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평론가 이강숙씨(이세기의 인물탐구:85)
◎음악미학의 본질 꿰뚫는 이론가/찬사 일변도의 평을 거부,혹평으로 더 유명/“악기의 노예 만들지 말라” 어린이교육 경고/최근엔 그림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 발간해 눈길
이강숙(음악 평론가) 「타협을 모르는 직선적인 성격」「한국음악 발전을 위한 해박한 이론과 지식」「탁월한 지도력과 아이디얼리티」는 음악평론가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교장을 표현하는 수사들이다.그는 일관성없는 찬사일변도의 평을 거부하여 호평·혹평을 선명히 가리는데 앞장서 왔고 서양음악만이 음악으로 간주되는 인식변환을 위해 지난 90년 음악의 모국어를 탐색한 「한국음악학」을 출간했을 때는 「1백년 안에 나올 수 없는 역저」로 음악계는 온통 이를 찬사해마지 않았다.
「인간은 왜 음악을 하며 그것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고전음악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속에서 현란하게 변화해 가는 음악의 존재와 「자연의 심장은 모든 부분이 바로 음악」이라는 칼라일의말에 접근하면서 이 책은 「음악을 왜 하는가」란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하고 있다.
「상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하게 바라보는 그의 천부적 직관」은 음악과 관련된 작은 단서하나에도 결코 무심하지 않아 음악에서 「생명력」이 없거나 악보속에 숨겨진 기쁨과 슬픔을 발견하지 못하는 연주는 가차없이 혹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80년대초 전국의 교향악단이 참가하는 「교향악 축제」를 보고 「서울 지방간의 수준차를 절감하는 기회가 아니라 각기 다른 지방의 음악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을 촉구한 일과 당시 부산시향의 연주를 향해 「아무리 지방악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휘봉을 흔드는 법이 어쩌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일까」를 통박하고 「여운이 없는 소리,벽에 와서 부딪치기만 할 뿐 에코가 없는 소리는 죽은 음악에 불과할 뿐 연주자는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로 노래불러야 한다」고 강변하여 음악계를 크게 긴장시키기도 했다.
○“악기로 노래불러야” 강조
81년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 총감독으로 있을 때는 단원의 고질적인 타성을 개선한다는 차원에서 전대미문의 오디션단행으로 후유증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교향악단의 자질향상과 처우문제,유능한 지휘자 확보,관주도형 운영방식 탈피,연주횟수 증가 및 한국 창작곡연주 활성이라는 굵직한 업적을 이룩하여 「음악외적인 지도력과 괄목할 만한 수완」을 일사불란하게 발휘해 보였었다.
아동음악 교육에 대해서도 「유학만이 음악의 길인가」라는 평문을 통해 「어린이를 악기의 노예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스키너상자(상자)」를 인용한 「상자속의 생쥐」론에서는 「인간의 잠재의식속에 내재된 천재성과 의식적인 훈련의 모순성」을 상자속의 지렛대와 생쥐의 움직임에 비유하여 「실기 위주」의 음악은 「과열레슨,입시부정의 부작용을 초래할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또한 그가 개인의 힘으로 발간한 「낭만음악」을 음악교육 이론지로 정착시킨 점과 유진 올만디,존 케이지,바렌보임,푸르트벵글러등 세계 정상의 음악가들과의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은 원로 박용구씨에 의하면 「그만의 독자적 표현법이자 한국 음악평의 격조를 한단계 끌어올린 새로운 평론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자적인 표현… 격조 높여
그는 대체로 혹평을 꺼리지 않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에 관한한 「세계 어느곳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모든 조건을 구비한 연주자」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90년 「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의 전통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겉으로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안에서 흐르는 눈물이 홍수를 이룬다」고 무조건적인 편애를 감추지 않기도 한다.
그를 만나지 않고 그의 이름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작곡가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음악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이론가답게 그의 이미지는 얼핏 지나치게 반듯하고 원칙적이며 빈틈없어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훤칠한 키에 미남,경북 청도(청도)에서 태어나 경북중시절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타고난 미성에다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숙명여고 교사시절에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쇼팽」으로 불리기도 했다.박력있고 대범한 도시기질에다 어떤 논쟁에서도 양보하지 않는 특유의 고집때문에 「고집 그자체」도 그의 별명의 하나다.
○직선적 평… 신선한 충격
음대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와 형들(2남2녀중 막내)의 반대에 부딪쳐 홀로 집을 나와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했으나 「위대한 작곡가의 대부분은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임을 상기하여 대학 2학년 되던 해 피아노과로 전과했고 64년 임원식 지휘로 국향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전악장을 국내 초연,피아니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가 했더니 다음해 「사상계」가 모집한 신인작가 소설모집에 응모하여 다시한번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이청준의 「퇴원」에 밀려 소설이 탈락되자 「문학을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게 되어 한 일간지에 본격적으로 음악평을 게재하기에 이른다.
그의 특이한 지적 예리성은 음악미학의 본질을 원초적으로 연구분석하고 이를 정곡으로 꿰뚫어 문체의 일총(일총)과 현목(현목)의 영롱함을성취하면서 직선적이고도 정치된 이론으로 음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전망을 그때마다 제시하여 경각심과 함께 통쾌한 충격을 던지곤 했다.
센서티브하고 나이브한 일면에 엄격한 자존심이 도사린 그를 향해 국악작곡가 황병기(이대 교수)는 「심성이 깨끗한 예술가」로 표현하고 서울대 동료교수였던 강석희(작곡가)는 「음악을 하고(행) 아는(지)일과 그것과 상관되는 글을 쓰는일,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의 집행을 위한 탁월한 리더십은 조직을 움직이는 행정의 능력에도 뛰어나다」고 조언한다.가족은 숙명여고 교사시절에 만난 시인 문희자(문희자)씨와의 사이에 2남1녀,위로 남매는 미국에 있고(장녀 윤수씨는 미 오하이오 주립대교수,장남 석재씨는 예일대교수)부부는 막내 아들(인재·서울대 자연대 재학중)과 서초동에 살고 있다.
그는 최근 엉뚱하게도 이색적인 그림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을 내 또한번 주위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음악천사의 슬픈 사랑의 희생을 통해 이땅에 최초의 음악가 탄생을 그린 이 동화는 이제까지의 딱딱한 그의 이론서들과는 달리 간결한 소넷의 시적 이미지와 함께 읽는 이의 가슴에 한줄기 청랑한 선율이 흘러 들게 한다.낭만과 학구적인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그는 모든 예술가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며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형상화 작업에 침몰하는 단순한 이론가」에 그치진 않아 보인다.단지 그가 이 땅에 탄생시킨 음악천사의 희생처럼 「왜 사느냐」의 의미를 문학적 음악이론으로 실천시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행정가로서의 수완을 유감없이 과시하는,이시대 예술계에선 보기드문 「투철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연 보
▲36년 경북 청도출생
▲53년 전국성악콩쿠르 특상
▲54년 서울대음대콩쿠르 2위입상
▲61년 서울대음대 피아노과졸업(김원복교수 사사)
▲64년 국향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제2번」한국초연
▲66∼68년 서울대음대 강사
▲65∼68년 계명대음대 피아노과 조교수
▲68∼70년 미휴스턴대음대 석사과정(음악문헌학전공)
▲70∼75년 미미시간대음대 음악교육학 박사
▲75∼77년 미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조교수(음악교육및 이론)
▲77∼92년 서울대 음대교수
▲81∼83년 KBS교향악단 총감독,영국 EBU합창경연대회 심사위원
▲85년 서울대 교무담당 학장보
▲86년 음악학연구회 창립,회장
▲88년 88 서울올림픽 걔폐회식 상임위원,낭만음악사창립 계간 「낭만음악」 겨울호 창간
▲92∼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서울문화예술평론상
「음악의 방법」(82년)「열린음악의 세계」(80년)「음악의 이해」「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85년)「음악과 지식」「종족음악과 문화」(87년)「음악선생님을 위하여」「한국음악학」(90년)「김순남 그 삶과 예술」(92년) 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