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분단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사치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문장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80
  • [사설] 62년만의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환영한다

    북녘 땅에 묻혀 있던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어제 봉환됐다. 지난 2005년 미국의 유해발굴팀에 의해 수습된 이후 유전자 감식에 극적으로 성공하면서 이뤄진 한국전 전사자의 첫 귀환이다. 이들이 62년 만에 돌아와 고국의 품에서 영면하게 된 것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지만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즉 카투사가 아니었다면 봉환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단의 현실이 더없이 안타깝다. 역사가 일천한 다민족국가인 미국은 참전용사를 극진히 예우하는 전통이 있다. 과거나 현재 적성국인 베트남과 북한에서도 상당한 반대급부를 주면서까지 유해 발굴 작업을 해 왔다. 특히 1996년부터 2005년 북핵 위기로 잠정 중단할 때까지 226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했으며, 북한은 그 대가로 2500만 달러를 챙겼다. 어찌 보면 이번에 국군 전사자 유해가 돌아오게 된 것도 미국의 강한 보훈 의지와 한 푼의 외화도 아쉬운 북한의 이해 관계가 요행히 맞아떨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씁쓸한 노릇이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으면 다행일 게다. 무엇보다 전세계 격전지 어디에서나 펄럭이는 미국의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 깃발의 구호를 상기해 보라. 즉,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라는 슬로건이다. 국가 유공자들의 뼛조각 하나까지 찾아내 예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실려 있지 않은가. 이런 ‘국가 신념’이야말로 미국이 강대국의 명맥을 이어가는 비결일 듯싶다. 우리도 조국을 위해 헌신한 희생자들이나 유공자들을 각별히 대접해야 할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어제 서울공항에서 열린 고 김용수·이갑수 일병 등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는 평가할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는 점에서다. 과거 군통수권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1, 2차 연평해전 희생장병 장례식조차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어느 국민인들 유사시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겠는가. 이 대통령은 북한 내 6·25 전사자 발굴사업을 “통일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전에라도 경제적 반대급부를 주는 미국식 유해 발굴 방식으로 북측과 협상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제20회 공초문학상] “정계에 발 담근 채 상 받으려니 황송하다”

    [제20회 공초문학상] “정계에 발 담근 채 상 받으려니 황송하다”

    “공초처럼 구도자적인 자세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초월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상을 받으려니까 죄송스럽고 황송하다.” 제20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시인 도종환(58)은 24일 거듭 “기쁘고 송구스럽다.”는 말을 되뇌었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인 그는 10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수록된 ‘나무에 기대어’로 영광의 수상자가 됐다. 등단 20년 이상 된 시인에게 주는 공초문학상은 자본주의의 잣대로 재단하면 소박한 상이다. 그러나 이근배 공초문학상 심사위원이 “작품의 수준뿐만 아니라 문학상 중 유일하게 작가의 인품을 평가한다.”고 했을 만큼 권위 있는 상이다. ●신동엽·정지용·윤동주·백석문학상 등 받아 ‘접시꽃 당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도종환은 어지간한 문학상은 거의 받았다. 1990년 신동엽창작상, 2009년 정지용문학상, 2010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백석문학상 등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 시대 문학을 맨 앞에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근대문학의 문을 연 문학적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도종환에게 시는 삶의 길이고 나침반이고 희망이고 살아가는 이유다. 살아가면서 가장 고마운 일은 시를 만났다는 것이고 시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있어서 20대 논산훈련소도 견뎠고 교육 민주화 운동으로 교도소에 갔던 30대도 버틸 수 있었다. 40대에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려 산속에서 10년간 두문불출하고 요양할 때도 시 덕분에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기간을 헤쳐 나갈 때마다 용기를 준 것은 시였다. 애초 미술가가 꿈이었는데 미대에 갈 수 없게 된 좌절을 시작(詩作)으로 풀어냈단다. 이제 그에게 미술은 ‘10대 때 좋아했던 사람과의 아름답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랑’이다. 시와 문학은 도종환 내면의 광기를 분출시키거나 순화시키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왔다. 청년기의 광기가 시를 통해 분출됐고 아내와의 사별을 거치면서 순화됐고 해직 교사가 되면서 다시 분출됐지만 산속에서 요양하던 10년 동안 다시 광기가 가라앉으면서 문학이 익어갔다는 것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심사위원이 됐을 때도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못 해 봤다. 흔히 ‘자기가 심사하면서 자기를 끼워 넣느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는 따로 꾸려져 있었으니 파렴치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 공천심사가 끝나갈 무렵 19대 국회에 문화 예술계를 대표할 사람이 없어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시인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최소한 중상이거나 사망’이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상의했다. 황지우 시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직에서 쫓겨난 일,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문화예술위원회가 문인들에게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한 일 등 지난 5년간 문화 예술인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는 인식이 그가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이었다. 국회에 들어가 문화계의 파행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는 등 창작 예술인들의 생계가 어렵고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도 없애고 싶었다. 정치에 참여했던 시인은 유정회 국회의원을 한 김춘수와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에 이어 세 번째다. 도종환은 “험난한 판에 들어가도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 사유의 품격과 언어의 품격, 글의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인은 언어에 봉사하는 자’라고 했다. 언어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언어의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시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시인으로서 언어에 봉사하듯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 퇴행했던 민주주의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임기가 끝나면 시인으로 돌아오겠다. 공초처럼 인생의 후반기를 초연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수상일과 상임위 구성일 겹쳐… 그의 선택은? 이근배 공초문학상 심사위원은 “도종환 시인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행여 창작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수상을 걱정했지만 임헌영 선생 등이 도종환 시인의 성품으로 보건대 그럴 리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런 평가처럼 도종환은 “올여름에 산문집과 월북 시인 오장환의 시 해설서 등 2권을 내놓는다.”면서 “국회의원이 돼도 시인으로서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인과 국회의원을 병행하려는 그에게 첫 시련은 6월 7일 공초문학상 수상식이다. 국회가 첫 상임위 구성을 하는 날로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데 공초문학상은 수상식, 성묘 등 종일 행사가 이어져 국회에 갈 수 없다. 6월 7일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고두미 마을에서’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냄 ▲주요 수상:신동엽창작상(1990), 정지용문학상(2009), 윤동주상 (2010), 백석문학상(2011) 등 ▲주요 시집:‘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 ▲수상작:‘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 ‘나무에 기대어’
  • [기고] 韓-스웨덴, 지난 50년과 다가올 50년/엄석정 주 스웨덴대사

    [기고] 韓-스웨덴, 지난 50년과 다가올 50년/엄석정 주 스웨덴대사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이달 말 한국을 처음 국빈 방문한다. 구스타프 국왕은 그간 세계 스카우트 연맹 관련 행사와 서울 올림픽 참석 등을 위해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을 비공식 방문하면서 양국 간 체육, 과학분야 교류 증진에 이바지해 왔다. 스웨덴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유럽연합(EU) 내 공동 정책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기후 문제, 개발협력, 자원·에너지 문제 등 세계의 주요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진국이다.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재벌이 존경받는 나라이다. 스웨덴 최대 재벌 가문, 발렌베리 그룹은 지난 150년간 5대에 걸쳐 세습 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사의 주축이 되어 왔다. 세계적인 기업 에릭손(Ericsson), 사브(Saab),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아틀라스 콥코(Atlas Copco) 등이 국내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40%,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전 국민의 4.5%를 고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높은 세금과 낮은 사회 비용을 들 수 있다. 준법정신과 윤리정신이 스웨덴 사회 전반에 탄탄히 자리 잡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높은 누진세, 기업의 사회보장비용세, 환경세와 25%의 부가가치세 등 각종 직·간접세는 정부의 과세와 예산 운영에 대한 국민의 높은 신뢰가 없이는 운영되기 어려운 제도이다.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 비용을 낮추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북돋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벨상은 복지모델과 더불어 스웨덴을 상징하는데, 세계의 최첨단 연구 실적이 앞다투어 스웨덴으로 모이게 하는 보물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과 스웨덴은 1990년대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과 개혁을 단행하였다. 두 나라는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고 건실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정치, 경제, 과학기술, 교육,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과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 등 대규모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주요 국가로 인정받고 있고, 스웨덴과도 안보·기후·에너지·개발협력 등 주요 국제현안에 대해 공동 대응하는 글로벌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있다. 스웨덴 현지 사회에 한국전과 입양, 남북 분단 등으로 각인되어 있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최근 10년간 스마트폰, 자동차, 정보기술(IT), 선박, 가전 등 첨단제품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 등 문화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첨단 기술 국가,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이미지가 전환되고 있다. 특히, 주요 영화제 출품작에서 단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리 영화가 현지 국제 영화제에 매년 4~5편씩 소개되고 최근에는 K팝을 부르는 동호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스웨덴의 복지 모델 등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또한 세계화 시대 경쟁력을 갖추고자 고등교육,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과 협력 분야를 찾고 있다. 구스타프 16세 국왕 내외의 국빈 방한이 스웨덴과 우리나라와의 호혜적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주한 외교사절·7대 종단 지도자 DMZ 걸으며 분단현실 체험

    주한 외교사절과 7대 종단 지도자, 국내 문화 예술인과 언론인 등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 등을 걸으며 분단 현실과 한국의 산림 및 정신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가 마련된다. 산림청은 19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주한 25개국 대사·외교관 부부 및 가족과 서울국제여성협회 회원 등 170여명을 초청해 ‘DMZ 산림문화행사’를 갖는다. 이번 행사는 7대 종단 지도자 모임인 종교지도자협의회와 한국관광공사 등이 후원한다. 내·외국인 참가자들에게 화합과 상생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강원도 양구 펀치볼 둘레길과 을지전망대 등을 둘러보고 백담사 템플스테이에도 참여한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코리아’ 순복 역 한예리 “노출 배역 들어온다면…”(인터뷰)

    ‘코리아’ 순복 역 한예리 “노출 배역 들어온다면…”(인터뷰)

    분단의 현실을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로 그려낸 영화 ‘코리아’는 하지원·배두나라는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들이 전면에 나선 작품이다. 관객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을 자랑하는 그녀들에 기대를 걸고 극장에 들어서지만, 정작 영화가 끝난 뒤에는 유독 뇌리에 남겨진 낯선 얼굴을 떠올린다. 일명 ‘끝판왕’이란 수식어가 붙은 배우 한예리(29)다. 극 중 북한 국가대표 리분희 선수 역을 맡은 배두나와 함께 순박한 함경도 소녀 류순복 선수를 연기한 한예리는 전형적인 미인형의 얼굴도, 이름값 높은 스타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를 보면 오롯이 느껴지는 진심이 있다. 그 진심어린 눈빛과 몸짓이 저도 모르게 뇌리에 남게 하는, ‘끝판왕’ 한예리는 그런 배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 지난 14일, 작은 카페에 그녀와 마주앉았다. 사실 숱한 독립영화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해 왔지만, 상업영화계에서는 아직 신인인 한예리는 소속사로부터 매뉴얼대로 교육받은 듯한 여타 신인배우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자유분방함 속에 깊은 내면을 감춘, 그러면서 신선하기까지 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이 배우, 보통 내공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자: ‘겸업’이 한국 전통무용수라고 하던데, 어떻게 영화계에 오게 됐어요? -한예리: 대학교 2학년 때, 영화를 전공하던 학교 친구가 안무가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준 적이 있어요. 인연이 돼서 연기를 조금씩 하다가 2007년에 오디션 보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들어왔죠. 벌써 5년 차네요.(웃음) 기자: 독립영화 쪽에 있다가 엄청난 규모의 상업영화로 넘어오니, 다른 점이 있던가요? -한예리: 일단 스텝이나 연기자가 정말 많아서 놀랐어요. 또 텔레비전에서 보던 선배들과 연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다르고요. 최근엔 예쁜 옷 입고 무대인사하며 영화에 대해, 그리고 류순복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게 매우 이색적이예요. 기자: ‘코리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예리: 다른 사람들은 파트너가 있지만(하지원-배두나, 이종석-최윤영 등), 전 혼자 가야만 하는 캐릭터였어요. 게다가 탁구로 인한 성장통을 겪고 우승에 큰 힘을 보태는 역할이었죠. 그런 나만의 드라마가 있다는게 너무 좋았어요. 기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끝판왕’ 한예리에 분명 관심을 갖게 되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려졌다는 사실을 느끼나요? -한예리: 사실 아직 아무도 못 알아보세요(웃음). 전 여전히 지하철이나 버스를 자주 애용하거든요. 스타가 됐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기자: 여전히 무용수로서 무대에 선다고 들었어요. 인간 김예리(그녀의 본명), 춤추는 김예리, 연기하는 한예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예리: 장녀다 보니 집에서는 의젓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무용을 할 때에는 무대 위에서 완벽해지기 위해 냉철하게 노력하는 편이고요. 연기를 할 때에도 무용 할 때와 비슷하지만, 현장에서는 제가 막내다 보니 약간 어리광이 생기기도 해요.(웃음). 기자: 하지원씨나 배두나씨 등 가까운 선배들은 과감한 노출이나 섹시함을 강조한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본인에게 이런 작품들이 들어온다면? -한예리: 훌륭한 감독님과 시나리오, 스텝과 배우가 함께 한다면 아무 상관없어요. 좋은 작품에서 필요한 장면이라면 배우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엔 윤여정 선배님이 영화 ‘돈의 맛’에서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로서의 용기와 열정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정말 최고,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기자: 노출 연기 등 다양한 면에 있어서 연예계, 영화계는 여배우에게 힘든 곳이잖아요. 본인은 어때요? -한예리: 공개 연애는 힘들 것 같아요(웃음). 선배들도 연애하려면 구석에서 조용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배우라서 힘든 점도 있겠지만,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기자: 요새 시나리오 막 쏟아질 것 같은데. 코리아 이후에 어떤 작품이 기다리고 있나요? -한예리: ‘환상속에 그대’라는 독립 장편영화 촬영을 마쳤어요. 올해 부산영화제에 출품예정이라 하반기에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자: 함께 작품 하고 싶은 남자배우 있어요? -한예리: (망설임 없이) 양조위! 국내에서는 황정민 선배님이나 최민식 선배님, 송강호 선배님, 김윤식 선배님 등과 촬영해보고 싶어요. (기자가 워너비 상대배우들의 평균연령이 너무 높은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하정우씨나 박해일씨, 이선균씨 스타일도 너무 좋아요. 그런데 하정우씨 빼고는 다 유부남 이시네요. 하하. 기자: 마지막으로 한예리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예리: 저보다 12살 많은 선배님께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 나이가 되면 사는게 나아지냐고. 그랬더니 선배님은 “더 힘들지만 어느 길로 가야되는지는 분명해진다.”하시더라구요. 열심히만 하면 시간이 흘러서 그 길을 잘 갈 수 있을 거래요. ‘좋은 배우’라는 타이틀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줘야지만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좋은 배우로 불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는 한예리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 글·사진=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중 관계 성숙했지만 모호성·갈등도 증폭”

    “한·중 관계 성숙했지만 모호성·갈등도 증폭”

    “수교 20년이 된 한·중 관계는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 문제 등 이견을 좁혀 가야 합니다.”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한·중 관계의 내일을 묻는다’ 세미나에 참석한 양국 전문가들이 전망한 한·중 관계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지난 20년보다 앞으로 20년이 더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한·중 관계에 발전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입장을 같이했다. 산업자원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지난 20년간 한·중 관계는 꾸준히 성숙돼 왔으나 갈등과 모호성도 키웠다.”며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하면 더 이상의 관계 진전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다음 20년간 한·중 관계는 서로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는 전환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 양립, 중국의 소프트파워 국가화 등이 과제”라고 강조했다. 추수룽 중국 칭화대 교수는 “중국과 한국이 우호적이고 전략적, 정치적, 안보적인 파트너가 될 수 없었고 현재도 되지 못하는 제약 요인은 북한 및 미국에 대한 관계와 태도 때문”이라며 “또 민족주의와 부정적 여론, 역사, 영토, 문화 등 현안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해 양측의 줄기찬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 교수는 “한국은 중국이 북한을 감싸면서 한반도 분단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중국도 남한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을 믿는다.”며 “향후 20년 내 북한의 내부적 변화를 통해 통일이 될 수도 있어 한·중 관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해 중국도 이미 (도발하지 말라는) 분명한 입장을 전했다.”며 “중국도 (북한의 도발 이후) 북한에 대한 태도를 언제 바꿀 것이냐를 가늠하고 있으며, 언제 바꿀지 결정되면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현재 한·중의 정치적 신뢰도는 최저점으로 평가되며, 중국의 대북 미사일 기술·물자 제공도 심각한 문제”라며 “중국의 국내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2015년 이후 한·중 관계는 폭발적인 갈등 상황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이어도 관할권 문제도 2015년 전까지 적극적으로 타결해야 하며,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펑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북한의 급변사태 시 한·중이 함께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모델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시진핑 시대에는 후진타오 시대와 달리 중국의 대북정책이 현명하게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배두나 “몰랑몰랑한 나, 갑옷으로 감춰 삭이고 참는 절제연기 딱이죠”

    배두나 “몰랑몰랑한 나, 갑옷으로 감춰 삭이고 참는 절제연기 딱이죠”

    ‘강철 여인’ 배두나(33)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영화 ‘코리아’(3일 개봉)의 언론 시사회에서 눈물을 쏟은 그녀는 자신을 가르쳐 준 탁구 선수들과 함께한 특별 시사회에서도 눈물을 비쳤다. 촬영 6개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녀에게 영화 ‘코리아’는 각별하게 새겨져 있는 듯하다. 봄비가 내리는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눈물을 자주 보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남 앞에서 우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탁구 선수들이 많이 오셔서 그런지 괜스레 눈물이 났다. 시사회 때도 중반까지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다가 후반 20분에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6개월 전에 (영화에 대한 감정을) 다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너무 감정을 참았던 것 같다. →이야기한 대로 무뚝뚝한 북한의 탁구 영웅 리분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무표정 연기를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평소 일상에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영화 ‘플란더스의 개’의 현남을 비롯해 했던 역할의 대부분이 제가 동경하는 인물들이다. 이번에 분희도 마찬가지다. 스물세 살의 국가 탁구 영웅으로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외모는 뽀얗고 타고난 귀여움이 좋았다. →리분희는 실존 인물이자 현정화의 라이벌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인물을 어떻게 분석하고 연기했나. -실화 영화도, 실존 인물도 처음이었다. 단 한 장의 사진과 경기 실황을 가지고 리분희를 분석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리분희가 남한의 현정화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중계 카메라와 북한 선수들이 있어서 티를 내지 못했을 뿐,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따뜻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에게 리분희에 대한 힌트를 좀 얻었나. -현 전무님은 총감독이라고 불릴 만큼 영화의 시나리오부터 배우들 탁구 연습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리분희가 백핸드와 스카이 서브를 정말 잘했고 도도한 선수라고 말해 줬다. 스코어를 내고 기분이 좋아도 특별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고 기합도 넣지 않을 정도로 모든 상황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했다. ‘고요하고, 차분하게’라는 말이 굉장한 힌트가 됐다. →겉으로는 절제됐지만, 안으로 꽉 찬 연기가 돋보였다. -영화 ‘공기인형’도 그렇고 평소 감정을 표출한다기보다는 삭이고 참는 절제의 연기를 좋아한다. 마음이 텅 빈 것이 아니라 꽉 채우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그런 연기를 추구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리분희 역이 내 연기 스타일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실제 성격과 연기 패턴이 관련 있나. -나 자신이 너무 몰랑몰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딱딱한 갑옷으로 감추는 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차갑게 대하고 무뚝뚝하다. 제 성격은 소심하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강한 여배우의 모습만 보여 주고 싶다. →하지만 일본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영화 ‘공기인형’에서는 파격적인 전라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연기할 때는 내가 생각해도 용감하다. 집에 와서 힘들어 머리를 싸매더라도 연기할 때는 과감하다. ‘공기인형’을 찍을 때도 촬영 현장에서 내가 벗었다고 해서 감독과 스태프들이 불편하고 쩔쩔매는 상황이 싫었다. 내가 먼저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최선을 다하니까 분위기도 풀어지고 촬영도 빨리 마칠 수 있었다. →다시 ‘코리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영화는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 탁구 단일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1년 전 역사적인 경기 장면을 재현한 소감이 어땠나. -영광이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분단 상황에서 잠시나마 한 팀을 만들었다가 다시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현 감독이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고, 내가 그것을 연기하는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이 영광이었다. 하지만 ‘코리아’ 촬영을 마친 뒤 다른 영화를 찍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바로 떠났는데, 허물어진 베를린 장벽을 봤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 현장에서 부럽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현정화 역의 하지원과 투톱인 만큼 연기 면에서 라이벌 의식은 없었나. -대결 구도가 절대 아니었다. 라이벌 구도를 의식했다면 서로 다른 사람이 찍을 때 보이지 않는 방향에서 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울어 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여자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할은 (지원) 언니가 수비수, 내가 공격수로 나뉘어 있었다. 언니가 앞으로 치고 나가면, 나는 수비수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는 데 집중했다. →분단 영화이자 스포츠 영화로서 감정 과잉을 우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분명한 감동 코드가 있다. 물론 하려는 이야기와 의도가 보일 수도 있지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가 적재적소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젠가부터 한 핏줄, 한 나라였다는 것을 잊고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 것 같다. 뭉치면 강한 나라인데…. 탁구 영화라기보다는 빠른 템포의 재미있는 요소가 들어 있는 영화다. 가볍게 보시고 감동도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인 배우, 감독들과 함께 연기한 소감은. -휴 그랜트, 수전 서랜든 등 대배우들은 초조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 대인배적인 기질이 있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기획 자체가 기발한 영화다.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천재 같았고, 마치 한 사람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앤디 워쇼스키가 나무 줄기라면, 래리 워쇼스키는 화려한 잎사귀 같았다. 대한민국 배우들은 강하게 단련돼서 그런지 현장에서도 성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배우로서 여러 문화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10년 전에 이미 예쁘게 보이는 것은 포기했다는 배두나. 이제는 개성파 연기자라는 수식어보다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코리아’를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꼽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지만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배두나의 연기 드라이브를 기대해 본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영화 ‘코리아’, 식상해도 흥행예감…이유는?

    영화 ‘코리아’, 식상해도 흥행예감…이유는?

    분단, 통일…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단어이자 이념이다. ‘남한’ 또는 ‘북한’처럼 아예 분리·독립된 개념이라면 또 모를까.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은 여자단체전에서 대회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꺾고 승리를 거뒀다. 그야말로 기적이자 감동의 스토리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던 당시를 그린 ‘코리아’(감독 문현성, 제작 더타워픽처스)는 분단의 현실이 낯선 세대들에게 친근하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깨워준다. ●실화만큼이나 현실적인 배우들의 땀과 눈물 극중 남한 국가대표 현정화 역을 맡은 하지원과 북한 국가대표 리분희 역의 배두나 뿐 아니라 선수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 영화를 위해 수 개월간 탁구연습에 매진했다. 오른손잡이인 배두나는 리분희 선수가 왼손잡이라는 말에 모든 훈련을 왼손으로만 소화했고, 하지원은 드라마 ‘시크릿가든’ 촬영 후 부상투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코리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배우들의 진정성이 관건인 영화다. 힘든 ‘척’ 하는 연기나 분장으로 위장한 땀 따위가 손톱만큼만 보여도 감동과 집중레벨이 급하강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의 매 장면 속 배우들의 땀과 눈물, 표정은 거짓이라 하기엔 놀랄만큼 리얼하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팔이 저릿해진다. 거듭된 훈련으로 흘린 땀과 마음으로 스토리를 읽은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클라이맥스 결승전 속 그들의 눈물은 실화만큼이나 감동으로 다가온다. ●잊혀져가는 현실, 그리고 소통과 희망 하지원과 배두나, 이 시대를 대표하는 두 젊은 여배우가 이념을 넘어선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분단과 통일을 뒷집 애완견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 어린 관객들에게 색다른 현재와 미래를 느끼게 한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그저 가난하고 툭 하면 전쟁하겠다며 떼나 쓰는 북한이라는 나라의 선수가 우리와 한 팀이 되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을 때, 관객들은 왜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을 수밖에 없었을까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한핏줄,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낯선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가 끝난 뒤 남북이 소통하여 각본없는 기적의 스포츠 스토리를 다시 써 내려가 주길 희망하는 관객이 늘어난다면, ‘코리아’의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일 것이다. ●스포츠 영화의 신선함과 감동 사이 ‘코리아’는 오정세, 박철민, 한예리 등 조연배우들의 깨알같은 웃음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흥행공식을 두루 갖췄지만, 갈등-분열-화합-감동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영화의 뻔한 플롯 탓에 신선함이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거침없는 표현을 우려하기도 한다. 여배우가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한국 영화계의 불문율이 과연 하지원-배두나에 의해 깨질지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식상한 플롯과 다소 위험한 민족주의, 흥행예상을 넘어서, 배우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코리아’의 감동은 진하다. 그 열연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서 함께 울고 웃은 2시간이 아깝지 않다. 5월 3일 개봉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수현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영화 도전

    김수현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영화 도전

    배우 김수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제작: MCMC)를 차기작으로 확정 지었다. 김수현은 지난 3월 종영한 MBC 수목극 ‘해를 품은 달’에서 순수함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왕 ‘이 훤’ 역을 완벽히 소화, ‘김수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명실공히 2012년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 배우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이 때문에 드라마 종영 이후 김수현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던 상황. 수많은 러브콜을 뒤로하고 김수현이 선택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파간첩 ‘원류환’이 서울의 어느 달동네 바보 백수로 위장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분단 현실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주인공과 동네 사람들 간 따뜻한 정서를 역동적인 액션과 감동적인 서사로 풀어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제작 확정 이후 주연 배우 캐스팅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이에 30일 김수현의 캐스팅이 발표되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김수현이 연기할 원류환은 코믹, 액션은 물론이고 분단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또 다른 면면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캐릭터. 영화에서 김수현은 어리바리하고 귀여운 동네 바보의 모습과 카리스마 있고 냉철한 스파이 두 가지 모습을 넘나들며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고 강렬한 액션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져 그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많은 팬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소속사 키이스트 관계자는 “김수현이 원작과 제작진에 대한 믿음,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삶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며 “좋은 연기로 관객 여러분께 다시 인사드릴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 중이니 기대할 만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11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주요 배역의 캐스팅을 진행 중이며, 캐스팅 완료 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 사진=키이스트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분단·체제의 희생양 북녘동포의 수난 그대로…

    북한에서 중학교 교사였던 정선화는 한국의 탈북자 지원기관인 하나원에 있다. 북한에서는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현숙한 어머니 사이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어렵사리 들어온 한국에서 자유를 찾은 듯하지만, 밤이 오면 전신을 으깨던 치욕과 고통 속으로 끌려간다. 선화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성 탈북작가 김유경은 선화의 몸과 시선을 빌려 탈북자의 삶을 그린 첫 장편소설 ‘청춘연가’(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냈다. 북 조선작가동맹 출신으로, 2000년대에 탈북한 작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곳에서 벗어나 자유를 담은 글쓰기를 시도했고, 자신과 같은 탈북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것으로 글재주를 풀어냈다. 북한에는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닥쳤다. 소위 ‘고난의 행군’이다. 선화네 가족에도 배급이 끊겼다. 거리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 났고, 아이들은 꽃제비가 되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을 얻자 선화는 돈 몇 푼에 중국에 팔려갔다. 덜컥 딸까지 낳았지만 선화는 견딜 수 없어 결국, 딸을 두고 탈출했고,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선화는 대학교수 딸도, 중학교 교사도 아니다. 그저 탈북자일 뿐이다. 선화처럼 중국에 팔려 갔다가 딸과 함께 탈출한 복녀, 꽃제비였던 경옥, 평양음악무용대학에 다니며 부유했던 미선 등도 하나원에서는 모두 같은 처지이다. 작가는 선화뿐만 아니라 복녀와 경옥, 미선 등 등장인물들의 삶에 골고루, 또 생생하게 힘을 쏟았다. ‘있을 법한’ 인물이 아니라, ‘분명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책날개에는 작가의 말이 담겨 있다. “숨어서 간신히 손만 내밀고 세상에 이 소설을 보낸다.”고 돼 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터라, 작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이 삶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자체가 인간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우리 민족이 숙명적으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작가는 “분단시대와 체제의 희생양인 북한인들, 탈북자들의 수난을 흘러가는 물처럼 그냥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늘 갖고 있고, 작가로서 문학으로 이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의도를 털어놨다.“ ‘청춘연가’라는 제목에는 “그곳에도 청춘연가가 울리길 바라는 희망과 가능성을 담았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공 선화는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처지다. 탈북자의 행복은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은 죽음 이상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처절한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신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선화가 겪은 고통은 그중 하나일 뿐 특별한 아픔이 아닐 겁니다.” 작가의 말은 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독자는 선화의 죽음으로 선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던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일제하 독립운동전략은 두 방향에서 추진됐다. 1919년부터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외교를, 그리고 1940년부터 5년간 주석을 맡았던 김구는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1941년 6월 김구는 이승만을 임정을 대표하는 주미외교위원장 겸 주미 전권대표로 임명했다. 방법론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조국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으며,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승만과 김구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남북의 분단은 결정되고 말았다. 1945년 12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자 김구와 이승만은 임시정부를 모태로 한 반탁운동의 선봉에 함께 나섰다. 반공·반소·반탁 노선을 함께 취한 두 사람은 1946년 6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을 내면서 갈라섰다. 5·10 총선거를 코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連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가 김일성에게 보낸 2월 16일자 서한에서 제안했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정치지도자 간의 정치협상’, 즉 책임 있는 당국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구수(鳩首)회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북회담 문제는 세계에서 소련 정책을 아는 사람은 다 시간을 연장해 공산화하자는 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간파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자 중에서 홀로 이것을 모르고 요인회담을 지금도 주장한다면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의 논평(동아일보 1948년 4월 2일자)은 정곡을 찌른다. 1945년 말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우익 탄압, 이듬해 6월 폴란드 공산당의 국민투표 결과 조작, 그리고 1947년 8월 20%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산당이 소련군의 비호하에 정권을 강탈한 헝가리 사태 등을 볼 때, 당시 남북협상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될 가능성이 컸다. “조국은 지금 독립의 길이냐, 예속의 길이냐, 통일의 길이냐, 분열의 길이냐 하는 분수령의 절정에 서 있다. 우리의 지표와 진로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可爲)·불가위의 당위론인 것이니 올바른 길일진대 사력을 다해 진군할 뿐일 것이다.” 북행(北行) 하루 전날 나온 문화인 108인의 지지성명처럼, 김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민족통일의 대의를 위해 북으로 갔다. “공산주의나 여하한 주의를 가진 것을 불문하고 외각(外殼)을 벗기면 동일한 피와 언어와 조상과 풍속을 가진 조선민족이다.” 북행 4일 전 연설은 그가 남북협상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의문은 ‘채택’돼 있었다. 4월 23일에 나온 결의문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조언을 제공할 데 대하여’라는 4월 12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그대로 베꼈다. 4월 28일과 29일에 열린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 회담’과 30일에 나온 ‘남북조선 제정당 및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도 구속력 없는 휴지 조각과 다름없었다. 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김일성과 김두봉이 자주적 결정권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북한은 소련 군정 치하였고 공산진영의 황제였던 스탈린의 지령은 불가침의 성헌(成憲)이었다. 이미 정읍선언 네 달 전인 1946년 2월에 북한은 이미 실질적 정부인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를 세웠으며,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헌법’ 초안도 공표한 상태였다. 김구의 북행으로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소련의 정치공작은 성공한 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김구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愚)를 범했고 이후 이승만은 독재의 과(過)를 범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의 역사와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이승만과 김구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우리 역사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5개 지방사업’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다

    ‘5개 지방사업’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다

    ‘로맨틱 시네마 시티, 세계의 정원(庭園), 아시아적 가치를 품은 전통문화의 수도, 세계적 뮤지컬 도시….’ 문화산업과 생태자원은 더이상 지역만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각 지역별 문화예술·생태·전통문화사업을 국가브랜드이자 세계에서 통용되는 브랜드로 키워내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맞잡았다. 행정안전부와 국가브랜드위원회는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부산, 대구, 경기도, 전주시, 순천시 등 5개 지자체와 함께 ‘지방브랜드 세계화 시범사업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행안부는 지자체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모를 거쳐 지난 1월 세계 시장에서 성공가능성이 높은 부산국제영화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경기도 비무장지대(DMZ), 전주한옥마을, 순천생태습지 등 5개 지자체의 대표 브랜드를 선정했다. 각각의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통해 차별화한 세계화 성공 모델로 키워 다른 지자체에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행안부는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하고 종합적인 브랜드 자산관리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시책을 추진하는 한편, 국가브랜드위는 브랜드 전문성과 국내외 홍보 마케팅을 맡는다. 또한 각 지자체에서는 협약 체결 기관과 함께 세운 중장기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을 책임감 있게 추진하게 된다. 16년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으로 북적대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을 업고 영화 촬영지, 영화의 전당 등 영화도시로서 부산을 상징하는 명소화 사업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하게 한다는 복안이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앞세워 국내외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순천시의 생태습지는 업무협약을 통해 생태관광 중심도시이자 세계의 정원으로서 순천만의 생태문화를 스토리텔링화하는 콘텐츠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골목길을 브랜드화하고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수도’로 육성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국내 유일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는 뮤지컬 행사다. 뮤지컬 광장을 조성하는 등 대구를 세계적 뮤지컬 도시로 꾀한다. 또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안보와 생태, 평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도 추진한다. 이삼걸 행안부 제2차관은 “지방브랜드 세계화 시범사업은 지자체의 브랜드 개발 사업을 글로벌 경쟁력 제고 및 국가브랜드화 등 종합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계기가 되는 만큼 중앙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CEO 칼럼]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시대/장영철 캠코 사장

    [CEO 칼럼]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시대/장영철 캠코 사장

    최근 몇년 새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가 많아 감회가 덜하겠지만, 건국 이래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온 국제행사는 뭐니뭐니해도 ‘88서울올림픽’일 것이다. 대회 이념인 ‘화합과 전진’을 잘 표현한 공식 주제가의 후렴구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올림픽 이듬해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이뤄 마치 그 노랫말이 예지력을 발휘한 듯해 가슴에 더 와 닿지 않았나 싶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독일 통일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시대착오적인 유물이 사라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20세기는 높든 낮든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수많은 장벽으로 꽉 막혀 있던 시대였다. 베를린 장벽,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비롯해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 등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장벽이 개인 간, 나라 간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다. 대한민국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만들고 있는 휴전선만 사라지면 세상을 가르는 모든 벽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최근 북한의 로켓 발사로 남북 간 긴장이 여전하지만 언젠가는 올림픽 주제가가 ‘예견’한 것처럼 휴전선이 사라지는 날을 꿈꿔 본다. 물리적 장벽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휴전선만큼 우리를 가르는 높고 두꺼운 벽을 맞닥뜨릴 때가 많다. 출신지역, 학력, 성별, 지위, 신분 등으로 사람과 조직을 구분짓게 만드는 편견들이 여전히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지역주의의 망령을 제거하지 못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절망스럽지는 않다. 최근 들어 부쩍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벽을 무너뜨릴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출현으로 개인 간 정보 유통량이 증가됨에 따라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폐쇄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경제활동의 영토 또한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로 넓어지고 있다. 이제 과거처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제주체를 감싸주던 국경, 지역별 관행, 법적 환경 등의 보호막이 지금도 기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기대이다. 정치·경제·사회의 각 부문에서 폐쇄성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에 의지하고 이를 더 강화하고자 한다면, 국가 발전이 저하됨은 물론 생존마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대외교역을 통해 여러 국가, 기업과 치열하게 다투며 제조업의 경쟁력을 당당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유럽연합(EU), 미국 등을 넘어 더욱 확산되면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가 세계와의 직접 경쟁에 노출될 것이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시대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연구·개발(R&D) 등 일부 부문에서는 여전히 물리적인 개념의 국경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하지 않고 안주한다면 고립을 자초해 결국 경쟁력 상실이라는 쓰라린 결과를 맛보게 될 뿐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의 생태계를 형성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생물종들이 외래종의 유입으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한때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의 전자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 또한 자국 시장에만 안주했던 탓으로 설명한다. 21세기는 모든 벽이 허물어진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벽을 높이 쌓는다 해도 변화의 바람을 막지 못한다. 그 흐름을 억지로 방해한다 하더라도 벽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벽 뒤에 쪼그리고 앉아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다면 역사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 개성공단 기업들, 추가 대북제재에 촉각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13일 남북한 경제협력의 꽃인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은 몇 시간 동안 로켓 발사와 실패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사실을 안 남한 임직원들은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북한 제재로 ‘메이드 인 노스코리아’의 수출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날 기준으로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는 780여명. 장상호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예고한 뒤 특이한 동향은 없었다.”면서 “개성공단 기업들의 직원들은 여느 때와 똑같이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핵실험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한때 공단이 폐쇄 직전까지 갔지만 북한 당국은 경협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도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등 이해 당사자들의 개성공단 유지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개성공단의 누적 생산규모는 15억 달러. 수출액 규모는 누적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억 9000만 달러에 달한다. 북한 당국이 2010년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한 측 재산을 몰수한 것과 달리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유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단체들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일제히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단순히 정치적인 이해를 떠나 국내 경제의 가장 약점인 내수경기 부진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와 우려를 무시하고 로켓 발사를 강행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국가안보와 경제에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제사회의 반대와 주민들의 심각한 식량난에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로켓 발사를 강행한 데 대해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한 것이자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행위”라면서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더 이상의 도발은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대기업들은 그리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분단에 따른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뜻하는 ‘코리안 리스크’는 이번 로켓 발사 이전에도 잠재해 있었고, 과거 위험 요인 역시 단기적인 영향에 그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 로켓 발사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북한 로켓 발사는 이미 예정돼 있던 사안인 만큼 실제로 로켓을 쏘아올리면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면서 “미국의 대북 제재와 그에 따른 북한의 반응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파주시 ‘통일경제특구’ 지정 건의

    경기 파주시가 민통선 지역인 장단반도 일대를 통일경제특구로 지정해 줄 것을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인제 시장은 12일 장단출장소에서 열린 ‘찾아가는 경기도 실·국장 회의’에서 개성공단 길목인 장단면 거곡리 일대가 통일경제특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며 김문수 도지사에게 건의했다. 이번 건의는 지난 2006년 17대 국회와 2008년 18대 국회에서 통일경제 특구법안이 발의됐으나 기간이 지나 자동 폐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시장은 회의에서 “남북경협을 통해 남북 경제 공동체가 구축될 경우 분단 이후 60여년간 낙후된 접경지역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구 지정에 김 지사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파주시는 19대 국회가 출범할 경우 관련 법 개정안이 의원발의로 국회에 상정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구 예정지는 개성공단과 6㎞ 거리로, 인적·물적·기술 교류에 유리하다. 또 통일로·자유로·경의선·대륙횡단철도 등과 인접하고 인천공항·인천항 등과도 가까워 물류수송에 최적지로 꼽힌다. 이 시장은 “장단반도 가는 길에 파주LG디스플레이와 월롱·당동·선유산업단지 등이 있어 접경지역을 통일시대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장은 이 밖에 통일 관련 교육연구와 인재양성을 위한 가칭 통일대학원대학교 설립, 캠프 그리브스의 안보체험장 전환, 보훈회관 건립 지원 등을 건의했다. 한편 김 지사는 북한의 광명성 3호 위성 발사 움직임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군 관계자들과 함께 민통선 일대 긴급 대피소를 둘러보고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기고] 전자정부 1위와 국가브랜드/손연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기고] 전자정부 1위와 국가브랜드/손연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국력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다. 국토의 넓이, 인구수, 자원의 양과 질, 국방, 경제와 더불어 문화·역사·교육 등 다양한 광의·협의적 요소를 통해 국력을 따진다. 20세기를 지나면서는 지구촌 개념의 확대에 따라 국가 간 교류의 질과 관계유지 및 지속발전 능력 등이 국력을 이루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21세기 들어 부쩍 주목받는 국력의 요소로 국가 브랜드를 꼽을 수 있다. 국력을 이루는 기존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국가 브랜드로 연결되는 까닭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격동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근대만 해도 그렇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 산업사회의 성장기반을 닦은 ‘한강의 기적’, 부족한 부존자원의 한계를 극복한 힘의 원천인 ‘고도의 교육열’,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통해 주목받은 ‘스포츠 강국’, 그리고 반세기 넘게 휴전선을 경계로 총부리를 맞댄 ‘분단국’ 등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산업사회는 뒤졌지만 정보사회는 이끌어간다.’는 뚜렷하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추진해 획득한 ‘정보화 강국 코리아’라는 이미지는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속성상 친환경성, 지식기반, 지속성장을 담고 있어 더욱 그렇다. ‘정보화 강국 코리아’는 국가이미지를 넘어 국가 브랜드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ICT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의 발전을 선도하는 가운데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국’의 입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최근 ICT사회를 선도하는 ‘정보화 강국 코리아’를 세계 속에 확인시킨 낭보가 있었다. 유엔은 국가 간 전자정부발전 수준을 비교해 글로벌 전자정부 협력 촉진 및 국가경쟁력 강화를 유도하고자 지난 2003년부터 유엔 회원국 190여개국을 대상으로 전자정부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유엔 전자정부 평가 세계 1위에 이어 2012년에도 1위를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유엔이 발표한 2012년 전자정부 평가 결과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발전지수, 온라인 참여지수 부문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가발전 모델을 수입하는 나라였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ICT 기술을 앞서 구현하는 가운데, 사회 각 부문에서 ICT 기반의 앞선 모델을 그려 가고 있다. ‘정보화 강국 코리아’는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짧지 않은 기간에 함께 만든 국가 브랜드다.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 브랜드를 앞세워 또 다른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개도국은 물론 정보화 선진국들조차 ICT에 기반을 둔 한국의 성장 배경과 꿈을 배우고자 힘쓰고 있다. 나아가 우리가 먼저 찾아가 우리가 이룬 것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구촌 안에서 ICT 기반의 앞선 경험과 비전을 나누고 누리는 모습을 통해 ‘ICT 리딩 코리아’라는 업그레이드된 브랜드를 이끌어 내는 내일을 기대한다.
  • [데스크 시각] 카오스(CHAOS)의 힘/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카오스(CHAOS)의 힘/오일만 경제부 차장

    4월 11일, 남북한 모두 주요한 정치 일정이 있다. 남한은 4년간의 의회권력, 나아가 대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19대 총선을 치르는 날이고 북한은 세습 3대째인 ‘김정은 체제’ 굳히기를 위한 제4차 당대표대회가 열린다. 날짜가 겹친 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리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분단 64년 동안 각자 걸어온 체제의 특징이 농축돼 있다. 선거는 원래 시끄럽다. 정반대의 견해와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니 갈등으로 표출되기 일쑤다. 여야 모두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정책대결이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상대방을 욕하고 깎아내려야 더 관심을 끄는 것이 선거판의 생리다. 초단위로 전달되는 스마트폰 혁명이 멱살잡이식 네거티브 전략에 활용되면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일사불란함 그 자체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 대표자선거를 위한 조선인민군, 도·시·군 당대표 선거가 조용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미 내정된 후보가 100% 당선되니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아마 11일 당대표대회에서도 김정은 군사 부위원장이 위원장이나 당 총서기로 승진할 것이 확실하다. 북한 체제의 단결과 안정성을 대내외에 선전하는 좋은 호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좋다.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할 것같이 싸우더라도 우리는 미래를 낙관한다. 무정형의 혼돈 속에서 정형의 질서를 찾아가는, 바로 카오스(Chaos·혼돈)의 질서를 믿기 때문이다.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생생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민주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오스가 질서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바로 법치주의 시스템의 작동이다. 법이 전제되지 않은 카오스는 억압된 질서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이 자랑하는 문명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함이다. 요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보자. 연일 언론들이 그 심각성을 외치고 동네 술집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안주 삼아 울분을 토로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법치 시스템을 허무는 권력 남용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권력은 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속성이 있다. 권력은 국가 보위라는 거창한 명목을 앞세운다. 법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통치행위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하고 일반 국민들이나 지키는 권력의 부속품쯤으로 치부한다. 온갖 이유를 만들어 권력은 법망 저 밖에서 손짓하는 인치의 유혹에 빠져든다. 마치 수학공식처럼 권력의 농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1974년 닉슨 미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대통령이 몰래 하수인들을 시켜 불법 도청을 했는데 그들 중 일부가 법망에 걸렸다. 처음엔 단순한 절도사건으로 알려졌지만 최고 권력자와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백악관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진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권력을 이용해 증거를 은폐 조작하고 돈으로 범인들의 입을 막으려 하는 등 온갖 탈법을 저질렀다.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지금 맹렬하게 번지는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의 ‘데자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38년 전 당시 미국의 사법부가 살아 있는 권력을 단죄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좌파 쪽 사람들조차 미국의 결연한 법치 시스템에 박수를 보낸 것도 이런 이유였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요즘 이른바 ‘깃털’들이 속속 구속되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몸통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역대 권력형 비리처럼 유야무야, 용두사미 격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력이 법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순간 카오스의 에너지는 파괴의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민주주의의 역린(逆鱗·용의 노여움)을 건드리는 권력은 결국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oilman@seoul.co.kr
  •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 등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우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냉전이 해소됐는데, 왜 남한과 북한은 가다 서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등 변덕스러운 것일까. 왜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 강행처럼 남한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가. 미국이나 중국은 과연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관심이 있는가. 이 같은 궁금증을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를 통해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홍 교수는 1999년 미국 정부가 공개한 외교관계 문서를 분석해 197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 남북 간 군사적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1968년 1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김신조 등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침투, 남한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같은 해 2월엔 미국의 선박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돼 원산항으로 끌려갔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북 보복을 주장했고, 같은 달 존슨 미국 대통령은 밴스를 특사로 보내 이를 무마해야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울진·삼척지구에 100명이 넘는 북한 무장간첩이 남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한반도 지역에 군사력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이 원산 바다에 나타났고, F105 1개 비행대, F102 2개 비행대, 최신예 전투기 F4D 팬텀기 4개 비행대가 남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제2의 한국전쟁이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푸에블로호 위기를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국가적 실체를 승인받으려고 노력했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위기를 고조시켜야 협상이 시작된다는 북·미 관계의 ‘이상한 공식’은 이때부터 출현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든지, 남북통합이 되든지 하는 한반도 분단의 근본적 해결이나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긴장이 격화되거나, 이 긴장 상태가 이어져 한국전쟁 때처럼 격돌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대국은 1970년대 이래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개입은 축소하면서, 영향력 자체는 유지하려는 모순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또 분단의 유지와 책임을 남북한으로 축소시켜, 국제적인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의 분단으로 국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남북한 문제로 축소시키면서, 분단체제가 더 완숙해졌다는 것이다. 휴전이라는 애매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또한 군사적 위기와 적대적 대치 국면, 그리고 현상 유지 사이를 빈번하게 오가며 요동치게 됐다. 아울러 남한이나 북한의 정부 모두 분단체제의 변덕스러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계속 불안하고, 자결권도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도달하게 됐다. 문제는 완숙하긴 하되 여전히 변덕스럽고 유동적인 분단체제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에게는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1972년 남한의 유신체제의 선언 등도 그 하나일 수 있겠다. 홍 교수는 “부자가 만들어낸 사회적 불평등이 범죄를 발생시키지만 그 범죄는 주로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타나듯이, 한반도 분단체제는 강대국이 조성한 모순과 갈등이 약소국에서 증폭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런 모순구조를 이유로, 남북의 정치권력들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야말로 ‘식민성’(coloniality)으로의 귀결이자 표상이라는 것이다. 지구화로 세계인들이 세계무역기구나 세계은행, 유엔 등 국제기구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도,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비판했다. 미국이 세계은행 후보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환호하고 있지만, 홍 교수의 지적을 차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분단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흔히 평화를 전제로 한 분단의 해소나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홍 교수는 평화와 분단해소를 향한 노력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과거에 한민족이었으니 하나의 국가로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60년 넘게 다른 체제, 다른 사상에서 살아온 두 국가의 국민들에게 쉽지 않은 주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오바마 “北 로켓 발사시 식량지원 없다”

    오바마 “北 로켓 발사시 식량지원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예고한 대로 광명성 3호를 실제 발사한다면 ‘2·29’ 북·미 합의 때 약속했던 식량 지원은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원 식량이 엘리트나 군에 지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갈등 국면에서는 모니터하기 어렵다. 필요한 사람에게 식량이 도달하지 못한다면 (식량을) 지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할 때마다 국제사회가 더욱더 강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추가적인 고립 상황에 놓이게 해 왔다면 이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며 엄정한 제재 의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광명성 3호 발사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추후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 발표는 안보리 결의와 북·미 간 합의를 위반한 것이며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도발적 행위”라면서 “북한이 발사 계획을 즉시 철회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과 나는 한·미 간 공고한 연합 방위 태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두 사람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평화와 협력의 길을 선택한다면 한·미 양국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한·미 양자 정상회담은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6일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미·러, 미·중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중국의 역할론’과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지난 몇십년 동안 유지해 왔던 북한에 대한 우려 사항 전달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탄도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대통령 차원에서보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평가와 관련, “나도 처음에는 보다 개방적으로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었지만 이번에 하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새벽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오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 주한 미군 장병들을 격려한 뒤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남북 간 분단 상황을 돌아봤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신문TV와 함께하는 구정 인터뷰] 박겸수 강북구청장 “개발…역사·문화·관광 패키지화”

    [서울신문TV와 함께하는 구정 인터뷰] 박겸수 강북구청장 “개발…역사·문화·관광 패키지화”

    “개발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강북구는 낙후된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고 제주도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적습니다. 이런 장점을 살리고 역사·문화·관광을 묶어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한 ‘역사·문화·관광 중심지’ 실현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그는 19일 인터뷰에서 열정적으로 구의 역사유산과 문화유산, 관광 입지를 강조하며 서울시 지원과 구민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해마다 개최하는 3·1 만세 재현 행사를 더욱 발전시키고 내년부터는 4·19 음악제도 축제로 승화시킬 계획”이라면서 “16위(位) 순국선열 어록을 담은 시비를 세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비 5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지난해 자체적으로 연구용역까지 벌였기 때문에 착공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이령 접근성을 높이고 시민 캠핑장을 설치하려 한다.”면서 “우이령과 북한산 백운동 등산로도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청자가마터를 발굴하는 등 역사 문화적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구청장이 역사·문화·관광을 비전으로 앞세우는 데엔 지역 자산을 살려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이준, 손병희, 여운형, 이시영 선생 등 근현대 위인 16위를 비롯해 4·19 민주묘지를 모시고 있다. 화계사·도선사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도 품었다.”면서 “빼어난 풍광 속에서 분단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우이령고개, 휴식처인 북한산도 한데 묶어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되뇌었다. 북한산 둘레길 활성화도 호재다. 구에는 모두 4개 구간이 조성돼 있다. 우이령길(6.8㎞)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로로 사용한 뒤 2009년까지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에 뛰어난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꼽힌다. 우이동 우이령길 입구에서 솔밭근린공원을 잇는 소나무숲길(2.9㎞)은 지천에 뿌리내린 소나무 향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솔밭근린공원~이준 열사 묘역 구간인 순례길(2.3㎞)엔 독립운동가 묘역과 4·19 묘지가 손님을 반긴다. 이준 열사 묘역~북한산 생태숲 흰구름길(4.1㎞)을 걷다가 구름전망대에 오르면 서울 도심까지 훤히 살펴볼 수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