조성 등 많은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는 게 남북의 공통된 평가다. 남북의 정치·경제적 시각차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경제협력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많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얻어 내고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남북이 서로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분야는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경제협력 사업에 있다고 본다. 북한은 전력, 철도, 도로, 에너지, 항만 등 국가 산업의 기간이 되는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의 폐쇄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남측 기업을 비롯한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외자 유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이번에 남북 양측 정상이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개성∼신의주간 철도와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의 개·보수를 추진하기로 한 점도 이러한 SOC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남북간 SOC 분야의 협력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우리에게는 SOC 구축에 대한 오랜 노하우가 있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다양한 분야의 시공 경력뿐만 아니라 국토개발계획을 통한 경험이 풍부하다. 단위 기업 차원에서 ‘소프트’와 ‘하드’가 결합된 종합개발 프로젝트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북한에서 건설 프로젝트가 꾸준히 이어지는 등 SOC 투자가 활성화되면 국내 건설업계는 대북 특수를 누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SOC 구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투자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북한이 개방될수록 주변 국가의 이해 관계가 복잡해질 가능성도 크다. 또 중국과 일본 등 북한의 인프라에 관심이 많은 주변 국가보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정상회담 선언문에서 민족 내부 협력 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데 합의한 것은 이러한 큰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각종 리스크(위험)에 대비해 안정된 경제협력 사업의 추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법과 장치를 서둘러 구체화해야 한다. 경제협력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한 방안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건설업에서는 설계와 기초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우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지혜를 모아 통일 한국의 미래를 만드는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북한 땅도 후손에게 물려줄 우리의 소중한 국토이기 때문이다. 박창규 대우건설 사장
  • [2007 남북정상선언] 방북중 평양서 딸 낳은 황선씨의 감회

    [2007 남북정상선언] 방북중 평양서 딸 낳은 황선씨의 감회

    “정상회담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달려간 서울∼평양 간 도로가 누구에게나 열리는 날이 꼭 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딸 겨레(2)의 고향인 평양의 하늘을 생일선물로 보여줄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믿어요.” 2005년 10월10일 북한 문화유적을 참관하러 방북했다가 평양에서 둘째딸 윤겨레양을 낳은 황선(33·민주노동당 부대변인)씨의 눈시울에는 감동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던 장면을 보며 2년 전 자신과 둘째딸이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리랑 공연보다 산통… 평양산원서 출산 그는 당시 시부모와 함께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다 진통을 느끼고 평양산원으로 옮겨져 딸 윤겨레양을 낳은 뒤 같은 달 25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남한에 돌아왔다. 이 일은 당시 우리 사회에 환영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황씨는 분단 이후 남쪽 주민이 북쪽에서 아기를 낳아 돌아온 첫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통일둥이’ 겨레는 남한보다 북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겨레에게 선물이 쇄도했고 북한 국립연극단은 겨레를 소재로 한 연극 ‘옥동녀’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황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남북이 골육을 나눈 친척이며 한집안”이라는 점을 강조한 이 연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 주민들에게 상연돼 호평을 받았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지난 1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모든 관심이 북핵문제에 쏠려 있던 겨레의 ‘돌잔치날(10월10일)’에도 평양산원에서는 축전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저 맘 편히 관광 갔던 평양에서 뜻밖에도 겨레를 얻었어요.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 정도 남아있던 터라 저도 아이가 태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당시 제가 통일연대 대변인을 맡고 있어서인지 일부에서는 ‘아이에게 북한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기획한 원정출산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둘째 딸아이는 그 일로 아주 특별한 고향을 얻게 됐죠.” “그 일 뒤로 저는 한순간에 통일운동가에서 ‘통일둥이 엄마’로 바뀌었어요. 통일운동에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평양산원에도 아이를 가족처럼 돌봐준 분들이 많은데 자주 인사드릴 수 있게 남북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는 앞서 1999년에도 한총련 대표 자격으로 제3국을 거쳐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판문점을 통해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왔다. 당시 황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고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이야 군사분계선을 넘는 일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저처럼 이름 없는 통일 운동가에게는 ‘죽음을 각오해야’할 수 있는 길이었죠. 옥고를 치르면서 저보다 먼저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문익환 목사님이나 임수경 언니가 얼마나 힘든 길을 앞서 갔는지 많이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정상회담 앞서 연극 ‘옥동녀´ 평양공연 호평 황씨의 남편은 1999년 한총련 7기 의장을 지낸 윤기진(32·현 범청학련 의장)씨.2004년 결혼한 뒤 민(3)과 겨레를 낳았지만 두 딸은 9년째 수배중인 아버지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겨레의 두 번째 생일에는 더 이상 수배자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선물해 주고 싶단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걸어서 넘어간 그 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평양을 두 차례 다녀오면서 통일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노 대통령이 그 길을 걸으며 일찍이 그 길을 먼저 걸었던 김구 선생과 문익환 목사 등 숱한 개척자들을 한번쯤 떠올려 주길 바래요. 통일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노력 덕분에 찾아오는 것이잖아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공동서명한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간 신뢰회복과 경제협력 강화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명시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황원탁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특별대담을 통해 2007 남북정상선언의 의미와 향후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점검한다. 대담은 서울신문 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사회 2007남북정상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정종욱 교수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품었던 최대 기대치는 6·15공동선언을 훨씬 더 뛰어넘어 남북평화번영의 대장정을 이룰 역사적 문건이 나오는 것이었다.2차세계대전 뒤 유럽 35개국이 상호 국경선을 인정키로 합의한 1975년 ‘헬싱키 선언’에 비교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6·15 선언이 화해·협력과 통일을 위한 문건이었다면, 이번 선언은 평화와 민족번영문제에 대해 남북 정상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황원탁 전 수석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이 회동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대결과 갈등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 관계로 전환되는 분수령이 됐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졌다. 이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었지만, 북핵문제가 터지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7년 만에 정상회담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이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정 교수 합의내용을 보자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안 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이유일 것이다. 남북한 민족·경제협력과 관련해 범위가 좁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언문에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있는데, 북한 노동당 규약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국가보안법 철폐와 관련해)국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황 전 수석 전반적으로 이번 합의 내용은 아주 잘 되었다고 본다. 애당초 목표로 삼았던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 많은 진척이 있었고, 공동번영을 위한 대책들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문제들이 합의문으로 나왔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2.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사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합의됐다. 동시에 문산∼개성공단간 화물열차 통행이 보장됐다. ●정 교수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연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NLL을 재논의·재설정하는 부분이라면 민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토 개념이나 안보 개념에서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북한 해군본부가 있는 해주는 경제적인 의미를 갖는 항구라기보다는 군사항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해주 직항 항로 통과를 허용한다면 민간 선박에 한정되는 것인지, 군함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산에서 개성까지 수송 목적 경의선을 개통하는 것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통행·통관·통신이라는 ‘3통’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황 전 수석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간 해상경계선을 협의하게 돼있다.NLL에 대해 북한은 재설정을 주장하는 반면 우리는 평화를 정착한다는 차원에서 공동활용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를 지난번 국방장관회담에서 제시했지만, 북측은 부정적으로 나왔다. 어떤 형식으로든 원만하게 NLL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계속 분쟁의 불씨로 남을 뿐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도 DMZ 북방에 있다. 모두 북한의 주공(주력부대)이 위치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남측과의 협력지대가 돼 있다. ●정 교수 기본적으로 NLL 문제는 유엔사령부가 결정하고 관행을 통해 북한이 받아들이며 북방한계선 역할을 해왔다. 이를 조정해 다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정전체제에 대한 수정을 뜻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의도가 정전체제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체제 수용을 전제로 남북한이 합의해 수역을 평화적으로 공동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황 전 수석 새 달에 총리급 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중심으로 한 군비통제문제를 넘어 평화체제와 관련된 문제를 총괄해 다루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정전협정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면 전쟁종결선언이 있어야 하고, 평화보장을 위한 조치도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함께 다룰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장관급 회담은 부족하니까 총리회담에서 총괄하자는 뜻이 담긴 듯하다. ●정 교수 종전선언과 관련해 관계국 회의를 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관련 논의를 했었는데, 이를 남북 정상이 합의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다만 총리회담에서 종전선언의 세부내용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하려는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총리회담에서 얼마나 논의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회담을 ‘수시로’ 열겠다는 것은 기대하던 반가운 소식이다. 형식적인 정상회담보다, 정상이 만나 실무적인 문제를 얘기하겠다고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할 때 언급한 “차분하고 실효있는 정상회담”을 기대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기다렸는데 공동선언문에 명시된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 ‘수시로’라는 표현이 오히려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황 전 수석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현안을 풀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틀이라는 데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여건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끌어온 것은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서다. 정상회담을 주기적으로, 정기적으로 못박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수시로 만나 협의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주 만나야 하고, 만나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 ●정 교수 여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이 두 번 열렸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같은 사람이 남한 대통령 2명을 만난 것으로 남한 대통령 임기 중에 한번 만나는 꼴이 됐다. 차기 대통령하고도 현안이 있고 여건이 성숙하면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냐. 바람직한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3. 남북 ‘종전선언’ 추진 ●사회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관련 당사국 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황 전 수석 지난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관련 당사국과 별도 포럼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번 남북정상선언의 당사국 회의 조항에는 남북한 평화체제 문제를 남북이 주도적으로 다뤄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총리가 당사국회의를 주최하겠다는 것도 그런 면에서 중요하게 평가할 점이 아니겠느냐.6자회담에만 맡기고 따라가는 형식은 안 된다.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 현실성을 묻는다면, 충분히 있다고 답하겠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말이라는 점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이미 6자회담에서 관련 당사국 회의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한국이 안 한다고 해도 6자회담 틀 안에서 논의할 문제다. 미국 입장 등을 고려해 보면 생각보다 이번 합의가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임기 안에 이번과 비슷한 행사, 즉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4. 양측 협상전략 평가 ●사회 차기정부에서 이번 남북정상선언 합의사항이 바뀔 수도 있다고 일부 국민들이 얘기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합의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정 교수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정권이 바뀌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백지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6·15 선언에서 합의한 5가지 사항 가운데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상회담의 추진과정과 합의내용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정이 투명하지 않거나, 국민들이 모르던 새로운 사안이 터져 나온다면 차기 정부에서 합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남북정상회담 기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도와 발언 등에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3일 김 위원장이 회담을 하루 연장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양측 협상전략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황 전 수석 김 위원장이 오전 회담을 마치고 회담 연장을 제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측에서 먼저 제의해 성사됐음을 감안하면, 오전 회담에서 아무래도 북한보다는 우리측이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않았겠느냐. 북측에서 정상회담에 참석한 참모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유일했다. 그러니 남측이 제안한 안을 갖고 검토할 필요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에 대해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 교수 김 위원장의 예상밖 제안은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본인이 결정하면 북한에서 모든 것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최고통수권자와 다른 의미의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짐작이 이번 그의 발언에서 확인됐다는 느낌이다.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리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선언’ 귀히 여겨야

    [2007 남북정상선언] ‘선언’ 귀히 여겨야

    그제, 3일은 통일 독일의 17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멀리 떨어진 분단 조국의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뉴스 화면들을 이 곳에서 지켜 보면서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7년 전에 있었던 첫 번째 정상회담 때 맛보았던 그 때의 짜릿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다는 사실에 우선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발표된 ‘남북관계발전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많이 도출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우선 확인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다시 확인한 바탕 위에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디딤돌들을 남북 정상이 탄탄하게 함께 깔아 놓은 점이 우선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내 분위기가 7년 전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도 그렇고, 또 북핵문제로 인한 지루한 국제정치적 공방이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정세 속에서 이번 정상회담에 무슨 특별한 기대를 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회의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상회담 자체를 아예 반대하거나 아니면 “두 도박사의 만남” 정도로 폄하하는 내외의 부정적인 여론까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일의 선언은 이러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예상을 뛰어넘고 현안을 거의 언급하면서도 차분하게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한 것도 아닌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번 선언의 내용이 ‘북핵문제’니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부각하지 못했다고 불평할 수도 있고 또 너무 경제문제 중심으로 흘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통일 논의의 활성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국가연합’이든지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지 간에 통일될 남북의 삶의 형식이 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이번 선언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의 길을 열었다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고 ‘서해평화특별지대’의 설치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번 선언이 많은 합의점을 담고 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강조점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전격적 합의 이전부터 줄곧 논의되어 왔던 평화정착, 상호번영 그리고 통일문제를 상기해 볼 때 이번 선언은 이 세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균형감 있게 잘 연결시켰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격변하는 세계와 요동치는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당위성을 우리는 항상 이야기해 왔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이해관계를 내세우면서 우리 스스로가 당연히 먼저 서둘러 갈 길을 가지도 않았거나 우회(迂廻)하다 보니 귀중한 기회들을 자주 놓쳐 왔다. 이제 우리는 또 한번의 기회를 맞고 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정상화의 발목을 잡아 왔던 북핵문제도 이번 베이징에서 열렸던 6자회담에서 도출된 핵불능화합의를 통해서 풀리기 시작한 시점에,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남북정상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주변 강대국을 포함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까지 내다보는 눈높이를 서로 맞추기에까지 이르렀다. 장형(張衡)의 말처럼 “먼 곳에 있는 것만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은 천하게 여긴다(貴耳賤目).”는 지적처럼 우리는 워싱턴이나 베이징의 소문만 귀하게 여겼지 서울과 평양의 살아 있는 숨결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기회도 준 정상회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란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의 사진을 보면서 필자는 이곳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을 한때 갈랐던 장벽을 따라 그려진 붉은 선을 생각했다. 인위적인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역사의 진리를 확인하면서 오늘 우리가 맞는 귀중한 성과를 더욱 소중하게 발현시켜야 하는 시대적 의무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확인할 때다.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 [시론] 평화체제 남북이 주도할 계기 마련/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평화체제 남북이 주도할 계기 마련/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7년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합의하고 막을 내렸다.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일부의 회의론과 연기론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낮은 수준에서 원론적인 합의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합의들이 이루어졌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한반도 정세 변화를 남북이 주도하겠다는 남북정상의 의지가 담겨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통큰 결단’도 여러 대목 눈에 띈다. 북·미관계의 진전과 함께 남북관계도 함께 풀어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적어도 ‘통미봉남’(通美封南)은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10·4 공동선언’이 함축하고 있는 정신은 남북간 적대관계의 청산과 평화정착, 남북의 경제협력 강화를 통한 공동번영,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과정에서 남북의 주도 등으로 요약된다. 이번 ‘10·4 공동선언’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발전해온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는 이제 단순히 교류협력의 단계를 넘어, 군사적 대결관계를 해소하고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남북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협력적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어갈 계기를 마련했다. 당국간 회담의 수준을 장관급회담에서 총리급회담으로 격상키로 합의한 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남북관계는 한단계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사안보분야에서 남북간의 협력과 협상도 본격화될 것이다. 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고 규정하면서, 군사적 적대관계의 종식과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있다. 남쪽이 주장해온 해주와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북한이 쉽게 받아들인 것은 의외다. 북한의 군사요충지인 해주지역의 무장해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방한계선(NLL)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북한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장관회담 개최에 합의함에 따라, 군사안보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도 가능하게 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은 종전선언을 위해 한반도에서 관련 당사국 정상들의 모임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촉진하기 위한 전 단계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이를 남북이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과 양자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면서 남한의 당사자 참여를 사실상 꺼려 왔던 점에 비춰볼 때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아쉬운 점도 있다.‘평화선언’의 형식으로 한반도평화와 군사안보문제에 대해 별도의 합의문을 발표해, 국제사회에 남북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평화체제 구축과정을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남북이 군사력을 줄이는 군축 협상에 대한 내용을 확실하게 담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분단과 한국전쟁 정전 이래 반세기만에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고 주도할 수 있는 우리 사회내의 변화가 절실하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2007 남북정상선언] “공동어로수역 어획 쿼터제 실시해야”

    남북 접경지역인 서해 5도 주민과 경기 북부지역 주민들은 4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실천의 중요성을 주문했다. 서해5도 주민들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남북 공동어로수역 설정 합의 내용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많은 주민은 공동어로수역 설정에 따른 어획량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대를 내비쳤다. 백령도 어민 이근수(55)씨는 “NLL 쪽으로 나아갈수록 꽃게가 더 많이 잡히지만 지금까지는 접근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이 수역에서 조업을 할 수 있게 되면 어민들 살림도 펴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그동안 통제돼 있던 NLL 인근 수역이 개방되면 무분별한 조업으로 어족자원이 고갈될 가능성이 있다며 ‘쿼터제’ 등을 통한 어획량 제한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재식(46) 연평도 선주협의회장은 “NLL 인근은 많은 어족들의 산란장 역할을 해왔는데 앞으로 이곳에서 조업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 어족자원이 1년도 못 가 고갈되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기 북부권 주민들도 앞으로 농업뿐만 아니라 경제, 관광, 문화,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교류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 북부지역의 개발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파주시 문산읍 주민들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문산∼개성간 경의선 화물열차 운행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발전을 앞당기게 됐다며 환영을 표시했다. 주민들은 화물열차가 운행되면 민자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문산간 고속도로 개통 시기가 앞당겨지고 화물기지가 설치돼 지역상권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도는 남북교류사업과 관련, 우선 민선 4기 출범 직후부터 추진해온 한강 하구 퇴적 모래 채취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 등 한강하구(유역면적 130만㎢) 지역은 남북분단 이후 준설작업을 하지 않아 엄청난 양의 골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한강 하구에서 수도권 연간 수요량(4500만㎥)의 24배에 달하는 10억 8000만㎥의 골재를 채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높아진 하상(河床)을 낮춰 한강, 임진강 유역의 수해도 예방하고 해운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파주시 군내면∼연천군 신서면에 이르는 휴전선 DMZ 남·북측 지역 80㎢에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판문점, 땅굴 견학 등 단순한 안보관광에서 벗어나 생태·역사·문화·군사유적지를 체험하고 전쟁의 상흔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테마파크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양진철 정책기획심의관은 “남북 정상이 폭넓은 교류협력사업을 펼치기로 합의함에 따라 그동안 경기도가 추진해 왔거나 구상했던 각종 사업들이 보다 구체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수원 김병철 인천 김학준기자 kbchul@seoul.co.kr
  • [데스크시각] 아리랑 공연이 뭐길래/강동형 공공정책부장

    노무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방북대표단이 3일 밤 관람한 ‘아리랑 공연’을 두고 말이 많다. 보수단체는 방북단의 아리랑 공연 관람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은 이에 앞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란 누가, 왜 보느냐에 따라 적용여부가 달라진다.”며 방북단의 아리랑 공연 관람은 법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리랑 공연 녹화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던 모씨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자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아리랑 공연의 사진이 올라 있는 사이트를 놓고도 논란이 됐다. ‘아리랑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공연을 본 사람의 입을 빌려보면 내용은 이렇다. 출연진 6만∼10만명, 공연기간 90분, 매스게임형태의 집체극. 여기까지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다양한 관람평에 있다. “동원된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김일성 주석을 신격화하는 등 정치적 냄새가 강하다.”“일부 체제선전도 있지만, 북한 예술의 결정판으로 예술성도 있다. 출연진의 일사불란한 행동에 소름이 돋는다.” 관람평을 종합하면 작품의 예술성에 문제가 있거나, 관람자의 시각에 문제가 있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성은 ‘아리랑 공연’이 ‘아리랑’의 보편성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가 판단기준이다. 백과사전은 ‘아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다. 우리 민족의 한과 생활의 정서를 담기에 좋은 곡조와 장단으로 이뤄져 혼자 부르기도 좋고 여럿이 부르기도 좋다. 아리랑은 180가지가 넘고 제2의 애국가로도 불린다.’ 나는 아리랑의 사전적 의미에 한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민족의 소통어’라는 지위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일제강점기, 아리랑은 금지곡이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일경의 감시를 피해 쉬지 않고 아리랑을 불렀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아리랑에는 태평양상의 작은 섬에 끌려간 사람들이 아리랑을 부르면 원주민들이 따라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원주민이 흥얼거릴 정도로 많이 불렀다는 얘기다. 조정래씨의 ‘소설 아리랑’은 민족정서가 농축된 가락과 한을 예술작품으로 잘 승화시킨 작품이다. 그래서 ‘아리랑’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일제 36년, 우리민족의 고단한 삶을 ‘아리랑’ 12권에 담아내고 있다. 나는 아리랑을 읽다 주인공들의 삶이 너무 무겁고 사무쳐서 몇 번이고 책 읽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리랑’의 의미가 마음속에 자리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뒤 책장에 이렇게 적었다.(1998년 3월 1일 01시 30분, 작가가 4년여 고혈을 짜낸 아리랑을 6개월이나 걸려, 만세일에 다 읽다(중략). 책을 읽은 소감은 ‘아리랑….’이 한마디 밖에는 더 보탤 말이 없다. 아이들이 커서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을 독자들이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아리랑 공연’의 관람평을 방북단 일행으로 아리랑 공연을 본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씨에게 듣고 싶다. 그가 공감했다면 ‘아리랑 공연’이 지니는 ’아리랑의 보편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가 아니라고 한다면 아직은 ‘아리랑’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아리랑 공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검찰의 이중잣대, 보수단체의 집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두꺼운 분단의 벽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몫이다. 반겨레가 아닌 온겨레가 ‘아리랑 공연’을 작품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날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날이 될 것이다. 강동형 공공정책부장 yunbin@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MB “평화노력 인정…핵 미흡”

    [2007 남북정상선언] MB “평화노력 인정…핵 미흡”

    ■ 한나라 반응 한나라당은 이번 정상회담을 대체적으로 긍정 평가했다. 일부 사안은 수용 의사를 밝혀 공동선언문이 앞으로도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반영했다.‘퍼주기’‘이벤트성’ 같은 거친 말로 격앙된 논평을 내놨던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북문제에 경직된 입장을 취할 경우, 예상되는 역풍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아쉽다.’,‘우려스럽다.’며 미흡한 대목은 짚고 넘어갔다. ●이명박 “핵폐기 등 국민적 관심사 제외 아쉽다.” 4일 마산·부산을 방문한 이명박 대선후보는 “두 정상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그러나 국제사회와 국민의 관심사인 핵폐기 문제와 인도주의적 문제인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아 매우 아쉽다.”고 언급했다. 강재섭 대표 주재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의 톤도 비슷했다. 강 대표는 “남북 정상이 노력한 점을 인정한다.”고 총평했다. 다만 “대다수 국민이 염원했던 북핵 폐기, 분단고통 해소, 군사적 신뢰구축 등 핵심문제는 지엽적으로 다뤄져 아쉬움이 많다.”면서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로 해석될 수 있는 ‘법률 정비’ 부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소 강경한 대북관을 유지해온 정형근 최고위원(당 남북정상회담 TF팀장)도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할 때)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은 것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앞으로 기업인 왕래·이산가족 상봉, 나아가 남북한간 전면적 자유통행으로 발전하길 충심으로 기대한다.”며 긍정평가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그러나 북핵폐기 없는 조기 종전선언은 매우 부적절하며, 종전선언 주체가 ‘3자’라면 관련 당사자인 대한민국은 제외된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선언문 조항별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2항의 ‘법적 제도적 장치 정비’는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약속이 아닌지 굉장히 우려된다.”면서 “또 3항의 ‘서해공동어로수역’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우리의 해상영토를 포기한 것이 아닌지 묻는다.”고 지적했다. ●11월 회담 이어지면 대선에 영향? 한나라당은 이런 유연한 입장을 내놓기까지 내부에선 우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선언문 후속조치로 새달부터 총리·장관회담 등이 열릴 경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눈치다. 박형준 대변인은 “서해 공동어로 수역 같은 경우는 NLL을 무력화하지 않는 한 살려나갈 것”이라면서 “남북 경협도 이 후보의 구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수용은 가능하지만, 다만 실무적 협상방안이나 남북협력기금 사용 등에 대해 국회 논의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계승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박 대변인은 집권할 경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는 “더 기다리기엔 고령자가 너무 많은 이산가족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면서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는 반드시 다음 정상회담 때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연·부산 김지훈기자 anne02@seoul.co.kr ■ 민주신당 반응 ●정동영 “평화경제시대 개막 알리는 이정표 될 것” 정동영 후보는 “이번 ‘10·4합의’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의 설계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면서 “이 설계도는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경제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후보 역시 “과거 통일부장관 시절 ‘9·19합의’를 이끌어내고, 개성공단을 만들었던 당사자로서 오늘 ‘10·4 합의’를 접하면서 가슴 벅찬 환희를 느낀다.”는 개인적 소회를 잊지 않았다. ●손학규 “민족 공동 번영에 초석될 것”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선 경선 후보는 “이번 선언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족 공동 번영에 든든한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국민 속에 충분히 전달되고 후속조치의 실천이 평화와 번영 그리고 국민대통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선언에 지난 5월 북측에 제안한 주요 내용과 그 취지들이 모두 들어 있어 개인적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해찬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유익한 합의” 이해찬 후보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직접 논평을 발표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각 문항을 조목조목 따지며 의미를 부여한 그는 “8개 합의문 중 종전 선언을 한반도에서 3자,4자 정상이 만나서 추진하도록 하자는 내용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남북이 주도해서 구축하자는 점에서 획기적 합의라고 판단한다.”면서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특별지대를 설정한 것도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매우 유익한 합의”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이번 합의가 자신의 활동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친북 좌파라는 이념적 갈등으로 규정하는 후보로는 남북 공동의 평화적 노력을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세 후보, 대선영향은 글쎄… 각 후보측은 정상회담 성과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대선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범여권 진영이 집권해야 한다는 정당성에 힘은 실어 주지만 표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손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은 “경선에서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본선에서는 평화 무드가 조성된 만큼 범여권 진영에 도움은 되겠지만 큰 영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후보측 정기남 공보실장은 “평화개혁세력이 국민들로부터 다시 기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바로 대선승리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대선판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해석했다. 이 후보측 김형주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오르겠지만 그게 통합신당 지지와 연결될지는 미지수”라고 “어느 정도 효과를 가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민주당 “대체로 환영하나 인권문제 진전없어 유감” 민주당은 환영하면서도 아쉬운 대목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종필 대변인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 간 신뢰회복과 평화체제 정착에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회담 결과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지만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등 국민이 바라는 인권문제에 진전이 없는 점은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유 대변인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의 합의가 이행되도록 노력하기로 한 점은 다행”이라면서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 궁극적으로 북한핵이 완전 폐기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이번 결과가 민주당 지지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냉전 의식에 묶여서 현재 상황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손해를 볼 것”이라고 전했다. ●권영길 “실질적 통일논의 없어 아쉽다.” 민노당 권영길 대선 후보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담고 있고 6·15선언 이후 조성된 화해와 협력의 길을 더욱 넓힌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무엇보다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관계 해소와 공동번영을 위한 논의와 합의가 있었던 것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회담 결과를 반겼다. 그러면서도 권 후보는 “실질적인 통일논의가 있기를 기대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김형탁 대변인은 “국방부 장관 회담 등이 이어져 이런 분위기가 정상회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되는 만큼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권 후보 입장에서는 특별하게 불리할 것은 없다.”면서 “그동안 평화와 통일을 강조해온 권 후보가 정상회담으로 인해 혜택을 볼지 여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권 후보의 주장이 부각될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국현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로 갈 단초” 범여권 제3후보로 꼽히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차분하면서도 실리의 관점을 견지하는 접근이었다.”고 호평했다. 이어 그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조성에 합의한 것은 그간 본인이 꾸준히 주장해 온 ‘환동해 및 환황해 경제협력벨트’ 구축의 전제가 되는 내용으로 대단히 반가운 내용”이라면서 “본인이 주장해 온 한반도 공동 번영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북·미수교’가 반드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대선 표심과 연관성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캠프 관계자는 “그동안 대북정책 비판의 단골 메뉴였던 ‘퍼주기’‘끌려다니기’ 등의 비판을 불식할 수 있었고 참여정부를 비롯한 민주세력의 소위 무능론도 불식할 계기가 됐다.”면서 “얼마나 구체적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범여권 진영 비한나라 진영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해외사설]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보나

    프랑스와 일본 등 해외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이 핵폐기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했다. 특히 일본 신문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만 진전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회담이 ‘일본인 납치 문제’ 조기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日 니혼게이자이 3일자 “핵폐기의 단초를 보여주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육로를 이용해 북한에 들어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어필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예고없이 마중나가 악수를 주고받았다. 쌍방이 7년만의 우호무드를 연출한 형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해 북한의 전면적인 핵폐기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이래 두번째이다. 이번에는 휴전 상태에 있는 한국전쟁의 종결과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평화선언’의 발표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측은 남북경제공동체 구상도 제기해 새로운 공업단지 개발과 철도·항만의 재정비 지원 등도 제안할 것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앞에서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이 말 그대로 한반도의 안정을 향한 착실한 한 걸음이 될 것을 기대하고 싶다. 7년전 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으로부터 55년만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국내에서도 지난번과 같은 들뜬 분위기는 없고 오히려 냉랭한 분위기가 감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 대통령이 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의 기운을 높여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하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화해무드의 연출이 끝나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초래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번 정상회담 이후 미사일 연속발사나 핵실험 등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돼 왔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중에도 핵시설의 불능화 등을 포함한 6자회담 합의 문서를 발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노 대통령은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하는 것에 소극적인 것 같지만 회담에서 북한의 전면적인 핵폐기 계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노 대통령은 한국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인 납치도 언급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 회담이 납치 문제의 조기해결과도 연결되도록 적극 힘써주기를 바란다. ●佛 르 피가로 2일자 “희망의 정상회담” 평양에서 시작된 남북한 정상회담은 지구상의 일들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징후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현안은 아니지만 2000년 이후 처음 재개되는 이번 정상회담은 역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진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웃국가들을 위협하기보다는 (국제평화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점을 이해한 것 같다. 북한은 지난 2월 핵시설 폐기의 원칙을 받아들인 데 이어 7월에는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봉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성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례가 눈앞에 펼쳐 지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아시아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이 (평화의) 대열로 복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폐기가 실행되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한 첫 핵 보유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뢰가 구축되려면 아직 길이 멀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명단에서 삭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야만 북한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정권 와해를 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의있는 의지를 입증해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남북 동물원 규모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남북 동물원 규모전

    남북정상회담이 한창이다. 첫 정상회담 때 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양국정상이 손을 맞잡는 모습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게 한다. 분단 이후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에 남북한은 여러 부분에서 불필요한 자존심 경쟁을 벌였다. 그 중 하나가 동물원의 크기다. ●“평양동물원보다 크게” 세계동물원기구협회에 따르면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크기는 유명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고참 사육사들은 “이렇게 넓은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덕”이라며 입을 모은다. 사정은 이러하다.1978년 6월 초. 과천 서울대공원의 건설준비가 한창이던 남서울대공원건설사업소 사무실에 소위 ‘높은 어르신’의 지시가 내려왔다. 내용은 “새 동물원의 규모는 무조건 평양 중앙동물원보다 크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왕 만들 바엔 평양 중앙동물원보다 크게 만들라는 것.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단순명료한 가이드라인이었다. 이 같은 지시는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을 통해 내려왔다. 동물원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지시가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창경원에서 동물원을 철수시키고 따로 동물원을 건립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과천 막계리에 관련 부지를 마련하는 과정에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정도였다. ●북한도 경쟁 탓에 허풍(?) 바로 건설사업소엔 비상이 걸렸다. 윗분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평양 중앙동물원의 크기는 268만 1000㎡. 당초 기획했던 동물원의 크기가 24만 8000㎡인 점을 고려하면 부지도 그 안에 들어갈 시설도 모두 11배 이상 부풀려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결국 동물원의 최종 부지 규모는 평양보다 22만 3141㎡가 큰 290만 4806㎡로 정해졌다. 지금 보면 넌센스지만 ‘멸공’이 시대구호였던 당시로는 북한보다 작은 동물원은 위정자들의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도 남한을 의식해 좀 허풍을 떤 듯하다는 점. 평양 중앙동물원은 당시 규모 외에도 총 340종 10만 1159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70년대 세계 최고인 서베를린 동물원(2275종 1만 4000여마리)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많다. 우습지만 동물원 수족관에 멸치 떼를 키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숫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美·中·日 반응

    |워싱턴 이도운·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상세하고 신속하게 보도했다. 중국언론에 뉴스를 독점 공급하는 국영 신화사의 톱 뉴스는 남북 정상회담이 차지했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사실 관계와 현장 스케치 등을 실시간 속보로 전달했다.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5일 아침 서울로 돌아갈 것을 요청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과 거부 소식 등도 빠르게 전해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반면 미국 언론들은 비중이나 신속성에서 중국과 일본 언론들보다 뒤처졌다. 美정부와 언론은 평양에서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의 추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평가를 내놓았다. 미 정부의 한반도정책 실무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분단의 비극과 남북 대화의 열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6자회담과 남북대화는 병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한국 정부와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날 8면 한 면을 거의 할애해 심층 보도했다. 또 노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 행렬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향하는 사진을 ‘기념비적인 월경(越境)’이라는 제목아래 실었다.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경제 재건지원책이 나올 것이며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했다. 日북핵과 함께 납치문제를 현안으로 갖고 있는 탓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신문들은 1∼2개면을 할애, 회담의 세세한 부분까지 보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와도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납치문제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데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정상회담을 할 만큼 북·일 관계가 해빙기였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의 언질을 받기를 바란다.”면서 납치문제의 해결도 설득해주길 주문하는 등 일본 주장을 분명히 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은 3일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제재를 해제할 만큼 북한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납치문제 수위에 따라 대북 정책도 조정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中전역을 커버하는 중앙방송(CCTV) 뉴스채널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재한 환영식 등 주요 장면을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했다.CCTV 시사프로도 회담 내용을 폭넓게 다뤘다. 다만 특별한 해설이나 분석은 내놓지 않았다. 신화사도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대장금 DVD를 김 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스케치성 기사도 소개했다. 시나(新浪), 서우후(搜弧)등 포털 사이트는 정상회담과 관련, 일정·주제·의제·회담별로 기사를 다양하게 분류해 소개했다. 이에 비해 홍콩 언론들은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허풍쟁이의 블록버스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에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적’ 분위기가 가미된 이후 김 위원장의 직접 영접으로 ‘블록버스터’로 바뀌었다고 전하면서 노련한 북한 의도를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jj@seoul.co.kr
  •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시론] 남북 두 정상이 맞잡은 손/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일 정오 평양 모란봉구역 4·25 문화회관에서 두 손을 굳게 잡았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2000년 첫 정상회담이후 7년만이다. 회담 성사만큼, 이루어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기대도 있고 다소 염려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두 정상은 7년전에 비해선 조금 굳어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정세 변화는 두드러진다. 북핵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고 있고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도 급진전중이다. 일본에선 아시아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후쿠다내각이 출범했다. 납치문제 해결과 북·일관계 정상화 논의도 이전과 다른 국면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안보협력 메커니즘 형성 관련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 급변은 냉전질서의 해체와 평화공존의 새 질서 수립에 대한 요청으로 요약된다. 동북아의 새 질서는 한반도 분단구조의 완전 극복을 요구한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의 두 정상은 이런 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민족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성과를 내놓으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0년 정상회담이 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면 2007년 정상회담은 평화정착 시대를 여는 돌파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 줄 체제 구축에 의견을 접근하는 일이다.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평화체제 구축 등이 포함된다. 평화가 중요한 만큼 북한은 경제문제가 한층 절박하다. 북측 당면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만 중장기적 해법에도 남북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깊은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진전중인 경협사업들을 확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도 있다. 이를 토대로 남북간 경제적 연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는 데 대한 방안들이 검토될 것이다.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경협이 남북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새 틀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북측의 절박한 요구를 수용하되 남측이 투자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들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들 사업을 통해 경협이 가져다준 실질적 혜택에 대해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측이 이런 과정을 통해 개방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얻었고, 남측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하는 점도 평가되어야 한다. 유럽통합 사례에서 참고해야 할 교훈은 경제공동체 형성이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을 관통하는 화두는 신뢰의 문제다. 남북이 진정한 동반자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상호이해를 마련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의 단단한 초석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일이지만 그 성과는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 이번 회담이 국민과 함께하는 회담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정부가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평양까지 가는 데에는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북공동체 건설의 길에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화해협력을 향한 강한 동력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수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
  •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이벤트다. 금단의 군사분계선을 넘음은 분명한 정치적 이벤트다. 통속적 명칭으로는 이벤트지만,‘정치적 의례’다. 금단과 금기를 넘어섬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례도 격식과 절차가 필요하고, 종교적인 환상 같은 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그동안 비행기, 배, 자동차, 철도 모두가 오고갔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걸어서 가는 것만 못하다. 도보로 분계선을 넘어갔음은 금단과 금기의 마지막 선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마지막 선이 사라졌음을 내외에 천명한 셈이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에 성립한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관념적 경계선일 뿐이다. 한갓 관념의 선에 불과하던 분계선이 강철처럼 굳어지자, 이 금단의 선을 넘음은 죽음 그 자체를 의미했다. 남북을 오고간 무수한 시대의 ‘간첩’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월남’과 ‘월북’의 경계선을 오고간 이들이 탄생했다. 분계선을 ‘월북’하고,‘월남’함으로써 이에 연루된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민족 최대의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반세기 이상을 고통으로 채워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었음은 분명히 ‘대통령의 월북’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두말할 것 없이 군통수권자이다. 군통수권자가 군사분계선을 걸어넘었음은 강철같은 분계선이 그 순간 무너져 내렸음을 상징시켜주는 극적인 행위다. 군통수권자가 분계선을 걸어넘음으로써,155마일 철책선과 남북을 겨눈 벙커의 총부리들이 서로를 겨눌 명분 자체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제에서의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적 행위다. 휴전협정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대통령이 걸어서 넘었음은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다. 걸어서 선을 넘는 과정을 전세계의 언론이 생중계함으로써 유일한 분단국 한반도에서 분단선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각인됐다. 철책선 대신 평화선 선택이라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만천하에 새겨진 것이다. 이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월북’하고 ‘월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월북’‘월남’ 자체가 옛말 사전으로 밀려나리라. 분계선의 존재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되었으니 월북이나 월남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부터 7년, 분계선이 그어진 시점으로부터는 무려 54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정작 넘는데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 고통과 압박, 숨죽임과 억누름이 반세기 이상을 흘렀지만 이를 깨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문득 깨닫고 보니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54년이었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금단의 선을 넘어갔다. 금단의 열매를 딴 정치적 죄로 그는 암살을 당했다. 그로부터 59년,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군최고통수권자가 걸어서, 당당히 금단의 선을 넘었다. 역사는 민족의 지난한 고통속에 이뤄진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의 찰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2007년 10월2일 아침, 그렇게 한민족의 새 역사가 군사분계선 위에 씌어진 것이다.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통일문화학회 공동대표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대화 어제와 오늘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대화 어제와 오늘

    남북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10·3 남북정상회담’까지 수많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의 기반을 다져왔다.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남북관계 연혁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던 1970년대 이전까지는 남북간에 실질적인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분단 이후 최초의 ‘7·4 남북공동성명’ 1971년 8월20일 남북간 최초의 대화인 적십자회담이 성사됐다. 이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됐다.‘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해, 합의·발표한 공동성명이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평양과 서울을 비밀리에 오가며 대화를 시작한 결과 7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통일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에 합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과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1973년 8월에 남북대화는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1980년대, 남북간 다양한 대화채널 확보 1980년대 초반부터 전두환 정부는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쳤다.1981년 6월5일 남북 당국 최고책임자간의 직접 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나 1983년 9월1일 소련 전투기에 의한 KAL기 격추사건,10월9일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 등으로 한반도 평화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중 북한은 1984년 3월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을 제의, 대화의 물꼬를 이어나갔다. 이어1980년대 남북은 상호 적대의식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했고, 전 시기에 비해 대화채널을 다양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0년대‘남북기본합의서 채택’ 1990년대 남북관계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게 된다. 특히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여덟차례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은 이 합의서에서 정치와 군사·교류협력 등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5개 공동위원회(화해, 군사, 경제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핵 통제)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 추진의지에 북측이 호응했지만,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2000년‘6·15선언’발표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남측 일행은 6월13일부터 15일까지 북한을 방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두 지도자는 공동선언을 통해 5개 항에 합의했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나가기로 했으며,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실현과 경제협력 및 제반 분야의 교류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남북장관급회담이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이제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 안정적인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이어지게 될지 주목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각계 12명 정상회담에 바란다

    [2007 남북정상회담] 각계 12명 정상회담에 바란다

    7년 만에 다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각계 인사들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싹을 틔우는 회담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2000년엔 그저 만나는 것이 설레고 기뻤다. 이젠 하나 하나 남북간 현안을 짚어가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각들을 맞춰 나가려는 오늘의 모습에서 한층 성숙해진 남북관계의 모습을 찾기도 한다. 각계 인사 12명으로부터 바람을 들어 본다. ■군사적 신뢰구축이 가장 긴요한 현안 ●최재천(대통합민주신당 의원)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통일의 요소다. 이번 정상회담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통일이고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북핵·경제협력·군축문제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북핵 문제와 경제 협력 문제는 국제 사회의 지원 없이는 힘들기 때문에 군사적 신뢰 구축만이 남과 북 스스로가 행할 수 있는 통일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NLL문제로 국민에 걱정 줘선 안돼 ●진영(한나라당 의원) 지금까지 동북아 대화의 축은 미국과 북한이었으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중심 축을 만들어야 한다.6자회담에만 맡겨 놓으면 향후 동북아 안보체제도 북·미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관해 6자회담에 도움을 주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만들어진 핵까지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하는 등 한발 더 나가야 한다.NLL 문제로 국민에게 걱정을 줘서는 안 된다. ■北 SOC투자 장기적 계획으로 진행돼야 ●박창규(대우건설 사장)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해온 건설업계에서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북한 경제의 회생을 위해 시급한 것이 전력, 에너지, 철도,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구축하는 일이다. 남한의 개발과정에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의 값진 교훈들을 활용해야 한다.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남북한이 미래 한민족의 성장과 번영을 고려한 장기적인 계획에서 진행돼야 한다. ■한반도문제 한민족이 주도 계기 기대 ●박순성(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핵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한반도 전체의 군축문제까지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남북문제가 북핵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외교가 다른 나라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를 한민족이 주도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지도부는 비핵화와 대외개방 정책을 천명해야 하고, 남한 지도부는 북한 경제협력과 NLL, 미국과의 합동군사훈련 등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납북자 송환문제 해결 초석 다지길 ●하창우(서울지방변호사회장) 남북정상이 만나는 자리로 우리민족의 숙원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법조계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북한 인권문제는 이미 한반도 내에서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문제인 만큼 정상회담을 통해 인권문제 해결에 대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끊이지 않고 나오는 납북자 송환 문제와 현안인 북핵문제도 함께 해결되길 바란다. ■남북 실질적 민간교류 넓혔으면 ●이철수(판화가) 우리에게 실질적인 의미의 민간교류가 과연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교감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특히 문화예술계의 교류와 관련해 양쪽의 체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보다는 남북이 실제로 누리는 삶과 문화가 서로에게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실체없는 막연한 ‘두려움의 정서’를 지워나가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타결 희망 ●김정길(대한체육회 회장)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식 의제로 다뤄질지 모르겠지만 내년 베이징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방안은 어떤 형태로든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 난항을 겪고 있는 남북 단일팀 구성에 이번 정상회담이 마지막 돌파구가 될 것이다. 양 정상이 원칙적으로 합의한다면 나머지는 남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풀어나갈 수 있다. ■긴장완화·군축 논의할 기구 만들자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축을 위한 의지 표명이다. 당장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남북 정상이 이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는 게 중요하다. 형태는 여러가지를 고민할 수 있겠지만 긴장 완화와 군축 문제를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납북자·가족 연락할 공식창구 마련을 ●이미일(납북인사 가족협의회 이사장) 6·25 전쟁 당시 납북된 이들만 해도 8만명이 넘는다. 가족들의 고통은 말할 나위 없이 크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로 삼아 북한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서야 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사과도 받아야 한다. 한 발 나아가 납북자들이 가족들과 항상 연락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창구를 마련하고 적절한 보상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이산가족 자유왕래 기반 마련하길 ●이민웅(가명·탈북자게재 거부) 이북에 있을 때도 한민족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고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한국에서 7년을 살고 보니 그때보다 더 간절하게 통일을 염원하게 됐다. 이북에 형제자매를 두고 온 입장에서 분단은 평생의 한이다. 만남이라는 건 자주 있을수록 좋다. 자주 만나야 서로 이해도 하게 되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남북간에 당장 통일은 못하더라도 서신교류나 자유왕래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좋겠다. ■北동포들 제주여행 하는 날 빨리 왔으면 ●김승희(주부·제주시 노형동) 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화의 섬’ 제주에서 열리지 못해 아쉽다. 제주도에서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특산물인 감귤과 당근을 보내는 등 북한주민돕기 운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도 제주가 자랑하는 고소리술과 한라봉이 회담장 식탁에 오르고 한라산 오가피 잎차가 북측에 선물로 전해진다고 한다.3차 정상회담은 국제관광도시인 제주에서 열리기를 바란다. 북한동포들이 자유롭게 제주를 여행하는 날도 빨리 왔으면 한다. ■대학생들 교류할 수 있는 제도 구축을 ●김아름(인하대 국문학과 1년) 분단 이후 남북 대학생간에 교류가 전혀 없어 사고와 문화, 언어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향후 통일 논의 과정에서 지금의 학생들이 주역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양쪽 학생간에 이질적인 요소가 가득하다면 통일을 이루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정당회담에서 양측 대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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