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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G2시대와 한국외교 방향/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전 주스위스 대사

    [열린세상] G2시대와 한국외교 방향/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전 주스위스 대사

    2008년 뉴욕발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의 화두는 미·중(G2)시대이다. G2는 정치적으로는 이해가 충돌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으로 돈을 번 잉여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들이는 상호보완적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약 4분의1로 군사력, 과학기술, 소프트파워 등 총체적 국력에서 중국을 크게 앞선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5000달러로 미국의 10%에 불과하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성장에 따른 지역·계층 간 부의 불균형 문제와 자유·평등 욕구의 사회적 확산을 잘 관리하면 2030년쯤에는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지 모른다. 구한말 역사는 반복하는가? 한반도 주변에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이 있다. 2030년쯤에는 중국과 함께 러시아의 부활도 예견된다.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이고 시베리아의 엄청난 지하자원을 동원하면 경제성장은 시간문제이다. 대(大)러시아를 표방하는 푸틴도 대통령에 복귀했다. 일본은 어떤가? 잃어버린 10년과 경제침체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이 일본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양과 질을 감안하면 여전히 제2의 경제대국이다.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군사력도 세계 3~4위 수준이다. 작금의 중국 부상과 미·중 갈등은 일본의 재무장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은 오늘날 경제와 군사력 모두 10위권의 강소국으로 성장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일본의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의 대륙세력은 앞으로도 갈등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한말의 역사가 반복되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한반도는 이러한 주변세력의 부침에 따라 이해가 교차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어 왔다. 폴 케네디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은 ‘네 마리의 코끼리에 둘러싸인 작은 동물’ 의 모습이다. 네 마리의 코끼리 중에서 한 마리가 움직이면 다른 세 마리를 자극해 한반도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핸디캡‘을 갖고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다. 네 마리의 코끼리 사이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다섯 번째 코끼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전략과 대책이 필요한가? 첫째, 성장으로 국력을 증대해야 한다. 한국이 일곱 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했지만 아직 코끼리는 아니다.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허세이다. 새우의 외교로는 고래싸움을 막을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복지는 필요하지만 가능한 한 적게 하고,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 그리스와 같이 복지국가의 실패를 뒤따라서는 안 된다. 눈앞의 선거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국가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국내 통일교육과 대외 통일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분단 상태에서는 코끼리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 통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류에서는 새우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20여년 후 미·중 시대와 한반도 주변 4강체제가 자리 잡기 전에 우리는 통일을 이루고 그 후유증을 극복하여 ‘30-80클럽’ 가입을 목표로 해야 한다. 3만 달러 소득과 8000만 인구는 미국, 일본, 독일 세 나라뿐이다. 그러면 명실공히 코끼리 대열에 서게 된다. 통일은 도전이지만 기회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셋째, 한·미동맹을 계속 굳건히 해야 한다. 중국과는 지금같이 경제를 중심으로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외교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을 의식하여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소위‘자주외교’는 위험하다. 안보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 경제, 통일에도 중요하다. 독일통일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상기해야 한다. 넷째, 국내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여 초당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동맹과 자주 같은 2분법으로 외교를 논의하면 국론은 분열되고 국력은 낭비된다. 북한을 포함한 잠재적 경쟁국에 어부지리가 될 수도 있다. 정치가 외교의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 경제민주화보다 정치민주화가 먼저다. 통일이 대세가 되면 ‘ 민족끼리’ 주장도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 전쟁, 1950년대 빈곤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 1970·80년대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은 역사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안이든 삼대(三代)의 인생을 털어 보면 행복 또는 불행의 형태로 100여년의 근·현대사들이 씨줄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가 정용연(44)의 3권짜리 ‘정가네 소사’(휴머니스트 펴냄)에는 그 정씨 집안 남자들과 며느리, 손녀의 인생을 통해 어쩌면 그렇게 한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을까 싶은 내용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전남 장성 출신의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아버지 정동호에게 명심보감이며 한학을 가르쳤다. 만주로 이전해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하기 전에 해방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귀국길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의무병이었던 아버지는 한학을 배운 덕분에 군대에서 일본어 의학책을 읽으며 의술을 익혔지만,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탓에 무면허 의사로 살아야 했다. 학업을 연장하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전북 김제평야 천석지기의 아들이던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식민지 한국에 돌아왔지만 금광을 찾아 헤매다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도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운 사람은 외할머니. 곱게 자란 양반집 아씨가 비단을 팔러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는 무면허 의사 아버지와 만나 살림을 꾸렸지만, 서울 산동네를 전전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밖에 정가네 소사에는 빨치산이 된 육촌 할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엮여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좌절된 형이나, 이발 기술로 돈을 벌었지만 못된 아가씨에게 홀랑 날리고 1980년대 중동개발 붐이 일 때 사우디로 간 순호 당숙, ‘청량리 588’의 서러운 아가씨가 있다. 또한 정부가 농가의 수입원으로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 양잠을 권유했지만, 핑퐁 외교의 결과로 일본이 비단실 수입처를 중국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1970년대 농촌 현실 등이 독자들을 매콤하고 아련한 1970~80년대의 추억으로 인도한다. 그래픽 노블 분위기의 자전 만화인데 정용연 작가는 “외할아버지를 방탕하게 그리고 아버지를 무능하게 그리게 돼서 정말 미안한데, 사실과 다르게 포장하기는 어려웠다.”고 30일 말했다. 정 작가는 “기억에 의존해 쓱쓱 그린 만화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의 복장이나 순호 당숙의 이발소에 걸린 1983년 3월의 달력, 아버지의 군복 등 대부분 고증을 거친 것으로 생활사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헹궈 줄 때 조리개를 이용한다든지, 가스레인지 탓에 사라진 귀한 성냥의 존재 등도 신기하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겹치기도 하는데, 기억을 덧댄 부분이 풍성해서 지루하지는 않다. 7년에 걸쳐 600쪽의 원고를 그렸다. 이 책을 기획한 위원석 교양만화 주간은 “100년 역사가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아 한 번쯤 꼭 읽어봐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코티분’ 시절

    어머니가 쓰시던 앞닫이 속에는 처녀 적에 찍은 바랜 흑백사진과 코티분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게 앞닫이 속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듣기로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선물로 사다 주셨다는데, 제가 그걸 예닐곱살 때까지 봤으니 묵혀도 너무 오래 묵혔습니다. 아까워서 그랬는지, 바를 일이 없어 그랬는지 그 코티분은 항상 앞닫이 속 작은 서랍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걸 바른 모습을 두어 번 봤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 때였습니다. 나중에 찬합도시락을 챙겨 학교 운동장으로 오신 어머니 얼굴에 뽀얀 분가루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얼굴에 바른 분이 낯에 먹히지 않아 얼룩덜룩했고, 어떻게 그렸는지 눈썹은 짝짝이였습니다. 주변에 이 동네, 저 마을 사람들이 빼곡한 터에 내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혹여 그 선생님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저어했습니다. 고개를 꺾고 혼잣말로 “분 좀 잘 바르지….” 했는데,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가 넉살 좋게 “그래도 코티분 바른 사람은 나 뿐이네.”라며 손가락으로 꾹, 제 볼을 찌릅니다. 김밥에 아이스께끼도 사먹었고, 사이다도 마셨지만 왠지 분단장한 어머니 모습이 자꾸 밟혀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어린 제가 그 코티분이 어머니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 턱이 없었지요. 그 뒤, 세월이 흘러 외국엘 다녀올 때 사다 준 화장품을 “아까워서 못 쓰겠네.”라며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봅니다. 아무리 농투산이란들 어머니도 여잔데 왜 안 예쁘고 싶었겠습니까만 평생을 속 시원하게 단장 한번 한 적 없고, 그럴 일이 있게 살지도 않았으니, 그러니 한 줌도 안 되는 코티분 한 통이 앞닫이 장롱 속에서 십년도 넘게 분냄새를 감추고 있었겠지요. 그날, 어머니가 바른 분이 아버지를 향한 은밀한 애모의 정이었는지, 아들 자식 기나 안 죽이려는 배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어머니도 여자였으며, 가부장제의 이름 없는 희생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사 주셨다는 그 코티분에서 어머니가 간직했던 분말 같은 여성성, 말하지 못했던 숭고를 읽습니다. jeshim@seoul.co.kr
  • 명작 단편소설, 한국어·영어로 동시에

    한국 대표작가들의 단편소설을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담은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현대 소설’ 시리즈가 나왔다. 한·영대역 문예지 계간 ‘아시아’(ASIA)를 발행하는 도서출판 아시아는 5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시리즈의 1차분 15권을 선보였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1’,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등으로, 소설 성격을 파악하기 쉽도록 3가지 키워드(분단·산업화·여성)로 구분해 수록했다. 아시아의 방현석 주간은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궁금해하면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제안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어떤 책이 적당할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이번 시리즈가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접하는 문(門)이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번역과 감수 작업에는 전승희(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원), 데이비드 매캔(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장), 브루스 풀턴(브리티시컬럼비아대 한국문학과 교수), 주찬 풀턴(번역가), 케빈 오록(번역가·한국문학박사), 제니퍼 리(번역가), 손석주(한국 문학 번역원 신인상 수상) 등 내로라하는 한국문학 전문가와 번역가가 참여했다. 시리즈 출시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소설가 오정희(65)는 “학교 다닐 때 영한대역판으로 외국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내 작품도 그렇게 나오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출판사는 생존 작가를 중심으로 연내 50권가량 출간하고, 이후 작고 문인들의 작품도 포함할 계획이다. 시리즈는 미국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등에서 한국학 교재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각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잠실 ‘비둘기 화형식’ 전세계에 생중계된 사연

    잠실 ‘비둘기 화형식’ 전세계에 생중계된 사연

    런던올림픽 개회식이 28일 아침 화려하게 펼쳐졌다.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만큼 개최국의 자존심이 걸린 행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르는 법. 화려했던 역대 대회 개회식 가운데 ‘옥에 티’들을 모아 봤다.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자랑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데다 앞선 1980년 모스크바·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각각 빠졌던 미국과 소련이 참가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개회식에서는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흰 비둘기 수천 마리를 잠실 주경기장 상공에 날렸다. 하지만 하늘을 수놓던 비둘기 떼 일부가 성화대로 모여들었고 그 순간 점화자가 성화봉을 갖다대면서 관중과 전 세계 시청자들은 ‘비둘기 화형식’을 지켜보며 경악해야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은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 감독의 화려하고 웅장한 연출로 찬사를 들었지만 립싱크와 컴퓨터그래픽(CG) 조작 등이 들통 나면서 최악의 개회식이란 오명을 남겼다. 깜찍한 외모의 CF 모델인 린먀오커가 노래를 불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중에야 입만 벙긋거렸고 다른 어린이가 노래를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역대 개회식 ‘옥에 티’

    런던올림픽 개회식이 28일 아침 화려하게 펼쳐졌다.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만큼 개최국의 자존심이 걸린 행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르는 법. 화려했던 역대 대회 개회식 가운데 ‘옥에 티’들을 모아 봤다.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자랑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데다 앞선 1980년 모스크바·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각각 빠졌던 미국과 소련이 참가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개회식에서는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흰 비둘기 수천 마리를 잠실 주경기장 상공에 날렸다. 하지만 하늘을 수놓던 비둘기 떼 일부가 성화대로 모여들었고 그 순간 점화자가 성화봉을 갖다대면서 관중과 전 세계 시청자들은 ‘비둘기 화형식’을 지켜보며 경악해야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은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 감독의 화려하고 웅장한 연출로 찬사를 들었지만 립싱크와 컴퓨터그래픽(CG) 조작 등이 들통 나면서 최악의 개회식이란 오명을 남겼다. 깜찍한 외모의 CF 모델인 린먀오커가 노래를 불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중에야 입만 벙긋거렸고 다른 어린이가 노래를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잠실 ‘비둘기 화형식’ 전세계에 중계된 사연

    잠실 ‘비둘기 화형식’ 전세계에 중계된 사연

    런던올림픽 개회식이 28일 아침 화려하게 펼쳐졌다.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만큼 개최국의 자존심이 걸린 행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르는 법. 화려했던 역대 대회 개회식 가운데 ‘옥에 티’들을 모아봤다.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자랑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분단국가에서 치러지는 데다 앞선 80년 모스크바·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각각 빠졌던 미국과 옛 소련이 참여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개회식에는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흰 비둘기 수천 마리를 잠실 주경기장 상공에 날렸다. 하지만, 하늘을 수놓던 비둘기떼 일부가 성화대로 모여들었고 그 순간 점화자가 성화봉을 갖다대면서 관중과 전 세계 시청자들이 ‘비둘기 화형식’을 지켜보며 경악해야 했다. 4년 뒤 바르셀로나올림픽 개회식 때 성화는 역대 대회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성화대를 향해 쏜 불화살이 성화대를 넘어 주경기장 밖 주차장에 떨어진 것. 화살은 빗나갔지만, 자동점화 장치 덕에 세계인의 뇌리 속에는 성공적인 점화 장면으로 남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은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모우 감독의 화려하고 웅장한 연출로 찬사를 들었지만, 립싱크와 컴퓨터그래픽(CG) 조작 등이 들통 나면서 최악의 개회식이란 오명을 남겼다. 깜찍한 외모의 CF 모델인 린먀오커가 노래를 불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그 뒤 입만 벙긋거렸고 다른 어린이가 노래를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은 또 톈안먼 광장에서 시작해 주경기장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방송으로 내보냈지만, 이는 실제가 아닌 CG 합성인 것으로 드러나 세계인의 비웃음을 샀다. 2년 전 밴쿠버 겨울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화로 형태로 제작된 성화대 4개 중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점화자인 캐나다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카트리오나 르메이 동은 허공에 불을 붙이는 시늉만 해야 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천재 시인 백석과 늙은 양치기

    [최동호 새벽을 열며] 천재 시인 백석과 늙은 양치기

    지난 7월 1일은 천재 시인 백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해 1930년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일본 유학 후 1936년 1월 시집 ‘사슴’을 간행해 시단에 혜성과 같이 등단했다. 1935년의 정지용 시집에 이어 다음 해 백석 시집의 출간은 한국 현대시가 실질적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김기림은 ‘백석 시집을 가슴에 안고’라는 신간 서평을 통해 백석 시집이 ‘신년 시단에 한 개의 포탄을 내던졌다.’고 표현한 바 있다. 백석은 문학적 명성만큼 행복한 시인은 아니었다. 구원의 여성 란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이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했지만 다시 여기서 만난 자야 여사와의 사랑 또한 불행한 결말로 끝났다. 1940년대에는 만주 일대에서 방랑하듯 생계를 위해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등 온갖 고초를 겪는 극빈의 생활을 경험했다. 백석이 이 시기에 쓴 것으로 여겨지는 역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같은 시는 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남북 분단으로 문단에서 사라진 그의 시들은 유종호 신경림 등의 선구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봉인된 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의 시가 다시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납북·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다. 2001년 북의 유족들에 의해 1995년 백석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1959년 1월부터 사망시까지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협동농장에서 양치기 생활을 한 것도 전해졌다. 1958년 10월 이른바 당에서 내려온 ‘붉은 편지’ 사건 이후 당성이 부족한 작가들에게 현지 지도원으로 내려가 ‘붉은 작가’로 단련할 것을 요구하는 당의 명령에 따라 백석은 자원 형식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 오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양의 출산을 기뻐하고 양을 몰고 나갔다가 양을 몰고 들어오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분단 이후 백석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인 평필을 든 유종호가 그의 시에서 한국적 페시미즘을 논한 것은 그의 문학만이 아니라 생애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백석의 문학적 인간적 불행은 한국문단의 불행이자 분단시대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사례일 것이다. 인생의 전반부는 천재시인으로 평가되는 문단적 명성을 누렸으나 인생의 후반부는 산골오지에서 양치기로 살아야 했다는 것은 그의 생에 드리워진 비극적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말로도 논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 만주에서 방랑을 시작할 무렵에 이미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41년에 발표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그는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을 낼 적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라고 노래했다. 20대 초반의 미끈하고 준수한 미남의 얼굴과 70대 중반의 늙은 양치기의 얼굴에서 백석의 반세기가 교차한다. 산간 오지의 양치기가 돼 산야를 누비면서 바라보았을 수많은 봄과 여름을 떠올려 본다. 그는 하릴없는 여름날 느리게 걸어가는 양들과 흰 구름과 들꽃을 스쳐 가는 바람을 보았을 것이며 바람결에 스치는 그 향기를 느꼈을 것이다. 복권을 위해 당에 충성하는 편지와 시를 쓰며 울분을 다스려야 했던 40대 후반의 자신을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회상했을 것이다. 회한과 오욕을 넘어선 경지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그의 미소가 잔잔하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운명의 사슬을 벗어난 그가 영원한 자유인으로 웃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백석문학전집’을 통독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정점에 서 있는 그의 시와 20세기 한국인이 헤쳐 나와야 했던 역사적 굴곡의 상징적 축도로서 그의 생이 하나가 돼 만들어진 큰 바위 얼굴과 같은 거대한 시인의 초상화를 그려 본다.
  • [시론] 장병 정신교육은 시비대상 아니다/여영무 전 언론인·남북전략연구소장

    [시론] 장병 정신교육은 시비대상 아니다/여영무 전 언론인·남북전략연구소장

    최근 국내 정치경제 상황은 매우 긴박하고 혼란스럽다. 12월 대선을 앞둔 여야의 힘겨루기와 대통령 친인척들의 잇따른 부정·비리 연루, 종북 인사들의 국회 입성 등으로 말미암은 국가 정체성 훼손, 통진당 내 선거부정 등으로 국가 기강이 심히 흔들리고 있다. 이런 국정 혼란은 정도의 차이일 뿐 어느 나라에서나 항상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분단 67년간 북한으로부터 6·25 남침 전쟁을 비롯해 부단하게 침공을 받아 항상 전쟁 위험을 조마조마하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심각성이 다르다. 북한은 ‘대선의 해’마다 친북과 종북 세력을 키우려고 각종 선전선동과 유언비어를 확산하면서 더욱 맹렬히 나서고 있다. 그들은 올해도 그런 대남 정치공작을 이미 시작했다. 북한의 허위 기만 선전선동에 취약한 세대가 6·25를 겪지 않은 청장년들이다. 수십 년간 일부 세력의 편향 왜곡된 친북·반미 세뇌교육 탓도 크다. 햇볕정책 시기 한 고위 안보관계자는 북한에 대한 대북 적개심보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강조함으로써 대적(對敵)관을 교묘하게 왜곡하기도 했다. 1980년대 출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과 북한 간 ‘전쟁이 난다면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는 물음에 ‘북한 편에 서야 한다’고 답한 신세대가 66%에 달했다.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응답은 불과 28.1%였다. 퍼주기식 대북 포용 햇볕정책이 젊은 세대들의 대적관을 이처럼 엉망으로 흩트려 놓았다. 국가, 특히 군대의 대적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전투력을 최대한 향상시킬 명분이 약하고 유사시 대적 섬멸 의지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것을 젊은 세대와 국군 장병에게 교육하고 확인시켜야 한다. 북한의 호전 세력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세력이며 주적이 틀림없다. 지난 60여년간 북한의 행태를 보면 그들은 오늘 웃으면서 대화하다가도 내일 당장 전단(戰端)을 여는 핵을 가진 호전 세력이자 1인 독재국가다. 북한을 단순한 동족으로 여기는 것보다 주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6·25와 천안함, 연평도 포격 같은 기습공격에 더욱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물샐틈없는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다. 군사훈련과 장병을 위한 정신교육은 필요불가결하다. 군대 정신교육의 목표는 장병들에게 누가 주적인가, 대적관을 확실히 하고 직접·간접·국내외적 위해 요소들을 미리 알려 일도 필살의 정신무장을 시키는 것이다. 정신교육은 장병의 국토방위 임무가 조국의 간성으로서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 일인지를 고취하는 목적도 있다. 요즘 대형 출판사들이 안보·전략 관계 서적들을 출판하지 않는 것은 이런 부류의 서적들이 전혀 팔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안보관을 무감각하고 취약하게 하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실은 안보가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미래 행불행까지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그리고 김일성의 6·25 남침 전쟁이 남북분단의 고통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 최근 군대 내 장병 정신교육을 위한 안보 강연을 시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안보, 국방, 외교(대북정책)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초당적이라야 적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다. 튼튼한 안보야말로 적과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최상의 병법이자 손자병법의 으뜸 전략이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김정은이 3대 세습정권을 승계한 후 최근 강경파 리영호 총참모장이 갑자기 해임되는 등 권력투쟁이 치열하다. 김정은의 후계 권력 기반이 아직 공고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마침 대선까지 겹친 올해 북한이 이런 내부 불안을 바깥으로 돌리고자 또 어떤 무력도발을 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장병 정신교육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 옛 서울역사서 철도문화체험전

    코레일은 20∼22일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에서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을 연다고 19일 밝혔다. 체험전에는 해방전 만들어진 미카형 증기기관차부터 KTX-산천까지 한국 철도차량의 변천사를 담은 다양한 철도 모형이 한국의 지형을 재현한 디오라마에서 실제 운행된다. 수집가가 소장한 시가 2억원에 달하는 증기기관차를 황동으로 정밀하게 재현한 초대형(길이 2.8m) 철도모형인 ‘빅보이’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다. 철도유물전에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사용된 철도 승차권을 비롯해 분단 이전의 평양~서울 간 승차권 등 철도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인 소장 희귀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 개막식이 열리는 20일은 오후 1시부터 입장할 수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北 ‘원수 김정은’ 선포한 날 DMZ 간 박근혜 “접경지 주민도 꿈·희망 찾게”

    北 ‘원수 김정은’ 선포한 날 DMZ 간 박근혜 “접경지 주민도 꿈·희망 찾게”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강원 철원군 김화읍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사업 부지를 방문, ‘안보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특히 북한 군부의 권력이 재편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안보 행보라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 여성이라는 약점 때문에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박 전 위원장은 공원을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DMZ는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상징하는 곳인데, 생태·생명과 평화의 공원으로 바꾸고 있는 노력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분단으로 접경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누구보다 어려움이 크다.”면서 “제가 말하는 100% 대한민국이 되려면 이분들도 새로운 가능성과 꿈, 그리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전 위원장은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소환 불응 방침과 관련,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앞에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의 남북 간 합의를 지킬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원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밥상 108년 5대 변천사] ①살기 위해 먹는 시대 ②먹기 위해 사는 시대 ③건강을 먹는 시대

    우리 사회는 지난 108년 동안 일제 강점기, 광복과 분단, 6·25전쟁, 산업화 등 굴곡의 변화를 겪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밥상의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의 밥상은 ‘살기 위해 먹는 시대’에서 ‘먹기 위해 사는 시대’를 거쳐 ‘건강과 즐거움을 찾는 시대’를 향하고 있다. 1900년대 초반 개화기 조선의 밥상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1800년대 후반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가 잇달아 농작물 생산이 부진했다. 그나마 수확한 쌀은 부패한 왕실과 관료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인구의 80%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풀, 감자, 나무열매에 잡곡을 섞어 끓인 죽 등으로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기 어려웠다. 1895년 동경의학잡지에 실린 한인 상식(常食) 조사표는 조선 중류 서민층의 7일간 식사를 관찰한 결과 1일 2식을 했다고 적고 있다. 1910년 국권을 일제에 빼앗기면서 ‘밥상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농민 대부분이 논밭을 빼앗긴 채 소작인으로 전락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곡물 수탈은 한층 심해졌고, 서민들은 영양 불량에 시달렸다.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가사과 교수였던 방신영(1890~1977)이 1952년 펴낸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을 보면 당시의 중하위 계층을 위한 권장 식단표가 나온다. 하루 두 끼 정도만 밥을 먹고 나머지 한 끼는 국수, 수제비, 찐빵, 고구마 등으로 해결하도록 제시돼 있다. 동물성 단백질 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생선 조림이 유일하다. 식량 부족은 미국의 원조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 우리 정부는 1955년 미국과 협정을 맺고 1964년까지 밀, 보리, 쌀 50만~60만t을 들여왔다. 이는 당시 국내 총 곡물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양이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기는 본격적으로 먹기 위해 사는 시대였다.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1인당 연간 밀가루 소비량이 1965년 13.8㎏에서 1969년 28.7㎏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1963년에는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되면서 라면으로 한 끼를 대신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영양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했다. 1962년 영양권장량이 처음 제시됐다. 25살 남자의 표준 영양권장량은 하루 에너지 2900㎉, 단백질 70g이었지만, 당시 국민 평균 하루 공급 열량은 1923㎉, 단백질 53.2g으로 기준치에 크게 못 미쳤다. 1972년 개발된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의 보급으로 쌀밥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쌀이 풍족해지자 밥상은 양보다 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곡류 위주의 식단에서 벗어나 동물성 식품, 우유, 과일의 소비가 급증했다. 이런 경향은 1인당 연간 식품 공급량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쌀의 1인당 연간 공급량은 1975년 119.8㎏에서 1979년 136㎏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격히 감소했다. 2009년에는 81.3㎏으로 최고점 대비 54.7㎏이나 줄었다. 반면 육류 소비는 1975년 9.3㎏에서 2009년 43.3㎏으로 4.7배 늘었고, 같은 기간 우유류는 4.4㎏에서 53.3㎏으로 12배 이상 증가했다. 과일도 1975년에는 1인당 14㎏ 정도 먹었지만 2009년에는 47.7㎏으로 4.3배 증가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밥상의 서구화가 본격화됐다. 2010년 3840가구를 대상으로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한 결과 주 5~6회 외식을 하는 사람이 26.6%였고, 하루 1회 이상 외식하는 비율도 25.3%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문화마당]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우리 한국인들은 역사를 좋아한다. 사극의 인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인은 또 역사를 잘 기억한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지혜와 교훈 얻기를 강조한 유교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안의 족보를 줄줄 외는 데 이르면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인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매우 특이하다. 어떤 사람의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역사적으로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런 선택이나 행동을 했는가인데, 거의 모든 한국인은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인은 대개 자기 조상을 직함(관직)과 가문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무슨 김씨, 무슨 이씨 식의 집안 배경은 기본이고, 조선시대 조상은 무슨 참판, 어디 부사 식으로 기억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라면 판검사·교수·장교·회장 등 어떤 직위로 기억한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의 조상을 기억하는 방법도 가문과 직함이다. 역사적 환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식민지 때 할아버지가 공안검사를 했어도 ‘식민지’라는 환경은 탈각되고 ‘검사’라는 직위로만 기억된다. 나는 미국에서 15년 살면서 미국인들이 자기 조상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기억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중등학교의 역사교육은 참 재미있다. 미국인들도 자기 가족의 뿌리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조상을 대개 역사적 사건과 결부해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 과목 숙제가 대개 그런 식이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이 다가오면 인권운동과 반전운동 그리고 히피문화가 휩쓸던 1960년대를 사신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을 인터뷰하는 숙제가 나온다. 이런 교육관과 역사관 때문일까? 미국인들은 대개 자기 조상이 언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의외로 잘 안다. 직함(직업)도 물론 알지만 직업 자체보다는 언제 무슨 일을 했는가에 중점을 두며, 평가에 대한 책임도 자기가 진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싫어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런 내용의 발표를 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나의 정당한 견해로 존중해 준다. 중요한 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벌어지는 학습과 토론이다. 선생은 그 과정을 인도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제공할 뿐이다. 족보를 달달 외우는 한국인조차도 자기 증조부와 조부와 부친이 1895년에, 1905년에, 1919년에, 1945년에, 1948년에, 1950년에, 1972년에, 1980년에, 1987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른다. 살아 숨 쉬는 긴박한 역사 현장에서 조상이 순간순간 내렸을 선택과 그 선택의 근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일생 지녔던 직함 가운데 최고의 직함만으로 조상을 기억한다. 그 직함을 둘러싸고 있던 역사적 환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1945년 이후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땅에서 역사 청산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런 ‘몰역사적’인 역사관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가장 몰역사적인 방법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이상한 사회다. 그러니 국가의 중책을 맡은 공무원들도 역사의식이 약하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서명하는 외교문서가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면서 막 서명해 버린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아무도 그 행위를 시대 상황과 결부지어 되묻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산은 변해도 직함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대통령조차도 아무 외교문서에나 서명하는 판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역시 ‘대통령’이라는 직함으로만 기억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한·일군사정보협정이 이런 역사인식의 결정판이다. 역사를 ‘몰역사화’하는 이런 나라에 과연 어떤 희망이 있을까? 직함으로만 조상을 기억하는 사회라면 이완용이라고 해서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우리 모두 역사를 역사답게 공부하자.
  • 민주 대선주자들 “내가 박근혜 이길 적임자”… 더 빨라진 발걸음

    민주 대선주자들 “내가 박근혜 이길 적임자”… 더 빨라진 발걸음

    문재인·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 그리고 정세균·김영환·조경태 의원 등 민주통합당 대선주자들은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각각 “내가 박근혜에 맞설 적임자”라며 본격적인 후보 따내기 경쟁에 들어갔다. 주자들은 우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행보가 오는 8월 25일 시작돼 9월 23일 끝날 당내 경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부 주자 측은 “안 원장이 이달 말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9월쯤 대선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2단계 정치 참여론에 주목하며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기류다. 지난 6일 리얼미터 등 각종 대선주자 다자간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안 원장이 야권 주자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 안 원장이 15.0%로, 15.8%의 문재인 고문에게 뒤진 것이 예외일 뿐이다. 당시 조사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은 43.3%로 여야 주자 중 부동의 1위였다.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는 3, 4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김 전 지사가 8일 대선출마를 선언, 출마선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김 전 지사는 지난 2일과 지난달 14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만 손 고문을 앞섰을 뿐이다. 안 원장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연히 민주당 경선이 끝날 경우 안 원장과의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안 원장이 지지율 추이를 보며 민주당 경선 전후 민주당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래서 안 원장과 파트너십 확보 경쟁도 예상된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이날 비전 제시 경쟁을 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계보의 당내 모임 민주평화국민연대 초청 간담회에서 “저는 대통령이 되면 5년 내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며 부패 척결 의지를 천명했다. 특권, 반칙, 부패를 청산하는 ‘문재인의 역사’를 반드시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문 고문은 “지난 5년 새누리당 집권세력은 특권, 반칙, 부패의 총체적 집합체였다.”고 박근혜 전 위원장을 겨낭한 뒤 “새누리당 집권세력이 이러한 참담한 5년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고 있다. 당 이름 바꾸고 후보 바꿔서 심판을 피해가려는 또 다른 반칙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자신하면서 “다만 전제가 있다. 김대중 세력, 노무현 세력, 김근태 세력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이날 “개발독재시대의 시혜적 복지가 아닌 국민기본권으로서의 복지를 실현해 나가겠다.”며 청년, 보육, 노인, 주거 등 분야별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한국사회복지회관 회의실에서 개최한 ‘저녁이 있는 삶’ 3차 정책발표회를 통해 “복지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고 저녁이 있는 삶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손 고문은 복지분야 대표 정책으로 부모와 정부가 함께 저축해 청년들에게 목돈을 안겨주는 청춘연금과 ‘맘(MOM) 편한 세상’ 보육정책, 그리고 어르신 주치의 제도 도입과 공정한 전·월세 제도 등을 내놓았다. 청춘연금은 부모와 정부가 함께 저축해 성인이 될 때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금이다. 손 고문은 다음 주 교육을 주제로 4차 공약 발표회를 한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이날 남북분단의 상징지역인 경기도 파주 임진각과 도라산역을 찾았다. 지난 8일 출마 선언 뒤부터 시작한 희망대장정의 일환이다. 그는 이어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과 북이 협력해 북방경제시대를 열어야 하고, 남북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구상도 밝혔다. 김 전 지사는 조만간 유류비·통신비·주거비·교육비·의료비 절감을 핵심으로 하는 5대 생활물가 안정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행보를 한다. 또 학비걱정 없는 나라, 사회적 자원과 일자리 창출 연계, 노후 보장, 새로운 분권 시대, 한반도 경제공동체 등을 뼈대로 하는 7대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들도 발표한다. 이춘규 선임기자·이현정기자 taein@seoul.co.kr
  • [특파원 칼럼] 韓中수교 20년에 보는 ‘역사 갈등’/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韓中수교 20년에 보는 ‘역사 갈등’/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한국에서도 단오절을 지내죠? 주로 뭘 하나요?” 지난 단옷날(6월 24일) 즈음 홍콩 언론사에 근무하는 한 중국 본토인 기자가 건넨 질문이다. 베이징(北京)시 신문판공실이 외신 기자들(홍콩, 타이완, 마카오 포함)을 베이징의 관광 명소인 이화원으로 초청해 경주용 배인 용주(龍舟) 타보기, 나뭇잎으로 싸서 찐 찹쌀밥인 쫑즈(?子) 만들기 등 단오 풍습을 체험하는 행사를 통해 단오가 중국의 전통 명절임을 각인시키는 자리였다. 행사의 취지는 물론 중국 기자의 질문에도 한국에 단오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심기가 여실히 묻어 있었다. 실제로 적잖은 중국인들에게 단오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을 기리는 데에서 유래한 전통 명절이라기보다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하는 초강력 기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8월부터 1년간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공부했던 중국 대학원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 중 하나 역시 단오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유래한 한국 고유의 명절은 도대체 뭐가 있느냐.’는 공격적인 이슈로 이어질 만큼 강릉단오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국을 중국 문화의 약탈범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한국의 단오는 중국의 굴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옷날의 성격에 맞게 개발한 지역 민속 축제를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이어서 중국의 명절을 한국에 빼앗겼다고 우려할 필요도, 더더욱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일부 중국 학자들도 이같이 주장하지만 악화된 정서를 돌이키기엔 역부족이다. 당장 지난 3일 ‘고대 중국 화폐에 한글로 보이는 두 글자를 찾아냈다.’고 밝힌 한국의 한 주역 연구가의 주장이 전해지면서 반한 감정이 들끓었다. 한국에선 눈길도 끌지 못한 이 학설이 중국에선 “한국이 중국 고화폐에 한글이 있다고 또 우긴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 4일 하루에만 ‘한국의 중국 문화 도적질’이란 비난성 댓글이 무려 2000만건도 넘게 올라왔다. 앞서 한자(漢字), 공자(孔子) 등 한국인이 보기에도 황당한 출처 모를 문화 기원에 관한 오해가 응어리처럼 깊게 축적된 탓이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동참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한·일정보협정 문제는 외교문제를 넘어 반한 여론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중국에서 큰 돈을 벌면서도 틈만 나면 미국과 손잡고 중국의 뒤통수를 치려 한다.’는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쉽게 조성된다. 2007년 신화통신 계열의 신문이 실시한 국가 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은 중국인이 싫어하는 국가 1위에 처음 꼽힌 이후 지금도 네티즌들로부터 주요 비호감 국가로 거론된다. 물론 한국인의 중국 혐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역사 문제로 따지자면 할 말이 더 많다. 중국이 한국의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킨 동북공정이나, 동북공정을 완성하기 위한 만리장성 늘리기 공정이 대표적이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민족·영토 통합용으로 내놓는 주장이라지만 역사를 입맛대로 왜곡하는 행위는 몰상식하다. 분단의 아픔을 초래한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란 이름으로 부르며 위대한 승리로만 부각시키는 것은 한국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역사 문제는 민족의 자존심이나 긍지와 연결돼 있어 이성을 마비시키고 민족주의를 고조시킨다. 협상의 여지가 없어 해소되지도 않고 작은 계기만 있어도 거대한 혐오의 불길로 번지기 쉽다. 올해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 20주년을 맞지만 양국 관계는 성숙되기보다 역사 문제로 서로 반감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단옷날에 대한 중국인의 질문에 뭐라 말하면 현명한 답이 될까. 인식이란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양국이 역사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수교 20주년을 맞아 곰곰이 생각해 본다. jhj@seoul.co.kr
  • [서울광장] ‘쓸모있는 바보들’을 위한 변명과 고언/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쓸모있는 바보들’을 위한 변명과 고언/구본영 논설위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서 파생된 종북 논쟁 탓일까. 요즘 이석기 의원이 단연 뉴스메이커다. 그는 며칠 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농민 집회에서 뜻밖의 수모를 당했다. 시위 농민들로부터 “애국가도 싫다면서 왜 여기 왔느냐.”는 힐난을 들으며 멱살을 잡혔다. 진보논객 진중권 교수 말마따나 “진보정당 의원이 민중에게 멱살 잡힌 상징적 사건”이었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어졌다지만, 서울광장의 농민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까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인 셈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바람보다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민초들이 말이다. 이들이 소위 먹물들보다 19대 국회의 몇몇 의원들에게 드리워진 이념 과잉의 불길한 그림자를 먼저 읽었던 모양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자격심사를 통해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퇴출하려 한다는 소식이다. 두 의원이 진짜 걱정해야 할 건 국회에서 쫓겨나는 일보다 자신들의 행태가 보통 시민의 상식으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이 아닐까. 반미·자주파(NL), 즉 주사파는 분단이 빚은 희생양일지도 모르겠다. 엄혹한 권위주의 정권에서 배양됐다는 점에서다. 1980년대 광주의 비극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등장에 절망한 청년 학생들 중 일부가 ‘적(敵)의 적은 동지’라는 착각에 사로잡혔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상은 한참 변했는데 당시의 굴절된 인식이 아직도 박제돼 있다면 딱한 노릇이다. 물론 이석기 의원이 여전히 민혁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당시의 반미·자주 이념에 갇혀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그의 발언에서 과거와 절연하지 못했음이 감지될 뿐이다. 특히 “종북보다 종미가 더 문제”라며 논점을 흐리는 그의 언사를 보라. 북한 인권이나 세습체제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말끝을 흐리는 NL계 인사들의 화법 그대로다. 우리 학계에서 지난 십수년간 ‘내재적 접근법’이 시류를 탔다. 즉, “북한 내부의 눈으로 북한체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재독 학자 송두율이 원조다. 순수 학문적 맥락에서 북한체제의 과거를 해부하고 앞으로의 행로를 진단하는 데는 얼마간 유용성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라야 했다. 북한체제의 폭압성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지 말아야 했다. 오로지 김씨 왕조의 관점으로만 보면 주민에 대한 인권유린이나 북핵조차 용인하는 종북적 행태로 귀결될 게 불문가지다. 사실 이념의 다양성 보장은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의 징표일 수 있다. 2차 대전 전까지 의회민주주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1000만명의 소련인들을 희생시킨 스탈린체제를 옹호했던 웨브 부부나 버나드 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작 레닌은 공산혁명에 활용할 만한 서방의 이런 좌파 지식인들을 ‘쓸모있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했다. 반면 작가 조지 오웰은 타고난 좌파였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성실성과 함께 스탈린체제를 ‘동물농장’으로 고발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비유는 적실하다. 시장경제나 자유주의가 만능일 순 없다. 얼마 전 1인당 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000만명을 뜻하는 20-50클럽에 가입한 대한민국도 여전히 문제투성이다. 그래서 여당 내에서 진행 중인 경제민주화 논쟁도 보수적 시장메커니즘이 진보적 가치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을 게다. 그렇다고 해서 수령론이라는 봉건왕조적 뼈대에 스탈린주의의 외피를 입힌, 북의 세습체제를 추종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북한주민을 보면서도 종북주의를 털어내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19대 국회에 그런 ‘쓸모있는 바보들’이 있는게 사실이라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난 주체사상을 내려놓든가, 아니면 국회를 스스로 떠나야 한다. 그것만이 진보의 순정을 살리는 길이다. kby7@seoul.co.kr
  • 野 “정보협정 3적, 총리·외교·국방장관 파면하라”

    민주통합당은 5일 국회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 완전 폐기를 위한 원탁회의를 열어 이날 밀실 처리 논란으로 사퇴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뿐 아니라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관진 국방장관을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3적(賊)으로 규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와 함께 이들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와 독립지사 후손 국회의원이 주축이 된 원탁회의는 “한·일 정보협정은 광복 이후 일본과 맺는 최초의 군사 관계로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고,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국민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려다 이명박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한·일 군수지원협정은 차후에 하고 정보보호협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신냉전 체제를 가져올 수 있는 외교적 참사”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친손자인 이종걸 의원은 “김태효 기획관이 엄청난 파문만 일으키고 사퇴했다.”며 “대한민국 안보라는 이름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이 대통령의 안보 불감증이 재확인됐다.”고 말했다. 원탁회의에는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장,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우재 매헌윤봉길 월진회장,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6·25전쟁과 인구 5000만명 시대/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국민대 겸임교수

    [옴부즈맨 칼럼] 6·25전쟁과 인구 5000만명 시대/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국민대 겸임교수

    한해의 절반이 지났다.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결산하고 하반기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7월이다. 개인적 결산 외에 국가적 의미에서도 6월 말을 기점으로 되새기고 준비해야 할 연대기적 사건 보도가 잇따라 있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해 세계 7번째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했다는 6월 23일 자 보도와 한국전쟁의 상흔을 되새겨 보는 25일 자 ‘62주년 6·25전쟁 보도’가 그것이다. 6·25는 아직도 종북파 논쟁이 핫이슈가 될 정도로 ‘이념 대치’가 끝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잊혀진 전쟁’이 되어선 안 될 우리 역사의 상처다. 계속되어야 할 관심과 탐구의 대상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인구 5000만 시대 도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온고(溫故)의 대상이 6·25전쟁이라면, 지신(知新)은 인구 5000만명 시대 도래였다. 2012년 하반기를 열며 언론의 이 두 가지 보도 태도를 통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서울신문의 보도는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25일 자 1면 사이드로 ‘포화로 한쪽 벽만 남은 가정집’ 사진을 싣고, 2면 전면을 할애한 ‘청소년 57%, 6·25 발발 연도 모른다’라는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 6·25 소년병 생존자들의 참전명예수당이 12만원으로 재일 학도 의용군의 98만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논란, 이명박 대통령의 6·25 참전국 보은 순방차 콜롬비아 국빈방문 기사를 각각 실었다. 27면에는 6·25 참전용사에게 무공훈장 찾아준 홍성태 예비군 연대장 인터뷰, 한국전 참전 보답차 에티오피아에 교육후원한다는 한양대 기사, 31면에 6·25전쟁과 서울의 한옥 칼럼이 게재됐다. 다른 신문보다 지면 할애의 양적 면에선 앞섰지만, 질적 면에선 아쉬운 감이 있었다. 머리를 짜내고 발로 뛰어 준비한 자체 기획기사, 특집기사보다는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한 평면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남북분단 상황이 오늘날 가지는 의미, 천안함, 연평해전 등 남북관계로 확장해 6·25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심층탐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칼럼이나 기획기사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6·25는 사설이나 칼럼에서도 우선순위에 밀렸다. 그나마 CEO칼럼에서 ‘6·25전쟁과 서울의 한옥’을 다루었지만, 한옥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에 그쳤다. 도하 각 신문의 관련 보도 태도 또한 이 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설에서 ‘6·25전쟁 62주년’을 주제로 다룬 신문은 2개사(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정도에 불과했다. 국민일보가 관련 칼럼을 다룬 것이 고작이었다.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청소년 세대가 그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억조차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갈수록 이 같은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6·25를 ‘과거 역사책 속 흑백삽화’로 다루거나 무관심한 기성세대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과거에 매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미래를 준비하는 새 패러다임으로 주목할 역사적 사건은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 돌파였다. 서울신문은 발 빠르게 ‘메이저 코리아, 고령화가 덫’이란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다뤘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하는 의미와 대처방안에 대해 공격적으로 지면을 편성해 1, 2, 3면을 할애하고 심층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인구 5000만명 시대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다양하고 깊게 조망하고 의미와 추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함께 소개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는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고령화·저출산의 문제, 경북 군위군의 성공사례 등을 이론적 측면에서부터 실제 성공사례까지 다루는 전방위적 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 손학규 “한나라 주홍글씨, 죗값 치르겠다”

    손학규 “한나라 주홍글씨, 죗값 치르겠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손학규(얼굴) 상임고문은 3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아직도 따라다닌다는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에 입당한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간담회에서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제가 한나라당에 간 데 대해 근태가 못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을 것을 잘 안다. 못내 용서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손 고문은 “제가 젊어서부터 추구한 민주주의 가치,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그동안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갚고자 한다.”고 말했다. 민평련은 고 김 상임고문이 이끌던 모임으로 고 김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0여명이 소속돼 있다. 민평련은 대선후보 간담회를 통해 후보 검증을 한 후 8월 초에 지지 후보를 선언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약한 손 고문의 경우 민평련이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비교우위를 묻는 질문에 손 고문은 “유신체제하에서 성 속에서 퍼스트레이디로 살면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몸 던지고 서민, 빈민들과 함께 생활해 온 통합의 리더십이 결국 국민들이 요구하는 리더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의 속살을 들추다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의 속살을 들추다

    강원도 동쪽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은 ‘분단국가 분단도 분단군’과 같은 곳이다. 그 상황이 마치 갈라진 한반도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고성은 서쪽으론 백두대간이, 북쪽으론 동족상잔의 전쟁이 만들어 놓은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이 가로막아 지금도 개발이 제한된 땅이 많다. 하지만 그 제약 덕분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켜낼 수 있었다. EBS 한국기행은 6일까지 매일 밤 9시 30분에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감춰진 비경이 더욱 많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고장 고성을 소개한다. 3일 방송되는 ‘여기도 금강이라네’ 편에선 금강산 1만 2000봉의 첫 봉이자 금강산 줄기의 시작인 신선봉(1204m)을 소개한다. 신선봉엔 1300년 역사의 고찰 화암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절에는 자연재해로부터 절을 지켜 준다는 수바위가 있는데 여기에서 쌀이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3138칸, 사방 10리를 자랑했던 대가람 금강산 건봉사는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소실된 상태다. 그 때문에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능파교와 일주문인 불이문뿐이다. 건봉사 안에 자리한 등공대 길 역시 곳곳에 치열했던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다. 이를 건봉사의 문화해설사인 최점석씨와 함께 만나본다. 4일 방송되는 ‘청정 고성의 맛있는 여름’ 편에선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항의 해녀들이 이맘때쯤 바다 밑으로 들어가 따오는 성게를 소개한다. 성게와 바다향 가득한 공형진항 미역으로 끓인 성게 미역국은 별다른 양념이 필요 없는 고성의 참맛. 청정의 맛은 바다에만 있지 않다. 강원 인제와 고성을 잇는 태백산맥의 고개 진부령에 자리한 소똥령 마을의 맑은 계곡 칡소에서 즐기는 여름 천렵과 민물 매운탕도 있다. 모내기 철이 끝난 기념으로 망중한을 즐기는 마을 주민들을 만나 본다. 5일 방영되는 ‘바다가 만든 호수길’ 편에선 석호인 화진포호와 동해바다 사이에 끼어 시작되는 화진포 갈래길을 소개한다. 화진포 갈래길 곳곳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기암괴석들은 바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 온 작품이다. 이 풍경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바다 위의 정자 청간정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연석호인 ‘송지호’. 이곳엔 섬진강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재첩이 있다. 이 재첩은 송지호를 품은 죽왕면의 마을주민들만 채취할 수 있다. 재첩으로 끓인 재첩 칼국수까지 함께 맛본다. 이어 6일 ‘꿈에 본 내고향, 고성’ 편에선 평안남도 순천이 고향인 코미디언 남보원 씨가 7번 국도를 따라 고성 8경 중 하나인 천학정을 비롯해 여러 명소를 소개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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