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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회의록 공방과 북한 변수/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

    [시론] 회의록 공방과 북한 변수/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

    지난해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이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둘러싼 공방은 바야흐로 3막에서 또 다른 변신을 모색 중이다. NLL 포기 여부가 1막이고 회의록 공개의 적법성 여부가 2막이면, 회의록 삭제와 국가기록원 미(未)이관 문제가 3막이다.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사초 실종’ 논란으로 쟁점을 바꾼 공방은 10월 2일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이후 ‘사초 삭제’ 논란으로 국면을 선회했다. 그리고 음원 파일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정파별·계파별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신NLL’ 공방이다. 국회 일정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이 국감으로 옮겨 갔지만 여전히 회의록 공방은 활화산 형국이다. 과문한 탓인지 한 가지 이슈가 1년 넘게 정치적 국면과 상황에 따라 논점과 주제를 달리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가히 정치적 이슈의 진화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NLL 공방 얘기다. ‘87년 체제’의 출범 이후 민주주의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말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듣기 민망한 얘기다. 선거 국면에서 등장하곤 하는 북한 변수와 여전히 한국 정치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안보 변수는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의 정치적·공적 영역의 흐름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의 안보 이데올로기의 남용이 데자뷔처럼 떠오른다면 정치적 상상력인가, 사회과학적 예지(銳智)인가. ‘북풍’은 새삼 사례를 거론하지 않아도 한국 정치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선거의 흐름을 바꾸고 정치사회적 이슈를 한숨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원조다. 좌와 우로 갈라진 대립 구도는 경제사회적 측면보다 정치 이념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이는 삶의 질에 관련된 이슈 집단보다는 안보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대치했다. 좌파라는 용어는 서구적 관점에서의 본원적 의미보다는 한국의 역사지형과 정치구도에서 ‘종북’이라는 전혀 다른 용어와 조우하면서 보수 세력의 정치적 우위에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물론 보수와 진보의 용어도 우파, 좌파라는 용어의 부자연스러운 동거에서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상실했음은 물론 정당 체제 내에서도 조화와 건강한 긴장의 메커니즘으로서가 아니라 대립과 갈등의 재생산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일단에서 등장하는 좌파, 합참의장 후보자조차도 ‘NLL은 수호되고 있고 논쟁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이슈화되고 있는 회의록 공방,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대공수사 폐지 여부 등은 모두 북한 변수와 관련돼 있는 사안들이다. 분단이라는 외생적 변수가 정치의 주요한 인자로 기능하고 있는 불가피한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것과 이를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려 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 구도에서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데 악용됐던 안보 논리가 21세기 한국에서 만일 보수 정당이 상대 정파를 제압하는 데 이용된다면 민주화 이후 25년 동안의 민주주의가 성공적이었다는 외부적 평가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안보 이슈가 불리한 정국 구도나 정치적 국면을 호도하거나 전환하기 위해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가 된다면 다시 민주화 투쟁의 향수가 살아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금의 회의록 공방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여야 모두에 정파적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버려야 한다. 그것은 ‘합리적 의심’이 아니라 ‘의도된 의심’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 [책꽂이]

    세계일주의 역사(조이스 채플린 지음, 이경남 옮김, 레디셋고 펴냄) 500년 동안 진행된 인류의 세계일주 도전사를 집대성했다.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자로 기록된 마젤란을 둘러싼 진실부터 보물선을 따라 세계를 돈 영국 해적, 세계일주를 넘어 우주로 눈돌린 디지털 예술작가 송호준 등 흥미로운 인물들이 소개된다. 776쪽. 3만 9000원. 인생수업(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휴 펴냄) 결혼을 앞둔 남녀를 위한 ‘스님의 주례사’, 자녀 양육서 ‘엄마수업’ 등으로 많은 독자를 감동시킨 법륜 스님의 인생 지침서. 불필요하게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닥쳐올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조언한다. 276쪽. 1만 3000원. 한반도는 아프다(한완상 지음, 한울 펴냄) 통일부 총리, 적십자 총재 등을 지낸 저자가 공직생활 15년간 꼼꼼히 기록해 온 비망록을 책으로 펴냈다. 남과 북의 집권세력이 서로 적대하면서도 분단상황을 이용해 공생하고 있는 역설적 현실을 지적하면서 남한의 극우와 북한의 극좌 양 극단을 비판한다. 524쪽. 3만원.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르 코르뷔지에 지음, 정진국 옮김, 열화당 펴냄) 20세기 근대 건축의 개척자이자 새로운 건축 유형의 창조자인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회고록.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한 달 전인 1965년 7월에 쓴 마지막 글은 건축을 통해 인간과 현실을 연구하고자 했던 사유의 근원을 보여준다. 84쪽. 1만원. 자유로서의 발전(아마티아 센 지음, 김원기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불평등과 빈곤, 기아 연구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 하버드대 교수의 대표작. 개인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임을 역설한다.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12년 만에 재출간됐다. 508쪽. 2만 3000원. 한국여성사 깊이 읽기(주진오 외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 여성사’ 관련 강의를 해 온 저자들이 선사시대 여신에서부터 조선시대 열녀, 근대의 현모양처론, 현재의 호주제까지 열두 개의 주제로 나눠 역사 속에 나타났던 여성들의 억압된 삶을 복원하는 한편 억압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짚는다. 358쪽. 1만 5000원. 고향이 어디십니까?(위진록 지음, 모노폴리 펴냄) 1947년 만 19세에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 최연소 아나운서로 합격해 북한의 남침 1보 방송 등 역사적인 순간을 전달했던 재미 원로 아나운서의 자서전. 1950년 도쿄 유엔군 총사령부방송에 한 달 예정으로 파견됐다가 22년을 일본에 머물고, 마흔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기록했다. 482쪽. 1만 8000원. 강치(백시종 지음, 문예바다 펴냄) 신문사를 정년 퇴임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나에게 독도 의용군의 활약이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경찰이 찾아온다. 독도에 얽힌 배신, 조작으로 일관된 부적절한 애국의 집단 심리라는 심도 깊은 주제가 빠른 템포와 탄탄한 문체로 전개된다. 303쪽. 1만 2000원. 아들의 아버지(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국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그려 온 작가가 아버지의 생애를 마주하는 자전소설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좌익 사상에 눈을 떠 월북한 아버지의 삶을 진지하게 추적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마당 깊은 집’의 전사(前史) 성격을 띠고 있다. 386쪽. 1만 3000원. 조각 맞추기(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피니스 아프리카에 펴냄) 스티븐 킹이 “끝내주는 작가”라고 극찬한 미국 추리 소설의 거장 에드 맥베인의 작품이다. ‘킹의 몸값’, ‘살의의 쐐기’ 등과 함께 ‘87분서 수사반’ 시리즈를 이룬다.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보였던 범죄 현장에서 퍼즐 조각의 형태로 잘린 사진이 발견되면서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248쪽. 1만 1000원.
  • “15년 만의 한국 나들이 日서 성장한 조선 도예로 문화의 흐름 전달하고파”

    “15년 만의 한국 나들이 日서 성장한 조선 도예로 문화의 흐름 전달하고파”

    조선 도공의 후예로 400년간 백자의 예술혼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온 일본 사쓰마 도자기의 명가인 심수관가(家)의 특별 전시회가 서울신문사와 경북 청송군 주최로 오는 1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심수관가가 소장하고 있는 역대 심수관의 작품 중 12대부터 현재 15대에 이르기까지의 총 42점이 특별 전시된다.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는 15대 심수관을 가고시마의 심수관 본가에서 만났다. →선조가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지 400년이 되던 1998년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 이후 15년 만이다. -그때의 전시회는 초대 심수관부터 당대(14대)까지의 작품을 전부 모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제가 만든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것입니다. 과연 조선 도예의 씨앗이 일본에 건너가 어떻게 퍼지고 자랐는가 하는 문화의 흐름, 움직임을 느꼈으면 하는데 잘 전달될지 불안합니다. 아직도 한국분들은 심수관이 가고시마에서 치마저고리 입고 백자를 만드는 줄 아세요. 한국인 여행자 중에는 저희 집에 오셔서 저희 작품을 보고 “이거 일본 스타일 아니냐” 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일본 집에 살아요”라고 말하면 실망하는 분들이 있어요. 즉 400여년 전부터 죽 민속촌 같은 데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한국의 씨앗이 일본에 와서 이렇게 자랐다는 점을 애정을 갖고 봐 주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심수관 가문은 독자적인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 -415년 전 선조들이 조선 반도에서 왔을 때는 포로로 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하얀 도기를 구우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국과 똑같은 원료가 없어서 십수년간 산속을 돌아다녔지요. 십수년간 돌아다닌 사람도 대단하지만 십수년간 기다려 준 사람도 대단해요. 그 정도로 백자가 필요했던 거지요. 그래서 겨우 원료를 발견했는데 실제로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십이삼년이 더 걸렸다고 합니다. 하얀 자기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기술이 그렇게 충분하지 않으니까 대를 거듭할수록 색깔을 더 하얗게 하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이랄지, 유약의 투명도를 높인다든지 하는 연구를 해 왔던 거예요. 전 전통을 그렇게 생각해요. 혁신의 축적이라고. 조선 반도에서 건너온 만큼 조선 흙으로 만든 도기에 맞추는 것, 그에 맞는 유약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그 모든 것이 바로 혁신이었습니다. 그런 혁신의 축적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전통이라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노력을 해 온 심수관가 혁신의 축적이 바로 전통이고 그것을 저희가 지켜 온 겁니다. z→15대 심수관의 혁신이라면. -13, 14대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짤막하게 저희 집안 얘기를 하자면 심수관가는 일본의 사쓰마 번(藩)에 소속돼 도기도 굽고 번의 대(對)조선 무역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일종의 공무원이었죠. 그래서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도 금지돼 있었고 조선말을 유지해야 했으며 축제 때는 치마저고리를 입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조선 반도를 서서히 실효 지배하면서 민족 차별의 영향이 저희 마을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래서 이, 최, 박, 김 같은 성을 가진 도기 기술자들이 마을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기술자가 없어진다는 것은 기술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제 세대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사라진 기술, 사라져 갔던 사쓰마 도기의 전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거의 되살려 놓았습니다. 아직 유약은 충분하지 않습니다만. →2000년 전북 남원의 불을 채화해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그 이유는. -초대 심수관이 만든 그릇을 일컬어 흙도 조선 것, 유약도 조선 것, 도공도 조선인이고 일본 것은 불밖에 없다고 해서 ‘히바카리자완’(불만 있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반대로 한국에서 불을 갖고 와서 일본의 흙, 일본의 유약, 일본의 기술로 한번 구워 보자고 했던 거예요. 남원의 불을 선택한 것은 저희 선조가 최후로 조선 땅을 봤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일 정부의 협력을 얻어 무사히 저희 마을로 가지고 와서 한·일 우호의 불로서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규슈 지역에는 조선에 뿌리를 둔 도자기가 많은데 사쓰마 도자기의 명가로 불리는 심수관요의 특징이라면. -사쓰마 자기는 조선의 백자를 지향했습니다. 똑같이 만들 수는 없었지만 전통을 죽 지켜 오면서 사쓰마 독자의 것을 만든 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아버지의 근황은. -건강한 편입니다. 88세의 고령이라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요. 도기 작업도 저에게 이름을 물려준 1999년 이후로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명예총영사 직함은 갖고 있습니다. →심수관가에서 대를 이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13대, 즉 할아버지가 아버지(14대)에게 말한 것 중에 “아들을 도공으로 키워라”라고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토대 법학부를 나와 지금으로 치면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결국 국가 공무원이 되지 못하고 낙향했어요. 촌(村) 의회의 의원과 의장까지 지냈지만 도공으로선 활동을 거의 안 했어요. 어차피 도기가 팔리지 않는 시기였으니까요. 먹는 게 제일이었던 시대였잖아요. 어려운 시대를 거쳐도 심수관가는 초대부터 도기를 하라는 것이었어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아 정치를 하고 싶어 했지만 정치가가 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그런 정치 같은 게 맞지 않는 사람이에요. →한국의 핏줄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가. -있지요. 초대 때부터 우리들이 조선 반도에서 이 도기의 기술을 전한 것이니까, 그것을 지켜 왔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대학 전공과는 달리 집안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데 아들에게도 같은 길을 가도록 할 것인가. -22살과 20살 된 형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두 사람이 (도기를) 할 거라면 잘 의논하고, 동생은 형을 내세우고 형은 동생을 소중하게 생각해라. 가난해도 도기는 버리지 마라. 장남의 아이는 반드시 도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큰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의 가마에서 도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교환학생으로 1주일간 가 본 적은 있지만 언젠가는 제가 한국의 김칫독 공장에서 일했던 것처럼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에서 공부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이란 나라는 우리 애들에게 있어서 소중하고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제대로 마주 대해야 하는 나라이니까요. 조만간 남원, 청송 등 한국 여행에도 데려갈 생각이에요. →15대로서의 향후 계획은. -지금까지는 없어진 것을 되돌려 놓는 데 진력을 다했습니다. 분명히 몇 개는 되돌려 놓았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젊을 때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것만은 남기고 싶다 하는 것이 생기는 거죠. 원료도 그렇고 기술도 그렇고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지만 앞으로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가 제 고민입니다. 옛날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봐야 지금 제가 여기서 일을 하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계절로 치면 봄을 거쳐 여름을 경험한 셈이라고 할까요. →한·일 관계가 순탄치 않은 시기에 열리는 전시회인 만큼 기대가 높다. -늘 일본과 한국을 생각해요.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죠. 일본인은 한국인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지를 몰라요. 같은 민족인 북한과 분단 국가가 돼 있는 한국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신적, 경제적, 물질적인 스트레스를 일본인은 상상하지 못해요. 영·호남의 지역 대립,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현격한 체력 차, 성형 대국이라고 불리는 외모 중시사회 등에 대해 잘 몰라요. 거꾸로 한국인은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해 언제 대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 태풍과 화산 분화, 돌풍 같은 자연재해를 늘 겪는 일본인의 스트레스를 잘 몰라요. 영구히 이웃 나라일 수밖에 없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애정을 갖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고시마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15대 심수관은 1959년 가고시마 출생.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국립미술관 도예학교를 거쳐 1990년 경기도의 도기공장에서 김칫독 제작을 공부했다. 1999년 14대 심수관으로부터 이름을 이어받는 습명(襲名)을 했다. 미국 뉴욕 등에서의 작품 전시를 거쳐 201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역대 심수관전’을 열었다. 남원시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 [열린세상] 이념갈등 관리하는 통합의 리더십/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이념갈등 관리하는 통합의 리더십/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학문 간 융합연구에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의 뇌 구조는 다른가를 탐구하는 분야가 있다. 연구 결과는 대체로 보수의 뇌와 진보의 뇌는 다르다는 것이다. 뇌 특정부위의 발달 정도가 달랐고, 같은 이슈를 접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달랐다. 보수와 진보의 뇌가 다른 게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성장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뇌 구조부터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여전히 치열한 이념 대립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은 명확한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다름’을 먼저 인정하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이념을 관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디 보수든 진보든 이념이 지향하는 가치는 아름다운 것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안정과 점진적 변화, 자유, 시장 중시, 작은 정부, 규율과 절제, 가족가치 등과 진보가 추구하는 평등과 사회 개혁, 정의, 분배 중시, 정부의 역할, 개성의 표출 등은 모두 다른 차원의 것이지만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동일한 지향점을 두고 있다. 사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가치들은 배타적이고 대립적이기보다는 중첩되기도 하고 보완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아름다운 가치들을 놓고 서로 ‘다름’을 관리하면서 선의의 경쟁 속에 보다 품격 있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이념적 가치가 추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이념을 놓고 갈라지고 싸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명패를 걸고 배타적 집단화하고 집단의 명운을 건 정치적 싸움이 시작되면, 이념적 가치들은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때 사람들은 이념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이 아니라 이념의 노예 또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이념적 갈등과 대립, 싸움으로 귀결되는 우리 사회는 극심한 이념 정쟁 속에 이념 가치의 실종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독재를 경험하고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이념은 북한과 미국,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개인, 가족, 자유, 평등 등 다양한 사회적 이념 가치가 발달한 서양 선진국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한국 사회는 북한-미국-박정희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정당, 언론, 시민사회가 좌파와 우파 진영으로 분열돼 모든 사회문제를 분파적 진영논리로만 풀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수든 진보든 아름다운 이념적 가치를 돌보고 꽃피울 기회를 거듭 상실하고 있다. 최근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은 좌파와 우파의 싸움만 난무할 뿐 그 속에서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비판하는 진보의 가치는 또 무엇인지 성찰할 여지는 거의 없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지지파와 반대파의 정쟁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문제는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이념적 가치의 혼동을 일으키는 가운데 서로 진영 간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설과 사퇴외압설은 검찰의 독립에 관한 민주주의의 가치, 가족 중시, 사생활 보호 등 이념적 가치들을 돌아볼 여지가 거의 없이 보수와 진보 진영의 세력 다툼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의 자제와 중단을 호소하는 것은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은 이미 역사적 연원을 가진 것이어서 단기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다스릴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정파적·이념적 초월이 가능한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고질적인 이념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개인적 정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태생적 보수집단의 일원인 박 대통령이 진보집단과도 가치를 공유하는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가족 가치, 불량 식품 등 사회적 이념 가치를 확대하는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위기에 처한 대통령의 내치(內治) 리더십의 근본적인 타개책도 될 것이다.
  • 새누리 “역사 교과서 7종 北논리와 흡사” 민주 “與, 친일·독재 미화 역사왜곡 감싸”

    새누리당은 4일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기존 한국사교과서의 북한과 해방 이후 부분 서술이 북한이 주장하는 논리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존 교과서가 해방 이후 남북분단의 책임을 연합국에 돌리거나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을 38도선 이남에서만 정통성을 갖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한 일이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또 “이러한 ‘좌편향 교과서들’이 과연 ‘대한민국 교과서’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책은 북한 학술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과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해방 이후 북한의 개혁 서술 등을 살펴본 결과 겉으로 드러난 북한 자료를 여과 없이 인용한 부분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7종 교과서 집필진은 교육부의 (수정)방침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됐는데도 바로잡지 않겠다는 것은 학자로서의 도리도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7종 교과서에 오류가 없는지, 위험한 편향성은 없는지 (교학사 교과서와)똑같은 잣대로 검증해 달라”면서 “사초 폐기에 앞장섰던 민주당이 역사문제 앞에 당당하고 싶다면 좌편향·부실 교과서 수정·보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유기홍 간사 등 교문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이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학사 교과서를 감싸는 것은 물론 야당 의원들을 근거 없는 내용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와 관련해 반드시 검증이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교학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교학사 교과서 검정 관련 자료의 성실한 제출과 함께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사과를 촉구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북한 붕괴는 2033년?

    [리얼 노스코리아] 안드레이 란코프 지음/김수빈 옮김/개마고원/368쪽/1만 8000원 1958년 옛 소련과 미국 사이에 학술교류 협정이 맺어지자 미국의 강경 ‘매파’는 반발한다. “소련이 간첩을 보내거나 사회주의 선전가를 교육시킬 기회만 줄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미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공부한 4명의 소련 유학생 가운데는 미국 정세 염탐의 임무를 띤 KGB 요원과 선전가가 포함됐다. 그런데 수십년 뒤 매파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1980년대 소련에서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자 KGB 내에선 조직 역할에 대한 첫 공개 비판이 벌어진다. 당시 컬럼비아대 유학생 출신인 올렉 칼루진이 이를 주도했다. 또 다른 유학생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당 중앙위원회 서기가 돼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페레스트로이카’의 밑그림을 제시한다. 후일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의 경험이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바꿔 놨다고 술회한다. 결과는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붕괴로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저서 ‘리얼 노스코리아’에서 북한의 붕괴 시점을 2033년 안팎으로 못박는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년 가까이 지금과 같은 체제를 이어 갈 것이란 전망이다. 2003년 핵을 포기하고 서방과 우호관계를 맺은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서방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게 ‘뒤통수’를 맞은 선례를 감안, 북측의 핵무기를 활용한 ‘벼랑끝 전술’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예측도 내놨다. 그렇다면 중국식 개혁·개방은 답이 될 수 있을까. 란코프 교수는 “이는 북한 지도부에는 정치적 집단 자살과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개발독재로 전환한 중국·베트남과 달리 북한의 턱 밑에는 수십 배의 경제력을 지닌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 개혁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인민들의 자의식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김정은식 경제개혁이 성공한다면 이는 오히려 영구적인 분단 고착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지도부는 비이성적이고 가학적인 살인마가 아니다. 이들의 생존 전략은 인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초래하고 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하며 국제적 리스크를 만들지만,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유지하고 사치를 향유할 수 있게끔 보장한다. 현재로선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우파적 햇볕론자’라고 소개한 란코프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 붕괴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탈북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교육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레닌그라드 국립대 출신으로, 1980년대 김일성종합대에서 유학했던 그는 지난 4월 미 백악관에 초청돼 오바마 대통령과 대북 정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대하’로 첫발, 최고급 명소 도약

    베트남은 남북 분단과 치열한 이념 대립, 동족상잔의 전쟁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 베트남 파병으로 한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나라였다. 그런 베트남에 앞서 진출한 기업이 바로 대우였다. 대우는 한·베트남 수교가 이루어지기 1년 반 전인 1991년 7월 하노이에 지사를 설립했다. 대우가 맨 먼저 시작한 사업은 호텔과 비즈니스센터 건립이었다. 개방을 서두르는 베트남 정부가 원하는 사업과도 맞아떨어졌다. 개방화에 따라 수도인 하노이로 몰려드는 사업가나 관광객이 편히 머무를 수 있는 특급호텔과 투자업체 사무실, 주재원이 묵을 아파트가 절실하던 때였다. 그래서 이뤄진 첫 번째 투자 사업이 바로 ‘대하 비즈니스센터’이다. 대하는 대우·하노이를 의미한다. 한 장소에 건설된 대우 하노이 호텔과 오피스 빌딩, 주상복합 아파트는 단번에 하노이의 명소가 됐다. 대우는 이어 전자·자동차산업에 투자하는 등 베트남을 세계경영의 성공 무대로 삼고자 했다. 1996년 문을 연 대우 하노이 호텔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박근혜 대통령까지 베트남 방문 시 정상들의 숙박장소였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묵는 등 베트남 최고의 호텔로 자리 잡았다. 15층 건물의 오피스 빌딩은 호텔과 붙어 있으며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각종 금융기관과 국영기업이 입주했다. 한국 대사관도 이 건물에 있다. 한때 한국이 베트남 투자 1위 국가 자리를 차지하고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해 준 교두보가 바로 대하 비즈니스센터 개발이었고, 이를 계기로 베트남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노이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WCC 총회 ‘평화열차’ 북한 통과 사실상 무산

     오는 30일 부산에서 개막될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핵심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던 ‘평화열차’의 북한 관통이 사실상 무산됐다. 따라서 ‘평화열차’는 독일 베를린을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이르쿠츠크∼중국 베이징∼단둥 구간까지만 운행하고 참석자들이 배편으로 인천을 거쳐 서울∼부산 구간을 이어 갈 전망이다.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따르면 지난달 22∼25일 올라브 퓍세 트베이트 총무를 비롯한 WCC 본부 관계자들이 방북해 북한 당국 및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핵심 인사들과 WCC 평화열차의 북한 통과 문제를 협의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WCC 한국준비위는 8일 일단 평화열차를 출발시키기로 결정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한국 관계자 60명을 포함한 세계 각국 기독교 관계자 120명을 태운 열차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28일 부산에 도착한다.  당초 평화열차는 베이징을 거쳐 북한 접경도시 단둥까지 간 뒤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 땅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평양, 개성,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달림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해 세계 각국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는 게 이번 WCC 10차 총회에 앞서 추진해 온 평화열차의 목표였다. WCC와 WCC 한국준비위는 그동안 각국을 돌며 평화열차 홍보와 지원 요청을 계속해 왔으며 미국, 러시아, 중국 당국과 교회 측으로부터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를 약속받았다.  이와 관련해 NCCK 관계자는 “오는 14∼15일 WCC 관계자들이 북한 조그련 측과 다시 만나 평화열차의 평양 통과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경색된 남북 관계를 볼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평화열차의 아름다운 여정이 미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한편 WCC 방북단은 지난달 평양 방문 직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WCC 한국준비위 관계자들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하면서 “북한 조그련 관계자들이 WCC 부산 총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며 “특히 내년 3월 제네바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중심이 돼 열리는 아시아평화포럼에 북한이 회원국으로 참여키로 약속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기고] 제대군인에게 감사와 일자리를/신명철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고] 제대군인에게 감사와 일자리를/신명철 서울남부보훈지청장

    ‘33.4%’.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상사계급으로 전역한 제대군인의 취업률이다. 다른 계급의 제대군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이 시기 전역한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52.6%로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이 95%, 프랑스가 83%에 이르는 것에 비춰 보면 턱없이 낮다. 우리는 특히 상사와 대위 제대군인의 취업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이들이 전역하는 시기는 40대 안팎이다. 일반 직장인으로 생각하더라도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바쁠 시기에 그들은 천직으로 여기던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40대 초반은 보통 교육, 주거 등을 위해 경제적 안정, 즉 일자리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이때 전역하는 제대군인은 복무기간 20년을 채우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별도의 군인연금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막막한 상황을 군인 정신만으로 헤쳐 나가기는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보다 제대군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헌신한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예우가 너무나도 냉정하다는 것이다. 분단 현실 속에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반도의 상황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대한민국의 군인들을 높은 강도의 근무 환경에 노출시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국토수호에 헌신한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현재의 굳건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경제·사회적으로 발전과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때문에 국가보훈처는 일찍이 제대군인 지원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중요성을 자각, 선제보훈정책의 일환으로 제대군인에게 일자리를 발굴 지원하고 전직교육과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한편 전직지원금 지급, 각종 대부 지원 및 무료법률구조 지원 등 다양한 제대군인 지원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제대군인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기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국토수호에 헌신한 제대군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매년 ‘제대군인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2회째로 10월 8~14일 운영되며 제대군인의 중요성, 사회적 책임, 제대군인 주간의 의미 등을 국민에게 알리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최근 군가산점 문제를 둘러싼 논란 등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제대군인들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하고 있다. 유사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한 이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그만한 예우를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들을 돌볼 것인가? 다행인 것은 최근 국가보훈처의 자체 여론 조사 결과 제대군인 등의 군복무에 대해 적절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제대군인 스스로 무한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고 그들의 헌신에 국민이 감사의 마음을 갖는 사회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것은 바로 현역 군인의 사기를 드높이는 첩경이자 국가보훈의 궁극적 목표인 튼튼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내리 3선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지구촌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요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사다. 이 수더분하게 생긴 여성에게 전 세계에서 선망의 눈길이 쏠리는 까닭은 뭘까. 어차피 침대 머리맡에 사진을 꽂아둘 만한 매력 만점의 ‘핀업걸’도 아닌데…. 메르켈 정부의 눈부신 경제적 성취보다 더 부러운 게 있다. 독일 정치의 놀라운 통합성과 안정성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이끈 기민당·기사당 중도우파 연합이 압승했다고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니 중도좌파인 사민당이나 녹색당과 ‘적과의 동침’ 격인 대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향후 독일 정정을 불안하게 보는 전문가는 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정쟁 없이 절충하는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된 까닭이다. 이것이야말로 분단국 서독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룩하고 선진국 클럽에서도 최우등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우린 어떤가. 십수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다. 최근 대니얼 튜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쓴 한국 평전을 읽고 얼마간 위안은 얻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란 책이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를 만한 경제성장과 함께 지난 25년간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라는 평가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외부에선 한국을 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일군 나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내부는 극단의 정치적 대립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유신헌법이 철폐되고 5공까지 지속됐던 ‘체육관 선거’도 막을 내렸는데도 그렇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5년 단임을 못 박아 어느 대통령도 장기 독재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세계 정치사를 통틀어 소수당에 가장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여당이 그 어떤 안건도 맘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가 50일 넘게 노숙하면서 장외투쟁을 하느라 그런 대단한 권한을 스스로 내던졌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빌미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면서다. 물론 야당 입장에선 댓글이 북한의 사이버 침투와 종북세력의 준동을 막는 차원을 넘어 선거에 개입한 흔적이란 혐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이 몇달 동안 수백개(설령 수천개라 하더라도)의 댓글을 달았다고 선거의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듯싶다. 하루에도 좌·우, 친여·야로 갈려 지향점이 다른 수억개의 댓글이 명멸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이다. 그 사이 민주당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48% 대선 득표율이 20%대로 가라앉았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국정원법 개정 등 개혁안인들 결실을 볼 리 만무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에다 박근혜 대통령의 3분의1 수준이란 건 뭘 말하나. 댓글 사건을 기화로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불통 이미지로 낙인 찍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나, 민주당도 민심을 잃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공멸의 정치다. 이쯤 되면 후진국형 정치가 산업화-민주화에 이은 선진화의 길목에서 최대 걸림돌이 아닌가. 결국 선진국 진입의 장벽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다. 물론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메르켈이나 독일 여당처럼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히틀러의 말이 생각나게 한다”고 야유하는 치졸한 야당은 정작 독일엔 없다. 야당은 대통령이 실족하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순 없다. 견실한 대안을 내놓고 국민으로부터 점수를 따는 경쟁을 펴는 게 독일식 선진 정치의 요체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kby7@seoul.co.kr
  • [열린세상] 국사교과서가 애국심을 고취할 수 없다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국사교과서가 애국심을 고취할 수 없다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지난 8월에 국사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더니 역사논쟁이 폭발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국사를 국가사(國家史)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가, 아니면 민족사(民族史)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가이다. 국사가 이름 그대로 ‘국사’(國史)라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사로 쓰여야 한다. 국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이고, 민족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상상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국사는 실체적 존재인 국가에 대한 서술일 수밖에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국사는 주로 민족사의 입장에서 쓰였다. 민족사 입장에서는 분단만큼 뼈아픈 일이 없다. 통일국가를 못 만들고 같은 민족끼리 대립하게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을 ‘결손국가’로 치부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민족 분단과 남북 대립을 일으킨 사건으로 묘사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건국 세력은 반민족적인 친일 세력으로 매도되었고, 그들의 선지자적인 분투 노력과 위대한 건국 업적은 폄하되었다. 6·25전쟁도 분단의 필연적인 결과로 묘사되고 민족 비극의 참상만 강조됐다. 누가 전쟁을 도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회피되거나 남북 공동의 책임으로 애매하게 묘사됐다. 브루스 커밍스가 주도한 수정주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간주하고, “이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분단을 죄악시하는 민족사적 입장은 대한민국의 건설과 발전에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는다. 최대 관심사는 남북 역사의 이질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동질적인 민족의식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의 강점은 누그러뜨리고 약점은 부각시킨 반면, 은연중 북한의 강점은 부각시키고 약점은 누그러뜨리려 했다. 이런 교과서로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따라잡기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가 아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금방 인정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동문서답을 한다. 성공한 원인은 ‘우수한 민족역량’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같은 민족인 북한은 성공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민족역량 때문이라면, 북한도 성공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후진국이 우리를 본받아 국가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들은 기회만 되면 우리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 그들을 이끌어가야 할 자랑스러운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에 대한 역사인식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민족사적인 서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국가사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서술한 교과서가 최근 검인정에 통과되었다. 그 책은 어떻게 우리가 근대국가를 건설했고, 어떻게 자본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어떻게 정치 민주화에 성공했는가를 밝히려 했다. 서술 과정에서 성공적인 국가 발전의 역군이었던 건국 세력, 산업화 세력, 그리고 민주화 세력의 업적들을 균형 있게 평가하려 했다고 한다. 민족사 진영에서는 공세를 쏟아내고 있다. 국가사적인 서술은 민족의식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리라.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는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 열사는 여자 깡패로 묘사했다”고 근거 없는 비방을 쏟아놓았다. 책이 공개되자 일부의 오류를 침소봉대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했고, 출판사 직원이 살인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막무가내의 정치 공세는 오히려 반민족적인 지성독재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민족사 진영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지성목적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국가사 진영의 국가의식을 고취하려는 지성노력을 존중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애국심이란 건전한 국가의식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바로 국가 정체성의 요체라고 말한다.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애국심 없는 민족의식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것인가.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광기의 종북의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김문이 만난사람]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김문이 만난사람]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추석을 전후로 ‘금강산’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실망, 두 가지를 동시에 안겨줬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3만명이나 된다. 이들의 한을 어떻게 달랠까. 노래 한 곡 불러 본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그리움으로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금강산은 여전히 ‘저편의 너’이자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그리운 금강산’은 홍난파의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역사에서 가장 애창되는 노래이다.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사와 곡을 음미하노라면 시보다 아름답고 소설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쉼없는 작곡 ‘그리운 금강산’이 작곡·발표된 지 올해로 꼭 52년. 그동안 ‘통일 주제가’이자 ‘민족 가곡’으로 널리 사랑받아 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세계적인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 월드’(My World)에도 수록될 만큼 국가 대표급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최영섭씨. 그는 추석 직후부터 이산가족 상봉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오는 20일 음반이 나올 예정이어서 ‘그리운 금강산’ 이후 민족 가곡의 완결편을 선보이게 된다. 올해 나이 85살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여념이 없는 최씨를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최근 작곡한 노래 ‘아 우리 독도여’와 일본 위안부들의 한을 달래는 ‘그 누구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이 담긴 CD 한 장을 건네준다. 보름 전 작곡했다는 설명과 함께. ‘아 우리 독도여’라는 가사를 들여다봤다. ‘삼천리 이 강산에 바위섬 하나/내 한 점 고운 살 던진 독도여~’ 이어 위안부 노래가사가 바로 나온다, ‘그 누가 알리오 서러운 눈물을/머나먼 이국땅에 어린 몸으로~’ 다음 이어진 얘기는 이산 가족 상봉의 노래다. “9월 중순에 두 곡(아 우리 독도여, 그 누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을 작곡했고 이달 20일쯤 이산가족 상봉의 노래인 ‘금강산 가는 길’이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조국을 생각하면서 곡을 만든 것이 100곡이 되는 것이지요. 나름대로 우리 가곡 역사에 의미가 있겠지요.” 작곡 중인 ‘금강산 가는 길’의 가사 내용을 잠깐 살펴봤다.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금강산/망향가 부르다가 흘러간 청춘/저 하늘 달빛 속에 어리는구나/이제야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작시는 시인 고산 최동호씨가 했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노래여서 사뭇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대부분 조국 강산과 연관이 있다. ♬혹평도 딛고 “그동안 우리의 조국, 삼천리 금수강산, 그리고 민족의 ‘정’이라는 가곡집을 5권 출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과 산, 바다, 그리고 인정을 소재로 한 가곡이 100곡이 되더군요. 이번에 나오는 이산가족 노래가 그 완결편입니다. 보세요. ‘그리운 금강산’부터 시작해 ‘압록강은 흐른다’, ‘백두산은 솟아 있다’, ‘낙동강 칠백리’, ‘한강의 노래’, ‘남산에 올라’ 등 주로 조국의 산하를 작곡했거든요.” 작시한 최동호 시인과는 평소 자주 만났다. 그러면서 ‘아 우리 독도여’와 ‘그 누가 알리오 소녀의 눈물을’ 작곡하게 됐고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 노랫말을 지어달라고 했단다. 그는 그동안 30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1은 민족 가곡, 그러니까 조국을 생각하면서 작곡한 것이 100곡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통일의 염원을 담았으며 최근 발표한 ‘아 우리 독도여’에는 한국인의 기백을, 위안부 노래에는 슬픔을 녹였다. 이달 발표될 이산가족의 노래에는 그리움과 다시 헤어지는 가슴 아픈 절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리운 금강산’으로 얘기를 옮겼다. 2000년 8월 1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마당에 한옥집만 한 크기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2009년 강화도 통일평화전망대에도 그만한 크기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최씨는 “해외에 다니면서 수백개 노래비를 봤는데 ‘그리운 금강산’만 한 크기의 노래비는 보지 못했다”면서 기네스북에 올려주면 안 되겠느냐며 웃는다. 그러면서 슈베르트의 ‘보리수’ 노래비는 숲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의 고향은 강화도이며 학창시절은 인천에서 보냈다. 시곗바늘을 옛날로 돌린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 봐”라고 했다. 그러고는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 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을 했다. 시인은 고 조병화씨다. 광복 직후 경복중학교에 다니던 학생 최영섭이 인천 앞바다를 거닐 때의 일화다. 최씨는 1954년 처녀 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됐다. ‘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 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것이다. “저는 ‘그리운 금강산’ 덕분에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학교 교가나 회사 사가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빈털터리 삶 그러나 지금은 서울 모래내 반지하 월세방에 산다. 왜 그런지 살며시 물었다. 16년 전 재혼한 부인한테 돈을 몽땅 줬는데 집 나가서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며 웃는다. 그 부인을 미워하느냐는 질문에 “글쎄, 올 줄 알았더니 오지 않더구만요”라고 한다. 최씨의 첫 부인은 세 아들을 낳고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혼자 지내기로 했다. 눈치 보는 게 하나 있다. 집에서는 소주를 마시고 밖에서는 맥주를 마신다. 혹시 ‘그리운 금강산’ 작곡자가 강소주나 먹는 처지가 됐나, 하는 시선 때문이다. ‘그리운 금강산’ 탄생 당시로 화제를 돌렸다. 1961년 8월이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이다.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낙동강 칠백리’, ‘백두산은 솟아 있다’ 등의 곡을 발표할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실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작곡하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아차 싶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상억(19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안 그래도 가사를 이미 써 놨으니 가져 가시오”라고 했다. 그날로 최씨는 밤새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 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에야 밝히는 진실. ‘그리운 금강산’의 첫 대목에서 ‘누구의 주제련가~’의 주제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주재했다는 뜻인데 처음 악보집을 인쇄할 때 ‘주제’라고 나온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6살 때 강화도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 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호르겔 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1949년 경복중학교 6학년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제 나이 85살입니다. 생전에 통일을 봤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내후년이면 광복 70주년이거든요. ‘그리운 금강산’도 더 이상 불려지면 안 될 텐데요.” 헤어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면 ‘금강산’이라고 이름을 적어요.” 선임기자 km@seoul.co.kr ■최영섭 작곡가는 오선지와 한평생 지휘자로도 활약 1929년 인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인천중학교를 거쳐 경복중·고교 재학 때 이화여대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 이론을,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서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 이론을 각각 사사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지휘과 수석 교수 칼 스터라이히 교수한테는 지휘법을 사사했다. 인천여중고, 인천여상고, 이화여고, 한양대 음대, 상명대 음악과, 세종대 음악과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인천애협교향악단을 창립,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서울작곡가 포럼 고문, 한국가곡문화예술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인천시문화상(1959년), 경기도문화상(1961년), 한국음악상(1996년), 세종문화상(2001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은관·2009년), 세일문화재단가곡상(2010년) 등이 있다.
  •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 신의주 건너편에 자리잡은 중국의 단둥(丹東)시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20세기 초입에 일찌감치 개항돼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 관문으로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남북 분단과 냉전의 지속은 단둥을 고립된 변경도시, 나아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남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단둥은 개혁·개방의 단물을 가장 늦게 맛보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었지만 단둥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소도시가 아니다. 중국 동북 지방의 물류 및 산업도시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둥은 지경학적으로 남북한과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남북한과 육로와 철로 등으로 통해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둥의 향후 발전은 북한의 개방 속도와 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둥 기업들은 광물자원이나 농수산물 수입처로서만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중국산 제품의 판매 시장으로서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제9차 평양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에 단둥을 포함한 랴오닝(遼寧)성 내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석한 점 등이 이를 부분적으로 입증한다. 중국 자동차 비야디(BYD)를 판매하는 ‘단둥유룡수출입유한공사’ 관계자는 “최근 평양 시민의 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유심히 볼 대목은 지금 북·중 간에 한창 추진 중인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황금평경제특구 개발 움직임이다. 특히 현지에서 바라본 신압록강대교의 건설 모습은 향후 북·중 경협의 빠른 확대발전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에 동참하면서 일시적으로 북·중 간 미묘한 긴장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신압록강대교 건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했다. 또한 현지 교역상들과의 인터뷰에 근거하면 북·중교역 규모도 예년 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 거점인 평안북도 신의주 남부와 랴오닝성 단둥 랑터우(頭) 신도시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건설 작업은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이미 완공된 대교 주탑의 높이는 140여m에 이르고, 현재 일부 단절된 구간만 상판을 조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압록강대교는 18억 위안(약 3300억원)의 건설비용 전액을 중국이 부담해 기존 압록강 철교에서 8㎞ 정도 하류 지점에 건설되고 있다. 이 대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황금평경제특구도 일부 언론을 통해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기존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었고, 대규모 건설 장비 등이 이동되는 장면이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황금평 입구에 ‘황금평경제구’라는 표지석을 비롯해 세관과 보안시설·관리실이 세워졌고, 순찰용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일부 전력망의 설치도 이뤄진 듯하다.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만이 홀로 ‘속도위반’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북·중 접경도시 단둥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마치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북한을 향해 뻗친 신압록강대교의 위압적인 자태는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진전 등 적절한 조건만 충족되면 북·중 간에 획기적인 물적, 인적 왕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전망케 한다. 총연장 3.026㎞의 신압록강대교는 내년 7~9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자신들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단둥 기업인의 목소리가 ‘비약’에 머물길 바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와 북·중 경협에 대한 우리의 전략 부재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강의석, 2008년 이어 또 ‘반전’ 알몸 시위…오후 4시에도?

    강의석, 2008년 이어 또 ‘반전’ 알몸 시위…오후 4시에도?

    독립영화 감독 강의석(28)씨가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앞에서 반전을 외치며 누드 시위를 벌였다. 강의석씨는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전쟁기념관에서 이제는 전쟁을 기념하지 말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비무장’ 누드를 하고 왔다”면서 “경찰 아저씨가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어디서 왔냐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 했어요. ^^ 근데 나 너무 늙었다 ㅠㅠ”라는 글과 함께 누드 시위 사진을 올렸다. 강의석씨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보도자료를 통해 누드 시위를 예고했었다. 보도자료에서 강의석씨는 “10.1(화) 오전 6:27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앞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한다. 오후 4시에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예고했다. 이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민주주의 진영 대한민국은 전쟁을 ‘기념(celebrate)’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한국의 전쟁기념관이다. 마치 결혼을 기념(marriage commemoration)하듯이, 전쟁을 기념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라고 알몸 시위를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강의석은 “북한은 매년 군사퍼레이드를 하며 무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따라하고 있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육·해·공군 장병 1만 1000여명과 탱크 190여대, 항공기 120여대가 참가하는 대규모로 실시된다”고 지적하며 “남한이 북한과 다르게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리려면 북한과 달리 이같은 퍼레이드는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석은 고교 재학 시절 교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를 자퇴한 강의석은 양심적 병역거부 활동으로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의석은 2008년 국군의 날에도 알몸시위를 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돈,돈,돈 하는 청춘들이여 더 가치 있는 걸 찾아보게

    돈,돈,돈 하는 청춘들이여 더 가치 있는 걸 찾아보게

    “지금 사회는 젊은이에게 시장에서 소비자가 되라는 것 이외에 어떤 가치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는 돈의 가치, 사적인 이익에 대항해 다른 보편적인 가치를 찾아내야 합니다.” 현대 철학의 중요한 사상가 중 한명인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76)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진리와 주체의 철학자이자 세계적 명성의 좌파 지식인인 그는 경희대와 지제크-바디우 네트워크, 유령학파가 새달 2일까지 여는 철학 축제 ‘멈춰라, 생각하라’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5일 방한했다. 20대에 사르트르주의자였고 68혁명을 계기로 1970년대 내내 마오주의 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현실사회주의 실패 이후 새로운 정치적, 철학적 대안을 모색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공산주의 이념을 설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바디우는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육이나 의료처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을 소수의 권력 집단이 결정하는 의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가짜 민주주의”라면서 “모든 인민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공산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분단 국가인 한국의 현실과 관련해선 “현재 북한 체제는 군국주의와 민족주의일 뿐 사적 소유와 금융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회인 공산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은 뒤 “앞으로 건설될 한국은 남한이나 북한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한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가능한 것일까. 그는 “금융 독재가 이뤄지고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는 확실히 절망적인 세계이며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치를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뮈엘 베케트처럼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희망을 갖고 있어야 하며 절망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선 안 된다”면서 “새로운 생각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詩)적인 말하기’를 통한 시적 진리를 옹호해 온 바디우는 28일에는 심보선, 진은영 시인과 같은 장소에서 ‘시인과의 대화’를 가졌다. 불어로 번역된 진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바디우가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날 행사에서는 시와 철학, 시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뤘다. 바디우는 “시와 철학은 두 가지 다른 양식이자 실천인데, 나의 작업은 둘 사이에 보편화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시야말로 인간성을 건축하고 구성할 수 있는 훌륭한 양식”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철학은 개념을 설명하거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는 언어를 통한 창의적 실천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며 두 시인에게 시와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철학을 전공한 진 시인은 “시와 철학은 연인의 관계에 가깝다”면서 “시가 난관에 빠지면 철학적인 고민을 통해 어떻게 언어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철학의 난관에 부딪히면 시로 도망가 바디우가 말했던 ‘사건적 사유’를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에 대해 심 시인이 쓴 ‘스물세 번째 인간’을 두고는 시와 현실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바디우는 “시는 현실을 새롭고 창의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면서 “(심 시인이 시를 통해 전하는) 위로가 어떻게 새로운 기능을 실천하는지에 시의 중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바디우는 30일 경기 마석 모란공원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단식농성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며 새달 1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문화와 보편성’ 강연을 끝으로 첫 방한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맨발의 친구들(SBS 일요일 오후 4시 55분) ‘독거’ 연예인들에게 따뜻한 ‘집 밥’을 먹이기 프로젝트로 전현무 전 아나운서의 집을 찾았다. 그의 집에 들어선 ‘맨친’ 멤버들은 마치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썰렁함에 깜짝 놀라고, 왠지 짠해지기까지 한다. 이에 모두가 힘을 합쳐 전현무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집 밥을 차려주기에 나선다. ■다큐극장(KBS1 토요일 밤 8시) 1975년 그해 추석은 감동의 물결이었다. 분단 25년 만에 처음으로 모국을 방문한 조총련계 재일교포들. 그해 추석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고향과 혈육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조총련 동포들은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광복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주말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MBC 토요일 밤 8시 45분) 재민(이상엽)과 미주(홍수현)는 곧 사귄 지 1000일이 되는 연인이다. 하지만 재민은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하지 못해 심부름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고, 미주는 그런 재민이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미주 역시도 은행의 계약직 직원으로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SBS 토요일 오후 6시 20분) 지적장애 3급과 심한 언어 장애에도 판소리를 배운 지 3개월 만에 전국 아마추어 대회 입상을 거머쥔 판소리 신동이 출연한다. 큰 키와 잘 생긴 외모로 여성 패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장성빈군은 ‘사랑가’를 부르면서 순식간에 녹화장을 신명나게 바꾸어 놓는다. ■전기현의 씨네뮤직(OBS 토요일 밤 9시 15분) 가을 특집 ‘영화가 사랑한 영국작가’를 주제로 스크린에 옮겨진 문학작품 중에서도 영국 작가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들을 골라서 다시 보는 시간을 갖는다. 첫 번째 순서는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주요작들을 주제음악과 함께 만나보는 것이다. ■영상앨범 산(KBS2 일요일 오전 7시 40분) 중국 서북부에 있는 간쑤성은 산과 사막으로 뒤덮여 중국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한다. 간쑤성의 남동쪽 간난티베트자치구에는 해발 3970m의 ‘짜가나 산’이 있다. 이곳은 기기묘묘한 형세의 기암들과 웅장한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바위 궁전을 연상케 한다. ■주말 특별기획 스캔들(MBC 일요일 밤 10시) 은중은 태하그룹 주식자료를 보며 제2주주인 구재인이 누군지 궁금해 한다. 은중은 오랜만에 운동장에서 아미와 함께 배드민턴을 하며 그동안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화영과 명근은 태하와 태하그룹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태하는 은중에게 두 사람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 [데스크 시각] 2002년의 추억과 2013년의 기억/이기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2002년의 추억과 2013년의 기억/이기철 체육부장

    부산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2002년 10월 1일, 부경대 체육관에서 처음으로 북한 국기가 게양되고, 북한 국가가 연주됐던 기억이 새롭다. 북한 역도의 간판 리성희(당시 24)가 여자 53㎏급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북한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북한은 남측 관중에게 아홉 번 국가를 들려줬다. 대회 직전 정부는 인공기를 들고 응원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여서 기자는 북한 국기와 국가의 공식 등장이 당혹스러웠고, 새삼스러웠다. 시상식장의 미녀 응원단이 눈물을 글썽거렸던 모습이 아직 선연하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9월, 이번에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북한에서 게양되고 울려퍼졌다. 12일,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태극기와 정식국호 대한민국이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18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끝난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대회 입장식에서다. 14일 대회 남자 주니어 85㎏급에 출전한 19세의 김우식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애국가가 연주됐다.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회가 아니었지만 북한을 방문했던 대통령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하지 못한 일을 스포츠가 해낸 것이다. 대회에서 모두 여섯 번 애국가가 울렸다. 평양 역도대회를 이끈 전창범 선수단장은 “애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우리 선수들 모두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북한은 애국가와 태극기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2008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남북한 간의 평양 경기를 두고 북한은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경기를 치렀다. 홈 경기의 이점을 포기할 정도로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거부 반응이 극심했다. 이런 북한이 이번 대회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전 단장은 “장내 아나운서가 ‘남조선’으로 잘못 부른 것에 대해 대한민국으로 불러달라고 시정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 전역을 커버하는 조선중앙TV는 15일 오전 11시쯤부터 15분간 김우식 등의 경기와 시상식 장면을 북한 주민들에게 방송했다. 화면에서 태극기는 클로즈업되지 않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까지는 희미하게나마 7초 남짓 흘러나왔다. 북한의 이런 전향적인 움직임은 변화를 위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읽힌다. 스위스 유학 시절 농구에 빠졌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미 프로농구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해 자신의 딸을 안아보게 하는 등의 환대를 베풀었다. 최근엔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남한의 IOC 위원 도전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스포츠가 체제 선전과 통치 코드인 북한에서 이런 행보는 1990년대의 국제 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서독의 꾸준한 스포츠 교류가 통일의 물꼬를 튼 것이나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이끌어낸 핑퐁외교에서 보듯 스포츠는 정치나 이념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북한에서 다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가 금지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북한의 변화만 기다리며 손을 놓고 지낼 수는 없다. 김우식이 북한에서의 사상 첫 애국가 연주 기회가 올 줄 모르고 땀을 흘렸듯, 우리도 남북 관계에서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을 수 있도록 마중물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할 때다. 정치와 행정이 열아홉 살짜리 역도 선수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보수의 시각을 반영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전으로 비화할 기세다.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남북 분단과 민주화 등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는 격변기를 명쾌하게 가르친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돼 왔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보수진영에선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국민국가 건설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치러야 했던 세대들에게 이런 가치야말로 교과서가 담아야 할 핵심 아이템일 게다. 반면 진보진영에선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왜곡과 부작용을 바로잡고, 한국사회의 생존·번영이라는 일방적 논리를 넘어 균형과 조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판적·미래지향적 과제를 더 중시한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건 아니다. 소모적이고 무한반복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회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수·진보 진영 모두 상대의 주장과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무모한 노력보다는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대립적 가치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 반영된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대립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깨닫도록 해주는 역사교육의 ‘장’(場)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육 강화 정책이 제도화되고 교과서 파동까지 재발하면서 역사교육 개편의 진정성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의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켜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주 ‘정확한 사실’과 ‘균형 잡힌 역사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념 논쟁이 교과서에 반영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런데 ‘사실’과 ‘균형’에 대한 강조가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레토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보수·진보 진영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원칙’을 반복하는 차원을 넘어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현실적 제안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노력은 친일파의 행적이나 박정희 정부의 성격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근·현대사의 핵심 테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무거운 과제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합치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좌편향’ 및 ‘우편향’ 역사교과서가 서로 ‘사실’과 ‘균형’을 대변한다고 우기는 혼란스러운 모습보다 훨씬 낫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힘든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한국사회는 고난의 시대를 넘어 지금에 도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확보해왔다. 진보진영의 주장대로 이제 한국사회는 근대화의 미션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민족·통일·번영의 가치가 역사교육의 전면에 등장해 왔다면, 미래의 교과서엔 어떤 가치들이 우선시돼야 할까? 단순한 절충론이나 양시론(兩是論)에 그칠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일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대내적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새로운 역사 프로젝트 역시 동아시아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의 처절한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국내 차원의 보수 대 진보의 대립보다 밖에서 이뤄지는 역사전쟁이 더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국내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능한 한 빨리 수습해야 할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 평양에 태극기 첫 등장… 분단역사 이정표

    평양에 태극기 첫 등장… 분단역사 이정표

    대한민국 역도선수단의 기수 구원서(아산시청)가 지난 12일 북한 평양의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국제클럽 역도선수권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의 북한 여성 진행자가 든 피켓에는 ‘대한민국’과 ‘KOR’이 선명하다. 북한의 공개 스포츠 석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우리 국호가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AP통신은 연초만 해도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맹은 13일 오후 4시부터 주니어 여자 69㎏급의 권예빈이 한국 선수로는 처음 경기에 나서며 선수단 전원이 응원에 나섰다고 밝혔다. 대한역도연맹 제공
  • [전문]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전문]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최고위원회-의원단 투쟁본부 회의를 열고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요구서에 첨부된 녹취록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이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전문. <녹취록에 대한 입장> 1. 저는 통합진보당의 대표로서, 국정원이 당원들이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주장하고 녹취록을 그 근거로 삼는데 대해 책임있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는 국정원이 녹취록의 근거가 되었다는 동영상 촬영 과정에서 영장주의를 잠탈한 불법성 문제가 크게 다투어질 것입니다. 증거로 채택되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동영상과 녹취록에 대해, 법정에서는 그 내용 자체를 아예 볼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유출과 언론의 보도로 녹취록은 세상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의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과 사실관계의 공정한 확인을 위한 조치로, 국정원에 왜곡 편집되지 않은 동영상 전체의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작 녹취록의 원본인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분별한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위법 수집 증거를 공개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을 완전히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사건 관계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극히 부당합니다. 오늘 제가 녹취록에 관하여 말씀드리는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는 관련자 각자의 방어권이 완전하게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국민 여러분께서 여론재판의 광풍에서 벗어나 사실을 파악하고 판단하시기를 요청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저희가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없는 일을 꾸며내거나 있는 사실을 없애서는 안 됩니다. 당의 대표로서 책임 있게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진실을 파악하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2. 국정원은 녹취록을 근거로 130여명의 ‘RO’ 조직원들이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지하조직의 구성원들도 아니고, 녹취록 가운데 참가자들의 분반토론과 발표 부분은 실제 참가자 다수의 발언내용 및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내란을 모의했다고 볼 상황은 없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올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당 위원장이 임원들과 협의해 평소 경기도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본 당원들 130여명을 모아 한반도 정세 관련 강연과 토론 자리를 만든 것은 이미 본인이 밝힌 것과 같습니다. (1) 지하조직인가 참가자들에게 확인해보니, 5월 10일 모임 때는 열 명 이상이 갓난아이부터 예닐곱 살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5월 12일 모임에는 한 명이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정원에 매수된 촬영자도 아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동영상에 이것이 제대로 촬영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데리고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 데리고 내란모의를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지하조직의 내란음모니 내란선동이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당이 당원들의 모임을 여러 차원으로 마련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일인지 계속하는 것이 좋은지는 당 조직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이지만, 금지된 일이 아닌 이상, 지하조직이라고 몰아붙일 근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이 130여명의 사람들이 ‘RO’라는 이른바 혁명조직에 가입했다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국정원이 이 사람들이 ‘RO’라고 규정한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근거 없이 고문으로 자백을 조작해냈던 정보기관의 어두운 과거는 지금, 근거 없는 여론재판으로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으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2) 내란모의가 있었나. 녹취된 분반토론은 7개 조 가운데 1개 조, 130여명 가운데 20여명 가량의 대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수된 자가 수원에 사는 사람으로 경기남부권역 분반토론에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6개 분반, 110여명 가량이 한 말 하나하나가 무엇이었는지는 녹취록에 전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녹취록만 가지고는 130명의 참가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이른바 ‘내란모의’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분반에서 어떤 토론이 있었는지, 분반토론 발표시 발표자가 자기 분반의 토론 내용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다른 6개 분반 대화의 내용을 확인하였더니, 녹취된 1개 분반의 대화 내용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즉, 전쟁이 정말 일어나면 당장 생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 살아남기 위한 대처방법 모색, 국민들 속에서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인식을 더 넓혀야겠다는 의논이 이루어졌을 뿐, 총기를 탈취하거나 중요시설을 파괴하자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반별 발표 시간에 대표로 토론내용을 말한 사람이, 토론 때는 아예 언급조차 나오지 않은 총 등의 용어를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에서 공통되게 대화를 나눈 심각한 우려의 배경에는, 핵공격까지 포함하는 현대전에서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수없이 살상된다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에 눈앞에 다가온 것이 아닌지 우려하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분반토론 발표 내용 중 “양주의 장난감도서관에 다니는 미 군속 자녀가 3-4월 위기 시에 2주간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에는 아예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는 말처럼, 실제 전쟁이 임박해서 미군속과 가족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만한 일들을 참가자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이 심각한 우려의 배경에는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과 보도연맹사건으로 20만명이 살해된 역사적 사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예비 검속되어 집단 살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 백지화 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가 매우 심각해진 상태에서 행해진 올 3월 독수리훈련과 키리졸브 훈련 중에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건물 옆 골목에 1개소대병력의 군인이 배치되고 사무실이 있는 6층까지 여러 명의 군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일이 있었다는 것이 이 토론 자리에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군이 정당사무실에 배치된 것은 당연히 전쟁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마땅히 모든 국민이 군과 경찰의 보호대상이 되어야 하건만, 진보적 인사들은 가장 먼저 군경에 의해 예비 검속되어 집단살해당한 것이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국 현대사였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당에게 가해진 종북 색깔론 공격과 백색테러 위협의 현실은, 진보당 당원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쉽게 잊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남부 토론 발표 가운데 “그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자기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 되고” 부분의 취지는, 전쟁이 나면 내가 예비검속당하지 않을까 말하는 것 자체가 알려지면 위험한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 하는 것 아니냐고 지목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어진 대화는 전쟁에 대한 걱정과 우려였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은 어떻게 하느냐,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아줄 사람을 구해놓아야겠다, 전쟁이 나면 통신이 다 끊길텐데 어떻게 서로 연락해서 만날지 걱정이다, 대피계획이라도 필요하지 않느냐, 대피계획을 세워봐야 도로도 통신도 두절되면 어디로 갈 수도 없지 않냐, 결국 전쟁이 나면 목숨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런 걱정들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몇 개 조에서 그러면 총이라도 구해야 하는 거냐 등의 말이 나왔는데, 그 때마다 웃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에 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분반토론 발표자들이 분반토론에서 나온 말을 요약해서 전하면서 분위기는 전달하지 않고 총기 등의 단어만 나열하다보니 녹취록에는 마치 분반토론에서 총기를 구하자는 등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처럼 읽히게 됩니다만, “무기습득, 기술습득 모두 뜬 구름이고 첨단기술이나 해킹기술로 레이더 기지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도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분반토론 내용을 발표하자 참석자들이 웃었다는 부분이 실제의 분반토론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남부권역으로 분류된 한 개 분반에서 20여명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논하는 중에도, 한 두 사람이 총기탈취나 시설파괴 등을 말했지만, “개별적으로 저장소를 어떻게 한다 불가능한 얘기고, 통신교란 불가능한 얘기고”라고 받아들이거나, 이런 말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대피계획을 세우자는 것이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녹취록에는 이 분반토론의 발표자가 “총은 부산에 가면 있다”고 발표하면서 총을 만들자고 말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분반토론 때 이 말을 한 사람은 농담으로 한 말인데 발표자가 마치 진담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루어진 대화의 내용을 모아보면, 130여명 가운데 한 두 명이 우연히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한 매수된 자와 같은 분반에 속해 토론하면서 총기탈취니 시설파괴 등을 말했을 뿐이고, 그 분반에서도 반대하는 뜻의 말이 나왔기에 무슨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다른 6개 분반 110여명은 총기탈취니 시설파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것입니다. 130여명 가운데 일부분의 토론내용만 담긴 녹취록에 따라 한 두 명의 말을 근거로 내란모의니 내란선동이니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농담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이석기 의원에게는 본인이 직접 입에 담지도 않은 총기 탈취와 시설파괴를 지시했다는 허위보도를 쏟아 붓고 130여명 참가자들 가운데 한 두 사람의 말의 책임을 이석기 의원에게 지워 이들 모두에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치적 경쟁자를 말 한 마디로 역모로 몰아 삼대를 멸하는 TV 사극의 익숙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실행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근대 형법의 대원칙입니다. 특별히 내란죄에 대해서는 음모도 처벌하지만, 내란음모죄가 되려면 그가 생각하고 타인과 합의한 것이 몇몇이 총을 사용하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나라를 뒤엎을만한 쿠데타 수준에 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난감 총 개조하는 정도에 머무른다면, 총기탈취 등의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당시 모임에서 있었던 각 분반토론의 실상을 확인한 결과, 이석기 의원과 130여명 참가자들에게 내란음모 선동죄를 씌울 만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3. 정당은 늘 매우 무거운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정당의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말도 신중하고 진지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국민들 앞에 완전히 공개된 자리가 아닐지라도, 당원들 사이에 농담과 웃음이 섞인 자리일지라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의 공식 발언이 아닌 이상, 정당의 당직자나 당원들도 정당의 입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토론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을 나눌 여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정당은 대외적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져야하지만, 그 안에서도 토론은 될 수 있는 대로 넓게 허용되는 것이 옳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도 당내 토론에서도 좀 더 신중하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당의 무거운 책임에 더욱 유념하겠습니다. 4. 이 모임에서 나온 말들에 대해 국민 각자가 다른 의견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전쟁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았는지, 왜 이 사람들은 전쟁이 터지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왜 이 사람들은 대피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더 상세히 또 더 가까이 설명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올 3월부터 시작된 전쟁위기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까지 단숨에 치달았던 것이 현실입니다. 위기와 소강국면을 되풀이하며 결코 평화라고 할 수 없는 분단체제를 60여년이나 유지해오다가 급기야 전쟁직전까지 갔습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설마 전쟁이 나겠냐”고 하면서도 6.15 선언 이후 십 여 년 넘게 없었던 사재기를 했습니다. 분단체제의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고 분단으로 인한 불필요한 고통과 소모를 줄여 우리가 함께 번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당의 강령으로 해왔고 전쟁위기를 막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전쟁반대 평화실현운동을 벌인 진보당으로서는, 한반도 주변 상황이 어떠한지, 정말 전쟁위기가 있는 것인지 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문제된 모임도 당원들 사이에 이를 생각하고 토론하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혹시나 불행하게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무엇을 해야하는 지까지 생각해보면, 더욱더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집니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과 남북관계를 말할 때는 늘 국가보안법과 색깔론의 벽이 쳐져 있습니다. 본 취지는 눈여겨보지 않고 지엽말단의 단어 하나, 말투 하나에 집착해 색깔론으로 공격해 매장하는 분단체제의 비이성적 대응이 한국 사회를 짓눌러 왔습니다.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1950년대의 매카시즘에 머무를 것입니까. 이 모임의 토론 내용도 매카시즘에서 벗어나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로 이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가도 함께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토론 뒤에 이어진 행동은 총기 탈취 준비도 통신시설 파괴 준비도 아닙니다.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캠페인이 이어졌을 뿐입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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