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자서전 My Life] “딸이 알까 두려워 진실 숨겼다”
대통령 재임 시절 숱한 스캔들과 함께 미국 경제를 호황국면으로 이끌면서 비난과 찬사를 함께 받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2일 자서전 ‘나의 인생 (My Life)’를 출간,시판에 들어갔다.
자서전에서 그는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백악관 임시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자신의 국내외적인 치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서울 김균미 기자|클린턴 전대통령은 특히 임기 말 북한을 일주일 이상 방문하려 했으나,중동사태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또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려 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방북,미사일 협상을 종결지으라고 권고했으나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북한 관련
1994년 3월 말 북한과의 심각한 위기가 시작됐다.앞서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한 북한은 돌연 15일 사찰단의 입국을 막았다.북한은 핵 무기 전단계인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폐 연료봉을 연구중이었으며 이를 위해 2개의 원자로 건설을 계획했다.
나는 일주일 만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유엔에 대북 경제제재를 요청했다.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중단시키기로 결정했음을 발표했다.그는 미국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는지를 북한에 전하기 위해 3일 연속 거친 말투를 썼다.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6월1일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로버트 갈루치 북핵 대사를 그에게 보내 미국의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다.그는 방북을 원했고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7월 제네바 협상을 하루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대화는 한달간 중단됐다.그러나 10월에 협상이 타결돼 북한이 핵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북한이 1998년부터 핵무기 1∼2개를 만들 분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안 것은 내가 백악관을 떠난 뒤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12월16일 백악관을 찾았다.그는 미사일 방어(MD)와 이라크를 가장 큰 안보 이슈로 생각했다.나는 8년간의 경험으로 비춰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안보문제 가운데 첫번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음이 중동평화,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파키스탄과 탈레반 및 알카에다의 연계,북한 문제,그리고 이라크라고 말했다.빈 라덴을 잡지못한 게 가장 실망스럽지만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거의 타결할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그러나 완전히 종식시키려면 부시 당선자가 북한에 가야한다고 말했다.부시는 듣기만 했지 말하지는 않았다.
●르윈스키와의 관계 전말
1995년 10월 연방정부의 일시 폐쇄로 백악관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을 때 르윈스키와 처음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그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그녀가 국방부로 옮길 때까지 여러 차례 관계를 가졌다.1997년 2월 르윈스키가 주례 라디오 연설 녹음 저녁때 손님중 한명으로 왔고,녹음 뒤 약 15분간 단둘이서 만나 관계를 가졌다.
나도 내 행동이 혐오스러웠다.봄에 다시 만났을 때 이런 행동은 나와 내 가족,그녀 등 모두에게 잘못이라고 말했다.이후에도 르윈스키는 몇번 백악관을 방문했지만 부적절한 관계는 더 이상 갖지 않았다.르윈스키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은 부도덕적하며 바보같은 일이었다.난 그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고,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길 바랬다.
●힐러리보다 첼시에게 말하기가 더 힘들었다
대배심 심리가 열리던 1998년 8월15일 토요일 아침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참담한 기분으로 힐러리에게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힐러리는 마치 배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힐러리는 나와 르윈스키와의 관계 그 자체 못지않게 내가 지난 1월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나 있었다.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난 내가 그녀를 사랑하며 첼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가족을 지키고 대통령으로서 나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진실을 꽁꽁 가슴속에 가둬뒀다.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나와 관련된 그 많던 거짓말과 모함들을 함께 잘 견뎌낸 지금,지난 1월 폴라 존스와 관련한 진술 조서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밀려나긴 싫었다.솔직히 지금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바보같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딸 첼시에게 사실을 알리는 일은 힐러리에게 고백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모든 자녀가 자신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시간 문제이지만,내 경우는 정상적인 경우에서 한참 더 나아갔기 때문에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웠다.나는 항상 좋은 아빠라고 자부해왔다.나는 결혼생활이 끝나는 것 뿐 아니라 딸의 사랑과 존경을 한꺼번에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mip@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