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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애도 대자보」 또 2곳 적발/검찰,전원 사법처리방침

    ◎서강·한림대생 수사 대검 공안부(최환검사장)는 13일 부산대·경북대에 이어 서강대와 한림대등 2곳에서도 김일성의 사망을 애도하는 대자보가 발견된 점을 중시,대자보작성자를 가려내 사법처리하라고 서울지검및 춘천지검에 지시했다. 서강대 「조통위」명의로 된 대자보는 『김주석은 죽는 순간까지 핵문제및 통일과 관련하여 민족의 자주를 위해 외세에 굴하지 않고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김주석의 생은 폭넓게 재평가되어야 하며 고인의 즉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북한인민들의 슬픔을 위로해야할 것이다』라고 김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다. 또 한림대 대자보에도 『김주석은 10대의 어린 나이로 항일무쟁투쟁조직을 결성,독립운동을 전개해 공화국을 수립하였음에도 남한과 미국에서는 가짜김일성주장등으로 지도력을 깎아내리려 했다』고 찬양하고 있다.
  • “김정일에 충성” 김일성유훈 강조/평온 되찾아가는 북녘 표정

    ◎12일까지 “애도인파 1천7백50만”/중­러시아 당정관리 대사관서 조문 ○…북한은 13일 김일성의 사망을 애도하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나 12일 정오 현재 1천7백50만명에 이르렀다고 주장.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북한 전역에 세워져 있는 김일성 동상을 찾는 사람들이 그칠새 없이 모여들고 있다고 전하면서 평양 만수대언덕에는 이른 새벽이나 깊은 밤을 가릴 것 없이 매일 평균 6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함경북도에서도 1백60만명이,사리원시에서 85만명이 김일성동상을 찾았다고 보도. 한편 이 방송은 김정일이 김일성을 『그 누구도 지닌 적이 없는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영도력,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을 한몸에 체현한 노동계급의 가장 위대한 수령』이라고 찬양했다고 소개. ○…북한이 김일성사망과 관련해 보리스 엘친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일 보낸 조전의 내용은 물론 조전발송 사실조차 밝히지 않고 있어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이붕총리 등이 보낸 조전을 즉각 보도하고 내용까지 상세하게 공개한 것과는대조적.이와 관련,러시아 국영 모스크바 방송은 12일 하오 보도를 통해 김일성사망이후 평양의 동정을 전하면서 『김일성사망과 관련된 엘친 러시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 북한 언론도 언급이 없다』며 불만을 표시. ○…이붕중국총리를 비롯한 중국의 당정고위간부들이 이날 하오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고 북경방송이 이날 보도. 세계평화연합총재인 문선명씨도 이날 중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조화를 전달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북경발로 보도. 한편 북한은 이날 김일성사망에 즈음하여 러시아 정계·사회계 인사들과 러시아주재 각국 외교사절이 지난 11일 모스크바주재 북한대사관을 조의방문했다고 뒤늦게 보도해 눈길.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바깥에 다른 유리관 1개가 2중으로 장치돼 있는 것이 목격됐다고 한 북한주재 외교관이 13일 밝혔다. 이 외교관은 이날 북경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당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주석궁에서 전날 열린 추도식사진을 게재했다면서 이 사진으로 김일성의 유해가 2중의 유리관에 안치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일성사망→발표에 34시간/공산권 역대 지도자중 “최장” 북한주석 김일성 사망후 공식발표때까지 걸린 34시간은 역대 공산권 지도자들중에서 가장 길었던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최근 통일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사망이전 과거 공산권 지도자의 사망 발표때까지 걸린 시간은 중국주석 모택동이 16시간 50분으로 가장 짧았던 반면 브레즈네프 구소련공산당서기장은 26시간 30분으로 가장 길었다. 한편 구소련의 안드로포프,체르넨코서기장의 경우 사망후 12시간도 안돼 정규방송을 중단한채 침울한 고전음악이나 레닌관련 기록필름등 예고성 방송을 내보냈으나 실제 사망사실을 발표한 시간은 각각 21시간 40분,18시간40분이 지난뒤였다. 북한이 김일성의 사망을 이렇게 뒤늦게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사망 발표후 방송프로에 출연한 대부분의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역대 사회주의 국가의 사례와는 달리 이례적으로 빠른 발표』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한편 김일성은 사망직전 50여시간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경제난 타개로 민심얻기” 총력 경주/김정일의 내치·외교 방향

    ◎“대중관계 우선” 기존 외교노선 고수 「김정일의 북한」이 구사하게 될 대내외 정책은 필연적으로 개방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다.물론 단기적으로는 김정일체제의 확립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급격한 정책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폐쇄와 고립속에서 통치해온 북한사회를 어떤 방식과 속도로 개방해나가는가 하는데 김정일의 정치력이 나타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사망한뒤 4일동안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망발표 ▲장의위원회 구성 ▲김정일에 대한 잇따른 충성 선언 ▲당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소집 ▲시신공개 및 김정일 참배 방송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김정일로의 권력 이동은 매우 빠르고도 순조로운 것으로 비친다. 북한은 오는 17일 김일성의 장례식이 끝나면 대내적으로 김정일체제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사상교육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주체2혈통의 순수성」을 내세워 김정일체제의 정통성을확립하려 할 것이다.일부에서는 북한 군부의 반금정일쿠데타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김정일이 지난 80년 노동당 6차대회에서 당 군사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군사분야에 개입해와 정상적인 지도력만 발휘한다면 군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물론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에 따른 각 분야의 인적개편 과정에서 불만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이 대내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는 좌초 직전의 상태에 놓인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북한의 경제는 지난 89년 이래 4년동안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해마다 2백만∼3백만t의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다.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여건이어서 북한주민의 불만은 폭발직전이라는 것이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의 증언이다.김정일은 경제난의 타개를 위해서는 개방이라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우리 정부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단 개방을 시작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따라서 김정일은 옛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시도했던 급격한 개방과 개혁보다는 중국의 등소평이 추진하고 있는 점진적·단계적·계획적인 개방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의 외교력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다』『사실상 핵을 둘러싼 북한외교를 주도해왔다』는 상반된 주장이 나올 정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의전을 중요시하는 외교관계에서 김정일이 김일성 만큼 「틀」이 좋지 못하고,이름이 갖고 있는 무게도 훨씬 덜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특히 북한핵을 둘러싸고 세계를 상대로 「공갈과 협박」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한껏 유화제스처를 쓰는 노회한 김일성을 따라가기는 힘들 것 같다.다만 김용순대남담당비서 황장엽국제담당비서 강석주외교부부장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등 개방적인 북한외교의 베테랑들이 대부분 김정일의 측근이어서 지금까지의 외교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은 대외관계에서 우선적으로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중점을 둘 것에 틀림 없다.김정일외교는 17일 이후 재개되는 미국과의 3단계 회담에서 시험대에 서게될 것 같다.핵문제는 북한의 국가전략과도 직결돼 김정일의 향후 대외정책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중국·미국과의 관계가 순조롭게 형성된다면 경제적 지원을 염두에 둔 일본과의 수교문제,소련의 붕괴후 소원해진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이 김정일의 외교적 과제가 될 것이다.
  • 「애도 수위」 고심하는 한총련/김학준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요즘 한총련 관계자들은 8일 사망한 김일성에 대한 애도 표현의 수위및 방법등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개인적으로는 「통분」에 가까운 슬픔을 표시하면서도 정작 공식적인 애도는 자제하고 있다.한총련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연일 회의를 열어 추모의 형식과 수위를 논의했지만 아직 공식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각 대학 총학생회별로 분향소설치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민정서를 감안할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각종 집회때 김의 사진을 걸어놓고 흠모에 가까운 정을 표시해온 운동권의 행태로 보아 이례적이다.학생들이 「낮은 수준」의 애도조차 망설이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우려되기때문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고의 애국자 김일성」과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동족상잔의 원흉 김일성」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또한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없는데 일반학생들 사이에 전혀 김일성추도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는 것도 자제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대해 운동권 학생들은 정부의 정보통제와 언론의 극우적인 편향보도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총련관계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해보면 김주석이 독립운동과 조국통일에 헌신해온 뛰어난 선각자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면서 냉전논리속에 여론이 조작돼 일반인들의 김일성에대한 인식이 잘못돼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김에대한 객관적인 평가자료라는 것이 대부분 북측의 선전용자료의 수준에 그치지 못한다는데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남방송에서나 들을 수있는 김일성우상화나 신격화의 자료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온 이들의 「객관성」운운은 아무래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내세워 수백만 동족의 살상을 서슴지않은 전쟁을 감행한 그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나 평가없이 「통일의 화신」「만고의 애국자」등의 찬양은 어떤 부연설명이 추가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없다는 건 뻔한 이치다. 보다 균형감각이 있는 역사의식을 갖고 북한을 바라보는 성숙한 지성이 아쉬운 순간이다.
  • 김일성 사후/북한의 영화/「김정일 우상화」에 동원될듯

    ◎김정일,지금까지 3천편 제작 간여/“광적인 취향”… 기술·인력 투자 늘듯/초보단계 비디오산업 지원… 국제 영화제 참여도 예상 김일성 사후의 북한 영화계는 어떻게 변할까. 영화에 관한 한 김정일이 프로수준이라는 점에서 북한 영화계의 변모도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더욱이 영화는 사회주의 국가 최대의 선전 매체이자 권력투쟁의 도구요,무기다. 영화에 대한 김정일의 광적인 관심은 북한 영화계를 발전시킨다는 이유로 지난 78년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을 납치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또 남한에서 청취된 평양방송에 따르면 지난 70년이후 최근까지 김정일이 직·간접으로 제작에 간여한 영화는 3천편에 이른다.이는 사실상 같은 기간동안 북한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를 포함하는 것이다.바꿔 말하면 김정일이 관여하지 않는 북한영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구체적으로는 ▲극영화 8백편 ▲아동영화 4백편 ▲과학영화 8백편 ▲기록영화 1천편이다. 더욱이 김정일은 대본구성에서 배역선정,촬영현장에서의 연기지도는 물론 필름편집까지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평양방송은 김정일이 람보시리즈 등 할리우드 영화와 서부극,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좋아한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문제 관계자들은 우선 김정일이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거나 자신을 우상화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후계자들이 그러했듯이 아무래도 자신의 우상화에 더 비중을 둘 것이라는 분석들이다.김정일은 지난 74년 김영주와 권력투쟁을 벌일 때에도 영화 등을 통해 자신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병행했었다. 북한 내부적으로 볼 때도 영화가 효율적인 통제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김일성 사후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주민들의 결속력과 충성심을 유도하는 한편 김일성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더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영상매체 등을 통한 선전과 홍보 작업이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는 비디오 관련 산업도 발전시킬 것이라는 분석들이다.영화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인력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취향에 비추어 볼 때 북한 영화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시설 및 기술투자,인력양성 등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또 과거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였던 동유럽등의 영화제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국제교류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2·8영화촬영소 등 4개 촬영소에서 매년 극영화,기록영화,뉴스영화,과학영화,홍보영화 등 모두 1백50∼2백편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8영화촬영소는 북한군 창립을 기념해 설립됐다.그러나 영화적 요소를 갖춘 기록영화와 극영화의 제작 편수는 30편 안팎에 불과하다. 이와관련,전문가들은 관계당국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북한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짐으로써 북한 사회와 북한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통일의 길도 한 걸음 앞당길 수 있기때문이다.
  • 김일성,「후계자 정일」 의도적 찬양

    ◎“강한 배짱·신념 소유자” 공사석서 자주 칭찬/「지도력」에 만족… 세습체제에 대한 지지 강조 김일성은 마음 편히 눈을 감았을까.그는 생전에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의 능력을 얼마나 신뢰했을까.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정한 뒤 아들의 통치능력과 성품을 높이 인정하고 후계체제를 낙관하는 발언들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해왔다.아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공사석을 통해 얘기해 온 것이다. 그는 올해 초 『김정일 조직비서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 보았다(평양방송 94·3·10)』고 말해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을 표시했다.3일 뒤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항상 수수한 잠바 차림으로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 온다』며 아들의 검소한 생활을 본받을 것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해 3월에는 『김정일 동지가 혁명 사업을 훌륭히 계승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모든 일이 잘 돼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돼 나갈 것』이라며 김정일이 주도할 북한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난 92년 2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김일성이 직접 지었다는 「광명성 찬가」라는 한시에서 후계자에 대한 평가는 극치를 이룬다.이 시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으며 만민이 그를 칭송하고 있다』고 주장,김정일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신뢰와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이 같은 평가가 김일성의 진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문란한 사생활과 돌출적인 행동에 대해 수차례 질타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지난 해 18년만에 동생인 김영주를 부주석으로 복권시켜 김정일의 후견인 역활을 맡긴 것은 그가 김정일의 지도력과 권력 계승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아들을 자랑하는 「팔불출」역을 자임했던 이유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후에 있을 반발과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세습체제 구축하기 위한 「의도성 칭찬」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북한 언론이 틈나는대로 보도한 김일성의 김정일에 대한 찬사를 소개한다. 『김정일 동지와 같이 권위있는 철학가,이론가가 있는데 대해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해 유난히 김정일에 대해 자주 언급해 김일성이 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 인계작업과 신병정리에 어느 때보다도 높은 관심을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 파유학중 귀순 동영준씨가 만난 김정일/수기

    ◎“상대하기 껄끄럽겠다” 첫인상/디스코 등 일부 서구유행 허용… 젊은충 따라/김일성보다 강경하지만 훨씬 현실·개방적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갓 돌이 지난 아들녀석이 아파 병원으로 가던 9일 점심 때이었다.라디오 뉴스를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대뜸 『이젠 시부모님을 뵐 수 있겠네요』라고 흥분했다.통일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착잡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지난 79년 박정희대통령 피격당시 수업까지 전폐하고 「통일됐다」고 기뻐했던 일이 생각났다. 50년동안 신처럼 우상화돼 왔던 김일성.그 김일성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정권을 이어받게 된 김정일.나는 지난 89년 6월 한국으로 귀순하기까지 김정일을 모두 세번 만났다. 내가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은 평양기계대학 수산기계학과 1학년이던 지난 82년 5월이었다.내가 다니던 대학이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명태할복기」라는 기계를 개발했을 때였다.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직접 「현지지도」를 나올 정도였다. 생전 처음 「민족의 태양」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직접 가까이서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김일성 뒤에 서 있던 김정일에 대한 첫인상은 「상대하기 껄끄럽겠다」는 한마디로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김정일이 나중에 최은희·신상옥을 만났을때 자신을 「난장이 똥자루만하지요」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한쪽 머리카락이 모두 위로 치솟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래서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이런 모습을 두고 좋게는 김정일의 기상이 하늘로 솟았다고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때부터 부모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납고 괴팍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쨌든 상당히 호탕해보였고 솔직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특유의 헐렁한 바지에 굽높은 신발,잠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다. 두번째로 김정일을 본 것은 1년뒤인 정권 창건일(9·9절)35주년 행사준비가 한창이던 83년 9월8일이었다.백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김정일이 직접 총지휘를 맡고 있었다.김정일은 총연습이 한창이던 8일 낮과 밤 두번씩이나 직접 현장으로 나와 학생들과 당원들을 격려했다. 김일성이 신격화된 존재였다면 김정일은 「인민의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됐었다.특히 김정일은 서모아래에서 설움을 받으며 자랐다는 「흠집」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동정을 불러일으켰다.또 서구영화와 디스코·장발·통바지등 서구의 유행등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금강산과 남포·청진시등 4개 도시를 관광지대로 개방하자고 주장하는등 젊은층의 기호·취향을 어느 정도 알아줬기 때문에 김일성보다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는 대학생과 청년단체,신진 엘리트,3대 소조를 자주 만나 「나와 함께 일할 동지들」이라고 신임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그래서 젊은층이 김정일을 미래의 지도자라는 생각에서 더 따랐던 것 같다.그리고 지금도 이런 정서가 북한의 젊은층 사이에 퍼져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특히 테크노크라트들의 지지기반을 얕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물론 나의 김정일에 대한 생각은 폴란드 유학및 한국생활을 통해 73년이후 20여년동안 계속됐던 세뇌교육에 의해 왜곡·조작된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속고 살았다는 배신감과 허탈감이 컸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을 보면서 북한체제의 경험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강경하고 즉흥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김일성과 비교해 친화력과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뒤집기 위해 무척 애쓸 것이다.또 「군사에 약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어 핵문제등 현안문제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안팎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정권을 잡은 뒤에는 경제난과 피폐한 주민생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을 반대하는 혁명 1세대를 몰아내는 계기로 삼을 지도 모른다. 김일성 사후 북한사회를 정확하게 전망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보다 훨씬 인간적인 존재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된 김정일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동영준씨(28)는 지난 89년6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종합대학에서 유학중 귀순,지난 92년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 기 자 입 력 가제목:내가 본 김정일 기자명:김정열 부서명:문화부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 예술분야 상당한 조예… 영화는 “광적”/신상옥감독이 본 김정일

    ◎술·담배·도박 즐기고 승부근성 강해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 울부짖는 평양… “주체 공황”/김일성사망발표 사흘째 이모저모

    ◎3일새 평양주민 80% 추모행사에/북 당정 고위간부들 “김정일에 충성” 김일성 사망이 공식발표된지 하루가 지난 10일에도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김일성동상 앞에 몰려들어 애도를 표하고 있으나 하루전의 충격에 비하면 다소 평온을 되찾은 듯한 분위기며 평양시내의 시민들 왕래도 9일보다 자유롭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북한은 또 이날부터 당정간부들을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다짐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최상의 미사여구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방송을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외신들은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김일성동상에 몰려와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평양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은 AFP 북경지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시내 곳곳에서 떼를 지어 모여든 수천,수만의 시민들이 헌화·애도하는 광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2∼3일 새에 80% 이상의 평양시민이 동상애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 평양주재 외교관은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울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사망발표의 첫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언.이 외교관에 따르면 평양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애도음악이 이어지고 있으나 교통·상점등 생활의 기본서비스는 예전과 변동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평양시내는 평온하고 시민들의 왕래도 자유로워 보안이 강화되는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북한주민들은 10일 이른 아침부터 인근에 있는 김일성동상을 찾아가 그의 사망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방송은 이날 아침방송에서 『전당 전민 전군이 끝없이 경모의 마음을 안고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면서 『전체 주민들이 이 시각에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특히 김일성의 대형동상이 세워져 있는 평양 만수대 언덕에는 『어버이를 잃은 평양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동상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 중앙방송은 또 김일성동상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눈물은 비통한 슬픔만이 아니었다면서그들의 눈물은 『수령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할 맹세의 눈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 ○…북한방송들은 10일부터 북한청소년 사회단체조직인 사로청위원장 최용해와의 인터뷰를 내보낸데 이어 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 등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들을 연이어 보도. 북한의 사로청 위원장 최용해는 이날 고위간부로는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우리는 오늘 이 비통한 마음과 크나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나감으로써 김일성동지가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해는 또 소년단을 포함해 모두 8백만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을 『김정일동지를 최선봉에서 결사 옹호하는 총폭탄으로 준비시키겠다』고 다짐. 북한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과 노동당 정치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은 『김정일동지가 있는한 주체의 혁명위업은 빛나게 계승,완성될것이며 승리는 확고히 담보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 당·정 고위간부들은 김정일을 『우리의 운명이고 미래의 탁월한 수령』이라고 높이 찬양하면서 김정일을 위해 일생을 충신으로 살 것임을 강조. ○…북한방송들은 김일성 사망발표 하루가 지난 10일 밤부터 사망과 무관한 일반적인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는 등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 평양방송은 이날 밤 10시 종합보도를 통해 최근 광주에서 열린 한총련 2기 출범식 관련 소식을 전함으로써 김일성사망이후 최초로 사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을 보도.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은 또 9일 정오뉴스이후 매 시간 정각에 사망 부고를 재방송 해왔으나 10일 정오뉴스부터는 일체의 부고 보도를 하지않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김일성사망소식을 처음 보도한 9일 정오뉴스이후 부고,추모음악,국내외 반응,각국 축전만을 소개하던 보도태도에서 벗어나 북한이 의외로 신속하게 김일성사망으로 인한 충격을 수습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북자극 자제”… 대북심리전 중지령/이국방,군에 지시

    ◎“북군 훈련중단… 단순 경계 활동” 이병대국방장관은 10일 『북한군은 김일성 사망 이후 전반적인 군사훈련을 대부분 중단한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또 『우리 군의 대비태세는 완벽해 국민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불필요하게 북한군을 자극하지 않도록 대북심리전을 중단하라고 군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이날 상오 김일성 사망과 관련,예고없이 기자회견을 갖고 전반적인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설명했다. 이장관은 『우리군은 북한군 주시수준을 평소의 배정도로 높이 유지하고 있다』면서 『9일 하오 이양호합참의장·게리 럭 한미연합사령관과 함께 유사시에 대비한 대응책을 검토,한­미양국의 연합방위태세를 확고하게 다졌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또 이날 북한동향에 관한 브리핑에서 『북한은 9일 하오부터 평양방송·중앙방송등 중앙매체와 전방의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김일성사망사실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면서 『이들 매체는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고 김정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경기 연천북부에 위치한 북한초소에서는 9일 낮 종전에 설치된 대형 김일성초상화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김일성초상화를 완전 제거한 것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북한군은 특별한 경계령이 하달되지 않은채 단순히 경계활동만 강화하고 있으며 김일성 사망발표 이후 북한중앙매체의 대남비방방송이 일체 중단됐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같은 북한군동향과 관련,9일 하오 10시 전군에 북한자극행동을 중지하되 대북한 전장감시활동을 확대하고 한­미군사협력을 강화할 것과 우발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할 것을 긴급지시 했다. 국방부는 각군의 경계수준에 대해 우리군은 평소와 같이 군병력이 3분의 1씩 교대근무하는 C형근무를 하고 있으며 해군은 구역경비및 초계활동을 펼치고 있고 공군만 공중초계 및 긴급출동태세를 갖춘채 하루 11차례씩 공중정찰활동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평양/“집단충격·히스테리 상태”/김일성 사망발표 이후의 북녘표정

    ◎만수대 수만명 몰려 오열… 중심가 경계강화/조곡대신 김정일찬양가요만 되풀이 방송 9일 정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에 접한 평양시민들은 슬픔과 비탄속에 오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외신들과 내외통신은 전하고 있다.이에 따르면 엄청난 충격으로 넋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의 시민들 가운데 일부시민들은 충격과 오열속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관측되기도 하는 등 충격속에 도시전체가 한꺼번에 마비되는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애도를 표하는 수많은 시민 가운데 극소수 시민들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시민들은 TV와 라디오앞에 모여 울먹이는 목소리의 북한당국 발표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걱정하기도 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정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는 첫 방송을 내보낸 뒤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음악만 내보내고 있다.그러나 음악은 「조곡」이 아니라 「혁명가요」와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등 온통 김정일찬양가요 일색. 방송은 또 『김일성동지의 뜻하지 않은 서거는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이며 온민족의 가장 큰 슬픔』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김주석이 비록 사망했지만 오늘 혁명의 진두에는 김정일이 서 있다』는 말로 김주석이 마련한 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강조하기도. ○…북한방송은 『김주석의 영구를 금수산의사당에 안치한다』고 밝히고 『7월8일부터 17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11일부터 16일까지 조문객을 맞이하며 17일 평양에서 추도대회를 갖는다』고 말했다.북한방송은 또 애도기간중에는 일체의 가무·유희·오락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평양시민들은 오열에 오열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양시내동정을 전화로 취재한 폴란드통신 PAP의 크리스즈토프 다레비츠 북경특파원이 말했다. 평양특파원을 겸임하고 있는 다레비츠기자는 김주석의 사망발표로 현재 평양시내는 경악에 휩싸여 있으며 거리와 상점의 시민들은 미친듯이 오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레비츠기자는 『평양주재 폴란드대사관의 북한인 정원사와 통역원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울기만 한다.가게를 가도 점원들이 아무 일도 않고 울고만 있어 물건을 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접촉한 평양소식통들은 김주석의 유해가 만수대에 안치돼 있다고 말했으나 김주석의 아들이자 지명후계자인 김정일의 동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들 소식통의 말을 인용,『평양은 현재 집단충격과 히스테리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카터 전미대통령의 북한방문때 동행한 미CNN­TV의 마이크 치노이기자는 『평양의 소식통들과 접촉해본 결과 큰 동요는 없으나 중앙역부근등에 경계가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치노이기자는 또 김주석의 돌연한 사망은 고령에 따른 자연사일 가능성이 높으나 일각에서는 쿠데타가 있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주재 인도대사 키프겐은 전화회견에서 『주민들은 분명히 뉴스에 충격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오열하고 있다』고 말하고 『학교에서 귀가하는 학생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점들도 모두 문을 열었으며 통신이 두절된 적도 없다』면서 『그들은 모든 게 비교적 평온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사실이 발표된 뒤 평양시내 만수대의 김일성동상 앞에는 수만명의 북한인들이 운집,김의 사망을 슬퍼하고 있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9일 북경발로 보도. 교도통신은 동구의 외교소식통들이 평양 외교공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사실이라고 밝히고 동상앞에 시민들이 운집하기 시작한 것은 하오3시경으로 꽃다발을 들고와 울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고 전언. 하오7시가 넘어서면서 2만명으로 늘었으며 시내 각지에서 동상으로 향하는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평양교외에서도 버스나 트럭을 타고 평양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 김정일 나타날까/후계구도·서울회담 관련 관심 증폭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공식 후계자 김정일의 행보가 짙은 안개속에 휩싸여 있다. 북한의 각종 선전매체를 통한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하지만 올들어 핵문제 등 외교와 대남관계를 김일성주석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나섬으로써 그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요컨대 선전적 차원에서는 김정일 후계체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으나 실제 권력은 더 이상 이양하지 않고 있는 기묘한 형국이다.그는 전반적 무력을 장악하는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 및 당사업을 총괄하는 비서 등을 맡고 있으나 아직 당총서기와 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은 물려받지 못하고 있다. 후계체제의 완성을 위한 김정일 찬양작업은 올들어 줄곧 에스컬레이트되어 최근 절정에 이른 인상이다. 연초 북측 보도매체들이 그에 대해 김일성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어버이」,「수령」이라는 호칭을 심심찮게 사용했다.뿐만 아니라 휴전선 일대의 대남확성기 방송에선 「주석」이라는 호칭까지 등장한 사실이 우리측에 포착됐다. 최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일이 7·4공동성명 초안을 작성하는 데 깊이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 등도 그의 업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후계체제의 완성을 위한 호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니냐하는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란한 선전과는 달리 김정일이 무대에 등장하는 횟수는 지난해 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연초의 그레이엄목사 방북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물론 최근 평양을 방문,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한번 보자」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는 김정일이 그동안 「곁가지」로 백안시해 온 것으로 알려진 계모 김성애가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전면에 복귀한 것과는 퍽 대조적인 양상이다. 그가 제2선으로 후퇴한 인상을 주는 것은 김주석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 따른 반작용이다.하지만 그 배경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다만 그의 이같은 「고개숙인」 모습이 반드시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대체적 시각이다. 그 보다는 현상황에서 김정일의 지도력에 더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김주석의 고육지책이 아니냐하는 관측이 보다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핵문제와 경제난에 따른 인한 총체적 난국에서 어느 정도 헤어날 때까지의 잠정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이번 정상회담 기간중 북측이 김정일을 김영삼대통령과 대면시킬지의 여부도 안정적 후계구도 정착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데 따라 결론 지어질 것이다. 북측이 김대통령의 흡수통일 불원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북한체제의 상징격인 김정일과의 만남을 연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특히 북측이 굳이 정상회담을 「최고위급회담」이라고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2차 서울 정상회담은 김정일과 하자는 「비정상적」 제안을 해올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북한이 기본적으로 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폐쇄회로」사회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정상회담을 전후한 어느 시기에 어떠한 위상을 갖고 나타날 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 남총련 배후조종/3명 긴급구속

    【광주=최치봉기자】 전남지방경찰청은 5일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에 대한 배후조종과 함께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해온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사무처장 오병윤씨(37)와 이 단체산하 「조통위」위원장 김양무(42)김세원(62)씨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92년부터 지금까지 남총련 핵심지도부를 배후조종,수십차례의 불법집회및 시위를 주도하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광주전남연합」창립준비위원등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식을 지지하고 김일성의 항일게릴라전을 찬양하는 내용의 각종 유인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다.
  • 6·25 44돌… 학도병 참전 용사들의 회고 특별대담

    6·25때 홍안의 미소년으로 전장을 누볐던 학도병들은 몇차례 강산이 바뀌는 세월속에서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의 옛전사로 변했다.하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살아있다.포연의 전장에서 불퇴전의 용기로 살아남은 유성덕 서울대광고교장(63)과 정년탁대한학도의용군회 총본부 전회장(63)의 대담을 통해 그날을 되새기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자세등을 되짚어본다. ◎“펜대신 총으로…” 5만여명 구국전선에/조국사수 일념에 사격훈련만 받고 전투/곳곳서 맹활약… 포항선 71명 장렬한 산화/“자유만끽” 요즘 젊은이들,기성세대의 체험 곱씹어 보아야 ▲유교장=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6·25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또 한시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게 바로 6·25지요.중학6년(18세)때 학도병으로 자원해 나갔다가 온 몸을 크게 다쳐(왼쪽 손가락 4개와 오른 손가락 2개,양쪽 발가락절단,발뒤꿈치 골수염) 지금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하지만 해방이후 북쪽의공산당이 싫어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학도의용병으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6·25발발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할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남쪽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지요.북한군에 밀려 대구와 부산만 겨우 남아 있었으니까요.피란지인 부산에서 중학교 영어 실력이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50년 8월 초쯤으로 기억됩니다.어린 나이였지만 「펜대신 총을 들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자」고 모두들 나서는 분위기였습니다.전투에 나가 더이상의 북한의 공세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미군부대에 보고도 않고 곧바로 의용병모집 장소로 달려갔습니다.함께 지원한 2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경주에서 3일동안 사격훈련을 받고 안강전투에 참가했지요.갑자기 모집한 학도병이고 보니 복장도 교복차림에 군복,미군작업복등 각양각색이었어요.우리가 배속된 부대가 김석원준장(작고)이 이끄는 수도사단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당시 학도병들은 일정지역에 모아 부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는대로 그때 그때 전투지역으로 보냈지요.그만큼 병력은 부족하고 전황은 다급했다는 이야기지요.정회장도 학도병에 자원할 당시 중학생이셨지요. ▲정전회장=저는 중3때 광주지역에서 학도병으로 참가했어요.사실 호남지역에는 6·25이전에 이미 빨치산등 좌익세력이 적지않았어요.학교에도 좌익에 물든 사람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좌우로 갈라져 있었어요.어린 눈에 좌익분자들이 사람을 백주에 죽이는것을 보고 까무러쳤습니다.좌익학생들의 연대파업등을 수없이 보았습니다.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공산당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몰려나갔지요.4일동안 간단한 사격훈련등을 받고 12사단에서 배속돼 주로 태백산과 노령산 일대에서 전투를 했었죠.훈련받을 때 총이 모자라 인민군의 딱총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릴때 공산당의 잔학상을 보아왔던 때문인지 사람이 죽는다는걸 별로 무섭게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아요.안강전투는 대단했다면서요. ▲유교장=지금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습니다.우리로서는 더이상 밀리면 부산·대구까지 내주어야 하니까 몸으로라도 끝까지 사수해야하는 마지노선이었어요.죽거나 부상당해 후송되는 학생들 말고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당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학도의용병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요.학도병들의 용기는 현역병을 훨씬 능가했습니다.살아남겠다는 생각없이 그야말로 물불을 가라지 않고 싸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겁니다.지금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싶어요.형산강을 피로 물들이고 일주일여 사투를 벌이니까 북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더군요.이후 포항탈환작전에 참가,시가전을 벌였고 고성,함흥등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포항 시가전에 참가했을때 어느 중학교에는 인민군과 우리 군과 학도병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습니다.결국 그들을 포항에서 물리친 것이지요.북진이 계속되고 김일성이 다급해지니까 중공군에 도움을 요청,이른바 중공군의인해전술이 시작돼 우리는 다시 남으로 밀리게 됐지요. ▲정전회장=교장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당시 학생들의 전의는 대단했습니다.군대 안가려고 일부러 손가락까지 자르던 일부 징집대상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끓는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마디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지요.죽음을 초월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런일도 있었어요.태백산자락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어요.어느 지점을 며칠만에 지나는데 태극기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반듯이 누운 한 젊은이를 발견했어요.죽은 줄알고 다다가 보니 목숨이 붙어있더군요.전투중에 실종된 학도병이었습니다.이 친구는 부상을 당해 낙오가 되고 기력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게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인민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태극기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린 것이지요. ▲유교장=당시 학병들의 참전은 아군의 전투력증강에 상당한 보탬이 된것으로 압니다.정회장은학병모임일도 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전회장=대한 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여러해 맡았습니다.학도의용군은 50년 6월 전쟁발발때부터 51년 4월 이승만대통령이 복교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로 중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됐었습니다.50년 6월28일에 피란가던 서울시내 각대학 학도호국단 간부 2백여명이 수원에서 합동비상학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이후 각 군소재지 학교에서까지 이들이 결성돼 눈부신 활약을 벌였어요.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말입니다.5만여명 정도가 참전했고 7천여명이 전사했습니다.당시 정규군병력이 15만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한 것이지요.그중에서도 중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1·4후퇴때는 북한에서 2천여명의 학생들이 넘어와 참전했었고 부산지역의 학생 7백여명은 유엔군에 편입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뒤 다시 돌아와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죠.가장 비참했던 전투는 포항전투로 1기로 참전했던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 전원이 이름없는 고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역사적으로 학생들의 애국심이 이처럼 높았던 나라는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외에는 없다고 외국전문가들도 이야기합디다. ▲유교장=학병들의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내려온다고 생각됩니다. ▲정전회장=그렇습니다.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6·25당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금도 당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당시 장성들을 만나도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학생운동의 맥은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운동과 해방직후 반탁반공운동,4·19의거,그리고 6·25때의 바로 이 학도의용군으로 이어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역사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배들의 정신을 너무 모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세계적인 변화속에서 반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요. ▲유교장=독사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가 무서운 줄 알듯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전쟁의 고통과 공포를 알 수 있지요.자유역시 마찬가집니다.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은 민주화 민주화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진정 자유가 박탈된 상태,전쟁이 주는 공포는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기성세대의 뼈아픈 체험을 한번쯤은 곱씹어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기성세대를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가슴에 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들의 포부를 펴나가라는 것이지요.일제와 6·25를 겪으며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부인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열어나가는 좌표로 인식돼야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의 모든 일에대해 지나치게 간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치는 정치인에게 국방은 군에 맡기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또 국민역시 각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않다고 봅니다.지난 현충일 연휴때 나들이 인파로 주요도로가 모두 만원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모두 잊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회장=지금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에 맞춰 겉모습만을 바꾼 것뿐입니다.그런데도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진 행동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북한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학생운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시대에 맞게 어른들과 선배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줄 알아야죠.통일에 대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간첩이 우글거린다는데(사설)

    「구국전위」라는 조선노동당 지하당을 결성,산업현장과 대학가등에 하부조직망을 구축해온 간첩망이 수사기관에 적발됐다.그중 15명은 구속되고 5명은 추적중이라고 한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그들은 북한 공작조직의 자금지원을 받아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암약하면서 혼란을 조성하고 전국규모의 고정간첩망을 구성하는 것을 첫번째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특히 그들은 학원가와 노동계에 깊숙이 침투해 학생데모나 노사분규를 배후에서 조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최근 민주화·개방화 분위기를 이용해 간첩들을 일본경유로 대거 서울에 침투시키고 있으며 밤이면 저들의 무선교신이 서울하늘을 메운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다.현역군인까지 포섭해 조직원으로 활용했다니 정말이지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6공때의 「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는 간첩망 검거후 지금까지 간첩잡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시중에는 간첩들이 우글거린다는 풍문이 이미 요란했지만 국민들은 설마 그럴리야 있겠느냐며 믿지 않으려 했던것이사실이다.운동권 학생들이 대학가에 인공기가 걸린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북한을 공공연히 찬양해도,일부 재야·노동단체에서 용공성을 띤 유인물을 뿌려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이만저만한 안보불감증이 아니었다. 북한의 흉계가 그런 틈새를 놓칠리 없다.기회만 있으면 우리 사회안에 공산지하조직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결정적 시기」에 무장봉기를 하게할 계략을 세워온 것이 그들이다.우리의 안보의식이 해이해진 틈을 타 간첩을 남파하고 이를 거점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을 포섭해 유사시의 적화통일을 위한 조직기반을 구축해오고 있었던 것이다.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에 북한과 직·간접으로 연계된 세력이 상당히 퍼져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적중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당국의 대남적화통일 전략은 두가지밖에 없다.전혀 변하지도 않았다.그중 하나가 무력적 방법이다.6·25남침처럼 한국을 무력으로 침공해 적화시키는 것이다.핵개발도 그 방편의 하나다.다른 하나는 간접침략의 방법이다.이번과 같이 공작원을 남파해 지하혁명당을 구축하고 남한의 각계 각층을 포섭,「민중봉기」를 통해 적화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이나 정부의 방첩기능은 어떤가.한마디로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심정이다.뜻있는 애국시민들의 한결같은 우려이기도 하다.간첩은 대학가나 노동계에만 있는것이 아니다.정부내나 사회핵심조직에도 도사리고 있을수 있다.하나도 놓치지말고 철저히 색출해 주기 바란다.
  • 「이적·용공」 배후·주동자 검거 총력/한총련 수사 배경과 방향

    ◎북주장 수용,민주주의에 도전 규명/남총련 등 9개지역 의장 깊이 개입 경찰이 한총련 출범식에 나타난 이적·용공행위를 발본색원키로 한 것은 이들의 주장이 북한의 선전을 여과없이 받아들인데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김화남경찰청장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한총련 출범식행사에는 용공·이적행위가 표출되어 왔지만 이제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정면도전,파괴하려는 책동으로써 방치할 수 없다』는 말에서도 이번 한총련에 대한 수사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의 수사방향은 먼저 제2기 한총련 출범식에 나타난 ▲한총련 출범 선언문등 6종류의 유인물 ▲북한 정권의 성립과정을 정당화하는 사진전 ▲북한이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1백5층 유경호텔등 모형 건물전시 ▲북한의 생활상을 담은 비디오 상영 ▲북한 김책대학등과의 불법통신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규정,관련자 색출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이같은 유인물과 전시물 제작등에 관여한 학생들을 유형별로 분류,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 김현준군(25·부산대 총학생회장)등 핵심간부 10여명에 대한 검거및 소재 파악에 나섰다. 이는 경찰이 한총련 출범식때 나온 유인물과 전시물등을 채택·제작·배포하는 과정에는 한총련의 핵심간부들이 반드시 관여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한총련 대의원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모든 정책집행은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의장 김군과 전남·광주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남총련)등 9개지역 의장을 반드시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한총련의 핵심간부인 의장과 9개지역 의장은 이른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의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의장단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범청학련은 이미 92년과 93년 두차례에 걸쳐 서울지법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데다 「한총련의 상급조직」으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한총련은 범청학련과 접촉하며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행위를 전혀 이적·용공행위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한총련 출범식 기간동안 범청학련 남측본부는 의장단회의를 개최하고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제의했다. 경찰은 한총련 핵심간부의 수사와 함께 한총련 산하 조직인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서부·동부·북부등 하부 조직 26개지구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의 한 고위간부는 이와관련,『한총련의 조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적·용공행위를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이번 한총련 수사는 반국가적행위에 대한 사법적인 제재이기 때문에 주동자와 배후세력을 반드시 검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배후세력으로 한총련 출범식에서 수배중인 전 한총련의장 김재용군(25)이 학생들을 선동하는 연설을 한 것등으로 미루어 현재 국가보안법 혐의로 수배중인 93년도 한총련 간부 10명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경찰은 전시된 사진과 상영된 비디오테이프등의 입수경위에 대해 수사를 벌여 지난달 23일 조선대 교지편집위원장 차재덕군(25·경영학과 4년)등 2명을 검거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한총련은 북한대변 단체인가(사설)

    「한총련」이 제2기 출범식을 계기로 보인 각종 전시물과 유인물들은 한마디로 반국가적 불법행위였다.「한총련」은 행사기간중 북한정권의 성립과정을 정당화하는 사진과 설명을 게시하고 북한의 대외선전용 건물의 모형을 제작,전시해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열을 올렸다.더욱이 유인물을 통해서는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파쇼정권」이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묘사했다.심지어는 「북한에 대한 부당한 핵사찰 압력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같은 행위는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걱정에 앞서 분노를 느낀다.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들은 누구인가.아무리 학생신분임을 감안한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시물이나 유인물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이지 기가 찬다.전시물은 인공기가 게양된 만수대의사당등 하나같이 북한이 우월하다고 선전하는 것들이다.게다가 유인물 내용은 마치 북에서보내온 전단을 보는 것 같다.「미제국주의자들의 또다른 노예가 된 이 땅을 해방시키기 위해 조국해방전쟁을 벌여낸지 44년」「인간의 지위와 삶의지표를 독창적으로 밝힌 유일한 통치단결의 사상이 있다」는등 6·25를 「조국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주체사상을 미화하는 것들이다. 더욱 한심한것은 문민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북한이 벼랑으로 끌고가고 있는 북한핵문제를 놓고 북한의 대남전략노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다시말해 「한총련」의 주장은 모두가 우리체제를 부인하고 북한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한총련」의 행동은 이미 용인할 수 없는 위험수위를 크게 넘어선 상태라고 본다.세상에 6·25가 「조국해방전쟁」이라니 어디 말이 되는가.지금은 공산주의를 내던져버린 종주국 러시아에서조차 「6·25는 북한의 남침」임을 입증하는 역사자료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북한핵문제도 마찬 가지이다.정부와 온국민이 반대하고있다.국제사회도 유엔 안보이를 통한 성명을 내고 제재에 들어갈 태세를 갖추고 있다.그런 북한핵의 사찰을 반대한다니 말이 될 소린가.한총련은 북한대변 단체란 말인가. 당국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대학생이란 자들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노골적으로 미화 찬양하는 행위는 절대 좌시해선 안된다.북한의 마수가 배후에 뻗혀있을 가능성도 크다.차제에 그실체와 배후를 철저히 파헤쳐 다시는 이런 반국가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인 행위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해야할것이다.
  • “6·25는 조국 해방전쟁” 주장/한총련출범식 유인물 파장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파쇼정권」 규정/“대북 핵사찰압력 방관않겠다” 위협도 경찰이 한총련출범식과 관련,용공·이적행위 주동자및 연계·배후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선 것은 학생들의 노골적인 반국가적 불법행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은 제2기 한총련출범식행사에서 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를 사용하는 등의 폭력시위는 줄고 참가학생수도 지난해 5만명에서 2만5천여명으로 감소했으나 국가보안법위반 유인물및 전시물은 예년보다 훨씬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총련출범식에서 드러난 ▲출범식선언문등 6종의 유인물내용 ▲북한정권의 성립과정등을 정당화하는 사진및 모형물전시 ▲범청학련과 통신을 통한 북한과의 연계활동시도등은 명백히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국가보안법상 찬양및 고무·이적표현물제작및 배포,회합통신,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등을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한총련출범식선언문에서 『한총련 백만청년은 현정권을 매국정권·대결정권으로 낙인찍어버리고 새롭게 자주적 민주정부수립투쟁에 다시 일어섰다…』등의 내용을 통해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친미 파쇼정권으로 규정한 것을 비롯,6·25를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총련의 핵심조직중 하나인 조국통일위원회의 출범선언문에는 『주한 미군철수와 미군기지철폐를 위한 투쟁에 나서자』면서 이미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청학련」조직을 강화,95년까지 연방제통일을 이루겠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 선언문은 이와 함께 『이북에 대한 부당한 핵사찰압력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 또 한총련명의로 나온 유인물 「조국통일위원회에 새 돛을 달기 위하여」에는 『연공연북의식에 기반한 민족대단결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출범식에 참가한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 전남대 민족사랑학생연합의 「민족의 길 제8호」,「자주적 평화통일 원문」등에도 북한이 평소 주장해오고 있는 연방제통일안과 핵사찰의 부당성,주체사상 등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은 출범식장내에 「조선인민해방군창설」 「타도 제국주의동맹결성」등 북한정권의 성립과정을 정당화하는 사진과 설명을 게시하고 북한이 대외선전용으로 만든 인민문화궁전등 각종 건물모형을 제작해 전시하며 북한체제와 사회의 우월성을 선전한 부분도 용공·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 김정일 수령 지칭/통치권 장악 시사/북 방송

    【내외】 북한방송이 9일 수차에 걸쳐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이라고 지칭해 주목되고 있다. 평양방송은 이날 김정일의 「영도력」 찬양프로에서 옛소련과 동구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엄혹한 환경에서도 『우리나라에서만 두분의 수령 영도로 사회주의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비범한 예지와 영도력으로 사회주의 위업을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당과 인민위 위대한 영도자이며 자주시대의 위대한 수령』이라고 말했다.
  • 북한찬양 책자발간 30대 출판업자 구속

    서울경찰청은 20일 용공책자를 발행,판매해온 박치관씨(36·도서출판 일터 편집부장·서울 강동구 상일동 282)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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