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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사히신문 “동해에 北 오징어잡이 어선 급증”

    동해의 북·일 중간선 부근에서 조업하는 북한 오징어잡이 어선이 올 들어 급증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일본 수산청과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조업하는 북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올 1월부터 최근까지 400척가량 확인됐다. 2011년 15척, 2012년 80척, 2013년 110척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가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북·중관계가 삐걱대고, 외부의 식량지원도 예년만 못하자 북한이 바다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일본 당국의 분석이라고 아사히는 소개했다. 북·일 중간선 부근에서 조업하는 어선 대다수는 청진, 원산 등에서 출항한 군(軍) 소속 선박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산물 수출 부문을 장악하고 있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말 숙청되고 나서 개인 또는 기업 소유로 돼 있던 어선이 군 소유로 재편된 것일 수 있다고 일본 당국은 보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기획] 北 노골적 공기부양정 위협... 서해5도 괜찮겠지?

    [기획] 北 노골적 공기부양정 위협... 서해5도 괜찮겠지?

    연평도 중심부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연평도 포격도발이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포격의 흔적은 그 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고, 연평도 주민들은 11월 꽃게잡이 철이 돌아올 때마다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그 날의 기억 때문에 아직까지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김정은은 서해에서 공기부양정을 동원해 서북도서 주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4년여 간 우리 군은 서북도서와 NLL 일대의 전력을 크게 강화하며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왔지만, 북한은 우리 군의 전력 증강의 의미를 무색케 할 만큼 더 다양하고 강력한 전력을 서북도서에 배치하며 다음 번 도발은 ‘단순 포격’이 아닌 ‘상륙 및 점거’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치고 있다. 최근 1년간 김정은은 상륙훈련 3회, 항공기를 이용한 강습 훈련 1회 등 서북도서 기습상륙 및 점거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훈련을 자주 지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서해 5도, 특히 백령도와 연평도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여단급 해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백령도는 언제든지 북한군 4군단의 배후를 노릴 수 있고, 한국군이 대량으로 보유한 현무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이나 ATACMS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여기에 배치하면 평양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부터 집요하게 NLL 무력화를 시도해왔던 북한은 2010년 연평도 포격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더니, 이제는 서북도서 지역에 상륙해 섬을 직접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는 듯한 제스처를 버이면서 이 지역에 대한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 김정은 직접지도 상륙훈련만 올 3차례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이 지역의 전력을 강화하자 북한은 백령도에서 불과 50km 떨어진 황해남도 용연군 고암포에 70여 척의 공기 부양정을 배치할 수 있는 대규모 기지를 건설하고, 여기에 공기부양정 수십여 척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배치되기 시작한 공기부양정은 ‘공방급’이라 불리는 북한 자체 개발 모델이다. 공방급 공기부양정은 영국의 브리티시 호버크래프트 코퍼레이션(British Hovercraft Corporation)의 민수용 공기부양정인 SRN-6 모델을 기반으로 1980년대 초반에 개발됐다. 이란, 이라크, 이집트 등에 수출된 SRN-6를 북한이 입수해 이를 기반으로 모방 생산형을 만든 것이다. 공방급은 공방-1(23m급), 공방-2(21m급), 공방-3(18.5m급) 등 3종류가 있으며, 1980년대부터 1992년까지 생산된 초기형인 공방-1급 약 100여 척은 치장중이며, 현재는 공방-2급과 공방-3급이 도합 140여 척 가량 생산되어 주력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수가 배치된 공방-3급은 35명의 완전무장 병력을 태우고 50노트 (약 92km/h) 이상의 속도로 기동할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동시에 약 4,900여 명 이상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이기 때문에 1개 저격여단 병력을 동시에 상륙시킬 수 있다. -백령도 빼면 1개 대대 병력·포병뿐 북한은 상륙용 전력인 공방급 공기부양정 전력 이외에도 이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기동할 수 있는 공기부양 전투함도 선보이고 있다. 해삼급, 농어급 등으로 분류되는 신형 전투함들은 약 250톤의 배수량을 가진 선체에 우리 군의 초계함에 장착된 것과 사실상 동형의 76mm 속사포와 러시아의 Kh-35 우란 함대함 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 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으며, 남포 일대에서 종종 목격되고 있다. 고암포 기지에서 공기부양정들이 출격하면 백령도까지 30분, 연평도까지 1시간 4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연평도는 비교적 대응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30~4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백령도나 대청도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북한은 공방급 공기부양정과 지원 함정 등을 동원한 상륙훈련 실시 횟수를 점차 늘려가고 있고, 올해 들어서 김정은이 직접 현지지도한 상륙훈련만 벌써 3번이나 된다. 이에 대응해 서북 5도에는 해병대 제6여단이 분산 배치되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백령도에 3개 대대급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섬에는 1개 대대 병력과 이를 지원하는 포병 전력이 전부다. 원거리 화력전투를 수행하는 포병부대는 북한군 특수부대의 접근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로 상륙을 시도하는 적의 공기부양정 대군(大群)을 바다에서 막지 못하면 백령도와 대청도 등 주요 섬의 해병대 병력과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업이 주 생계수단이지만 최근 중국 어선들의 불법 어획 활동이 극심해지면서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의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섬을 떠나는 주민들은 많아질 것이고, 민간인이 줄어들수록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데 느껴야 할 부담은 줄어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병대원과 주민들 일부를 인질로 잡고 NLL 무력화 또는 평화협정 체결 등 협상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밀려난 국가안보 서북도서와 NLL 일대에서 북한의 위협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군은서북5도와 인천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합동부대인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병대를 중심으로 육군과 해군, 공군 전력을 배속시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에는 연평도 포격도발 이전보다 대단히 많은 장비와 전력이 보강되었으나, 현재까지 증원된 전력은 완전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규전력’으로 해병대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증원전력’으로 육군 자산을 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평도와 백령도 일대에 배치된 공격헬기와 다련장 로켓 전력은 해병대 보유 장비가 아니라 육군 소속으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에 배속된 전력이다. 즉, 중부전선이나 서부전선 일대에서 대화력전 임무를 수행하던 전력을 끌어온 ‘돌려막기’ 전력이다. 원칙대로라면 백령도나 연평도에 해병대 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이들에게 다련장 로켓과 대포병레이더, 지대공 미사일 등을 지급해야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육군 전력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돌려막기’로 증원된 지상 화력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유사시 수십 척이 물밀 듯이 몰려올 적의 공기부양정 전력을 막을 항공 전력의 부재이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바다와 갯벌을 가리지 않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공기부양정을 초계함이나 고속정으로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항공 전력이 필수적이다. 백령도에는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서 파견된 AH-1S 코브라 공격헬기 4대가 배치되어 있으나,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육상용 헬기이기 때문에 해상에서 운용이 제한되고, 표적획득장비의 성능이 떨어져 해무가 잦은 서북도서 인근 해역에서 사용하기에 대단히 제한이 많을뿐더러 숫자도 적다. 원래 서북도서와 수도권 서쪽 해안의 적 침투부대 해상 침투 저지 임무는 주한미군의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가 맡고 있었지만, 2009년 이 대대가 철수하면서 전력 공백이 생겼고, 이를 메우기 위해 배치한 것이 성남기지의 KA-1 전선항공통제기였다. KA-1의 원래 임무는 전투기의 근접항공지원 폭격을 유도하는 전선항공통제기지만, 기관포와 로켓, 미사일과 폭탄 등의 무장을 운용할 수 있어 공중에서 적 공기부양정 대군을 상대하는 핵심 전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높이 555m에 달하는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항공기 이착륙시 충돌 위험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논란 끝에 이들 전력은 강원도 원주기지로 이전 배치되면서 그 임무 역시 동부전선과 동해안 침투 저지로 변경되었다. 적 특수부대 해안 침투로부터 수도권을 지킬 핵심 전력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제2롯데월드 건립 허용과 KA-1 이동 배치를 결사반대하던 공군참모총장은 임기를 7개월이나 남겨두고 전격 교체됐다. -제2롯데월드에 '쫓겨난’ KA-1... 항공전력마저 KA-1 이동배치에 따라 서해안 안보 공백 문제가 제기되자 군은 답보 상태에 있던 AH-X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오는 2018년까지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36대를 도입할 계획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 전력이 완전작전능력을 갖추려면 2020년은 되어야 하고, 완전 전력화되더라도 평시 가동률과 임무 소요, 운용 기지의 위치 등을 감안한다면 서북 5도 유사시에 즉각적으로 동원될 수 있는 공격헬기의 수는 대단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최선의 대비책은 해병대 항공단을 조기 창설하고 여기에 해상작전이 용이한 쌍발엔진 장착 공격헬기를 배치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북 5도의 해안 방어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퇴역한 초계함이나 고속정에 장착되어 있는 30mm 또는 40mm 기관포를 떼어내 소폭 개량을 거쳐 해안 지역에 고정 포대로 설치하는 방안이나 육군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M167(발칸) 기관포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땜질 처방’일 뿐 근본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 애초에 주한미군 아파치가 버티고 있었더라면, 혹은 성남기지에 KA-1이 있었더라면 김정은은 고암포에 공기부양정 전진 기지를 건설하지도, 서북도서 주민들이 적의 기습상륙 위협에 노출되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국가안보보다 기업이익을 중시하는 일부 위정자들 덕분에 안보 불안과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 공기부양정 공격, 막을 방법이 없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北 공기부양정 공격, 막을 방법이 없다?

    연평도 중심부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연평도 포격도발이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포격의 흔적은 그 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고, 연평도 주민들은 11월 꽃게잡이 철이 돌아올 때마다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그 날의 기억 때문에 아직까지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김정은은 서해에서 공기부양정을 동원해 서북도서 주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4년여 간 우리 군은 서북도서와 NLL 일대의 전력을 크게 강화하며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왔지만, 북한은 우리 군의 전력 증강의 의미를 무색케 할 만큼 더 다양하고 강력한 전력을 서북도서에 배치하며 다음 번 도발은 ‘단순 포격’이 아닌 ‘상륙 및 점거’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치고 있다. 최근 1년간 김정은은 상륙훈련 3회, 항공기를 이용한 강습 훈련 1회 등 서북도서 기습상륙 및 점거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훈련을 자주 지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서해 5도, 특히 백령도와 연평도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여단급 해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백령도는 언제든지 북한군 4군단의 배후를 노릴 수 있고, 한국군이 대량으로 보유한 현무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이나 ATACMS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여기에 배치하면 평양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부터 집요하게 NLL 무력화를 시도해왔던 북한은 2010년 연평도 포격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더니, 이제는 서북도서 지역에 상륙해 섬을 직접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서북도서 위협... 김정은 지도 상륙훈련만 올 3차례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이 지역의 전력을 강화하자 북한은 백령도에서 불과 50km 떨어진 황해남도 용연군 고암포에 70여 척의 공기 부양정을 배치할 수 있는 대규모 기지를 건설하고, 여기에 공기부양정 수십여 척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배치되기 시작한 공기부양정은 ‘공방급’이라 불리는 북한 자체 개발 모델이다. 공방급 공기부양정은 영국의 브리티시 호버크래프트 코퍼레이션(British Hovercraft Corporation)의 민수용 공기부양정인 SRN-6 모델을 기반으로 1980년대 초반에 개발됐다. 이란, 이라크, 이집트 등에 수출된 SRN-6를 북한이 입수해 이를 기반으로 모방 생산형을 만든 것이다. 공방급은 공방-1(23m급), 공방-2(21m급), 공방-3(18.5m급) 등 3종류가 있으며, 1980년대부터 1992년까지 생산된 초기형인 공방-1급 약 100여 척은 치장중이며, 현재는 공방-2급과 공방-3급이 도합 140여 척 가량 생산되어 주력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수가 배치된 공방-3급은 35명의 완전무장 병력을 태우고 50노트 (약 92km/h) 이상의 속도로 기동할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동시에 약 4,900여 명 이상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이기 때문에 1개 저격여단 병력을 동시에 상륙시킬 수 있다. ▲백령도 제외 섬들, 1개 대대 병력·포병이 전부 북한은 상륙용 전력인 공방급 공기부양정 전력 이외에도 이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기동할 수 있는 공기부양 전투함도 선보이고 있다. 해삼급, 농어급 등으로 분류되는 신형 전투함들은 약 250톤의 배수량을 가진 선체에 우리 군의 초계함에 장착된 것과 사실상 동형의 76mm 속사포와 러시아의 Kh-35 우란 함대함 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 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으며, 남포 일대에서 종종 목격되고 있다. 고암포 기지에서 공기부양정들이 출격하면 백령도까지 30분, 연평도까지 1시간 4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연평도는 비교적 대응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30~4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백령도나 대청도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북한은 공방급 공기부양정과 지원 함정 등을 동원한 상륙훈련 실시 횟수를 점차 늘려가고 있고, 올해 들어서 김정은이 직접 현지지도한 상륙훈련만 벌써 3번이나 된다. 이에 대응해 서북 5도에는 해병대 제6여단이 분산 배치되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백령도에 3개 대대급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섬에는 1개 대대 병력과 이를 지원하는 포병 전력이 전부다. 원거리 화력전투를 수행하는 포병부대는 북한군 특수부대의 접근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로 상륙을 시도하는 적의 공기부양정 대군(大群)을 바다에서 막지 못하면 백령도와 대청도 등 주요 섬의 해병대 병력과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업이 주 생계수단이지만 최근 중국 어선들의 불법 어획 활동이 극심해지면서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의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섬을 떠나는 주민들은 많아질 것이고, 민간인이 줄어들수록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데 느껴야 할 부담은 줄어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병대원과 주민들 일부를 인질로 잡고 NLL 무력화 또는 평화협정 체결 등 협상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밀려난 국가안보 서북도서와 NLL 일대에서 북한의 위협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군은서북5도와 인천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합동부대인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병대를 중심으로 육군과 해군, 공군 전력을 배속시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에는 연평도 포격도발 이전보다 대단히 많은 장비와 전력이 보강되었으나, 현재까지 증원된 전력은 완전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규전력’으로 해병대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증원전력’으로 육군 자산을 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평도와 백령도 일대에 배치된 공격헬기와 다련장 로켓 전력은 해병대 보유 장비가 아니라 육군 소속으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에 배속된 전력이다. 즉, 중부전선이나 서부전선 일대에서 대화력전 임무를 수행하던 전력을 끌어온 ‘돌려막기’ 전력이다. 원칙대로라면 백령도나 연평도에 해병대 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이들에게 다련장 로켓과 대포병레이더, 지대공 미사일 등을 지급해야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육군 전력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돌려막기’로 증원된 지상 화력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유사시 수십 척이 물밀 듯이 몰려올 적의 공기부양정 전력을 막을 항공 전력의 부재이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바다와 갯벌을 가리지 않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공기부양정을 초계함이나 고속정으로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항공 전력이 필수적이다. 백령도에는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서 파견된 AH-1S 코브라 공격헬기 4대가 배치되어 있으나,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육상용 헬기이기 때문에 해상에서 운용이 제한되고, 표적획득장비의 성능이 떨어져 해무가 잦은 서북도서 인근 해역에서 사용하기에 대단히 제한이 많을뿐더러 숫자도 적다. 원래 서북도서와 수도권 서쪽 해안의 적 침투부대 해상 침투 저지 임무는 주한미군의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가 맡고 있었지만, 2009년 이 대대가 철수하면서 전력 공백이 생겼고, 이를 메우기 위해 배치한 것이 성남기지의 KA-1 전선항공통제기였다. KA-1의 원래 임무는 전투기의 근접항공지원 폭격을 유도하는 전선항공통제기지만, 기관포와 로켓, 미사일과 폭탄 등의 무장을 운용할 수 있어 공중에서 적 공기부양정 대군을 상대하는 핵심 전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높이 555m에 달하는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항공기 이착륙시 충돌 위험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논란 끝에 이들 전력은 강원도 원주기지로 이전 배치되면서 그 임무 역시 동부전선과 동해안 침투 저지로 변경되었다. 적 특수부대 해안 침투로부터 수도권을 지킬 핵심 전력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제2롯데월드 건립 허용과 KA-1 이동 배치를 결사반대하던 공군참모총장은 임기를 7개월이나 남겨두고 전격 교체됐다. ▲KA-1,제2롯데월드에 '쫓겨나’...반대하던 공군참모총장도 '쫓겨나' KA-1 이동배치에 따라 서해안 안보 공백 문제가 제기되자 군은 답보 상태에 있던 AH-X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오는 2018년까지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36대를 도입할 계획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 전력이 완전작전능력을 갖추려면 2020년은 되어야 하고, 완전 전력화되더라도 평시 가동률과 임무 소요, 운용 기지의 위치 등을 감안한다면 서북 5도 유사시에 즉각적으로 동원될 수 있는 공격헬기의 수는 대단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최선의 대비책은 해병대 항공단을 조기 창설하고 여기에 해상작전이 용이한 쌍발엔진 장착 공격헬기를 배치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북 5도의 해안 방어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퇴역한 초계함이나 고속정에 장착되어 있는 30mm 또는 40mm 기관포를 떼어내 소폭 개량을 거쳐 해안 지역에 고정 포대로 설치하는 방안이나 육군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M167(발칸) 기관포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땜질 처방’일 뿐 근본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 애초에 주한미군 아파치가 버티고 있었더라면, 혹은 성남기지에 KA-1이 있었더라면 김정은은 고암포에 공기부양정 전진 기지를 건설하지도, 서북도서 주민들의 적의 기습상륙 위협에 노출되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국가안보보다 기업이익을 중시하는 일부 위정자들 덕분에 안보 불안과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천둥소리만 나도 그날의 악몽… “섬 지키자” 주민들 되레 늘어

    천둥소리만 나도 그날의 악몽… “섬 지키자” 주민들 되레 늘어

    “포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군부대 연습이려니 하면서도 밖에 나가 보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상처는 거의 아물었습니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은 지 꼭 4년째인 23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만난 주민 조모(43·여)씨는 “이제 사람들이 예전의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면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주민들은 굴을 캐거나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하는 등 월동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포격으로 파손된 집·상가 32채 신축 포격으로 파손된 집과 상가 32채는 당국의 지원을 받아 깔끔한 모습으로 신축됐고, 부분 파손되거나 노후된 주택 210채는 리모델링되었다. 바다는 가을철 조업기간(9월 1일∼11월 30일)이 끝나가는 시점이어서 막바지 꽃게잡이가 진행 중이다. 당섬부두에는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내거나 어구를 손보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물을 잡아당기는 밧줄을 고치던 선원 강모(47)씨는 “오늘 조업을 나간 꽃게잡이선은 연평도 전체 어선 29척 가운데 15척에 불과하다”면서 “올해 조업은 사실상 끝났지만 어구는 내년 봄에 다시 써야 하기에 손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수는 피폭 당시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현재 2143명으로 2010년 11월 1756명보다 400명 가까이 증가했다. 장흥화(54) 연평면 부면장는 “군부대 증강으로 군인 가족들이 많이 전입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피격 직후 육지로 떠났던 주민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섬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주민대책위 간부를 지낸 최모(52)씨는 “섬으로 돌아가기 싫어 정부에 정주처를 요구했지만 생각해 보니 연평도만 한 곳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호소한다. 박모(38·여)씨는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는 잠을 설친다”면서 “소리에 민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54)씨는 “포탄이 머리 위로 날아오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그날의 상처는 영원히 흉터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 20여명은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날의 참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곳이 있다. 안보교육장으로 이름 지어진 피폭 가옥 3채다. 이들 가옥은 포탄을 맞아 처참하게 부서진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 ●일상 찾았지만… 中어선에 생계 막막 하지만 주민들이 포탄보다 더 걱정하는 것은 생계 문제와 자식 학비 대는 일이다. 올 가을철 어획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60~70% 수준이어서 어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연평어장의 꽃게 어획량은 최근 5년 새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가을 들어서는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에 거의 출몰하지 않아 오랜만에 ‘만선’을 꿈꿨지만, 정작 꽃게는 기대만큼 잡히지 않았다. 선주 신모(57)씨는 “가을에는 중국 어선들이 대청·백령도 쪽으로 대거 몰렸다”면서 “봄철에 세월호 사고로 해경의 단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중국 어선들이 연평도 바다에서 치어까지 싹쓸이했는데 이것이 조황 부진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평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기고] 서울안보대화, 대한민국 또 다른 도전/백승주 국방부 차관

    [기고] 서울안보대화, 대한민국 또 다른 도전/백승주 국방부 차관

    국제정치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는 국가 간 협력과 통합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것이 국방 및 군사 분야의 협력이라고 했다. 그만큼 지구촌 인류의 과제 가운데 국방 분야에서의 국제적 공감대 형성과 협력이 가장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2014서울안보대화(SDD)는 그런 점에서 우리뿐 아니라 이런저런 국익들이 대립하고 협력하는 지구촌 주요국들이 함께 시도하는 도전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올해로 세 번째 열린 SDD에는 24개 나라와 3개 국제기구의 국방·안보 분야 대표들이 참가했다. ‘갈등에서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차관급 국방 당국자들이 평화와 협력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주요국 차관급 국방 당국자들의 만남 자체가 신뢰 구축 과정의 의미 있는 진전인 것이다. 특히 주최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안보 비전과 국방 정책에 대한 참가국들의 이해도를 높인 점은 큰 성과로 꼽힌다. 우리 정부 참가자와 전문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그리고 한반도 통일 비전을 소개했고, 각국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판과 조언을 들었다. 특히 독일 통일 과정에서 구동독 지역 초대 사령관과 독일 국방차관을 역임한 요르크 쇤봄은 ‘통일을 위해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중국 대표는 공개적인 회의 석상에서 우리 통일 정책에 대해 깊은 이해와 관심을 보여 주기도 했다. SDD가 지닌 또 다른 의미는 사이버안보 논의다. 우리는 2012년 첫 회의 때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부각되고 있는 사이버안보 이슈를 지속적인 과제로 선점해 관심과 호응을 유도해 왔다. 사이버안보에 대한 각국 전문가들의 거대 담론과 실무정책을 연결시켜 조직화하는 노력을 벌임으로써 SDD를 격이 다른 안보대화로 이끌어 온 것이다. 정부는 서울을 사이버안보 논의의 중심 도시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번 SDD는 물론 아쉬움과 과제도 남겼다. 많은 국가들이 북한 대표의 참가를 기대했으나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갈등에서 협력으로 이끌어 갈 공동입장, 공동선언 등을 만드는 문제도 미루어야만 했다. 남미와 유럽 국가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아시아·태평양을 넘어선 글로벌 의제를 찾고, 해결점을 모색해야 할 과제도 주어졌다. 그럼에도 올 SDD는 정부의 핵심 비전인 신뢰외교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국방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확인해 줬다. 참가국 대표 간 양자 및 다자 대화는 향후 서로의 정치적·군사적 신뢰를 높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울러 SDD 참가국 대표 간에 축적된 우정은 국가 간 갈등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평화와 협력으로 가는 문을 여는 행운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SDD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참가국 모두가 안보상의 이익을 얻는 포럼으로 나아갈 것이다. 평화와 협력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에 우리 정부가 앞장설 것이다. 북한이 SDD에 동참할 날을 기대한다.
  • [사설] 북, 李여사 방북 승인에 담긴 메시지 직시하길

    통일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을 사실상 승인했다. 이 여사의 방북 준비를 위한 김대중평화센터의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승인함으로써 방북의 길을 연 것이다. 대북 전단을 구실로 북측이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제의를 거부하면서 다시 꼬이기 시작한 남북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먼저 이 여사에게 방북을 허용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을 평가한다.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이 여사가 방북 승인을 요청하고, 이에 박 대통령이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화답한 뒤로 보수진영 일각에선 이 여사의 방북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북 퍼주기’ 정책의 주역인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 남북 관계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고, 자칫 북의 대내외 선전전에 말릴 공산이 크다는 게 그 이유다. 심지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맺은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밀약’을 이행하기 위한 방북이라는 의혹까지도 나돌고 있다. 그간의 행태를 본다면 북측이 이 여사의 방북을 체제 우위를 주장하는 선전 수단으로 활용할 소지가 큰 게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당시의 남북 관계를 부각시키며 박근혜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밀약 이행설’은 실체 자체가 모호한 이상 반박할 여지 자체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 정파를 넘어선 초당적 협력이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의연하고 성숙한 대북정책을 펼칠 때 남북 화해의 문이 열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부의 이 여사 방북 승인은 마땅하고도 바람직한 조치라 할 것이다. 특히 이 여사의 방북 목적이 북한 어린이들에게 털모자와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현 정부의 ‘인도적 차원의 조건 없는 대북지원’ 기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라고도 할 것이다. 이 여사는 2011년 12월 김 전 국방위원장 사망 때 조문차 방북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만난 바 있다. 방북이 성사되고 김 제1위원장과 회동하게 된다면 이 여사는 자연스레 박 대통령의 대북특사 성격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북 대화의 재개를 넘어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쪼록 북한 당국은 정파의 틀을 넘어선 박근혜 정부와 대한민국 사회의 대북협력 의지를 겸허히 받아들여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 화해의 길에 들어서길 촉구한다.
  • 한·미 외교·국방 “린치핀 넘어 글로벌 파트너십 발전”

    한국과 미국의 외교·국방장관들은 24일(현지시간) 한·미 동맹을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한 린치핀(핵심축)을 넘어선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확인했다. 양국 장관은 또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대북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3국 간 안보협력 및 조율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함께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 장관은 한·미 동맹을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에볼라 바이러스, 이슬람국가(IS) 문제 등 세계 평화·안전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적극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또 미래 양국 간 민간분야 원자력 협력에 있어 강력한 기반이 될 새 한·미 원자력협정 마련을 위한 양국 간 협상에 상당히 진전이 있었음을 환영하며, 적시에 협정을 타결해 나갈 것임을 재확인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 양국 장관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신뢰할 수 있고 의미 있는 협상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의 비핵화 없는 경제 발전 추구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북한이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들의 국제적 의무와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공약을 완전히 이행하지 않는 한 국제적 고립을 면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양국 장관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대북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3국 간 안보협력 및 조율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미측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협의 내용을 한국 측에 설명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미·일 동맹의 틀 내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장관은 한·미·일 안보토의(DTT)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외교는 대북 치중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열린세상] 한국 외교는 대북 치중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남북관계가 순조로울 때 한국 외교는 성공한 것이며, 그로 인해 한국 외교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라는 것은 한국 외교가의 상식이었다. 이처럼 한국 외교는 대북 위협을 봉쇄하기 위한 대북외교에 치중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치중 외교는 1970년대까지 북한의 위협이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왔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한국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의 특수한 상황도 반영됐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섰던 1980년대 이후에도 한국은 남북관계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대북 통일외교에 치중한 측면이 있었다. 이제 한국 외교는 대북 치중외교를 넘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역할을 확대하는 외교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이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북 통일 외교는 앞으로도 우리의 중요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제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현 시점에도 한·미동맹을 통한 대북외교에 매몰되면 다양한 형태의 국제적인 위협과 도전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국제질서는 미국이 과거와 같은 패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최근 국제정세는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부상(중국, 인도 등)이 두드러지며 다양한 형태의 패권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즉 각 국가들은 철저한 국익 계산을 중심으로 이슈에 따른 새로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국제질서는 불확실한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미국 추종적인 외교를 했던 일본을 보더라도 일본은 미·일동맹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도, 러시아, 호주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다양한 외교를 확대하고 있다. 더욱이 한·미·일 공조체제하에서도 일본이 북한과의 교섭을 서두르는 것은 대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계산도 맞물려 있다. 한편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형태의 위협(그 예로 테러, 에너지, 환경, 질병 등)도 나타나면서 국제질서의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중국의 부상에 따른 환경문제, 에너지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한국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국가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위협 요인을 새롭게 정의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불투명하고 다양한 국제질서의 위협 속에서 한국의 생존전략은 복합적인 대응과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중견국인 캐나다와 호주의 외교는 우리에게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는 강대국들이 생각하지 않고 있는 비전이나 객관적 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한다. 흔히 캐나다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추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캐나다는 미국의 외교정책과는 달리 독자의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예로 쿠바나 중국에 대한 캐나다의 입장은 미국과 다르며 영국 이상으로 중립적이다. 캐나다는 독자의 중립적 외교정책으로 인해 각종 국제분쟁의 조정자로서 그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 호주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외교적인 영향력을 확충하고 있다. 최근 호주는 창의적 중견국 외교를 주창하면서 아태지역 내 개도국들이 갖고 있는 불만과 선진국의 지나친 국익중심주의를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이 두 국가의 사례는 한국의 외교가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북외교에만 함몰되지 말고, 단기적 국익추구를 넘어선 지구 전체의 거버넌스와 이익을 도모하는 모범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한국이 강대국과 약소국들 간의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중개자 역할을 할 때 우리의 대북정책도 더욱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 확대는 남북한체제 경쟁을 종식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외교 지평을 확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생존전략이 될 것은 분명하다.
  • [新 국토기행] “연평도 피격사건 등 고난의 시간 극복… 살기 좋은 섬마을로”

    [新 국토기행] “연평도 피격사건 등 고난의 시간 극복… 살기 좋은 섬마을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태풍, 가뭄 등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랐고 군민들이 인내하고 협심해 고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3선 단체장으로 취임한 지 어느덧 9년이 지난 조윤길 인천 옹진군수. 국가적인 참사가 이어진 가운데서도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으로 도서 지역의 숙명으로 여겨지는 낙후성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옹진군은 상당수가 접경 지역이어서 열악한 해상 교통과 교육·문화 환경, 수산 자원 감소,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 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원활한 행정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군수 당선 이후 섬 지역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 풍요로운 섬마을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일했지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조 군수는 2010년 11월 연평도 피격 사건 이후 정부에 서해 5도 주민만을 위한 맞춤형 특별법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해 같은 해 12월 서해5도지원특별법이 제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별법에 따라 2020년까지 78개 사업에 9109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최우선 과제로 유사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530억원을 들여 서해 5도에 현대화된 대피시설을 완비했다.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낡은 주택 정비, 해상 교통 개선, 지역 일자리 창출, 주민 자녀 대학 특례 등 아직 주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조 군수는 17일 “다리가 놓인 영흥도, 선재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이 하루 한두 차례 운항하는 배편에 의존하고 있어 관광객 유치에 제약을 받는다”면서 “우리 군은 관광이 매우 중요한 만큼 관광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섬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은 임기 동안에는 그동안 추진해 온 주요 사업들을 재점검하고 현안과 부진한 사업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분석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新 국토기행] 옹진군

    [新 국토기행] 옹진군

    옹진군은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아직도 ‘경기도 옹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지 20년이 됐건만 오랫동안 경기권에 포함됐던 점이 이러한 인식을 유발하고 있다. 또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백령도와 북한군 포격 도발이 있었던 연평도는 잘 알아도 이들 섬이 옹진군에 속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옹진군의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황해 도서 지역에 신석기시대 유적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미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옹진군은 25개의 유인도서와 75개의 무인도서로 이뤄졌다. 일찍이 덕적도, 백령도 등은 중국과 통하는 해상 교통의 중간 거점이었다. 고대 한국~중국 간 항로는 인천에서 덕적도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로 가는 동로(東)와 흑산도를 거쳐 중국 명주(明州)에 도달하는 남로(南)가 있었는데 거리가 가깝고 안전한 동로가 주로 이용됐다. 고려시대인 940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옹진(甕津)으로 불렸으며 1018년 현령을 뒀다. 대청도는 고려시대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황해도에 속했던 옹진군이 1945년부터 경기도 관할이 됐다. 1953년 휴전협정에 따라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 도서 지역을 제외한 옹진군 육지 지역이 휴전선 이북에 포함되자 황해도 출신 피란민들이 대거 옹진군으로 유입됐다. 1973년에는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 등 섬 지역 6개 면이 편입돼 옹진군은 전체가 섬으로만 구성된 군이 됐다. 1989년 경계 조정으로 영종면과 용유면이 인천시에 편입됐고 1994년에는 대부면이 경기도 안산시로 넘어갔다. 이듬해인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옹진군 전체가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군청은 인천 남구 용현동에 위치해 있다. 65세 이상 주민이 4250명으로 노인 인구 비율(20.5%)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며 혼자 사는 노인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옹진군의 대표적인 섬인 서해 5도는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해 북한 도발에 직면하곤 한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백령도에서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고 백령도 바로 밑에 있는 대청도에는 대청해전이 일어났다. 연평도에선 제1·2연평해전, 북한군 포격 도발 등이 이어졌다.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피격은 서해 5도의 거주환경을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포격 당시 파손된 집과 상가 32채는 당국의 지원으로 신축됐고 188채의 노후 주택은 개량됐다. 하지만 예산이 적어 서해 5도 전체적으로 볼 때 신청 가구의 3분의1 정도만 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2년에는 주택 개량을 신청한 534가구 중 243가구(45%)가 혜택을 받았지만 지난해 402가구 가운데 134가구(33%), 올해는 485가구 중 140가구(28%)만 지원을 받았다. 신축 대상 주택까지 포함하면 사업 기간이 끝나는 2016년 이후에도 650가구의 노후 주택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서해 5도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올해 서해 5도 발전 사업을 위해 반영한 예산은 401억원으로 2011년 이후 가장 적었다. 2011년 531억원에 달했던 게 2012년 482억원, 지난해 478억원으로 줄더니 올해는 400억원을 겨우 넘겼다. 정부가 3년간 투입한 예산은 1491억원으로 올해분을 포함하더라도 2000억원을 넘지 못한다. 정부는 지원 계획 발표 당시 2020년까지 9109억원의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이 추세라면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해 5도 주민 5300여명에게 1인당 매달 5만원씩 지급하는 정주생활지원금도 주민 기대치에 못 미친다. 정모(56·연평도)씨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섬에 살라는 취지의 지원금이겠지만 용돈도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두 배가량 늘려줄 것을 원하고 있으나 현재 정부 재정 형편으로는 1만원도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역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진행하는 취로사업도 일정한 틀 없이 들쭉날쭉해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옹진군 서해5도지원팀 관계자는 “낙후된 서해 5도의 특성상 정주 환경 개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수록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정부 지원은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서해 5도 인근 해역에서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도 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특히 해양경찰청이 해체 위기에 처해 해경의 단속이 느슨해지자 중국 어선들이 제집 드나들듯 서해 5도 해역을 휘젓고 다니면서 치어까지 무분별하게 잡는 싹쓸이 조업을 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진구(56) 연평도 어민회장은 “중국 어선들은 아예 운반선, 유류선까지 동원해 불법 조업을 한다”면서 “심지어 우리 어선이 쳐 놓은 통발 위에 그대로 통발을 겹쳐 올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옹진군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어획량이 날로 떨어지는 현실에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산 종묘 방류와 인공 어초 확대, 바다목장화 사업 등으로 어업 소득이 향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서해 5도 어장 91㎢가 확장됨에 따라 꽃게, 까나리 등의 어획량이 250t 정도 늘어났다.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어장을 정화하고 갯벌 참굴단지와 해삼섬을 육성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아울러 농산물 브랜드화를 위해 고품질 쌀 생산 단지를 육성하고 단호박, 인삼, 무화과 등 특산품 재배를 확대하는 한편 고추 등의 작물에 대한 명품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옹진군은 어업만 성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역의 최대 섬인 백령도의 경우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70% 이상이다.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해 무인헬기를 활용한 방제를 확대하고 농기계 임대 사업, 공공비축미 매입, 농사 장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옹진군 관계자는 “어업 못지않게 농업의 비중이 크다”면서 “어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농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섬의 미래를 좌우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관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광업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군은 관광을 지렛대 삼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객 운임 지원, 관광상품 개발, 섬 둘레길 조성, 서해 5도 안보 관광 개발, 민박 현대화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역별 소규모 축제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7개 면으로 구성된 옹진군의 인구는 현재 2만 700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다른 지역 대부분의 섬 주민이 날로 줄어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연평도의 경우 피격 사건 이후 인구가 오히려 100명 이상 늘어났다. 육지로 피난갔을 당시 연평도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당국에 새로운 정주처를 요구했던 주민들이지만 석달 만에 전원이 돌아왔다. 옹진 주민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이자 숙명인지도 모른다. 조윤길 군수는 “군민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면서 “섬이 존재하는 한 주민들은 늘 그 자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는 도대체 왜?”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는 도대체 왜?”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공개활동에 나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현지지도하는 사진이 공개돼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4일 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과거 보도 관행으로 미뤄 하루 전인 13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장기간의 두문불출을 깨고 건재를 과시한 만큼 그동안 불거진 그의 신변이상설도 빠르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살림집(주택),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위성원,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고 밝혀 그가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음을 시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과 함께 게재한 사진에는 그가 허리 높이의 지팡이를 든 모습이 담겨 다리 부상이 다 낫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사진 속 김 제1위원장은 그리 수척해 보이지 않았고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활짝 웃기도 하는 등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들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희한한 풍경”이라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내각 산하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도 방문해 여러 곳을 둘러봤으며 국가과학원에 세워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앞에서 과학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의 이번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최룡해 당 비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동행했으며 장철 국가과학원장과 김운기 국가과학원 당 책임비서가 이들을 안내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김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과학자와 기술자의 복지를 강조하며 내린 지시에 따라 3월 건설을 시작해 약 7개월 만에 완공됐다.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저는 모습이 포착돼 건강이상설을 낳았다. 이어 그는 9월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로는 공개활동을 하지 않아 뇌사상태 설과 쿠데타 설 등 근거 없는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도 했다. 김 제1위원장이 전격적으로 공개활동을 재개한 것은 이 같은 억측을 잠재우고 최고지도자의 장기 잠행으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등장해 건재를 보여준 만큼 향후 남북관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결국 뇌사상태는 헛소문이었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저렇게 짠하고 나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지팡이 짚은 건 역시 건강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라는 얘기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현지지도 사진 속 김정은 표정 보니 ‘깜짝’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현지지도 사진 속 김정은 표정 보니 ‘깜짝’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공개활동에 나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현지지도하는 사진이 공개돼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4일 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완공된 과학자 주택단지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날짜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과거 보도 관행으로 미뤄 하루 전인 13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장기간의 두문불출을 깨고 건재를 과시한 만큼 그동안 불거진 그의 신변이상설도 빠르게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살림집(주택), 소학교, 초급중학교, 약국, 종합진료소, 위성원, 태양열 온실 등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 정형(실태)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하셨다”고 밝혀 그가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음을 시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과 함께 게재한 사진에는 그가 허리 높이의 지팡이를 든 모습이 담겨 다리 부상이 다 낫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사진 속 김 제1위원장은 그리 수척해 보이지 않았고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활짝 웃기도 하는 등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들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 “희한한 풍경”이라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내각 산하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도 방문해 여러 곳을 둘러봤으며 국가과학원에 세워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 앞에서 과학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의 이번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최룡해 당 비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동행했으며 장철 국가과학원장과 김운기 국가과학원 당 책임비서가 이들을 안내했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김 제1위원장이 올해 1월 과학자와 기술자의 복지를 강조하며 내린 지시에 따라 3월 건설을 시작해 약 7개월 만에 완공됐다.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환경오염이 없는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라는 김 제1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8일 김일성 주석 20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저는 모습이 포착돼 건강이상설을 낳았다. 이어 그는 9월 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이후로는 공개활동을 하지 않아 뇌사상태 설과 쿠데타 설 등 근거 없는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기도 했다. 김 제1위원장이 전격적으로 공개활동을 재개한 것은 이 같은 억측을 잠재우고 최고지도자의 장기 잠행으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40일 만에 등장해 건재를 보여준 만큼 향후 남북관계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뇌사 상태로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주민들의 동요가 커지니까 몸이 완전히 좋아진 것도 아닌데 나왔네”, “김정은 공개석상 등장, 이제 적극적으로 나오는구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문학 작품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오로지 작품 그 자체인가, 아니면 작품이 탄생한 시대나 작가의 환경인가. 이런 물음에 농민소설의 대표작이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표본이라고 평가받는 민촌(民村) 이기영의 ‘고향’은 오롯이 후자라 할 수 있다. 문학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결지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생겨난 작품은 작가의 창작 의도가 동기, 체험 등에서 나온 것이므로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알아야 작품을 명확히 해석할 수 있다. ‘고향’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하면서 계급문학을 추구했던 이기영의 사상과 체험이 잘 응집된 소설이다. 갈수록 왜곡되는 현실에 어쩌지 못하고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성장을 통해 변화의 바람이 불던 당시 농촌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사회주의적 해결책이긴 하지만) 뚜렷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고향’은 충청도 원터 마을을 배경으로 하루 살기에 바쁜 농민들과 이들을 갈취하는 새로운 지배계층 간의 대립을 축으로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이 마을에도 전등과 전화가 가설되고 실을 만드는 제사 공장이 들어선다. 빠르게 근대화가 이뤄졌지만 농민들이 살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몰락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숨만 쉴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돕는 사람이 김희준이란 인물이다. 그는 부모에 의해 14살에 조혼하지만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다. 대단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당연한데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작농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은 고향 사람들을 ‘진리의 경종으로 깨우치려’는 것이다. 여기서 김희준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께 깨우쳐 나가는 데 필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농민 스스로 어렵게 문제점을 깨닫거나 기독교적 사상을 가진 계몽자가 등장해 문제를 해결한 당시 농민 문학들과는 달리 이기영은 고향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농민들 스스로 문제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방적인 계몽 문학을 벗어난 것이다. 실제 이기영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농촌 사람’, ‘평민’이라는 뜻을 가진 ‘민촌’을 자신의 호로 삼을 만큼 농촌 사회에 귀 기울이고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고향’이 발표된 1930년대는 ‘브나로드 운동’이 확산돼 지식인이라면 농촌계몽에 일조하고자 노력하던 시기였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같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계몽 소설이 잇따라 발표된 것도 이때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이기영의 작품과는 사상적 거리가 뚜렷하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이들의 작품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강조한 작품을 발표했던 이기영은 문학이 현실적 계급 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으며 더 나아가 계급적 투쟁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향’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배계층과 그 속에서 억눌려 지내던 피지배계층 간의 첨예한 갈등이 축을 이루고 이것을 무산 계급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희준의 진두지휘하에 계급투쟁이 이뤄지고 한 인물의 영웅적 헌신과 노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갔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프로 문학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스로 계급의식을 깨쳐 가는 다른 등장인물의 노력과 문제의 해결점을 전통적 풍습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프로 문학의 관념성이나 도덕성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식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은 물론 김희준이었지만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제사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신념을 갖게 되는 두 여성, 인숙과 갑숙이다. 이들은 봉건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진취적 인물로 성장하는데, 죽도록 일만 해도 남편과 자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시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다. 인숙의 오빠 인동 또한 오십이 넘은 그의 아버지 원칠의 삶을 이어받는다면 결국 열심히 땅을 일궈도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활로를 모색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원칠이나 김선달, 길동아버지 같은 기성세대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희준의 솔선수범을 통해 깨달아 간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민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두레’다. 희준은 오랫동안 내려온 두레에서 새로운 공동노동체의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던 여인들이, 아전인수에 골몰한 남성들이 두레를 통해 점차 공동의 힘을 느끼며 뿌듯해한다. 격이 다르다고만 느꼈던 희준을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농군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두레 안에서다. 식민지 자본 논리 때문에 풍년이 와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풍년 공황’의 자구책이 자기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공산(共産)에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향’에 등장하는 지배계급은 철저히 자본을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근대화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며 신분 상승을 꾀했고 돈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안승학과 권상철이 바로 그들이다. 이기영은 이들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 지주보다 더 지독한 마름으로, 딸의 앞날까지 돈으로 흥정하려는 안승학이나 돈을 꿔 주지 않아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든 말든 자기 부만 키우면 그만인 고리대금업자 권상철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낳은 신흥 자본가들의 모습 그 자체다. 결국 돈만 아는 그들은 그 욕심 때문에 자멸하고 마는데 자본가에 대한 저자의 불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권선징악적 통쾌함을 전해 준다. 마름집 딸 갑숙이나 부잣집 도련님인 경호가 의식을 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고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현실에 부딪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은 지금 봐도 매끄럽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곳곳에 드러난 농촌 현실의 예리한 관찰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이기영의 문학적 솜씨는 카프 문학의 대표자로 손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1946년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 후 1984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북한 문학의 중심에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런 문학적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논으로 밭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희준이 인동과 갑숙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따라오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발을 멈추고는 ‘먼동이 트는 새벽하늘’ 밑으로 흩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이자 구조다. 이기영은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 고향이 동트는 새벽하늘처럼 새로운 미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 안에 모두 담아낸 것이다. 신언수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북한산성은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 등 5개 나라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북한산성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성백제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토성을 쌓으면서 비롯됐다. 132년 백제 개루왕이 산성을 쌓아 북진의 기치를 높이 올렸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하여 남진의 발판으로 삼았고, 551년 신라 진흥왕이 차지하여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1387년 고려 우왕이 중흥산성을 쌓았다.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것이 우리 전쟁사이다. 한반도의 목구멍(咽喉)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각축의 역사를 웅변하는 것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이다. ‘순수’(巡狩)란 천자가 제후의 봉지(封地)를 직접 순회하면서 현지의 통치상황을 보고받는 의례이며 순행(巡行)이란 용어가 일반적이다.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해 세운 비석인데,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 속에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진흥왕은 가야 병합, 한강 유역 확보, 함경도 해안지방 진출 등 왕성한 대외정복사업을 기념하고자 4곳의 비석을 세웠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3번지 북한산 비봉 정상이 순수비가 서 있던 자리이다. 큰 비석이 있다고 해서 비봉(碑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순수비는 함경남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경상남도 창녕비와 더불어 진흥왕 재위 말인 568년부터 576년 사이에 세워졌다. 1972년 옮겨질 때까지 최소 1400년 동안 한강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풍상을 겪었다. 이 비석의 정체는 건립 1200여 년 후인 1816년에야 밝혀졌다. 추사 김정희였다. 추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로 서예가, 화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개조(開祖)였다. 실용학문을 연구하라는 스승 박제가와 박지원의 가르침을 좇아 금석학과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두루 연구했다. 그때까지 이 비석은 ‘고려 태조 비’ ‘도선국사 비’ ‘무학대사 비’ 등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황초령비와 북한산비의 비문을 고증한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에서 추사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지금 경도(한양)의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북한산 승가사 곁의 비봉 위에 있다. 길이는 6척 2촌 3푼(154cm)이고 너비는 3척(71cm)이며 두께는 7촌(16cm )이다. 비문은 모두 12행인데 글자가 모호하여 매 행 몇 자씩을 분별할 수 없다.…이 비문에 연월(年月)이 마멸되어 어느 해에 세워졌는지 모르겠다.…그래서 마침내 이 비를 진흥왕의 고비(古碑)로 단정하고 보니, 1200년이 지난 고적이 일조에 크게 밝혀져서 무학의 비(無學之碑)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설이 변파(辨破)되었다”라고 적었다. 북한산비는 1200년 만에 주인을 찾았다. 추사는 비석 왼쪽 측면에 ‘두 번 와서 비의 글을 읽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손수 새겼다. 순수비는 1934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됐다. 1400년 역사에다 추사의 글씨까지 더해지니 ‘국보 중의 국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국보 1호가 아니라 3호로 정한 일제의 간사함에 치가 떨린다. 문화적 열등감의 발호였으리라. 숭례문이 2008년 소실되고서 국보 1호 재지정 논란이 일 때마다 ‘국보의 번호는 관리번호일 뿐 가치의 순서와는 무관하다’고 변명하는 우리 문화재 당국의 순진함도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사는 비석을 발견했을 때 덮개돌이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고 적었지만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총알 세례를 받아 탄흔이 선연하다. 언제인지 모르게 몸돌 위쪽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잘렸고, 오른쪽 아래 귀퉁이는 뭉텅 떨어져 나갔다. 1972년 일단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 보존하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06년 10월 그 자리에 복제비를 세웠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 그리고 남한산성과 강화성이 서울을 지키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개에 이르는 산성이 있고,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대 도시 서울주변엔 숱한 성곽의 유허가 존재하지만, 규모나 형태면에서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성곽이 서울을 제대로 지켰나’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북한산성은 왜 쌓았을까. 한양도성의 북쪽 외곽 방어막인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은 단 한번도 서울을 사수하지 못했다. 서울을 남쪽에서 보호하는 남한산성이나 강화성과 달리 외적의 침입 때마다 무용지물이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추풍낙엽으로 무너졌고, 두 번의 반정(중종과 인조) 과 이괄의 난 때도 맥없이 뚫렸다. 한국전쟁 때 창동~미아리 전선을 형성했지만 서울사수의 최후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북쪽 외곽 방어선 축조에 집착했다. 고려의 영향이 컸다. 거란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태조 왕건의 관을 옮겨둔 오래된 피란처였고, 1232년 몽골 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최영 장군의 전공이 있다는 점에서 경복궁의 뒤를 지키는 산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성을 지키려면 곡성(曲城)과 돈대(墩臺) 그리고 해자(垓子)가 필요하다. 한양도성은 방어용 성이 아니었다. 임진, 병자 양란에서 경험하였듯이 군사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성은 넓고 커서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도성의 축조가 당초에 성을 지킬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원래 견고하지 못하였다. 지금 만일 개축한다면 몰라도 수축만 하게 한다면 나을 것이 없을 듯하다”라는 숙종의 고변이 비변사등록에 남아있다. 조선 왕들에게 성곽은 국가 권위와 통치의 표상이었다. 외적을 방어하는 국력의 표현이기에 앞서 내부의 적대세력을 물리치는 대내용이었다. 숙종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 3군문에서 구역을 나눠 성을 쌓게 했다. 축조공사는 불과 6개월 만에 끝났다. 북한산성의 넓이는 49만㎡로 한양도성의 14만㎡보다 3배 이상 넓다. 왕이 집무를 볼 수 있도록 1만㎡에 124칸의 행궁을 지었다. 2만 6000섬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저수지 26개와 우물 99개를 팠다. 인수봉~백운대~만경대~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나한봉~용혈봉~미륵봉(의상봉)~원효봉~영취봉 같은 험한 봉우리를 이어 구축한 포곡식 산성이다. 숙종은 몸소 시단봉 동장대에 올라 9.73km에 이르는 산성의 위용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때 지은 성곽과 행궁은 1915년 대홍수 때 대부분 떠내려갔다.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 경기편에서 도성과 산성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했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은 것이나 정동방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또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의 두 난리 때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라고 한양도성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도 “숙종 때 조정에서 도성을 고쳐 쌓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동쪽이 너무 낮아서 만약에 강을 막아 그 물을 성에다 댄다면 성 안 백성은 모두 물고기 신세’라는 말이 있어 그 논의는 중지되고 말았다”라고 언급했다.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이어진 산성 축조 논쟁을 지적한 말이다. 북한산성 축조가 처음 논의된 1675년부터 완공된 1711년까지 무려 36년을 끈 북한산성 축조논쟁을 비꼰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북한산성으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인가” “북한산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북한산성은 험준하여 지키기는 좋지만 도성민을 수용하기는 좁지 않은가”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니 강화성이나 남한산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옳다” 등의 온갖 논의가 난무했다. 찬반의 논리는 단순했다. 찬성론자들은 유사시 왕이 피할 곳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반대론자들은 병자호란 때 청과 맺은 정축조약의 ‘성곽을 수축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위배해선 안 된다면서 맞섰다. 숙종이 북한산성을 짓기로 용단을 내린 것은 1710년 청으로부터 날라온 한 장의 외교문서가 결정적이었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니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문서가 성곽수축 금지조항을 해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반대논리를 잃자 축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화자 이중환은 비판적이다.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하였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 …천연적인 험한 곳을 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벽제령에서 남쪽으로 40리를 가면 임진나루터이다.…아주 험하게 되어 있으니 참으로 지킬 만한 곳이다”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소용도 없는 도성과 산성을 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거나 세금을 축내지 말고 지킬 만한 곳을 찾아서 지키라는 주장이었다.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씀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서울&평양 리포트] 군복 입은 2인자, 北 총정치국장은 어떤 자리

    [서울&평양 리포트] 군복 입은 2인자, 北 총정치국장은 어떤 자리

    저화질의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이 지난 4일 오전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HD화면으로 보니 군복을 입은 옷매무새와 왼쪽 가슴의 ‘약장(군복의 훈장표시)’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과묵하게 속을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의 ‘군복을 입은 북한의 2인자’가 머리를 바싹 밀고,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경호원을 대동하고 우리 국민 앞에 처음으로 실물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당시 오찬 회담 장소인 인천 영빈관에서 황병서를 본 한 정부 관계자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시종일관 그 표정이 변하지 않아서 속을 알 수 없더라”며 “총체적으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고단수의 인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총정치국장이란 자리는 북한 전체 권력에서는 ‘2인자’, 군 서열에서는 ‘1인자’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나 북한 전문가들에게 총정치국장이 우리로 치면 어떤 위치라면 물어도 딱 부러진 대답을 듣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총리의 역할을 모두 합쳐 놓은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황병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하며 초고속 승진 황병서는 2005년 북한에서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당 조직지도부에 부부장으로 승진한 후 군을 담당하는 당내 1인자인 조직지도부 1부부장 그리고 조선인민군 대장, 차수, 군내 서열 1인자인 군 총정치국장까지 거칠 것 없는 출세길을 달렸다. 그가 이처럼 군부를 장악하고 실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신임을 받아 일찍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앞장선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되기 이전부터 조직지도부에서 김정은 후견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을 결심했을 때도 이를 막후에서 실행한 인물로 알려진다. 그의 방한 당시 전임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마저도 그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췄던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은 단순히 2인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중앙위원회의 집행부… 총참모부보다 우위 총정치국이 북한군 창설 초기부터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다. 북한은 1948년 2월 인민군을 창설하고, 같은 해 9월 정권을 수립하면서 ‘민족보위성(인민무력부 전신) 문화훈련국’으로 군대에 대한 당의 정치적 지도를 보장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어 1950년 군인들의 사상무장을 담당하기 위해 ‘민족보위성 문화훈련국’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으로 개편했다. 이는 군대에서의 정치사업을 민족보위성으로부터 분리해 당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놓았음을 의미했다. 북한은 군을 ‘당의 군대’로 치켜세우며 당 중앙을 중심으로 군대의 당적 지도를 총정치국에서 담당하는 정치기구로 승격시켰다. 총정치국의 위상은 당 규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동당 규약 49조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인민군 당위원회의 집행부서로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규정하고,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아래 각급 정치부들은 해당 당위원회의 집행부로서 당정치사업을 조직집행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총정치국은 당 중앙위원회의 집행부서로 군의 최상층부에서 하부단위까지 당이 총정치국을 통해 군대에 대한 정치사업을 진행, 군부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하고, 당의 군대로 유지될 수 있게 한다. 결국 총정치국은 총참모부, 인민무력부와 형식적으로 수평적 역할분담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보다 우위에 있다. ●‘15년 군림’ 조명록 시절부터 ‘넘버2’ 본격 행보 하지만 총정치국장이 처음부터 북한 권력의 전면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총정치국장이 본격적으로 2인자 역할을 한 것은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 때부터다. 조명록은 1995년 10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무려 15년 동안 총정치국장을 지냈다. 조명록이 총정치국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공군사령관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그때까지는 ‘총정치국장=2인자’ 공식이 통용되던 때는 아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명록은 두 번이나 김정일 특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10월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의 인사로는 최고위급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군복 차림으로 회담하면서 북·미관계에서 최고 수준인 ‘북미 코뮈니케’에 합의했다. 그는 2003년 3월에도 신병치료를 핑계로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차오강촨(曺剛川)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을 비롯한 중국 군부지도자들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 등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6자회담 내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의 참석 여부를 논의하며 실질적인 특사 역할을 수행해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북한 실세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최룡해도 황병서 이전에 총정치국장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김정일의 총애를 받으며 이른 나이인 36세에 김일성·김정일의 800만 전위조직인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91년 말쯤에 반사회적 행위라는 과오로 실각된다. 그의 ‘반사회적 행위’ 혐의는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사로청 산하 외화벌이 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산하 선전·선동 및 예술공연단체인 ‘사로청 협주단’ 소속 가수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다. 실각 후 5년간 ‘혁명화’를 거쳐 1996년 사로청 후신인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로 복귀한 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순항 중에 있다. ●‘패션코드’는 선군정치와 핵·경제 병진노선 유지 총정치국장들은 대외 행보 때마다 군복을 입었던 것이 특징이다. 조명록이 2000년 10월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군복 차림이었다. 군복은 결국 북한으로서는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군사상에 입각한 선군정치를 드러내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메시지이자, 자신들의 군사력을 강조하기 위한 ‘패션코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황병서가 이번에 군복을 입고 온 것을 북한 군부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영빈관 오찬에서 친근하게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결국 황병서는 우리에게는 주적이자 ‘적장’인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이었던 때에도 군복을 입고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이후 최룡해는 마지막까지 북핵실험을 반대한 중국을 달래기 위해 김정은의 특사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했다. 당시 중국은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류원산과의 회담 때 군복을 입었던 최룡해는 중국 측의 항의를 받고 다음날 시진핑과 만날 때는 군복을 벗고 만나야 했다. 그는 당시 중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경험하고 빈손으로 북한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속보]北 경비정 NLL 침범…남북 함정 상호 기관포 사격

    [속보]北 경비정 NLL 침범…남북 함정 상호 기관포 사격

    [속보]北 경비정 NLL 침범…남북 함정 상호 기관포 사격 북한 경비정 1척이 7일 오전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뒤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 함정 간에 상호 사격이 있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오늘 오전 9시 50분쯤 북한 경비정 1척이 연평도 서방 NLL을 약 0.5노티컬마일(약 900m) 침범했다”며 “이에 우리 군의 유도탄고속함 1척이 북한 경비정에 대해 경고통신과 경고사격을 실시했고, 북한 경비정이 대응사격을 해 아군도 대응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남북한 함정은 모두 조준사격을 하지 않고 경고 및 대응사격을 했다”며 “우리 쪽의 피해는 없고 북한 경비정도 우리가 발사한 포탄에 맞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우리 군은 북한군 동향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해군의 유도탄고속함과 북한 경비정과의 상호 사격 당시 거리는 8.8㎞였다. 유도탄고속함은 최초 경고사격 때 사거리 12㎞인 76㎜ 함포 5발을 발사했고, 대응사격 때는 76㎜ 함포 10여발과 유효사거리 4~8㎞인 40㎜ 함포 80여발을 발사했다. 북한 경비정은 기관총으로 추정되는 화기로 수십 발을 발사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우리 함정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지만 사거리가 짧아 함정으로부터 수㎞ 떨어진 해상에 떨어졌다”며 “북한 경비정도 거리가 멀어서 우리 함정까지는 날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 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함정이 북한 경비정을 향해 대응사격을 할 때는 위협을 줄 목적으로 최초 경고사격을 할 때보다 가깝게 사격했다”고 말했다. 비록 경고 및 위협성 대응사격이었지만 남북 함정이 상호 사격을 한 것은 2009년 11월 10일 발생한 대청해전 이후 근 5년 만이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의도에 대해서는 “북한 어선을 단속, 통제할 목적으로 내려왔거나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NLL 무력화를 위해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9일에도 북한 단속정(어업지도선) 1척이 서해 백령도 인근 NLL을 침범한 후 우리 군의 경고 사격을 받고 퇴각했고, 지난 5월 22일에는 북한군이 연평도 근해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우리 해군 유도탄고속함 인근에 2발의 포격을 가한 바 있다. 한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남북 함정 간 대응사격과 관련, ‘경고사격이냐 상호 교전이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의 질의에 “남북간에 상호 교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넓은 의미에서 교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살상을 목적으로 사격한 것이 아니라서 교전이 아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고위급 대표단 전격 방한] 김무성 “北축구팀 응원”… 황병서 “그래서 이겼나 보다” 화답

    [北 고위급 대표단 전격 방한] 김무성 “北축구팀 응원”… 황병서 “그래서 이겼나 보다” 화답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고위급 대표단은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직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지도부와 의원 10여명을 만났다. 새누리당의 요청으로 성사된 면담이다. 5일 참석자들에 따르면 주경기장 접견실에서 10여분간 진행된 대화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웠다. 김 대표는 “체육 교류로 남북 교류를 더 확대하자”고 인사한 뒤 “통일경제교실 소속 의원들도 열심히 북측 축구팀을 응원했다”며 넌지시 자신이 이끄는 당내 통일 연구 모임을 언급했다. 이에 황 총정치국장은 “그래서 우리가 이겼나 보다”라고 화답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TV로 많이들 봤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오늘이 10·4 정상회담 7주년”이라며 노무현 대통령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얘기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이에 황 총정치국장은 “체육 행사가 잘 끝난 만큼 더 다양한 남북 문화 교류가 필요하다”고 호응했다. 같은 당 유기홍 수석대변인이 “연내에 남북 예술단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굉장히 좋은 제안”이라고 맞장구쳤다. 이 밖에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방북했던 새정치연합 임수경 의원은 최 비서 등 북측 인사들과 별도 인사를 나눴고, 북측 인사들은 “옛날 모습 그대로”라며 임 의원에게 인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들은 인사를 건네는 의원들에게 “활동 많이 하는 거 잘 보고 있다”며 알은체하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과 여야 의원들의 면담 자리에는 새누리당의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 김영우 수석대변인, 홍일표 의원, 새정치연합의 원혜영 남북관계발전특위 위원장, 설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윤관석 수석 사무부총장,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참석했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결은 조금 달랐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5·24 조치 해제와 관련해 “장병들의 희생과 금강산 관광 중 희생당한 국민에 대한 기억은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유 수석대변인은 “이번 방문으로 5·24 조치 등 문제가 풀리고 남북정상회담의 단초까지 마련되면 금상첨화”라고 밝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들른 北 고위급인사들 “북 선수단 지원 잘해줘 감사”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들른 北 고위급인사들 “북 선수단 지원 잘해줘 감사”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4일 전격 인천을 방문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아시안게임 선수촌에 들러 북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장시간 휴식을 취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이날 인천 시내 한 음식점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오찬 회동을 가진 후 곧바로 구월동에 있는 선수촌을 방문했다. 오후 3시 50분쯤 이에리사 선수촌장의 영접을 받으며 선수촌에 들어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도보로 북한 선수단 숙소인 107동으로 이동했다. 선수촌 관계자에 따르면 마침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 숙소를 나선 북한 선수들을 만난 고위급 일행은 길에서 반갑게 격려 인사를 전했다. 이들은 이에리사 촌장에게 “한 방에 선수 몇 명이나 자느냐,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이 아파트는 어떻게 되느냐” 등 궁금증을 바로 물어보기도 했다. 북한 고위급 일행은 북한 숙소에서 남아 있는 선수들을 불러 모아 격려한 뒤 2시간여 동안 휴식을 취했다. 오후 6시가 넘어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 숙소를 나선 고위급 일행은 이에리사 촌장에게 “우리 선수단으로부터 들었는데 남측에서 지원을 잘해 줬다고 하더라. 고맙게 생각한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저녁 7시부터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리는 폐막식에 참석한 후 밤 10시 평양으로 돌아간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소식에 네티즌들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북한에서 직접 오다니”,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진짜 목적이 뭘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좋은 일이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핵·인권문제 대북정책 핵심…北인권법 제정·이행 노력해야”

    “북핵·인권문제 대북정책 핵심…北인권법 제정·이행 노력해야”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30일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 대북정책의 핵심 어젠다”라며 “북한의 반발이 두려워 이 문제들에 소극적이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 주민의 삶이 나아지고 바뀌도록 하는 것은 통일의 중요한 목표일 뿐 아니라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북한 인권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며 “북한이 연일 저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맹비난을 거듭하는 것은 그만큼 인권 문제가 아프고 가슴을 찌르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북한인권법도 다른 나라들은 제정이 됐는데 우리나라에선 10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관련 부처에서는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사항 등의 이행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2년 동안을 정치권의 장외 정치와 반목 정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치권에 또 한 차례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을 거론하며 “협정 서명 때 캐나다 측에서 ‘이렇게 힘들게 FTA를 서명하지만 한국 국회에서 언제 비준이 될지 우려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 국회에 대해 걱정할 정도로 국회 상황이 국제사회에 전부 알려져 있고, 그 상황이 우리나라 국익과 외교의 신뢰를 얼마나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지 우려스러웠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의 때도 2년 전 서울에서 국제 사회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연설할 때의 그 공허하고 착잡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고도 했다.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일을 언급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언제 법안을 통과시켜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부 자체적으로 경제 살리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대한노인회 임원과 지회장, 노인일자리 참여자, 노인 자원봉사자 등 전국의 노인 200여명을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신 어르신 여러분께서 활력 있는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면서 “실질적 도움을 드리는 노인복지 정책을 발굴하고 강화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北 여자 ‘힘의 축구’ 지메시도 힘 못 썼다

    北 여자 ‘힘의 축구’ 지메시도 힘 못 썼다

    사상 첫 아시안게임 우승을 노리던 한국 여자 축구가 북한의 벽에 막혔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위 한국은 29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북한(랭킹 11위)과의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준결승에서 뼈아픈 실수 탓에 1-2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패한 베트남과 새달 1일 동메달 결정전을 치른다. 윤덕여 한국 대표팀 감독은 “많이 준비했지만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마음 아파하는 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FIFA 랭킹은 거짓이 아니었다. 북한은 속도, 힘, 개인기, 조직력 등 모든 면에서 앞섰다. 전반 시작 5분 만에 북한은 파상 공세를 펼쳤고, 한국은 북한의 공세를 막아 내며 역습의 기회를 노렸다. 한국의 첫 슈팅은 전반 8분 권하늘이 쏘아 올렸다. 아크 정면에서 날린 권하늘의 중거리 슈팅은 골대를 빗나갔다. 하지만 선제골은 한국이 넣었다. 전반 11분 북한의 핸드볼 파울로 얻어 낸 아크 정면 프리킥에서 정설빈이 그림 같은 무회전 슈팅을 날렸고, 공은 골키퍼 옆구리를 스치며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전반 21분 위정심의 중거리 슛이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2분 뒤 전명화가 다시 골대를 맞히는 불운을 겪은 북한은 실점 25분 만에 균형을 맞췄다. 전반 36분 역습 상황에서 오른쪽 측면에서 낮게 찌른 크로스가 골문으로 쇄도하던 리예경의 발에 맞고 굴절되면서 동점골을 넣었다. 후반에도 북한의 공세는 이어졌다. 한국은 중원에서 지소연이 공 소유 시간을 늘리며 역습을 시도했다. 승부수를 먼저 던진 쪽은 북한이었다. 후반 7분 8강전 결승골의 주인공 허은별을 투입, 공세를 강화했다. 한국의 역습도 매서웠다. 후반 11분 전가을이 아크 정면에서 중거리 슈팅을 날렸고, 5분 뒤 다시 전가을이 일대일 기회를 잡았지만 북한 골키퍼의 선방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후반 44분 지소연은 작심한 듯 마법 같은 드리블에 이은 대포알 슈팅을 날렸지만 공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말았다. 결승골은 허은별의 몫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으로 주어진 3분이 끝나갈 즈음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센터백 임선주의 헤딩 백패스가 허은별에게 가로채이며 역전골을 헌납했다. 한편 이날 경기장에서는 북한 선수단과 임원들이 90분 내내 일어선 채 인공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응원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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