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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개그림」 홍성담피고/간첩죄적용 원심파기/대법원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회창대법관)는 25일 대형걸개그림을 「평양축전」에 보낸 혐의로 2심에서 징역7년에 자격정지7년을 선고받고 상고한 「민족민중미술전국연합」공동의장 홍성담피고인(35)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상고심에서 원심이 피고인에게 간첩죄 등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던 부분을 파기,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홍피고인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의 간첩,국가기밀누설,회합통신ㆍ잠입,금품수수죄목 등은 모두 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성낙영목사와 접촉한데 따른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성목사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나 홍피고인이 이를 미리 알고 인식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원심파기사유를 밝혔다.
  • 북한 공작원 70∼80명 홍콩서 암약/홍콩지서 보도

    ◎중국 상사직원 위장,마카오 거쳐 잠입/KAL기 폭파등 테러 전담… 무기밀매도 홍콩에는 현재 70∼80명의 북한인들이 위조여권과 주민증을 갖고 첩보 요원으로 암약중이며 이들은 거의 모두가 중국 회사직원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29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들이 중국 광동성 광주에서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잠입하고 있으며 마카오엔 약 2백명의 북한인들이 상사 주재원 등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평양당국은 광주의 수많은 중국국영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마카오 행정권의 일부가 중국측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마카오에서의 북한인활동은 매우 자유스러운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이 모든 주권을 행사하는 홍콩의 경우 북한에서 입경비자를 신청하면 대부분 거절을 당하거나 매우 까다로운 조사를 받기 때문에 북한인들은 주로 마카오에서 여권ㆍ주민증 등을 위조,홍콩에 들어온다고 포스트지는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홍콩거주인으로 가장한 북한인들이 서울을 비롯한 자유세계국가 주요도시를 오가며 첩보활동을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포스트지에 따르면 마카오가 특히 첩보활동계획을 세우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김현희의 KAL기 폭파는 물론 미얀마 아웅산묘지 폭발사건등의 음모도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북한측 요원들은 한국에 대한 테러외에도 무기 밀매,평양정권에 적대적인 요인 암살지령등의 업무를 마카오나 홍콩에서 수행중이라고 이신문은 밝혔다.
  • 쿠바 북한 소 경원 줄자 「공산경제」허덕인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쿠바가 상당한 경제혼란에 빠진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소련의 대북한 석유공급이 이미 감축됐으며 앞으로 군사원조도 축소될 것이라고 팔린 소공산당 국제부장이 밝힘으로써 북한도 쿠바와 같은 경제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석유공급 감축이 국내생산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를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 고수를 외치는 북한과 쿠바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북한이 겪게 될 어려움,소련과 쿠바의 사정등을 알아본다. ◎원유수급 차질 북한/소의존 높아 30% 줄면 “산업휘청”/전력난 겹쳐 공장에도 제한송전 소련이 최근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삭감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소련의 이같은 대북한 경제원조 축소가 북한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소련이 지난 7일 쿠바와 동구에 대해 국제시세보다 3배가량 싸게 공급해온 「대외원조용 원유」를 30% 삭감키로 결정한 이후 이들 나라들이 심각한 「오일쇼크」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소 경제의존도가 이들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은 북한이 겪을 경제적 타격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원유수입량의 약 30∼40%를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를 삭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소련이 비록 「정치적」이유에서 원유공급을 삭감키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심상치 않은 경제적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의 대소 의존도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3월 소련당국이 발표한 대북한 경제지원 내역에 따르면 소련은 54∼60년 사이에 13억루블을 원조했으며 소련상품이 북한의 총수입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7%나 됐다. 특히 북한의 대소무역의존도는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무역진흥회(JETRO)가 지난 87년 북한과 거래했던 세계 33개국의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수출은 14억6천만달러,수입은 20억7천만달러이며 이중 북한과 소련간의 왕복무역 규모는 총 19억5천만달러(전체대비 55%)로 2위인 중국과의 교역액 5억2천만달러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또한 북한의 대외 채무액은 88년말 현재 약 52억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1채무국 또한 소련이기 때문에 소련이 대북 경제압력을 가할 경우 북한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소련의 원유공급 삭감이 미칠 영향과 관련,북한의 에너지 공급현황을 보면 석탄 70%,석유 30%로 비교적 석유의존율이 낮기는 하지만 현재 석탄의 생산실적이 목표량인 1억2천만t에 크게 밑도는 4천70만t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소련의 이번 원유삭감 조치는 설상가상의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략생산부문에 있어서도 오는 93년까지 1천7백만㎾의 발전설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추진실적은 6백90만㎾에 불과하며 연간 발전생산량 역시 목표량 1천억㎾H에 크게 못미치는 3백억㎾H로 심각한 전략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소련은 북한의 전력생산을 증가토록 지원하기 위해 93년까지 총 1백76만㎾의 원자력 발전소(44만㎾급 4기)건설을 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의 핵안전협정체결 거부로 인해 소련이 원자로 4기의 대북판매를 일단 중단했음이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에서 확인됨에 따라 이 계획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동력원료 연료로서 주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ㆍ석탄부문의 저조한 실적은 현재 북한의 공업생산과 경제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을뿐 아니라 「제한송전」등 주민생활에도 엄청난 불편을 입히고 있다. 따라서 연간 80만∼1백만t 규모(전체대비 4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소련의 대북 원유공급량중 그 삭감량이 30% 정도만 되어도 북한경제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교역길도 막힌 쿠바/연료 할당량 줄어 국민불만 팽배/에어컨 가동중지ㆍ버스운행 단축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대통령포고령을 통해 『제3세계에 제공되는 소련의 대외원조는 재정적으로 궁핍한 소련경제에 비춰볼때 감당하기 어려운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향후 『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회원국과의 무역관계를 완전히 태환성을 갖는 통화로 국제가격에 따라 거래되도록 보장함은 물론 이같은 방침을 COMECON 이외의 국가들에게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포고령이 발표된지 5일 후인 지난달 30일 발렌틴 팔린 소련공산당 국제부장은 일본 산케이(산경)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이미 삭감했으며 앞으로는 군사원조도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외교책임자인 팔린의 이같은 발언은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이미 실시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소련경제가 대외 군사ㆍ경원까지 감축해야 할만큼 악화됐음을 시사한다는 점과 소련의 대북한 군사ㆍ경제원조의 감축이 경직된 사회주의체제의 유지를 고집하는 북한에 얼마만큼의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두가지 측면에 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5년동안 전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소련경제는 지금 글자 그대로 파탄 일보직전에 놓여 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고르바초프의 권좌유지를 희망하는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원조인데 그것도 소련경제의 탄력성에 회의를 품고 있는 서방기업들의 망설임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력의 낭비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의지표명이 제3세계에의 경제원조 중단으로 나타났다는게 소련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동구 각국과 쿠바는 이미 소련의 석유공급감축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데 자유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시도하고 있는 동구국들과는 달리 사회주의경제체제를 고집하는 쿠바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동구 각국은 가격인상등을 통해 미약하나마 수요를 억제할 「장치」가 있는데 비해 쿠바에선 연료할당량의 감축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가동 중지령을 내렸으며 일부 지역에선 트랙터 대신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일이 다시 등장했고 자칫하면버스운행마저 중단될 위기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제ㆍ군사적으로 대소의존도가 높은 북한 역시 쿠바와 마찬가지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이 오랜동안 계속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달 25일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쿠바와 북한을 의식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그것이 두 나라에 상당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은 한사코 마르크스주의의 수성을 고집하는 쿠바와 북한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하겠지만 대소 의존이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개방촉구의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 “무지개를 쫓는 김일성”/불지,7ㆍ20선언 계기 북한특집

    ◎못이룬 남한적화의 꿈… 아들에게 물려줘/45년 전시 체제… 남은 것은 경제 파국 프랑스의 르 휘가로지는 22일 한국의 「민족 대교류 기간」 제의와 이에대한 북한의 거부사실을 중점보도하면서 이를 계기로 개인숭배 권력세습등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김일성,인간극성」제하의 르휘가로지 기사의 요약이다. 이미 왜소해진 「큰 지도자」 김일성은 오늘도 일곱빛깔 무지개를 잡으려 나무꼭대기에 오르고 있다. 이상한 도시 평양을 45년이나 지배하고 있는 올해 78세의 이른바 「인간북극성」 김은 결코 이즈러 질 수 없다는 몽상에 잠겨 있다. 스탈린도 죽고 모택동 티토도 사라졌으며 차우셰스쿠까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김」의 뒤는 다시 「김」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아들 김정일이 「사회주의 낙원」을 넘겨받도록 계획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간단히 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거대한 김의 동상벽화 또는 터무니없는 그의 전기들과 관련한 개인숭배에 연결되어 있다. 김이 어떤 조선소를 방문했다고 하자,그가 한 노동자에게 선글라스 하나를 선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물론 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은 「감격에 목이 메인다」. 김이 어느 공원에 나타나면 그곳에 있는 「진달래꽃은 오직 인민을 영도하시는 경애하는 수령을 위해서만 활짝 피어난다」. 또 그가 어느 학교에 들렀을 때 선생은 학생들에게 「김일성 어버이께서는 자녀를 몇명이나 두셨지요」라고 묻고 어린 학생들은 합창하듯 입맞추어 「우리는 모두 어버이 수령의 자녀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북한의 선전에 의하면 김일성은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나라를 편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2차대전중 김은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하지만 선전으로밖에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소련군 관할의 한 수용소에서였으며 그때 그는 소규모 게릴라부대 인솔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남한이 군사정권과 산업화로 비춰진 반면 북한은 저개발과 개인숭배사상으로 표징되었다. 김의 「지상낙원」은 오직 남한을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은 항상 총력전의 구호아래 총동원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쟁의 이름아래 토론도 있을 수 없고 반대의견의 제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이같이 숨막힐 듯한 전쟁준비는 1945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며 힘에 겨워 헐떡거리면서도 지속되고 있다. 괴상한 왕국,한건의 시위도 없고 누구도 싫어하는 이 나라에서 집권자는 인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이 후계자라고 수시로 선전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천재성을 나타냈다느니 판단능력,관찰력,재능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16살때 수천권의 책을 읽었다는등의 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일은 한 여배우에 빠져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국에서 그는 테러의 지령자로 비난받고 있으며 살생을 즐기는 빗나간 독재자의 모델이 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휴전선이 실제로 개방되는 날 남북한 주민들은 아마도 분단의 현실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도 역시 북한주민들은 『위대하신 어버이수령 김일성­』하는 노래를 불러야 될 것이다.
  • 교포화합에 앞장 민단 박병헌단장

    ◎“민단­조총련 장벽도 곧 헐리겠지요”/조총련 내부에도 「변화의 기류」 움터/노대통령 방문계기,“동포로 포용” 결심 민단사상 최초의 소련 공식방문을 앞두고 있는 박병헌단장(61)은 분주한 속에서도 1시간여에 걸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성과,조총련과의 대화계획,소련방문의의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먼저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재일동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이를 계기로 조총련측과의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사실 대통령의 방일결정때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민단내의 의견도 찬ㆍ반으로 갈려있는 상태였습니다. 우선은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태도가 분명치 않은 상태였다는 점,또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보장문제도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대통령의 방일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문제는 70만 동포의 생활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민단이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민단집행부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민단입장에서는 이만큼 노력했으면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와서 한말씀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며,90년대 정리의 계기가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판단은 옳았습니다. 대통령의 방일은 45년 재일동포의 한을 풀어주었고,일본의 정치ㆍ지식인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새로운 관점에서 인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차원높은 국회연설에 대해서는 민단ㆍ조총련을 불문하고 재일동포전체가 긍지를 갖게 한 큰 성과였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방일은 재일동포사이의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노대통령은 법적지위해결은 민단계동포 뿐만 아니라 조총련계동포들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일본정부도 수긍했고,한국과는 교제를 갖지않던 일본사회당ㆍ공산당 수뇌들과도 대화를 나눌 계기가 됐습니다. 대통령의 국회연설 때 사상유례없이 전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것은 한일관계를 중요시하려는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밖에는 모르던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것입니까. ▲노대통령이 민단주최 환영리셉션에서 『조총련계 인사들을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동포로서 포용해 나가야할 것』이라는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책임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45년간 일본에서 받았던 차별의 설움을 씻고,동포간 투쟁의 역사를 종식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우리의 문호는 개방되어 있으며 조총련중앙과 조건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기 때문에 이달중으로 제의할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몇차례에 걸쳐 대화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건이 다릅니다. 독일의 통일에서 교훈을 얻는 바와 같이 우리의 남북통일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 시초는 일본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계정세가 변화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되는 우리의 제안은 받아들여지리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조총련이라는 조직은 아직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파괴활동을 일삼는 적성단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공작적 차원의 흉계는 버리고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대화에 나서도록 권고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저쪽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조총련 조직자체로서는 아직도 일체의 대화접촉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한덕수의장은 나이도 많고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일반회원들의 공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인들은 융통성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총련인사들의 한국방문도 매년 2천여명씩을 상대로 실시하는 성묘단의 차원을 떠나 지도층에서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폭을 넒혀나가도록 주선하겠습니다. ­이번 민단집행부의 대거 소련공식방문단 구성은 사상최초의 것이 아닙니까. 방소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련거주 한인들의 모임인 고려한인회(회장 미하일박) 간부들과 만나 소련과 북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자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해외동포로서 본국의 북방정책을 지원하고 참여할 길을 찾자는 뜻도 내포된 것입니다. 이와함께 북한의 지도급 출신 소련 거주 인사들의 일본방문도 초청,의견을 듣는 기회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오는 7월4일에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해외한민족협의회 운영위원회에도 참석키로 되어 있습니다.
  • 임수경피고 5년 선고/항소심서 형량 5년줄어/문신부도 5년형

    서울 고법 형사3부(재판장 송재헌부장판사)는 11일 「전대협」대표로 「평양축전」에 다녀온 임수경피고인(23)과 문규현피고인(41)에게 국가보안법의 지령수수 탈출잠입 군사상 이익공여죄 등을 적용,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임피고인은 1심에서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문피고인은 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었다. 재판부는 임피고인의 지령수수부분에 대해 『북한 조선학생위원회가 「전대협」 앞으로 보낸 공개초청장만을 가지고 지령으로 볼 수 는 없으나 「전대협」 전 정책실장 박종열군 등을 통해 전달된 별도의 지령에 의해 박군 등의 치밀한 계획과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하고 『문피고인도 임피고인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문피고인이 지난해 6월과 7월 두차례 북한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용한 국가보안법의 지령수수목적탈출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서 단순탈출죄만 인정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가 형량을 선고하기에 앞서 판결이유 요지를 낭독하려 했으나 대학생 등 방청객 1백50여명이 일제히 일어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형량만 선고하고 10분만에 마쳤다.
  • 「김일성 독전 명령서」등 첫 공개/공보처

    ◎「6ㆍ25」 40돌 맞아 「한국전쟁」 펴내/수송ㆍ전투계획등 남침준비 한눈에/미공개 미국 무성자료 8점도 수록 공보처가 6ㆍ25 40주년을 맞아 6ㆍ25의 민족사적ㆍ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9일 펴낸 「실증자료로 본 한국전쟁」에 실린 자료중에 북한의 남침준비ㆍ전투훈련ㆍ수송계획ㆍ독전명령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공개자료가 8점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북한의 남침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간된 이 책자의 자료들은 그동안 전사편찬위원회ㆍ미국무성 및 미의회도서관ㆍ조지 타운대도서관에서 소장해 오던 것이다. 이 책자에 실린 미공개자료를 연대별로 살펴본다. ①46년 7월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된 「북한보위국(내무성)회의록」. 이 회의록 목록 6번째에는 소련군 「주구루잔 대좌의 지시」가 포함돼 있는데 당시 북한이 소련의 지휘아래 있음을 밝혀주는 것으로 볼수 있다. ②북한군이 작성한 「1950년 하기전투 정치훈련계획표」. 부대장 안일성과 부부대장 조인석 명의로 된 이 계획표는 6ㆍ25남침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임을 보여주고있다. ③「371군부대 참모부명령」 50년 6월8일 철원에서 제00118호로 대대전술훈련실시에 관해 하달된 명령서에는 「포병부상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50년도 하기전 훈련계획을 일부 개정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대대계획표를 하달하면서 이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명령한다(중략). 군관 및 하사관 훈련은 이미 하달된 계획표대로 실시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④⑤「철도수송에 대한 명령서와 열차적재계획」 특히 50년 6월15일 남포에서 작성된 제466군부대 철도수송에 관한 명령의 전문에는 「현하조국이 조성된 정치정세하에서 우리 부대는 금번 보위성에 실시하는 하기 대연습에 참가하기 위하여…(이하 생략)」라고 쓰여있어 북한군이 치밀한 수송계획을 세워 병력과 보급품을 운송했음을 알 수 있다. ⑥북한보위성 전투훈련국이 50년 8월5일 작성한 「단기정치훈련계획」. 11번째 줄에 「우리조국을 통일시킬 시기는 왔으며 승리는 반드시 우리 인민들 편에 있을 것이다」고 명시돼 있다. ⑦⑧북한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이 후퇴하는 인민군에게 전열재정비를 지시한 「독전명령서」와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 박헌영이 김일성의 독전명령서 집행을 위해 하달한 지령서. 김일성의 「명령서」(50년 10월14일작성) 서두에는 「지난 6월에 미제국주의자들의 지시에 의하여 우리 조직에 동족상쟁의 내란을 도발시킨 이승만 괴뢰군의 불의의 공격을 받고…」 운운해 6ㆍ25남침을 북침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 책자에는 이밖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성명서(41년 12월10일) ▲태극기가 걸려있는 48년 5월1일의 북한노동절행사 ▲인민군 총사령부가 50년 6월18일 각사간에 하달한 러시아어 정찰명령1호 ▲우리 6사단의 방어계획 ▲6ㆍ25당시 우리 주민진술서 등 6ㆍ25전후의 희귀한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공보처는 이 책자가 정치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보고 시판도 계획하고 있다.
  • 대법,“국가보안법은 합헌” 판시

    ◎재야 법조계의 “8개항 위헌론주장” 일축/“북의 위협 상존… 평화통일 원칙과 모순안돼”/헌재ㆍ하급심에 큰 영향줄듯/문목사 상고기각… 징역7년 확정 재야법조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관한 8가지 위헌주장은 잘못이라는 대법원의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용준대법관)는 8일 문익환피고인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변호인측이 제기한 이법의 위헌주장을 조목조목반박,모두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날 판례로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론은 법률적으로 더 이상 재론하기 어려워졌으며 국회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 법의 개정작업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심사 및 하급심의 판결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문을 통해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인만큼 국가보안법의 규정을 그 법률의 목적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한 이법의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수없다』고 「위헌」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또 『북한은 아직도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와 대치하고 있으며 우리사회의 자유민주적 기본체제를 전복할 것을 포기하였다는 명백한 징후를 찾아볼 수 없고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본다고 하여 우리 헌법이 천명한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과 모순되는 법률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제6조2항 잠입ㆍ탈출죄에 대해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는 경우 뿐만 아니라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다시 지령을 받는 경우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잠입ㆍ탈출죄에 규정된 「지령」은 지휘와 명령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반드시 상명하복의 지배관계가 있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지령의 형식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잠입죄는 그 출발지가,탈출죄는 그 목적지가 반드시 반국가단체의 지배아래 있는 지역이 아니어도 된다고 판시했다. 이와함께 이법 제7조1항의 찬양ㆍ고무ㆍ동조죄에 관해서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서 기자회견이나 연설회,설교 등을 하는 행위는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가할 위험이 현저한 행위로서 이죄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이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1항의 찬양ㆍ고무ㆍ동조죄에 대해 「한정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려 이날 대법원 판례보다 오히려 여운을 남겼었다. 한편 대법원 형사3부는 이날 북한에 다녀온뒤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문익환(72),유원호피고인(60)등 2명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측과 검찰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징역7년에 자격정지 7년씩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 김추기경,사법사상 첫 법정증언

    ◎서의원 항소심 “집무실서 방북이야기 들었다”/서피고 1심대로 무기구형 김수환추기경이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21일 서경원피고인(53)등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증인으로 출두,증언을 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윤재식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김추기경은 『지난 88년 9월22일 집무실로 찾아온 서피고인으로부터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으며 남북간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김일성에게 남북간 종자교환을 제의하고 세습제는 옳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추기경은 『서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행동하거나 지령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면서 『서피고인의 이야기 가운데 북한을 추켜세우는 내용은 없었고 천주교신자로서 자신의 입북행적을 보고하고 싶은 심정에서 찾아온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서피고인을 만난뒤 함세웅신부에게 7ㆍ7선언이후이기 때문에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서피고인이 스스로 정부당국에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김추기경은 이날 상오 9시45분쯤 김승훈신부를 대동하고 서초동 법원청사에 도착,10시5분쯤 강철선ㆍ이상수변호사의 안내로 법정에 들어가 인정신문을 받고 증인선서를 한뒤 1시간동안 증언했다. 서울고검 정상임검사는 결심공판에서 서피고인에게 1심때와 마찬가지로 무기징역,방양균피고인(35)에게는 징역15년에 자격정지15년,나머지 9명에게는 징역3년,자격정지3년∼징역1년6월,자격정지1년6월씩을 구형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25일.
  • 노대통령 5월 방일…일“경호비상”/테러정보 입수…경시청 긴장

    ◎요도호 납치범 오잠입…“범행모의”추정/북한지령 따른 여객기 납치 가능성도 한일공안당국은 2일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각종 테러행위가 북한의 조종을 받은 일본 과격파에 의해 자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긴급 정보를 입수,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일본경시청등 수사당국은 특히 테러행위가 일본적군파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있는 일항기 요도호 납치범들이 동남아 및 유럽등지의 과격 단체와 연계,한국적 민항기를 납치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폭파공격에 대비,재외 일본공관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국공안당국도 오는 5월 하순으로 예정된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이들 과격 분자들이 민항기를 납치,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저지하려는 테러행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유력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적군파의 수뇌인 다이도지 아야코(대도사あ야자ㆍ41)와 지난 70년 3월31일 다른 적군파멤버 8명과 함께 JAL 요도호를 납치,북한에 체재하고 있던 다나카 요시미(전중의삼ㆍ41)가 위조여권을 갖고 오스트리아 등지를 드나들며 극비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일 공안당국은 북한이 지금까지 평양에 체재하고 있던 요도호 납치범 7명(9명중 1명사망ㆍ1명은 일본서 검거)에 대해 해외여행을 허가하지 않았었으나 최근들어 이들에 대해 북한여권을 발급,이들의 해외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요도호 납치범 7명 가운데 5명은 현재 북한에 체재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다나카 요시미와 오카모도 다케시(강본무)는 소재가 불명,공안당국은 이들 2명이 북한이 만들어 준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테러준비를 위한 해외공작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일본 산케이(산경)신문도 지금까지 전혀 소식이 없었던 적군파수뇌 다이도지와 요도호 납치범 다나카의 활동 상황을 공식으로 보도했다. 훗카이도(북해도)출신인 다이도지는 도쿄(동경)에서 고교동창인 극좌파 사형수 다이도지 쇼지(대도사장사)와 만나 연쇄 기업체 폭파사건에 관련됐던 인물로 지난 77년 9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의 일항기 하이재킹 사건때 초법규적 조치로 일본에서 출국했었다. 일본공안당국은 그후의 다이도지의 행적에 관해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그가 지난해 1월부터 일본인 여성명의의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스위스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등에 빈번히 출입국 했음을 확인했다. 오도호 납치범 다나카도 지난 1월부터 유럽에 잠복중임이 확인됐다. 공안당국은 그가 지난해 11월경 북한을 떠나 유고ㆍ오스트리아를 반복해 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나카는 최근 한 월간 잡지에 「평양발 메시지」라는 수기형식의 글을 게재했는데 공안당국은 그것이 그가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한 위장술로 보고 있다. 공안당국이 이들에 대해 중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극좌적군파를 「모체」로 유고등지에서 극비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본적군파의 최근 수년간의 동향은 동남아시아및 일본 국내의 비밀지원조직인 「반전민주 전선」구축에 주력하면서 사령관격인 오쿠히라 준조(오평순삼ㆍ41)등이 도쿄 서미트(86 5월)등에 시점을 맞춰 각국에서 폭탄테러를 자행해왔다. 그러나 지난 87년 11월 제2인자인 마루오카 오사무(환강수ㆍ39)가 체포되고 이듬해 아시아에서의 거점을 상실하게되자 적군파 멤버들은 한때 중동지역으로 퇴각,체제를 정비한 다음 유럽에서의 거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공안당국은 적군파 간부인 아다치마사오(족립정생ㆍ50) 사사키 노리오(좌좌목칙부ㆍ41)등이 이미 유럽지역에 잠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요도호 납치사건이 사건발생일로부터 만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들어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요인들에게 일본정부와의 「합의귀국」이 될 수 있도록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죄를 묻지 않는다면 귀국하겠다』는 이들의 주장 역시 위장전술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따라 한ㆍ일공안당국은 서로 긴밀히 정보를 교환해가며 이들의 동향을 주시하는 한편,북한이 한국민항기 또는 한국인 승객이 많이 탑승한 여객기를 대상으로 하이재킹등의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 김현희피고 사형 확정/KAL기 폭파관련

    ◎대법원,상고기각… 원심대로 선고/정부,곧 대통령에 특사건의 대한항공 858편여객기 폭파범 김현희피고인(28)의 사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주한대법관)는 27일 하오 김피고인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 등 상고심 선고공판을 열고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가담행위를 강요된 행위로 볼 수 없고 김승일과 공동정범으로 보아 마땅하며 원심의 양형이 부당하지 않다』고 상고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피고인에게는 국가보안법ㆍ항공법ㆍ항공기 운항안전법 등 모두 6개죄목이 적용됐다. 재판부는 『김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에 직접가담하여 실질적인 임무를 분담수행했을 뿐 아니라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수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한 국제민간항공기를 폭파시킨 비윤리적인 범행에 비추어 원심의 사형선고는 지나친 것으로 볼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김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범행한 하수인에 불과하고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데다 역사적 사건의 유일한 증인 이어서 살려두는게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빠른 시일안에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김피고인을 구명할 방침이다. 김피고인에 대한 사면은 빠르면 4월안에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정에는 사고항공기의 희생자 유족들 모임인 「858 유족회」 회원30여명이 나와 재판과정을 지켜보다가 김피고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김현희를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들은 또 『특별사면이란 있을 수 없다』 『김현희를 극형에 처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 「반민족적 폭력사」로 얼룩진 35년(흔들리는 조총련:하)

    ◎“인도주의”앞세워 교포 9만여명 북송/대한 침투 전진기지 삼아 문세광사건등 테러 자행/「세습 반대세력」늘어 노선전개에 타격 조총련의 35년 행적은 「반민족적 폭력사」바로 그것이다. 당초 정치적 색채가 없이 재일 한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결성됐던 조총련의 전신 조련도 집행부가 공산계열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일본 공산당의 외인부대로 전락했다. 조련은 그후 북한에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소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자 남로당계에서 북노당계로 기울어 더욱 전투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때의 좌익활동은 일본 공산당의 혁명노선에 의거,질서와 경제를 교란시킴으로써 일본 공산화 여건을 앞장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파괴활동으로 인한 일본내의 사회적 비난과 여론의 화살은 재일 한인사회전체와 산하 단체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한덕수에게 지령을 내려 대남침투를 위한 주일특무부대인 조총련을 결성하도록 조종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조종을 받는다 ▲대남적화정책에 추종하는 일본주둔 특무부대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재일 한국인의 포섭과 좌익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한일,한미간의 외교적ㆍ경제적ㆍ문화적 교류를 저지한다는 기본노선에 맞춰 모든 활동을 전개했다. 조총련의 제1차 사업은 재일 한인의 북송사업이었다. 북한당국이 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 조총련은 1958년 8월15일 해방 13주년 기념대회에서 북송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조총련은 「중앙귀국 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직을 총동원했으며 일본내의 언론기관에 호소,북한의 모습과 귀국의 필요성을 선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북한의 김일성은 그해 9월8일 건국10주년 기념대회에서 귀환동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북한은 전후복구사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의 귀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조국에 귀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전공세를 폈다. 북한의 당시 속셈은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발전상을 일본에 선전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던 것이었다. 재일 한인들에 대해서는 북한은 세금을 내지않는 지상낙원이라고 꾀었다. 북한에 귀환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직장을 제공하고 아동들은 즉시 취학시키며 정착금으로 성인은 1인당 2만원,14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1만원씩을 지급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이 선전과 일본인 협력자 매수 등에 들인 비용은 2조원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계략에 속아 북한에 송환된 북송자 숫자는 59년부터 82년사이 9만3천3백44명에 이른다. 북송사업은 한때 성공한듯 보였다. 59년 2천9백42명을 시발로,60년 4만9천36명,61년 2만2천8백1명으로 피크에 올랐었으나 이후 숫자가 격감했다. 68년부터 70년 사이에는 일시 중단된 적도 있었으며 그 이후는 몇백명ㆍ몇십명 단위였다. 니가타(신석)항에서 눈물을 뿌리고 떠난 북송자들은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헌것이라도 좋으니 의복이나 재봉틀,또는 라면을…』이라며 궁핍한 생활상을 편지속에 전해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북한이 이들 북송자들을 인질로 잡고 조총련계 사업가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둬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총련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테러사건은 문세광 사건이었다. 1974년 8월15일 재일 한인 문세광(23)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국립극장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부인 육영수여사가 피격,절명했다.일본경찰 조사에 따르면 문은 오사카(대판) 스미요시(주길)구에서 상고를 중퇴하고 한때 한청 이쿠노(생야)구 지부맹원으로 활약하던 자였다. 문은 민단자주수호위원회 사무국에서 일하던중 조총련 이쿠노 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에게 포섭되어 특별훈련을 받고 국내로 잠입,범행을 저질렀다.민단에서는 문의 거주지인 이쿠노 북지부에 「박대통령 저격사건 긴급대책분실」을 마련하고 「살인귀 김일성 집단타도」 「비인도적 조총련분쇄」등 입간판을 이쿠노구안에 수백개 설치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설치한지 3시간도 안돼 60여개가 조총련계 청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를 전후해 민단계와 조총련 청년들사이에는 난투극이 빈발했다. 한국정부가 민단에 대해 장기적인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조총련계 인사들에게까지 모국방문ㆍ추석성묘등 획기적인 포섭정책을 편 것은 바로 이때부터 였다. 조총련이 북한의 대남침투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그동안 저질러 온 각종 악랄한 공작은 일일이 그 예를 들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3월 문익환목사 일행의 방북사건도 전민련­범민족대회­한통련으로 이어지는 조총련과 지하수맥이 닿는 선에서 주선되었다는 사실을 도쿄의 공안관계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55년 결성된 조총련은 하부조직의 정비를 서둘러 지금은 49개 지방본부,4백19개 지부,2천7백여개의 분회,2백46개의 단을 둔 방대한 조직이 됐다. 산하단체로는 「재일본조선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15개의 단체와 「조선보사」등 18개의 주관 사업체를 갖고 있다. 조총련은 형식상 북한의 소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산하단체로 철저하게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조총련 조직을 뛰쳐나와 「김일성 독재체제타도 및 김정일 세습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하수도씨등 반김일성세력은 조총련이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노선전개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도쿄 각계에서는 주시하고 있다.
  • 30년 암약 형제간첩 검거/안기부 발표

    ◎서순은ㆍ순택… 동생은 재일공작부 거물/정ㆍ재계 발 넓은 형 포섭,정보 수집/4차례 입북… 지하당 건설 기도 국가안전기획부는 28일 북한에 4차례 왕래하면서 28차례나 국내에 침투,30여년동안 지하당구축과 고급정치 정보수집ㆍ정치권상층부대상의 정치공작 등을 해온 일본 관동지역 「북한대남공작지도부」거점책 서순택(61ㆍ북한 노동당연락부 소속지도핵심간첩ㆍ한국케라모스대표)과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뒤 국내 고정간첩으로 활동해온 형 순은(67ㆍ전관악컨트리클럽대표) 등 형제간첩을 검거,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 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형제는 그동안 북한기지와 일본관동지역공작지도부ㆍ서울을 삼각거점으로구축해 국내 정계 재계 군부의 정보를 빼내 북한에 보고해 온 혐의를 받고있다. 안전기획부는 그러나 이들에게 포섭돼 간첩으로 활동하다 자수한 김한열씨(55ㆍ빠찡꼬업경영)는 정상을 참작해 불구속으로 송치하는 한편 두차례에 걸쳐 서순택의 지령문을 형에게 전달한 서순택의 부인 문영자씨(50)도 자진입국해 수사에 협조한 이유로 입건만 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들로부터 간첩활동상황을 기재한 비망록 등 11권,북한관련사진,간첩교육학습노트 12종,무선송신기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안기부에 따르면 서순택은 「재일대남 공작지도부」 서열 3위의 거물간첩으로 지난 60년12월 조총련핵심간부로 일하다 대남공작원으로 포섭된 뒤 62년부터 72년까지 4차례에 걸쳐 입북해 간첩교육을 받고 지난70년 당시 대남공작총책인 대남사업담당비서 김중린(66) 등으로부터 ▲지하당건설요원을 육성해 남한에 침투시킬 것 ▲형을 포섭해 고급정치정보를 수집할 것 ▲남한에 합법적 거점을 구축할 것 등을 지령받고 모두 28차례 국내에 침투해 암약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의 유력경제인으로서 정계 재계 군부의 주요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형이 74년과 75년 김현옥 전서울시장,조시형전농림부장관,박종규 전청와대경호실장 등 당시 유력인사들로부터 수집한 『유신헌법에 의한 긴급조치는 학생 재야인사 등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기위한 것』이라는 내용 등의 국내정보를북한에 보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또 정치 군사 정보수집을 위해 82년에는 형을 통해 예비역장성친목단체를 구성하려했으며 87년에는 당시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인 문부식씨(61)를 통해 민주당수뇌부에,「민추협」간부 예춘호씨(62)를 통해 평민당 수뇌부에,형 순은을 통해 공화당수뇌부에 접근하라는 지령을 받고 이들과 접촉한 것으로 밝혀졌다.
  • 북한­일본­서울 오가며 3각거점구축/서순은형제간첩 어떻게 활동했나

    ◎학연ㆍ혈연 이용,정치권 파고들어/인물 동향ㆍ군사 정보등 수집 보고/형은 컨트리클럽 대표로 재계 인사에 접근 국가안전기획부가 28일 발표한 서순은ㆍ순택형제의 간첩사건은 이들이 30여년동안이나 수사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임약해 왔으며 특히 북한 재일공작지도부의 「거점책」이 직접 국내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서순택은 김학근(68)이 총책으로 있는 재일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의 「거점책」으로 김정일 등 북한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기지」「일본공작지도부」「서울」을 삼각거점으로 35년동안 암약해 왔다. 문제의 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는 김일성이 「봉화산 그루빠」라는 조직명칭을 붙여줄 정도로 절대적 신임을 받아 온 일본내 최대 대남공작조직이라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서순택이 「조총련」중앙의장인 한덕주(83)에게 포섭되어 대남공작활동을 한 대목 또한 한덕주가 대남 지하공작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서순택이 형 순은을 포섭하여 형제간첩으로 활동한것은 북한이 학연ㆍ지연은 물론 심지어는 혈연 등 모든 연고관계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대남우회침투공작을 추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또 문부식ㆍ예춘호 등 지명도가 있는 정치인을 공작대상으로 선정,정치권의 상층부에 접근을 기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순택은 60년12월 「조총련」동경본부 조직부 부부장 등 핵심간부로 활동하다가 중앙의장 한덕주에게 포섭된 뒤 「재일대남공작지도부」총책 김학근에게 인계되어 북한노동당에 입당하고 65년2월 대남공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조총련」에서 이탈해 「민단」으로 위장전향했다. 그는 60년대에는 이른바 「알까기식」의 대남지하당을 조직하는 공작에 주력하다가 69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국내지도층 인사들과 교분이 넓은 셋째형 순은을 포함,부산상고 및 동아대 동창기반을 이용한 「대남고급정보 수집공작」으로 전환하라는 지령을 받고 70년1월 국내에 침투,활동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북한의 국기훈장과 공로메달을 받았다. 70년12월 순은이 도일하여 회사운영자금지원을요청하자 총책인 김과 접선시켜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킨 뒤 공작금으로 5백만엔을 주고 포섭했다. 그뒤에는 그를 이용해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주요인사를 비롯,예비역장성 등 군부의 주요인물 동향을 수집,보고해 왔다. 72년10월 「유신선포」,74년8월 「문세광사건」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자 일본에 들어갔다가 82년5월 입북하여 김정일 등을 면담,김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82년8월부터 다시 국내에 드나들면서 5공화국 출범이후의 권력실세판도와 5공화국 핵심인물 신원정보 등을 북에 보고하는 한편 정치ㆍ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형으로 하여금 「예비역장성친목모임」을 구성하도록 기도했다. 87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남조선에 직접 침투하여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합법활동의 토대를 구축한 다음 형과 함께 여야정당의 상층부를 통해 고급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에따라 88년3월 국내에 다시 침투,힐튼호텔 구내식당에서 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동아대동창생 문부식씨(61ㆍ당시 민주당 하동ㆍ남해지구당위원장)로부터 『전국구 국회의원을 시켜줄테니 선거자금 5억∼6억엔(한화 30억∼36억원)을 낼 수 있는 재일교포를 소개시켜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총책인 김에게 보고한 결과 『민주당에 침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나 시일이 촉박하므로 다음 기회에 대비,계속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라』는 지령을 하달받았다. 89년12월에는 부산상고 동창생으로 정치ㆍ경제계에 교분이 두터운 전외환은행 동경지점 차장 이동우씨(61)와 동업형식으로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고려아카데미텔 816호실을 임대해 한국케라모스라는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올 1월11일 사업자등록까지 마쳐 합법활동거점을 구축해 왔다.
  • 임종석군 첫 공판

    임수경양을 「평양축전」에 보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전대협」의장 임종석피고인(24ㆍ한양대 무기재료과4)에 대한 첫 공판이 26일 서울 형사지법 합의30부(재판장 정상학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은 변호인단의 방청제한 철회 및 사법경찰관 정복교도관의 입정제한요구 등으로 2차례에 걸쳐 휴정됐으나 별다른 법정소란행위는 없었다. 임피고인은 검찰의 직접신문에 고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으나 『평양축전 참가결정은 전대협이 주체적으로 한것이지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령수수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날 방청석에 있던 임피고인의 가족과 대학생 등 80여명은 상오10시5분쯤 임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서자 박수를 쳤으며 재판도중 임군의 답변이 끝날때도 박수를 보내고 휴정시간동안 「전대협진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다음공판은 3월12일.
  • 줄잇는 불온 유인물 누구의 소행인가/그 실태ㆍ내용과 수사 방향

    ◎김정일 찬양 일색… 지령받은 범행으로 추정/활자체,경인지역 급진 노동운동단체 유인물과 동일/「연쇄방화 사건」 배후 조직과 연계 가능성도 최근 북한 김정일의 생일을 전후해 이를 찬양하는 유인물이 나돌고 플래카드까지 나붙어 공안당국은 물론 국민들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김정일의 48회 생일인 지난 16일을 전후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이 유인물들은 시간이 갈수록 발견 횟수와 배포량이 늘고 있다. 경찰은 이 유인물들이 김정일 찬양 일변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학생등 운동권과는 별개의 조직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그러나 이 유인물을 제작,배포하고 있는 조직으로 자처하고 있는 반제청년동맹과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실체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이 유인물 등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있는 연쇄방화 사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는 점으로 미루어 두 사건의 배후조직이 밀접한 연계성을 지닌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하고 있다. 이 유인물들은 주체사상의 논리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김일성ㆍ김정일 두 부자의 개인 미화에 더 주력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실태◁ 올들어 발견된 유인물과 플래카드 등은 모두 10여종 3백여점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제청년동맹 또는 남도주체사상연구회 명의로 된 이들 유인물등은 지난 1월11일 상오 7시30분 경남 마산 양덕동 한일합섬 정문옆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가로 2백50cm 세로 90cm 크기의 플래카드가 올해 처음 발견된 이후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전국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행인의 통행이 많은 마산 터미널옆 3층 건물 벽에 김정일 생일을 찬양하는 대형 플래카드까지 나붙어 놀라게 했다. 또 지난 15일 하오 2시15분쯤에는 진주 경상대 학생회관 입구에서 「주체혁명의 위대한 계승자 김정일동지 탄생 48돌 경축」이라는 내용의 벽보가 붙었으며 같은날 동국대 고려대 단국대 원광대 등 대학과 구로공단 전철역,성남시 인하병원 구내,전남 광주 충장로와 YMCAㆍYWCA 앞길의 공중전화박스,울산시내 등 모두 15곳에서 김정일 생일축하 유인물이 발견,신고됐다. ▷내용◁ 최근 발견되고 있는 유인물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고 있다. 지난 1월14일 경남 진주 상대동과 경상대 총학생회에서 발견된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강령이라는 유인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라는 제목아래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님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께서 발전 풍부화시키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깊이 연구학습하며 각계각층 민중속에 널리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분석 및 수사◁ 경찰은 이들 유인물들을 제작ㆍ배포하고 있는 반제청년동맹과 남도주체사상연구회가 일단 학생등 운동권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북한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이들 두 조직이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향도성ㆍ우뢰성등 사용하는 용어와 어투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으며 ▲주사파 학생들의 경우 주체사상 또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 대한 강조에그칠 뿐 김일성ㆍ김정일 개인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같이 추정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지난 18일 평양방송이 『남한의 주체사상연구소조가 서울ㆍ충남 일대에서 김정일 생일축하 유인물을 배포했다』고 보도함에 따라 이들 조직들이 북한의 직간접 지령에 의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이들 두 조직의 강령과 유인물 배포지역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두 조직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도 보고 있다. 경찰은 또 유인물 발생시기 및 유인물 활자의 특징ㆍ북한방송 인용등을 들어 남도주체사상연구회가 주체사상 선전소조의,반제청년동맹이 지하지도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 두 조직 명의의 유인물에서 사용되고 있는 활자의 형태가 경인지역 급진 노동운동단체명의의 유인물 활자체와 같으며 반제청년동맹결성 선언문이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점을 중시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인물 이외에도 더 많은 유인물이 뿌려진 것으로 보고 시민들의 신고를 당부했다.
  • 문익환 목사 7년 선고/항소심 “변호인 없는 1심 재판은 잘못”

    ◎유원호 피고 7년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안문태부장판사)는 10일 문익환피고인(72)과 유원호피고인(60)의 국가보안법 위반(잠입ㆍ탈출 등)사건 항소심선고공판을 열고 1심재판과정에서 절차상의 잘못을 들어 두 피고인에게 징역10년에 자격정지 10년씩을 선고했던 원심보다 3년씩이 낮은 징역7년에 자격정지 7년씩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재판부가 지난해 9월18일 결심공판때 변호인과 피고인이 퇴정한 가운데 국선변호인도 없이 재판을 진행한 것은 필요적 변호사건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소송절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은 필요적 변호권이 주어진 사건의 경우 피고인과 변호인이 모두 퇴정한 가운데서는 그대로 공판을 속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문피고인이 북한의 만수대에서 북한측과 가진 1차회담때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부분과 유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다는 혐의부분에 대해서도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앞서 1심재판부인 서울 형사지법 합의30부(재판장 정상학부장판사)는 지난해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변호인단이 출석했다가 『재판부의 공정한 심판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재판부기피신청을 낸뒤 퇴정하자 「긴급을 요구하는 경우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22조 단서조항을 들어 그대로 재판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282조 예외규정에는 「사형ㆍ무기 또는 단기 3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고 「필요적 변호사건」을 규정하고 있다.
  • 임수경양 징역 10년 선고/서울지법

    ◎「군사상 이익 공여」등 공소사실 모두 인정/함께 방북했던 문 신부엔 8년형 서울 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황상현부장판사)는 5일 「평양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몰래 다녀온 임수경피고인(22ㆍ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불어과 4년)에게 국가보안법의 특수탈출 및 잠입 등 모두6개죄목을 적용,징역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임피고인과 함께 구속기소된 「정의구현사제단」소속신부 문규현피고인(42)에게는 징역8년에 자격정지8년이 선고됐다. 임피고인은 징역15년,문피고인은 징역10년을 구형 받았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두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피고인들의 밀입북은 우리나라의 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한편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해 국가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으므로 엄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평양축전」에 참가해 북한이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정당한 것처럼 대외적으로 선전하는데 이용됐을 뿐아니라 남한의 통일논의를 혼란에 빠뜨렸다』고비난했다. 재판부는 또 『임피고인이 북한당국자에게 「전대헙」의 구성과 조직,운동권의 활동 상황 등을 보고한 것은 현대전이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 등에 걸친 총력ㆍ정보전이란 점에 비추어볼때 군사상의 이익을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군사상이익공여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말하는 「순수한 통일의지」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를 전복해 북한의 통일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같은 시각은 어떤 명목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피고인은 이날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 가족 등 70여명의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고를 받았다. 한편 피고인 가족들과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이 끝난뒤 『재판부가 특수탈출ㆍ잠입과 지령수수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에 동조했다고 판시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사제단,비난성명 이날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의 1심공판은 자유변론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개재판의 원칙과 법의 형평을 잃은 부당한 재판』이라는 성명을 냈다.
  • “변호인 접견 금지한채 작성 검찰조서 증거 안돼”

    ◎서울지법,홍성담씨에 7년 선고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황상현부장판사)는 30일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공동의장 홍성담피고인(35)에게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징역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미술계에 침투해 활동하면서 서독에 있던 북한 공작원들에게 책자를 보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간첩활동을 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홍피고인이 지난88년 5월 독일로 건너가 성낙영,김평원 등 북한공작원들을 만나 입북을 권유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인의 접견이 금지된 상태에서 작성된 신문조서는 임의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 북한 권력서열 큰 변동/개방 건의한 군 실력자등 대거 좌천

    ◎사상사업 명목,숙청작업 계속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의 부수상을 지낸 정치국위원 박성철이 지난해 10월 모스크바를 방문,극비리에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면담했으며 『북한도 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르바초프의 충고를 김일성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가 권력서열 상위랭킹에서 급전직하,밀려났다고 도쿄(동경)의 북한문제 전문소식통들이 23일 밝혔다.〈관련기사5면〉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고르바초프­박성철의 면담은 김일성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경제협력요청이 주목적이었는데 박이 귀국후 보고석상에서 『개방과 개혁정책을 취하지 않는 한 석유를 비롯한 필요물자를 공급받을 수 없다』고 주장,북한권력층 내부에 개방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을 비롯,무역담당 책임자였던 계응태등 경제담당자들과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했던 최광참모총장등 군부실력자들이 좌천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소위 「사상사업」이라는 명목아래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2월14일까지 북한내의 불평ㆍ불만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적발ㆍ숙청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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