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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새마을운동 중국서 성공할까/이기택 연세대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시론] 새마을운동 중국서 성공할까/이기택 연세대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새삼스럽게 한국의 ‘새마을 운동’(Saemaul Movement)이 국제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은 올 초에 확정한 11차 5개년 경제계획에서 ‘사회주의 신농촌’을 결정했고 인도는 국가농촌고용보장정책이라는 거창한 정책을 발표했다. 동시에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과거의 제3세계 나라들이 새마을운동에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국제화전에 먼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의 배경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1968년 ‘울진·삼척 공비사건’으로 북한 게릴라 120여명이 이 지역에 해상 침투해 1개월 이상 잠복하고 준동했으나 농촌 마을들은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당시 까맣게 이를 모르고 있었다. 한국 농촌은 당시 월남이 ‘베트콩화’의 길을 걷는 것과 비슷했다. 새마을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략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그 하나가 월남의 평정화계획(Pacification Plan)을 위한 ‘전략촌’개념이다. 마을이 베트콩의 침투로 암세포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하나하나를 살려 일정한 지역을 평정화한다는 전시책략이었다. 또 하나 참고할 항목은 마오쩌둥의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다는 농촌과 도시에 대한 전략사상이다. 이런 군사·사회전략은 마오쩌둥의 특기이고 아시아의 중심대륙의 통일을 성공시킨 동시에 장제스를 몰락시킨 전략이었다. 또 하나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구상은 이스라엘의 ‘키부츠’전략촌 개념이다. 키부츠는 대전 직후 영국군이 돌연 철수하면서 물밀듯이 공격해오는 주변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밭을 갈다가 총들고 싸우는”개념이었다. 한국 새마을운동의 본질은 1960년대말 도시중심의 근대화를 시작할 때 베트콩화에 저항하면서 농촌을 생존시키는 전략이었다. 새마을 운동에서 소득을 강조한 이유는 농민들이 ‘자기 것’을 갖게 되면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즉 ‘생존’(안전보장)과 ‘소득’(사유재산제)을 기반으로 새마을운동이 구상된 것이었다. 중국은 1970년대 말로부터 이미 남한의 근대화를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박정희가 주도한 근대화의 비결을 파악하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박정희가 강한 권력으로 근대화를 밀고 가듯 중국공산당이 절대권력을 갖고 밀고 가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중국측은 가졌다. 그러나 중국의 근대화와 한국의 근대화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근대화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원칙인 사유재산제를 굳게 지켰다. 박정희는 사유재산제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난해 중국중앙당 ‘체제개혁연구실’의 초청으로 가서 이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중국 근대화와 한국 근대화에 대한 접근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사유재산제를 종국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중국측은 머뭇거리다 “중국인의 지혜를 갖고 해결할 것이다.”라고 얼버무려 쓴웃음을 웃은 일이 있다. 오늘날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이론이 역으로 중국 근대화에 딜레마를 야기시키고 있다. 해안지대의 도시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해 나가고 있으나 엄청난 농촌의 잠재적인 반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몇천년의 중국 역사는 작은 농촌세력이 일어나 중국의 왕조들을 뒤엎은 역사였다. 명이나 청나라가 그런 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자본주의적인 구상과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켰으나 중국의 ‘사회주의 신농촌’계획은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역으로 험난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새마을운동의 국가전략과 사회적 상황을 비교하지 않고 단지 새마을운동만을 모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기택 연세대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 北 종교침투 경계령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외부에 의한 종교 전파를 체제 위협으로 경계, 차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대북지원단체 ‘좋은벗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북한 노동당출판사에서 펴낸 주민 교육용 ‘강연제강’(강연 자료)은 “우리 내부에 종교를 퍼뜨리는 적들의 음흉한 모략책동을 단호히 짓부수자.”며 미국의 대북 종교문제 제기와 남한 선교사에 의한 종교 전파를 맹비난했다. 강연제강은 특히 남한은 탈북자, 여행자, 무역상을 돈과 물건으로 매수해 내부에 성경책을 비롯한 종교출판 선전물과 녹음·녹화물을 들여보내려고 책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연제강은 선교사를 남한 당국의 ‘정보원’으로 지칭하면서 이들에 의한 주민 접촉과 ‘매수공작’, 적발 사례를 소개했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함북 무산군의 한 여성은 성경책과 기도하는 방법을 적은 수첩을 들여오다 세관에 적발됐고, 다른 여성은 탈북 후 3년 동안 종교교육을 받으면서 북한에서 지하종교조직을 만들 임무를 받았다가 체포됐다는 것이다.강연제강은 “(남한은) 보고 들은 것을 일생 동안 잘 잊지 않는 아동의 특성과 심리를 이용, 철없는 아이들에게 속성 종교교육을 주고 다시 국경을 넘겨보내 (또래) 아이들과 부모에게 종교를 퍼뜨리며 장차 지하종교조직 활동에서 한몫 단단히 써먹으려 한다.”고 비난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클릭 이슈] 위폐의 진실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를 둘러싼 북·미간 대치가 심화되면서, 북핵 6자회담이 난기류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조사, 즉 북한산 위조지폐의 돈세탁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지난 3년간 6자회담 주최국인 중국은 북·미간 진실 공방의 핵심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북·미 어느 한쪽편을 분명하게 들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HEU와 달리 이번 건은 중국이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금융정보담당 차관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북한 위폐 문제와 관련, 심각한 논의를 나눴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9월 재무부가 BDA에 대해 돈세탁우려대상으로 지정하자, 이 은행은 북한과의 거래를 동결했다. 결과발표가 어떻게 나오든, 금융제재 문제를 6자회담과 떼어낼 계기가 될 것이란 게 우리 정부 희망이다. ●“더 이상 진실게임 공방은 안된다.” 정부는 지난 16일 미국 재무부로부터 북한의 위조지폐 증거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그럼에도 “좀 더 사실확인이 필요하다.”면서 미측에 추가 증거자료를 요청했다.“북한을 옹호·변호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확증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뿐 아니라 미 재무부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밝혔다. 확증 없이, 즉 미측이 제시한 상황적인 증거만 가지고 캠페인성으로 몰아갈 경우, 또 다시 진실 공방으로 재연될 수도 있고 이는 HEU 이상으로 한반도 문제해결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리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와 함께 ‘(북한의 위폐 제조가)확실하다면’이란 전제로 “위폐 제조는 준 전쟁행위인 엄중한 문제”란 점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상황만 명료해진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북한의 불법활동 중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 마련 등에 발벗고 나선다는 시나리오도 마련했다. 이는 미국에 대해 추가 증거 제시를 요구하면서 설명하는 설득논리로 보인다. ●북한 위폐 제조·유통 실상은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 증거는 10여년간 재무부내 실무조사팀의 추적과 영국범죄수사대의 도청, 미행 작업이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북한이 제조·유통시키고 있다는 이른바 ‘슈퍼노트’(초정밀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는 비용·기술면에서 민간집단이 하기엔 벅차다는 게 미국 시각이다. 미국은 자국 조폐국에서 쓰는 초정밀 요(凹)판 인쇄기를 북한이 도입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북한산 위폐의 유통액수는 1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은 지폐에 쓰이는 잉크. 스위스산 시변색(視變色)잉크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보이는 잉크로 매우 고가인데 북한이 이를 수입했다. 북한의 500원짜리 지폐 제조에도 쓰이는데 미측은 북한이 자국 돈을 찍는데 이런 비싼 잉크·정밀 인쇄기가 필요치 않다고 보고 있다. 유통시킨 증거로는 지난 98년 영국 수사대가 범죄갱단에 위장침투해 도청한 내용을 꼽고 있다. 갱단 두목이 정기적으로 북아일랜드에 가서 북한산 100달러짜리 위폐를 들여왔고 미국의 추적을 받던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인 션 갈랜드가 모스크바 북한 대사관 사람들과 접촉하고 만나는 장면도 포착했다는 것. 미측에 의해 기소된 갈랜드 당수는 지난 10월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됐으나 보석으로 풀려났다. 갈랜드는 현재 아일랜드로 도주했는데, 미국은 어떤 이유에선지 갈랜드의 신병인도를 요청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北타격목표물 선정 美정부와 갈등빚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지난 1996년 9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에 격분,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 경우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타격할 목표물까지 선정해놓았다고 김동현 전 미 국무부 통역관이 7일(현지시간) 말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같은 대북 군사 행동계획에 대해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거부, 빌 클린턴 행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김 대통령에게 “한·미동맹 성격이 바뀐 거냐.”고 담판하듯 추궁한 끝에 김 대통령으로부터 “행동을 취하기 전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김씨는 전했다.현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인 김씨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강연에서 한·미동맹 관계를 회고하는 가운데 “김영삼 정부때 북한의 잠수함 침투 사건이 재발할 경우 대북 군사행동을 취하더라도 주한미군측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대북 방위태세에 정말 매우 심각한 문제가 빚어졌다.”고 말했다.그는 “김 대통령이 격분, 북한내 타격 목표물도 선정했으나 미국과 협력은 물론 어떤 행동을 취할지 미국측에 알려주지도 않으려 했다.”며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등이각자 한국측 카운터파트를 상대로 무진 애를 썼으나 한국측은 듣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현재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역사를 되돌아보면 양국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부조화나 위기도 극복해왔다.”고 말했다.dawn@seoul.co.kr
  • “54년 北사단장 생포·귀순시켜”

    ‘북파공작원의 대부’로 알려진 김동석(82) 예비역 육군 대령이 6·25전쟁 당시의 첩보활동을 기록한 회고록 ‘This man 전쟁영웅 김동석’을 발간해 군은 물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씨는 23일 “‘북파공작원은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불문율이 있으나 영화 ‘실미도’로 북파공작원 실상이 공개됐고 보상법률이 제정돼 회고록을 발간하게 됐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오는 2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중견 가수인 딸 진미령(본명 김미령)씨와 김성은 전 국방부장관 및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모인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김동석은 누구인가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첩보부대(HID)와 동해안 지역을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며 숨가쁜 첩보전쟁을 진두지휘한 ‘전쟁영웅’이지만 첩보부대의 특성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미국 정부는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 50주년을 앞둔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년여 동안 한국전쟁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씨를 맥아더·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백선엽 육군 대장 등과 함께 ‘한국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할 만큼 그의 활약상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주둔 미 제2보병사단은 2002년 5월7일 경기도 의정부시 소재 캠프 ‘레드 클라우드’내 전쟁박물관에 ‘김동석 영웅실’을 마련하고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했다. 1923년 8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 기슭에서 태어난 김씨는 일본의 압제 하에서 중국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를 거쳐 중국 국민당 애국의용대 부대장과 백범 김구 선생 경호원 등을 지냈다. 귀국해서는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했고 육군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발발 초기 중대장으로 재임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박성철이 지휘한 북한군 15사단을 전멸시킨 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세계에 입문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서 결정적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렸다.특히 서울에 최초로 진주한 북한군 105전차사단 1대대장 김영 소좌가 포로로 잡히자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여 평양 입성의 결정적 정보를 캐내기도 했다. 이후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할 때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었다.5·16 쿠데타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61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삼척·강릉·속초·목포·수원시장 등을 거쳐 함경북도지사 등 행정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월 2~3회 침투 공작” 김씨가 회고록을 통해 밝힌 내용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전 직후인 1954년 2월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납치한 부분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휴전 직후인 1954년 2월8일 적진에 잠입한 육군첩보부대 제36지구대 공작대원들이 강원도 통천 부근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매복 중 생포해 귀순하게 했다.”며 생존자인 H·J·K씨의 실명을 소개했다. 북파공작과 관련해서는 “제36지구대는 휴전 전까지 원산 남방 고성에 제1지대, 원산만 능도와 여도에 제2지대, 명천 앞 양도에 제3지대를 배치해 기상 조건에 따라 월 2∼3회 침투공작을 했다.”면서 “휴전 후에는 강원도 모 해변으로 철수해 공작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고 털어놨다.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도 관심거리다.그는 “박정희와 정일권이 일본군으로 만주에 근무하다 무장해제당한 다음 귀국을 서두르다 (1945년 10월) 일본 육사 교육을 받은 ‘친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소련군에 체포됐다.”면서 “이송 도중 화물기차에서 뛰어내려 인근 산 속으로 도주한 두 사람을 조선애국의용대 대장으로서 안전하게 국경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도록 도와줬다.”고 회고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새로 알려진 것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話) 등이 여럿 포함돼 있다. ●“제주도, 미군기지 될 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5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국방 각료회담에서 최영희 국방장관은 주일 미군기지의 한국 유치 의사를 피력했다.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기지를 한국으로 옮긴다면 필요한 토지까지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닛즈 당시 미 국방차관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듬해 6월3일 서울에서 열린 2차 국방 각료회담에서는 이전 대상 지역이 ‘제주도’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임충식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오키나와기지를 제주도로 옮긴다면 공군 및 해군기지를 만들어 주겠다. 이 경우 여러가지 면에서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패커드 차관이 “제의를 염두에 두고 세계적인 기구를 포함해서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이 제안은 특별히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정보 수집차 북파 공작원 보내겠다.” 1차 각료회담 때 한국측은 정보 수집력 보강을 위해 북한지역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최 장관은 “제3국이나 일본, 자체 수단 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국제법 때문에 현재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는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라운 주미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첩보원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최 장관은 “내가 헌병사령관 당시 첩자를 보낸 일도 있고 사진도 찍은 일이 있다. 한국은 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1951∼1994년 1만 3000여명의 북파 공작원이 양성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너무 싼 파월 국군 몸값 당시 파월 한국군의 해외 근무수당을 보면 준장∼중장이 일당 7∼10달러였고 이병∼병장은 1.25∼1.80달러였다. 당시 국내에 있던 이병의 월급이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타 국군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태국군의 경우 한국군보다 최고 1.5배(장성급)의 해외근무수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미군 1인의 전쟁관련 전체비용을 1만 3000달러, 필리핀 비전투요원은 7000달러, 한국군은 5000달러로 잡았다는 통계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각국별 해외근무수당은 해당국의 국민소득 등을 감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미측이 대선 때문에 종전 분위기 띄우고 있다.” 철군 논의가 한창이던 1971년 4월 한국 외무부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1972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월남전의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국내(미국)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앞으로 월남에 대한 협력체로 참전국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등도 참여시켜 미국의 책임을 경감시키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한국 축구가 위기에 휩싸여 있다. 북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4개국 대항전인 동아시아연맹축구선수권 3경기에서 단 1골만을 넣은 채 2무1패의 ‘꼴찌’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내년 6월 초 개막하는 독일월드컵을 불과 10개월 남겨 놓은 중요한 시기에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단일대회 최하위라는 성적에 축구계는 당혹해 있고, 팬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있다. 월드컵 4강의 쾌거를 달성한 지 3년 만에 밑바닥까지 추락한 한국축구의 위기는 누가 불러온 것인가. 조 본프레레 감독인가, 선수들인가. 위기를 돌파할 카드는 없는가. 본프레레호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골맛을 보여달라 본프레레 감독은 일본과의 최종전을 0-1로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에 만족한다.”면서 “젊은 국내파들을 시험하기 위한 무대였다.”고 책임을 피해 갔다. 그러나 그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동국(26·포항)의 말처럼 팬들은 좋은 경기 내용보다는 이기는 축구를 원한다. 그는 결국 경질론에 직면해 있다. 본프레레호에 쏟아진 비난 가운데 가장 큰 건 ‘뻥축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3경기에서 모두 51개의 슈팅을 날려 단 1골만을 뽑아냈다. 그것도 최후방 수비수 김진규가 프리킥으로 뽑아낸 것이었다. 성공률이 겨우 1.96%에 그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진이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세트 플레이’의 실종은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측면 돌파 요원들의 부정확한 크로스뿐 아니라 최전방에서 보이는 침투패스의 부재는 골결정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특히 측면 날개의 임무를 맡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저조한 돌파능력은 득점루트를 더욱 단조롭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감독의 전술과 전략의 부재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취임 14개월 ‘테스트´ 일관 북한의 김명성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를 0-0 무승부로 끝낸 뒤 한국을 얼마나 연구했느냐는 질문에 “부임한 지 이제 한 달인 데다 지난 우즈베크전을 녹화로 본 것밖에는 없다.”면서 “선수 파악을 위해 전반전 수시로 선수 교체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본프레레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지난해 6월24일 정식으로 사령탑에 앉았다. 달 수로는 현재 14개월째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고백처럼 ‘테스트’로 일관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험’은 계속됐다. 그 결과 매 경기마다 선발 출전 선수를 놓고 교체와 복귀를 거듭하는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실패한 ‘용병술’로 낙인찍혔다. 문제는 가장 우수한 공·수의 조합을 찾아내는 노력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시간이다. 이제 독일에서 벌어질 ‘축구 대전’은 꼭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하루빨리 실력차가 크지 않은 선수 25명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자신의 말은 아직도 선수 파악을 끝내지 못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감독·선수 문제점 처방이 먼저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경질론이 물 끓듯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대안부재론. 독일월드컵 개막을 불과 10개월 남기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찾을 대안이 없는 데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게 요지다. 대한축구협회도 8일 “팬들의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겠지만 감독 경질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교체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원칙론이 제기된다.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감독 경질에 대한 선행 과제는 대표팀의 전술적·기술적 부분에 대한 다각도의 점검”이라면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팀 경기력이나 감독의 능력에 대해 냉철히 평가한 뒤 대표팀의 문제점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말했다. 김호 전 프로축구 수원 감독은 “히딩크 감독 시절 이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때의 ‘4강쇼’에서 깨어나지 못한 협회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대한축구협회의 자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한 감독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체질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동아시아축구대회] ‘컬러’도 ‘킬러’도 없다

    ‘이제는 본프레레호를 수술대 위로 올릴 때’ 이번 동아시아축구선수권에서 색깔없는 전술과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졸전 끝에 최하위(2무1패)의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한국 축구에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7일 숙적 일본에조차 참담한 모습으로 패하자 이러한 여론은 더욱 비등해졌다. 8대 11로 싸웠던 중국전, 무의미한 크로스만 난무했던 북한전, 그리고 이날 일본전까지 대표팀이 뽑은 골은 고작 1점. 지독한 골가뭄이었다. 단순히 나쁜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 내용이 최악에 가깝다는 것이 비판의 주 요체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대목은 본프레레 감독의 용병술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동아시아대회는 국내선수들을 시험하는 장”이라면서도 고집스럽게 이동국(26)만을 원톱으로 기용하고, 중앙 미드필더에 김두현(23) 백지훈(20) 등 공격적 침투패스가 가능한 선수의 기용에 인색했다. 김영광(23)과 같은 차세대 골키퍼를 단련시키지 않는 점 등도 용병술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다. 코너킥과 프리킥 등 조직적인 세트플레이의 부재도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 대목이다. 불신의 또 다른 이유는 최고 수장으로서의 책임감 부족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그동안 경기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전술은 완벽했지만 선수들이 그 전술 운영을 이해하지 못했다.”,“정신력이 해이해졌다.”는 등으로 선수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일쑤였다. 기존 선수를 최적의 위치에 조합하고 배치시켜야 할 책임, 그리고 좋은 선수를 발굴할 책임 모두가 감독에게 있음을 외면한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 역시 쏟아지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 지난 4일 북한과 경기를 마친 뒤 “새로운 선수들을 기용해 실험했다.”고 졸전의 의미를 애써 축소한 뒤 “일본전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공언, 오히려 자신의 등을 스스로 떠민 꼴이 됐다. 이 탓에 독일월드컵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감독 교체를 포함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해졌다. 축구협회는 “감독 경질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팬들뿐 아니라 축구전문가들조차 경질론에 가세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본프레레 감독의 계약기간은 내년 독일월드컵까지. 협회로서는 10억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머뭇거리게 하는 대목이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05동아시아연맹축구선수권대회] “골 넣어 기쁘지만 미안” 결승골 넣은 박은정

    남북 자매의 맞대결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박은정(19·여주대)은 한국 여자축구 ‘골든 제너레이션’의 선두 주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6위로 북한(7위) 중국(8위) 일본(11위)보다 한참 뒤처진 한국 여자축구가 이번 대회에서 2연승의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 8부능선을 넘어선 데는 바로 2004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19세 이하) 우승의 주역들이 대거 대표팀에 합류한 덕이 크다.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서울시청), 한송이(20·여주대) 등 어릴 때부터 유소년 축구를 경험해 뛰어난 개인기를 보유한 ‘골든 제너레이션’이 주축을 이룬 것. 그 중심에 바로 공격수 박은정이 버티고 있다. 170㎝,63㎏으로 여자 축구선수로는 보통 체격인 박은정은 순간적인 파워가 좋고 공간 침투 능력이 뛰어나며 100m를 14초에 주파하는 스피드도 갖췄다. 때문에 폭발적인 파워로 골격이 큰 움직임을 보이는 박은선과 최고의 투톱 조합을 이루며 수많은 골을 합작했다. 박은정은 아시아청소년대회 4강 태국과의 경기에서 2골을 작렬시켰고, 베트남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는 등 탁월한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날도 후반 20분 안종관 감독이 믿고 투입한 지 12분 만에 왼발로 감각적인 골을 터트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골을 넣어서 북한 선수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꼭 잡아야 할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기뻤다.”는 박은정은 “안종관 감독이 과감하게 슛을 때리라고 주문해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며 밝게 웃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제2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겨우 체면치레

    ‘열명과 싸운 85분의 답답함, 여덟명과 싸운 황당한 마지막 7분’ 졸전이었다. 상황에 맞는 감독의 전술 변화도 없었고,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도 없었다. 31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된 제2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무려 3명이 퇴장당한 중국에 먼저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다니다가 김진규의 프리킥으로 겨우 동점골을 만들며 1-1로 비겼다. 한국은 시작부터 산뜻하지 못했다. 이동국(26)을 가운데 놓고 김진용(23)과 이천수(24)를 양쪽에 세운 공격라인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했고, 미드필더들은 소극적인 횡패스만 반복할 뿐 수비라인을 허무는 날카로운 종패스는 없었다. 수비라인 역시 여전한 조직력 불안을 노출, 첸타오(20) 시에후이(30) 등에게 뚫리기 일쑤였다. 다행히 0-1로 끌려가던 후반 27분 이동국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얻어낸 30m짜리 프리킥을 막내 수비수 김진규가 직접 때려 원바운드로 골대 오른쪽 깊숙한 곳으로 넣었다. 이후 공격진은 수적 우위 속에서도 변변한 슈팅조차 제대로 날려보지 못했다. 후반 37분 이동국의 강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나온 것과 김동진이 얻은 페널티킥을 이동국이 실축한 것이 두고두고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선제골은 중국의 몫이었다. 후반 7분 순샹(23)이 골문 왼쪽으로 쇄도하며 골키퍼 이운재의 머리 위를 넘기는 왼발슛, 선제골을 뽑아냈다. 중국으로서는 지긋지긋한 공한증(恐韓症)을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 하지만 전반 5분 가오린(19)이, 종료 7분 전에는 차오양(24)과 리웨이펑(27)이 잇따라 퇴장당해 스스로 자멸했다. 중국은 지난 78년 이후 한국과 26경기(15승11무)째 무승. 본프레레 감독은 중국전 무패 기록은 이어갔지만 수적 우위를 효과적으로 살리는 전술 변화를 갖지 못한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북한은 전반 26분 김영준의 그림 같은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 일본을 1-0으로 꺾고 월드컵예선에서 당한 2패를 깨끗이 설욕했다. 대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감독 한마디] ●한국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측면과 미드필드 압박으로 경기를 풀어갔는데 침투패스가 부정확해 원투 콤비네이션 협력 플레이를 못하고 공이 뒤로만 돌았다. 때문에 중국 수비진에 많은 시간과 정비할 여유를 줬다.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은 게 그나마 수확이다. ●중국 주 구앙후 감독=8명이 남은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한 우리 선수들은 멋진 사나이들이다. 아시아의 강팀 한국에 배울 점이 많았다.
  • [사설] 軍, 부실문책이 잇단 사고 부른다

    군에서 또 한심하고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저께 밤 강원도 해안에서 순찰근무중이던 소초장과 사병이 괴한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소총 2정과 실탄 30발을 탈취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장병 2명은 괴한들에 의해 승용차 트렁크에 갇힐 정도로 무기력하게 무장해제 당했다. 해안근무는 적의 침투에 대비한 최전방으로 근무의 긴장도가 철책선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장교와 사병 2명이 괴한 2명에게 이렇게 어이없이 당했다면 실제 침투상황이라면 어떻게 됐을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군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얼마전 비무장지대 철책선이 뚫렸고, 북한군인이 저항없이 남쪽으로 넘어오기까지 했다. 더욱이 최전방 초소에서 총기참사가 빚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군은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나 기강확립 대책을 내세웠지만 효과가 없었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무장경계병이 생명과 같은 총기를 뺏긴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작전실패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다. 총기탈취범들이 어떤 참사를 빚을지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군에 필요한 것은 투철한 군인정신과 기강확립이다. 최근 총기참사나 철책선 사고 등과 관련해 국방장관이나 해당 지휘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총기참사 부대 지휘관도 감봉3개월의 징계에 불과했다. 이런 솜방망이 문책도 군의 기강을 흩트리는 데 일조했다고 우리는 본다. 군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특수집단이다. 군이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과 총체적 점검이 시급하다.
  • 나사풀린 軍…해당부대 北잠수함 침투때도 곤욕치러

    북한 잠수함 사건, 주민들에 의한 무장간첩 시체 발견에 이어 10년 사이 같은 부대에서 또다시 총기 탈취사건까지 발생하자 해당 군부대의 기강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강릉·동해·삼척 등 강원도 동해안 경계를 맡고 있는 육군 철벽부대는 1996년 9월18일 강릉 강동면 안인진리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어 1998년 7월12일에는 동해시 묵호진동 해변에서 기관단총을 휴대한 북한 무장간첩 시체 1구와 침투용 추진기 1대가 주민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 육군은 기존 부대를 해체하고 1998년 12월 새로운 사단을 창설, 동해안 경계 임무에 투입했지만 이번에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해안 경계초소 인근에 민간인들의 접근이 수시로 이뤄지고 이로 인해 초병들이 민간인들에 대한 경계 심리가 느슨해져 빚어진 것으로 풀이했다. 육군 철벽사단 예하 해안 경계초소는 심지어 해안철책선 바로 옆에 유흥카페까지 있다. 실탄으로 무장한 군 장병들이 피서객들과 뒤섞인 가운데 해안선을 지키고 있어 당초부터 각종 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군 관계자는 “최근 전방 해안 인근 부대의 경우 해안에 설치된 경계용 철조망을 풀어 달라거나 부대쪽의 해수욕장을 개방해 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군부대 입장에서는 대민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합참 관계자는 “설령 평소 민간인과 자주 접하는 곳에서 경계를 서거나 순찰을 돈다 하더라도 심야에 나타난 남자들에게 다소간의 경계심을 갖고 대했다면 총기 피탈로까지 이어졌겠느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순찰자들이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봤을 때 제자리에 설 것과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수하(암구호)를 요구하는 상식적인 대응만 했더라도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지역의 경우 민간인들의 왕래가 워낙 많다 보니 부대측은 한 곳에서 근무하는 초소 근무자들에게는 평소 민간인들의 총기 탈취 우려 등에 대해 교육을 시켜 왔으나, 초소 순찰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간인이 밤낮없이 드나드는 관광지인 동해안의 특성상 민간인 출입이 일절 차단된 휴전선과는 작전 환경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동해 조한종·서울 조승진기자 bell21@seoul.co.kr
  • [軍 총기난사 ‘충격’] GP는 어떤곳

    19일 새벽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GP(Guard Post)는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MDL) 사이에 설치된 최전방 전초(前哨) 또는 감시초소다. GP는 남방한계선과 MDL 사이의 보통 2㎞ 정도의 비무장지대 지역을 가리키는 GOP(General Out Post·일반전초)와 대비되는 것으로 휴전선 부근에서 북한 초소들의 동태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최전방 관측소로도 불린다.30명 내외의 1개 소대병력이 2∼3개월씩 교대하며 경계근무를 선다. 주요 임무는 24시간 북한군 동태 감시와 적침투 및 매복의 조기 발견 등이다. GP는 북한 GP와의 거리가 서부전선의 경우 수백m에 불과, 소총의 유효사거리내에 위치해 있고 초소 주변의 지뢰 매설로 사고 위험이 높아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1개 초소 근무는 약 2시간이며 초소에는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복수 인원이 근무를 선다. 병사들은 근무 교대 후 상황병이나 불침번의 안내에 따라 소지했던 수류탄과 실탄을 상황실에 반납하고 빈 소총만 갖고 내무반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실탄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 자살이나 살인, 안전 사고 등의 위험이 늘 따르는 곳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4㎞지역의 비무장지대는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적의 침투나 동태 감시 등을 위해 이 지역에 GP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양측은 다만 중화기를 배치 또는 무장하지 않고 소총 등 개인화기만 휴대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日소설 ‘반도에서 나가라’ 저자 무라카미 류 이메일 인터뷰

    북한의 특수부대가 일본에 침투, 인구 100만의 도시를 전격 점령한다. 그러나 점령은 잠시, 일본의 부랑 청년들이 이들을 격퇴한다. 언뜻 황당무계해 보이는 가상소설 ‘반도에서 나가라’가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독자층이 넓고 최근 두차례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 ‘도쿄 데카당스’를 연출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최신작이다. 일본 출장 중이던 기자는 그를 만나보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그는 콘서트의 연출을 위해 쿠바에 가 있었다.“이메일 인터뷰는 어떻겠느냐.”는 출판사 제안에 아쉽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더니 며칠전 그로부터 회답이 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북핵문제, 냉각된 한·일관계 속에서 그가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 그 궁금증에서 이 인터뷰는 마련됐다. 이 소설을 쓴 계기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으나, 어쨌건 여러 의미에서 필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구상했나. -90년대 중반부터다. 지금 북한 핵이 동북아시아에서 큰 문제가 돼있지만, 소설을 쓸 때부터 그런 예감은 있었나.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는 소설 구상 때부터 예감이라기보다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었다. 소설은 일본 경제가 파탄나고,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 일본 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는가. -일본 경제는 반석 위에 있지 않다. 국가재정은 더욱 취약하고 위기적인 상황이다. 북한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의 반란군을 소재로 한 이유라면. -반(反)김정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 단 그것은 아마도 강경파 장군에 의한 것이지 민주적인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반란군을 소재로 삼은 것은 정규군이라고 하면 단순한 국가간의 전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반란군이 일본에 침입한다면 일본, 나아가서 미국이 반드시 대응을 하겠지만, 이런 과격한 소설을 구상한 것은 왜인가.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때 그때 미·일 관계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난 지금 미·일 관계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존경심이 없다. 한국에서 이 소설이 번역 출판된다면 한국 독자로부터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 -반발은 일본에서도 있었다. 어떤 소설이라도 반발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반발의 내용에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반란군으로 나오는 인물이나 북한의 습관 등을 읽으면 상당히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어느 정도 준비를 했는가. -기간으로 치면 2년이다. ▶서울에서 탈북자를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어떤 탈북자에게서 들었는가. -그분들과의 약속 때문에 그것은 비밀이다. 반란군(고려군)을 물리치는 것이 일본 정부도, 영웅적인 인물도 아닌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젊은이들이다. 그들을 고려군에게 대항시킨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소설의)테마 그 자체와 비슷한 것이라 한마디로 얘기할 수 없다. 그런 뜻은 모두 소설에 담겨져 있으므로 독자들이 각자 느끼면 될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놓여있는 상황은. -한마디로 얘기할 순 없지만, 한가지를 들자면,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경제력이라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일본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것으로 묘사돼 있는데, 지금의 미·일 관계를 보면 일본은 완전히 미국 추종형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지금의 미·일은 진정한 신뢰가 아니라 ‘추종하는 것’으로 묶여져 있어서 그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간단하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핵·납치문제 등으로 암초에 부딪쳐 있는 상황이다. 양국이 수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국교정상화 보다 납치문제의 해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이 ‘미적지근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미적지근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고도성장을 달성한 뒤부터다. 정치인, 그리고 일부 매스미디어를 한심한 모습으로 등장시키고 있지만 현실도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대북 문제에 관한 일본 언론의 보도자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심한 게 아니라 국제적 위기에 익숙해 있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언론은 ‘현재(現在)’를 정확히 전달할 패러다임을 갖고 있지 않다. 소설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불과 6년 뒤의 일이다. 굳이 북한 반란군의 일본 점거라는 설정이 아니더라도 그런 위기가 가까운 미래 일본에 찾아 올 것으로 보는가. -신(神)이 아니고서는 그건 누구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있다. 앞으로 10년 후의 일본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가. 또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년 후의 일본은 일본인의 행동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일본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외국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는 것 이외에는 달리 없다고 본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반도에서 나가라’ 무슨 내용 때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6년 뒤의 2011년. 달러의 폭락, 패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團塊·단카이 세대)에 줘야 할 퇴직금의 지급 불능 사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일본의 지방채·국채가 대폭락하게 된다. 일본 국민의 예금이 동결되고, 소비세는 17.5%로 껑충 뛰어오른다. 재정은 파탄에 빠져들어가고, 일본의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해 가는 정세 속에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작전명 ‘반도에서 나가라’이다. 그해 4월, 반란군을 가장한 북한 특수부대가 일본에 침투한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 9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는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규슈 후쿠오카 돔을 무력점거하고 3만명의 관중을 인질로 삼는다.484명의 후속부대가 특별수송기에 실려 들어오고, 후쿠오카시는 이들에게 접수된다. 점령군으로서 이들은 시의 정치·경제·사회를 장악하고 통치를 시작한다. 북한이 이들을 정규군이 아닌 반란군으로 가장시킨 것은 작전의 성패에 관계없이 국제사회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이었다. 작전의 목적은 초강대국 중국과 미국 사이의 동북아 완충지대를 한반도에서 일본의 규슈로 옮기겠다는 데 있었다. 고려군(高麗軍)으로 자칭하는 이들은 후쿠오카시에서 가혹한 통치를 펼친다. 미국조차 등을 돌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본 정부는 인명을 중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후쿠오카를 봉쇄한다. 사실상 후쿠오카를 버린 셈이다. 그렇지만 고려군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친다. 이른바 사회의 틀에서 튕겨져 나간, 사회 부적응 청년들이 항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독충사육·사제폭탄·군사 마니아와 같은 상식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대항 테러를 개시하고, 고려군을 열도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저자의 의도는 이 소설은 나종일 주일대사가 “대사관 직원들에게 일독을 권했다.”고 할 만큼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라는 설정을 통해 일본 사회를 다중적인 시각에서 진단한 일종의 정치소설이기도 하다.29년에 걸친 작품생활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상·설정이 대담하고, 작년 서울에서 탈북자 10여명을 만나 취재하는 등 치밀한 조사에 바탕을 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이다. 그러나 북한 특수부대의 일본 침투→가혹한 점령통치→궤멸이라는 상황설정 때문에 우리에게는 께름칙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읽기에 따라서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 속에서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는 일본이 가까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를 인식하고 대오각성, 대단결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적 메시지가 소설의 이면에 숨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두꺼운 독자층을 자랑하는 무라카미 류이지만 주변국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점, 악화된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이 소설의 번역본을 곧 우리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책을 펴낸 일본의 겐토샤(幻冬舍)측은 “현재 몇몇 한국 출판사가 교섭을 하고 있으나 아직 출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출간된 이 소설은 원고지 1650장 분량. 핵위협, 일본인 납치문제로 ‘최대의 적’이 돼버린 북한을 소재로 한 점,“무라카미가 썼다.”는 입소문에 힘입어 상권 29만부, 하권 21만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어있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무라카미 류는 누구 ▲1952년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 출생, 본명 무라카미 류노스케 ▲무사시노 미술대학 중퇴 ▲대학 재학중인 76년 첫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군조(群像)문학상,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 ▲저서로는 ‘코인로커 베이비즈’‘사랑과 환상의 파시즘’,‘토파즈’,‘5분후의 세계’ 등이 있다.
  • 일제피해자 개인청구권 “국내청산 우선 추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21일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문제와 관련,“우리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국내적 과거사 청산을 선결 과제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체결된 지 40년이 지난 한·일협정의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이같이 답변했다. 한편 국방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 독도 관련 부분이 누락된 것이 의도적이었다는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의 주장에 대해 ‘독도 누락’은 백서 구성상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국방부 윤영식 기본정책담당관은 “침투·국지 도발 대비태세 항목은 주로 북한을 겨냥해 이뤄진 것으로 이번에 누락된 울릉도, 마라도, 독도는 당연히 우리 영토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유학과 사회주의는 통한다?

    ‘사회주의와 유학(儒學)은 통한다(?).’ 이번 3·1절에 서훈을 받는 좌파계열 독립운동가 중에는 한국 유학의 본고장 경북 안동 출신이 많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정은(51) 수석연구원은 “유학과 사회주의 사상이 일맥상통하는 것이 한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유학사상이 널리 퍼져 있고 사회주의자도 많이 나왔지만 퇴계 이황(1501∼1570)이 태어난 안동의 유학중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훈을 받는 좌파계열 독립유공자는 54명으로 이 가운데 5명이 안동 출신이다. 남북한 시·군이 500개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서훈자 면면을 봐도 독립장을 받는 권오설을 비롯해 김재봉·권오돈·김남수·안상태 등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다. ●명분중시하는 분위기 탓? 이 수석연구원은 유학과 사회주의의 비슷한 측면으로 무신론과 이상주의를 들었다. 그는 “유학이나 사회주의는 내세(來世)를 얘기하지 않고 초월적 존재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또 사회주의는 유학처럼 현실에서 이상적 이념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의 기본이념은 대동(大同)과 균분(均分)사회.‘나와 남을 가르지 않고 다같이 나누면서 잘사는’ 사회를 표방한다. 평등을 내세우는 사회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수석연구원은 “유학은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이 균형을 유지하고 향약을 통해 가정에 침투하면서 뿌리를 내렸으나 사회주의는 혁명과정에서 권력화, 중앙집권화, 관료화돼 실패했다.”면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와 유학은 근본적으로 이념이 비슷해 안동의 명문가 양반 출신들이 좌파로 쉽게 빠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소 김희곤(안동대 사학과 교수) 소장도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하는 독특한 지역 분위기가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것 같다.”고 거들었다. ●이육사 등 259명 배출 안동에서는 좌파계열 외에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가곡 ‘선구자’의 노랫말에 나오는 일송정의 주인공 김동삼과 김지섭, 이육사 등이 배출됐다.2002년까지 인구 17만명의 안동에서 배출한 독립유공 포상자는 모두 259명으로 전국 시·군 중에서 가장 많고, 광역 시·도인 서울 215명, 인천 44명, 제주 118명 등보다도 많았다. 포상받지 못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안동의 독립유공자는 모두 7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1905년 을사늑약 후 자결한 순국자 68명 중에도 10명이 안동 출신. 김 소장은 “명분을 중시하다 보니 ‘죽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는 의식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퇴계학맥의 결속력이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퇴계의 성리학을 바탕으로 다져진 사제지간과 혈맥관계 등으로 결속력이 매우 강해 한 가족이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떠나면 주변 가족도 따라갔다. 퇴계 학맥이 이어지면서 다른 지역이 한두 번 독립운동을 한 것에 비해 안동에서는 1894년 국내 첫 의병이 일어난 뒤 독립운동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퇴계 학문의 본산인 도산서원 인근 마을인 안동시 도산면 하계리에서는 모두 21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김 소장은 “호남과 충청지역은 마름을 두는 대지주가 많아 계급갈등이 심했지만 안동은 중소지주가 많아 덜 했으며, 명분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양반들이 관직 등에 연연치 않고 독립운동에 손수 나서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지금도 안동은 사돈의 8촌까지 다 꿰야 양반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상당히 유교적이다.”라고 말했다. 안동 한찬규·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동해안으로 떠나는 새해 일출여행

    동해안으로 떠나는 새해 일출여행

    삶은 해마다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아름답다. 지난 한해가 아쉬웠든 힘들었든 어떠랴. 우리에겐 묵은 고민을 털고 새로운 날을 맞을 수 있는 시간이 준비돼 있지 않은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동안 힘들었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자. 우리 가족이 새해에 이뤄야 할 꿈은 무엇인지 힘차게 솟구치는 ‘불덩이’에게 외쳐보자. 그런데 일출을 보러 가는 길이 힘들어서,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새벽 바닷바람이 부담스러워 해맞이를 포기한다? 그건 변명일 뿐이다. 조금만 꼼꼼하게 찾아보면 춥지 않고 편안하게 일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호텔이나 콘도, 민박집이 적지 않다. 새해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해맞이를 즐겨보자. ●창밖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일출쇼’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수평선 위로 낮게 깔린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불덩이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힘차게 하늘로 솟구친다. 마치 천지창조의 신새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입에서는 짧은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오전 7시40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콘도에서 본 일출은 잠시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콘도 베란다에서 바라본 일출이었지만 직접 바닷가나 전망대에서 나가 본 일출과 다름없을 정도로 진한 감동을 일으켰다. 쌉싸래한 바다 내음과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손에 잡힐 듯 다가온 홍시같은 붉은 해는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동해안에는 이 처럼 바닷가에 인접한 콘도와 호텔, 민박집이 많아 가족단위 일출 여행에 적합하다. 노령의 부모나 갓난아기가 있어도 좋다. 베란다 창밖으로 또는 콘도 입구에만 나와도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불과 12㎞ 떨어진 금강산콘도(033-680-7800)는 바닷가에 가장 인접한 콘도. 창밖에 펼쳐지는 청정해역 마차진리 앞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해오름의 절경과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희미한 등대 불빛, 고기잡이 어선의 움직임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221개 객실 중 111개 객실에서 ‘일출쇼’를 볼 수 있다. 또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해안 인근에 자리잡은 하일라비치(631-7601)와 천진블루비치호텔(681-1070)도 동해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이름난 숙박지다. 속초시 낙산비치호텔(672-4000)은 관동 팔경의 으뜸인 낙산사 의상대와 확트인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낙산사 경내에 위치해 있다. 인근 해맞이 모텔과 바닷가모텔, 설악웰컴콘도 등도 바닷가로 향한 객실이 있어 일출을 보기에 충분하다. 대표적인 일출 명소인 정동진에는 썬크루즈(610-7000)도 있다. 정동진 해안 절벽위에 세워진 초호화 육상유람선으로 211개 객실 중 100개 객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또 강릉에는 현대 경포대호텔과 경포타임모텔, 동해시에는 동해비치호텔, 꿈의궁전호텔, 별장모텔 등이 있다.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해맞이는 상서로이 새해를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족과 함께 해맞이를 하러 온 김선미(35)씨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위해 기억에 남을 멋진 여행을 하고 싶었다.”면서 “일출을 보며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고 즐거워했다.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는 “함경도가 고향인데 연초에 한번은 고향땅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가야 일년내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애인과 정동진을 찾은 20대 후반의 한 직장인은 “친구가 정동진 일출을 보러 갔다 온 뒤 결혼에 골인했다는 말을 듣고 이 곳을 찾았다.”며 “해가 떠오르는 순간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라며 작업중(?)임을 암시했다. 한편 대부분의 숙박시설에는 대규모 인파가 찾는 설날 아침과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지만 평일에는 예약이 어렵지 않다. 휴일을 피해 해돋이를 감상하는 것도 복잡함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꼭 챙기세요각 지역의 일자별 일출·일몰시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천문연구원(www.kao.re.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이것도 함께 ‘해’요 동해안 일출 여행의 장점은 가족들과 함께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7번 국도변에는 설악산과 낙산사 등 명승지가 많다. 고성 통일전망대는 우리나라 최북단 전망대. 날씨가 맑은 날에는 휴전선 너머 북한 지역과 금강산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 마을을 지나간다. 그러나 민통선 지역이라 출입이 다소 까다롭다. 금강산콘도 인근에 있는 통일전망대 안보공원(033-682-0088)에 들러 출입신청서를 작성해야 하고 8분짜리 안보영화를 봐야한다. 아이들에게 통일의 꿈을 심어주는데는 제격이다. 속초로 내려오면 아름다운 경치와 수려한 산세로 우리나라 제일산으로 꼽히는 설악산에 이른다. 권금성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직접 산에 오르지 않아도 설악산의 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관리사무소(636-7700). 이어 신라고승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672-2447)의 홍련암과 해수관음상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의상대의 일출은 강원도 지방문화재 48호로 지정돼 있다. 관동팔경 중 한 곳인 양양의 하조대는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에 세워져 기묘한 풍광을 자랑한다. 하조대 무인 등대앞 파도의 몸부림도 장관이다. 강릉 정동진에 내려오면 정동진역과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모래시계 공원(640-4533)이 있다.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0m, 모래무게 40t으로 세계 최대 모래시계로 1월1일 0시 반바퀴 돌려 새롭게 시작한다. 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에 위치했다 해서 붙여진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기도 하다.96년 침투한 북한무장잠수함의 내부를 실제 들어가 볼 수 있는 통일공원(640-4469)도 인근에 있다. 먹을거리가 남도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청정 바다와 산에서 나온 웰빙 먹을거리가 많다. 해안가 포구 어느 곳에 가도 청정바다에서 갓 잡은 각종 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100% 태양건조 오징어만을 고집하는 고성의 금강산 건어물은 들러볼 만하다.KBS 인간극장 ‘일심이네 집’으로 소개된 곳으로 마당에 오징어와 양미리를 말린다.20마리 한축에 1만 5000∼3만원이다.(681-6262) 고성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의 해금강 식당(682-0665)은 주변 산에서 난 산나물로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산채비빔밥(5000원)이 입맛을 돋군다. 허균과 허난설헌이 어릴때 뛰어놀던 초당 생가터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초당두부가 유명하다. 정동진역 인근에는 초당두부집이 즐비해 일출을 본 뒤 추위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다.초당두부백반.5000원. ■일출축제 함께 ‘해’요 ●전국은 해맞이 준비중 동해안 등 전국 일출명소는 해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가족, 연인, 친구 등을 위한 다양한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일출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강릉시(640-5127) 정동진에서는 12월31일 밤부터 1월1일 아침까지 해돋이 축제가 열린다.1년에 한번씩 상하 위치를 바꾸는 모래시계 회전식과 신년 카운트다운, 불꽃놀이 등이 펼쳐지며, 인근 경포대에서는 불꽃놀이와 소망풍선날리기 등이 펼쳐진다. 고성군(680-3369)통일전망대 해맞이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면서 금강산 관광 길목에 있어 통일을 기원하는 실향민들의 단골 해맞이 명소. 금강산, 해금강의 비경과 함께 일출의 멋진 추억을 선사한다. 또 속초해수욕장과 설악해맞이 공원에서 벌어지는 속초 해맞이 축제(639-2541)와 망상·추암해수욕장에서 33발의 폭죽이 터지는 동해 추암 해맞이 축제(530-2481)도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갈두산에서 열리는 땅끝마을 해남이 해넘이 축제는 땅끝노래마당과 강강술래, 달집태우기 민속놀이 위주로 진행된다. 땅끝관광지 관리사무소(061-533-9324). 취하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을 할 만큼 장관을 이루는 남해 보리암 일출(055-860-3228)과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을 가진 여수 향일암 해돋이(061-690-2225)도 장관이다. 백두대간 능선 태백산 해맞이 축제(033-550-2081)는 해발 1567m의 태백산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새해 일출을 볼 수 있는 여행 상품도 다양하다. 우리여행사(02-733-0882)는 31일 떠나는 정동진 일출(4만 9000원)과 터사랑(02-725-1284)의 땅끝일출(7만 8000원), 테마캠프(02-725-8142)의 태백산 추암일출(3만 9000원) 등이 있다. 동해안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재계약 안돼…순직 남편따라…안타까운 죽음

    ■ “비정규직 없어져야…” 계약연장 실패 비관 40대 공장서 목매 비정규직으로 전환돼 근무 중인 40대 근로자가 회사로부터 계약 연장을 거부당하자 공장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장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족측이 장례절차 등의 권한을 민주노총에 위임한 데다 민주노동당 차원에서도 진상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7일 오전 6시50분쯤 경남 마산시 봉암동 한진중공업 마산공장내 도장공장 2층 계단에서 이 회사 근로자 김모(49·마산시 봉암동)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청소원 옥모(65·여)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옥씨는 “아침에 출근해 청소를 하러 도장공장 쪽으로 가다가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사람이 목을 매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명예퇴직을 하면 마산공장을 운영할 때까지 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권해 명퇴를 했으며 이 조건을 근로계약서에 명시는 안 해줬다…. 다시는 이런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 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 무섭다….”는 내용의 편지지 5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1980년 입사한 김씨는 생산직에 있다가 산재를 당해 9급 판정을 받고 가스창고 관리 등 일을 해오다 지난해 4월 회사의 종용으로 명예퇴직했다 다음달 촉탁사원으로 재입사했다. 지난해 말 한 차례 재계약을 했으며 올해 말 계약해지를 전제로 회사측은 가스창고 관리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김씨도 외주업체에 계속 근무하도록 주선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 관계자는 “마산공장 계속 근무를 조건으로 명퇴에 응했다는 김씨의 말에 따라 전임자와 3자 대면을 했으나 전임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김씨의 시체가 안치된 마산 삼성병원 등에 간부를 보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한 뒤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순직 남편 따라간 새댁-함정 침몰로 사망 해군상사 부인 자살 “너무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의 추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 봐요.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지난 10월12일 울산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함의 해안 침투대비 합동훈련 중 함정 침몰로 순직한 오길영(31) 해군상사의 부인 김모(29)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다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40분쯤 창원시 대원동 모 아파트 1동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자살하기 하루 전인 지난 25일 낮 인터넷 ‘싸이월드’에 개설된 개인홈페이지에 ‘우리였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녀는 “짧은 추억이지만 맘에 담고 있자니 터져버릴 것 같아서…”라며 연애시절과 짧은 신혼생활, 그리고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담담하게 그렸다. 지난해 3월30일 친척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8개월여만인 그해 12월 결혼했다. 당시 평택에서 근무했던 오 상사는 김씨와 1시간여의 만남을 위해 왔다가 마지막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으며, 중간쯤인 대전에서 만나 사랑을 싹틔웠다. 결혼해서는 근무 없는 주말마다 당일여행도 다니는 등 행복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10월12일 낮 12시쯤 오 상사가 “이제야 도착했다. 점심 먹으라.”고 전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 상사를 떠나보낸 김씨는 “나에게 슬픈 기억만 남기고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라며 울부짖었다. 김씨는 “언니·오빠가 많이 도와줬는데 미안하다.”는 유서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가 3통의 유서를 남겼으나 가족들의 뜻에 따라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오 상사와 함께 실종됐던 양영식(33) 해군상사의 유해가 지난 19일 일본 니가타(新潟)현 해안에서 발견돼 이날 송환됐다. 오 상사와 이기주 해군상사, 김광우 육군원사 등 3명의 유해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창원 이정규 서울 조승진기자 jeong@seoul.co.kr
  • [북한 체제변화와 형법개정] 상표권 침해·해킹 처벌조항 신설

    [북한 체제변화와 형법개정] 상표권 침해·해킹 처벌조항 신설

    북한은 지난 1999년 이후 5년 만에 개정된 형법에서 8장 161개 조항을 9장 303조항으로 늘렸다. 형벌 분야에서 경미한 범죄는 노동단련형(3년 이내 단기형)이 추가됐다. 개정 형법은 경제·사회 관련 규정을 대폭 정비했다. 대외 교역과 상거래의 확대, 새로운 경제환경의 변화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박정원 국민대 법대 교수는 “북한의 경제질서에 대한 관심은 8개 조문에서 74개 조문으로 늘어난 데서 볼 수 있다.”면서 “이는 개방을 반영하면서도 자유주의 사상이 침투하면서 생기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외화관리 질서를 어긴 자’와 ‘비법적으로 공화국 화폐를 다른 나라로 내간 자’ 등과 ‘무현금 결제수단을 비법적으로 발급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이 대표적이다. ‘불법 상표를 만들거나 상표권 침해시 2년 이하 노동교화권’이라는 조항에서는 ‘상표권’도 새로운 보호 대상으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문화를 침해한 죄의 경우 기존에는 6개 조항이었으나 이번 개정에서는 26개 조항으로 늘어났다. 또 교역과 교류가 확대되면서 퇴폐 풍조가 늘어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풍속 형법적인 요소가 폭넓게 담겨 있다.‘퇴폐적이고 색정적인 내용을 반영한 시디롬과 사진, 도서 등의 매체를 허가없이 유포한 행위’는 ‘문화·반입 유포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컴퓨터 범죄 조항도 신설됐다. 해킹 행위를 ‘컴퓨터망 침입죄’ 등으로 처벌하고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개방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지만 북한 사회 밑바닥부터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퍼지게 돼면서 관련사범이 늘어나 강온 양면 정책을 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북자에 대한 처벌은 완화했다. 구 형법에서 탈북 행위는 ‘국경을 넘는’ 자라고 규정한 데 반해 이번 형법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자’로 규정해 국경을 넘어갔다가 또다시 들어오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법국경출입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서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으로 줄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美·日 ‘한반도 공동작전’ 재작년 마련”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군과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 코드명 ‘5055’라는 공동작전계획을 2002년에 마련, 조인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작전계획에 따르면 자위대는 한반도에서 전투에 참가하는 미군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면서 수백명 규모의 북한 공작원이 일본에 침투하는 상황을 가정, 자위대 단독으로 대처하게 된다. 일본 정부가 지난 10일 채택한 신방위계획대강도 이 작전계획을 전제로 작성됐다. 코드명 5055는 1997년 미ㆍ일 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것을 계기로 자위대 통합막료회의 사무국장과 주일미군부사령관이 참가한 공동계획검토위원회가 작성했다. 핵심 내용은 공격당한 미군의 수색, 구조 등 미군에 대한 직접 지원과 미군의 출격이나 보급거점 기지 또는 항만 등의 안전 확보 등이다. 북한 무장공작원 수백명이 일본에 상륙하는 상황을 일례로 가정, 육상자위대는 미군기지와 원자력발전소 등 중요시설 135개소를 경호대상으로 선정했다. 해상자위대는 원자력발전소 인근 바다에 호위함과 초계기 등을 대기시켜 대비하고, 한반도와 규슈 북부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확보한다. 항공자위대는 조기경보통제기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C-130 수송기 등을 이용, 한반도의 피난민 수송을 지원키로 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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