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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초청받고 10일간 테러 계획했다” 충격 진술 5일 오전 미국 대사 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의 범행 동기는 ‘한미연합훈련 반대’로 일단 추정된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강의를 준비하던 리퍼트 대사를 25㎝가량 길이의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을 공격했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 자신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오전 8시 10분쯤 서울 종로경찰서로 옮겨져 들것에 누운 채로 약 3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오전 11시께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지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이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이불을 덮은 채 들것에 실려 이동하면서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며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예전에도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길게 수염을 기른 그는 수척한 얼굴로 누워서 하늘을 응시한 채로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옮겨진 병원에서도 “예전에 팀스피릿 훈련도 중단된 적 있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도 꼭 중단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희생을 했다”면서 “전쟁 훈련을 중단시키고자 한 짓이다”라고 되풀이했다. 또 “강연에 초청을 받고 지난 10일간(범행을 계획했다)”이라며 “작년 10월에 부임해 마흔을 갓 넘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나라 통일 정책을 감당할지 안타까워서(범행을 저질렀다)”라며 리퍼트 대사에 대한 적개심도 드러냈다. 김씨는 평소 진보성향의 문화 단체인 우리마당독도지킴이를 이끌면서 반일·반미 성향의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년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8차례에 걸쳐 방북했으며, 이후 반미 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공안 당국 등은 파악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가리켜 ‘전쟁 훈련’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그의 거듭된 주장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범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씨는 이날 범행 현장에 ‘전쟁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요구하는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도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인물에는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하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며 “광복 70주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 분단 70년의 극복은 그동안의 남북공동성명, 선언으로 충분하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에 깁스하는 등 간단한 치료를 받고 오전 11시 40분쯤 들것에 실려 종로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은 그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배후가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김기종 테러 이유 김기종 테러 이유 “한미연합훈련 반대” 배후 있나? 5일 오전 미국 대사 공격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의 범행 동기는 ‘한미연합훈련 반대’로 일단 추정된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강의를 준비하던 리퍼트 대사를 25㎝가량 길이의 흉기로 얼굴과 왼쪽 손목을 공격했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전쟁 훈련에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 자신이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오전 8시 10분쯤 서울 종로경찰서로 옮겨져 들것에 누운 채로 약 3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오전 11시께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로 옮겨지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이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이불을 덮은 채 들것에 실려 이동하면서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며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예전에도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길게 수염을 기른 그는 수척한 얼굴로 누워서 하늘을 응시한 채로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옮겨진 병원에서도 “예전에 팀스피릿 훈련도 중단된 적 있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도 꼭 중단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희생을 했다”면서 “전쟁 훈련을 중단시키고자 한 짓이다”라고 되풀이했다. 또 “강연에 초청을 받고 지난 10일간(범행을 계획했다)”이라며 “작년 10월에 부임해 마흔을 갓 넘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나라 통일 정책을 감당할지 안타까워서(범행을 저질렀다)”라며 리퍼트 대사에 대한 적개심도 드러냈다. 김씨는 평소 진보성향의 문화 단체인 우리마당독도지킴이를 이끌면서 반일·반미 성향의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2010년 7월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년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8차례에 걸쳐 방북했으며, 이후 반미 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공안 당국 등은 파악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가리켜 ‘전쟁 훈련’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그의 거듭된 주장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범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씨는 이날 범행 현장에 ‘전쟁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요구하는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도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인물에는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하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며 “광복 70주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이다. 분단 70년의 극복은 그동안의 남북공동성명, 선언으로 충분하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에 깁스하는 등 간단한 치료를 받고 오전 11시 40분쯤 들것에 실려 종로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은 그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배후가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진정성 있는 대화땐 협력”… “日, 위안부문제 꼭 풀고 가야”

    “北, 진정성 있는 대화땐 협력”… “日, 위안부문제 꼭 풀고 가야”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집권 후 세 번째 맞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대화 재개를 강조했다. 이 때문인지 핵이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은 자제했다. 박 대통령은 또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수정움직임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태도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분단 70주년인 올해 남북 간 대화 재개를 국정 핵심과제로 삼은 만큼 비교적 온화한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당장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과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한 통일준비 등을 언급하며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공동 번영과 평화의 길로 가는 데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은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당국 간 대화를 제의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핵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벗어나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평화와 체제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방과 변화의 길로 나오라”며 짧게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이산가족 상봉 및 교류와 철도복원사업 등 민간교류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순수 민간교류를 적극 장려할 것”이라며 “우선 남북철도의 남측 구간을 하나씩 복구하고 연결하는 사업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제의에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 사설에서 “통일대박론이나 통일헌법 조작 놀음으로는 북남관계와 조국통일과 관련한 어떤 문제도 민족 공동의 이익에 맞게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대결만을 심화시킬 뿐”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기만적인 대화타령을 걷어치우고 동족끼리 손잡고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계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에 대해 박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우선 군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퇴행적 역사왜곡 움직임에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면서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그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를 비판하며 미국 내 역사학자의 공동성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역사적 과제”로 규정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이를 만큼 고령인 상황에서 이 문제를 일본이 성의 있게 하루속히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올 5월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8월 종전 70주년 기념담화를 앞두고 역사적 진실을 얼버무리려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으로 분단 70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원년이기에 3·1절의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온 민족이 남녀노소, 신분과 나이, 종교와 지역을 넘어 하나가 돼 외쳤던 3·1 만세운동은 조국의 독립뿐 아니라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 조화와 통합 이념을 구현한 위대한 민족유산이다. 특히 70년 동안 분단된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영토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3·1정신의 소중한 시대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국권 강탈과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조선총독부의 무력통치 및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민족의식과 항일독립 투쟁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에 따라 시작된 3·1 만세운동은 수개월 만에 전국 각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운동은 일본·만주·연해주·미주 지역 등 국외에서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만세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하거나 부상과 옥고를 치른 분이 7만여명에 이른다. 3월 1일부터 3개월간 국내외에서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전개됐고 참가 인원은 200만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역사 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은 중국 길림의 대한독립선언과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에 이어 일어난 최고의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된 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 또한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 정세와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선열들의 숭고한 저항이 반영된 혁명이다. 미국 월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와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는 국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독립운동단체에 일제 침략의 불법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한청년당에서는 당시 김규식을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고 국내와 일본, 만주와 연해주로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보내 독립 시위를 크게 전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됐고, 필리핀·이집트 등 세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3·1정신은 우리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늘날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요,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이념인 것이다. 96년 전 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 선열들의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과 튼튼한 국가와 번영된 통일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오늘날 국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고 지난 70년의 이념 대립과 분단 갈등의 고리를 끊고 국민 통합을 이뤄 미래와 통일의 문을 열어 가는 소중한 민족유산으로 간직하자.
  • 환동해 네트워크는 한반도 대륙 진출의 발판 돼줄까

    환동해 네트워크는 한반도 대륙 진출의 발판 돼줄까

    KBS1TV ‘시사기획 창’은 24일 밤 10시 한반도의 미래 성장 동력, 환동해 네트워크의 의미와 가능성, 주변 국가들의 준비 정도 등을 짚어 본다. 환동해 네트워크는 중국, 몽골, 러시아, 동해의 철도와 도로, 에너지 수송관 등을 연결하는 것은 물론 동북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협력 및 교류까지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프로그램은 먼저 몽골을 둘러본다. 철도를 이용해 바다로 나아가는 해양 제국의 꿈을 키우는 몽골은 유목 국가이지만 석탄을 비롯해 금과 은, 우라늄에 희토류까지 갖고 있는 자원 부국이다. 그동안 중국·러시아에 원자재로서 자원을 수출해 왔지만, 철도를 연결해 북한 나진항까지 물류를 이동시켜 세계 시장으로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중국은 창춘(長春)과 지린(吉林), 투먼(圖們)을 연결하는 ‘창지투 개발계획’을 마무리하고 하얼빈에서 훈춘(琿春)에 이르는 고속철 사업의 완공도 눈앞에 두고 있다. 훈춘에 조성된 대규모 물류단지의 컨테이너 화물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중국 연안지대는 물론 세계로 수출하는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해 하산과 북한 나진 간 철도를 개보수해 자국이 확보한 나진항의 3호 부두까지 열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했고,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 석탄이 시베리아 철도와 나진항을 거쳐 국내에 반입되기도 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 나라 한국은 섬나라와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 끊임없이 대륙과의 연결을 계획하고 표방하면서도 북방 루트 개척은 번번이 좌절됐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통일 정책이 선제돼야 하는 이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여성 독립운동가 재조명 대토론회

    여성 독립운동가 재조명 대토론회

    ‘통일의 길, 한국여성 독립운동에서 찾다’라는 주제로 여성 독립운동에 관한 대토론회가 오는 25일 오후 1시 30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3·1절을 앞두고 황인자 국회의원과 국가보훈처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토론회는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기조강연을 맡고, 박용옥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신영숙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 이방원 한국사회복지역사문화연구소장, 김정아 국가보훈처 전문관,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 7명의 전문가 패널이 참여한다. 세화여중, 경신고, 춘천여고, 정신여고, 덕성여대, 경희대 등 중·고·대학생 9명도 청소년 패널로 함께한다. 2014년말 기준 독립유공 포상자는 모두 1만 3744명이다. 이중 외국인이 47명, 여성이 246명, 남성이 1만 3451명이다. 일제 침략에 항거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무수히 많지만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유공자는 단 2%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모든 가족이 독립운동을 했던 오희옥 애국지사의 경우 아버지가 1962년 독립장을 서훈 받았지만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어머니는 1995년, 오 지사와 언니는 1990년에 애족장 서훈을 받은 것처럼 독립운동사에 있어 여성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의원은 “올해는 광복과 함께 분단이 된지 70년이 되는 해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던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되새겨야 할 뜻 깊은 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 독립운동에 너무나 무관심했다”면서 “이번 국회 토론회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진정한 독립과 광복의 완성, 나아가 통일의 길을 찾는 데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박근혜정부 3년차 (상) 외교안보분야] 南北 ‘네 탓’ 2년… 광복·분단 70년 ‘대박 통일’ 원년 기대

    [박근혜정부 3년차 (상) 외교안보분야] 南北 ‘네 탓’ 2년… 광복·분단 70년 ‘대박 통일’ 원년 기대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을 맞는 2015년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현재까지 남북 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북한의 ‘태도 변화’만 요구하는 정부나 핵, 인권 문제로 외교적 고립이 심화된 북한 모두 서로 ‘네 탓’ 공방만 주고받는 상황이다. 광복·분단 70주년 공동 기념행사 개최, 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가 이어져 남북 관계가 급진전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현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남북 관계에서 최대 관심사는 역시 대화 재개 여부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민관합동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를 내세워 남북 당국회담을 열자고 전격 제의했다. 우리 측 관심사인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뿐 아니라 북한이 관심을 갖는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 중지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남북대화는 깊은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북한은 아직까지 정부의 대화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면 올해 상반기 남북 관계는 더욱 냉각될 것으로 점쳐진다. 그렇지만 정부는 남북 간 대화의 끈은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화 교류·민간 협력 등 ‘연성 이슈’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낸다는 전략이다. 정부가 북한에 제안한 광복 70주년 기념 남북축구대회, 평화문화예술제 개최와 더불어 남북 비무장지대(DMZ) 공동 조사까지 다양한 문화 교류를 매개로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17일 개각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임자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보좌해 온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내정한 것은 정부의 현 대북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미국이 북한의 ‘소니픽처스’ 영화사 해킹 사건을 계기로 대북 강경 입장으로 급선회한 것이 정부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우선 지난해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 결과 북한에 상대적으로 강경한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선 그동안 유지했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일단 정부는 북·미 관계와 남북대화는 별건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의 강경 입장이 지속되는 동안 남북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한·미 공조를 넘어 남북 관계 진전을 이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도 북·미대화가 우선인 만큼 당분간 남북 간 경색 국면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신임 장관 후보자 프로필] 국제정치에 밝은 靑 통일비서관 출신

    ●홍용표 통일부 장관 남북 분단과 동북아 정세를 연구한 국제정치학자.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부터 통일비서관(1급)을 맡았으며, 이번 인사에서 차관급을 거치지 않고 장관으로 발탁될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지난해 남북고위급 접촉 당시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이번 개각으로 물러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처남. 부인 임선희(47)씨와 1남. ▲서울(51) ▲경희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박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양대 교수 ▲청와대 통일비서관
  • [졸업식에 담긴 ‘2015 희망과 꿈 그리고 사랑’] DMZ 작은학교, 평화를 외치다

    [졸업식에 담긴 ‘2015 희망과 꿈 그리고 사랑’] DMZ 작은학교, 평화를 외치다

    “이곳은 무럭무럭 꿈을 키우는 동네입니다. 이제 떠난다니 무척 서운해요.” 13일 오후 2시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길 150 대성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 주인공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모았다. 2층 교실엔 DMZ(Dream Making Zone·꿈을 일구는 장소)이라고 쓴 커다란 그림이 눈길을 붙잡았다.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에 자리한 대성동 마을을 지키는 아이들의 소망을 담은 듯했다. 제46회 졸업식에선 남녀 2명씩 모두 4명이 180~183호 졸업장을 받았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대성동 마을은 1953년 휴전협정을 통해 ‘공동경비구역(JSA)에 남북이 하나씩 마을을 남기자’고 합의해 생겼다. 현재 49가구 주민 207명이 살고 있다. ‘평화의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곡창 지대를 가르며 흐르는 사천(沙川) 사이로 가깝게는 200여m를 건너면 북한 땅인 개성특별시 기정리 마을이 나타난다. 이날 졸업식엔 강당을 꽉 채우고도 남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저마다 한복을 곱게 갖춰 입은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질문엔 또렷또렷 시원하게 대답을 내놨다. 김예진(12)양은 “북한과 아주 가까워 무섭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우리나라와 미국 군인 아저씨들이 영어 등 공부를 가르쳐주는 덕분에 즐겁다”고 말했다. 졸업식에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재홍 파주시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서형석 소장 등 군 관계자, 교육청·시의회 관계자, 마을 주민, 재학생, 학부모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퓨전타악 동아리 등 재학생들은 언니·오빠들을 위해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를 열창하는 등 멋진 공연을 선물하며 마지막 등교를 배웅했다. 진영진 교장은 졸업생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수여하며 졸업과 진학을 축하했다. 정 장관은 학교에 ‘대성동초교 변천사 사진기록집’을 건넸다. 국가기록원에서 조사한 자료를 담아 뜻을 더했다. 졸업생들은 파주시 문산 중학교에 2명, 조리읍 중학교에 1명, 고양시 일산지역 중학교에 1명 진학한다. 1954년 22명으로 첫발을 뗀 대성동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10명 이하로 줄어 폐교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2006년 공동학구로 지정돼 다른 지역 학생의 입학이 허용되면서 전교생 30명으로 커졌다. 파주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DMZ로 간 시인들,남북 상생을외치다

    DMZ로 간 시인들,남북 상생을외치다

    강은교(70) 시인은 지난해 가을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늘 환상 속에서만 보는 언니와 고향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자갈 둘둘 허리에 감은 오솔길/휘둥그레 눈뜬 바늘꽃 기침소리//그리운 동네처럼, 너/핏줄 속으로 돌아다니고, 돌아다니고//아야아’(자갈둘둘-DMZ 앞에서) 시인은 함경남도 홍원군 풍산리에서 태어났다. 8·15 해방 직후 어머니 등에 업혀 남쪽으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다. 어머니는 당시 다섯 살인 언니는 고향에 두고 젖먹이인 시인만 업고 내려왔다가 전쟁이 일어나 북으로 가지 못했다. 북한에는 얼굴도 모르는 언니가 살고 있다. 시인은 “언니가 살고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를 썼다”며 “DMZ는 아물지 않은 우리의 상처다. DMZ를 떠올리면 슬픈 사연들이 아른거린다”고 애달파했다. 유안진(74) 시인은 40대에 본 DMZ의 흐릿한 영상을 기억 속에서 되살렸다. 시인이 겪는 요통에 빗대 분단의 고통을 표현했다. ‘넘어가고 넘어오는/산 그림자 바람의 그림자도/이 철조망에 걸려서 허리가 꺾어진다//비명 없이 지고 있던 태양도/핏물 붉게 흘리는 하늘 아래//나의 오랜 지병이/하필이면 왜 요통腰痛인지를/알아져서 더 아파라’(DMZ) 시인은 “예전 봤던 DMZ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더니 우리 몸의 허리가 두 동강 난 느낌이 들었다”며 “좌우 이념은 허상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게 이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DMZ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에겐 늘 가슴에 맺혀 있다”며 “나이가 들면서 ‘생전에 통일이 될까’ 하는 아픔이 더 짙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세영(73) 시인은 2006년 4월에 본 한 장면이 지금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연천 지역의 DMZ를 둘러보고 귀가할 때다. 임진강에서 젊은이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물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임진강은 6·25 때 많은 국군과 민간인이 죽은 통한의 강인데 그런 역사를 다 잊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채 굳지 않은 피, 신음 소리, 비명 소리,/아스라이 들려오는 산 자의 호곡소리 또 총소리,/이 모두 생생한데/봄이 되었다고/무슨 원한, 무슨 저주 씻어 내려/강물은 또 하얗게 울음 우는가.’(임진강) 시인은 “분단의 비극과 젊은이들의 모습이 대비되며 가슴이 아파 시를 썼다”며 “분단과 전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통일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DMZ는 분단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떤 집단 체제 아래에서 하나의 기계로 사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했다. 이사라(62) 시인은 DMZ를 찾았을 때 ‘절망 끝의 희망’을 봤다. ‘서로 등을 보이며 헤어졌지//(중략) 그런데도/사이의 것들은 스스로 사랑을 하고/부화의 시간이 곧 올 것만 같아//그 세계/눈에 보이지는 않으나//그렇게라도/어떻게/얼떨결에라도’(DMZ) 시인은 “남과 북 사이의 DMZ는 단절로 볼 수도 있지만 남과 북의 기능이 공존하고 남과 북을 매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그곳에서 자라나는 생명력은 아픔을 넘어 희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시인협회 시인 267명이 저마다 DMZ에 얽힌 사연을 노래했다. 사화집 ‘DMZ, 시인들의 메시지’(문학세계사)에서다. 이번 시집은 지난해 7월 별세한 김종철 전 시인협회장의 야심찬 기획 작품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시인이여, DMZ를 기억하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124명의 시인과 함께 DMZ를 찾기도 했다. 문정희 시인협회장은 “DMZ라는 반생명의 철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이에 생생한 생명들이 자라났다”며 “공격과 반격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아니라 남북이 함께 생명을 노래하는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국문학은 DMZ의 상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DMZ를 주제로 한 작품이 활발히 창작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유공자 후손 처우 실태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유공자 후손 처우 실태

    정부는 올해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아 국정과제의 하나로 ‘명예로운 보훈’을 채택했다. 하지만 정부의 보훈정책은 친일 잔재 청산과 ‘광복’보다는 한·미 동맹 강화나 6·25 참전 등 ‘분단’ 극복과 안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평가다. 12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보훈 대상자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모두 242만 2727명이고 이 중 독립유공자(순국선열·애국지사) 관련 대상자는 6만 6190명이다. 생존 독립유공자(애국지사)는 88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6만 6102명은 배우자와 자식 등 돌아가신 애국지사의 유가족이다. 보훈처는 생존 독립유공자에게 훈격에 따라 매달 97만 3000원에서 490만 8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손이다. 특히 사망한 유공자의 유족(배우자 포함)은 대통령 표창(52만 2000원)부터 건국훈장 1~3등급(217만 4000원)까지 매달 훈격에 따라 다른 보상금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유가족 중 실제 보상금을 지급받은 인원은 지난해 연인원 기준 5786명이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양승만(1990년 사망)씨의 다섯째 딸 양옥모(74) 할머니는 해방 당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를 놓쳐 중국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2011년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에 따른 유공자 월 보상금 120여만원은 중국에 있는 언니가 받고, 본인은 매달 기초노령연금 2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박근영 독립유공자유족회 사무총장은 “중국에서 독립운동한 선조를 따라 살다 한국으로 온 사람이 1300여명 정도 되지만 한국에 기반이 없어 여자들은 주로 식당이나 가정집 파출부, 남자는 노가다 판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보상금을 지급받은 유족 5786명 중에서도 건국훈장보다 등급이 낮은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 대상자 1883명(32.5%)은 월 보상금이 52만 2000원~91만 6000원 수준으로 생계비로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실이 보훈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보훈액수 총액은 65억 873만여원으로 나타났다. 보훈처는 현실적으로 모든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보상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유족에게도 영주귀국자에 대한 국내 정착금과 유족의 의료비 혜택, 취업 가점 등으로 수혜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지난해까지 독립유공자가 1945년 8월 15일 이후 사망한 경우 손자녀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최초 등록 당시 자녀까지 모두 사망해 유족 가운데 보상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경우 손자녀 중 1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정부의 올해 보훈 예산은 5조 2108억원(세출예산 4조 4674억원+기금예산 7434억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3조 6041억원은 보훈 심사와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 상이용사 등 포함)의 보상비용으로 투입된다. 이 밖에 의료·교육 등 보훈복지가 5971억원, 보훈선양사업 예산이 607억원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사업 기금은 605억원이다. 이에 따라 보훈 예산 확보와 이명박 정부 시절 차관급 기관으로 격하된 보훈처의 위상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숨겨진 해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발굴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성호(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보훈학회장은 “80세가 넘는 해외 6·25 참전 군인도 매년 초대하는데 중국 만주나 연해주 등 해외에 생존한 독립유공자도 적극 발굴하고 신경 써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친일 행위자가 여전히 국립묘지에 독립유공자와 나란히 안장되는 현실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일본군으로 복무했던 반민족 행위자들이 6·25전쟁 등을 통해 국가 수호 공헌자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박 사무총장은 “월남 파병자나 6·25 참전자는 봉급을 받으면서 국가에 기여했지만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써 가면서 국가에 기여했다”며 “친일파의 후손은 잘살고 해외로 뿔뿔이 흩어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사설] 北, 남북 화해 골든타임 이대로 날릴 텐가

    남북 대화의 시계가 뒤로 가는 듯하다. 5·24조치부터 해제하라며 우리의 대화 제의에 귀를 막은 북한은 지난 6일과 8일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저들의 무력 시위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겠으나 이것 말고도 북녘에서 전개되는 이런저런 움직임들을 종합하면 당분간 남북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일은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어 가는 형국이다. 합참에 따르면 엊그제 북이 발사한 미사일은 모두 러시아제를 본떠 만든 KN 계열의 신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특히 6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관한 가운데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서 발사한 함대함 미사일은 최대사거리가 130㎞에 이르는 데다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15m의 초저고도 비행이 가능해 우리 함정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음달에 있을 한·미 키리졸브 합동군사연습에 맞불을 놓는 의미도 있겠으나, 화해의 손짓 뒤로 끊임없이 군비 증강에 몰두하는 저들의 실상을 거듭 확인시켜 주는 증거물임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런 북의 움직임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다. 지난해 11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모스크바 방문이 말해 주듯 북은 소원해진 중국의 대안으로 러시아를 택하고는 다각도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일각에선 머지않아 북한과 러시아가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사상 첫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지난달 30일 국방장관과 각군 참모총장이 참여한 고위급 군사회의에서 사상 첫 북·러 합동 군사훈련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는 5월 9일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이를 계기로 북·러 군사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시나리오를 통해 러시아를 미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게 북의 계산일 것이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무력시위를 반복하고 러시아와 거리를 좁힌들 그것으로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러 관계를 감안할 때 러시아와의 협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북은 깨달아야 한다. 출구는 오직 한국뿐이다. 분단 70년인 올해 남북 간 안정적인 대화 틀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황차 급속한 체제 위기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북 지도부는 가져야 한다. 남북 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 시아파 반군 ‘쿠데타’… 예멘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시아파 반군 ‘쿠데타’… 예멘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시아파 반군인 후티가 정부를 전복한 예멘이 통일 25년 만에 남북 재분단 위기에 놓였다고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걸프 지역 최빈국인 예멘은 2012년 2월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의 34년 철권통치가 무너진 뒤 불과 3년 만에 ‘아랍의 봄’에서 ‘분단 위기’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남부 분리주의 세력의 근거지인 아덴시는 이날 후티 무장대원의 침범을 막는다며 시 주변에 안전구역을 설정했다. 시 안보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후티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이 세운 새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앞서 반군 후티는 지난 6일 TV 중계를 통해 임시 헌법을 선포하고 기존 의회를 해산, 551명으로 구성된 새 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후티는 기존 내각을 해산하고 임시 국방장관과 내무장관도 임명했다. 예멘 남단의 최대 항구도시인 아덴시는 지난달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집무실과 사저를 무력으로 장악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아덴국제공항과 항구를 하루 동안 폐쇄하기도 했다. 살레 정권에서 16년간 부통령을 맡다가 평화적 정권 이양에 나섰던 하디 전 대통령은 예멘 남부 아브얀주 출신으로 소외된 남부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1990년 남북 통일 이전까지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시는 그간 분리 독립의 중심축 역할을 해 왔다. 정통성이 결여된 후티의 쿠데타 정권 수립은 이런 아덴시에 여러 면에서 분리 독립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후티가 수도 사나와 정부 청사, 의회 등을 장악했으나 중남부의 수니파세력, 이와 연계된 예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에 막혀 남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도 걸프 지역 최초의 반미 시아파 정권 탄생을 꺼리고 있다. 예멘은 전체 인구의 30%가 시아파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 70%는 수니파다. 예멘을 제외한 걸프 지역 6개 국가로 구성된 걸프협력이사회(GCC)는 7일 후티 쿠데타 종식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불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불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대주교’ ‘합리적 진보주의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68) 대주교에게는 자주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천주교 안팎에서 거부감 없이 소통 가능한 사제로 꼽힌다는 열린 성직자.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도 대주교 중 유일하게 그 리본을 달았던 한국 천주교계의 큰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 의장 선출 직후부터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교회’를 입에 담고 사는 김 대주교. 서울 광진구 중곡동 주교회의 의장 집무실에서 만난 대주교는 “종교는 울타리 안의 공동체를 벗어나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의장 취임부터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교회’를 강조하고 있다. 시대의 아픔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함의를 갖는가. -시대의 아픔이란 근래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매 시대의 아픔이 있다. 지난해 눈 뜨고 빤히 보면서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는 그 아픔의 작은 예일 뿐이다. 어떤 말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무기력의 노출이란 점에서 아픔을 통감한다. →의장 취임 이후 사건 사고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나. -세월호 참사에선 무엇보다 미래의 꿈이자 희망인 학생들의 희생이 컸다. 쌍용차를 비롯해 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과 그들이 느끼는 생명의 위협도 참담하다. 남북한 경색 국면의 지속은 여전히 민족적인 아픔이다. 소외계층을 향한 있는 자들의 나눔이 너무 인색하다. 특히 결혼이주여성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국가, 민족에 상관없는 천부적인 생존권 보장 차원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한국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교황 방한 이후 우리 주교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실천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해 온 것으로 안다. -잘 알려졌듯이 주교들이 먼저 사마리아통장을 개설했다.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작은 정성을 모은 첫 번째 집단적 실천이 아닐까 한다. 현재 매월 송금하는 분도 있고 분기별로 송금하는 이들도 있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다른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조만간 사회에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교회의 산하 단체에서 그에 관한 사목 방안을 고심하고 있고 교구별로도 실천 사안을 마련 중이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 교회가 어떤 점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최대 화두는 교회의 현대사회 적응이다. 우선 내적인 차원에서 성직자와 교회 구조의 쇄신이 중요하다. 외적으로는 시대의 아픔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교회 건물에 갇힌 ‘우리끼리’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시대의 문제를 복음의 정신으로 보고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놓고 시선이 엇갈린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언행 논란이 단적인 예다. 보수·진보의 갈등이 심한데 종교까지 쪼개지는 양상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보나. -한 조직의 구성원이 가는 길은 다양하다. 어떤 분은 직설적이고 어떤 분은 상당히 정제된 표현을 쓰지만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비슷하다고 본다. 교회 내 보수·진보 편 가르기는 세간에서 보는 기준일 뿐이다. 사제는 모두 교회를 사랑한다. 교회 내에서는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이 항상 으뜸 기준이고 그 기준에 따라 사회·정치 문제를 식별하는 것이다. 보수에도 진리와 정의가 있고 진보에도 진리와 정의가 있는 법 아닌가.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비판했다. ‘상상치 못한 결정에 당혹스럽다’는 언급이 주목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대화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당시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그쪽 편에 서서 한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정당이 해산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정치 발전과 국가의 위신을 생각해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린 것이다. →올해는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남북 관계가 여전히 경색돼 있는 상황인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 단지 정책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통일부가 그런 의지에서 구성됐다면 그 뜻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금년엔 꼭 가시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2011년 방북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 자존심보다 민족이 더 앞서는 것이니 서로 품어 안고 나가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의지에 선의의 협력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계산 없는 민족 동질성 회복의 차원이다. →올해 방북을 소망한다고 밝혔는데 계획은 잡혔나. -구체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선 광주대교구가 있는 전라도가 북한 농어촌을 도울 수 있을지 교구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다. 가능하면 정부나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조만간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낼 계획이다. 천주교 민화위(민족화해위원회) 차원에서도 방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의도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통일은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희망의 출구라고 본다. 경제, 사상, 이념 갈등이나 동북아 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해소하는 길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차원이라도 잘된다면 북한 주민들 삶의 질이 올라가고 통일이 되더라도 충격이 덜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종교 갈등이 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은데. -아직 그럴 정도의 징후는 없다고 본다. 50여개 종교, 600여 종파가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일부 배타적인 근본주의를 제외하곤 문제가 없다. 다른 종교의 교리를 다 수용하거나 인정할 순 없어도 존중은 해야 한다. →최근 이슬람국가(IS)의 연이은 테러와 인질 살해를 보고 느낀 점이 많을 텐데. -제 신앙을 제대로 통찰한다면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코란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편향된 해석이 큰 문제다. 제 교파의 교리를 더 공부, 연구하고 타 종교를 비난, 폄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종교들이 큰 마찰 없이 지내는 건 국민들의 종교적 심성이 좋기 때문이다. 지금 IS 사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잠잠해질 것이다. 배타적 근본주의도 톨레랑스 차원에서 바라보고 동행토록 배려한다면 말이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과거사 반성은 차치하고 거꾸로 우경 군국주의로 치닫는데 어찌 봐야 하나. 특히 천주교 차원에서 할 일이 있다면. -양국 교회가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매년 하고 있다. 양국의 교회와 성직자들이 사회 관심사를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자는 공동의 노력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일본 주교들이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위로한 건 큰 결실이라고 본다. 극단적 우경화는 동북아 평화 노력을 깨고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한다. 군국주의를 부활해 패권을 잡겠다면 시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 전 단행한 새 추기경 임명에 한국이 빠졌다. 대주교도 물망에 올랐는데 섭섭하지 않았나. 한국 천주교 교세 증가는 세계가 주목할 만큼 이례적인데. -우리 교회 교세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섭섭해할 이유가 없다. 한국 천주교는 보편적 종교로서의 역할을 차분히 잘하고 있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왜 사제가 됐는가. 혹시 사제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 -모태 신앙이다. 어릴 때부터 신앙적 분위기에서 컸다. 큰누님도 수녀다. 사제의 상이 좋았던 것 같다. 후회는 없었지만 결혼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신학교 학생 시절 어려웠을 때 유혹처럼 다가왔었다.(웃음) →이 시대의 사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기능인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존재 자체로 빛과 소금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능수능란한 행정 관리의 측면이 아니라 하느님과 신자 사이의 진정한 중재다. →많은 국민이 어렵게 살고 있다. 덕담 한마디 부탁한다. -양은 순하고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출한 사람 혼자만 나가지 않고 뒤처진 사람과 어깨동무해 같이 걸어간다면 국민들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김희중 대주교는 누구 불교 등 타 종교와 활발한 교류… 열린 성향에 강단 있는 성직자 194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 살레시오고교와 대건신학대를 졸업했다. 1975년 대건신학대를 졸업하면서 사제 서품(세례명 히지노)을 받아 이때부터 줄곧 광주대교구에 소속돼 왔다. 광주대교구 명상의 집 지도신부, 광주가톨릭대 교수(사무처장), 광주대교구 금호동 본당 주임신부, 총대리 등을 지냈다. 1976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로 유학해 박사학위(교회사)를 받아 1983년부터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03년 주교품을 받았고 2010년부터 광주대교구장직을 승계해 맡아 왔다. 지난해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강우일 의장(제주교구장)의 뒤를 이어 임기 3년의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 성직주교위원회 위원,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2004년부터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개신교, 불교 등 타 종교와 활발히 교류하며 전국적인 활동을 해 왔으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2006년부터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고 교황청의 그리스도일치촉진평의회 위원,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합리적이고 열린 성향의 사제로 사회적 논란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 온 강단 있는 성직자로 종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등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국내 16개 천주교 교구 협의체로서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대내적으로는 주교회의총회, 상임위원회, 주교위원회, 전국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한국 교회의 전국 단위 사업을 추진하며 교구 간 협력을 도모한다. 전국의 성당에서 통용되는 성경, 기도서, 성가집과 각종 예식서, ‘복음의 기쁨’을 비롯한 교황 문헌을 공식 번역해 펴내는 일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교황청 및 외국 교회와 연락하는 업무를 한다. 회원은 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1명, 대수도원장 1명 등 모두 25명이다. 은퇴한 주교인 준회원 12명은 사안에 따라 총회에 참석한다.
  • [데스크 시각] 북단 대성동, 그를 위한 행진곡/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북단 대성동, 그를 위한 행진곡/송한수 정책뉴스부 차장

    엊그제가 입춘, 이제 봄입니다. 따스한 기운이 막 솟구칩니다. 남녘에서부터 차례로 말이지요. 하지만 서울은 아직 춥긴 합니다. 더 북쪽인 그곳은 더하겠습니다만. 다름 아닌 대성동 마을 말입니다. 이레 뒤면 거기를 찾아갑니다. 우편번호 413-920 경기 파주시 군내면. 자유의 마을로 불리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북쪽 거주지라죠. 49가구 207명이 삶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린 역사를 오롯이 품었습니다. 60여년 전 태생부터 오늘날까지. 비무장지대(DMZ)에 자리해서 그렇습니다. 북쪽 마을과 손에 닿을 듯합니다. ‘평화의 마을’로 불리는 곳과 겨우 1.8㎞ 사이니. 개성특별시 판문군 기정동입니다. 전쟁 전엔 한 동네였답니다. 곡창 지대를 가르며 흐르는 사천(沙川) 건너편에서 손에 잡힐 듯합니다. 그러나 서로 왕래를 못 하긴 매한가지. 올해 분단 70돌이라 눈길을 끕니다. 역시 남북 합작의 상징이면서도 생채기를 간직한, 개성공단과 서남쪽으로 10리(4㎞) 거리입니다. 남북 대립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저마다 쌓은 두 철탑 탓입니다. 지금껏 서로 다투며 높이기만 했습니다. 1970년대 대성동에 48m 높이로 세워진 이래 현재 남쪽엔 100m, 북쪽엔 165m짜리 국기 게양대가 버티고 있습니다. 기정동도 그렇거니와 대성동 또한 ‘선전 마을’로 기록됐습니다. 경기도나 파주시 등에서 낸 자료에 나타납니다. 남북 체제 경쟁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대성동 주택 50여개 건물 가운데 서향(西向)이 40여개입니다. 개성보다 위쪽에 자리했으니 집들이 북쪽을 바라보는 것이죠.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보여 주기 위한 주택개량 사업을 벌인 결과입니다. 따라서 겨울이면 햇볕이 잘 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집을 고치고 싶지만 주민들에겐 언감생심.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DMZ라고 반목만 목격한 게 아닙니다. 1984년 경기 중부지방 물난리 땐 북한 구호물자 인수본부가 들어서기도 했으니. 한 주민은 “판문점에 집안에서 만든 옥판(玉板)을 묻었다고 들었다”며 “6·25전쟁 발발 전 통일될 날짜를 적어 놨다더라”고 말합니다. 판문점은 대성동 북쪽 1.5㎞입니다. 그처럼 통일은 꿈속에만 있지 않지요. 꼭 이뤄야 할 염원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대성동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답니다.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 등과 손잡고 주택개량을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대성동을 새롭고 뜻깊게 꾸미기 위해 아이디어를 공모해 사업을 펼치고 모금운동도 펼쳐 ‘국민과 함께 만드는 자유의 마을’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디다 못해 앞다퉈 떠나려던 터에 다행이라고 주민들은 밝게 웃습니다. 또 대성동을 지키는 어르신들은 ‘방울 굿이 더 달다’고 말합니다. 작은 굿에서 오히려 맛난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속담입니다. 주민들은 우리에게 귀띔합니다. 허울만 그럴듯한 큰 것보다 작은 게 더 알차다는 교훈을 담았다고. 고려 때 마지막 충신 이색(1328~1396) 선생이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자부심도 빼놓지 않습니다. 과연 어려운 가운데서도 소리 없이 강한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대성동 살리기는 국민 곁으로 다가서는 노력이라고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헤집는, 소외감이라는 추위를 녹이는 일이니까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바랍니다. 안보를 떠나서 말입니다. 이래저래 대성동에 들어갈 ‘13일의 금요일’이 기다려집니다.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달동네 도서관/문소영 논설위원

    ‘달동네’는 하천변이나 산등성·산비탈 등 비교적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말한다. 달동네의 영어 표현이 샌티타운(shantytown)이거나 푸어 힐사이드 빌리지(poor hillside village)인 이유는 ‘가난’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달동네는 가난을 표현하면서도 산등성이의 집에서 밝은 달이 가깝다며 이름을 붙였으니 긍정적이고 또 낭만적이다. 달동네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독서도 가능할 듯하다. 한국의 달동네 형성은 남북 분단으로 월남한 이북 사람들이 산등성이 등에 무허가 판잣집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을 읽어 보면 그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경기도 개풍 출신인 박완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엄마 손에 이끌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이사 왔다. 달동네는 한국전쟁 종전 직후부터 청계천 등을 중심으로 확산됐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으로 급격한 이농 현상이 발생하면서 빠르게 증가했다. 1961년 8만 4440동에서 1970년 18만 7500동까지 배 이상 늘었다. 관악산과 도봉산, 북한산, 불암산, 낙산 등이 위치한 관악구, 도봉구, 은평구, 노원구, 성북구 등에 달동네가 많이 형성됐다. 동네로는 성북동, 신림동, 봉천동, 사당동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해외문화홍보원의 코리아닷넷(www.korea.net)이 영어 기사 표제로 ‘문 네이버후드 라이브러리’(Moon neighborhood library)를 올려 깜짝 놀랐다. 이런 영어식 표현이 있는지를 접어 두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달동네 도서관이 된다. 식당 메뉴에 소고기 육회를 식스 타임스(six times)로 번역해 표기한 것에는 ‘저런 콩글리시가!’라며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달동네를 문 네이버후드로 직역해 옮긴 것은 같은 오류라도 허용할 마음이 생긴다. ‘달의 친구들이 사는 동네’라니, 가난이 아니라 낭만에 방점을 찍은 듯하기 때문이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 정책’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관악구는 2014년 재정자립도가 25.3%에 불과하고 25개의 서울 자치구 중 하위권인 18등이니 그 지역 전체를 달동네라고 표현한 것이다. 성인 대부분이 책을 읽지 않고,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로 책은 더 팔리지 않아 중소서점과 중소출판사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마을 도서관을 더 많이 지으려는 구청장의 노력이 가상하다. 도서관의 증가는 책 판매의 증가이자 독서 인구의 증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덕분에 관악구의 도서관 카드 발급 건수는 2010년 7만 3000건에서 최근 13만 8000건으로 늘었다. ‘지식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식의 보급은 중요하다. 특히 달의 친구들이 사는 동네, 관악구에서 도서관을 중심으로 펴는 ‘지식 복지’ 운동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구본영 칼럼] 평양 넘어 세계를 봐야 통일이 보인다

    [구본영 칼럼] 평양 넘어 세계를 봐야 통일이 보인다

    분단 70년인 올해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주저 말고 대화에 응하라”고 제안했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 북한이 회담장에서 신뢰를 보여 달란 주문이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했다. 남한이 흡수 통일을 추구한다는 의심이다. 뒤집어 보면 대화가 무르익어 주민들이 개방에 노출되면 세습 체제가 흔들릴 것이란 불안감이다. 남이 다가서면 북이 더 움츠리는 ‘밀당’을 보며 답답하던 차에 영국의 한반도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의 글을 읽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글로벌 외교를 방기하고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통일이란 목표에 ‘올인’해 북한만 쳐다보지 말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협력을 구하란 충고다. 맞는 얘기다. 분단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국제 역학의 산물이었다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내치에선 성공한 미 대통령이었다. 뉴딜 정책과 2차 대전 특수에 힘입어 대공황을 극복했다. 다만 외교적 통찰력은 부족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집권하자마자 소련을 승인하는 등 다가올 동서 냉전을 예측하지 못했다. 동서 분리의 불씨가 된 테헤란회담에서 소련의 의중을 읽지 못했다. 스탈린의 제의대로 미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앞장섰지만 독일로의 진군을 늦추자 무임 승차한 소련이 동유럽을 삼켰다. 그의 외교적 ‘순진함’이 부른 대가는 엄청났다.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지만 후임자인 해리 S 트루먼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미국은 서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과 군사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위한 마셜플랜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설이 그 부산물이다. 더 큰 실수는 태평양전쟁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소련이 한반도의 절반을 신탁통치하려는 걸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부동(不凍)항 확보는 제정 러시아 이래 소련의 비원이었다. 이를 눈치 못 챈 루스벨트가 삼팔선 이북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헌납한 꼴이다. 부동항에 대한 집착은 이제 ‘현대판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로 이어진 것인가. 한국으로의 석탄·가스 수출에 관심 많은 러시아가 부동항인 나진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러시아와 북한이 일단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놓고 이해가 일치했다. 북한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한반도 통과보다 나진항을 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쪽을 선택한 듯하다. 문을 너무 열면 체제가 동요할 것이란 우려 탓일 게다. 박근혜 정부가 말로만 ‘스마트 외교’를 읊조리릴 게 아니라 창조적 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물론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진부한 주장에 현혹될 까닭은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은행 설립을 위해 100억 달러와 쌀 수십만t 등을 요구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에 실린 비화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임기 초반 “남북 관계 하나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 쳐도 된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했던가.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이에 더 절망적으로 매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오는 5월 러시아 전승 기념일 행사 참석이나 김정은과의 조우를 꺼릴 이유도 없다.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이 체제 개혁과 평화통일의 대도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시베리아 가스전이나 유라시아 철도의 한반도 통과에 대한 푸틴의 강렬한 의지를 선용할 호기임은 분명하다. 동서독 통일 때처럼 미국은 물론 러시아와 같은 주변 강국의 도움을 이끌어 내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독일 통일을 앞둔 1987년 6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역사적 통찰이 담긴 연설을 했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동서독 분단에 대한 소련의 결자해지를 요구했고, 3년 후 통독은 이뤄졌다. 누가 알랴. 어쩌면 푸틴에게 휴전선을 허무는 데 일역을 하라고 요구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
  • 베스티 혜연-다혜, 봄 부르는 헬멧 셀카 공개 ‘깜찍’

    베스티 혜연-다혜, 봄 부르는 헬멧 셀카 공개 ‘깜찍’

    걸그룹 베스티의 리더 혜연과 다혜가 GBC ‘평화투어 DMZ 음악여행’ 촬영 당시 글로벌 프렌즈 멤버로 활약하며 찍은 사진이 뒤늦게 화제다. 혜연은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DMZ를 찾는 글로벌 관광객들을 위해 준비한 ‘평화투어 DMZ 음악여행’ 촬영 때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혜연이 올린 사진에는 DMZ 제3땅굴에 들어가기 직전, 파란색 안전모를 쓰고 같은 그룹 멤버 다혜와 함께 찍은 셀프카메라 사진이 담겼다. 공개된 사진 속 혜연과 다혜는 뽀얀 피부와 함께 추위까지 녹이는 귀여운 토끼눈 포즈로 나들이에 대한 즐거움과 함께 분단의 현장을 찾은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혜연은 사진과 함께 분단된 현실에 대해 “한편으론 마음이 너무 아픈 하루였다”는 제3땅굴 방문 후기도 남겼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을 것 같네요”, “비무장지대를 돌며 새삼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더라”, “추운데 고생 했네” 등 공감과 격려의 댓글들이 달렸으며 “터널 안에 들어갔구나?”, “혜연짱 다혜짱 너무 귀엽다” 등 일본 팬들이 남긴 다양한 글로벌 댓글도 반응으로 올라왔다. 경기도 파주의 대표 안보 관광지를 방문하며 평화 통일의 염원을 담아 제작된 ‘평화투어 DMZ 음악여행’은 윤도현이 평화밴드 단장으로 출연하여 평화송을 완성하는 여정이 그려졌다. 베스티 혜연과 다혜의 맹활약이 담긴 평화밴드의 좌충우돌 ‘평화송’ 완성기는 글로벌 채널을 통해 공개를 시작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문학은 픽션이지만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망원경이거나 현미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을 우화처럼 보여 주는 만화경(萬華鏡)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서울에 관한 공식적이고 근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문학작품에는 역사에 나오지 않는 서울사람들의 내밀한 희로애락이 실려 있다. 공룡 같은 도시, ‘서울공화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 숲에 가려진 서울사람들의 진면목은 역사보다 오히려 문학 속에 살아 숨 쉰다. 우리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파리의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 센강처럼 낭만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일까. 한번쯤 가 봐야 하는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와 소설 속 서울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넘친다. 내 집 마련의 꿈과 전세살이의 고달픔, 실직과 타향살이의 애환,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투성이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천민자본주의의 욕망이 꿈틀댄다. 한때 프랑스 도시사회학자들이 유행시킨 ‘Seoulization’이라는 용어가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미국 뉴욕의 고층건물 집적화를 꼬집을 때 쓰였던 ‘Manhattanization’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Seoulization’이란 초거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유형의 현상 중 하나로 흔히 ‘서울형’이라고 설명됐다. 환경오염과 파괴, 무질서, 범죄가 판치는 쓰레기통 같은 도시라는 뜻으로 쓰였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서울을 아파트의 나라로 특징지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였다.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였고,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보존으로 한발 앞서간 파리사람들이 개발에 목을 매는 서울사람들을 비하한 것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이전 서울을 그린 시가와 산문 작품들 어떤 문학작품이 단순히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서울을 다룬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생산되고 서울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대 서울의 의미 있는 특성을 부각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가려 살펴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문학은 시가 문학과 산문 문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시가 문학은 조선의 개국과 한양천도를 알린 정도전의 ‘신도가’와 ‘신도팔경시’가 대표적이다. 신도가는 “아으 다롱디리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라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권근의 ‘신경지리’, 정이오의 ‘남산팔영’, 변계량의 ‘화산별곡’, 윤회의 ‘경회루시’ 등 한결같이 한양을 찬탄하는 내용이었다. 서거정 등의 ‘한도십영’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석형의 ‘호야가’에서 한양도성 축성에 동원된 백성의 참상을 묘사했으며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비판적 작품들이 나왔다. 박제가가 ‘성시전도’에서 근대지향적인 실사구시를 선보였으며 한산거사의 ‘한양가’와 작자 미상의 ‘장안걸식가’에서는 서울거리의 풍물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문학·국어학과 서울연구’ 논문에서 “조선 전기의 산문 문학은 성현의 ‘용재총화’, 허균의 ‘장생전’ 등 잡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후기로 접어들면서 전(傳), 야담, 소설 등 다양한 산문 장르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서울에 관한 자료가 여럿 발견됐다”고 말했다. 정내교의 ‘김성기전’과 ‘임준원전’, 박지원의 ‘마장전’과 ‘광문자전’, 유득공의 ‘유우춘전’, 이옥의 ‘시간기’(市奸記), 조수삼의 ‘육서조생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옥은 시간기에서 “서울에 세 군데 큰 장이 서는데 동편은 배오개, 서편은 소의문, 중앙은 운종가다. 모두 좌우양편으로 전이 늘어서 은하수처럼 벌여 있다.…”라고 19세기 초 서울의 시장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20세기 시와 소설… 근대문학 작품들 일제 강점기와 전쟁·분단의 비극과 참상 그리고 서울로의 미친 듯한 집중과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자비한 개발이 낳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 병리현상의 실체를 문학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진에 찍히지 않는 실체적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동하 교수는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 오장환의 ‘수부’(首府), 서정주의 ‘광화문’, 정회성의 ‘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박노해의 ‘가리봉시장’,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 등 7편의 시가 1920~1990년대까지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시대순으로 염상섭의 ‘사랑과 죄’, 이상의 ‘날개’,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 윤대녕의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등을 꼽았다. 서울은 물질적으로는 유토피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디스토피아이다. 빛과 그림자의 도시인 셈이다. 문학작품 속에서 서울을 읽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발에 의해 소외된 군상, 아파트와 달동네로 대변되는 주거를 둘러싼 소시민 군상,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군상 등이 그것이다. 개발시대 인간군상을 다룬 시 중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인간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했다. 신동엽도 시 ‘종로오가’에서 이농과 도시빈민, 매매춘 같은 개발연대 희생자들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의 여주인공 영자는 70년대 우리의 딸들이 겪은 인생유전의 자화상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서울 변두리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무허가 주택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줬다. 박완서의 소설 ‘이별의 김포공항’은 당대를 휩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그렸다. 신경림, 정희성, 장정일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기력한 삶을 시로 읊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2000년대 서울은 구원이 필요한 도시다. 서울은 소돔과 고모라로 그려진다. 주거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은 1950년대 서울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도동을 중심으로 정릉, 안암동, 청량리, 약수동 등 벽돌처럼 찍어낸 교외 단지주택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풍경이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소설가 최인호는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 생활에서 발생하는 현대인의 미묘한 정서를 다뤘고 조세희는 ‘민들레는 없다’에서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 서 있다”며 요즘 잠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양귀자는 연작소설집 ‘원미동사람들’에 수록된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서 1980년대 서울을 떠난 서울사람이 아닌 서울사람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등도 집을 매개체로 서울과 서울 언저리를 떠도는 서울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황지우의 시 ‘徐伐 셔, 셔발, 서울 SEOUL’이 제5공화국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허위성을 나타냈다면 1980년대 강남을 그린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에서는 의외의 장면과 마주친다. “가락동, 오금동, 방이동…다 싫어요. 혜화동, 안국동, 경운동하는 동네이름 좀 좋아요, 품위도 있고…” 그 시절 강남은 강북 콤플렉스를 가진 그렇고 그런 동네였다. 반면에 김원일의 ‘깨끗한 몸’, 이남희의 ‘플라스틱 섹스’,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 일련의 소설들은 1990~2000년대 강남을 무대로 펼쳐지는 퇴폐와 향략상을 담았다. 강남은 서울의 시원지였으나 이천년 가까이 잊혀졌다가 다시 새로운 서울의 원천으로 떠오른 땅이다. 인생역전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임을 소설은 가르쳐 준다. 저항의 군상을 대표하는 작품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오적의 소굴이라고 불렸던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에 사는 재벌, 국회의원,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계층을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1960~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은 왜곡된 노동구조와 비인간성이 판치는 자본주의의 하수구였다. ‘전태일평전’을 쓴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윤정모의 ‘신발’, 강석경의 ‘숲속의 방’,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어쩌면 당대를 산 문인들의 참회록이다. 이균영은 “서울은 원주민이 없는 낯선 도시”라고 선언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구보씨’가 세 번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식민도시 경성의 거리를 거닐던 지식인의 상실과 자조를 보여 주었다면 1970년대에는 최인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서울을 관찰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거의 동명의 작품을 통해 서울의 하루를 정밀스케치했다. 2003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종은의 ‘서울특별시’와 이혜경 등 여성 작가 9명의 서울에 관한 단편을 모은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도 소설가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일상이자 기록으로 남았다. 소설과 시는 어쩌면 역사보다 위대하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서울의 생성과 소멸의 궤적을 추적한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는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 2012년 6월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1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서울택리지’ 1권이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간됐고, 2권이 올 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부고] 통일 독일 첫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별세

    [부고] 통일 독일 첫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별세

    과거사 청산과 독일 통일에 깊숙이 개입해 ‘독일 양심의 수호자’라 불렸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숨졌다고 대통령실이 공식 발표했다. 94세. 고인은 1984~1994년 대통령직에 재임하면서 정파를 가리지 않는 절대적 지지를 받아 전후 독일의 국가적 통합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그에게 ‘독일의 양심’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결정적 사건은 1985년 2차대전 패전 40주년을 맞아 당시 서독 수도 본에서 행한 연설이다. 이 연설에서 고인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전쟁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들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지만, 유대인 학살은 역사상 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다”면서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명백히 했다. 아버지가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받은 나치의 직업 외교관이었다는 약점과 당시 미국과 서독의 우파 지도자들이 소련과의 대결 국면을 내세워 전후 청산 문제를 피해 가려던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는 연설이었다. 특히 연설 직전 당시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가 비트부르크에 있는 2차대전 전몰자 묘지에 참배한 것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묘지에 묻힌 이들 가운데 일부는 히틀러의 최고 핵심 측근인 나치무장친위대 고위 장교들이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연설은 최대 우방과 같은 당 소속의 자국 우파 정부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1985년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할 수 있었다. 또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도 앞장섰다. 1989년 폴란드 침공 50주년 기념식에서 고인은 “동유럽 지역에 대한 독일의 영토적 꿈을 포기한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콜 총리가 국내 정치 역학을 따져대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던 가운데 선제적으로 선언하고 나온 것이다. 이 선언 덕에 냉전 붕괴 뒤 급속한 민주화 과정을 밟아나가던 폴란드, 체코 등 나치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독일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1983년 서베를린 시장 시절엔 전격적으로 동독을 방문, 에리히 호네커 당시 서기장과 회담을 갖는 파격적 행보도 선보였다. 같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40년 지기였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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