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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北, 공동선언 이행 요구보다 대화가 먼저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어제 신년사에서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남측에 주문했다. 대규모 경제지원을 뜻하는 것이겠으나, 북측은 이를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자각해야 한다. 무력도발의 허튼 미몽을 접고 남북협력 분위기 조성을 위한 대화 채비를 서두르란 뜻이다. 올해로 6·25 정전 체제가 60년을 맞았다. 강산이 여섯 차례나 바뀌었을 긴 세월이다. 이 기간 남북은 첨예한 무력 대치 속에 각자 제 길을 걸었고, 그 결과는 수치상 비교할 수 없는 국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2011년 기준으로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GNI) 32조 4380억원은 남한 1240조 5000억원의 38분의1에 불과하다. 무역액은 무려 171배나 차이가 난다. 22만㎢의 좁은 땅덩어리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닌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와, 인구의 3분의1인 800만명이 일상적 굶주림에 신음하는 지구촌 최빈국 중 하나가 적대적 공존을 이어가며 180여만명의 병력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게 분단 65년, 종전 60년이 만들어낸 한반도의 초상이다. 물론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대치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힘겹게 펼쳐왔다. 통일을 목표로 상호 불가침을 약속했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발전시키기로 다짐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대규모 경제협력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1968년 무장공비 31명의 청와대 기습을 비롯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북한의 무력도발은 끊임이 없었고, 그때마다 애써 쌓아올린 남북 간 합의와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금도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염두에 둔 채 위성 발사를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자행한 데 이어 3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우리 새 정부를 시험하고 있다. 1953년 계사년에 시작돼 어느덧 60갑자를 일순한 정전체제, 남북 대치의 분단사도 이제 변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을, 자신들의 잇단 도발로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굳게 닫힌 대화의 문을 다시 활짝 열 기회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각종 남북공동선언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진정성 있는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수차 남북대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북측은 대화 재개, 교류 및 협력 확대, 남북 간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의 선순환 구조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의 과제] (2)잠재성장률을 올려라

    우리 속담에 ‘3대 가는 부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물려받은 재산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상당 기간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종 자원이 풍부하거나 내수시장이 큰 부자 국가는 위기가 몇 년 지속돼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물려받은 재산이 변변찮은 ‘자수성가형’ 국가는 위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일정 정도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1%(추정치) ‘저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자칫 2%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잠재성장률을 계속 밑도는 수준이다. 1일 기획재정부와 국내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 중후반이라는 게 대체적인 공감대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현대경제연구원은 3.8%, 삼성경제연구소는 3.6%를 제시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추산치는 3.4%로 가장 낮다. 한국은행과 KDI, 현대연 등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10% 정도에서 1980년대 8~9%로 하락했다. 1990년대 들어 6~7%로 다시 떨어졌다가 1997년 환란을 계기로 4%대 후반으로 급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3% 후반대로 더 쪼그라들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KDI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2.9%, 2031년부터 2040년까지 1.9%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연은 같은 기간 각각 2.8%, 2.2%, LG연은 2.8%, 2.5%를 제시했다. 해외 시각은 더 비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11년부터 2030년까지 2.7%를 기록한 뒤 2030년 이후 30년간 1.0%로 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0%의 잠재성장률은 국가 부도 상태인 그리스(1.1%)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2.1%), 영국(2.2%)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2031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1년 대비 3.4% 포인트나 떨어질 것으로 OECD는 예측하고 있다. 이는 룩셈부르크와 더불어 34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가파르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2.0% 포인트), 호주(-1.0% 포인트) 등보다도 감소 폭이 크다. 멕시코(0.6% 포인트), 일본(0.7% 포인트) 등은 되레 잠재성장률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차(국가)의 속도(잠재성장률)를 높이려면 더 많은 땔감(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을 넣는 동시에 엔진(생산성) 효율을 높여야 한다. 생산성을 단기간에 높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요소 투입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요소 투입 감소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비극’에 직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 부문은 외환 위기 이후 급격한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실질 고정투자 증가율은 1970년대 연평균 17.8%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설비투자가 아예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 비율 역시 1980년대 1% 미만에서 2010년에는 8% 안팎까지 뛰어올랐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약화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656만명인 국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돼 2060년에는 2187만명으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역 조건 악화에 따라 수출로 인한 실질 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성장 동력인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 비중이 2000년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어 신성장 산업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를 늦추려면 지금까지 주춤했던 자본 축적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실효성 있는 투자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용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업종의 육성도 과제로 꼽힌다. 제조업으로 고용과 성장률을 늘리기에는 우리 경제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육박하는 싱가포르의 전례처럼 투자 대비 실적이 높으면서도 고용 효과가 큰 금융과 교육, 의료, 관광 등의 서비스 업종 발전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통일도 잠재성장률 확충에 도움이 될 변수로 꼽힌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인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2050년 기준으로 통일이 될 경우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67.9%에서 70.2%로 증가한다. 반면 노인인구 비중은 22.1%에서 17.2%로 크게 감소한다. 대북 설비투자 증가와 분단 비용 감소 등도 이점으로 지적된다. 최광해 재정부 장기전략국장은 “2030년대에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통일 비용에 따른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이 0.86∼1.34% 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용어클릭] 잠재성장률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 능력.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어느 정도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나라는 속도가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열린세상] 북한 위성의 궤도 진입으로 본 남북관계/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전 스위스 대사

    [열린세상] 북한 위성의 궤도 진입으로 본 남북관계/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전 스위스 대사

    지난 12월 12일 북한의 은하3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북한은 구소련,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이란에 이어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10번째 국가로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했다. 우리는 2018년에나 가입한다는 계획이어서 로켓 기술의 격차가 이렇게 컸는지 놀라움을 주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발사 전날까지도 이 로켓이 궤도 진입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과 북한의 위성기술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관한 정보파악 능력이 의문시된다. 부족한 정보를 갖고 우리의 잣대에 따라 희망적 사고로 북한을 평가해 온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 중대한 사건은 대선을 치르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야 모두 북한의 성공을 평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현 정부도 정보 오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도 대선에 집중하고 싶었을 것이다. 국내정치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은하3호의 성공은 매우 심각한 안보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김정일이 호언하던 강성대국의 실체이다. 북한은 지난 4월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면서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고농축 우라늄(HEU)도 상당히 진척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하3호는 1만㎞ 이상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머지않아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하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탄(ICBM)이 미국을 사거리에 두게 된다. 미국도 북한을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남북관계에서 힘의 균형도 변화될 수 있다. 한국도, 미국도 대북관계를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둘째로, 은하3호는 정통성과 경륜이 부족한 김정은의 세습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김정일이 예상보다 빨리 사망하면서 남긴 경제 파탄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는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하면서 순항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에는 핵을 내세워 협상을 제의하고 경제적 대가를 흥정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식 경제발전으로 경제가 차츰 좋아지면 28세의 김정은 체제는 30년 이상도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우리가 진정 희망하는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 분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은 몇 차례나 붕괴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후 시간을 벌면서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가뭄과 홍수로 200여만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으로 판단하고 ‘연착륙’이라는 유화책으로 경수로를 지어주었으나 북한은 붕괴되지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도 않았다. 한국의 정세 오판과 왜곡된 대북정책의 결과이다. 분단을 관리하는 비용이 통일비용보다 적지 않음을 상기해야 한다. 넷째, 북한이 군사대국을 자신한 데는 남한의 정치가 한몫을 했다. 국내 정치판이 좌우로 시계추처럼 요동치고, 응징을 뒷전으로 한 유화책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시간벌기와 함께 경제적 보상을 받으면서 핵과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사활적 국가이익인 안보와 대북정책은 국내정치가 출발점이며 초당적 외교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내년 2월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는 과거와 같이 유화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거나, 시간이 흐르면 붕괴 조짐이 나타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은하3호의 충격을 계기로 사실에 기초한 한반도 안보균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남북관계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필요하면 대선공약도 수정, 보완해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화와 제재를 병행해야 할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하지만 우리 측이 서두를 이유는 없다.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화를 내세우고 나중에 압박하는 것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으로 효과도 없다. 새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기대해 본다.
  • 동아시아의 유구한 관료제, 민주주의 장애물

    동아시아의 유구한 관료제, 민주주의 장애물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역사적 아픔 때문이라 한다면 어떨까. 역사를 해석할 때 어떤 대목을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지나치게 자학하는, 자존감 부족에서 나오는 조울증 같은 태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다른 얘길하다 툭 던져둔 문장 하나가 가슴을 때린다. “위기가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형성해온 기질 자체에 위기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근대성들’(알렉산더 우드사이드 지음, 민병희 옮김, 너머북스 펴냄)은 근대성을 중국, 베트남, 한국 3개국 간 비교 설명으로 파고들었다. 근대성을 분석하겠다는 대상은 동아시아 3개국이고, 수식어는 ‘잃어버린’이고, 복수형 표현 ‘들’을 붙였다. 이쯤이면 ‘서구 중심의 일직선상 역사 개념으로서의 근대’에 대한 비판이란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저자도 “자본주의자들 및 그들과 연계된 산업과 과학 부문만이 근대성의 유일한 창출자라고 보는 식의, 세계사를 자본주의의 역사로만 축소시키는 접근방식”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동아시아는 과연 몇시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뒀다. 여기까지였다면 사실 좀 뻔한 얘기다. 저자의 차별성은 서구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혐오와 반성(?) 차원이건, 해당 지역 연구자로서의 단순 립서비스(?) 차원이건 ‘앞으론 동아시아 시대!’라는 식의 뻔하고도 지겨운 레퍼토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열관계가 싫다고 역우열관계를 그려내는 대신, 저자는 민주주의에 방점을 찍는다. 동아시아의 오래된 근대성에는 오늘날 서구사회가 배워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 오랜 근대성에는 민주주의가 없어 동아시아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복해보자. 위기는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형성해온 기질 자체”에 있다. 이 미묘한 균형감각이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해준다. 저자는 ‘이원제 시대’란 표현을 쓰는 데 우리에게 더 익숙한 표현은 ‘근세’다. 서양사에선 이 시기를 17~18세기쯤으로 본다. 신분, 혈통, 봉사의 중세봉건사회에서 공부, 지식, 성취의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는 사이에 낀, 짧은 기간이다. 이 잣대를 동아시아사에 가져다 대면 어색해진다. 중국, 베트남, 한국 등 3개국의 근세는 10~12세기쯤 이미 시작됐고, 14~15세기쯤 성숙한 형태를 갖췄고, 19세기까지 지속됐다. 사이에 잠깐 끼어 있다기엔 길어도 너무 길다. 그러니 중세와 근대가 병존했다는 의미에서 이원제 시대라 불러뒀다. 근대적 요소가 그렇게 일찍 나타났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식 관료제’,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된 학자-관료가 정치가나 행정가의 지위에 오르는 제도의 채택이다. 이는 동아시아 3개국이라면서 일본 대신 베트남을 집어 넣은 이유와도 연결된다. 일본은 유학을 거부했고, 따라서 과거제와 관료제가 없었다. 저자는 인문학 열풍 시대를 맞아 오늘날 우리가 즐겨 입에 올리는 유학이나 유학자의 뛰어난 주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저자의 초점은 유학의 존재 자체가 상징하는 바, 그러니까 “책에 기반을 둔 박식함, 이 세상을 순전히 행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전통적인 관료주의 신념”이다. 능력있는 행정으로 존경을 얻는다는 관념, 그 능력을 표준화된 시험을 통한 선발로 가려낼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더 의미있다는 것이다. 유학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관료제는 관료제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여러 문제와 부딪힌다. “관료들의 자부심이 귀족적 덕성을 성공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에 따른 것이 아닌” 시대에 유학은 “점점 더 빈약해져만 갔던 관료들의 자부심을 관료제 이전의 윤리를 통해 고양시키려 했던 위대한 실험장”이었기 때문에 가치 있다. 주의해서 볼 점은 “위대”하지만 여전히 “실험장”이라는 대목이다.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정치적으로 사회를 안정시키기보다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습 왕자는 아버지나 다름없지만, 여피족은 과도한 특권을 가진 동기간에 불과”해서다.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 말하지만, 차별이 능력에 따른 것이라 받아들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어느 수준 이상의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말이다. 그래서 “인식론적 독선”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품위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세습 재산과 사회적 지위보다 인식론적 독선에 의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벌·당파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극단성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 문제를 행정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중국식 관료제란 결국 모든 문제가 “이성적인 통제를 위한 관리자적 기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여러 이익집단과 이권이 정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위선”으로 연결된다. 이런 전통이 없는 서구에서는 정치가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 행동주의”에 매몰돼서 문제였다면, 동아시아에서 정치란 많이 배우고 훌륭하신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어서 곧장 “공중의 무관심”, “대립없는 소외”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귀족제가 지니고 있던 소소한 원칙들이 너무나 일찍 관료제 원칙으로 대체된 데 따른 대가”라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4장에다 ‘중국식 관료제와 경영이론의 위험한 만남’이란 제목을 붙여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음미할 내용이 수두룩한데, 한국인으로서 더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책 여기저기 흩뿌려둔 중국, 베트남, 한국 3개국 간 비교다. 저자는 3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봉건적이었다고 평가하는데, 그 이유와 의미는 직접 읽어 보길. 이 문제는 당연히 오늘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연결된다. 분단 상황을 감안해 저자의 질문을 흉내내자면, 북한은 지금 몇 시인가? 그리고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 다시 한번 더 반복해보자. 위기는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형성해온 기질 자체”에 있다. 필요한 건 조울증이 아니라 이 ‘기질’에 대한 깊은 시선이다. 동아시아 연구의 최고 권위자에게 주어지는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강의에서 2001년 발표한 내용을 보충해 2006년 출간된 책의 번역본이다. 1만 7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주가 여성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

    “공주가 여성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안도현 시민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은 2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해 “공주가 여성을 대표하는 일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하다.”고 ‘여성 대통령론’을 정면 공박했다. 시인인 안 위원장은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여성 지도자는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박 후보가 여성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물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여성지도자는 필요… 朴은 아니다” 그는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김지하 시인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하곤 좀 다르지 않겠느냐.”고 한 발언에 대해 “부모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어떻게 박 후보 혼자뿐이겠느냐. 그 사실만으로 본다면 박 후보는 인간적으로 측은한 후보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후보의 부모가 왜 총에 맞아 죽었나 이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20여년간 권력의 중심에서 분단 체제를 끌어왔고 장기 집권해 권력 누수 현상이 생겼다. 그 장본인이 박정희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박정희 군부 독재 유신에 항거한 대표 시인이 그 딸에게 지지를 표한 것은 안타깝지만 변절이라기보다는 오판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 절하했다. ●공지영 “文당선 염원” 단식기도 안 위원장은 이날 “작가 공지영씨가 문 후보의 당선과 성공적인 정권교체를 염원하며 12월 1일부터 12일 동안 단식 기도를 한다.”고 전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단 데뷔 50주년 맞아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펴낸 황석영

    문단 데뷔 50주년 맞아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펴낸 황석영

    “자생적 근대화운동의 기점이 1894년 동학혁명인데, 내년이 동학에서 말하는 상원갑 120년의 마지막 해다. 동학은 상원갑이 끝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하원갑이 120년간 지속된다. 길고 고통스러운 ‘근대’가 마감되고 어서 개벽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올해로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은 황석영(69)은 지난 22일 인터뷰에서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 펴냄)를 출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62년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곰곰이 생각한 뒤 그는 “‘황석영 아바타’를 만들자, 자생적 근대가 좌절된 시대를 배경으로 19세기 이야기꾼으로 살아간 몰락한 지식인 ‘이신통’의 이야기를 풀어 써 보자.”고 맘을 먹었다. 이신통은 조선시대 패관문학에 나오는 장풍운이나 괴짜 선비 정수동(1808~1858)과 같은 인물이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꼬박 7개월 동안 200자 원고지 1500장을 채워 나갔다. ●7개월간 200자 원고지 1500장 채워 ‘여울물 소리’의 화자는 박연옥이다. 어미인 구례네는 기생으로 시골 양반의 첩살이를 하다가 어린 연옥을 데리고 나와 색주가를 연다. 연옥도 어미의 삶을 닮은 듯 후처살이를 들어갔다가 아이 없이 3년 만에 도망 나와 구례네의 객주 일을 돕고 산다. 연옥에게 정인이 있었으니, 열 살이나 차이 나는 30대의 이신통이다. 20대 초반의 이신통은 어미가 종인 얼자 출신이었지만, 과거를 보겠다며 한양으로 도망치듯 집을 나와 전기수(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로 살아가다가 1882년 하급 군인들이 들고일어나 도시 폭동으로 발전하는 임오군란을 겪고 그 와중에 동학 도인들을 만나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혁명적 사상에 빠져든다. 그러니까 소설은 임오군란에서 갑오농민 혁명기의 망국을 앞둔 격변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임오군란은 봉건왕조로 대표되는 일부 기득권층과 세도정치에 대한 저항이었고, 조선이란 나라의 정체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또 갑오농민운동은 자생적 근대가 좌절된 이야기라서 이런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야 했던 서얼 출신의 지식인들과 도시 빈민, 하층 군인 등 중인 이하의 잡직에 종사하는 인물들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시대가 혼란하면 기층민은 삶의 무게에 시대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세월을 건너가야 했다. 황석영의 아바타 이신통을 제외하면, 여성 명창 심백화를 비롯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실존 인물이다. 심백화는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1847~?)을, 김봉집은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을, 천지교의 1·2대 교주인 최성묵과 최경오는 각각 천도교의 1·2대 교주인 최제우(1824∼1864)와 최시형(1827∼1898)을 말한다. 서일수와 박인희·박도희 등 동학 도인들도 모두 실존 인물들이다. 황석영은 “천도교를 천지교라고 하거나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은 역사적 사건을 피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시대 야담과 민담을 집대성한 ‘대동야승’(大東野乘) 등 패관문학과 역사책을 충분히 읽고 삭였다고 했다. ●서울 종로통 등 손바닥 보듯이 설명 ‘여울물 소리’를 읽는 또 다른 재미는 한성 도성 안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면서 서울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린낙지로 유명한 서울 종로통은 의금부와 서장옥이 있던 곳이다. 매운 낙지를 혓바닥을 호호 불면서 먹는 이유가 터가 센 곳인 탓 같다. 종로4가에서는 죄인을 효수했다. 홍제동에는 색주가가 많았고, 공덕동에는 주막이 많았다. 임오군란을 일으킨 군졸들은 이태원에서 주로 살았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나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는 ‘너는 서사가 많은 나라에서 살아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나는 ‘너도 한번 겪어 봐라. 얼마나 힘든데’라고 속으로만 응수한다.”면서 “서사가 많은 땅은 고통이 많은 땅인데, 이제 우리 민족도 고통스러운 근대를 마감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억압·고통 넘어 미래 맞이할 준비 필요 황석영은 “21세기를 포스트모던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동아시아 3국은 아직도 근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일본은 성공적으로 근대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적 상징인 천황을 넘어서지 못했다. 또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고 경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기형적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분단으로 근대적 민족국가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고 진단한 뒤 “근대의 상처가 대선 때마다 나타나고 있는데, 억압과 고통을 넘어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위기의 한국호 해법 전문가에게 묻다] (5-끝) 한반도 생존전략

    [위기의 한국호 해법 전문가에게 묻다] (5-끝) 한반도 생존전략

    최근 미국과 중국의 권력 교체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과거사·영토 문제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민족주의적 성향 등으로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가운데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주요 변수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강대국 관계의 향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남북 관계의 회복은 위기의 한국호에 또 다른 과제로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이 같은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며 다양한 제언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분단 국가라는 특수상황과 동북아의 불안한 안보환경 때문에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한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중의 경쟁 및 갈등 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같은 도전과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미 동맹과 더불어 한·중 간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냐를 주요 과제로 본다. 김열수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19일 “미국이 미얀마와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등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 향후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양한 초청·방문 외교를 통해 인적 관계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열수 교수는 “지난해 9월 서울에 마련된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은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초보적 메커니즘”이라면서 “한·미·중 대화체를 만들어 안보협력을 논의 할 수 있는 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중 관계가 충돌보다 협력으로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도 “한·미 동맹 일변도의 외교를 지양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까지 포함한 다차원적 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비해 정부의 위기관리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열수 교수는 “차기 정부는 2015년 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해 상부지휘구조 개편 등 국방개혁을 완수하고 국내총생산(GDP)의 2.7% 수준인 국방비를 3.5% 수준으로 증액할 필요가 있다.”면서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복원하고 위기관리실을 활성화시켜 전반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독한 한·미 관계를 차기 정부에서 이어 갈 방안도 제시됐다. 구 교수는 “미국은 재정적자로 인해 향후 약 10년간 5000억 달러의 국방비 삭감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과 국제평화유지 활동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평화유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 재협상론 등 국내 정치 이슈를 한·미 관계에 끌어들이는 태도는 동맹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美 합참의장 판문점 방문… 북한군 ‘비상’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이 방한 중 비무장지대(DMZ) 인근을 전격 방문하자 북한군에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12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에 따르면 뎀프시는 지난 11일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 등과 함께 판문점, 평화의 집 등을 둘러보고 현지에서 근무하는 한·미 양국 군장병들을 격려했다. 서울 용산기지 미8군 추모비 앞에서 열린 미국 재향군인의 날 행사 참석 차 방한한 뎀프시는 당초 항공편으로 비무장지대 인근 부대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날씨가 나빠 서울에서 육로를 통해 전방 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뎀프시 의장 일행이 판문점 내 회의장에 도착하자 북한군 장병들이 카메라를 든 채 허둥지둥 나타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미 국방부는 전했다. 북한군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병들은 뎀프시 의장 일행이 미군 관계자들로부터 현안 브리핑을 받은 뒤 회의장 북측으로 걸어가자 창문을 통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기도 했다. 뎀프시는 이 자리에서 자신과 서먼 사령관이 과거 독일 분단 시절 독일에서 국경 경비군으로 군대 생활을 시작했다고 소개한 뒤 “당시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던 국경은 이제 과거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뎀프시는 지난 7월 육군참모총장 겸 합참의장 내정자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도 판문점 JSA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뎀프시 의장은 이날 정승조 합참의장을 만나 양국 군사동맹 등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언급하며 “미국은 한국의 방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지만 지휘 관계는 변화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기고] NLL은 ‘실효적’ 영토선이다/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기고] NLL은 ‘실효적’ 영토선이다/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영토선은 영토의 경계를 구분하는 선이다. 북방한계선(NLL)을 영토선으로 간주하는 경우,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경우 ‘NLL=영토선’이란 주장은 헌법 제3조 소위 ‘영토조항’에 위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NLL을 영토선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인식의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까. 독도 문제를 보자. 독도가 자기들 영토라는 일본의 가당찮은 주장에 대해 우리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관계에 따라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로 중지를 모은 바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실효성’을 내세워 현명하게 논란을 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기밀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서해한국도서’라는 문서에 따르면 NLL은 1965년 설정됐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였던 1953년에 그어졌다는 우리의 상식과 괴리가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NLL은 ‘유엔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이 “한국 해군사령관의 지휘권 및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적용되는 선”으로 규정하여 선포됐다. NLL의 목적이 남측 해군이 북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여 북한과의 충돌을 피하자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NLL은 임의적 성격의 ‘적대적 수면분계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NLL이 설정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실효적’ 영토선으로 기능해 왔다. NLL을 영토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김대중 정부 당시 발생했던 두 차례의 연평해전은 무엇이었던가. 당시 목숨을 잃은 우리 젊은 장병들은 실체도 없는 수면 위의 선을 지키려 했던 해프닝의 희생양인가.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제11조에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이라는 문구로 NLL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북한이 어깃장을 놓는다고 하여 NLL을 무효화한다면 우리 스스로 남북기본합의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일각의 주장도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다. 우리가 그토록 NLL을 사수하려 하는데도 수시로 넘나드는 그들이 공동어로수역을 지킨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북한은 그 이남으로 진출을 시도할 것이며 이는 북한 해군에 대남공작을 활성화시키는 통로를 제공하는 격이 될 것이다. 또한 서해를 앞마당으로 생각하는 중국도 북한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어장 확보 등을 빌미로 서해 깊숙이 진출하려 할 것이다. 이는 이어도 분쟁에 이어 또 다른 한·중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최근의 NLL 쟁점은 헌법과 현실이 충돌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모순을 다 해결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한반도의 분단 자체가 민족모순이요, 북한 핵문제는 국제사회가 풀지 못하고 있는 국제적 모순이다. NLL과 관련하여 영토주권을 내세우는 입장을 헌법적 모순이라고 공격하면서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주장하는 것 또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법 감정에는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의지요, 국가안보를 튼실히 다질 수 있는 방법의 모색임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 “탈북자 사회적응 도와야 통일 앞당겨져”

    “탈북자 사회적응 도와야 통일 앞당겨져”

    “오랜 타향살이 끝에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인연 따라 당연히 맡겨진 소임으로 믿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일 원불교 제3대 평양교구장에 임명된 김대선(59) 교무. 임명장을 받기에 앞서 이른 아침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김 교무는 “일각에선 (평양교구장을) 한직으로 여기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 해 왔던 일들을 원불교 교단에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김 교무는 원불교 원불교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제주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대구·경북교구, 서울교구 사무국장과 서울 역촌·성동교당 교무를 거쳐 지난 5년간 문화사회부장을 지낸 원불교 중역이다. 이력으로만 친다면 평양교구장이 생뚱맞은 소임으로 여겨질 터. 하지만 그는 종교계에선 남북교류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다. 대북 종교교류에 앞장서 온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창설의 주역으로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고 원불교 교단에서도 으뜸으로 대북 창구 노릇을 해 왔다. “돌이켜보면 북한에서도 원불교를 항상 논외의 교단으로 치부했었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가려진 원불교 입장에선 마땅히 접촉할 북측 상대도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1994년 평양에 빵 공장을 세워 매월 밀가루 40t씩을 보냈고 분유, 기저귀 등을 꾸준히 지원해 온 끝에 지난 2007년 평양의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회관에 원불교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한 교당을 개설하는 성과를 얻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불교는 대북 교류에 있어 여느 종단에 뒤지지 않는 공을 들여왔습니다. 교단의 대북교류 지침인 ‘원불교 북한교화위원회 규정’을 마련한 게 1986년의 일이니까요.” 원불교 제3대 대산 종법사는 생전 ‘통일 후를 대비하라.’는 유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 유시를 받들어 통일 이후 북한에서 교역할 교무 40여명이 이미 훈련을 마쳐 대기하고 있다. 그가 북한과의 교류에 공을 들인 게 그저 대산 종법사의 영향 때문일까. “글쎄요. 개인적인 인연도 없지 않아요. 제 성본이 연안 김씨이고 어머니도 원불교에 입교해 북한 개성교당에서 시무했던 분이죠.” 그 말마따나 그가 탈북자의 정착 지원에 쏟아온 공은 유명하다. 2002년 자신이 개척한 성동교당 한편에 탈북자들을 위한 자활쉼터인 ‘평화의 집’을 마련했고 지금도 흑석동 회관에서 그 지도교무를 맡고 있다. 그에게 감화받은 탈북자 한 사람은 안성 한겨레학교에서 봉사 중이며 탈북인단체총연합회 회장도 그를 만나 원불교에 입교했다.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 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탈북자는 통일의 전위대가 될 수 있어요. 탈북자들의 문화적 정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에게 전통문화와 종교문화 체험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해 왔고 그 운동의 구심체로 지난 2010년 사단법인 원림문화진흥회를 만들어 운영해 오고 있다. “초대 평양교구장 박청수 교무와 그 뒤를 이었던 김정덕 교무 등 선배 평양교구장들의 숨은 노력이 많았습니다. 이젠 그 결실을 볼 때가 됐어요. 그 결실 중 하나가 분단 전 어머니가 시무했던 개성교단 복원이 됐으면 합니다.” 비단 탈북자뿐만 아니라 정상의 삶에서 소외된 다문화가정 지원도 그냥 넘길 수 없는 큰 과제라는 김 교무. 인터뷰 말미에 “비록 지금은 상징적인 위상이지만 번듯하게 ‘평양교구청’ 간판을 달 수 있는 날을 절실히 기대한다.”며 자리를 떴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佛각료 38명 성평등교육 불려간다

    佛각료 38명 성평등교육 불려간다

    프랑스 장관들이 줄지어 성평등 교육에 불려 가고 있다. 나라를 구한 여전사 잔다르크, 여성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 등 ‘페미니스트 아이콘’들을 배출한 프랑스. 지난 5월 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꾸린 프랑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佛총리 45분 강의 ‘필참’ 엄명 이달 초 스테판 르폴 농업장관의 망언(?)이 장관 성평등 교육의 빌미를 제공했다. 르폴 장관은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전문적인 일에 적합한 두뇌를 지니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정확한 코멘트는 “우리 업무는 매우 전문적이지만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승진시키려 한다.”였다. 이에 장마르크 에로 총리가 결단을 내렸다. 성평등부에 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성차별 방지 교육을 마련하라고 특단의 지시를 내린 것이다. ‘성평등 감수성 기르기’라는 이름으로 회당 45분간 진행되는 이 연속 강좌는 이미 ‘만원’이다. 38명의 장관 모두가 등록을 했거나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고 AP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셸 사팽 노동장관, 크리스티안 토비라 법무장관 등 10여명의 장관들은 벌써 교육을 받았다. 이 강의에서 장관들은 정치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피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성 불평등을 가려내는 훈련을 받게 된다. 프랑스 내 성불평등 실태를 보여주는 통계 등을 동원해 성에 대한 관념이 유년기 때부터 어떻게 고착화하는지도 보여준다. 강의 기획자인 카롤린 드 하스는 프랑스 방송에 등장하는 정치인 80%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생겨나게 돼 있다. ‘프랑스가 양성평등을 이뤘다’는 ‘착각’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장관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은 고위직 남성들이 여성 동료·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추근대는 관행과 더불어 프랑스 정계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져온 성차별적 언행을 뿌리 뽑으려는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지난 7월에는 세실 뒤플로 주택장관이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업무보고에 참석하자 남성 의원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를 보내 언론의 눈총을 받았다. 지난해 갖가지 성추문으로 낙마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는 여성들을 성희롱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결국 지난 8월 새 성희롱방지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시민들은 정부의 용단을 반기고 있다. 파리 시민 니콜레트 코스트(33)는 “자랑스럽진 않지만 이런 교육이 이뤄진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분단국에서 여성리더십은 시기상조” 발언 논란 프랑스의 이번 조치는 지도층 인사들의 성차별·성희롱 언행이 위험 수위에 이른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지난 6월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분단국가에서 여성 리더십은 시기상조”라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수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정책센터장은 “프랑스의 예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으로 성평등 개념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국내 일부 의원들도 성희롱, 성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는 등 올바른 성평등 개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국회의원 등을 교육대상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국군 ‘민간인 학살’ 유족에 배상”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60여년 만에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 이우재)는 임모씨 등 17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군인들이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면서 “희생자와 유족은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므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국전쟁 이후 남북분단 등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받았을 차별과 경제적 궁핍, 오랜 세월 동안 물가와 소득수준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했다.”며 유족들에게 총 21억 3000여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다만 소각 작전으로 집을 태워 인근 개울가에서 자다가 동사한 희생자와 2007년 다른 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에 포함된 희생자 유족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사는 국가의 반인륜적 범죄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없으며, 불법행위 사실을 안 지 3년이 넘어 제기한 소송은 시효가 소멸됐다.”고 설명했다. 국군 11사단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라도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실시하며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3월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이슈&이슈] “성장線? 고통線! 경부선 지하화하라” 260만명 행동 나섰다

    [이슈&이슈] “성장線? 고통線! 경부선 지하화하라” 260만명 행동 나섰다

    이연옥(49·여)씨는 서울 금천구 독산1동에 15년간 거주했다. 아파트 옆으로 지하철 1호선과 경부선 철로가 지나간다. 창문을 열어두면 전화 통화나 TV 시청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 수가 없다. 밤에는 선로 보수 공사로 잠을 설친다. 이씨는 28일 “기차가 지나갈 때 앉아 있으면 덜덜거리는 진동이 느껴지는 수준”이라면서 “TV를 보다가 전화가 오면 소음 때문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큰소리로 외치듯이 말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지하로 철로가 들어가기 어려우면 아예 지붕이라도 씌워 달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어려운 처지여서 지금껏 살아왔지만 수험생인 아이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금천구 가산동에는 가산디지털단지(서울디지털 2·3단지)의 교통 요충지인 ‘수출의 다리’가 있다. 경부선 철로가 동서를 갈라놓고 있어 철로 위로 다리를 놓은 것이다. 매일 출근시간 광명 방면 철산교에서 수출의 다리를 지나려는 차량과 반대쪽 차량이 뒤엉킨다. 불과 500m인 다리를 건너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릴 때도 있다. 출퇴근 시간에 한 방향으로만 시간당 1000대의 차량이 지나간다. 이 지역 근로자와 사업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이 다리는 ‘지옥의 다리’나 ‘수출을 가로막는 다리’로 불린다. 수출의 다리 인근에는 대형 아웃렛 매장이 밀집해 있어 하루 정체 시간이 20시간에 이를 때도 있다. 최근 금천구에서 도로를 확장하고 진출램프를 보강하는 한편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주변 업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가산디지털단지 기업인 모임인 녹색산업도시추진협의회 유지홍(54) 전문위원은 “중소기업 사장과 하루 일당벌이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몇 만명이 다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큰 낭비인가.”라면서 “교통혼잡으로 생기는 피해만 생각해도 매일 울분이 터져 경부선 지하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금천·구로·영등포·동작구와 경기 군포·안양시 등 6개 지자체는 지난 6월 안양시청에서 공동협약을 체결하고, ‘지하철 1호선과 경부선 철도의 지하화’를 공동 추진목표로 정했다. 8월에는 독자적으로 경부선 지하화를 주장하던 서울 용산구가 힘을 보탰다. 지자체들은 서울역부터 군포시 당정역까지 32㎞ 구간 철로의 지하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철도가 지하화되면 상부 공간을 녹색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등 도시 계획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 구로구청장도 “주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부선 지하화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고통을 참다 못한 주민들도 속속 참여했다. 7개 지자체 주민이 261만명, 경부선에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이 76만명이나 된다. 7개 지역 시민단체가 지난 10일 ‘경부선철도 지하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기찬 위원장은 “재향군인회,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거의 모든 시민단체가 지역색과 정치색에 상관없이 경부선 지하화를 요구하고 나섰다.”면서 “지역 분단으로 인한 도시 불균형 개발, 교통혼잡, 상권 공동화 현상,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산업발전 저해를 일으키는 핵심 문제를 두고만 볼 수 없어 들고 일어났다.”고 말했다. 주민과 시민단체는 직접 각 지하철역과 지자체에서 20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말 서명부를 모두 취합해 다음 달 중 대선 후보와 정당,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에 전달하고 국책사업 추진을 촉구할 계획이다.시민단체와 지자체는 지하화로 생기는 토지 매각 등의 방안을 동원할 경우 총사업비가 5조~6조 5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통혼잡 완화, 산업단지 및 상권 활성화 등의 효과를 감안하면 정부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인선 지하화(48㎞) 사업에 13조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다는 예측이 나온 만큼 이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생태체험공원과 수경공원, 메모리얼파크 등 녹지 공간을 대폭 확충해 시민들의 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와 중앙아시아/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와 중앙아시아/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글로벌이라는 말에는 힘센 국가가 자국 내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지배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글로벌이라는 말은 자유롭게 자기식대로 살아가는 국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다른 한편, 이즈음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 간 거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제 어떤 나라도 이웃나라와 교류·소통하지 않고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돼 가고 있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 눈을 떠가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 사이에 좋은 친교 관계를 유지하려면 스스로 좋은 친구감이 돼야 한다. 친교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때의 마주침으로 끝날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서남아시아와 동남북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정유관인 블랙 로드가 지나고, 철로인 스틸 로드가 촘촘히 이어지는 곳이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우리와 인연이 깊다. 1937년 겨울, 스탈린은 시베리아의 외국인을 일본인과 격리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벌판으로 이주시켰다. 우리 한국인들은 현지인의 도움과 배려로 황량한 벌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듬해 봄부터는 벌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후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현지인들은 지금도 한국인들이 보여준 생존 능력과 기술력, 그리고 근면함을 존경해 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동북쪽에 있는 알타이산맥 부근은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로 이동하기 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어, 몽골어 등을 포함하는 ‘알타이어족’이라는 명칭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알타이산맥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몸속 유전자는 북방 유목민족과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국내에선 능력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던 이들도 일단 해외로 나가면 광활한 대지를 거침없이 달리듯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지 않는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는 과거 실크로드의 교착지로, 서남아시아와 중국 장안(長安)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실크로드는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그 옛날 실크로드가 한반도 신라까지 이어졌음을 최근 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오랜 옛날부터 세계와 교류해 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감행한 서역(西域) 원정은 세계 전쟁사에 남을 만큼 유명하다. 중앙아시아 5개국의 수도는 지금 계획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21년이 된 이곳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제자립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거의 100년 동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표기문자(공용어)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자국어를 활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조만간 언어 독립도 이뤄질 것 같다. 우리는 20세기 초에 식민지 생활을 겪어야만 했고, 해방 이후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으며,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아오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없애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우리의 과거사마저 뺏으려 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사(現在史)다. 오늘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내일이란 없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자.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중앙아시아는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다양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던 만큼 머지않은 장래에 이들만의 의미 있는 삶의 양식을 전 인류에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대에 대한 이해는 교류와 소통의 지름길이다. 강국으로 비상하고 있는 이웃 중국(한족)에 대한 우리의 미래 대처 전략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교류 강화를 고려해 볼 때다.
  • 눈두덩이까지 움푹 파이고 굴곡진 노인들 얼굴에 살아 온 세상을 담다

    눈두덩이까지 움푹 파이고 굴곡진 노인들 얼굴에 살아 온 세상을 담다

    바짝 붙어 그림을 뜯어보면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물감들이 들러붙어 있는 모양새부터 그렇다. 궁둥이가 펑퍼짐해지게 눌러 퍼져 앉아 있다기보다 날을 세운 채 결에 따라 일렬로 쭉쭉 엉겨붙어있다. 멀찌감치서 보면 탁한 느낌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강, 노랑처럼 화려한 원색도 아낌없이 쓰여있다. 전체적으로 단단한 덩어리감, 그러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삐죽빼죽 날선 느낌, 부분적으로 화려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탁한 느낌이 영락없이 화강암 덩어리 분위기다. ●“‘큰 바위 얼굴’ 우리 식으로 그려보고 싶었죠” 그러니까 장비 제대로 안 갖추고 함부로 걸어다니다 도가니가 거덜날 수 있다는, ‘악!’ 소리난다는 우리나라 악산(嶽山)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더구나 그림 사이즈는 200호를 넘나드는 대작들. 벽에다 걸어놓지 않고 바닥에 깔아놨다면 산악지대 축소 모형, 요즘으로 치자면 구글어스 캡처 사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갤러리를 한 바퀴 다 돌고나면 왠지 산을 오르내린 뒤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봤다면 잘 본 겁니다. 얼굴을 그리되 우리 식으로 해석한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같은 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11월 13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 ‘넋, 뼈와 살’을 여는 권순철(68) 작가. 작가가 그리는 얼굴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니 약간 부족한 사람들이라 해야 할른지 모르겠다. 편안한 노후 생활을 위해 은퇴 이후 몇년 살 것인가 계획 세워 재테크와 연금저축에 힘쓴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서 강남에 집 한 채 있는 게 전부인데 웬 세금 폭탄이냐고 치를 떠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다. 실버타운 광고에 나오는 아들, 손주, 며느리에게 존경받는 윤기 나는 노인도 아니다. 조국 근대화의 길에 나서 한 평생 뼈빠지게 일했건만 여전히 돈 필요하면 직접 일해 벌어 쓰라 내몰리는 얼굴들, 그래서 국가 재정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의심받는 얼굴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복지라며 생색내면서 쥐어주다가도 그마저도 떼먹는 게 아니냐고 의심받아가며 살아가는 얼굴들이다. ●서울역전·탑골공원·시골장터 찾아 다니며 그려 작가는 왜 이런 얼굴들을 골랐을까. 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살아온 게 그렇잖아요.” 해방, 분단, 전쟁, 냉전, 이념, 개발, 독재 같은 단어들이 줄지어 머릿속을 지나간다. 작가가 저런 얼굴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곳도 그렇다. “서울역전이나, 탑골공원, 시골장터 같은 곳을 많이 찾았지요. 물론 기분 나빠 하실 수 있어서 좀 멀찌감치서 그렸지요.” 작가는 그런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들에서 “어떤 신성성”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추상적인 느낌 강한 ‘넋’ 시리즈도 눈길 그래서 배경은 가끔 회색이나 짙은 푸른색이 비칠 뿐 거의 대부분이 검은색이다. “조금 밝은 색이나 하얀 캔버스 바탕을 고스란히 남겨도 보고 싶었지만 그건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이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그린 얼굴들 가운데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 인물도 없다. 눈두덩이까지 움푹 패어버렸으니 이미 세상과의 끈조차 놓아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얼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누군가는 세상 흐름에 운때가 맞아떨어져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는 사람들을 일러 ‘세계사적 개인’이란 멋드러진 표현을 썼다. 그러나 세계사의 변방에서, 중심부에서 미친 듯 밀려드는 격랑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던 이들 노인들에게 ‘세계사적 개인’이라는 말은 너무도 낭만적인 사치일 뿐이다. 작가가 정치인, 재벌 회장님이 아니라 이 노인들의 얼굴로 한국의 큰 바위 얼굴을 만들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훨씬 추상적인 느낌이 강한 ‘넋’ 시리즈와 오랜 유럽 체류 경험을 살려 그린 ‘홀로코스트’ 작품들도 눈에 띈다. (02)743-164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종민 이 생각 저 생각] 격변의 동북아, 강원도의 향방

    [김종민 이 생각 저 생각] 격변의 동북아, 강원도의 향방

    빙하가 녹으면서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유럽의 로테르담과 북미의 뉴욕으로 가는 거리와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축되어 물류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북극권 동토에 묻힌 엄청난 양의 석유, 석탄, 천연가스 채굴의 경제성이 높아졌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자원개발에 적극 나서며 우리나라와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수출을 추진하면서 남진(南進)하고 있다. 주요 2개국(G2)으로 도약한 중국은 동북 3성의 본격 개발에 이어 태평양 진출을 위해 북한의 나진·선봉을 조차하면서 동진(東進)에 나섰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와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일부 일본의 기업과 개인들은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며 서진(西進)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교역비용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며, 북극항로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남방의 자원에만 의존하던 우리 경제에 북극권의 자원은 새로운 활력소로 부상했다. 남방자원-남방무역로라는 단선구조로 세계 5위 무역국가를 지향해야 하는 취약성을 북방자원-북방무역로가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정적 복선구조를 찾아 우리나라는 북진(北進) 모드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중국이 두만강 하구를 중시하는 가운데 2018년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린다. 포스코가 중국이 독점해온 마그네슘을 강릉에서 생산하면서 동해안권 자유경제지대가 설치되고 있다. 사방의 기운이 동북아의 내해(內海) 동해로 몰리고, 길목에 위치한 강원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북한은 지하자원 강국이며, 상당량이 강원도와 이웃하여 묻혀 있다. 세계 마그네사이트의 50%를 보유하고 있으며, 우라늄 매장량 또한 세계 1위이다. 금은 세계 1위인 남아공의 3분의1, 철광석은 세계 1위인 브라질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양이 매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7배에 상당하는 7000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경제가 어려워 채광권이 다량 중국으로 넘어갔다. 남한이 저출산·고령사회로 접어든 반면, 인구 2500만명의 북한은 출산율이 높고 많은 노동력을 지닌 커다란 잠재적 소비시장이다. 중단 전까지 약 200만명이 찾은 금강산관광이나 약 5만명의 북한근로자를 고용해 연 15억 달러 이상을 생산하는 개성공단은 남북협력의 시너지와 타당성을 잘 설명한다. 특히 북의 지하자원과 남의 기술·자본이 결합한 비철 줄기물질의 생산은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며, 자원의 역외 유출을 막는다. 요동치는 동북아에서 때를 만난 강원도에 큰 시대적 소명이 부여되었다. 환동해시대 주도권의 확보, 시베리아 천연가스의 인수, 강원철도의 시베리아철도 연결, 북극항로 전진기지의 구축, 북한광물의 남북 공동개발, 남북평화산업단지의 건설, 금강산관광 재개, 설악-금강 국제관광지대 조성, 평창올림픽과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의 성공적 발진 등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통일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남북일제(南北一制)와 같은 장치를 유일 분단도인 강원도가 시도해 나가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 같은 세기적 과제 풀이의 핵심은 중앙 정책과 지방 역할의 조화에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비무장지대 통행·통상의 실현이 관건이다. 남북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어 있다. 어려울수록 현장에서 답을 찾으면 보다 쉽게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실용적 대북 교류의 경험과 실적이 많은 강원도가 저밀도·저긴장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장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지역의 권능을 키우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5+2 광역경제체제의 구현을 위해 이미 제주도에 특별자치도의 지위를 부여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여름부터 강원도가 바라는 평화자치 기능을 허여하는 것은 균형에도 맞고 미래지향적인 시도로 보인다.
  • [기고] EU가 동북아에 주는 희망메시지/김창범 주벨기에·EU 대사

    [기고] EU가 동북아에 주는 희망메시지/김창범 주벨기에·EU 대사

    10월 12일 유럽연합(EU)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 한편에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바뀐 유럽과, 아직도 분단상태인 한반도라는 서로 다른 사진이 교차했다. 60여년이 지났지만 한쪽에는 냉전의 유산이, 유럽에는 평화의 유산이 있다는 게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공포와 분열의 후유증으로 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폐허 속 유럽에서는 또 다른 전쟁을 막고 평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뭉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졌다. 수십개의 나라로 나누어진 현실에서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지만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다행히 모네, 슈망,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창한 구호나 원대한 이상 대신 실현 가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서 평화의 묘목을 심고자 했다. 그 노력은 1951년 유럽 석탄철강공동체 결성으로 나타났다. 세계대전 당시 전쟁 물자였던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바꿨다. 이후 자유무역지대와 관세동맹, 단일시장으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로 성장했다. 오늘날 EU는 27개 회원국으로 뭉쳐 있다. 다른 민족, 문화와 언어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자유, 민주주의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그물망보다 더 촘촘히 엮여 있다. 이제 전쟁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희미한 기억 속에 잊혀진 단어가 됐다.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거듭난 EU가 노벨평화상의 영광을 누린 이유다. 잠시 시선을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로 돌려보자. 분단되고 갈라진 틈 사이로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다. 1000만명의 이산가족들이 헤어짐의 아픔을 다독거리면서 통일의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다. 한반도는 마지막 남은 냉전의 유산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희망의 씨앗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근세기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국이 거쳐 온 과정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세기 초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운을 잃어야 했던 우리나라는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북한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전쟁과 대립의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바꿀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게 됐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서에서 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중·일 3개국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EU 못지않은 동북아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EU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이후 국제사회 일각에서 논란도 일고 있다. 하지만 노벨평화상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꿈을 현실로 이루고 지난 수년간 재정위기 극복과 더 강도 높은 통합을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EU와 시민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고 고통을 이겨낸 변화는 더욱 아름답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 지역도 더욱 살기 좋고 꿈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기를 소망해 본다.
  • [씨줄날줄] 도므어이/이도운 논설위원

    1996년 7월 29일 오전 9시 30분, 베트남 하노이의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에 도착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축한 노란색 궁전에 새로 장식한 붉은 별들이 강렬해 보였다. 이날 10시부터 공로명 당시 외무부장관이 도므어이 공산당 서기장을 예방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먼저 도착한 한국 기자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잡담을 나눴다. 10분쯤 뒤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인과 함께 들어온 여성이 기자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한 통씩 나눠주기에 의례적으로 ‘생큐’라는 인사만 했다. 공 장관이 도착하고 행사가 시작됐을 때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하얀 옷의 노인이 바로 도 서기장이었던 것이다. 생수를 나눠준 여성은 통역을 맡은 외교관이었다. 공 장관 면담을 마친 도 서기장은 잠시 한국 기자들과 환담하며, 사진 촬영에도 응했다. 반식민 혁명투사였던 도므어이는 개방적인 리더십을 과시한 셈이다. 올해 95세가 된 그의 신병을 한국 의료진이 치료해준 사실이 최근에 공개되면서, 그가 추진했던 ‘도이머이(개혁·개방)’와 한·베트남 관계 개선 노력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 지도자들의 열린 모습을 도므어이에게서만 본 것은 아니다. 1995년 4월 13일, 방한 중이던 응우옌마인껌 베트남 외교부장관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리 정부가 마련한, 100석이 넘는 회견장에 도착해 보니 기자는 네 명뿐. 우리 외교부 관계자들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견장으로 들어오던 응우옌 장관도 잠시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여기 계신 분들이 다냐?”고 물었다.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빙긋 웃으며 “그렇다면, 내가 연단에 오를 필요가 없을 테니, 우리 여기 둘러앉아 함께 얘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응우옌 장관과 네 명의 기자는 양국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입장을 묻자 “과거를 잊을 수는 없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말했다. 우리 외교장관이 베트남에서 같은 상황을 맞았으면 어떤 식으로 처신했을까?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베트남은 유난히 우리와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남북이 분단돼 싸우기도 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닮았다. 그래서 두 나라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서울광장] 일자리·먹거리, 외교에서 나올 수 있다/박정현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자리·먹거리, 외교에서 나올 수 있다/박정현 논설위원

    2000년대 초 글로벌 경제는 저물가 현상을 톡톡히 경험했다. 경제성장률이 5%를 넘는데 물가상승률은 3%를 밑도는 희한한 현상이 몇년 동안 지속됐다. 경제 관료와 경제학자들은 당시에 똑 부러진 설명을 내놓지 못했고, 중국발 저물가 탓이라는 분석은 나중에야 나왔다. 중국이 길러내고 찍어내는 값싼 농·축산물과 공산품이 세계를 먹여살렸고, 중국은 손색없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냈다. 세계 경제의 3대 축인 유럽·미국·중국 경제가 동반 불황을 겪고 있다. 저성장 터널에 진입한 우리 경제가 좋아질 날은 기약 없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다. 다행스럽게도 명동과 동대문 시장이 그나마 활기를 띠고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달 초 중국 국경절을 맞아 한국을 다녀간 중국 관광객, 즉 유커(遊客)가 1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이다. 유커 한 명이 지출하는 비용은 110만원으로 일본인 관광객 42만원의 2.6배다. 이들 ‘큰손’이 쓰고 가는 돈은 2억 달러(한화 약 2200억원)로 추정된다. 많은 상인들과 젊은이들이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유커 덕을 보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저물가로, 경기 침체기에는 유커들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중국이 10여년 동안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차지하던 한국의 최대 교역국 자리는 2004년 중국으로 바뀌었다. 중국에도 한국이 미국·일본·홍콩에 이어 4위 교역국이다. 양국 교역액은 2206억 달러로 35배 늘었다. 제주도가 중국인들에게 넘어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로 중국인은 제주도 부동산 투자에 열중이다. ‘중공’을 중국으로, 한성을 서우얼(首爾)로 바꾼 것은 북방외교다. 북방외교는 노태우 정부가 여소야대와 중간평가 등 국내 정치적 난관을 벗어나려고 추진한 것이지만 동북아 긴장 완화에 기여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1990년 한·소 수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이어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정식으로 수교했다. 당시 연간 13만명이던 양국 방문자는 20년 만에 660만명을 넘어섰고 이제 1000만명 시대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외교의 힘은 지역의 정세와 지도를 일순간에 바꿔 놓는다. 동시에 먹거리·일자리 창출에 직결된다는 점을 중국과의 수교가 보여줬다. 그럼에도 대선 주자들은 경제민주화에만 올인한다. 새누리당은 ‘좌향좌’ 공약으로 총선에서 재미를 봤고, 민주통합당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경제민주화에 집중한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넘쳐나는데 정작 외교·안보 공약은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정말 분단국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외교·안보·통일 국방 공약에서 대선 후보들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북한 병사가 철책선을 넘어 ‘노크 귀순’을 하고 그 와중에 군 기강 해이 사실이 드러나도,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을 해도 말이 없다. 대권을 잡겠다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통일세에 대한 의견이라도 공개해야 도리인 것 아닌가. 동북아 정세도 대선 후보들이 입 다물고 지켜볼 만큼 한가하지 않다. 동아시아는 지금 중국과 일본의 영토 팽창주의가 부딪치면서 요동치고 있다. 중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영토 팽창주의와 일본의 패권주의로 동북아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일본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집권하면 방위예산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또 한번의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10년 동안 동북아 외교에 사실상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는 설익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펴면서 미국과 괜한 갈등만 일으켰다. 이명박 정부는 한쪽으로 너무 기우는 바람에 “중국이 섭섭함을 느끼고 있다.”(권병현 전 주중대사)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을 대상으로 한 동북아 외교는 통일을 향한 지렛대이자 수단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북핵 해결과 남북 통일이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일자리와 먹거리가 나올 유일한 곳이다. 대선 주자들이 동북아 외교 비전과 통일 방안을 내놓아야 할 이유다.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붉은 작가들/최광숙 논설위원

    붉은 색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다. 세계 미술시장에 붉은 옷을 입은 작가들이 등장한 지 꽤 됐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중국의 현대미술작가들은 이제 세계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대접받고 있다. 장샤오강·웨민쥔·쩡판즈 등의 작품은 경매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고가에 팔려 나간다. 독특한 조형성과 유머러스한 사회풍자 등 예술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중국 미술의 위상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미술 시장을 넘어 문학계에도 중국 작가들이 약진하고 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인 소설가 모옌이 그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국 국적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문화대혁명 등 자신이 경험한 중국 현대사의 격변을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서 풀어놓는 이야기꾼으로 평가받아 왔다.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을 필명으로 쓸 만큼 그는 글을 쓰는 데만 천착해온 인물이다. 중국 문단의 저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1996년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다. 가난한 노동자가 자신의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역정을 때론 눈물나게, 때론 경쾌하게 그려나가는 스토리 텔링이 대단하다. ‘붉은 수수밭’과 함께 장이머우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홍등’의 원작자인 소설가 쑤퉁의 작품들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 잘 팔린다. 옌롄커도 폭발력 있는 작가다. 반체제 성향이 강해 그의 최신 장편 ‘사서’(四書)는 중국에서 출판이 거부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출판됐다. 그는 얼마 전 모옌과 함께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일 간의 영토분쟁과 관련해 “값싼 술(민족주의)에 취해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냉정을 촉구하자 “지식인들의 대화가 영토분쟁에 한 잔의 냉차가 될 수 있다.”며 화답했던 이다.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 개혁과 개방 등 굴곡진 중국 근·현대사를 뚫고 나온 중국 작가들이 이제 미술에 이어 문학 분야에서도 그 역량을 펼치고 있다. 사실 우리 작가들도 식민 지배와 분단,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등 중국 못지않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왔다. 세계적인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었으니, 이제 작가들이 분발하는 일만 남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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