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분단체제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노벨 평화상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1000원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사고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제값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
  • 진보당 ‘종북 이미지’ 정면 돌파

    진보당 ‘종북 이미지’ 정면 돌파

    내란음모 사건, 정당해산 심판 등으로 위기에 놓인 통합진보당이 ‘종북 이미지’ 청산보다는 ‘마이웨이’를 택했다. 6·4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의 가능성도 활짝 열었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연대를 통해 일정 역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종북 공세에 갇히지 않겠다”며 “상호 비방을 말자는 것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이어진 남북 합의”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북한 급변사태를 거론하며 흡수통일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며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군사적 충돌만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는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는 “분단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끝내는 것에서 인권 증진이 시작된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통합진보당은 6·4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후보를 낼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800여명의 후보를 낸 것이 최대다. 이날 이 대표는 “한국현대사를 통틀어 진보, 민주 세력이 힘을 모으지 않고 수구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며 연대의 가능성을 적극 표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 대부분이 진보당의 ‘진한 색깔’ 때문에 쉽사리 손을 잡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사설] ‘새로운 한반도’ 준비할 국가적 역량 갖출 때다

    올해 한반도를 관통할 키워드는 단연 북한, 그중에서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라고 할 것이다. 지난해 말 자신의 고모부이자 실질적인 권력서열 2인자인 장성택을 처형한 김정은과 그의 북한 체제는 2014년의 한반도를 불가측(不可測)의 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그만큼 한반도의 유동성을 크게 증폭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훗날 사가들이 평할 일이겠으나 광복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우리의 분단사는 2013년 이전과 2014년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지난해까지가 남북 분단체제의 고착화 시기였다면 올해는 통일 한반도를 향한 실질적 첫 걸음을 떼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지금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그 어떤 시나리오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장성택 숙청이 내부 권력 간 이권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든, 집권 3년차를 맞는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새롭게 다지려 벌인 일이든 간에 북한은 이제 상당기간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오랜 외교적, 경제적 고립 속에서 벌어지는 북한 내부의 동요는 언제든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장 북의 무모한 무력도발이 김씨 세습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독일이 그러했듯, 부지불식간에 밀어닥칠 한반도 통일의 날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분단 체제의 안정적 관리’라는 대북정책의 기조 또한 ‘북한 체제의 급변과 이에 따른 통일을 대비’ 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철저한 대비태세가 요구된다. 밖으로는 한반도의 급변사태에 외세가 끼어들어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에 장애를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외교적 방비를 서둘러야 한다. 안으로는 북의 무력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북한 급변사태에 대응할 ‘개념계획 5029’ 등을 정밀하게 다듬어 어떤 상황도 선제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김정은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고 하나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북한이고 보면 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국민적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몇몇 신년 여론조사에서 보듯 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염려된다. 통일을 새로운 기회로 보기보다는 지금의 안정을 해치는 걸림돌로 보는 인식이 젊은 세대일수록 강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통일시대의 주역일 젊은 세대의 이 같은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 과정에서의 혼란을 담대하게 이겨낼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비극의 분단사를 매듭지어야 할 기성세대의 역사적 책무다.
  • 이정희 “갓난아이도 왔으니 지하조직 아니다” 주장

    이정희 “갓난아이도 왔으니 지하조직 아니다” 주장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4일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의 핵심 증거로 지목돼 녹취록이 나온 지난 5월 12일 모임과 관련, “130여명 가운데 한두 명이 총기탈취니 시설파괴 등을 말했을 뿐이고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그 분반에서도 반대하는 뜻의 말이 나왔기 때문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반박했다. 그러면서 “분반에 따라서는 아예 언급조차 나오지 않은 총 등의 용어를 대표 발표자가 임의로 사용한 것도 있다고 한다”며 “130여명 가운데 일부분의 토론내용만 담긴 녹취록에 따라 한두 명의 말을 근거로 내란모의니 내란선동이니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농담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총기탈취 같은 것은 도저히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말’, ‘이건 안 되는 이야기다’ 는 식으로 (주장을) 접은 정황이 왜곡된 녹취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RO(혁명조직) 조직원들의 내란 모의라는 국정원의 주장에 대해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들은 지하조직의 구성원들도 아니며 각 분반토론의 실상을 확인한 결과 이 의원과 130여명 참가자들에게 내란음모 선동죄를 씌울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며 “지하조직의 내란음모니 내란선동이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녹취된 분반토론은 7개조 가운데 1개조, 20여명의 대화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다른 6개 분반의 대화 내용은 이와는 매우 달랐다”며 “(모임에 참석한) 130여명의 사람들이 RO라는 이른바 혁명조직에 가입했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국정원의 주장만 있을 뿐”이라며 ‘근거 없는 여론재판’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5월 10일 모임 때는 10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갓난아이부터 예닐곱살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면서 “5월 12일 모임에는 1명이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을 데리고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이들 데리고 내란모의를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특히 “실행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근대 형법의 대원칙”이라며 “내란음모죄가 (성립)되려면 쿠데타 수준이 돼야 한다. 장난감 총 개조하는 정도에 머무른 다면, 총기탈취 등의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모임에서 왜 전쟁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봤는지, 전쟁이 터지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도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올 3월부터 시작된 전쟁위기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까지 단숨에 치달았던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다만 “정당은 늘 매우 무거운 책임을 요구받는다. 정당의 무거운 책임에 더욱 유념하겠다”면서도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토론은 될 수 있는대로 넓게 허용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프락치 공작으로 너무나 과도하게 부풀려진 이 사건으로 국민이 민주주의 위기에 직면하게 돼 몹시 안타깝다”며 “본 취지는 눈여겨보지 않고 지엽말단의 단어 하나, 말투하나에 집착해 색깔론으로 공격해 매장하는 분단체제의 비이성적 대응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전문]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최고위원회-의원단 투쟁본부 회의를 열고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요구서에 첨부된 녹취록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이 대표의 ‘녹취록에 대한 입장’ 전문. <녹취록에 대한 입장> 1. 저는 통합진보당의 대표로서, 국정원이 당원들이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주장하고 녹취록을 그 근거로 삼는데 대해 책임있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는 국정원이 녹취록의 근거가 되었다는 동영상 촬영 과정에서 영장주의를 잠탈한 불법성 문제가 크게 다투어질 것입니다. 증거로 채택되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동영상과 녹취록에 대해, 법정에서는 그 내용 자체를 아예 볼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유출과 언론의 보도로 녹취록은 세상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의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과 사실관계의 공정한 확인을 위한 조치로, 국정원에 왜곡 편집되지 않은 동영상 전체의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작 녹취록의 원본인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분별한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위법 수집 증거를 공개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을 완전히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사건 관계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극히 부당합니다. 오늘 제가 녹취록에 관하여 말씀드리는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는 관련자 각자의 방어권이 완전하게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국민 여러분께서 여론재판의 광풍에서 벗어나 사실을 파악하고 판단하시기를 요청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저희가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없는 일을 꾸며내거나 있는 사실을 없애서는 안 됩니다. 당의 대표로서 책임 있게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진실을 파악하고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2. 국정원은 녹취록을 근거로 130여명의 ‘RO’ 조직원들이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지하조직의 구성원들도 아니고, 녹취록 가운데 참가자들의 분반토론과 발표 부분은 실제 참가자 다수의 발언내용 및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내란을 모의했다고 볼 상황은 없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올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당 위원장이 임원들과 협의해 평소 경기도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본 당원들 130여명을 모아 한반도 정세 관련 강연과 토론 자리를 만든 것은 이미 본인이 밝힌 것과 같습니다. (1) 지하조직인가 참가자들에게 확인해보니, 5월 10일 모임 때는 열 명 이상이 갓난아이부터 예닐곱 살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5월 12일 모임에는 한 명이 갓난아이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정원에 매수된 촬영자도 아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동영상에 이것이 제대로 촬영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데리고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 데리고 내란모의를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지하조직의 내란음모니 내란선동이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당이 당원들의 모임을 여러 차원으로 마련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일인지 계속하는 것이 좋은지는 당 조직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이지만, 금지된 일이 아닌 이상, 지하조직이라고 몰아붙일 근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이 130여명의 사람들이 ‘RO’라는 이른바 혁명조직에 가입했다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국정원이 이 사람들이 ‘RO’라고 규정한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근거 없이 고문으로 자백을 조작해냈던 정보기관의 어두운 과거는 지금, 근거 없는 여론재판으로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으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2) 내란모의가 있었나. 녹취된 분반토론은 7개 조 가운데 1개 조, 130여명 가운데 20여명 가량의 대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수된 자가 수원에 사는 사람으로 경기남부권역 분반토론에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6개 분반, 110여명 가량이 한 말 하나하나가 무엇이었는지는 녹취록에 전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녹취록만 가지고는 130명의 참가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이른바 ‘내란모의’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분반에서 어떤 토론이 있었는지, 분반토론 발표시 발표자가 자기 분반의 토론 내용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다른 6개 분반 대화의 내용을 확인하였더니, 녹취된 1개 분반의 대화 내용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즉, 전쟁이 정말 일어나면 당장 생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 살아남기 위한 대처방법 모색, 국민들 속에서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인식을 더 넓혀야겠다는 의논이 이루어졌을 뿐, 총기를 탈취하거나 중요시설을 파괴하자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반별 발표 시간에 대표로 토론내용을 말한 사람이, 토론 때는 아예 언급조차 나오지 않은 총 등의 용어를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에서 공통되게 대화를 나눈 심각한 우려의 배경에는, 핵공격까지 포함하는 현대전에서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수없이 살상된다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에 눈앞에 다가온 것이 아닌지 우려하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분반토론 발표 내용 중 “양주의 장난감도서관에 다니는 미 군속 자녀가 3-4월 위기 시에 2주간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에는 아예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는 말처럼, 실제 전쟁이 임박해서 미군속과 가족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만한 일들을 참가자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이 심각한 우려의 배경에는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과 보도연맹사건으로 20만명이 살해된 역사적 사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예비 검속되어 집단 살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 백지화 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가 매우 심각해진 상태에서 행해진 올 3월 독수리훈련과 키리졸브 훈련 중에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건물 옆 골목에 1개소대병력의 군인이 배치되고 사무실이 있는 6층까지 여러 명의 군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일이 있었다는 것이 이 토론 자리에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군이 정당사무실에 배치된 것은 당연히 전쟁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마땅히 모든 국민이 군과 경찰의 보호대상이 되어야 하건만, 진보적 인사들은 가장 먼저 군경에 의해 예비 검속되어 집단살해당한 것이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국 현대사였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당에게 가해진 종북 색깔론 공격과 백색테러 위협의 현실은, 진보당 당원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쉽게 잊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남부 토론 발표 가운데 “그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자기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 되고” 부분의 취지는, 전쟁이 나면 내가 예비검속당하지 않을까 말하는 것 자체가 알려지면 위험한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 하는 것 아니냐고 지목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어진 대화는 전쟁에 대한 걱정과 우려였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은 어떻게 하느냐,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아줄 사람을 구해놓아야겠다, 전쟁이 나면 통신이 다 끊길텐데 어떻게 서로 연락해서 만날지 걱정이다, 대피계획이라도 필요하지 않느냐, 대피계획을 세워봐야 도로도 통신도 두절되면 어디로 갈 수도 없지 않냐, 결국 전쟁이 나면 목숨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런 걱정들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몇 개 조에서 그러면 총이라도 구해야 하는 거냐 등의 말이 나왔는데, 그 때마다 웃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에 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분반토론 발표자들이 분반토론에서 나온 말을 요약해서 전하면서 분위기는 전달하지 않고 총기 등의 단어만 나열하다보니 녹취록에는 마치 분반토론에서 총기를 구하자는 등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처럼 읽히게 됩니다만, “무기습득, 기술습득 모두 뜬 구름이고 첨단기술이나 해킹기술로 레이더 기지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도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분반토론 내용을 발표하자 참석자들이 웃었다는 부분이 실제의 분반토론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남부권역으로 분류된 한 개 분반에서 20여명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논하는 중에도, 한 두 사람이 총기탈취나 시설파괴 등을 말했지만, “개별적으로 저장소를 어떻게 한다 불가능한 얘기고, 통신교란 불가능한 얘기고”라고 받아들이거나, 이런 말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대피계획을 세우자는 것이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녹취록에는 이 분반토론의 발표자가 “총은 부산에 가면 있다”고 발표하면서 총을 만들자고 말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분반토론 때 이 말을 한 사람은 농담으로 한 말인데 발표자가 마치 진담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루어진 대화의 내용을 모아보면, 130여명 가운데 한 두 명이 우연히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한 매수된 자와 같은 분반에 속해 토론하면서 총기탈취니 시설파괴 등을 말했을 뿐이고, 그 분반에서도 반대하는 뜻의 말이 나왔기에 무슨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다른 6개 분반 110여명은 총기탈취니 시설파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것입니다. 130여명 가운데 일부분의 토론내용만 담긴 녹취록에 따라 한 두 명의 말을 근거로 내란모의니 내란선동이니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농담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이석기 의원에게는 본인이 직접 입에 담지도 않은 총기 탈취와 시설파괴를 지시했다는 허위보도를 쏟아 붓고 130여명 참가자들 가운데 한 두 사람의 말의 책임을 이석기 의원에게 지워 이들 모두에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치적 경쟁자를 말 한 마디로 역모로 몰아 삼대를 멸하는 TV 사극의 익숙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실행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근대 형법의 대원칙입니다. 특별히 내란죄에 대해서는 음모도 처벌하지만, 내란음모죄가 되려면 그가 생각하고 타인과 합의한 것이 몇몇이 총을 사용하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나라를 뒤엎을만한 쿠데타 수준에 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난감 총 개조하는 정도에 머무른다면, 총기탈취 등의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당시 모임에서 있었던 각 분반토론의 실상을 확인한 결과, 이석기 의원과 130여명 참가자들에게 내란음모 선동죄를 씌울 만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3. 정당은 늘 매우 무거운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정당의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말도 신중하고 진지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국민들 앞에 완전히 공개된 자리가 아닐지라도, 당원들 사이에 농담과 웃음이 섞인 자리일지라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의 공식 발언이 아닌 이상, 정당의 당직자나 당원들도 정당의 입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토론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을 나눌 여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정당은 대외적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져야하지만, 그 안에서도 토론은 될 수 있는 대로 넓게 허용되는 것이 옳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도 당내 토론에서도 좀 더 신중하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당의 무거운 책임에 더욱 유념하겠습니다. 4. 이 모임에서 나온 말들에 대해 국민 각자가 다른 의견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전쟁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았는지, 왜 이 사람들은 전쟁이 터지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왜 이 사람들은 대피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더 상세히 또 더 가까이 설명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올 3월부터 시작된 전쟁위기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까지 단숨에 치달았던 것이 현실입니다. 위기와 소강국면을 되풀이하며 결코 평화라고 할 수 없는 분단체제를 60여년이나 유지해오다가 급기야 전쟁직전까지 갔습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설마 전쟁이 나겠냐”고 하면서도 6.15 선언 이후 십 여 년 넘게 없었던 사재기를 했습니다. 분단체제의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고 분단으로 인한 불필요한 고통과 소모를 줄여 우리가 함께 번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당의 강령으로 해왔고 전쟁위기를 막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전쟁반대 평화실현운동을 벌인 진보당으로서는, 한반도 주변 상황이 어떠한지, 정말 전쟁위기가 있는 것인지 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문제된 모임도 당원들 사이에 이를 생각하고 토론하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혹시나 불행하게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무엇을 해야하는 지까지 생각해보면, 더욱더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집니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과 남북관계를 말할 때는 늘 국가보안법과 색깔론의 벽이 쳐져 있습니다. 본 취지는 눈여겨보지 않고 지엽말단의 단어 하나, 말투 하나에 집착해 색깔론으로 공격해 매장하는 분단체제의 비이성적 대응이 한국 사회를 짓눌러 왔습니다.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1950년대의 매카시즘에 머무를 것입니까. 이 모임의 토론 내용도 매카시즘에서 벗어나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로 이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가도 함께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토론 뒤에 이어진 행동은 총기 탈취 준비도 통신시설 파괴 준비도 아닙니다.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한 캠페인이 이어졌을 뿐입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석기 기자회견… “난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의원직 사퇴 안해”

    이석기 기자회견… “난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의원직 사퇴 안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석기 녹취록’과 관련 30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란음모죄라는 어마어마한 혐의는 납득할 수 없다”면서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한 준비를 호소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은 “지난 5월 경기도당 위원장 요청 강연은 사실”이라면서도 “분단체제를 항구적 평화 체제로 바꾸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은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승만정권 당시 20만여명이 죽었던 보도연맹 사태와 같은 게 또 일어날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면서 “나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덧붙였다. 이석기 의원은 “녹취록에 나온 인명살상·파괴 지시는 철저히 부정한다. 북은 옳고 남은 틀리다고 말한 적도 없다”면서 “(이석기 녹취록은) 날조된 모략”이라고 강조했다. 총기 준비·시설 파괴 등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진 권역별 토론자들 발언에 대해 이석기 의원은 “권역별 토론자들의 발언에 대해 논평한 적 없다”면서 “강연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향후 행보에 대한 질문에 이석기 의원은 “사법절차가 진행되면 당당하게 임할 것”이라면서 “의원직 사퇴는 없다.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답했다. 또 그는 “진보당 최대의 탄압으로 간주하고 비상체계에 돌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의 눈으로 본 문란한 풍속이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 뒤 열린 첫 국무회의. 이 자리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풍기문란에 대한 법적 통제가 잠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가 과다 노출이나 구걸 행위 등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것 아니냐는 반발 때문이다. 사람들은 국가가 머리와 치마 길이를 간섭하던 1960~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을 떠올렸다. 자유권 침해, 사회적 약자의 피해 등을 우려한 반대여론이 비등해지자 경찰은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과다노출에 대한 처벌은 원래 있었다”는 해명이었다. 국가의 통치권이 시민의 일상과 풍속 처벌에까지 이르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경범죄처벌법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4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때도 비슷한 맥락의 처벌규정은 있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의 풍속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경찰범처벌규칙’(1912)을 만들었다. 이후로도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려는 사회규범은 여러 이름으로 꾸준히 등장했다. 퇴폐풍조 박멸, 풍속사범 일제 단속, 가정의례 준칙, 야간통행금지, 장발단속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대체 ‘선량함’의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상위법이 법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모호한 규정은 새로운 사안이나 국면에 따라 조변석개해 왔다. 이로 인해 다양한 행위와 언어, 문화 생산물, 취향, 산업 등은 어느 순간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결코 문란하지 않다. 부제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말해 주듯 식민지, 전쟁, 독재체제 등으로 일그러진 한국 근현대사의 얼굴을 다룬다. 저자는 “‘풍속’이라 하면 일본에선 핑크산업을 떠올리지만 국내에선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이미지를 먼저 연상한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선 풍속 통제가 미군정 이후 일상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규제에서 성 산업으로 축소됐지만, 국내에선 분단체제 이후 풍속에 대한 국가의 관리가 더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문란함, 음란함, 부적절함의 기준이 어떻게 문화생산과 자아의 주체 형성, 시민적 덕성과 국민 만들기에 작용했는지 고찰한다. 이면에는 정치적 음모나 배경이 자리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를 위해 일제시대 이광수의 ‘무정’이 어떻게 풍속 통제의 담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전시동원 체제를 조장했는지 살펴본다. 또 냉전체제에서 풍속 통제가 ‘망국병’이 되어가는 과정을 에둘러 훑어본다. ‘4·19혁명’의 실패가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면서 ‘소년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국민의 일상과 사생활까지 개입하는 국가의 통치구도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는 결국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광장]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진경호 논설위원

    이 나라가 ‘이상한 나라’임을 입증하는 증언들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대개 이런 것들이다.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을 하루아침에 게으름뱅이로 전락시킨 엄청난 생활력의 종족’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다 갑자기 4강까지 후딱 해치우곤 그것도 다 운이라며 시큰둥해하는 속 넓은 종족’ ‘해마다 태풍과 싸우면서도 다 잊어버리고 다음 해에도 또 피해를 입는, 대자연과 맞짱 뜨는 종족’…. ‘한국인만 모르는 것’도 있다.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분단국인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두려운 나라인지 한국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만 모르는 이상한 한국은 얼마 전 또 한 번 면모를 드러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인터넷엔 ‘그럼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느냐’는 질문이 후드득 쏟아졌다. 보통 강심장들이 아니다. 이런 경이로운 평정심(?)은 60년 분단체제에서 쌓은 내성(耐性)과 더불어 한 가지 믿음에서 잉태됐을 것이다. 설령 북한이 무모한 짓을 벌이더라도 우리 군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 정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한데 이런 믿음이 얼마나 근거 박약의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오늘로 엿새가 됐지만 정부는 아직도 유고 상태다. 국무총리만 있고 17개 부처 장관은 없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열흘 넘게 이어질 판이다. 6·25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라는데, 정작 안보 트로이카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국정원장은 보이질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정부로 손색이 없다. 북한이 허튼짓을 하지 않고, 다른 돌발상황도 일어나지 않는 요행에 지금 5000만 국민이 의지하는 정부가 기대어 있다. 앞으로 5년 갈 정부인데 그깟 20일 남짓 두 정부든, 무정부든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통 큰 국민도 적지 않겠다 싶다. 하나 정말 그럴까.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벌어질 지휘체계의 혼란은 그냥 어찌어찌 될 것 같은 국운에 맡긴다 치자. 향후 5년을 이어갈 정부의 정책 근간은 어쩔 셈인가. 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5월까지 펼쳐질 정상외교의 전략은 어떻게 짜고, 박근혜 정부와 미국·중국·일본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130조원에 이르는 추가 복지 재원은 어디서 뽑아낼 것인가. 당장 정부 역량을 총결집해도 시간이 모자랄 사안들이다. 어쩔 셈인가. 잠깐 미국을 들여다보자. 정권 인수인계의 산실인 대통령직인수위는 당선 직후 꾸려진다. 이를 위해 후보들은 선거운동 조직과 별개로 정부인수 사전준비 조직을 대선 3~6개월 전부터 가동해 당선에 대비한다. 레이건은 무려 8개월 전에 꾸렸다. 정권 인수기간이 70여일로 우리보다 일주일 남짓 길지만 그런 사전 준비 덕에 인수의 속도는 훨씬 빠르고 체계적이다. 당선 직후 인수위가 정책을 설계하는 동안 당선인은 백악관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정부 각료 인선에 나선다. 각 후보에 대한 사전검증엔 백악관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 등이 총동원된다. 현미경 검증을 거친 터라 정작 의회 인사청문에 오를 때면 털어서 먼지 날 구석이 그다지 남질 않는다. 당선 보름이 넘어서야 인수위를 꾸리고, 나홀로 인선 끝에 다시 보름이 더 지나서야 총리 후보를 지명하고,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장관 후보를 지명한 박근혜 인수위와는 크게 대비된다. 계주의 승패는 바통을 넘겨받을 때 결정된다. 1~2시간마다 교대하는 전방의 초병도 10분 전엔 정위치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문발차(開門發車)는 일차적으로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 안 된 인사와 정부조직개편을 놓고 드잡이에 여념이 없는 국회 탓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부 이양에 대한 우리의 법과 제도, 정치문화가 아직도 허점투성이인 까닭이다. 구멍 뚫린 박근혜 정부 출범을 교훈 삼아 정부와 여야는 정부 이양과정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 5년 뒤에도 이상한 정부로 출발해선 정말 곤란하다. jade@seoul.co.kr
  • [열린세상] 김영환 사건, 조용한 외교로 돌아가라/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김영환 사건, 조용한 외교로 돌아가라/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북한 민주화운동가 김영환씨와 3인의 활동가가 지난 3월 29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체포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 정부는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김영환씨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주체사상을 전파시키고 직접 밀입북해서 김일성과 면담까지 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상 전향과 함께 북한 민주화 운동가로 줄곧 활동해 왔다. 그의 활동이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에 실질적 보탬이 되는 실현가능한 방식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극단적 대결논리 확산과 분단체제의 공고화만 초래하고 말지는 별도의 논쟁거리다. 다만 그가 분단체제하의 비극적 지식인이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역사에 몸을 던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김씨와 같은 활동가들이 중국에서 탈북자를 지원하거나 그들을 통해 북한의 내부정보를 획득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중국정부는 이 시점에 ‘국가안전위해죄’라는 중죄를 씌워 그를 구금하고 있을까. 김씨의 과거 주장으로 보건대, 그의 활동이 단순히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의 인권보호 차원이 아니라 그들을 북한으로 재입국시키는 방식으로 북한 내부에 민주화세력을 조직화하려는 활동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활동이 중국의 형법이 규정하는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근거가 되는 정치적 기초와 물질적 기초의 안전’이라는 규정을 그렇게 심각하게 위반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타인 밀출입국 방조죄’라는 비교적 가벼운 법을 적용해서 벌금형과 함께 추방했던 관행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번 사건은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한·중 양국 정부의 입장차이와 누적된 갈등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 요인으로는 지난 3월 한국의 대북 인권운동단체 등이 강력하게 주장한 중국 내 탈북자 송환 반대운동에 대한 중국정부의 되받기 강경책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한국 내 주장은 민간단체의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 정부의 ‘조용한 외교’에 대한 수정과 국제사회 의제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확산되었다. 중국을 강대국 자격이 없는 인권 후진국으로 몰아세우며 압박했고, 우리 정부도 사실상 이에 동조하는 행동을 취했다. 탈북자 문제를 둘러싼 양국 정부의 입장차이는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인권 우선론’대 중국의 ‘주권 우선론’ 사이의 갈등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가치의 충돌문제는 사안의 성격상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는 양국 정부의 적절한 타협과 협력이 필요한 문제다. 그동안 지속해 왔던 ‘조용한 외교’를 통한 해법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협력과 외교적 해결방식이 깨지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는 김씨 구금이라는 강경책으로 맞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어설픈 ‘중국 때리기’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조용한 외교로 돌아가야 한다. 외교통상부의 발표에 따르면 구금 상태에 있는 김영환씨가 한국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이것이 김영환씨의 발언 그대로인지, 아니면 외교부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가미한 의중 전달인지는 알 수 없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중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지도 않은 사람이 중국 체제 위협이라는 중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체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당사자인 김영환씨도 공개적인 대(對)중국 압박이나 국제사회의 공론화보다는 양국 간 ‘조용한 외교’ 해법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펼친다면 김영환씨 조기석방도 어렵지 않다고 본다. 과거 2001년에도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던 천기원 목사가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되었지만, 결국 ‘타인 밀입국 방조죄’로 죄명이 바뀌어 벌금형과 함께 추방조치된 적이 있다. 한국 외교부의 노력을 기대한다. 더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 문제 해법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어설픈 ‘중국 때리기’ 정책의 수정과 일관되고 실효성 있는 외교원칙 확립을 촉구한다.
  •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한반도 분단체제, 강대국 이해관계 속 고착화”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 등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우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냉전이 해소됐는데, 왜 남한과 북한은 가다 서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등 변덕스러운 것일까. 왜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 강행처럼 남한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가. 미국이나 중국은 과연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관심이 있는가. 이 같은 궁금증을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를 통해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홍 교수는 1999년 미국 정부가 공개한 외교관계 문서를 분석해 1970년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사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 남북 간 군사적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1968년 1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김신조 등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침투, 남한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같은 해 2월엔 미국의 선박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돼 원산항으로 끌려갔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북 보복을 주장했고, 같은 달 존슨 미국 대통령은 밴스를 특사로 보내 이를 무마해야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울진·삼척지구에 100명이 넘는 북한 무장간첩이 남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한반도 지역에 군사력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이 원산 바다에 나타났고, F105 1개 비행대, F102 2개 비행대, 최신예 전투기 F4D 팬텀기 4개 비행대가 남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제2의 한국전쟁이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푸에블로호 위기를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국가적 실체를 승인받으려고 노력했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위기를 고조시켜야 협상이 시작된다는 북·미 관계의 ‘이상한 공식’은 이때부터 출현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든지, 남북통합이 되든지 하는 한반도 분단의 근본적 해결이나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긴장이 격화되거나, 이 긴장 상태가 이어져 한국전쟁 때처럼 격돌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대국은 1970년대 이래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개입은 축소하면서, 영향력 자체는 유지하려는 모순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또 분단의 유지와 책임을 남북한으로 축소시켜, 국제적인 분단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의 분단으로 국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남북한 문제로 축소시키면서, 분단체제가 더 완숙해졌다는 것이다. 휴전이라는 애매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또한 군사적 위기와 적대적 대치 국면, 그리고 현상 유지 사이를 빈번하게 오가며 요동치게 됐다. 아울러 남한이나 북한의 정부 모두 분단체제의 변덕스러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계속 불안하고, 자결권도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도달하게 됐다. 문제는 완숙하긴 하되 여전히 변덕스럽고 유동적인 분단체제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에게는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1972년 남한의 유신체제의 선언 등도 그 하나일 수 있겠다. 홍 교수는 “부자가 만들어낸 사회적 불평등이 범죄를 발생시키지만 그 범죄는 주로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타나듯이, 한반도 분단체제는 강대국이 조성한 모순과 갈등이 약소국에서 증폭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런 모순구조를 이유로, 남북의 정치권력들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야말로 ‘식민성’(coloniality)으로의 귀결이자 표상이라는 것이다. 지구화로 세계인들이 세계무역기구나 세계은행, 유엔 등 국제기구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도,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비판했다. 미국이 세계은행 후보로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한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환호하고 있지만, 홍 교수의 지적을 차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분단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흔히 평화를 전제로 한 분단의 해소나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홍 교수는 평화와 분단해소를 향한 노력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과거에 한민족이었으니 하나의 국가로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60년 넘게 다른 체제, 다른 사상에서 살아온 두 국가의 국민들에게 쉽지 않은 주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MB정권 비판 대안을 논하다

    MB정권 비판 대안을 논하다

    이명박 정권 비판은 식상하다. 관건은 비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명박 정권과 다를 수 있느냐다. 진보학계의 큰 어른 격이자 분단체제론으로 유명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문제를 ‘2013 체제’라는 말로 요약했다. 손쉬운 비판 말고 어떤 대안을 내놓을까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는 계간지 실천문학 여름호에 기고한 ‘2013 체제를 준비하자’라는 글을 통해 “이명박 정권에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만 아니면 그 누구라도 좋다, 야당만 집권하면 된다는 얘기는 작은 원에 불과하다.”면서 “조금 더 큰 원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1987년 체제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였다면, 내년 대통령 선거를 거쳐 새 정권이 들어서는 2013년 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남북평화체제, 복지국가, 공정·공평사회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오는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세교연구소(이사장 최원식)와 한반도평화포럼(이사장 임동원·백낙청) 공동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2013년 체제를 향하여’는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1부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013체제에 담길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대해, 이일영 한신대 교수가 경제·사회분야에 대해 발표한다. 2부 토론에서는 백낙청 명예교수 주재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 의장,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 윤여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이 2013 체제의 핵심 의제를 다룬다. 이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연합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정현곤 세교연구소 상임운영위원은 “2013체제 자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큰 비전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게 심포지엄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통일 패러다임 전환 고려할 때/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열린세상] 통일 패러다임 전환 고려할 때/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이명박 정부 3년이 지났다.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의 목적에 따른 평가기준의 차이다. 대북정책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요, 다른 하나는 통일 대비, 또는 통일 실현이다. 지난 정부 10년 동안은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포용과 유화책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전 정부의 포용정책은 북한을 체제 위기에서 구해주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었다. 또한 북한이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변화하여 자연히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포용정책을 10여년간 추진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포용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2002년에도 북한은 앞에서는 핵폐기 협상을 하고 뒤에서는 몰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북한 스스로의 현장 공개로 확인되었다. 포용정책이 한창 추진 중이던 2006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망연자실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한에 남북관계의 결정권을 넘겨주고, 북한의 선의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이용하여 몰래 핵을 개발하는 선택을 했음이 증명되었다. 포용정책을 추진하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는 근거로 포용론자들은 토크빌의 패러독스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토크빌의 패러독스란 전체주의 체제가 현상유지를 할 때는 안정을 유지하다가 변화를 시도하는 순간 갑자기 혁명을 맞게 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근거하여 현상유지(muddling thru)에 집착하는 북한을 설득하여 개혁·개방을 추진하도록 유도하면 북한이 변화하여 통일에 이를 것이라는 가설을 현실로 믿었던 것이다. 토크빌의 패러독스는 민주주의 전통이 있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맞는 가설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토크빌의 패러독스가 일어나지 않았다. 체제 유지 방식이 훨씬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베트남도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혁·개방 추진 후 중국은 오히려 체제가 강화되어 G2 반열에 올랐고, 베트남도 안정적인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포용정책은 결국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도 통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북한정권 연장에 도움이 되는 역효과를 냈다. 오히려, 미국 부시행정부 8년간 북한에 가한 봉쇄와 제재가 북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해체시켰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시작한 암시장이 경제의 전 영역에 확산되었고, 대량 아사가 없어졌고, 시장이 계획을 상당부분 대체하는 수준으로까지 진전되었다. 북한의 시장화를 우리가 원하는 변화로 본다면, 그 변화는 북한의 경제난에 기인한다. 대북 포용정책이 아닌, 미국의 대북제재 효과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은 진정한 대화와 진정한 변화 유도를 위한 정책이다. 정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정책이다. 단기적 승부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이다. 압박을 위한 압박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압박이다.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한 때는 압박의 효과가 충분히 날 때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대화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와 같이 핵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 대북 지원을 노린 일시적 유화책이었다. 북한이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선택하였을 때와 거부하였을 때의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하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는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3대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기 이름으로 배급을 정상화하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는 후계자 김정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제는 3대세습체제와 공존하는 분단체제의 지속이냐, 북한주민들에게 새 삶을 줄 통일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냐를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때다. 이제는 3대세습체제와 공존하는 분단체제의 지속이냐, 북한주민들에게 새 삶을 줄 통일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냐를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때다.
  • [문화마당] 전쟁, 평화 그리고 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 전쟁, 평화 그리고 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전쟁과 평화, 이 둘의 구분이 전방과 후방인 시대는 지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전방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 구분이 사라진 총력전 시대가 됐다. 한국사에서 역사를 바꾼 주요 전쟁인 나·당전쟁, 임진왜란, 청·일전쟁, 한국전쟁은 국제전이었고 그것들은 당시 시각으로는 ‘세계대전’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한반도에 몰려오고 있다. 지금의 한반도 전쟁 위협은 현상적으로는 북한 체제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세대교체하는 와중에서 일어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내부 갈등을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독재국가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 경우 전쟁이란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대로 “다른 방식으로 하는 정치”다. 하지만 만약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 전쟁은 국내 정치가 아니라 국제 정치의 연장(延長)으로 수행될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확립되는 진통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남북 분단체제가 성립했다. 냉전으로 분단이 됐다면, 탈냉전시대에서 분단 체제는 종식돼야 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멸망했다면, 지금 한반도에 북한 체제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히틀러의 패배가 독일의 해방이었듯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북한의 해방임을 친북주의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지금 북한이 존립할 수 있는 토대는 주체사상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전쟁에서도 그랬듯이, 중국의 승인과 지원 없이는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언제, 무엇을 위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용인할 것인가. 앞으로의 세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 대신 중국이 부상하면서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으로 개편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북 군사대결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의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면 할수록 남한은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북한이 호전적으로 되면 될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점점 외세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는 것은 남북한 모두가 바라지 않는 바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한은 미국과 중국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외교적 노력으로 국력을 소진하지 말고,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자세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과는 6·25전쟁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다. 그러면 통일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분단으로 전쟁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많고, 이 같은 승자 없는 전쟁의 패자는 우리 민족이 된다. 지금 남한에는 이 전쟁의 위기를 통일의 기회로 전환시킬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북한은 과거의 동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될 수 있다. 1989년 당시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동독의 개방을 요구하면서도 붕괴는 결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도적처럼 찾아온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 대변인이 여행 규제 완화 조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이 새 여행법의 발효 시점에 대한 질문을 쏟아대자, 그는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떼를 지어 몰려가고 급기야는 망치와 도끼로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냉전체제의 거대한 상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국 대변인의 우연적인 말실수라는 초기 조건이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동독을 무너뜨리는 민중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그 결과로 독일은 통일됐다. 역사에서 우연이란 인간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구조적 조건 속에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 주어진 행운이다. 중요한 것은 행운의 여신을 잡을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비르투(virtù)라고 불렀던 용기와 덕성이다. 1989년 독일의 행운은 그런 비르투를 가진 헬무트 콜이라는 정치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새해에는 그런 비르투를 가진 정치가가 한반도에 나타나길 기원한다.
  • 한·중·일 ‘동아시아 인문서 100권 출간’ 프로젝트 시동

    한·중·일 ‘동아시아 인문서 100권 출간’ 프로젝트 시동

    “동아시아 출판·독서 공동체는 사실 근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봅니다. 예전에 같은 한자 문화권 아래서 같은 책을 읽지 않았습니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도 중국, 일본뿐 아니라 베트남까지도 전해졌습니다. 이 운동은 100년 동안 단절됐던 문화 공동체를 복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 등 동아시아 5개국, 3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문서를 한·중·일 3개 언어로 동시에 출간하는 ‘동아시아 인문서 100권 출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동아시아출판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13일 서울 인사동에서 프로젝트 의미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측 출판사인 사계절의 강맑실 대표, 사월의책의 안희곤 대표, 동아시아의 한성봉 대표, 일조각의 김시연 대표 등도 함께했다. “서양문명에 억눌려온 동양문명의 부흥과 인문학 위기 타개”에 뜻을 모은 5개국의 인문학 출판사들은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결성했고, 2005년 일본 도쿄에서 첫 회의를 가진 이래 6년간 한해 두 차례씩 만나 토론을 가져왔다. 인문서 100권은 지난해 10월 전주에서 열린 제9회 총회에서 선정됐다. 선정된 책들은 1950년 이전 출간된 인문 서적 가운데 학술가치가 높았으나 상호 번역이 어려웠던 책을 위주로 선정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각각 26권씩, 타이완과 홍콩에서 각각 15권, 7권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김윤식)’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 ‘흔들리는 분단체제(백낙청)’ 등 한국 인문학 서적과 더불어 중국의 ‘미의 역정’(리쩌허우), 일본의 ‘문화와 양의성(야마구치 마사오)’ 등 역작들이 포함돼 있다. 2012년 상반기에 1차 번역분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먼저 3개 언어로 된 100권에 관한 해제집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이 나왔다. 김 대표는 “동아시아 출판 역사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고 강조하고 “출판을 통해 지식을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일은 한국 출판 영역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목록을 보면 거의 대중의 관심과 거리가 멀고, 특히 젊은이들이 어려워할 만한 책이 대부분이다. 김 대표는 “단순히 100권 출판을 넘어서 이 책들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대학, 언론, 기업, 연구소 등과 연계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중·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100권의 책을 읽고 동아시아 사상과 이론을 학습할 수 있는 ‘동아시아독서대학’을 구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벌써 대학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일단 내년에 일본에서 열리는 정례 회의는 일본 메이지대학과 동경외국어대학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한국 측 출판사로는 한길사, 돌베개, 사계절, 일조각, 동아시아, 마음산책, 사월의책, 지호 등 9개 출판사가 참여한다. 현재 번역자 선정 작업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5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번역 작업이 워낙 까다로워 정확한 시점을 말할 수 없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문화마당] ‘미스 사이공’과 민족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 ‘미스 사이공’과 민족통일/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얼마 전 세계 4대 뮤지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을 봤다. ‘사이공’이라는 도시는 베트남전쟁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호찌민’으로 불린다. 미스 사이공은 도시 이름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 뮤지컬은 민족과 국가 또는 사상과 이념이 아니라 인간 삶을 위해 베트남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노래한다. 전쟁이란 적군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원한이 없는 타자를 죽이는 것을 합법적으로 승인하고, 적군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애국자로 영웅 대접을 받는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힘이 증오와 복수라면, 그것과 정반대되는 감정이 사랑이다. 인간은 가장 더러운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가장 깨끗한 것을 더욱 더 갈망하는 존재다. 그래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인간은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사랑을 한다. 미스 사이공은 전쟁에서 꽃 핀 사랑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무엇으로 인간이 사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뮤지컬의 결말처럼 현실은 냉혹하고 비극적이다. 전쟁 속에서 꽃핀 사랑이란 것도 결국 현실이 더럽고 추하면 추할수록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만든 허상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사랑은 슬프고 인생은 허무하다.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의 말대로, “그들은 태어나서, 사랑하다, 죽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그들’ 가운데 미스 사이공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며 가장 역사의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 노래한다.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베트남 여인과,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 여인 사이에 혼혈로 태어난 ‘엔지니어’라는 포주,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군과 베트남 여인 사이에 태어나 버려진 혼혈아 ‘부이도이(Bui Doi)’가 바로 ‘그들’이다. 민족해방전쟁으로서 베트남전쟁은 마침내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국가를 세움으로써 ‘엔지니어’에서 ‘부이도이’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역사의 고리를 끊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만 기억하면 전쟁이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희생시킨 ‘그들’의 삶은 망각된다. 연극의 위대함은 이 역사가 망각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베트남전쟁과 비견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베트남인들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룩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분단을 고착화했다. 민족국가 수립을 근대 기획의 완성으로 보면, 베트남이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이다. 하지만 오늘날 누가 더 성공한 국가가 됐는가? 베트남인들은 대한민국의 성공을 그들이 이룩하고 싶은 미래로 여긴다. 북한정권의 위기가 가시화되면 될수록 우리에게 통일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통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한 대다수 주민의 인생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피땀으로 이룩한 모든 성과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통일세’ 신설을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은 결국 북한정권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실현 불가능한 꿈일 때는 민족의 소원이었던 통일이 실현가능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통일을 세금과 같은 사회적 비용으로 계산하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제는 통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지 않으면, 통일은 우리에게 행복이 아닌 불행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역사학을 뒤흔든 12인을 말한다

    역사학을 뒤흔든 12인을 말한다

    역사학의 최근 흐름을 알고 싶다면 ‘역사가들-E H 카에서 하워드 진까지’(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역사비평사 펴냄)를 참고할 법하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12명의 서양 사학자에 대한 소개 형식의 책인 데다, 일반 단행본 판형(신국판)에 비해 책 크기가 훨씬 작은 변형(사륙판)이어서 지니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다. E H 카, 안드레 군더 프랑크, 하워드 진 등 한번은 들어봤음 직한 사학자들부터 알프레드 챈들러, 루이자 파세리니, 발터 립겐스, 데이비드 캐너다인 같은 학자들도 줄줄이 등장한다. 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유는 사회사, 신문화사,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 등 한국 사학계가 최근 전통적인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방법론을 다루기 때문이다. 지역도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됐다. 이는 책의 출발점을 감안하면 이해된다. 한국 현대사 연구에 영향을 끼친 당대 서양사학자들을 정리해 보자는 김승렬 경상대 사학과 교수의 제안이 있었고, 이에 따라 계간지 ‘역사비평’에서 2007년 겨울호부터 2009년 여름호까지 ‘우리 시대의 역사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이다. 덕분에 해당 분야 전문가나 직계 제자로 필진이 탄탄하게 구성됐다. 우선 E H 카를 다룬 장은 널리 알려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강연집 말고 33년을 들여 14권으로 정리한 그의 역작 ‘소련사’(History of Soviet Russia)를 조명한다. 소련을 통해 진보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이 책 때문에 카는 이후 냉전시기에 ‘스탈린 체제에 대한 정교한 표백’이라는 거센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소련이 망해버린 지금에 와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과 1920~30년대 스탈린의 성장이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파들에게는 정말 되는구나 싶어 충격을 안겼고, 좌파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윌리엄 이스터리의 저서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까지 보충해 읽어도 좋다. 지금이야 픽 웃을지 몰라도 20세기 초반 스탈린 식 사회주의 성장이 서구 주류 경제학계에 끼친 충격과 영향력을 짚었다. 기업사의 대가 알프레드 챈들러의 연구는 ‘회장님 어록 신화 만들기’ 식의 우리 기업사 현주소를 되돌아 보게 한다. 챈들러가 주목받는 대목은 ‘보이는 손’이란 명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결정 과정을 시장에 맡겨둬 인간의 삶을 교란했다면, 지금은 대기업 전문경영인(CEO)의 ‘보이는 손’이 가격결정 과정을 주도한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캐피털사들이 줄줄이 금리를 낮추고, ‘그렇다면 이제껏 폭리를 취했다는 말이냐.’라는 논란이 이는 요즘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식민지와 모국 간의 연계성 연구에 집중하는 데이비드 캐너다인에게도 시선을 줄 만하다. 한국의 식민지 역사와 영국 식민지들의 역사를 비교 평가해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으로 상징되는 유럽통합사에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 결집’이라는 큰 이념을 새겨넣은 발터 립겐스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통합론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솔리니 체제 아래 노동자들의 삶을 구술사 연구로 풀어낸 루이자 파세리니는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사단’이 던져놓은 ‘대중독재’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또 분단 시기 서독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동독의 역사는 물론, 동·서독이 주고받은 영향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한 크리스토프 클레스만의 연구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을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내용은 짧고 가볍지만, 여운은 길고 생각은 무거운 책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범일지 등 ‘동아시아 100권의 책’ 선정

    동아시아에서 20세기 중·후반에 출간된 인문서 가운데 학술적, 출판사적 의의가 큰 책 100권이 선정됐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29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진수당에서 제9회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전주대회를 열고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발표했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은 한·중·일이 각각 26권, 타이완과 홍콩이 22권을 선정했다. 선정범위, 대상, 분야와 영역 등은 포괄적 원칙 아래 나라별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백범일지(김구),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 흔들리는 분단체제(백낙청),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최장집) 등이 포함됐다. 중국은 시론, 중국건축사, 중국문화요체 등을 선정했고 일본은 강의록, 공동환상론,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등이 선정됐다. 이번 동아시아 100권의 책 선정과 각국어로 출판하는 일은 세계 출판사에서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동아시아지역이 문화적, 정신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갈등과 반목의 역사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독서공동체를 통해 극복하고 선린우호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동아시아 100권을 선정하고 공동 번역해 출간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2005년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 등 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인문출판사들이 출판·독서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29, 30일 이틀 동안 열리는 이번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전주대회에서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 발표와 함께 동아시아 교류의 대전제로서의 출판과 독서, 동아시아 공동기획 출판의 주제와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합리적 보수·성찰적 진보 연대 경색된 분단체제 변혁 나서야

    합리적 보수·성찰적 진보 연대 경색된 분단체제 변혁 나서야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경색된 남북관계가 좀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면서 2000년 남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분단체제의 체계적 인식과 극복에 매진해온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가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과 ‘시민참여형 통일’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최근 사회평론집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창비)를 펴낸 백 교수는 11일 “한반도식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참여 통일과정으로 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명쾌하다. “그 길 말고는 파국을 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근거는 이렇다. 1994년과 2005년 핵 위기는 모두 북·미 갈등이 주된 요인이었고 남한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 위기를 모면했다. 반면 이번 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남한발’인데도 남한 정부는 해결 의지나 능력이 없다. 한반도 문제를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서 접근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와 오히려 훼방꾼에 가까운 일본의 입장을 고려할 때 파국을 면하는 최선의 방법은 남한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백 교수는 “시민참여형 통일이라고 해서 시민이 정부를 제쳐놓고 통일을 추진하는 건 불가능하고 독일, 베트남, 예멘과 비교할 때 시민이 오랜 기간 꾸준히 참여해 통일과정에 영향을 주는 비중이 훨씬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실천적 개념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안했다. “분단체제를 ‘변혁’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분단체제의 실상과 동떨어진 단순논리로 인해 분열되어 있는 여러 세력이 새롭게 힘을 합쳐 참된 ‘중도’를 찾는다.”는 의미다. 수구 세력의 강경한 반북 태도와 마찬가지로 일부 진보세력의 ‘우리끼리의 통일’ 혹은 ‘남한만의 발전’은 남북관계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 교수는 “공허한 급진노선이나 안이한 개혁노선을 배격하고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연대해 총체적인 변혁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흔히 보수와 진보를 갈라서 얘기하지만 보수로 분류되는 인사 중에서도 합리적인 분들이 많고, 진보 인사 중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진보가 진짜 진보인가’ 성찰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분들끼리의 연대가 얼마나 폭넓게, 그리고 얼마나 짧은 기간내에 이뤄질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 지점에서 ‘변혁적 중도주의’가 단순히 좌우의 극단을 뺀 중간세력을 겨냥한 정치권의 ‘중도마케팅’과 한묶음으로 엮이는 걸 경계한다. 그가 내세우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원칙과 일관된 경륜, 지속적인 실행력을 갖는 줏대있는 중도 세력을 뜻한다. 백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에 대해서도 “정치적 선택이란 점에서 일견 중도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관된 전략이 아니란 점에서 진짜 중도마케팅을 하는 정치인들이 섭섭해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백 교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오바마 정부의 클린턴 특사 파견으로 북·미관계가 개선될 기미를 보일 때 남한이 적극적으로 편승해서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지금 이 땅에 정착한 새터민이나 중국 또는 제3국을 유랑하는 탈북자들이나 모두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배고픔을 못견뎌, 또 어떤 이는 가족의 약을 구하려고, 또 다른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고, 지금도 강가에서 탈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탈북 이후는 또 어떤가. 중국 공안(경찰)과의 숨바꼭질, 몽골 등 제3국에서의 기약없는 유랑,‘기획입국’ 브로커들의 농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도착해도 정착은 지난한 길이다. 그들을 온전한 ‘시민’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따름이다. 이제는 한국의 시민이 되리라 기대했던 그들에게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남),225(여)로 시작되는 동일코드를 붙여 “이 사람은 탈북자입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단편 7개 연작으로 새터민의 삶을 좇다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생각한다면 21세기 유랑민들인 이들에게 삶의 온전성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탈북자인권은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선 안 됩니다.‘가짜 인권놀음’을 멈춰야 합니다.” 탈북 여성의 고달픈 여정을 그린 연작소설 ‘찔레꽃’(창비 펴냄)을 출간한 소설가 정도상(48)씨는 17일 “모어(母語)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 분단체제 작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면서 “작가는 모어공동체가 갈등, 긴장, 유랑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번영하는 것을 지향해야 하고, 이번 작품도 그런 의도에서 구상했다.”고 말했다. ‘겨울, 압록강’‘함흥·2001·안개’‘늪지’‘풍풍우우’‘소소, 눈사람 되다’‘얼룩말’‘찔레꽃’ 등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신매매단에 속아 중국으로 넘어간 북한 여성 ‘충심’이 신분을 속인 채 중국 땅을 헤매다 몽골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궤적을 담고 있다. 인신매매단에 속아 조선족 남성과 강제결혼하고,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해 안마사로 일하다 기획입국 브로커인 선교사를 만나 수백만원을 주고 몽골을 거쳐 한국 땅을 밟지만 충심은 또 다시 ‘주변’에 머물 뿐이다.2차까지 나가야 하는 노래방 도우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먼 길을 돌고 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최종목적지는 결국 가족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려 했다.”(132쪽,‘풍풍우우’ 가운데) 작가는 5년전 탈북 소년의 유랑과 죽음을 담은 ‘꽃제비’라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작품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얼룩말’이라는 제목은 아들이 지어줬다. ●하나의 삶에 짜깁기한 네 여성의 ‘크로싱´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상임이사로 남북 실무교류를 책임지고 있는 처지여서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탈북자 문제가 이슈가 됐는데도 작가들이 작품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고, 오랫동안 자신의 어깨를 짓눌러온 ‘의식의 덩어리’도 이번 기회에 내려놓고 싶었다. 작가는 “남과 북의 독자들이나 작가들이 진정성을 갖고 읽어 우리 민족의 고달픈 유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비록 남루할지언정 가족과 집은 그 자체가 삶의 온전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중국 선양에서 만난 북한출신 안마사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6년 봄 ‘소소, 눈사람 되다’를 발표한 이후 연작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공 ‘충심’은 한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만난 함흥, 신의주, 무산, 남양 출신 탈북여성 4명의 사연을 복합적으로 녹여 만들어냈다. 작가는 “앞으로 청소년 성장소설이나 노동자들을 계급적 존재가 아닌 욕망의 근원으로 해부한 작품을 쓰고 싶다.”면서 “민중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80년대식 리얼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실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동아시아론은 확대된 민족주의”

    “동아시아론은 확대된 민족주의”

    ‘동아시아론’은 민족주의의 변종?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역사학자로 일국적 국사(國史)의 해체를 주창해온 임지현(50)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엔 동아시아론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족주의 극복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진 동아시아론조차 민족주의의 지역적 확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7일 ‘밑으로부터의 세계화:트랜스내셔널리즘의 이론과 실천’이란 주제로 한양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논쟁적 주장을 펼친다. 학술대회는 임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주최한다. ●한·중·일 미래개척 이론 및 전략으로 제시 현재 동아시아론은 만개 상태다.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동아시아론은 한중일 3국의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개척하는 이론 및 전략으로 제시돼 왔다.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아시아론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구축하기 위해 동아시아론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한국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새로운 대안 이념을 갈구하던 비판적 지식집단이 주로 동아시아에 주목했다.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과 연계해 동아시아의 평화 확보와 서구 근대 극복을 추구하는 계간 ‘창작과비평’ 그룹의 진보담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성공 원인을 유교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찾는 유교자본주의론, 유·불·선과 한자문화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동아시아를 상정하고 서구 중심의 사유 극복을 강조하는 탈근대담론 등이 모두 동아시아론으로 표현됐다. 이들은 서로의 이론에 각주를 붙이며 상호 비판과 검증작업을 거쳐왔지만, 동아시아론이 민족주의 극복을 지향한다는 전제만큼은 크게 의심받지 않았다. 반면 임 교수는 ‘동아시아론=민족주의 극복 담론’이란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특정 동아시아론이 아닌 동아시아란 틀거리로 사고되는 담론 전반을 겨냥한다. 임 교수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적 갈등구조를 넘어서려는 담론적 시도로써 동아시아론은 오히려 국민국가의 확대된 외연으로서의 동아시아를 본질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타국가 배제, 3국의 이해관계만 반영 한중일로만 동아시아를 상정하고 타이완이나 필리핀 등 여타 국가를 배제하는 전략은 3국의 국가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확대된 민족주의’일 뿐이란 것이다. 동아시아론자들에게 동아시아는 ‘한중일을 하나의 벨트로 묶은 실체’이나 임 교수에게 동아시아는 ‘한중일 3국으로만 가정한 상상의 구성체’일 뿐이다. 임 교수는 “크고 작은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론이 한중일의 평화공존에 기여할 것이란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면서도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지역을 억지로 하나의 관념으로 묶으려 할 경우 유럽의 패권국들이 하나의 유럽을 설정한 뒤 터키 등 이슬람 유럽을 비유럽으로 배제해온 행태를 반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회현상을 국민국가 경계 내에서만 바라보는 패러다임 극복 이론인 트랜스내셔널리즘(초국가주의)을 통해 미국과 유럽 중심의 패권적 세계화 논리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기획됐다. 영국 리즈대 동아시아센터 연구원 알리사 존스는 ‘트랜스내셔널리즘과 동아시에서의 (탈)근대 시민 만들기’란 논문에서 국민국가 경계를 벗어난 국제적·초국가적 민족주의 개념과 이를 강화해온 대중교육체계 사이의 관계를 밝힌다. 데니스 갤번 미국 오리건대 교수는 ‘서아프리카에서의 트랜스내셔널리즘과 후기식민지’란 논문에서 인종적·문화적·역사적 공동체의 일상을 재구성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트랜스내셔널리즘 연구와 후기식민주의적 상황 사이의 긴장 구조를 탐구한다. 또 윤성호 한양대 교수의 논문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의 안과 밖’은 미국 중심의 패권적 국가주의의 비판자 역할을 해온 아시안-아메리칸 연구가 환태평양적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은밀히 아시아를 타자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울광장] 새 대북정책, 도그마를 경계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 대북정책, 도그마를 경계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장면1 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회담 때. 평양의 고려호텔에 머물던 남측 대표단 간부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억수같이 퍼붓는 소낙비를 맞으며 비옷도 입지 않은 채 북측 청소원이 호텔 앞을 쓸고 있었다. 이 간부가 나중에 북측 카운터파트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전하자 “매우 당성이 강한 동무”라며 표창해야겠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성과는 없더라도 지시가 떨어지면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경직적인 북한사회의 단면도다. #장면2 얼마 전 남북 군사실무회담장. 북측이 남쪽의 문산과 북쪽 봉동을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즉 “화물도 없이 오갈 바에야 운행을 줄이는 게 낫다.”는 주장이었다. 이 화물열차 왕복은 남북정상간 10·4선언에 따라 지난해 12월 초 합의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물류비가 적게 드는 차량을 이용하자 12량이나 되는 열차가 거의 매일 텅빈 채로 오가는 형편이었다. 결국 며칠 후 화물량에 따라 열차 수를 조정하기로 했다. 북측이 철도연결이란 상징성에만 집착하는 남측에 외려 한 수 가르쳐준 꼴이다. 시공을 달리하지만, 두 가지 삽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같다. 어떤 과제이든 거기에 너무 경직적으로 매달리면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치기 마련이란 뜻이다. 지난 몇년간의 대북 정책이 북한체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 것도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들이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남측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햇볕”이라며 6조∼9조원으로 비공식 추정되는 돈을 북측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북측이 군사력이란 갑옷을 벗으려는 조짐은 아직 없다. 북한이 핵실험이든 무엇을 하든, 남측이 유화적 자세로 일관하겠다는 데 북한지도부가 굳이 개혁·개방에 나서겠는가.60년 세습체제에서 누적된 온갖 모순이 외부세계란 거울을 통해 북한주민에게 되비칠 게 뻔한데…. 사실 세계사를 통틀어 강풍(채찍) 혹은 햇볕(당근)일변도 정책으로 평화를 일군 사례는 없다. 데탕트(해빙)를 추구하면서도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비 경쟁도 불사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강공이 결국 구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다. 서독도 동독에 대한 갖가지 지원을 했지만, 동독의 인권 개선과 양독 주민의 상호 방문 확대도 끊임없이 요구해 관철시키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이 돛을 올릴 참이다. 아직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같은 분명한 깃발은 들지 않았지만, 그런 유화일변도 정책과 결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북 정책의 별칭은 짓지 않겠다지만,‘전략적 상호주의’니 ‘상호주의적 포용정책’이니 하는 수사에서 감지되는 기류다. 새 대북 정책이 성공하려면 기존 정책과 무조건 차별화하려고 들면서 또 다른 도그마에 빠져드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듯싶다. 북핵 실험 등으로 포용정책의 허점이 드러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교류협력의 확대가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에 가장 유효한 대안의 하나라는 대의마저 부인할 순 없다. 폐기해야 할 것은 포용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지원 일변도로 가면 북한이 핵개발조차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경직된 사고다. 스포츠도 그렇듯이 상대가 있는 게임은 유연해야 한다. 북한을 통일 열차에 합류시키는 데도 강온과 완급의 조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