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분단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 모친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 속초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출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 에릭
    2026-02-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23
  • [사설] 2전3기 평창 쾌거… 국민적 역량을 모으자

    ‘평창!’ 10년을 기다려온 평창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 강원도 평창이 2전3기의 쾌거를 이룩하며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지난 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은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제치고 마침내 10년간 이어온 꿈을 이루었다. 드디어 힘찬 비상이 시작됐다. 이제는 국민적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한편 국격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평창의 쾌거는 그동안 누구보다 마음 졸인 평창군민, 강원도민은 물론 팍팍한 경제와 사분오열된 정치에 짜증나고 지친 국민에게 모처럼만에 큰 위안이 됐다. 온 국민은 평창의 세번째 도전을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산적한 국정을 뒤로하고 현지에서 막판 표몰이에 올인한 이명박 대통령,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조양호 평창올림픽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 등의 공도 컸다.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선수 등 재계·체육계 인사 250여명의 헌신적인 현지 유치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국운 융성·국격 상승의 에너지로 활용하자 2003년과 2007년 거푸 2차투표에서 역전패의 쓴잔을 든 평창은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유치 전망이 밝았다. 경기장 시설과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평가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거 쇼트트랙 일변도에서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분야까지 세계 정상의 기량을 확보함으로써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이 높아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두 번의 실패의 교훈을 철저히 살려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높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이런 불굴의 정신이면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분석에 따르면 평창 동계올림픽은 20조5000억원의 국내총생산을 유발하게 된다. 일자리 난이 심각한 이 때 23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등 경제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경제효과에 더해 하계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개최를 통해 얻은 것처럼 국가 브랜드 파워 향상에 따른 무형의 소득은 돈으로 따지기조차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번 쾌거는 국민을 신명나게 해 국운을 융성시킬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반드시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어 경제·정치적 효과를 최대한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실제 대한민국은 평창의 쾌거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올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세계 4대 스포츠 제전을 모두 개최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됐다. 스포츠 제전 그랜드 슬램 달성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6번째다. 동아시아의 변방 대한민국의 힘이 그만큼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계가 대한민국의 힘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문화 한류에 이어 스포츠 한류를 전세계에 확산시킬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성공 개최 위한 액션 프로그램 즉각 가동해야 평창은 지난 두 번의 도전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끝내 쓴잔을 들었다. IOC 위원들은 자국이나 개인 이해관계에 따라 표심을 바꾸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도전했다. 이번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은 결과 유치에 성공했다. 어떤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는 한국민의 의지와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창은 슬로건으로 내세운 대로 겨울스포츠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을 열어야 한다. 아시아와 세계 겨울스포츠의 새로운 중심국이 되어야 한다. 이번 평창 유치전에서 대한민국은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역량을 세계로부터 평가받았다. 이제 우리가 지구촌 이웃들로부터 받은 기대를 돌려주어야 할 차례다. 대한민국이 세계 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회를 성공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 세계 유일의 분단지대 한반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회 성공을 위해 정교한 액션 프로그램을 이제부터 가동해야 한다. 10년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 긴장의 끈을 한시도 늦추면 안 된다. 평창의 경기장 시설은 평가위원들을 크게 감동시킬 정도로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대회에 참석하는 선수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어디 선수들만으로 치러지는가. 임원과 보도진,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관계자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의 힘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고속전철 등 설비를 정해진 시한 내에 꼭 완공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의 니드(need)를 정확히 반영한 맞춤형 콘텐츠 개발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적 역량을 모으는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孫대표 4일 訪中 시진핑과 면담… 외교행보 득과 실

    孫대표 4일 訪中 시진핑과 면담… 외교행보 득과 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일본 방문에 이어 중국 방문길에 오르는 등 외교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방중은 동북아 긴장 완화와 양국의 경제협력 증진을 모색하는 일정이라고 민주당 측은 3일 밝혔다. 손 대표는 중국 방문 첫날인 4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알려진 시진핑 부주석을 면담하고 5일 장즈쥔 외교부 상무 부부장을 만난다. 충칭에서는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를 면담하고 서부개발구, 한국 기업 시찰에 나선다. 손 대표의 잇따른 해외 방문은 당 안팎의 외연 확대를 통해 차기 주자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독자 플랜으로 내건 ‘민생진보’의 연장선이라는 손 대표 측의 설명도 이 같은 분석과 연동된다. 한 측근은 “민생 문제에서 해외의 불안 요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안 된다. 고도 기술국인 일본과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진보적 성장을 꾀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2012년 대선부터 재외동포 참정권이 실행되면서 해외 동포들의 표심을 공략하려는 포석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손 대표의 외교 행보를 바라보는 당내 시선엔 의구심이 섞여 나온다. 성과와 시기 측면을 거론한다. 현 동북아 정세에서 야당 대표가 얻을 수 있는 선물이 적다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일본은 원전과 국내 상황 때문에 반기지만 중국과 미국은 야당 지도자에게 안겨줄 게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방일 이후 정동영 최고위원과 노선 싸움이 불거졌고 심지어 ‘종북’ 논란까지 나왔다. 이날 출범한 당 비주류 모임인 ‘민주희망 2012’가 “당이 국민의 요구를 저버릴 때는 단호하게 바로잡는 파수꾼이 되겠다.”고 한 것은 ‘손학규 체제’에 대한 견제용 선언으로 들린다. 한나라당이 당권 주자를 확정하면 야권 통합 문제가 본격화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야권 격변기에 다른 주자들과 차별화하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야권 전반의 혁신과 통합을 구체화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렇듯 손 대표의 외국행에 진정성을 묻는 상황이 도처에 깔려 있다. 분단국 야당 대표의 고민과 국민적 호응이 뒤따르는 의제가 분명해야 한다는 비판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佛 세계문학전집에 한국문학 정식 포함”

    “佛 세계문학전집에 한국문학 정식 포함”

    “지난해 출간 이후 8000부 정도 팔렸는데, 이 정도면 꽤 좋은 반응이라고 봐야죠. 프랑스의 대표적인 세계문학전집 갈리마르에 한국문학이 정식으로 포함되고 있습니다.” ●황석영 장편소설 ‘심청’ 불역 30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0회 한국문학번역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최미경(46) 이화여대 통역대학원 교수와 장 노엘 주테(66) 박사는 프랑스 현지에서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한국문학에 대한 평판을 먼저 전했다. 두 사람은 황석영의 장편소설 ‘심청’을 프랑스어로 함께 번역했다. 최 교수는 “불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결국 부족할 수밖에 없는 2%를 주테 박사가 문학적인 차원에서 채워 줬다.”면서 “황석영의 초기 작품 ‘한씨연대기’, ‘삼포로 가는 길’ 등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주테 박사는 “황석영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며 “그의 초기 작품과 더불어 장편소설 ‘손님’을 가장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분단과 통일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그런지 아직 보편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심청’에서 드러나는 실존적인 고민이 훨씬 성공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번역상은 양한주씨 등 3명이 받아 번역상은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을 독일어로 공동 번역한 양한주(51)씨와 하이너 펠트호프, 소설가 오정희 등의 ‘한국현대단편선’을 영어로 번역한 존 홀스타인(67)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가 받았다. 2001년부터 시상한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은 김제인(28·영어권), 지예구(26·영어권), 이아람(31·불어권), 마이케 실(31·독어권), 파로디 세바스티안(29·스페인어권), 박모란(25·러시아어권), 왕염려(37·중국어권), 후루카와 아야코(36·일어권)가 받았다. 번역 과제로 주어진 작품은 박민규의 단편소설 ‘아침의 문’과 김인숙의 ‘안녕, 엘레나’. 7개 언어권역으로 나누어 선정한다. 상금은 번역대상 2만 달러, 번역상 1만 달러다. 신인상은 500만원.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평화의 메신저 청소년 155인을 찾습니다

    평화의 메신저 청소년 155인을 찾습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155명의 청소년이 휴전선 155마일(249km)을 횡단한다. 청소년 한국스카우트연맹(총재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과 동아오츠카(주)(대표이사 이원희)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 국방부,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제17회 평화통일체험활동이 개최된다. 평화통일체험활동은 155명의 청소년들이 휴전선을 횡단하며, 분단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국가관을 함양하기 위해 시작됐다. 올해는 30명의 다문화가정 청소년이 참가하여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모두가 하나 되는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강화도를 시작으로 통일대교를 건너 백마고지, 제2땅굴, 평화의 댐, 통일전망대 등을 거쳐 강원도 세계잼버리수련장에서 횡단은 마무리된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DMZ의 자연을 느끼고, 휴전선 지역의 문화재답사와 병영 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155인의 청소년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이번 행사는 8월 1일부터 8일까지 7박8일간 진행된다. 스카우트대원과 일반청소년, 모두 참가가 가능하며, 참가신청은 6월 30일까지 평화통일체험활동 홈페이지(www.dmz155.or.kr)에서 접수하면 된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이밖에도 아구노리(장애청소년 야영대회)와 지역대 야영대회, 장학사업 등을 통해 청소년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청소년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열린세상] 6·25전쟁, 한국전쟁, 남북전쟁/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6·25전쟁, 한국전쟁, 남북전쟁/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

    ‘6·25전쟁’ 발발 61주년을 맞고 있다. 해마다 이 기념일이 반복되듯이 올해도 예외 없이 이 전쟁에 어떠한 이름을 붙여 줄 것인가 하는 논쟁이 언론지상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6·25전쟁’인가 ‘한국전쟁’인가를 다투는 이 논쟁은 최근에는 학계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전쟁 발발 직후에는 ‘6·25사변’, ‘6·25동란’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다가 ‘6·25전쟁’이라는 용어로 통일되어 갔다. 1980년대에 들어와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군사편찬연구소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조차 ‘6·25전쟁’과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을 번갈아 사용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교과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6·25전쟁’을 공식적인 편수용어로 확정했지만, 교과서 밖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6·25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전쟁 발발 시점에서 따온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전쟁을 겪은 민중의 경험을 온축하고 있어 가장 객관적인 명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학자들은 ‘한국전쟁’이라는 무가치한 이름이야말로 이 전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에 어떠한 이름을 붙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가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떤 전쟁에 특정한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은 그것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6·25전쟁’이라는 명칭은 전쟁 발발 시점을 부각시켜 북한의 전쟁 책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용어는 전쟁의 전체 과정을 시야에 넣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과 스탈린의 ‘남침’ 전쟁만이 포착되어 있고, 이승만과 맥아더의 ‘북진’ 전쟁이나 중공군 참전 이후의 ‘미·중’ 전쟁을 포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한국전쟁’이라는 명칭도 문제가 많다. 외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War in Korea), ‘한국전쟁’(Korea War 혹은 Korean War)이라는 표현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어느 나라도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을 이런 식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은 ‘한국이 일으킨 전쟁’이나 ‘한국 사람들끼리의 전쟁’으로 잘못 이해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우리는 61년째 이 전쟁을 기념하고 있지만 이 전쟁에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마땅한 이름을 붙여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명칭이 전쟁의 성격과 긴밀히 연관된 것이라면 전쟁의 성격을 명확히 함으로써 전쟁에 명칭을 부여하는 방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전쟁 당시 남북의 지도자들은 모두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라도 분단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김일성은 공공연히 국토완정을 주장하며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하여 전쟁에 나섰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인민군의 남침으로 빛이 바랬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38선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남북은 형태는 다르지만 전쟁을 통해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분단을 한층 고착화했다. 이 때문에 이 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안이한 역사인식이다. 결국 ‘6·25전쟁’은 남과 북의 ‘통일’ 전쟁이라는 성격과 남한을 앞세운 자유진영과 북한을 앞세운 공산진영 사이의 전쟁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처음부터 내전의 성격과 국제전의 성격이 결합된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이 전쟁을 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과 북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세력 사이의 전쟁, 즉 ‘남북전쟁’으로 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 “참전용사 살아생전에 ‘한반도 통일’ 보여주고 싶습니다”

    “참전용사 살아생전에 ‘한반도 통일’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은 한반도가 통일되는 모습을 참전 용사 여러분들 살아생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61주년을 하루 앞두고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 “참전용사 여러분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고 존경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북한 땅에서, 또 어느 곳에 묻혀 있을, 아직 되찾지 못한 13만명의 우리 용사들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끝까지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어질 수 없고 자유도 거저 얻어질 수 없다.”면서 “희생 없이는 한 치의 땅도 지킬수 없고, 희생 없이는 자유를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전후 반세기 만에 산업화를 이뤘고, 불가능하다는 경제 번영과 민주주의를 이뤄냈다.”면서 “그렇게 되기까지 6·25 참전 국군용사들과 16개국 유엔군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있었으며 세계 15위 경제번영 국가, 세계 20위 민주국가를 이룬 것으로 참전한 여러분에게 보답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6·25의 참혹한 역사와 그 진실의 역사를 6·25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 그 다음 다음 세대에도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면서 “지나간 6·25를 상기하고 우리 국민이 단합함으로써 이 땅에 6·25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6·25 전쟁 당시 중공군 포로로 북한에 억류됐다 2000년 7월 70세의 나이에 북한을 탈출한 유영복씨를 비롯해 미국과 터키를 포함한 국내외 참전용사,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국군 귀환용사 등 900여명이 참석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23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은 실로 바람과 같은 속도로 제국을 만들어 나갔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오3세와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하고 서쪽으로는 고향 마케도니아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더스강 동편에 걸쳐 ‘헬라’라는 이름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후 8년이 못되어 그는 죽고 제국은 나뉘고 사라진다. 헬라제국을 전후해 200~300년, 중동은 대격변기였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에 로마까지 수천년 인류사에 족적이 뚜렷한 대제국이 세워지고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제국들의 수레바퀴에 깔려 뭉개졌다. 시리아 지방에 ‘유다’라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1050년 왕정국가 체제를 갖추었으나 120년이 지난 기원전 930년부터 남북으로 나뉘어 분단국가로 지냈다. 북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했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2세의 침공 때 망했다. ‘느부갓네살’은 이라크전 때 사용됐던 이라크 미사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남유다 요시야왕은 아시리아의 쇠퇴기를 잘 활용해 국력을 다졌고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다. 이 무렵 신바빌로니아가 신흥 강국으로 등장했는데, 이집트가 이 바빌로니아를 견제해 아시리아를 도우려 했다. 요시야는 아시리아의 회복을 원치 않았다.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국을 괴롭혀온 나라의 재기를 원치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집트를 막아선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는 “내 목표는 바빌로니아”라며 비켜설 것을 종용했지만 요시야왕은 ‘므깃도’라는 곳에서 일전을 감행했다가 전사하고 만다. 바빌로니아의 발흥은 역사의 숙명이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시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했다. 바빌로니아가 기원전 608년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이집트까지 제압, 중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뒤에도 남유다는 쓰러져 가는 옛 강호 이집트에 의지하려 했다. 상황을 오판한 대가는 3차에 걸친 침공과 식민이주, 포로생활이었다. ‘역사의 여울목’에서 약소국은 판단도, 결정도, 처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쟁쟁한 대제국들이 맞서는 상황, 여울목이 만들어 내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 유다는 저만치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스 아테네에 서서 뜬금없이 2500년 전의 유다를 떠올린 것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여울목 때문이다. 다 쓰러져 가던 옆집 중국이 다시 거대 제국의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수십년 경제 대국으로 주름잡던 이웃 일본은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를 경영하던 미국은 정치,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에서 하락세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의 꿈틀거림도 신경을 자극한다. 한 지붕 다른 집 북한은 그 가는 곳을 알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우리를 둘러싼 주요 국가가 대부분 리더십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각국은 내부의 긴장감이 한껏 높아질 것이고, 자국의 형편이나 다른 이웃나라와의 관계 등으로 주변에 대한 배려는 소홀해지기 쉽다.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 등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는 그 대표적인 예표다. 이해가 겹쳐 맞물리고, 긴장이 쌓여 가면 ‘관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 사실이다. ‘국력’이 선거에 몰리다 보면 이 관리는 부실해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2012년 저쪽 너머로 물살 빨라지는 소리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는 요즘이다. 대권주자들도 이 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으리라 본다. 대통령 특사로 지난 5월 유럽을 다녀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얼마 전 사석에서 “그리스에 다녀오니 (그리스 경제위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 했다. 박 전 대표도, 다른 후보들도 가급적 더 자주 나가서 그 물살의 소리를 더욱 실감하기 바란다. 아테네를 다녀와서 jj@seoul.co.kr
  • [사설] 연임된 반기문 총장 남북관계에도 기여하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유엔 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됐다. 북한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였다. 분단국 출신 첫 유엔 수장으로서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족적이다. 지난 4년 반의 활동을 통해 유엔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1946년 유엔 창설 후 여덟 번째 사무총장인 반 총장의 첫 5년 임기는 올해 12월 말 끝나며, 2기는 내년 1월 1일 시작한다. “연임에 필요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는 유엔 지도자들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반 사무총장은 연임 확정 뒤 수단, 콩고,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지의 인권 상황 등을 언급하며 “유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을 보호하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며 인권 감시 활동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특히 “유엔의 회원국 사이, 또 유엔과 다양한 국제파트너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사람, 가교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할 것”이라고 중재자 역할을 다짐해 기대를 갖게 한다. 지구촌도 분단국 출신 반 총장이 정의와 평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업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 격차와 갈등을 줄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 총장의 재선 가도는 순탄치 않았다. 2009년 유엔 주재 노르웨이 차석대사가 “반 총장은 카리스마가 부족한 방관자”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국 정부에 보내자 미국·유럽 등 서방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며 반 총장을 흔들어댔다. 유엔 사무국 개혁 과정에서는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조용한 리더십’의 반 총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설득하고 타협했다. 분쟁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해외 순방만 200여 차례다. 지구 50바퀴 거리다. 마침내 세계가 그를 인정했다. 우리 국민도 반 총장을 응원하고 도와야 한다. 반 총장도 2기째는 만장일치 추대의 힘으로 세계 평화와 강한 유엔을 위해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기후변화 협약, 국제 분쟁, 유엔 개혁 등 현안에 적극 개입해 풀어야 한다. 내년엔 한·미·중·러 모두 권력교체기다.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북핵 협상서 반 총장이 활약할 공간도 넓어진다. 특히 반 총장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북한 당국은 나의 방문에 대해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라며 여건 충족 시 방북 의지를 재확인했다. 반 총장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포함, 남북관계에도 기여하길 바란다.
  • [한국戰 전사자 유해발굴] “전우 잃은 기억 떠오를까 한국 방문 주저했죠”

    [한국戰 전사자 유해발굴] “전우 잃은 기억 떠오를까 한국 방문 주저했죠”

    모든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자신의 공훈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피 흘려 싸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할까. 1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비에나시에서 만난 미국인 참전군인 앨 오티즈(82)는 그것이 또 하나의 편견임을 일깨워 줬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1년째를 맞은 지금까지도 당시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적탄에 사랑하는 전우를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공격에 적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전쟁의 비극을 논하는 것은 애당초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의 모습이 웅변했다. 61년 전 오티즈는 텍사스 앨파소에 사는 평범한 21세의 청년이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모자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는 1950년 11월 강제 징집명령을 받는다. 심경이 어땠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그는 솔직했다. 오티즈는 루이지애나에서 기초 훈련을 거친 뒤 1951년 5월 일본 홋카이도에 배치됐다. 한국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혹한 훈련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해 12월 그는 인천항을 통해 처음 한국 땅을 밟게 된다. 한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이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때였다. “불확실성과 두려움, 그런 감정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는 그때 감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오티즈는 미 45보병사단 179연대 1소대 소대장으로 강원도 철원의 ‘포크찹 힐’(255고지) 전투에 배치됐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고지의 모양이 포크찹이라는 요리를 닮아서 붙은 별명이었다. 이름은 익살스러웠지만, 그곳은 아군과 적군이 빼앗고 빼앗기기를 거듭한 가장 격렬한 전장 중 하나였다. 오티즈 소대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협공을 받았다. “북한군은 사납고 잔인했어요. 총도 없이 호미 같은 것을 들고 우리한테 돌진하기도 했죠.” 중공군은 인해전술이었다. “마치 개미떼 같았죠. 수백명이 밀고 올라왔어요. 우리는 대포와 수류탄으로 맞섰어요. 특히 수류탄이 효과가 컸어요. 중공군도 나무로 된 수류탄을 던졌는데 우리는 그걸 다시 주워서 되던지기도 했죠.” 오티즈는 “한번은 중공군 포로를 잡고 보니 12살 정도밖에 안 되는 소년이어서 깜짝 놀란 기억도 있다.”고 했다. 실탄이 떨어진 양측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지는 것도 예사였다. 오티즈는 검지와 중지로 적의 눈을 찌른 적도 있고 칼로 적의 목을 벤 적도 있다고 했다. 전쟁은 해맑은 청년을 야수로 바꿔 놓았다. “처음엔 중공군을 미워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곁에 있던 전우가 죽는 것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구쳤죠. 점점 그들을 증오하게 됐어요.” 그는 1952년 7월 박격포 파편으로 중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됐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1953년 5월 전역한 뒤 참전군인에 대한 정부 지원으로 텍사스주립대에 들어갔고, 국무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버지니아로 이사했다. 그는 결혼해서 1남3녀를 뒀다. 그에게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한국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놀랐다.’는 답변을 겨냥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한숨과 함께 나온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한국에 먼저 다녀온 참전용사들은 한국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뉴욕같이 변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나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전우들을 잃은 기억이 떠오를까 봐 두려웠어요. 내가 이끌던 40명 중에 33명이 전사했죠.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고 눈에는 이슬이 비쳤다. 하지만 부상 미군 단체(Purple Heart)의 일원이었던 그는 이 단체의 방한 요청을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2000년대 초 한국을 찾았다. 반세기 만이었다. 한국에 있는 사흘간 동료들은 판문점 등을 돌아다녔지만, 그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다. 옛날의 기억이 떠오를까 두려워서였다. 그는 “같은 참전용사라도 나처럼 격렬한 전투에 참여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기 힘들다.”고 했다. “61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을 꾸죠. 육박전에서 내가 찌른 적이 죽어가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는 “우리가 그렇게 싸웠는데 남북한이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점이 걱정”이라면서 “나는 북한이 다시 도발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도와준 것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참전용사)한테 뭔가를 보답하려 한다.”면서 여러 차례 고맙다는 말을 했다. 준비해 간 질문 가운데 차마 꺼내지 못한 게 있다. ‘다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도 기꺼이 참전하시겠습니까.’란 질문이다. 그 질문을 준비해 간 게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글 사진 비에나(버지니아)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태극기를 밟고 찍은 사진이 한국에서 논란이 된 모양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둘로 갈려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태극기를 짓밟다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는 비난과 “별걸 다 트집 잡는다. 그럼 태극기를 엉덩이에 두르는 것은 괜찮으냐.”라는 두둔이 드잡이하고 있었다. 내 알량한 분석력을 총동원해 판단하건대, 한 전 총리가 고의로 태극기를 밟은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아마도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느라,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석에 헌화하느라 태극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다. 정말 작심하고 모독하고 싶었다면 굳이 신발을 벗고 태극기 위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적어도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그가 태극기를 무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태극기를 밟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았더라도 실수로 봐줄 수 있지만,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전력으로 미뤄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의 잠재의식 속에 정말 ‘태극기 무시’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모습에서 태극기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극진한’이라 함은 부모님 영정만큼, 아니면 자신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의 영정만큼 끔찍이 위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태극기에 발을 올려놓는 일은 저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고백하건대, 나 역시 태극기를 극진히 예우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경일에는 ‘애국심을 꼭 표현해야 맛인가.’라는 자의적 논리로 국기 게양의 귀찮음을 합리화했고, 평소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월드컵 응원할 때나 돼서야 맘 떠난 애인 손잡듯 찾는 게 태극기였다. 왜 그랬을까 ‘분석’해 보니 과거 군사정부 시절 강요된 애국심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심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 애국가가 울리면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를 웅얼거리던 시대였다. 민주주의도 자라고 나도 자랐지만, 태극기에 대한 나의 정서는 유년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미국에 와서 ‘개과천선’했다. 미국 국민의 성조기 사랑은 가히 설화적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공사장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아놓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중고차 판매장에 진열된 수백대의 차 하나하나에 성조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봤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따로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라고 계도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의 이런 태도는 세계 최강대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류대학, 일류직장에 다니면 자랑하고 싶은 심리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성조기 사랑은 불온한 파시즘이나 유치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끌어올림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유쾌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삼류대학, 삼류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것처럼 삼류국가 국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국기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성조기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공사장 노동자가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한국의 화이트칼라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국기 홀대는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고 국기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약 북한 인공기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태극기에 정이 안 가는 분이 정말 있다면, 그 마음 씀이 너무 박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태극기는 남북이 분단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와 가시밭길을 함께한 ‘겨레의 조강지처’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혈서를 받은 것도 태극기였고, 유관순 누나가 아우내장터에서 손에 들었던 것도 태극기였다. 지난주에는 프랑스의 한류팬들이 우리보다 더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carlos@seoul.co.kr
  • [시론] ‘문화재 환수’가 겨레의 단합 계기되길/혜문 스님·조선왕실의궤환수委 사무처장

    [시론] ‘문화재 환수’가 겨레의 단합 계기되길/혜문 스님·조선왕실의궤환수委 사무처장

    지난 11일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국민환영 행사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하루 앞선 10일에는 한·일도서협정이 발효돼,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1205책의 도서도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약탈 문화재의 연이은 귀환으로 ‘문화재 환수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정부도 ‘민·관 협력 문화재 환수 전담 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미 문화재청은 6명으로 구성된 ‘국외문화재팀’을 발족, 해외 문화재 반환을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환수’ 문제는 아직까지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어떤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환수해야 하는지 문제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가 수십만점이라지만 모두 환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환수 대상 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불법적 유통경로’를 추적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불법적 유통경로를 규명한 대상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직지심경과 같은 문화재는 안타깝게도 ‘불법거래된 문화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문화재 환수 성적도 저조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돌려받은 문화재를 제외하고 우리가 돌려받은 국보급 문화재는 2006년 일본 도쿄대학으로부터 환수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이 유일하다. 그나마 귀국 직후 고궁박물관에서 두 달 동안 전시된 뒤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환수된 문화재의 관리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돌아오자 서울대 규장각은 겉 표지에 ‘규장각 장서인’을 날인, 국보 훼손이 아니냐는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6·25 당시 미군이 약탈했던 ‘명성황후 표범 카펫’은 1951년 미국 정부가 우리정부에 반환했으나 지난해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관련 사실을 조사하고, ‘국민감사’를 청구하자 부랴부랴 소재 파악에 나섰고 그제서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60년 만에 발견되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문화재 환수에 대한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 전문가라는 학자들과 정부 관료,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분들의 발표와 주장을 들어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문화재 환수 운동은 상대가 있는 운동이고, 그 상대란 것이 대개 선진국이기 때문에 신중한 대응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응책의 골자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신중하고 예의바른 노력으로 인해 환수된 문화재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검증된 적 없는 이론에 불과하거나 외국의 사례를 분석하는 초보적 수준에 불과한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이런 미숙한 상황에도 불과하고 침략으로 약탈당했던 문화재들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놀라운 변화이다. 이것은 우리가 먹고 살기 급급했던 시절을 넘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이 ‘한마음’으로 단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문화재 환수’ 운동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외세에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문제에는 남북한과 해외동포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 되돌아올 예정인 일본 궁내청 조선왕실의궤에 관한 소식을 일본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북한에서도 의궤 반환문제를 중요한 소식으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 빼앗긴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가 분열된 우리 민족의 제자리 찾기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發願)한다.
  •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영화 ‘풍산개’(23일 개봉)는 기존의 김 감독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상당히 대중성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는 김기덕 사단의 대표주자인 전재홍(34) 감독이 있다. 그를 지난 1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시사회 때 ‘풍산개’는 토털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였나. -첫 장편 영화인 ‘아름답다’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했지만, 그 덕(?)에 국내에서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를 고집하는 비흥행 감독으로 낙인 찍혀 버렸다.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내가 보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김기덕 사단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연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기존 김기덕 필름의 영화는 롱테이크(한번에 길게 찍기)에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드는 작품이 많았다면, ‘풍산개’는 빠른 스피드를 강조했다. 액션과 코미디는 물론 여성 관객을 겨냥한 멜로까지 넣었다. 제 나이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김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셨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간 뒤 오스트리아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전공하는 등 주로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분단 소재 영화를 다루기가 어렵지 않았나. -해외에 살면 남북 상황을 더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라 학교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을 느꼈다. 저를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는 6·25전쟁이 흑백 영화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분단 영화는 이념적인 접근도 많았다. 왜 우리는 3시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편지나 소포도 주고 받지 못하는지 30대의 시각에서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남북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풍산은 상당히 거칠면서 말 한마디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풍산을 복수의 화신이 아닌, 남북 통일에 대한 이상을 표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표준말을 쓰면 한국사람 같고, 북한 사투리를 쓰면 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일부러 대사를 넣지 않았다. 풍산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풍산개는 주인에게는 온순하지만, 호랑이도 잡는 맹수다. 외적으로는 강인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따뜻한, 그런 상반된 매력을 가진 인물로 풍산을 표현하고 싶었다. →TV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인기를 누리는 윤계상의 주연 캐스팅이 잘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윤계상씨 캐스팅을 반대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해외에 있어서 그룹 god의 윤계상보다는 영화 ‘집행자’의 연기자로 그를 기억했다. 드라마 속의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영화에서 180도 변신시키는 것이 재밌었다. 한겨울에 몇 번씩 차가운 물에 들어가준 윤계상씨에게 고맙다. 잘해서 여러번 시켰더니 나중엔 “감독님이 악마 같다.”며 웃더라. 윤계상씨도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노개런티(무보수)로 참여한 것도 화제다. 김기덕 감독도 “나를 일으켜준 영화”라고 했는데. -돈을 생각한다면 누가 이 영화를 하겠나. 오직 열정으로 뭉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김 감독님이 나에게 시나리오를 줬을 때, 우리에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폐허 같았다. 총 2억원의 적은 제작비이지만, 영상과 음악 디테일 등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 →김 감독이 신작 ‘아리랑’에서 한국 영화계를 신랄히 비판했는데. -곁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저로서는 김 감독님이 제작자뿐만 아니라 감독으로 다시 눈을 뜬 것에 대해 감사한다. ‘돌파구’(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들의 모임) 회원인 장훈 감독은 친형 같고 돈독한 사이다. 시사회 때 훈이 형을 초대했지만, ‘고지전’(장훈 감독의 차기작) 후반작업 때문에 오지 못했다. 김 감독님과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다. 촉망받는 성악도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계기가 뭔가. -어렸을 때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성악을 했다. 대학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와 닿지 않았다. 스물 아홉 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봤다. 다행히 어머니가 대찬성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김 감독 제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가까이에서 본 김 감독은. -김 감독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음악과 비주얼 등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났다. ‘빈집’은 아이디어도 색다르다. 내게 김 감독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다. 영화에 대해 아무 배경이 없는 나를 믿어주고 내 재능을 유일하게 인정해 주신 분이다. 사람들은 감독님을 상당히 거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상하고 제자에 대한 애착이 많은 분이다. 언제나 “너 자신을 믿으라.”고 다독이고 격려해 주신다. 인터뷰 때마다 전 감독은 “겁이 없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풍산개’에서 자신의 실력을 2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그는 앞으로 빠르고 젊은 감각의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상업적인 흥행도 욕심이 난다는 전 감독. 그는 김기덕 사단이 낳은 ‘겁 없는 신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책꽂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청춘이다(정상근 지음, 시대의창 펴냄) 요즘 20대는 흔히 ‘88만원 세대’라는, 무한 경쟁으로 내몰려 무기력해진 세대로 표현된다. 박제화한 청춘에 대한 예찬도 아니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처지에 대한 분노도 아닌, 펄펄 살아 뛰는 청춘의 있는 그대로의 삶과 현실, 희망 등을 그들의 언어로 기록했다. 글을 쓰며 막 20대를 빠져나왔다는 저자는 묻는다. “대한민국 청춘 여러분, 어떻게 지내시나요?” 1만 3800원. ●한반도 희망이야기(하정열 지음, 오래 펴냄) 때로는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때로는 총부리를 맞댄 야전에 머물면서 분단의 현실을 더욱 절박하게 체감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 육군 사단장 등을 지낸 하정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안보전략소장 얘기다. 그가 국가의 역할,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열린 민족주의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통일된 나라의 로드맵을 제시한다. 1만원. ●숲 어딘가 두 평 마음의 집이 있다(김종보 지음, 황금시간 펴냄) 3년 동안 주말마다 숲을 찾아 아내, 아들과 함께한 캠핑의 잔잔하고도 따뜻한 기록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생명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이어졌다면, 시인인 저자는 가족과 함께 자연을 벗 삼은 삶을 시인의 언어와 감성으로 펼쳐낸다. 자연, 가족, 교육, 사랑 등 훈훈한 문장과 상쾌한 사진이 어우러져 있다. 1만 2000원. ●MBC논평, 최용익입니다(최용익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MBC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의 방송 논평집. 2005~2010년 5년의 논평을 모아 놓으니 자연스레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물이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법, YTN 사태 등 언론 관련, 이랜드·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수구 기득권 세력 등에 관한 논평은 치열한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고자 한 모습을 확인시켜 준다. 1만 5000원.
  • 외국인 35명 DMZ 탐방

    강남구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11일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35명과 함께 ‘DMZ(비무장지대) 탐방’을 떠난다고 9일 밝혔다. 탐방에 나서는 외국인은 구 외국인전용 지원기관인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 이용자들로 임진각과 통일대교, DMZ 전시관, 제3땅굴, 도라전망대와 도라산역 등 한국의 안보 유적지를 두루 답사할 예정이다. 구는 7400여명의 외국인을 위해 빌리지센터를 설치, 운영해 국내 정착을 돕고 각종 민원사항을 해결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도 한 차례 더 진행할 계획이다.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 센터장인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30·여·이탈리아)는 “DMZ 탐방은 한국전쟁의 흔적을 직접 보고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아픔을 느껴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되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김기덕 “한국 영화계는 도박판”

    김기덕 “한국 영화계는 도박판”

    3년 만의 신작 ‘아리랑’으로 영화계에 직격탄을 날렸던 김기덕(51) 감독이 “한국 영화계는 도박판”이라며 다시 한번 비판의 화살을 겨눴다. ‘아리랑’으로 제64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뒤 해외에 머물고 있는 김 감독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 ‘풍산개’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를 통해 8일 배포한 서면 인터뷰 자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과연 더 이상 새로운 영화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15년 동안 19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과 제작을 맡아 왔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의 모순을 무수히 봤고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다. 영화판도 사람 사는 세상인데 나는 좀 더 순수하게 본 것 같다.”고 자조했다. 김 감독은 “‘풍산개’가 자본과 시스템을 대체할 첫 영화가 될 것”이라면서 “영화인의 열정과 영화의 주제, 그리고 진정한 영화의 가치를 통해 벽을 넘어서겠다.”고 장담했다. ‘풍산개’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주인공(윤계상)이 북한에서 망명한 고위층 간부의 여자(김규리)를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오는 23일 개봉한다. 김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전재홍 감독의 장편데뷔작으로 윤계상, 김규리 등 배우와 스태프가 보수 없이 참여했다. 김 감독은 “남북을 오가는 캐릭터는 60년 분단의 한 맺힌 유령 같은 존재이자 상징”이라면서 “통일을 열망하는 많은 남북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약을 충분히 터트릴 수 없었고 흥행 배우도 없지만, 영화의 강한 주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담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씨줄날줄] 유엔사무총장/주병철 논설위원

    1919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창설될 때 사무국 총괄자 호칭을 ‘총서기 혹은 서기장’ ‘의장’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난상토론 끝에 유연하고 모호한 ‘사무총장’(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으로 했다. 1945년 유엔이 출범하면서 산파역을 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계의 중재자’란 표현을 원했지만 종교계에서 사용하고 있어 못 바꿨다. ‘사무총장’이 국제기구 수장의 직함으로는 너무 겸손한 호칭이라는 게 루스벨트의 생각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모든 기관과 협의하며 권고할 수 있고 국제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중재 업무를 맡는다. 예우는 세계 최고의 외교관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원수 내지 행정수반에 준한다. 사무국 직원(1만 6000여명)과 산하기관까지 포함해 4만여명의 인사권을 갖는다. 연봉은 22만 7254달러로 우리나라 대통령(1억 7909만 4000원)보다 많고 미국 대통령(40만 달러)보다 적다.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은 출신 지역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제2대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셸드는 ‘빈 공간이 있으면 채워라.’는 논리를 폈다. 유엔 사무총장은 평화와 안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유엔의 법적 기구라는 것이다. 미얀마 출신의 제3대 사무총장인 우 탄트는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지원 방안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평직원에서 사무총장에 오른 제7대 코피 아난은 국제사회가 방관하지 말고 ‘인도주의적 간섭’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이 갖는 별명도 다채롭다. ‘평형추’, ‘블랙박스’ 외에 유엔 사무총장의 영문 이니셜을 본뜬 희생양(Scape-Goat)도 있다. 올 10월로 임기 5년을 채우는 제8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제 ‘더 신뢰받는 유엔으로 거듭나겠다.’며 연임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2007년 취임 초반에는 설득과 중재를 앞세운 그의 리더십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발로 뛰는 그의 리더십을 회원국들이 믿고 따르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려운 질문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간다고 기자들이 붙여줬다고 한다. 유엔은 지금 다양성을 존중하고 융합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럴 때 반 사무총장의 조정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출신으로 북한 문제에 관해 그만큼 더 좋은 관점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반 사무총장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정부·정치권 “국제사회·한반도 평화 크게 기여” 환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일(현지시간) 연임 도전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정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연임 희망 의사 표명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며 “정부는 반 총장이 2007년 취임 이래 세계 평화와 인류 번영을 위해 크게 기여해 왔음을 높이 평가하며, 국제사회를 위해 계속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반 총장의 행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큰 관심사였다. 반 총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2~3위를 나타냈고, 여야 정치권 모두에서 ‘러브콜’ 대상 1순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반 총장은 대선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며 정치권과 거리를 뒀고 이번에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환영의 뜻을 전했다. 안 대변인은 “반 총장이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직을 잘 수행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반 총장이 연임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적극 힘써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간사인 유기준 의원은 “한국에서 배출한 유엔 총장의 연임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국가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 “유일하게 남북이 분단돼 있는 상황에서 반 총장의 연임은 한반도 평화에 더욱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소설 속에 절절히 녹아…

    과거의 아픈 기억은 그저 가슴에 묻어야 할까, 아니면 꺼내어 달래고 치유해야 할까.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은 대개 땅속에 묻어 잊어야 할 생채기로 기억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후유증이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는다 해서 잊히지 않을 아픔이라면 차라리 눈 부릅뜨고 바라보면서 청산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전상국은 흔히 전쟁과 분단에 시선을 깊숙이 두는 작가로 각인된다. 이는 유년 시절 겪었던 전쟁의 아픔에 대한 천착이다. 그것은 잊어선 안 될 상처를 덧나게 하는 고집이 아니라 번번이 치유와 소통의 애정으로 귀결된다. ‘온 생애의 한순간’ 이후 6년 만에 낸 ‘남이섬’(민음사 펴냄)은 그 치유와 소통의 절절함이 한결 더해진 소설집이다. 중편 두 편과 단편 세 편의 모음집이다. 표제작 ‘남이섬’과 ‘지뢰밭’이 전쟁의 편린과 기억을 되살려낸 작품이라면 ‘꾀꼬리 편지’ ‘춘심이 발동하야’ ‘드라마 게임’은 노년, 중년의 연애 감정과 마음의 깊이를 감칠맛 나게 풀어낸 소설이다. 그중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들여다본 작품 세 편을 놓고 전상국은 이렇게 말한다. “뒤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도 큰 얻음이 아닌가 싶다.” ‘남이섬’은 남이섬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중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을 통해 죽임과 죽음의 상처를 대비한 작품이며, ‘지뢰밭’은 전쟁에서 상처받은 채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한과 윤리 문제를 짚은 것이다. ‘드라마 게임’은 미군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평생 땅굴을 파고 사는 두더지 인생과 양갈보란 천대를 감내하며 사는 인물을 다룬다. 저자는 상처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실과의 소통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특유의 서사적 필치로 풀어낸다.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 마음이 죽는 일이라 했던가.’ ‘벌써 오래전에 내 마음속에서 제거했어야 할 지뢰였다. 지뢰는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살아 있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고통스러운 역사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상처를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과 소통의 싸움을 겨눈 대목들이 도드라진다. “이 나이쯤 된 사람의 눈에 비친 인간사의 시시풍덩한 이야기”로 소개한 단편 ‘꾀꼬리 편지’ ‘춘심이 발동하야’ ‘드라마 게임’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 곁들인 소품격 작품들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맺는 인연의 끈과 허물 없는 소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나와 통일] (17) 렌젤 미클로시 주한 헝가리대사

    [나와 통일] (17) 렌젤 미클로시 주한 헝가리대사

    1980년대 말 주북한 헝가리 대사관에서 4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22년 후인 2009년 북한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매우 우울했다. 20여년 전과 비교해 북한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양의 건물들은 페인트칠이 새로 됐거나 리노베이션이 조금 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도시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와 거의 비슷했다. 북한 대사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은 북한에 꼭 가려고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주 방문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대화를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나는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같은 나라였고, 같은 언어를 쓰는 나라다. 국제사회에서 이제 분단된 나라는 거의 없다. 헝가리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곳곳에 흩어져 살았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나서 국경이 사라지면서 헝가리도 일종의 통일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은 반드시 통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뤄지느냐다. 통일은 늦추면 늦출수록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감성이 사라지면 통일을 힘들게 한다. 남한 정부는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여건인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 효율적인지는 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산권 국가로서 헝가리와 북한은 비슷한 면도 있다. 그러나 헝가리와 북한은 역사, 문화, 언어, 지리적 환경이 모두 다 다르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헝가리의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헝가리는 일당 정치체제로 중앙정부의 권한이 강했고, 통제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헝가리에서도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56년 헝가리는 국내외적으로 시스템 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내적으로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준비가 안 돼 있었고, 국외적으로는 소련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헝가리가 혁명을 일으켰을 때 외부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동유럽에서 변화가 생겼을 때 그때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소련의 힘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처음으로 헝가리에서 일어났고, 그 다음 폴란드 등으로 번져나간 것이다. 북한 역시 아직은 국내적으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외적인 상황은 더 복잡하다. 지정학적 상황, 두 최대 라이벌인 ‘슈퍼 파워(미국·중국)’가 경쟁하고 있다. 대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북한은 국내외적 환경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나는 북한의 주민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북한이 어엿한 국제사회의 멤버가 됐으면 좋겠다. 국제법을 준수하고, 핵이 없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북한 정부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조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헝가리 정부와 나는 남북통일을 지지하며 분단된 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나는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도 존중하고 이명박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도 존중하고 지지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국내 정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할 수 있는 말은 한반도 상황이 진정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도발과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 긴장은 물리적 충돌을 유발하고,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긴장의 완화와 협력, 대화, 평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면 많은 경제전문가나 기업가들이 북한의 초청을 받아 경제특구 등을 방문할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경제 개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협력과 대화가 바로 정보다. 이런 것들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헝가리는 아주 작은 나라이고 내가 북한을 방문한다고 해서 어떤 변화를 주기도 어렵다. 그러나 작은 생각이나 정보들이 결국은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될 것이고,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북한 사회의 변화를 보고 싶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독자의 소리] 남한말과 색다른 북한말/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곽철용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탈북자들을 경찰서 신변보호 담당관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날, 그들에게서 낯선 남한사회에 대한 설렘을 읽을 수 있다. 수시로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듣는 북한말에 애착을 갖게 되는데 마치 산처녀를 만난 듯 신선한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분단의 세월 동안 남한말과 크게 달라진 북한말에서 민족의 아픔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바이(아버지), 오마니(어머니), 하내비(할아버지), 거리나무(가로수), 닭알과자(계란과자), 곽밥(도시락), 해방처녀(미혼모), 다리매(각선미), 오목샘(보조개), 볼웃음(미소) 등 탈북자들이 쓰는 북한말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들리는지,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게 즐겁다. 비무장지대가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덕에 온갖 동·식물이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듯, 북한말은 외래어에 물들어 버린 남한말과 비교해 볼 때 보존해야 할 순수한 우리말의 보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곽철용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