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북한 숙청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영업이익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상생발전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인천 화재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이란 사태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60
  • [사설] 김정은의 북한 3년… 핵포기·개방이 살 길

    오늘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주기를 맞았다. 북한 당국이 연일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켜 온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중심으로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수순일 게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에서도 유례없는 3대 권력세습은 겉보기엔 공고한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불안 요인을 잉태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시각이다. 우리는 북한의 이런 불확실성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핵개발 등 퇴행적 노선을 포기할 때만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조선중앙통신은 엊그제 김정은 집권 이후 주요 업적으로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을 꼽았다. 이는 상식 선에서 보면 블랙 코미디일 게다. 하지만 김정은이 세습 3년 만에 무소불위의 1인 체제를 굳혀 가고 있는 징표로도 해석된다.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등 아버지 시절 실세들을 숙청하고 고위 군간부들의 계급을 뗐다 붙였다 하며 길들이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징후다. 그럼에도 김정은 체제가 이제 확고한 반석 위에 자리 잡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포정치로 마취된 권력 안정은 이른바 ‘묘지 위의 평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북을 상대하는 우리가 선군(先軍)주의와 선당(先黨)주의를 오가며 곡예를 벌이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를 주시해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북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주요 통계지표’를 보라. 지난해 남북 경제력 격차는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42.6배차, 무역액으로는 146배차였다. 1인당 GNI 역시 한국이 2870만원인데 비해 북한은 138만원에 불과했다.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만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 경제가 미미하나마 성장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은행은 2010년 마이너스 성장이던 북한이 2013년에는 1.3%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계했다. 그러나 이는 김정은의 치적이라기보다 북한식 사회주의경제의 파탄이 부른 역설일 뿐이다. 북의 배급체계가 마비됐을 때 ‘북한판 시장경제’인 장마당이 번성하면서 주민생활은 외려 호전된 사례라는 것이다. 북한이 살 길은 대내적으로는 인센티브제와 경제의 자유를 확대하는 등 체제를 개혁하는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등 그간 추진해 온 전시성 사업들 대신 주민생활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문호를 더 열어야 한다.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그래서 어불성설이다. 압록강 하구의 북한 황금평 경제특구에 중국 자본 유치 실적이 ‘제로’라는 사실은 뭘 말하나. 북이 몇 차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자 ‘혈맹’이었던 중국마저 고개를 돌린 결과가 아닌가. 우리 또한 북의 불가측성에 합리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만일의 북의 급변 사태에도 기민하게 대처해야겠지만, 그 이전에 북한 정권을 연착륙시키는 게 더 바람직할 게다. 그러려면 체제 유지를 위해 몸을 사리며 개혁·개방에 소극적인 세습정권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이 핵개발 포기를 명시적으로 선언하기 전에라도 내년엔 남북 간 이견이 적고 윈·윈이 될 수 있는 교류협력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서울&평양 리포트] ‘포스트 장성택’ 없어… 외화벌이 틀어쥔 軍

    [서울&평양 리포트] ‘포스트 장성택’ 없어… 외화벌이 틀어쥔 軍

    김정은 체제 초기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 처형은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 북한이 나열한 그의 죄목 중 ‘불경죄’는 곧 ‘역린’(逆鱗)을 의미한다. 최고 존엄의 권위에 도전한 장성택의 행위는 용납받지 못했다. 장성택이 처형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인 12일 김정은 정권의 권력은 일시적이나마 공고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북한 내에서 불고 있는 ‘장성택 그림자 지우기’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인적개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보 당국은 지난해 말에 북한 당국이 장성택 연관자들을 제한적으로 처리했다고 보고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북한이 장성택 관련자들을 광범위하게 솎아낸 것이 아니라 내부동요를 고려해 제한적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장성택 처형 후 석탄·금속 관련 인사 교체 실제 장성택 측근들로 알려진 당 행정부 부부장들인 리용화, 장수길이 처형됐고 또 친·인척인 전용진 전 쿠바대사와 장용철 전 말레이시아 대사를 소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이 관여했던 주요 외화벌이 사업인 석탄·금속 관련 인사들도 내각에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지난 3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약 55%에 가까운 대의원이 바뀌면서 ‘장성택 잔재 숙청’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성택 세력의 몰락과 대조적으로 김정은 시대의 신진 세력이 부상했다. 대표적으로 한광상 재정경리부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변인선 제1부총참모장, 리병철 전 항공 및 반항공사령관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 시대의 권력 강화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적 변화로 볼 수 있다”면서 “장성택 사건을 ‘현대판 종파집단에 대한 숙청’으로 규정하며 권력 안정화를 추진했다”고 진단했다. ●장성택 주도 북한 이권 사업의 향배는? 지난해 12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장성택이 이권에 개입해 타 기관의 불만이 고조됐고, (이와 관련한) 비리 보고가 김정은에게 올라가 장성택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라며 “당 행정부 산하 54부를 중심으로 알짜 사업의 이권에 개입했는데, 주로 이는 석탄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기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가 장성택 재판 판결문에서 “부서와 산하 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나라의 전반 사업을 걷어쥐고 중앙기관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0년 국방위원회 산하에서 당 행정부로 이관된 54부는 북한 내 외화벌이에서 알짜 사업인 석탄 수출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당과 군부에서 이 이권사업을 양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당과 군이 54부를 분산해서 장성택 이권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중국에 있는 무역회사의 명칭이나 사장이 계속 바뀌고 외화벌이 기관이 당에서 군으로, 군에서 당으로 이관된 것이 확인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 내 주요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인 수산·양식사업권도 당 기구 산하에서 군 관련 기관으로 이동한 정황이 나타났다. ●평양 10만호 사업 등 주요 사업 대부분 좌초 장성택이 주도하던 사업들도 전면 개편 또는 중단됐다. 장성택이 주도하던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도 김정은의 ‘전시성’ 사업으로 대체됐다. 이 사업은 작년까지 2만호 건설에 그쳤고 자금 부족으로 중단됐다. 김정은은 이 사업 대신 ▲위성과학자 주택지구 ▲평양 육아원 애육원 ▲김책공대 교육자 살림집 건설 등 ‘선심성’ 사업에 치중했다. 장성택이 실권을 쥐고 있을 당시 추진했던 각종 경제 프로젝트는 명칭이 바뀌었다. 김정은은 올 2월 6개 신규 경제개발구를 발표하면서 신의주 경제지대의 명칭을 특수경제지대에서 국제경제지대로 변경했다. 지난 8월에는 장성택과 관련된 공장인 대동강 타일공장을 천리마로 바꾸고, 승리윤활유공장을 천지로 개칭하는 등 장성택 지우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포스트 장성택’은 없었다”면서 “장성택이었으면 가능했을 사업이 좌초되는 단면에는 북한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반증”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김정은은 경제 살리기보다 ▲미림승마장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등 개인의 치적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집권 이후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 조치나 공장 경쟁력 제고 방안 등 경제 성장과 관련한 이렇다 할 정책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전시성 사업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기여할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나라의 자원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내세워 북·중간 경제교역을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북·중 교역의 파트너인 중국 입장에서는 졸지에 헐값에 북한 자원을 매집하는 ‘파렴치한’이 됐다. 장성택 처형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13일 홍콩 대공보는 사설에서 “역사적 시기마다 중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달랐지만 가장 큰 요구는 ‘북한의 안정’이었다”며 “장성택 사건은 중국에 있어 북한에 존재하는 불안정 요소가 한국보다 훨씬 크고 위험하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강조하고 “앞으로 중국의 국가 이익에 손실을 줄 주요인은 북한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공보의 예측도 북·중관계의 냉각기가 1년이 넘은 이 시점까지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북·중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불편한 관계로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실세로 통하던 장성택이 처형된 후 북·중 간 정치분야 교류가 크게 줄어들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매년 북·중이 고위급 인사를 교류했는데 장성택 처형 이후 많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김정일-후진타오 시절 1년에 45회 정도 이뤄지던 정치교류가 장성택 처형 이후 3분의1로 줄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 중국 류젠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 방북에 이어 3월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중국 정부 인사의 북한 방문은 끊긴 상태다. 또 북한과 중국은 1년에 5~6차례 군사교류를 했지만 올해 군사 교류는 전무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중이 추진해 오던 경협 프로젝트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이 주도하던 나선·황금평 특구 개발사업은 답보상태”라고 밝혀 변화된 북·중관계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북한 내 엘리트들 보신주의 팽배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내에서 엘리트들의 체제수호 의지에 동기를 부여하는 이른바 ‘운명공동체’ 의식은 김정은 3대 세습체제로 넘어오면서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성택 숙청 이후 무자비한 공포통치가 지속되면서 간부층 내부에서 신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권력층의 비리와 보신주의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김정은의 측근들조차 장성택 처형의 주된 죄목이 ‘김정은 권위훼손’이었다는 점을 의식해, 언행을 극도로 조심하면서 충성심 과시에 급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북한 간부층 내부에서 ‘복지부동ㆍ면종복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일부 내각 간부는 ‘경제파탄’을 지적하며 김정은이 10년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어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당국이 정변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며 발표한 보도문의 일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로열패밀리 장성택도 ‘백두혈통’ 김씨 집안의 벽 앞에서는 한 줌 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 예다. 북한은 장성택 숙청 1주년을 앞두고도 여전히 그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의 공주 김여정이 차관급인 노동당 부부장의 직함을 맡고 있음이 확인됐다. 김여정은 첫 공주였던 고모 김경희의 공백을 메우고 있어 단순히 공주가 아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한 핵심 실세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김여정의 전면 등장은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이던 1976년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고 1987년부터 당 경공업부장을 맡았지만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부는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버지 김정일도 당 활동을 선전선동부에서 시작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5일 “김정은이 현지지도하는 데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선전선동부 간부급은 반드시 동행한다”며 “그만큼 현지지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 혈통 신성시 올해 27세인 김여정은 지난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 행사 때 오빠 김정은의 수행원으로 나왔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때 김여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공개했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라는 점을 밝혔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여정을 주목해 왔다. 김여정은 김 제1위원장과 함께 1990년대 후반 스위스에서 유학했고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외국인 교사의 개별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특히 평양에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당당한 공주로 통한다. 2012년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행사에서 고위 관리들이 김정은·리설주 부부를 박수로 환영할 때 홀로 화단 위에 서서 이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고모 김경희도 줄을 맞춰 선 뒤 부동자세를 취했지만 김여정은 달랐다. 김 제1위원장이 간부들과 악수할 때 화단을 넘어 뜀박질하듯 아스팔트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또 김 제1위원장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경호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 조선중앙TV는 2012년 11월 19일 김 제1위원장의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때 김여정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탄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일성 가계에 김여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과거 김경희가 김정일을 챙겼듯, 김여정이 김 제1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챙기는 최고 실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신성시된다. 북한은 2010년 평양시 남쪽 일부 지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키는 평양시 축소 개편 조치를 단행했으나 서쪽 외곽의 만경대 구역이나 동쪽의 강동군 등 김정일 가계와 관련된 지역은 제외됐다. 강동군은 김정일의 조부 김형직의 혁명활동 사적지가,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이복형 김정남 등 김씨일가 ‘곁가지’엔 가혹 하지만 북한은 백두혈통의 ‘곁가지’들에 대해서는 가혹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50)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교환수 출신이자 후처인 계모 김성애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애에게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김평일과 김영일, 딸 김경진이 있었다. 그리고 외형상 김평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완벽하게 닮았고 학교 성적도 더 뛰어났다. 1969년까지만 해도 북한 고위 간부 사이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는 김평일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1970년 봄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불화가 생긴 틈을 타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계모 김성애의 월권행위와 비리를 일일이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김성애가 몰락하고 1974년 김정일로 후계구도가 공식화되자 김정일은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평일은 1979년 유고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쫓겨난 이래 헝가리 대사, 핀란드 대사 등을 전전하며 평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김 제1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첫째 부인 성혜림 소생인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물러나면서 중국과 마카오를 거점으로 북한 관련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해외 언론과의 접촉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요주의 대상이 됐다. ●“이복누나 김설송은 그림자 실세” 주장도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의 이복누나 김설송(40)은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 실세’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설송은 1974년 김정일과 그의 둘째 부인 김영숙 사이에 태어난 장녀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에 대한 경호와 일정 관리를 총괄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켄 고스 미 해군 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은 지난 6월 “김설송이 북한 정권 내부의 모든 정보를 간직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조직의 정점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 교수는 이에 대해 “김설송이 중요한 업무를 맡고 실권을 갖고 있다면 공식 매체에 등장하지 않을 리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통해 볼 때 김 제1위원장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김여정이다. 이복형인 김정남은 적대시하고 있고 유약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자 구도에서 탈락한 친형 김정철은 권력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해 김여정은 자신의 자리를 넘보기 어려운 여성이라는 점에서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을 ‘1호 동지’, 김여정을 ‘2호 동지’로 부르고 있다”며 사실상 2인자 이상의 핵심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지난 5월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 시상식에서 김여정이 김정은 바로 뒤에서 메달을 들고 있는 사진은 그가 단순히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아닌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장을 맡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남매의 상호 의존·보좌 통한 정당성 강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백두혈통의 계모에 대한 대접도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계모인 김옥(50)의 역할이 주목된다. 김옥은 1980년대 초부터 2004년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다. 안 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이 베푼 연회에서 김옥이 행사를 진행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김옥이 숙청되지 않고 김정은의 배려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여정의 약진은 장성택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없는 현재의 북한이 백두혈통 남매의 상호 의존과 보좌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약한 내구력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 교수는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김경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김정은에게 어느 정도 정치적 경륜이 쌓이면 김여정도 경공업부장처럼 정치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로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 김정은, 끝나지 않은 장성택 잔재 숙청

    北 김정은, 끝나지 않은 장성택 잔재 숙청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 당 조직지도부에게 ‘장성택 잔재 청산 2단계 작업’을 명분으로 “장성택 그림자를 철저하게 없앨 것”을 은밀하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김정은 정권 3년 평가와 2015년 남북 관계 전망’ 토론회에서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직후부터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해 왔다”면서 “(하지만) 간부층의 동요와 경제의 악영향 등을 우려해 올해 4월쯤 관련자 숙청 작업을 서둘러 봉합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도 북한은 대규모 숙청 과정에서 ‘유일영도체계 위반’ 및 각종 비리 혐의로 적발된 당·정·군 간부들을 총살, 해임하는 등 엄중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아사히신문 “동해에 北 오징어잡이 어선 급증”

    동해의 북·일 중간선 부근에서 조업하는 북한 오징어잡이 어선이 올 들어 급증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일본 수산청과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조업하는 북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올 1월부터 최근까지 400척가량 확인됐다. 2011년 15척, 2012년 80척, 2013년 110척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가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북·중관계가 삐걱대고, 외부의 식량지원도 예년만 못하자 북한이 바다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일본 당국의 분석이라고 아사히는 소개했다. 북·일 중간선 부근에서 조업하는 어선 대다수는 청진, 원산 등에서 출항한 군(軍) 소속 선박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산물 수출 부문을 장악하고 있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말 숙청되고 나서 개인 또는 기업 소유로 돼 있던 어선이 군 소유로 재편된 것일 수 있다고 일본 당국은 보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서울&평양 리포트] 北·러 新밀월시대 계기로 본 ‘백두혈통’과 러시아

    [서울&평양 리포트] 北·러 新밀월시대 계기로 본 ‘백두혈통’과 러시아

    1991년의 어느 날. 김일성 북한 주석은 아들 김정일 노동당 조직비서부터 문건 하나를 받아 보고 경악했다. 이는 당시 붕괴 수순을 밟고 있던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결탁된 세력이 군부 내에서 반정부 쿠데타를 모의한다는 내용이다. 김정일은 같은 해 12월 24일 김 주석으로부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위를 넘겨받았다. 김정일은 소련이 붕괴한 이듬해인 1992년 ‘프룬제 사건’으로 알려진 소련 유학파 출신 군 간부 숙청을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북한은 1985년부터 프룬제 아카데미아 등 20개가 넘는 소련 군사대학에 700명 가까운 군 간부들을 유학 보냈다. 북한 내부에 친소련파가 득세하길 원하는 소련으로서도 이들을 포섭하려 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실제 포섭된 인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를 부풀려 군권을 장악하는 계기로 활용한다. 소련의 몰락을 지켜본 국가와 군의 동요를 막기 위해 유학파 출신들을 제물로 ‘충격요법’을 쓴 셈이다. 이는 냉전 종식 당시 중국밖에 우방이 남지 않은 북한 ‘백두혈통’ 김씨 일가와 러시아의 애증관계를 여실히 보여 준다. ●‘프룬제 사건’으로 소련 유학파 대대적 숙청한 김정일 “정치는 입이 아닌 발을 보라”라는 말이 있다. 2014년 11월 18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러시아를 방문했고 러시아는 20일 푸틴 대통령이 김 제1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양국 간 군사교류 확대와 공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100억 달러 상당의 채무를 탕감해 주며 시작된 양국 간 우호 분위기는 경제, 사회, 군사 분야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경제협력으로 지난해 러시아와 북한의 교역량은 전년 대비 37.3%% 늘어난 1억 4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양국은 2020년까지 교역량을 10억 달러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최근 핵과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는 북한이 ‘혈맹’인 중국과의 관계가 최악인 점과 대조적이다. 전통적인 자원부국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옛 우방 북한과 손을 잡는 모양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생존’에 기반을 둔 대러 접근을 한다고 보면 러시아는 안보 재편과 세계경제 불황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에서 대규모 국책사업이 필요한 상황이고 북한은 이를 수행하기에 매우 중요한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북·러 밀착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을 돌아보면 이해가 빠르다. 북한 정권의 중국,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는 각각 ‘동북항일연군’과 ‘88국제여단’에서 비롯된다. 1930년대 만주 일대의 항일 빨치산 조직들은 중국 공산당에 합류해 동북항일연군으로 편성돼 중국 공산당과 공동 항일전선을 펼쳤다. 김일성도 그 일원으로 만주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1940년 일제의 빨치산 토벌이 가혹해지자 김일성과 최현(최룡해의 아버지)은 소련의 하바롭스크로 이동해 특무공작요원 훈련을 받고 소련 극동군 88국제여단에 배속돼 5년 동안 복무한다. 김일성은 이곳에서 최용건·김책 등 다른 항일유격대 지도자과 우의를 다졌고 이들 항일 빨치산 1세대는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소련군 등에 업고 출발한 北… 中·러 사이 ‘줄타기 외교’ 1945년 9월 소련군 대위 군복을 입고 평양에 입성한 김일성은 당시 38도선 이북을 통치한 소련 군정의 도움으로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이는 권력 장악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1948년 소련을 등에 업고 출발한 북한 정권은 같은 해 10월 12일 소련과 국교를 맺었다. 하지만 북한의 외교는 북·중 관계와 중·소 관계의 직접적 영향을 받으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의 사상 논쟁이 격화되고 1969년 양국 간 국경 충돌이 발생하자 북한은 자구책으로 ‘자주 외교’를 선언하며 양 대국(大國)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공존을 내세운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실각한 1964년까지는 소련 지도부의 노선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며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을 전개한 중국이 북한 지도부를 ‘기회주의’로 몰아붙이자 북한도 중국 공산당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다시 소련에 밀착해 군사원조와 경제지원을 받는 데 주력한다. 이후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문화대혁명이 종료됨에 따라 북·중 관계가 풀리면서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됨과 함께 이를 계승한 러시아는 1995년 9월 ‘조·러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 조약’을 더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북·러 관계는 과거의 군사동맹 관계에서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전환됐다. 이때부터 북한과 러시아는 경제협력 파트너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북·러 양국은 결국 1999년 3월 평양에서 ‘조·러 우호선린 협조조약’에 가서명하고 2000년 2월 정식 서명한다. 이로써 소련 붕괴 이후 한동안 냉각됐던 관계는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다음해 7∼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정상적인 관계로 복원됐다는 평가다. 북·러 관계에서 북한이 전통적으로 가장 관심을 둔 분야는 군사협력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집권 시기까지 중국의 국력이 러시아를 앞섰음에도 북한군 내에는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고 무시해 왔던 중국보다 러시아의 전차와 항공기 등 무기체계에 대한 경이로움이 남아 있다. 북한 공군 조종사 출신의 귀순자 이웅평 대령은 생전 “김일성은 1970년 소련으로 갈 때 공군 조종사들을 데려가 미그기 등 전투기들을 몰고 왔다”고 증언했다. ●“북·러 밀월은 中 자극하려는 의도” 회의적 반응도 북한은 1991년 소련 해체 때 러시아 ‘극동군관구’에서 탱크와 비행기 등 전술무기들을 싼값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군 산하 ‘새별’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1998년 탈북한 한 인사는 “소련 붕괴 직전 부패한 소련군 장성들을 설득해 탱크와 비행기 등을 폐기 처리하는 방식으로 원산항과 흥남항을 통해 들여왔다”면서 “구입 대금은 대부분 위조 화폐인 ‘슈퍼 달러’와 위조 양주 및 위조 담배 등으로 처리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은 음성적인 거래에서 대부분 ‘슈퍼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한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중요한 교훈도 얻게된다. 혁명의 전위군이자 최후 보루인 군이 당의 지시에 반기를 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다. 이는 1993년 국방위원장으로 취임한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강화하고 ‘프룬제 사건’을 급조한 이유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북·러 밀월에 대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줄타기 외교’를 본받아 중국을 자극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김정은식 줄타기 외교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1960∼1970년대와 달리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 분야에서 적극 협력하고 있으며 반(反)서방 정서를 바탕으로 정치적으로도 가까운 만큼 북한이 양측 모두로부터 이득을 얻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파리 유학 장성택 측근 아들 北 강제송환 중 탈출해 은신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북한 엘리트 대학생이 자신을 강제 송환하려던 북한 호송조에 의해 공항으로 끌려가다 극적으로 탈출해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과 북한 유학생 한모씨가 다니는 국립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측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현재 한씨의 소재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강도 높은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북한 인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국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한씨는 최근 북한 당국의 ‘장성택 잔재 청산’ 작업으로 숙청당한 인물의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외국에서 무리하게 강제 송환을 시도한 이유로 추정된다. 현지 교민 사회에서는 제3국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 국가보위부 요원이 이달 초 한씨의 집에 들이닥쳐 여권과 휴대전화, 열쇠 등의 개인용품들을 빼앗고 북한으로 송환하기 위해 공항으로 끌고 가려 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라빌레트 건축학교의 카롤린 르쿠르투아 부학장도 “경찰이 지난 14일 한씨를 찾으러 학교에 왔다”면서 “지난 15일 이후 한씨를 본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 유학생들은 서로 감시하기 때문에 한씨가 2주 이상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씨의 강제 송환 임무를 맡은 북측 호송조는 프랑스와 인접한 제3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파악돼 프랑스는 물론 제3국과 북한 간 외교 마찰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파리 유학 北 대학생’ 강제 소환중에 극적 탈출…아버지는 벌써 숙청 ‘충격’

    ‘파리 유학 北 대학생’ 강제 소환중에 극적 탈출…아버지는 벌써 숙청 ‘충격’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 고위층 자녀가 강제로 송환되던 중 극적으로 탈출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현지시간) 현지 교민 사회 등에 따르면 유럽의 제3국 북한 대사관 소속 국가보위부 요원이 이달 초 파리에서 유학 중인 북한 대학생 한 씨의 집에 들이닥쳐 그의 여권과 휴대전화 등을 빼앗고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지난해 처형당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잔재 청산 작업으로 숙청당한 인물의 아들로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의 수재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버지가 숙청당하고 가족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을 알고 처형될 위험을 느껴 극적으로 탈출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경찰과 북한 유학생 한 씨가 다니던 국립 파리 라빌레트건축학교 측도 이 사안을 인지하고 한씨 소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포함한 인권결의안이 유엔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이럴수가”,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북한 너무 무섭다”,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도와줄 수 없나”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파리 유학 北 대학생’ 강제 소환중에 극적 탈출…아버지는 이미 숙청 ‘충격’

    ‘파리 유학 北 대학생’ 강제 소환중에 극적 탈출…아버지는 이미 숙청 ‘충격’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 고위층 자녀가 강제로 송환되던 중 극적으로 탈출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현지시간) 현지 교민 사회 등에 따르면 유럽의 제3국 북한 대사관 소속 국가보위부 요원이 이달 초 파리에서 유학 중인 북한 대학생 한 씨의 집에 들이닥쳐 그의 여권과 휴대전화 등을 빼앗고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지난해 처형당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잔재 청산 작업으로 숙청당한 인물의 아들로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의 수재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버지가 숙청당하고 가족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을 알고 처형될 위험을 느껴 극적으로 탈출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경찰과 북한 유학생 한 씨가 다니던 국립 파리 라빌레트건축학교 측도 이 사안을 인지하고 한씨 소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포함한 인권결의안이 유엔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이럴수가”,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북한 너무 무섭다”, “파리 유학 北 대학생 탈출, 도와줄 수 없나”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을 지키는 ‘사상 최대’ 의 경호부대...쿠데타 사실상 불가능

    김정은이 40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김정은에 대해서는 온갖 설(說)들이 쏟아졌다. 스위스 유학 시절부터 입맛을 들인 에멘탈 치즈 과다 섭취 후유증 설부터 지방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설, 심지어 군부 원로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도피했다는 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덮어 왔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5년 함경도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6군단이 반란을 모의하다 적발된 사건 이후 김정은 일가에 대한 쿠데타 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김정일이 두문불출했을 때도 그러했고, 김정은이 이립(而立)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 이후에도 리영호나 장성택에 의한 쿠데타 가능성이 수 차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쿠데타는 없었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천수(天壽)를 누리다가 병으로 죽었고, 지금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방부제 처리까지 되어 '곱게' 안치되어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장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력이 일천하고 나이도 어려 집권 초기부터 얼마 가지 못해 실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 실각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군부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대규모 경호 부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판 수방사! ‘평양방어사령부’ 우리나라도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군단급 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를 두고 있지만, 북한의 평양방어사령부는 우리 수방사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 수방사는 부대를 구성하는 예하 4개 사단이 현역사단이 아닌 향토사단과 동원사단이며, 현역 전투병력은 대부분 헌병과 경비 병력 위주로 구성된 반면, 북한의 평방사는 북한군 내에서도 상당한 정예로 꼽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평양방어사령부는 평양 외곽 지역을 지키는 군단급 부대이다. 국내 일부 언론에는 북한 최정예 기갑부대로 손꼽히는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 평방사 예하 부대로 알려져 있으나, 이 부대는 평양 남부 사리원에 배치된 820훈련소 예하 부대이며, 평방사는 보병과 장갑차 위주의 부대로 편성되어 있는 감편(減制) 군단급 부대이다. 예하에 장갑차로 무장한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과 1개 전차연대를 주축으로 2개 포병여단과 1개 경보병연대 등의 전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에서는 위장명칭으로 ‘91훈련소’ 또는 ‘제966대연합부대‘로 불린다. 전시가 되면 남포의 제3군단과 연계해 평양에 대한 방어임무를 수행하며, 남침에 실패해 방어전을 수행해야 할 경우 425훈련소와 820훈련소 등 기계화부대 잔존 전력과 함께 평양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 신형 전투장비를 가장 먼저 지급받는 부대이기 때문에 장비의 질적 수준은 북한군 가운데서 가장 높은 편이다. 4개의 차량화 보병여단은 러시아의 BTR-80 등 비교적 신형 장갑차를 모방해 개발한 신형 차륜형 장갑차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연대에는 북한 육군이 보유한 전차 가운데 가장 신형인 폭풍호 후기형과 선군호 전차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예부대인 평양방어사령부 지휘관은 상장(우리 군의 중장급)급 장령이 보직되며, 지금은 숙청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이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낸 바 있었다. ▲ 무소불위의 권력, 호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가 기계화 장비를 운용하며 평양 외곽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면, 평양 시가지와 김정은 일가에 대한 경호 책임은 호위사령부가 맡고 있다. 인기리에 상영된 국내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호위총국’으로 묘사된 호위사령부는 명목상 군단급 부대이지만, 예하 병력만 6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부대이다. 원래 이 부대는 이렇게 거대한 부대가 아니었다. 광복 직후 북한에 들어와 권력을 잡기 시작한 김일성의 개인 경호부대인 100여 명 규모의 ‘경위중대’로 출발해 6.25 전쟁 중 ‘경위연대’로 커졌으며, 전후 우리의 경호실 격인 ‘정부호위처’로 확대개편 되었다가 1965년에 상장급 장령이 지휘하는 ‘정부호위총국’이 되었다. 이후 정부호위총국은 호위사령부와 호위총국이라는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다가 2000년대 이후 호위사령부라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과거에는 1~7국으로 나뉘어져 김일성과 김정일 일가는 물론 지방의 김씨 일가 전용 휴양소와 초대소, 목장 등을 관리하는 방대한 조직이었으나, 현재는 개편을 통해 그 규모가 다소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6개 부로 구성된 제1국은 김정은 일가와 금수산태양궁전, 당과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직접적인 경호 및 감시 임무를 맡고 있으며, 김정은 일가의 생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제2국, 사령부 전투근무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제3국과 독립전투여단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황병서 총참모장의 경호원들 역시 제1국 소속이다. 이들은 황 총참모장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감시 임무도 맡고 있다. 호위사령부는 총참모부가 아닌 국방위원장 직속이기 때문에 당시 인천을 찾았던 황 총참모장이나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를 수행하면서 변심 또는 반역의 조짐이 보이면 이들을 사살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이러한 임무는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고위층 탈북이 이어지면서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출신성분과 충성심을 엄격히 평가해 선발하는데, 보안을 위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결혼 시에도 배우자의 출신성분과 당성을 보아야 하며, 결혼 후 지정된 숙소에서 생활하는 등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공급규정을 적용받아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김일성고급당학교 등 교육 여건을 제공 받아 당 간부로 진출할 수 있는 등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즉, 호위사령부는 말단 전사부터 고위 군관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호위사령부 요원으로 선발된 인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이러한 특혜에 대해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보답한다. 김씨 일가에 대한 경호는 물론, 생활 전반에 걸친 밀착 수행을 담당하기 때문에 지휘관 역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맡고 있다. 1985년부터 약 30년간 호위사령관 직을 수행했던 리을설은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 원수까지 진급했고, 퇴임한 이후에도 원수 계급을 유지하며 예우를 받고 있다. 후임으로 사령관에 임명된 윤정린 상장 역시 1984년부터 호위사령부 참모장으로 일하며 김정일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왔고, 최근 상장으로 강등당하기 전까지 대장 계급을 유지해 왔다. 호위사령관은 김씨 일가를 최일선에서 경호하는 ‘문고리 권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전시가 되거나 쿠데타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인접한 평양방어사령부와 3군단 등 총참모부 통제를 받는 전투부대를 끌어와 휘하에 두고 지휘할 수 있다. 자체 보유한 전투여단 강화된 3개 대대 편성을 갖추고 있으며, 쿠데타 또는 ‘최고 존엄’에 대한 위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하여 기동타격대 역할을 수행한다. ▲ 10만여 친위대... '호위사령부' 건재한 이상 쿠데타 불가능 최근 중국 SNS에서는 ‘김정은 실각설’이 사실처럼 확산되고 있었다. 김정은이 40일 가까이 잠적했고, 최근 황병서 일행이 인천을 찾은 것도 김정은을 축출한 뒤 삼두체제를 인정받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면서 이러한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평양에 오직 김정은의 명령만 듣는 10만여 명의 최정예 친위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호위사령부와 쿠데타 병력 간에 교전이 발발할 것이지만, 아직까지 평양 일대에서 이러한 특이 동향은 감지되지 않고 있고, 김정은은 다시 전면에 등장하여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황병서가 제아무리 2인자, 심지어 1.5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도 총정치국은 호위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을 가질 수 없다. 2인자조차 인정되지 않는 유일 독재체제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2인자나 1.5인자라는 단어에 박장대소할 것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어잡으며 2인자 행세를 했던 장성택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것이 호위사령부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의 권력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로 반세기에 걸쳐 호위사령부를 철저한 사병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김정은에게 물려주었다. 김정은은 이 호위사령부 안에서도 사령관인 윤정린과 부사령관인 김성덕이 서로 견제하고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장이었던 윤정린을 김성덕과 같은 상장으로 강등시킨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김정은은 건강상의 문제로 약 2~3개월 가량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가 어느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안정을 취해야하겠지만, 김정은이 통치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며, 빈도는 낮아지겠지만 앞으로도 대외 활동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27세에 불과하지만 ‘백두혈통’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와대 비서실장 격인 서기실장을 맡고 있는 김여정이 오빠인 김정은의 신임을 받으며 권력을 틀어쥐면서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여기에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하고 김정은을 결사 옹위하는 10만여 명의 친위대까지 버티고 있다. 김정일은 생전에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니콜라이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의 경호원들에 대한 영상을 자주 보여주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혁명 당시 차우셰스쿠에게 충성하던 보안군 소속 경호원들은 최후의 1인까지 혁명군에 저항하다 사살됐고, 김정일은 호위사령부 요원들에게 최고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이들과 같은 충성심을 요구해왔고, 호위사령부는 이 같은 독재자의 요구에 충실히 길들여져 왔다. 이들의 충성 대상은 이제 ‘백두혈통’인 김정은에게 이어지고 있고, 김정은은 매년 각종 사치품 수입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며 이들에게 막대한 특혜를 베풀고 있다. 김정은 체제 붕괴 또는 권력 약화는 독재자로부터 제공받는 호위사령부 요원들의 부귀와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위사령부는 대단히 강력하고 김정은과의 밀착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관계다. 이 때문에 이립(而立)을 갓 넘긴 철부지 독재자가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이고,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서울&평양 리포트] 北 3代에 걸친 건강이상설

    [서울&평양 리포트] 北 3代에 걸친 건강이상설

    1964년 8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 계획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김일성 중태설’을 보도했다. 김일성이 20일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고혈압을 앓던 그가 주치의로부터 금주 경고를 받았다는 전언, 심지어 북한 내부 파벌 투쟁으로 중공파에 의해 숙청됐다는 관측까지 보도됐다. 하지만 김일성은 한달여 뒤 평양비행장에 나타났고, 당시 건강이상설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발표 현장 참석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기간이 벌써 한달을 넘었다.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등에 대한 관심은 50여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시처럼 북한 지도자에 대한 건강이상설이 국내외에 빠르게 확산됐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가지도자의 건강 정보는 1급 기밀이란 점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남북 간 왕래가 크게 줄어들고 인적 정보망이 약화된 최근 상황에서 북한 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사실상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확인하는 것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1급 기밀로 공개석상서 확인하는 수밖엔… 김일성은 부친 김형직이 32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건강을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아예 김씨 일가의 건강 문제만을 챙기는 기관인 만수무강연구소가 있는 데다 산하에 식료품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연구소, 한의학을 연구하는 동의학연구소 등이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의 한 소식통은 “평양 용성특수식료공장과 각 시·도에 사슴, 노루, 소, 개, 꿩, 흑염소를 키우는 ‘9호’ 목장, 곡류를 재배하는 당 소속 8호, 9호 농장을 두고 있다”면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주치의들은 대부분 김일성종합대학 의대병원 강좌장(학과장)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고위층 병원 ‘봉화진료소’ 소장이 전담 주치의 만수무강연구소에는 수천명의 연구원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주치의’였다며 한국 매체에 나오는 탈북자들은 사실 만수무강연구소에 근무한 적이 있을 뿐이지 흔히 생각하는 우리의 대통령 주치의와는 다르다. 또 다른 탈북자는 “주석궁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정보를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평가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북한 내 진료는 북한 고위층 전용 병원인 봉화진료소와 각 병원장들의 협진을 통해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리광근 대외경제성 부상의 아버지 리영구 박사처럼 봉화진료소 소장 정도의 위치가 되면 김씨 부자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담 큰 수술은 해외 의료진이 도맡아 리 박사에 대해 아는 한 탈북 인사는 “주치의의 제1원칙은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골절 전문 주치의로 조선적십자병원 정형외과병원 병원장까지 지낸 리 박사도 의사 생활 평생에 손에 칼을 쥔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고급 인력이 북한 지도자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것도 수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예방의학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수령님’ 몸에 ‘칼’을 댄 뒤 부작용이나 사망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담이 큰 수술은 해외 의료진에게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82세에 사망한 김일성의 병력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방종으로 알려진 목 뒤의 ‘혹’이다. 1958년 평남 강서군 시찰 때 처음 확인됐지만 북한은 1970년대 초까지 사실을 숨겼다. 그는 심장병, 고혈압, 당뇨, 뇌일혈, 인후암 등의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 고령이라면 누구나 가진 질환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특이한 점은 1991년 프랑스 의사를 초청해 심장박동기 삽입 수술을 받았다는 당시 첩보다. 이 수술로 김일성이 10년은 더 살 것이란 말이 나왔지만 그는 3년 뒤인 1994년 사망했다. 김일성은 ‘동맥경화증 합병에 의한 급성 심근경색’으로, 김정일은 ‘중증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증’으로 사망해 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혈압, 당뇨, 비만이 있는 흡연가들에게 발견되는 성인병이 사망 원인이었던 셈이다. ●김일성·김정일 심혈관계 이상으로 사망 김정일도 80여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공개석상에 장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주기적으로 건강이상설이 나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8~9월 있었던 뇌경색 사건이었다. 같은 해 11월 초부터 그가 다시 왕성한 공개 활동을 벌여 건강이상설은 사그라들었지만 한달 뒤 “김정일이 뇌경색을 겪었지만 수술은 하지 않았다”는 프랑스 의료진의 전언이 나오기도 했다. ‘몸에 칼을 대지 않는다’는 주치의의 제1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김정일을 직접 치료한 프랑스 의사 프랑수아 자비에 루 박사는 지난 1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의료진의 수준과 의료시설이 매우 좋았다”고 회상했다. 루 박사는 당시 김정일을 돌보던 날씬한 체형의 어린 아들 김정은도 봤다고 전했다. ●치즈와 양주 즐기는 김정은, 통풍은 헛소문? 최근 김정은 잠적 후 그가 통풍을 앓고 있다는 관측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양쪽 다리를 번갈아 저는 이유가 통풍에서 오는 통증이 번갈아 왔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30대인 김정은의 나이를 생각하면 신빙성 있는 첩보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성인병인 통풍보다는 오히려 과체중으로 몸에 무리가 갔을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식이요법상 치즈가 통풍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치즈 애호’가 통풍의 원인이라는 분석은 다소 상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에서 류머티즘내과를 전문으로 하는 한 의사는 “통풍을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맥주인데, 김정은이 양주를 즐긴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맥주를 자주 마신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의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최근 ‘포린폴리시’에 “공식적인 정보에 따르면 김정은은 대부분의 시간을 원산과 강동의 가족 별장에서 보낸다”고 밝혀 김정은이 강원도 원산이나 평양시 강동군의 가족 전용 별장에서 요양 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강동 별장은 2008년 김정일이 뇌경색을 겪은 뒤 요양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새로운 장난감 ‘방사포’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새로운 장난감 ‘방사포’

    지난 11일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미 해군의 초대형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USS George Washington)이 입항을 전후로 방사포와 미사일을 번갈아가며 쏘던 북한이 지난 14일 일을 냈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도 촬영이 가능할 만큼 가까운 금강산 구선봉에서 무려 100여 발 이상의 방사포를 동해상으로 쏜 것이다. 미사일이나 방사포 한 두 발로는 우리나 미국이 별다른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김정은은 북방한계선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최전방 진지를 직접 찾아 100여 발의 방사포탄을 바다로 날리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인 것이다. 이날 발사한 방사포탄 1발이 평균 100~120만 원 선이니 관심을 끌기 위해 1억 원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 ▲왜 이렇게 방사포에 집착하나? 김정은은 자칭 포병전문가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과를 졸업했고, 북한 최고의 포병 전문가라는 리영호 전 총참모장에게 2년간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논문 주제 역시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활용해 포 사격 정밀도를 높이는 방안’이었고,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에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키고 이를 승전이라 선전하면서 ‘불세출의 포병 천재’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군종(軍種) 간에도 서열을 매기던 공산권 국가, 특히 북한과 소련은 유독 포병에 집착했다. 스탈린(Joseph Stalin)은 생전에 “전쟁의 신은 포병이다”라는 말을 종종 했었고, 실제로 소련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막강한 포병왕국이었다. 이 같은 ‘포병사랑’은 공군력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소련 지휘관들은 소련공군이 독일공군에 맞서 제공권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아무리 불러도 언제 올지 모르는 공군기가 퍼붓는 화력을 기다리기보다는 언제든지 옆에 두고 쓸 수 있는 포병이 더 쓸모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6.25 전쟁 당시 연합군의 압도적인 공군력 앞에 항상 공습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김일성에게 ‘조선인민군 공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공중 화력지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한반도에 미군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한・미연합군에 대해 공군력 우위를 점할 수 없고, 당연히 뜨는 족족 격추당할 것이기 때문에 지상군이 공군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비대칭 전력‘이라고 규정할 만큼 기형적으로 커진 북한의 포병 전력 탄생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포병전력은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1,000여문의 각종 화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사거리가 짧은 박격포 7,500여 문을 제외하더라도 견인포와 자주포 8,500여문과 방사포 5,100여문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포병전력을 자랑한다. 김정은은 자신의 대학 졸업논문에서 포병 사격, 특히 방사포 사격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위성항법장치 활용 방안을 언급하며 방사포에 대한 ‘전문성’을 과시했는데, 그래서인지 집권 이후부터 방사포 전력에 대한 투자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집권 3년만에 방사포 200여 문을 늘렸고,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대에조차 방사포를 배치했을 정도다. 특히 자신이 숙청한 포병전문가 리영호를 대신해 포병 전문가지만 정치 감각이 없어 야전을 맴돌던 박정천을 기용하여 상장으로 진급시키고 포병사령관에 이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에 앉힌 것은 그가 얼마나 방사포에 심취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방사포는 장난감이자 히든카드 김정은은 집권 이후 방사포 전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방사포에 대한 그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집권 3년차인 지난 2013년 7월 27일, 전승 60주년 기념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방사포들이 대거 등장시켰다. 2013년 열병식에서 등장했던 방사포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형 122MM 40연장 방사포였다. 이 방사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RM-70 다련장 로켓과 매우 흡사했다. RM-70은 발사관 앞쪽에 40발의 예비탄 컨테이너를 휴대하여 발사 직후 5분 만에 40발을 재장전해 사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북한이 이 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은 10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80발의 방사포탄을 퍼부어 축구장 6~7개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급 무기인 우리나라의 K136 구룡 다련장 로켓의 2배 이상의 화력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위협은 최근 동해상에서 수차례 시험발사를 하면서 존재감을 알린 신형 300mm 방사포, 즉 KN-09이다. KN-09는 작년 6월에 처음으로 한미정보당국에 식별되었으며, 4연장 발사관과 중국제 차량에 탑재된 형태로 개발되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중국국영정밀기계수출입공사(COMIEC : China National Precision Machinery Corporation)가 수출용으로 개발한 WS-1B과 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KN-09의 원형이 되는 WS-1B는 사거리 180km, 탄두중량은 150kg 수준이기 때문에 고폭탄뿐만 아니라 이중목적고폭탄(Dual-Purpose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s), 화학탄 등 다양한 탄두의 탑재가 가능한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180km에 달하는 긴 사거리이다. 기존 240mm 방사포는 60km 정도의 사거리를 가져 한강 이남 수도권 지역에 대해 제한적인 공격만 가할 수 있었지만, 신형 300mm 방사포는 수도권은 물론 충청권 이남까지 공격할 수 있는 180km 이상의 사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이 방사포를 이용해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물론 대구 기지를 제외한 우리 공군의 핵심 공군기지를 모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스커드 미사일은 발사 차량도 많지 않고, 발사 전에 징후를 탐지하여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지만, 신형 방사포는 언제 어느 곳의 지하 갱도에서 나와서 우리 공군기지를 향해 수십 발의 포탄을 퍼부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가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해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공군력 우위가 있기 때문인데, 개전 초반 전투기가 뜨지 못한다면 수도권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 적 장사정포를 파괴할 수도, 물밀 듯이 밀고 내려오는 북한의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막을 수도 없다. 때문에 김정은이 수 차례 이 방사포의 시험 사격을 참관하고 북한 매체에서 이 방사포를 띄우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전면전이 발발하더라도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군은 지난 1994년 서울 불바다 쇼크 이후 20여 년간 북한 포병을 잡기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자해 이제 겨우 대화력전 전력을 갖췄지만, 300mm 방사포의 등장으로 이제는 새로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어 우리 군이 어떤 대응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위에서부터 ▲ 14일 김정은이 직접 지도하는 가운데 금강산 구선봉 진지에서 발사되는 122mm 방사포 ▲ 2013년 열병식에서도 공개된 바 있었던 122mm 40연장 신형 방사포▲ 북한 장사정포 전력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240mm 방사포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시진핑 방한 릴레이 인터뷰] (상)량윈샹 베이징대 교수

    [시진핑 방한 릴레이 인터뷰] (상)량윈샹 베이징대 교수

    “중국의 글로벌 외교 전략이 변하면서 한국의 중요도가 커진 데다 지난 22년 동안 축적된 경제·문화 교류로 한·중 관계는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다.” 량윈샹(梁雲祥)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새달 3~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국빈 방한을 앞두고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를 이같이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에 안보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과 북한 변수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돌파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은 다른 나라와 연계하지 않는 단독 방문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흔드는 것이 중국의 대미 외교는 물론 글로벌 외교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은 역사 문제를 이슈로 중국과 함께 일본을 상대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남북과 고루 친하면 두 나라에 모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대미, 대일 외교는 물론 한반도 전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것도 이례적인데. -중국은 남북 등거리 외교를 표방했으나 핵실험, 장성택 숙청 사건 등으로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잘 지내면 이득이 많지만 북한은 자꾸 ‘마판’(麻煩·귀찮고 성가심)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점점 한국에 기울고 있다. 그러나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게 결코 북한을 한국보다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남북 균형 유지는 중국의 한반도 전략 이익과 직결된 원칙으로 변할 수 없다. 이번 한국 방문에 앞서 “중국이 북한을 배신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미리 북에 설명했을 것이다. →시 주석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원하는 대로 한국과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국에는 핵이 없지만 중국은 한국과의 사이에서 ‘북핵 불용’이라고 적시하지 못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고수한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인 한국에 언제든지 미국의 핵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을 경계한다. 특히 이 용어에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원하는 중국의 속내도 담겨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문제로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을 만들더라도 북이 붕괴해 자국의 문턱인 한반도가 미국의 세력 범위로 변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중국이 한반도 대원칙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를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시 주석은 한반도 통일을 희망한다고 말하는데. -지극히 정치도덕적인 표현으로 의미는 없다. 남북 양쪽 모두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중국에서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개념으로 해석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지지가 나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은 이번 방한 메시지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 수호,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등을 내놓을 것이다.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은.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면서 지하자원 헐값 매각을 문제 삼아 중국을 직접 겨냥하는 비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중국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를 바꿔야 한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장성택, 처형되기 전 일본식 불고기집에서…

    北장성택, 처형되기 전 일본식 불고기집에서…

    1960~70년대 체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며 차별받았던 북한 내 재일교포들이 북·일 관계 개선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재일교포들은 1990년대 이후 대일무역 등 외화벌이에 나서며 현재는 평양의 고급 식당과 외화상점 등 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가 해제될 경우 북한 내 재일교포들의 경제적 위상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7일 북한 최대 가구회사인 평양 영광가구합영회사를 재일교포인 신남철씨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마식령스키장 호텔과 류경구강병원,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사택 등에 가구를 납품하는 등 북한에서는 고급가구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대북 소식통은 “건재공업성 운전기사 출신인 신씨와 그의 가족이 일본에 있는 친지들의 돈으로 21년 전 가구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북한 내 재일교포들은 평양의 대표적인 고급 식당과 외화 상점 등을 독점하고 있다. 평양시 중구역의 대동강식당, 북새거리 은혜식당, 대동강구역 평양볼링장, 만경대구역 도라지상점, 서산거리 골프연습장 등이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당 경공업부 소속으로 대외봉사총국 산하 각 호텔들에도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식당 및 상점들이 다수 있다. 재일교포들은 1960년대 이후 10만여명이 북한으로 귀국했다. 일본에 있는 친지들의 송금을 기반으로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사업에 진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소식통은 “일본 고베식 불고기 요리로 유명한 평양 중심가의 대동강식당만 해도 당 고위층과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식당”이라며 “지난해 숙청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단골이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의 자본력과 기술, 중국의 물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평양 상권을 확장하고 있으며 당 고위층이 주로 찾는 고급 식당을 통해 미 달러나 일본 엔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도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등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도 1960년대 초반에 북송된 재일교포 출신이지만 북한 내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생모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사실은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평양은 지금] 북송 재일교포들의 커지는 경제 위상

    1960~70년대 체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며 차별받았던 북한 내 재일교포들이 북·일 관계 개선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재일교포들은 1990년대 이후 대일무역 등 외화벌이에 나서며 현재는 평양의 고급 식당과 외화상점 등 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가 해제될 경우 북한 내 재일교포들의 경제적 위상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7일 북한 최대 가구회사인 평양 영광가구합영회사를 재일교포인 신남철씨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마식령스키장 호텔과 류경구강병원,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사택 등에 가구를 납품하는 등 북한에서는 고급가구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대북 소식통은 “건재공업성 운전기사 출신인 신씨와 그의 가족이 일본에 있는 친지들의 돈으로 21년 전 가구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북한 내 재일교포들은 평양의 대표적인 고급 식당과 외화 상점 등을 독점하고 있다. 평양시 중구역의 대동강식당, 북새거리 은혜식당, 대동강구역 평양볼링장, 만경대구역 도라지상점, 서산거리 골프연습장 등이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당 경공업부 소속으로 대외봉사총국 산하 각 호텔들에도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식당 및 상점들이 다수 있다. 재일교포들은 1960년대 이후 10만여명이 북한으로 귀국했다. 일본에 있는 친지들의 송금을 기반으로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사업에 진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소식통은 “일본 고베식 불고기 요리로 유명한 평양 중심가의 대동강식당만 해도 당 고위층과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식당”이라며 “지난해 숙청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단골이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의 자본력과 기술, 중국의 물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평양 상권을 확장하고 있으며 당 고위층이 주로 찾는 고급 식당을 통해 미 달러나 일본 엔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도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등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도 1960년대 초반에 북송된 재일교포 출신이지만 북한 내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생모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사실은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내 가슴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

    “내 가슴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

    “2006년 여름,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처음 봤던 한국 축구대표팀, 이젠 한국에서 응원합니다.” 서강대 탈북학생 동아리인 ‘우리하나’의 전 회장 정광성(25·정치외교학과)씨는 월드컵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1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교정에서 만난 정씨는 기말고사 기간과 겹친 브라질월드컵 한국-러시아전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씨는 “러시아전이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교양과목 시험 직전에 끝나기 때문에 볼지 말지 고민 중”이라면서 “알제리, 벨기에와의 경기는 친구들과 함께 레지던스(청소·세탁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시설)를 빌려 꼭 응원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2006년 홀로 고향인 함경도를 떠나 가까스로 한국에 안착하기 전 3개월쯤 머물렀던 후텁지근한 태국의 난민수용소에서 정씨는 월드컵을 사실상 처음 접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전기가 잘 안 들어오는 데다 결승전만 TV로 중계하기 때문에 월드컵 응원은커녕 관람도 쉽지 않다”면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2006년 여름, 태국수용소에 함께 있던 한국인 몇 명과 TV로 독일월드컵을 지켜보는데 축구를 통해 세계인이 웃고, 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짜릿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4년이 흘러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정씨는 서울의 거리에서 한국대표팀을 응원했다. 정씨는 “친구들과 거리 응원을 나갔다 돌아오니 공부를 하던 동아리방 건물 문이 잠겨 있어 창문을 열고 담을 넘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면서 “북한에서는 이렇게 국민들이 진심으로 열광하고 기뻐할 일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남한에 온 이후 한동안 ‘북한 출신’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란으로 정씨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정씨는 “입국 직후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두 살 어린 학생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는데, 혹시라도 탈북자 꼬리표가 달릴까 봐 숨겼다”고 했다. 이어 “강원도에서 왔다고 속였는데, 강원도 사투리는 북한 말과 또 다른 데다 세상 물정도 몰라 따돌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한사회에 정착하지 못해 한때는 북한으로 되돌아갈 생각도 했다.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시달리기도 했던 정씨가 마음을 잡게 된 건 주변에 ‘커밍아웃’을 한 뒤부터다. 정씨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조언으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탈북 사실을 알렸다. 날 이상하게만 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따뜻한 관심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도 ‘고향만 북한일 뿐, 내가 잘못한 것도 없고, 김정일이 싫어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니듯 함경도도 한반도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씨보다 몇 달 앞서 탈북한 여동생과 부모님은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 북한 고위직이었던 정씨의 조부모가 1956년 8월 종파 사건(연안파·소련파 숙청 사건)에 연루돼 숙청되면서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당한 이후 정씨 아버지는 북한에서 유일한 출세의 길로 여겨지는 군 입대도 할 수 없게 되자 탈출을 감행했다. “무엇보다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20대인 나로서는 남한 사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라는 정씨는 “월드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원임을 느낀다”며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건승을 기원했다. 글 사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아베, 동북아 외교 고립 돌파구…김정은, 꽉 막힌 대외관계 물꼬

    29일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응하기로 한 것은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그만큼 북·일 관계 정상화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납치 문제 재조사를 공식 표명하며 “아베 정권에서 납치 문제의 전면 해결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모든 납치 피해자 가족이 자신의 손으로 자녀를 포옹할 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는 결의를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재조사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이 2008년 8월 열린 북·일 실무자 협의에서 납치 문제 재조사 조기 개시에 합의한 뒤 재조사위원회 설치 연기를 통지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상기시키며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양 사정에 밝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관계자는 “이번 협의에서는 중대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인정한 납치 피해자 중 귀국하지 않은 12명(총 17명 중 2002년에 5명 귀국)뿐 아니라 납치 가능성이 있는 특정 실종자도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특정 실종자의 규모를 860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전면 재조사가 김 제1위원장과 아베 총리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도 이번 재조사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 중 하나다. 김 제1위원장으로서는 6자회담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진전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으로 남한과의 관계 개선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일 관계 진전을 통해 대외 관계의 물꼬를 터 보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일본의 대북 제재 완화, 나아가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꾀하겠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로서도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 역사에 남을 만한 실적을 남기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 역시 만만치는 않다.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더 없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이런 발언에 대해 김 제1위원장이 어떻게 돌파하며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 나갈지가 가장 큰 과제다. 일본으로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문제도 변수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글로벌 시대] 예측 불가능한 독재 권력의 ‘붕괴’/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예측 불가능한 독재 권력의 ‘붕괴’/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1989년을 기점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체전 전환을 경험했다.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붕괴됐을 때 많은 소련 전문가들은 ‘맨붕’에 빠졌다. 그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몰락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소련체제가 ‘견고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또 24년 동안 차우셰스쿠의 독재통치하에 있던 루마니아는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실업으로 인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차우셰스쿠와 부인은 민중봉기로 인해 1989년 12월 25일 공개 처형됐다. 탈냉전기 리비아 사태도 이런 예측 실패에 속한다. 대부분의 중동 전문가들은 카다피 독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철통같이 견고해 보였던 독재체제가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문제는 그런 독재체제 붕괴의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교훈처럼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우 견고해 보이고 상당 기간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구소련이나 루마니아와 리비아처럼 언제 붕괴될지 알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정권인 것이다. 이미 국내외 수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다양하게 지적했다. 즉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내 권력 판도가 심상찮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 처형 이후 ‘최고 존엄’의 핵심권력에 미묘한 양상이 감지되고 있다. 일명 ‘혁명1세대’의 적통이자 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는 최고 핵심권력으로 부상했지만 노동당 비서로 임명돼 서열이 추락했다. 그는 당뇨나 과로 합병증 등 건강상 이유로 실각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장성택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서 스스로 전략상 퇴진하는 수순을 밟았다. 게다가 돈과 여자 문제가 깨끗하고 충성심 강하고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뚜렷하다고 알려진 새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2010년 군 인사권 장악을 넘어 김정은 주변 측근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마치 김정은 중심의 1인 독재 지배체제의 강화로 보이지만 어리석게도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하고 최룡해마저 물러나게 해 황병서 견제세력을 제거해 버렸다. 북한 내 고위 당정 간부들에 대한 계속되는 숙청과 실세권력의 잦은 교체과정이 이어지고, 권력의 중추기관인 국가보위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황병서가 주축이 돼 당·정·군에 포진된 지지 세력을 규합해 집단지도체제 구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파와 권력투쟁 같은 ‘돌발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체제불안이 야기될 경우 추가도발도 우려된다.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더 즉흥적이고 변덕스럽고 잔인하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이런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2014년 4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었다. 온 국민을 애통함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했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사안일주의와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 하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상적 안전에 대한 무감각이 빚어낸 비극이라 한다면, 북한체제의 안보위기에 대한 우리의 불감증은 또 다른 비극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예기치 못한 급변사태에 의한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이 늘 열려 있음을 잘 인식하고 철저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 평양 아파트 붕괴 관련자 최소 5명 숙청

    평양 고층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된 북한 인민군 간부와 기술자 등 최소 5명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숙청됐다고 도쿄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파트 건설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인민군 7총국장은 해임과 동시에 강제수용소행 처분을 받았고,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기술자 4명은 총살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사망자 수가 500명에 달한다는 정보가 평양에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건설 관계자가 시멘트 등의 자재를 빼돌렸으며 배낭 1개 분량의 시멘트가 암시장에서 2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취재에 응한 북한 관계자는 건물 1층에 군의 건설 지휘부가 있었기에 일부 지휘부 구성원이 다른 주민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김정은 절친’ 로드먼 “장성택 처형? 1월 내 뒤에 서있었다” 주장 논란

    ‘김정은 절친’ 로드먼 “장성택 처형? 1월 내 뒤에 서있었다” 주장 논란

    ‘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52)이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이 살아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로드먼은 5일(현지시각) 패션문화잡지 ‘두 주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장 제1위원장이 장성택을 처형했다고 말했지만 지난 1월 방북 때 장성택은 내 뒤에 서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2월 장성택을 공개 처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잡지사 측이 “북한이 처형했다고 말했던 장성택이 정말 살아있나”라고 되묻자 로드먼은 “장성택이 거기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로드먼은 “김정은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길 바란다. 아무에게도 폭격하고 싶지 않고 미국인을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앞서 로드먼은 지난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에 맞춰 방북해 김정은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바치는 등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사진 = YTN 뉴스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