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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44돌… 학도병 참전 용사들의 회고 특별대담

    6·25때 홍안의 미소년으로 전장을 누볐던 학도병들은 몇차례 강산이 바뀌는 세월속에서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의 옛전사로 변했다.하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살아있다.포연의 전장에서 불퇴전의 용기로 살아남은 유성덕 서울대광고교장(63)과 정년탁대한학도의용군회 총본부 전회장(63)의 대담을 통해 그날을 되새기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자세등을 되짚어본다. ◎“펜대신 총으로…” 5만여명 구국전선에/조국사수 일념에 사격훈련만 받고 전투/곳곳서 맹활약… 포항선 71명 장렬한 산화/“자유만끽” 요즘 젊은이들,기성세대의 체험 곱씹어 보아야 ▲유교장=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6·25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또 한시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게 바로 6·25지요.중학6년(18세)때 학도병으로 자원해 나갔다가 온 몸을 크게 다쳐(왼쪽 손가락 4개와 오른 손가락 2개,양쪽 발가락절단,발뒤꿈치 골수염) 지금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하지만 해방이후 북쪽의공산당이 싫어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학도의용병으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6·25발발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할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남쪽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지요.북한군에 밀려 대구와 부산만 겨우 남아 있었으니까요.피란지인 부산에서 중학교 영어 실력이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50년 8월 초쯤으로 기억됩니다.어린 나이였지만 「펜대신 총을 들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자」고 모두들 나서는 분위기였습니다.전투에 나가 더이상의 북한의 공세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미군부대에 보고도 않고 곧바로 의용병모집 장소로 달려갔습니다.함께 지원한 2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경주에서 3일동안 사격훈련을 받고 안강전투에 참가했지요.갑자기 모집한 학도병이고 보니 복장도 교복차림에 군복,미군작업복등 각양각색이었어요.우리가 배속된 부대가 김석원준장(작고)이 이끄는 수도사단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당시 학도병들은 일정지역에 모아 부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는대로 그때 그때 전투지역으로 보냈지요.그만큼 병력은 부족하고 전황은 다급했다는 이야기지요.정회장도 학도병에 자원할 당시 중학생이셨지요. ▲정전회장=저는 중3때 광주지역에서 학도병으로 참가했어요.사실 호남지역에는 6·25이전에 이미 빨치산등 좌익세력이 적지않았어요.학교에도 좌익에 물든 사람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좌우로 갈라져 있었어요.어린 눈에 좌익분자들이 사람을 백주에 죽이는것을 보고 까무러쳤습니다.좌익학생들의 연대파업등을 수없이 보았습니다.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공산당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몰려나갔지요.4일동안 간단한 사격훈련등을 받고 12사단에서 배속돼 주로 태백산과 노령산 일대에서 전투를 했었죠.훈련받을 때 총이 모자라 인민군의 딱총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릴때 공산당의 잔학상을 보아왔던 때문인지 사람이 죽는다는걸 별로 무섭게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아요.안강전투는 대단했다면서요. ▲유교장=지금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습니다.우리로서는 더이상 밀리면 부산·대구까지 내주어야 하니까 몸으로라도 끝까지 사수해야하는 마지노선이었어요.죽거나 부상당해 후송되는 학생들 말고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당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학도의용병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요.학도병들의 용기는 현역병을 훨씬 능가했습니다.살아남겠다는 생각없이 그야말로 물불을 가라지 않고 싸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겁니다.지금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싶어요.형산강을 피로 물들이고 일주일여 사투를 벌이니까 북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더군요.이후 포항탈환작전에 참가,시가전을 벌였고 고성,함흥등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포항 시가전에 참가했을때 어느 중학교에는 인민군과 우리 군과 학도병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습니다.결국 그들을 포항에서 물리친 것이지요.북진이 계속되고 김일성이 다급해지니까 중공군에 도움을 요청,이른바 중공군의인해전술이 시작돼 우리는 다시 남으로 밀리게 됐지요. ▲정전회장=교장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당시 학생들의 전의는 대단했습니다.군대 안가려고 일부러 손가락까지 자르던 일부 징집대상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끓는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마디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지요.죽음을 초월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런일도 있었어요.태백산자락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어요.어느 지점을 며칠만에 지나는데 태극기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반듯이 누운 한 젊은이를 발견했어요.죽은 줄알고 다다가 보니 목숨이 붙어있더군요.전투중에 실종된 학도병이었습니다.이 친구는 부상을 당해 낙오가 되고 기력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게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인민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태극기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린 것이지요. ▲유교장=당시 학병들의 참전은 아군의 전투력증강에 상당한 보탬이 된것으로 압니다.정회장은학병모임일도 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전회장=대한 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여러해 맡았습니다.학도의용군은 50년 6월 전쟁발발때부터 51년 4월 이승만대통령이 복교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로 중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됐었습니다.50년 6월28일에 피란가던 서울시내 각대학 학도호국단 간부 2백여명이 수원에서 합동비상학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이후 각 군소재지 학교에서까지 이들이 결성돼 눈부신 활약을 벌였어요.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말입니다.5만여명 정도가 참전했고 7천여명이 전사했습니다.당시 정규군병력이 15만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한 것이지요.그중에서도 중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1·4후퇴때는 북한에서 2천여명의 학생들이 넘어와 참전했었고 부산지역의 학생 7백여명은 유엔군에 편입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뒤 다시 돌아와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죠.가장 비참했던 전투는 포항전투로 1기로 참전했던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 전원이 이름없는 고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역사적으로 학생들의 애국심이 이처럼 높았던 나라는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외에는 없다고 외국전문가들도 이야기합디다. ▲유교장=학병들의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내려온다고 생각됩니다. ▲정전회장=그렇습니다.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6·25당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금도 당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당시 장성들을 만나도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학생운동의 맥은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운동과 해방직후 반탁반공운동,4·19의거,그리고 6·25때의 바로 이 학도의용군으로 이어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역사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배들의 정신을 너무 모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세계적인 변화속에서 반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요. ▲유교장=독사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가 무서운 줄 알듯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전쟁의 고통과 공포를 알 수 있지요.자유역시 마찬가집니다.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은 민주화 민주화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진정 자유가 박탈된 상태,전쟁이 주는 공포는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기성세대의 뼈아픈 체험을 한번쯤은 곱씹어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기성세대를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가슴에 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들의 포부를 펴나가라는 것이지요.일제와 6·25를 겪으며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부인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열어나가는 좌표로 인식돼야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의 모든 일에대해 지나치게 간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치는 정치인에게 국방은 군에 맡기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또 국민역시 각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않다고 봅니다.지난 현충일 연휴때 나들이 인파로 주요도로가 모두 만원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모두 잊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회장=지금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에 맞춰 겉모습만을 바꾼 것뿐입니다.그런데도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진 행동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북한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학생운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시대에 맞게 어른들과 선배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줄 알아야죠.통일에 대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6·25 그때와 오늘의 남북한 경제·군사력 비교

    ◎남 GNP 북의 16배… 수출은 80배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4년.전차와 야포등 고성능 화력을 앞세우고 38선을 돌파,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앞에 우리국군은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다.가까스로 낙동강교두보를 형성한뒤 유엔군과 함께 북진을 계속,잃었던 땅을 회복하고 휴전을 맞았지만 44년이 흐른 지금도 통한의 6월25일을 잊을 수 없다.50년6월과 94년6월.44년 전후 남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국방부와 한국은행,민족통일연구원등의 자문을 중심으로 비교해본다. ◎군사력/현 한국군 독자 군사력 북의 71% 수준/해군함정수 남 251척·북 460척/1994년/군인수 남 65만·북 1백3만명/1950년/북한,병력 2배·장비 3배 앞서 6·25당시를 보면 북한이 남한에 비해 병력은 약 2배,장비는 약 3배가량 많아 전력이 훨씬 강했다. 개전초기 북한의 총병력수는 19만8천여명으로 이중 18만명이 육군 10개 사단으로 편성돼 있었다. 장비도 박격포 1천7백여문을 비롯,남한에는 없던 전차 54대,자주포 1백76문,고사포 36문을 갖고 있어 각종 화력이 모두 3천3백37대에 이르렀다. 북한 보유 포들은 대부분 1백20㎜이상의 대구경이었다. 반면 남한은 총병력 10만5천여명으로 육군이 8개 사단 9만4천여명이었으며 장비는 장갑차 27대를 비롯,박격포·곡사포·대전차포등 3종의 포 1천1백91문이 전부였다.이 포들은 그나마 최대구경이 1백5㎜로 북한의 화력에 비해 크게 뒤졌다. 당시 북한군은 양적 측면뿐아니라 군사훈련등 질에서도 남한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북한군은 3명중 1명꼴로 중국내전등에서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육군은 8개 사단중 7개 사단이 사단급 연습을 끝마쳐 놓고 있어 전투력이 최고수준이었다. 장비와 보급품도 당시로서는 최신인 47∼50년식 소련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남한은 고급장교중 문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등 대부분 장교들이 전투경험이 없었다. 육군의 경우 공비토벌작전을 펼치느라 소규모로 흩어져 있어 겨우 4개 사단만이 대대급 훈련을 끝냈으며 나머지 4개 사단은 중대훈련이 고작이었다. 장비등도 미군이 2차대전중 사용하던 중고품이나 일본제 소총등이 주종이었으며 보급품 비축량은2일분에 불과했다. 주한미군도 치안유지에 적절한 수준으로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남한과 미국측은 이처럼 현저하게 열세인 전력으로 전쟁초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20여년쯤 70년대초반.남한은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고속경제성장가도를 달리면서 비로소 군사력건설을 위한 율곡사업을 시작,지난 20여년 약 21조원을 투자했으나 주한미군을 제외한 한국군 독자군사능력은 북한의 71%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94년도 북한의 병력은 1백3만명으로 정규사단이 53개,후방침투등 특수전을 위한 여단이 99개등이며 전차는 3천8백대,1백70㎜자주포등 야포는 무려 1만3백문에 이르고 있다. 해군도 전투함이 4백34척이고 잠수함도 26척이나 된다.공군은 전술항공기가 8백50대로 지원기·헬기를 포함하면 1천3백30대에 이른다. 이같은 북한의 군사능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5.2배가 늘어났으며 전차는 15.7배,각종 포는 3.4배,함정은 25.7배,항공기는 7.7배 늘어난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병력이 65만5천명으로 육군사단은 50개,여단이 21개이며 전차는 1천8백대,장갑차 1천9백대,야포 4천5백문이다. 함정은 전투함 1백90척을 비롯해 잠수함 1척등 2백51척이며 항공기는 전술기 5백90대와 헬기 6백대등 1천3백10대다. 한국의 군사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6·2배,야포는 3.8배,항공기는 29.8배가 늘어난 것으로 특히 공군전력이 강화됐다. 이처럼 남북한의 군사력이 엄청나게 확대됨에 따라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는 거의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력/무역량 남 1천6백억불로 북의 63배/철도길이 남 1.3배… 44년간 같아/1955년/북한 발전시설용량 남의 8배/1993년/자동차생산량 남이 2백5배 ▷국민총생산(GNP)◁ 93년 한국의 GNP는 3천2백87억달러로 북한(2백5억달러)보다 16배에 이른다.53년에는 남한 13억5천달러,북한 4억4천만달러로 3배의 차이가 났다가 60년대 말까지 그 격차가 좁혀졌다.그러나 남한에서 본격적인 경제발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70년 2배,80년 4.5배,90년 10배 등 격차는 더 벌어졌다.이제는 북한이 도저히 따라올수 없게 된 것이다. 1인당 GNP는 더 큰 변화를 보였다.74년을 분기점으로 남저북고가 남고북저로 역전됐다.53년에는 남한이 다소 앞섰지만 그뒤부터는 역전돼 60년에는 남한이 94달러로 북한의 1백37달러의 70% 수준이었다.그러나 74년 남한이 5백35달러로 북한(4백61달러)을 앞지르기 시작해 93년에는 남한 7천4백66달러,북한 9백4달러로 8배가 넘었다. ▷대외무역◁ 60년대 중반까지 수출·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남북한이 비슷했다.그러나 남한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지난 73년 5배의 차이에서 20년이 지난 93년에는 1천6백60억달러 대 26억4천만달러로 남한이 북한의 63배나 됐다.수출은 80.6배,수입은 51.7배이다. ▷광공업◁ 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중공업 분야에서 우위를 지켰다.전쟁 직후 남한이 경공업 중심의 성장정책을 편 반면 북한은 군수산업과 연관된 중공업을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지난 55년 북한의 발전시설 용량은 80만8천㎾로 남한(10만㎾)의 8배였다.총 발전량도 남한의 4배 가까이 됐다.60년의 제강능력도 66만t 대 5만t으로 북한이 앞섰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남한이 중화학 부문에 투자를 늘리면서 상황은 역전됐다.우선 지난 해 남한의 발전시설용량은 2천7백65만㎾로 북한(7백14만㎾)의 4배이다.총 발전량도 남한이 북한의 6배나 된다.제강능력은 남한이 3천3백25만t으로 북한의 1백86만t을 18배나 앞질렀다. 93년 남한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백5만대인 반면 북한은 1만대 수준에 그쳤다.선박 건조량도 남한이 북한의 66배나 됐다.화학비료 생산량은 60년대 중반까지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남한이 4백11만t으로 북한보다 3배가 많다.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철광석 생산량은 북한이 4백76만t으로 남한의 21만t 보다 여전히 많다. ▷식량생산◁ 쌀 생산량은 다른 부문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지난 65년 남한이 3백50만t,북한 1백25만t으로 2.8배의 격차를 보였다.지난 해에는 4백75만t 대 1백31만t으로 남한이 3.6배 많았다. 전체 경지면적은 65년에는 남한이 2백55만6천㏊로 북한(1백99만㏊)보다 넓었지만 90년에는 북한이 2백14만1천㏊로남한(2백1만9천㏊)을 앞질렀다. ▷수송수단◁ 도로 총 연장은 남한이 55년 2만6천6백㎞에서 93년 6만1천2백95㎞로 2배 이상 늘었다.북한은 1만7천6백82㎞에서 2만3천㎞로 늘었다.철도 총 연장은 50년대부터 줄곧 남한이 북한보다 1.3배 정도가 많다.
  • “나는 한국전에 이렇게 참전했다”/중국군의 증언

    ◎중국군 참전병사 2인 인터뷰 중국은 미국이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만주까지 넘봤다는 당시의 주장을 아직까지도 공식 입장으로 고수하고 있다.대부분의 일반 주민들도 그대로 믿고 있다.특파원이 만난 당시 참전 병사들도 그랬다. 이같이 한국전에 관한 정확한 재평가가 없어선지 고위 지휘관 출신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그래서 어렵사리 사병과 초급 지휘자 몇 사람의 체험만을 들을 수 있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가식없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우리 땅에 왔던 「중공군」들의 40년후 회고담을 들으며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었다. ◎“동홍각/“미서 중국 침략” 선전 믿고 압록강 도하/51년3월 터키군과 교전… 4명만 살아 『미국은 왜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남북조선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괴로움을 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50년 11월 중순 중국인민지원군의 한 분대장으로 압록강을 넘었던 동홍각씨(66·가명)는 아직도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그는 미국이 49년에 나라를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을 넘어뜨리기 위해 조선북쪽을 삼키고 압록강까지 와서 중국땅 단동에까지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으며,이는 일본이 조선반도를 거쳐 만주를 빼앗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수법이라고까지 주장했다.당시 중국에선 병사들에게 참전명분을 이렇게 선전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사실을 언제 처음 알았었나. 『1950년 10월초로 기억된다.당시 미군이 인천에 상륙해서 조선이 불바다가 되었다는 전쟁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었다』 ­이 전쟁은 6·25전쟁이라고도 한다.이는 6월25일에 일어난 때문인데 그로부터 4개월도 더 지난뒤에야 개전소식을 알았단 말인가. 『그렇다.우리는 군대에서 훈련 받느라 6월에 전쟁이 터졌다는 얘기는 못들었다.아무도 그런 얘기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그뒤 2∼3개월만에 낙동강이남을 제외한 한국 땅 대부분을 점령했다.그래서 미군을 비롯한 16개국 유엔군이 참전키로 했다.미군이 먼저 침략했다면 유엔깃발아래 16개국가의 유엔군이 어떻게 파견될수 있었겠는가. 『처음 듣는 얘기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격전지는. 『51년3월에 우리 중국군 30명은 한 고지를 지키고 있었는데 터키군 1백80여명이 한밤중에 산위로 진격해 올라왔다.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육박전까지 벌이다가 도망치듯 하산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고지에는 터키군도 보이지 않아 그들도 밤중에 퇴각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이 전투에서 받은 칼자국 상처가 아직도 내몸 여러곳에 남아있는데 당시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쪽에선 단 4명뿐이었다』 ­전쟁중 고통스러웠던 점은. 『우리의 군장비나 무기는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엔군에 비해 크게 낙후됐었다.그렇다고 북조선에서 물자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식량이나 의류등 모든것을 중국에서 가져 갔다.우리가 신세진 것은 먹는 물뿐이었다.이같은 장비의 낙후외에도 제공권을 완전 장악한 미군의 끈질긴 공습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8노군때부터 군대생활을 시작해 국공내전과 이른바 6·25때의 항미원조참전을 거쳐 70년대 중반까지 현역생활을 했던 그는 『전쟁으로 손해보는 것은 인민들 뿐이다.인민들만 온갖 고통을 받는다』고 말하고 『전쟁중 부모형제를 잃고 넋이 나간채 울부짖던 고아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리속에 생생히 남아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강/소속부대원 1천명중 2백여명 전사/보급물자 모자라 미군이 버린 약품써 『중국군 의무부대에는 당시 약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미군들이 버리고 간 의약품이 중국군 부상병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우리는 심지어 미군시신을 샅샅이 뒤져서 약품을 챙겨 쓰기도 했다』 한국전 당시 의무병 반장으로 참전했던 왕강씨(64)의 회고다.그는 당시 중국군은 물자가 너무 부족했지만 미군이나 기타 유엔군들은 보급물자가 풍족해서 부럽기 한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래서 당시 중국군인들이 전투때마다 꼭 승리하려고 기를 썼던 이유중에는 승리한후 적군이 소지했던 맛있는 음식이나 약품등을 빼앗아 쓸수 있다는 희망도 꼽지 않을수없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군 의무부대에서는 어떤 약들을 보유하고 있었나. 『중국에서 제조한 서양의약품들로 진통제·지혈제·소염제가루에 붕대정도를 갖고 있었던게 전부였다.당시 한약은 가져가지 않았었다』 ­의무병이어서 당신은 비교적 안전하게 지냈겠다. 『그런 것도 아니다.내 몸에도 세군데나 상처가 남아있다.특히 내 오른쪽 가슴에는 탄환이 완전히 뚫고 나갔었다.천만다행으로 당시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좋은 약을 써서 탄환 상처를 깨끗이 완치시킬수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한번 사용했던 붕대를 다시 쓰기 위해 냇가에서 빨래하고 있을 때 총탄을 맞았다고 했다.놀라운 사실은 그 당시는 총소리도 못듣고 아픈줄도 모르고 막사로 돌아왔는데 동료들이 등뒤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고 말해줘서야 총맞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당시 가장 고통스럽던 기억은 무엇인가. 『먹을 게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우리는 밥이나 고기 채소류는 먹어보지도 못했다.강냉이를 먹거나 녹두 콩등으로 만든 미숫가루로 연명하는 게 고작이었다.워낙 영양가 없는 것들만 조금씩 먹다보니 야맹증에 걸려서 제대후에도 오랫동안 고생했다』 왕씨는 50년10월25일 66군 588단 위생반장으로 압록강을 건넌후 이듬해인 51년4월까지 불과 반년남짓 참전하고는 귀국했다.그후엔 중상을 입고 중국으로 후송돼온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바삐 보냈다는 것이다. ­당신소속 부대는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가. 『588단은 1천여명에 달했다.그중 2백여명이 전사했다.이들은 마대자루에 넣어 그대로 땅에 묻어버렸다.부상병도 수없이 많았는데 주로 민간주택에서 20∼30명씩 모아 치료를 하다가 어떤때는 미군의 공습으로 혼쭐이 나기도 하고 전투가 조용해지면 좀더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후송하기도 했다』 ­요즘은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전쟁에서는 침략자든 피침략자든 어느쪽을 막론하고 피해를 보는 것은 인민이라는 생각이다.그래서 다시는 참전하고 싶지 않다.우리 자손들에게도 전쟁이 일어나면 불참하라고 권유하겠다』
  • 미,한반도유사시 세부계획마련/항모증파등 즉각 조치/태평양함대사령관

    【도쿄 연합】 로버트 켈리 미태평양함대사령관은 21일 『북한의핵의혹과 관련한 긴장은 약간 완화됐으나 유사시에 대비해 주한미군의 증강준비는 갖춰져 있으며 아주 세밀한 부분의 긴급대응계획까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호놀룰루발로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켈리사령관은 이날 하와이 진주만의 미태평양함대사령부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미국은 북한정세의 추이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부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도통신은 켈리사령관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현재 하와이해상의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림팩94)에 참가중인 항모 인디펜던스가 오는 7월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횡수하)기지에 돌아오는 것과 함께 항모 키티호크를 한국주변에 추가파견할 계획으로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 「남북정상회담·10만으로 감군」 제의/북 언론등선 일체 언급안해

    ◎국방부,동향 분석 국방부는 21일 최근 북한의 동향과 관련,『핵문제로 촉발된 국제 제재조치를 모면하기 위해 유화전략을 계속 구사하는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IAEA)탈퇴의 정당성 선전과 김정일 위상제고를 위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북한군은 여전히 기습공격이 가능한 배치상태 아래에서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으나 도발과 직접 관련된 특이동향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김일성은 카터와 미CNN방송을 통해 한국측에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남북한병력을 각각 10만명수준으로 감축하면서 주한미군병력도 같은 비율로 줄이자』고 제의했으나 북한내부의 책임있는 인사나 대내방송 및 신문등은 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따라서 북한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제의 이후 종전과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상군은 일부 포부대훈련과 부대전투태세 판정검열활동을 펼치는 것외에 다른 특이동향이 없으며 해군함정과 공군전술기도 일상적인 경비활동이나 기본훈련수준에 머물고있다는 분석이다.
  • 남북대화 채널 복원… 핵주도권 잡기

    ◎예비접촉 선제의 배경/대표 격상하고 절차 줄여 「장애」 제거/미­북 3단계 회담전 핵동결 진의 파악기회로 정부가 20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먼저 제의한 것은 북한핵문제의 돌파구를 열어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이번의 대북 선제의에는 남북을 오간 카터 전미대통령의 중재로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북한주석간 정상회담 개최가 원칙적으로 합의된 만큼 그 불씨가 사그러들기 전에 구체화하려는 의지도 실려있다. 이는 북측의 제의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측이 주도권을 잡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실익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정부로선 남북고위급회담과 특사교환 실무접촉이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 체널이 복원되는 것이 긴장완화나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모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또 설령 최악의 경우 북측이 다시 태도를 바꿔 정상회담이나 이를 위한 예비접촉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미의 현안인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속셈을 파악할 수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관계개선 전기삼아 이날 정부의 제의는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예비회담을 ▲오는 28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갖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측이 당초 예상보다 발빠르게 예비접촉 날짜를 앞당겨 제안한 것은 미북 3단계회담 성사 이전에 핵개발과 관련한 북측의 의도를 파악,대처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이를테면 만일 북측이 지난번 특사교환 때처럼 핵문제가 아니라 김주석이 직접 작성했다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따위를 의제로 들고 나오면 「정상이 무조건 만나자」는 그의 태도에 허구성이 개재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또 이 경우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간접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사교환이 아닌 부총리급 예비회담을 제안한 데서도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측의 적극성이 엿보인다.지난해 추진하던 실무접촉­특사교환­정상회담이라는 3단계 추진방식보다 한단계 생략된 2단계 추진방식인 것이다.남북한이 지난 80년대 이후 모두 12차례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절차 논의 과정에서 모두 무산된 점을 감안,예비접촉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대표의 격을 높인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정부는 정상회담의 시기·장소문제에 대해서는 융통성있게 임하고 의제 문제에도 가능한한 신축성있게 임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이는 이홍구통일부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과거와 같이 절차문제로 시간을 끌거나 장애요인을 만들지 않고 가급적 시기와 장소 논의에 집중하겠다』고 언급한 데서도 감지된다. ○시기·장소 집중 논의 예비회담 수석대표를 부총리급으로 제안한 만큼 우리측 대표로는 이통일부총리를 일단 영순위로 상정할 수 있다.이부총리는 이와 관련,『나를 지칭한 것 같으나 기다려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이부총리가 안될 경우는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비중있는 인사를 대표로 내보내느냐 하는 것도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진지성을 검증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측 대표로는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과 노동당비서들인 김용순·황장엽 등이 점쳐지고 있다.하지만 현재로선 추측일 뿐이다. ◎북은 어떤반응 보일까/예비접촉 태도 보면 속셈 드러날듯/엉뚱한 조건 내세워 「샅바싸움」으로 끝낼지도 우리측이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 등 절차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함으로써 북측의 호응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문제는 카터 전미대통령이라는 비중있는 중재자를 통해 김일성주석이 먼제 제기하고 이를 김영삼대통령이 이의없이 수락하는 형식을 밟았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사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즉 종전처럼 어느 한쪽에서 기선을 잡는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제안했다가 실무접촉 과정에서 전제조건 등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로 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된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과연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있다.과거 수많은 남북간의 합의가 북한에 의해 휴지조각이 되는 등 아직도 상호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85년 가을 남북한은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까지 합의했으나 끝내 무산된 전례도 있다.장세동 당시 안기부장과 허답 북한노동당비서(91년 사망)가 남북의 밀사로 오가며 성사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와 올림픽공동개최 보장 등이 걸림돌로 작용해 백지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문제도 예비접촉 과정에서 언제든지 뒤틀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다시 말해 북한이 지난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특사교환을 먼저 제안해 놓고도 터무니없는 전제조건들을 내세워 성사를 불가능하게 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북측은 올 3월19일까지 계속된 특사교환을 위한 8차례의 실무접촉 과정에서 ▲핵문제와 관련한 국제공조 포기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중지▲김대통령의 북한핵 관련 발언 사과 등 매번 엉뚱한 전제조건을 들고 나온 바 있다. 또 김주석의 이번 제의 자체가 핵문제로 인한 국제제재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눈가림용일지도모른다는 우려도 아직은 해소되고 있지 않고 있다.북한이 핵카드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남북대화보다는 미국과의 직접협상에 매달려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미·북 3단계회담을 위한 막후접촉 과정에서 북한의 태도가 표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설령 북측이 예비회담에 응해온다 하더라도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과 이에 반드시 수반되는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한 4개항의 요구 등 우리측이 수용할 수 없는 사항을 의제로 올릴 경우 지루한 「샅바싸움」만 하다 끝날 공산도 있다. 북한이 우리측이 정상회담을 수락한 이후에도 김대통령과 문민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을 그치지 않는 점도 정상회담 성사에는 불길한 조짐이다. 때문에 북측이 스스로 제기한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응해올 것인지는 우리의 예비접촉 제의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또 그 때까지 김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전면 중단할 것인지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북 도발징후 없다/국방부 브리핑

    국방부는 17일 최근 북한군동향에 관한 브리핑을 통해 『현재 북한의 육군및 해군활동은 평상시수준을 넘지 않고 있으나 공군이 약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공군활동도 기지에서의 조종술훈련등이 고작이며 위협적인 전술훈련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항모 키티호크호/미,새달 동해배치/일 통신보도

    【도쿄 연합】 북한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7월초에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동해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일 교도통신이 미해군소식통을 인용해 16일 하와이발로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현재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림팩94)에 참가하고 있는 항공모함 인디펜덴스도 7월초 모항인 요코스카항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여 항공모함 두척이 배치되는 셈으로 이는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라고 전했다. 미해군소식통은 키티호크가 이미 작전준비를 거의 마치고 이달말에 미 서해안기지를 출항해 서태평양에 진입하며 일본 혼슈 앞바다에서 일 해상자위대와 소규모합동훈련을 실시한뒤 나가사키현 사세보항에 일시 기항한뒤 부산항에 머물 예정이라고 전했다. 키티호크는 당초부터 7월 동해에 배치될 계획이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는데 약 한달가량 한국과 일본주변에서 작전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 한반도 위기설/미언론·보수세력이 과장

    ◎WP지,레이니 주한대사 지적 보도/기존 위기대응책 새전략인양 기사화/민방위훈련도 전쟁대비책으로 소개 국제사회가 북한핵과 관련한 한반도 상황에 전례없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일부 언론과 보수세력이 위기 국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실상을 오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미국의 주요언론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워싱턴 포스트지는 15일 서울발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임스 울시 미중앙정보국장이 북한 핵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고 있다. 미정부와 의회 안보관계자들은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방부가 기본 틀을 마련해 놓고 있는 위기대책 방안을 마치 이번 사태로 인해 급히 만들어진 것처럼 일부 미국 언론이 전함으로써 긴장감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한 예로 오하이오에서 발간되는 유력지 플레인 딜러지 14일자가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을 소개하면서 펜타곤이 미전투력의 근 절반을 차지하는 주방위군과 예비군에 즉각 동원령을 내릴 태세인 것처럼 보도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20일자 최신호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란 제목을 달아 한반도 사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면서 한국전 재발시 벌어질 상황을 지도를 통해 상세히 소개한 점도 거론됐다. 이들 관계자는 이 가운데 CNN 보도가 특히 요즘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의 대한반도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게 현실이라면서 문제는 이 매체가 지나치게 「갈등지향적」으로 사태를 전함으로써 실상을 굴절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CNN은 최근 며칠사이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위기」란 제목의 특집을 시간 단위로 계속 내보내면서 한국의 민방위 훈련을 본격적인 전쟁 대비책인 것처럼 거듭 소개하는가 하면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재기가 마치 전국적인 현상인양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미국 인사들은 CNN이 과거 걸프전 보도로 확고한 기반을 다졌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핵과 여기서 촉발된 한반도 사태를 시청률확보를 위한 계기로 삼기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10일 CNN의 최근 보도 성향을 분석하면서 걸프전과 같은 「화끈한 뉴스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생방송을 강화하고 국제적 관심사에 대한 기획 취재를 활성화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CNN의 이같은 노력은 6월 현재 주요 시간대 시청률이 이례적으로 작년 대비 26%나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 것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핵등 핫 이슈에 대한 CNN의 보도 태도는 얼마전 미의회 청문회에서도 거론돼 터너가 직접 증언에 나서기까지 했다.터너는 당시 미의원들과 종일 방송 방식을 취하고 있는 CNN의 보도가 미국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미관계자들은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보다 많은 이해와 관심을 갖는게 한국측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미언론 일각과 보수 진영의강경한 목소리로부터 보다 초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평양의 카터/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미국의 뉴스전문 케이블TV인 CNN방송은 15일 온종일 헤드라인 뉴스로 북한핵관련기사를 방영했다.미국이 이날 제시한 대북제재결의안 초안내용에서부터 한국의 민방위훈련장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입체적 보도를 했다. 이 가운데서도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이 북한 김영남외교부장의 환영만찬에 참석,함께 건배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 화면이 눈길을 끌었다.카터전대통령이 김부장의 환영을 받으며 만찬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유난히 소리울림이 큰 만찬장에서 백발의 카터전대통령이 분명한 어조로 연설을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우리 두 나라가 전면적 우호관계를 맺고 무역개방,인적교류는 물론 외교관계를 수립할 시기가 왔다』『핵개발의 투명성에 관한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고 오해가 풀리는 즉시 우리는 다른 목표를 향해 전진할수 있다』 카터전대통령이 이같이 「미국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때 클린턴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의회의 여야지도자들을 만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초안제시에 따른 행정부의 대북정책방향을 설명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아주 신중하면서도 매우 단호하게』나갈 것임을 다짐한뒤 『북한은 진로만 바꾸면 더이상 고립될 필요가 없다.그들은 북한주민들을 위해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터전대통령과 클린턴현대통령이 거의 동시에 행한 언급의 행간에는 제재가 결코 「응징」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설명이 깔려 있다.안타까울 정도로 대화를 선호하는 클린턴행정부의 현주소를 읽을수 있다. 미측의 대북제재결의안 초안이 앞으로 협의과정을 통해 어떻게 수정,가감첨삭될지는 카터전대통령이 일단 귀국하여 「평양보따리」를 백악관에 풀어놓은뒤에야 점괘가 나올것 같다. CNN­TV에 비친 서울의 한 슈퍼마켓에 라면등 비상식량을 사려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과 카터전대통령의 방북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안보불감증도 문제지만 「냄비기질」도 큰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야권의 진의는 무엇인가(사설)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를 비롯해서 최고위원들과 일부재야,사회단체 「대표」라는 인사들이 어제 발표한 시국선언은 아무리 뜯어봐도 우리에게 도움이되는 내용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이로운 내용으로 보인다.제일야당을 비롯한 소위 재야인사들이 이시기에 왜 국민을 오도하는 이런 국론분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그 진의를 알수가 없다. 우리가 가장 이해할수없는 부분은 어떤 대북제재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투명성보장을 위한 목적이 아닌,응징을 목표로한 제재는 유엔을 통하더라도 안된다는것이다.이주장에는 북한의 핵개발의혹이 오늘의 민족적위기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없다.지난 2년여에 걸쳐 우리정부와 국제사회가 줄기차게 대화와 양보를 했지만 대화를 중단하고 핵투명성을 보장하지않은 것은 북한이었기때문에 대화를 위한 압력수단으로 제재를 추진하게된 것을 야권인사들만 모를리없다. 주목되는 것은 어제 모임에서 북한 핵의 현수준에서의 동결등의 표현이 나왔고 과거의 핵투명성을 분리해서 다루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는 얘기다.이런식이라면 북한의 핵개발까지도 묵인내지 찬성할수있다는 발상이 아닌지 의심하지않을수 없다.북한핵에대한 분명한 태도표명이 없이 제재만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것은 어떻게하든지 제재를 피하면서 핵게임을 벌이려는 북한의 목표와 신기하리만치 일치한다. 오늘의 위기상황에서 제재는 곧 전쟁이라는 북한의 공갈을 진실로 무력화시키기위해서는 우리가 한데 똘똘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는 국론의 통일과 국력의 결집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처하는 인사들이 잡음을 내고 북한에만 이로울 분열적인 언동을 하는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더구나 민방위훈련이 전쟁을 부추긴다는 해괴한 주장아래 반대데모를 전국에서 동시에 감행하는 대학생들과 이런 시국인식과는 어떤 연계가 있느냐하는 의문도 제기될수있다.시국선언에서 다짐한 북한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이 그런 것들이라면 국민적인 지탄은 물론 법적인 대응을 받아 마땅하다.그런점에서 이들이 이념적 투명성을 분명히 하는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무책임한 행동들이 북한에 자신감과 오판을 주어 우리가 원치않는 전쟁을 불러들이는 길이 된다.민주당이 어떤 배경에서 이런 성격의 모임에 참여하게되었는지는 알수없으나 적어도 국정의 동반자인 제일 야당이 민족문제해결에 접근하는 자세는 한총련이나 재야와는 달라야한다.제일 야당이 정부에 반대하는 여론의 구심점이 되지못하고 무슨 통일전선 상위기구의 일원인 것처럼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의 위상을 너무나 초라하게 깎는 일이다.여기에 참여하지않은 국민당이나 신정당이 훨씬 떳떳해보이는 것을 민주당지도부는 깨닫는게 좋겠다.
  • 항모2척 한반도 인근해역 배치/주한미군증강 어떻게 추진되나

    ◎스텔스기·A10지원… 전술공군력 배증/적포대 탐지레이더 등 최신장비 증파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로 유엔에서의 대북강경제재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방부는 한미양국군의 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제재는 곧 전쟁선포』라고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정부는 대북제재가 이뤄지기 전부터 강력한 대응태세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 증강조치」를 취해나가고 있다. 14일 캐슬린 델라스키 미국방부대변인은 이러한 군사력 증강조치에는 ▲전술항공기의 추가배치 ▲항공모함의 한반도인근해역으로의 이동 ▲적포대 탐지레이더등 최신장비 증파 ▲정보·정찰활동 강화 ▲각종 보급품의 사전배치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델라스키는 이러한 조치들이 진행중인 것도 있고 이미 조치된 것도 있으며 상황전개에 따라 즉각 이뤄질 내용도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미국방부 소식통들과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술공군력의 증강에는 최신예전투기 F15E,탱크공격및 근접엄호기 A10,전천후폭격기 F117 등을 오키나와나 일본기지 등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지역으로 배치하는 것등이 포함될 수 있다. 현재 한국군은 근접공중엄호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A10의 지원은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또 영변핵시설을 폭격하는데는 F117 스텔스폭격기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이의 배치도 전술공군력 효율을 배가할 수 있다. 한미양국군의 준비태세에 있어 대북경고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관측되는 것은 항공모함의 한반도 근접이동이다. 미태평양함대산하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와 콘스털레이션호 2척은 현재 하와이근해에서 한국및 일본함정도 포함된 서태평양해군합동기동훈련(림팩)에 참가하고 있다.현재로서는 이들 항공모함이 한반도 인근해역으로 이동할 계획은 없으나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신속히 이동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신예장비의 교체나 새 병기의 배치 등은 지난 수개월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이 휴전선인근에 집중배치하고 있는 5천문이상의 대포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들 포대의 위치를 미리 탐지해내 무력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격용 아파치헬기,브래들리 특수장갑차량,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등은 이미 주한미군 또는 한국군에 배치했거나 추가배치가 진행중인 것들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벙커파괴 특수폭탄」으로 북한의 지하군사시설 파괴에 사용할 수 있다.이밖에 각종 탄약과 병기의 부품 등을 한국내 관련기지에 이미 비축시켜 놓고 있다. 미정보기관들은 북한의 동태를 예의 감시하기 위해 한반도에 대한 정찰활동과 정보수집및 분석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또 이들 정보전문가들을 한국에 이미 파견,첩보위성 정찰기 육해상진지로부터 매일 입수된 전자·사진정보를 분석,현지분석팀을 도와주고 있다. 델라스키대변인은 이들 조치들이 제재가 결의될 때,북한이 NPT를 탈퇴할때,또는 지금처럼 IAEA를 떠날 때 등 어느 경우에 적용된다고 밝히지 않으면서도 모두 다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년간 북한과 핵협상을 진행시키는 가운데서도 각종 보급품의 사전배치 등을 꾸준히 추진,한미양국군의 준비태세를 강화해왔던 것이다.
  • 1994년6월 서울과 평양/황병선(데스크 시각)

    『서울에 별일 없습니까?』 북핵사태로 하루에도 수차례 국제부 데스크에 국제전화를 걸어 상황보고 또는 기사 송고를 하는 파리의 특파원이 오늘아침에는 보고에 앞서 다급한 목소리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현지 TV에 서울시민들이 슈퍼마켓에 몰려들어 쌀·라면·휴지등 온갖 생필품들을 사재기하느라 난장판을 이룬 모습이 방영됐다는 얘기였다. 이번엔 워싱턴특파원의 보고다.CNN­TV가 서울과 평양의 「대조적」 분위기를 보도하고 있는데 북한당국으로부터 어렵사리 입북허가를 받아낸 때문인지 평양거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평화적인 모습이라고 화면없이 전화 현장리포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어 TV화면은 서울로 옮겨져 15일의 민방위훈련을 앞두고 14일 서울역앞 대우빌딩에서 있었던 예비훈련모습을 생생하게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연막탄들이 요란스레 터지고 빌딩에서 시민들이 대피하고 또 일부는 들것에 실려 후송되고 하는 모습은 매우 조용하다는 평양의 리포트 분위기와는 대조를 이뤄 마치 한국쪽이 전쟁을 부채질이라도 하고 있는양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 워싱턴특파원의 보고였다. 언제는 조용하기만한 서울의 모습,한국민의 전쟁위기 불감증이 놀랍다고 호들갑을 떨던 미국,서구언론들이 이번엔 상황의 본원적 문제보다 피상적 분위기에 앵글을 맞춰 다시 한번 요란을 피우고 있는것 같다.그럴테지.생필품 사재기나 화생방훈련 같은 장면들이야 말로 TV화면용으로 제격이 아니겠는가.그들에겐 적정규모의 전쟁이라도 터져준다면 더 좋은 그림감이 되는 셈이다. 한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모질게 맞대거리를 해가며 세계의 구경거리,두통거리 노릇을 하게됐는지 한탄만 하고 앉았을 수도 없는 일이다.보스니아·르완다,그리고 남북예멘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보도에 이어 이제 한반도가 세계뉴스의 초점이 될만큼 긴박한 상황에 놓인 것은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일의 주역은 물론 정부당국일수 밖에 없다.그러나 현대전은 총력전이라는 점에서 민의 역할은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그런데 외국언론에 비친 일부의 사재기 장면,그와는 정반대인대다수의 지나칠 정도의 태평스런 모습,양쪽 모두의 저변에는 현상황에 대한 민의 처절한 불안감·무기력감이 깔려있음을 보게된다. 최악의 경우 정말 전쟁이 터지는 것이나 아닌지,그럴 경우 당장 피란이라도 가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현대병기가 동원될 전쟁양상이 6·25때와는 판이하게 다를텐데 무슨 피란.이런 상념끝에 스스로 『김일성이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을 일으키려고』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아예 무대책으로 현실을 외면해버린 민의 얼굴도 보인다. 이래서는 안된다.지나친 위기의식이 국민들을 패닉상태로 몰아가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국민들에게 알리고 최악의 경우까지도 상정하고 흔들림없이 대비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어 신뢰감을 확보해야 한다.그런뒤 비상시에 민쪽에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미리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주어야만 한다.그래서 만약의 경우 군과 민이 효율적으로 힘을 모을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외신에 평화스럽게 비친 평양은 주민들의 전시동원체제가 생활화 돼있어 조용할수 있는 것이다.반면 연막탄과 들것,그리고 구급차등 요란스럽게 비쳐진 서울의 실질적 대비수준은 어느 정도일지.그동안 전화번호부 뒷구석신세였던 「전시국민행동요령」이 반상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그러나 솔직히 반상회자리가 수박겉핥기식인 형식적으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6·25 44주년을 열흘 앞둔 15일 「북핵무더위」속에 요란스레 사이렌이 울리고 10분만에 민방위훈련이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행인들을 지켜보며 이것이 실제상황이라면 그들이 그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상상해본다.10분만에 끝날 전쟁은 없다.지구상의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안보는 항상 최악을 상정해 철저하게 대비한다.
  • 민방공 훈련/시민·차량 적극 동참/공습경보 울리자 도심 정적

    ◎화재진압·구조연습 질서 있게/“안보의식 가다듬는 계기로” 각오 새로이 15일 하오2시 정각 서울등 전국에서 제248차 민방공대피훈련이 시작되자 길가던 시민과 차량들은 재빨리 대피,도심은 순식간에 정적속에 빠져들었다. 시민들은 공습경보사이렌이 울려퍼지자 훈련안내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있게 빠른 걸음으로 빌딩지하실등 가까운 지하대피소로 대피했으며 시내버스·택시·자가용 승용차들은 도로 우측에 나란히 정차하고 손님들은 내리게 하는등 예년과 달리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했다. 지하대피시설로 대피한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최근의 북한핵 사찰과 관련한 한반도 위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서울의 경우,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민·관합동 사태수습훈련장소로 지정된 중구 남대문로 5가 대우빌딩앞 12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용차들은 일제히 도로 우측길가에 멈춰섰으며 길가던 시민들은 가까운 대피시설로 들어갔다. 서울 종로소방서 소속 정경남인명구조대장(37)등 1백42명의 민·관 관계자들은 이 건물 3·9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0·11·14·16·18층·옥상으로 입주자등이 대피,구조를 요청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고가차 4대·특수차 3대등 모두 23대의 차량으로 20명의 인명을 구출하는 훈련을 벌였다. 이 빌딩에 입주한 대우등 30여개 기업체 1만여명의 직장인들은 공습경보 파상음이 울리는 3분동안 엘리베이터나 비상구를 통해 지하1층 아케이드로 질서정연하게 대피했다. 8층에서 비상구를 통해 지하대피소까지 걸어내려온 대우 여직원 김모양(22)등 3명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진지한 마음으로 훈련에 참가했다』면서 『전시대비 물자를 사느라 법석을 떠는 일부 시민의 모습은 꼴불견』이라고 말했다. 이번 민·관 합동훈련에 경계근무병으로 참가한 대우 장현대씨(28·공장자동화 영업부)도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경계근무를 서니 북한핵 위기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상황이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면서 『이런 때 일수록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는게 전시대비요령』이라고 말했다. 공습경보 소리가 울리자 서울역 앞길에 정차한 신원운수 소속 631번 좌석버스 운전사 정해봉씨(48)는 『전에는 경보가 울려도 차를 바로 세우지 않았으나 오늘은 우측도로에 차를 세운뒤 승객들을 모두 즉시 내리게 했다』면서 『승객들도 예전에는 대부분 차안에 그냥 남아있었으나 오늘은 자진해서 모두 대피했다』고 말했다. 시민의 날 행사가 사흘째 진행되던 전주에서는 행사장주변인 덕진구 금암동 전주종합운도장 부근에 몰려있던 시민 1만여명이 한꺼번에 대피하느라 다소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유도요원의 안내로 곧 질서를 되찾았다.
  • “경제난 덜자”… 주민들에 쪽잠·주먹밥 강조(북한 이모저모)

    ○「혁명일화」로 소개 ○…최근 국제적인 대북제재 움직임에 맞서 「제재는 곧 전쟁」이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주민들에게 쪽잠(짧은 틈을 타서 자는 잠)과 줴기밥(주먹밥)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 북한은 최근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30년전 김정일이 한 협동농장을 시찰하면서 이곳 간부들에게 『잠은 쪽잠이 제일 달고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 사실을 「혁명일화」로 소개한데 이어 이 신문 최근호에 이를 「따라 배우자」는 내용의 「독자반향」을 대대적으로 소개. 북한이 새삼 주민들에 대해 「쪽잠·줴기밥」의 의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최근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제난과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적인 대북제재를 의식,주민들의 절제된 생활을 통해 사회불안과 정치·경제적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양궁 등 집중 훈련 ○…오는 10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종목 불참을 선언한바 있는 북한은 양궁등 비교적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일부 종목에서는 국제경기에 대비해 훈련을 계속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 중앙방송이 최근 국방체육선수단 탐방보도를 통해 각 종목의 훈련상황을 과거 국제대회에서의 전적과 함께 소개하면서 『신기록 창조와 경기 우승으로 당과 수령의 배려에 보답할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밝혀졌다.
  • 하오 2시 “공급경보” 발동/오늘 민방공

    ◎20분간 대피·복구·인명구소 훈련/전국 읍이상지역 대피소 22만곳 마련/서울 대우빌딩 등 15개시서 방호훈련 제 248차 민방공 훈련이 15일 하오 2시부터 20분동안 전국의 읍이상 도시지역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내무부는 14일 『이번 훈련은 민방위 대원의 사태수습 능력과 지역주민들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익히는데 초점을 맞춰 주민 대피훈련,응급복구와 인명구조등 종합적인 방호훈련 순으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훈련은 서울의 민방공 훈련의 경우 민방위 대원,경찰,소방관외에 군장병도 참가시킬 예정이었으나 최근 북한 핵동향과 관련,지나치게 위기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종전과 같이 민·관주도로 치르기로 했다. 15일 하오 2시 훈련공습경보가 울리면 주민들은 가까운 전국 22만3천9백28곳의 대피소로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통행차량은 도로우측에 정차시키고 탑승자는 즉시 대피해야 한다. 이같은 대피훈련에 이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빌딩에서는 민방위 대원,경찰등 2천5백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태수습훈련이 실시되는 것을 비롯 전국 15개 시·도별로 종합적인 방호훈련이 펼쳐진다. 특히 대전시 서구 괴정동 한국전기통신 중앙연수원에서는 최형우내무부장관과 6백여명의 민방위 대원등이 참가한 가운데 화재진압,인면구조,응급복구등 종합적인 직장방호훈련이,경기도 의왕시 고려합섬에서 민방위대원등 2백60명이 참석한 화재진압,인명구조등 소방훈련이 각각 실시된다. 전국 규모의 이같은 민방공 훈련은 지난 72년이후 매월 실시되다가 89년부터 연 9회,그리고 92년부터 6월과 9월 그리고 지역별로 3월이나 12월에 각각 연 3회씩 실시되었다. 이에앞서 내무부는 전국 22만3천9백여곳의 대피시설과 5만9천8백77곳의 비상우물과 비상저수조 등에 대한 점검을 마치도록 했다. 한편 최형우내무부장관은 이날 시·도지사 간담회를 갖고 최근 핵사찰문제를 포함한 북한동향과 관련,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높이고 불법·폭력행위를 차단할 수있도록 강력한 지역사회 안전관리대책을 마련,추진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 대피·급수 등 안보시설 월내 정비/정부

    ◎북핵상황 관련 민방위태세 확립 정부는 북한핵상황과 관련,지하대피시설및 비상급수시설 경보시설등 유사시에 필요한 각종 안보시설들을 이달말까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비를 마치는등 민방위태세를 확립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오는 15일부터 17일사이 민방위 비상소집훈련을 통해 6백60만 민방위조직을 재점검,비상상황의 각자임무를 고지하고 27일의 정례반상회에서는 온 국민에게 「비상시 국민행동요령」을 알릴 계획이다. 정부는 13일 상오 새 정부들어 처음으로 이영덕국무총리 주재아래 중앙민방위협의회를 열고 북한의 핵개발 상황에 따라 단계별 민방위 대처계획을 수립하고 국민의 안보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교육및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그러나 최근의 안보상황을 전쟁임박 국면으로 몰고가면 국민생활및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수 있음을 감안,일반국민은 물론 주한외국인들에게도 지나친 위기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홍보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오는 15일의 정례민방공훈련에서는 직장방호 인명구조 응급복구등 비상사태 수습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지역단위 민방위협의회의 개최를 통해 민방위지휘체계를 정비하고 유관기관의 협조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국가안보상황을 국민에게 소상하게 공개,군·관·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홍보대책도 적극 강구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이병대국방부장관은 이날 민방위협의회에서 『북한군이 아직까지는 특이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그에 상응한 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보고했다.
  • “민방공훈련 국민동요 없도록”/이 총리(국무회의 13일)

    ◎“각부처는 장애인고용에 관심을”/남 노동 13일 국무회의의 주요 의제는 역시 북한핵문제.남재희노동부장관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각별한 관심 요청도 특기할 만했다. ○…한승주외무부장관은 『외교면에서 볼 때 군사적 위기가 발생할 상황은 아니다』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로 간다 하더라도 효력이 발생하기까지에는 약 2개월이 걸릴 뿐 아니라 제재를 결정하는데도 토론등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 ○…남노동부장관은 『정부 또는 공공부문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고용돼 있는가가 오늘날 문명의 척도가 되고 있다』면서 각 부처가 장애인 고용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 남장관은 특히 우리 외교관 가운데 장애인이 한 명도 없음을 지적하면서 『장애인도 외교관으로 채용해달라』고 주문. 남장관은 이어 『부산미국문화원에는 장애 정도가 아주 심한 미국인이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을 뿐아니라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Disabled(무능력자)라고 부르지 않고 Differently Abled(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로 지칭한다』고 부연. ○…이영덕총리는 여름철 수해예방에 관해 언급,『각별한 관심을 갖고 상습 침수지역과 대규모 공사장등 재해 취약지역에 대한 사전 확인 점검을 실시함으로써 재해예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 이총리는 또 북한핵문제와 관련해 『내무부등 치안관련부처에서는 오는 15일 정례적으로 실시되는 민방공훈련이 보다 실질적으로 실시되도록 하되 국민들이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지 않도록 하고 일상 치안상황의 안정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 ▲학교시설사업촉진법(개) ▲수출보험법(개) ▲예산회계법 시행령(개) ▲대형 공사계약에 관한 예산회계법 시행령 특례규정(개)▲농어촌특별세법 시행령(제) ▲공업배치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개) ▲94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안(행정쇄신위원회 운영경비) ▲대한민국정부와 피지정부간의 소득에 대한 조세의 이중과세방지와 탈세방지를 위한 협약 체결안 ▲94년도 청소년육성기금 운용계획 수정안 ▲영예수여안(보령화력발전소건설 유공자) ▲제44주년 6·25행사 기본계획안
  • 수도권 위기관리 종합훈련/8월22∼27일/단전·단수 식량난등 대처

    정부는 오는 8월22일부터 27일까지 6일동안 서울일원에서 지역단위 종합위기관리훈련인 「충무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국가비상기획위원회가 주관할 이 훈련에는 내무부·농림수산부등 8개부처가 참가,재해·재난에 대한 대비능력을 점검하고 국민생활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위기대응능력을 점검하게 된다. 충무훈련은 해마다 두차례씩 지역별로 해왔으나 이번에는 긴박한 북한핵문제를 감안,수도권일원의 훈련을 강화·확대할 예정이다. 훈련기간중 내무부에서는 아파트밀집지역의 단전·단수·가스공급중단에 대비한 훈련을,농림수산부에서는 식량난에 대비한 양곡배급훈련을 맡게 된다. 이와 함께 한강다리폭파상황을 가상한 긴급교량복구훈련은 건설부가,배전설비 긴급복구훈련은 상공자원부가 한다.
  • 15일 대규모 민방위훈련/내무부/전국 대피시설 등 일제점검

    내무부는 10일 최근 북한핵동향과 관련,한반도에 긴장상태가 고조됨에 따라 오는 15일에 실시될 6월 민방위훈련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도높게 실시,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추스리고 비상사태에 대비자세를 강화키로했다. 내무부는 이에따라 6월 민방위훈련을 도시지역은 물론 국가주요시설이 있거나 교통요충지일 경우에는 읍·면지역까지 포함하는 전국규모의 민방위훈련을 실시키로 했다.또 올해 민방위교육 연기자및 미필자를 대상으로 15∼17일사이에 비상소집및 사태수습,유사시 대피훈련등이 밀도있게 실시된다. 내무부는 이와함께 경계·공습경보 발령으로 시작되는 차량통제훈련과 주민대피훈련,사태수습훈련,주요시설 방어훈련등을 철저히 실시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각종 경보발령이나 차량및 주민통행통제 없이 시·도및 시·군·구별로 지역실정에 맞게 재난훈련등으로 실시돼왔다. 내무부는 또 이날부터 이달말까지 전국 22만3천9백28곳의 주민대피시설과 5만9천8백7곳의 지하양수시설및 공동주택 비상저수조등 비상급수시설을 점검토록 전국 15개시·도에 강력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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