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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5 남북정상회담 4돌] 盧대통령·김정일·DJ의 ‘간접대화’

    노무현 대통령과 6·15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인 김대중 전 대통령,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간접 대화를 나눴다.15일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 참석중인 북측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간접대화의 중개역이었다. ●친서 있었나,없었나 이 부위원장이 토론회에 앞서 오전 9시25분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환담을 나누던 접견실을 찾으면서 ‘3인 정상간 간접대화’가 이뤄졌다.문밖에서 기다리던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들어선 이 부위원장은 먼저 김 전 대통령에게 “밤새 평안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 전 대통령은 “잘 쉬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북쪽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난다.만나 보니 자주 보던 분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이에 이 부위원장은 탄핵정국을 염두에 둔 듯 “그 사이 아주 고생이 많으셨다.”고 인사를 했다.그는 이어 “장군님(김정일 위원장)께서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신 분을 잊지 않는다.”면서 “6·15 행사가 서울에서 열려 저희들을 보내셨다.”고 김 위원장의 지시로 남측을 방문했음을 분명히 했다. 이어 풀기자가 퇴장한 뒤 이 부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남북이 현재의 좋은 흐름을 계속 끌고 나가 남북관계를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안부인사를 겸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남북간 신뢰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핵 문제가 조속히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두 정상의 메시지가 서로 교환된 셈이다. 세 사람의 대화 시간은 8∼9분 정도였고,때문에 당초 9시30분 정각에 시작하려던 토론회는 늦어졌다.이 자리에는 권양숙 여사,이희호 여사,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이종석 사무차장,북측 원동연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 등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전달 여부에 대해 윤태영 대변인은 “특별한 제안이나 현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공개석상인 만큼 친서를 전달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DJ는 철학이 있는 대통령”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승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상회담 성과를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실제로 남북관계를 해보니 김 전 대통령이 설계해 놓은 대로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아주 중요한 토대를 놓으셨다.”고 극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제가 다 한 것은 아니다.”면서 “설계보다는 건축이 중요하다.”고 마무리를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저는 가끔 말했다.”며 존경심을 표시했다.이어 “남북한 정상이 서로 얼싸안는 사진은 제게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사진 한 장은 온 겨레의 화합과 평화의 가능성을 심어준 희망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남북 해군함정 분단이후 첫 교신 순간

    남북 해군함정 분단이후 첫 교신 순간

    “백두산(북측 해군을 지칭) 하나,백두산 하나,여기는 한라산(남측 해군을 지칭) 하나,발광신호 확인” “한라산 하나,한라산 하나,여기는 백두산 하나.감명도는….” 14일 오전 9시 서해 연평도 서쪽 3마일 부근의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남측 고속정 한 척이 북한 육도에서 장산곶으로 이동하는 북측 함정과 무선교신을 시작했다. 분단 사상 첫 남북 해군 함정간의 교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기는 감명도(통신음의 크기와 맑기) 둘.소리를 더 높여라.” 통신음 상태를 조정한 양측은 본격적인 교신에 들어갔다. 남북은 이날 연평도와 대청도 백령도 등 NLL 인근 해상 5개 구역에서 국제상선통신망(주 주파수 156.8㎒,보조 주파수 156.6㎒)을 이용해 2시간가량 무선교신에 성공했다.지난 1999년과 2002년 서해상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남북간 교전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평도 1구역과 대청도 3구역 해상에서는 각각 오전 9시15분,10시15분부터 5노트 속도로 남하하는 북측 함정을 향해 2척의 남측 고속정이 접근하면서 기동시험도 실시했다. 두번째 시험교신에 성공한 361 고속정의 유재근 편대장(36·소령·해사 46기)은 “오늘 교신에 성공함으로써 서해상 군사적 충돌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900m 거리까지 근접한 함정들은 이어 시각신호 확인에 돌입했다.시각신호는 상선통신망의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기관고장 등으로 불가피하게 접근했을 경우 사용되는 발광(불빛)과 기류(깃발) 신호를 말한다. 먼저 우리 함정에서 네 차례의 짧은 불빛과 한 차례의 긴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아측은 적대행위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북측 함정에서는 ‘귀측 신호를 확인했다.’는 의미로 네 차례의 긴 불빛과 한 차례의 짧은 불빛이 ‘회신’됐다.이어 ‘적대행위가 없다.’는 뜻의 4번 깃발이 남측 함정의 마스트에 내걸렸다. 한편 양측은 경의선 도로·연결 구간에 매설된 유선 통신망을 이용,이날 오전 9시 NLL 해상에서 불법 조업중인 어선의 조업시간과 위치,척수 등의 정보를 처음으로 교환했다. 서해 공동취재단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동요 ‘우리의 소원’에 담긴 통일염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 본 동요 ‘우리의 소원’.이 노래는 2000년 6월15일 평양에서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순간에 ‘통일의 노래’가 돼 한반도에 울려퍼졌다. EBS는 15일 오후 8시50분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을 기념한 특집 프로그램 ‘통일의 노래,겨레의 노래’를 방송한다.제작진은 동요로 시작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을 염원하는 겨레의 노래가 되기까지의 시대적·역사적 상황을 조명한다. 동요 ‘우리의 소원’은 지난 1947년 KBS 전신인 중앙방송국이 3ㆍ1절 특집 노래극의 삽입곡으로 만든 것.원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민심을 대변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을 다룬 노래다.화가이자 문인,영화인,언론인으로 널리 알려진 석영 안석주 선생이 노래말을 쓰고,당시 서울대 음대에 재학중이던 아들 안병원씨가 곡을 붙였다. 하지만 이후 60년 동안 ‘우리의 소원’이 지나온 세월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우리의 소원은 독립’ 이란 대목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었다.이후 이 노래는 당시 사회에 팽배한 반공이데올로기에 따라 정부의 반공의지를 대변하는 노래로 탈바꿈한다.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멸공’이라는 미명하에 수차례 가사가 수정되고,의무적으로 학교내에서 불려졌다.1970년대 중반에는 민중가요로 다시 태어난다.정부의 ‘긴급조치9호’의 발동과 함께 ‘왜색’을 없앤다는 명분아래 금지곡이 늘자 대학가에서 ‘우리의 소원’을 개사해 운동권 가요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중반에는 가수들의 음반에 의무적으로 삽입하는 단골 ‘건전가요’로도 쓰였다.그렇게 유포되던 ‘우리의 소원’은 1989년 당시 대학생이던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해 목놓아 부르고,북측이 방송을 통해 이 노래를 부르도록 독려하면서 남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겨레의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남북 해군함정 분단이후 첫 교신 순간

    “백두산(북측 해군을 지칭) 하나,백두산 하나,여기는 한라산(남측 해군을 지칭) 하나,발광신호 확인” “한라산 하나,한라산 하나,여기는 백두산 하나.감명도는….” 14일 오전 9시 서해 연평도 서쪽 3마일 부근의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남측 고속정 한 척이 북한 육도에서 장산곶으로 이동하는 북측 함정과 무선교신을 시작했다. 분단 사상 첫 남북 해군 함정간의 교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기는 감명도(통신음의 크기와 맑기) 둘.소리를 더 높여라.” 통신음 상태를 조정한 양측은 본격적인 교신에 들어갔다. 남북은 이날 연평도와 대청도 백령도 등 NLL 인근 해상 5개 구역에서 국제상선통신망(주 주파수 156.8㎒,보조 주파수 156.6㎒)을 이용해 2시간가량 무선교신에 성공했다.지난 1999년과 2002년 서해상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남북간 교전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평도 1구역과 대청도 3구역 해상에서는 각각 오전 9시15분,10시15분부터 5노트 속도로 남하하는 북측 함정을 향해 2척의 남측 고속정이 접근하면서 기동시험도 실시했다. 두번째 시험교신에 성공한 361 고속정의 유재근 편대장(36·소령·해사 46기)은 “오늘 교신에 성공함으로써 서해상 군사적 충돌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900m 거리까지 근접한 함정들은 이어 시각신호 확인에 돌입했다.시각신호는 상선통신망의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기관고장 등으로 불가피하게 접근했을 경우 사용되는 발광(불빛)과 기류(깃발) 신호를 말한다. 먼저 우리 함정에서 네 차례의 짧은 불빛과 한 차례의 긴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아측은 적대행위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북측 함정에서는 ‘귀측 신호를 확인했다.’는 의미로 네 차례의 긴 불빛과 한 차례의 짧은 불빛이 ‘회신’됐다.이어 ‘적대행위가 없다.’는 뜻의 4번 깃발이 남측 함정의 마스트에 내걸렸다. 한편 양측은 경의선 도로·연결 구간에 매설된 유선 통신망을 이용,이날 오전 9시 NLL 해상에서 불법 조업중인 어선의 조업시간과 위치,척수 등의 정보를 처음으로 교환했다. 서해 공동취재단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南北장성급회담 “휴전선 선전방송 중단”

    남북한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군사적 신뢰구축의 기반을 닦았다. 남북은 3일 오전부터 4일 새벽까지 설악산 켄싱턴호텔에서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 전체회의와 실무대표 접촉을 갖는 등 마라톤협상 끝에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등을 포함한 4개항에 전격 합의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매년 꽃게잡이철마다 ‘한반도의 최대 화약고’로 인식돼 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남북간 군사적 긴장관계가 완화되고,신뢰구축도 속도감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또 남북간 경협을 비롯해 기존의 각종 교류협력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은 오는 10일쯤 북측지역인 개성에서 장성급 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갖고 회담 합의사항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서해 우발적 충돌 예방과 관련,양측은 ▲서해상에서 양측 함정의 철저한 통제 ▲서해상에서 상대측 함정과 민간선박에 부당한 물리적 행위 금지 ▲국제상선공통망(156.8Mhz,156.6Mhz) 활용 ▲기류 및 발광신호 규정 제정·활용 ▲제3국 어선의 불법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및 정보교환 ▲서해지구 통신선로 이용 등의 조치에 의견을 모으고 이를 6·15 4주년을 기해 실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 북측이 지난달 26일 금강산에서 열린 1차 회담에서 제의한 전선지역의 선전중단과 선전수단 제거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대측에 대한 선전은 15일부터 중단하고 8·15광복절까지 3단계로 나눠 선전 수단을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다.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이같은 전격 합의는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이번 합의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이뤄져야 경제협력이 더 진전될 수 있다는 남측의 설득을 북측이 수용한 것”이라며 “북측이 군사부문에 치중했던 국력을 경제부문에 돌리기 위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의 필요성에 동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최근 주한 미2사단의 이라크 차출 결정으로 불안했던 한반도 안보환경을 이번 회담을 통해 개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특히 양측이 선전물을 제거하기로 한 것은 쌍방간 신뢰구축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南北장성급회담 “휴전선 선전방송 중단”

    南北장성급회담 “휴전선 선전방송 중단”

    남북한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군사적 신뢰구축의 기반을 닦았다. 남북은 3일 오전부터 4일 새벽까지 설악산 켄싱턴호텔에서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 전체회의와 실무대표 접촉을 갖는 등 마라톤협상 끝에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등을 포함한 4개항에 전격 합의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매년 꽃게잡이철마다 ‘한반도의 최대 화약고’로 인식돼 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남북간 군사적 긴장관계가 완화되고,신뢰구축도 속도감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또 남북간 경협을 비롯해 기존의 각종 교류협력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은 오는 10일쯤 북측지역인 개성에서 장성급 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갖고 회담 합의사항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서해 우발적 충돌 예방과 관련,양측은 ▲서해상에서 양측 함정의 철저한 통제 ▲서해상에서 상대측 함정과 민간선박에 부당한 물리적 행위 금지 ▲국제상선공통망(156.8Mhz,156.6Mhz) 활용 ▲기류 및 발광신호 규정 제정·활용 ▲제3국 어선의 불법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및 정보교환 ▲서해지구 통신선로 이용 등의 조치에 의견을 모으고 이를 6·15 4주년을 기해 실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 북측이 지난달 26일 금강산에서 열린 1차 회담에서 제의한 전선지역의 선전중단과 선전수단 제거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대측에 대한 선전은 15일부터 중단하고 8·15광복절까지 3단계로 나눠 선전 수단을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다.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이같은 전격 합의는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이번 합의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이뤄져야 경제협력이 더 진전될 수 있다는 남측의 설득을 북측이 수용한 것”이라며 “북측이 군사부문에 치중했던 국력을 경제부문에 돌리기 위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의 필요성에 동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최근 주한 미2사단의 이라크 차출 결정으로 불안했던 한반도 안보환경을 이번 회담을 통해 개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특히 양측이 선전물을 제거하기로 한 것은 쌍방간 신뢰구축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월드이슈-亞여성지도자 전성시대] 세계 여성 정치참여 현황

    최근 전세계적으로 몇몇 여성 지도자들의 활약상이 집중 부각되며 여성 정치인들의 전반적 위상이 남성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 아닌가 하는 착시현상을 낳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세계 여성 의원과 여성 장관들의 평균 비율은 아직 10%대로 유엔이 권장하고 있는 30%에는 훨씬 못미친다.그나마도 최근 3∼4년간 배증한 것이다. 국제의회연맹(IPU)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전체 4만 63명 의원들 가운데 여성 의원 수는 6244명으로 15.6%를 차지했다.지난해 처음으로 15%를 넘어선 뒤 소폭 늘어났다.지역별로는 북유럽이 39.7%로 독보적이었다.북남미는 18.4%,아시아 16.2%,북유럽을 제외한 유럽 15.9%,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4.3%,태평양지역 12.2%,아랍국가 6.4%였다.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지난 4·15총선 이전까지는 5% 내외로 183개국 중 101위였으나 지난 총선에서 모두 39명의 여성의원이 원내로 진출하면서 62위로 껑충 뛰었다. 1위 국가는 아프리카의 르완다로 48.8%였고,2위는 스웨덴(45.3%),3위는 덴마크(38.0%),4위 핀란드(37.5%),5위 네덜란드(36.7%),6위 노르웨이(36.4%) 순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모두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는 베트남(27.3%)으로 18위였고,이어 동티모르(23위),라오스(27위),파키스탄(31위),중국(37위),북한(38위),필리핀(49위),싱가포르(54위) 순이었고 일본은 96위에 그쳤다. 한편 전세계 여성 장관의 비율은 여성 의원 비율보다도 낮다. 세계여성지도자회의(GSW)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5월 말 현재 조사대상 195개국 가운데 여성 장관이 있는 161개국의 여성 장관은 1008명으로 전체의 11.3%로 조사됐다.1996년의 6.8%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여성 장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역시 유럽(18%)이었다.다음이 북남미(14%),아프리카(10.8%) 순이었으며,아시아·태평양지역은 6.9%로 가장 낮았다. 국가별로는 스페인과 스웨덴의 여성 장관 비율이 50%로 가장 높았다.다음으로는 핀란드(44.4%) 독일(42.9%) 남아프리카공화국(42.9%) 룩셈부르크(40%) 노르웨이(38.9%) 콜롬비아(38.5%) 순이었다.여성 장관 비율이 30%를 넘어선 나라는 14개국에 불과했다. 아·태지역에서는 필리핀이 33.3%로 여성 장관 비율이 가장 높았고,한국은 14.3%로 6위였다. 여성 장관이 없는 국가는 96년 48개국에서 34개국으로 줄었다.이들 국가에는 북한,브루나이,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모로코,미얀마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여성 장관의 절반 이상인 55.2%가 사회분야를 맡고 있어 특정 분야 편중 현상이 심각했다.이어 경제(17.9%),외교(5.3%) 등이었고,여성이 국방장관을 맡고 있는 나라는 13개국으로 조사됐다. 아이린 나티비다드 세계여성지도자회의 회장은 “여성 장관이 30% 이상을 차지해야 내각의 질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6·15기념관’ 개관 앞둔 ‘햇볕전도사’ 박재규 경남대 총장

    “오는 6월15일 드디어 통일관을 완공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을 초청해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할 예정이지요.북측 손님도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재규(60·전 통일부장관) 경남대총장은 ‘햇볕 전도사’로 통한다.또 박 총장만큼 북한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김정일 국방위원장,김용순 전 대남담당 비서,전금진 내각 책임참사 등 북한 수뇌부와도 자주 만나 미운 정 고운 정까지 들었다.이 때문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역사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활동반경이 넓다.경남대총장,경남대 북한대학원장 겸 교수,한국대학총장협회 이사장….신문의 동정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주위에서는 일주일을 ‘8요일’로 늘려 산다고 표현한다.최근에는 ‘새로운 북한 읽기를 위하여’라는 책자를 발간하는 등 왕성한 집필 의욕까지 보이고 있다.와중에 최근 학술교류 협의차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다. ●통일관 새달 15일 개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집무실에서 박 총장을 만나 여러 궁금증을 풀었다. 입구에 막 들어서자 ‘통일관’ 짓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국내 최초로 지어지는 국제수준의 뜻깊은 통일관이다.지상 3층,지하 2층 등 연건평 1200평에 이른다.국제 수준의 시설을 갖춘 도서관,화상 세미나를 열 수 있는 대강당,외국인을 위한 게스트룸,연중 열려있는 시민포럼의 공간 등 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다. 박 총장은 “다음 달 15일 김 전 대통령은 물론 6·15정상회담 때 참여했던 수행원 등 국내외 인사 300여명을 초청해 개관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북측에도 이같은 사실을 알렸단다.다행히 북측으로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대리급 인물’이 참석할 것이란 긍정적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따라서 그저 건물 하나 짓는 단순한 ‘통일관’이 아니라 ‘6·15기념관’이라는 역사적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이어 9월쯤 ‘남남갈등’을 주제로 한 대규모 학술대회도 준비 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내친 김에 통일관이라는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남남갈등의 해소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 등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계속 생산해낼 예정이란다.‘평화 지킴이의 전당’이나 다름없다. 박 총장도 남북정상회담 때의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는 ‘프리랜서 통일부장관’의 역할을 다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그는 또 남북 장관급 회담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참에 남북회담 때의 일화 한 가지만 살짝 공개해달라고 했다.잠시 고민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69세로 사망한 김용순 전 대남담당 비서와의 만남을 떠올렸다.그는 “김 비서는 표정이 냉정하다.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 새마을 운동에 관심” 지난 2000년 8월 2차 남북장관급 회담은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함북 동해안에 머물고 있던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극비리에 이루어졌다.이때 김 비서와 함께 평양에서 열차를 탔다.최근 열차사고가 발생한 용천역을 통과하는 노선이었다.다음은 열차 안에서 둘이 나눈 대화. “김 비서는 참으로 무표정하고 전형적인 공산주의 지도자 스타일입니다.”박 장관이 불쑥 말을 꺼냈다. 김 비서가 씩 웃으며 응수했다.“박 장관,좋은 일이 있고 또 잘 될 때에는 나도 괜찮은 사나이입니다.일이 잘 되면 둘이서 파리여행을 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은 좋겠습니다.김 비서처럼 성실하고 훌륭한 부하를 두고 있어서 말입니다.” “박 장관,그럼 장군님한테 그렇게 꼭 좀 얘기해 주시지 그래요.” “좋습니다.얘기하는 대신 남북관계가 잘 되도록 열심히 뛰어주십시오.” 둘은 이같은 정담을 주고받으며 10시간가량 열차 안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이와 관련,박 총장은 “김 비서만큼 남한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사람은 없다.”면서 계속 살아 있었다면 다시 만나 이런저런 정담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박 총장은 또 김 위원장이 ‘새마을운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하게 느꼈다고 회고했다.그는 “김 위원장은 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닌 보릿고개를 넘어선 경제발전의 치적을 높이 평가했다.”면서 그의 요청에 의해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비디오자료를 여러 개 보내주었다고 말했다.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묘향산 근처의 농촌에 가보니 지붕개량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불발된 배경에 대해서도 잠시 회고했다.그는 “2000년 가을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답방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김용순 전 비서와 만남에서도 그렇게 느꼈다.”면서 “그러나 시기는 북·미관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당시 북한에서는 미 고어 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전제로 북·미정상회담-북·미관계의 획기적 개선-서울답방 등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해주 탈북자 정착촌 시간 걸릴 것” 박 총장은 최근에 이루어진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과 관련,“중국의 새 지도부를 상대로 북한의 경제난과 핵문제 해결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오는 11월 미국의 대선 이전이라도 핵문제 해결의 접점을 조율할 필요성이 급선무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해 그는 조심성 결여와 자체 해결의 한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이번 사고가 북한사회를 개혁·개방 쪽으로 선회하도록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관측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1∼14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극동국립대의 쿠릴로프 총장을 만나 한·러 대학간 학술교류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특히 방문 중에 연해주의 세르게이 셰르스티우크(Sergey R Sherstiuk) 러시아 연방정부 감사관장 등 정·관계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러 철도연결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연해주를 경제무역특구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엿볼 수 있었지요.특히 곧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푸틴과 노무현 대통령간의 한·러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세르게이 다르킨(Sergei Darkin) 주지사에 의해 제기된 탈북주민 정착촌 구상에 관한 언급도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탈북 정착촌 문제는 연해주와 연방정부간의 교감,러시아와 북한과의 협의 등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1차 남북 장성급회담과 관련,남북 교류협력도 중요하지만 안보 분야에서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서는 ‘집시 총장’이라고 별명이 붙었습니다.30년 넘게 ‘통일사업’을 하다 보니 그랬지요.” 스트레스는 수상스키로 푼다. 김문기자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경남 마산 출생 ▲1967년 美 페어레이디킨슨대 정치학과 졸업 ▲1969년 美 뉴욕시립대 대학원 졸업 ▲1974년 경희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1973∼1985 경남대 교수 ▲1973∼1986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1986∼1999 경남대 총장 ▲현재 한국대학총장협회 이사장 ▲현재 경남대 총장 겸 북한대학원장 ▲1999.12∼2001.3 통일부장관 ▲2000.4∼2000.6 남북 정상회담 추진위원장 ▲2000.7∼2001.3 남북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
  • [특별기고] ‘국어기본법’ 하루빨리 제정해야/이미경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지난달 30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소속 회원 30명과 중국을 다녀왔다.필자와 별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교열기자들과 함께 연수를 다녀온 배경은 이렇다.2년 전 중학교 국정 국어교과서 내의 한글 맞춤법 오류를 밝혀냈고,지난해 남북 초·중·고 교과서를 비교해 남북 언어 이질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파헤친 공로로 교열기자협회가 주는 한국어문상을 수상했고,수상자들에게 이번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교열기자협회 회원들은 연수기간에 ‘중국어 표기법의 문제와 대안’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지만,필자에게 더 큰 흥미를 끈 것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중국인들이 외래어를 수용하는 태도였다.예를 들어 중국어로 ‘신용카드’를 표현하는 단어는 ‘카( )’다.왜 ‘ ‘가 ‘신용카드’로 표기됐는가 하면 ‘위아래로 긁기 때문’이란다.무릇 언어가 ‘뜻을 주고받는 방편’이라면 ‘ ‘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급속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 살고 있다.국가간 개방이 가속화하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외국어가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양도 많아진다.신문,방송,학교 강의실,심지어 상점의 입간판에서도 외국어가 외래어라는 이름을 달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말에 없거나 표현하기 힘든 말은 빌려서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유 언어가 없던 시절 수많은 한자어가 그랬고,세계화시대에 만국에서 통용되는 영어의 상당수도 그렇다.그러나 우리말이 있다면 최대한 살려야 한다.언어는 사상을 반영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자원으로 인식되는 반면,세계화에 따라 개별 국가 및 언어에 대한 관심은 퇴조하고 있다.언어학자들은 소수언어의 소멸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며,유네스코는 현존 언어의 90%가 100년 내에 소멸할 것으로 예상한다.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언어로는 인구가 1억명이 넘어야 하고,국력이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선 나라라고 판단하고 있다.현재 한국어는 남북한·해외동포를 합하여 약 7500만명이 사용해 12위권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나라는 문화 정체성 확립과 모국어 보전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프랑스는 1970년대에 이미 ‘프랑스어 정화법’을 발표한 데 이어,1994년에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모국어 발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광고와 상표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했다.캐나다 퀘벡주는 1988년 ‘언어 정화법’을 제정해 외국어를 과다하게 사용하면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폴란드도 2000년 주변 강대국들의 문화적 영향에서 모국어를 보호 발전시키고자 모든 상품에 폴란드어 상표 부착을 의무화했다. 우리는 어떠한가.2002년 말 ‘국어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지난해에는 ‘국어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당시 필자는 언어 그 자체가 21세기 국가 경쟁력이라는 판단 아래 효율적이고 실천적인 국어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회라 생각하고,법의 제정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후 이 법을 제정하는 방안들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지적했듯 자국의 언어는 민족 문화의 기반이며,문화창조의 원동력이다.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국의 언어를 보호하지 않으면 자칫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따라서 정책 당국자들은,자국어 보호정책은 국가와 민족의 존립과 직결되는 정책으로 인식하고 하루빨리 ‘국어기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이미경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 서해 꽃게잡이 충돌방지 협의할듯

    북한이 14차 남북 장관급회담 마지막날인 7일 우리측이 제의한 장성급 군사당국자회담을 전격 수용함에 따라 조만간 남북한 군 장성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서해상에서의 남북간 우발적인 무력 충돌 방지문제가 꼽힌다.꽃게잡이철인 5∼6월만 되면 남북한 군 당국간에 매년 긴장이 고조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북한은 꽃게잡이철인 6월에 연평해전(1999년)과 서해교전(2002년) 등 두 차례의 무력충돌을 겪었으며,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따라서 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상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당국간 연락채널 구축 등 긴장 완화를 위한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한 어민이 공동으로 조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공동어로구역’ 설정문제가 전향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밖에 남북 당국의 추적을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오가며 불법 어로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국 등 제 3국 어선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국방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인 꽃게잡이 조업과정에서의 충돌 방지 방안에서 출발해,여건이 나아지면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본질적인 군사문제로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5월 중’ 개최 가능성이 높다. 회담 직후 정세현 남측 수석대표는 “구체적인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5월 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권호중 북측 단장도 “인차(곧)라도 열겠다.”고 호응한 점이 이런 분석을 낳게 한다. 현재 운영중인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 실무회담의 대표를 대령이 맡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장성급 회담은 국장급 장성이 책임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남측은 대북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국헌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이 수석대표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 장소는 우리측의 제의대로 판문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북측은 판문점이 유엔사 관리구역이라는 이유로 남북 당국간 회담의 판문점 개최는 거부하면서도 군사분야만큼은 판문점을 외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서해 꽃게잡이 충돌방지 협의할듯

    서해 꽃게잡이 충돌방지 협의할듯

    북한이 14차 남북 장관급회담 마지막날인 7일 우리측이 제의한 장성급 군사당국자회담을 전격 수용함에 따라 조만간 남북한 군 장성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서해상에서의 남북간 우발적인 무력 충돌 방지문제가 꼽힌다.꽃게잡이철인 5∼6월만 되면 남북한 군 당국간에 매년 긴장이 고조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북한은 꽃게잡이철인 6월에 연평해전(1999년)과 서해교전(2002년) 등 두 차례의 무력충돌을 겪었으며,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따라서 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상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당국간 연락채널 구축 등 긴장 완화를 위한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한 어민이 공동으로 조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공동어로구역’ 설정문제가 전향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밖에 남북 당국의 추적을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오가며 불법 어로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국 등 제 3국 어선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국방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인 꽃게잡이 조업과정에서의 충돌 방지 방안에서 출발해,여건이 나아지면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본질적인 군사문제로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5월 중’ 개최 가능성이 높다. 회담 직후 정세현 남측 수석대표는 “구체적인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5월 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권호중 북측 단장도 “인차(곧)라도 열겠다.”고 호응한 점이 이런 분석을 낳게 한다. 현재 운영중인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 실무회담의 대표를 대령이 맡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장성급 회담은 국장급 장성이 책임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남측은 대북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국헌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이 수석대표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 장소는 우리측의 제의대로 판문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북측은 판문점이 유엔사 관리구역이라는 이유로 남북 당국간 회담의 판문점 개최는 거부하면서도 군사분야만큼은 판문점을 외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북한산 심곡암서 초파일 ‘산꽃축제’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 서울 북한산 형제봉 심곡암(주지 원경 스님)에서 불심(佛心)과 자연,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지는 ‘산꽃축제’가 열린다. ‘산꽃축제’는 지난 98년 심곡암 주지를 맡은 원경 스님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문화예술인들로부터 ‘부처님 법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뜻을 전해듣고 시작한 불사(佛事).달마그림전과 다도시연,시음 산사음악회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16일 오후1시30분 심곡암 마당에서는 승려가수 심진 스님의 노래와 가수 한영애,이명진 무용단,국악인 길상화의 공연으로 구성된 산사음악회가 열리며 매일 낮12시30분에는 다도시연과 차공양도 진행된다. 심곡암은 산 정상인 형제봉까지 들어선 4개의 사찰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자리잡은 조계종 사찰이다.(02)914-8860˝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부암동 녹지 보전 주택단지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면서도 마을의 기존 형태를 보존하는 도심 전원주택단지가 처음으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종로구 부암동 306의 10 일대 14만 8760㎡에 대해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환경친화적인 주거지로 조성하기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다고 27일 밝혔다. 안산∼인왕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에 위치한 이 일대는 서울성곽 등 역사·문화환경이 우수해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왔다.그러나 이곳의 개발제한이 풀리면 유흥·음식점 등이 난립할 것이 우려돼 시는 이를 막는 차원에서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했다.그동안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면 대규모 임대아파트를 짓거나 용도변경만 했을 뿐,해제지역의 사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는 현재 평균 필지 75평에 2층 이하의 건물이 99%인 이 일대를 원형대로 보존하도록 건폐율을 50% 이하,용적률은 100%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건물의 층수도 기존처럼 2층 이하로 정했다.건축물의 용도는 단독주택으로 하고 다가구주택도 3가구 이하로 정했다. 기존 나대지에는 순수 단독주택만 허용되며 간선도로변에는 1종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선다.최대 개발규모도 660㎡,간선변은 800㎡로 제한했다.단독주택을 지을 때는 조경면적을 30% 이상 확보해야 하며,옹벽설치와 옥상에 잔디나 나무를 심어야 한다.건축자재와 색채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도로가 좁아 차량 통행이 불가능했던 지역과 노후·불량주택 밀집지역 등 2곳에는 2층 이하의 연립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기반시설이 부족한 곳이라 ‘특별계획구역’으로 별도 지정해 공동개발을 통해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방안이다.김효수 도시관리과장은 “부암동 지역은 앞으로 그린벨트가 해제되는 100가구 이상의 중규모 취락지역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4만 5000평의 나대지를 포함해도 최대 600가구 밖에 안돼 이 일대는 쾌적한 주거단지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한나라당의 對北정책 변화/오풍연 논설위원

    박근혜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진 게 있다면 한나라당 안에서 ‘언로(言路)’가 트였다는 점이다.또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변화와 개혁을 주창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1950년대생,70년대 학번으로 대표가 바뀌면서 나타난 징후다.이는 17대 총선에서 ‘박근혜 효과’로 이어졌다.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졌던 당을 가까스로 구해낸 ‘박근혜 효과’는 흔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치부되지만,바로 이런 점들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의 대북정책이다.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국가보안법 개정 대목이다.박 대표는 얼마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매우 시사적인 발언을 했다.그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철폐는 안 되고,보완 문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그동안 한나라당이 수구·꼴통 보수 이미지로 비쳤던 터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이회창 전 총재와 서청원·최병렬 전 대표 당시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은 냉전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다.유엔 등 국제 인권단체에서도 오래 전부터 폐지를 권고해 오지 않았는가.그럼에도 손을 댈 수 없었다.이 법이 제정 공포된 1980년 12월31일 이후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거치는 동안 제1당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21세기다.제1당도 열린우리당에 내 주었다.북한을 제외한 공산 국가는 모두 몰락했다.북한 또한 개혁·개방의 길을 걷고 있다.국가보안법을 시대변화에 맞게 손질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은 옳다고 본다.그들의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도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문제는 박 대표가 당론을 어떻게 모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대표적 보수론자인 정형근·김용갑·홍준표 의원 등은 벌써부터 제동을 걸 태세다.이들은 박 대표와 생각을 같이하는 일부 소장파들을 향해 ‘기회주의자’라며 공격을 퍼붓고 있다.“한나라당의 정체성인 보수를 지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보수=반공’ 등식을 고집하는 한 합의 도출이 어려울 것이다.박 대표의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현행 국가보안법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이다.제10조의 불고지죄 조항을 비롯해 제7조 찬양·고무 규정,제2조 반국가단체 규정의 정부 참칭(僭稱) 부분이다.이 조항들은 남북간 화해·협력을 위한 남북교류협력법과 충돌하고 있다.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역시 이 법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박 대표 자신도 2002년 북한을 다녀왔다.이같은 시대의 변화를 한나라당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케케묵은 수구논리에 빠져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그런 만큼 독소조항만이라도 하루빨리 없애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이 지난 25일 ‘북한 정부’라는 표현을 썼다.한나라당에서는 그간 찾아볼 수 없었던 생소한 표현이었기에 기자들도 어리둥절했다고 한다.당연히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이에 김 총장은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에는 국가가 아니지만,남북교류협력법상 용어였다.”고 해명했다는 것이다.고위당직자가 용어 한마디에 이처럼 당황해했을 정도로 이념이 굳어진 게 오늘의 한나라당 현주소다. 그렇다면 대답은 자명해 진다.한나라당이 변해야 한다.개혁도 좋고,보수도 좋지만 시대정신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29∼30일 당선자 연찬회를 여는 자리에서 최소한 국가보안법에 대한 해법만이라도 찾기 바란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
  • 애드리브 짱 공형진

    “애드리브요? 제가 그 쪽의 끼는 좀 있나봐요.순간적인 상황 몰입이 빠르다는 말을 듣는 편인데다 즉흥 연기를 해도 파트너 연기자나 감독님이 덜컹거리지 않는 걸 보면요.주위에서 좋게 봐준거겠죠.” 주연못지 않은 조연배우로 각광받다 지난해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데뷔 13년만에 주연으로 발딱(?) 일어선 배우 공형진(35).두번째 주연 작품 ‘라이어’(제작 씨앤필름) 개봉(23일)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연극을 토대로 한 작품인데 짜임새 있는 구성,탄탄한 배우(?)가 만난 웰빙 코미디입니다.우리 코미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거죠.” 예의 ‘따발총 입심’은 ‘라이어’자랑으로 말문을 연다.논리까지 갖춘 ‘말짱’(?)인지라 막지 않으면 끝없이 이어질 태세다.두번째 주연에 대한 소감으로 화제를 돌렸다.정준호와 호흡을 맞춘 ‘동해물과‘에 이어 이번에도 주진모와 함께 ‘투톱 주연’이지만 그의 비중이 높아진 건 확실하다.어깨나 말 등에 힘이 들어갈만도 하지만 전혀 느낄 수 없다. “외부의 시선이나 대우도 달라졌고 그에 따른 부담도 늘었지만 저는 주·조연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그의 꿈은 ‘빛나는 배우’다.99년 유인촌이 대표로 있는 극단유의 배우로 입단한 뒤 ‘택시 드리블’‘보석과 연인’‘종이풍선’등에서 연기수업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극은 배우라면 꼭 거쳐야 할 코스같습니다.영화판에 온 뒤 게을러 거의 무대에 오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영화 밖에서 만난 그는 진지했다.다양한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영화 속 분위기와는 다르다.심지어 애드리브에 대해서도 그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그거요? ‘과하면 독’이에요.장면이나 상황을 윤택하게 하고 자기를 돋보일 수 있는 개인기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하모니가 깨질 수 있는 역기능도 있어요.호흡을 맞추는 배우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감독이 그 신에 담으려는 목적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합니다.” 말을 나눌수록 그가 남을 웃기는 데는 한껏 너그럽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함을 알 수 있다.대중문화계의 살벌함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는지라 ‘스타의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에게 허와 실을 들려준다.“연예인이 선호도 1위 직업이잖아요.좀 건방지게 들릴 지 모르지만 아마 상위 5%의 모습만 봐서 그런 거 같아요.겉모습만 보고 부나방처럼 덤빌 게 아니라 인생을 걸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긴 다음에 뛰어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코믹배우.특히 억지로 짜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안기는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아마 그가 ‘웃긴다’는 말에 강박관념에 눌리지 않는 데서 나오는 장기인 듯하다.“제 작품을 잘 보세요.일방적으로 관객을 웃기려고 한 게 아니에요.모두 휴머니티가 녹아있는 드라마인데 그 속에 제 역이 그렇게 된 거지요.” 그가 소화한 캐릭터를 돌아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음란 비디오를 만들어 파는 양아치(‘파이란’),사기치는 게 부업인 관광가이드(‘남남북녀’),능청스러운 철가방(‘위대한 유산’),엄살심하고 사고뭉치인 북한병사(‘동해물과 백두산이’)….이번에 ‘라이어’의 캐릭터도 약간 달라진다.이제까지는 주로 먼저 코믹함을 내뿜었는데 이번엔 주진모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받은 뒤 한 템포를 늦췄다가 튕겨준다. 그의 연기철학은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욕’ 연기에 응축돼 있다. “제 연기의 메타포는 ‘실감나는 욕’입니다.다만 맛깔스러우면서도 기분나쁘지 않은 욕을 만드는 데 주력합니다.알고 보면 우리는 희로애락을 모두 욕으로 표현하잖아요.이성으로 자제하고 있지만 그 감정이 극에 이르거나 아무도 보지않을 때는 한마디씩 흘러나오잖아요.그걸 제가 대신 해주니 관객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모습에 “혹시 이것(진지한 답변)도 연기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게 연기면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정색을 하고 반문한다.그 모습이 더 웃긴다.그래서 사람들은 완성도가 낮은 영화를 본 뒤에도 “그래도 공형진 때문에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 나 찾아봐라 90년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공형진이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는 20여편.자신이 출연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대뜸 ‘파이란’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파이란=평생 못잊을 영화다.최민식 선배와 함께 촬영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스타 배우란 그저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연기란 저런 것이구나.’를 알게됐다.개인적으로도 공형진이란 이름이 영화판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작품이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나답지 않게 대단히 정적인 캐릭터를 소화했다.이성과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남자역인데,25년된 여자 친구 신은경에게 맹목적·헌신적 사랑을 주려는 남자.캐릭터에 반한 여성 관객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와 흐뭇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출연 자체로 영광이었다.조역과 단역,엑스트라,스태프들 모두가 태릉 선수촌 입촌하는 심정으로 찍었다.선수들이 땀을 흘리듯 치열한 사명감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촬영 과정이 고생스럽고 힘들어 지긋지긋한 기억이 많지만 배운 게 더 많았다는 느낌이다.개인적으로는 ‘쉬리’ 오디션에서 탈락한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첫 주연이란 영광을 안긴 작품.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노력 많이 했다. #박하사탕=시국 사범 잡으려는 송형사역으로 나왔다.믿을는지 모르겠지만 고문도 많이 하는 악질 경찰이었다.이창동 감독에게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 사진 강성남기자 snk@˝
  • [우리 결혼해요]이사람 혹시 간첩아냐?

    “얘는 내 후배 종민이야.일명 살찐 안성기라고 불리지∼.” 중학교 3년내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총각 국어선생님을 대학생이 되어 찾아 갔던 날.선생님은 내마음은 아랑곳하지도 않으시고 후배라며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셨다. 그당시 나는 대학 2학년생,그 사람은 대학원생.그를 만나고 난 뒤 그의 나이많은 후배 아저씨들이 내게 “형수님,형수님”하며 깎듯이 대접을 해주는 것이 불편했는데,6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적당히 즐기는 듯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이차가 많아서 그가 이해를 많이 해주는 덕에 제대로 싸움 한번 안했다.싸우면서 정도 많이 든다는데,오히려 그러지 못한 것에 조금은 억울해해야 하는건가? 6년동안 연애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난 지 얼마 안되어 안개가 자욱이 낀 날,임진각에 놀러가기로 하고는 자유로를 달렸다.40분쯤 달려도 임진각이 안나오는 것이다.불안한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북한’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기에 이르렀고,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차는 멈춰섰다. 아직 친숙하지도 않은 관계,낯선 곳,어색한 기류,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그것도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낀 날에 차를 갖고 나선 우리 사이엔 이 일로 잠시 냉기가 흐르기도 했다. 이제 막 사랑을 꽃피우는 커플들! 안개 낀 날에는 결코 임진각에 가지 마세요.자칫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위기를 넘긴 우리는 오는 24일 결혼한다. “날 많이 이해해준 자기야!이제부터는 내가 받아왔던 사랑을 돌려줄게.평생∼사랑해!”˝
  • [사설] ‘짧은 만남 긴 이별’ 이젠 바꿔야

    제9차 이산상봉 남측 방문단 1진 100명이 어제 속초로 돌아왔다.이어 남측 방문단 2진이 오늘 금강산으로 간다.한·미 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경협 실무회의 등 각종 남북회담이 미뤄지고 있는 작금의 사정에 비춰 다행스러운 일이다.앞으로도 이산상봉 합의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심정으로 남북에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이번에도 남측 방문단 중 96세의 최고령 할머니는 생면부지의 외손자로부터 셋째딸이 2년전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2년만 빨리 왔으면….”하며 통한의 눈물을 뿌렸다.남측의 경우 북측 가족과의 만남을 신청한 이산가족 12만여명 중 이미 2만명 가까이가 세상을 떠났다.생존자들도 60% 이상이 70세를 넘어선 실정이니 한번에 100명 정도 만나는 현 추세라면 태반이 통한을 풀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이래선 안 된다.온 지구촌이 한 가족인 문명의 시대에 이념과 체제가 혈육을 갈라놓은 야만이 더이상 용인되어선 안 된다.남북은 우선 지난해 합의한 금강산 면회소 건설 사업에 가속도를 더해야 한다.특히 남북 당국 모두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발상의 전환을 하기 바란다.북측은 이산상봉이 체제 불안을 야기할 것이란 가설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최근 4년간 공식적으로만 9차례에 걸쳐 모두 8000여명이 만나고,1만 2000여명이 생사를 확인하거나 서신을 교환했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나.이제 북한 당국도 이산상봉에 소극적일 이유가 없으며,남한 당국은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상봉 정례화,재결합 등의 해결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다.˝
  • 한·중 외무회담“中 불법어로 근절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은 2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대(對) 중국 인권결의안과 관련,“결의안 처리 때 중국측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반 장관은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으로 어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고 단속과정에서 남북한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있어 중국 중앙정부와 해당 성(省)이 관심을 갖고 대처해달라.”고 주문했다. 리 부장은 “관심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며 “한국도 과격한 단속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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