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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美 6자회담 복귀 합의] PSI 美압박 완화 포용정책 유지할 듯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정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지 주목된다.6자회담과 남북관계는 비례해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여지가 많다. 그래서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31일 “다행히다. 북한이 6자회담의 레일에 복귀해 현 상황 타개의 출구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점도 핵실험 이후 닫혀 가던 남북관계의 출구를 찾았다는 기대감을 반영한다. 미국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아오던 정부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될 것 같다.미국의 PSI 참여 압박 수위도 한층 낮아질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남북간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발생할 공산도 낮아진 셈이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우리 정부의 PSI 훈련 참관단 파견을 “동족대결과 전쟁참화를 불러오는 용납 못할 범죄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한 터다. 수해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에 인도적 차원에서 쌀 등을 지원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된다.시점은 6자회담 재개시기와 맞물려 돌아갈 듯하다. 당초 정부는 금강산관광에서 정부 보조금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상황변화에 따라 백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용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리라던 방침도 유턴할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의 추가 핵실험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6자회담이 재개되긴 하지만 협상이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추가 핵실험으로 다시 위기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 핵실험은 아껴둔 마지막 카드라는 얘기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의 대북 제재 방안이 마무리되기 직전 6자회담 합의에 응하긴 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 분위기를 무력화하려는 계산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 화물선에 조여오는 미국의 검문 검색에 강한 압박을 느꼈을 법하다. 탕자쉬안 특사의 방북 설득과 중국의 주재 아래 31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 회담에서 6자회담의 틀에 들어가는 모습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요컨대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미국과의 협상력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판단, 일단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강경한 자세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남북 기상도가 활짝 갤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北·美 6자회담 복귀 합의] 美 중간선거 눈앞 北정책 성과 절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이 그동안 금융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며 조건부 6자회담 복귀를 강조해온 북한 정권의 마음을 돌려세운 선물은 무엇일까. 미국은 지난달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대적인 대북 제재 공세를 펼쳐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1718호를 주도했고, 국제사회의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미 국내법에 따른 독자적인 대북 추가제재 방안들도 곧 발표할 예정이었다. 물론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은 북한 핵실험 이후에도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해 왔지만 그같은 발언들에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 북한과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이유와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부시 행정부가 오는 7일 실시되는 의회 중간선거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전 장기화 등으로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12년 만에 상·하 양원을 모두 야당인 민주당에 넘겨줄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남은 기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성과’를 유권자들에게 내보이는 것이 필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안에서도 북한과의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계속 협상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할 경우 대북정책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에게 쏟아질 압력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고려한 것 같다. 부시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북한과의 외교협상 타결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19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 공동성명이 합의된 것도 당시 부시 정부가 처해 있던 정치적 곤경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부시 정부는 그해 8월 남부 멕시코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는강력한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했던 부시 정부는 북한이 요구했던 경수로 건설 조항을 넣어주면서 공동성명 문안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미국이 북한측에 제시한 협상안이나 절충안이 있을까? 6자회담 재개협상에 나섰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어떤 국가도 회담 재개에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6자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측의 입장 전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소한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PSI 훈련이나 미국의 국내법에 따른 대북 제재가 추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동의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제시한 6자회담 의제들에 대한 미측의 양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간선거가 미국이 협상에 나선 주요 동인이라면 6자회담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부시 정부의 대화 방침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9·19 합의 직후에도 북한이 경수로 선 제공을 요구하자 북한의 태도를 비난하며 협상을 사실상 더 이어가지 않았다.dawn@seoul.co.kr
  • 美 “정치적 메시지 같이해야” 압박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우리가 취해야할 금강산관광·개성공단·PSI 참여 등 세 가지 현안 가운데 미국의 방점은 PSI 참여에 찍혀 있는 것으로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나타났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0일 “미국은 한국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미·일과)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핵실험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한·미·일이 바람 새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정치적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고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한·미간 갈등에 대해서는 정부 일각에서 “금강산관광 등이 안보리 결의와 무관하다고 밝힌 데서 오해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요구를 종합해 보면 상황변화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은 행동보다는 일치된 말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아이디어를 갖고 논의한 내용이 있다.”고 밝힌 점도 PSI참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치적 선언 촉구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PSI 참여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주변 여건도 우리 정부에 PSI 참여 확대를 압박한다. 유엔 결의 이후 미국이 무기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선박을 처음으로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핵무기의 제3국 이전 차단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PSI가 가장 강력하고 유효한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시중은행의 대북 거래중단, 석유공급 감축 등의 실질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정부가 주변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나홀로’ 정책을 펴기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PSI 참여 8개항 가운데 5개는 참관 형식으로 부분 참여하고 있고 ▲정식참여 ▲역내차단훈련시 물적 지원 ▲역외차단 훈련시 물적지원 등 3개는 유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식 참여는 계속 유보하되, 물적지원은 검토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놓고 있었다. 여기서 확대하라는 게 미국의 주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면 참여하게 되면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고 긴장이 높아진다는 우리의 논리에 라이스 장관은 “2년 동안 PSI를 시행해 왔지만 무력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PSI 참여 수위를 조절하면서 참여 방침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론정지작업이 여전한 과제다. 참여를 확대한다면 정치권은 또 한 차례 찬반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요구 조건과 국내 여건을 감안해 정부가 어떤 결단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정부는 다음주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미세조정하는 등의 유엔 안보리 결의 후속조치를 밝힐 예정이다. 미국은 참가국들과 오는 30∼31일 대규모 PSI 합동 훈련을 벌일 예정이다. 그 전까지는 PSI 참여 윤곽이 나올 것 같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미 “PSI에 정치적 메시지 같이해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우리가 취해야할 금강산관광·개성공단·PSI 참여 등 세 가지 현안 가운데 미국의 방점은 PSI 참여에 찍혀 있는 것으로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나타났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0일 “미국은 한국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미·일과)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북핵실험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한·미·일이 바람 새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정치적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고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한·미간 갈등에 대해서는 정부 일각에서 “금강산관광 등이 안보리 결의와 무관하다고 밝힌 데서 오해가 생겼다.”는 설명이다.미국의 요구를 종합해 보면 상황변화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일이 생기더라도,지금은 행동보다는 일치된 말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아이디어를 갖고 논의한 내용이 있다.”고 밝힌 점도 PSI참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치적 선언 촉구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PSI 참여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주변 여건도 우리 정부에 PSI 참여 확대를 압박한다.유엔 결의 이후 미국이 무기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선박을 처음으로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핵무기의 제3국 이전 차단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PSI가 가장 강력하고 유효한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도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시중은행의 대북 거래중단,석유공급 감축 등의 실질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우리 정부가 주변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나홀로’ 정책을 펴기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PSI 참여 8개항 가운데 5개는 참관 형식으로 부분 참여하고 있고 ▲정식참여 ▲역내차단훈련시 물적 지원 ▲역외차단 훈련시 물적지원 등 3개는 유보하고 있다.이 가운데 정식 참여는 계속 유보하되,물적지원은 검토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놓고 있었다.여기서 확대하라는 게 미국의 주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면 참여하게 되면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고 긴장이 높아진다는 우리의 논리에 라이스 장관은 “2년 동안 PSI를 시행해 왔지만 무력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하지만 우리 정부가 PSI 참여 수위를 조절하면서 참여 방침을 선언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론정지작업이 여전한 과제다.참여를 확대한다면 정치권은 또 한 차례 찬반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요구 조건과 국내 여건을 감안해 정부가 어떤 결단을 이뤄낼지 주목된다.정부는 다음주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미세조정하는 등의 유엔 안보리 결의 후속조치를 밝힐 예정이다.미국은 참가국들과 오는 30∼31일 대규모 PSI 합동 훈련을 벌일 예정이다.그 전까지는 PSI 참여 윤곽이 나올 것 같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열린세상] 자주와 지식정보화 사회/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올해로 개시 40주년, 종료 30주년을 맞이한 중국의 문화혁명을 통해, 우리의 386세대나 대통령이 ‘자주’라는 망령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물론 그 결과마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금년으로 죽은 지 30년 되는 마오쩌둥과 그의 작품인 홍위병은 밖으로 중국이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안으로 인민대중 역시 지식인 엘리트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반(反)엘리트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는 ‘자주’라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안으로의 ‘자주’는 ‘다자이로부터 배우기 운동’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다자이는 중국 서북부 산간 벽지에 위치한 인민공사의 생산대대 명칭으로, 소규모의 생산대가 아닌 대규모의 생산대대를 회계단위로 삼음으로써 자급자족인 농촌공동체를 만들려는 대중운동이었다. 도시인의 삶에도 자주의 망령이 지배했다. 노동과 경영 사이, 육체 노동과 지적 노동 사이의 지위와 기능의 격차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자주의 망령이 더욱 힘을 발휘한 곳은 대학이었다. 한마디로, 대학에는 학생이 없었다. 안으로의 자주를 실천하기 위해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학습하는 ‘하방’에 따라 농촌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력갱생의 노력은 ‘맨발의 의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마오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의인 “화타가 언제 의대에 다녔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어깨에 약 상자를 둘러메고 맨발로 다니며 치료하는 맨발의 의사를 탄생시켰다. 그 수가 1970년대 중반 무려 10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화타와 달리 단기간 훈련으로 양산된 맨발의 의사는 멀쩡한 사람도 죽이는 돌팔이에 가까웠다. 이렇게 문혁은 고등교육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기술 인텔리겐치아의 사기를 황폐화시켰다. 한편 밖으로의 ‘자주’는 중국으로 하여금 겉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낳았다. 미국과의 대립은 물론 소련과도 매사에 으르렁댔다. 경제적으로는 외국의 원조나 차관 대신 자력갱생으로 부족 자본을 조달했다. 당연히 외국의 문화나 기술도 거부했다. 왜 문혁의 주역들은 ‘자주’의 망령에 사로잡혔을까? 마오나 홍위병은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도, 미래를 올바르게 전망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 발전이란 끊임없는 전문화와 분업화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반외세와 반봉건 투쟁이라는 과거의 짐에 여전히 억눌려 있었다. 자주의 망령은 ‘밖으로의 자주’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내부 격차 해소를 지향하는 ‘안으로의 자주’로까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문혁은 입증했다. 만약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자주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화 시대에서의 탈락뿐 아니라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포기를 자초하는 결과가 올 것이 틀림없다. 밖으로 자주하면서, 안으로 고도의 전문지식을 강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핵 자주나 우리의 작전권 자주는 역사를 후진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오히려 적극적 대외협력을 통해 자주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결국 마오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주의 양면성이 지닌 위험성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계기를 국제관계의 획기적 전환으로부터 찾았다. 역사적인 핑퐁외교(19 71년)와 닉슨 대통령의 방중(1972년)으로 문혁이 추구하던 외적 자주는 물론 내적 자주마저도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따라서 문혁으로 야기된 ‘동란’의 10년은 1976년 마오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실제로 중국이 스스로 대외적 고립을 포기함으로써 문혁은 훨씬 이전에 실질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다자이식 농업’도,‘맨발의 의사’도,‘노동관계의 자주’도 시들해져 버렸던 것이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차이나타운 건립위원장
  • [스포츠 라운지] 입문 20개월만에 WBA챔프 오른 김하나

    [스포츠 라운지] 입문 20개월만에 WBA챔프 오른 김하나

    그에게 올해 한가위 명절은 남달랐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의 덕양어울림누리체육관. 두 번째로 나선 세계 도전 무대에서 황금빛 벨트를 매고 나서야 그는 아껴뒀던 눈물을 쏟아냈다.‘사각의 링’, 그리고 둥근 보름달. 모양은 달랐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온통 그의 차지였다. 복싱 입문 1년8개월 만에 오른 ‘챔프’의 자리다. 여자 복서 김하나(25·일산 주엽체육관)의 세계복싱협회(WBA) 슈퍼플라이급 정상 정복은 한국 여자복싱 역사에 크게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지난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권투평의회(WBC)와 함께 세계 복싱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WBA의 챔피언 타이틀을 허리에 맨 건 여자복서로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챔프? 아빠에게도 비밀 권투 장갑을 손에 낀 건 순전히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160㎝가 조금 넘는 키에 70㎏에 가까운 몸무게는 아무래도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는 복싱을 하기 전 여러 스포츠를 두루 섭렵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로 시작, 중학 시절 투포환을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도복을 입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유도는 공인 4단. 유도로 키운 몸이 빠지지 않자 일산 집 뒤의 체육관을 찾았다. 무작정 복싱을 하겠노라고 주엽체육관 김형렬(54) 관장을 졸랐다. 지금은 52㎏. 차근차근 체급을 낮춰 잡으며 1년8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다이어트’를 마쳤고, 세계타이틀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지난해 9월 데뷔전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 3월 가오리 준(중국)과의 WBA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 박빙의 우세를 점치던 그는 9라운드에 이어 마지막 10라운드에서도 왼손잡이 준의 스트레이트에 거푸 다운, 링을 내려왔다. 와신상담 2개월 뒤 상하이에서 가지기로 한 리턴매치도 준의 부상으로 무산돼 세계 정상은 더 멀게만 보였다. 그러나 김 관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지난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김하나는 보란 듯이 폰나파 수피나웡(태국)에게 2라운드 KO승, 남의 것만 같던 황금빛 챔피언 벨트를 잘록해진 허리에 맸다. 그러고는 맏딸이 샌드백 두드리는 것조차 몰랐던 아버지에게 트로피를 번쩍 들어보였다. ●링과 칠판은 닮은꼴?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그의 꿈은 선생님이다.“복싱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챔피언전 대전료는 3000달러. 이것저것 빼고 그가 쥔 건 50만원이 채 안 된다. 다른 ‘얼짱’ 챔피언들처럼 든든한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체력이 달려 권투 장갑을 벗고 링을 내려설 때, 어릴 적 꿈이었던 교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한 세계 챔프.9개월 안에 방어전을 치러야 하고, 이후 북한의 WBC 슈퍼플라이급 유명옥과의 통합타이틀전도 준비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오스카 델 라 호야의 섬세함과 마이크 타이슨의 파이팅을 기르기 위해 김하나는 요즘 하루 훈련 시간을 배로 늘렸다.“이제 겨우 복싱의 참맛을 알기 시작했다.”며 반창고를 질끈 동여매는 오른손 정권의 굳은살이 더욱 커 보인다. ▲생년월일 1981년 10월22일 전남 영암출생 ▲학력 일산초-정발중-주엽고-용인대-용인대 대학원 체육교육과 4학기 재학중 ▲체격 162.2㎝,52㎏ ▲가족 김준식·유복임씨의 1남2녀중 장녀 ▲특기 유도(4단) ▲취미 수영 ▲전적 7전6승1패(3KO) ▲경력 KBC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WBA 여자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美전문가들의 북핵해법 제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한 갖가지 주장과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국제안보 전문가인 베네트 램버그는 11일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기고한 글에서 “북핵 문제를 풀려면 북한정권의 안보에 대한 강박관념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미국과 북한간에 ‘핫 라인(비상연락망)’을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국무부에서도 근무했던 램버그는 또 북한이 기습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줄일 수 있도록 휴전선 부근에서의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제안했다. 또 한국 후방에서 실시되는 한·미 양국의 군사훈련은 사전에 북한에 통보하라고 제안했다. 램버그는 이와 함께 휴전선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활동을 해상도가 낮은 인공위성 사진으로 찍어 북한측에 전달하라고 주장했다. 휴전선 부근에서 벌어지는 한·미 양국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북한이 ‘까막눈’ 상태에서 도발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을 막자는 것이다. 램버그는 이와 함께 북한의 경제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으로써 북한이 핵무기 등을 외부에 팔려는 유혹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램버그는 이같은 주장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도 갖고, 보상도 받아내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북한 핵을 제거하려 할 경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매우 실리적인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울프스탈 연구원은 북한에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LA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 방법을 찾는 것이 못마땅하더라도 부시 대통령은 평양에 개인 특사를 보내 핵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즉각적이고 파괴적이면서, 어쩌면 핵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또 “지금까지의 6자회담은 빈사상태였던 만큼 이제는 사망선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PSI 참여 안돼” “불가피” 당정 갈등

    [北 핵실험 파장] “PSI 참여 안돼” “불가피” 당정 갈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와 여당이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핵무기 이전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참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방침인 반면, 열린우리당은 무력을 통한 해결은 한반도 위기상황을 악화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당정 갈등마저 예고되고 있다. ●주한 미대사 “한국, PSI 협조 확대 희망” 유엔 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제재 결의문에 북한 핵무기 및 기술 이전을 차단하는 조치가 담길 것으로 보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최근 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PSI 관련 협조가 더욱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1일 “PSI 참여는 유엔 안보리의 협의를 보면서 입장을 정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정부 당국자가 “큰 틀에서 PSI 참여 확대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언급했고,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도 전날 “PSI에 사안별로 참여하려고 한다.”고 밝혀 정부의 입장은 굳어진 듯하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지금은 평화번영 정책을 폐기할 때가 아니다. 때문에 직접적인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PSI에 우리 정부가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PSI와 정부의 참여 예상범위 PSI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제품이나 부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이나 항공기를 직접 나포하고 수색할 수 있도록 한 미국 주도의 조치로, 지난 2003년 창설 이래 8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는 PSI에 참관·브리핑 청취 등 ‘소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뿐 훈련 참여 등 전면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지는 않다. PSI 정식참여와 역내 차단훈련시 물적지원, 역외 차단훈련시 물적지원 등에는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정식 참여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전면 동참에 거리를 둔 이유였다.PSI 정식 참여국이 되더라도 구체적인 활동의 참가 여부는 참여국 재량이라 사안에 따라 예외를 두는 정도로 절충안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기류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절충안을 선택하더라도 PSI 참여 확대 자체가 북한의 반발을 불러와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중국 순찰 강화… 휴가 금지령설

    |단둥 이지운특파원|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은 평온하기만 했다. 오히려 북한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많았다. 북한으로 물건을 부치려는 사람들의 손길도 분주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열차도 평소와 다름없이 압록강 철교 위를 오갔다. 차량 통행에도 이상징후는 없었다. 다만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압록강 국경지대를 관할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선양군구가 각 부대에 휴가와 외출금지령을 내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북한 소식도 들려왔다. 단둥의 한 소식통은 핵실험을 전후한 북한의 변화상을 “달러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말로 요약했다.1달러에 북한돈 2700∼2800원쯤에 거래되던 것이 며칠새 2900원으로 뛰었다는 것이다. “교역량이 줄거나 하는, 당장 눈에 띄는 변화랄 건 없습니다. 특별한 동요도 없고요. 그러나 모두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지요….” 북·중 무역을 하는 한 인사는 “말들은 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닫는 곳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혼내주긴 할텐데, 그러다 보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특히 북한을 왕래하는 화교 무역상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과거 거래된 물건값을 다 결제받은 이들은 당분간 쉬면서 상황을 살펴봐야겠다고들 한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새로 물건을 넘겼다가 자칫 돈을 떼일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61돌 휴일을 맞아 하루 휴업했다가 이날 다시 문을 연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해관(세관)은 유난히 북적였다. 국경절 연휴기간 처리하지 못한 업무까지 밀려 보따리장사 등 무역상 200여명이 아침부터 북적였다.8시 문을 열고 통관서류 작업을 마치자 평안북도 번호판을 단 트럭 50여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해관 소속 직원과 공안(公安) 100여명이 제식훈련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관계자는 “상부의 검사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여러 중국쪽 무역상들은 “북쪽도 별 변화가 없다.”고 했다.“우선 핵 실험을 얘기하거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실험은 공화국의 긍지”라는 북한의 한 무역상은 “무역과 핵실험이 무슨 관계냐. 중국이 무역 문제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북의 핵실험 이후 국경 경비가 강화됐다고는 해도 “압록강 밀무역도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현지인은 전했다.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 국경경비대가 일부 군기 문란과 관련,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일부 조선족 동포들은 올 겨울 식량난의 가중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난 여름 극심한 수해가 복구되지 않아 올 겨울 최악의 식량난이 예상됐던 터였다.“그래도 수확기니까 겨울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요. 문제는 내년 봄이지요….” 이 파국적 상황이 내년 봄까지 이어지면 대기근과 함께 민심 동요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예상도 나온다. 대북 인권단체 ‘좋은벗들’은 “가을철이 되면서 농작물 도난사건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이미 일부 수재민들이 굶어죽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다. 쌀, 보리, 옥수수, 감자 등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최소 200만t 이상으로 추정된다. jj@seoul.co.kr
  • 정부 “상황변화”…PSI 전면참가 검토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문에 공해상 북한 선박의 ‘해상 검문’ 즉,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관련 조항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정부가 PSI 참여 확대 또는 전면 참가하는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10일 전해졌다.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핵 실험이란 커다란 상황 변화가 생긴 만큼 기존 입장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현재 검토중이며, 확정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15일 방한하는 로버트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 일행과 이 문제를 집중 협의,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도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PSI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사안별)로 하려 한다.”고 보고했다. 정부는 미국이 대 테러전 수행차원에서 하고 있는 PSI에 ▲역내 및 역외 차단시 참관단 파견 ▲PSI에 대한 포괄적 및 구체적 브리핑 청취 ▲한·미 군사훈련에 WMD 차단훈련 포함 등 ‘참관’ 형식으로 협력을 한정해 왔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이날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PSI 관련 활동이 더욱 확대되길 희망한다.”며 “조지프 차관 방한시 PSI (정식)참가 논의가 이뤄지고, 협력이 증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한자락 바람 치마에 휘감으면

    한자락 바람 치마에 휘감으면

    취재, 글 박혜란 기자 한국 사람처럼 어깻짓하기, 일본 사람처럼 걷기, 중국 사람처럼 미소 짓고 태국 사람처럼 손짓하기, 몽골 사람처럼 뒤돌아보기…. 무용가 백향주(32세)의 몸 안에서 동아시아의 몸짓과 표정과 정신이 충돌하고 조화하고 꽃을 피운다. 관음보살춤, 초립동, 무당춤 등을 완벽하게 재현해 ‘최승희 춤’의 마지막 계승자로 주목받았지만, 그는 스승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최승희는 그때, 저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로 하여금 삶의 반려자로 무용, 그것도 동아시아 무용을 선택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집안의 부모자식, 형제자매의 국적이 다 제각각이지요.” 그의 부모님은 조총련계 재일한국인 2세였다. 그는 재일한국인 3세로 태어났고, 한국 국적을 택했다. 역사, 민족, 국가의 문제는 그에게 3인칭이 아닌 1인칭,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한국춤도 아니고 일본춤도 아니고, 대체 어느 나라 춤이냐고 따지는 이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제 춤이지요.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소통하게 하는 것, 다양한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언젠가 그의 손금을 본 이가 ‘굴곡 많은 인생’을 예언한 적이 있다. 예언처럼 유독 많은 위기와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중 세 번의 전환점은 그를 더 높고 먼 곳에 다다르게 했다. 세 번의 황홀한 성장통 “열다섯 살에 북경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아마추어에서 전문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거지요. 그때 전문가의 세계란 것에 무척 충격을 받았어요. 2만 명이 참가하는 콩쿠르란 게 상상이 가나요? 수개월에 걸쳐 심사가 진행되고 끝없는 경합이 벌어지지요. 문자 그대로 배틀이에요. 사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나이였죠. 하지만 그때 강한 신념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한민족의 대표로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결심도 대단했지요. 덕분에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따고 외국인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학 최연소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에 솔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시간여 동안 한 사람이 여러 얼굴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독무는 이십대 후반에야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독무 공연 준비를 북한에서 했습니다. 최승희 선생의 양아들인 김해춘 선생님께 배웠지요. 난 우리 선생님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했습니다. 연습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혀를 깨물고 하라!’ 그러시더군요. 말씀대로 혀를 꽉 깨물고 했더니 너무 아파서 정말 쓰러지지는 않게 되더군요. 그때 저는 아, 명성이란 게 이런 거구나,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노력을 쏟아부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그 후 10년을 쉽게 넘어갈 수 있었지요.” 인연이 다하고 태어나는 곳 인생의 세 번째 전환점은 한국과 인연을 맺으며 찾아왔다. 1998년 그는 조총련계 재일교포 무용가로서 민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가졌다. “누가 부모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감히 공연을 고집하겠습니까. 제가 한국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부모님이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타국에서 우리말, 글을 지키고자 30년간 노력하셨지만 한순간에 딸을 잘못 가르친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다정다감한 ‘변종 경상도 싸나이’ 이용권 씨(39세)와 사랑에 빠져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그는 예쁜 딸도 낳았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의 무용가로서 홀로서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30년간의 준비를 맺음한 곳이자, 더 넓은 세계로 발돋움하는 새 출발의 거점인 셈이다. 독립을 위한 무대로 그는 비보이브레이크 댄스팀와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과 제가 가진 서로 다른 ‘코드’가 소통한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 기대해요. 함께 연습하며 춤의 새로운 재미를 새삼 발견하고 있어요.” 아시아인 백향주는 그의 스승들이 그에게 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한민족은 머리가 아주 비상합니다. 한국춤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추기 어려운 춤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현실은 왜 그런지 침체되어 있지요? 저는 그 이유가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든 공유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따라야 발전한다고 봅니다. 물론 좋은 부분만 이것저것 떼어와서 새로운 걸 조합해내는 건 결코 공유가 아니지요. 상대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할 때 진정한 공유가 이루어지는 거지요. 더군다나 예술에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나요? 예술가가 혼자 살고자 하면 다 죽이게 돼요. 그럼 결국 예술가도 죽게 되겠죠.” 월간<샘터>2006.10
  • 벨기에 한국전참전 용사 위문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첫 해외 방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4일(현지시간) 한국전 참전용사의 미망인을 찾았다. 이날 오후 벨기에 북동쪽에 위치한 리에주에서 모로 드 멜렌 전 국방장관의 부인인 자클린 드 라랭(95) 여사를 위문했다. 멜렌 전 장관은 1950년 한국전 당시 국방장관이자 상원의원을 지냈다. 물자만 지원하려던 벨기에 정부 방침에 강력히 항의해 파병에 기여했다. 파병군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된 법령까지 개정해 한국전에 참전했던 일화가 밝혀지기도 했다. 회고록에서 2차대전 당시 벨기에가 미국의 도움으로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빚을 갚는 취지에서 한국전에 참전을 결심했다고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자클린 여사는 “(남편이) 50세의 나이에 장관직을 그만두고 참전한 것이어서 상당히 특별한 케이스였다.참전하기 위해 공수부대에서 훈련도 받았으며, 임진강 전투에서 전공도 세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95세의 고령에도 불구, 기억력이 좋고 말도 잘해 박 전 대표를 놀라게 한 자클린 여사는 “한국이 세계 11위 경제 강국이 된 것도 그러한 희생과 도움 때문으로 감사드린다.”는 박 전 대표의 말을 받아 “한국은 번영했는데 북한은 잠잠해졌느냐.”고 묻는 재치도 보였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토요영화]

    ●러시아 하우스(MGM 오후 7시)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냉전 시절, 군비경쟁을 벌였다지만 소련은 미국의 적수가 못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무시무시한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 해도 이라크가 미국을 이기리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기술적 의미로든, 정치적 의미로든 북한이 미국까지 실제 핵탄두를 날릴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도 없다. 어찌보면 상식인 것 같은데 ‘국가안보’ 딱지가 붙으면 그만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 직후에 만들어진 작품답게 영화 ‘러시아 하우스’는 공산주의 국가의 힘이란 게 알고보니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소련 현지 촬영을 통해서다. 작가모임에 끼어 소련을 여행하던 영국 출판인 발리. 여행 중에 소련 작가 단테를 만나는데, 그 뒤 이 사람은 출판을 검토해달라며 책 한 권을 전달한다. 냄새를 맡은 정보부는 바로 따라붙는다. 책을 확인해보니 내용은 단순했다. 소련의 핵무기 관련 기술이란 게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서방세계에 위협이 되기 어렵다는 것.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는 발리를 첩보요원으로 훈련시켜 소련으로 투입, 단테와 접촉하게 한다. 발리는 미모의 연락책 카티야를 통해 단테를 만나는데, 단테가 실은 소련 최고 과학자 야코프이고 책을 만든 것도 소련과학자들의 협동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야코프를 매개로 해서 CIA와 KGB가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가지만 발리는 이 대결에 회의를 느끼는데….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숀 코너리와 미셸 파이퍼의 매력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1990년작,122분. ●아홉살 인생(채널CGV 오전10시 40분) 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룬 위기철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홉살 인생’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에피소드 위주인 원작과 달리 성장드라마의 낯익은 공식, 서울에서 전학 온 새침데기 여자와 시골에 사는 순박하고 우직한 남자의 결합이라는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도입했다. 뻔한 설정임에도 지겹지 않았던 것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4명의 아역배우들이 나이를 뛰어넘는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 특히 이세영과 김석은 주인공 장우림과 백여민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한국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본 개봉 때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을 제치고 관객만족도 1위를 기록했었다.2004년작,105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민방위 훈련체계 전환 재난안전조직화 할것”

    “민방위가 재난을 지키는 맏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체제를 바꾸겠습니다.” 22일은 1975년 민방위 제도가 만들어진 뒤 31년째 되는 날이다. 소방방재청은 이 날을 맞아 30년 역사를 담은 ‘국민 속으로 다시 뛰는 민방위’를 펴낸다.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민방위가 꼭 필요한 조직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변화에 중점을 두었다.30년사 발간을 총괄한 김동완 재난예방본부장은 “민방위 제도가 북한 노동적위대의 대응조직으로 만들어지다보니 국민들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반성했다.김 본부장은 그렇지만 “민방위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이제는 자위적 안전공동체의 역할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면서 “그래야 진정으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도 우리의 민방위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김 본부장은 “민방위가 각종 재난으로부터 이웃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그는 “나와 이웃을 연결하는 안전고리와 지역공동체 의식을 주도해 나가는 조직으로 바꿀 생각”이라면서 “특히 재난현장에서 다양한 재난 관련 단체를 아우르고 복구에 앞장서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8)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세계의 싱크탱크] (8)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연구의 질과 양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싱크탱크가 국제경제연구소(IIE)이다.”(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과 교수) “IIE는 워싱턴 최고의 국제경제 연구소다.”(워싱턴포스트) IIE는 국제경제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싱크탱크이다.IIE는 상무장관과 대통령 국제경제보좌관을 역임했던 피터 피터슨 블랙스톤 그룹 회장 등에 의해 1982년 설립됐다. 피터슨 회장은 지금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IIE는 국제경제 분야에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이슈들을 미리 파악해 공공의 논쟁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아이디어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정치인들의 의회 발언에는 싱크탱크의 연구 결과가 빈번하게 인용되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기관이 IIE”라고 말한 바 있다. IIE가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중점을 두고 있는 연구 과제는 국제 거시경제, 국제 자금과 금융, 무역, 투자,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에는 ▲중국 ▲세계화 및 그에 대한 반작용 ▲아웃소싱 ▲국제금융기구 개편 ▲다자·양자·지역별 통상협상을 핵심 연구 과제로 선정했다. IIE의 연구 결과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국제경제 전문지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미’가 지난해 미국 주요 싱크탱크의 정치성향을 분석한 결과 IIE는 비당파적이며, 중립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의 20대 주요 싱크탱크 가운데 이같은 평가를 받은 곳은 IIE와 전략국제연구소(CSIS)뿐이다. IIE는 매달 한 권 이상의 책과 장문의 정책 분석 논문, 짧은 정책 보고서 및 실무 정책 분석서를 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거의 매주 국제경제 이슈와 관련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한다.IIE의 웹사이트는 매달 30만이 넘는 페이지 뷰를 기록 중이다. 주요 수입원은 각종 재단과 기업, 개인의 기부금(85%)이며 수입의 4분의3 정도가 연구비로 지출된다고 IIE는 밝혔다. dawn@seoul.co.kr ■ 한반도 전문가, 한·미FTA 연구 담당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국제경제연구소(IIE)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는 마르커스 놀란드 선임연구원이다. 놀란드 연구원은 한·미관계와 미·북관계, 남북관계, 그리고 한·미 경제통상 분야까지 연구의 관심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1993년부터 94년까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선임 경제학자를 역임한 바 있다. 또 존스홉킨스대, 남가주대 등 미국의 대학뿐만 아니라 도쿄대 등 외국의 대학에서 초빙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방문 연구원을 지냈던 경험이 한반도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 2004년 발간한 ‘김정일 이후의 한국’은 북한의 붕괴와 한국의 흡수 통일 가능성을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 컬럼비아대와 듀크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에서 경제·경영학을 강의했던 에드워드 그레이엄 선임연구원도 한국 문제에 정통하다. 그레이엄 연구원은 미 재무부의 국제투자국에서 국제경제연구원을 맡은 바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획평가담당관도 역임해 학문과 실무 모두 경험이 풍부하다. 그는 2003년에 ‘한국 재벌의 개혁’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IIE는 올해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바람직한 방향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이 직접 지휘하고 있다.1982년 연구소 창립 때부터 소장을 맡아온 버그스텐은 미 재무부의 국제담당 차관보를 역임했으며,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국제경제 담당 보좌관도 지낸 바 있다. 버그스텐 소장은 현재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지역주의’라는 제목의 저서를 준비 중이다. 한·미 FTA 연구의 실질적 담당자는 제프리 쇼트 선임연구원이다. 쇼트 연구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우루과이라운드 등 국제 통상협상과, 미국의 양자 통상 협상 분야의 최고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쇼트 연구원도 미 재무부에서 경제연구원을 지냈다.‘경제제재의 재고’라는 저서를 낸 바 있는 쇼트 연구원은 대북 제재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고 있다. IIE에는 지금까지 3명의 한국인을 초빙 연구원으로 받아들였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사공일 전 재무장관, 최인범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처장 등이다. dawn@seoul.co.kr ■ “IMF개혁 유도등 국내외 영향 발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국제경제연구소(IIE)의 브래드포드 젠슨 부소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IIE의 운영 방향 등을 설명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젠슨 부소장은 미 인구통계국(센서스) 경제연구센터 소장을 지냈으며, 카네기멜론 대학 센서스리서치데이터센터 소장도 역임했다. ▶IIE가 다른 싱크탱크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IIE는 브루킹스나 미국기업연구소(AEI)와 같은 종합적인 연구소와 달리 국제경제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또 국제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지역의 정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분야를 좁혔기 때문에 전문성이 강하다. 또 최고의 연구진이 포진했다는 것도 IIE의 강점이다. ▶연구원을 뽑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기본적으로 박사학위를 소유하고,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도 갖고 있는 인물을 선발한다. 박사학위는 지적으로 뛰어나며 훈련이 되어 있음을 말해주며 정부 경험은 그 분야에서 서비스하겠다는 정신과 현실감각을 알려주는 것이다. 박사학위가 없는 연구원의 경우에는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실적이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다. ▶연구의 주제는 연구소가 정하나, 연구원이 정하나. -두 가지의 결합이라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는 연구원이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 과제를 정하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매주 금요일에 연구원들끼리 만나는 회의가 있다. 이 자리에서 연구원들은 자신이 수행중인 연구에 대해 보고를 한다. 그러면 해당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연구원들도 의견을 밝힌다. ▶IIE의 연구 성과가 실제로 국내외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지난 2004년 미 의회는 부시 행정부에 대외무역협상 권한을 계속 부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무역자유화가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이익과 불이익을 주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가 없었다. 그때 IIE의 연구진이 미 노동자들이 이익을 얻었다는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부시 행정부는 협상권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또 IIE는 지난 10년 동안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문제를 집중연구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의 구체적인 개혁 방안에 대해 중점적인 연구와 토론을 주도했다. 그 결과 IMF의 개혁이 이뤄진 것이다. 한국도 그에 따라 지분이 늘어나지 않았는가. ▶IIE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양쪽 다 아니다. 혹은 양쪽 모두라고도 할 수 있다.IIE의 이데올로기는 주류신고전경제주의라고 할 수 있다.IIE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싱크탱크이다. 선거에서 특정한 당이나 후보를 지원하지 않는다. ▶정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IIE는 정부로부터는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독립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정부 관리들과 늘 접촉하면서 정책의 동향을 살핀다. 특히 재무부나 무역대표부(USTR)의 관리들은 수시로 우리 연구소를 찾아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미국에 훌륭한 싱크탱크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실질적인 것은 세금 제도라고 본다. 미국의 세제는 싱크탱크와 같은 비영리단체에 기부를 할 경우 그만큼 세금을 감면해준다. 따라서 부자들의 기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 ▶싱크탱크의 역할은 변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그러나 꼭 좋은 방향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정부 부처들은 예산의 압박 때문에 기관 안에 연구소를 두기 어렵다. 그 때문에 필요한 연구를 외부의 전문 기관에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싱크탱크의 경우는 정부의 입맛에 맞춰 연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워싱턴에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연구소들이 생겨나고 있다. dawn@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마당바위를 지나쳐 달리던 영남대로는 국도 3호선과 갈라져 충주시내로 접어든다. 달천(달래강) 오른쪽에 길이 나 있다. 지금은 시가지가 발달돼 있지만 험준한 산들이 없고 널따란 평야지대가 펼쳐져 예전에는 여기부터 행인의 발걸음이 훨씬 빨라졌을 듯하다.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서 국도와 잠시 결별한 옛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대림산성이 나온다. 단월동 창골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성은 둘레 4906m의 토석혼축이다. 높이 4∼6m로 충북도기념물 110호이다. 충주박물관 길경택 학예연구실장은 “신라말·고려초 지은 성으로 앞에 달천이 해자(垓字·성 밖으로 둘러판 못)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라고 말했다. ●임장군, 이심바위 전설로 이 성에 조선 선조 때 지어진 ‘정심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앞을 ‘삼초대’라고 부른다. 작은 산이나 골이 깊고 경사가 크게 져 있다. 입석 안내판에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이 대림산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고 3단계로 석축을 쌓아 무술을 연마했다.’고 써있다. 건너편 산 밑에 장군의 묘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달천을 건너 임경업 장군의 묘가 있는 풍동에서 만난 주민 김희순(73)씨는 “이 마을에 임장군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다 매년 시제에 전국에서 임씨들이 와 제사를 지낸다.”고 전했다. 달천을 따라 삼초대를 거쳐 1㎞남짓 가던 길은 유주막 마을에서 시내 도로와 합쳐진다. 단월역이 있었던 곳으로, 예전에는 주막촌이 형성됐었다. 조선조 학자인 유영길과 동생인 영의정 유영록 등 유씨 가문 사람이 많이 왕래한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유주막에서 풍동으로 가는 달천변 절벽에 이심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도로확장 공사로 사라지고 없다. 이 바위는 임장군이 새벽 훈련을 하고 달천 물을 떠마시려는 순간, 강 속에서 이무기가 나타나자 꼬리를 잡고 내동댕이치자 바위가 움푹 파이며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길은 시 외곽을 흐르는 달천을 따라 가다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렬사와 철불좌상(보물 512호)이 있는 단호사를 지나 달천교에 다다른다. 이 철불좌상은 충주가 예전에는 주요 철 생산지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현재 달천교는 두개가 있다. 모두 2차선으로 서울쪽으로 가는 다리는 1990년에 건설됐고 시내쪽으로 들어오는 것은 1999년에 바로 옆에 만들어졌다. 충주문화원 김영대 사무국장은 “일제시대 초까지 이곳에 나루터가 있고 부근에 뱃사공촌과 주막촌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피눈물 흘린 당간지주 달천교를 건넌 옛길은 국도 3호선과 겹치면서 충주시 주덕읍까지 한참을 내달린 뒤 신니면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3호선을 타고 5∼6분간 달리다 군도 27호로 빠져 면사무소 앞을 지나쳐 다시 그만큼을 달리면 신덕저수지에 도착한다. 널따랗고 시원하게 펼쳐진 저수지 곳곳에 낚시꾼들이 보인다. 당초 군도 27호가 국도 3호선이었으나 몇년 전 국도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이전 길이 군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에서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돌아 깊숙이 들어가면 ‘숭선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은 신니면 문숭리에 해당한다. 이 마을회관 앞에 높이 4.2m에 이르는 사찰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초 숭선사에서 기를 꽂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숭선사는 고려 광종이 954년에 어머니인 신명순성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마을이름도 이 절에서 따와 내려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명순성 왕후는 고려 태조의 비(妃)로 충주유씨 유긍달의 딸이다. 정종과 광종 등 5남2녀를 낳았다. 당간지주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당간지주는 동서 한 쌍이 서 있었으나 일제가 신덕저수지를 만들 때 석재로 쓰기 위해 동쪽 지주를 잘랐다. 하지만 이를 자른 사람이 화를 입어 서쪽 지주가 보존됐다.’고 써 있다. 주민 정건양(88·여)씨는 “일본 사람이 수놈을 가져가 저수지 만드는데 쓰고 암놈을 더 자르려는 데 이 징대(지주)에서 피가 나 못 가져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주의 무릎 부근에 주먹 크기로 파인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지주는 검은 이끼에 덮인 채 볏가마니를 쌓아두는 기둥으로 쓰이고 있었다. 되돌아 나오면 저수지 바로 위에 동락초등학교가 나타난다. 한국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둔 곳이 이 학교이다. ●전쟁과 여교사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김재옥 교사 기념관’이다. 김 교사는 이 학교에 재직하던 한국전쟁 때 승리의 주역이었다.6·25가 터진 1950년 7월7일. 이 학교를 점령 중이던 북한군의 정보를 국군 6사단 7연대 1·2대대에 알려줘 저녁식사 때 기습적으로 공격, 전쟁후 첫 승리를 거두게 한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소탕작전으로 북한군 800명이 사살되고 9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장갑차 3대와 각종 총기를 포획하고 ‘소련제’임을 알리는 총기 1점을 유엔에 보내 참전을 이끌어내는 데 힘이 됐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1명만 경상을 입는 완승을 거뒀다. 김 교사는 이 부대 소대장과 결혼, 남편을 따라 강원도 인제에서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태며 단란하게 지내다 1963년 10월 ‘고재봉사건’ 때 원한대상으로 오인받아 일가족이 몰살되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는 김 교사의 반공정신을 알리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에 상영하기도 했다. 교정에는 ‘김재옥 여교사 충혼탑’이 있고 200여m 전방에 별도로 ‘동락전승비’를 세워 김 교사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곳에서 얼마 안 가면 신니면 모남리가 나온다.‘모도원’이란 돌팻말만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조선조 나그네들이 쉬었다 가던 길로 주막이 많았다. 주민 김성숙(66·여)씨는 “30년전 이사왔을 때는 70가구가 넘었는데 지금은 20가구도 안 된다.”면서 갈수록 작아지는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폐가도 더러 보이고 길 건너에는 폐가조차 한 채도 없어 썰렁했다. 이 마을을 넘자마자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빠지고 군도나 지방도를 따라 옛길은 경기도 용인으로 들어간다. 글 사진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달래강 전설과 문학 옛날 충주 달래강변에 오누이가 있었다. 오누이는 강 건너편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어느 날 오누이는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은 소나기가 퍼부은 뒤라 많이 불어 있었다. 앞서 강을 건너던 여동생의 옷이 불어난 물에 흠뻑 젖으면서 속살이 훤히 내비쳤다. 여체가 아름답게 드러났다. 오빠는 욕정이 솟구쳤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오빠는 들고 있던 낫으로 자기의 성기를 찍었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러자 누이가 통곡하면서 말했다.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했다고 한다. 이 말에서 ‘달래강’이란 강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은 ‘달래’라는 지명이 있는 다른 지방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떠돌고 있다.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낫으로 찍었는지 돌로 찍었는지 명확하지 않게 뒤섞여 내려오는 것을 보면 부풀려져 오랫동안 생명을 이어온 듯하다. 더구나 충주 달래강은 영남대로를 따라 흘러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던 곳이 아니던가. 호기심이 동할 ‘근친상간’ 내용을 담은데다 내용도 애달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전설이다. 충주에서 태어난 ‘농무’의 시인 신경림은 ‘달래강 옛나루에’ 시에서 ‘달래강 옛나루에 목을 잡고/이렁저렁 한세월 녹두적이나 구웠지/여름도 유월 진종일 돌개바람 일고/돌개바람 일어 모래기둥 올리고/어리석은 길손들만 찾아 들더라’고 노래하고 있다. 달래강은 속리산에서 발원해 탄금대까지 120여㎞를 달리는 조그만 천이다. 임진왜란 때 중국의 한 명장이 달래강 물을 떠먹은 뒤 “명나라에서 유명한 여산의 약수보다 낫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런 일로 맛이 단 냇물이라고 해 단냇물이 됐다.‘달다’의 달냇물로 변했으며 한자로 바뀌어 지금의 ‘달천’이 됐다는 설도 있다. ‘저 건너…억새꽃 무더기여, 그걸 보고가면 제일 얕은 여울이여’ 등 달래강을 시로 노래해온 향토시인 임연규(52)씨는 “어릴 적 놀이터인 달래강이 버릴 것 같아 남들에게 자랑도 하지 않는다.”고 애틋함을 내보였다.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 엄인순 사무국장은 “충주에서 태어난 문인치고 달래강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美, 한국군 대상 핵사찰 교육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 전문요원 11명이 11일 방한, 한국군을 대상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전략무기 시설의 사찰방법에 대한 교육훈련에 나섰다.‘한·미 연합사찰 훈련’으로 명명된 이번 훈련은 16일까지 국방부 군비검증단 관계자 2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훈련은 한국측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향후 있을지 모를 북한 핵 사찰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물론 국방부측은 “핵과 재래식무기의 사찰 훈련이 10여년간 중단돼 업무 숙달을 위해 우리측에서 교육을 요청했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안팎에서는 ‘북핵 포기’를 명시한 지난해 9월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의 가시적 일정이 나오는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이란 관측이 유력하다.이번에 방한한 DTRA 요원 가운데 옛 소련에서 핵 사찰에 참가한 경험자들이 다수 포함된 것도 그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국방부가 올초 북한의 핵 검증과 폐기 이행의 모든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판단, 필요하면 즉각적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단계적인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도 들린다.DTRA는 미 국방부 획득군수차관보가 지휘감독하는 기구로,1991년 미·소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에 따라 붕괴한 소련의 핵 물질 확산을 막기 위해 관련시설의 현장검증을 주도한 바 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주일 미군기지를 가다] (상) 美·日 ‘국방공조’의 현장 요코다·요코스카 기지

    |요코다·요코스카(일본) 김상연특파원|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일본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위치한 주일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체감했다. 그 소감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과 한국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더글러스 맥아더와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두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기자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맥아더 어서 오세요. 그런데 세상 등지고 쉬고 있는 늙은이는 뭣하러 불러내셨소. ●기자 ‘한국’의 기자가 ‘일본’에 있는 ‘미국’의 군 기지에 왔으니, 당연히 장군을 찾아야죠. 장군의 이름을 빼고 한·미·일의 근현대 전쟁사를 논할 수 있나요. ●맥아더 그렇게 되나요. 사실 2차대전 종전 전후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죠. 일본인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황을 쥐락펴락하고, 또 한국전쟁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으로 그림같은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죠. 그때 공산주의자들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트루먼 그 자만 아니었다면…. 참, 이거 내가 손님을 앞에 두고 흥분하다니. 실례가 많소. 그래, 둘러본 소감이 어떻소. ●기자 뭐랄까요. 여기 오기 전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별개의 집합이란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한발 물러서 바라보니, 휴전선을 경계로 해양 자유주의 세력(남한·일본·미국)과 대륙 공산주의(북한·중국) 세력이 덩어리져서 대치하는 그림이 확연히 부각되더군요. 알고보니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최전방, 일본은 후방부대 개념이더군요. ●맥아더 그걸 이제야 아셨소?본토의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사세보와 오키나와의 가데나, 후텐마, 화이트 비치 등 주요 미군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즉각 병력 투입이 가능한 유엔사 후방부대들이라오. 미군이 괜히 일본에 5만여명이나 주둔하고 있는 줄 아시오? ●기자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주일 미군기지의 재배치 계획이 2014년 완료를 목표로 한창이더군요. ●맥아더 그럴 때가 됐지요. 사실 처음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들어왔을 때는 전쟁 통에 경황이 없어 아무 데나 막 기지를 건설하고 그랬어요. 이젠 두 나라의 국력도 커지고 국제정세도 변했으니 합리적으로 정비해야죠. 어떻게 바뀌나요. ●기자 가장 큰 변화는 섬 전체가 미군기지화돼 있는 오키나와에서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미 해병대 8000여명이 2014년까지 미국령인 괌으로 이전합니다. 후텐마 해병 항공부대 기지도 오키나와 북부의 슈와브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본토에서도 변화가 있는데, 미국 워싱턴주의 미 육군 1군단 사령부가 도쿄 인근의 자마 기지로 2008년까지 이전합니다. ●맥아더 복잡하군요. ●기자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주일 미 육군의 허브 기지는 자마, 해군의 허브는 요코스카, 공군의 허브는 요코다(수송)와 오키나와의 가데나(전투)기지입니다. ●맥아더 내가 오히려 브리핑을 받다니…. 요코다, 자마, 요코스카 기지는 도쿄에서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지요. 직접 보니까 어떻소. ●기자 먼저 주일미군 사령부와 미 5공군 사령부가 있는 요코다 공군기지를 찾았습니다. 주일미군은 해·공군 위주이기 때문에 공군의 3성(星)장군이 주일미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게 특이했습니다. 그런데 도쿄돔 153개를 모아놓은 크기라는 요코다엔 채 10대의 항공기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평소엔 거의 비어 있다가 한반도 등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군수품과 병력의 집결지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항공기 100대의 동시 작전이 가능한 규모랍니다. ●맥아더 요코스카는 어땠습니까. ●기자 세계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라는데, 겉보기에는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았습니다.1조원을 넘는다는 이지스함이 2척 이상 정박해 있었는데, 외양은 그냥 평범한 군함같았습니다. ●맥아더 이지스함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하드웨어에 첨단 이지스 체계를 갖춘 것이니 그렇겠지요. ●기자 최신 무기인데도 잘 아시는군요. 미 해군의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머스틴’(2003년 취역)과 스탠더드 요격 미사일(SM-3)을 싣고 샌디에이고에서 막 투입된 이지스 순양함 ‘샤일로’가 나란히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 중 머스틴에 직접 오르는 기회를 얻었는데, 배 앞뒤의 대포와 발칸포를 제외하곤 어떤 화기도 돌출해 있지 않은 게 특이했습니다. 심지어는 레이더도 안에 내장돼 있더군요. 이지스 체계를 종합지휘하는 ‘전투정보센터’는 적의 공격을 피해 배의 정중앙에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60㎝가량의 SM-3 발사대가 앞쪽 갑판에 32개, 뒷 갑판에 64개가 뚜껑에 덮인 채로 비치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맥아더 요즘 주일미군의 최대 관심사가 북한 대포동 미사일 요격인가 보군요. ●기자 그런가 봅니다. 미국은 또 10월까지 도쿄 인근과 오키나와에 최신 패트리엇 미사일(PAC-3)을 다수 배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맥아더 아∼, 요코스카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어떻게 변했을지. ●기자 참, 그렇지요. 요코스카는 장군께서 일본으로부터 항복 서명을 받은 곳이지요. 이번에 듣고 놀란 게, 미군이 전후에 요코스카 항을 사용하려고 전쟁 당시 일부러 항만시설에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그런 머리를 내다니,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입니다. ●맥아더 그렇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감정적으로 뭔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착각은 없을 겁니다. ●기자 이번에 주일미군 기지를 돌아보면서 한국내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과 관련해 일부 보수 진영에서 국면을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논리는 둘째치고,‘일본은 연합사 체제로 가는데, 한국은 왜 거꾸로 가려고 하느냐.’‘이러다가 주한미군 사령관은 3성장군으로 전락하고, 주일미군 사령관이 4성장군이 될 수도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주일미군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까 “금시초문”이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오히려 “연합사가 없어도 미·일간에 긴밀한 작전협조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부하더군요. 요코스카에서는 “해상자위대와 미 해군은 1년에 100회 이상 합동훈련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유대를 자랑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맥아더 아, 작통권 말씀이군요. 이승만 대통령이 나한테 작통권을 넘겼을 때 한국군의 역량은 너무나 미약했지요.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겁니다. ●기자 이번에 미국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한국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미군 사령관에게 작통권 논란에 대해 물었더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지도자의 판단을 따르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우리가 그동안 자기비하에 너무 길들여진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는 맹자(孟子)의 경구는 바로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이 안보를 자주(自主) 운운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을 좌파적이니, 친북적이니 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우리 얼굴에 침을 뱉는 자해행위는 아닌지…. ●맥아더 어디가나 국가 대사를 놓고 편을 가르는 것을 즐기는 무리들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군인들이라도 중심을 잡고 ‘의무’‘명예’‘조국’이란 숭고한 단어를 향해 나가야지요.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기자 오키나와입니다. ●맥아더 아∼, 오키나와…. 태평양 전쟁 당시 참으로 격렬했던 곳이지요. carlos@seoul.co.kr
  • 한·미 정상회담때 ‘위협 발사’?

    한·미 정보당국이 최근 북한의 미사일 훈련기지인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에서 대형 차량 여러 대를 포착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깃대령은 지난 7월5일 노동 및 스커드 미사일 6발을 동해 공해상으로 발사한 곳이어서, 정보당국은 이달 중순쯤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북한의 깃대령에서 최근 대형 차량 여러 대가 움직이는 것을 정보당국이 포착한 것으로 안다.”며 “정보 당국은 이들 차량의 움직임이 노동 및 스커드미사일 추가 발사 준비의 일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식별된 차량에 미사일 발사대가 장착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보당국의 관계자들이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정보당국은 “깃대령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차량은 지난 7월5일 미사일 발사 당시 들어간 차량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발사 움직임이나 징후가 포착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중순쯤 미사일 발사 등 ‘추가 위협’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으로 한반도에 국제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시기에 맞춰 북한이 추가 위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만의 하나 이런 정세 속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추가 위협에 나선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보당국은 북한이 추가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형과 시기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두고 여러 개의 북한 미사일 발사기지와 핵시설로 의심되는 지역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치매노인 연기로 TV현대극 컴백 오현경

    치매노인 연기로 TV현대극 컴백 오현경

    참 오랜만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역할로 TV 현대극에 다시 출연한 것이 13년 만이다. 실력파 연극배우로 출발, 브라운관에서 우리를 울고 웃겼던 관록의 연기자 오현경(70)씨. 북한산이 보이는 서울 정릉 산동네의 오래된 한옥집을 배경으로 촬영이 한창인 MBC 주말드라마 ‘누나’(연출 오경훈, 극본 김정수)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땡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모시한복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병마와 싸운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 “건강 회복하고 가족 드라마로 돌아와 기뻐” 극중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 건우(김성수 분)의 할아버지로, 가볍게 치매를 앓아 기억이 오락가락해 식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가끔씩 식구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따끔하게 진실을 말하기도 하면서 가족애를 더욱 부각시키는 양념 역할이다.“치매에 걸린 노인이지만, 대본을 보니 웃음이 나게 썼더라고요.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밝고 긍정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출연을 선뜻 결정했어요.” 그는 아들의 교수 낙방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며느리를 보며 “울면 미워요. 웃어야 이뻐요.”라며 들꽃을 꺾어 전하고, 애인과 헤어져 괴로워하는 손자에게는 “못난 놈, 인생이 얼마나 오래 산다고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 빨리 가봐.”라며 혼낸다. 연극판을 누비다가 TV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TV손자병법’ 등으로 인기가 높았던 그를 왜 한참 볼 수 없었을까.“13년 전 건강진단때 식도에 혹이 발견돼 수술을 했는데 암세포가 발견됐어요. 위 절단수술까지 하고 입원을 하면서 몇년간 연기를 못했죠. 조금씩 회복되면서 연극도 조금 하고, 후배 양성을 위한 연기교육 스튜디오도 운영했어요. 지난해 MBC 사극 ‘신돈’에서 귀여운(?) 노승으로 출연하면서 다시 브라운관에 노크했지요.” 연기에 다시 힘을 얻은 그는 ‘신돈’이 끝난 지 2개월만에 현대극에 캐스팅돼 잘 맞는 역할을 맡았다며 기뻐했다. 그래도 치매 연기는 어렵지 않을까.“나이를 먹어 주변 경험도 많이 봤고, 내면 연기는 연극에서 다져져 어렵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돌아오니 요즘 드라마들이 불륜 등 불편한 이야기가 많아 놀랐다고. 그는 “TV가 흐뭇한 가족애나 모범적인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며 쓴소리를 한다. 또 요즘 배우들은 얼짱·몸짱이지만 화술·발음 등 연기의 기본 훈련이 부족한 것 같다며, 말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강조했다. 1961년 KBS 탤런트로 데뷔, 연기 경력만 벌써 45년째다. 고등학교때부터 연극을 했으니 배우로서는 50년이 훌쩍 넘는다. 그는 ‘성격배우’나 ‘악역배우’ 등 고정된 연기는 무의미하다고 했다.“배우는 모름지기 어떤 역할이라도 맡으면 캐릭터를 창조해야 합니다. 비슷한 역만 계속 맡으면 누구나 잘하겠지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연기자입니다.” # “영화·연극도 준비 중” 유쾌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선물이 또 있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영화 ‘여름이 준 선물’에서 초등학생 3명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네 할아버지로 첫 주연을 맡았다. 지난달부터 거의 매일 촬영을 하고 있다고. 오랜만에 연극도 준비 중이다.“2인극에 도전하려는데 출연진이 적어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부딪쳐 보려고 합니다. 더 늙기 전에 팬들에게 연극 무대에서 저의 남은 역량을 보여주고 싶어요.”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보다는, 몸짓과 말로 이뤄지는 연극을 선호한다고 했다. 잘나가던 톱스타일 때도,‘중견’배우가 뜨는 요즘에도 광고 출연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돈 버는 재주가 없을 뿐더러, 상업성에 물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으로 세운 원칙”이라며 수줍어했다. 그를 반기는 팬들에게 한마디.“많은 사랑을 받다가 10여년간 자취를 감춘 뒤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역할로 다시 돌아왔다는 데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많이 성원해 주세요.”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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