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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님 수모 저희가 갚을게요”

    “감독님 수모 저희가 갚을게요”

    지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슈팅 수에서 27-4로 압도했다. 상대가 제대로 찬 슈팅은 딱 한번이었다. 그 슈팅이 차상광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빠졌다. ‘알까기’였다. 골망이 흔들렸다. 그 실점이 승부를 갈랐다. 금메달을 노리던 청년들은 억울함에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 기세를 몰아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별리그와 8강전을 거치며 16득점(4실점)을 퍼부었던 한국은 절망했다. 황선홍-홍명보-서정원-유상철 등 ‘최강 전력’으로 불렸던 태극 청년들은 동메달도 못 딴 채 짐을 꾸렸다. 악연일까. 남자축구 8강전(19일) 상대는 또 우즈베키스탄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고배를 마셨던 홍명보-서정원이 이제는 감독과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16년 전의 아픈 기억을 되갚아줄 절호의 찬스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박주영(AS모나코)과 김정우(광주), 조영철(니가타)·구자철(제주)·윤빛가람(경남)·홍정호(제주)·김영권(FC도쿄)은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젊은 피’로 세대교체를 한 조광래호의 든든한 주축.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부터 발을 맞춰 와 짜임새도 좋다. 홍명보호는 북한에 패(0-1)하며 출발했지만, 이후 요르단(4-0)·팔레스타인(3-0)·중국(3-0)을 완파했다. 10득점 1실점. 공수 밸런스가 탄탄하게 잡혔다. 상대들은 극단적인 밀집수비를 들고 나왔지만, 한국은 빠른 선제골로 골 폭탄을 퍼부었다. 박주영·조영철 등 공격진뿐 아니라 구자철·김정우까지 득점원이 다양한 것도 고무적이다. 일주일 사이에 4경기를 치른 만큼 출전시간까지 세심하게 조절했다. 한국식당에서 고기까지 든든히 먹어 체력적인 부분도 끌어올린 상태. 우즈베키스탄은 반대다. 약체 방글라데시에 3-0으로 이겼을 뿐, 홍콩(0-1)과 아랍에미리트연합(0-3)에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 3위(승점 3·1승 2패), 와일드카드로 겨우 통과했다. 카타르와의 16강전에서도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힘겹게 이겼다. 이래저래 체력 소모가 크다. 하지만 단판승부인 만큼 상대를 우습게 아는 건 금물이다. 중국과의 16강전이 ‘텃세’와의 싸움이었다면, 우즈베키스탄전은 ‘방심’과의 싸움이다. ☞ [포토] 코리안號 ‘종합 2위 목표’ 순항중 히로시마에서 감독이 당했던 수모를 제자들이 갚아줄 수 있을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코리안더비’ 몇개나 될까

    ‘코리안더비’ 몇개나 될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선 태극전사들의 첫 주자는 남자축구팀이었다. 홍명보호는 지난 8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북한과 만나 0-1로 졌다. 냉랭한 남북관계와 달리 그라운드의 청년들은 부대끼고 일으켜 주며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한국과 북한이 승승장구한다면 결승에서 금메달을 놓고 또 한번 격돌할 수 있다. 남북한은 ‘결전의 땅’ 광저우에서 몇번이나 만날까. 북한은 19개 종목에 188명을 파견했다. 역대 최대규모. 축구·핸드볼·농구·배구·탁구·정구 등 6개 구기종목에 출사표를 던졌다. 개인종목은 사격과 조정·다이빙·싱크로나이즈·역도·레슬링·유도·권투·양궁·육상·카누·가라테·우슈까지 13개 종목에 나선다. 메달이 확실시되는 기계체조 종목에도 선수단을 파견하려 했지만, 나이를 허위로 기재해 국제체조연맹(FIG)에서 2년간 국제대회 출전금지의 중징계를 받으며 무산됐다. 북한이 가장 기대하는 종목은 역시 축구.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반 금메달이 목표다. 남자축구는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가 9명이나 포진,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2006년 도하대회 때는 8강에서 한국에 0-3으로 졌지만, 이번엔 우승을 노리고 있다. 여자축구는 말이 필요없는 세계 최강.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대회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3연패를 이루기 위해선 지소연을 앞세운 한국의 도전을 뿌리쳐야 한다. 한국과는 다른 조에 속했지만, 준결승이나 결승에서 만날 것이 확실시된다. 남자농구도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격돌할 전망이다. 북한은 홍콩과의 단판전에서 승리하면 한국이 속한 E조 본선라운드에 진출한다. 국제무대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북한이라 전력은 감춰져 있다. 그러나 2002년 부산대회 때 한국과 준준결승리그에서 만나 전반까지 48-46 박빙의 승부를 벌인 적이 있다. 물론, 한국이 101-85로 승리했다. 북한은 개인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 지난 9월 역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김은국(62㎏)과 차금철(56㎏), 박현숙과 정춘미(이상 58㎏) 등은 금메달도 노릴 만하다. 베이징올림픽 때 은메달을 땄지만 도핑테스트에 걸려 메달이 박탈된 사격의 김정수도 화려한 복귀를 꿈꾸며 진종오(KT)와 겨룬다. 세계권투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윤금주(60㎏)도 이변이 없는 한 시상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김금옥, 베이징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안금애(52㎏)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 역시 금메달을 노리는 종목들이다. ‘코리안 더비’는 토너먼트를 거치며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1974년 테헤란 대회 때부터 하계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온 북한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4년 전 도하대회가 처음이었다. 북한은 금 6개, 은 9개, 동메달 16개로 종합 16위에 그쳤다. 이번엔 역대 최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할 정도로 의욕적이다. 그리고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는 한국과 한판승부를 벌여야 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최병관 주중 北대사 연내 교체될 듯

    북한이 지난 4월 부임한 최병관 주중 대사의 조기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0일 복수의 북·중 관계자의 말을 인용, 베이징발로 보도했다. 또 올해 안에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후임에는 지재룡(68) 조선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이 유력시된다고 덧붙였다. 주중 북한 대사는 주창준 전 대사가 지난 1988년부터 12년 정도 근무한 데 이어 최진수 전 대사도 2000년부터 10년간 장기 근무한 사례가 많았던 만큼 부임한 지 반년 만에 교체설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통신은 지 부부장이 김정은의 후견자 격인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과 가깝다는 점을 들어 주중 대사로 부임할 경우 김정은의 공식 방중을 우선 과제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지 부부장은 1970년대 사로청, 조선학생위원회 등 청년 조직의 간부로서 두각을 보였고, 1993년부터 국제부 부부장으로서 활동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포스트 후진타오’ 시진핑] 軍·원로·태자당 폭넓은 지지… 中은 안정을 택했 다

    [中 ‘포스트 후진타오’ 시진핑] 軍·원로·태자당 폭넓은 지지… 中은 안정을 택했 다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예상대로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 자리를 차지하면서 중국의 후계구도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제18기 전국대표대회에서 시 부주석은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그리고 현 후진타오에 이어 당 총서기직에 오르며 중국의 5세대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2007년 제17기 전국대표대회 이후 3년여간 그를 흔들었던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의 권력투쟁설도 종지부를 찍었다. 리 부총리는 원자바오 총리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왜 5세대 지도자로 태자당(중국 당·정·군 혁명원로들의 자녀그룹)의 맹주인 시 부주석을 선출했을까. 연령이나 학력, 인물, 경력 등에서 리 부총리와 시 부주석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리 부총리가 장관급 경력에서는 시 부주석보다 6년이나 빠르다. 게다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제1주자인 리 부총리는 퇀파이(團派·공청단 출신그룹)의 대부이자 차세대 지도자 선정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후 주석이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있었다. 중국공산당사(史)에 밝은 베이징의 전문가들은 시 부주석이 갖고 있는 ‘안정감’에 방점을 찍었다. 공산당 원로 시중쉰(習仲勛)의 아들로서 그가 지도자가 되면 적어도 중국 공산당의 무덤을 파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10대 후반 ‘지식청년’으로 자원해 산시(陝西)성과 허베이성의 산골마을에서 기꺼이 노동하고, 푸젠성과 저장성, 상하이 등 동남 연해의 발달된 지역을 관리한 정치경력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인민해방군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리 부총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평이다. 실제 시 부주석은 청년 시절 국방부장 겅뱌오(耿彪)의 비서를 지냈고, 인민해방군 현역 소장인 국민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의 남편이다. 17기 전국대표대회 때 자신이 물러나면서 후 주석에게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에 오른 지 6개월밖에 안 된 시 부주석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천거했던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은 “각 방면에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했다. 태자당뿐 아니라 당내 원로, 아울러 당내 자유파까지 모두 시 부주석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데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밝아 향후 남북관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 부주석은 2008년 5월 취임 후 첫 번째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와 상견례를 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기간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정·재계 최고위 인사들을 모두 만났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민족성 지키는 재일조선인 이해를”

    “민족성 지키는 재일조선인 이해를”

    “재일조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정대세 선수 때문에 재일동포의 현실이 일부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한 사람 있다. 나고 자란 곳은 일본, 본적은 제주도, 국적은 조선. 남한은 고향이고, 마음 속 조국은 북한이다. 재일동포 3세 리정애(35)씨 얘기다. 리씨는 최근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임소희 그림, 보리 펴냄)를 펴냈다. 2007년부터 2년 동안 월간지 ‘민족21’에 연재됐던 내용에다 못다한 얘기들까지 묶었다. ●한·일 모두 미귀속… 사실상 무국적 1945년 광복 뒤 일본은 재일동포를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정확히 조선적(朝鮮籍)이라 했다. 말이 좋아 조선적이지 실제는 무국적이나 다름없다. 일본으로 귀화하지도 않고, 한국 국적을 얻지도 않는 동포들의 현실이다. 조선적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북한을 선택하고 싶지만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못하는 경우, 그리고 통일된 조국을 바라며 어느 한쪽도 택하지 않는 경우다. 2004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해마다 양국을 오가며 고향 땅에서 살아가는 재미에 푹 빠진 리씨의 기록은 독자에 따라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리씨는 자신의 조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라 말한다. 색안경을 꺼낼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그러나 리씨 역시 이 땅의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인기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최장군’ 팬이다. 일본인을 닮았다는 말에 상처받는다. 모국어는 일본어지만 우리말을 하는 게 더 좋다. 서툴다거나, 북한식 억양을 불편해하면 또 상처받는다. 조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어온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다. 차별과 멸시가 두려워 대부분 동포들이 ‘조선’이라는 말을 빼고 ‘자이니치’(재일)라고 줄여 표현하는 상황이 슬프다고 하는 리씨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조선적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일동포들이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을 체류기를 통해 접하다 보면 그가 국적을 바꾸지 않는다고 탓할 수 없는 까닭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리씨는 “(처음에는) 조선적을 지키는 게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제국주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해야 할 당연한 일로 생각했지만 정답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조선-한국 국적 1호 부부 한편 리씨는 지난 10일 동갑내기 한국 청년 김익씨와 백년가약을 맺으며 ‘조선 국적-한국 국적 1호 부부’가 됐다. 통일이 되면 이룰 수 있는 여러 꿈 가운데 하나를 미리 앞당겨 성취한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석단에 선 김정은] 노동당 창건 기념식 이모저모

    [주석단에 선 김정은] 노동당 창건 기념식 이모저모

    10일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은 65주년이라는 ‘꺾어지는 해’인 데다가 지난달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뒤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규모 면에서도 최대 수준이었지만 북 매체가 김 위원장이 참석한 행사를 처음으로 생중계하고, 외신 기자 80여명을 이례적으로 초대해 대외 홍보에 열을 올렸다. 지난 8일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APTN과 인터뷰를 갖고 김정은의 후계 공식화를 확인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미국의 24시간 보도채널인 CNN은 이날 행사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조선중앙TV와 라디오인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은 예고 없이 오전 9시30분부터 11시18분까지 1시간48분 동안 군부대 열병식 준비상황에 이어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생중계했다. 조선중앙TV 등은 오후 7시20분부터 8시25분까지 1시간5분에 걸쳐 같은 곳에서 열린 경축야회(夜會) ‘번영하라 노동당시대’도 생중계했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 올라 첫 열병 신고를 받았다. 그는 당 대표자회에서 입었던 인민복 차림으로, 김 위원장과 같은 방식으로 박수를 쳤다. 중앙TV 등 북 매체가 행사를 생중계한 것은 지난 2008년 2월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 2009년 6월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이란전, 지난 6월 남아공 월드컵 본선 포르투갈전 등 단 세 차례뿐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오전 10시2분쯤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부대들과 조선인민내무군, 노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 열병식이 10일 10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시작돼 성대히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가 전한 열병식 화면에는 미사일 탑재 차량, 다연장포 탑재 차량, 탱크, 장갑차 등도 등장했다. 중앙통신은 “주체식 미사일 및 요격미사일 종합체들이 선군조선의 멸적 의지와 강대성을 시위하며 열병식 마감을 장식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북 소식통은 “열병식에는 2만여명에 가까운 병력이, 군중시위 연습에는 10만여명이 동원된 것으로 안다.”며 지난 2007년 4월 창군 75주년 때와 규모가 비슷하거나 더 큰 대규모 행사였음을 시사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후계설’ 공식확인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이 ‘김정은 후계설’을 8일 공개 석상에서 확인했다고 AP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양 부위원장은 이날 평양에서 가진 APT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청년 대장’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한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최고위급 관계자가 김정은 후계자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양 부위원장은 “우리 주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모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제 청년 대장 김정은 동지를 모실 영예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 “비전과 경쟁력 있는 경제수도로”

    “비전과 경쟁력 있는 경제수도로”

    송영길 인천시장은 취임 10 0일을 맞아 7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수도 인천 2014 비전과 실천전략’을 발표했다. 송 시장은 “경기침체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제공항과 항만을 동시에 보유하고 경제자유구역이 있는 인천은 가장 비전과 경쟁력이 있는 도시”라며 ‘경제수도 인천’을 선언했다. 경제 수도를 만들기 위한 3대 핵심사업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무상보육도시(child-care), 공평한 기회와 경쟁력 있는 교육도시(edu-care), 청년일자리 메카(job-care)를 제시했다. 송 시장은 이어 “녹색, 해양, 남북, 환황해권 등으로 상징되는 미래가치를 인천이 선점하고 기업과 사람, 물류가 모여드는 최고 수준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와 함께 ▲도약하는 인천경제 ▲균형 있는 동반성장 ▲활기 차고 풍요로운 삶 ▲소통하는 시정혁신 ▲성공적인 인천아시안게임을 5대 시정목표로 정했다. 송 시장은 “3개 핵심사업과 5대 시정목표가 원활히 이뤄지면 시민들은 누구나 출생에서 성장, 학업, 취업, 노후까지 풍족한 경제복지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지자체 차원의 남북협력에 대해 “10·4남북선언의 후속조치를 준비해 남북교류가 본격화하는 시기에 인천이 ‘북한 특수’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 시장은 “10·4공동선언은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협력지대의 설정인데 이는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삼각클러스터를 만드는 구상”이라며 “이를 중국 광둥-홍콩-선전 클러스터처럼 동북아의 가장 경쟁력 있는 클러스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대해서는 “송도국제도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68층짜리 동북아트레이드타워 공사를 재개하고 유수의 글로벌기업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영종지구는 ‘미단시티’를 중심으로 중국 관광객 수요를 흡수하고, 제3연륙교 건설로 영종지구의 에너지가 청라지구로 연결되게 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사업이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구도심 개발사업은 올해 말까지 순차적으로 재개할 방침이다. 그는 “도화구역, 루원시티 등 구도심 개발사업을 점검해 중요한 사안부터 해결할 계획”이며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北 3대세습 성공할까

    北 3대세습 성공할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대인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청년대장’ 김정은이 지난 27일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28일 44년 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까지 꿰차면서 김 위원장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과정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은 연착륙을 할까? 김정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망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다양한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아버지인 김 위원장이 당 대표자회에서 총비서로 재추대되는 등 여전히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 있어 대내외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물론 김 위원장이 아직 건재하고 세습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장 큰 변화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대표자회 개최 지연 과정 등에서 알려졌듯 김정은 옹립파와 비(非)협조파의 권력 쟁탈전이 가열될 것이다. 그만큼 김정은의 지지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김경희·장성택 등 친족 집단과 측근 리영호·최룡해 등의 급부상에 대한 다른 지도부 인사들의 견제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는 등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들이 주도할 정책이 혼선을 빚거나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정치적으로는 대내 단속을 위한 대남 공세를 강화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손을 벌릴 가능성이 높다.”며 “김정은을 비롯, 장성택 등 신진 권력 그룹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날 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오래 살아야 권력 승계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김정은이 서구에서 교육을 받아 개방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그렇게 볼 확증이 없으며,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들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위해 남한은 물론 미국, 일본 등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 관계 개선에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입장도 엇갈린다. 정치권은 입을 모아 3대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대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좌우로 나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더 밀어붙여 스스로 무너지게 해야 한다.”는 입장과 “손을 내밀어 개방개혁으로 이끌여야 한다.”로 맞선다. 정부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신중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일 시대의 정책이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후계구도 구축 과정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며 “대북 강경책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키 170㎝·몸무게 90㎏ 안팎… 할아버지 빼닮아

    키 170㎝·몸무게 90㎏ 안팎… 할아버지 빼닮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지난 27일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데 이어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당 중앙위 위원에 선임됨으로써, 북한이 김일성에서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공식화했다. 김정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닮았다? 30일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은 예상대로 건장한 체구의 20대 청년이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도 아버지 김 위원장보다 훨씬 커 눈에 띈다. 옆을 짧게 깎은 고수머리에다 볼과 턱에 살이 많이 붙어 있었다. 김 위원장보다 앉은 키가 큰 것으로 미뤄볼 때 키가 170㎝ 안팎으로 보인다. 몸무게는 90㎏이 넘을 것이라는 소문과 비슷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20대이지만 미성년자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해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다. 일본의 대북인권단체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 이영화 대표는 3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2008년 8월 초에 당뇨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유전에 의한 것이어서 치료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민복 차림에 당 배지를 달고 앞줄에 앉아 있는 김정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함께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리영호 총참모장과, 정치국 위원에 오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사이에 앉은 그는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다른 누구보다 더 굳은 얼굴이었다. 표정 때문인지 20대 후반으로 알려진 것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아버지 김 위원장보다 할아버지 고 김일석 주석을 더 닮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할 때 자신과 가장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기 때문에 장성한 김정은이 아버지를 빼닮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그의 얼굴에서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이 연상됐다. 김 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살이 빠지면서 얼굴이 변했기 때문에 아들과 달라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김정은은 또 어머니 고영희와도 눈이 닮아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기존에 본 유학 시절 등 사진과 차이가 많은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의 오른쪽 두 번째에 앉았다는 것은 젊지만 실질적인 2인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살이 찐 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대내외적으로 공개할 경우 평가가 좋지 않을 수 있어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김정은이 얼굴을 드러냄에 따라 앞으로 그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갈 것인지 주목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정치국·중앙군사위 거쳐 2012년 상무위원 선출 유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2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면서 사실상 후계가 확정됐다. 지난해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노래로 알려진 ‘발걸음’ 속에 나온 ‘청년 대장’이 실제 조선인민군 대장이 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28일 “그동안 직함이 없던 김정은이 매체를 통해 언급되고 공식적인 직위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후계 구도 공식화 여부는 당 대표자회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20대 청년 김정은이 아무런 직책이 없던 민간인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대장 칭호를 달면서 존재를 드러냈지만 정부가 후계 구도 등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예의주시하는 것은 그의 후계 구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방증한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까지도 김정은에게 군 직위를 줄 것이라는 첩보가 없었는데 이날 새벽에 전격 발표가 나온 것은 그만큼 다급했고 고심한 흔적을 보여준다.”며 “전날 밤새 토론하다가 김 위원장이 결심한 뒤 공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에 앞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것은 당 대표자회를 통해 직위를 받아 후계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특히 당 중앙위원회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선거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김정은이 정치국뿐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당 중앙군사위는 국방위원회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조명록·김영춘 등이 국방위와 함께 직책을 갖고 있어 당과 군에 함께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군 칭호를 받은 김정은이 당 대표자회에서 어떤 직함을 갖게 되더라도 외부로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준 것은 선군정치 노선을 고수하면서 후계 구축시 필요한 군에서의 영향력,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후계를 이으려면 총비서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당 활동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중앙위 명단에는 들어가지만 얼굴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신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측근인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징검다리 역할을 맡김으로써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만드는 ‘섭정체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장 칭호는 김정은의 우상화 노래인 ‘발걸음’에 나온 ‘청년 대장’을 실제 타이틀로 바꿔 인민들에게 익숙함을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칭호가 생겼으니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공식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후계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 승계의 첫걸음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과정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이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위직까지 올라가지 않고 중앙위 위원이 된 뒤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한 2012년 상무위원이나 비서국 비서 등으로 공식 선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년 정도 과도기를 거친 뒤 이르지만 권력 승계 과정을 밟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후계 구축의 후견인이기는 하지만 권력에 뜻을 품고 있는 김경희·장성택 등과의 관계 설정과, 이들보다 훨씬 개혁·개방론자로 알려진 경제라인, 국방위 핵심들과의 조율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38세에 후계자로 공식화되는 등 차근차근 권력 승계 과정을 밟은 것에 비해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경제난 가중, 권력 암투 가능성 등 불리한 점이 많다.”며 “향후 몇 년간의 과도기가 3대 세습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28일 북한 평양에서 각종 관련 행사가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북한 매체는 이날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추대됐다는 소식 이외에 다른 보도를 전혀 내놓지 않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당 대표자회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과 플래카드, 깃발 등이 평양 전체를 뒤덮은 가운데 도심 주요 거리는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로 가득차 대표자회 성공적 개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평양역과 평양대극장 등 공공시설 주변에서는 다양한 야외공연이 마련돼 근처를 오가던 평양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회장소로 추정된 만수대 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4·25 문화회관 밖에서는 경찰이 교통을 일부 통제한 가운데 버스 수십대가 주차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근 인민문화궁전 밖에도 검은색 세단 수백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신화통신은 또 평양의 주요 거리에는 붉은 색깔의 인공기들과 노동당기, 소형 인공기들이 어우러져 붉은 물결을 이뤘다고 전했다. 이른 아침부터 평양 시민들이 몰려 나와 거리 청소를 하고 도로 주변 가로수를 정비했다. 김일성광장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소형 인공기를 흔들며 각 지역 대표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중대 방송’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총비서 추대를 전했을 뿐 다른 내용은 함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밤 늦게 김 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하는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경축무도회가 평양체육관과 개선문 광장 등에서 열렸다고 보도했으나 당 대표자회 진행 관련 보도는 없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미필’ 이승기, ‘군인연기’ 할까?…영화 ‘서부전선’ 물망

    ‘미필’ 이승기, ‘군인연기’ 할까?…영화 ‘서부전선’ 물망

    배우 겸 가수 이승기가 군 입대 전 군인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승기가 남북한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출연이 확정될 경우 이승기는 드라마에 이어 스크린 진출로 활동반경을 넓힌다. 이에 대해 이승기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 측은 “시나리오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출연여부는 아직 검토 전이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와 향후 스케줄 조정에 따라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짓겠다”고 밝혔다. 팬들은 물론 연예가에서는 가수로 출발해 예능인을 거쳐 배우로 주목받고 있는 이승기가 과연 영화 출연을 결정지을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 입대 전인 이승기가 ‘군인연기’를 펼친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상상 부르는 구하라 셀카…우비소녀? 수녀? 유령? 인도여성?▶ 최희진“애 죽고 미안해한 태진아, 딸처럼 여긴다며 작사 의뢰”▶ 티아라 효민은 미미공주…’남격’ 배다해는 거미공주?▶ ’남격’ 최재림 깜찍 안무에 합창단 울고 시청자 웃었다 ▶ 신정환, 이틀 연속 방송펑크...잠적 배경 관심집중▶ 이승기 망언? 망언 아닌 할머니 배려 …"역시 바른청년"
  • 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한국전쟁은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국군이 각각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뛰어든 또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사라진 만주 조선인이 그들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사의 일부가 된 만주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옌볜, 지린, 무단장시 등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신문들, 중국 당국의 문서 자료 등을 통해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만주 조선인들은 일제 시기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강한 조국애와 민족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전 중국 관내 지방과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동북항일련군 출신의 조선인 지도자들은 해방과 함께 만주로 들어와 조선인사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만주를 조국통일 역량의 산실로 키우자며 만주 기지론을 주창했다. 국공내전을 통해 청년들을 단련시켰고, 북한과 옌볜 각지에 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해 혁명간부를 양성했다. 이렇게 단련된 만주 조선인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입북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남진한 북한 인민군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는 만주 조선인 부대였다. 이들의 입북을 중공의 파병으로 간주해온 기존 견해와 달리 저자는 조선인의 귀환이라고 주장한다. 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되고, 이어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만주 조선인사회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국공내전을 지원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았던 만주 조선인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중국 내 여타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반 사회에 흡수됐다. 한편 재중 한국독립당의 우익세력도 만주 조선인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맥락의 통일전략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과 합작해 민주세력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해 북한의 공산세력을 몰아낸다는 전략이었다. 만주의 국민당 점령지역 곳곳에서 한독당은 조선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1947년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결정적인 수세에 몰리자 한독당의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고립된 채 중공군에게 포위된 선양시 인근 국민당 지구 조선인들은 대탈출을 감행했다. 1만여명의 탈출자들은 톈진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고, 남겨진 민주자위군 대원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3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외교장관 딸 특채 ‘취소’로 끝낼 일인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딸이 자유무역협정(FTA) 통상전문계약직(5급)에 특채됐다가 특혜 논란이 일자 어제 특채가 취소됐다. 그의 딸 현선씨는 필기시험도 없이 서류와 면접만을 통해 채용됐다고 한다. 당초 외교부 측은 “성적이 좋은데 장관 딸이라고 채용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유 장관 부녀를 옹호했다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의 깃발을 내걸었는데 그 밑의 장관은 자신의 딸을 한 명 뽑는 특채에 합격시키다니 참으로 몰염치한 일이다. 결국 대통령이 진상파악을 지시하기에 이르자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채용되는 것은 특혜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데 대해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이번 일을 보며 국민들은 과연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고위관료들이 자신의 아들, 딸들을 대기업 등에 줄줄이 취직시킨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것도 모자라 이젠 공직까지 ‘대물림’시키겠다고 나선 것을 보며, 공정한 사회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기루’인가 싶어 허탈하기만 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취직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청년실업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어디 실력이 모자라서 놀고 있겠는가. 유씨는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다면 특채를 보지 말고 당당히 외무고시에 응시했어야 했다. 유 장관의 처신을 보면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행정고시 축소의 부작용을 미리 보는 듯하다. 5급 공무원의 절반을 필기시험 없이 민간전문가 중에서 특별채용한다고 하지만 그 자리는 결국 유 장관같이 힘깨나 쓰는 고위관료 등의 자식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외교부만 해도 이미 특채 등의 형식으로 들어온 2세 외교관들이 적지 않다. 행안부가 특별감사에 전격 착수했다니 다행스러우나 이번 기회에 감사원이 나서 다른 부처에는 이런 일이 없는지 챙겨봐야 한다. 그 이전에 유 장관은 스스로 거취를 밝히는 것이 옳다. 그는 이전에도 국회의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외교무대에서 “친북성향의 젊은이들은 북한에 가서 살라.”는 막말을 해 자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 [‘장관의 딸’ 특채 파문] MB, 행안부에 직접 “특채 특별감사하라” 지시

    [‘장관의 딸’ 특채 파문] MB, 행안부에 직접 “특채 특별감사하라” 지시

    청와대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유 장관이 조만간 사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행정안전부에서 대통령령인 인사감사규정에 따라 특채가 공정했는지에 대해 특별감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결과와 관계없이 이미 특채 자체에 대해 국민여론이 돌아선 점 등을 고려해 유 장관의 교체는 시간의 문제일 뿐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외교부가 감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행안부가 특별감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밤 관련 보도에 대한 보고를 받은 데 이어 3일 아침 일찍 사실관계 등에 대해 다시 보고를 받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공정한 사회’라는 집권 후반기 핵심 국정철학과 정반대의 사례인 만큼 유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 대통령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지만 ‘경질’ 쪽에 무게가 쏠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결심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유 장관이 바뀔 경우, 총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할 사람이 없어 후임 장관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당분간 ‘장관대행체제’로 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이처럼 입장을 빠르게 정리한 것은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원희룡 사무총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정한 사회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끌어당기는 깃발인데…”라면서 “깃발 든 사람이 벌거벗고 있으면 사람들이 깃발을 보겠는가, 몸뚱이를 보겠는가. 탄식이 나올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고려시대 ‘상피제’를 거론, “상피제가 있다. 능력이 뛰어나도 회피한다. 한 사람의 능력 차이보다, 다른 사람들의 신뢰 차이가 훨씬 사회에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나의 경우는 다르다? 인류의 경험이고, 인간의 이치”라고 비판했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면서 “지역구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봤자 이런 일 한 건 터지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공정한 사회도 ‘말짱 도루묵’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특별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특별채용’도 이명박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인가.”라면서 “‘공정한 사회’는 ‘공정한 정부’가 선행되어야 하고, ‘공정한 장관’이 있어야 ‘공정한 정부’가 구성·유지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비상대책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장관 딸 한 사람만 특채하는 게 공정한 사회인가.”라면서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지 답변해 달라.”고 말했다. 민주당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유 장관은 지난해 4월 상임위 회의장에서 야당 의원에게 ‘여기 왜 들어왔어. ××놈’이라는 막말을 했고, 지난 7월에는 젊은이들의 투표행태를 비난하며 ‘북한에나 가라.’고 했다.”면서 “장관은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특채과정을 수사하라.”고 주장했다. 김성수·이창구·홍성규기자 sskim@seoul.co.kr
  • 1983년 김정일-2010년 김정은…방중 두모습

    1983년 김정일-2010년 김정은…방중 두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3년이다. 1980년 10월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인 받은 김 위원장은 3년 뒤인 1983년 6월2일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초청으로 중국을 11일간 단독 방문했다. 앞서 1982년 4월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맞아 방북한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 후야오방 총서기를 후계자 자격으로 처음 만난 바 있다. 앞서 김 주석을 수행해 1959년과 1962년 옛 소련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김 주석의 아들이자 단순한 수행원 신분이었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에 3남 김정은의 동행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정은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추대된 바 없다. 다음 달 초 열리는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굳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김 주석 후계자 자격으로 중국을 첫 방문했던 1983년 상황과 비교하면 위상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에게 김정은을 소개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연배도 어리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동행했더라도 중국 지도자들과의 회동에 배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대신 김 주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지린(吉林)과 창춘(長春)의 혁명유적지들을 부자가 함께 돌아보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혈통’을 확인한 뒤 귀국, 대내 선전용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김 위원장 일행이 방중 첫날 찾은 지린은 김 주석의 청소년기 혁명 유적지이다. 김 주석은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에서 위원(毓文)중학교를 조선혁명의 열망을 키운 곳이라며 그리워했고, 베이산(北山)공원의 약왕(葯王)묘 지하실에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이 27일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한 경로상에는 북한이 주체사상의 발상지라며 선전하는 카룬(卡倫) 마을이 있다. 북한은 창춘시내에서 동북쪽으로 30㎞ 떨어져 있는 카룬에서 김 주석이 1930년 6월30일 이른바 ‘카룬회의’를 주재하면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혁명노선을 발표했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 대해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로선의 탄생을 선포한 력사적 사변”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후주석 일행 호텔 안나와… 두 정상 ‘혈맹 1박’?

    후주석 일행 호텔 안나와… 두 정상 ‘혈맹 1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방중 이틀째인 27일 오전 지린(吉林)에서 창춘(長春)으로 옮겨 지린성 영빈관인 난후(南湖)호텔에 들어선 뒤 하루 종일 취재진에 포착되지 않았다. 어디를 방문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호텔주변 철통경계… 가무단 포착도 호텔 주변은 물 샐 틈 없는 경계태세가 이어졌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호텔에 들어섰다는 소문과 함께 호텔 주변의 경계는 더욱 강화됐다. 오후 2시30분 지린성 가무단이 악기 등을 챙겨 호텔 경내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정상회동 및 만찬, 공연관람 등이 장시간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현지 소식통은 “후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오늘 창춘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지난 5월 방중 때처럼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동에 시 부주석이 배석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 부주석은 전날까지 베이징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후 주석은 며칠째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후 주석이 동북3성을 시찰한 뒤 이날 창춘으로 갔고, 이에 앞서 26일 오후 김 위원장과 지린시의 베이산(北山)공원 등을 함께 둘러봤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오후 9시30분쯤 가무단 버스가 빠져나오면서 김 위원장 일행이나 후 주석 일행 가운데 한쪽이 호텔을 나올 것으로 관측됐지만 오후 11시(한국시간 28일 0시) 넘어서까지 누구도 나오지 않고, 주변 교통통제도 풀리면서 양국 지도자들이 이례적으로 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가능성이 대두됐다. 난후호텔은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와 같은 지린성의 영빈관으로 김일성 주석은 물론 중국의 당·정 지도자들의 창춘 방문 시 이용하는 호텔이다. 호텔 측은 김 위원장이 투숙한 총통(프레지던트)실의 하루 숙박비가 9999위안(약 175만원)이라고 밝혔다.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낸 지난 5월 방중 때와 달리 이번에는 김 위원장과 중국 측 모두 취재진을 철저히 따돌렸다. 이를 두고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숨겨야 할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며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은이 동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방중 첫날 오후 항일혁명유적지이자 김일성 주석의 행적이 남아 있는 지린의 베이산공원을 10여분간 방문한 김 위원장은 27일 새벽 극소수의 인원만 대동한 채 베이산공원을 다시 찾아 2~3시간 머물렀다고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사실이라면 김 주석이 1920년대 말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는 약왕(葯王)묘 일대를 돌아봤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 일가족 3명이 찾아왔다.”고 말해 3남 김정은을 대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권력 이양을 앞둔 상황에서 혁명 1세대인 김 주석의 유적지에서 2세대인 김 위원장, 3세대인 김정은이 김 주석의 혁명유업 계승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는 얘기여서 사실 여부가 주목된다. ●특별열차 25량 편성 북측은 지난번 방중 때 17량으로 편성한 특별열차를 이번에는 25량으로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방중 일정이 5일간이었던 지난번보다 훨씬 짧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어서 수행원이 대폭 늘었거나, 중국 지도부에 건넬 ‘선물’을 적재하고 방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 일행이 김 주석의 혁명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 북측에서 주체사상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창춘 외곽 카룬(卡倫)마을을 방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린에서 창춘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상에서도 옛 마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1930년 6월30일 김 주석이 주재한 ‘카룬회의’에 대해 여러 차례 ‘혁명의 횃불’이라며 주민들을 선동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돌연 訪中] 위원중학교는…김일성 反日공산주의 활동으로 퇴학

    [김정일 돌연 訪中] 위원중학교는…김일성 反日공산주의 활동으로 퇴학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6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 중국 지린(吉林)성 지린시 위원(毓文)중학교는 고 김일성 주석이 1927년 1월부터 2년 반가량 다녔던 중국인 학교였다. 북한 백과사전출판사가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김 주석은 15세이던 1927년 1월17일 이 학교 2학년에 편입해 1929년 가을까지 다녔다. 이 당시 김 주석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비롯한 여러 혁명적 저작들을 탐독하는 한편 주변 학교를 아우르는 비밀 독서조를 비롯한 각종 합법·비합법 조직을 만들고 ‘새날’이라는 신문도 발행했다. 이런 조직화를 바탕으로 1928년 7월 중순 위원중학교 동맹휴학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1929년 가을 반일 공산주의 활동을 이유로 중국 군벌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던 도중 퇴학당했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위원중학교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영광스러운 혁명활동 노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는 뜻깊은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위원중학교 도서관 앞에는 군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김 주석 동상이 서 있다. 도서관에는 김 주석의 청년기 사진과 수령 시절의 사진, 그리고 아내 김정숙의 사진 등도 전시돼 있다. 한편 이날 김 위원장의 위원중학교 방문 행사는 학생들이 휴교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교 학생 200여명이 가입한 바이두(Baidu) 인터넷 카페에는 김 위원장의 방문 덕분에 학교를 쉬게 됐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학생은 “김정일 장군님, 우리에게 휴가를 주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다른 학생은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뚱뚱이’가 며칠 있다 갔으면 더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이 26일 오후 방문한 베이산(北山)공원은 항일 유적지이자 지린시의 대표적인 시민공원이다. 옛날부터 지린8경으로 불렸던 각종 정자와 누각, 사찰, 사당 등이 산재해 있다. 1920년대에 공원으로 조성됐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불상 등을 유심히 살펴본 뒤 혁명열사릉과 혁명열사기념관 등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산공원은 김 위원장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1920년대말 공원내 약왕묘 지하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 소년부를 책임지게 되는 일종의 ‘김일성 유적지’다. 1953년 1만 500㎡의 면적에 조성된 혁명열사릉에는 웨이정민(魏拯民)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사령관 등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6·25(중국명 항미원조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특히 김 주석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2군 6사장을 거쳐 이후 제1로군 2방면군 지휘관을 지내는 등 동북항일연군은 북한 정권 1세대를 이어주는 핵심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열사릉 앞에는 30m 높이의 혁명열사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상층부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샤오치(劉少奇), 주더(朱德) 등 혁명원로 4명의 추모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혁명열사릉 옆 야산 정상에는 혁명열사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1993년 준공한 5000㎡ 규모의 기념관에는 웨이정민 등 항일전쟁과 6·25 혁명열사 22인의 업적 내용이 전시돼 있어 김 위원장의 눈길을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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