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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여성사전시관, 경기 고양시 확장 이전

    국립여성사전시관, 경기 고양시 확장 이전

    국내 유일의 여성사 전시관인 국립여성사전시관이 경기 고양시로 확장 이전해 문을 연다. 기존의 근현대 여성 생활사 전시 중심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여성 역사로 전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재구성했다. 여성가족부는 1일 오후 3시 정부고양지방합동청사에서 김희정 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여성단체, 여성 사학자 및 박물관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여성사전시관 이전 개관식을 한다. 개관식과 함께 이날부터 ‘북촌에서 온 편지, 여권통문’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을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어 근대 여성 교육과 각 분야 최초 여성, 여성 정치 참여 등을 조명한다. ‘여권통문’은 116년 전인 1898년 9월 1일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 선언문이다. 여성의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해 여성의 사회 진출과 권익 증진을 촉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여가부는 여권통문을 주제로 한 ‘제3회 팝 여성사 영상물(UCC) 공모전’을 최근 열어 ‘가장 보통의 이야기, 여권통문: 박지혜·이영민작’ 등 5개 당선작을 선정해 이날 시상한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역사 발전에 기여한 여성들의 삶과 업적을 발굴, 공유하며 양성평등의식 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2년 여가부가 서울여성플라자에 설립해 운영하다 이번에 정부고양지방합동청사 1~2층으로 전시 공간을 옮겼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관광객이 떠드는 통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요. 임차료가 올라 쫓겨나듯 떠난 상인도 많고….”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주민 김모(69·여)씨는 정자에 앉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을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복궁 서쪽에 있어 최근 ‘서촌’(종로구 효자동·통인동 등 15개 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곳은 서울 강북의 새 관광 명소가 됐다. 조선시대 ‘서촌’으로 불리던 서울 서소문·정동 일대와는 다른 곳이다. ‘북촌’(종로구 재동·가회동·삼청동 일대)의 한옥마을이 큰 인기를 끌다가 관광객이 붐벼 포화 상태가 되자 인근 서촌이 조명받게 됐다. 궁중에 물자를 공급하는 서인과 역관이 많이 살았던 서촌에는 비교적 최근 지은 개량 한옥이 많고 지난해 박노수 화백의 가옥을 새로 꾸며 개관한 미술관도 있어 외부인이 즐겨 찾는다. 여행 가방을 끌고 와 카메라로 동네 곳곳을 찍으며 재잘거리는 젊은 관광객의 모습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마을이 활기를 얻으면 모든 주민이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광객이 늦은 밤까지 근처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우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들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는 통에 주민들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 주민은 “주말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동네 주변을 뱅뱅 도는 관광버스 때문에 나다니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마을의 인기와 더불어 집값과 점포 임대료가 오르면서 건물주는 미소 짓지만 오래전 터를 잡은 세입자들은 울상이다. 종로구 옥인동에 10년 전 자리 잡은 한 공인중개사는 “통인시장 후문에서 수성동계곡에 이르는 옥인길의 경우 최근 2~3년 새 가게 임차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며 “그런데도 외지 사람들은 매장을 못 구해 난리”라고 전했다. 옥인길에서 성업하던 세탁소 3곳과 슈퍼마켓 3곳이 최근 문을 닫고 새 카페와 음식점 등에 자리를 내줬다. 서촌 주민들은 갑자기 달라진 마을 풍경을 보며 마음을 졸인다. 상업화가 더 진행되면 전통 마을 고유의 멋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자본만 남은 북촌처럼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서촌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이발사 이천동(65)씨는 “이 동네가 학군이 좋고 청와대에 인접해 치안도 잘돼 있어 예전부터 살기 좋았다”며 “주변에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우리처럼 건물주와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오른 집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생겼다. 조기태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 대표는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문화 마을’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북한산 ‘은평 한옥마을’ 한옥용지 분양, 도심 속 전원생활에 “눈길 확”

    북한산 ‘은평 한옥마을’ 한옥용지 분양, 도심 속 전원생활에 “눈길 확”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은평구 진관동에 ‘은평 한옥마을‘ 내 한옥용지를 분양한다. 단독주택용지 총 77필지를 특별분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은평 한옥마을’은 서울 도심에서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에 살 수 있는데다 한옥주택의 가치와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수요자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실제 최근 일주일 간 한옥부지가 10건 이상 계약이 성사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은평 한옥마을’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다. 웰빙과 전원주택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서울 도심에서 한옥에서 살 수 있다는 장점들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뛰어난 입지여건과 편리한 교통환경, 쾌적한 주거환경 등이 갖춰져 있어, 실수요자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은평한옥마을 분양담당자는 “특별분양을 시작한 후 주말에만 1,000여명의 고객이 방문했다”며 “실제 거래도 8월 들어 세배 이상 늘어나면서 한옥마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신규 한옥마을은 서울에서 은평이 최초” 은평한옥마을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 부지 내 6만 5,500㎡로 조성된다. 이번 한옥마을 공급용지는 총 156필지로 수도권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은평 한옥마을’에는 한옥만 지을 수 있는 단독형 한옥(135~410㎡) 141개, 점포도 같이 들어설 수 있는 근린생활형(190~405㎡) 14개, 주차장 등 공익시설용(361㎡) 1개 등으로 이뤄졌다. SH 은평 한옥마을 분양관계자는 “서울에서 공급되는 한옥용지로 ‘은평 한옥마을’이 유일해 희소성이 높다”며 “특별분양을 시작한지 하루 만에 전화를 100통 이상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은평 한옥마을’은 종로에 위치한 서촌과 북촌에 이어 서울에서 세번째로 들어서는 한옥마을이다. 서촌과 북촌의 경우 3.3㎡당 5,0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높다. 이런 희소성은 앞으로 ‘은평 한옥마을’이 신흥 부촌으로 떠오를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옥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건축물로 투자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은평 한옥마을’은 북촌과 서촌이 가지지 못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100대 명산인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또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의 산조망이 가능한 점도 매력이다. 마을 서북쪽으로는 진관근린공원이 마주해 있고, 북한산 둘레길 9구간 이용도 쉬워 산책이나 가벼운 트래킹도 가능하다. 친환경주택 한옥, 개발호재까지 풍부 한옥 자체가 친환경 주택으로 새집증후군 등의 유해물질이 없고, 습도조절 및 통풍, 채광, 일조량 등이 뛰어나 선호도가 높다. 한옥의 감정적인 부분이 입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도 큰 강점이다. ‘은평 한옥마을’은 교통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이 차량 3분 거리에 있는데다 마을 맞은편에 도심권으로 이동하는 버스 노선도 풍부하다. 마을 앞 연서로를 이용하면 서울시청까지 20분, 광화문 업무지구까지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여기에 오는 2016년 준공예정인 GTX 연신내역이 개통되면 앞으로 교통여건은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편의시설 이용도 수월하다. 3호선 연신내역 역세권 상업지구가 인접해 있어 병원, 쇼핑시설, 여가시설 등을 이용하기 쉽다. 또 오는 2016년에는 롯데자산개발이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역세권을 중심으로 대형마트, 영화관 등이 들어설 복합쇼핑몰을 개발할 예정이다. 2018년에는 은평뉴타운 내 800병상 규모의 카톨릭성모병원이 완공예정인데다 차량 10분 거리에 위치한 삼송지구에서는 신세계 복합쇼핑몰도 계획돼 있어, 앞으로 주거편의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또 ‘은평 한옥마을’ 맞은편에는 자율형 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하나고는 지난 2013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SKY 대학들에 99명이나 입학시키면서 강북권 명문고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신도초, 신도중, 은평메디텍고 등으로도 통학이 가능하다. 이처럼 뛰어난 입지여건에도 분양가가 주변 지역에 비해 저렴하다. ‘은평 한옥마을’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730만 원 선에 책정돼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은평한옥마을 주변에 위치한 불광동, 갈현동 주택지의 가격은 3.3㎡당 1,600만 원 안팎”이라며 “서울 북촌의 경우 3.3㎡당 매매가가 5,000만 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은평 한옥마을’의 투자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은평 한옥마을’은 계약 후 착공필증을 제출하면 한옥설계비를 50% 한도 내에서 최대 2,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은평 한옥마을’ 현장을 방문하면 은평구청에서 운영 중인 한옥체험관과 SH공사가 건축한 시범한옥마을을 체험할 수 있다. 분양문의 (02-355-1511)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도심·한옥·돌담길서 산자락 아래 학교서 풍류 한자락 어떠세요

    도심·한옥·돌담길서 산자락 아래 학교서 풍류 한자락 어떠세요

    막바지 무더위가 소슬한 가을바람에 자리를 내어주는 이즈음, 풍류 한 자락의 운치가 더욱 진하게 풍겨 오는 시기다. 도심의 돌담길, 산자락에 안긴 풍류학교 등에서 격식도 경계도 없이 즐길 수 있는 풍류놀음들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풍류 음악가 임동창은 오는 22일 직접 연출한 ‘풍류축제·모던굿판’을 벌인다. 무대는 지난해 문을 연 전북 완주의 풍류학교. 그가 교장으로 있는 이 학교에서는 술 안 먹고도 신 나게 놀 수 있는 풍류 교육을 가르친다. 10대부터 90대까지 함께 즐기는 ‘공감의 축제’를 표방하는 이번 무대에서는 가수 주현미, 소프라노 박성희, 임동창 등의 예인뿐 아니라 풍수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이 등장해 흥을 돋운다. 참가비는 무료지만 준비물은 필수다. 신발주머니, 1인용 돗자리, 간식, 펜, 라면 한 개 혹은 쌀 한 봉지 이상 등이다. 라면과 쌀은 완주군 소년소녀가장에게 전달된다. (070)4155-7475. 젊은 여류 가객들은 청아한 목소리로 잡가, 민요를 들려 주며 관객들을 홀린다. 오는 13~1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쳐지는 ‘공감! 젊은 국악’이다. 13일에는 경기소리 그룹 ‘나는 소리꾼, 앵비(鶯飛)’가 주로 앉아서 부르던 12잡가에 춤 등의 퍼포먼스와 토크 콘서트 등 색다른 형식을 얹어 선보인다. 14일에는 여류 가객집단 창우(唱友)가 연극계 거장 오태석의 희곡 ‘어미’에 소리를 입힌 ‘그녀들의 수다-어미’를 올린다. 군에서 자살한 아들에게 영혼결혼식을 올려 주려 팔도를 떠돈다는 어미의 애끊는 모정이 경기·서도·남도 민요 자락을 타고 흐른다. 1만~2만원. (02)580-3300. 분주한 도심에서 잠시 쉼표를 찍어 갈 수 있는 서울 북촌. 오는 10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북촌에 가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자리에서 풍류에 젖어들 수 있다. 가회동 성당, 북촌문화센터, 아트링크, 북촌전통공예체험관 등 네 곳의 한옥에서는 국악앙상블 예소울과 가야금 앙상블 셋, 가야금 연주자 임수현, 거문고 연주자 금수민·김준영 등이 다채로운 우리 음악을 들려준다. 감고당길과 재동관광안내소 앞 등 두 곳의 돌담길에서는 소리에 몸짓을 더한 공연을 선보이는 꿈꾸는 산대와 판소리꾼 김봉영 등의 거리 공연을 만날 수 있다. 무료. (02)747-3809.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창지개명은 단군 이래 최악의 민족정기 말살 사건 서울의 지명은 다중(多重)적이다. 대부분 지명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지명에는 그렇게 부르게 된 명명(命名) 동기가 있는 데 이를 지명의 유래라고 한다면 서울의 지명은 2000년 동안 성쇠와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 적자생존의 산물이다. 서울의 지명은 산이나 물, 고개, 풍수, 바위, 들, 땅 모양, 인물, 식물,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정겨운 토박이 이름이 주를 이뤘다. 훈민정음 창제(1446년) 이전까지 비록 우리 글이 없었지만 한자(漢字)를 빌려 이두(吏)로 적었기에 소리 체계는 살아 있었다. 더욱이 수도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깊숙이 배어 있다. 예컨대 사간동, 내수동 같은 관아 지명이나 동소문동 같은 성문 지명을 비롯하여 왕십리나 답십리 같은 전설 지명, 압구정동 같은 누정 지명과 정릉동, 효창동 같은 능원 지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는 두 가지 경천동지할 사건이 있다. 신라 경덕왕(757년) 때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꾸면서 가해진 변형이 첫 번째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인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앞에서는 조족지혈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창씨개명), 땅이름도 제멋대로 바꿨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서울의 지명에는 이 모든 영욕이 담겨 있다. 서울은 조선 개국 이후 한성부(한성)가 공식 명칭이었지만 한양 또는 서울이라는 지명이 더 널리 쓰였다. 뿐만 아니라 도성, 수선(首善), 도읍, 경조(京兆), 경도(京都), 사대문 안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다. 오늘의 서울을 있게 했고,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산인 삼각산과 백악산은 북한산, 북악산이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다. 남산과 청계천의 본명도 목멱산과 개천이지만 잊혀진 이름이다. 남산은 목멱산이라는 옛 이름보다 오히려 정겨운 것이 사실이다. 인위적인 지명의 전이(轉移)가 아니어서 그렇다.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남산은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앞산이요, 왕이 사는 경복궁의 앞 산이었다. 지금은 서울이 확장되면서 강북과 강남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산(中央山)이 됐지만…. 그러나 청계천 개명은 사정이 다르다. 옛 이름인 개천(開川)보다 청계천이 더 청결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역사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골짜기였다. 개천의 발원지로 ‘청풍계천’(?風溪川)이 본명인데 청계천이라고 줄여 불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천의 상류가 청계천인 셈이다. 1916년 6월 24일자 매일신보에 청계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청계천변 시찰’이라는 기사에서 “개천, 일명 청계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10년이 흐른 192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하천령’을 제정하면서 청계천이라고 바꿔 버렸다. 조선 500년 동안 한양도성의 명당수이자 하수구였던 개천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처럼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명명한 사대문의 정식 명칭을 두고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이라고 즐겨 불렀다.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또한 수구문(시구문), 동소문, 자하문(북소문), 서소문이라는 별칭을 주로 썼다. 인위적인 엄숙한 지명보다 방향이나 쓰임새 위주로 호칭하기를 즐겼다. 한강도 지금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동호, 경강, 노들강, 용산강, 서강, 조강 등 지역별로 세분해서 불렀다. 그중에서 3개의 강이 주를 이뤘다. 경강은 지금의 한남대교~노량진 구간, 용산강은 노량진~마포, 서강은 마포~양화진 구간을 각각 지칭했다. 학자에 따라서는 5강, 8강, 12강까지 세분했으니 우리 지명의 다중성은 일일이 예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은 역사를 창조하기도 지명의 다중성은 어디에서 연유됐을까. 역사의 곡절 때문이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지명학(Toponymy)의 어원이 그리스어 토포스(Topos·장소)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명은 땅의 기원과 의미, 변천사를 단순화해 보여주는 척도다. 지명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수록 역사 연구에서 지명 의존도는 높다. 지명이 복잡하다면 그만큼 역사가 고단했다고 볼 수 있다. 지명이 여럿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고단함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성명학(姓名學)에 빗대 보면 사물에는 하나의 이름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명(名)이 있다. 성년이 되면 자(字)를 가지며 사람에 따라 호(號)를 가진다. 죽은 뒤 시호(諡號)를 받는 사람도 있다. 왕은 사후 묘호(廟號)와 능호(號)를 가진다. 성명학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부르도록 한 것은 이름을 귀히 여기는 존명 사상 때문이다. 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국휘(國諱)라고 하고, 존속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했다. 자와 호가 없는 일반인들도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꺼렸기에 ‘안동댁’ 같은 택호(宅號)를 두어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이름이 여럿이듯 땅의 이름인 지명도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네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에 별칭이 따로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지명 왜곡은 차원이 다르다.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말살하고자 획책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군을 317개에서 220개로, 면은 4322개에서 2518개로 축소하는 어마어마한 행정개편을 단행했다.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이루던 우리의 마을 방(坊)을 폐지했다. 서울은 186개의 동(洞)-정(町)-통(通)-정목(丁目)으로 정리했다.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북촌은 동으로, 일본인이 모여 살던 남촌은 정으로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 본정통(충무로), 황금정(을지로), 명치정(명동)이 이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일본 황태자가 서울에 와서 머문 것을 기념한다면서 ‘황공하게도 다녀가셨다’는 의미의 어성정(御成町·남대문)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술집과 찻집이 많던 다동을 일본식 다옥정(茶屋町·다동)이라고 개악했다. 일본군 육군대장의 이름을 따서 장곡천정(長谷川町·소공동)이라고 명명하거나,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대화’를 넣어 대화정(大和町·남산)이라고 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부지기수로 붙였다. 22년간 지속된 동-정-통-정목 제도는 1936년 경기도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 지역이 서울(경성)로 편입되면서 모조리 정-통으로 통일됐다. 서울의 면적은 4배가 늘었고 186개의 동-정-통이 259개의 정-통이 됐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마포구 등 8개 행정구가 생겼다. 원동이 원서정, 동세교리가 동교정, 아현북리가 북아현정, 홍제내리와 홍제외리가 홍제정, 한지면 신촌리가 응봉정, 수철리가 금호정, 두모리가 옥수정, 동막상리가 용강정, 동막하리가 대흥정, 여율리가 여의도정으로 각각 변경됐다. 역사와 문화가 깃든 우리 지명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절정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남대문을 거쳐 원효로를 따라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을 그들이 내세우는 ‘욱일승천기’에서 ‘해돋을 욱’(旭) 자를 따 욱천이라고 마음대로 바꿨고, 흑석동 일대에 고급 주택을 지어 분양한 일본인 업자가 붙인 주택단지 명수대를 지명화했으며, 노들섬을 중지도라고 명명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이름이 표기된 단 두 개의 길 이름도 퇴출당했다. 육조대로(광화문광장)와 운종가(종로)라는 양대 지명의 소멸이다. 육조가는 의정부와 육조가 자리한 관청거리였고, 운종가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던 시장거리였었다. 일제는 유서 깊은 지명을 역사와 지도에서 지워 버렸다. 개천을 청계천으로 개명하거나, 인왕산(仁王山)의 한자를 엉뚱하게 인왕산(仁旺山)이라고 고친 것도 역사 말살의 속셈이었다. 해방 후 육조대로와 운종가를 왕조의 유물로 생각해 원상 회복시키지 않은 것은 후회막급이다. 삼각산이나 백악산이라는 정기가 깃든 아름다운 이름도 되돌리지 않았다. 태평로를 닦느라 고갯마루가 사라진 세종로 네거리 황토마루(황토현)의 이름도 청사에 남겼어야 했다. 우리의 조급함이 문제였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김승열 지음, 온라인리걸센터출판부 펴냄) 법조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은 현직 변호사가 다양한 주제의 사회 현안들을 알기 쉽게 분석한 책. 외국 법률, 판결 등과 비교하며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지를 쉽게 풀어 쓰고 해법을 제시한다. 355쪽. 1만 4000원. 생각하는 식탁(정재훈 지음, 다른세상 펴냄) 우리가 일부러 찾아 먹거나 건강을 위해 피하는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약학을 전공한 저자는 다양한 음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는 것은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유리하다면서 문제는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288쪽. 1만 4000원.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서정철·김인환 지음, 김영사 펴냄) 40여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100여점의 고지도와 다양한 고문헌들을 동원해 동해의 역사적 정당성을 증명한다. 동해는 2000년 전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이 사용해 온 토착명이며 일제강점기에 국제수로기구에 등재된 일본해는 100년이 되지 않은 외래명이라는 등의 주장이 명쾌하다. 356쪽. 1만 8000원. 여섯번째 대멸종(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이혜리 옮김, 처음북스 펴냄) 지난 50억년간 지구는 5차례의 대멸종을 겪으며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줄었다. 우리 인류가 왜, 어떻게 지구를 힘든 상황으로 계속 몰아넣고 있는지를 유쾌한 문체로 고발한다. 지질학자, 식물학자, 해양 생물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과 직접 조사 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344쪽. 1만 7000원. 머리에 꽃 이고 아리랑(최은진 지음, 난다북스 펴냄) 서민의 애환이 담긴 1930년대 만요(漫謠)를 복원하고 직접 부르는 ‘풍각쟁이 가수’가 트위터를 통해 풀어낸 인생의 아포리즘을 한권에 엮었다. 북촌의 문화살롱 ‘아리랑’을 지키며 노래하듯 시를 쓰고 시를 쓰듯 노래하는 그가 부른 근대가요 13곡이 담긴 CD음반도 수록했다. 206쪽. 1만 7800원.
  • 美중고생 한국문화 체험

    미국 중고교생 21명이 서울 가정에서 머물며 한국 문화와 생활을 체험한다. 노원구는 15일부터 10박 11일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 공립중·고교생을 초청해 청소년 국제교류를 진행한다고 14일 밝혔다. 베이커 중학교, 마운틴 타호마 고등학교, 포스 고등학교의 한국어반 학생 21명과 교사 4명은 지역 가정에서 체류하는 동안 청원여고, 영신여고 등에서 한국 학교생활을 경험하고 노원문화원의 문화재탐방교실에 참여한다. 수락산 국궁장에서 국궁체험과 경복궁,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 등에서 한국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돌아본다. 동대문 클라이브에서는 K팝 공연을 관람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문화의 향기 가득한 우리 동네] 서촌, 한옥 공동체에 빠지다

    조선시대 세도가들의 집성촌이 ‘북촌’이라면 ‘서촌’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때문에 북촌처럼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서촌엔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한옥 722동이 오롯이 남아 있다. 서울시는 10일 종로구 체부동·효자동·통의동 등 서촌(세종마을) 일대 102㎡에 대해 주민 주도로 마을 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허물고 부수는 재개발·재건축 중심에서 벗어나 기존 건물을 유지하면서 주민들 스스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프로젝트다. 시는 올해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과 주민 간 교류 프로젝트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업을 먼저 추진하고 내년부터 공동주차장과 폐쇄회로(CC) TV 설치 등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을 벌인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세종마을에 자리한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3명 이상 제안을 하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지원대상 사업은 스토리텔링 구축, 마을공동체 조성, 마을특화 등이다. 사업 제안을 희망하는 사람은 시 홈페이지에서 사업계획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시 현장소통방에 내면 된다. 선정되면 1개의 사업에 최대 1000만원이 지원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동화발레 연극 ‘피터와 늑대’ 북촌아트홀서 23일부터 공연

    동화발레 연극 ‘피터와 늑대’ 북촌아트홀서 23일부터 공연

    동화발레 연극인 ‘피터와 늑대’가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 창덕궁 옆의 북촌아트홀에서 23일부터 한달간의 일정으로 공연에 들어간다. 동화발레 선구자인 조승미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 ‘피터와 늑대 & 발레 하이라이트’ 공연이며 2007년 이후 7년 만에 무대에 올려진다. 조승미발레단이 매년 전국 공연에 나서는 이 공연은 발레와 클래식 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익살맞고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다. 극단 측은 “발레 공연에 친숙하지 않은 어린이와 부모도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편하게 즐기는 맞춤형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1부에서는 유명 발레들에 해설을 곁들인 발레 하이라이트가, 2부에선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음악동화에 발레를 안무한 ‘피터와 늑대’가 진행된다. 공연 내용은 돈키호테 중의 ‘키트리 친구’와 호두까기 인형의 ‘중국춤’,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양치기’와 ‘파랑새’, ‘발레마임’으로 구성됐다. 작품을 연출한 김계숙 조승미발레단장은 “소극장 공연은 발레리나와 배우의 숨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피터와 늑대’는 러시아 작곡가인 프로코피예프(1891~1953)가 작곡하고 대본을 쓴 음악동화다. 피터와 동물 친구들이 늑대를 혼내주는 모험여행을 담았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역문화예술공간 활성화 프로젝트사업 선정작’으로 뽑혔었다. 북촌아트홀은 ‘국악 뮤지컬 노빈손 훈민정음을 찾아라’ ‘뮤지컬 애기똥풀’ ‘천로역정’ 등을 공연하는 북촌의 문화공간이다. 공연 시간은 수·목·금·토요일 오후 2시. 공연가 2만원(학생·단체는 특별 할인). 기아대책과 다문화가정문화지원단이 후원한다. 문의 (02)988-2258. 정기홍 기자 hong@seoul.co.kr
  • 빌딩숲 사이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을 만나다

    빌딩숲 사이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을 만나다

    늘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빼곡한 빌딩숲 사이에도 지금의 서울을 있게 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히 우리 곁에 있다. 30일~7월 4일 오후 9시 30분 EBS ‘한국기행’에서 권기봉 작가와 함께 서울을 거닐며 그 현장들을 만난다. 조선시대 때 왕족이나 고위 관료들이 거주했던 북촌 한옥마을은 하루에도 수백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30일 1부에서는 북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맹사성 대감의 집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을 내려다보는 곳 등 북촌팔경을 감상해 본다. 조선시대 한성의 역사를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봄여름이면 한양 사람들은 짝을 지어 성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고 적혀 있다. 선조들은 이를 ‘순성놀이’라 했다. 인왕산, 백악산, 낙산, 남산. 이 네 개의 산을 기점으로 약 18㎞ 길이로 축조된 서울 한양 도성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울의 달동네 장수마을을 만날 수 있다. 7월 1일 2부에서는 30년 넘은 라디오, 4호선 개통식 때 받은 최초의 전철 표 등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오광석 할아버지의 집과 마을 잔치를 위해 다 함께 음식 장만을 하는 동네 사랑방 등 구수한 옛이야기가 흐르는 정겨운 곳을 찾아간다. 2일 3부에서는 왕의 길을 걷는다. 정사에 지친 왕이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 있다. 1000여종의 수종이 분포된 창덕궁 후원.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수많은 왕이 사랑했던 공간이다. 왕이 걸었을 궁궐의 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천상선계(天上仙界)라 불리며 모든 사람이 경치를 구경하고 싶어 했던 경회루의 밤을 만나 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화단신]

    한국작가회의 현대문학 강좌 마련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가 한국 현대문학의 문제작을 중심으로 우리 문학을 굽어볼 수 있는 16강의 강좌를 마련했다. 오는 13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리는 1기 강좌에서는 신경림의 ‘농무’(1974),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1997),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1985) 등을 공부한다. 작품을 쓴 작가들이 직접 출연해 작품 얘기를 들려주고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곁들여진다. 김연수, 김경주, 공지영, 고은 등이 참여한다. 모집 인원은 매학기 선착순 80명이며, 작가회의 홈페이지(www.hanjak.or.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분기별 20만원. (02)313-1486. 시각장애인 콘서트 ‘세종과 지화, 춤을 추다!’ 시각장애인들이 국악기의 선율에 맞춰 뜨거운 몸짓을 피워올리는 무대가 오는 25일 북촌창우극장에서 열린다. 세종대왕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국악 밴드 비단의 국악 연주, 시각장애인의 춤이 어우러진 콘서트 ‘세종과 지화, 춤을 추다!’이다. 공연에는 역사 전문가의 강연도 이어져 역사에 대한 이해와 입체적인 감동을 전한다. 1만 5000원. (070)4046-8854.
  • ‘고승덕 영주권’ 의혹 제기에 고승덕 측 “조희연 후보 사과하라”

    ‘고승덕 영주권’ 의혹 제기에 고승덕 측 “조희연 후보 사과하라”

    ’고승덕 영주권’ 의혹 제기에 고승덕 측 “조희연 후보 사과하라” 6.4 서울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첫 주말인 25일 후보들은 시내 곳곳을 누비며 휴일 표심잡기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문용린 후보는 이날 오후 창천동 ‘문용린 행복캠프’에서 ‘대한민국올바른교육감추대전국회의’(올바른교육감)가 보수단일 후보로 추대한 조전혁(경기), 이본수(인천) 후보와 함께 ‘서울·경기·인천 보수단일후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 후보는 이 자리에서 공동 공약으로 ▲ 수도권 교육안전 마스터 플랜 수립 ▲ 교육의 본질 바로 세우기 ▲ 선생님과 함께 하는 행복교육 추진 등을 내걸었다. 공동 공약에는 ‘수도권 교육안전 협의회’를 구성하고 학교폭력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며 자유민주주의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고 혁신학교를 폐지하며 일반고 살리기 공동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등의 세부 내용이 담겼다. 세 후보는 회견을 마치면서 교육 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이용이나 이념적 개입과 네거티브 행위에 반대하며 절약 선거를 지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고승덕 후보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역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휴일 나들이를 나온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또 상수역에서 홍대입구역과 북촌 한옥마을을 거쳐 저녁에는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역에서 거리유세를 펼치며 소중한 한 표를 당부할 계획이다. 조희연 후보는 아침 일찍부터 구의동 아차산 입구에서 휴일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과 악수를 하며 지지를 호소했고 이어 아차산 영화사를 찾아 신도들과 만났다. 또 어린이대공원 입구에서 어린 자녀와 휴일 나들이에 나선 유권자들과 만난 뒤 저녁에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 앞에서 유세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조 후보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승덕 후보가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켜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고 고 후보 자신 또한 미국에서 근무할 때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조 후보는 “만약 제보가 사실이라면 자신의 자녀는 미국에서 교육시켰으면서 대한민국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고 후보는 ‘조희연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글을 통해 “(미국에서) 2년간 일한 로펌회사 베이커앤맥켄지에서 더 일하라고 하면서 영주권을 받으라고 권유했지만 영주권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두 자녀에 대해서는 미국 유학시절 태어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처와 결별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게 됐다. 미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원만하게 합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 후보는 조 후보에 “교육감 선거는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교육감선거를 혼탁하게 만든 데 대해 저에게는 물론 서울시민에게 사과해달라”고 요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이중도시 서울, 북촌·남촌에서 강북·강남으로 양분화 조선 내내 사대문 안 북촌과 남촌의 양촌 체제가 공고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이 중국의 천자나 일본 천황과 같은 황제에 오르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고서 북촌 체제의 중심인 경복궁을 버리고 서촌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겨 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국 500년 만에 나라의 중심이 백악(북악)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서 종로를 넘고, 청계천을 건너 서울시청 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이러한 정치권력의 공간이동은 이후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없던 태평로를 서울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경복궁 안에 건립돼 정치권력은 북촌으로 회귀했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권력은 태평로에 남았다. 확장된 경제권력이 1970년대 한강을 넘어 강남과 여의도를 향해 중심이동하기 전까지. 강남으로의 팽창과 더불어 서울은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강북에 남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경제자본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강을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서울이 강북 사대문 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서울은 강남이 됐다. 사대문을 남북 체제로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던 개천(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남·북촌이 하나로 통합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돼 버린 것이다. 서울의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옮겨 간 셈이다. 도시사학 분야에서 ‘이중 도시’(Dual City)의 개념은 식민지를 경험한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 도시는 토착 집단에 대한 외래 집단의 지배 공간이었고 양자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공간적 격리로 나타났다. 대체로 토착민들의 자생적 주거지는 전통적·전근대적 성격을 띠었고, 식민권력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주거지는 근대적·서구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민지 권력은 외래 식민집단의 주거지를 토착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분리시켜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주거지로 만들어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문명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양분 정치적 기획의 산물인가, 체제경쟁의 산물인가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북악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북촌, 낙산 아래 동촌, 인왕산 아래 서촌 그리고 남산 아래 남촌과 청계천변 중촌이 서로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식민 시기 경성은 일제의 의도적인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서 남·북촌 체제로 양분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서·남·북촌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울린 사색붕당(四色朋黨)이 식민지 사관의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다른 풀이도 있다. 안창모(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계천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계획도시로 출발한 한양이 6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을 품에 안고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견상 인구는 100배 이상 증가했고, 면적도 30배 이상 확대됐다. 600년 시차를 가진 조선의 한양과 한국의 서울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서울은 계획됐다기보다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는 방편으로 확장됐고 결과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변화 배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강남 개발은 서로 얽혀 있다. 비록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이지만 1976년 건설된 잠수교로 말미암아 한강은 서해 뱃길이 끊어지면서 자연 울타리가 됐다.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요새화 차원에서 뚫린 3개의 남산터널과 정부청사의 과천이전 등은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서울의 도시구조 변화에 남긴 대수술 자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건설로 강남이 개발돼 현대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나뉜 것도 결국은 남북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어떻게 분열됐을까 서울은 식민시기 어떤 분열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인의 서울 진출과 일본인 거류지의 형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공사관은 1880년 서대문 밖 천연동 청수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임오군란 때 소실되자 1884년 교동 박영효 저택에 공사관을 지어 사대문 깊숙이 진출했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 와중에 또 타버렸다. 1885년 남산 아래 예장동으로 옮긴 뒤부터 식민지배 권력의 본거지가 됐다. 남산과 일본을 잇는 역사의 끈은 질기고도 질겼다. 일본 사신이 묵었던 왜관(동평관)이 조선 초 자리 잡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7년 동안 진지를 구축한 왜장대가 있었다. 개항기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공사관을 사대문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개천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 따지듯 북남유별(北南有別)을 따졌지만, 결과는 남북 역전으로 나타났다. 남촌은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메인스트리트였다. 조선 신궁(남산식물원)이 일본 정신을 상징했고, 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헌병사령부(남산한옥마을)가 무력통치를 상징했다. 일본인 거주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 일대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하여 조선의 유일한 동서 간 대로인 종로를 대신했다. 일제는 황토마루(黃土峴)를 광화문통, 구리개(을지로)를 황금정(黃町), 명동을 명치정(明治町), 소공동을 장곡천정(長谷川町), 다방골(茶洞)을 다옥정(茶屋町)으로 멋대로 바꿔 버렸다. 남촌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우체국(중앙우체국)이 들어서고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히라타(平田)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2~4층의 현대식 상점 진열대에는 일제와 서구 외제 상품이 휘황찬란한 전등불 아래 진열됐다. 도로는 포장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식재됐다. 광고탑과 마네킹,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본정통은 식민지 서울이 아니라 도쿄를 여행하는 듯했다. 지금의 강남 격이다. 한국인이 상권을 쥐고 있던 종로통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1935년 시인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번화로운 거리여/내 고향 종로여/웬일인가/너는 죽었는가/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라고 외쳤다. 별건곤 1930년 6월호에서 김화산은 “달리는 차, 매연, 여자의 스커트, 자욱한 연애, 주머니 속의 1전짜리 동전, 비애, 주점, 여자에 대한 증오, 정거장, 잡다한 사상을 가진 군중, 쇼윈도, 밤의 샹들리에와 카페의 홍수, 길에 버려진 영화광고지…”라면서 남촌의 화려함을 묘사했다. 당시 경성은 전차 120여대, 자동차 250여대(관용차와 자가용 제외), 승합차 70대, 버스 40대가 뒤섞여 달리는 혼잡한 대도시였다. 식민지 통치권력과 외국 자본에 의해 서울 사람은 서울의 객이 돼 버렸다. 1936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과 시흥군, 김포군이 서울로 각각 편입됐다. 고양군 용강면(오늘의 공덕동, 아현동)과 연희면(신촌), 은평면(홍제동), 숭인면(성북동, 청량리), 한지면(이태원, 서빙고)이 서울 땅이 됐다. 시흥군 영등포와 노량진, 상도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서울의 팽창은 인구 집중과 더불어 지역 분화를 재촉했다. 동소문 일대 주택지대를 문화촌이라고 했고, 광희문 밖 신당동에는 달동네가 형성됐다. 정동 일대에는 서양인촌이, 용산 일대에는 공업촌, 서울역과 봉래동 일대에는 노동촌, 다동·청진동·관철동 일대에는 기생촌 등 특수촌이 형성됐다. 홍제동, 돈암동, 아현동에는 경성부가 운영하는 토막 수용 시설이, 종로와 본정통, 명치정, 장곡천정에는 다방과 카페, 영화관 같은 유흥업소가 밀집했고, 쌍림동에는 유곽이 있었다. ●서울·지방 나누듯 서울도 신분 따라 거주지 나눠져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서울(사대문)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오촌(동·서·남·북·중촌)과 양대(윗대·아랫대), 자내(성밖 거주지)와 오강(한강변 거주지) 지역의 문화가 달랐다. 18~19세기 양반문화만 놓고 보아도 동서남북 사촌이 다 달랐고, 그들 사이에는 쉬 해소될 수 없는 차별의식과 적대감이 가로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은 조선 500년 내내 유일한 도시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양이라는 도시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눠졌다. 중엽 이후 서울과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막히면서 경인(京人)과 향인(鄕人)의 차이가 벌어졌다. 지방 출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말씨와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골 선비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영조 대 이후 지방 출신을 과거급제자에 할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종 때 서울내기 군관이 시골뜨기 예조좌랑(교육부 사무관급)을 멸시하고 구타하는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졌듯 서울도 나눠졌다. 궁궐 주변인 북촌과 동촌, 서촌에는 고관대작과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전, 겸인배(집사)들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는 쇠락한 양반이나 무반이 거주했고, 인사동과 청계천 주변에는 역관이나 의관, 화원 같은 중인들이 중촌을 이뤘다. 상민은 윗대나 아랫대 혹은 사대문 밖 자내, 오강에 터전을 잡았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 정보가 새겨졌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제주 폐기물 처리시설 구좌읍 동복리에 건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주민들이 광역 폐기물처리시설로 매립·소각장인 제주환경자원센터 유치 결정을 내렸다. 30일 제주시에 따르면 동복리 주민들은 지난 29일 임시총회를 열고 제주환경자원센터 유치 건을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 마을에 주소를 둔 주민 490명 중 258명이 투표에 참가해 찬성 180표, 반대 70표, 무효 8표로 유치를 결정했다. 이들 주민은 “환경오염에 안전한 시설임을 확인했기에 주민의 뜻을 모아 제주환경자원센터를 유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당초 쓰레기 관련 혐오시설이란 선입견으로 반대 입장이었지만 도민사회의 현안이자 어딘가에는 필요한 환경기초 시설인 점을 고려했고, 선진 환경자원화 시설 등을 견학해 쓰레기 매립 및 소각장이 아닌 자원을 회수하는 시설임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동복리 마을회는 이날 제주시에 제주환경자원센터 유치서를 공식 제출, 제주도와 제주시가 추진하는 폐기물처리시설 이전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제주도와 제주시는 인접 마을인 북촌리 주민들에게도 이 같은 내용을 알리고 폐기물 처리시설 이전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할 방침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그레그 스미스 지음, 이 새누리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월가(Wall Street)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12년간 일한 저자가 풀어놓은 월가의 자화상. 유럽·중동·아프리카의 미국 에쿼티 파생상품 책임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닷컴버블, 9·11테러,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뿌리가 헤지펀드의 영역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 2012년 더 이상 고객을 기만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면서 뉴욕타임스에 월가의 관행을 폭로하고 골드만삭스의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책은 칼럼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월가는 비대칭적인 정보를 통해 투자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항상 지켜본다. 그리고 이들의 두려움과 탐욕을 이용해 100% 수익을 올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투자자는 항상 지는 게임만 할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가 고객을 ‘멍청이’라 부르며 ‘흡혈 오징어’가 되어가는 과정, 직원을 실적에 따라 해고해 버리는 ‘행군명령’ 등을 생생하게 그린다. 400쪽. 1만 8000원. 콤플렉스(할 포스터 지음, 김정혜 옮김, 현실문화 펴냄) 오늘날 명사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인 건축가를 ‘스타 건축가’(starchitect)라고 부른다. 최근 개관한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보듯이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프린스턴대 미술사·고고학과 교수이자 저명한 미술 비평가인 할 포스터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 또는 이미지 노릇을 하는 스타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는 렘 쿨하스, 노먼 포스터,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자하 하디드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건축가들이 펼쳐놓은 건축물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이미지 만들기’를 든다. 건축이 미술처럼 보이고, 미술이 점점 건축처럼 보이는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라는 진단과 함께 건축과 미술이 뒤섞인 콤플렉스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묻는다. 그는 이들 건축가의 작품이 지닌 또 다른 특징으로 ‘글로벌 양식’을 꼽는다. 공학적 성과물이기도 한 건축물들은 거대하며, 가볍고, 투명하고, 아이콘 성격이 짙지만 그 이면에는 교묘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자리한다고 꼬집는다. 392쪽. 2만 8000원. 작은 한옥 한채를 짓다(황인범 지음, 돌베개 펴냄) 북촌에 이어 새로운 한옥 마을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 체부동에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가 12평짜리 고졸한 한옥 ‘어락당’을 마련했다. ‘서촌 파 교수댁 어락당 탄생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어락당의 대수선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직접 이 집을 세우고 만든 도편수, 즉 한옥 공사현장의 책임자가 6개월간 현장에서 남긴 메모 800여개와 수천장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옥이 지어지는 얘기를 전한다. 저자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나 전공과 무관하게 1997년 목수에 입문해 사찰과 향교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재 신축 및 수리현장에서 일해 왔다. 사찰의 살림집인 요사채를 짓다가 2010년부터 서촌에서 한옥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채의 한옥을 지으며 아주 기본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전통과 현재의 괴리였다. 현대인의 일상에 들어온 한옥은 전통 건축의 장점은 존중하되 최적화된 살림집이어야 한다. 책에는 그런 고민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풀어간 과정과 그 결과로 1930년대 도시형 한옥의 원형으로 되살아난 어락당의 탄생 과정을 담았다. 336쪽. 1만 8000원.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펴냄) ‘열하일기’ ‘동의보감’ 등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해 온 저자의 근대성 탐사 보고서. ‘계몽의 시대’ ‘연애의 시대’ ‘위생의 시대’로 이뤄진 3부작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근대 계몽기 신문 매체를 주요 사료로 삼아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근대적 삶의 양식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디지털 문명이 고도화한 현재에도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20세기에 갇혀 있다며 근대성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1권 계몽의 시대는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을 다뤘다. 시간은 곧 돈이며 목표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라는 의식이 기차의 운행방식과 닮았음을 보여준다. 2권 ‘연애의 시대’는 근대 계몽기 여성성과 연애 관념이 새롭게 만들어진 연원에 초점을 맞췄다. 3권 ‘위생의 시대’는 우리의 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위생 관념을 체화하고 청결 강박증에 빠졌는지를 계보학적으로 짚어본다. 각권 224~296쪽. 1만 3000~1만 4000원.
  • “김치전 만들며 엄마나라 문화 알고 싶어요”

    “김치전 만들며 엄마나라 문화 알고 싶어요”

    “어느 날 아들이 할아버지와 아빠는 왜 피부색이 다르냐고 묻더군요. 좋은 양부모님을 만났고 입양인이라고 차별받는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를 수 있더라고요. 같은 입양인으로서 그들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어요.” 노르웨이로 입양돼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는 교포 닥 루드(42)씨는 23일 이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는 “아들의 질문에 나도 입양인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들에게 입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더니 ‘맞아. 할아버지와 아빠는 피부색은 달라도 오줌색은 같아’라고 깔깔댔어요”라며 웃었다. 어린 시절 역시 노르웨이로 입양된 부인과 결혼한 그는 “해외 입양자 대부분이 모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서울 종로구가 해외 입양자와 외국인 가족들을 초청해 뜻깊은 행사를 갖는다. 해외 입양자들에게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주고 모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구는 25일 노르웨이로 입양된 교포 및 가족 55명과 북촌, 광장시장, 떡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홀트 해외입양가족 전통문화체험’을 실시한다. 비빔밥과 김치전 만들기, 한복 체험, 단청 액세서리 만들기, 무형문화재 관람, 서양화가 고희동 가옥 견학, 전통재래시장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골목길 해설사와 함께 북촌 일대를 거닐며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에 대한 풍부한 설명도 듣는다. 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2009년 홀트아동복지회와 문화관광 교류협약을 맺고 해외입양 동포에게 모국의 정서를 느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 5개국 입양 가족 1125명이 18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구 관계자는 “친부모를 만나려는 입양자에게는 만남을 주선하고 여의치 않으면 위탁모와 만나기도 한다”며 “해외입양 동포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조선시대 한양은 ‘경조 5부’ 행정구역으로 구분 오늘의 서울에도 강·남북이라는 지역 차가 실재하지만, 전통적으로 서울은 지독한 지역색이 작용하던 도시였다. 대개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양태를 보였다. 조선 500년 내내 개천(청계천)을 경계로 북쪽과 남쪽 두 개 구역으로 양분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거주지역과 남산아래 본정통(충무로) 중심의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진화했다. 광복 이후 갈라진 좌우 이데올로기는 결국 국토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끊어놓았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전개된 남·북한의 체제 안보경쟁이 강남개발을 촉발했다. 이때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양분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두 개의 도시로 이뤄졌다. 서구개념으로 치면 강북은 구도심(Old Town)이요, 강남은 신도심(New Town)이다. 한강은 나루터와 나룻배가 사라진 대신 다리로 촘촘하게 이어졌지만 두 도시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격차도 심화된 느낌이다. ‘한강의 기적’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한강 이남의 초고속 성장사였다. 양극화는 한강을 사이에 둔 남과 북 양극에서 빚어진 현상일 수도 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만큼 문화적 이질성도 고착화하고 있다. 몇 년 전 조사에서 강남과 강북 아파트의 평균매매가 차이가 3.3㎡당 무려 1337만원이었다. 강남이란 ‘나’와 ‘남’이 다름을 보여주는 주거의 ‘차별 짓기’를 통해 몸값을 부풀린 아파트 왕국이다. 서울 강남·북을 뺨치는 지역색이 조선시대 한양에 존재했다. 도시학자들은 서울을 전통도시와 근대도시가 공존하는 ‘이중 도시’(Dual City)로 분석한다. 도시사학적 시각에서 서울의 공간적 특성을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본다면 근대 이전 서울은 남촌과 북촌으로, 근대 이후는 강남과 강북으로 양립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서울시청)는 ‘경조 5부’(京兆 5部)라고 하여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다. 오늘날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경기도 시흥·과천·용인·광주였다가 서울로 편입된 한강 이남 10개 구를 제외한 한강 이북 15개 구 가운데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종로·중구·서대문·동대문 등 4개 구가 옛 경조 5부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나눠보면 북부는 경복궁~창덕궁 사이, 동부는 창덕궁~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돈의문~숭례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흥인지문 사이쯤이다. 5부(部)가 곧 5촌(村)이다. ●사색당파, 제사·옷고름·갓끈 등으로 차별화 경조 5부 가운데 북부(가회동·계동·안국동·재동·경운동)와 동부(이화동·동숭동·혜화동·충신동)를 북촌체제로, 서부(정동·새문안)와 남부(필동, 묵동, 남산동·주자동, 인현동)를 남촌 체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천을 경계선으로 긋는다면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리고 그들을 돕는 아전(衙前) 및 겸인(?人)들의 주거지구였다. 개천부터 목멱산(남산)까지 남쪽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별 볼 일 없는 무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서울연구가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남촌 사람들은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즐겼고, 북촌 사람들은 떡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속담은 두 구역 사람들의 기질이나 처지가 그만큼 달랐음을 일러준다”고 분석했다. 동·서·남·북촌이 양반이나 관료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는 아전들의 거주구역이라면 중촌(中村)은 중인(中人)들의 터전이었다. 의관, 역관, 율사, 화원, 도사 등 중인에다 상인, 군속들이 중부(다동·무교동·수표동, 입정동, 주교동, 관수동) 일대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의 을지로와 청계천변이라고 보면 된다. 중인이란 용어도 중부 혹은 중촌에 사는 사람에서 생겼다. 케케묵은 조선의 행정구역인 경조 5부를 들먹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인이 사는 중촌을 제외한 4개의 양반 촌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 사색당파(四色黨派)가 발원했기 때문이다. 동인의 거두 김효원(1532~1590)이 낙산 아래 동촌에 산다고 하여 그 일파가 동인(東人)이 되었으며, 이에 맞선 심의겸(1535~1587)이 인왕산 아래 서촌에 살았다고 하여 서인(西人)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동인 중 남산 아래 진고개에 사는 일파가 남인(南人)이 되었고,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거주하는 몇몇이 북인(北人)을 형성했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리됐다가 노론이 영조와 정조를 거쳐 고종에 이르기까지 150년 이상 득세했다. 노론의 거주지가 이른바 북촌이었다. 풍수에서 한양의 최고 명당은 백악 아래 경복궁이었다. 다음이 응봉 아래 창덕궁과 종묘, 성균관 자리다. 백악과 인왕산 사이 장동·청류계·백운동·옥류동·인왕산동도 빠지지 않았고, 백악과 응봉 사이 지금의 율곡로 일대도 최고 길지의 하나였다. 남산을 바라보는 풍광이 좋고 터가 넓어 권문세가들이 큰 집을 짓고 교류했다. 이에 비해 남산골은 음지였으나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가 풍부해 하급관리들이 살 만한 곳으로 쳤다. 고종 대인 1864년부터 1887년까지의 기록인 ‘매천야록’에서 황현은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이 섞여서 살았다”라고 썼다. 조선 말기 북촌에는 노론이 살았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주로 남촌에 어울려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붕당(朋黨)은 제사 모시는 법, 옷고름이나 갓끈 매는 법을 서로 달리 하면서 차별 짓기를 했다. 사화(士禍)가 이 같은 지역색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금의 강·남북 구별 짓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서촌은 새문안·정동, 상촌이나 윗대로 불러야 서울의 지역색과 구역분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1924년 발행된 개벽 6월호 ‘경성중심세력의 유동’에서 소춘은 “경성은 오촌(五村), 양대, 자내(字內), 오강(五江)으로 나뉜다”라고 주장했다. 조선후기 들어 신분과 계층이 세분화되고 신분에 따라 거주지역이 정해진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오촌은 경조 5부의 지역공간과 겹친다. 양대는 윗대(웃대)와 아랫대로 나뉜다. 윗대는 상촌(上村)이라고도 했는데 경복궁 주변의 육조 관아가 있던 사직동·내자동·당주동·도렴동·체부동·순화동·통의동에 살던 아전이나 겸인, 내시의 거주지를 일렀다. 아전이란 ‘관아 앞에 사는 사람’이라는 조어였고, 겸인은 권문세가의 경호원 또는 비서격이었다. 이들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 궁을 드나들었다. 인사동을 중심으로 중촌에 살던 중인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정교는 ‘대한계년사’에서 “상촌인은 평민 중에서 각 부의 서리 및 공경가의 겸인이 되는 자인데, 그들은 평민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라고 칭한다”라고 했고, 정래교는 ‘임준원전’에서 “경성의 민속은 남과 북이 다르다. 백련봉 서쪽에서 필운대까지가 북부인데 주로 가난한 집들로 얻어먹는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때때로 의협 있는 무리가 의기로 서로 사귀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며, 약속을 중히 여긴다. 또 시인 문사들이 시를 다투었다. 풍속이 그러했던 것이다”라고 윗대의 풍속을 평했다. 또 이가환은 ‘옥계청유첩서’에서 “경복궁의 남쪽은 육조이다. 그 서쪽은 좁은 땅이다. 때문에 서리들이 많이 살며 일에 익숙하고 질박한 이 적다”라고 윗대의 지역을 구분했다. 요즘 서촌이라고 부르는 경복궁 서쪽지역이 바로 윗대이다. 일제강점기 옛 옥류동과 인왕산동을 강제로 합쳐 만든 새로운 동 이름인 옥인동 쪽으로 흐르는 옥계천의 상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촌에 빗대 서촌이라고 불렀지만 애당초 잘못된 지명이다. 서촌이란 조선시대 경조 5부 중 돈의문 부근을 지칭하던 지명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경복궁의 서쪽이라 하여 서촌이라고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북촌은 동촌이 돼야 할 판이다. 구태여 새로운 지명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윗대 혹은 상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아랫대(下村)는 중촌과 남촌 중간지대를 지칭하는데 지금의 오간수문~광희문 사이쯤이다. 이 일대에 자리 잡았던 어영청이나 훈련원 소속 군병들이 주민을 이뤘다. ‘개벽’(1924년 6월)에서 “우대(웃대)는 육조 이하 각사에 소속된 이배, 고직 족속이 살되 특히 다방, 상사동 등지에 상고 통칭 시정배가 살았고…아래대(아랫대)는 각종 군속이 살았으며 특히 궁가를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서편 누하동 근처는 대전별간파들이 살고…”라고 구역특징을 설명했다. 황성신문(1900년 10월 9일자)은 “사대부의 말투는 극히 화미절이하며,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며, 상촌사람들의 말투는 공경스러우며, 중촌사람들의 말투는 기민하며, 하촌사람들의 말투는 상스러우며…”라면서 조선말 오촌, 양대사람의 인적특성을 총정리했다. 자내란 한양도성을 쌓거나 보수, 경비하고자 한성부가 담당구역을 정한 구역을 말한다. 천자문의 ‘천(天)자’이면 이 글자가 적힌 구간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했다. 성안을 돌아다니며 계란이나 채소, 장작을 팔았고 분뇨를 퍼다가 가축을 키웠다. 오강은 한강과 용산, 서강 등 3강에 마포삼개와 망원을 합해 오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강주민들은 나루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루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공, 짐꾼이거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떼다 파는 기가 센 사람들이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서울 폐기·보류 공약 89개 대부분 개발사업… 9곳 ‘최우수’

    서울 폐기·보류 공약 89개 대부분 개발사업… 9곳 ‘최우수’

    북촌 한옥마을 기반시설 조성(종로구), 다국어 문화체험 거리 조성사업(관악구), 국립서울과학관 유치 공약(과학영재 육성) 사업(도봉구), 럭비구장 부근 인조잔디 축구장 조성(구로구)…. 민선 5기의 서울시 자치구들이 약속했지만 결국 폐기 처분된 공약들은 대부분 개발 공약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서울 지역 구청장들이 폐기·보류한 공약은 89개다. 도로·역사 건설이나 시설·상권 유치처럼 유권자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는 공약이 많았다. ‘일부 추진’으로 분류된 공약도 상당수가 경전철·테마공원 도입, 재정비 촉진 같은 개발 이슈들이다. 민선 5기 지자체장 임기가 두 달이 채 안 남은 시점임을 고려하면 이들 사업은 ‘지키지 못한 공약’이나 미완의 사업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서울 자치구들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총 18조 1953억원이 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말 기준 확보 예산은 14조 9070억원으로 81.9%에 그친다. 개별 사업별로 살펴보면 종로구의 북촌 한옥마을 기반시설 조성, 03번 마을버스 연장운행 공약은 폐기됐다. 성동구의 ‘우이~신설 뉴타운 경전철’ 왕십리역 연장추진 계획과 친환경 폐기물 종합처리 시설 건립 계획, 성북구의 글로벌 영어학습센터 설치 사업은 보류됐다. 도봉구의 국립서울과학관 유치 공약 사업, 관악구의 다국어 문화체험 거리 조성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폐기됐다. 노원구가 추진하려던 지하철 4호선 지하화 추진사업, 서대문구의 다목적체육관 건립, 홍제천 수변공원 조성은 보류됐다. 동작구의 노량진 민자역사 추진, 공군수송단 부지 내 서울 남숲 조성 사업은 일부만 추진되고 있다. 강남구의 한전·서울의료원 이전 부지 일대 복합개발, 서초구의 강남대로 지하도시 건설 사업은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중랑구는 공약 이행이 부진한 하위 33개 지자체에 포함됐다. 서울 25개구의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한 구 평균 약 1조 1210억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악구(약 3조 4327억원), 중랑구(약 2조 2716억원), 노원구(약 1조 8377억원) 순이었다. 은평구(322억원), 종로구(916억원), 서대문구(1254억원) 등 서북 지역은 예산 하위 3구에 들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약 내용 변경이나 조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재계약을 하는 등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서촌 vs 세종마을/진경호 논설위원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왼쪽, 그러니까 서쪽에 있는 동네를 우리는 ‘서촌’(西村)이라 부른다. 조선 초기 인왕산은 서산(西山)이라 불렸고 경복궁 서편 사재감(司宰監)은 서영(西營)이라 했다.(박희용·이익주, ‘조선 초기 경복궁 서쪽 지역의 장소성과 세종 탄생’, 2012) 서촌은 경복궁 서편에서부터 인왕산 동편까지를 일컫는 말로, 서울 종로구 사직동과 통인동, 청운동, 효자동, 통의동 등 15개의 법정동이 여기에 속한다. 요즘 사람들은 경복궁 동편, 즉 삼청동의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맛을 즐기다 심드렁해지면 찾는 색 바랜 옛 동네 정도나, 가회동 등 북촌의 한옥들을 둘러보고는 내처 찾아볼 한옥들이 있는 동네쯤으로 여기지만 기실 이곳은 근·현대사의 영욕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곳이다. 성현의 ‘용재총화’(?齋叢話)나 김상헌의 ‘근가십영’(近家十詠),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등에 묘사된 조선시대 서촌의 아름다움은 옛일이고, 근대 들어서는 억압의 상징이 돼 온 곳이다. 광복 이후 지방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이 결정적으로 철퇴를 맞은 계기는 1968년 벌어진 1·21사태, 즉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20여년간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동, 통의동 등은 건물 높이가 10m로, 신교동 등 조금 떨어진 곳은 15m로 묶였고, 그 뒤로 90년대 말까지도 이런저런 규제에 짓눌려 온 곳이다. 권력 가까이 붙어 산 죄(?)로 30년 이상을 갖은 ‘핍박’ 속에 지내온 셈이다. 2004년 6월 서울시의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과 2010년 한옥보전진흥대책 등 개발과 규제의 정책들이 뒤엉킨 뒤로는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개발과 보전을 놓고 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들의 3각 갈등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2011년 들어서는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이 일대를 ‘세종마을’로 지정하면서 지역 명칭을 둘러싼 갈등마저 얹어졌다. 지금도 포털에 들어가 서촌과 세종마을을 검색하면 같은 지도가 펼쳐진다. 해가 지는 쪽, 즉 쇠퇴의 뜻을 담은 ‘서촌’을 버리고 세종대왕이 나신 곳임을 널리 알려 지역 위상을 높이자는 게 김 청장 등의 주장. 반면 다수의 주민들은 ‘서촌’이라는 이름이 지난 십수 년간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하나의 브랜드가 된 마당에 김 청장이 주민들 의견도 묻지 않고 멋대로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맞서 있다. 인터넷상의 사이버 전쟁도 한창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서촌의 내일이 지방자치의 내일이 될 듯싶다. 서촌과 세종마을, 무엇이 살아남아야 하는가. 자치에 답이 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가게주인이 광고주 ‘영문판 홍대 지도’

    가게주인이 광고주 ‘영문판 홍대 지도’

    지도 한 장에 음식점과 게스트하우스 정보를 다 담았다. 영문판 ‘한눈에 보이는 홍대 지도’다. 서울 마포구는 9일 이를 6만부 제작, 배부했다고 밝혔다. 홍익대 입구 쪽은 젊은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이들은 유명 문화재나 명소보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이색 먹거리, 놀거리를 찾아 헤맨다. 이들을 위해 관광안내소에 안내 책자를 비치했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더구나 관광홍보물 발간에는 예산이 투입된다. 빠듯한 살림에 무작정 발간량을 늘릴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다. 이색적인 가게들이 광고주로 나서 홍대 지도를 제작하게 하는 것이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의 가게를 널리 알릴 수 있어 좋고, 구는 홍보지도 제작비를 들이지 않아도 돼 좋다. 아울러 구청 같은 공공기관이 홍보물을 제작하면 아무래도 특정 업체 홍보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 주저함을 없앨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앞면에는 홍대 인근 상세 지도를, 뒷면에는 맛집과 숙박업소 광고를 실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이태원, 명동, 북촌과 인천공항에도 배포했다. 박홍섭 구청장은 “경의선, 공항철도가 홍익대 앞을 경유하면서 더 많은 외국인이 몰려들고 있다”며 “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PDF파일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했으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적극 알려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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