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 일기장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올 들어 생애 마지막으로 기록한 일기 가운데 일부가 21일 공개됐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만들어졌다. 40쪽 분량이다. 여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대북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인간적 면모를 보여 주는 내용들이 망라돼 있다. 소책자는 전국의 분향소에 배포됐고, 내용은 www.근조김대중대통령.org에도 올라 있다. 고인의 일기를 분야별로 간추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월18일=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될 모양.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5월23일=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매일 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5월29일=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북핵과 대북문제
▲4월14일=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5월25일=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사랑
▲1월11일=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결혼 이래 최상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2월7일=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약자에 대한 관심
▲1월20일=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1월26일=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 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인생과 정치, 역사
▲1월7일=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1월16일=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3월18일=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 주고 있다.
▲4월27일=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정리 김지훈기자 kj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