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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가 공원」 발표에 “열린 정치 실감”

    ◎주민들,“청와대 더 활짝 개방” 환영일색/70년대초 건립… 부지 1만여평/3개지역 12동 소재/“권부 회합 했던곳” 새 명소로 그동안 최고 권부의 비밀회합 장소로서 일반인들에게는 철저히 베일속에 가려져왔던 청와대 「안가」(안가·안전가옥)가 개방되자 시민들은 문민통치를 실감하며 환영했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청와대 주변도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된데 이어 「안가」의 문까지 활짝 열림으로써 청와대는 이제 사실 그대로 국민들에게 다가서게 됐다. 청와대가 4일 개방키로 한 「안가」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 6개동(3천6백60여평)과 청운동지역 3개동(1천2백62평)삼청동지역 3개동(6천18평)등 본관및 부속건물 12개동 1만9백40여평이다. 이는 지난달 25일 김영삼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 주변도로가 개방된뒤 일요일인 28일과 3·1절 연휴기간동안 하루 2만여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방문했으나 화장실과 식수등이 부족,방문객들이 큰 불편을 겪은데 따른 것이다. 이날 개방된 「안가」가운데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궁정동지역은 소공원으로 개발,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활용된다. 청와대측은 이날 하오 궁정동 「안가」6개동가운데 본관건물인 「한국관」과 「영빈관」의 내부를 공개했다. 10·26사태가 일어났던 「한국관」가옥중 1동은 10·26이후 곧바로 철거돼 지금은 잔디와 나무만 심어진채 빈터로 방치돼있다. 나머지 한국관 가옥 1동은 1백20여평 규모로 대통령을 포함,7명이 앉을 수 있는 고급 양탄자가 깔린 응접실과 10여평 규모의 거실·화장실·부엌 등으로 내부가 꾸며져있다. 대지 1천여평규모의 「영빈관」은 2층짜리 3개가옥과 7백여평의 잔디 정원으로 이루어져있다. 「영빈관」본관 가옥은 50여평규모의 침실이 2층에 있고 1층에는 30여평규모의 대규모 온돌연회실과 10여평규모의 응접실이 있다. 2층 침실에는 일제변기가 설치된 화장실과 2인용침대·냉장고 등이 갖춰져 있고 10여평규모의 응접실도 딸려있다. 이 궁정동 「안가」는 박대통령시절인 70년대초에 만들어져 박대통령과 전두환전대통령이 「비밀스러운 비공식업무」를 위해 자주 사용해왔었다. 이번 청와대의 「안가」개방에 대해 시민들은 모두 청와대 앞길 개방에 뒤이은 문민정치시대의 또다른 상징으로 반겼다. 청와대앞길을 외국바이어와 함께 구경왔던 윤석영씨(37·사업·강남구 개포동)는 『어렸을 때 청운동에 살아서 궁정동안가 주변에서 자주 놀았는데 「안가」가 휴식공간으로 개방된다니 또 다시 가볼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떳떳하게 안내할 수 있는 또다른 명소가 생긴 것 같다』고 흐뭇해 했다. 한편 이번에 개방되는 「안가」가운데 청운대지역은 모두 헐어 북악산기슭으로 복원되며 삼청동지역은 서울시와 협의,시민을 위한 시설로 활용된다. 「안가」에는 경비전화·군용전화·행정전화·특수기관과 연결된 특별전화·일반전화 등 다섯종류의 전화가 설치돼 있으며 경비는 청와대 경호실이,관리는 총무비서실에서 맡아왔었다.또 안가주변 길에는 감시용폐쇄회로카메라(CCTV)가 설치돼 있다.
  • 1만여시민 올라“문민 야호”/개방 첫휴일 인왕산·청와대 앞길 표정

    ◎가족·연인 삼삼오오 기념촬영/폐쇄전 추억 회상속 새시대 실감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앞길과 인왕산이 열린이후 첫 휴일을 맞은 28일 인왕산 등산로와 주변도로 곳곳에는 1만여명의 가족·연인들이 산책을 나와 다시보는 서울 전경을 즐겼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하오들어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서도 등산객들은 집에서 마련해온 김밥등을 들며 해발 3백38m 인왕산(인왕산) 정상에서 발밑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청와대 전관(전관)과 마주 보이는 북악산을 가리키며 25년만에 다시 찾은 「금단의 땅」을 축복하는 얘기꽃을 피웠다. 또 바리케이드가 철거된 진입로 주변에는 사복차림의 경비군인들이 차량통제 대신 주·정차 유도와 길안내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인왕산◁ 만수천등 일부 약수터를 제외하고는 등산이 금지됐던 인왕산 등산로는 정상에 있는 「매바위」와 「범바위」등 소문난 바위들마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붐볐으며 꼬마를 무동태운 젊은부부,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정히 손잡은 연인등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48년 광복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와 일제치하 36년간의 설움을 쏟아냈다는 노재유씨(65·경기도 고양시 현천동 42의1)는 『청년시절 이곳에 다닐때는 계곡마다 물이 흐르고 봄이면 개나리가 만발했었다』면서 『이제 시민들과 외국관광객들이 이곳에 올라 인왕산 호랑이 전설을 얘기하며 자하문과 청와대 경치를 즐길수 있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또 대학시절 「법대산악회」회장으로 동료학생들과 함께 인왕산 바위절벽을 오르며 등산의 기본을 익혔다는 김철환씨(58·회사중역·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오랜만에 옛 친구를 다시 찾는 것 같아 감개가 무량하다』며 부인(56)의 손을 맞잡고 산행을 즐겼다. ▷청와대 주변도로◁ 청와대 앞길과 서쪽 효자로·동쪽 팔달로 등에는 화물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 진입이 허용된 가운데 바리케이드가 치워지고 교통표지판이 새로 설치돼 청와대를 좀더 가까이에서 구경하러 나온 노인들과 주부·어린이들로 붐볐으며 시민들이 세워놓은 나들이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시민들은 이날 청와대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출입통제의 계기가 됐던 68년 1·21사태등 청와대의 역사를 화제로 삼으며 「가까운 이웃」이 된 청와대 주변에서 휴일나들이를 즐겼다.
  • 개혁은 「세」로 하라(김호준/정치평론)

    김영삼차기대통령의 개혁추진을 지켜 보느라면 무언가「갈증」을 느낀다.본격적인 개혁은 취임후 단행할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열기의 불길은 진작부터 화끈하게 지펴 나갈수 있으련만 그렇질 않아 아쉽다는 얘기다. 지나간 일이긴 하나 지난 1월 청와대 개방론이 나왔을 때가 좋은 예일듯 싶다.대통령 경호와 보안 등을 이유로 무장군경에 의해 둘러싸인 청와대와 그 주변을 문민시대 출범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개방하고 돌려준다는 건 상징성이 크다.세계에서 적이 제일 많다는 미 대통령의 관저 백악관도 도심 한복판에 노출돼 있는데 천연의 요새 북악산이 옹위하는 청와대를 개방 못할 이유가 없다.또한 청와대 개방에 따로 큰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개방론 동의에 주저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그러나 차기대통령은 가타부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만일 그가 자신의 민주적 청와대론까지 곁들여 즉각 이를 지지하고 나섰더라면 그의 개혁 구도에 대한 궁금증이 지금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기대통령의 과묵한 품성을 반영하듯 이제까지 그에게서 나온 개혁 관련 메시지는 선거공약 수준의 원론적인 것이 대부분이다.진전된 구체안이 없다는 건 아니나 개혁의 총체적 구도를 유추하기엔 큰 부족을 느낀다.그나마 단편적인 몇가지 메시지가 그의 적확한 문제의식과 투철한 해결의지를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이로인해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여전히 높다는 건 다행이라고 하겠다. 차기대통령의 개혁추진,특히 부패추방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표된 새 구상 가운데 신선미는 없어도 괜찮게 여겨지는 건 청와대 사정비서관 폐지와 감사원 기능 강화론인 것 같다.차기대통령이 부패척결의 우선적 과제로 윗물맑기운동을 주창하면서 사정기능을 강화하지는 못할망정 축소하겠다는 건 얼핏 앞뒤가 맞지않는 얘기처럼 들린다.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사정을 막는게 사정비서관의 주요 임무였다는 과거의「내막」에 접하면 차기대통령의 폐지 의도가 이해된다.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고위층 주변인사들의 비리가 드러나면 불똥이 고위층에게까지 튈 것을 우려하여 사정관계자들이 그 비리를 덮는 일에 관여했다는 건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개된 비밀이다. 우리의 경험법칙에 의하면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 개혁을 못하고 기구가 부실해 부패를 척결하지 못한다는 건 맞지 않는 얘기다.제3공화국은 초법적 비상조치를 몇차례나 발동했는데도 왜 부정을 뿌리뽑지 못했으며 5공화국에선 서슬이 시퍼런 사회정화위원회가 가동됐는데도 왜 대형비리가 잇따랐는가.문제는 의지다.기존의 법과 기구조차 제대로 활용할 의지도 없으면서 부패척결을 장식품처럼 내건 국민기만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그런 점에서 차기대통령의 감사원 기능 강화론은 신뢰감을 준다.감사원은 헌법기구이며 부총리급인 감사원장 밑엔 11명의 차관급 감사위원이 포진하고 있다.이처럼 강력한 사정기구를 두고 또 무얼 만든다면 그야말로 번쇄한 옥상옥일 것이다. 이제 새정부가 출범하기까진 불과 2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그럼에도 아직 대다수의 국민들이 새정부가 추진할 개혁의 청사진에 대해 단편적 정보에나 만족한채 실체에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개혁은 「세」로 하는 것이다.군사통치시대엔 총검과 계엄령·비상사태·긴급조치등으로 세를 잡았다면 문민시대의 세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민의 지지로 일궈 나가야 한다.그러자면 국민에게 할 말은 하고 알릴건 알려서 개혁에 대한 공감대와 동참의 폭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정치사를 통해 김영삼차기대통령의 민주화 의지를 확인할수 있으나 그가 우리 국가의 발전목표와 현재의 발전단계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는 확실히 읽지 못한다.부패척결없인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한 이상 개혁을 강조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려하는 그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그러나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맥과 수순,즉 개혁의 청사진으로 세를 장악하지 않곤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한다.솔직히 말해 새정부의 개혁추진 행보는 좀 느리고 모호하다.
  • 「새 서울」의 청사진/서울시의 「정도6백년」 기념사업(국정탐방)

    ◎화합·융성의 통일수도 가꾼다/열림 등 4주제로 전통과 미래 융합/남산골 전통공방·박물관 등 건립 서울시는 요즈음 서울6백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민족의 화합과 융성을 일구는 통일시대의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북아의 거점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은 근대사의 역경과 지난 한세대동안 숨가쁜 성장을 겪어오면서 고도로서의 뿌리와 대도시로서의 문화적 향기를 잃어가고 있고 성숙된 시민의식과 「서울 고향」의식을 일구어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21세기로 향하는 문턱에서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은 절호의 기회를 한번 놓쳤다. 88서울올림픽이 그것이다. ○모든 행정력을 집중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국론분열로 민족적 저력을 한데 모으는데 실패한 정치권의 잘못이 크다.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는 그릇된 길로 접어든 정치의 영향을 받아 뒷걸음질만 거듭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그 힘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일본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선진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실하게 증명했고 뒤이어 1970년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통해 국제사회에 완전히 동참했다. 그만큼 일본은 올림픽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반면 우리는 유사이래 가장 성대한 올림픽을 치르고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를 경험한 서울시는 조선 태조 이성주가 1394년 한양을 도읍지로 결정(8월13일)하고 환도(10월28일)한지 6백년이 되는 1994년을 앞두고 서울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서울,새로운 탄생」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수립한 「서울600년기념사업」이다. 이 사업은 역사도시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다시보는 서울」과 인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노린 「새로나는 서울」,문화도시로와 세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신명나는 서울」,「열려 있는 서울」등 4가지 주제별로 시민 스스로 하는 「시민사업」과 서울 6백년을 경축하는 「기념사업,21세기를 준비하는 「계기사업」등 3가지유형으로 모두 12개의 사업군,41개 세부사업을 이루고 있다. 이 12개의 사업군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체계화해 상승적인 효과를 내도록 했다.즉 ▲회고와 반성을 바탕으로 ▲주변부터 정돈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잔치를 통해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위한 설계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새롭게 태어나자는 것이다. ○대부분 내년에 시작 이 사업들 가운데 서울가까이 운동과 남산 제모습가꾸기 등 일부는 이미 시작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대전엑스포가 열리는 내년에 시작해 95년까지 3년동안 펼쳐진다. 사업의 계획은 서울시에서 공청회 등을 거쳐 입안한 시안을 바탕으로 지난 6월15일 발족한 각계 53인의 시민위원회(위원장 김원용·70)에서 종합적으로 심의,재검토해 10월27일 확정했다. 당초 경축문화예술행사 중심으로 접근되었으나 시민위원회 등의 심의과정을 통해 도시발전의 실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실천적인 사업으로 꾸몄다. 주요사업으로는 서울 6백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의 근세사와 생활풍속사,자연지리,도서·지도 등 각종 자료를 망라한 서울 6백년전이 내년부터 94년까지 열린다. 또 자연제와 역사제,시민축제,도시예술제 등의 대동제가 94년에 한강·서울거리·북악산·남산·관악산 등에서 펼쳐진다. 서울과 세계도시들을 잇는 서울∼세계도시축제와 서울의 자연경관과 공간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육경축과 한강 수경축의 만남을 상징하는 서울랜드마크도 만들어진다. 뿌리를 되찾기 위해 시립박물관 건립과 남산골 전통공방촌및 역사탐방로등을 만들고 서울의 성장사를 증명하는 「서울학 사료탐사」를 통해 흩어져 있는 사진·문서·지도 등 각종 시사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수집·목록화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일본 등에서 집중 수집한다. 서울의 자연과 역사·지리·문화·환경·도시계획 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서울총서와 문화지도·영상 등의 서울미디어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을 인간도시·시민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우선 여의도광장을 친밀한 공간으로 재구성해 서울의 명소인 시민의 마당으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광장지하에 공공주차장과 문화 편익시설을 갖춰 광장이용을 활성화하고 단절된 동서지역및 한강공원을 연결한다. ○여의도광장 재구성 이어 21세기 준공목표로 시청사건립계획을 구체화하고 지난달 14년동안 서울시민의 쓰레기받이로서의 역할을 다한 난지도를 생태공원 등으로 가꾼다. 서울시는 특히 미래서울의 중심적 핵이 될 시청사 건립과 텔레포트 및 국제컨벤션센터 건설,그리고 여의도 지하권개발을 역점사업으로 선정,광범한 여론수렴과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연구·검토를 거쳐 추진하기로 했다. 도시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사업으로는 문화창달의 지원기구인 서울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지역과 기업문화의 육성·개발을 목표로 한 서울문화경진 등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는 미래서울의 모습을 시민 모두가 같이 그려보자는 취지로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이는 자기 집을 개조하는데 주인이 참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지이며 생일 잔칫날 자기집 짓는 문제를 온 식구가 같이 의논하는 것만큼 신나는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외국수도의 축제/시청사신축 등 르네상스 추구/도쿄 4백년/EC통합 대비… 정보기능 강화/파리 2백년/건축전 등 열어 도시미관 개선/베를린 7백50년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중요한 계기를 맞아 발전을 한다. 오는 94년은 서울의 정도 6백년을 맞는 해이다.사람으로 치면 10번째 희갑을 맞는 셈이다. 서울시는 6백년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얼굴인 서울이 재도약을 할수 있는 각종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외국의 도시도 최근들어 「생일」을 맞아 대대적인 르네상스를 꾀하고 있다. 도쿄 4백년,프랑스 혁명 2백년,몬트리올 3백50년,베를린 7백50년 행사등이 도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도쿄4백년◁ 지난 90년 에도(강호)에 도읍을 정한지 4백년을 맞아 89년부터 96년까지 3단계로 도쿄 르네상스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단계(89∼90년)는 각종 4백주년 기념사업을 폈고 2단계(91∼93년)는 도쿄 예술문화회관 건립,시청사 신축등의 사업을,3단계(94∼96년)는 도쿄세계도시 박람회 개최등을 계획하고있다. 이같은 사업은 경제대국의 수도에 걸맞는 세계 초일류도시로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때문에 도쿄 심포지엄·에도도쿄자유대학·자치구의 문화행사등을 통해 문화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또 최첨단 정보단지(Teleport)를 조성,동북아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파리◁ 프랑스 혁명 1백주년을 기념해 1889년 세계적인 에펠탑을 건립한바 있다. 이제 2백주년을 계기로 유럽공동체(EC)가 통합될 경우 EC의 수도가 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파리는 89년 신개선문을 만드는등 세계적 문화의 중심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경쟁도시인 런던·베를린등과 차별화시키고 있다. 아울러 첨단정보기능등을 강화하고 있다. ▷베를린 7백50년◁ 베를린은 동서독 통합전인 87년 7백50년을 맞아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축물을 보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제 건축전을 열어 도시미관을 개선했다. 또 파리를 의식,연극·영화행사·학술회의를 개최하는등 정치·문화적으로 유럽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몬트리올 3백50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은 올해 3백50주년을 맞아 주체성있는 문화사업과 이민사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몬트리올 독창성에 관한 심포지엄」·미국음악 잔치·샹송축제·국제영화제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문화로부터 문화적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살맛나는 환경조성 계기로”/새 도시 향한 「문화혁명」 준비/사업실무총책임자 강홍빈 시정연구관(인터뷰) 서울시청에는 항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이 있다. 또 그 방에는 웬만한 대학교수의 연구실같은 책들로 가득차 있다. 시청내의 「이방지대」인 그 방의 주인은 강홍빈시정연구관(2급). 올해 47세인 그는 바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 6백년사업」의 실무 총책임자이다. 강연구관은 『6백년사업은 서울을 시민들이 애착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롭게 탄생시키자는 것』이라며 6백년 사업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일제치하·급속한 경제성장등을 겪으면서 단절된 6백년의 뿌리를 찾고 이와 함께 앞날에 대한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방향이라는 얘기다. 강연구관은 또 『민족문화의 얼굴을 가진 서울을 만들고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세계성을 가진 국제도시로 만들어 21세기의 동북아,나아가 세계의 중심도시로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의 문화와 환경을 사람의 몸과 마음에 비유했다.조직적인 문화와 일상적인 환경이 조화를 이뤄야 「사람 사는 맛」이 날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은 곧 종합예술」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강연구관은 『「문화혁명」을 통해 서울을 새롭게 꾸미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그는 문화야말로 새로운 이미지 사업이고 이미지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디자인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관광사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올림픽공원 조성을 맡기도 했던 그는 미국 하버드대 석사,MIT공대 박사출신으로 3공말기 신수도행정 건설에 깊숙히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MIT공대에서 「예술·건축·환경학 박사 1호」인 그는 「강박사」로 더 유명하다. 주택공사 산하 주택연구소장으로 재직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박세직씨의 추천으로 지난 90년 6월 서울시로 옮긴 강연구관은 『월급도 연구실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일하는 재미로 더 즐겁다』고 말했다. 강연구관은 『6백년 사업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민이 한마음이 돼 참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 영조의 그림솜씨/박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역사를 통해서 보면 통치자의 성향이 그 문화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알렉산더나 칭기즈칸 같이 세계를 정복한 영웅들이나 아쇼카나 진시황 같이 제국을 통일한 무단적인 인물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무호법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자연히 학문과 예술은 그에 종속되는 비운을 맞았었고 당태종이나 당현종 및 조선의 세종대왕이나 영조대왕 같이 학문과 예술을 숭상한 통치자가 다스릴 때는 문운이 크게 일어 획기적인 문화발전이 이루어 졌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그래서 이런 현군의 치세하에서는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역사상 최고 업적을 남겨 서성이니 화성이니 시성이니 하는 칭호를 얻는 이들이 많이 배출되게 마련이다. 소위 초당삼대가라 불리는 구양순,우세남,저수양 같은 대서예가들은 당태종이 길러낸 이들이고 그림에서 남북종화의 시조로 추앙되는 왕유와 이사훈및 시선 이태백,시성 두보는 당현종 성세에 배출된 인물들이다.세종대왕 시대에도 시서화금기 오절로 꼽히던 안평대군 이용을 비롯하여 화원화풍의시조인 현동자 안견과 사대부화풍의 시조인 인재 강희안 등 허다한 예술가들을 배출한다. 이런 대예술가들을 배출하던 당시의 군주들은 그 자신이 학예를 숭상하는 천품을 타고나 이미 학문과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 그 기량이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상례이다.당태종이 서예의 대가이었다든가 당현종이 시서에 능하였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리 세종대왕이 송설체 글씨에 능하고 난죽을 잘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그렇다면 조선 고유색 짙은 진경문화를 주도하여 시성으로 불러야 할 진경시의 대가 차천 이병연(1671∼1751)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화성 겸재 정선(1676∼1759)을 길러낸 영조대왕(1694∼1776)도 필연 학예의 천품을 타고난 대예술가이었으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과연 그렇다.이미 왕자시절에 그의 산수인물도는 부왕인 숙종대왕의 극찬을 받을 만큼 가경에 이르러 숙종어제의 제화시가 남아있을 정도이데 겸재의 동문 후배인 동포 김시민(1681∼1747)이 남긴 제사에서 보면 영조는 산수인물 뿐만 아니라 난초 국화 매화 등을즉석에서 휘호하여 도자기의 밑그림으로 쓰게할 만큼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 임금이었기에 시성 차천과 화성 겸재 및 풍속화의 시조 관아재 조영우(1686∼1761)등을 길러 내었을 터인데 사실 왕자시절에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 천품을 함양해 간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그 동네는 지금의 청와대 부근이니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해당한다.
  • 화성 겸재/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겸재 정선은 우리 회화사상에서 화성으로 떠받들어야 할 위대한 화가이다.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데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성공한 분이기 때문이다. 겸재가 살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국시로 천명됐던 주자성이학이 이미 율곡 이이에 의해 이기일원론으로 심화 발전돼 조선성이학이라는 우리 고유사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던 때였다.이에 당시 지식층들은 이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 고유색을 현양해가고 있었으니 문학에서는 한글의 가사와 소설,시조가 출현하고 한문의 진경시문이 유행하며,글씨는 한석봉체와 동국진체라는 조선 고유색 짙은 서체가 창안돼 널리 유포되는 등이 그것이었다.이런 시대분위기 속에서 어떤 천재 화가가 나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와 어울리는 고유의 우리생활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기를 열망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그 당연한 열망에 부응하여 출현한 천재화가가 바로 겸재였다. 겸재는 현재 종로구 청운동 89번지 부근의 백악산(북악산)아래에서 탄생하여 오십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고 다시 옥인동 20번지 부근으로 이사하여 삼십여년을 살았다.따라서 그는 서울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평생 살다간 셈이다.그런데 이곳은 율곡을 비롯해서 오계 성혼,송강 정철,구봉 송익필등 율곡학파의 핵심인물들이 살던 곳으로 이후 대대로 율곡학파들이 터잡아 사는 곳이었다. 겸재가 태어날 당시에는 육창으로 불리는 김창집의 육형제가 중심이 돼 이곳에서 율곡학맥을 계승하며 조선고유책을 선도해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삼연 김창홉은 성리학은 물론이고 제반 학문과 예술에 박통한 일세통유로 조선 고유문화인 진경문화 창달에 솔선하던 분이었다.겸재는 그 삼연 문하에서 수학하여 조선성리학의 근본 경전인 주역을 비롯한 칠서에 통달하고 역대 시문과 서화법을 익히고 나서 타고난 그림 솜씨로 우리 산천을 그려내는데 적합한 화법의 창안에 골몰하게 된다.그 결과 겸재는 그가 사는 동네의 빼어난 경치를 사생하고 역대 명화들을 임모하며 임천고치와 같은 고전적 화론들을 정독해가는 과정에서 중국 북방산수화법의 근본인 필묘와 남방산수화법의 근본인 묵법을 주역의 음양조화 원리에 따라 이상적으로 종합해내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화법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다.이것이 겸재 진경산수화법이다. 겸재는 특히 36세때 금강산을 여행하며 이 화법을 실험해 보고 더욱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후 84세까지 사는 동안 그 화법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화법 수련을 거듭하여 65세를 전후한 시기에 확연히 일가를 이루어내고 80세 전후한 시기에는 묘상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념산수 출현의 역사적인 전과정을 그의 일생동안에서 모두 보여주는 셈이다.
  • 금권선거 공방 가열/지역­「안방유세」 통해 상호 비난설전

    민자·민주·국민등 각당과 무소속 대통령후보들은 2일 지역유세를 비롯,TV및 라디오연설과 관훈토론회 참석등 「안방유세」를 통해 각종 공약을 제시하며 득표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민자·국민당은 유세나 대변인 성명등을 통해 김권선거 책임을 둘러싸고 사흘째 공방전을 벌였다. 【대천=김현철기자】 민자당의 김영삼후보는 과천 공주 논산 서천 대천유세에서 『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으로 도시와 농촌을 균형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있었으나 그후 정부의 농촌정책은 실종된거나 다름없다』고 농정을 비판하고 『집권하면 청와대에 「농어촌발전위원회」를 두어 농민과 대통령이 머리를 맞대고 농촌문제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희태대변인은 국민당 정주영후보가 두 김씨를 「대권욕에 허기진 사람들」 「돌대가리」라고 비방한데 대해 『유세의 절반을 상대후보에 대한 욕설로 충당한다니 그래가지고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느냐』고 비난했으며 이원종부대변인도 『정후보 일가의 주식매각자금이 2천9백50억원에 달하며 선거에 유입된 현대자금까지 합치면 국민당이 살포한 자금은 엄청난 규모』라며 김권선거중지를 거듭 촉구했다.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이날 저녁 중견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총무 구월환)초청토론회에 참석,대화합을 통한 개혁과 변화의 정치를 약속했다. 김후보는 이에앞서 하오에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여성지지자들과 토론회를 갖고 여성지위향상등 여성정책공약을 제시하며 득표활동을 벌였으며 당정책위원회에 집권공약으로 ▲청와대 경내를 제외한 모든 주변도로의 개방 ▲북악산을 시민공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점촌=이목희기자】 국민당의 정후보는 이날 경북 울진 영주 안동 예천 점촌유세에서 양금구도청산과 지역개발공약을 제시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후보는 『13대 대선때 두 김씨 모두 대통령병에 걸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은 정치가 양금의 정권욕에 휘말려 아무 일도 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정후보는 또 『김영삼후보의 휘호가 새겨진 탁상시계가 한 장소에서 1만개나 발견됐다』며 금권선거의 주범은 민자당이라고 비난한뒤 ▲무공해 부품공장유치 ▲농산물 저장창고와 식품 가공공장건설 ▲대단위 관광단지 조성 ▲종합병원 건립등을 약속했다. 새한국당의 이종찬후보는 인천지역에서 유세를 갖고 『익명의 정치헌금제도를 폐지,정치자금을 실명화하고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신정당의 박찬종후보는 서울 동방플라자앞과 명동 상업은행앞에서 가진 유세에서 『지역감정과 돈이 아닌 국민과 역사편에 서는 한글세대의 깃발을 힘차게 올려 이땅에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 “앞으로 보름” 불꽃 득표전(대선 유세현장 2일)

    ◎충청 5곳서 “허리역할론” 역설/김영삼/청와대주변 건축제한 풀겠다”/김대중/금리 6%로 내려 새 세상 이룩/정주영/정치헌금 폐지/이종찬/세대교체 호소/박찬종 ○6공과 차별화 부각 ▷김영삼후보◁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2일 상오 경기도 과천유세에 이어 헬기로 이동해가며 공주·논산·대천·서천·부여유세를 갖는등 충청권표밭같이에 분주한 하루. 김후보는 이들 충청지역 유세에서 특히 「허리론」을 강조하며 『국토의 허리부분인 충청권의 발전이 늦어 대단히 허약한 상태』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역균형개발법을 제정하여 충청권 개발을 강력히 추진,국토의 허리를 튼튼히 만들겠다』고 약속. 김후보는 또 이들지역대부분이 농촌지역임을 감안,『농어촌정비법을 제정해 농촌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10개년 특별계획으로 농촌주택을 문화주택으로 바꾸겠다』면서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겠다』고 강조. 이날 상오11시 공주산성앞 공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김후보는 이지역 출신의원인 이상재당유세본부장이 선거독려중 교통사고로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것을 특히 안타까워하며 『이의원이 빨리 완쾌하도록 성원해주고 더욱 단합해 이 김영삼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나라와 공주를 위해 일하도록 해달라』면서 『이의원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크게 박수를 한번 보내자』고 말한뒤 이의원 부인 황애순씨(58)의 손을 쳐들어 격려,청중들의 박수를 유도. 한편 이날 공주유세장에는 김후보와 이의원이 나란히 찍은 대형스크린사진이 내걸렸는데 이의원은 병상육성녹음을 통해 『신한국의 새벽이 열리는날 김영삼대통령을 모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남은 생애를 지역과 나라를 위해 바치겠다』고 인사. 김후보는 대천유세에서 특히 금권선거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돈으로 권력을 사는 것이 아닌 부채로 권력을 사려는 못된 버르장머리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국민당의 금권선거를 「부채선거」라 표현하며 국민당의 김력이 국민들에 대한 부채임을 집중 강조. 김후보는 치안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부녀자들이 밤거리를 마음놓고 다니지 못하는 현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된다』며『이를 치유하기 위해선 「물정부」가 아닌 강력한 정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6공과의 차별화를 부각. 한편 이날 부여에서는 간이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청중(약1만여명)이 모여 집회장소를 군민회관앞 광장에서 부여국민학교로 급히 변경하기도. ○짝사랑 경험 들려줘 ▷김대중후보◁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이날 아침 동교동자택에서 당직자및 보좌진들과 전날 방영된 TV연설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TV연설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 또 하오6시30분부터 시작될 관훈토론회에서 밝힐 「화합과 변화의 새시대」라는 주제의 연설문을 다듬고 일문일답순서에서 나올만한 예상질문과 답변을 정리. 김후보는 이어 강동구민회관에서 열린 강동을지구당(위원장 박은대)개편대회에 참석,『집권하면 청와대주변을 일반 시가와 마찬가지로 개방해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겠다』고 약속. 김후보는 『청와대 옆으로 북악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 북악산을 개방,시민공원을 꾸미고 청와대주변의 건축개발제한을 해제하겠다』고 공약. 김후보는또 하오2시30분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여성유권자 대상의 특별유세에 참석,민주당의 여성정책을 설명하고 지지를 당부. 이날 행사는 선거공고 이전에 민주당이 기획공연했던 「출발 20∼30대의 물결」행사와 마찬가지로 현악4중주단,남성4중창단,멀티비전등 다양한 출연자와 이벤트를 동원해 문화축제의 형식으로 진행. 김후보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와 짝사랑 경험등을 들려주고 수감생활중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낭독했으며 참석자들과 즉석 인터뷰를 갖기도. 김후보는 『지난 13대 국회에서 우리당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가족법 개정을 주도해 어머니의 권리가 아버지와 같고,아내의 권리가 남편과 같고,딸의 권리가 아들과 같게 만들었다』면서 『지금까지 각 당이 남긴 발자취를 보고 투표해달라』고 당부. ○시장돌며 상인격려 ▷정주영후보◁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이날 울진·영주·안동·예천·점촌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릴레이 유세를 갖고 「경제대통령논」을 재차 역설. 정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집권 3년내에 3백억달러 무역흑자를이룩하고 임기내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해 풍성풍성한 경제대국을 만들겠다』고 다짐. 정후보는 『고금리국가는 악성자본주의 국가이며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심화시킨다』며 『따라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금리를 6%로 인하해 새세상을 이룩하겠다』고 약속. 정후보는 또 양금씨를 겨냥,『반대만 했던 사람에게는 큰 일을 맡길 수 없다』고 공격한 뒤 창의력·추진력이 있는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호소. 정후보는 이날 지역공약으로 ▲무공해 부품공장유치 ▲종합병원건립 ▲전문대학유치 ▲풍산공단개발 ▲중앙고속도로 조기완공등을 제시. 정후보는 이날 울진유세가 끝난뒤 울진시장을 방문,배추·생선·오징어·호떡등을 사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상인들을 격려. 한편 찬조연사로 나선 정주일의원은 『1천억원 이상씩 돈이 필요한 대선에 몇차례씩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서 돈이 생기겠느냐』면서 『총칼만 안들었지 날강도나 다름없다』고 원색적으로 양금후보를 비난. ○청정정치 실현 약속 ▷이종찬후보◁ 이날 인천시내 일원과 부평을 잇달아 돌며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제도적장치 마련과 지역개발공약등을 제시하는 등 인천지역 재공략에 돌입. 이후보는 유세에서 『익명의 정치헌금제도를 폐지,정치자금을 실명화하고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겠다』며 『하급직을 제외한 전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하는등 청정정치실현을 위한 구상을 피력. ○명동 등서 잇단 집회 ▷박찬종후보◁ 이날 서울 재공략에 나서 동방플라자앞과 명동상업은행앞에서 잇따라 유세를 갖고 『선거운동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부동표에 세대교체의 힘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역설. 박후보는 『TK의 아성인 대구 구미지역에서 깨끗한 정치실현을 바라는 열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유권자들이 12월 18일을 「평화적인 세대교체 국민명예혁명의 날」로 선포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주장. ○이틀째 중부권 공략 ▷백기완후보◁ 이날 상오 서울에서 TV연설 녹화를 마친뒤 곧바로 제천·충주로 내려가연이틀째 중부권 공략을 계속. 백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정부와 3당의 추곡수매 결정내용을 비판하고 『쌀값 보장,전량수매관철과 함께 쌀수입개방 저지를 위해 6백만 농민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약속한뒤 『「경제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는 정주영씨가 현 경제파탄의 주범』이라면서 정후보에게 1대1 TV토론을 제안.
  • 청기와에 푸른 단청… 전통의 멋 물씬

    ◎청와대 새 본관 어떻게 꾸며졌나/중앙홀 좌우에 문무조화 벽화로 장식/조선총독부 옛 건물은 52년만에 역사속에/대지 조성때 「천하복지」 암각 나온 명당 국정수행의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신축되었다.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본관건물이 정통한옥양식으로 새롭게 준공된 것이다.이에따라 일제 조선총독의 사택으로 출발했던 기존 청와대본관은 이제 역사의 장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본채·별채 ㄷ자 배치 ○…4일 준공된 청와대 신본관은 북악산 산자락에 정남향으로 위치해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으며 서울시내 중심가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구본관이 눈에 잘 띄지않는 후미진 곳에 있던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구본관에서 서북쪽으로 약1백50m쯤 떨어져 높은곳에 신축된 청와대본관은 경복궁 근정전지붕과 중앙박물관이 모두 발아래 높이에서 조망된다. 연건평 2천5백64평인 신본관은 중앙에 2층의 한식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 단층한식의 별채를 거느려 ㄷ자모양의 열린 쪽이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외형적으로는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진 것같으나 내부는 모두 같은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채와 별채의 지붕높이는 각각 28m와 18m로 팔작지붕 형태이며 섭씨1천1백도에서 구운 15만장의 청기와로 덮여져있다. 용마루 양끝에 세워진 취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인데 이는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건물외벽에 쓴 석재는 경기도 포천에서 나온 화강암으로 거친 정다듬으로 해서 순박한 우리맛을 느끼게 한다.외벽의 창문은 솟을빗꽃살문양의 덧문을 대 고궁의 모양을 본떴다.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직접 영접하는 본채 현관천장은 푸른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있어 한국고유미를 느끼게 한다. 본채 정면 아래쪽엔 국빈영접때 의전행사를 할수 있는 장방형의 잔디광장(1천4백80평)이 마련돼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의전행사를 제대로 할수 없었던 옹졸함을 씻게 되었다. ○집현전 학사 그림도 ○…지난 89년7월22일 착공,약 2년여에 걸친 공사끝에 이날 준공을 본 청와대 신본관은 근정전(3백평)크기의 약4∼5배가량으로 총공사비는 1백63억원. 1층(1천2백2평)에는 중앙홀·대회의실·대식당·중식당·영부인접견실등이 있고 2층(4백58평)엔 집무실·접견실·회의실·소식당등이 있다. 이밖에 창고 음향실이 있는 중층(76평)중3층(3백32평·창고)그리고 기관실·전기실및 공조실이 있는 지하층(4백96평)등이다. 1층 현관을 들어서면 대청마루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중앙홀이 나온다.왼쪽 벽면엔 문을 상징하는 높이 3.19m 길이 21m의 행차도 벽화가 걸려있다.오른쪽에는 무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가 맞은 편의 행차도와 대칭되게 걸려있다. 중앙홀에서 왼쪽 별채의 대회의실(세종실)로 이어지는 회랑식 복도벽면에는 세종대왕업적에 관한 동판부조와 집현전 학사도가 걸려있어 전체적으로 「문」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시 중앙홀에서 오른쪽 별채의 대식당(충무실)으로 이어지는 복도벽면에는 이순신장군의 승전등에 관한 부조와 씨름도가 장식돼 「좌문우무」의 조화를 이룬다. 청와대 국무회의등이 열리게 되는 대회의실에는 군학도·흉배·일월도 그리고 훈민정음을 월인천강지곡체로 그래픽한 작품등으로 장식해 전체적으로 통치권자,국정최고 책임자가 주재하는 「어전회의장」분위기를 느끼게 하고있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2층에 오르는 계단전면에 고지도기법으로 대한민국전도를 벽화로 장식했고 천장에는 천문도를 실크프린트하여 은은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이 늘 금수강산 우리 국토와 하늘을 생각하면서 개단을 오르내릴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층 집무실벽면엔 황금색 대통령의 봉황문장이 벽에 새겨져있고 접견실은 순한식 가구와 장식으로 되어있다. ○고려땐 개경의 이궁 ○…청와대 자리는 지금부터 8백87년전인 고려 숙종9년(1104년)부터 당시 수도이던 개경의 이궁터로 쓰이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4년(1395년)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공원화했다가 연건평 5백86평의 건물을 짓고 1939년부터 남차낭 등 3대에 걸친 총독관저로 사용했다.해방후에는 미군정이 실시된 약2년3개월동안 하지중장의 관사로 이용됐으며 48년 정부수립이후엔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라 이름짓고 관저및 집무실로 사용했다.이후 윤보선대통령은 취임후 경무대라는 이름이 국민들에게 주는 인상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청와대로 개칭했으며 박정희·최규하·전두환대통령에 이어 노태우대통령도 이곳을 계속 사용해왔다. 청와대측은 노대통령의 결심을 얻어 「청와대신축 마스터플랜」을 수립,89년 5월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이어 7월엔 본관,8월에는 관저의 신축에 들어가 춘추관은 지난해 9월29일,관저는 지난해 10월25일에 준공됐고 집무실인 본관은 이날 완공된 것이다. 신축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중 관저뒤 암벽에 3백년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이 발견(본보 90년 2월23일자 보도」되기도해 신축지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임을 입증했다. 청와대신축계획과 공사를 총지휘한 임재길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독립한지 45년이 지나도록 국가원수가 일제총독관저로 쓰였던 건물에서 집무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안맞을 뿐아니라 민주자존에도 문제가 아니될 수없었다』며 신축배경을 설명했다. 임수석은 『우리 고유의 건축미에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미를 최대로 살리면서도 대통령집무실답게 품위있게 건축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서 『청와대가 서울중심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위치한 것 부터가 바로 보통사람시대」에 걸맞는 민주대통령의 집무실임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 청와대 주변 검은 연기 소동/초소 연막탄 벼락맞아 터져(조약돌)

    ○…6일 낮12시30분과 하오2시40분쯤 2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구 세종로 청와대 일대 상공에 시커먼 연기가 치솟아 경찰과 소방당국이 청와대에 화재가 난 것이 아닌가 확인하느라 한때 소동. 조사결과 첫번째 연기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청와대 뒤쪽 북악산 중턱의 경비초소근처 전봇대에 경보용으로 설치해 놓은 훈련용 연막탄 3개 가운데 1개가 벼락에 맞아 자동점화되면서 일어난 것이고 두번째 연기 역시 청와대 구내 경비막사에서 같은 연막탄이 벼락을 맞아 일어난 것으로 확인.
  • “우리강산 푸르고 깨끗하게”/군이 자연보호 앞장 섰다

    ◎「1부대 1산청소」/국방부,연중전개/인근 산ㆍ유원지ㆍ해수욕장 주1회이상 “정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쓰레기오염으로부터 전국의 유명 산과 유원지를 보호하기 위해 전군이 나섰다. 국방부는 24일 각군 본부와 군사령부 및 사단급이상 부대들이 인근의 유명산과 국립공원ㆍ유원지 등을 맡아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부대 일산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 부대들은 앞으로 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안에서 헬리콥터ㆍ트럭 등 장비들과 병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이상 대대적인 쓰레기청소와 산림보호 및 산불예방활동 등을 벌인다. 육군과 공군본부 장병들은 매주 수요일에 체육의 날과 휴무일에 인근에 있는 계룡산국립공원과 동학사ㆍ갑사 등에 나가 쓰레기청소를 하며 육군본부 직할부대인 수방사는 삼청동ㆍ북악산ㆍ도봉산ㆍ관악산ㆍ정릉ㆍ불암산 등 서울 근교의 산과 유원지를 맡았다. 특전사는 남한산성과 올림픽공원ㆍ뚝섬유원지ㆍ한강고수부지 등을 담당,매주 한번씩 청소와 환경보호를 하기로 하고 일요일인 23일 첫활동을 벌였다. 1ㆍ2군사령부는 치악산과 용인자연농원을 맡고 3군사령부는 팔공산 일대를,동부전선주둔 사단들은 설악산과 오대산을,전남향토사단은 지리산과 무등산,전북향토사단은 덕유산ㆍ내장산,군수기지사령부는 부산의 금정산,경북향토사단은 경주 토함산 등을 각각 맡았다. 이밖에 진해ㆍ인천ㆍ부산 등 주로 항구에 자리잡고 있는 해군부대는 해수욕장 청소 및 해안오염 방지에 나서고 도시주변의 공군비행단은 유원지 등을 책임지도록 했다. 해병대도 제주의 한라산을 비롯,함덕ㆍ중문ㆍ협재해수욕장과 백령도ㆍ대청도 등을 담당한다. 국방부는 군이 쓰레기청소와 환경보호에 나서면 각종 훈련과 체력단련을 겸할 수 있고 장비 등도 충분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각 기업 및 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환경보호운동을 뒷받침하고 민과 군의 유대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있다.
  • “내고장 출신 대학생에 학습공간을… ”/서울에 「애향학숙」신축 붐

    ◎강원도 “성공”에 충북ㆍ전남 등 잇단 삽질/수십억 공사비 도민성금으로/2백∼5백명 수용… 만남의 광장으로도 활용 서울에 유학하고 있는 내고장 인재들에게 기숙시설을 마련해주기 위한 애향학숙건립운동이 시ㆍ도 별로 활발히 일고 있다. 지역출신 영재를 내고장발전의 동량으로 키우자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과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건립되고 있는 이 애향학숙은 지난 75년부터 운영해온 강원학사가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경기(경기장학관) 충북(충북학사) 광주ㆍ전남(남도학숙) 전북(전북장학숙) 등 타시도로 확산되고 있다. 또 경북ㆍ경남ㆍ충남에서도 서울에 건립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는 재경애향학숙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충북도와 경기도에서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도봉구 쌍문동에 충북학사(건평 1천2백87평ㆍ수용계획인원 2백50명)와 경기장학관(건평 1천5백18평ㆍ수용계획인원 2백40명)을 올 연말 완공계획으로 각각 착공한데 이어 지난 31일에는 광주시와 전남도에서 종로구 구기동 북악산 기슭에 이 지역출신 재경 대학생들의 학습공간이 될 남도학숙 건립공사를 착공했다. 4백만 광주ㆍ전남 시ㆍ도민의 염원속에 이날 첫삽질을 한 남도학숙은 1천2백5평의 부지에 연건평 3천6백85평(지하2ㆍ지상8층)규모로 내년4월 이 건물이 완공되면 서울지역 대학생 5백10명(여학생 1백10명포함)이 수용돼 마음놓고 공부를 할수 있게 된다. 이 공사에 소요될 사업비 80억원은 시ㆍ도민의 성금으로 충당할 계획인데 현재 32억원이 모금됐다. 최인기광주시장은 『21세기를 내다보는 호남인의 원대한 야망이 이 학숙 건립으로부터 시작됐다』면서 『이 학숙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재경 학생들의 학습공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는 오는5일 전북장학숙 건립공사기공식을 서울 서초구 방배동 996의3 현지에서 가질 예정이다. 신축될 건물은 대지 1천2백56평에 연건평 2천4백83평 2백48명 수용 규모이다. 전북 애향운동본부는 이 공사를 도민성금 30억원을 들여 91년6월 완공할 계획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 애향학숙이 건립되면 지역인재양성에는 물론 전북출신 재경인사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해고향발전의 뜻을 모으고 젊은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국가발전의 중지를 모으는 토론의 광장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3동에 세워진 강원학사는 2백24명 수용규모로 지난75년 6월 문을 연 이후 강원출신 재경 대학생 5백여명이 혜택을 받았다.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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