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북경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호흡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하지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가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기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919
  • 몸집커진 현대號 ‘핸들은 하나 꿈은 셋’

    ◎夢九 夢憲 夢準/기아 인수 계기 분할구도 ‘가속’/“자동차 사업은 그룹차원” 鄭夢九 회장으로 기울 조짐/왕회장 후계·세력균형 놓고 3형제간 지분 빅뱅 불가피 현대그룹의 분할구도가 서서히 물밑 용틀임을 시작하고 있다.사업 구조조정과 계열사의 업종별 분리,여기에 기아·아시아자동차 인수까지 겹치면서 ‘포스트 왕회장(鄭周永 명예회장의 별칭)’구도가 조기 가시화할 조짐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6일 기아·아시아차 인수작업의 사령탑을 鄭夢九회장이 맡는다고 발표했다.줄곧 기아입찰을 주도해온 鄭夢奎 현대자동차회장 대신 夢九 회장이 새로이 자동차의 대표로 부상한 것.현대는 “기아 인수는 현대자동차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그룹차원의 사업이기때문에 총수인 夢九 회장이 주도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안팎에서는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사업 소유권 변동의 전주곡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벌써부터 현대자동차는 ‘왕회장’의 직계가 맡고 夢奎 회장에게는 기아·아시아를 떼어줘 분가시킬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설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재 자동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사를 그룹 공동회장인 夢九(차남)·夢憲(5남) 회장과 夢準씨(6남·국회의원) 등 3형제가 분할한 상태. 그러나 내년말까지 자동차,건설,중화학,전자,금융·서비스 등 5개 부문별 소그룹으로 계열사를 나눌 계획이어서 복잡한 소유구조에 한바탕 헤쳐모여식 ‘빅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벌 구조조정을 전담해온 夢九회장,금강산 개발과 남북경협을 주도해온 夢憲 회장이 각자 가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해 온것도 내부 역학구도와 무관치 않다.특히 ‘현대 책임론’을 불러일으켰던 반도체,철도차량,발전설비 부문의 구조조정 진통은 夢九(현대정공·철도차량)·夢憲(현대전자·반도체) 회장 및 夢準씨(현대중공업·발전설비)가 간판기업을 희생시키지 않기위해 첨예한 신경전을 벌인 결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대의 제조업체’로 불리는 간판 현대자동차는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오래전부터 자동차를 맡아온 鄭世永­夢奎 부자와 현대정공·현대자동차써비스 등 관련 2개사를 갖고 있는 夢九회장에 더해夢憲 회장까지 올초 현대자동차 주주이사로 등재했기 때문이다.그룹 관계자도 “夢憲 회장이 전자 건설 등 주요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어 기아 인수작업은 夢九 회장이 맡기로 했다”고 밝혀 형제간 세력 균형의 의미가 상당부분 가미됐음을 시사했다.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왕회장이 생존해 있는 동안은 그룹 지분을 둘러싼 지각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2세 경영체제의 완전한 정립은 ‘왕회장’ 사후에나 가능할 전망이지만 그룹분할구도의 윤곽은 내년말까지로 예정된 업종별 분할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 金 대통령 11일 訪中/江澤民 주석과 회담

    ◎18일 APEC정상회의 참석 金大中 대통령은 내달 11일부터 15일까지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19일까지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제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27일 발표했다. 金대통령은 12일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과 처음으로 만나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간 우호증진과 동북아지역 안정과 평화 유지,번영,그리고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뒤 논의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천명할 예정이다. 또 주롱지(朱鎔基) 국무원 총리를 비롯한 중국 각계 주요인사들과 만나 양국 지도층간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북경대에서 한·중 협력방안에 관해 연설한 뒤 상하이(上海)를 방문한다. 한·중 두나라 정상은 정상회담 후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복수사증협정을 체결하며,양국 주요 현안인 어업협정도 타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金대통령은 콸라룸푸르에 도착,동포리셉션 등을 가진뒤 18일에는 APEC정상회의에 참석,아시아 경제난 극복을 위한 회원국간 공동노력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 기간동안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크레티앵 캐나다 총리,프레이 칠레 대통령,고촉통 싱가포르 총리,하워드 호주 총리 등과 개별 정상회담도 갖는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회원국간 무역·투자 자유화 및 원활화,경제·기술협력,금융위기 원인규명 및 해소방안 등이 주의제로 정상간 토론을 거친뒤 선언문으로 채택된다. 한편 金대통령은 돌아오는 길에 홍콩을 방문한뒤 20일 귀국한다.
  • 현대 금강산사업 투명해야(사설)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이 27일 2차분 소 501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다.이번 鄭회장의 방북목적은 금강산 관광사업 협상을 최종 마무리짓고,금강산 개발을 비롯한 대북 투자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성사 여부에도 각별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金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질 경우 현재까지 알려진 북한·현대간의 금강산사업에 관한 문제들이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순 유람선 첫 출항과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한편 현대가 내·외자를 유치,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금강산 종합개발 문제등에 대한 북한측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鄭회장의 이번 2차 방북은 현대가 추진중인 금강산사업 내용들을 총체적으로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귀추가 주목된다.그러나 鄭회장의 방북결과와 관계없이 앞으로 금강산사업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현대의 금강산사업은 분단 이후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는 최초·최대의 통일관련사업인 만큼 국민적지지와 정부의 지원 아래 떳떳하게 추진해야 한다.그리고 대북협상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남북관계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은 현대가 이미 경험한 교훈이다. 9월25일 첫 출항일자를 발표한 이후 현대가 겪은 고통과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는 금강산사업이 남북화해와 협력 차원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는 통일 시범사업인 만큼 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대가 금강산사업의 독점권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뭉칫돈을 북쪽에 건넸다는 논란이 제기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현대가 대북 민간경제협력사업에서 선두의 위치에 있는 만큼 모범을 보여야 한다.대북경제사업을 통해 떼돈을 벌겠다는 발상도 안된다.그리고 현대의 선례가 다른 민간기업들이 대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부담을 줘서는 더더욱 안된다. 특히 정경분리 원칙에서 추진되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대의 금강산사업으로 인해 정치공세의 빌미나 부담을 주는 결과가 초래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그런 맥락에서 현대는 한점 부끄러움 없이 금강산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 韓·中 어업협상 급진전/金 대통령 訪中전 매듭

    한·중 어업협상이 급진전,金大中 대통령의 11월 방중(訪中)을 계기로 타결될 전망이다. 외교통상부는 26일 한·중 양국이 당초 지난 23일까지로 예정했던 제6차 어업협상 기간을 연장, 27∼29일 사흘간 북경대반점(北京大飯店)에서 막바지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독점적 어업권을 갖는 ‘배타적 어업수역’의 범위와 일정기간 공동관리후 배타적 어업수역으로 전환되는 ‘과도수역’의 설정기간을 놓고 절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이 진전돼 협정문안 작성도 병행하고 있다”면서 “교섭이 늦어질수록 중국측에 유리하기 때문에 대통령 방중 때까지 타결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총격요청 수사결과­발표문 요지

    ◎배후 등 공범 수사/한씨 “이회성씨에 보고” 진술 번복/피의자 3인 “총격요청 했지만 보고는 안했다” ▲수사배경=한성기가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이회성에게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 5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에게도 사전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오정은 한성기등이 이회창 후보 당선 시공을 인정받아 대가를 얻을 목적으로 범행에 이른점에 비추어 볼 때 추진 상황을 사전에 이후보 진영에 보고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돼 이회성 장진호 오정은의 비선조직과 통일부 안기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배후 및 공범관계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 후보 지시’ 아직 못밝혀 ▲이회창 후보 수사 결과=오정은은 97년 10월 한성기로부터 진로의 부동산 매각과 화의신청을 도와주면 장진호가 박찬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박찬종을 이후보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비서관과 민정비서관에게 부탁했다.11월 하순 한성기와 함께 이후보의 승용차에 동승,박찬종 고문 자택까지 안내해 이후보와 박고문의 회동을주선하는 등 이후보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 피의자 등이 모두 이후보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을 지시받거나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어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이후보가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회성 관련 의혹=이회성은 대선기간동안 조선호텔 객실에서 한성기를 1회 만난 것은 사실이나 10여분 동안 선거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무력 시위 요청 내용에 대해 사전 사후에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변명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에서는 97년 11월 하순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이런 식으로 가면 대선에 절대 불리할 것 같다.4·11 총선과 같이 북풍을 일으켜 대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했고 12월 다시 만나 “북경에 가서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그러나 검찰에서는 그 진술을 번복했다. 결론적으로 한성기와 이회성이 단둘이 은밀히 만났다면 한성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출국전에 무력 시위를 요청할계획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국전 계획보고 가능성 또 한성기는 12월8일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북풍 요청 사실을 말하려고 했으나 사람이 많아 말을 다하지 못했고 이회성의 지시에 따라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을 만나 “북경으로 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 무력시위를 요청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한성기가 중국 출국전에 이회성을 만나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보고했을 의심이 가므로 보고 여부에 관해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시 이회성고문에게 무력 시위 요청 사건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번복했다.이회성도 자금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진위에 관해서는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장진호씨가 자금 지원 ▲장진호 관련 의혹=장진호는 97년 10월 한성기 오정은으로부터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비선 조직을 결성할 계획이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7,000만원을 지원했으며 12월 초순에는 한성기의 북한 주민접촉 신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 주고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은 점이 확인됐다.장진호는 안기부 조사시 97년 12월초 한성기로부터 “12월10일쯤 북경을 방문해 북한측에 모종의 부탁을 하려 하는데 앞으로 휴전선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했다.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장진호가 무력 시위 요청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을 개연성이 있으나 장진호가 한성기 등에게 무력 시위를 요청하도록 지시했거나 자금 지원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향후 수사 계획=피의자들은 검찰 송치후 배후 관련 부분을 제외한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으나 사건이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과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 자백을 번복하고 배후를 부인하고 있어 계속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 ◎범행 동기/이회창 후보 당선땐 승진·채무변제 등 기대 26일 검찰이 발표한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吳靜恩張錫重은 94년 현대종합상사 부장인 吳모씨의 소개로 알게된 뒤 吳靜恩은 張錫重의 대북 무역업에 관한 편의를 봐주고,張錫重은 북한관련 정보를 吳靜恩에게 제공했다.韓成基와 吳靜恩은 97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吳靜恩은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金泳三대통령 퇴임후의 신분유지에 불안을 느껴 韓成基와 함께 李會昌 후보 선거운동을 위한 비선조직을 구성키로 합의했다.한성기와 오정은은 97년 10월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비선조직 운영자금 7,000만원을 제공받아 2,000만원은 韓成基가,5,000만원은 吳靜恩이 조직운영비로 사용했다. 피의자들은 대선 기간중 吳靜恩 韓成基가 李會昌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이에 따라 張錫重이 97년 10월16일 북의 아세아 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고 추진하던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대가로 북한측에 96년 4·11 총선 직전에 발생한 판문점 무력시위와 같은총격전 등을 요청하여 보수세력의 지지를 결집시켜 李후보의 지지율을 제고키로 했다. 李후보가 당선될 경우 오정은은 청와대 별정직 3급 공무원으로서 현직 유지가 가능하고 승진 또는 출신지역에서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성기는 안기부장 특보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석중은 대북사업 중 발생한 현대측에 대한 2억원의 채무변제 유예가 가능하고 앞으로 오정은 등을 배경으로 원활한 대북사업을 할 수 있는 등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와 같이 개인적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국기를 위협하는 판문점 총격요청 범행에까지 이르게 됐다. ◎총격요청 공모/“선거 이틀전 터트리면 야당서도 대응 못할것” 장석중은 북한에 농업용 자재를 제공하고 농산물을 받아오는 계약재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북대 김순권박사의 방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부탁했다.장석중이 현대에 대한 채무 2억원을 변제하지 못하고 담보물건에 대한 경매를 통보받는 상황에 이르러 오정은에게 그 해결을 부탁하자 오정은은 정·재계에 지면이 넓은 한성기를 장석중에게 소개했다. 오정은의 소개로 한성기 장석중이 만나 김박사의 방북을 고리로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장석중의 현대에 대한 채무를 연기받는 방안을 논의하던중 오정은이 북한에 김박사를 보내면 장석중의 사업뿐 아니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 아니냐고 제의했다. 이후 97년 11월 하순 오정은과 한성기가 만나 李후보 지지율 문제를 논의하다가 한성기가 국민회의 공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선 총격전인데 시시한 것 갖고는 안되고 한번 ‘쾅’하고 크게 터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오정은은 만약 그런 사건을 일으키면 오히려 여당이 덮어쓸 가능성이 많다고 하자 한성기는 선거에 임박해 이틀 정도 하면 야당이 대응할 여유가 없다면서 내가 북경에 가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97년 11월말경 삼청동 오복집에서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이 만났다.이 자리에서 한성기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4·11총선 때처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가 있어야 하며 홍보가 중요하므로 사전에 북측과 약속된 지점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여 북측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내려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찍어 방영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장석중이 그런 문제는 자신있다며 북한측과 한성기를 만나도록 주선해주겠다고 했다.또 장석중이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 일정을 책임져 달라고 하자 오정은은 챙겨보겠다고 약속했다. 오정은은 통일원에서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얻어내고 장석중은 한성기를 북경으로 안내하여 북측인물과 접촉을 주선하며,한성기는 북측인사들을 만나 대선 직전 북한군의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97년 12월 초순 장석중이 북경 방문시 대선문제 등을 논의할 목적으로 북경 주재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협력처장 리철운에게 전화하여 한성기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김박사의 방북건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니 대선관련 요청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97년 12월9일 삼청동 오복집에서 3인이 만나 무력시위 요청에 관한 북한측과의 접촉상황 등을 최종점검하면서 만약 공안기관에 노출되면 김박사의 방북 등 남북교류 부분에만 목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자고 약속했다. ◎권영해씨 직무유기/사건내용 알고도 자료인계 안해 권전안기부장은 97년 12월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북측이 휴전선에 1개 소대를 보내 무력 시위를 일으키거나 김대중 후보의 친북활동 자료를 제공하여 주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언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이대성은 12월12일 중국에서 귀국하는 한성기를 김포공항에서 임의동행해 조사한 결과 한성기는 부인했으나 소지품 등을 통해 첩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이대성은 권영해에게 한성기 조사 결과와 동행한 장석중이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권영해의 별도 지시가 없자 한성기를 석방했다. 권전안기부장은 첩보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해 한성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특정 후보의지지율 제고를 위해 북과 내통해 휴전선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했다.그런데도 대공수사실로 관련 첩보 및 증거물을 이첩하여 수사토록 하지 않고 퇴임시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의 암장을 기도,이후보의 당선을 음성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장석중씨 사전인지 의혹 권영해는 범행의 동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해 은폐하려한 점에 비춰 피의자에게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그 동기를 추단해 볼 수 있다.권은 자신의 조사 지시로 범행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권 교체후 새 안기부 수사팀에 본건 관련 자료를 공식 인계한 사실도 없을 뿐 아니라 부장의 지시가 없을 경우 수사 부서로 이첩되지 않아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범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 후보당선 음성적 지원 특히 안기부에서 공작원인 장석중 등이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유는 12월12일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서 조사받은 한성기가 다음날 북경에있는 장석중에게 안기부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렸음에도 장석중이 상급자 공작관에게 이실직고하지 않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총격요청 경과/북 박충 만나 무력시위 부탁/“평양에 알아보겠다” 답변 97년 12월10일 오후 장석중 한성기가 중국 북경에 도착해 캠핀스키 호텔에 투숙했다. ▲1차 접촉=12월10일 오후 6시 한성기의 호텔 방에서 장석중의 전화를 받고 찾아온 북한 대외경제위 소속 리철운과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장석중은 한성기와 같이 북경에 온 목적은 첫째 김순권 박사 옥수수 계약재배건이며,둘째는 대선에 관한 특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리철운이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묻자 한성기는 김대중 후보의 친북자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 자료가 있으면 부탁한다고 말했다.또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람과의 회담 주선을 부탁했다. ▲2차 접촉=같은 날 오후 8시 캠핀스키 호텔 다방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북한의 리철운 김영수,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라고 소개한 박충이 만났다.한성기는 이 자리에서 현재 대선상황은 전쟁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이회창 후보 특보 자격으로 북한에 왔다고 밝혔다.또 박충에게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을 들어달라고 요청,박충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다는 답변을 들었다.이어 한성기는 박충과 따로 만나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하여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했다.또 요청을 들어주면 김박사를 북한에 보내주고 신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대가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박충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평양에 전문을 보내 출국하기 전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3차 접촉=12월11일 오전 11시쯤 캠핀스키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리철운 김영수 등이 만나 계약재배건 등 대북사업계획을 논의했다. ▲4차 접촉=12월12일 오전 8시30분쯤 같은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이 북한의 박충 리철운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박충은 한성기가 말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으나 회답이 없다고 전했다.박충은 또 지금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통보를 했다. ◎결론/적과 내통 긴장 조성/자유민주주의 뒤흔든 사건 ▲사건의 성격=이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제15대 대선중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인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과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 등이 재벌의 자금지원으로 비선조직을 가동,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측인물과 내통,판문점에서의 총격까지 요청,국가의 안녕과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뒤흔드는 가증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져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특수직무유기 사건’은 국가최고정보기관의장이 총격요청사건을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아 대공정보·수사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또 하나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대선기간 중 일어난 ‘북풍’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검찰의 입장=‘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적과 내통해 긴장을 조성,보수계층을 결집시켜 대선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기도한 것으로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건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엄정하게 사법처리 했다. 관련자들은 소속 정당,신분,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배후관계 등과 관련,의심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증거법상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하였다. ▲향후 수사계획=북한과 관련된 사항이 많고,피의자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감정절차,구속적부심 절차와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들과 접견한 뒤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배후관계 등에 강한 의혹이 있음에도 수사 애로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고 증거법상의 제약으로 기소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혐의자들에 대한 공모,자금 지원 여부 ▲김순권 박사의 방북카드를 대가로 무력시위 요청 경위 ▲권영해의 특수직무유기행위와 정치권과의 연관관계 ▲판문점 총격요청을 전후한 한성기,장진호,이회성 등의 접촉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 아울러,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가혹행위여부에 대해서도 인권옹호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겠다.
  • 동학학회 발족/28일 창립 총회/신용하 교수 등 참여

    동학학회가 발족된다. 동학학회 창립준비위원회(회장 이현희 성신여대 교수)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창립총회를 갖고 정식으로 출범한다. 동학학회 창립준비위원회는 발기취지문에서 “자연에 대한 수탈,인간성의 황폐화에 경종을 울린 동학은 21세기 인류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1,000년의 문턱에서 만시지탄의 심정으로 동학학회 발기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발기인에는 강길원(전북대),곽의생(북경중앙민족대),김인환(고려대),신용하(서울대),오문환(연세대) 교수 등 113명이 참여했다. 동학학회는 이어 ‘동학과 2,000년 문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갖는다.이현희 교수가 ‘동학혁명과 한국민족주의’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고 ‘동학연구의 현황과 방법’(조대현 경기도청)‘개벽사상의 의의’(오문환 교수),‘동학과 통일국가 모델’(노태구 경기대 교수)이라는 주제발표가 이어진다.(02)790­2429,(0345)400­4240.
  • KDI ‘남북경협 10년 평가·과제’ 토론회 요지

    ◎남북 경협 北 군비 통제와 연계 필요/對北 3원칙 실행방안 미비로 한계 북한은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올 상반기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 등 3대 교역국과의 교역규모가 전년 동기대비 29.6%,3개국에 대한 수출은 40.3%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북 경제협력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부문의 군비통제와 병행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2일 주최한‘남북경협,지난 10년의 평가와 향후 과제’란 주제의 정책토론회에서 연구원들은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高日東 연구원◁ ‘북한 경제의 최근 상황과 향후 전망’=북한은 올들어 자립경제와 중공업 우선주의를 재천명하는가 하면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등 의도적으로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조치들은 벼랑끝 외교를 통해 실리를 얻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는 심화되는 경제난에서 비롯된다. 90년대 들어 북한은 구 소련의 해체 등으로 인해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는양상을 보여왔다. 북한은 93년 12월 농업,경공업과 무역제일주의를 채택했으나 핵문제 대두, 김일성 사망과 홍수피해 등으로 3대 제일주의는 사실상 실패했다. ▲농업=기후나 토양 등 자연조건으로 볼 때 북한은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 다만 최근의 식량위기는 외화가 부족,식량을 수입할 수 없는 데 따른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식량문제는 산업부문의 재건이나 대외경제관계의 회복 등 전반적인 북한경제 재건계획과의 연계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산업=90년대 북한 산업의 급격한 붕괴는 생산시설과 부품,원료와 에너지 등 제반 생산요소들을 의존해온 구 소련과의 경제관계 단절 때문이다. 또 산업구조는 투입요소 다(多)소비형인데다 중공업에 치중되어 있다. ▲대외경제관계=95년 이후 나진·선봉지역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북한 전체 교역액의 75%가 집중된 동아시아의 경기침체로 북한은 큰 타격을 입었다. ▲대안과 정책적 시사점=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개혁을 추진할 수 없는 형편이다.북한의 중공업 우선정책은 불가능하다.가동률이 20% 안팎으로 떨어진데다 산업시설이 급속히 노후화돼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외자유치를 통해 수출을 지향하는 것이다. ▷林源赫 연구원◁ ‘남북경협의 제약요인과 활성화 방안’=숱한 논의에도 불구,남북경협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이중성=남북경협이 침체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적대적 요소와 동반자적 요소가 병존하는데 따른 것이다.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북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돼 한민족 주도에 의한 통일은 요원해질 가능성이 있다. ▲대북정책의 문제점=정부의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 배제,교류협력 증진 등 3대 대북원칙은 손색이 없다. 다만 정부가 실행원칙으로 내세우는 정·경분리와 상호주의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미비해 한계가 있다.북한의 도발수준이 낮을 경우 정치·군사적 사안이 경제적인 사안과 연계되지 않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 상호주의 원칙도 개별 접촉에 대한 건별·사안별 상호주의인지 아니면 선 양보,후 대가라는 장기적인 상호주의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안과 과제=인천∼남포구간 운임이 부산∼함부르크간 운임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 남북교역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필요하다. 남북경협은 하나의 북한정권이 다수의 남한 기업을 상대로 진행되는 점에서 정치적 사안에 의해 영향받을 뿐 아니라 북한측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할 우려도 많다.
  • 北 “소 폐사 문제 안삼겠다”/현대측에 통지

    ◎정주영씨 내주초 재방북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이 다음 주 초 판문점을 통해 재방북한다. 현대 방북사업단 金潤圭 단장(현대건설 사장)은 22일 오후 4시 북경발 아시아나항공 332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이같이 밝혔다. 金단장은 鄭회장의 재방북 일정과 관련,“앞으로 1∼2일 안에 북한측에서 구체적인 일정을 통보해 주기로 했다”면서 “다음주초 출발,2박3일이나 3박4일동안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金단장은 북한의 통일소 폐사 주장과 관련,“우리측이 서산 목장에서 조사한 결과,이물질이 있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보낸 후 북한측은 지난 16일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통지문을 보내와 오해가 풀렸으며 통일부에 이 문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민주열사 열전:11/‘녹화사업’ 의문사:상(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제순화·프락치 강요에 ‘비극적 저항’/정 烈士 시위현장서 곧바로 징집… 의문의 죽음/5공 군당국 부모에 ‘이의제기 포기’ 각서 간청 광주학살 등 폭력을 자행한 5공화국의 全斗煥정권은 80년대 초 국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졌다.공포의 경찰국가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학의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와 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5공 정권은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른다.그중 하나가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綠化)사업’이다. ○대학생 477명 강제징집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으나 그 과정에서 여섯명의 의문사(死)가 나왔다.본래 군대갈 나이가 됐더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으면 퇴학·휴학 등의 학적변동이 없는 한 신체검사와 입영이 연기된다.아울러 신검과 입영은 각각 20일,30일 전에 통지서와 영장이 송달된 뒤에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5공정권은 81년 11월부터 시위저지책의 하나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버젓이 대학내에 상주해온 정보요원에 의해 문제학생으로 지목됐으나 법으로 걸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던 학생,시위현장에서 붙잡힌 단순가담 학생들을 경찰서로 끌고와 구타와 함께 조사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곧바로 군부대로 끌고 갔다.병역법상의 사전통지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했고 대학생 입영의 필수요건인 학적변동도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6공이 들어선 88년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5공정권은 83년 말까지 2년 동안 이같은 강제징집으로 447명의 대학생을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자진 휴학 등 정상적으로 학적이 변동되어 입대하는 경우와는 다른 이 ‘특수 학적변동’ 입대자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신검을 받았을 경우 입대할 수 없는 신체상 결격사유나 가정환경의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됐다.연령 미달자도 있었고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과 3대독자도 끌려갔다. ○장애자·3대 독자도 끌어가 강제징집은 강제징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당시 군 보안사령부가 입안한 ‘녹화사업’이 기다리고 있었다.‘녹화사업은 병역법에 의거,학원소요 관련 학사징계로 83년 11월까지 입대조치된 자 447명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문제학생들의 급격한 입대 증가 추세로 좌경의식의 군내 유입이 우려돼 보안사에서 이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많은 의식화 오염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했다고 이때 국방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강제징집되어 군에서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그들은 학생운동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보안사가 펼친 강제순화 및 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라고 주장해 왔다.녹화사업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 작성으로 시작된다.의식 상태를 면밀히 심사하고 체제를 긍정하도록 하는 의식 개조작업이 뒤따른다.소속 군부대 및 서울 보안사 분실에서 행해진 운동권학생들의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은 보름에서 두달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녹화사업은 그러나 ‘순화됐다’는 맹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순화’된 학생에게 이를 입증할 관제프락치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대개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뒤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활동상황,특이 동향의 정보를 수집,보안대에 보고하도록 강요한다.갑자기 군에 끌려온 학생들은 이같은 녹화사업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84년 초 강제징집된 6명의 대학생이 보안사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았고 곧 정치·사회문제화됐다.84년 6월 당시 尹誠敏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학적 변경과 관련한 입대자 중 81년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자살 4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한영현),군기사고 1명(최온순) 등 5명이며 자진휴학 지원입대해 자살한 1명(한희철)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라고 밝혔다. ○선후배 활동상황 보고 강요 尹관은 이같은 인명 손실은 학원사태 관련 군입영자에 대한 차별대우로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물론 ‘강제징집’ ‘녹화사업’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녹화사업이 82년 9월부터 84년 11월까지 265명에 실시됐다고 밝힌 88년 국감 때도 국방부는 의문사에 대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다만 녹화사업이 정치문제화함에 따라 84년도에 녹화사업 업무를 중단하고 보안사 전담부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관련 자료도 3년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단체와 가족이 제기하는 녹화사업 의문사는 심증만 있을 뿐 진상을 알기가 극히 난망한 실정이다.여섯명의 의문사 중 ‘강제징집 사망1호’인 정성희씨의 경우를 먼저 살펴본다.(나머지 5명은 다음 회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81년 연세대 영독불문학 계열에 입학했던 정성희는 대학생활 8개월 만인 11월25일 교내시위 현장에서 20여명의 교우와 함께 연행됐다.이중 15명이 강제징집당했다.연행 3일 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군에 강제로 입대한 그는 82년 6월8일 첫 휴가를 나와 친구,가족들에게 보안대의 감시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귀대한 지 달포 후인 7월23일 아침 갑자기 사망통보가와 가족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이날 새벽 0시10분 철책근무 중 목에 M16소총 4발을 발사해 자살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망현장 답사요구 묵살 군당국은사고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의 최전방이므로 현지답사가 불가능하다며 간단한 도면설명과 함께 자살임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부모로부터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그리고 사망사인에 이의없고 이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사체를 처리했다.유서는 없고 ‘백양로를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죽음 앞에서 내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등 8줄 정도의 낙서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84년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망원인에 따르면 입대해 평소 사회제도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사고 당일 전방교육 실습차 입소한 대학생 1명과 복초근무를 하면서 “순수한 철학도의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다.88년 국감자료는 보안사 정훈교육 이전 사망자로 염세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정성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정성희와 다른 5명의 의문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극적 저항이었다. □정성희 열사 연보 ▲1962년 인천 출생 ▲81년 부평고 졸업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81년 11월25일 학생시위로 연행 ▲81년 11월28일 강제징집 ▲82년 7월23일 사망 ◎당시 고려대생 양창욱씨 ‘녹화사업’ 회고/1주일간 심한 구타뒤 ‘감옥’‘군입대’ 택일 강요/보안대 조사땐 ‘감쪽같이 죽을수도’ 공포 엄습 현재 부천에서 ‘어린이 과학실험교실’을 내고 있는 양창욱(38)씨는 고려대 4학년 때인 83년 3월 문과대 시위주동자로서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다음은 그의 녹화사업 회고. 경찰서에서 1주일간 심하게 두들겨맞은 뒤인 3월7일 갑자기 부모를 불러오더니 ‘감옥에 보내겠느냐,군대에 보내겠느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부모들이 군입대 각서에 서명한 직후 춘천 보충대로 가서 요식적인 신검을 치렀다.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서류작성에 불과했다. 동해에 있는 훈련단에 보내져 6주 훈련에 들어갔다.보름 만에 부친상을 당해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방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3개월쯤 지난 뒤인 6월 초 배치된 철책 초소에서 강릉 사단사령부 보안부대로 소환됐다.하룻밤을 묵으면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모 중위로부터 친구,학내 동향과 관련해 심문을 받았다.구타는 없었다.얼마 후 같이 강제징집된 친구 김두황의 죽음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10월 사단 보안대의 그 중위와 함께 서울 세운상가 뒤 아파트로 이동,녹화사업을 받았다.아파트 안은 오직 책상 하나와 백열등뿐이었고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사가 진행됐다.1주일간 이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서 16절지 300장에 달하는 자서전을 작성했다.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타나 고문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순화교육이 끝났다는 표시로 태극기 아래서 사진을 찍더니 8일간의 휴가를 주면서 학교,서클과 관련해 몇몇 정보를 얻어 아파트로 다시 라는 프락치 임무가 주어졌다.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보 몇개를 가지고 갔더니 미진하다며 3일간의 추가 ‘프락치 휴가’를 주었다. 사흘 후 다시 가자 정보를 더 물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있었던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으며 이후 보안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같은 조사는 제대할 때까지 두번 다시 없었으나 사단의 중위가 3개월마다 직접 부대에 와 점검했다.
  • 李穀 선생 탄신 700돌 기념 학술대회

    ◎목은연구회 주최… 16일 세종회관/고려후기 학자… 이색의 아버지/원나라 황제에 건의 공녀제 폐지/성리학 기초 확립… ‘목은학맥’ 형성 고려의 대학자이자 문인인 가정(稼亭)이곡(李穀)을 기리는 ‘가정 이곡선생 탄신 7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오는 16일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목은연구회(회장 이정복)주최로 열린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년)에 태어난 이곡은 국문학사상 대표적인 가전체 소설인 ‘죽부인전(竹夫人傳)’을 남겼으며,원나라 황제에게 건의해 80여년 계속된 공녀제(貢女制)를 폐지케 했다. 공녀제란,원이 고려의 수많은 처녀들을 몽고족의 배우자로 징발해 간 것으로 당시 고려사회 최대의 해악이었다. 아울러 이곡은 아들인 목은(牧隱)이색(李穡)과 함께 고려 후기의 문학·사상·정치에 크나큰 업적을 이루었다. 부자 2대는 모두 원나라 과거에 급제해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높은 벼슬을 지냈다. 고려에 돌아와서는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형성했다. 이곡·이색 부자가 남긴 방대한 한시(漢詩)는 고려∼조선 전시기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로 꼽힌다. 16일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이우성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장(전 성균관대 교수)이 기조강연을 하는 것을 비롯,한영우(서울대) 이성규(서울대) 송재소(성균관대) 황재국(강원대) 김종진(동국대) 교수 등이 이곡의 학문·문학세계에 관해 주제발표를 한다. 한영우 교수는 미리 배포한 ‘가정 이곡의 생애와 사상’논문에서 “공녀제의 부당성을 항의해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며,성리학자답게 민본정치와 도덕정치를 희구하고,남의 힘을 빌어서 권세를 휘두르는 정치풍토를 비웃었다”고 평가했다. 송재소 교수는 ‘가정 이곡의 동유기에 대하여’에서 “동유기(東遊記)는 금강산 유람기로서 국내 최초의 작품이며,후대의 산수유기(山水遊記)창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고병익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과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 이 대회에서 축사를 한다. 대회를 주관하는 목은연구회는 지난 96년 ‘목은 서세(逝世)600주년 학술대회’를 열었으며 지난해에는 중국 북경에서 ‘목은 이색 학술사상 한중 학술대회’를 중국 학계와 공동으로 갖기도 했다.
  • 鄭周永·金正日 면담 이뤄질까/현대 방북 날짜까지 정부 제출

    ◎‘외부인 기피’ 金의 스타일 변수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북한의 金正日 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과연 성사될 것인가.한쪽 당사자인 현대측은 부쩍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관광 등 대북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기 위해서다. 현대그룹 金潤圭 대북사업단장(현대건설 사장)은 11일“鄭명예회장이 이달내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희망적 애드벌룬을 띄웠다.현대측은 특히 鄭명예회장의 방북 희망일자까지 은밀히 통일부에 전달해놓은 상태다. 현재 금강산관광사업은 물론 서해공단조성,자동차조립사업,고선박해체업 등 현대측의 야심적 프로젝트들은 북한의 ‘개방 알레르기’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金正日의 새 ‘교시’만이 이를 잠재우는 유일한 묘약인 상황이다. 따라서 회동만 이뤄지면 현대측의 각종 대북 사업은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결코 ‘잘못된 만남’일 수는 없다.때문에 ‘金·鄭 회동’은 잘만 홍보하면 남한 기업과 외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에 촉진제가 될 수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회동 성사가능성에 대해서 낙관도 비관도 않고 있다.金日成 사후 북한측의 의사결정 메커니즘 자체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군부 등 북한에서 개방을 두려워하는 세력일수록 남북경협 과정에서 더 많은 ‘보험금’을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이들은 현대측에 1인당 300달러의 금강산관광비용 외에 장전항 공사비용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면담은 현대와 북한의 아태평화위간 이 문제에 대한 교통정리 이후에나 가능하리라는 관측이다.게다가 金正日 당총비서의 독특한 스타일도 변수다.외부인사와의 면담을 극력 꺼리면서 막후에서 일을 도모하는 성벽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 북한의 통일소 폐사 시비(사설)

    북한적십자회 이성로 위원장대리는 8일 鄭元植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지난 6월 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기증한 소 가운데 71마리가 폐사했다고 주장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폐사했다는 소의 수의검역 자료와 사진까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보내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유감을 표시하고 남북 쌍방의 공동조사를 거듭 요구했다. 북한이 현대측과 폐사 원인에 대한 공동조사에 합의했고 아직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적십자 창구를 통해 통일소 폐사문제를 확대시키는 배경에는 몇가지 저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강산관광 일정이 확정되면 출항 전에 현대의 소 501마리가 2차로 추가북송될 전망이다. 통일소 폐사문제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1차 북송때 대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언론 보도와 국민적 관심을 둔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통일소가 북송 3개월이 넘어 폐사했다는 점에서 소 관리 부실에 따른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측에 전가시키려는 속셈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금강산관광사업이 무산될 경우 통일소 폐사문제를 빌미로 한국측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명분 축적용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이 통일부와 안기부에서 의도적으로 불순물을 먹여 폐사시켰다는 주장에는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을 주도하겠다는 대남전략의 하나로 통일소문제를 이용하겠다는 저의도 읽혀진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들은 모두 남북관계 개선에 한계를 인식케 해주고 있다. 특히 북한의 통일소 폐사 시비 확대는 김정일체제 공식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는 냉전적 대남전략과 맞물려 볼 때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북한은 국민의 정부를 반통일세력으로 공격하고 남북당국간 대화를 외면하면서 대남 비난의 강도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실리 획득을 위한 민간 차원의 경제교류와 협력에는 적극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냉전적,이중적 대남정책은 10일 밝히게 될 노동당 창건 53주년 정책노선에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통일소 폐사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기존의 통일전략전술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이 실현될 경우에도 예상밖의 돌출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사전 대비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 금강산 뱃길 월말엔 열리나/현대,이번 訪北서 최종합의 주장

    ◎장전항 편의시설 현대서 맡기로/신변보호 등 미해결 아직 불투명 금강산 관광 뱃길이 이달 말에는 열릴까. 금강산 유람선 첫 배의 출항일은 지난달 25일에 이어 이달 중순에서 다시 이달 말로 연기됐다. 현대측은 성사를 낙관하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 현대의 대북 실무단장인 金潤圭 현대건설사장 등 일행 4명은 지난 2일 북한을 방문한 뒤 4일 귀국했다. 보름간에 걸친 베이징(北京)에서의 대북 접촉에 이어 양측간 최종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한 관계자는 방북 성과와 관련,“금강산 관광에 큰 걸림돌은 없다”면서 “이르면 이달 말에는 관광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북측과의 ‘현안’에 대한 일괄타결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실무작업은 끝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정이 늦춰진 것도 준비과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대는 이번에 현대측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종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전항 공사와 통신·수송·관광실무 업무 등이다. 장전항 공사의 경우북측이 이미 조성한 도로공사 등의 대금을 지급하고 추가로 필요한 부두 등 편의시설은 현대 실무진이 맡기로 했다. 통신이용과 수송수단도 원만히 합의,6일 이에 필요한 15명의 실무진이 북한을 방문했다. 이들이 돌아오면 당초 예정한 필요 장비와 인력을 북한에 보낼 예정이다. 또한 당국으로부터 유람선의 내항허가를 받고 경비를 최종 확정,관광객 모집에 나서 차질없이 이달 말 금강산을 밟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의 실현은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있다. 아직 남북당국간 신변보호나 재난구호체계 등에 대한 합의와 미묘한 정치군사적 요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訪北 뒷얘기/金潤圭 사장 ‘對北협상자세 3원칙’ 화제/“단추 끼우고 웃지 않고 등 받치지 않는다”/금가산 코스답사때 쓰레기 담아와 北측 감동 현대건설 金潤圭 사장이 지난 4일 북한을 10번째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가 대북경협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배웠다. 89년 鄭명예회장과 함께 처음 북한을 방문한 金사장은 이때부터 鄭회장의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이른바 ‘3원칙’. “아무리 더워도 옷의 단추는 항상 끼우고,상대방이 웃더라도 절대 웃지 않는다. 의자에 앉을 때는 결코 등을 받치지 않는다.” 북측 인사 못지않게 엄격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협상에 성공한다는 교훈이다. 金사장은 올 7월 방북시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협상하면서 이를 실천해 북측 인사들이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코스를 답사할 때는 ‘작은 일’을 몸소 실천했다. 등산에 앞서 현대측 실무자들의 주머니를 전부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했다. 명산에 올라 누리는 끽연의 즐거움을 포기하며 자연보호의 일면을 북측 안내인들에게 보여줬다. 구룡폭포에 오른 뒤 내려올 때는 곳곳에 널린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왔다. 북한 안내인을 감동시킨 일들이었다. 그는 鄭회장의 말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별로 술을 즐기지 않지만 ‘왕회장’의 ‘명령’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북한 金容淳 아태위원장 주최 만찬에서 사정을 잘 아는 鄭회장이일부러 金위원장에게 ‘술을 잘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독주를 글라스째 몇잔 마시기도 했다. 金사장의 치밀함은 북한과의 입국료 300달러 합의에서 돋보인다. 북한은 ‘민족의 명산을 분단 이후,그것도 바다로 오는 데 1,000달러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金사장은 이에 세계 100대 관광·명승지의 입장료를 전부 조사,사진을 곁들인 책을 만들어 전달함으로써 현대측 요구를 관철시켰다.
  • 자민련정책의장 車秀明 의원/대변인엔 李完九 의원 내정

    자민련 朴泰俊 총재는 2일 李台燮 정책위의장을 부총재,車秀明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각각 내정,오는 7일 당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식 임명할 방침이다. 朴총재는 또 대변인에 李完九 사무1부총장,사무1부총장에 국민신당에서 입당한 金學元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朴俊炳 사무총장은 “이번 당직개편은 순환보직과 지역안배, 영입자 배려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車秀明 자민련 정책의장/특허청장 지낸 경제통 재선의원으로 상공부 차관보,특허청장을 거친 경제통. 32세에 朴正熙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내고 상공부 차관보 시절 全斗煥 전 대통령에게 경제과외를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보기와는 달리 차관보 시절 자신이 낸 중화학 구조조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표를 내는 과감성도 있다. ▲울산(58) ▲서울대 법대졸 ▲특허청장 ▲신한국당 재정위원장 ◎李完九 자민련 대변인/일처리 꼼꼼한 초선 초선의원으로 일처리가 꼼꼼하고 부지런하다는 평. 한나라당에서 뒤늦게 합류했지만 사무1부총장을거쳐 대변인에 오르는 등 당내 입지 구축에 성공한 케이스. 자민련의 ‘토니 블레어’라고 불릴 정도로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5대 총선에서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충남 홍성(48) ▲성균관대 법대졸 ▲충남·충북경찰청장 ▲경기대 교수
  • 현대건설 李來炘 사장 전격 경질

    ◎‘월드컵 상암구장 삼성 낙찰’따른 문책인듯/금강산 관광 교착·6월 지하철 침수도 한몫 현대그룹이 간판계열사인 현대건설의 사장을 전격 교체했다. 현대그룹은 “30일부터 李來炘 현대건설 사장을 그룹 상임고문으로,金潤圭 현 부사장을 현대건설 사장으로 임명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교착상태에 빠진 금강산 개발사업 등 대북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金사장 체제로의 정비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96년 재취임한 李사장이 전격 낙마하게 된 것은 최근 2002년 월드컵 서울 상암축구장 공사를 삼성에 빼앗긴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관측이 많다.지난 5월 지하철 7호선 침수사고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金사장의 기용은 침체된 사내 분위기를 일신,명실상부한 업계 1위 자리를 다지고 대북(對北)사업에 보다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金사장은 서울공대를 나와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건설통이자 현대그룹의 대북경협 실무단장.89년 鄭周永 명예회장과 함께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지난 6월23일 소떼 북송(北送) 등의 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지금까지 모두 10차례 북한을 다녀왔다.鄭 명예회장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으며,鄭夢憲 현대건설 회장의 오른 팔이다.
  • “對北 포용정책 괜찮다” 82%/민주평통자문회의 설문

    ◎남북관계 개선·평화정착에 대체로 기여/“문제발생때 안보 우선” 38% 넘어 신중 국내 여론 주도층에서는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정착에 대체로 기여할 것으로 보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평통자문회의가 23일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6%가 포용정책을 긍정평가했다.평통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달 12일까지 평통 자문위원 3,943명을 대상으로 통일 및 대북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다만 대북 포용노선과 안보가 충돌할 때는 여론의 흐름은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예컨대 안보와 교류·협력 병행추진 과정에서 양자 충돌시 안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즉 조사 대상자의 약 39.8%가 안보우선론을 지지했다.교류·협력을 적절히 연계해야 한다는 대답(33.7%)이 그 뒤를 이었다.하지만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양자 분리 대처해야 한다는 응답은 26.0%에 그쳤다. 민간차원의 남북경협 추진시 정부 관여 정도는 필요시 적절한 수준에서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56.2%로 높게 나왔다.다음으로 ▲적극적으로 관여 28.9% ▲가급적 최소한의 관여 14.4% 순이었다. 평통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金大中 대통령에게 통일정책 추진을 위한 건의를 했다.이날 오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8기 제2차 전체회의를 통해서였다. 건의는 남북한 경제교류의 정책기조로서 정경분리 원칙을 견지하되 대내적으로 튼튼한 안보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자문위원들은 특히 고령화되고 있는 이산가족 1세대들을 위해 베이징 등 제3국에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北 미사일 개발 日 기술자 참여”/日紙,탈북자 증언 보도

    【도쿄=黃性淇 특파원】 북한의 미사일개발에 일본 기술자가 관여했다고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탈북자 金秀幸씨(41·전 고려전자기술 부사장)의 증언을 인용,20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金씨에 따르면 북한에서 미사일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당 기계공업부 소속 비밀기관인 ‘99호 중앙지도소조’의 지시로 90년에만 5명의 일본인 기술자가 북경을 거쳐 비밀리에 평양에 입국했다는 것이다. 전자 특수소재,컴퓨터 통신분야 전문가인 이들 기술자는 기업을 퇴직한 뒤 개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으로 기술수준에 따라 하루 수백∼1000달러씩의 보수를 받았다고 金씨는 전했다. 金씨는 당시 이들 일본 기술자들에게 위조여권을 건네준 역할을 했는데 이들 기술자에게는 전문분야 기술의 지도나 제공이라고 말해 미사일개발과 관련된 것임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 中서 한국 상품 판매전/대경임팩스,새달 15일 천진·북병서

    내달 15일부터 중국 천진과 북경에서 한국상품판매전이 열린다. (주)대경임팩스는 국내 업체의 재고처리와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다음달 15일부터 11월3일까지 천진의 신안백화점에서,11월6일부터 10일간은 북경의 신동안백화점에서 한국상품 전시 및 판매전을 갖는다고 밝혔다. 두 백화점은 하루 입점고객이 3만∼5만명에 이르는 대형백화점이다.의류 신변잡화 생활용품 등의 상품을 보유한 유통업체와 중소업체,중국시장 진출업체를 대상으로 한다.참가신청은 23일까지이며 참가비는 매장면적 ㎡당 하루 1만2,000원이다.연락처(02)992­3161
  • 금강산 10월엔 갈수 있을까/유람선 25일 출항 무산이후

    ◎北과 일정 협의 진통… 鄭夢憲 회장 방북 연기/운항면허 싼 갈등·정치권 연기 주장도 암초 금강산 관광은 언제쯤 이뤄질까. 현대그룹이 오는 25일 첫 유람선을 띄우기로 한 계획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측 관계자는 17일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아 연기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추석 전후에도 갈 수 있다”고 밝혀 10월초 관광일정을 내비쳤다. 현대는 내심 절차상의 하자 때문에 물리적으로 25일 첫 출항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며 그 불가피성을 말한다.가장 중요한 북한과의 최종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점을 든다. 북한측 관계자를 만나러 중국 북경에 지난 15일 건너간 대북실무단장 金潤圭 현대건설부사장으로부터 아직껏 시원한 소리가 국내에 타전되지 못하고 있다.출항일의 연기와 새로운 출항날짜를 잡는 데 진통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는 북한이 첫 출항준비에 필요한 장전항 공사 장비및 인력의 입북을 연기하며 느긋한 입장으로 돌아섰는지 답답해하고 있다.이 때문에 당초 14일 방북 예정이던 鄭夢憲 그룹회장의 방북날짜도 순연되고 있다.현대는 鄭회장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금강산 최종일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람선 운항면허가 아직 나지않은 점도 첫 출항을 더디게 한다. 현대상선은 그동안 朴世勇 사장이 몇 차례 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을 예방, 외항 면허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정부는 헌법과 관례에 따라 내항면허를 내줄 수 밖에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그래선지 현대는 운항면허를 신청조차하지 않고 있다. 내항 면허로는 요금이 크게 뛰어 금강산 관광이 어렵다며 정부의 선처를 바라는 눈치이다. 이러한 현대의 어정쩡한 태도가 관광객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벌써 여러 차례 관광요금과 관광객 모집일정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이를 지키지 못했다.‘외항 허가가 나면…’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