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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넘어 한민족 근현대문학 100년 아우르다

    한반도 넘어 한민족 근현대문학 100년 아우르다

    남북한 문학을 넘어 중국, 중앙아시아, 일본, 미국 등지의 한인 문학까지 모두 아우른 문학사 저서가 나왔다. 한민족의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문학 100년을 새롭게 정리한 ‘한민족 문학사’(전 2권·역락)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 등 19명이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은 대학교수이거나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10여년간 해당 분야의 연구에 주력해 왔다. 김 교수는 “남북한 문학사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지금까지 없던 문학사의 새로운 길을 냈다”며 “향후 후속 연구와 자료 활용에도 초석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민족 문학사’는 한국문학사, 현대문학사, 민족문학사, 남북한문학사 등 기존 문학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앞선 문학사들은 기술 방향 차이 때문에 다양한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문학사의 공간적 대상을 한반도에 한정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김 교수는 “문학사는 개별 작품의 성취도보다 한 민족의 문화사와 정신사를 총괄적으로 기술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며 “‘한민족 문학사’는 남북한문학은 물론 재외 한인문학 전체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바라봄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 문학 역사를 기술하려 했다”고 말했다. 1권에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문학사와 다소 생소한 북한문학사를 비교 정리했다. 한국문학사는 일제강점기 전후와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한 문학사를, 북한문학사는 문단 형성과 함께 나타난 김일성 중심의 주체문학과 김정일·김정은 시대를 맞아 변화한 문학사를 자세히 다뤘다. 2권에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중국 조선족문학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미국 한인문학을 집중 조명했다. 조선족문학은 19세기 전후 일제의 압박과 궁핍으로 인한 만주 이주와 그 속에서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초래된 문학사의 변화를, 고려인문학은 연해주 강제이주를 겪으며 그 속에서 차별받았던 고려인들이 민족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문학사를 정리했다. 조선인문학에선 모국이 아닌 일본에서 해방, 분단 등을 겪으며 형성된 민족의식과 민족정체성 중심의 문학사를, 한인문학에선 20세기 초 여러 유형의 이민으로 형성된 한인 1세대부터 현재까지 세대별로 미국 주요 도시에 문학 단체를 결성하며 한인문단을 형성한 문학사를 짚었다. 문학사 시기는 한국문학사나 남북한문학사, 민족문학 문학사와 달리 각 지역 문학이 연관성을 가지며 한민족 ‘디아스포라’(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나고 가족과 이별한 사람들의 거주지 또는 그 이산된 상황을 의미) 사회 전반을 통찰할 수 있도록 구분했다. 1910년 국권상실 이전 유이민문학이 태동하는 디아스포라 형성기, 1910~45년 국권상실기 문학의 빛과 그늘을 보여 주는 일제강점 침탈기, 1945~80년 분단 시대 문학의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는 민족분단 대립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다원주의 문학과 정체성의 확장에 따른 글로벌시대 확산기 등 네 시기로 나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장영철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장영철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우리나라가 1945년 분단된 이래 남북한이 공동으로 아리랑 못지않게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아마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것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담은 이 노래가 북한에 전파된 이후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는 모임에서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만의 모임에서도 애창되는 단골 메뉴가 되면서 그야말로 국민 노래로 승격된 느낌이다. 이 노래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분단된 지 벌써 70년이 넘었지만 역사적, 문화적으로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면서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분단을 극복한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구촌에 평화의 기운을 가져오는 일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아직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가사처럼 꿈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은 비록 이러한 노래는 없었지만 통일을 이룬 지 벌써 20년이 넘었고 이제는 통일 초기의 혼란을 극복해 유럽의 대국, 나아가 세계 대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졌다.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독일 사람들은 통일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홈런을 친 것 아닌가. 독일 통일처럼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역량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 마침 독일의 앞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선조가 한반도에 정착하면서부터 대륙을 활보하던 기상은 점차 사라진 것 같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보다는 반도라는 좁은 무대에서 내부 정치에 몰두한 결과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식민지로 전락했다. 해방 후 아직도 그 후유증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은 대륙과의 연결 통로가 단절되면서 사실상 고립무원의 섬나라 처지가 됐다. 다행히 단기간에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건 선견지명의 정책이 있었고, 묻혀 있던 기마민족의 기질이 살아나면서 바다를 건너 전 세계로 뛸 수 있었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남북한 간 소득격차가 너무 커져 통일 부담의 확대를 우려해 통일에 유보적인 자세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독일의 예로 볼 때 통일의 편익이 부담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새로운 투자나 산업 창출이 지연되는 등 활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제2의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남북 통일이 획기적인 계기가 됨은 분명하다. 통일한국이 대륙과 해양세력의 접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리는 막대한 투자가 활성화되면 우리 경제는 새로운 장을 맞게 된다. 더구나 북한 지역의 경제개발로 그동안 억제됐던 출산율이 올라가면 남북한 인구 규모는 현재의 8000만명보다 훨씬 많아지고, 인근 지역에 대한 흡인력까지 고려한다면 내수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이다. 내수활성화를 통해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재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면 서민층의 삶도 회복되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최근 북한의 시장경제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경제가 다소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경제 발전은 주민들의 생활 향상은 물론이고 차후 통일 비용도 절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통일의 기운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현시점에서 통일 이후 취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들을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경제적, 군사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단절돼 다른 정치체제에 살던 사람들이 자칫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차제에 우리 내부의 분열상도 통일해 나가는 진정한 통합적 리더십이 발휘돼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가사처럼 통일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1964년 獨 언론 “박정희, 아시아 프로이센인”

    1964년 獨 언론 “박정희, 아시아 프로이센인”

    1964년 12월 7일(한국시간) 독일 베를린을 국빈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게네랄 안차이거는 박 전 대통령을 ‘아시아의 프로이센인’이라고 묘사했다. 분단국가의 군인 출신 대통령인 박 전 대통령에게서 19세기 중반 통일독일을 이룬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의 이미지를 오버랩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박 대통령과 하인리히 뤼프케 독일 대통령이 분단의 공동체임을 천명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디 벨트는 두 나라의 공통점을 겨냥해 ‘분단된 나라 한국과 독일’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박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황인자(새누리당·비례대표) 의원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당시 현지 24개 신문의 보도 48건 등 관련 기록물 55건을 기증받았다고 29일 밝혔다. 황 의원이 지난해 ‘박정희 대통령 방독 50주년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기 위해 독일 신문사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자료들이다. 국가기록원은 올해 9월부터 대통령 관련 기록물 기증 캠페인을 벌여 8명으로부터 47건을 넘겨받았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전쟁에서 평화로, 진먼다오/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며칠 전 중국 샤먼(厦門)을 다녀왔다. 중국 대륙의 남쪽 푸젠(福建)성 샤먼은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영국과의 난징(南京)조약에 따라 일찍부터 서양 문물이 유입되었고,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남태평양을 바라보는 깨끗한 자연 환경과 따뜻한 기후조건으로 중국에서도 주거 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샤먼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만 가면 작은 섬 진먼다오(門島)에 도착한다. 대륙 땅이 아닌 대만의 영토로, 1949년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밀려나면서도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강한 의지로 지켜낸 섬이다. 1958년 중국은 다시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진먼다오를 공격하였다.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중국은 무려 47만발의 포탄을 쏘아대며, 턱밑에서 호시탐탐 중원 회복을 노리는 장제스의 진먼다오를 맹폭하였다. 그러나 처절하고 끈질긴 저항에 중국도 이 섬을 포기하였다. 이후 장제스는 진먼다오에 여러 대피소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여 본토 회복의 전진기지, 대륙 반공의 요새를 구축하였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 관계를 논할 때 늘 푸젠성과 진먼다오의 팽팽한 대치가 연상되는 이유다. 이번에 들어가 본 지하 방공호는 단순한 땅굴이 아니었다. 식량 보급과 생활이 가능한 지하 도시였고, 특히 군함을 타고 바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자이산(翟山) 갱도의 시설은 상상 이상이었다. 방공호 입구에는 장제스가 직접 쓴 물망재거(勿忘在莒·거에 있던 때를 잊지 말라) 글귀가 있다. ‘물망재거’는 사기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나오는 말로, 전국시대 연(燕)나라에 패한 제(齊)나라가 힘들게 산둥(山東) 지방의 거로 피신한 후에 전단을 내세워 다시 나라를 되찾는다는 고사이다. 장제스도 아마 제나라처럼 언젠가는 다시 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이 성어를 모토로 삼은 것이다. 또 장제스는 진먼다오에서 대륙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거광루(莒光樓)를 세워 한시라도 대륙 회복의 염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60년 전의 장제스를 떠올리며 거광루에 올랐지만 이미 진먼다오는 평화의 땅이 되어 있었다. 1986년부터 대만인들의 중국 본토 친지방문이 허용되었고, 2001년엔 대륙과 진먼다오 사이에 통항·통상·통우의 3통이 시작되어 진먼다오는 이제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명주(名酒)로 꼽히는 진먼 고량주와 포탄으로 날아온 쇠를 녹여 만든 포탄 나이프는 유명 기념품이 됐을 정도다. 대륙과 대만의 정치적 통일은 요원해 보이지만, 이미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사회 문화적 통일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달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분단 66년 만에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우리는 한 핏줄’을 외친 만찬에서 두 정상은 57도 진먼 고량주를 함께 마셨다. 이 술은 중국이 포격을 중단한 1990년 9월 27일을 기념하여 당시 가오화주(高華柱) 대만 국방부장이 만들어 소장했던 것이다. 정치적 합의문 발표는 없었지만, 양안의 평화를 상징하는 고량주로 두 정상은 미래를 약속한 셈이다. 다음달인 2016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 현재 국민당 후보가 아닌 야당 민진당의 여성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차이잉원이 주장하는 양안 관계의 3대 원칙인 ‘유(有)소통, 부(不)도발, 의외의 일이 없을 것’이란 말대로 중국과 대만의 평화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 연휴도 추위도 잊었다… 동부전선 최전방 철통경계

    연휴도 추위도 잊었다… 동부전선 최전방 철통경계

    국민들이 성탄절 연휴를 즐기던 지난 24일 밤 강원 인제군 동부전선 최전방초소(GOP)에서 육군 12사단 장병들이 철통 같은 야간 경계근무를 펼치고 있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이었던 올 한 해 남북관계는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 중단을 둘러싼 포격전과 북한의 지뢰 도발 등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이르며 요동쳤다. 인제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열린세상] 지방 소멸 시대에 대비한 작은 선택 몇 가지/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열린세상] 지방 소멸 시대에 대비한 작은 선택 몇 가지/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연말 입시철이라 그런지 대학과 연관해 지역의 불균형 발전을 생각해 보았다. 많은 지표 중 시중의 대학 서열보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지역 불균형 발전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척도가 없는 것 같다. 학원가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중의 정설처럼 된 대학 서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으로 이어지는 서울 소재 거의 모든 대학 다음으로 지방 명문대인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으로 순위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거의 1980년대까지도 이들 지방 명문대는 서울에 있는 중상위권 대학들을 능가했다. 아니 최상위권 대학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대학에 다니는 학생조차도 기회가 되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의 편입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는 이런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의 치유에 마냥 매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우리도 머지않은 장래에 ‘지방’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와 불과 얼마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인구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일본은 상당수의 인구가 고령화됐을 뿐 아니라 국토 전체의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접어듦에 따라 도쿄와 대도시를 제외한 거의 3분의1 정도의 지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지방 소멸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의 일과 사람, 마을을 창생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방 소멸에 대비한 우리의 시책 자체가 아니다. 물론 시책이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용어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선입견에 더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8·15 ‘해방’이라는 말이 남북 ‘분단’이라는 의미를 감추고 있듯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보자. 일본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직수입해 쓰고 있는 지역 재생의 ‘재생’이라는 용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지역 ‘창생’(創生)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전자가 원형으로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소극적 말임에 견주어 후자는 창조적으로 재생하거나 활력을 부여한다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은연중 우리가 쓰는 이런 용어 중 하나가 ‘귀농’이다. 혼자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그리고 귀농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될는지 몰라도 귀농이라는 말은 도시 생활의 낙오자가 농촌으로 귀향해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어렸을 적 농사짓는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농사짓지 말라”는 말을 하도 자주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일본을 생각하면 이게 영 틀린 것도 아닌 것 같다. 일본은 ‘취농’(就農)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거나 공무원, 교사, 자영업처럼 농사도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동등한 직업 중 하나라는 관점이다. 우리도 이처럼 중립적인 용어 선택을 왜 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가 이 말을 쓰지 않더라도 공중파 방송에서라도 우선 귀농이라는 말 대신 취농이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싶다. 인식의 전환에 효과가 클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귀촌이라는 말도 대체할 용어가 없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이라는 말도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지방’이 ‘낙후’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어 지자체 등에서 기관 명칭 등을 중심으로 지방이라는 말을 지우자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충북지방경찰청을 충북경찰청, 전남지방경찰청을 전남경찰청으로 바꾸는 식이다. 또 어떤 지자체는 중앙과 지방, 서울과 지방이라는 생각을 부지불식 간에 심어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지방’이란 용어를 지우는 조례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에게도 수도권을 제외한 지자체 소멸의 위기가 불원간 닥쳐올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책의 개발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민뿐 아니라 이들 지역 발전의 주체가 되는 사람과 기업의 생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적절한 용어의 선택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자화자찬’은 없다… 냉정한 눈으로 본 광복 70년·극단적 대립 없다… 긴밀 협력 이어 온 한일 50년

    ‘자화자찬’은 없다… 냉정한 눈으로 본 광복 70년·극단적 대립 없다… 긴밀 협력 이어 온 한일 50년

    “‘한강의 기적’이나 ‘세계 유일’ 등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는 배제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이라는 한·일 양국 간 반목과 매년 되풀이되는 독도와 과거사 마찰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극단적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동북아역사재단)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역사적인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광복 70주년 학술서 시리즈와 한·일관계사 시리즈가 22일 나란히 출간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이날 발간한 ‘광복 70년 시리즈’(전 6권)는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산림녹화,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의 공과를 담았다. 한중연 측은 “달콤한 자화자찬 식의 형용사를 나열해 대한민국의 70년을 꾸민 게 아니라 자료와 실제 수치를 근거로 광복 이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냉정히 평가했다”며 “스포츠와 의식주 70년 변화상 등을 덧붙여 9권으로 영문 번역으로도 완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45년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 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1권 ‘한국의 외교안보와 통일 70년’에서는 지난 시기 외교안보와 통일 정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했다. 3권 ‘한국의 정치 70년’에서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어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체제, 민주화 전개 과정을 서술했다. 4권 ‘한국의 경제발전 70년’에서는 성장과 분배, 금융, 재정, 노동 등 한국 경제의 현재와 문제를 생각해 보는 장을 마련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분야별 대표 필진으로 참여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일 양국 관계의 50년사를 아우르는 책 ‘한일관계사 1965-2015’ 시리즈 전 3권을 냈다. 한국과 일본의 중견·소장파 연구자 51명이 1965년 이후 한·일 관계를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세 분야로 나눠 다각적인 분석과 검토를 시도했다. 국교정상화를 이룬 지 50년이 됐지만 양국 관계는 정상 간 대면조차 꺼리고, 양 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급속히 떨어질 정도로 악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한·일 관계는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성공적인 관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비대칭적이고 수직적인 제국과 식민지 관계에서 국교정상화 후 50년 만에 대칭적이고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에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책 발간에 맞춰 이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1990년대 이후 빈번해진 역사 마찰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극단적인 대립을 회피하면서 다방면에서 긴밀한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건 정치적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인권 존중이라는 기본적 가치와 규범을 공유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간담회에는 대표 집필자인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 이소자키 노리요 일본 가쿠슈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기고] 사랑, 사명, 그리고 감사/정은찬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기고] 사랑, 사명, 그리고 감사/정은찬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언젠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 적이 있다. 1944년 제임스 라이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밀러 대위를 중심으로 한 8명의 병사들이 임무수행 과정에 전사한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라이언은 밀러 대위 묘소를 찾아 “저는 대위님이 잘 살라고 하셔서 잘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웬만큼은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라이언을 구한 것은 국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그의 조국과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사랑이었다. 그들의 삶을 대신한 라이언의 그 후 인생은 사명을 다하는 감사의 삶이었을 것이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바람도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잘 사는 것,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 북한 땅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사명을 다하며 감사함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는 2만 8000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19명의 박사와 143명의 정부 및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 공무원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말 통일부는 탈북민 정규직 공무원(7·9급) 5명을 채용했다. 정부 부처에서 일반직으로 채용한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가 통일 준비의 일환으로 솔선수범한 것이다. 그들과 만나면서 2012년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공채에 합격했던 감격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당시 감사, 감사, 또 감사하며 살리라 다짐했던 나의 초심은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번에 임용된 후배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국민으로 받아 준 대한민국에 감사하고, 우리에게 사회의 각 곳에 설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준 그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는 삶이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탈북민의 성공적 정착은 작은 통일이며, 맞춤형 정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민 정착은 정책과 제도가 잘 돼 있어도 70여년 분단이 남겨 놓은 문화적 이질감, 경쟁에 대한 두려움, 편견·차별로 인한 자존감 상실, 상대적 박탈감,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인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감사의 힘’으로 이겨 내야 한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0.3초, 부정적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기 전에 한국 입국 초기 국민으로 받아 준 감사함에 가슴 뭉클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잘 살리라고 다짐했던 그때의 초심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번에 채용된 탈북민 공무원 5명의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째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공무원증을 받던 그 순간의 감사함과 초심으로 이겨 내자. 다음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이끌어 주는 리더가 되자. 마지막으로 나의 삶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한국 국민들에게 전파되게 하자. 특히 이 땅에서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에 임용된 후배들과 탈북민 모두에게 사랑, 사명, 감사가 항상 함께하길 기도한다.
  • [열린세상] 북한 공연정치의 딜레마/이원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열린세상] 북한 공연정치의 딜레마/이원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예정돼 있던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급박하게 공연 당일 취소되는 경우는 천재지변 또는 연기자나 연주자의 컨디션 때문이 일반적이다. 이때 주최 측은 취소 이유를 공지하거나 기자회견을 열어 양해를 정중히 구하고 입장권을 환불해 주는 절차를 밟는다. 공연 날짜를 바꿔 추후 관람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취소는 공연예술의 상식을 깬 공연 사상 유례없는 해프닝으로 기록될 만하다. 연주자의 사정이나 공연장의 문제도 아니니 향후 미스터리로 남을 확률이 높다. 북한 대중문화의 신성이라고 하는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북·중 문화 교류의 성격을 띤 국가 간의 공연이었다. 그것이 국가 간의 사정에 의해 깨졌다면 애당초 추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연 내용 때문이었을까. 공연예술에서 미디어와 매니징의 활용은 필수 요소다. 기획 단계부터 세부 프로그램의 조율, 기술적인 협의를 통해 무대에 오른다. 더욱이 자국 무대가 아닌 외국 공연이라면 이미 스태프 회의를 통해 극장 측에 큐시트가 전달돼야 한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양쪽의 공연 매니저들이 서로 정보가 없었거나 처음부터 매니저의 역할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공연이 불발된 원인을 상식선에서 찾긴 어려운데, 정작 당사국인 북한과 중국은 아직까지 말이 없다. 김정은의 공연정치는 김정일을 계승한 것이다. 공연정치는 김정일 시대부터 중요한 통치 수단이었다. 1971년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을 위해 최고의 배우 150명으로 구성된 특별한 극단을 만들었다. 첫 작품 ‘피바다’의 제목을 따 이름 붙인 ‘피바다가극단’이다. 피바다가극단은 1972년 대중적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으로 가서 공연을 했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막 벗어난 중국이라 그러했을 것이다. 2002년 첫선을 보인 매스게임 ‘아리랑축전’에는 해마다 10만명 이상의 학생, 여성, 군인이 고도로 훈련된 시민·배우로 참가한다. 이 스펙터클은 북한 주민에게는 사상적·정치적 슬로건을, 국제사회에는 핵심적인 외교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예술인들은 아리랑축전을 예술로 보지는 않는다. ‘아리랑축전’의 주요 구성 요소는 이미 1972년쯤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김일성 이후의 권력승계 문제가 결정돼 가던 때였다. 2000년대의 이 공연은 1970년대의 몇몇 중요한 연극적·음악적 작품들에 의존했지만 북한은 이 모든 작품들이 김정일의 예술적 천재성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모란봉악단은 2012년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됐다. 아버지인 김정일이 만들었던 은하수악단 이후 김정은의 친솔(親率) 악단이 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멤버는 19명이고 미인 위주로 구성돼 있다. 단장은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설이 있다. 미녀 악단은 이래저래 북한엔 골칫덩이로 남을 수 있다. 김정은의 걸그룹 첫 번째 ‘공연정치’ ‘음악정치’는 의문만 남긴 채 불발됐다. 마치 이설주의 은하수악단이 추문 끝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듯이. 북한이 자랑하는 장거리 로켓 미사일 은하 3호 발사(배경화면에 이 장면 삽입 때문에 공연이 취소됐다는 설도 있다) 역시 불발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해프닝은 정치 쇼의 가벼움을 말해 준다. 만약 김정은이 순수 예술교류 차원에서 베토벤이나 브람스 곡으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공연사절로 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12년 3월 파리에서 북의 은하수교향악단이 브람스 1번 교향곡을 연주 했을 때, 단원 대부분은 브람스 교향곡을 처음 보고 처음 연주했다고 한다. 북의 교향악단은 체제 유지를 위한 사상 음악을 주로 연주하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순수 음악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2000년 8월에 분단 이래 최초로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성공적인 두 차례 연주가 기억난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알맞은 때에 내리는 좋은 비’처럼 남과 북의 호우시절(好雨時節)은 언제가 될까. 그 이후 교향악단의 지속적인 교류를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판소리로 재탄생한 굴곡진 김구의 생애

    판소리로 재탄생한 굴곡진 김구의 생애

    독립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창작 판소리로 재탄생한다. 성남아트센터는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를 오는 26일 오후 4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에 올린다. 창작 판소리 ‘백범 김구’는 김구 선생의 사상과 철학, 문학적인 감동이 서려 있는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민족을 위한 삶을 살아온 백범 선생의 고뇌와 자취를 집중 조명한다. 임진택 명창이 연극의 대본에 해당하는 창본을 직접 쓰고 진양조, 중모리 같은 장단을 붙여 총 3시간 완창 공연으로 완성했다. 일제 치하 임시정부 주석으로 해방 이후 분단과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자 헌신하다 안두희의 암살 총탄에 쓰러진 그의 굴곡진 생애를 총 3부에 걸쳐 구성진 판소리로 풀어낸다. 공연은 1부 ‘빼앗긴 나라-청년 역정’, 2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부 ‘갈라진 나라-해방시대’로 구성된다. 1부와 2부는 왕기철, 왕기석 명창이 맡았다. 3부는 임진택 명창이 출연해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을 바친 독립과 통일의 여정과 그의 숭고한 뜻을 진양조 장단에 싣는다. ‘광대 명창’으로 불리는 임진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로 ‘소리내력’, ‘오월광주’, ‘남한산성’ 등 창작 판소리에 출연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에 소리꾼 유봉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 판소리학사 1호로 올해 국악 인생 40년을 맞은 왕기철은 동생인 왕기석 정읍시립국악단 단장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관람료는 전석 1만원. 만 7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백범일지·윤동주 시집 등 초판본 복간

    백범일지·윤동주 시집 등 초판본 복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초판본 등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책 41권이 옛 모양 그대로 되살아났다. 복간의 주인공은 출판사 한국교과서를 운영하는 출판인 전갑주씨다. 전씨는 32년째 교육·역사 자료, 6·25 전시 자료, 근현대 생활사자료 등 고서를 수집하며 옛 자료 복제본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은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하는 구름과 빨간 꽃, 파란 새가 그려진 표지에 누런 속지, 한글·한자 병용 표기 등 옛 형태 그대로 복원했다. 김구 ‘백범일지’, 한석봉의 17세기작 ‘어제천자문’, 우리나라 최초 국어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1895), ‘소년잡지’ 창간호(1908)부터 11호, 6·25전쟁 당시 국어교과서인 ‘비행기’ 등도 마찬가지다. 복간본은 각 1000부씩 한정 판매된다. 전씨는 2006년부터 초판 원본을 한지에 인쇄한 뒤 손수 제본하는 수작업으로 복간을 해오고 있다. 그는 “올해 광복·분단 70년과 국어교과서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복제본을 손수 제작했다”며 “복간본 자료들이 전국 교원들에겐 연구 동기를 부여하고, 해외 동포들에겐 민족 정체성 확립에 활용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오늘의 눈] 가로막힌 남북 민족의학의 꿈/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가로막힌 남북 민족의학의 꿈/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남한과 북한의 한의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립의과대학의 한 진료실에서 함께 러시아 환자를 돌본다. 한 뿌리에서 출발해 다른 길을 걸어온 남한의 한의학과 북한의 고려의학이 러시아에서 분단 70년 만에 상봉했다. 앞으로 수년 내 실제로 신문 기사의 첫머리를 장식할지도 모를 ‘남·북·러 한의학 교류협력 사업’의 청사진이다. 사업을 추진 중인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과 슈마토프 발렌틴 보리소비치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립의과대학 총장이 그리는 미래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된 무수한 남북 협력 사업 가운데 하나로 남을 수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김 회장은 민족의학 발전의 첫발을 내딛는 이 사업이 그저 꿈으로 그칠 수 있다는 생각에 시름했다. 사업의 골자는 이렇다.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립의과대학은 한국의 한의사들이 러시아에 진출하고 자국 한의사를 길러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북한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태평양국립의과대학 내에 남북의 한의사들이 일할 ‘유라시아 메디컬 센터’도 마련했다. 우리 측은 이곳에 한의 진료에 필요한 기자재를 들여놓고 한의사를 파견한다. 김 회장은 “중풍 등 뇌심혈관계 환자가 많은 블라디보스토크는 한의학 수요가 꽤 높은 데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로 진출할 길이 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국 중의학이 러시아에 진입하는 데 보수적이어서 기회는 한국에 열려 있다. 공은 우리 정부에 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지난해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확보한 예산 10억원이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복지부는 예산 배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남·북·러 협력 사업에 손을 대기가 부담스럽고 대한의사협회까지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산이 없어 한의사협회는 태평양국립의과대에 기자재를 들여놓지 못했고, 결국 러시아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명백한 계약 위반인데도 여전히 태평양국립의과대는 참을성 있게 한국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1년 가까이 아슬아슬하게 사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내년에는 어찌 될지 모른다. 끝내 복지부가 외면한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한의사들의 바람도, 남·북·러 한의학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는 꿈도, 한의학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한의사협회의 포부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의학을 유치하겠다는 슈마토프 총장의 계획도 결국엔 없었던 일이 될지 모른다. 중국은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낼 정도로 중의학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의사들이 나서서 자구책을 찾고 있다. 지원은 없고 장벽은 높다. 슈마토프 총장은 남한과 북한의 한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께 진료를 보는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그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가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얘기다. 보건 당국에 묻고 싶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그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는가. hjlee@seoul.co.kr
  • 현대미술로 풀어낸 ‘이산가족’

    현대미술로 풀어낸 ‘이산가족’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현대미술 작업으로 풀어낸 전시회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임민욱(47)은 ‘만일(萬一)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설치미술과 비디오 작업을 통해 남북 분단의 시대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를 반추한다. 숨 가쁜 도시근대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시간에 의해 마모된 삶과 기억을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영상으로 담아온 작가의 중간 회고전 성격의 전시다. 전시장 로비에 해당하는 글래스파빌리온 중앙에 설치된 신작 ‘시민의 문’은 4대의 대형 컨테이너 문을 연결해 제작한 설치조형물이자 사운드작업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지형을 형상화한 구조물에 남북한 대표 건축물이 한데 뭉쳐서 올라앉아 있는 ‘통일등고선’(오른쪽)이 설치돼 있다. 어느 미지의 땅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분단국가로서 한국의 고유한 상황과 그로 인한 모순과 상처에 주목해 온 작가의 오랜 인식을 반영한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만일의 약속’(왼쪽)은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의 장면들을 재배치한 몽타주 영상작품이다. 최근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됐을 만큼 한국 현대사의 주요사건으로 기억되는 이 방송에서 1만명이 넘는 6·25 전쟁 이산가족들이 상봉했다. 400시간이 넘는 기록적인 방송분량과 방대한 아카이브에도 불구하고 10만명이 넘는 신청자의 사연은 아쉽게도 역사 속에서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이던 1983년에 진행됐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미디어 작가로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미디어의 제한된 프레임에 모두 담아낼 수 없었고, 찰나로 잊혀졌던 인물들의 모습을 좀 더 긴 시간 초상화처럼 되돌아볼 수 있도록 몽타주 분할화면 기법과 사연판을 실어나르던 카메라의 움직임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두 화면이 마주하고 있는 이 작품은 화면에 비친 주인공들이 한눈에 한 핏줄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닮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임민욱은 이화여대 서양화과에서 수학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 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광주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07 에르메스 미술상, 2010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 상을 수상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나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리는 슬픔에 휩싸였다. 고인은 4반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민주화 대장정의 거산(巨山)이었다.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했으며, 아울러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려 했던 시도는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남아 있다. 한편 지난 9월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다 익사해 해변에 쓸려 나온 빨간색 반소매 티셔츠의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에일란 쿠르디의 가슴 저린 주검 사진이 필자에게는 우리 국민이 함께 치러낸 장엄했던 국가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다가온다. 국민과 난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 즉 국가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국민이 바로 난민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36년 동안의 피나는 대일항쟁, 6·25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된 동족상잔의 비극이 그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함으로써 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몫이다. 그 무엇보다도 국가가 먼저 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1930년대 세계 6위 부국에서 사실상 디폴트 상태로 추락한 아르헨티나나 전후 경제 대국에서 후진국으로 쇠퇴한 필리핀(11월 26일자)과 달리 우리는 전후 최빈국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낸 세계속의 한국이 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테러가 지구촌을 뒤흔든 이 시점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조사되기도 했다(서울신문 11월 18일자 넘베오닷컴의 발표). 뿐만 아니라 2009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한국이 통일되면 2050년까지 독일, 프랑스,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통일한국은 세계 5대 경제대국”, 서울신문 11월 6일자). 하지만 어떤 국민이든 난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고령화 세대의 복지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 내야 하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저성장, 고령화, 이념·세대·지역 간 갈등 등 사회적 난제들도 부지기수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고 국제 정치·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주요 2개국(G2) 체제 속에도 끼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3년 6개월 동안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시키고 한·미·일 안보협력과 각종 정상회담을 통해 절실하게 외교적 성과를 도출했던 것은 열강 속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서울신문 11월 3∼6일자). 이제 개인의 이익과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돼 국가의 미래를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통합과 화합’이었다. 그 메시지는 치열한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할 절박한 시점임을 강조한 잠언으로 다가온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울신문이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국가 의식을 견지해 내는 내용을 중장기적인 기획 기사나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 주기 바란다.
  • [서울광장] 통합과 화합의 지름길, 관용/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통합과 화합의 지름길, 관용/강동형 논설위원

    통합과 화합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그만큼 정치권과 사회가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많은 정치지도자가 통합과 화합을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과 화합을 위해서는 갈등부터 치료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 분야는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세대·계층 간 갈등, 노사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에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종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민족 갈등도 없다. 지역 갈등은 있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종교 갈등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세상에서 유일한 갈등이 내재해 있다. 남북 분단에서 파생하는 갈등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언을 고했지만 우리 사회는 냉전시대의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있다. 분단 상황은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이해집단을 적대적 진영으로 갈라 놓는다. 분단이 가져온 우리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진영의 논리에 빠져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진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두 진영을 바라보는 ‘경계인’은 설 자리가 없다. 2차 민중 총궐기대회를 놓고도 경찰과 민주노총은 상대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줄일 수 없다. 정부에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분열과 갈등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2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설립했다.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례로 서거했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넘치는 사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해법도 비교적 정확하다. ‘사회통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홍보물에서 정책으로서 사회통합, 시스템으로서 사회통합, 문화로서 사회통합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으로서 사회통합은 일자리 창출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사회안전망 확대 등이다. 시스템으로서 사회통합은 정부와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를 시스템적으로 연결, 갈등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문화로서의 사회통합은 폭력이 아닌 대화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도 2013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측면에서 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의 악순환은 거듭되고 있다.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갈등 해소의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존 허쉬가 들려주는 의사결정이론 이야기’라는 책에도 나와 있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이론을 설명한다. 게임이론의 전제는 주고받는 것이다. 좀 험한 표현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잘 이뤄진 게임은 상대가 한쪽 뺨을 때리면 맞은 사람도 한쪽 뺨만 때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 뺨을 때리는 데 익숙하다. 이는 상생 게임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전쟁이다. 게임 이론가들은 게임에서 상생하려면 틱포탯(tic for tat) 전략을 구사할 것을 조언한다. 이는 실험으로 검증됐다. 틱포탯 전략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상대에게 협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대가 배신하면 보복한다. 그러나 보복을 하더라도 상대가 때린 것보다 약하게 때리고, 시간이 지나면 용서해야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나 단체는 처음에는 이익을 챙길 수 있으나 결국에는 손해다. 게임 이론에서 중요한 변수는 관용이다. 우리의 정치 문화는 되로 받으면 말로 주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게임이론에서는 주고받는 것이 불공평하거나, 상대가 배신하면 양측 모두 손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여야 정치권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틱포탯 전략은 남북 관계, 여야 관계 등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그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정치권은 이제 싸울 만큼 싸웠다. 정치권은 관용 없이는 통합과 화합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앞장서 통합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yunbin@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평화·화해의 성탄”…광복로 1.2㎞ 수놓는 40만개의 빛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평화·화해의 성탄”…광복로 1.2㎞ 수놓는 40만개의 빛

    “40만개의 불빛이 광복동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부산 광복동거리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내년 초까지 한 달여간 펼쳐진다. 부산 중구는 ‘제7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28일 오후 7시 광복로 시티스폿에서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시작으로 내년 1월 3일까지 37일간 개최된다고 27일 밝혔다. ‘평화의 성탄! 화해의 성탄! 다 함께 미래로!’라는 주제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란 부제로 개최되는 올해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는 평화통일과 화해 상생을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장으로 빛과 갤러리로 꾸며진다. 산타클로스, 사슴, 눈, 아기천사 등의 조형물을 장식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길가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조형물들이 설치돼 한층 더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축제거리는 총 1160m으로 광복로 입구~시티스폿 440m는 ‘천사의 길’, 시티스폿~근대역사관 390m는 ‘희망의 길’, 시티스폿~국제시장 330m는 ‘환희의 길’ 등 세 곳으로 구분,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했다. ●천사들이 방문객 인도하는 ‘천사의 길’ 광복로를 따라 진입하면 천사의 길을 만난다. 차도 위로 걸린 천사들이 방문객을 메인트리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올해가 광복 70년인 점을 감안해 독립문을 형상화한 화합의 광장을 시작으로 영도다리, 오륙도 일출, 부산 타워, 아이 러브 부산 등 주제별 트리와 소망 트리 등을 설치했다. 또 부산과 중구의 상징물을 표현하는 포토존을 설치해 광복로를 찾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길 위에는 프러포즈 존, 트릭아트 등 빛을 소재로 만든 다양한 체험형 트리를 만날 수 있다. ●평화통일 희망 표현 ‘희망의 길’ 메인 무대가 있는 광복로 시티스폿 앞에는 트리축제의 꽃인 원뿔 모양의 초대형 트리가 우뚝 솟아 방문객들을 반긴다. 높이 17m인 메인트리는 한국 전통 조각보 형태를 띠고 있으며 ‘다른 게 모여서 하나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올해는 특히 예년의 천공 장식과 달리 지름 1m의 원형 장식물 60여개가 메인트리 주변 하늘을 수놓아 화려함을 더할 예정이다. 또한 직접 키운 높이 6m의 구상나무 생화 20여 그루가 메인게이트에 설치된다. 천공 부분은 수십개의 볼 형태의 미래적인 디자인을 접목시켜 역동성을 가미시켰다. 이어 메인무대에서 오른쪽인 근대역사관까지 이어지는 희망의 길에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평화통일의 희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으며, 특수 제작된 스노플 등을 설치해 환상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하도록 했다. 국제시장 방면인 환희의 길에는 성탄절 선물로 가득한 기쁨의 거리를 노래하는 노엘 형상과 공 모양의 다양한 색의 크리스마스 볼트리를 이용해 만든 화려한 장식의 구조물들이 반긴다. 특히 국제시장 사거리 입구에는 ‘빛나는 선물로 가득한 광복동 축제의 밤’을 표현하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조성돼 볼거리를 더한다. 이와 함께 ‘한·일 우호의 날’, ‘북녘에도 성탄의 기쁨’ 등 평화통일과 화해 상생을 위한 특별행사도 준비됐다. 부산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LOVE 장기려’ 기념위크, 토크 콘서트, 기념전시회 등 뜻깊은 행사도 마련했다. ●성탄절 기쁨 노래하는 ‘환희의 길’ 매년 축제를 보러온다는 김미경(48)씨는 “해를 거듭하면서 축제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딱히 겨울 축제가 없는 부산에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런 축제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음달 7일부터 31일까지 대형트리 앞 무대에서는 음악, 춤, 연주 등 아마추어 공연팀이 끼와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무대인 데일리 콘서트가 열린다. 또 ‘나는 크리스마스 스타다’라는 오디션 행사가 진행되며 상가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찾아가는 보물찾기, 옥션 광복로 경매행사 등도 준비했다. 광복로 오설록 구간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31일까지 오후 7시, 8시 두 차례 인공눈을 뿌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는 메리크리스마스 타임이 진행된다. 크리스마스트리축제는 유엔해비타트 산하 아시아도시연구소가 선정한 ‘2014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받는 등 명실상부한 아시아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트리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정경내 기획실장은 “기본적으로 설치되는 각종 장식물이 부산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광복로 거리에 장식돼 거리를 찾아 걷는 것만으로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지역 상권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광복로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들어섬으로써 트리축제가 관광체류형 축제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축제조직위에서는 앞으로 장기적인 축제 발전을 위해 용두산 공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광복로 인근에 있는 용두산 공원을 ‘라이트 윈터 테마파크’(Light Winter Thema Park)로 꾸미고 120m 용두산 타워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한다는 구상이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축제 장소인 광복로 인근의 여러 관광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체류형 1박 2일의 관광코스도 준비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축제로 만들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북한 교회·신자들을 기억합시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다음달 8일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는 가운데 천주교계가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북한을 위한 기도운동에 나서 주목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24일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주제의 시작 미사와 추진위원회 발대식을 잇달아 열고 광복과 분단 이후 ‘잊힌 교회’로 남아 있는 북한 지역의 교회와 신자들을 위한 기도운동에 돌입했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광복 후 북한 지역에는 57개 성당과 약 5만 2000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정권의 박해와 6·25전쟁, 분단의 장기화 등으로 인해 소수의 신자만 남았다. 이에 따라 천주교계는 북한의 57개 본당 중 한 곳 이상을 신자들이 골라 매일 오전, 오후 기도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봉헌하는 형태로 기도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매주 화요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신자들이 1년에 두 번 이상 참례, 기도도 드리게 된다. 이를 위해 서울대교구 산하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추진위원회가 신설됐으며, 서울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권길중)를 중심으로 기도운동이 진행된다.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춘천교구의 관할 지역은 휴전선 이북까지 포함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함흥교구장 서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덕원자치수도원구자치구장 서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24일 기도운동 시작 미사를 통해 “항상 북한 교회를 잊지 않고 기도 안에서 그 지역과 신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아 가장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지역 중 하나인 한반도에서 순수한 신앙의 빛으로 북한 교회를 기억하며 하느님 모상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많은 이가 기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중혼 취소 청구권

    판례의 재구성 35회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중혼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옛 민법 제818조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2009헌가8)을 소개한다. 옛 민법 제818조는 당사자 및 그 배우자, 직계존속, 4촌 이내의 방계혈족 또는 검사가 중혼 관계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헌재는 2010년 7월 재판관 7(헌법 불합치) 대 1(한정위헌) 대 1(반대)의 의견으로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12년 2월 개정된 민법 제818조는 직계비속도 중혼 취소 청구권자에 포함했다. 헌재 결정에 대한 해설을 민법(가족법) 분야의 권위자인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듣는다. 민법상 일부일처제가 원칙인 한국에서 중혼 문제는 그리 흔하지 않다. 중혼은 이미 법률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법률적으로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사실혼과 법률혼이 중복되는 경우는 가끔 발생하지만 법률혼이 이중으로 성립되는 경우는 드물다. 가족관계등록이나 주민등록상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혼인신고 전에 발각되기 마련이다. 또 혹시나 중혼한 경우 중혼 취소 청구권이 있기 때문에 법률상 이를 취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혼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개정되기 전 민법 제818조는 당사자 및 그 배우자, 직계존속, 4촌 이내의 방계혈족 또는 검사가 중혼 관계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중혼 당사자의 자녀나 손자녀 등 직계비속에게는 취소 청구권이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7월 자식이 부모의 중혼을 취소해 달라고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민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서울가정법원이 민법 제818조에 대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7(헌법 불합치) 대 1(한정위헌) 대 1(반대)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공백을 우려해 2011년 말까지 법을 개정할 시간을 주고 그때까지는 현행 법 조항을 잠정 적용토록 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상속권 등 법률적 이해관계가 큰 자녀나 손자녀 등 직계비속에게 취소 청구권을 주지 않은 것은 과거 가부장적 사고가 바탕이 된 것일 뿐”이라면서 “합리적 사유를 찾기 어렵고, 헌법상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후 민법 제818조는 2012년 2월 10일에 개정돼 2013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중혼 취소 청구권자에 직계비속도 포함했다. 아버지의 중혼 관계를 취소해 달라고 청구한 윤모(당시 75세·여)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은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나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윤씨의 아버지는 1957년 호적을 새로 만들면서 북한에 남겨둔 부인과 윤씨를 등록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1959년 부인에 대해 사망신고를 한 뒤 16세 연하인 권모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전쟁 중 월남한 남편이 분단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남한에서 다시 혼인을 한 경우다. 이는 북한에서 성립한 혼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중혼에 해당한다. 권씨와 재혼해 살던 윤씨의 아버지는 1987년 사망했다. 북한에 남아 있던 윤씨의 어머니는 1997년 사망했다. 윤씨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둘러싸고 윤씨와 계모 권씨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윤씨는 북한을 왕래하는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북한에 있는 형제들을 찾았고, 유산소송에 윤씨의 형제들이 가세했다. 윤씨는 권씨를 상대로 “허위 사망신고 후 재혼한 것은 중혼에 해당한다”며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또 윤씨는 북한에 있는 형제들의 모발 샘플 등을 토대로 친생자관계존재 확인 청구 소송도 제기하고, 아버지의 유산 가운데 부동산 소유권 일부를 이전하고 임대료 수입 일부를 지급하라며 10억원대 소송도 냈다. 당시 서울가정법원은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과는 무관하게 윤씨의 혼인 취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민법에서 중혼 취소 청구권을 직계비속에 부여하지 않은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지만 민족 분단이라는 역사적인 이유로 발생한 제2혼인을 중혼이라는 이유로 취소하자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사망해 상대방이 배우자로서 재산을 상속받은 후에 혼인이 취소됐다는 사정만으로 그 전에 이뤄진 상속 관계가 소급해 무효 혹은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산 소송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부동산 가운데 일부를 윤씨 등의 소유로 하고 일부 금원을 권씨 등이 윤씨 등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재산 분쟁을 종결한다”는 내용의 조정이 양 당사자 사이에 성립됐다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자식 등 직계 혈족 누구나 중혼 취소 청구 가능, 정전 이전 혼인한 이산가족은 예외… 상속권 인정

    자식 등 직계 혈족 누구나 중혼 취소 청구 가능, 정전 이전 혼인한 이산가족은 예외… 상속권 인정

    법률혼이 이중으로 성립하는 것을 중혼(重婚)이라고 한다. 예컨대 A가 B와 혼인하고 그 혼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C와 혼인해 이중으로 법률혼이 성립하는 경우다. 민법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중혼은 당연히 금지되며 중혼이 성립한 경우에는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혼이 성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미 혼인 상태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가족관계등록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수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혼의 성립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으로 인해 부부가 이산가족이 되는 바람에 중혼이 성립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전형적인 예가 6·25전쟁 중 북한 지역에 부인과 자녀들을 남겨둔 채 월남한 남편이 분단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남한에서 다시 혼인한 경우다. 남한에서의 혼인은 북한에서 성립한 혼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중혼에 해당한다. 2010년 7월 헌법재판소 결정(2009헌가8)의 전제가 된 사실관계에서 민법상의 쟁점을 찾아내 분석해 봤다. 첫 번째 쟁점은 중혼 취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에 관한 것이다. 민법은 중혼을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에는 제한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혼이 성립한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중혼 취소 청구를 하는 데 지장이 없다. 가사소송법 제24조에 따르면 중혼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중혼 취소 청구를 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딸이 중혼 취소 청구를 한 2009년은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중혼이 성립한 지 50년이 지난 시점이다. 또 이미 중혼 당사자인 부인이 사망했지만 이러한 사정과 관계없이 중혼 취소 청구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예외적으로 중혼 취소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각될 수 있으나 이러한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두 번째 쟁점은 민법 제818조가 개정돼 직계비속도 중혼 취소 청구권자에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즉, 딸이 아버지와 계모 사이의 중혼을 취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딸이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와 계모 사이의 혼인이 중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중혼 취소 청구의 소를 제기했던 2009년 당시에는 민법 제818조의 중혼 취소 청구권자에 직계비속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딸의 소송이 각하될 운명에 처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민법규정이 개정됐고 직계혈족은 누구나 중혼 취소 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직계혈족이란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딸의 중혼 취소 청구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민법상으로만 보면 딸의 중혼 취소 청구는 가능하다. 그러나 개정된 민법 제818조의 시행에 앞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특례법 제6조(중혼에 관한 특례)는 제1항에서 “1953년 7월 27일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혼인해 북한에 배우자를 둔 사람이 그 혼인이 해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남한에서 다시 혼인을 한 경우에는 중혼이 성립한다”고 규정했다. 제2항에서는 “제1항의 사유로 중혼이 성립한 경우에는 민법 제816조 제1호와 제818조에도 불구하고 중혼을 사유로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분단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성립한 중혼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 사건의 중혼도 특례법 규정이 보호하는 범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혼을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은 중혼 배우자의 법률상 지위, 특히 상속권에 관한 것이다. 즉 이 사건에서 전혼 배우자(첫 번째 혼인한 부인)와 후혼 배우자(두 번째 혼인한 부인)가 남편의 상속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전혼 배우자에 대한 상속권을 살펴본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북한 지역에서 혼인해 법률상 부부가 됐다. 이러한 혼인 관계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비록 두 사람이 이산가족이 돼 장기간 별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부부 관계가 저절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혼 배우자는 상속인이 될 수 있다. 또 전혼 배우자가 상속받은 재산은 남한에서 부재자의 재산관리인을 선임해 관리할 수 있다. 후혼 배우자의 상속권에 대해 살펴보면 남편이 사망할 당시 후혼 배우자는 법률상 배우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자로서 상속권을 가진다. 만약 남편이 생존해 있는 동안 둘 사이의 중혼이 취소됐다면 상속권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의 사망 시에는 유효한 혼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특례법이 제정됨으로써 이와 같은 중혼 관계를 취소할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전혼 배우자와 후혼 배우자 모두 남편의 배우자로서 상속권을 가지게 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혼인의 존속을 신뢰하고 오랜 세월 혼자서 힘들게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전혼 배우자에 대해 배우자의 지위를 확인해 주고, 그 결과로서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은 법리상으로도 물론 윤리적인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다. 또 남한에서 혼인해 배우자와 수십 년간 부부로서 생활하며 상속 재산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후혼 배우자에게 배우자의 신분과 상속권을 보장하는 것도 인도적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 김상용 교수는 ▲연세대 법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법학박사 ▲법무부 가족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 ▲한국가족법학회 학술이사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법무부 상속법개정위원회 위원장
  • [사설] YS ‘통합·화합’ 유지 민생 우선으로 구현해야

    그제 유명을 달리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줄을 이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고 한평생 대한민국을 위해 바친 그의 정치 인생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의 혹독한 탄압에 굴하지 않았던 정치인이다. 1990년 3당 합당을 결행하면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연대로 국민 통합의 디딤돌을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동서의 지역 통합, 보수와 진보 간 이념의 공존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YS의 타계로 민주화 시대의 리더십을 이끈 두 거인이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를 넘어 새로운 통합과 화합, 발전의 리더십을 창출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된 것이다. 이런 국가적 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인은 마지막 메시지로 ‘통합과 화합’의 화두를 남겼다고 한다. YS의 차남 현철씨는 빈소를 찾은 김종필 전 총리와의 대화에서 “지난해 입원했을 때 말씀을 잘 못했는데 필담으로 ‘통합’과 ‘화합’을 쓰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시곤 다른 말씀을 못 했다”고 전했다. 삶 자체로 현대사를 써 내려간 김 전 대통령은 사회 분열과 반목, 대립의 해소를 요구하는 국민적 염원을 전달하면서 정치권에 새로운 화합의 시대를 열라는 강력한 주문을 한 것이다. 정치권은 YS의 유지(遺志)를 계승 발전시킬 책무가 있다. 어제 김무성 새누리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앞다퉈 통합과 화합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표는 “민생 최우선이야말로 화합과 통합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이고 정치권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강조했고, 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받들어 대결·분단 시대를 끝내고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여야 대표는 물론 비슷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많은 정치인들이 절박한 YS의 유지를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정파적 이익에 활용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역사에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YS를 포함한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는 지역주의와 계파정치를 잉태시키고 웃자라게 한 토양임이 틀림없다. YS의 마지막 메시지인 ‘통합과 화합’ 역시 지역과 계파로 인한 분열과 대립을 치유해야 한다는 반성이자 시대적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금에 우리가 처한 상황은 3김 시대보다 더욱 암울하다. 지역과 계파적 분열정치에다가 3김 이후 극단적인 이념 대결까지 가세했고 세대와 빈부의 갈등마저 첨예해지고 있다. 극한 대립으로 일관하면서 걸핏하면 거리로 나서 의회민주주의를 후진시키는 구태를 청산하기 위해 여야 모두 스스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지역 갈등과 이분법적 이념의 골을 극복하는 국민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정쟁에서 벗어나 국정 성과를 내야 하고 민생을 챙겨야 할 시점이다. 여야 모두 상대방을 반대 세력을 몰아치면서 반사이익에 골몰하기보다 소통의 정치로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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