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북한 5차 핵실험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룸메이트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홍명보호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이명박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김승규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2
  • [北·美 6자회담 복귀 합의] 동결 北계좌 일부 해제 ‘딜’ 한듯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결정되면서 대북 금융제재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소됐을지가 주목된다. 정부 당국자는 31일 이와 관련,“대북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돌파구(breakthrough)가 있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는 금융제재, 즉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와 관련한 ‘묘수’가 이미 막후 딜을 통해 조율됐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31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6자회담 재개합의를 이끌어 낸 뒤 “북한이 어떤 전제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부상이 6자회담 포럼(틀안)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다룰 준비가 돼있으며 미국이 이를 재확인하길 원했다.”고 밝혔다. 6자회담이 재개된 뒤에도 실질적으로 진전을 이루기 위한 요소들이 아직 남아있음을 뜻하는 말이다.북한은 지난해 11월 5차 1단계 회담 결렬 이후 한·중 양국의 어떠한 설득에도 “금융제재 고깔을 벗기기 전에는 6자회담에 나설 수 없다.”고 했고, 미국은 “마약·위폐제조 등 불법활동에 따른 금융제재는 법집행의 문제로 6자회담과 별개”라고 맞서왔다.최근 미국은 6자회담 언저리에서 양자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할 수는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북한은 완고한 자세를 꺾지 않았다. 그러다 핵실험 후 이어진 제재정국에서 꺾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핵실험이 있기 전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정권교체의 시도로 보고 있고, 미국의 법집행 문제로 보고 있는 두 입장을 다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이디어로는 북한이 불법활동에 대한 시인과 재발방지 약속을 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일부 계좌를 해제하는 방안 등이 제기됐었다. 틀을 갖춘 묘수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향후 9·19 공동성명 이행방안, 즉 북핵 로드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북·미 양측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통해 북측의 우려사항을 덜어주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부시 미 대통령의 회담 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방북해 전달한 내용은 ‘평화협정’에 관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양측이 이미 금융제재 해법에 대한 ‘묘수’에 합의한 상태에서 만났는지, 아니면 6자회담 언저리에서 핵문제 로드맵 이행과정에 계속 논의해 나가는 방법으로 서로간 명분쌓기로 해결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진 않았다. 공고한 평화정착을 위한 순탄한 첫걸음이 될지, 아니면 일촉즉발 상황 앞에서 ‘일시 휴전’이 될지는 금융제재 문제와 함께 핵실험 이후 부각된 추가 금융제재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사설] 北 6자회담 성실히 임해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어제 중국 베이징에서 날아들었다. 유엔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북핵 사태의 숨통을 트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은 그 동기와 의도가 무엇이든 크게 환영할 일이다. 더욱이 대치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직접 접촉을 갖고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한 점은 한층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북핵 해결 전망이 그만큼 밝아진 것이다. 정면 대결로 치닫던 국면에서 돌연 북측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낸 직접적 계기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금융제재와 관련해 모종의 양보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돌파구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해 미국이 유연한 자세를 보였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북제재라는 국제사회의 채찍과 더불어 우리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포함한 한·중 두 나라의 외교적 설득 노력이 뒷받침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5차 6자회담 이후 꼬박 1년 만에 재개될 이번 6자회담의 과제는 실로 막중하다. 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북핵 문제가 단숨에 풀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북·미간 불신의 골이 워낙 깊은 데다 북핵 동결과 해체,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지원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북측의 의도가 핵 문제 해결보다 단지 국제사회의 제재를 늦춰 보려는 데 있다면 회담은 더욱 어렵고 지루한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성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북은 시간벌기용으로 6자회담을 활용하려 해선 안 된다. 추가 핵실험 중단을 선언하고, 지난해 4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을 성실히 이행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미국도 6자회담 기간 일체의 대북제재를 중단하는 등 성공적 회담을 위한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 [경제정책 돋보기] 공산품 관세 개방안 골격 마련 주력

    [경제정책 돋보기] 공산품 관세 개방안 골격 마련 주력

    23일부터 닷새동안 제주도 중문단지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차 협상은 오는 12월 초 미국에서 열릴 5차 협상에서의 핵심쟁점 타결에 앞선 ‘가지치기’ 협상이 될 전망이다. 한·미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쌀과 개성공단 등 핵심 쟁점을 제외한 비교적 이견이 크지 않은 사항들에서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5차 협상에서의 빅딜(핵심쟁점 주고받기)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우리 대표단은 공산품 중심의 상품 개방안 골격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우리측은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을 계속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북한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로 미국측의 ‘반대 입장’이 더욱 거세져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 비민감품목 우선 절충 시도 우리 정부는 21일 국회 한·미 FTA 특위에 제출한 ‘한·미 FTA 4차 협상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이번 협상에서는 상품에 대한 관세 양허(개방)안의 골격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 “이견이 크지 않은 쟁점 위주로 ‘가지치기’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양측 협상단은 따라서 농산물과 공산품·섬유 등에서 상호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 개방요구 수준을 낮추고 합의 도출이 비교적 쉬운 항목들부터 본격적인 주고받기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 협상단은 이미 1531개 농산물 품목 가운데 284개를 개방 예외 품목으로 지정했던 당초 양허안을 수정, 개방 품목을 늘린 양허안을 마련했다. 미국측도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우리측 요구를 받아들여 두 차례에 걸쳐 섬유 개방품목이 확대된 수정 양허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역시 관건은 양측이 얼마나 진전된 수정안을 제시하느냐인데, 낙관하기는 이르다. 한·미 양국은 우리측 민감 분야인 농산물과 미국측의 취약 분야인 섬유 분야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설정한다는 데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리측 협상단은 미국의 자동차 관련 세제 폐지 요구에 반대 입장을 견지할 방침이다. 아울러 한국에서 미리 검사받은 화물은 미국에서 신속하게 통관할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이나 반도체 등을 대상으로 반덤핑 조치를 취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측으로부터 ‘긍정적인 검토’ 답변을 끌어낸다는 복안이다. ●서비스·투자, 개방유보 분야 추려내 실질적 진전에 주력 서비스·투자 분야에서도 실질적으로 개방이 어려운 분야를 가려낸 뒤 세부 유보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우리측의 관심사항인 항공, 해운, 어업, 통신, 방송,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 등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측도 법률·회계·통신·우체국택배 시장에 대한 개방과 방송·항공사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지분 제한 폐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서비스 국경간거래, 신금융서비스에 대한 양측간 합의사항을 협정문에 반영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협의할 계획이다. ●의약품 이견차 커 4차 협상을 앞두고 두 나라가 별도 화상회의까지 가진 의약품 분야의 경우 종전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난항이 예상된다. 그동안 두나라의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해온 무역구제, 자동차, 지적재산권 등에서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더욱이 다른 분야와는 달리 무역구제의 경우 12월 5차 협상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번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미 FTA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개성공단 문제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협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시한이 가까워짐에 따라 양국 협상단 모두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아 합의 도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주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핵을 버리고 김재박을 택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온 세계가 소란하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남다른 감회를 갖고 본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꿈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거였고 대학 시절 전공도 핵공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가 전혀 엉뚱한 야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핵개발을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뒤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핵 관련 프로젝트 포기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다른 하나가 현대의 김재박이다.1977년 한국화장품이 창단될 때까지만 해도 야구는 필자에게 좋아하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고, 더구나 실업 야구의 인기는 고교 야구에 현저하게 밀리는 상태였다. 이런 필자를 실업 야구 마니아로 만들고 거의 모든 실업 대회를 쫓아다니며 경기를 기록까지 하도록 만든 것이 유격수 김재박이다. 당시 신인 김재박은 그 해 타자가 탈 수 있는 상을 모조리 휩쓸며 7관왕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필자를 야구에 빠지게 만든 것은 그의 타격이 아니라 수비였다. 거의 좌익수 앞까지 빠진 타구를 쫓아가 역동작으로 1루에 던져 아웃시키고 넘어져서도, 달리면서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송구가 가능했던 그의 플레이는 그림이었다. 수비 하나만으로도 팬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플레이 이전과 플레이 도중에 이루어지는 소프트웨어였다. 매 타자마다 매 투구마다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요즘에야 기본이지만 당시는 기본이 아니었다.또 평범한 플라이 볼을 수비할 때도 경기 상황에 따라 일부러 공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1루에 던져 타자를 먼저 포스 아웃시키고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는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를 시도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면 그냥 2루에 던져 1루 주자만 아웃시킨다. 이런 플레이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실행하기란 더욱 어렵다.약 30년간 야구를 지켜보면서 그런 플레이를 목격한 것은 스무 번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그 중에 태반을 유격수 김재박이 보여주었다. 선수 김재박 덕분에 필자는 프로야구가 창단될 때 전공을 포기하고 야구기록원으로 지망할 용기를 얻었다. 선수가 아닌 감독 김재박과 두뇌 싸움이라면 결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김인식 감독이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하면서 구사하는 용병술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즐겁다. 따라서 한 경기라도 더 볼 수 있도록 5차전을 기다리는 일은 이기면 삼성을 상대해야 하는 두 감독에게는 가혹할지 모르지만 팬들에게는 희망사항이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北 핵실험 파장] 남북 문화교류도 ‘빨간불’

    [北 핵실험 파장] 남북 문화교류도 ‘빨간불’

    고구려 공동연구, 윤이상 음악회 등 주요 남북한 문화교류 사업들이 북한의 핵 실험으로 줄줄이 무산되거나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통일부에서 승인한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프로그램은 올 들어서만도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발굴 및 봉환, 북한 전통문화 기록화 사업, 개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개성 역사유적 남북공동발굴조사, 고구려 유적 남북 공동조사 등 21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가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사실상 멈춰선 것으로 확인됐다. 개성 역사유적 남북공동 발굴조사는 첫 발도 못 뗀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 위기에 놓였다. 이 사업은 지난 7월부터 60일간 개성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대포동 미사일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6월 말 북측이 돌연 출입금지를 통보해 길이 막힌 상태였다. 정세가 나아지는 대로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번 핵 실험으로 논의 자체가 내년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위원장은 “정부가 대북 정책의 재검토에 나선 상황에서 이미 승인한 문화사업을 그대로 추진할지 알 수 없다. 올해 9억 3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편성 단계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설 기반이 될 사업으로 꼽혀 온 고구려 고분군 공동 실태조사와 평양 안학궁터 공동 발굴조사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큰 차질이 예상된다. 북한의 탈춤·판소리 등 문화재를 비디오·책자로 만들어 보존하는 북한 전통문화 기록화 사업은 1차 사업 마무리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다. 고려대 부설 한국학연구소가 북한 대외전람총국과 함께 지난해부터 봉산탈춤, 고려청자, 칠기, 민속춤 돈돌라리에 대한 기록 교환을 끝냈지만 핵 실험으로 세미나가 연기됐다. 유영대 한국학연구소장은 “미사일 발사 뒤 2개월 만에 접촉에 성공해 엊그제까지 연락을 취했는데 핵 실험 이후 또 단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25차 윤이상 음악회에 참가할 예정이던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와 국내 음악가 등 61명도 현재 방북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재단 박재규 이사장과 이사들은 축전의 연기를 북한측에 요청하는 방안, 예정대로 방북해 정명훈씨 등의 협연 없이 20명 정도의 관계자만 참관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며 11일 오전 중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정명훈씨는 10일 오후 재단측에 불참을 통보했다. 양무진 재단 이사는 “이런 때일수록 민간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만큼 참가를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 있다.”고 전했다. 2009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남북한 정부가 추진한 유해 발굴 및 봉환 사업도 2차 조사를 위한 관계자간 접촉이 미뤄지고 있다.KBS와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함께 만들어 온 국내 최초의 남북합작 드라마 ‘사육신’이 북핵 실험을 계기로 연내 방영이 불투명해졌으며 영화 및 드라마 ‘황진이’도 방북 촬영이 어렵게 됐다. 황성기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鄭통일 “北, 5단계 핵폐기 일정 제시”

    鄭통일 “北, 5단계 핵폐기 일정 제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4일 “지난 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에서 북한이 핵 폐기와 관련해 5가지 행정표(이정표)를 제시했다.”며 “그것은 핵실험 보류, 핵이전 금지, 핵 추가생산 금지, 검증을 통한 핵활동 중지 및 폐기,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 등 단계적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정 장관은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같이 전하고 “5차 회담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예고했지만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6자가 합심하면 길은 찾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정 장관은 북한의 금융제재 해제 요구와 관련,“공동성명 내의 문제는 아니지만 핵 문제의 본질과 관계돼 있다.”고 전제한 뒤 “휴회 기간 북·미 전문가 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보자는 합의는 6자회담이 생산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러나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장관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장소와 관련,“6·15 공동선언의 약속은 서울 답방이지만 이미 5년이 지났고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변했기에 기본적으로 정상회담이 다시 열려야 한다는 정신이 중요하며, 장소가 본질에 우선할 수 없다.”고 말해 북한 지역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정 장관은 “적절한 시점에 2차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北의 회담복귀 결단보다 중요한 것/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지난 2월10일 북한이 핵억지력 보유와 핵무기고 증대 방침을 선언했을 때 미국은 많이 듣던 얘기고 예상했던 바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3월31일 북이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나, 그후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미국은 정책차원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미국은 ‘악의의 무시(Malign Neglect)’ 전술로 대응한 것이다. 다만 대통령을 비롯한 미 고위관리들의 자극적인 대북 표현은 오히려 심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당연히 북한도 말싸움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4월부터는 누군가에 의해 ‘핵억지력’이 ‘핵탄두’로 둔갑하고, 탄두수도 최소 2∼3개에서 6∼8개로 보도되면서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까지 유포되기 시작했다.6월위기설 속에 국민의 불안이 극에 달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 미국의 악의의 무시 전술과 외곽때리기 전술의 틈바구니에서, 적어도 2월중순부터 5월중순까지 석달여, 한국정부는 안팎곱사등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북한이 5월11일 폐연료봉 인출을 끝냈다고 공표한 뒤부터 미국의 행보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남북관계에도 해빙의 조짐이 감지되었다. 유럽순방 중이던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다시 주권국가론을 거론하고,5월13일 미국의 디트라니 북핵담당대사가 뉴욕으로 찾아가 박길연 북한대사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인 14일 북한은 남북당국간 대화채널 복원에 호응해 왔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은 뉴욕 채널을 통해 주권국가론을 설명하고 6자회담 틀 내에서 미·북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을 북한에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5월8일 북한이 주권국가론과 6자회담 틀내 미·북회담 문제에 대해서 미국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때만 해도 별무반응이던 미국이 연료봉인출 완료 보도가 나오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북한이 장차 어떤 수순을 밟을 것인지는 1993년 선례가 있기 때문에 뻔히 내다보이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진즉 선택할 수 있었던 대응을 왜 연료봉 인출이라는 벼랑끝전술까지 지켜보고 비로소 시작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남북대화 복원을 촉구하는 우리측 요구를 못들은 척하다가 미국의 태도변화가 감지되니까 그때서야 호응해 나오는 북한의 태도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다. 경위야 어찌 되었건 비료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서서히 복원되는 중에 있고,6·15행사와 15차 장관급회담을 전후해서는 1년전의 분위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금주 중에는 북한이 지난 13일 설명받은 미국의 입장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 이 시점에 미국은 제발 말로써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좀 삼갈 필요가 있다.13일 전후해서 약간 누그러졌던 대북 표현들이 다시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 대해 북한이 반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계획을 가진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바란다면 적어도 북한이 결정적으로 저울질하는 시점에 자극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북한에만 “할 말이 있으면 회담장에 나와서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미국도 할 말이 있으면 북한이 회담장에 돌아온 뒤 그 자리에서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상 전략적 유연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부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북한이 회담복귀를 카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참가국들은 북한이 다시 회담장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붙들어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유연한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회담은 훈계하는 자리도 아니고 벌주는 행위도 아니다. 상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일단 회담을 하기로 했으면 속이 쓰리고 울화가 치밀어도 기본적으로 이익의 교환을 전제로 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풀자는 6자회담에 도덕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회담은 겉돌게 되고, 그리되면 미국내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 주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이 잘 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북한도 이제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고 문제해결에 동참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 인도와 핵개발 ‘극한 대치’/파키스탄 5차례 핵실험 강행 파장

    ◎5강국 주도 핵질서 깨져 핵 확산/北에 기술 이전땐 한반도에 영향 파키스탄이 28일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인도의 핵실험 실시로 촉발된 서남아시아의 대치상황이 극한 상황을 맞게 됐다. 이번 핵실험으로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까지 핵보유국 대열에 사실상 합류함으로써 미국 등 기존 5대 핵강국에게만 핵 보유가 인정돼온 세계 핵질서의 틀이 깨졌다. 파키스탄의 이번 핵실험은 2주일전 실시된 인도의 5차례에 걸친 연쇄 핵실험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띠고 있다. 47년 영국 독립후 50년동안 3차례의 전면적을 치르며 대치해온 두나라가 이제 핵을 통한 ‘공포의 균형’으로 대결하게 됐다.‘핵강대국의 핵무기 철폐’ 주장을 펴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을 거부해온 두나라의 핵실험으로 북한이나 이스라엘 등의 핵개발을 자극하게 됐다. 북한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파키스탄의 북한에 대한 핵기술 이전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번 실험이 한반도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두나라는 핵실험을 마침으로써이제 핵을 장착한뒤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경쟁을 가속화하게 됐다.파키스탄은 북한제 미사일을 수입한 상태로 알려져 주목된다. 인도의 핵실험으로인한 안보위협과 국내적 핵개발 압력을 받아온 파키스탄은 핵주권을 논리로 들며 이번 실험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불편한 관계를 감수해야만 할 처지에 놓였다. 파키스탄은 지난 11일과 13일 인도가 5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하자 즉각,보복 핵실험 실시 의사를 밝혔었다.인도의 핵실험에 당혹해 하던 미국과 서방국들은 즉각 인도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표하면서 파키스탄에 대해 인내심과 자중을 당부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현재 5대 핵강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최소 3만7000기.한꺼번에 폭발할 경우,인류를 25번이나 멸망시킬수 있는 규모다.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리에 마치고 핵보유국임을 최종 선언하고 이어 잠재핵개발국들이 핵실험에 도전할 경우,핵비확산금지조약(NPT)와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T)체제는 뿌리채 흔들릴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각국 반응/“핵 확산 안된다” 일제 규탄/나토 “감당못할 경제제재 직면” 경고 【워싱턴·이슬라마바드·뉴델리·모스크바 외신 종합】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8일 세계 각국은 핵확산을 우려하며 일제히 파키스탄을 비난했다. ○“인도와 똑같이 제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8일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 실망을 표시했으며 남아시아 지역의 긴장고조에 우려하고 있다고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매커리 대변인은 이어 “미국법에 따라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조치 실시는 확실하다”면서 앞서 핵실험을 실시한 인도에 대한 제재와 동일한 제재조치가 이르면 28일중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印 총리 “우리는 정당”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파키스탄이 5차례의 지하 핵폭발실험을 실시한 것과 관련,2주전 인도의 핵실험 결정의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첫 소감을 피력. 바지파이 총리는 전국적으로 생방송되고 있는 의회 회의장에서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했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인도의 정책은 정당한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며 대책 숙의를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핵실험을 실시한 파키스탄은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가혹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 한 관계자는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이날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파키스탄의 핵실험 소식을 들었으며 강력한 비난 성명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성명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비난한다는 점을 매우 강하고 명확히 밝힐 것“이라고 강조. ○中 대사에 사전 통보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긴급뉴스로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그러나 중국 외교부의 공식 논평은 즉각 발표되지 않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의 APP통신은 샴샤드 아흐메드 파키스탄 외무장관이 핵실험전에 장 쳉리(張成禮) 주 파키스탄 중국대사를 만나 핵실험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보도. ○…일본의 무라오카 가네조(村岡兼造) 관방장관은 “매우 통탄한다”고 밝히고 일본정부는 파키스탄에 대한 적절한 제재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단체들은 핵실험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이 강행된 것에 분노를 표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제5차 한일포럼 토론자료·한영포럼 주제발표 요지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발전을 위한 제5차 한·일포럼이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신라,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되며 한국과 영국간 현안을 토의하기 위한 5차 한·영 미래포럼도 5,6일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한일포럼에서는 ‘북한문제와 한일협력’,한영포럼에서는 ‘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한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 등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한·일 혀력의 새로운 차원­이서환 외교안보연 교수/동북아 전환기 한일 공동 대응을 한·일 양자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사문제,영역권(독도),어업문제,무역역조 등 서로 이해가 상충하는 분야가 광범위하다.지역적 차원에서 한·일 양국이 상호 협력해야 할 첫번째 문제는 경제와 관련된 해상교통로의 보호다.냉전종식이후 아·태지역의 해로를 위협하는 대표적 요소들은 첫째 해양영토분쟁에 의한 무력충돌 및 전쟁에 따른 항로의 봉쇄,둘째 연안국의 해양관할권 확대 또는 국내적 사정에 따른 공해대의 잠식 및 항해자유의 제한,셋째 유류수출 및 대형해양오염 사고에 의한 통행제한 등을 들 수 있다.이에따라 말라카해협·남중국해를 지나는 동남아·태평양해로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한·일은 이 위협요인들에 대해 협력적 자세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범세계적 차원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야할 문제 중 하나는 핵·화학무기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다.특히 핵무기개발을 추진한 바 있으며 생물 및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들 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한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핵무기의 경우 양국이 협력해야 할 분야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국제원자력기구(IAEA)내에서의 협력이다.한편 화학무기의 경우 양국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보편성 증대와 CWC의 이행을 담당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상호협력할 수 있다.생물무기분야의 경우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의 검증의정서 채택을 포함한 협약의 강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공동으로 참가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적·범세계적 수준에서의 한일협력은 앞으로 한반도통일에 요구되는 한·미·일 협력체제 구축의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이와관련,한국은 동북아질서 개편의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보다는 정치·경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지리적 인접국을 협력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제3자의 충고를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ASEM 통한 아·구주 협력/아·구주 구체적 이익으로 연대를 ASEM은 정치,문화,경제 등 넓은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여기서는 ASEM의 경제적 의제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ASEM은 김치처럼,숙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특히 ASEM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사항은 지난해 방콕 첫회의의 수사들을 현실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27,28일에는 일본에서 경제장관회의가 열려 경제관계자들은 양 대륙간의 진전을 기대한다.이 회의의 의제는 ▲아시아와 유럽간 일반적 경제관계 ▲세계무역기구 관련 주제 ▲무역과 투자 ▲사회간접자본 개발 ▲지속적 경제성장 등이다.이들 의제는 앞으로 무역촉진조치와 투자증진계획 등을 포함,실질적 이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와 함께 ASEM은 고위급에서 정치적 연대를 가져야 한다.ASEM이 그동안 이룩한 성공은 대부분 지난해 첫회의때부터 쌓은 정치적 자극에 의한 것이다.정치연대성만으로는 ASEM의 미래성공을 보장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정상간의 만남을 이용해 ASEM의 이상을 소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다음세기까지 ASEM의 전략적 발달을 입안하는데 도움이 되는 ‘비전그룹’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단계가 된다. ASEM은 또 비공식적이어야 한다.국제회의의 의식적 성격을 누그러뜨리면서 대신에 재킷은 벗어던지고 넥타이는 푸는 등 실제적 환경을 조성해야한다.이런 상황에서 여러 아이디어들이 표현되고 자유토론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처럼 ASEM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ASEM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ASEM의 경제적 부문은 구체적 이익의 제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이는 모든 ASEM 26개국가들이 이해관계를 갖는 임무인 것이다.특히 영국과 한국이 주목해야할 임무다.내년 런던정상회의와 2000년 서울회의개최간의 2년은 ASEM의 미래성공에 결정적인 기간이기 때문이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 미,핵실험 포기로 NPT연장 유도/클린턴,왜 핵실험 무기 유예했나

    ◎북한핵 해결에 돌파구마련 기대/“3세계권 핵개발 억제” 명분 획득 미국이 사실상 핵실험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탈냉전시대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클린턴미대통령은 30일 미국의 핵실험중단여부에 대한 결심을 이미 내렸다고 밝히고 수일내에 이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물론 클린턴대통령이 결심의 내용을 일체 말하지 않고 있지만 백악관주변에서는 현재 시한이 박두한 핵실험유예기간을 무기한 연장하는 것이 될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미국이 핵실험을 일시 중단한 것은 의회가 입법을 통해 작년 10월부터 핵실험을 금년 7월1일까지 유예키로 했기 때문이다.이 핵실험유예법안에 의하면 대통령은 오는 96년 9월30일까지는 전면적인 핵실험중단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의회는 9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하면서 유예기간이후 96년말까지 15차례의 핵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있다. 그동안 미국내에서는 국방부를 중심으로한 핵실험재개주장과 의회를 거점으로 한 핵실험의 무한정 유예론이 대논쟁을 벌여왔다. 핵실험재개론은 미국의 공중및 해상발사 크루즈미사일에 의해 운반되는 핵탄두에 대한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핵실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핵실험반대론은 만약 미국이 핵실험을 재개한다면 기존 핵보유국가들의 핵실험재개와 제3세계국가들의 핵개발을 막을 수 없게 되고 오는 95년으로 시효가 끝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경신에 대한 미국의 국제적 지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지적하고있다.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러시아는 지난해이래로 계속 핵실험을 유예하고 있고 영국은 미국영토에서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핵실험을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중국도 작년 9월부터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은 미국이 핵실험유예를 걷어올리면 자신은 러시아국내 핵실험의 재개를 주장하는 군부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핵실험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오는 7일 개막될 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나 별도의 자리를 통해 조만간 밝힐 「핵실험의 무한유예」는 대량살상무기 등의 범세계적 비확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북한핵문제의 해결에도 중대한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NPT유효기간의 연장이나 여타 핵국가들의 핵확산금지체제가입 등을 촉진함으로써 탈냉전시대의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예를 들어 구소련연방의 우크라이나 등을 비롯,인도나 파키스탄의 NPT가입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스스로 핵실험을 포기하는 것은 북한을 포함하여 이라크,이란,시리아 등 제3세계국가들의 핵개발욕구를 억제시키는 실직적이고도 도덕적인 지렛대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오는 7월14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2단계 미·북한간 고위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NPT체제 속에서 핵사찰을 확실히 받을 것을 설득하는데 있어 과거보다는 훨씬 체중을 실을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 남북 화해의 새 장이 열리다/기본합의서 타결의 의미(사설)

    냉전의 먹구름에 덮여있던 한반도에 평화정착을 위한 화사한 햇빛이 비쳐 들었다.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한편 핵문제에도 「한반도에 핵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함으로써 남북간에 대립과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공존,더 나아가 통일로 가는 대장정의 이정표를 확고하게 세웠다.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연방이 와해되는가 하면 유럽합중국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 유일한 분단지역인 한반도에 평화공존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구축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긴요한 일일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염원을 풀어줄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남북분단 이후 46년만에,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된지 15개월만에 「통일장전」으로 기록될만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남북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기필코 이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의지와결단이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이에따라 서로가 기존의 주장을 대폭 양보한 데서 얻어진 값진 결실이다. 합의서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화해부문에서 판문점상주연락사무소 설치,상대방체제 존중,상호내정 불간섭,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및 전복행위금지 ▲불가침부문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력불사용 ▲교류협력부문에서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육·해·공통로개설,경제교류나 협력실시,신문·TV·잡지등의 상호교류등으로 되어 있다. 이번 서울회담에서 최대의 쟁점이었던 휴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군사적신뢰구축과 불가침보장장치에서 남북양측은 화해와 호양의 정신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는데 이러한 결실은 통일을 향한 힘찬 거보로 높이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남측으로서는 북한의 핵개발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부수적인 문제들을 양보한 것이고,북측으로서는 핵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점과 파탄상태에 이른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일수교와 대미관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때문에 종전의 주장에서 크게후퇴한 것이다.어쨌든 남북양측이 「우리끼리 우리문제를 해결하자」는 민족적인 염원을 바탕으로 남북간에 얽혀있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북간에는 71년에 발표된 「7·4공동성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조선로동당과 중앙정보부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였을뿐 아니라 실천의지의 부족으로 북한의 정치선전용으로만 이용되어 왔을 뿐 남북관계개선에는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했었다.그러나 이번 서울회담의 합의서 채택은 남북정부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공식합의라는 점과 구체적·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해결의 시작이다.앞으로 계속 토의될 문제들은 하나같이 남북한간 입장차이와 이견을 내포한 것들이다.핵문제가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서울회담의 양측 기조연설에서도 명백해졌듯이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핵」해결은 남북한문제 접근 해결에 있어 그야말로 핵심적인 과제가 되고있다.특히이와 관련해서 우리측이 내놓은 「비핵화공동선언」(안)은 그동안 북측이 시종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선언 내용을 사실상 거의 포용했다는 점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 더이상 핵개발을 고집하거나 핵사찰을 거부할 명분도 이유도 잃게 된 것이다.아울러 이번 양측이 합의한대로 한반도 비핵과 관련,본회담과 별도로 마련되는 협상기구를 통해 비핵실험노력이 경주돼야 하리라고 본다. 이번 합의서 채택과정에서의 남북쌍방 노력과 성의에 비추어 앞으로 남북대화발전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문제는 합의서라는 그릇에 가득 채울실천을 위한 세부사항을 마련하는 일이다.그러나 대치되는 부분과 미진한 부분은 시간을 갖고 합의할 마음만 갖는다면 반드시 타결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것 또한 이번 회담의 성과이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는 분위기를 축적해 나간다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길은 틀림없이 열릴 것으로 믿는다.그것이 바로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