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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철 여만철 대담/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 주선

    ◎“지하철로 출퇴근… 이젠 서울사람 다됐지요”/일가 이끌고 귀순한 두 만철씨 자유의 삶을 말한다/김/“탈출때 11명이던 가족이 18명으로 늘어”/여/“서울생활 1년만에 체중 13㎏ 붙었어요”/북 주민 개방에 눈뜬 것은 남쪽방송 많이 듣기때문/최근엔 지도원까지 북체제 비판… 변화 실감/남한사람 씀씀이 헤프고 낭비많아 안타까워 『형님,오랜 만입니다.혈색 좋습니다』 『만철씨 얼굴에도 희색이 도는데…』 지난 87년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소형선박에 10명의 대가족을 태우고 복합을 탈출했던 김만철씨(55). 그리고 지난해 처자 4명을 거느리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죽음의 땅」을 빠져나온 여만철씨(49). 풍요로운 자유대한에 새 보금자리를 튼 두 귀순가장이 1일 서울신문이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특별대담에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여씨의 귀순 1돌(30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날 대담에서 여섯살 아래인 작은 만철씨는 김씨를 깍듯이 형님이라고 불렀고,큰 만철씨는 반말을 곁들여 가며 여씨를그냥 만철씨라 불렀다. 추운 겨울에 가족들을 이끌고 한 사람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며,또 한 사람은 가슴을 죈채 두만강을 건너 동토를 탈출했던 두 만철씨의 만남은 「운명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귀순이 인연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생면부지의 남남이,잡고 잡히는 사이가 될 뻔했던 사람들이 만나 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귀순 가장은 형·아우가 되어 가족들과 정착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얘기며 서로의 북한 체험담으로 장장 4시간동안 훈훈한 얘기꽃을 피우면서 7년에 이르는 간극을 좁혔다. 『형님,그동안 몸무게가 13㎏나 늘었습니다.살찌기운동을 했지요』 작은 만철씨가 불어난 체중을 자랑하자 큰 만철씨도 최근에 몸무게가 5㎏이나 늘었다면서 고개를 내젓는다.귀순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체중이 느는 것이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삐삐 말랐다가 이제서야 살이 올라 보기 좋을 정도의 체격이 됐다고 마냥 좋아하는 여씨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뿐인줄 아세요,형님,막내 은룡(17)이는 키가 1년새 12㎝나 자랐습니다』 여씨는 아이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못해 키가 크지 않았는데 여기와서 몰라보게 자랐다고 계속 자랑이다.이에 김씨가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뼈만 앙상해 그당시 쉰이 안됐는 데도 예순이 넘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지금은 그 당시보다 훨씬 젊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아마 만철씨도 젊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거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만철씨 아이들은 어느 학교 다니나요』 『큰 딸(금주)은 중앙대학에 다니고 금룡이와 은룡이는 우신고등학교에 다닙니다.그런데 얘들이 얼마나 적응이 빠른지 막내아이는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를 다니는 데도 벌써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합니다.나 참…』 작은 만철씨는 신바람이 났는지 묻지도 않은 아이들의 이성교제 얘기까지 했다. 『형님은 어떻습니까.자녀들과 처남들은 결혼했지요』『큰 애 광규는 홍대 미대를 나와 토지개발공사에 다니고 있는데 장가들어 손녀가 둘이나 생겼지.이젠 나도 할아버지가 됐어요.함께 온 두 처남들도 결혼해 애들을 다섯이나 낳아 탈출 당시 11명이던 가족이 18명으로 늘었지』 김씨도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뿌듯해 한다. ○손녀 둘이나 생겨 『만철씨는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그리 크지 않은 종합병원의 총무과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봉급은 1백10만원 받고있는데 북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지하철로 출퇴근도 하고 이젠 서울사람 다 됐지요』 비교적 적응을 잘 하고 있다는 여씨 말에 귀순 선배인 김씨는 자못 안도하는 표정이다. 『형님,나는 이곳에서 새 사람 됐습니다.중국으로 탈출할 때 도와준 사람의 인도로 천주교회에 다녔는데 지난 16일 부활절때 영세까지 받았습니다』 『축하합니다.나도 김신조씨의 전도로 하느님을 믿게 돼 벌써 오래전에 집사가 됐지.요즈음은 경남 남해군 미조면에 세운 기도원을 관리하면서 이곳저곳 간증하러 다니느라 바쁜 편이지』 큰 만철씨는 신앙생활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종교를 이곳에서 접하게 된 것은 자신을 구해준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러자 작은 만철씨도 아직 큰 만철씨 정도로 깊은 믿음생활은 못하고 있지만 교회는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고 화답한다. 여기까지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가며 자유대한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 받던 두 귀순자는 끔찍스러운 지난날의 북한생활로 화제가 옮겨가자 얼굴색이 굳어진다. 『만철씨,내가 탈출한 이후 북한 사회는 얼마나 변했습니까』 김씨가 그간의 북한소식을 무척 궁금해하자 입담좋은 여씨가 술술 얘기를 이어간다. ○집사로 간증에 바빠 『북한의 유일체제는 변함이 없지만 형님이 탈출한 이후 북한에서는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되고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참,형님 탈출얘기를 하다보니까,내가 형님을 체포하러 강추위 속에 청진 바닷가로 작전 나갔던 생각이 납니다.그당시 육해공군과 노농적위대까지 동원돼 동해안 바닷가를 사흘동안 샅샅이 뒤졌는데 배가 도망 못가고 표류하다 잡히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그래요? 당신이 나를 잡는데 동원됐었단말이지. 내가 그당시 3년동안 얼마나 세밀하게 연구한 끝에 탈출했는데…,어림없는 소리지』김씨는 여씨의 작전참가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그 당시 풍향에 대한 면밀한 관찰 끝에 탈출했기 때문에 표류하더라도 해안으로 떼밀려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다. 『형님이 탈출했을 때 나는 청진에 있었는 데 이미 이 때 일반인들에 대한 배급량이 줄고 군인들마저 잘 먹지 못해 영양실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그런대로 곡물배급은 되는데 부식이 형편 없었어요.훈련도 심하고 중노동을 하는데 육류섭취를 제대로 못하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요』 『내가 탈출할 당시에도 15일치 배급에서 이틀분이 공제되기 시작했었지.하루 7백g이 정량인 데 5백80g밖에 안나왔거든.그나마 배급시기가 하루 이틀 밀리더니 보름씩 늦어지더라구』 『그 때만해도 괜찮은 편이었어요.종전까지 30%였던 쌀 혼합비율이 89년 들어 10%로 낮아지고 한 두달 밀리더니만 90년엔 석달씩 지체됐고 93년 2월엔 양강도와 강원도 등지에서는 배급이 아예 중단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작은 만철씨는 북한물정을 잘 아는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답게 식량배급제의 문제점까지 짚어나간다.『동해안 쪽에는 냉해로 흉작이 들어 실제 1개 협동농장의 생산량이 3∼4t에 불과한데도 이곳에 나와있는 3대혁명소조원들이 어떻게 보고한 줄 압니까.불켜서(늘려서) 5∼6t 된다고 보고하는데,탈곡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면서 이놈저놈이 빼가는 바람에 1∼2t 밖에 안남게 되지요.그런데 계획에는 5∼6t으로 잡아놓고 배급하니 어떻게 되겠어요.배급체계가 마비될 수 밖에』 이 때쯤 점심식사를 하는데 큰 만철씨가 밥 한그릇을 추가 주문한다.『북한에서는 쌀밥을 곡상(고봉)으로 주면 제일 좋아하지.나는 여기서도 밥을 많이 주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만철씨는 어때?』 『나는 된장국 같은 것에 쌀밥 한 그릇이면 족해요.북한에선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었습니까.북한의 식량난은 정말 최악의 상태입니다.허리띠 졸라매기,한끼 절약운동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어요.93년 12월엔 김일성이가 직접 텔레비전에 나와 하루 두끼만 먹고 죽을 쑤어먹자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직장에서는 쌀을 구하러 가겠다고 하면 아무나 허가가 납니다.못먹으면 일 못하니까 쌀 사오라고 여행허가증을 떼줍니다』 『그래요,내가 있었을 때는 어림 없었지』 ○북 군인들 영양실조 『다른 것도 변한게 많습니다.청소년들의 행태를 보면 머리는 길게 기르고 미니 스커트가 등장했어요.남한노래를 많이 부르고 디스코 춤도 춥니다』『내가 있을 때는 미니 스커트는 구경조차 못했는데…』 7년간의 시차이지만 세대차를 느낀다고 할 정도로 북한의 사회풍조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김씨는 계속 놀란다. 『이런 것들은 김정일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김정일이 인민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이만큼 개방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요.지금 북한 주민들의 견해는 우리가 중국처럼 개방해야 잘 살 수 있고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땅의 사적소유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씨는 주민들이 개방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남한방송을 많이 듣기 때문이라고 전한다.『예전에는 남한방송을 듣지 못하게 라디오에서채널을 통째로 빼내 고정시켰는데 요즈음은 납땜만 합니다.그래 놓으니 땜질한 곳만 적당히 손질해 대낮에 남한방송을 몰래 듣는 사람이 많아요.들키면 호기심으로 그랬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재수없이 안전부에 붙들려 가면 서너달 혼좀나지요』 이에 큰 만철씨는 그당시 남한방송 청취란 생각할 수도 없었고 탈출때 남한이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인지도 전혀 모르고 무조건 따뜻한 남쪽나라만을 찾아 뱃머리를 돌렸다고 회상한다. 김씨가 여씨의 얘기에 더욱 놀란 것은 체제비판에 관한 것이었다.『김부자의 유일체제가 변함이 없자 밑에서는 냉가슴 앓는 불만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노동자나 지도원 가릴 것 없이 같은 급이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먹을 걱정 얘기라도 나오면 공공연하게 체제를 비판하고 나옵니다』『아무리 끼리끼리라지만 그렇게 비판하고 나오다니 많이 변했네』김씨는 새로운 사실들에 연신 놀라는 표정이다. 『형님이 있을 때도 그랬겠지만 요즈음은 으레 뇌물이 오가고 뇌물로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뇌물이 횡행합니다.아이들을좋은 대학에 보내거나 벌목공으로 나가려면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요즈음은 젊은 애들이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신체검사 때는 떨어지기 위해 별별짓을 다합니다.정말 많이 달라졌지요』 『왜 그렇지? 그전에는 군에 가면 잘 먹을 수 있고 당원이 되려면 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모두들 입대하려고 야단들이었는데….군에 가기 위해 뇌물도 바쳤지 않아요』 김씨가 잘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을 보이자 여씨가 설명을 덧붙인다.『앞서도 얘기했지만 군에 들어가도 먹는 것이 시원찮아 영양실조에 걸리는 상태에서 핵문제로 국제적인 제재가 있게되면 군인들은 전장에서 모두 죽는다는 소문들이 나도는데 누가 가려고 하겠습니까.또 뇌물로 젊은이나 늙은이나 돈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달려졌습니다』 『내가 있을 때는 돈을 많이 벌어봤자 쓸 데가 없었지.어쩌다가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은밀하게 열리는 암시장에 가보면 쌀 한되에 20원씩 했는데…』『그 때만 해도 옛날 얘기입니다.지금은 쌀 한 되에 60원씩 합니다.그리고요즈음은 돈이 없으면 살 지를 못합니다.모두들 돈 맛을 알아 금전제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요.암시장은 이제 공공연하게 열리고 당국도 묵인하고 있습니다.모든 물자가 모자라니까 사람들이 암시장을 찾게 되고 암시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습니다.암시장엔 중국등에 나가 싼 물건을 사다파는 보따리장수들이 많습니다』 ○중국마저 돕지않아 두 귀순자는 대담 후반부에 오늘의 북한문제를 얘기할 땐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이들은 현재 북한에서 권력의 공식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김정일체제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혈맹인 중국마저 돕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이 지원하지 않으면 경제가 파탄돼 그냥 무너지게 돼있다고 단언했다. 두 만철씨는 이어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양곡을 지원하게 될 경우 양곡은 우리가 보낸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선물로 둔갑하고 미국이 대주는 중유도 군수용으로 전용될 것이 뻔하다면서 절대로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 수용을 계속 거부한채 전쟁운운하며 위협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도 몹시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북한이 어디 사람이 살 곳입니까.지구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습니까』 두 만철씨는 생지옥 탈출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회상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할 때 남한사람들이 너무 풍족한 나머지 씀씀이가 헤프고 낭비가 많아 안타깝다며 대담을 마쳤다.
  • 1905∼1914/재러 한인언론민족운동 구명

    ◎수원대 박환 교수저 「러시아 한인 민족운동사」/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이 주도/국내와 의병활동·일제의 만행 등 보도 러시아 극동지역은 1900년대 초기 한인 민족운동의 중추적 활동기지.한러수교 이후 학술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 지역의 민족운동을 다룬 새로운 연구성과가 축적되는 추세다.최근 탐구당이 펴낸 수원대 박환 교수(한국근대사)의 「러시아 한인 민족운동사」는 이러한 맥락의 연구성과를 집약한 저술.지금까지 한인 공산주의운동에 치중한 기존연구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박교수가 연구대상으로 잡은 시기는 1905년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이 시기에 민족운동을 주도해 나간 한인사회 발행 신문들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했다.그래서 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대한인정교보 등의 한인신문에 초점을 맞추어 민족운동단체와 민족운동의 성격을 살폈다.또 운테르베르게르와 곤다치 등의 시베리아 극동총독과 민족운동의 관계도 새롭게 밝혀냈다. 해조신문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만든 신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1908년 2월26일 일간으로 창간되었다.1908년 5월26일 7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이 한글 민족지의 본래의 이름은 옛 맞춤법에 따른 「□됴신문」.논설·잡보·외보·전보·소설·만필·본항정보·광고·별보 등의 체제를 갖추고 동포들의 교육,풍속의 교정,민족의 단결,국내외의 의병활동,일제의 만행 등에 보도초점을 맞추었다. 해조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인은 최민학과 듀코프,사장은 최봉준이었고 장지연과 정순만은 기자로 활약했다.특히 최봉준은 재정을 담당한 중심인물로 일자무식이었지만 북한지역에서 소를 사다 팔아 돈을 모아 8백t급 선박까지 소유했던 거상.그가 매년 1만루블을 내는 조건으로 창간했다.박행 겸 편집인의 하나인 듀코프는 동시베시아 제13 보병연대 중위.이는 신문발행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군지사를 움직이기 위한 조치로 밝혀졌다. 박교수는 해조신문 간행성과를 당시 항일민족운동의 구심점이 없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단체조직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단결을 촉진한 것으로 평가했다.또 해조신문에 이어 간행된 대동공보·권업신문·대한인정교보와 같은 다른 민족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박교수의 분석이다. 대동공보의 경우 1908년 11월18일 창간되어 1910년 9월1일까지 2년여 동안 간행된 민족지.동포를 계몽,독립을 성취한다는 목표를 둔 이 신문은 러시아의 한인배척운동에 대처하면서 안중근을 러시아법정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유명한 사설을 남겼다.그리고 권업신문은 1911년 12월19일 조직된 권업회가 1912년 4월22일부터 1914년 8월30일까지 발행한 신문.한인들에게 유화정책을 보인 곤다치총독도 권업회 명예회원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대한인정교보는 1912년 11월2일 러시아 자바이칼지역 치타에서 대한인국민회가 1914년 6월까지 간행한 잡지.러·일관계와 러시아의 대한인국민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따라 러시아정교회(정교회)치타교구 명의로 발행되었으나 종교적 논조에서 탈피,독립전쟁론을 일관했다는 것이다.
  • 맨손 이민 26년… 가나공 정·재계 대부역

    ◎지난 9일 별세… 어제 유해환국 김복남씨/수교전부터 민간외교 활동… 대기업 일궈내/대한경협 가교역… 가나 전총리 장례식 참석 아프리카 가나공화국에서 정·재·체육계의 대부로 활약했던 김복남씨가 62세를 일기로 지난 9일 별세했다. 지병인 위암으로 운명한 김씨의 시신은 고국을 떠난지 26년만인 14일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중앙병원에 안치됐다. 가나공화국이나 김복남이란 이름은 우리에겐 생소할 뿐이다. 그러나 맨손으로 열대의 나라로 건너가 국위를 선양하고 가나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 혁혁한 공로를 알고나면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가나의 P·V·오벵 전국무총리가 김씨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5일 내한한다는 사실은 김씨가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느냐는 것을 대변해 준다. 김씨가 맨손으로 열사의 나라 가나에 들어간 것은 지난 69년. 더위와 싸우며 기반을 닦기 위해 동분서주한 김씨는 수산회사에 취직한지 얼마안돼 회사가 부도가 나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김씨는 굴하지 않고 수산업에 뛰어들어 각고의 노력끝에 10년만에 수산·무역·건설·선박·냉동회사를 거느린 아프리카코리아그룹이라는 현지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고 수출액이 우리 돈으로 한해 1백억원이 넘는 대기업을 일궈냈다. 또한 85년에는 현지인 1천여명을 고용한 4백만평의 땅에 농장과 농업학교를 세워 양국간 우호증진에도 이바지했다.이런 이유 때문에 가나 국민들은 김씨를 아버지라는 뜻으로 영어로 파더라고 부르고 외국인은 누구나 김씨의 성을 따라 미스터 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인은 특히 지난 74년 이후에는 한인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가나 정·재·관계에 걸쳐 폭넓은 교분을 쌓았다. 82년에는 가나에서 열린 북한의 주체사상세미나에서 당시 한손 내무장관이 연사로 내정되자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P·V·오벵 국무총리를 설득해 참석하지 않도록 한 비화도 있다. 고인은 또 연간 약1천4백만달러어치의 우리 상품을 가나 정부가 수입하도록 해 한국산 냉장고와 TV가 가나 시장을 60%이상 점유하도록 하는 등 한국의 수출시장 개척에도 큰 공로를 세웠다. 그는 가나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며 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가나선수단 42명의 항공료와 체제비 등 모든 비용을 부담해 가나체육계에서는 「대부」로 통한다. 이뿐이 아니다.78년 가나 국방부에 우리 정부가 태권도사범을 파견토록 주선하기도 했고 85년부터 가나의 초·중·고에 태권도가 교과과목으로 채택되게 하는 등 태권도 보급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는 주가나 한국대사관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왕성한 민간외교활동으로 국민훈장 동백장·모란장과 가나정부로부터 수차례 포상을 받은 바 있다. 장례는 17일 상오 9시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에서 치러지며 호상은 현경대 민자당 원내총무가 맡는다.유족으로는 미망인 한영옥 여사(55세)가 있으며 자녀는 없다.연락처 489­1899,2899
  • 점령군의 실리 챙기기(새로쓰는 한국현대사:12)

    ◎소 북한서 산업설비 마구 뜯어갔다/「일제 군수공장은 소 전리품」 정령 앞세워/북 식량난속 곡식 6백여만섬 빼내가기도/미는 동척땅 경작시키고 소작료 30% 징수 광복과 함께 한반도 남북에 각각 진주한 미·소 양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대행할 정치세력 구축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구조 재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미국은 궁극적 목표인 반공국가 수립을 위해 남한사회를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성하려 했고,소련은 사회주의 체제 달성을 서둘렀다.특히 소련은 북한지역 몇몇 항구를 장기 조차한다든지,일제가 남긴 공업시설을 빼앗아가는 등 경제 실리를 노골적으로 챙겼다. ○연 수십억원 거둬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설립한 대표적인 경제관련 기관은 남쪽의 「신한공사」(The New Korea Company)와 북쪽의 「조소해운주식회사」였다.이 두 회사의 설립 목적과 업무를 보면 양국이 한반도에서 시도한 경제정책의 실상이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난다.미·소는 「한반도에 남은 일본관련 재산은 전리품」이라는 시각을 갖고 이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이 회사들은 형식상 독립회사의 틀을 갖추었지만 실상 미·소의 직영기관과 다름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신한공사는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자산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1945년 11월12일 출범했다.처음 지위는 군정청의 부속기관이었지만 46년 2월21일 관계법령 제정에 따라 독립회사로 탈바꿈한다.신한공사는 동척의 토지대장과 지적도를 이용,45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전국에서 토지조사를 벌여 해당 토지 대부분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 농민들이 큰 반발을 보였는데 이는 지역인민위원회가 일본인 토지를 주민들에게 이미 분배한 뒤였기 때문이다.아무튼 46년 2월말까지 신한공사는 논·밭·산림을 합해 34만7천여 정보의 토지를 보유하게 됐다.이같은 면적은 사실상 일본인이 남긴 토지의 대부분이었다. 신한공사는 이 땅을 55만4천여 농가에게 경작시키고 수확고의 30%를 소작료로 징수했다.그 결과 신한공사는 매년 십수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며 47년에 가서는 15억1천여만원이나 거둬들였다.여기서 인건비등 경비를 제외하고도 신한공사는 5억8천여만원의 순익을 남겼다.당시 신한공사는 남한 전체 경지면적의 13·4%,생산고의 25%를 차지했다.그 농지를 소작하는 농가는 전체의 27%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신한공사에 대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다름없다』는 비난이 갈수록 거세게 일었다.이에 미군정은 48년 4월 신한공사를 중앙토지행정처로 이름바꾸고 귀속토지를 농민에게 불하하기 시작했다. ○합법 가장해 착취 신한공사는 명목상 독립회사였으나 미군정 직영기관에 불과했다.자본금 1억원을 단독 출자한데다 미군 장교에 한정한 사장 임명권과 회사 해산권을 군정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더욱이 관계법령에 『사장은 미국의 이익에 관계 있는 정책문제를 결정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고 규정,그 성격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를 조종한 소련의 수법은 더욱 교묘했다.그럼에도 구소련은 그동안 해방직후의 북한­소련 경제관계를 『소련이 사심없이 일방적으로 원조한 것』이라고 선전해 왔다.즉 식량 원료 연료등을 북한에 무상 제공했다는 것과 전문가 파견을 통한 산업복구 지원,북한유학생 유치에 따른 인력양성등 은혜를 베풀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소장의 북한노획문서들을 보면 소련은 매우 적극적으로 북한지역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돼 있다.다만 공산주의 사회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소련측 입장은 46년 1월28일 작성된 「북한에 조소합작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문제에 대한 소련인민위원회의 정령(정령)」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이 문서는 소련이 전력·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기계제작·민간항공·석탄·시멘트·어업·철도·해상운수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북조선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지침을 담았다.곧 「회사 합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북한지역 물자를 마음껏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소련은 우선 지침 첫항에서 「북한지역에 있는 일본 군수물생산 관련기업들은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소련정부의 재산」이라고 밝혔다.그리고 일본 기업중 일부를 북한에 넘겨주되,대부분은 합작회사로의 전환의도를 분명히 보였다.특히 발전소·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등 주요 분야 합작회사는 소련측에서 주식의 51%를 소유한다는 조항은 수탈 그것이었다.회사의 업무집행 역시 소련이 임명한 지배인에게 맡기기로 했다.이같은 지침에 따라 설립된 합작회사가 조소해운주식회사(모르트란쓰)와 조소석유정련주식회사이다. 소련이 모르트란쓰를 세운 목적은 청진·나진·웅기등 3개 항구를 30년동안 북한으로부터 조차하는 데 있었다.양국은 47년 3월 25일 이 회사 설립에 따른 협정을 맺었다.협정서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전권대표 홍기주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가 각각 서명했다.홍기주는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출신으로 김일성 세력에 가담해 당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협정서에 따르면 합작비율은 5대5이다.그러나 자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소련은 화물선 3척과 여객선 1척을,북조선은 3개 항구및 그 부대시설을 회사에 30년동안 각각 임대하는 출자형식을 취했다.소련이 배 4척을 내놓은 대가로 북조선은 3개 항을 내놓았다.이 협정은 실로 엄청난 불균형을 내포했다.또 3개 항구이외의 북조선 항구를 조차할 경우 이 회사에 우선권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돼 소련이 나머지 항구도 양도받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소련이 청진 등 3개 항을 군사적·상업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30년만에 조차가 끝났는지,또는 연장됐는지는 관련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다만 소련군이 광복 2년이 채 안돼 북쪽의 주요항구들을 「합작」명목으로 장기양도받은 사실은 전통적으로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이밖에도 소련은 북에 진주한 직후부터 각종 산업시설·식량·원자재를 강제반출했다.45년에만 수풍발전소의 발전기 3대를 비롯해 ▲원산 조선석유회사의 기계 일체 ▲함흥 본궁화학의 6만㎸변압기 ▲청진 일철공장과 미쓰비시제련소의 기계 일체등 주요 설비는 몽땅 뺏어갔다.또 진남포제련소에서는 금 2t과 아연 4백t,동 3백t을,조선은행 원산지점에서는 현금 3천만원을 소련재산화했다.북쪽 땅에서 식량부족이 매우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45년에 2백44만섬,46년에 2백90만섬의 곡식을 빼내갔다. 2차세계대전 종식을 계기로 한국사 전면에 등장한 미·소 양국은 정치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이 틀림없다. ◎「한소해운」 창립 협정서 서울신문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전문을 싣는다.19 47년 3월 북한이 청진,나진,웅기항등 3개 항을 소련에 넘겨주기로 한 이 협정서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은 현행 맞춤법에 따라 옮겼고,「조쏘」와 같은 고유명사의 약자도 「조소」 등으로 고쳐 게재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과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양국간의 경제관계의 발전과 강고를 목적으로 본협정서 체결을 위하여 정식임명한,즉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자기 전권대표로서 코스토레프스키를,북조선인민위원회는 자기 전권대표 홍기주를 파견하여 하기와 같이 협약함 제1조 협정체결 쌍방은 평등한 원칙에서 해운의 관리와 경계및 본협정제5조에 지적한 북조선에 있는 항구와 부두시설및 설비를 이용하며 해상수송과 교통을 조직할 목적으로 평양시에 조소해운주식회사(약칭 모르트란쓰)를 창립함.본회사는 본협정에 첨부하는 별지 정관(첨부서류 제1호)에 의하여 운영함.본회사 창립자는 다음과 같음.소련측…화태국립해운국 극동국립해운국(솜흐락드)전동맹연합회 원동운수공사등.조선측…흥남지구어민공장 북조선석탄관리국임 제2조 조소해운주식회사의 주식자본은 2천8백만원으로 정하되 그 내역은 아래와 같음.가.기선조차요금 조선화폐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4조에 의하여 소련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나.부두시설조차요금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5조에 의하여 조선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주식자본금의 결정에 있어서 가,나에 지적한 임차요금의 평가는 19 38년도의 시가로 계산함.회사발전에 의한 주식자본금은 쌍방의 결의에 의하여 증액할 수 있음.이 경우에 조소주주의 균등 참정권은 불변함.회사 이익금은 쌍방투자액의 비율에 의하여 분배함.회사 전주권은기명주권임.주권의 양도는 이사회의 만장일치 결의에 한하여서만 행할 수 있음 제3조 회사창립후 1개월이내에 쌍방에서 각 일천만원을 납입하여 합계 2천만원의 예비자본금을 조성함 제4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2호)에 의한 화물선 3척과 객선 1척을 30년간의 기한으로 대여함.전기기선의 조차료는 소련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5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3호)의 창고,관할구역,상항건물및 일철공장을 포함한 청진항과 전 부두,창고건물을 포함한 나진항및 계선장,창고건물등을 포함한 웅기항을 30년간의 기한부로서 대여함.전항 항구건물등의 조차료는 조선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6조 본협정서 제4조에 기재된 기선및 제5조에 기재된 항구건물의 1년간 조차료와 30년간 조차료 총액의 결정은 본사 창립까지 창립자간에서 이를 19 38년도 가격에 의하여 정함.본협정서 유효기간인 30년간의 총조차료 결정에 있어서 협정 일방(소련 혹은 조선측)의 납입금이 본협정서 타방의 납입금을 초과할 때는 쌍방납입금을 균등하게 하기 위하여 후방은 6개월내에 차액을 현금으로 혹은 금액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납입함 제7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웅기,나진,청진 각항의 운영과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며 자비로서 항도유지에 필요한 수리·준설공사를 수행할 것.제1항 기재의 제항외에 타항구에 관하여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조차에 관한 우선권을 부여함 제8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본회사에 대하여 본회사 선박이 소련항구에 입항할 시에 소련정부로 하여금 입항징수금에 대하여 최하조건을 적용하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 제9조 본회사의 사업운영에 있어서 협정 쌍방은 동등하게 참여함.이사회에는 각방이 동수로 이사 2명씩 선정하고 이사장에는 조선측의 이사가 차에 임하고 부이사장에는 소련측 이사가 차에 임함.집행직무는 소련측에서 임명한 총지배인과 조선측에서 임명한 부지배인에게 일임됨. 제10조 본회사는 사업수행상 조선 국영회사와 동등한 권리와 우대를 향수함.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 창립및 등록에 관한 세금 징수금및 정리를 포함한 추후 회사변동에 관한 일체등록에 대하여도 세금및 징수금을 면제함. 제11조 본회사 사업상 외국에서 선박시설자재등의 구입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외국화폐는 본회사 운영중 수지한 외국화폐에서 특별 지장없이 꺼내 사용할 수 있음.북조선중앙은행에서 외국화폐의 매매를 행할 때는 타회사에 적용하는 최하조건을 동등하게 향유함. 제12조 이사회에서 회사운영상 이의가 발생할 때는 결정적 해결은 본협정 체결자가 행함 제13조 본회사 창립자들은 본협정에 서명하는 동시에 쌍방이 서명일로 부터 15일이내에 북조선 소요기관에 등록할 것 제14조 본협정서의 유효기간은 본협약 서명일로 부터 30년간으로 정함.30년 경과전에 본회사를 청산할 때는 쌍방간의 협약에 의하여 이를 행할 수 있음.30년 경과후 회사 전재산은 조선에 속함 제15조 본협정은 쌍방 서명일로 부터 효력을 발생함 제16조 본협정서는 19 47년 3월25일 평양시에서 노문(노문)과 조선문 각 2장씩 작성함.노문과 조선문은 동등한 효력을 유(유)함 북조선인민위원회 전권대표 홍기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 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북한,남한수출 들쭉소주값 못받는다/계약과 달라 인수거부

    ◎세관 경매에 부치기로 남북한 교역이 시작된 이래 북한 기업이 남한 기업에 물건을 팔고 그 대금을 받지 못하는 첫 교역사고가 일어날 전망이다. 주류 유통업체인 코티리커(대표 최병택·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 빌딩)는 북한의 옥류무역과 지난해 6월 초 북한산 백두산 들쭉소주 10만병을 남한으로 들여오는 계약을 맺었다.병당 53센트로 모두 5만3천만달러(4천2백만원). 옥류무역은 중국 거래처를 통해 지난해 7월 남포∼인천간 삼선해운과 한성선박으로 술을 보냈으나 내용이 달랐다.최 사장은 『백두산 들쭉소주 10만병을 주문했는데 북한측이 보낸 것은 들쭉 소백술 1만2천병,백두산 들쭉 소백소주 10만병 등 11만2천병이라 인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를 보관 중인 인천세관은 코티리커가 계속 인수하지 않을 경우 오는 23일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 러,북 어선 1척 나포/“불법조업 혐의”… 나홋카항 억류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 해안국경수비대 나홋카지대는 6일 새벽 러시아 해역에서 불법어로 및 월경 혐의로 북한 어선 한척을 나포해 나홋카항에 억류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북한어선의 명칭이나 불법어로 행위의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해당선박은 나홋카항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최근들어 동서 국경지대에서 러시아의 자원이 불법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판단,지난해부터 각부서 합동으로 월경행위와 불법어로행위 등을 집중단속하고 있다.
  • 영해관리능력이 문제다(사설)

    대한해협 영해를 현3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하고 영해밖으로도 12해리폭의 접속수역을 설치키로 하는 정부의 해양주권확대방침이 밝혀졌다.이는 곧 비준하게 될 유엔해양법협약규정에 적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해의 확보는 선언으로 성립된다기 보다는 해양관리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이 점에서 우리의 문제는 대단히 예민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유엔해양법은 영해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사전통고의무를 면제하고 있다.이 때문에 우리의 경우 12해리가 되면 일본과의 사이에 공해대가 없어진다.결과적으로 모든 해역에 사전통고의무가 해제되는 것이다.제주·흑산해협에서는 내해마저 개방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을 교전국상태로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영해가 넓어지는 것은 좋지만 안보상 더욱 힘든 방어력을 가져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다.해협개방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보다 큰 시야에서 득실차를 가리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바다는 이제 마지막 남아 있는 지구의 생산지다.해양생물·광물·해양에너지분야에서는 이미 개발의 각축전이 일어나 있다.안보상 대처의 어려움은 무한이 계속되는 문제가 아니고 바다의 생산성은 새로운 국가 백년대계의 구체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12해리 선택은 온당한 것이다. 물론 바다관리능력의 포괄적 체계화를 시급히 해야 한다.불법어로 단속만해도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바다의 재해도 빈발하고 있다.선박에 의한 오염,폐기물 투기,위험한 물질의 수송 등도 통제의 대상이다.밀수를 비롯한 바다범죄도 막아야 한다.강력한 해상특별수사대도 키워야 하고 특수해난구조 체제도 갖춰야 한다.현재의 해경 규모로서는 이 모든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이것이 가장 실질적인 바다관리 능력인 것이다.
  • 대한해협 「영해 12해리」 확대배경과 의미

    ◎국제협약 변화 발맞춰 「해양주권」 강화/「통과통항권」 적용… 북 선박엔 경유 불허/접속수역도 설정… 밀수·불법어로 차단 정부가 대한해협의 영해를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통과통항권」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한해협의 가장 좁은 수역은 23해리.대한해협은 우리쪽에서 보면 거제도 앞바다에서 부산항에 이르는 해역으로 군사 및 통상에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12해리의 영해를 선포한다면 대한해협에서 공해가 사라지게 된다.그러나 대한해협은 각국의 항공기나 선박등이 여행이나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국제항행로이다.이 때문에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대한해협 수역에서는 각자가 영해를 12해리에서 3해리로 축소,항공기와 선박의 항행로로 사용할 수 있는 공해를 남겨둔 것이다. 지난해 11월 발효된 유엔 국제해양법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조항이 통과통항권이다.협약 37∼39조의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내에서는 모든 선박과 항공기가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다』는규정이 그것이다.즉,대한해협에 공해가 없어지더라도 각국의 항공기나 선박은 연안국에 피해만 주지 않으면 통과통항권에 의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해양법은 외국선박의 우리 영해 통과와 관련,통과통항권 대신 무해통항권을 적용해 왔다.무해통항권은 우리나라 영해를 지나는 선박이 사전에 통보를 하면 통과를 허용하는 것이다.현재 국방부에서는 사전통보의무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유엔해양법협약 가입을 비준 받는대로 정부는 해양법도 개정할 방침이다.정부는 대한해협의 영해확장 방침이 확정됨에 따라 조만간 일본과도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일본의 입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측은 우리의 결정과는 관계없이 3해리를 유지할 수도 있다.그럴 경우에는 대한해협에 여전히 공해수역이 남기 때문에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러나 통과통항권이 적용되더라도 북한의 선박이 대한해협의 우리 영해를 통과하지는 못한다.북한은 현재 우리와 교전국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북한의 선박이 대한해협을 통과하려면 일본측 영해를 지나야 한다. 정부는 대한해협에서의 영해확대와 함께 우리영해 밖으로 12해리 폭의 접속수역을 설치하기로 했다.해양법은 영해 12해리와 접속수역 12해리등 모두 24해리를 관할 해역으로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접속수역은 밀수적발과 출입국 관리,검역등 우리나라의 행정과 경찰권을 통제하는 영역이다.접속수역 설치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과 밀수를 단속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미의 대북제재 완화/박춘호 고려대교수·아시아문제연구소장(특별기고)

    ◎북한은 개방의 길로 접어 들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완화는 궁극적으로 북한을 개방시키는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이번 조치로 자본주의권과의 무역거래에서 새로운 전기와 경험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1950년 한국전 이래 「대적국 무역규제법」에 의해 동결해온 대북 경제제재를 부분적이나마 45년만에 해제한 것으로 미국 대외관계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미국은 최근 중국과 월남에 대해서도 경제제재를 해제한 바 있다.따라서 북한에 가해졌던 제재가 이번에 일부 해제됨으로써 이 법에 의해 경제제재를 받는 유일한 국가로 쿠바만이 남게 됐다.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조치의 내용은 부분적이고 또 아직은 상징적인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북한이 제네바 핵타결에 따라 지난 9일 먼저 취했던 미국상품 수입의 전면 허용,미국 선박의 북한 입항허용 등 조치에 비해 미측 규제해제가 보다 제한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상징적 이상」이라고 말할수 있는 측면이 경시돼서는 안된다.그 대표적 대목은 북한 자산의 동결과 관련한 사항이다.미국은 북한의 자산에 대해 동결을 해제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이 미국은행을 통해 북한에 결제하려던 1천1백만 달러를 영국은행에 반환하겠다고 밝혔다.이는 사실상 이 자금이 북한에 지불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으로 볼 수 있다.물론 북한과 미국간에 국유 또는 사유자산이 상호 직접동결된 사례는 기록된 바 없다. 따라서 이는 미국과 중국간의 유사한 전례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미국 시민이 소유했던 중국발행 채권 2억달러,미국에 동결된 중국자산 8천만달러 등이 있었기 때문에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커다란 현안으로 등장했던 전례가 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러나 전통적으로 자산 문제를 국교정상화,국가승인 등에 있어서 항상 핵심적인 문제로 삼아왔다.미국은 소련이 1917년 혁명후에 「인민의 복지」를 위한 조치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소유한 국유·사유자산을 수용해버리자 소련의 승인을 계속 미뤘다.미국은 소련이 자산을 완전히 반환한 1933년에야 소련연방을 승인했던 것이다.이러한 전례를 눈여겨 본다면 이번 조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번 조치는 미국이 북한과 본격적인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정부로서는 앞으로 미국의 추가해제 조치의 속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점진적이든,급진적이든,미국 행정부와 기업은 북한의 실정을 파악하는대로 무역·투자 분야의 교류를 확대할 것이다. 우리정부는 이번 조치가 제네바 합의서의 이행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며 상징적이고 부분적인 차원에 머문다고 분석하고 있다.또 이번 조치가 발표되는 과정에서 미 행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가졌다고도 밝히고 있다.아울러 북한이 어차피 개방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큰 흐름이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남북한 3자관계가 미묘하게 전개되면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접촉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더없이 신중하고 치밀한 대처가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북한은 자본주의권과의 경제거래에 경험·정보·지식의 축적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북한이 이번 조치를 계기로 습득한 경험은 앞으로 남북한간의 경제교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지금까지 「미 제국주의」를 매도하던 북한이 마침내는 미국과의 경제교류를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그들이 그토록 목메어 부르짖던 「위대한 주체」의 기본 철학이 무너져 내리는 첫단계라는 인상도 짙기 때문이다.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대처할지가 궁금하다.
  • 코카콜라·AT&T포함/미 10개기업 북진출 협상/조만간 방북전망

    북한이 북·미 기본합의문에 따라 미국상품의 북한내 반입제한조치와 미국 무역선박의 북한항 입항 금지조치를 해제키로 함에 따라 최근 코카콜라 등 미국 일부 기업들이 북한 진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정부당국과 관련 국내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북한측과 접촉해온 코카콜라,미국전신전화(AT&T) 등 10여개 미국기업이 조만간 북한방문을 검토중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서울에 지사를 두고 있는 이들 기업들은 지난해 11월에도 투자타당성 조사를 위해 주한 미상공회의소를 통해 방북을 추진하다가 막판에 보류한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당국은 제네바 기본합의를 전후해 미국기업인들의 경우 입국비자 수수료까지 다른 외국인에 비해 10∼20달러 정도 낮게 책정하는 등 미국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미비와 투자리스크를 감안,한국기업들의 투자성과를 본 뒤 투자하겠다는 분위기가 아직은 미국 업계의 주된 분위기』라면서 『그러나 미국이 멀지않아 북한에 대한 통신과 투자제재를 철폐할 경우 미국기업들의 방북이 촉진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 북,미 상품 반입 허용/중순부터 선박입항도/미도 대북제재 곧 완화

    북한은 9일 미­북 기본합의문에 따라 미국상품의 북한내 반입제한 조치와 미국 무역선박의 북한항 입항금지 조치를 1월 중순부터 해제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관영 중앙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정무원은 조­미 기본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미국상품의 우리나라 반입제한 조치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무역거래에서 미국선박의 우리나라 입항을 금지하던 조치를 1월 중순부터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것으로 내외통신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미국상품의 반입제한과 미국선박의 입항금지 조치는 북한이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에서 적용해온 제한조치의 전부라면서 이번 해제조치로 북한은 『조­미 기본합의문에 명기된 무역투자장벽 완화와 관련한 조항에 따라 지닌 의무를 완전히 이행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고 중앙통신은 보도했다.
  • “경제난극복”북의 전략적 대미접근/미상품 반입허용 의미와 향후행보

    ◎미와 합의 이행 재천명… 교류확대 포석/북시장 선점 노리는 미 「응답」수준 관심/정부선“북 개방에 도움”판단속 관계진전 수위 촉각 9일 북한이 미국상품 반입제한 조치 및 미국선박 입항금지 조치 해제는 곧 있을 미국의 대북 무역 및 투자제한 완화를 염두에 둔 「정치적」포석이지만 북­미간 경제·인적교류 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종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합의문 서명 3개월이내 양측은 통신·금융제한조치를 포함하는 무역 및 투자장애를 해소한다」는 지난해 10월의 북­미간 합의문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거듭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의 발표내용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조치들이 미국과의 교역에 적용해 온 제한조치의 전부』라는 부분인데 북한은 이를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다.북측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번 조치로 북한은 자신의 교역시장을 미국에 「전면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바꿔말하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자신들의 경제난 해소에 적극이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으로 볼 수 있다. 북한측의 조치를 계기로 21일을 전후해 발표될 미국측의 대북「해제수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미측은 틈날 때 마다 『대북제재해제는 최저수준이 될 것이며 추가해제여부는 향후 북한측의 합의문 이행상황을 보아가며 하되 한국측과 긴밀한 협의를 거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측이 『제재해제는 최저수준으로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의회동의와 무역관계법령의 개정없이」 클린턴대통령의 직권(행정명령등)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우선 해제하겠다는 뜻이다.내용적으로는 워싱턴∼평양간 직통전화 가설,투자활동등을 위한 미국기업인 방북허용,전략물자를 제외한 일반물품 교역허용,일일 여행경비 2백달러 제한철폐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측이 「제한적으로」 교역제재를 해제한다하더라도 북한측에서 볼 때는 효과가 엄청날 것이 틀림없다.무엇보다 먼저 미측이 지난 92년 계약을 맺고 미상무부 승인까지 받아냈던 11억달러상당의 밀수출,3억5천만달러 상당의 쌀수출이 본격 추진돼 북한측으로서는 식량난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또 일반물품의 교역이 가능하게 되면 각종 일용품,공산품난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양측간 상호교역제재 해제추진은 미국전신전화(AT&T)·코카콜라등 10여개 다국적 기업의 북한진출길이 열림으로써 한국·일본등 다른 교역경쟁상대국들 보다 「북한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정부는 미국과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들이 결국 북한을 개방시키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고 일단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한편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없이 경수로 지원과 북­미 관계개선은 있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마지노선」을 감안,어느 수준에서 북­미간의 관계진전을 제어해 나갈 지 고심하고 있기도 하다.
  • 서울신문 선정/해외 10대 뉴스/대립·화해속 무한경쟁 시대로

    ○중동평화협정 조인 5월4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에 이스라엘 점령 예리코와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협정이 맺어진데 이어 10월26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역사적 평화협정이 조인됐다.이스라엘은 또 시리아에 대해 골란고원 반환의사를 밝혔다.이같은 중동평화 진전의 공로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페레스 외무장관,아라파트 PLO의장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르완다 내전… 50만명 희생 지난 4월 다수민족 후투족이 소수민족 투치족을 학살하면서 벌어진 르완다 사태는 내전발발 3개월만에 전체인구 7백50만명중 50만명이 희생되는 대학살극을 연출했다.참상의 여파로 아직도 2백50만명의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근 자이르에 설치된 르완다 난민촌에서는 매일 수백명의 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가트 해체… WTO비준 전후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온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체제가 해체되고 그 대신 설립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준비로 세계 각국이 분망하게 보낸 한해였다.UR협정 타결에따라 내년 1월1일 창설되는 WTO는 12월1일 미의회의 비준동의를 비롯,연말까지 1백여개국이 비준을 마칠 것으로 보이나 중국가입,사무총장 선출등 몇가지 난제가 아직 풀리지 않고있다. ○남아공 첫 흑인정권 탄생 지난 4월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돼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대표되는 3백42년간의 소수 백인통치가 끝났다.14%의 백인이 76%의 흑인을 통치하는 기형적 정치체제는 「만델라 대통령­데 클레르크 부통령」이라는 흑·백 동거정권으로 대체됐고 남아공은 유엔에 복귀했다. ○아아티 군사정권 퇴진 미국은 아이티 민정회복이라는 명분아래 9월19일 아이티에 병력을 파병했다.그러나 외교특사로 나선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로 부터 퇴진약속을 받아내 군사충돌을 피하고 사태를 해결하게 됐으며 이에따라 91년 쿠데타로 축출됐던 민선대통령 아리스티드는 3년여에 걸친 망명생활을 끝내고 10월15일 권좌에 복귀했다. ◎에스토니아호 침몰 대참사 1천54명을 태우고 에스토니아의 탈린항을 떠나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가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9월28일 핀란드 인근 발트해상에서 침몰,9백여명이 익사하는 미증유의 대참사가 발생했다.에스토니아호는 이로써 19 12년 북대서양상에서 빙산과 충돌,1천5백3명이 사망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이후 최악의 해상사고 선박으로 남게 됐다. ○북·미 핵협상 극적 타결 전쟁위기까지 몰아갔던 북한핵문제는 10월21일 북·미 핵협상 기본합의서가 조인됨으로써 긴장해소의 전기를 마련했다.북한은 지금 미국과 경수로지원및 대체에너지 공급,연락사무소 설치문제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중이다.특히 지난 7월의 김일성주석 사망소식은 이후 북한권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많은 추측을 낳기도 했다. ○러,체첸공 무력 침공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체첸공화국에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단행함으로써 빚어진 체첸사태는 러시아의 소수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날로 떨어지는 인기를 만회하고 체첸외에 독립을 꿈꾸는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본보기로 무력개입을 감행했으나 러시아내에서조차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미 공화당 의회 장악 지난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및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40여년만에 양원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미국민들의 「신보수주의 정서의 표출」로 일컬어지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함에 따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집권후반기의 정국운영은 물론 오는 96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재선전망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보스니아」 3년만에 휴전 「인종청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3년째 잔인한 도륙을 계속해온 보스니아내전은 세르비아계가 유엔설정 안전지대인 비하치를 사실상 점령한뒤 카터전미대통령의 중재로 24일부터 휴전에 들어갔다.세르비아계는 그동안 수많은 평화중재안을 거부한 채 국토의 70%를 점령했으며 보스니아사태 해결에 시종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EU회원국들은 손을 빼기에 급급했다.
  • 일 정부출연기관 정리 “삐걱”/시동도 못거는 무라야마 행정계획

    ◎각료들 “모두 존재의미 있다” 반발·관망/92개법인 통폐합 논의 간담회 헛일로 일본 정국이 신진당의 창당등 급격한 흐름을 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무라야마총리는 무언가 업적을 남기겠다는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밖으로는 북한과의 수교등을 내세웠지만 여의치 않자 내정방면에서 행정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오고 있다.행정개혁은 신진당등의 조기총선 주장에 맞서 정권안정을 도모하는데 적절한 테마이기도 하다. 게다가 무라야마정권은 97년부터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리기로 해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그래서 세법개정안 통과 뒤 무라야마총리는 『이제는 행정개혁이다』라고 일본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내놓았다. 행정개혁 가운데 무라야마총리가 팔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특수법인(한국의 정부출자기관등에 해당)의 정리.설립목적이 달성됐거나 기구가 너무 팽대해 조정할 필요성이 있는 법인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더구나 신당 사키가케도 독자적으로 잠사설탕류가격안정사업단등 특수법인 3개의 폐지,22개 법인의 민영화라는 합리화안을 내놓았던 터이다.모두 92개인 특수법인에 대한 정부 출자액은 25조엔 정도.한해 출자금과 보조금등 연간 정부예산만도 4조엔을 넘는다.특수법인의 비효율성은 세금의 엄청난 낭비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난달 25일과 29일 각 성·청이 내놓은 특수법인 조정안을 내놓고 토론하는 각료간담회가 열렸다.그러나 정리안을 제시한 각료는 한 명도 없었다.29일 간담회에서도 통폐합안은 없이 경영개선안뿐이었다. 첫 각료간담회가 끝난 뒤 하시모토통산상등 일부 각료들은 『존재 의미가 없는 법인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특수법인 정리에 빗장을 걸고 나왔었다.하시모토장관이 나카소네내각등에서 행정개혁을 다뤘기 때문에 이제와서 미진했다고 자복하기가 난처한 점도 있지만,대부분의 각료들은 관료들로부터 제출된 산하 특수법인의 온존 희망을 대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행정개혁위원장에 민간인을 기용하는 문제를 두고도 사키가케가 민간인 기용을 주장하는 반면 자민당측은 『행정개혁은 관료들의 지지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관료의 기용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관료사회는 개혁의 무덤.서슬 퍼렇던 개혁의 칼날도 관료사회로 들어갔다 나오면 솜방망이가 된다.각 성·청이 스스로 개혁안을 제시하라고 한 것은 환자더러 스스로 수술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료들이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와 공무원 퇴직후의 생활보장이라는 요소가 강하다.연립여당의 행정개혁프로젝트팀이 조사한 결과,92개 특수법인의 임원 가운데 관료출신은 48%.이 가운데 민영화된 일본전신전화(NTT)와 일본철도(JR)를 제외하면 66%나 된다.특히 수자원개발공단과 선박정비공단은 1백%다.왜 저항하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라는 새 정당이 여당에 들어섰지만 관료제의 벽은 두텁다.관료들은 행정개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이론무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게다가 자민당은 단독 집권 40년동안 관료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와 행정개혁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행정개혁을 정권유지의 명분으로 활용하려는 무라야마총리의 뜻이 잘 먹혀들지 않는 국면이다.내년 2월10일까지 작성될 일본 정부의 구체적 정리방안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도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 미 대북지원 중유 1차분 5만t/호남정유서 납품키로

    ◎15일 선적… 31일 선봉항 인도 호남정유가 이달 15일 북한에 화력발전소의 연료용으로 5만t의 벙커C유를 공급한다.미국과 북한이 제네바합의에서 북한이 기존 핵발전시설의 가동을 중지하는 조건으로 경수로가 가동되는 오는 2003년까지 단계적으로 공급키로 한 화력발전소의 연료중 1차분이다. 호남정유는 최근 미국 국방부 유류공급처가 유공·한화에너지·모빌 싱가포르를 상대로 실시한 입찰에서 t당 84.3달러로 공급권을 따냈다고 밝혔다.호남정유는 13일쯤 통일원에 북한반출승인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며,통일원 관계자는 『신청서가 접수되는대로 승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호남정유가 납품하는 벙커C유는 내년 완공예정인 50Mw 및 96년 완공예정인 20Mw급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된다.호남정유가 납품하는 벙커C유 5만t은 여천공장에서 미군이 수배하는 선박에 한번에 선적돼 31일까지 북한 선봉항으로 인도된다. 이번 벙커C유 공급을 미 국방부가 주도하는 것은 유류가 전략물자로 사용될 수 있어 이를 검증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국선박 나진입항 허용/김정우 대외협력위원장

    ◎“남한기업 진출 환영”/대우그룹 직접합작 진출 확인 【도쿄 연합】 북·미 핵합의로 한국과 북한의 경제교류가 주목되는 가운데 북한은 「정·경 분리」 방침에 따라 한국기업의 진출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미국 「유에스 아시아 뉴스」를 인용해 30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의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이 10월중순 「유에스 아시아뉴스」의 문명자 주필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유경제무역지구인 나진·선봉에 한국선이 한국국기를 게양한 채 매일 입항해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유에스 아시아 뉴스는 또 대우그룹이 평양 근교에 건설한 경공업단지도 처음 공개됐다면서 사진을 소개했다. 김은 특히 60사 이상의 외국기업이 경제특구 투자 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6건의 계약이 성립됐는데 이중 중국이 2건,러시아 1건,나머지 3건은 해외 한국인 기업이라고 밝혔다. 김은 한국 럭키금성및 삼성그룹 실무자와 제3국에서 상담을 벌였으나 『직접 합작,진출이 이루어진 경우는 대우그룹 뿐』이라고 말했다.
  • 1995 광복 50돌/1인당 GNP 121배 늘었다

    ◎통계로 본 그때와 오늘의 국민생활 변화/인구 2.8배… 자동차 4백80배로 증가/수출 올 9백34억$… 3천3백배 껑충/도서관은 42곳서 7천8백곳으로 늘어/남한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1995년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해.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지 글자 그대로 반세기가 꽉 차 간다.그동안 우리는 세계의 다른 어느 민족이 같은 시간 동안 겪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를 경험했다.변화의 주체인 우리 자신들조차 광복 당시 사회상을 담은 사진 혹은 기록에서 현재 모습의 가능성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반대로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사회상을 복원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거의 무에서 출발해 오늘날 국제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올랐다.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본영향권에서 벗어나 서구영향권에 편입됐다고 할 수 있다.그 50년의 변화상을 각종 통계수치를 통해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인구◁ 통계청이 올해 7월에 발표한 남한인구는 4천4백45만명이다.남북한을 합치면 6천7백만여명.광복전해인 1944년 남한 인구가 1천5백88만명,남북한 총인구가 2천5백92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0년동안 남한은 2.8배,남·북한 합하면 2.6배가 늘어난 셈이다. ▷문맹◁ 해방 당시 문맹자는 전체 인구의 77%에 달했다.거의 2천만명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른바 「까막눈」이었다.그러나 40대 이하의 경우 정신·신체적인 장애 등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문맹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교육열의 덕분이다.이 높은 교육열이 또 거의 기적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성장을 선도했다. ▷자동차◁ 자동차의 증가율 또한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 하다.광복 당시 자동차 보유대수는 태평양 전쟁 말기 등장한 목탄차까지 포함해 1만5천대에 불과했다.그러나 11월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7백2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교통부는 집계하고 있다.최근에는 하루에 3천대씩 늘어나고 있다.광복 당시 자동차 총수는 현재 5일동안 늘어나는 자동차숫자에 지나지 않는다.▷수출◁ 한국무역협회가 예상하는 올해 수출액은 9백34억6천5백만달러,수입액은 9백93억2천8백만달러이다.집계가 시작된 1962년 수출이 2천8백만달러,수입이 2억1천4백만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출은 3천3백40배나 늘어난 것이다. 품목별 수출액을 보면 1948년에는 전체 수출액 가운데 오징어 38.4%,김 14.6%,한천 6.3%,광물 등 기타 40.7%였다.수출이라기보다는 천연자원을 캐거나 잡아서 그냥 내다판다는 표현이 옳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수출품은 전기·전자·화학·일반기계·자동차·선박 등 중화학공업 제품이 63.2%,경공업 제품이 26.4%로 1차산품은 3.9%에 불과하다.중화학공업 제품 가운데는 전기·전자가 49%,화학이 9%,자동차가 7·7%,선박이 6·4%,일반기계가 6·2%를 차지한다. ▷GNP◁ 1인당 총생산(GNP)은 올해 8천1백30달러에 이를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다.1953년 67달러에 비해 무려 1백21배 늘어났다. 경제지표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각종 사회·문화 지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도서관◁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43년 각종 도서관은 전국에 42개 뿐으로 장서 또한 86만권에 불과했다.장서는 일본 책이 82만3천권,한문으로 된 책이 3만6천권이었으며 한글로 된 우리 책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이에 비해 지난해 말 현재 우리의 도서관 수는 7천8백78개이고 장서 또한 6천9백55만4천권에 이른다. 단순계산으로 도서관 수는 광복 당시에 비해 1백85·4배가 늘어난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의 도서관 운동은 아직 초보 단계라는 지적도 있다.많은 선진국들이 우리와 같은 국민소득을 올리던 시기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타◁ 또 광복 당시 우리나라에는 6개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발사하고 있었다.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청취자수는 16만4천8백10명에 지나지 않았다.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0.7%만이 라디오라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라디오는 벌써 그 역할을 TV와 비디오 등 다른 매체에 내준지 오래다. 총독부는 19043 한햇동안 2천6백59만2천명이 영화관을 찾은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또 이 해에 연극관람을 한 사람은 4백21만9천명에 이른다.국민 여섯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연극구경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비해 전국극장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을 찾은 사람은 모두 4천4백5만6천명이다.국민 한사람이 극장을 찾은 횟수가 광복 당시에는 1.07회,지난해는 1.1회로 큰 차이가 없다.그러나 이 거의 변하지 않은 수치에서 사람들은 50년동안 사회의 큰 변화를 읽어내고 있다. 이처럼 문화에 관한 한 통계치의 변화가 꼭 발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광복 이후 한세기의 전반이 경제성장률에 보람을 느꼈던 시대라면 그 후반이 될 내년 이후는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데 자부심을 갖는 시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대기업들/북반응 주시속 북행채비/남북경협 활성화 발표이후 동향

    ◎금강산 개발·경수로에 관심/현대/생필품분야부터 진출 전략/삼성/남포공단에 중기와 공동진출/대우/의류·전자 임가공생산 추진/럭금/북상황 감안 신중접근 태도/선경/금강산에 호텔 등 건설 협의/한화 재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정부가 8일 우리 기업인들의 북한방문을 허용하는 것을 비롯한 「남북경협 활성화 1단계」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대·삼성·럭키금성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로 동결됐던 남북경협 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대북투자,총수와 실무자의 북한방문,사무소 설치 등 경협 재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중이다.아직 북한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구체화한다는 구상이다. ▷현대◁ 지난 89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 때 논의된 금강산 및 원산항 개발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정 명예회장은 정부의 허가를 받는대로 방북할 예정이다.지난 달 북한의 경협창구인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고민발)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정 명예회장의 방북에서는 철도 차량사업과 선박수리용조선소(원산) 건설에 대한 합작사업을 논의할 게획이다.현대건설은 북한 경수로 건설의 주간사로 참여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지난 달에는 이춘림 현대종합상사 회장,박재면 현대건설 회장,김영일 금강개발 사장 등이 북경에서 이성록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 회장을 만나 추진중인 사업을 협의하기도 했다. ▷삼성◁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는 생필품을 주축으로 한 경공업 제품으로 보고 있다.경협이 본격화하면 생필품 분야의 생산 라인을 북한으로 옮긴다는 전략이다. 이건희 회장의 방북계획은 아직 없다.북한 진출에 관심을 보이는 삼성전자의 김광호 부회장과 삼성물산의 신세길 사장 등이 먼저 방북신청을 하는 수순을 고려한다. 유망 분야로는 전자부문의 경우,TV·오디오·통신망·냉장고·선풍기·히터·전화기 등을 꼽는다.섬유에서 신사복·바지·티셔츠·숙녀복 등을 임가공 방식으로 생산한다는 전략이다. ▷대우◁ 북한측과 이미 합의한 남포공단의 8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김우중 회장은 지난 92년 방북,남포공단에 와이셔츠·블라우스·재킷·가방·신발·메리야스·봉제완구·양식기 등 8개의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었다.이중 일부에 대해서는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진출할 생각이다. 한 관계자는 『남포공단은 이미 우리정부와 북한측 모두로부터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가장 먼저 성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회장의 연내 방북도 추진한다.나진·선봉지역에 전자 및 자동차 부품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럭키금성◁ 서두르지 않고 실리 위주로 접근한다는 입장이다.우선 의류 및 전기·전자 분야의 임가공 생산부터 시작할 계획.북한의 생필품난이 심각하다고 보고 비누·PVC·장판·의약품 분야를 시범사업으로 선정,중소기업과 연계 진출하는 방안도 모색한다.중장기적으로는 원유정제 및 석유화학 분야에도 투자할 계획이다.아직 구자경 회장의 방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선경◁ 정부와 대북한 관계 진척 정도를 봐가며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구상이다.최종현 회장은 물론 계열사 사장의 방북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경협방안에도 불구,북한의 대외채무 불이행,북한내 편의시설 부족 등 문제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의류·화학·직물·신발·농수산물·비철금속·건자재 분야에서 교역가능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에 참여,호텔과 콘도·골프장·스키장 등을 건설하기로 이미 북한측과 협의를 마친 상태.나진·선봉지역에 전전자교환기,농업용 폴리에틸렌 필름,플라스틱 가공제품 분야의 투자진출을 검토중이며,비옷과 라면을 임가공 방식으로 생산할 방침이다.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방북을 추진한다. ▷쌍용◁ 당분간은 신발 임가공에 주력하고 북한측의 반응을 봐가며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두산◁ 압록강변의 중국 단동지사를 대북교역 창구로 활용할 계획.단기적으로는 섬유·수산 등 경공업 제품의 임가공 생산을,장기적으로는 맥주 및 음료공장을 건설할 방침이다. 이들 대그룹은 모두 교통·통신 등 시설이 괜찮고 정보수집과 북한관계자와의 접촉도 좋은 평양에 사무소를 설치하기를 바라고 있다.
  • 마닐라 정박 북선박 인도네시아로 떠나

    【마닐라 로이터 연합】 김영삼대통령의 필리핀 공식방문을 앞두고 마닐라항에 정박,안전상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북한화물선 「무두봉호」가 7일 마닐라항을 떠나 인도네시아 폰티아나크항으로 향했다고 이 선박의 대리점측이 밝혔다. 무두봉호는 당초 5일까지 마닐라항에 정박해 있을 예정이었으나 대두 하역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틀이 늦은 이날 출항했다. 리카르도 사르미엔코 필리핀 경찰청장은 무두봉호가 출항예정일인 5일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음에 따라 지난 주말동안 무두봉호를 철저히 감시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 마닐라항 정박 북한 화물선/비경찰,“정체조사” 명령

    【마닐라 교도 연합】 필리핀 국립경찰총장은 5일 마닐라항구에 계속 정박해 있는 북한화물선 한척의 정체를 조사토록 명령했다. 이 선박은 그러나 당초 『아무런 위해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화물선이라고 필리핀관리들의 조사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리카르도 사르키엔토 경찰총장은 필리핀 해상보안청과 마닐라경찰로 하여금 「무두봉」호로 알려진 북한화물선과 이에 탑승한 승무원들에 대한 감시를 명령했다. 무두봉호는 지난달부터 마닐라항 남쪽부두에 정박해 있으며 인도에서 싣고온 콩을 하역한후 이날 출항할 예정이었다. 마닐라주재 한국대사관은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 참석차 마닐라를 방문하는 김영삼대통령의 필리핀방문을 앞두고 이 괴선박의 마닐라항정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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