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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트디부아르 ‘남북분단’… 사실상 내전 상태로

    코트디부아르 ‘남북분단’… 사실상 내전 상태로

    서아프리카 ‘경제 우등생’ 코트디부아르의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촉즉발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로랑 그바그보 현 대통령 측이 선거 결과 수용을 거부하며 선거에서 승리한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 지지자들과 나라를 남북으로 반분해, 코트디부아르는 사실상 내전 상태에 들어섰다. ●6일간 173명 사망… 유혈참사 확대 게다가 나이지리아, 가나, 감비아 등 16개 국가로 이뤄진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국가들은 그바그보 대통령의 퇴진 거부에 따라 30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무력 개입 방안을 협의했다. 유엔(UN) 총회에서 코트디부아르의 새 공식 대표로 인정받은 유수프 밤바 대사는 29일(현지시간) “코트디부아르에 집단 학살이 벌어질 날이 가까웠다.”며 “특별 조치”를 호소했다. 밤바 대사는 “누군가 집집마다 부족에 따라 식별 표시를 해놓고 있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라며 남부 지역에 퍼져 있는 와타라 지지자들이 목표물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와타라 전 총리는 부르키나파소 이민자의 아들로 이민자와 무슬림 인구가 많은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현 대통령 그바그보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남부를 중심으로 코트디부아르 순혈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유엔도 코트디부아르에서 지난 16~21일 사이 173명이 숨지고 90명 이상이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를 받았다고 밝혔다. 강경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는 지난주 제네바 사무국에서 471명 이상이 체포·구금되고 24명이 실종됐다고 보고했다. 이미 각 지역에서 양측 지지자들 사이에 잔혹 행위와 유혈 참사가 확산되고 있다고 AFP 통신 등이 전했다. 이미 지난 28일 보니 야이 베냉 대통령과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 그리고 페드로 피레스 카보베르데 대통령 등 3개국 정상은 그바그보에게 물러나지 않으면 ECOWAS가 군사 개입을 할 것이라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ECOWAS 의장을 맡고 있는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코로마 대통령 등과 면담 뒤 기자회견에서 다음달 3일 그바그보 측과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밝히고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와타라 전 총리를 선거 승리자로 인정한 국제사회는 경제 제재 카드를 꺼내 흔들면서 그바그보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비자 발급 중단,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적용할 그바그보 측 인사를 기존 19명에서 61명으로 늘리는 등 제재 대상 인사를 대폭 늘렸다. ●EU “경제제재로 그바그보 압박” 베르나르 발레로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주 유럽연합(EU)은 와타라 대통령이 지명한 외교관만 인정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마크 토너 대변인도 “와타라를 합법적 지도자로 인정한다.”고 확인했다. AFP와 로이터는 양측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과 프랑스는 현지 교민들의 철수를 권고하는 한편 코트디부아르 현지 대사관 비상 철수 준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문화마당] 전쟁, 평화 그리고 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 전쟁, 평화 그리고 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전쟁과 평화, 이 둘의 구분이 전방과 후방인 시대는 지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전방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 구분이 사라진 총력전 시대가 됐다. 한국사에서 역사를 바꾼 주요 전쟁인 나·당전쟁, 임진왜란, 청·일전쟁, 한국전쟁은 국제전이었고 그것들은 당시 시각으로는 ‘세계대전’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한반도에 몰려오고 있다. 지금의 한반도 전쟁 위협은 현상적으로는 북한 체제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세대교체하는 와중에서 일어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내부 갈등을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독재국가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 경우 전쟁이란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대로 “다른 방식으로 하는 정치”다. 하지만 만약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 전쟁은 국내 정치가 아니라 국제 정치의 연장(延長)으로 수행될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확립되는 진통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남북 분단체제가 성립했다. 냉전으로 분단이 됐다면, 탈냉전시대에서 분단 체제는 종식돼야 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멸망했다면, 지금 한반도에 북한 체제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히틀러의 패배가 독일의 해방이었듯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북한의 해방임을 친북주의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지금 북한이 존립할 수 있는 토대는 주체사상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전쟁에서도 그랬듯이, 중국의 승인과 지원 없이는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언제, 무엇을 위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용인할 것인가. 앞으로의 세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 대신 중국이 부상하면서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으로 개편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북 군사대결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의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면 할수록 남한은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북한이 호전적으로 되면 될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점점 외세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는 것은 남북한 모두가 바라지 않는 바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은 미국과 중국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외교적 노력으로 국력을 소진하지 말고,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자세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과는 6·25전쟁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다. 그러면 통일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분단으로 전쟁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많고, 이 같은 승자 없는 전쟁의 패자는 우리 민족이 된다. 지금 남한에는 이 전쟁의 위기를 통일의 기회로 전환시킬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북한은 과거의 동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될 수 있다. 1989년 당시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동독의 개방을 요구하면서도 붕괴는 결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도적처럼 찾아온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 대변인이 여행 규제 완화 조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이 새 여행법의 발효 시점에 대한 질문을 쏟아대자, 그는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떼를 지어 몰려가고 급기야는 망치와 도끼로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냉전체제의 거대한 상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국 대변인의 우연적인 말실수라는 초기 조건이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동독을 무너뜨리는 민중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그 결과로 독일은 통일됐다. 역사에서 우연이란 인간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구조적 조건 속에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 주어진 행운이다. 중요한 것은 행운의 여신을 잡을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비르투(virtù)라고 불렀던 용기와 덕성이다. 1989년 독일의 행운은 그런 비르투를 가진 헬무트 콜이라는 정치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새해에는 그런 비르투를 가진 정치가가 한반도에 나타나길 기원한다.
  • [인터뷰 뒷이야기] 삼고초려 끝에 부악문원서 성사…故황장엽씨 소재 분단소설 준비

    이문열씨는 역시나 바빴다. 연말이라 모임에서 술도 마시고 지방 강연도 가고, 찾아오는 사람도 만나고…. 예상했던 대로 인터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1월 초였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설이 나돌 때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 휴가 때 이문열씨와 1박 2일 만나면서 무슨 담화를 했을지도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집에 놀러와서 차 한잔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인터뷰는 안 된다.”고 했다. 별로 할 말도 없을 뿐더러 인터뷰를 했다 하면 네티즌들의 댓글, 이거다 저거다 와글와글해 성가시다고 했다. 어쨌거나 경기 이천시 설봉산 자락에 있는 부악문원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해서 사진기자도 동행했다. 차 한잔 하면서, 설득하면 인터뷰를 허락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부악문원은 1998년 1월 이씨의 사재로 설립된 일종의 현대적 서원(書院)이다. 독자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아 이룬 경제적 성과를 인문학 인재 양성에 되돌린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아이를 업은 모습과 사람을 돌본다는 의미를 아울러 가진 부아악산(負兒岳山·설봉산의 또 다른 이름) 자락에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인과 예술가들의 창작실도 개방하고 있다. 그의 서재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그는 인터뷰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대신에 연말쯤 통화나 해보자고 했다. 40여분 정도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손님들이 찾아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연말에는 꼭 좀 만나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반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로부터 한달여 뒤인 이달 중순에 전화를 걸어 안부인사를 했다. 아울러 연말 약속을 상기시켰다. 몇 번 거듭된 전화에 이씨는 귀찮았는지 “그래요, 오세요.”라고 했다. 다시 부악문원 서재에서 만났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어젯밤 과음을 해 컨디션이 영 별로라고 했다. 좋아하는 주종은 막걸리란다. 가끔 양주를 섞어 마신다고 했다. 막걸리로 치면 500㎖짜리 다섯병 정도 마시면 취한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절주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연평도. 1시간 동안 연평도 얘기를 나눈 뒤 후반부에 글쓰기 작업에 대해 잠시 얘기했다. 소설을 쓸 때는 ‘작가가 처음 독자’라는 생각, 독자들이 어디에 가서 자신의 책 속에서 한 구절이라도 인용할 대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글 쓰는 일에 조금 게을러졌지만 앞으로 제대로 된 생산의 시기가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비감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구상했던 것, 자료 준비했던 것을 선별해 글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고(故) 황장엽씨와 인연을 살려 또 다른 분단소설을 쓰겠다는 것도 귀띔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작가 이문열…연평도를 바라보며

    [김문이 만난사람] 작가 이문열…연평도를 바라보며

    한해가 저물어간다. 연평도의 영혼을 달래는 갈매기들은 더욱 애잔하게 울어댄다. 잠시 노래말을 생각해본다. ~황천 간 그 얼굴 언제 다시 만나보리/~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그리면/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 때 연평도 어장으로 조기잡이를 나갔던 많은 어부들이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어부들을 그리며 불린 노래, ‘눈물의 연평도’다. 태풍만이 아니다. 서해 최북단의 섬 연평도는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연평해전을 겪었다. 최근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로 새로운 비극의 현장이 됐다. 연평도는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떠안아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작가 이문열씨. 분단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월북했기 때문이다. 이씨의 가족에게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끊임없는 재난이자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소설 ‘영웅시대’에도 아픔이 잘 담겨져 있다. 이런 그가 연평도 포격 도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979년 문단 데뷔 이후 쓴 책이 무려 3000만권이나 팔린 작가와 마주앉아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할 재간도 없고 해서 연평도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즉답으로 “참 고약하다. (북한에게) 멱살을 잡혀도 단단히 잡혔다.”라고 하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젊은이들이 걱정입니다. 이번 문제로 비관적인 대북 인식 같은 것 말입니다. 무기가 뒤쳐지면 새로 구입하면 되고, 군인 수가 모자라면 더 뽑으면 될 거고, 결국은 정신입니다. 젊은이들은 교육에 의해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反)교육을 하는 사람이 많지요.” “젊은이들과 만나보셨는지요.” “이번 사건으로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눠 봤는데 일부에서는 (천안함 폭침 사건 때와는 달리) 다소 낙관적인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신뢰가 안 간다는 것이지요. 그 부분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연평도 사격 훈련 재개를 앞두고 야당 쪽에서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비이성적인 집단, 비정상적인 국가(북한)에 합리적인 판단을 요구해선 안 되며 이들을 자극하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 부분을 해석하면 반대로 비이성적인 자가 때리면 그냥 맞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젊은이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친북 중에서 제일 나쁜 투항주의나 다름없습니다.” “투항주의란 어떤 것인가요.” “젊은이들의 친북 사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종족끼리인데 뭐하러 싸우느냐’ 하는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하면 큰일 난다, 돈이나 줘서 달래자’하는 투항주의입니다. 북한이 비이성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나, ‘전쟁을 원하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반문하면 투항주의인 셈이지요. 이 두 가지가 젊은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나면 총이나 쏠까요. 투항심리는 노예심리로 갑니다. 굴복해서 노예가 되든 다른 뭐가 되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런 것이지요. 또 있습니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 여당의 패인으로 천안함 폭침 사건을 예로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곧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여론이 돌았지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전쟁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대의가 있을 뿐입니다. 싸우지도 않을 사람이 전쟁을 말합니다. 모든 전쟁은 싸울 사람이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논리지요.” “연평도 도발 이후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이길 바랍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결국 정신적인 무장이 중요합니다. 6.25 전쟁을 볼까요. ‘대한민국은 오로지 내가 지켜야지’ 하는 대의에서, 그런 굳건한 정신 무장에서 전장에 나섰다기보다는 전쟁이 발발하자 준비도 없이 남들을 따라갔다가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총을 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상황은 옛날보다 더 불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쟁터에서도 상대가 비이성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돌아설까 봐 걱정된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 울적하고, 이것은 또 빨리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올바르게 잘 이끌어가야 하며 그런 사람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강조했다. ‘영향력’ 얘기가 나오자 하나의 예를 든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문단에 영향력이 있는 어떤 쪽(특정 단체를 거명했지만 ‘어떤 쪽’으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에서 사건과 관련된 두권의 보고서를 냈다. 내용인즉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보고서로 인해 문화 예술계 쪽에서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여론의 추가 7대3, 8대2로 기울었다.”면서 “이런 사람들의 조직성, 이러한 문학 진지가 걱정스러울 뿐이다.”라고 했다. 이런 것을 막아야 할 대항 진지는 아주 약화됐다고도 했다. “대항 진지는 어떤 상태입니까.” “대항 진지가 있기는 한데 작동을 못 하고 있습니다. 보수집단이 데모를 하면 희극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이 많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 처절합니다. 젊은이들은 이들을 보면서 ‘살아봐야 몇 년 산다고’ 하면서 ‘보수 골통’으로 분류하고 희화화해 버립니다. 사실 이런 것이 비극입니다. 1980년대 이후 그렇게 되도록 사회교육이, 그런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대항 진지 구축 방법은요.” “함락당한 진지를 탈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한 산하단체를 봅시다. 새로운 진지 구축을 위해 수장을 바꿨지만 진지 탈환은커녕 기존 조직원들한테 휘둘려 오히려 수장이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수장한테 진지를 탈환하라고 했지만 잘되는 곳이 어디 있나요.” “평소 무협지를 많이 읽으셨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적 관점에서 북한의 다음 도발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이후 글을 통 못 썼습니다. 당장 머리 위로 불덩이가 떨어질 만큼 워낙 호들갑을 떨어가지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북한은 연속성 있게 공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해전이나 금강산 피격 사건 등 성한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런 연속 선상에서 공격은 계속된다고 볼 수 있지요. 다만 언제, 어떤 일로 핑계를 삼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은 어떤 식으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합니까.” “우리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떤 전제 조건도 없어야 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도 좌우 날개가 있다고 하면서 좌우가 공평하게 잘 나누자는 주장은 모순입니다. 분단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 똑같이 나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외세 개입이든 아니든 우리가 처음 분단될 때 북은 좌, 남은 우로 갈라졌습니다. 5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북에는 여전히 좌만 있고 남은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반공 시대를 거치면서도 말입니다. 남한에서 좌우로 똑같이 나누자는 것은 남한의 반을 잘라 북한에 떼어주자는 것과 같지요. 또한 분단 고착론자들의 주장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에도 좌우가 있어야 된다는 건데, 논리가 맞지 않지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은 잘되고 있습니까.” “불통하기 때문에 소통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불통하는 사람들이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요. 정작 본인은 소통하지 않으면서 너는 내 말을 잘 들어라 하고 다닙니다. 지역 감정을 해소하자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너는 지역 감정을 해소하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동안 팔린 책의 수를 헤아릴 때 국민 5명 중 3명은 이씨의 책을 읽었거나 혹은 가지고 있거나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여 북한에도 이씨의 책을 읽은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대표적 남조선 반동 작가로 분류돼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며 웃었다. 신묘년 새해 계획에 대해서는 “나이 70대에도 창작한다는 것은 힘이 들 것이다. 앞으로 글 쓸 시간은 10년으로 본다.”면서 올해부터 1년에 두권꼴로 20권 정도의 책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문열은 1948년 5월 18일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하자 외가인 경북 영천에 잠시 머물다가 1951년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이사했다. 1965년 안동고교를 중퇴하고,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대학 사범대 국어과에 진학한 그는 사대문학회에서 문학 활동을 한다. 1977년 ‘대구매일신문’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면서 문학적 자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데뷔 원년부터 ‘사람의 아들’(1979), ‘들소’(1979),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1979), ‘어둠의 그늘’(1980), ‘황제를 위하여’(1982)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1987), ‘시인과 도둑’으로 현대문학상(1992),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으로 21세기문학상(1998), ‘변경’으로 호암예술상(1999)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품이 있다.
  • [열린세상] 연평도 사건과 국가운영 체제/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연평도 사건과 국가운영 체제/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의 국토가 북한의 포격에 의해 유린 당한 연평도 사건은 우리의 외교와 국방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북한이 남한을 향하여 포격을 하도록 허용하였고,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또한 북한의 포격을 받고도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군사적 위기 대처능력이 말만큼 앞서 있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국가와 군의 최고 수뇌부가 우왕좌왕하며 말 바꾸기에 급급한 모습은 지휘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연평도 사건을 두고 누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외교적, 군사적 미숙함은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사람으로 인한 문제는 사람만 교체하면 된다. 그러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사람을 교체하더라도 동일한 문제가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 남북이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보임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분단이 우리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우리의 안보문제는 다수 강대국과의 외교관계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외교와 국방문제는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에 관련된 절실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국가운영 시스템은 정작 중요한 일에는 국가가 집중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 급식으로 식중독이 발생해도, 대형 마트에서 튀김 닭을 싸게 팔아도 중앙정부와 대통령이 개입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국가 시스템이다.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중앙정부가 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국가운영 시스템 하에서는 중앙정부와 대통령이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중앙정부가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없게 된다. 중앙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움직이지 않도록 되어 있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중앙정부가 관여하다 보니 자연히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국가 전체가 심한 기능 마비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연평도 사건은 이러한 국가운영 시스템의 부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에 불과하다. 병이 들어 통증이 있는 경우에 진통제를 먹어 통증을 없앤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중앙정부는 온갖 사소한 일에도 모두 신경을 쓰고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비만증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민간이나 지방정부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중앙정부가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거나 중앙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지방정부는 스스로 운동하여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하고, 영양도 부실하여 몸이 빈약한 상태에 있다. 중앙정부는 과체중으로, 지방정부는 빈혈로 인하여 모두 비실대고 있다. 중앙정부가 국방과 외교, 금융 등과 같이 중요한 국가적인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나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방정부와 민간에 맡겨야 한다. 국가는 민간이나 지방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큰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를 가리켜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국가는 보충적으로 하위 공동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에만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국가의 구성원리이다. 지방정부나 민간이 해도 좋은 일에 중앙정부가 매몰되어 체력을 소진, 정작 중요한 국가적인 과제를 소홀히 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역할배분을 새로 해야 한다. 연평도사건은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와 대통령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국방과 외교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평소에 국방과 외교를 중심으로 국사를 챙기도록 국가 전체의 운영시스템을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천안함·연평도… ‘국방 강화’ 여론 반영

    천안함·연평도… ‘국방 강화’ 여론 반영

    육군을 기준으로 현역병 복무기간이 내년 2월부터 21개월로 동결되는 방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이어진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논란은 마무리될 전망이다. 참여정부에서 만들어진 ‘국방개혁 2020’에 따라 18개월로 줄어들고 있던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저출산 등에 따른 현역자원 감소와 잇따른 북한의 도발로 높아진 국민들의 안보의식으로 인해 21개월에서 멈춰서게 됐다. 군 복무 문제는 한반도가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국민의 의무로 받아들여지면서도 한편에선 정치인들에게 표와 연결된 가장 민감한 문제기도 했다. 복무기간에 따라 움직일 표가 현역 대상자와 그의 부모들을 포함해 적어도 수백만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복무기간 단축 방안은 처음 추진되던 참여정부시절 보수진영의 반대 목소리와 이번 정권 초기부터 나온 일각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착착 추진돼 왔다. 하지만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복무기간은 전환점을 맞게 됐다. 북한의 도발로 우리 군의 전력을 점검하게 됐으며 가장 중요한 전력 누수가 병사들의 복무기간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은 급속히 힘을 얻게 됐고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지난 9월 이 대통령에게 복무기간 단축을 백지화하고 육군을 기준으로 24개월로 환원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게다가 지난달 발생한 연평도 포격도발로 ‘국방력 강화’란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도 환원 방안을 이론(異論) 없이 이달 초 이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선진화위 방안과 달리 21개월 동결안을 내놓았다. 이미 21개월 정도로 줄어든 복무기간을 다시 24개월로 환원하는 것은 병역기간이 연장된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기본권 침해라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덕분에 국방부는 현역자원 확보라는 실리와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을 모두 챙겼다.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2월 27일부터 입대하는 육군과 해병대 병사는 21개월을 복무하게 된다. 또 해군은 1월 3일 입대자부터 23개월, 공군은 1월 1일 입대자부터 24개월로 각각 복무기간이 동결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연평도 사격훈련 이후 국론분열 안 된다

    군 당국이 어제 오후 연평도 사격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수십명의 우리 측 민·군이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지 27일 만이다. 당시 중단된 훈련을 재개하는 것이지만, 이에 맞서 북한이 제2·제3의 타격을 공언하고 있던 터라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사태지만, 국가주권을 지켜낸다는 차원에서 온 국민이 힘을 하나로 모을 때다. 이번 훈련은 해마다 실시해온 통상적 방어 훈련의 일환이다. 그동안 자위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영토와 수역 안에서 해왔다. 까닭에 북한이 시비를 걸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은 이번 훈련을 앞두고 전면전이니 핵참화니 하며 온갖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해병 2명에다 무고한 민간인 2명까지 살상한 것도 모자라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적반하장은 천안함 폭침에서부터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에 이르기까지 최근 북한의 일관된 태도였다. 북의 도발엔 단호한 자위권 행사외엔 대안 없어 이는 체제 유지가 북의 최우선 과제임을 새삼 일깨운다. 수십만명, 혹은 수백만명의 주민이 굶주려 죽어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핵·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부은 북이 아닌가. 세습독재체제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저지르고 마는 막가파식 행태가 북한정권의 속성인 셈이다. 이를 미리 인식하고 북한의 도발 습성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전·현 정부가 충분히 대비했어야 했다. 압도적 무력을 갖추거나, 남북관계를 주도면밀하게 관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제 와서 그런 책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이제 북이 더는 야만적 추가도발을 못하도록 온 국민이 혼연일체로 대응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어제 “비정상적 국가와의 자존심 싸움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라며 우리 군의 사격훈련을 만류했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절반의 진실’만 담은 안목이다. 북이 비정상적 국가임은 틀림없지만 남북 간 체제 경쟁 또한 숙명적임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은가. 북한이 우리의 선의에 화답하지 않고 그들의 체제유지를 위해 도발을 일삼을 때 단호한 자위권 행사 이외에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만일 정부가 사격훈련 재개를 공언하고도 빈말로만 그쳤다면 그로 인한 후유증 또한 엄청났을 것이다. 북한의 노림수대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무력화되는 경우를 상정해 보라. NLL 인근 수역과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의 영토를 지켜내는 데 난관이 조성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게다가 김정일-김정은 부자 간 정권이양기의 북은 최근 더욱 모험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의 위협에 쉬이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 수도권 등을 겨냥한 더 큰 불장난을 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초당적인 안보태세 정립해야 할 때 차제에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편향적 외교를 지적하고자 한다. 양국은 북의 연평도 도발 이후 우리가 사격훈련을 재개하겠다고 하자 외교적 간섭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연평도에서 민간인까지 살상한 북의 만행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의 자제만 요구해 왔다. 러시아는 북의 연평도 도발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한때 쓴소리를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격훈련 방침을 밝히자 곧 한국대사를 부르고,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양국의 이런 태도는 냉전기의 패권본색 그대로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일한국의 탄생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남북 분단 상태의 현상유지를 바라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다. 양국의 중재가 최소한의 설득력을 얻으려면 북한의 비인도적 만행의 책임부터 먼저 따져야 했다. NLL 너머 남측으로 어뢰와 대포를 쏘아댄 북과 NLL 이남에서 방어적 훈련을 하는 남을 동렬에 놓고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러가 주도한 안보리 성명이 다른 이사국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사필귀정이다. 우리 군과 정부는 영토와 영해·영공을 지키겠다는 대원칙을 세웠다면 이를 꿋꿋이 견지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북한은 국론이 분열됐을 때 우리를 넘본다.”고 했지만 진작에 초당적 안보태세를 다졌어야 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 우리 사회의 어느 정파나 계층도 대한민국의 자위권 수호 의지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 남북 간 긴장이 비등점을 향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초당적인 안보태세를 정립해야 할 바로 그 시점이다.
  • MB “檢 변화 부응하려면 피나는 노력”

    MB “檢 변화 부응하려면 피나는 노력”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검찰이 되고자 한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이라는 조직은 외부의 변화에 느리게 적응하는 조직문화가 있어, 이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진화하는 세계 모든 트렌드(추세)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년 1년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검찰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러자면 스스로 자기개발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검찰 스스로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 국민이 검찰의 변화를 읽기 시작했고, 노력을 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주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데 제자리에 있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면서 “시대 변화와 진화 속도에 맞는 여러분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이 10년 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면서 “검찰이 스스로 변화하게 되면 국민들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가 정체성과 관련, “분단된 나라에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특수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일에 여러분이 역할을 해야 하고,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교통(질서)을 위반해도 부자가 놀러 가다 위반하는 것과 없는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위반하는 경우 법은 아마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면서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대통령 “군사훈련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것”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오후 연평도 사격훈련 실시와 관련,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분단국가에서 영토방위를 위한 군사 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것”이라면서 “여기에는 누구도 개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으로부터 훈련 중간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훈련이 끝난 뒤에도 북의 도발에 대비해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춰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최상의 안보는 단합된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은 국론이 분열됐을 때 우리를 넘본다. 튼튼한 안보는 튼튼한 국방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해 사격훈련 시작할 때 MB는…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사격훈련이 재개된 20일에도 예정된 공식일정을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대로 소화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오전 8시 법무부, 오전 10시 행정안전부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우리 군의 훈련이 끝난 오후 4시부터는 법제처의 업무보고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점심식사도 평소 업무보고 때처럼 시간에 맞춰 업무보고가 끝난 행정안전부 직원들과 청와대에서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다만 아침부터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참모들로부터 우리 군의 사격훈련 재개와 관련해 중간중간에 보고를 받았다. 이어 사격훈련이 시작되기 전에는 청와대 지하벙커에 있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로 이동해 김진형 국가위기관리센터장으로부터 우리 군의 훈련계획, 북한군의 동태 등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임 실장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이희원 안보특보 등 참모들도 배석했다. 이 대통령은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지하 상황실에 있었지만, 정작 오후 2시 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우리 군의 사격이 진행될 때는 본관 집무실에서 평소처럼 업무를 수행했다. 이번 훈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었지만 청와대로서는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으면서 평상시 하던 훈련의 연장선상으로 별다른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 셈이다. 우리 군이 사격훈련을 하는 동안 청와대의 오후 법제처 업무보고는 시작되지 않았으며, 이 대통령은 훈련 종료 상황을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이 끝난 뒤 이 대통령은 오후에 예정됐던 법제처 업무보고를 계속 받았다. 이 대통령은 훈련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단호한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분단국가에서 영토방위를 위한 군사훈련은 당연한 일이며, 여기에 대해 북측이 비난하고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은 말을 거의 안 하고 아꼈지만 표정이나 행동에서 단호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광장] 대북정책 강온 포트 폴리오 다시 짜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대북정책 강온 포트 폴리오 다시 짜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외신을 타고 온 한 장의 야경(夜景) 사진에 ‘필’이 꽂혔다. 미국 해군연구소가 지난 10월 말 촬영한 한반도 위성 사진이다. 중국과 일본의 환한 밤풍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남쪽 전역도 휘황한 불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에 비해 북녘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아스라이 먼 은하계의 별빛처럼 평양에서만 희미한 빛이 보일 뿐이었다. 분단 65년간 남북의 궤적을 극명하게 보여준 단면도였다. 하기야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남쪽 도시엔들 어디 부조리와 문젯거리가 없으랴. 하지만 대한민국 밤의 조도는 세계 11∼14위권의 국내총생산에 필적한다. 반면 낮엔 강성대국의 깃발로 뒤덮이지만, 밤엔 전등 하나 켤 여력도 없어 암흑 천지로 변하는 게 조선인민공화국의 남루한 초상화다. 사실 북한식 주체경제는 이미 파산상태다.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을 포기한 마당에 더 이상 사회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에너지와 식량 등 중국이 놓아주는 수액주사와 남한과의 경협으로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를 아예 모르진 않을 게다. 오히려 그런 절망적 상황 때문에 핵개발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시찰했던 미국의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는 최근 “북한이 당장에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런 북을 상대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게 남의 비극이다. 부시행정부 때 북한을 다뤘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 사람들이 이상하긴 해도 미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북 수뇌부의 입장에선 핵위협이나 대남 무력 도발도 세습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사력을 다한 곡예일 뿐이란 얘기다. 우리의 수병 46명을 수장시킨 북의 천안함 폭침이 그런 엄연한 현실을 일깨웠다. 생때같은 젊은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된 연평도 사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북 접근법과 통일 전략을 전면 재점검하라는 경보음이란 점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햇볕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언급을 주목한다. 얼떨결이었는지, 작심한 건지는 모르나 필자는 사안의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 당내 지지기반을 잃을까봐 그의 측근들은 “햇볕론의 포기가 아니다.”라고 곧 물타기에 나섰지만…. 햇볕정책은 본래 이솝우화를 빗댄 수사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찬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볕”이란 함의는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 부분’ 주효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수조원을 들여 햇볕을 쪼였지만, 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진 못했다. 북이 개혁·개방을 택해 옷을 벗긴커녕 핵·미사일 개발로 겹겹이 갑옷을 껴입고 있는 형국 아닌가. 한 북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선샤인(Sunshine) 정책’이 북을 무장해제하는 게 아니라 김정일의 구두 광을 내는 ‘슈샤인(Shoeshine) 정책’이 돼선 곤란한 일이다. 이쯤에서 서독이 주도한 독일 통일의 교훈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동서독 교류를 강조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만을 통독의 견인차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동방정책 이상으로, 시장경제 강화와 서방과의 결속을 통한 경제·군사력의 대 동독 우위를 추구한 아데나워 총리의 서방정책이 통일의 밑거름이었는데도 말이다. 까닭에 새로이 정립해야 할 대북 정책 패러다임도 단선적이어선 안 된다. ‘햇볕’(교류·협력)과 ‘찬바람’(힘의 우위·도발 억제), 즉 강온을 적절히 배합한 정책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의 자산관리 때도 분산 투자하면서 민족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외골수 정책으로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전쟁이 아니라면, 가용한 모든 정책을 입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대북 지원을 하되 북한정권보다는 주민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북한체제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주력할 때다. kby7@seoul.co.kr
  • ‘인민체육인’ 리분희 北 장애인 대모?

    ‘인민체육인’ 리분희 北 장애인 대모?

    리분희(42).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남북 단일팀의 여자 단체전 우승 주역이었다. 한살 아래였던 복식 파트너 현정화(41·현 한국마사회 감독)와 나눈 한달 보름간의 살가운 스토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분단의 아픔을 더 절절하게 했다. 그가 지금 중국 광저우에 와 있다. 리분희는 당시 단일팀 혼합복식 동메달을 합작한 동갑내기 김성희와 결혼해 두 남매를 뒀다. 10대 후반인 그의 첫 아들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지바대회 이후 ‘인민체육인’ 칭호까지 받았지만 북한 체육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조선장애인보호연맹 부위원장이 된 게 불과 다섯 달 전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평범한 어머니로, 아직은 세계 무대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북한 장애인단체의 ‘옵서버’로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지난 12일 대회 본부 숙소인 샤토 리버스타호텔의 식당에서 윤석용 대한장애인체육회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리분희는 윤 회장에게 북한의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와 아시아장애인올림픽위원회(APC) 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 등을 물었다. 북한은 늘 국제기구에 가입할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정세 탓에 한곳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97년 서울 IPC 정기총회 당시에도 국제 정세가 얼어붙으면서 무산됐다. 이번 대회에도 리분희는 APC의 초청장을 받고 참가했지만 최근 연평도 사태 때문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는 16일 북한으로 돌아간다. 19년 전 체육을 통한 남북 화합의 꿈을 실현시켰던 리분희. 그가 이번엔 북한의 장애인체육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광저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한반도 군사적 충돌 가능성”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12일(현지시간) 북한의 잇단 도발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CNN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 군사적 충돌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2명이 희생된 점을 지적하면서 면서 “이는 (추가도발시) 북한에 대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블레어 전 국장은 “(북한에 대한) 보다 강경한 태도가 한국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렇게 대응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 분위기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또 “북한이 한국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적 도발은 하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도 이 같은 공격이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최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역할 증대론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작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원하며, 분단된 한반도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정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사약 그릇인가 보약 그릇인가/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대표

    [글로벌 시대] 사약 그릇인가 보약 그릇인가/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대표

    지난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한국을 충격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군인과 민간인이 4명 사망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사상자 수에 있어서 피해가 컸을 뿐 아니라 1700여명의 주민들도 삶의 터전에서 내몰려 아직도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 안보가 크게 위협받으면서 국민들은 한순간 전쟁의 불안에 휩싸였으며 다시 한번 분단국가로서의 비극을 피부로 겪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국가 안녕을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부 네티즌들이 인터넷 게시판 및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올린 댓글들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북측의 포격이 자신의 생일을 위한 축포라느니, 전쟁이 나면 백화점을 털어 명품을 훔치겠다느니, 심지어 전쟁이 발발해도 대응은 군인들 몫이니 자신은 상관없다고 올린 네티즌들도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민의 목숨을 지키느라 숭고한 생명을 희생한 데 대해 보이는 반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들로, 접할 때마다 씁쓸해진다.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사태 후 일부 네티즌들이 전사자들의 미니 홈피에 고의적 악성 댓글을 달아 국민들로부터 질타당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것 같아 실로 안타깝다. 네티즌들의 활동 공간인 인터넷 인프라에 있어서 우리 나라는 세계 최강국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65%를 육박하며 압도적인 1위이며, 초고속 인터넷 품질도 세계 1위로 조사되어 양적·질적 모든 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훌륭한 인프라 수준에 비해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보여준 우리 네티즌들의 에티켓 수준은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핫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한 가수의 학력 위조설 논란이었다. 10개월이 넘는 진실 공방 끝에 급기야 쌍방 고소와 경찰이 개입했으며 결국 결백한 것으로 결론은 났지만, 근거 없는 억측이 인터넷 공간에 무차별적으로 퍼지면서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음은 분명하다. 제 아무리 훌륭한 도구라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즉,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사약 그릇이 될 수도 있으며 보약 그릇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의 기술적 발전은 그 인터넷 공간을 채우는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술적 인프라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보다 빠르게 전달하는 데 기여할 뿐, 결국 핵심 알맹이가 되는 것은 인터넷이란 그릇을 채우는 내용, 즉 국민 의식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타인에 대한 비방을 초고속으로 전파시키는 매체로 전락한다면, 그 훌륭한 그릇에 사약을 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터넷상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 및 악플은 인터넷이 갖는 익명성이라는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이버 공간의 특징을 악용하여 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비겁할 뿐만 아니라 성숙한 시민 의식과는 거리가 먼 행위이다. 누군가 감시하면 마지못해 법과 규칙을 준수하고, 그러지 않으면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러나오는 선진 시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세계는 한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핵심 국가 반열에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듯 나날이 드높아져 가는 국가 위상에 걸맞은 에티켓이 인터넷상에서도 조속히 정착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아우르는 스마트 파워를 지향하기에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 받는 국격 제고를 위해 힘껏 달려야 할 것이다.
  •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 떨어지다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 떨어지다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양심적 언론인, 언론학자였던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이 떨어졌다. 최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지병인 간경화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오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5일 0시 40분 숨을 거뒀다. 그는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병세가 호전되자 2005년 대담집 ‘대화’를 출간하고, 지난해 “한국 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로 회귀하고 있다.”고 사자후를 토하는 등 지성인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병세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투병중에도 지성인 역할 게을리 안 해 리 명예교수의 삶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해 19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육군 통역장교로 복무하던 7년 내내 ‘미국이 불하한 외국 군대의 군복을 마다하고 작업복을 고집’했던 것은 그의 타협 없는 원칙을 엿보게 하는 하나의 일화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국가와 민족에 복무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이후 언론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사상을 벼리고,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작업에 한 치의 게으름도 없었다. 1957년 ‘합동통신’에 입사해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언론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4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처음 구속됐고, 1969년 ‘조선일보’에서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 기사를 썼다가 해직됐다. 1971년 군부독재 반대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합동통신에서 또다시 해직됐다.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로 옮겨 언론학자가 된다. 삶의 방법은 바뀔지라도 길이 바뀔 수는 없었다. 해직과 복직이 반복됐다. 1976년 한양대 조교수로 재직 중 해직됐고, 1980년 3월 복직했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 조종자로 분류되며 같은 해 다시 해직된 뒤 1984년에야 복직됐다.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의 해직,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0여 차례에 걸친 구속·감금 등의 경력은 그의 빛나는 이성과 냉철한 지성이 어떻게 실천됐는지 보여 주는 작은 장치였다. ●살아 있는 고전(古典) 된 숱한 명저들 1980년 리 명예교수가 신군부에 의해 구속됐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를 은사 삼은 제자들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시대가 엄혹할수록, 우상과 반이성의 광풍이 휘몰아칠수록 그를 사숙(私淑)하고자 하는 이들은 세대와 지역, 계층을 떠나 그를 ‘몽롱한 의식에 끼얹어진 찬물 한 바가지’로 읽고자 했다. 유신정권이 절정이던 1974년 리 명예교수는 인류사적·사회사적·외교사적인 냉철한 접근을 통해 반공·냉전·극우 논리가 판치는 기존 논리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제시했다. 시대의 고전이 된 ‘전환시대의 논리’는 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꿨음은 물론이다. 1977년에는 역시 당시 금기의 국가였던 중국을 다룬 ‘8억인과의 대화’를, 한국 사회의 반이성적인 반공 극우 이데올로기를 혁파한 ‘우상과 이성’을 펴냈다. 이후에도 ‘분단을 넘어서’(1984), ‘역설의 변증’(1987),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담집 ‘대화’(2005) 등 숱한 저작을 남겼다. 홍세화(63)씨는 “(리영희를 통해)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얻었다.”고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했고, 고병권(39) 사회학 박사는 “리영희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였다.”고 높이 평했다. ●“나는 언론인 70, 교수 30이오” 리 명예교수는 경력으로 치면 대학에서 20여년, 언론사에서 14년을 지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정체성을 일컬어 ‘언론인 70, 교수 30’이라고 자평했다. ‘리영희 평전’의 출간을 앞두고 최근까지 리 명예교수를 만나곤 했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리 선생이 제일 안타까워한 것은 남북문제와 언론의 타락상이었다.”면서 “그는 최근 신문이 방송으로 나서는 것을 두고 ‘보수 언론과 이명박 권력이 화간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리 명예교수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자 실천가였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언론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언론자유상과 늦봄통일공로상, 만해실천상, 한국기자협회 제1회 ‘기자의 혼’상, 한겨레통일문화재단상 등은 그를 삶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언론계 후배들이 바친 헌사이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건석씨, 딸 미정씨가 있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 고은 시인으로 결정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평생 야만의 역사와 싸우셨던 분”

    [리영희 명예교수 타계] “평생 야만의 역사와 싸우셨던 분”

    리영희 명예교수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조문객들을 맞았다. 야당 쪽 관계자들이 빈소를 직접 찾았고, 정치권은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 5일 오전 특1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백원우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홍희덕 의원, 강기갑 의원,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정계 인사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한 전 총리는 조문을 마친 뒤 상주인 리 교수의 큰아들 건일(44)씨와 리 교수의 부인 윤영자(78)씨를 위로했다. 한 전 총리는 “선생님이 가시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듯하다.”면서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국민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8억인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안목도 넓혀 주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백영서 연세대 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정연주 전 KBS 사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배우 문성근씨 등 학계·문화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유 전 청장은 “엄혹한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된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라면서 “선생님의 글을 보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학자로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애도의 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리 선생은 우리 사회의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으로 살아오신 분으로, 특히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많은 지성인들에게 용기의 상징이었다.”면서 “평화, 민생, 민주를 위해 헌신하신 선생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애도했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리영희 선생께서 명징한 정신으로 우리 속에 살아 평화·민생·민주를 함께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평생 ‘야만의 역사’와 싸워 오셨고 병상에서도 쉬지 않으셨던 리영희 선생께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고인이 제시한 문제의식이 시대의 양심들에게 가르침을 준 것처럼 고인은 가셨지만 앞으로도 사상으로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은 시인은 이날 고인에 대한 추모시 ‘뼈 마디마디로 진실의 자식이고자 한 사람’에서 “그리도 불의에 못 견디고 불의가 정의로 판치는 것 그것 못 견디는 사람”이라고 추도했다. 구혜영·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열린세상] 연평도 포격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연평도 포격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에서 지속된 평화의 신기루는 연평도의 포탄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수천명의 삶에 충격과 공포를 심어줬다. 연평도에서 탈출하는 피란민 행렬을 보며 북한의 핵개발 소식, 천안함 피폭에도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평화는 이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G20 서울 정상회의 축제 직후 행해진 무력공격은 우리의 분단 현실과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 위협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지 못할 때 국가는 그 존재 의미를 잃는다. 포격 이후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는 정부의 안보전략 부재와 군 수뇌부의 허약함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은 바로 이러한 국가의 당위적 역할과 기대 때문이다. 수백발의 포탄으로 공격 받는 와중에 한국 정부는 확전 여부를 먼저 걱정하고 국방부 장관을 사퇴시키는 등 위기 관리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연간 30조원이라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도 전력 증강과 군기 확립보다는 승진에 관심이 많았던 군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생명의 안전을 의지해야 하는가? 연평도 주민들의 ‘탈출’과 ‘피란 생활’을 보며 국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임한 국가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게 된다. 최근 한반도의 상황은 남한과 북한의 안보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민족·종교·인종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분쟁의 근원은 지속되고 있으며, 그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권력세습을 위해 위기를 조장하고 계속해서 핵을 개발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남한과 북한의 충돌이라 하더라도 한 국가가 짊어져야 하는 경제적, 정치적 대가는 엄청나기 때문에 위협의 근원을 찾아서 사전에 방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지속적인 도발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북한의 도발 시 수십배, 수백배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확전이나 전면전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전쟁을 불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면전은 북한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들끓는 국내 여론을 배경으로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교전규칙을 공격적으로 수정해 국가안보를 강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라 확고한 대통령의 의지를 통해 북한의 도발 의지를 무력화하는 국방개혁을 실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신뢰가 결여된 국제정치의 불확실성 속에서 국가간 안보경쟁은 해결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안보를 획득하는 방법은 국내적인 안정과 강력한 군사력의 보유와 더불어 대외적인 동맹관계, 국제안보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물론 국제사회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명백한 침략을 다루는 데는 한계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은 안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며 6자회담이나 유엔헌장에 무작정 기대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분단현실 속에서 점증하는 국지전의 위협과 북한 핵을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어지러운 정세를 고려한다면, 오늘날 한국이 당면한 안보 위기를 한국 정부의 전략 증강이나 호전적인 군사전략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의 성공 여부는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억제하는 전략 속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북한의 폭력적인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주변국의 장기적인 국가이익과도 부합하는 것임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쟁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다면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단호한 응징전략을 가질 때 북한의 군사 도발을 억제하고 평화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북한 도발의 법적 의미/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열린세상] 북한 도발의 법적 의미/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인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하는 도발을 자행한 것은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유엔의 승인이나 자위권 발동 등 예외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만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국제법규의 위반 행위이다. 또 1953년 휴전 당시 적대 행위와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전협정과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 불가침’ 합의에도 위반되는 행위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군 이외에도 민간인까지 살상한 북한 지도부의 만행은 전쟁 범죄·반인도 범죄를 관할하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서 정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등 여러 대응 방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우리 국내법인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김정일 등 북한 지도부에 대한 전쟁 범죄나 반인도 범죄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소지가 있다. 이 법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전쟁 범죄·반인도 범죄 등을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은 물론,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이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민간인 주민에 대해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한 헌법 제3조의 규정에 따라 북한지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친다. 비록 북한이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북한 지도부의 지시에 의한 연평도 도발로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군인과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법원이 북한 지도부의 범죄에 관하여 재판권을 행사함에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할 것이다. 다만, 분단의 현실적 상황으로 북한 지도부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를 국제형사재판소가 보충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관한 로마규정 제17조의 ‘당사국이 소추의사나 소추능력이 결여된 경우’를 적용, 대한민국의 정부나 피해자 유족들이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직접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이중적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최근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이적성 여부에 관한 대법원 사건에서 “북한을 무조건 반국가단체라고 볼 수 없다.”라는 박시환 대법관의 소수 의견에 대해 양승태 등 4명의 대법관은 “갑자기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을 종전과 달리 보자고 하는 것은 논리를 전도하거나 현실을 지나치게 일방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고,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역사적 의미를 도외시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반박하였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주지 말자.’는 이른바 방어적·전투적 민주주의론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의미가 있다. 또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도모하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응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남북 대치의 현실을 타개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긴장 완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지만,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잇따른 도발에서 드러난 우리의 엄연한 안보 현실은 햇볕정책 등 그간의 평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도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제법과 정전협정 등을 위반하면서 민간인까지 공격하고 살상하여 전쟁 범죄·반인도 범죄를 범한 북한과의 평화를 내세우는 시각이 있다. 이는 북한의 이중적 성격에서 평화적 측면만을 중시하는 편향적 사고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으나, 현재의 안보현실에서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도발에 동조하는 행위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한 이적행위이자 반국가활동으로서 국가보안법이 엄정하게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통일의 꿈 월드컵 통해 이루게 해달라”

    “월드컵이 불가능했던 나의 꿈을 실현시켜 줬다.” 국제축구연맹(FIFA) 202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에 나선 한국이 FIFA 집행위원들에게 월드컵을 통한 남북화해와 통일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월드컵유치위원회(위원장 한승주)는 1일 밤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2022년 월드컵 유치 희망국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나선 한국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FIFA 집행위원들에게 “65년 전 남북이 갈라진 한국은 세계 최후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지만 한국민들은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월드컵 유치는 아시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1946년 서울과 평양의 경평축구가 마지막으로 치러졌지만 다시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축구의 힘을 빌려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열정의 유산’이라는 주제로 “축구는 제 삶의 전부다. 키 작고 평발인 내가 프로 선수로 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월드컵의 힘이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2022년에는 축구 현장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축구공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면서 “전 세계 많은 어린이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 한국에 표를 던져 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정부를 대표해 발표자로 나선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오지 못해 아쉽지만 한국 정부는 2022년 월드컵의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한승주 유치위원장은 네 번째 발표자로 나서 “이미 12개 개최 도시와 14개 경기장을 선정했다. 모든 경기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줄 것”이라면서 “글로벌 축구펀드를 조성해 7억 7700만 달러를 투자할 것이다. 한국은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 한국을 재발견해 달라.”고 호소했다. 마지막에 나선 정몽준 FIFA 부회장은 “1951년 전쟁 중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지난 60년 동안 살면서 한국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번영의 길을 걸어왔다.”면서 “최근 한반도 평화가 깨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반도의 현실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역사의 물줄기가 바뀔 것이다.”면서 “한국의 2022년 월드컵 개최는 한반도 주변 환경을 모두 바꿀 기회다. 전 세계에 축구가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문화마당] 민족인가, 국가인가/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 민족인가, 국가인가/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이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인인가? 20세기 이래로 한국인을 결정하는 코드는 국가보다는 민족이었다.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여 국가가 부재했던 20세기 전반기에 민족이라는 코드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전하고자 했다면, 남북이 분단된 후반기에는 현실적으로는 서로 다른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도 당위적으로는 같은 민족임을 표방하는 자아 분열적 정체성을 견지했다. 하지만 한 세대 이상 지속된 분단 시대에서 남북의 격차가 벌어지고 이질화되면서 통일이 도달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지면서, 자아 분열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만 우리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라는 이중적 존재다. 얼마 전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이 사태가 일어난 다음 날 국내 어느 유력 일간지는 1면에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는 톱기사와 함께 불타고 있는 연평도 사진을 크게 실었다. 천안함 사태와는 다르게 이번은 북한의 명백한 도발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천안함 침몰 사태를 보는 시각차가 생겨났다. 대한민국 국민인 어느 개신교 목사가 당국의 허가도 받지 않고 북한에 들어가 현 정부를 비판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국 후 구속되어 조사를 받을 때는 “북한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 살기 싫다면서 왜 북한 체제를 찬양했느냐.”는 수사관의 물음에 대해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통일운동”이라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민족통일은 하나의 신앙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가의 위기는 민족통일이라는 신앙과 국가이성이 충돌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의식을 토대로 한 민족통일이 아니라 민족통일이라는 당위로 국가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기부정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다른 정치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의 정신 분열증을 치유하지 않고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며, 또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통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신 분열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치유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병의 원인부터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왜 자기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를 부정하는가이다. 이 같은 정신분열증이 생겨난 제1 원인은 국가의 보존과 번영을 지상과제로 규정하는 국가이성이 결핍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이성의 중요성은 국가가 존망의 위급상황에 처하면 그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는 위기의식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국가이성이 결핍돼 있는가? 그 답은 한국 근현대사에 있다. 우리의 근대국가 경험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전반부에는 조선총독부로 상징되는 일제의 군국주의 국가에 의해 수탈 당했고, 해방되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후반부에는 국가의 폭력에 대항해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야 했다. 이 같은 부정적인 국가경험이 국가이성의 미성숙을 초래한 첫 번째 요인이다. 따라서 우리의 부정적인 국가감정을 해소해야만 국가이성의 결핍이 극복될 수 있다. 통일이 당위적 꿈이 아닌 현실적 문제로 점점 다가오면서 우리의 정체성 코드가 국가인가, 민족인가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민족에서 국가로 코드 전환이 점점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이제 문제는 대한민국 국가이성을 회복하고 긍정적인 국가감정을 교육하는 장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어떻게 세우느냐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무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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