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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볕은 강풍을 흡수한다/朴宗和 목사(특별기고)

    지난 6월에 이어 이틀전 동해시 묵호동 해변가에서 잠수복차림에 기관권총과 수류탄 등을 휴대한 북한 무장간첩 주검 1구가 발견되어 또다시 난리법석이다. 진상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상응한 강력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잠수정 사건 때문에 연기되어 왔던 鄭周永씨 증여 501마리 소의 북행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시점에 발생했다.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강경파 전략 경계를 첫째로 분단이후 지난 50여년동안 남북쌍방에서 ‘햇볕정책’을 정부당국의 공식 통일정책으로 채택하고 선언한 경우는 현 국민의 정부가 유일무이하다. 그동안 남·북 모두 ‘강풍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 두차례에 걸친 잠수정 관련사건도 변함없는 강풍정책의 표현이다. 이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일련의 사건도 남북간의 냉전적 적대관계 상태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강경파의 정치권력적 생존전략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전략에 힘을 실어줌으로 남북관계를 냉각상태로 몰아가는 우매한 대응은 절대 금물이다. 둘째로는 햇볕론의 엄청난 ‘힘’을 이번 기회에 역으로 넣어줄 필요가 있다. 북쪽은 남한에 중요한 국운을 건 선거의 투표일이 임박하면 늘상 무장공비를 보내고 잠수정 침투를 시도해왔다. 필요한 시기를 노린 이러한 강풍정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아왔다. 남한의 정치문화·선거문화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잠수정 몇척이 침투공비 몇명이 좌우한 셈이다. 이런 현상을 그동안 수구적 집권세력은 얼마나 즐겨왔고 악용해 왔는가? ○강한 햇볕 쬐어줘야 새로 들어선 국민의 정부는 북쪽의 이러한 맛을 톡톡히 들여온 강풍정책이 전혀 씨알도 먹히지않게 하겠다는 분명한 선언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햇볕정책의 큰 힘이다. 솔직히 말해서 햇볕정책은 강풍정책을 비웃을 정도로 힘이 있어야 한다. 정책집행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걸머지고 주체적으로 나설 국민 모두의 정책으로 나서면 힘이 생긴다. 남북통일 전날까지 잠수정 사건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통일전 독일의 경우도 그랬다.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어 교류협력의 햇볕정책이 공식 출범하고서도 통일 전날까지 동독측의 강풍정책은 현란하게 지속돼왔다. 그러나 서독은 햇볕정책의 기저를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허약해서도 아니고 무지해서도 아니다. 햇볕의 원대한 힘에 대한 믿음 때문이고 여야를 초월하여 국민간에 합의된 민주적 의견수렴이 굳센 때문이다. 결과는 햇볕이 강풍을 흡수하고 말았다. ○힘 있어야 햇볕제공 셋째로 햇볕은 힘있는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정책이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자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자기방어용 강풍정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북쪽이 남한에 상호주의 미명하에 강풍정책을 요구한다고 이를 들어줄 남한도 아니며,남한이 상호주의 원칙하에 햇볕정책을 북쪽도 택하라고 요구한다해서 이들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고 힘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햇볕정책이 담고 있는 교류협력의 틀은 지속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북쪽의 강풍지도층의 권력이 지니는 힘도 크지만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갈증으로 고통당하는 2,000만 북한 동포들의 힘은 더욱 크다. 강풍을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강풍대응을,그리고 강풍 때문에 희생당하는 2,000만 동포에게는 보다 따뜻하고 사랑이 깃든 햇볕제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 팔당호에 내년 인공섬 시범 설치/애기부들로 ‘물청소’ 한다

    ◎다년생 수초… 질소·인 등 강력 흡수/조류발생 억제·BOD감소 효과 높아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수초가 빽빽히 들어선 인공섬이 설치된다. 국립환경연구원은 내년 4월 팔당호 남쪽 경안천 광동교(橋) 근처에 100평 가량의 인공섬을 시범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인공섬에는 호소(湖沼)의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질소(N) 인(P) 등 영양물질을 다량 흡수하는 애기부들이 자란다. 애기부들은 늪 또는 연못가에 자생하는 부들과(科) 수초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질 개선에 활용되고 있다. 줄기로는 부채를,잎으로는 방석을 만들기도 한다. 물 속 20∼30㎝에 뿌리를 내리며,다년생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이용하지 못하는 부레옥잠 개구리밥 등 1년생 수생식물보다 쓸모가 더 있다. 단기(6개월 정도)효과는 부레옥잠이 우수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애기부들이 더 낫다. 연구원은 철제 구조물 위에 수세미처럼 작은 구멍이 송송 난 스펀지를 깐뒤 애기부들 씨앗을 뿌리는 방법을 쓸 계획이다. 철제 구조물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 곧 철거될 팔당호 주변 가두리양식장에서 수거하기로 했다. 인공섬이 설치되면 경안천 수질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용인 등의 생활하수가 유입되는 경안천은 대성리(북한강),월계사(남한강),팔당댐 앞,경안천 서하교(橋) 등 팔당호의 4개 수질 측정지점 가운데 조류(藻類)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도 제일 높다. 연구원 柳在根 수질연구부장은 “100평 가량의 인공섬에 애기부들을 심으면 질소농도가 1.2ppm에서 0.6∼0.8ppm,인 농도가 0.06∼0.07ppm에서 0.03∼0.04ppm으로 각각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도 1.6∼1.8ppm에서 1.4ppm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섬은 수질 개선 외에 철새와 치어(雉魚) 및 작은 물고기의 서식지 역할도 한다. 또 호소 한가운데 그늘을 만들어 수온 상승을 막기 때문에 조류(藻類) 발생도 억제한다. 柳부장은 “인공섬은 질소 인 등 영양물질 제거 뿐 아니라 조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남북 합작 드라마(사설)

    요즘 각 방송사들은 남북합작드라마 제작에 대한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다큐분야 대북교류에 이어 가능하면 2000년 방영을 목표로 한 방송사는 대하소설 ‘장길산’을, 다른 방송사도 고려를 개국한 王建 이야기를 현지로케로 구상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1,2년후 안방에서 남북 방송인들이 연출하고 출연한 드라마를 보게 된다는 것은 금강산 관광만큼이나 가슴 벅찬 일이 아닐수 없다. 합작드라마 추진은 다른 문화교류와 마찬가지로 통일을 향한 작지만 커다란 출발로 받아들여진다. 드라마는 대중과 가깝고 설득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어떤 예술분야보다 시청자의 호응을 받는 장르다. 더구나 드라마속에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언어 습관 사고방식은 물론 희로애락의 표정을 읽을 수 있어 각자 살아온 배경과 체제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분단 반세기를 넘어서면서 우리 남북은 생활의 기틀인 단어선택에서 맞춤법 발음 표현에까지 언어 이질화현상이 심각할 정도다.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마치 외국어를 듣는 듯한 불편함과생소함은 어쩔수 없다. 바로 이런 언어차이와 긴단절에서 온 이질의 골을 드라마가 어느 정도 극복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재가 역사물일 경우 그 시대의 상황을 함께 공유했다는 전제때문에 오늘의 분단현실과 우리가 살아온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공감이 용이해질 수 있다. 만약 어떤 거부감이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는 사실을 가공하여 반영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양보와 이해의 폭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그동안 안기부는 확고한 정보공개 확대 차원에서 북한 방송청취를 허용하는가하면 리틀엔젤스의 북한공연 실황 비디오테이프를 정부의 사전검열없이 방송하게 했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 소’입북과 금강산 관광계획 등도 전 같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적극적이고도 현실적인 협조로 보인다. 이번 드라마합작은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위해 다른 어떤 것보다 바람직한 방법의 하나로 보인다. 다만 남북 모두가 분단에 의한 이질화 내지 차별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합작드라마도 남북 절대 다수 시청자들이 공감하고공유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또 현지로케와 북한 배우캐스팅등 교류를 제약하는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예술인들이 오가며 드라마나 영화를 ‘합작’한다고 해서 당장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출발들이 모여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회복하여 모처럼의 햇살무드를 ‘통일’로 이끄는 바탕이 되게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공작원 3명 무인함 설치/합동신문조 수사결과

    ◎해안침투후 귀환중 발각… 총 9명 승선 북한 잠수정은 지난 21일 자정 무렵 강원도 양양군 수산리 해안에 노동당 작전부 소속 저격수 3명을 침투시켜 무인함을 설치한 뒤 돌아가다 우리 영해내에서 꽁치잡이 어망에 걸려 발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드보크,또는 무인 포스트라고 불리는 무인함은 권총 수류탄 독침 등 무기류나 통신장비,공작금 등 북한이 남파 간첩에게 보내는 지원물자나 남파 간첩이 북한에 보내는 활동보고서 등을 은닉하는 장소이다. 특히 작전일지에 기록된 좌표를 추적한 결과,잠수정은 남하 과정에서 해안선으로부터 5∼7마일을 벗어나지 않는 등 공해를 거치지 않고 낮 시간대에 대담하게 침투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합동신문조는 29일 잠수정에서 노획한 총 203종 1,388점의 장비 및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일 원산 황토섬을 출발한 북한 잠수정에 승선한 인원은 총 9명으로 이중 저격수(안내원) 3명이 21일 하오 11시 37분쯤 양양군 수산리 해안에 상륙,1시간 가량 무인함을 설치한 뒤 전원 복귀해 북으로 돌아가려다 잠수정이 고장나 22일 하오 4시 33분 속초앞 11.5마일 영해상에서 우리 어선에 발각됐다. 이들은 우리 어선에 발각된 뒤 그물 제거작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22일 하오 5시를 전후해 저격수 및 조장 등 4명이 수류탄과 AK소총 등으로 승조원 5명을 살해한 뒤 체코제 기관권총으로 자살했다. 합신조는 “메모 형태의 작전일지와 유류품 등을 분석한 결과 이들 9명 외에 국내에 잠입한 공작원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강조했다. 합신조가 공개한 잠수정 승선인원은 조장 윤기주,부조장 리성철,항해장 김주성,무전장 한태현,기관장 리주남,부기관장 김성철 등 승조원 6명과 저격수(행동조장) 김정인,저격수 리덕인,저격수(추진기수) 유학진 등 3명이다.
  • 상륙 공작원 있나 없나/北 항해일지로 본 의문점

    ◎북 격려편지 받은 공작원 2명 잔류 가능성/국방부 “전원 귀환중 사고… 침투요원 없다”/임무수행뒤 16시간동안 제자리 걸음도 의문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에서 해안에 상륙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항해일지가 발견되면서 공작원들의 행적과 탑승자 숫자에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항해일지에 따르면 북한 잠수정은 21일 하오 8시30분 동해안 앞바다 1,500m 해상에 정박한 뒤 하오 10시 안내원 3명이 육지로 헤엄쳐 나와 모종의 임무를 끝낸 뒤 2시간여만인 22일 0시38분 귀환한 것으로 돼 있다.수영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여 동안 임무를 수행한 셈이다. 군 당국은 탑승자가 자살한 9명이 전부라는 가정 아래 이들이 동해안의 무인포스트(일명 드보크) 등 비밀아지트에서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때문에 28일에도 동해안 일대에는 일상적인 경계강화 이외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군 당국의 이같은 추정과는 달리 공작원 2∼3명이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안에 상륙했을 가능성이 있다.잠수정에서 발견된 편지 가운데 대남공작 지휘부가 공작원 ‘유학진’과 ‘덕인’ 등 2명에게 침투 지시를 하면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지적해준 목표에 한개의 편차도 없이 들어가는가 못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동무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격려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22일 하오 6시47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앞바다에서 발견된 잠수 두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공작조가 이미 상륙했다면 최초 잠수정의 탑승인원은 11∼12명이 된다. 북한 잠수정이 임무를 마치고 출발한 시점부터 우리 어선에 발견될 때까지 16시간 동안 전진거리가 300여m에 불과한 사실도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 군은 북한 잠수정 침투 전인 19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동해안 일대에서 대잠·대북경계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잠수정의 침투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특히 이번 잠수정은 지난 16일 원산 앞바다 황토섬에서 사라진 사실을 미군측으로부터 통보받고 감시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잠수정 발견 때는 물론 지난 25일 잠수정에서 칠성사이다 패트병이 발견됐을 때도 해안 상륙 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하는 등 책임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 속초 해상 北 목선 1척 발견/해류타고 떠내려온듯

    26일 하오 4시 50분쯤 강원도 속초 앞바다 5마일 해상에서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보이는 0.2t가량의 목선 1척을 오징어잡이 어선인 왕성호 선장 金성진씨(24·속초시 대포동)가 발견,속초 무선국에 신고했다. 해경과 군당국은 조사결과 이 배의 제작기술 등이 조잡한 것으로 미뤄 북한쪽에서 해류를 타고 떠내려 온 것으로 보이며 대공 용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오라’손짓(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下)

    ◎鄭周永씨 訪北후 통일전망대 관광객 북적/명파리 주민들도 “北行 뱃길 열린다” 부푼꿈 그리운 금강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꿈속에서나 갈 수 있었던 세계적인 절경 금강산.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자연예술의 극치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현실세계에서도 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향한 유람선이 오는 가을 속초를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한 후 현대그룹은 9월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한국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남북 해빙의 염원도 함께 태우고 떠날 것이다. 유람선의 고동소리는 남북 화해의 새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남북 화해 새시대 바라 24일 하오 기자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위의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의 금강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방문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이미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지못해 실망스런 표정들이었지만 망원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이들의 눈길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우뚝 솟은 비로봉을 경계로 펼쳐진 외금강 신금강 해금강 내금강의 아름다운 자태에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금강산에 대한 화답인 듯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내려오다 인근에 사는 촌로를 만났다. 명파리에 사는 李씨(76)라고만 소개한 그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 자락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동해 북부선 기차가 지나 다니던 터널을 보기 위해 왔다”며 “죽기 전에 철길이 다시 복원돼 기차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회에 젖었다. 그가 안내하는 터널은 6·25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터널입구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조국’이라는 글자가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로 흔적 조차 없어 양양쪽으로는 아예 철로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웠다. 방문객들마다 녹슨 철로라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는 게 안내장교의 얘기였다. 李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느냐고 묻자 “최근까지는 거의 찾은 적이 없었다”며 “그러나 鄭周永씨의 방북으로 늙은이의 마음이 동요된 탓인지 요즘은 가끔 들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명파리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파리 마을은 동해안 38선에서 북으로 84㎞지점인 통일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한 140여가구의 자그마한 동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내집 드나들 듯 했다. 금강산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李씨의 말대로 들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도로 옆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 등의 간판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양,함흥,금수강산,원산 등 북한지명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6년 명파리 마을이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뒤부터 생긴 변화중의 하나라고 귀뜀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금강산은 마을 노인들의 옛 휴식처였다”고 남북 해빙 움직임을 반겼다. 동네 노인정을 금강산자락 밑으로 옮겨야 되지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鄭周永씨가 부풀린 기대감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李성찬씨(65)는 “북한이 그동안 한 짓을 보면 언제 마음이 변할 지 모르겠다”며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못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李씨는 명파리 사람들이 원하는 ‘금강산구경’이 뭐겠느냐고 되물었다. “명파리 사람들은 매일 매일 분단의 아픔을 삼키며 삽니다. 한 때의 급류타기가 아니라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의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마을노인들 옛 휴식처 그는 “鄭周永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된 것을 보면 남북화해에 대해 아직은 섣불리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철조망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이 꿈에만 그리는 ‘금단의 땅’은 아닐 것”이라며 “鄭周永씨의 방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지속돼온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25가 터진지 어언 48년. 홍안의 나이는 반세기의 나이테를 더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명파리의 노인들에게 금강산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녹슨 철길이 다시 놓이고,속초항에서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의 고동이 울리는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명파리 마을’사람들. 분단을 아픔을 뒤로 한 채 이들의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가 있는 듯 하다.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탁 상흔도 그대로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 상흔도 그대로/배봉리주민 朴在奉씨 “금강산 구경요. 그 좋죠. 조만간 갈 수 있다니까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갈 겁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에 사는 朴在奉씨(83)는 금강산 얘기가 나오자 어린애처럼 즐거워 했다.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왔기에 금강산에대한 일화는 몇날이 걸려도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朴씨가 사는 배봉리는 통일전망대 아래의 명파리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으로 6·25 당시 동네 개천가 앞의 철교와 터널이 북한군의 폭격으로 폐허화됐던 곳. 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인 뒤 말문을 연 그는 “비로봉 구룡폭포 내금강 외금강 등 금강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못가는 안타까움보다는 가로막힌 현실이 더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보통학교 시절 금강산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많이 꼬드겼어요. 인근 사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일포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온정리로 들어갔지요. 한두어시간 걸렸나요. 그리고는 원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지요. 명산에 들어갈 때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하거든요”이어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금강산에 발길을 끊게된 것은 8·15광복과 함께이곳이 공산당에 접수되면서부터. 감시가 워낙 심해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안됐다. 그러다 6·25를 맞으면서 금강산은 추억속으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동네앞 철교를 놓을 당시 잡부로 공사일을 한 적이 있는데 6·25때는 북한이 양양으로 가는 이 철교를 부수기 위해 폭격을 한 현장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옛 친구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 금강산을 다시 찾는데도 혼자 밖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평생 이곳을 지킨 노인네로서 느끼는 점은 부서진 철교가 다시 복원될 때 분단의 역사는 진정 그칠 수 있다는 확신뿐”이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 평화의 훈풍 감도는‘鐵의 삼각지’(휴전선 해빙의시대 오는가:下)

    ◎안보교육장된 격전지에 관광객 북적/민통선 주민 금강산철도 복원 큰 기대 날아오는 총알을 이빨로 물었던 무용담과 금강산 여행의 희망이 어우러진 곳이 있다.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지역이다. 철의 삼각지는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포탄을 너무 맞아 높이가 1m 낮아진 백마고지,꼭대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는 아이스크림고지,희생자들의 피가 내를 이뤘던 피의 능선 등. 이제 이곳은 대표적인 안보교육장이 되었다. 백마고지 전적지와 월정리 일대는 관광객을 태운 버스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코 앞에 휴전선이 있고 민통선 이북이다. 여기가 뚫리면 단번에 서울이 위험해진다. 정예강군으로 평가받는 육군 청성부대와 열쇠부대가 한치의 틈도 없이 지키고 있다. 6·25 발발 48주년을 맞아 철의 삼각지 전투에 참여했던 예비역 장성 10여명이 부부동반으로 백마고지 전적비를 찾았다. 모두들 감회어린 표정으로 ‘무용담’을 자랑했다. “일어나서 부대원들에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순간,적의 총알이 입으로 들어오길래 꽉 깨물어버렸지” “중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전투는 내가 다 치렀는데 기록판에 내 이름은 없구만” 환갑을 훨씬 넘긴 노병(老兵)들은 지금이라도 전투에 나서겠다는 기백이 넘쳤다. 최전방을 지키는 초병들에게 북한은 아직 ‘격멸해야할 적(敵)’이다.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정이 나포된 뒤 경계의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초병들 강도높은 훈련 매진 열쇠부대 姜恩珍 중위(26)는 “조건반사적인 훈련만이 유사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아래 강도높은 교육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고 씩씩하게 외쳤다. 관광객이 더욱 많이 찾는 청성부대 장병들도 경계태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柳寅雲 중령(40)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경계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고 강조했다. 철원은 한탄강을 끼고 북한의 평강고원까지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너른 들판이다.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다.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과 금강산가는 전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산 아래의 ‘명사십리’는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가보고 싶은 해수욕장이다. 그러나 내금강행 전철은 해방 1년전인 지난 44년 일본이 다른 곳의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철거했다. 북한이 개방되면 경원선도 복구하고 금강산 전철도 새로 깔아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북 화해정책’의 훈풍이 철원평야에 먼저 분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남북통일이 되거나 관계가 개선될 때 개발 우선순위 지역이다. 민통선 북쪽에 위치한 마을 대마리 주민들도 꿈에 부풀어 있다. 188가구,950명의 주민 중 상당수가 실향민이다. 이들은 고향에 가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과 함께 ‘금강산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마리 이장 林鍾睦씨(41)는 ”정주영씨의 소떼가 북한에 감으로써 남북교류의 물꼬가 터졌으니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라고 말했다. 철원과 금강산을 잇는 철도 복원문제에 대해서는 “가슴이 벅차 무어라 표현을 못하겠어요”라고 설레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 잠수정 사건이 일과성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경원선이마지막으로 끊어진 월정리역. 휴전선 남방한계선과 붙어 있다. 취재진과 동행한 작가 柳在用씨(62)는 ‘적극적 통일대비론’을 폈다. “이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가 아니라 ‘달려야 한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서진 옛 기차를 새 기차로 바꿔놓고 조건만 충족되면 당장이라도 달리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월정리 일대에는 이미 유명해진 ‘북한 노동당사’와 ‘제2땅굴’도 있다. 북한의 호전성을 알려주는 유적들과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 그 가운데 삭막한 분위기를 바꿔주는 이가 있다. 청성부대 정훈장교 朴商瑛 중위(27). 훤칠한 키에 절도있는 동작의 여장부지만 해맑은 미소로 방문객을 맞으며 최전방을 밝게 한다. 21세기 남북관계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도 싶다. ○굵직한 문화유적 곳곳 산재 남북 해빙무드에 맞춰 철원 일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교통의 요충이라는 것 외에도 다양하다. 굵직한 문화 유적만 해도 10여개가 넘는다. 궁예도성,성산성,동주산성 등. 후삼국 시절 궁예가 지은 도성은 비무장지대(DMZ)안에 있다. 재두루미,고라니,큰기러기 등 희귀조류 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여기에 동송저수지,학저수지 등 사람에 찌들지 않은 호수들과 50년간 인공이 배제된 DMZ 일대의 생태계 등. 금강산 개발과 철원일대 관광지개발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남북관계 발전은 물론 국부(國富)증진에 폭발적 힘을 보탤 것이다. ◎김화 출신 소설가 柳在用씨/금방 전원교향악 들려올듯 평온/6월 햇살속 겨울옷 벗겨낼 힘 충만/포성·격양된 대남방송 분단 실감케 6월 하순의 철원평야. 여기가 6·25전쟁중 최대 격전장이었던 ‘철의 삼각지’란 말인가. 검푸르게 자라는 벼포기들을 가득 실은 평야,그 위로 유유히 날으는 백로들,여유있는 표정의 농민들을 바라보느라니 아름다운 민요가락이나 전원교양악이라도 들려올 것 같았다. 인구 2만의 융성했던 도시 철원읍을 완벽한 폐허로 만들어버린 전쟁은 꿈속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전쟁은 결코 꿈은 아니었다. 반세기라는 짧지 않은 세월로도 다 아물릴 수 없었던 상처들이 철원평야의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구철원읍의 중심가였던 자리에 벽과 벽의 일부로만 남아 있는 얼음창고,농산물검사소,금융조합,철원감리교회,교각만 남아 있는 금강산행 관광철도의 철교와 잡초 우거진 철로둑,월정리역에서 끊겨버린 경원선 철로,해골처럼 흉물스러운 몰골로 서있는 철원노동당청사,길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지뢰지역,24회나 주인이 바뀌는 격전으로 2만명의 전사자를 낸 백마고지,북한의 남침 야욕과 적화통일에의 미련이 노출된 땅굴,국토의 허리를 막아 놓은 철조망…. 뛰어가면 5분에 닿을 수 있다는 북한쪽 고지에서는 격앙된 목소리의 대남방송이 들려오고 어디선가 포사격 연습하는 소리가 먼 천둥소리인양 우릉우릉 들려온다. 게다가 북한군 잠수정의 동해안 침투소식마저 겹쳐 어쩔 수 없이 분단과 대치를 실감하게 해준다. 하지만 몇 년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철원평야에는 한결 짙은 평화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한가로운 전원풍경이나 철조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래하는 뻐꾸기와 꾀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에는 철원평야의 정적속에 공포와 불안이 배어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감과 안정감과 화해의 기운이 배어들어 있었다. 철원평야 위로 쏟아져 내리는 6월의 따가운 햇살속에는 얼음을 녹이고 겨울옷을 벗겨낼 힘이 충만해 있었다. 내실을 다지는 일과 경계하는 자세를 흐트리지는 말아야 한다. 서두르지도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며 기다리자. 멀지않은 장래에 통일열차를 타고 분계선을 넘어 북쪽땅으로,고향으로 달려갈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가슴 속에 고여 올라옴을 느끼며 철원평야를 뒤로 했다. (柳在用씨는 강원도 김화군 창도리가 고향인 실향민이다. 철원 지역을 주무 대로한 자전적 분단소설 ‘달빛과 폐허’ 등 많은 작품을 썼다.) ◎6·25당시 美 군사고문단 캐롤 하지스씨/전쟁의 교훈 어느것이든 잊어선 안돼/미국서 한국전쟁 관심 되살아나 다행 6·25전쟁시 군사고문단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미국인 캐롤 B,하지스씨(84)는 주한미군사령관 고문으로 한국군 창설과정,또 농촌근대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예비역 대령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그가 6·25 48주년을 맞아 한국에 왔다. ­한국전쟁 48주년을 맞는 소감은. ▲이 때만 되면 남다른 감회가 많다. 헐벗고 굶주리던 당시 한국민들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3만5,000여명의 미군이 숨지고 10만명이상 부상한 한국전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는 것이 안타깝다. ­그 이유는. ▲베트남전쟁 패배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을 기억할 여유가 없었다. 왜 막강한 화력의 미군주도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해야 했는가도,전쟁중 작전권이 박탈된 맥아더 장군의 교훈도 잊었다. 한국전쟁 기념비도 1995년에야 세워졌다. 전쟁의 교훈은 어느 것이든 잊어선 안된다. 최근 미국내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 다행이다. ­한국전쟁후 심혈을 쏟은 농촌부흥운동인 4H운동에 대해 들려달라. ▲한국민들의 열정과 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성과는 놀라왔다. 평택 모범농장은 폐허에서 일으켜 세운 농촌의 전형이 됐다. 또 4H운동은 한국 민초(民草)들에게 민주주의를 심어준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朴正熙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바뀌었고 아쉽게도 나중에 획일적 집단주의로 흘렀다. ­부인 해리어트 여사와 벌이고 있는 어린이심장병환자 수술운동은. ▲이 일은 단번에 중단할 수 없다. 지난 72년 심장병을 앓던 한 한국 소녀를 아내가 적극 미국에 주선해 완쾌시킨 뒤부터 시작,지금까지 3,300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50년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용공 시비는. ▲용공시비는 한국군 내부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많은 군인사들이 내게 그런 정보를 흘렸으나 근거가 없다.
  • 햇볕론 有用性 싸고 공방전

    ◎한나라 “잠수정 드나드는데 정부 소극대응”/국민회의 “도발 저지·교류 병행가능” 반박 여야는 24일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햇볕론’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공격은 한나라당이 먼저 했다.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을 의제로 다룬 총재단회의에서다. 金哲 대변인은 회의후 브리핑을 통해 강한 톤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지금 대단히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운을 뗀뒤 “북한 잠수정은 우리의 해상 방어망에 포착되지 않고 꽁치잡이 어선에 의해 발견되었을 뿐만아니라 침투의 유일한 증거물인 잠수정이 예인 중에 침몰한 것은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난했다. 金대변인은 “화해정책은 상호주의를 기본으로 한다”면서 “명백한 침투행위에 걸맞게 대응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의 대남전략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햇볕론’의 기조가 흔들릴까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7·21 재·보권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 비판적인 보수 희구층을 겨냥한 전술적 측면도 엿보인다. 나아가 이처럼 중대한 사태를 국민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할 국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후반기 원구성을 거듭 촉구하는 압박 전술도 전개하고 있다. 金대변인은 별도의 성명에서 “잠수정이 드나드는데 금강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민회의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햇볕론’은 국민의 지지와 기대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辛基南 대변인은 논평에서 “통일은 정파를 떠나 초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요하다”며 “여기에 정치공세가 끼여서는 안된다”고 통박했다. 辛대변인은 “잠수정은 잠수정대로, 금강산은 금강산대로 병행시켜 나갈 역량이 우리에겐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국민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자제하기 바란다”고 훈수했다.
  • 어떤 그물인가/유자망은 ‘해상 철책선’

    ◎폭 3m·길이 3㎞… 꽁치잡이용/스크루에 걸리면 배 꼼짝 못해/칼로 끊으려면 4∼5시간 소요 유자망(流刺網)이 민간 철책선 역할을 톡톡히 했다. 22일 물고기를 잡기 위해 속초 앞 11.5마일 해상에 설치됐던 유자망은 북한 잠수정을 통째로 사로잡은 일등공신이었다. 목적은 꽁치잡이였다. 북한 잠수정은 수면 3m 아래 쳐져 있던 길이 3㎞ 짜리 유자망에 걸려들었다. 그물에 걸린 부분은 해치(뚜껑)였다. 그러나 달아나려고 하면서 스크루까지 그물에 휘말려 꼼짝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말 현재 강원도에서 해양수산부 허가 아래 조업중인 유자망 어선은 모두 198척. 강원도 앞바다에 적어도 200여 채의 유자망이 상시 드리워져 있다는 얘기다. 유자망 어법은 수직으로 선 그물이 물살 따라 움직이면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다이아몬드 형 그물 칸에 물고기가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간단한 원리가 적용된다. 그물을 부표로 띄운 뒤 한쪽 끝에 달린 부표에만 납을 걸어 바닥으로 늘어뜨리기 때문에 반대쪽 부표는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동해에서는 조류가 보통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관계로 유자망이 남북으로늘어지게 마련이다. 폭은 3m 내외가 보통이며 길이는 각양각색이다.일정한 제한도 없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그물 실은 보통 그물과 비슷한 굵기지만 칼로 끊으려면 4∼5시간이 걸린다.
  • 꽁치잡이 어선 선장이 속초 어업국에 신고/시간대별 상황

    ◎해군함정 7분만에 출동… 船體 확보후 예인 북한 잠수정 발견 신고를 받은 경찰과 해경,해군,공군은 신속하게 현지로 출동하고 해안 경계근무를 강화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잠수정 승선자의 해안 침투에 대비해 5분 대기조 출동 태세를 갖추고 모든 해안초소에서 경계 근무에 돌입했으며 해군 P­20정은 신고 7분만에 출동해 1시간만에 현장에 도착,수색에 들어갔다. 이어 해군 고속정 3대도 잠수정 확인차 전속력으로 항해해 현장에 도착했고 고성 거진에서도 해군 함정이 출발하는 등 급박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시간대별 상황은 다음과 같다. ▲22일 하오 4시33분 속초선적 꽁치자망어선인 동일호 선장 金仁龍씨(38)가 조업중 北잠수정 발견,속초 무선어업국에 신고 ▲속초무선어업국은 즉각 속초해경에,속초해경은 속초경찰서에 통보 ▲속초경찰서 등 동해안 각 경찰서 해안경계근무 강화 및 전 해안초소 해안 경계근무 강화 ▲4시40분쯤 해군 P­20정 현지 이동 ▲5시15분 거진에서 잠수정 확인차 함정 출발 ▲5시 해군 고속정 3척 잠수정 확인차 전속 항해 ▲5시20분쯤 잠수정 발견 해상 상공 헬기수색 ▲5시50분쯤 해군 P­20정 현장 도착 ▲6시11분 선체 확보하고 투항 권유 ▲7시35분 예인작업
  • 北 잠수정 침투­현지 표정·주민 반응

    ◎“소떼 보냈는데 잠수정이라니”/또다시 드러난 북한의 이중성에 분노/동해안 긴장속 육·해·공군 입체작전 【속초=특별취재반】 속초 앞바다에서 22일 하오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동해안 일대는 순식간에 긴장감 속에 빠졌다. 군 당국은 신고를 받은 즉시 육·해·공 입체작전에 돌입,잠수정을 예인작업에 나섰다. 군과 경찰은 북한 잠수정이 해안에 공작조를 침투시켰을 가능성에 대비,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등 비상경계 근무에 들어갔다. ○…잠수정은 이날 하오 4시20분쯤 꽁치 유자망에 잠망경이 걸리는 바람에 우리 어선에 포착됐다.잠수정은 그물에 걸린 뒤에도 10여분 가량 항해하다 물위로 떠올랐다.잠시 후 잠수정 위로 승무원 2명이 나와 잠수정에 걸린 그물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잠수정은 다시 반잠수 상태로 운항하다 속초 동쪽 11.5마일 우리 영해 상에서 선체가 80도 가량 기울어진 채 4시33분쯤 꽁치잡이 어선인 속초 선적 4.99t급 동일호에 발견됐다. ○…동일호는 잠수정 위에 승무원 2명이 움직이는 모습을포착하고 바로 어업무선국을 통해 해경과 군당국에 신고했다. 군당국은 해군 1함대 사령부와 인근 육군사단에 경계강화 지시를 내렸다. ○…군 당국은 잠수정이 공작을 위해 우리 영해에 침투했거나 침투한 뒤 복귀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인근 해역에서 공작 모선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침투보다는 첩보수집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잠수정은 대체로 모선을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독자적인 운항도 할 수 있다. ○…96년 9월에 이어 또다시 북한 잠수정이 침투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주민들은 겉으로는 남북 교류를 추진하면서 속으로는 무력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의 이중성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으로 고향 방문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며 낙담했다.청호동 노인회 총무인 金成吉씨(79)는 “오는 광복절을 전후해 개설될 것이라는 속초∼북한 나진·선봉간 해운 항로로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북한이 무엇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짓을 되풀이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 ○…현대그룹은 방북 중인 鄭명예회장의 귀환을 하루 앞두고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이 터지자 10년만에 이루어진 鄭명예회장의 방북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 北 잠수정 동해서 좌초/속초 동쪽 11.5마일

    ◎해군,오늘 새벽 동해안 예인/어제 하오 꽁치잡이 그물 걸려 도주중 표류/공작용 소형 유고급… 최소 3명 승선 추정 【속초=특별취재반】 22일 하오 4시33분쯤 강원도 속초시 동쪽 11.5마일(18㎞)지점 우리 영해에서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 1척이 어선이 뿌려 놓은 꽁치잡이그물에 걸려 표류하다 해군 함정에 의해 23일 새벽 1시30분 양양의 기사문해군기지로 예인됐다. 70t 규모로 길이 20m,폭 3.1m인 유고급 잠수정에는 8∼10명이 탈 수 있지만 예인 당시에는 최소 3명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잠수정이 침투한 것은 96년 9월18일 강릉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후처음으로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과 유엔군과 북한군간의 장성급접촉 성사 등으로 회복 단계에 접어든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군은 하오 7시35분부터 초계함인 군산함의 로프에 북한 잠수정을 묶어수면 위로 1m 가량 모습을 드러내도록 한 뒤 시속 3노트로 예인하기 시작했다.예인과정에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해군에 따르면 잠수정은 잠망경을 수면밖으로 내놓고 항해하다 그물에 걸렸으며 10여분 가량 그대로 항해하다 수면 위로 부상했다.이어 승조원 3며어이 밖으로 나와 그물을 제거한 뒤 반잠수 상태로 운항했으나 선체가 80도 가량 기울면서 ‘항해 불능’ 상태에 빠졌다. 당시 근처에서 조업 중이던 꽁치잡이 유자망 어선인 속초 선적 4.99t 동일호(선장 金仁龍)가 잠수정을 처음으로 발견,어업무선국을 통해 해경과 군 당국에 신고했다. 군 당국은 링스 헬기와 P­3C 대잠(對潛)초계기,초계함 등을 현장에 급파,예인작업에 들어갔다. 합참 관계자는 “잠수정은 북한이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남파한 상어급 잠수함의 3분의 1 크기로 공작 침투용인 유고급 잠수정”이라고밝혔다.북한은 소형 잠수정 50여척과 잠수함 40여척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문제의 잠수정이 공작을 위해 침투했거나 침투했다가 복귀하던중 그물에 걸린 것으로 보고 있다.
  • 소떼 서산농장 떠나던 날

    ◎“통일의 쟁기질하거라” 주민 등 300여명 축원/500마리 트럭 45대에 4시간 걸려 ‘승차’/떠나기앞서 떡·과일 상차려 안전기원제도 【서산=李天烈 기자】 ○…소 떼가 북한을 향해 출발한 서산시 부석면 창리 현대건설 서산목장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15일 하오 11시쯤 소를 실은 방북 트럭 45대가 9대씩 5개조로 나뉘어 출발하자 주민들과 직원 300여명은 환호와 박수로 배웅. 소를 실은 차량을 이어 사료 트럭과 예비 트럭이 뒤를 따르면서 차량행렬은 장관을 이루었고,차에 나눠 탄 수의사와 차량정비사들은 감격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량행렬 앞 뒤를 경찰 순찰차와 오토바이가 호위하자 마을 주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 나오는 등 때아닌 소동. 순찰차 15대와 오토바이 10대가 행렬을 유도하는 가운데 교통경찰 100여명과 전경 1개 중대 120명도 곳곳에 배치돼 진행을 도왔다. ○…이에 앞서 하오 3시쯤부터는 서산농장에서 농장 직원 250명과 주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으로 가는 소 500마리를 환송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환송식은 40명으로 구성된 서산농고 농악대의 풍물놀이에 이어 소 10마리에게 짚신을 신기고 몸에 새끼줄을 감은 뒤 소 머리에 꽃다발을 씌우는 순서로 진행됐다. 새끼줄을 감는 것은 농가에서 애써 키운 소를 내다 팔 때 농민들이 섭섭함을 달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 농장 직원과 주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눈만 끔벅이는 소들에게 “무사히 도착해 잘 살라”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어 하오 5시부터는 500마리의 소를 특별히 제작된 트럭 45대에 10여마리씩 나눠 싣는 ‘상차식’이 펼쳐졌다. 농장측은 트럭 적재함 바닥에 왕겨를 깔고 방역 작업을 벌인 뒤 이동하는 도중 소들이 날뛰지 않도록 머리와 목을 밧줄로 묶었다. 또 적재함 양 옆에는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차량’이란 플래카드를 붙였다. ○…하오 10시 10분쯤부터는 소를 싣고 늘어선 트럭 앞에서 ‘한우 환송 및 안전기원제’가 열렸다. 트럭운전사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산 A·B지구 사업소 姜永洛 소장(49)이 기원제를 20여분동안 주재.
  • 러,北 어선 13척 나포/전관수역 침범

    【도쿄 연합】 러시아 국경경비국은 1일 베링해의 러시아 전관수역에서 몰래고기를 잡고 있던 북한 트롤어선 13척을 나포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1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러시아 국경경비국에 따르면 경비국 소속 순시선이 지난 5월31일 이들 북한 어선들을 발견·납포한뒤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로 연행중이다. 베링해에서는 지난 5월25일에도 러시아 국경경비정이 중국어선에 발포,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한 바 있다.러시아가 북한이나 중국어선을 단속한 것은 이례적이다.
  • 과거 청산과 미래 개척(대한민국 50년:21·끝)

    ◎이데올로기·개발독재 넘어 통일로/反民특위 “실종”… 건국 최초 과거청산 실패/‘제주 4·3’ ‘거창사건’ 아직도 어둠 속에/지역할거 정경유착 파당정치 악습 깨고 군사정권 시대 숱한 의문사도 밝혀내야 1948년 8월15일 신생정부 출범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약소국이었다.한반도 면적 22만1,487㎢ 가운데 3·8선 이남인 9만9,221㎢만 확보했고 인구도 2,002만명(48년 미군정청 추정치)에 불과했다.또 국민 가운데 80%가량이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했고,그해 수출액이 2,230만달러에 그칠만큼 경제력도 볼품없었다. 정부수립 50돌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떠한가.97년 말 현재 인구는 4,666만명,수출액은 1,361억6,430만달러,1인당 GNP는 9,511달러에 이른다. ○‘삶의 질’ 향상되지 않아 지난 50년동안 인구는 2.3배,수출규모는 6,106배로 급증했다.1인당 GNP는,가장 이른 통계치인 53년의 67달러에 비교해도 142배나 늘었다.가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다.그러면 이같은 성장이 우리 사회의 내적(內的) 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그대로 동반한 것일까.여기서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각을 잠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펴낸 책자 ‘South Korea’(92년 간)는 한국의 기본사항을 소개한 데 이어 ‘재벌 중심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시대에 고착된 퇴행적인 정치질서에,통제받는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덧붙였다.또 65만의 군대와 한해 100억달러(89년 기준)에 이르는 군사비도 주요항목으로 들었다.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한국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 의회도서관 책자의 표현이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우리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대한민국 성장의 뒤안길에는 필히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특정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청산대상은 분단체제에서 파생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용과 개발독재 논리이다.해방이후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자.3년동안의 극심한 좌우대립 끝에 남과 북에는 상호 배타적인 정부가 들어선다.2년이 채 못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진다.이후 한국에서는 李承晩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4·19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쿠데타로 무너진다.朴正熙 정권은 개발논리를 앞세워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군사정권은 全斗煥­盧泰愚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80년의 5·18광주민중항쟁,87년의 6월항쟁 등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93년에 문민정부가,그리고 50주년이 되는 올해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 50년 정치사를 일별하면,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이에 맞서 민주사회를 추구한 국민의 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억압적 정권이 양손에 든 무기가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 논리였다. ○가치관 대혼란 초래 남북이 체제의 존립을 걸고 대립하는데다 6·25라는 비극을 겪은 마당에 반공이데올로기는 필연적인 역사의 부산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문제는 권력이 이를 정치적 대항세력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한 점에 있다. 멀게는 한국전쟁 전의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에서 가깝게는 지난 대선의 ‘吳益濟 월북 및 편지사건’‘흑금성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늘 ‘용공조작’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대부분 목적을 달성했다. 朴正熙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개발독재 논리가 못잖게 위력을 발휘했다.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쉽게 먹혀들어갔다.시민의식이 어느정도 성숙하기 전까지 ‘중단없는 전진’과 ‘잘 살아 보세’는 국민적 합의처럼 보였다. 이같은 정치적 적폐(積弊)는 지금도 파당정치·지역할거주의·정경유착 등 여러 유형의 악습으로 고착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전통을 잇는 문화와 사상은 ‘전근대적’이거나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외면받는 대신 출세지상주의·이기주의가 넘쳐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재벌의 소유 집중,극심한 빈부격차 등 경제 분야의 해묵은 과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정치사의 굴절이 가져온 또다른 폐해는 역사적 진실의 은폐·왜곡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과거청산 실패’사례로는 48∼49년에 걸친 ‘반민특위 사건’이 꼽힌다.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한 제헌국회는 곧이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305명을 검거하지만 참다운 활동을 벌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친일파에 권력기반을 둔 李承晩 행정부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는 길이 남게 마련인가.해방정국에서 수차례 벌어진 정치지도자 암살사건,6·25를 전후해 빚어진 ‘제주 4·3’이나 거창사건을 비롯한 양민학살,군사정권에서 발생한 민주인사·학생들의 숱한 의문사와 실종들이 아직껏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어둠에 묻혀 있다. 사건 발생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예컨대 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서 일어난 국군의 양민학살 건이다.미국 국립공문서 보존관리청(NARA)에서 최근 발굴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나타난 실상은 이렇다. 육군 25연대 7중대 병력이 석달이라는 산간벽지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은 다음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무차별 살해한다.보고서는 “(주민들이)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카빈 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으로 공격해 성인 86명,학생 9명,어린이 3명이 숨졌다.또 집 27채 가운데 23채를 불태웠다”고 밝혔다.이 사건이 세상에는 빨치산의 만행으로 알려졌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민족의 성지’국립묘지에도 존재한다.문민정부 출범 초기인 93년 7월 국가보훈처가 金性洙·李甲成·尹致暎·李殷相·徐椿·李鍾郁·尹益善·全協 등 8명에 대한 친일행각을 조사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은 모두 독립유공자로서 각종 훈·포장을 받았고 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행세했다.이 조사 역시 결말없이 끝났고 뒤이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도 정치적인 의도라는 오해만 샀을 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특별한 책무 한민족이 빛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이뤄져야 한다.하나는 물론 통일이요,또 하나는 역사에 덕지덕지 낀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다.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와 더불어 장기간에 해결해야 할 민족의 숙원이지만 잔재 청산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국민의 정부는 우리 현대사를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특별한 책무를 안고 있다.
  • 그래도 대화는 계속해야/金容相 연구위원(남풍북풍)

    대화(對話)란 두 사람,두 집단 이상 간에 교통되는 이야기며 개인이나 집단 간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대화를 자주 하면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만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생기고 상호 비방이나 반목으로 번지기도 한다.한 핏줄을 이어 받아 생김새와 말과 글이 같고 생각도 비슷한 남북한이 반세기 동안이나 적대시하며 살아 온 것도 따지고 보면 대화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었다.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그동안 민간차원의 대화만을 고집해 온 북한이 돌연 당국자간 회담을 제의,베이징 차관급 회담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비록 가시적인 성과없이 끝나긴 했지만 3년9개월 만에 남북의 당국자가 만나 상호관심사를 협의한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회담 전 “이번 회담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대다수는 일부라도 실천가능한 합의를 도출(導出),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주기를 기원했었다.남측이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와 비료지원 문제를 병행처리하자고 제의한 것도 그동안 합의만 있고 실천은 없었던 과거의 비생산적인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남북관계의 틀을 짜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북측은 일단 비료만 확보한뒤 남북관계 개선문제는 구체적 합의없이 뒤로 미루려는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해 우리를 실망시켰다. 북측은 결국 회담 7일만에 일방적으로 회담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북한은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했으며 남북간 인식의 격차는 여전하다’는 걸 명확히 보여 주었다.특히 북측이 “이번 회담에 응한 것이나 비료문제 외에 상호관심사를 논의키로 한 것 자체가 큰 양보”라는 흰소리에 이어 비료지원을 인도적 문제이며 경제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진짜 인도적 문제인 면회소 설치 운영을 포함한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문제라고 강변한 대목에 이르러선 또 한번 아득한‘벽’을 느껴야 했다.그렇지만 반세기를 적대시하며 살아온 남과 북이 한두번 만나 산적한 난제들을 일거에 처리해내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회담이 한차례 결렬됐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낙담할일은 아닌 것이다.그렇다고 북측에 대화를 강요하거나 구걸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될 일도 아니다.그러나 북측이 태도를 바꿔 다시 대화의 자리로 나오도록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유도해야 한다. 다시만나서 의견이 엇갈린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하고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한반도의 평화는 단절없는 남북대화로 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 南北회담과 상대주의(사설)

    북한이 4일 남북한간 차관급 회담을 갖자고 제의해 왔다.의외(意外)다. 북한은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 이래 남북간 당국자 회담을 극력 회피해왔다.뿐만 아니라 북한은 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지난달 하순 제네바에서 열렸던 제2차 4자회담도 특별한 이유없이 깨버렸었다. 그런 북한이 4자회담 무산(霧散)후 불과 2주여만에 특별한 상황 변화 없이 당국자회담을 제의해온 것은 분명히 의외다.한국은 일관되게 남북문제는 책임있는 당국자끼리 논의하자는 입장이므로 회담 장소를 북경서 판문점으로 바꾸거나 개최 시기를 다소 늦출 여지는 있어도 회담을 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康仁德 통일부 장관도 5일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혀 당국자 회담 재개가 확실해졌다. 북한 제의의 진의(眞意)가 무엇이든 남북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남북문제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북한의 이번 제의는 파종기(播種期)를 앞두고 당장 급한 비료 지원을 받고 싶어서 일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우리는 북한의 식량난이 농업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이번에 당국자회담이 열리게 되면 단순히 비료 얼마를 지원하고 마는 단계를 벗어나 남한에서 이미 개발해 놓은 북한용 볍씨,농기계 지원,농수로 건설 등 우리가 준비해둔 대북농업 프로젝트가 종합적으로 들어가 북한의 농업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그것을 통해 북한의 식량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은 이번 회담 제의를 하면서 비료문제뿐 아니라 그밖의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도 논의하자고 하고 있다.이산가족(離散家族) 재회문제나 경제협력문제 전반에 대해서도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북문제에서 북한이 필요할때 끌려 다니며 ‘봉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도울 것은 돕되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할 것이다.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에서는 남북이 서로 주고받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
  • 黨政 대대적 물갈이·구조조정 진행

    ◎‘北風’ 연루·합영사업 실적 부진 책임자 문책/경제난에 해외공관·외화사업소 대폭 축소 연초 북한에서는 당정(黨政)고위층에 대한 숙청과 물갈이 인사가 있었으며 현재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와함께 당정군(黨政軍)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차원의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숙청은 한국의 북풍사건과 연루된 對南커넥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문책은 주요사업책임자들의 실적부진을 물어 단행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金正日의 측근심복으로 청년동맹제1비서였던 崔龍海가 전격적으로 연초에 해임된 것은 대남커넥션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청년동맹 간부 여러명도 崔와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최근 북풍파문의 영향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安炳洙 조평통 부위원장 및 全今哲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경질될 것이라는 얘기들이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 파다하게 나돌고있다.한편 金正日의 매제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張成澤이 북풍사건과 연루돼 권력핵심권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들의 나돌았으나 張은최근에도 金正日의 공식행사에 잇따라 수행하고 있어 신변에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책을 당한 케이스로는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창구역할을 해온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인 金正宇를 들 수 있다.정통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金正宇는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의 개발성과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지난 2월문책·숙청을 당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金의 해임은 표면적으로는 당뇨와 안면근육마비 등 건강상의 이유로 외부에 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金正日이 직접 문책했다는 것이다. 金正宇는 최근 들어 나진·선봉지구를 방문한 홍콩의 엠퍼러 그룹 등 외국 투자가들을 만나주지 않아 숙청설과 와병설이 나돌았었다.金正宇의 후임으로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 부위원장인 임태덕이 유력시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갈이 인사는 지난해말부터 계속해서 북한의 해외공관장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지난해 12월 덴마크대사 이태균을 비롯 유고대사 김원호,예멘대사 김학영,요르단대사 최광래,잠비아 및 세네갈대사 이인석이 경질됐다.지난 1∼2월에는 가나대사 이재성,토고대사 박성일,알제리대사 박호일,멕시코대사 김찬식,말레이시아대사 김진호 등이 본국으로 송환됐다.지난달만해도 나이지리아대사 최상범,우간다대사 이광록,몽골대사 정장현,스웨덴대사 강창렬,페루대사 이인춘이 물러나고,경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전장용,이인석 전 세네갈대사,김당수 전 니제르대사,손무신 전 세네갈 2등서기관,지용호 전(前)기니대사 등이 각각 기용됐다.러시아대사 孫成弼도 외교부부부장인 박의춘으로교체됐다. 구조조정은 외화난의 여파로 북한의 해외공관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북한은 당면한 경제난과 金正日체제의 구축을 위해 작년말부터 아프리카지역을 비롯해 유럽 중동 미주지역의 일부 공관을 폐쇄하는 등 조직 슬림화작업을 실시중이다.북한은 지난달 중순 해외공관 30% 감축 방침을 이례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 최근까지 68개 북한 해외공관중 20개가 이미 폐쇄됐고 4개공관의 폐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북한은 또 한국 등 동남아지역이 외환위기 한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중국의 여러 곳에 나와있는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소가 타격을 받자 옌벤지역에 난립해있던 외화벌이 사업소의 상당수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正日은 앞으로 경제회생과 새정부가 들어선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 등을 고려,현재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있으면서 업적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경제에 대해 밝으며 남한통인 延亨默 전 총리 등을 중용하는 등 당정의 상층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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