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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최광숙 논설위원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安重根, 1879~1910년)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 날은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만천하에 알린 날이다. 안 의사는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여러 해 소원하던 목적을 이제야 이루게 되다니, 늙은 도둑이 내 손에 끝나는구나”라고 썼다. 응칠(應七)은 태어날 때부터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 모양의 7개 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안 의사의 아명이다. 뤼순 감옥으로 송치된 안 의사는 결국 1910년 3월 26일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며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순국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아들에게 어머니는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편지를 적어 보냈다고 한다. 비록 재판 등에 참여했던 일본인들은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했지만 안 의사의 꼿꼿한 기상과 인품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토 암살 당시 함께 저격을 받은 다나카 세이지로 만주 철도 이사는 훗날 “지금까지 만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안중근”이라고 말했다. 히라이시 우지토 재판장은 “안중근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감옥의 간수로 있던 지바 도오시는 안 의사가 집필할 수 있도록 붓과 종이를 넣어주기도 했다. 이 일본인 간수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쓴 책이 바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에서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평화기구를 설립하고 나아가 공동은행, 공동화폐, 공동평화군 등을 제안했다. 한국의 자주독립을 넘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경제·군사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안 의사의 선구적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5년 전에 일찌감치 지금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제시한 것 아니겠는가. 하얼빈 기차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최근 개관했다.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표지석’ 설치를 요청했는데 그보다 격을 높인 것이다. 중국이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피하면서 안중근 기념관을 통해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연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효창공원에 가면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노력으로 유해를 찾아온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묘만 있다. 안 의사 묘는 유해를 찾지 못해 비어 있다.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강줄기 길 잃은 날 잊혀진 북방을 부르다

    ‘장엄한 숲에 드니 비로소 숲의 상처가 보인다/가지가 꺾이고 몸통이 휘고 부러지고/끝내는 쓰러진/상처투성이의 북방 침엽수림에서 나를 본다/혹독한 겨울의 잔해를 떠안은 설해목들/숲은 서늘한 사랑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숲에 드니 숲의 상처가 보인다) “남들보다 먼저 아프고 오래 앓고 마지막까지 질문한다”는 곽효환(47) 시인. 그의 고백대로 새 시집 ‘슬픔의 뼈대’(문학과지성사)에는 그가 사회, 현재와 불화하며 앓은 흔적이 선명하다. ‘인디오 여인’(2006), ‘지도에 없는 집’(2010)에 이어 4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에서 그는 4대강 사업, 강정마을, 크레인 시위, 희망버스, 사라진 피맛길 등 개발 논리와 자본의 탐욕, 갈등 사회 앞에서 밀려드는 무기력과 목메임, 피로감을 순정하게 다듬은 시어로 토로한다. ‘계절이 세 번 바뀌어도 끝내 허공 속에 머물고 있는/이 세상에 있어도 없는 혹은 없어도 있는 사람/(…중략)/홀로 마주한 밥상의 서걱거리는 밥알들/씹다 만 깍두기처럼 겉도는 말들/떠도는 말들과 부유하는 진실을 삼키는/여름날, 목메는 도심의 저녁 식사’(도심의 저녁 식사) ‘강줄기가 문득 길을 잃은 그날 이후/늪은 오랜 침묵의 깊이를 알고 있었을까/새벽이면 어부가 깊고 아득한 과거를 깨우는/밤이면 한사코 꽃망울을 닫는 가시연꽃을 품은/1억 4천만 년의 미래를’(1억 4천만 년의 미래-우포늪에서) 이렇게 현재의 부조리와 비합리에 아파하는 시인이 거듭 불러내는 것은 ‘북방’이다. “곽효환에게 시의 부름은 북방으로부터 왔다. 그에게 북방은 차단된 삶의 여로이고 단절된 역사의 현장이며 잊혀가는 오래된 정감의 고향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의 진원지”라는 김수이 평론가의 지적처럼, 그는 유전자에 각인된 북방을 펼쳐내는 것으로 포용력을 되찾는다. 엄혹한 땅이 시인에게는 글쓰기의 스승인 백석과 이용악이 존재하는 시의 고향이자,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토피아인 셈이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낮은 목소리로/섬과 숲과 호수의 정령을 부르는 북방의 밤/장작 더미에 피워 올린 모닥불을 에워싼/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 푸른 눈망울의 사람들/삼백서른여섯 개의 물줄기를 받아들여/단 하나의 물길로 흘려보내는/이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은빛 물살무늬 피가 흐른다’(바이칼 사람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광화문 상공 정지상태 ‘은백색 UFO’ 10여차례 출현

    광화문 상공 정지상태 ‘은백색 UFO’ 10여차례 출현

    최근 광화문 상공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지속해서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놀라움을 주고 있다. 한국UFO조사분석센터는 “지난 4일 광화문 상공에서 무려 1시간 38분 동안 지속해서 출현한 UFO 추정물체를 현장에서 의도적 대기촬영을 시도하던 UFO 헌터 허준 씨에 의해 5시 8분까지 추적 촬영됐다”고 11일 밝혔다. 당시 오후 3시 30분쯤 광화문 해치광장에서 대기촬영하던 허 씨는 “교보빌딩 상공에 뜬 야구공 크기만 한 은백색 물체를 발견하고 물체가 빌딩 뒤쪽으로 사라지자 뛰어가서 그쪽 상공을 확인했지만, 물체는 온데간데없었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다시 건너편으로 돌아온 허 씨는 3시 55분쯤 주변 시민이 하얀 물체가 보인다는 말에 맨눈으로 확인한 뒤 4시 3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물체는 교보빌딩 상공 너머에서 계속해서 한 대씩 10여 차례에 걸쳐 출현했다. 이를 동시 목격한 시민 중 진은희 씨는 “아들(11세)이 먼저 하늘에 하얀 게 2개가 보인다고 말해 쳐다봤는데 빌딩 뒤쪽에서 하얀 풍선처럼 보이는 우윳빛 물체 2개가 떠 있었다. 약 3~4분가량 정지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면서 “가만히 보니 고도가 풍선치곤 굉장히 높은 고도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는 데 그 정도 높은 곳에서 보일 정도이면 풍선은 아닌 듯하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목격자인 양이화 씨는 “4시~4시 30분 사이 하늘을 보니 빛나는 물체 1개가 가만히 정지 상태로 떠 있었다. 이어 또다른 물체 1개가 흐르다가 가만히 떠 있었다. 당시 10개도 넘은 물체가 계속해서 교보빌딩 상공 너머에서 출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종한 한국UFO조사분석센터 소장은 “촬영된 필름에는 총 여덟 차례에 걸친 추적촬영된 장면이 있고 영상 중간에 광원 2개가 마치 아령과 같은 형상으로 매우 근접해 붙었다 떨어지는 형태로 같이 날아가는 모습이 잠시 찍혀있다”면서 “이 광원들은 다른 광원보다 훨씬 더 밝았다”고 말했다. 또한 서 소장은 “가장 유력한 후보물체로 풍선일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는데 풍선의 경우 띄운 지 약 6분이 지나면 육안관측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면서 “촬영시간으로 보면 최초 발견 시각에서부터 최종 촬영이 끝나는 시간이 1시간 30분을 경과해 5~6분이 한계인 풍선의 관측시간과 비교해볼 때 풍선일 가능성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어 서 소장은 “UFO는 특성상 아무리 멀리 있거나 고도가 높아도 눈에 띄게 되고 일정한 밝기를 유지해 관측거리가 멀어져도 계속해서 추적이 가능하다” 고 덧붙였다. 또 당일 그 시각에 풍선을 날리는 행사를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한 결과 아무런 행사도 없었다고 서 소장은 밝혔다. 아울러 그다음날인 5일 대낮에도 베어링의 쇠구슬과 닮은 은백색 물체 5개가 시민들과 함께 동시 목격되고 일부가 카메라에 포착됐으나, 얼굴이 반사될 정도로 강렬한 햇빛에 명확히 촬영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서 소장 역시 쌍안경으로 관측한 결과 5개의 구형물체가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로 형성돼 잠시 정지 상태에 머물고 있었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주변의 약 50여 명의 시민들도 은백색의 구형 물체가 비행하는 장관을 동시목격했다. 서 소장은 광화문 상공에 유난히 집중적으로 출현하는 배경에 대해 “이 지역은 서울의 중심으로 허가없이 비행이 허락되지 않는 구역이며 청와대를 둘러싼 외곽지대에 군 시설이 밀집해있고 방공태세가 삼엄한 지역이다”면서 “UFO는 특히 레이더 기지, 핵시설,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자주 출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광화문 해치광장에 뜬 UFO 보러가기 사진=한국UFO조사분석센터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시생이 임소의 도회에서 접장에 천거되었다는 소식은 어찌 들으셨소?” “질청의 구실살이들과 상종이 잦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오늘밤 주과를 차려 모신 것도 경하할 일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도둑의 수괴와 동행이었다는 분은 사유(赦宥)를 받았습니까?” “모르는 게 없구려…. 반죽 좋은 그 사람도 치도곤이 무서워 손톱여물을 썰고 있소. 시생 역시 그 동무 꼭뒤잡이되어 접소에서 배송*될까 조마조마해서 그동안 덩달아 달게 자고 일어난 적이 없소. 밤마다 쪽잠에 조리를 치고 나니, 고뿔이 오려 하오. 그 동무나 시생이나 주제가 사납게 되었지요. 그 동무가 징치를 받게 되고 시생이 접장이 되면 무슨 비위짱으로 행세를 하겠소.” “모처럼 쇤네의 집에 침석을 마련하였으니, 하룻밤이나마 편히 쉬고 가십시오.” 향임의 말에 적지 않게 놀랐으나,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접소에서는 한저녁에 몰래 빠져나왔으니 동무들은 야경벌이* 나간 줄 알겠소.” “기방에서 몰래 침석을 하신다면, 야경벌이나 다름없겠지요.” 정한조는 입귀가 돌아가도록 웃고 나서, 향임이 쳐 주는 술잔을 받았다.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아간 뒤 궐녀는 주안상 가까이 두었던 등잔을 등 뒤로 두어 발짝 멀리 옮겨 놓았다. 주안상 근처는 어두워진 가운데 지분 냄새는 더욱 코끝에 사무치고, 등 뒤로부터 비치는 불빛으로 말미암아 풀 먹여 다려 입은 모시 적삼 속으로 궐녀의 부드럽고 흰 이목구비가 아련하게 드러났다. 주전자를 들어 올릴 때마다 궐녀의 젖가슴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였다. 몸가축을 알뜰히 가꾸었다는 증거였다. 익은 술냄새와 가슴까지 적시고 드는 지분 냄새가 서로 어울려 방 안의 분위기는 술잔에 미약(媚藥)을 푼 것처럼 금세 농밀하게 익어 갔다. 밤은 저절로 두어도 깊어 가는 법, 향임이 말대로 두 사람 모두 의지할 곳 마땅치 못하고 또한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외로운 처지들이었다. 어느덧 술 따르는 소리가 밤새 우는 소리처럼 살갑게 들릴 무렵,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등메 위로 코를 박고 비스듬히 누워 버렸다. 향임이가 다가와 베개를 받쳐 주는 것을 알아챈 정한조가 두 팔을 크게 벌려 향임이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옷이 구겨지십니다.” “그깐 소금장수 베잠방이 구겨져서 걸레가 된들 대수겠소.” “입성이 사나우시면, 체통도 구겨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향임이가 다가와 정한조의 옹구바지와 홑저고리를 벗겨 횃대에 걸어 주었다. 그는 그런대로 몸을 맡겨 두고 있었다. 취기가 도도하여 부끄러움은 저만치 달아나고 건장한 한 사내의 땀투성이가 된 허우대가 등메 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향임이는 함지박에 물을 떠와 사내의 몸에 밴 땀을 알뜰하게 씻어 주고 주안상을 수습한 다음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때 문득 궐녀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상념이 있었다. 소년의 나이에 기적에 올라 관기로 처신하는 동안 관원이나 하나같이 어투가 도저한 양반의 수청 기생 노릇으로 면박이나 당하면서 그들에게 하기 싫은 화수(和酬) 먹이를 주고받거나 아니면 육허기나 풀어 주는 노리개가 되어 왔었다. 그러나 소금장수와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순간만은 오랫동안 겪어 온 그런 수치심에서 완전하게 일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한 계집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다시 태어난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궐녀는 사내의 큰 가슴에 손을 얹고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풋풋한 기운이 뜨겁게 전달되었다. 그 손을 사내가 잡아 이끌어 배꼽으로 가져갔다. 모잽이로 누운 계집의 다른 한 손은 어느새 사내의 불두덩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윽고 두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고 등메 위를 한 바퀴 휘그르르 돌아감에 계집은 아래에 있고 사내는 위로 올랐다. 숨가쁜 소리가 오가고 난 뒤 계집에 주렸던 사내의 살송곳이 계집의 익혈을 향하여 맨땅에 송곳 박히듯 옹골지고 힘차게 내리박혔다. 사내의 하초에서 참기름 병마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메기 잔등으로 가물치 넘어가듯 미끌 하는 느낌이 들면서 계집의 감창소리가 입술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연거푸 이합을 치르고 나자 색에 주려 왔다고는 하나, 어진혼이 나간 듯 생게망게하여 깜깜한 밤인데도 한동안은 눈앞에서 북두칠성이 왔다 갔다 하였다. 계집은 사내의 겨드랑이 아래에서 물고를 뽑은 듯한 살송곳을 잡고 누워 좀처럼 비켜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풀막진 사내의 거웃을 오랫동안 어루만지며 채근하고 있었다. “오얏꽃* 주제인 쇤네가 언감생심 초례청을 차리자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간혹 쇤네의 누추한 와실을 찾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명색이 접장이 되었다 하나, 하찮은 소금장수에 무지한 밥쇠일 뿐이오.” “취하신 줄 알았더니, 멀쩡하시네요.” “잠자리를 같이하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소.” “말래 접소에 머무실 동안 말미를 내어 간혹 쇤네를 찾아 주시겠습니까? 은행나무 열매는 새가 먹지 않는답니다.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길가에 잠시 피었다가 지고 있는 오얏꽃이라 하나 은행나무 열매처럼 독은 없으니 자주 찾아 주십시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 오거든 고개 돌리고 외대나 마시오.” *배송: ‘쫓아내다’의 곁말 *야경벌이: 도둑질 *오얏꽃: 기생의 곁말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⑥ 세종로 사거리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⑥ 세종로 사거리

    황토마루서 바라본 사대문 풍광에 정도전이 칭송詩 읊었다는데… 세종로 사거리는 본디 사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선 지도를 펼쳐 보면 오늘의 광화문광장인 육조거리와 남대문을 잇는 남북 간 도로는 없었다. 지금의 태평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솟아올랐다가 정동과 청계천광장을 거쳐 무교동 쪽으로 흘러내린 나지막한 고개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이 고개가 황토마루(황토현)였다. 아쉽게도 지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 사진이나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생김새와 위치를 짐작할 뿐이다. 고개 덕분에 사대문 안의 등뼈에 해당하는 남북 간 상징 축선은 육조거리에서 정(丁)자 모양을 그리면서 운종가로 꺾여 종루(보신각)까지 이어지고 나서 청계천 광통교를 건너 남대문까지 뻗었다. 황토마루에서 바라보는 사대문 안의 풍광이 가장 아름다웠다. 삼각산을 병풍처럼 두른 북악과 경복궁, 그리고 육조 관청 담벼락(長廊)이 장관을 이뤘다. 한양천도 직후 정도전은 ‘여러 관아 높은 건물 마주 보며 서 있는 것이/하늘의 별들이 북두칠성을 둘러쌌네/달 밝은 새벽 관청거리 물같이 고요한데/말 구슬 소리 들려오고 티끌 한 점 일지 않누나’라고 육조거리를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아마 야밤에 황토마루에 올라 북악 쪽을 바라보면서 읊었을 것이다. 인왕산 지맥인 황토마루는 풍수지리학상 관악산 불길이 경복궁에 미치는 것을 막는 장치였다. 그래서 길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청계천을 파낸 흙을 보태 언덕을 덧쌓았다. 조선지도에 동령동(東嶺洞)이라는 지명이 나타나는데 세종로와 신문로1가에 걸친 황토마루 동쪽 마을이었다. 무기를 만드는 군기시(軍器寺)가 남쪽에 있었다. 지금의 서울신문(한국프레스센터)과 서울시청쯤이다. 일제는 1912년 ‘황토현 언덕을 없애서 폭 100m, 길이 220m의 광장을 만든다’는 총독부 훈령을 내려 고개를 뭉개 버렸다. 황토현을 없애고 나서 광장은 만들지 않았다. 대신 태평로를 내서 경복궁과 남대문을 연결하는 일본의 상징 축선을 만들었다. 황토현을 없애 버림으로써 육조거리를 파괴하고, 조선의 남북 상징 축선을 말살시키려는 의도였다. 광복후 신생 대한민국, 지명 즉흥 결정 육조거리·운종가 전통 이름 사라져 광복 후 1년여 지난 1946년 10월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은 일본식 동명이나 가로명을 바꾸는 작업을 했다. 당시 군정청 문교부장(교육부장관) 유억겸의 제안에 따라 일제강점기 가로명의 뒷말인 통(通)을 로(路), 정목(丁目)을 가(街), 정(町)을 동(洞)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특히 큰 가로명에는 역사상 위인의 시호를 붙이기로 했다. 개정 작업에 참여한 국어학자 황의돈은 회고록에서 “세종로는 우리나라 문치의 위인으로서 민족의 태양과 같은 세종대왕의 이름을, 충무로는 무인으로서 위훈을 추모하는 충무공을, 을지로는 육군의 대표 인물인 을지문덕을, 원효로는 불교의 대표 인물인 원효 대사를, 퇴계로는 유학계의 대표 인물인 이퇴계를, 그리고 충정로는 순국열사 중에서도 맨 처음인 민충정공으로 택정하였다”라고 썼다. 이에 따라 광화문통은 세종로, 황금정통은 을지로, 본정통은 충무로, 소화통은 퇴계로 등으로 변경됐다. 개정 작업은 논란 없이 간단하게 끝났다. 36년이란 식민 통치 기간이 너무 길어선지, 광복의 기쁨에 들떠선지, 일제잔재 지우기에 열중해선지 세종로 사거리가 황토마루였다는 점을 일깨웠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광화문통을 육조가로 되돌리자는 의견이 개진됐으나 무시됐다. 일제가 새로 만든 대표적인 길인 태평통도 태평로로 버젓이 살아남았다. 종로도 옛 지명인 운종가를 되찾지 못했다. 지명과 가로명 개정 작업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열렸지만, 지엽말단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지명이란 자연과 지리, 풍속, 제도의 산물임에도 식민통치를 갓 벗어난 신생 대한민국은 숙고 없이 지명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오늘날 사대문 안을 오가는 숱한 청소년들이 육조거리와 황토현, 운종가 같은 우리 지명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좋은 역사나 전통이라도 계승하지 않으면 잊히게 마련이다. 교보빌딩옆 ‘고종즉위40년 비전(碑殿)’ 도난당하고 헐리고 부실 복원까지 세종로와 종로가 만나는 지점에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전이 서 있다. 육중한 덩치의 교보빌딩 때문에 일견 왜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날아갈 듯한 추녀가 북악에 겹쳐 보이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단을 높이 쌓고 돌난간을 두른 장중한 기품이 주변 고층건물 숲을 압도한다. 1902년 세워진 이 건물은 건축사적으로 대한제국기 전통 양식의 마지막 걸작으로 평가된다. 현대식 건물밖에 없는 삭막한 세종로 사거리에 역사의 향기를 풍기는 존재다. 한때 세종로 사거리를 ‘비각 앞’이라고 불렀다. 이 건물의 가치를 깎아내린 일제의 몹쓸 잔재다. 아직도 관광 안내 책자나 교통 관련 안내문에 비각이라고 잘못 기록한 사례가 많다. 비각(碑閣)이 아니라 ‘비전’(碑殿)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궁궐 전(殿)자는 경복궁 근정전처럼 임금이 사용하는 건물에만 붙는 글자다. 전통 건물은 격에 따라 전(殿)-당(堂)-합(閤)-각(閣)-제(齊)-헌(軒)-누(樓)-정(亭) 순으로 이름이 붙는데 비각은 비전의 부속 건물에 불과하므로 이를 바꿔 부르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당시 황태자이던 순종이 쓴 비문에는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라고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썼으며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세운 일’ 등이 기술돼 있다. 단순히 고종 즉위 40년을 기리는 건물이 아니다. 대한제국 건국 사실과 황제라고 칭하고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헐릴 뻔한 위기를 넘겼다. 1966년 광화문 지하보도 공사 당시 비전이 공사에 거추장스럽다는 보고를 받은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60년밖에 안 된 것이니 헐어 버리라”라고 막말을 했다고 한다. 주위의 만류로 간신히 살아났지만 10년 후 종로길 확장 공사와 교보빌딩 신축공사 때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1979년 해체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 모습으로 자리 잡았지만 부실 복원을 면치 못했다. 지붕 꼭대기 절병통(節甁?) 모양이 달라졌다. 어찌 된 셈인지 회칠을 한 추녀 마루가 기와로 바뀌면서 잡귀를 물리치는 어처구니(雜像)도 간데없다. 또 비를 보호하는 꽃담과 철제 틀도 사라져 옹색해졌다. 출입구였던 만세문(萬歲門)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뜯어다가 자신의 집 대문으로 사용했는데 한국전쟁 통에 일부 파손됐다. 비전이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리케이드 밖에선 비문이 보이지도 않는다. 광화문광장을 오가는 숱한 내외국인들이 대한제국의 당당한 위엄을 엿볼 수 있도록 원형대로 복원돼야 한다. 국제극장·감리회관 부지에 광화문 빌딩 주인 둘, 담당 구청도 둘이 된 사연 세종로 사거리는 광장이 들어설 자리였다.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다. 1952년 3월 25일자 내무부 고시에 의해 확정된 7만 700㎡의 대광장 계획범위 안이기 때문이다. 전후 복구계획에 따라 세종로 사거리 중심에서 반지름 150m 원 넓이의 광장 부지가 잡혀 있었다. 이 반지름 안에는 지금의 교보, 현대해상화재, 동아일보, 광화문우체국, 광화문빌딩 등이 포함된다. 이 계획은 엄청난 로비에 의해 꼬리를 내렸다. 1962년 12월 8일자 건설부 고시에 의해 3만 3228㎡(반지름 102m)로 확 줄었다. 광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개발지상주의 때문이었다. 도로와 광장계획에 걸려서 정식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땅이지만 가(假)건물을 허용했다. 청계천 쪽 동아일보사와 정동 쪽 국제극장, 감리회관이 대표적 가건물이었다. 동화면세점이 입주한 광화문빌딩의 탄생 비화도 흥미롭다. 1986년 신문로 도심재개발사업에 따라 1950년대 말~60년대 초 장안 최고의 개봉관이었던 국제극장과 감리회관을 헐고 새 건물을 짓게 됐다. 시행 주체는 동아흥행과 감리회유지재단이었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2개의 건물을 따로 짓는 것보다 하나로 묶는 것이 낫다는 아이디어가 서울시와 건축위원회 등에서 제시됐다. 시행 주체를 설득하고 나니 담당 구청이 걸림돌이었다. 두 건물이 속하는 종로구청과 중구청이 막대한 세원 확보를 놓고 한 치도 양보를 하지 않았다. 국제극장은 종로구 세종로동 211번지였고, 감리회관은 중구 태평로 1가 68번지였다. 설득과 타협, 숙고를 거듭한 끝에 수평분할 방식에 합의했다. 지하 5층에서 지상 12층까지는 동아흥행 소유로 종로구에, 지상 13층부터 20층까지는 감리회유지재단 소유로 중구에 속하게 하는 묘안을 짜낸 것이다. 이 건물은 1993년 완공됐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광화문빌딩은 몸체는 하나, 주인은 둘, 담당 관청도 둘인 특기할 만한 건물”이라고 말했다. joo@seoul.co.kr
  •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지금 여기는 차마고도(茶馬古道)입니다. 정확히는 여러 갈래의 차마고도 가운데 중국 윈난성(雲南省) 위룽쉐산(玉龍雪山·5596m)과 하바쉐산(哈巴雪山·5396m) 사이의 후타오샤(虎跳峽)로 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길은 험합니다. 말과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습니다. 협곡의 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호랑이(虎)가 건너뛸(跳) 수 있었겠지요. 한데 사방을 둘러친 풍경은 몇 마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고 빼어납니다. 풍경에 홀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곧장 수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겁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길인 셈이지요. 차마고도의 후타오샤 구간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족히 이틀은 걸립니다. 이번엔 ‘빵차’를 타고 이동하다 핵심 코스에 내려 트레킹을 즐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단기 속성 코스’ 쯤 될까요. 전 구간을 발품 팔아 걷는 것에 견줄 수야 있겠습니까만, 그 길에서 만난 감동의 깊이 만큼은 결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나서기 전 몇 가지 알아둘 게 있다. 먼저 삼강병류(三江幷流)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진샤강(沙江)과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등 세 개의 물줄기가 26㎞ 거리를 두고 함께 흐르는 것, 혹은 그 지역을 뭉뚱그려 일컫는 말이다. 세 강은 각각 양쯔강과 메콩강, 살윈강의 최상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후타오샤를 관통하는 물줄기가 진샤강이다. 겨울엔 옥빛, 여름엔 황톳빛으로 빛깔을 달리한다는 강이다. 진샤강은 남진을 거듭하다, 장강제일만이란 곳에서 180도 회전해 리장으로 흘러들어 간다. 리장 안에서만 614㎞를 굽이친 진샤강은 쓰촨성 등을 거치며 한껏 폭을 넓히는데, 그게 바로 양쯔강이다. 샹그릴라현 후타오샤진에 이른 진샤강은 위룽쉐산과 하바쉐산 사이를 할퀴며 지난다. 바로 이 구간, 그러니까 오래전 한몸이었다가 지각변동으로 떨어진 두 개의 거대한 산이 몸피를 바짝 좁힌 협곡이 후타오샤다. 협곡의 길이는 20㎞ 남짓. 폭은 가장 가까운 곳이 30m 정도다. 진샤강과 설산의 최대 표고차는 3900m에 달한다. 차마고도는 바로 이 후타오샤의 거친 산자락 사이를 지난다. 차마고도는 ‘밑줄 쫙’ 쳐가며 알아두자.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히는 곳이다. 실크로드 보다 앞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차마고도는 윈난성 등 중국 서남부의 푸얼차(普?茶)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선 ‘평균고도 4000m가 넘는 산자락에 다져진 험준한 길이 5000㎞ 정도 이어진다’고 적고 있다. 이 길을 따라 교역에 나선 상인 조직이 마방이다. 마방들은 차나 말 외에 소금과 약재 등 다양한 물품들을 실어 날랐다.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 것도 바로 이 길을 통해서였다. 차마고도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후타오샤의 차마고도는 그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민간인의 티베트 입경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차마고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중국 서남부의 리장(麗江)은 소수민족의 전시장 같은 곳이다. 궁벽한 소도시에 2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살아간다. 중국인들조차 소수민족의 삶을 엿보기 위해 리장을 찾는다고 한다. 리장 시내를 벗어나 214번 국도로 갈아탄다. 티베트의 라싸까지 가는 국도다. 오래전 마오쩌둥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던 길이기도 하다. 낡은 길이 주는 감동은 ‘신작로’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를 가졌다. 길 양 쪽으로 줄곧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흐른다. 황톳빛 진샤강 위에 세워진 경홍교(景虹橋)를 건너면 샹그릴라다. 티베트 말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란다. 유럽인들에겐 1933년 영국의 제임스 힐턴이 지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전설의 이상향으로 각인된 곳이다. 샹그릴라는 해발 3300m로 리장(2400m) 보다 고도가 높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리장과 다소 다른 건축 양식 등에서 서역의 향기가 물씬 전해 온다. 후타오샤 트레킹은 최소한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후타오샤의 정수만 골라 보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후타오샤진에서 진샤강과 나란히 달리는 로 패스(Low path)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 하바쉐산 중턱의 중도객잔(2600m)까지 오른 뒤, 차마고도와 합류해 관음폭포까지 다녀오는 식이다. 이때 동원되는 탈 것이 ‘빵차’다. 식빵처럼 통통한 형태를 한 승합차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차마고도 트레킹에선 조랑말 만큼이나 유용하다. 차마고도를 에워싼 산은 거대하다. 그에 견줘 사람과 길은 턱없이 작다. 사진으로는 도무지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그저 실핏줄 같은 저 길 위로 사람과 말이 걷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석이 깔려 있지 않은 길은 바닥이 깊이 파였다. 흙길이라고는 하나, 단단하기가 포장도로에 견줄 만한데도 길 가운데가 움푹 파인 거다. 얼마나 많은 말과 사람들이 밟고 지났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몸 돌릴 틈 없는 좁은 벼랑길에서 마방끼리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가이드 김성철씨는 “마방을 이끄는 우두머리 ‘마고토’끼리 협상을 벌여 적은 규모의 대상이 싣고 온 짐과 말을 모두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고 했다. 물론 물건값은 온전하게 보전해준다.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오가며 마주하는 위룽쉐산과 하바쉐산은 높고 또 깊다. 웅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그 험준한 산에서도 생명이 자란다. 키 작은 관목들이 진회색 산자락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거인이 짧은 초록빛 비단 치마를 걸친 듯, 어색한 몰골이다. 하지만 그 치열한 생명력은 경외롭기까지 하다. 주민들의 삶도 산자락을 따라 팍팍하게 이어진다. 급경사의 산자락에 계단식 밭을 일궈놓았다. 염전 형태의 광물 채집 시설도 이채롭다. 설산 위쪽의 광산에서 배출된 물을 가둔 뒤, 물에 함유된 미세한 광물을 걸러내는 설비다. 현지 가이드는 “허술한 시설로도 해마다 2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둔다”고 했다. ‘짭짤’한 수준을 넘어 화수분에 가깝다. 차마고도의 풍경이야 어디서나 가슴 벅차지만, 마지막 산굽이에서 마주한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왼쪽으로 관음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수십길 아래로는 장선생객잔 등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 사이로 진샤강이 황톳빛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간다. 멀리서는 실핏줄 같았던 관음폭포지만, 바짝 다가서 보면 제법 수량이 풍성하다. 차마고도 버전의 오아시스다. 물은 맑고 차다. 하바쉐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한 트레킹에 아쉬움도 남을 법하다. 한데 이쯤에서 돌아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길이 준 울림은 이미 차고도 넘쳤으니 말이다. 윈난을 말할 때 리장(麗江)고성(古城)을 빼놓을 수 없다. 사방가(四方街)에서 방사선 형태로 뻗어 나간 네 갈래 길 위에 1000년을 넘나드는 건축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서 있는 곳. 길바닥엔 오화채색석이 촘촘하게 깔렸고,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 녹은 물이 세 갈래로 마을을 적시며 흘러가는 곳이 바로 ‘동방의 베니스’ 리장고성이다. 해발 2400m의 나시족자치현인 리장은 중국 내에서도 ‘깡촌’으로 통했다. 그러다 1996년 발생한 대지진은 고성의 가치를 한껏 높여 줬다. 인근의 현대식 건물들은 하릴없이 스러졌지만, 고성은 끄떡없이 서 있었던 것. 3000여 채에 달하는 우아한 목조건물들은 서로 맞닿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연환계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실핏줄 같은 100여개의 골목길로 연결된 건축물은 서로가 버팀목 노릇을 한다. 반면 화재엔 취약하다. 조조의 대군도 제갈공명의 화공 한 방에 케이오되지 않았던가. “고성 앞에 세워진 물레방아 모양의 대수차(大水車) 또한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액막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길바닥엔 박석이 깔렸다. 수많은 말과 마방들이 오가는 동안 길이 파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근 흑룡담에서 발원한 수로는 세 갈래로 나뉘어 고성 곳곳을 적시며 흘러간다. 리장고성이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성 안에는 약 3만명의 주민이 산다. 그중 90%가 나시(納西)족이다. 나시족은 개구리를 숭상한다. 개구리가 하늘에서 동파교 경전을 가져와 인간에게 전해 줬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시족의 개구리에 대한 친밀감은 전통 복장에서 잘 드러난다. 나시족 여인들마다 등 뒤에 장식물을 메고 다니는데, 이게 꼭 개구리처럼 보인다.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장식물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원을 수놓았다. 머리엔 달처럼 둥근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른바 피성대월(披星戴月)이다. 별을 등에 지고, 머리엔 달을 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선 뒤 달 뜨는 밤에 돌아올 만큼 오래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사와 농사를 전담했던 나시족 여인들의 힘겨운 생활사가 배어 있는 표현인 셈이다. 리장고성은 1200년 전(1700년이란 견해도 있다) 세워진 바이사(白沙)고진(古鎭)과 1000년 역사의 수허(束河)고진, 그리고 800년 된 다옌(大硏)고진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리장 시내의 다옌고진을 리장고성이라고 부른다. 세 곳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시간을 내 따로 찾는 게 좋겠다. 리장고성을 기준으로 수허고진은 4㎞, 바이사고진은 10㎞ 정도 떨어져 있다. 규모는 작아도 번다한 관광지가 돼 버린 리장고성보다 한결 옛 정취가 살아 있다. 리장고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게 위룽쉐산이다. 여태 단 한 차례도 인간에게 정상을 내주지 않은 산이다. 해발고도는 ‘현재’ 5596m다. 한라산을 3개 쌓아 놓은 것과 맞먹는 높이다. 지각활동이 활발해 지금도 높이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산군들의 자태가 기막히다. 은빛의 용이 꿈틀대는 듯하다. ‘옥룡’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산은 거대하다. 5000m 넘는 고봉만 13개, 72개에 이르는 4000m급의 ‘낮은’ 봉우리는 이름조차 없다. 그 안 어딘가에 ‘만년설 녹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고, 사슴을 타고 다니며, 호랑이로 밭갈이를 하는 사람이 산다’는 전설 속 옥룡제삼국도 있을 게다. 불끈 솟은 산은 리장 어디서나 풍경의 주인이 된다. 위룽쉐산에서 캐낸 오화채색석은 리장고성 등의 길을 포장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 승속을 가르는 듯한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면 해발 4506m의 빙천 세계다. 고산 증세로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답답하다. 예서 4680m의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후들대는 다리로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면 웅장한 위룽쉐산의 산군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샹그릴라·리장(중국)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 ▲아시아나항공이 중국 리장까지 주 2회(목·일요일) 전세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리장 공항이 생긴 이래 외국계 항공사로는 처음이다.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 목요일 출발은 4박(기내 1박) 5일, 일요일 출발은 5박 6일 일정이다. 6월 16일까지 1차 운항, 7월 18일~10월 17일 2차 운항한다.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한 관광상품은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투어2000, 혜초여행사, 라이브투어 등 다섯 곳에서만 판다. 대부분 리장과 다리(大理), 혹은 리장과 후타오샤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리장을 기준으로 후타오샤까지는 100㎞, 버스로 3시간쯤 걸린다. 위룽쉐산은 25㎞로 40분 거리다. 리장고성 수로의 원천인 흑룡담은 리장 시내에 있다. 가뭄으로 물은 바짝 말랐으나 리장 주민들이 성소로 여기는 곳이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위룽쉐산 빙천세계에선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50위안(약 9200원)에 방한 점퍼를 빌릴 수 있다. 고산증세를 완화시키는 산소통도 1개 당 50위안이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이용되는 조랑말은 200~300위안쯤 받는다. 객잔 숙박비는 150 위안선이다.
  • 대륙을 쥐락펴락 中 ‘북두칠성’ 해부

    대륙을 쥐락펴락 中 ‘북두칠성’ 해부

    지난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 이후 미묘하게 흔들렸던 북·중 관계가 최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전격 방중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5세대 지도부 등장 이후 북·중 관계가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도 시 주석의 초청으로 6월 하순 중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어서 중국 5세대 지도부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파워엘리트’(김규환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주요 2개국(G2)인 중국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5세대 지도부 7인을 집중해부한 책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 이어 지난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시 주석을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총리, 장더장(張德江)전인대 상무위원장, 위정성(兪正聲)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류윈산(劉雲山)정치국 상무위원, 왕치산(王岐山)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 장가오리(張高麗)국무원 상무부총리 등 ‘북두칠성’의 면면과 리더십을 상세히 소개했다. 중국의 최고 지도부는 파벌과 인맥으로 이뤄진 중국 정가에서 공산당 중앙의 현미경 검증을 통과해 올라온 발군의 인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풍부한 일선 경험을 갖추고, 당 중앙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으며, 자신의 경력과 업적도 요령껏 관리하는 정치적 감각도 탁월한 편이다. 따라서 “중국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어떻게 중국 공산당의 틀 속에서 성장해 지금의 자리를 꿰차고 앉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테면 문화혁명 초기에 ‘반동의 가족’으로 몰려 농촌으로 떠났던 시 주석이 공농병(工農兵) 학생 제도 덕분에 칭화대에 입학해 탄탄한 인맥을 쌓은 뒤 허베이성 정딩현 부서기, 푸젠성 닝더시 당서기, 푸젠성장, 상하이시 당서기로 승승장구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인다. 특히 2007년 10월 초순까지만 하더라도 후계자 경쟁에서 리커창 총리에 밀렸던 시진핑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책은 특히 중국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적 자산인 인적 네트워크, 즉 관시(關係)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끈끈한 연대감으로 뭉쳐진 동향 출신의 주요 인물, 관시의 산실인 대학 동기와 유력 동문, 공직생활을 함께하면서 맺은 각별한 동료 등 인맥 전반을 풍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꼼꼼히 파헤쳤다. 중국 5세대 지도부 인명사전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1만 7000원.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초신성’ 우주쇼 일반인도 직접 본다

    ‘초신성’ 우주쇼 일반인도 직접 본다

    초대형 별이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빛을 내뿜는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을 일반인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40여년 만에 찾아왔다. 20세기 이후 북반부에서 나타난 가장 밝은 초신성의 등장에 전 세계 천문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서울대·경희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 공동연구팀은 약 2000만 광년이나 떨어진 ‘M101’은하에서 생겨난 초신성을 지난달 30일 관측해 추적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초신성은 스스로 빛을 내뿜는 항성의 마지막 단계로 늙은 별이 폭발하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현상으로, 이때의 밝기는 평소의 수억배에 이른다. 이번 초신성은 기존의 초신성들에 비해 월등히 가까운 은하에서 폭발해 일반인도 특수 장비 없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신성이 위치한 ‘M101’ 은하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손잡이 부분 여섯·일곱 번째 별의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다. ‘PTF11kly’는 향후 1~2주 동안 급격히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질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나라에서는 9월 중순까지 오후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북서쪽 낮은 하늘에서 망원경이나 쌍안경을 통해 관측이 가능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프로축구] 성남 ‘신태용 매직’ 올해도 계속될까

    [프로축구] 성남 ‘신태용 매직’ 올해도 계속될까

    “6강 플레이오프(PO)는 무조건 간다. 결국 마지막에는 열매를 따지 않을까.” 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프로축구 성남 신태용 감독은 여전히 당당했다. 주변의 우려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감독 부임 후 지난 2년간 잘 달려왔다. 올해 다들 힘들 거라지만 동계훈련을 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목소리에 바짝 힘을 줬다. 신 감독은 2009년 성남 사령탑에 앉은 뒤 ‘매직’이라고 불릴 만큼 굵직한 성적을 거둬왔다. 변변한 지도경험이 없었던 데뷔 첫해 K리그와 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더니, 지난해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도 4위로 알차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 ●“용병 적응하는 후반기 올인” 그러나 올해 성남은 ‘날개 꺾인 천마’다. ‘아시아 챔피언’을 일궜던 몰리나(FC서울)·정성룡·최성국(이상 수원)·전광진(다롄 스더)·조병국(베갈타 센다이) 등이 모두 빠졌다. 라돈치치와 홍철은 부상을 당해 리그 초반 결장이 불가피하다. 영입 직전까지 갔던 지오반니와의 계약이 불발돼 아직 ‘용병농사’도 매듭짓지 못했다. 사샤·조동건·김성환·남궁도 등이 있지만 지난해보다 중량감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성남은 주력 선수들이 이탈해 많이 힘들 것 같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신 감독은 “고민이 많아 탈모관리를 받고 있다.”며 속앓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라돈치치가 부상이고 몰리나와 파브리시오가 떠나 화력은 약해졌지만 조동건과 남궁도가 연습 때처럼 해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곧 합류할 브라질 용병이 얼마큼 적응하느냐도 관건”이라고 ‘희망’을 얘기했다. “동계훈련에서 전력을 100%로 맞춰 본 적이 없어 전반기에는 삐걱대겠지만 용병이 적응하고 조직력이 강화되는 후반기에는 치고 나갈 거라 믿는다. PO는 무조건 간다.”고 장담했다. ●“PO 무조건 갈 것” 사실 성남은 지난해에도 이랬다. ‘축구판 큰손’으로 군림하던 성남은 갑자기 모기업의 지원이 줄어 허리띠를 확 졸라맸다. ‘중원의 핵’ 김정우(상주)와 이호(울산)가 동시에 빠졌다. 변변한 전력수급도 없었다. 그러나 신 감독의 ‘형님 리더십’과 ‘삼각편대’ 몰리나·라돈치치·파브리시오의 화끈한 공격력, 어린 선수들의 겁없는 플레이가 어우러지며 ‘기적’을 일궜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많지만 어깨를 쭉 펴는 이유다. 이날 공개한 새 시즌 유니폼에도 이런 각오가 녹아 있다. AFC 챔스리그 우승 때 입었던 ‘노란 상의, 빨간 하의’가 홈 유니폼이다. 지난해 검은 바지를 입던 성남은 챔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한국축구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빨간 바지로 갈아입었고, 아시아 1등에 올랐다. 박규남 성남단장은 “아시아 정상의 기운을 담은 유니폼으로 좋은 경기를 펼치길 기대한다.”고 응원했다. 성남은 5일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포항과의 어웨이 경기로 올 시즌을 열어젖힌다. 신 감독은 “팀 전력이 100%가 아니라 힘들 수 있지만 첫 단추를 멋지게 잘 꿰겠다.”고 여유 있게 말했다. ‘한국판 과르디올라’ 신 감독의 욕심은 눈앞의 ‘1승’이 아니라 K리그 최다우승(7회)으로 북두칠성이 그려진 유니폼에 ‘별 하나’를 더 다는 것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사상에 돼지머리 생일밥상에 미역국 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습속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속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사위가 처가에 오는 날이면 장모는 으레 씨암탉을 잡는다. 고사상에는 어김없이 돼지머리가 올라가고, 생일 아침이면 거의 예외 없이 밥상에 미역국이 오른다. 왜 그런 걸까. 별 생각 없이 매일 먹는 음식이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이유가 궁금해 지는 것들이 많다.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윤덕노 지음, 청보리 펴냄)는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음식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저자는 책에 실린 45가지 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나라 고문헌은 물론, 중국과 서양의 고전 등 방대한 자료를 철저히 파헤쳤다. 책을 읽는 내내 ‘아, 그래?’와 ‘대체 이렇게 희한한 자료들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장모가 사위에게 씨암탉을 먹이는 것은 닭이 양기가 넘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알을 낳는 씨암탉을 먹고 다산(多産)하라는 바람도 담았다. 게다가 귀신을 쫓고 새벽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으니, 장모가 사위에게 바라는 덕목을 모두 갖춘 셈이다.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놓는 것도 까닭이 있다. 고사 자체가 ‘재물의 신’인 돼지에게 소원을 비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돼지는 예전 할머니들이 복을 빌었던 칠성님 가운데 하나로, 북두칠성의 일곱 번째 별인 파군성(破軍星)에 사는 신이다. 인간의 길흉화복과 부귀영화를 결정한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미역국을 먹는 것도 무속신앙과 관련이 깊다. 서양의 생일 케이크가 ‘출산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친 제물이듯, 미역국도 아이를 점지해 준 삼신할머니에게 바치는 음식이란 것. 책은 크게 ‘감춰진 깊은 뜻’과 ‘음식이 보약’ ‘진실 혹은 거짓’ ‘세계화 DNA’ ‘어원을 찾아서’ 등의 다섯개 범주로 나눠졌다. 책 말미에는 다양한 음식이 출현한 시기를 ‘음식 연대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가격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세계를 놀라게 한 ‘2009 미스터리 포토’

    세계를 놀라게 한 ‘2009 미스터리 포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09년, 알쏭달쏭 답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일도 유독 많이 발생한 한 해 였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인터넷판이 사람들을 의문에 휩싸이게 한 사건들을 모아 ‘2009 올해의 미스터리 사진’ 20여 장을 선정했다. ◆노르웨이 상공의 녹색 회오리, 러시아 상공의 대형 미라미드 물체 등의 정체는? 12월 초, 노르웨이 북부의 스콜드 군사기지 인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오리 모양의 불빛이 포착됐다. 마치 블랙홀을 연상케 한 이 빛은 “UFO가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킬 만큼 ‘미스터리’ 했지만, 결국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 실험 중 발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노르웨이에서 녹색 회오리 불빛이 발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러시아에서는 대형 피라미드 모양의 물체가 포착됐다. 너비가 약 1마일(약 1.6㎞)정도인 이 피라미드 물체는 한 장소에 수 시간 동안 떠 있었으며, 천천히 회전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밖에도 영국 캠브리지셔 상공의 빛 수 십 개와, 북두칠성을 연상시키는 컴브리아 상공의 오렌지 빛 물체를 담은 사진도 ‘올해의 미스터리 사진’으로 꼽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예수의 흔적 유난히도 예수의 흔적이 많이 발견된 한 해 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가정집에서는 다리미 바닥에서 예수의 형상을 발견해 화제가 됐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초코바에서도 예수의 얼굴이 발견됐다. 아일랜드 리머릭에서는 한 교회 터전에서 우연히 자른 나무가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일이… 지난 9월 노르웨이의 거대 빙하가 무너지는 순간이 포착됐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우는 표정을 연상시켜 눈길을 모았다. 하루 세 번 피눈물을 흘린다는 미국의 15세 소년도 ‘올해의 미스터리’로 뽑혔다. 킬비노 인만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숱한 전문의들의 검진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몇 개월간 피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또 중국 칭하이에서 발자국 모양을 한 나무판자가 발견돼 ‘신의 흔적’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뮤지컬 리뷰] 영웅

    [뮤지컬 리뷰] 영웅

    어둠속에서 점점 커지는 기차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일곱 발의 총성. 스크린에 하나씩 새겨지던 총탄 자국은 북두칠성이 되어 빛을 발한다. 역사적인 하얼빈 의거로 우리 민족의 별이 된 안중근의 운명을 상징하는 뮤지컬 ‘영웅’(연출 윤호진)의 첫 장면은 공교롭게도 2시간40분간 관객이 공연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1막에서 살짝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차곡차곡 인물과 사건을 전개해 나가던 공연은 2막에서 안 의사의 저격과 법정 장면으로 숨 돌릴 틈 없이 시선을 사로잡더니 죽음을 앞둔 안중근(류정한·정성화)이 ‘장부가’를 부를 땐 끝내 총격을 맞은 듯 강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객석에선 대형 창작뮤지컬의 신성(新星)탄생을 축하하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지난 26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영웅’은 지금까지 한국 창작뮤지컬이 거둔 성과를 최대한으로 집대성해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실물과 영상을 결합해 만주 벌판을 달리는 기차를 무대위에 재현하고, 독립군과 일본 경찰이 건물 사이를 누비며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이 돋보였다. 안중근과 동료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와 ‘장부가’를 비롯한 뮤지컬 넘버들은 전염성이 강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층적인 사건들은 조명과 미닫이문을 활용한 무대 분할로 효과적으로 형상화됐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보다 과도한 애국주의나 평면적인 선악 구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안중근을 무결점의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이토 히로부미를 천인공노할 악의 화신으로 그리지 않았다.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과 죽은 이토 히로부미의 환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허구의 인물인 설희와 링링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긴 하나 아직 캐릭터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느낌이다. 이 부분이 좀더 매끄럽게 보강된다면 1막의 지루함과 어수선함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12월31일까지. 4만~12만원. 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장영실 과학동산’ 조성…청소년 천문교육 산실로

    ‘장영실 과학동산’ 조성…청소년 천문교육 산실로

    조선시대 동래 출신의 대과학자 장영실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는 ‘장영실 과학동산’이 조성됐다. 부산 동래구는 다음달 4일 복천동 동래읍성 북문 앞 장영실 과학동산에서 개장 기념식을 한다고 28일 밝혔다. 동래구는 시비 5억원을 들여 지난 6월 장영실 과학동산 조성 공사에 들어가 최근 완공했다. ●조선시대 천문기기 19점 복원전시 이곳에는 장영실이 만든 천문기기를 비롯해 조선시대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이 한자리에 설치, 전시되고 있다. 혼상과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 혼천의,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현주일구, 풍기대, 수표, 선화당, 관상감, 창덕궁 측우기 등 11종이 북두칠성 모양을 따라 배치됐다. 또 혼상 좌우에 동서양 해시계 2종, 동래읍성 역사관에서 북문의 통행로 주변에는 세종대왕기념관 일구대, 평면해시계, 신법지평일구 등 5종을 복원했다. ●내년까지 천체투영실 추가… 테마파크 완료 전시 복원품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현장조사를 거쳐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제작됐으며 동래구의 위도와 경도에 맞게 설치됐다. 동래구는 이번 천문기기 설치에 이어 내년까지 동래읍성 역사자료관 오른편에 간의대와 간의, 규표 등과 천체투영실을 추가해 장영실 과학테마 파크를 완료할 계획이다. 단순히 천문기기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소속 과학문화해설사들의 전문적인 해설도 곁들여 그 원리와 의미도 제공한다. 최찬기 구청장은 “장영실이 만든 천문기기를 비롯해 조선시대 천문기기를 한자리에 설치,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비전과 꿈을 키워 주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CEO 칼럼] ‘아름다운 간판’절반의 실패/이경순 누브티스 사장

    [CEO 칼럼] ‘아름다운 간판’절반의 실패/이경순 누브티스 사장

    서울의 한 구청의 ‘간판특구’ 빌딩을 디자인하면서 자가건물이 아닌 세입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강으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올라서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직 우리의 문화마인드가 아득하다는 심각성을 다시 절감했다. 한정된 면적에 12군데의 세입자들이 제각각 먼저 튀어보겠다고 색상에서 불빛까지 치열한 경쟁을 한다. 절대 양보가 없다. 심각한 형광색상으로 가독성을 높여야 하고 다른 이웃의 간판보다 좋은 위치를 고집한다. 사이즈는 당연히 커야 한다고 세입자들마다 주장한다. 디자인에 대한 대화가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이다. 한 업소를 가까스로 설득해 전화번호 없이 소신껏 디자인했나 했더니, 시공한 뒤 다시 전화번호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웃과 비교해 보니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크레인을 부르고 재설치를 하면서 발생한 이중의 경비에는 관심이 없다.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인지 줄다리기로 시간은 흐르고 디자이너들은 지쳐갔다. 나중에는 궁여지책으로 그들의 의견 반, 디자이너 의견 반으로 결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회사사옥에는 간판이 없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이해하기 힘든 일인지 모르지만, 간판을 단다는 것이 쑥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 경험 속에는 간판은 일의 기본 설정이지 전적인 광고 수단은 아니라고 본다. 기원전 79년 대폭발로 매몰된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벽면 구조를 통해 당시 간판모습을 읽을 수 있다. 우유가게는 산양을 나무판에 걸어서 표시했고, 목로주점의 간판은 술통을 멘 두 남자의 조각품이다. 이런 소박한 유형의 은유적인 간판들은 17세기까지 이어진다. 중세에 옷가게는 가위를 하나 내걸었고, 농기구 가게에는 쟁기를, 식품점에는 설탕포대를, 서점에는 성서와 왕관을 표시했다. 손은 장갑가게, 소녀의 얼굴은 아름다운 실크를 파는 곳이었고, 파인애플 조각품은 과일상점이었다. 열쇠를 하나 걸어놓은 곳이 열쇠맞춤집이었다. 향수가게는 노루과에 속하는 자코캣이 걸려 있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이고, 일상이 시와 같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하고 표시하고 유도하는 기능적 역할에만 충실하느라 아직 우리의 간판은 광고 효과만을 구가하고 있다. 도로상에 버젓이 난립한 스탠드 간판과 때묻고 칠이 바랜 간판들이 이기적인 상업주의의 상징물이 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도무지 경관이나 주변과의 조화에는 관심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간판 대정비에 나섰지만, 우리의 상혼을 뚫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만 골탕을 먹기 일쑤다. 현란한 주황색을 요구하는 업주와 상담을 진행하는데, 색상 규제를 새롭게 도입해 ‘공공색’에 대한 규범을 만들지 않으면 지자체의 재정 지원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이즈를 규제하는 법규만 존재할 뿐 색상의 제한이 없으니, 강남 한복판이 어지럽게 출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행정과 융합되기를 학수고대한다. 건물 소유주의 관심과 투자도 매개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브랜드가 높아진 건물은 결국 건물주를 유리하게 할 것이다. “그 건물 밤에 봤어? 북두칠성에 물병자리랑 처녀자리도 있던데….” 이것이 40년 묵은 낡은 타일건물을 반짝이게 하는 최소한의 투자임을 알았으면 한다. 이경순 누브티스 사장
  •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아~.”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신음인 듯, 탄성인 듯 짧은 소리들만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구름이 엷게 깔렸지만 밤하늘에는 북두칠성, 북극성, 토성 등 별자국이 또렷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의 형광등, 백열등 불빛에만 의존해 왔던 타락한 시력이었지만 무더기로 빛나고 있는 별을 찾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이 주황색, 초록색, 흰색 등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책에서만 보던 사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북두칠성 7개 별 중 손잡이 쪽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사실은 2개임도 선명히 볼 수 있다. 북두칠성은 ‘북두팔성’이었다. 파천황(破天荒)의 순간이다. 강원도 영월군 봉래산 799.8m 꼭대기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의 개폐식 지붕이 열리면서 나타난 풍경들이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매일 저녁이면 세 차례(저녁 8시, 9시, 10시)씩 많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천체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수와 영원으로의 별잔치가 펼쳐진다. 30분간 시뮬레이션 별자리 강의를 듣고, 나머지 30분은 진짜 별을 볼 수 있다. 여름밤에 보는 별은 더욱 선명하다. 별과 자연은 영월 여행의 키워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30분 남짓 향하다가 영월 쪽으로 빠져나왔다. 신림 나들목(88번 국도)도 좋고, 제천 나들목(38번 국도)도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쩡히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 FM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들쑥날쑥한 음질의 방송만 나오질 않나, 엉뚱한 중국방송이 섞이질 않나, 깨끗한 방송은 잘 잡히지 않는다.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실제로 온통 산이다. 영월 길 위를 차로 달려 보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또 다른 산모퉁이가 버티고 있다. 사람 사는 집 서너 곳이 모여 있나 싶으면 또다시 산이 떡하니 나타난다. 산자락 아래 평평한 곳이면 겨우 손바닥만 한 땅일지라도 한 구석에 집 짓고 밭 일궈온 이곳 옛 사람들의 신산하고 강퍅한 삶이 떠올라 가슴이 막막해진다. 하지만 대대로 사람을 힘들게 했던 산간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은 이제 하나의 축복이 됐다. 청정무구 영월에 와서 래프팅만 하고 간다면 진짜배기 영월은 보지 못하고 가는 셈이다. ●영월 사람들이 감춰놓고 즐기는 곳 주천강 한 자락에 자리잡은 요선암(邀僊巖)과 요선정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천강은 서강의 최상류이다. 서강은 다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게 된다. 동강이 래프팅 등으로 때만 되면 몸살을 앓는 데 반해 서강의 윗물인 주천강의 요선암은 영월 10경에 꼽히면서도 한 구석에 꼭꼭 숨겨진 탓인지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다. 요선암 주변의 바위를 보면 더러는 엉덩이가 꼭 낄 정도로 조그맣게, 더러는 넉넉히 몸 담그면 좋을 법하게 널찍한 모양으로 곳곳에 널려 있다.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결과 두툼한 바위가 힘겨루기를 한 끝에 만들어진 복스러운 바위들은 주천강 요선암 주변에 떡두꺼비처럼 넙죽 엎드려 있다. 요선암은 조선시대의 문인 양사언(1517~1584)이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고 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邀僊)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천강과 요선암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바로 요선정이다. 주천면에서 8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주면으로 들어선 뒤 법흥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하게 ‘요선정, 미륵암’ 표지판이 있다. 미륵암까지 차를 타고 가서 뒤쪽 숲길로 100m 남짓 올라가면 요선정이다. 뒤편으로 난 숲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소박한 형상으로 마애여래좌상과 석탑이 있다. 요선정은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정조가 어제시(御製詩)를 남겨 놓았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마애불이다. 턱없이 길쭉한 상체는 황금비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름 근엄한 표정의 불상이지만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눈을 감은 듯 뜬 듯 앉아 있는 모습은 뭔가에 심술이 나서 뾰로통한 것 같다. 고려시대 지방의 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것으로서는 유례가 별로 없는 마애불이라고 한다. 조형미에 대한 감탄보다는 장난을 걸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의 친근함과 소박함이 매력이다. 불상 뒤편으로 돌아서면 굽이굽이 돌아가는 주천강을 발 아래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이 있다. 여름 한철에도 잘 붐비지 않아 이름 그대로 ‘신선 놀음’에 맞춤이다. ●그래! 한우 먹자 영월을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다하누촌이다. 한우직거래의 새 지평을 연 곳이다. 2007년 8월 문을 연 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주천면 섶다리마을을 사시사철 아이들 소리, 사람의 시끌벅적함으로 채운 일등공신이다. 여름, 겨울 성수기때면 마치 영월 필수 방문코스인 듯 하루에도 수천명이 찾아와서 한우를 먹고 가고, 싸들고 간다. 다하누촌 영업방식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서울 노량진시장에서 횟감 사들고 식당 찾아가 밥값, 차림비용 내고 회를 먹는 식이다. 100% 보장하는 한우 생고기가 300g에 8000원부터 시작하니 저렴함은 말할 것도 없다. 다하누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 30여곳 중 하나로 찾아가면 된다. 차림 비용은 한 사람당 2500~3000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점은 식당에 가면 상추, 깻잎, 고추 등 일반적인 쌈 채소는 물론이고 곤드레, 산뽕잎, 곰취 등 깊은 산속에서 뜯은 웰빙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하누촌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이벤트 프로그램’이다. 이벤트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만 100원에 한우 한 근을 사갈 수 있는 등 턱없이 싼 값으로 한우를 팔거나 경품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 5월 ‘제2 다하누촌’으로 문을 연 김포에서도 섶다리마을과 마찬가지의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 영월까지 가기 멀다면 강화도 가는 길에 있는 김포를 들러도 마찬가지다. 관련 문의 1577-5330. 아, 다하누촌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이며 천연기념물 지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제비가 다하누촌 본점 처마 밑을 비롯해 섶다리마을 곳곳에 너무도 흔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새끼 제비들의 지지배배 노랫소리가 한우 사러 들어가는 배고픈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세우곤 한다. 역시 청정무구 영월이다. 다하누촌이 아니라면 딱히 먹을 거리가 없다. 대신 영월읍 복판에 있는 서부아침시장통에 가면 올챙이국수와 메밀전병, 보리밥, 순대국밥 등 소박한 먹거리가 지천이다. 또한 흔히 먹는 곤드레나물밥과 달리 곤드레를 끓여서 먹는 곤드레국밥은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과음 뒤 해장에 딱이다. 영월읍 리버가든(033-375-8804) 등에서 내놓고 있다. 날짜를 잘 따져본 뒤 덕포 5일장(4, 9일)과 주천 5일장(1, 6일)에 맞춰 가게 되면 장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영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말 여행] 태두

    태산북두(泰山北斗)가 본딧말이다. ‘태산’은 ‘큰 산’이고 ‘북두’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이 말들이 합쳐졌다가 다시 줄어 ‘태두’로 쓰인다. ‘태산’이나 ‘북두칠성’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이른다. 특정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됐다. ‘그는 철학계의 태두다.’
  • [길섶에서] 들에 핀 매화/최태환 논설실장

    선배를 만났다. 은퇴 후 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불교, 한학에 조예가 깊다. 금강경, 주역을 가까이 하던 그를 떠올린다. 근황이 궁금했다. 한문 모임도 하고, 참선도 한단다. 무슨 화두를 붙들고 있는지 물었다. ‘판치생모’(板齒生毛)란다. 판치는 앞니다. 나무의 옹이를 의미한다는 이도 있다. ‘앞니, 옹이에서 털이 난다.’ 내안에 부처를 두고 밖에서 부처를 찾는 미망을 경계하라는 것일까. 참선 속에 가끔 번뇌와 미망을 떨쳐 낼까. “어렵지!” 선배의 대꾸가 명료했다. 하지만 꼬리를 물던 잡념이 일시 공백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자넨 요즘 어떤 화두를 잡고 있냐.”고 했다. “화두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불현듯 ‘면남견북두’(面南見北斗)가 스친다. ‘남쪽을 향해 있으면서 북두칠성을 본다.’는 뜻이다. 붙들고 싶다. 선배는 매화기행을 다녀왔단다. 고전에 등장하는 매화의 흔적을 찾는 답사였다. 진주 부근 들에 홀로 선 매화나무(野梅)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매화 한 닢 띄운 찻잔이 생각난다. 매화향이 전해온다. 찻잔에서 흔들리는 나를 본다.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 [씨줄날줄] 육조거리/함혜리논설위원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운 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경복궁과 도성, 궁성, 관아를 모두 완공한 것은 태조 7년(1398년)에 이르러서다. 그해 4월26일 태조는 새 도읍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신도팔경(新道八景)을 그린 병풍 한벌씩을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내렸다. 신도팔경에서 기전산하(한양을 중심으로 한 산하의 형세), 도성궁원(성곽과 궁궐의 모습)에 이은 제3경은 바로 열서성공(列署星拱). 궁궐 앞의 여러 관아들이 북극성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두칠성 등 별들로 둘러싸여 배열된 모습을 읊은 것이다. 열서성공은 이후 육조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조선시대 주작대로의 모습을 가리킨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이 준공되던 해인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조성한 거리다.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광화문 사거리)까지 이르는 대로로 오늘날 세종로의 전신이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에는 의정부와 이조·한성부·호조가 위치하고, 좌측에는 예조·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 및 사역원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었다. 여러 관아건물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졌던 육조거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화재 피해를 입었다가 조선 말 대원군 때 본격 재건됐다.19세기 말까지 육조거리는 관아를 출입하는 관료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 주요 관공서들이 들어서면서 원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실시한 일제의 새로운 행정개편에 따라 육조거리는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 세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공현장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시대별 도자기 파편 등을 근거로 육조거리 토층은 19∼20세기(구한말∼일제 강점기),16∼18세기(임진왜란 전후),14∼15세기(조선건국 시기)로 확연히 구분된다. 서울시는 육조거리 토층을 떠내 새롭게 조성되는 광장내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를 다시 흙으로 덮어버린다는 계획이다. 그보다는 현장을 그대로 살리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다.600년 도읍지라고 백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교육적일 것이다. 함혜리논설위원 lotus@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검은 바위’라는 뜻의 카라코람. 카라코람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군의 하나로 인도 북부에서 파키스탄, 중국의 신장 자치구와 카슈미르 지방을 연결하는 카라코람 고개가 있는 곳이다. 서부 카라코람 지대에는 바투라 산군과 훈자피크, 레이디 핑거 등 6000∼7000m급 고봉들이 많아 산악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조선시대부터 왕이 자신의 충신에게 하사했다던 검. 화려한 외양만으로도 위용이 느껴지는 검은 변괴를 처단하고 재앙을 물리쳤다고 한다. 한쪽 날에는 주술적인 주문 글귀가, 다른 쪽 날에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신비한 검. 조선을 대표하는 명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해피 선데이(KBS2 오후 5시25분)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눈물의 투혼을 발휘한 역도의 이배영, 작지만 강한 미녀 검객인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가 ‘스쿨림픽’ 코너에 나온다.4개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14명의 연예인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코뿔새의 대모라 불리는 한 교수는 ‘필라이 프로젝트’를 통해 멸종위기에 놓인 코뿔새 수호에 힘쓰고 있다. 그는 코뿔새의 존재와 숲 보존에 대한 연관성을 설명하고, 고뿔새의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에도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또 한 해양 환경론자는 고래상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아서(SBS 오전 10시50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스타들의 고군분투 리얼 육아 체험 보고서. 이번에는 최근 사회현상인 ‘슈퍼대디의 바짓바람’에 주목했다. 아이의 친구 문제, 식사, 학교생활, 공부 등을 모두 책임지고 돌봐주는 요즘 아빠들의 ‘슈퍼 대디 열풍’에 도전한다. 아빠 수업을 받느라 좌충우돌하는 스타들이 재미있다. ●희망풍경(EBS 오전 6시) 어느 누구보다 밝은 웃음을 가진 뇌병변 1급의 중증 장애인 가영이. 딸을 가슴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워온 지도 벌써 열 두해. 미겸씨는 비록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세상 그 어떤 엄마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 입양, 장애에 대한 세상의 완강한 편견에 당당히 맞선 모성애에 코끝 찡해진다.
  •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사현금(四絃琴·거문고)을 퉁기는 신선과 불춤을 추는 신선 사이에서 요고(腰鼓·장구)를 두른 신선이 북두칠성을 배경으로 하늘 나라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중국 지안(集安)의 오회분 4호묘에 그려진 북두칠성의 그림이다. 고대 조상들이 하늘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혼연일체를 추구하던 상상력이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책이 나왔다.‘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김일권 지음, 고즈윈 펴냄)는 옛 선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천문 연구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문의 역사와 문화를 시대별로 분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교수인 지은이는 고인돌 등에 새겨진 고구려식 북극성 천문도, 고려시대 천문에 대한 북한의 보고서,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의 발굴자료, 중국 천문자료 등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내 천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우리 역사 속의 별자리를 살핀다. 역사에 투영된 별자리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숱한 이야깃거리가 내장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가 단지 어린 시절 상상의 날개를 펴던 ‘낭만의 자리’가 아니라 시대상과 문화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의 자리’라는 것. 별은 같은 곳에 한결같이 뜨는데 시대별로 다르게 보는 것은, 같은 별자리라도 시대에 따라 모양이나 갯수가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시대에 각광받던 별자리가 후대에는 쇠퇴하는 대신 다른 사상적·사회적 배경을 업고 등장한 별자리가 새롭게 주목받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먼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에 주목한다. 신라 첨성대를 제외하고는 삼국시대 별자리 유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구려처럼 다양하고 선명한 별자리 그림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황해도 안악3호분에 최초의 천장 별자리 벽화가 나타나고 다채로운 별자리를 간직한 평남 남포시 덕흥리 고분은 오행성의 그림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지안 오회분 4호묘는 북극3성의 5방위 별자리 체계가 등장, 별자리 관측에 대한 고구려의 천문학 수준을 가늠케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수준 높은 별자리 관측이 조선에 와서 맥이 끊긴 까닭은 뭘까. 지은이는 무엇보다 제천의례 혁파에서 찾는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태조 원년(1392) 조박 등이 ‘원구(圓丘)는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절이니, 이를 폐지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성리학적 질서를 숭상한 조선은 중국의 천자만이 하늘의 별자리를 독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책은 고대 한국의 별자리 그림이 중국의 별자리 그림과 다르다는 견해도 내놓는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화권이지만 별자리에 대해서는 다르게 인식했다. 한국은 북극성 별자리를 ‘북극삼성(北極三星)’으로 바라본 데 비해 중국은 ‘천극사성(天極四星)’ 혹은 ‘북극오성(北極五星)’으로 간주했다. 별자리 만큼은 중국의 시각에서 벗어나 고구려의 독자적인 관점이 정립된 셈이다. 별자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2만 8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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