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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北 변수’로 삐걱… “외교·안보 고차방정식 풀어야”

    한·중 ‘北 변수’로 삐걱… “외교·안보 고차방정식 풀어야”

    한국과 중국이 올해로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성년’이 되는 동안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최상위 외교단계로 발전했고, 양국 간 인적·물적 교류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루 수만명의 양국 국민이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해 양국을 오가고 있다. 정상을 비롯한 양국 지도자들의 왕래도 빈번하다. 그야말로 양국관계는 활짝 꽃 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양국 간의 ‘전략적 소통’은 성년을 맞은 외교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대화는 많지만 특정 부분에만 접근하면 도돌이표가 그려진 악보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북한이라는 ‘중간지대’를 두고 있는 한·중 관계의 현실이다.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의 현 주소를 살펴봤다. 지난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청와대는 워싱턴 백악관과 도쿄 총리관저에 전화를 연결한 뒤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베이징 자금성 서쪽의 중국 최고지도부 관저 및 집무지역)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중 최고지도자 ‘핫라인’은 결국 뚫리지 않았다. 2008년 2월 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10차례 가까운 만남을 가졌지만 정작 ‘포스트 김정일’이라는 막중한 상황에서는 대화의 문이 굳게 닫혀 버린 것이다. 국내적으로 대중(對中) 외교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외교 실무진들의 ‘판단미스’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의 밀접한 북·중 관계를 감안하면 후 주석의 ‘통화사절’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후 주석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은 채 양제츠 외교부장을 통해 한·미·일·러와 간접 소통했다. 중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 한국과의 소통을 주저하는 것은 지난해 5월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후 주석과 김 위원장 간의 합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후 주석은 당시 김 위원장에게 내정 및 외교, 국제 및 지역문제에 대한 전략적 소통 강화 등을 제의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세차례 더 방중했고, 북한과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상호방문하며 소통의 폭을 넓혀왔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와중에서 한·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북한 변수에 미국 변수까지 개입된 결과로 해석된다.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가 양국의 실용주의적 지도부를 자극해 미·중 관계를 급속도로 발전시킨 반면 오히려 재편된 힘의 질서가 한·중 관계의 정체를 초래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외교 전선이 ‘한·미·일’ 대 ‘북·중·러’ 형태로 냉전시대의 그림을 재연한 것도 미국의 아·태지역 세력확장과 이를 막으려는 중국의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실제 중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자국을 상대로 한 ‘힘의 과시’로 확대 해석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중 관계의 악화로 나타났다. 경제는 뜨겁지만 외교안보는 차가운 한·중 관계는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견됐다. 2008년 5월 첫 방중한 이 대통령이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외교결례 논란을 무릅쓰고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논평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나름대로 안정됐던 한·중 관계가 험로에 빠질 것이란 점을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한·중 양국 국민 간의 뿌리 깊은 반목도 문제다. 특히 중국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교육이 강화되면서 중국인의 민족주의가 우월적 국수주의로 변질돼 반한(反韓)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북한변수, 미국변수, 양국 내재변수 등으로 인해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1일 “한·중 양국은 북한문제 등 심각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이를 방치한 채 상호이익이 합치되는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협력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왔다.”면서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적 호혜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의 조화, 북·중 동맹과 북·미 관계의 개선 등 3차 방정식,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 치밀한 외교적 분석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 북·미회담 테이블 조기복귀 여부가 체제안정 ‘척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이 2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거행되면서 후계자로 전면에 나선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조기에 안정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조기 안착 여부는 크게 3가지 척도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향후 한반도 정세도 관측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조기 안정의 척도는 북한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3차 대화에 언제 나설지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북·미는 지난 15~16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대북 식량 지원 관련 협의를 통해 큰 틀에서의 합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북핵 3차 고위급 대화를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갖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미 행정부는 이 같은 합의를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발표하려고 했으나 김 위원장의 사망이 반나절 정도 먼저 발표되면서 미측의 발표는 이뤄지지 못했다. 북·미는 이후 뉴욕 채널을 통해 식량 지원 관련 실무접촉을 벌였으나 3차 고위급 대화에 대한 구체적 일정은 논의하지 못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한 달 만에 북·미 협상에 복귀했었다.”며 “북한이 조만간 북핵 관련 북·미 또는 남북 대화에 응한다면 북한 내 상황이 안정을 찾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지표는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언제 이뤄질 것이냐다. 김정은이 애도기간 이후 이른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다면 대내적 불안 요인이 어느 정도 해소돼 대외 활동에 나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을 앞두고 김정은이 직접 중국 측 인사들과 만난다면 새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대내 결속 및 지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지난 5월 중국을 방문, 후계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고, 김정은이 아직 중국 측 지도자들과 만나기에는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어 그의 방중이 언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내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북·중 관계 등 대외 활동에 신경을 쓰는 것이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잣대는 남북 간 대화에 언제 응할 것이냐다. 남북은 지난 9월 ‘유연한 대북정책’을 앞세운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취임 후 접촉을 모색했다가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1주년을 맞아 관계가 다시 경색됐다. 그러나 우리 측은 내년 1월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개최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 왔으며, 이를 위해 남북 간 실무 접촉을 벌이는 등 안정적 대화채널 구축을 위해 움직여 왔다. 대북 소식통은 “북측이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 및 적십자회담 등에 나올 경우 체제를 안정시켜 대남 정책에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한·미군, 北 급변사태 비상대응계획 오래전부터 세웠다”

    [김정일 사망 이후] “한·미군, 北 급변사태 비상대응계획 오래전부터 세웠다”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대비를 오래전부터 해 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존 틸럴리 전 주한 미군사령관은 20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 불안 가능성에 대해 ‘비상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의 존재를 밝히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응계획 존재 여부에 대해 한·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1996~1999년 제23대 주한 미군사령관을 역임하고 퇴역한 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거주하고 있는 틸럴리 전 사령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군인 출신답게 추측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실(팩트) 위주로만 간명하게 답했다.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최고 수뇌가 사망한 만큼 행정부의 작동기능이 변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급변사태 여부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지금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등 새 북한 지도부가 파워 과시를 위해 도발을 감행할까. -우리는 김정은이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개입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입장을 밝힌 게 아직 없기 때문에 추가 도발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새 북한 지도부가 핵을 통제하고 있을까. -김정일이 사망하긴 했지만 핵은 그동안 관리했던 사람이 여전히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전에 얼마나 핵에 개입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통제가 잘 될지를 판단하는 건 시기상조다. →한·미군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준비가 돼 있나. -한·미군은 그런 상황을 가정해 오래전부터 대비를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한·미군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 비상대응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미는 세계 최강의 동맹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지킬 것이다. →한국 정부가 김정일 사망을 북한 당국의 발표 전에 미리 인지하지 못한 데 대해 정보력 부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북한은 폐쇄된 사회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정보기관도 북한 내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북한 주민, 심지어 평양 시민도 김정일 사망 사실을 모르지 않았나. 따라서 그렇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도 김정일 사망 정보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을까. -한·미는 같은 정보를 동시에 갖는다고 믿는다. →지난 19일 북한 당국의 김정일 사망 발표 이후 북한군이 동해 쪽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두고 북한 군부가 외부에 경고를 보낸 것이란 시각과 이미 계획됐던 훈련이었다는 시각이 엇갈리는데. -계획된 훈련이었다고 본다.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충돌 시나리오도 제기되는데.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고 본다. 충돌보다는 화합할 것으로 믿는다. 미·중 등이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을 만든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정은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보나. -관건은 나이가 아니라 김정은이 얼마나 행정부에 깊숙이 개입했는지에 달렸다. →북한 군부가 김정은에게 복종할까. -복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북한은 언제쯤 정상화될까. -애도기간이 끝나고 내년 1월이면 정상을 찾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한·미는 경계를 늦추지 말고 감시태세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북·미 대화는 언제쯤 재개될까. -전망이 어렵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화 재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북·미, 뉴욕 접촉

    북한과 미국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채널을 통해 실무 접촉을 벌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첫 북·미 당국 간 접촉이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된 북한과의 ‘기술적 논의’를 전날 뉴욕채널을 통해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식량지원 외에) 좀 더 넓은 것을 논의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접촉)은 실무수준(technical-level)이었으며, (대북) 영양지원과 관련한 문제들을 명확하게 하려고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이 애도 기간에 있는 만큼 연내에 대북 영양지원 문제가 결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식량의 필요성과 모니터링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가 있으며 이를 계속 논의해야 한다.”면서도 “북한이 애도기간임을 감안할 때 정상적인 정부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우리가 새해 이전에 이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명확히 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3차 북·미대화 개최 여부와 관련, “미국의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한 새 지도부에 “평화의 길로 향하는 선택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촉구한 데 대해 눌런드 대변인은 “새 정권에 대한 미국의 기대와 희망의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정부 ‘통큰 결단’ 필요”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정부 ‘통큰 결단’ 필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거로 한반도가 격랑에 휩싸였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사실상 주도했던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도 큰 딜레마에 빠졌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일단 북한의 정세 변화와 상관없이 종전의 지원을 그대로 유지할 방침임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의 현실적인 북한 접촉과 지원의 수준에 대한 고민은 크기만 하다. 서울신문은 20일 오전 편집국 회의실에서 긴급 좌담을 마련, 향후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대북 지원 양상과 남북교류의 전망 및 문제점을 짚었다. 김성호 편집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장 이근복 목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김병로 교수가 참여했다. 사회 김성호 편집위원 →지금 상황과 전망에 대한 얘기로 풀어 나가 보자. -영담 스님 이 상황을 남북 관계 개선에 발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큰 결단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사재기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전반적인 상황도 불확실하다.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당국에서 큰 결단을 보여야 한다. -이근복 목사 동감한다. 큰 동요는 없지만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어느 세력이든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남북 관계 개선에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이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기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김병로 교수 여러 측면에서 중대 고비다. 후계 체제가 있다지만 완비된 상태는 아니다. 북한 주민이나 엘리트들 사이에서 정당성을 완전히 확보했다고 보기엔 이르다. 6자회담, 북·미 회담 등이 진행되려던 찰나에 이렇게 됐다. 물밑 진행이야 이뤄지겠지만, 당분간 표류는 불가피하다. 정상회담 얘기도 나왔지만, 김정은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 정부도 접근법의 전환을 고민해 봐야 한다. →큰 고비이자 안개 정국이라는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 범위를 좁혀서 종교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지. -영담 스님 문화교류 사업이야 모두 정지다. 이럴 때 종교계가 정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출발점은 진정성 있는 추모다. 정부가 그렇게 하긴 좀 어렵지 않은가. 종교계라도 먼저 나서서 애도와 추모의 뜻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북쪽 사람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 목사 알다시피 기독교계 내 보수 세력들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런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 체제 안정이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 동북아 지역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점을 보수적인 인사들에게 잘 설득해야 한다. 교류 협력 강화가 결국 먼 미래를 보는 데 중요하다. 남한에도 그런 논의를 하는 데 파트너가 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김 교수 안 그래도 진보, 보수 해서 논쟁이 많지 않았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수 쪽 입김이 강해질 것이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 개선을 주장해 왔던 종교계로서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다. 보수 여론의 확대, 이것이 불안 요인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도 그렇지만 북한에서도 전쟁 위기감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탈북자를 상대로 조사해 보면 2009년까지 전쟁 위기감은 30%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최근에는 70%대까지 치솟았다. 남한 역시 78% 수준으로 나온다. 켜켜이 쌓여 온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이걸 풀어 줘야 한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 내부의 전쟁 위기감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체제 안정을 위해 과도한 액션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보는 큰 정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들 방북 경험이 있으시다. 북한 내부의 동요, 탈북자 문제 이런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하나. -영담 스님 체제가 달라졌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탈북자들을 열심히 도와줘야 한다. 우리가 포근히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종교계도 열심히 도와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쉽고 간단하게 뭔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생각이지만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라의 최고 어른이 돌아가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괜한 자극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자꾸 교류해야 한다. 사실 북한에서 막은 것은 없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함경북도의 유치원 아이들을 지원해 주려 했는데 정부가 승인해 주지 않았다. 함경북도는 북한에서도 아주 취약한 지역이다. 그런데 정부가 막았다. 최소한 그런 것이라도 해야 한다. -이 목사 전적으로 동의한다. 위로하고 끌어안고 함께 아파한다고 표시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자꾸 더 만나야 한다. 남한이 이 기회를 이용해 흡수통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줘야 한다. -김 교수 조문 기간이 끝난 다음이 문제다. 현 정권 들어 남북 관계가 단절됐다. 흡수통일 전략 얘기가 나왔는데, 이건 사실 준비를 안 하겠다는 얘기다. 이걸 보수적인 종교계가 지원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국내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대북 전단을 뿌리는 전략에서부터 비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 주장 목소리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이걸 한데 모아 정리하려면 기존 공식 채널보다는 민간 채널을 이용하는 방안이 가장 좋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김정일 체제하에서의 남북교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영담 스님 불교계만 봤을 때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대장경 1000년 사업 등 여러 행사에서 이런저런 교류가 있었고, 김정일도 북한 내 사찰을 직접 방문해 깊은 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 놓았던 점이 아쉽다. -이 목사 교단 대표를 꾸려 평양도 방문하고, 그 와중에 매년 10월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얘기까지 오갔는데 현 정부 들어 이게 다 막혔다. 지난 5월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는데 이것도 정부가 막아서 중국을 통해서 해야 했다. 정부야 정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계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는 곳이니 그런 부분에서는 길을 열어 주는 방안을 고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교수 김정일 체제가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김일성 주석은 기독교라 해도 민족주의 운동적 측면에서 감안할 부분이 있다면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었다. 북한에서도 기독교 계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대목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과연 기독교가 민족주의적이냐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해서 1990년대 말에는 아예 외래 종교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주체형 교회를 만들어 보려다 그게 안 된다 싶으니까 완전히 접어 버린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종교계가 움직이고 도움을 주자 그런 불만이 어느 정도 풀린 듯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이었는데 이명박 정권 이후 남북 교류가 남한의 사정 때문에 뜸해져 버렸다. →종교계의 대북 지원은 어떤 방식이 좋을까. -영담 스님 각 단체가 경쟁하듯 하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창구 단일화는 안 맞다. 그런 건 북한 스타일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다만 지금의 지원 사업은 대개 평양과 신의주 지역에 집중돼 있다. 거듭 말하지만 함경북도 같은 북한 내 소외되고 어려운 지역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취약 지역의 취약계층을 지원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이 목사 독일 통일 이후 정서적 분열을 치유하는 데 종교인들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신뢰를 만들어 널리 퍼뜨리는 데 애써야 한다. 기독교계로 말하자면 내년에는 교단별 대표자 회의 같은 것을 열어서 지원 방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모아 볼 생각이다. 역할 분담도 하고 보조도 맞추고 해야 한다. 지금의 지원 방식을 사회개발 방식으로 바꿀 필요성이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저들의 자립이다. 그걸 생각해야 한다. -김 교수 정부가 내세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이 지원받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가로 바뀌었다는 것 아닌가. 그 혜택을 왜 북한만 누리지 못하는가. 그런 차원에서라도 감정을 가라앉히고 북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다. 각종 세계기구에서 내놓는 통계치를 봐도 600만~800만 인구가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게 바로 북한의 실상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듣다 보니 무감각해져 버렸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제3세계 빈곤국을 바라보듯 북한을 보자. 공여국이 됐다는 자랑만 말고 거기에 걸맞게 지원해 줘야 한다.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도 중요해 보인다. -영담 스님 지원보다 사회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평양이나 남포에 작은 공장이나 산부인과 같은 것을 지어 주려 했는데 그걸 정부가 불허했다. 식량 지원을 하니 군량미로 간다는데, 정 그렇게 못마땅하다면 자급자족의 틀이라도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닌가. 기술 이전이나 시설, 장비를 갖춰 주는 사업 같은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목사 얼마 전 대북지원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 무원칙하고 자의적이고 입맛에 따라 판단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정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야 어찌하든 민간 차원 교류는 막지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루트를 함께 뚫어 놔야 서로 보완도 되고 도움도 될 것이다. 정말 통 큰 정책이 필요하다. -김 교수 사실 종교계보다 정부의 역할이 더 크다. 20~30년짜리 계획 같은 큰 플랜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 평화를 위한 개발계획, 인도주의 개발계획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남북 관계라는 틀에서만 볼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경영한다는 입장에서 정치, 군사, 외교 등 전반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큰 그림이 세워지고 나면 가령 인도적 지원 가운데 긴급구호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추진하되 농업 등 자생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어느 수준까지 개발 지원을 할 것인가, 이를 떠받칠 경제협력과 안보보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 둬야 한다.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속도내는 美·中 ‘포스트 김정일’ 움직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북한 동향은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북한 후계구도의 불안정성으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미·중 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있어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셈이다. 주변 4강은 일단 북한체제의 연착륙을 선호하는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 美, 누가 됐든 조속안정 선호 미국 정부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로 19일(현지시간) 김 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성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교적 격식은 차렸지만 분명하게 ‘조의’(condolence)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놓고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명은 김 위원장의 공식 직함을 표기했다. 국가명도 평소 쓰던 ‘북한’이란 약칭 대신 정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는 외교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른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평소 북한에 대해 차가운 논평을 자주 내놨던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이날만큼은 “우리는 북한의 애도기간을 존중할 것”이라고 하는 등 우호적인 표현으로 일관한 것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날계란을 옮기듯 발언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구사했다. 혹여 북한을 자극할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 정부의 반응을 종합하면, 미국은 김정은이 됐든 누가 됐든 미국에 도발하지 않는 한 북한의 새 지도체제를 인정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가급적 북한이 김정일 체제의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혼란 없이 안정을 굳히기를 바라며, 그에 따라 북·미대화를 조속히 재개했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같은 자세는, 북한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존 체제대로 유지되는 게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계산의 발로로 풀이된다. 북한 체제가 동요하는 시나리오는 미국 입장에서 득실이 불투명한 반면, 기존 체제 유지에 따른 득실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국내 사정 때문에 북한의 혼란을 바랄 여유가 없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미국은 더 이상 대외문제에 무력으로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겨우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수습하면서 국방예산 감축에 들어갔다. 이러니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급변사태는 미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한반도 정정이 불안해질 경우 글로벌 경제에 악재가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경제회복이 급선무인 오바마로서는 북한 등 안보 현안들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새 지도부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정권의 혼란으로 핵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유화적 제스처를 쓰는 것은 북한의 새 지도부나 군부가 강경노선을 택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 대북외교 ‘특수딱지’ 떼기?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19일 발표한 조전을 통해 ‘김정은 영도’를 처음으로 인정한 데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일 오전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면서 또다시 ‘김정은 영도’를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의중을 드러냈다. 특히 후 주석 조문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 당국의 발표 후 이틀이 지난 시점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과 함께 조문한 것보다 하루 빠르다. 동행인사들도 당시보다 거물급이다.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도 김정은을 집중 조명하면서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는 “동북아 안정은 북한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면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북한의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이 과도기의 북한에 믿을 만한 지지 국가가 돼야 하며 외풍을 막아 줘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중국이 신속하게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등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은 한반도가 요동치는 것을 원치 않고, 그런 차원에서 김정은을 내세운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이끌 새 지도자가 김정은이든 아니든 중국은 북한의 조속한 안정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기존 북·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가끼리의 정상적 외교관계가 아닌 당 대 당 등 ‘특수관계’로 점철된 대북외교를 정상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면서 자국의 외교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일 중국이 발표한 조전은 공산당과 전인대, 국무원, 중앙군사위 등 4개 기구 명의로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등 5개 기구에 보냈다. 김 주석 사망 때 최고실력자 덩샤오핑과 장 주석, 리펑(李鵬) 총리, 차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 개인 명의로 보낸 것과 대비된다. 조전을 양제츠(楊??) 외교부장이 주중 북한대사관 대리대사를 불러 전달한 것에서도 공식외교 관계로의 전환 의도가 읽힌다. 중국과 북한은 김 위원장이 생전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방문’을 표방하면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정을 비밀에 부쳐 왔다. 하지만 중국 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비밀유지가 힘들어졌고, 중국은 북한 측에 공식적인 외교관계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관계가 국가 대 국가로 정상화됐는지는 향후 김정은의 방중 등에서 확실하게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천안함·연평도에 막힌 남북관계 개선 기회”

    “천안함·연평도에 막힌 남북관계 개선 기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격랑에 휩싸였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자리 잡으려면 빨라도 내년 3~4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기간 북한 체제의 변화에 따라 향후 북한과 주변국 간 외교관계도 새롭게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서먹해진 남북 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드는 계기를 정부가 조성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서울신문은 20일 강성윤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장,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을 초빙해 ‘김정일 사후 북한의 정치·경제’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 내기 위해 북한뿐 아니라 다른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북한의 권력구조 개편 방향은. -강성윤 소장 그동안 북한의 권력구조 개편에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김정일 사망 직전까지는 당에 힘을 싣는 움직임이 있었다. 김정일 스스로가 국방위원장보다는 총비서로 불리기를 원했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은 것도 당대표자 회의에서였다. 김정은 체제 역시 장성택·김경희 부부와 이영호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 총참모장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영호 상무위원도 당대표자 회의에 등장했다. ●김정은 체제구축 내년 3~4월까지는 혼돈 중장기적으로는 권력 상층부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대외 개방 정책을 펴거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핵을 포기해야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단계가 생기면 이해집단 간 파열음이 증폭될 수 있다. 이런 갈등도 김정은 체제가 구축되는 내년 3~4월까지는 잠재돼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승경 연구위원 김정일이 정치적인 상징과 지도력을 둘 다 갖추며 북한 체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면, 김정은은 정치적 지도력 측면에서 아직 부족하다. 정치적 지도력은 오히려 김정은과 혈연 관계에 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에게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향후 다른 세력이 정치적 파워를 키우면서 더 큰 지도력을 영위하며 권력의 결속력을 꾸려 나갈 수 있다. 당은 여전히 북한 권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지만,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국가기관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류길재 교수 김정은의 국정 운영 경험과 인적 자산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오랜 후계자 기간을 보내며 북한에서 학교를 나온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교육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고, 후계자로서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한 기간도 길게 잡아 4년에 불과하다. 비록 김정일의 측근들이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모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지지했을지 몰라도, 엘리트 집단 모두를 김정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북한 고위 간부 사이에서 당장 김정은 체제를 반대하고 나설 세력은 없다. ●당으로 권력이동… 장성택·이영호 전면에 →북한과 주변국 간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될 것인가. -류 교수 중국의 북한 감싸기 행태는 이어질 것이다. 최근 북·미 간 관계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이를 북한의 외교 다변화 노력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은 북한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측면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역시 북한은 중국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새로운 체제 아래의 북·중 관계도 강화될 것이다혀 -유 연구위원 물론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는 관계가 형성돼 있지만, 북한도 지렛대를 갖고 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북한은 두만강 삼각지대와 동북3성을 끼고 있다. 중국이 동해를 활용하려면 북한의 협력이 필요하다. 지난 8월 북·러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이 외교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양자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됐다. 물론 북한의 최종 목표는 북·미 관계 정상화에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최종적으로 ‘고립에서 탈피한 북한’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행보는 김정일 사망으로 추진력 측면에서 타격을 받겠지만, 기본적인 노선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 역시 예산 부족으로 국방비를 줄여야 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선을 확장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 소장 주변국과의 대외문제에서 추진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보는 이유는 김정은이 대외관계에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 체제의 스태프들이 그대로 대외관계를 끌고 갈 것이다. 김정일 사망 전 북한은 미국의 식량 원조를 받고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는 합의를 이뤄 가는 과정이었다. 관련 합의가 현재 중지됐지만 큰 방향은 설정돼 있다. 중국은 북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후원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다. 일본 역시 현재 상황을 북·일 관계를 해결하는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입장에서도 김정은 체제가 자리 잡는 와중에 일본과 새로운 전선을 만들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북·중 경협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가. -류 교수 김정일이 최근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북한 경제 현실의 돌파구로 북·중 경제협력을 염두에 두었다는 방증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성은 더 강화될 것이다. 비단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안보나 핵 관련 문제에서도 중국의 북한 감싸기 행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부 대북경협 글로벌 스탠더드 벗어나 -강 소장 북한의 대외 정책과 전략을 큰 그림에서 봐야 한다.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려면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경협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경협을 한국 혼자 모두 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순히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기보다 장기적인 효과를 봐야 한다. 게다가 그동안 한국 정부의 경협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많이 어긋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북한의 요구를 많이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 역시 다른 국가와의 경협을 통해 국제사회의 질서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 -유 연구위원 북·중 경협을 지나치게 남북 경협과 경쟁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점은 경계할 만하다. 길게 봐야 한다. 예컨대 1990년대까지 북한의 대외 교역량의 20%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나왔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양국 간 교역이 중단된 뒤 이 비중은 0%가 됐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로 집계되는데, 이는 남북 간 교역을 뺀 집계다. 남북 간 교역을 합치면, 중국의 비중은 60%로 줄어든다. 물론 북·중 경협을 통해 중국이 동북3성 근처의 경제력을 모두 장악하는 부분이나 북한의 자원개발권을 가져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 ●喪中 고려 북한 자극하는 정책 자제해야 →남북 관계 전망은 어떠한가. 또 우리 정부는 어떤 대응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가. -강 소장 남북 관계가 교착돼 있지만 북한 지도자의 교체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에 대해 북측의 책임 규명과 사과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도 상중(喪中)이라는 점을 고려해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애기봉 등 전방 지역 성탄트리 점등을 중단한 결정은 바람직하다. -유 연구위원 이번 일을 남북의 경색국면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남북 간 대화를 통해 한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하는 외교적인 통로가 있어야 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전제로 외교 통로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가 던진 명분에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꼴이다. 지금은 개성공단 외 통로가 막힌 상황이지만, 개성공단 자체의 투자는 활발하다. 북한 입장에서 외화 획득 수단이 되고, 우리 입장에서도 장차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의 활로 역할도 일정 부분 하고 있다. 반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북한에 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김정은 체제를 정비하는 상황에서 한 곳의 문호를 또 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도체제 교체기이기 때문에 개방 제안을 너무 많이 하면 북측이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류 교수 현재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고, 미국 역시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통한 북핵 통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우리 정부의 과제이기도 한데 중국과의 공조 등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현안도 단계적으로 풀어 갈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부터 풀고, 이산가족 상봉 제안도 하는 등 하나씩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방지역 성탄트리 점등 중단은 잘한 일 →김정일 사망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통일비용 등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됐다. -강 소장 통일까지 길게 전망해 본다면 북한의 체제 변화는 통일에 순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잦은 교체는 사회 변화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통일이 된다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북한 내부에도 대외 상황을 반영해 목표치를 낮추며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은 몇 년 전부터 ‘강성대국’이라는 표현 대신 ‘강성국가’라는 말을 쓰고 있다. -유 연구위원 정치경제적 통일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변화는 진행되고 있다. 냉전시대 북한이 군사정책 외 큰 고려 대상이 아닌 반면 지금은 우리가 대부분의 정책을 짤 때 북한을 고려하고 있다. 상호 교류도 늘어났다. 이 과정 자체가 통일을 위한 과정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정리 홍희경·임주형기자 saloo@seoul.co.kr
  • “北 단기간내 요동 없지만 탈상 끝나는 1년 뒤 위기”

    “北 단기간내 요동 없지만 탈상 끝나는 1년 뒤 위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 지도체제는 물론 남북관계, 동북아 정세도 격랑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장 요동치진 않겠지만 후임 김정은 체제 확립 때까지 잠재적인 혼돈기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경희·장성택 로열패밀리가 좌우 김정은 체제가 절대권력의 지지나 비호를 받을 만큼 약한 권력이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은 등장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탄탄하다고 본다.”면서 “김정일 사망 48시간이 지난 뒤 사망 사실을 차분하게 발표한 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 체제가 단기간 내에 혼돈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당분간 김정일 업적을 찬양하며 체제를 유지하되 문제는 김정일의 1년 탈상이 끝나는 내년 이맘때다. 김 교수는 “2013년부터 본격적인 김정은식 통치체제가 가동될 것”이라면서 “북한 체제의 동요·진동은 그때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로열패밀리’가 권력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 북한은 움츠러드는 상황이므로 쓸데없는 도발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김 교수는 내다봤다. 그는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일상적인 남북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중국의 역할, 그 어느 때보다 중요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리로서는 북한이 어떤 상황에 있든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후계구도나 정치가 ‘김정일 사망’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남북대화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설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의 권력구도가 안정되면 남북 구도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김정은은 형식상 군사위원장의 대를 이어 통솔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서 “김정은이 군권을 이어받고 당 총비서 자리를 추대 형식으로 확보하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경희·장성택이 후견그룹이 돼 당중앙군사위원회가 비상체제를 구성하면 중국 측에서 신속하게 군사적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유 교수는 “중국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이번 상황을 북한 붕괴로 간주하고 북에 대한 위협을 가한다면 중국이 (북한에) 더 많은 보장을 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남북정상회담 어려워졌지만 조문사절단 검토를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단 정부가 추진해 온 남북정상회담이 어려워졌다.”면서 북한이 대남 강경책으로 나올 가능성에 대해선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말하기 어렵고 예단하면 안 된다.”며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정부가 이미 비상사태를 확인한 만큼 애도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문 교수는 “남북관계를 잘 이끌고 가고 싶다면 이희호, 권양숙 여사 등 정상회담 주체의 배우자들을 조문사절단으로 보내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조문사절단을 보내면 제일 좋겠지만 이뤄질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공조는 한국 정부가 하기 나름이라고 문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제가 볼 때는 간단하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생각하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동안 김정은 체제 이양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해온 만큼 김정은 외에 대안세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문 교수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경희 경공업부장이 전진배치됐고 조선노동당도 정치국부터 시작해 당 기능을 재가동시켰다.”면서 “군의 충성은 쉽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직계가족 내에서 내분이 생기지 않고 당과 군이 충성한다면 큰 변화는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때 국제정세를 선례로 김정일 장례식 이후 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리는 당시 북한이 조문사절단을 문제삼았지만 미국 지미 카터 특사와 김 주석 간 대화를 틀로 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제네바합의까지 간 사례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현재 북·미 사이에 만들어진 대화의 틀을 이용해 북·미대화와 6자회담까지 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교수는 “이를 통해 김정은 후계그룹은 자기들의 정통성을 제도화하는 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내부적으로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결정될지는 유동적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동안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권력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던 만큼 북한 내부 정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들어놨던 아들로의 3대 세습이 안착될지, 권력투쟁이 일어날지에 대해 장례시기 이후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재정·위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동시에 북한 내부 동향을 기민히 파악하며 안보 태세를 갖출 필요성이 제기된다. 주변국들과의 실시간 정보교환도 필수적이다. ●북한 반응 여유있게 기다려야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화를 닫을 수밖에 없다. 외부조문단을 안 받겠다고 하고 있지 않으냐.”면서 “내부의 입장정리가 덜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서는 먼저 대화의사를 표명할 필요는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내부 안정을 지원할 용의에 대해 의사표명을 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사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차 연구위원은 6자회담 등 외교 변수는 내년 초까지 보류 상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 헌법상 국방위원장 유고와 권한대행에 대한 규정이 없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이 덜 됐는데 이는 불안정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근거를 댔다. 이재연·허백윤기자 oscal@seoul.co.kr
  • “김정은 권력 승계 미완성 권력투쟁·대남도발 가능성”

    “김정은 권력 승계 미완성 권력투쟁·대남도발 가능성”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서울신문은 19일 미국과 중국,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전화로 인터뷰해 김정일 사후의 북한 내부와 한반도, 주변국들의 정세 변화를 쟁점별로 진단했다. 고든 플레이크 미국 맨스필드 재단 소장,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장롄구이 중국 중앙당교 교수, 이소자키 아쓰히토 일본 게이오대 조교수, 다케사다 히데시 전 일본 방위연구소 총괄연구관(현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교수)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한반도 정세 플레이크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위험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에) 좋은 일이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장기적으로 평화가 오려면 체제가 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김정일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필요한 단계 하나가 지나갔다. 클링너 북한 내외 정세에 엄청난 불확실성이 생겼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동안 김정일의 2008년 여름 사망설에서 벗어나 승계를 공식화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급변사태에 대한 걱정을 덜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망했으니 앞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통일은) 아주 먼 얘기다. 일단 북한이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국면이 될 것이다. 장롄구이 단기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장례와 북한의 안정이 급선무인 만큼 북한의 지도자들은 한국 관련 정책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몇 개월 이후의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비교적 강경한 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군부 장악을 위해 선언적 의미에서라도 강경한 입장을 대내외에 공표할 수 있다. (통일 문제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채택할 정책이나 북한의 정세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북한의 내부 혼란이 심해진다면 한반도 통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에 김정은 또는 새로운 지도자 체제가 안정된다면 통일이 상당히 장기적인 과제로 늦춰질 것으로 본다. 아쓰히토 옛 소련의 붕괴나 아랍의 재스민 혁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에도) 큰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중단기적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남 도발 플레이크 (도발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일단은 내부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클링너 내부적으로 김정은의 승계에 대한 저항이 강해진다면 김정은이 파워 과시를 위해 도발할 수도 있다. 히데시 북한 군부의 입김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지난 2년 동안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일어난 것처럼 강경파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거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며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승계와 권력투쟁 플레이크 (내부 권력투쟁의) 가능성이 있다. 후계자가 김정은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승계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김정은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은과 군부와의 관계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클링너 (권력 승계는) 불확실하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김정일이 살아 있어 승계를 마무리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도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권력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단정할 수 없다. 김정일에 대한 북한 권력층의 충성심이 얼마나 컸는지에 달려 있다. 장롄구이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와 김정일이 사망한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다. 특히 후계구도 문제와 관련해선 김일성 사망 때 이미 김정일이 오랜 기간 후계수업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던 반면 김정은은 고작 1년여에 불과하다. 김정일이 강력하게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내부에 강력한 카리스마가 형성돼 있는지 의문이다. 아쓰히토 김정일 사망 직후 노동신문과 중앙통신 보도에서 이상한 느낌을 발견하지 못할 만큼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장성택과 이영호 총참모장을 중용한 상황에서 이들의 지지로 김정은 체제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특히 공산당 간부들은 기득권층이어서 김정은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히데시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이틀 뒤에 밝히고 장례식 일정을 발표하는 상황을 볼 때 현 북한의 체제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집단체제가 아닌,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작업이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 ●북·미, 6자회담 영향 플레이크 회담이 연기될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를 보면 지도자가 없어졌을 때 현안에 대한 결정과정이 느려졌다. 북한 내부의 결정과정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클링너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장롄구이 6자회담 재개는 더 힘들어졌다. 특히 북·미 대화를 앞두고 김정일이 돌연 사망했기 때문에 북한의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6자회담 참가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김일성 사망과 비교 플레이크 김정일 사망이 (북한 체제에는) 더 충격적이다. 김일성 사망 때는 김정일이 20년 동안 후계를 준비했고 그의 승계를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승계가 애매한 상황이다. 클링너 김일성 사망이 훨씬 큰 충격을 줬다. 그는 북한을 건설한 사람이고, 김정일보다 더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김정일은 권력 승계에 성공할 수 있었고 시스템이 생존할 수 있었던 반면,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카리스마가 덜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사망이 충격은 덜하지만 불확실성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중, 대일 관계 장롄구이 중·조(북)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중국은 북한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정일이 죽었건, 생존해 있건 이건 중국의 대북 기본정책이다. 누가 후계자가 되든 중국은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을 펼 것이다. 아쓰히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나 납치문제는 김정은 체제가 공고해진 이후에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여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워싱턴 김상연·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 특파원 carlos@seoul.co.kr
  • 북미·남북대화 올스톱… 극도의 긴장국면 지속될 듯

    북미·남북대화 올스톱… 극도의 긴장국면 지속될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시스템보다는 김정일이라는 절대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체제라는 점에서, 절대권력의 공백은 각종 대내외 정책의 ‘올스톱’을 의미한다. 정책을 추진하려면 윗선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결재라인이 정돈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책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김정일이 20년 가까이 후계를 준비해 왔음에도 북한은 상당기간 대외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물며 지금은 북한의 후계문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북한 권력층은 온 신경을 내부에 쏟아야 하는 처지다. 북한의 올스톱은 한반도 정세의 올스톱으로 이어지면서 극도로 불안한 긴장 국면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힘겹게 진전시켜 온 대북 현안은 졸지에 허공으로 산화할 운명에 처했다. 당장 이번 주 후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것으로 전망됐던 제3차 북·미대화는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를 계기로 수주내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되리라는 기대도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대화도 진전이 어렵게 됐다. 우선 이명박 정부 임기 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물건너갔다. 시간도 촉박한 상황에서 북한 권력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동력은 완전히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남북대화도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는 진전이 힘들 전망이다. 남측이 남북관계 복구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를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이라면 ‘통큰 사과’가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정은 등 새로운 지도부는 김정일에 비해 카리스마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반발을 부를 사과를 ‘감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한·미는 김정일의 후계자가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김정일 시대보다 더 힘든 상황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북·중 간 관계는 당장 변화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김정일 시대에 비해 느슨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권력층 내부적으로 6·25 전쟁의 혈맹세대가 갈수록 사라지는 데다 ‘3대 세습’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시각도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를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앞으로 미·중이라는 두 거인이 충돌하는 세계의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면서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토대로 중국을 옥죄려 할 것이다. 이에 중국이 거칠게 대응할 경우 미·중 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결국 관건은 북한 권력구도가 얼마나 조속한 시일 내에 안착하느냐에 달렸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정일 시대에 버금가는 내부 장악력을 발휘한다면 한반도 정국은 기존의 틀을 기반으로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내년 4월 김일성의 100회 생일을 활용해 정권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후계다툼이 일어난다면, 또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민심 이반이 불거지면 북한은 패닉상태에 빠져들 개연성이 높다. 이런 시나리오가 남북한은 물론 미·중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각 변수들에 가장 중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급변사태가 ‘벼락같은’ 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에 좀더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남북 ‘갬’ 한미 ‘맑음’

    남북 ‘갬’ 한미 ‘맑음’

    최근 한·미 정상회담 등의 영향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1일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한반도 전문가 40여명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한반도 정세보고서’에 따르면 4분기 한반도안보지수(KPSI)는 53.37로 기준선인 50을 3개월 만에 회복했다. KPSI는 삼성연이 한반도 안보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조사 결과를 계량화해 산출하는 지수다. 50 이상은 상황 호전, 이하는 악화를 뜻한다. KPSI 상승은 지난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형성된 한·미 대 북·중 갈등 구도가 점차 해소되고, 북한의 사회적·외교적 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남북한 교류·경제협력 추세 부문은 3분기 45.56에서 4분기 54.76으로, 남북한 당국 간 관계는 41.11에서 47.02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북한 변수 평가(51.79)도 남북, 북·러 관계 개선의 영향으로 2년 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북·미관계 진전 정도도 61.90으로 양호했다. 한·미 관계는 77.38로 조사 항목 가운데 최고치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MB “북핵 중단해야 6자 재개”

    MB “북핵 중단해야 6자 재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북한이 모든 불법적인 핵활동을 중단하고 재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것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최소한의 신뢰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 아요디아 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 “북한이 하루빨리 핵포기 결단을 내리도록 한·중·일 3국의 긴밀한 협의를 기대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남북 및 북·미 대화가 6자회담과 동시 추진될 경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6자회담이 조기에 재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데 대한 ‘답변’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남북 및 북·미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도 “남북 및 북·미 대화 노력을 평가하지만, 북한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돼야 6자회담도 성공할 것”이라면서 ‘선(先) 비핵화·후(後) 6자회담 재개’에 비중을 뒀다. 3국 정상이 북한 핵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총론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방법론을 두고서는 각각 ‘온도차’를 보인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날 오후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를 만나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된 뒤 한·호주 간 FTA를 본격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두 정상은 또 양국 외교·국방장관 간 ‘2+2회담’을 정기적으로 갖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20일 아세안+3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마치고 필리핀을 방문, 동포 간담회를 가졌다. 숙소인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처럼 시장이 좁은 나라는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자유무역 상대는 미국이라고 생각한다.”며 거듭 국회의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MB,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 안팎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원자바오 중국총리와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MB “印尼에 아세안대사 파견… 대표부 개설할 것” 원 총리는 발리 누아보아 컨벤션센터에서 20분간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미 간, 남북 간 대화에 진전이 있기를 바라고 6자회담이 조속히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원 총리는 또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 대통령을 중국에 초청한다고 얘기했다.”면서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이 대통령을 수행 중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후 주석의 초청을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은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자 한국 방문의 해이기도 하다.”면서 여수 엑스포에 중국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와 관련, 후 주석의 참석을 요청했다. 이에 원 총리는 참석하겠다는 뜻을 후 주석을 대신해 밝혔다고 최 수석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아세안+3(한·중·일) 회의에서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와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파트너십’(CEPEA) 등 역내 경제통합 논의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저녁에는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 만찬에 참석했다. EAS는 이번 아세안 회의를 계기로 열리는데, 지난해 가입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만찬에 참석해 19일로 예정된 EAS 정상회의에 앞서 다시 만났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회동은 지난 1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나흘 만이다. 그러나 만찬이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자리였던 만큼 두 정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에 대한 의견 교환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아세안, FTA 상품협정 개정 의정서 등 서명 앞서 이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아세안 FTA를 적극 활용해 오는 2015년 계획된 1500억 달러의 교역량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그동안 수자원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4대강 정비 사업을 시행했다.”면서 “아세안과 경험을 공유해 자연재해로 생기는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한·러 가스관사업 등 협력 강화 남북통일·동북아 평화에 기여”

    “한·러 가스관사업 등 협력 강화 남북통일·동북아 평화에 기여”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러시아와의 협력이 남북 통일을 앞당기고 동북아 평화안보에 기여할 것입니다.” 지난 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이 끝난 뒤 3일 오후 위성락(57) 신임 주러시아 대사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인근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는 16일 출국하는 위 대사는 “한·러 정상 간 6번째 회담을 갖는 등 최고위층의 빈번한 교류는 양국 관계가 그만큼 긴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장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위 대사로부터 한·러 관계와 북핵 문제 등 전망을 들었다. →한·러 정상이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양국 정상이 가스관 사업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확인했고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사업을 실질적으로 엮어내려면 북·러 간 가격 등 구체적 협상이 있어야 하고 한·러 간에도 2014년까지 상업적 정식 계약을 맺어야 한다. ‘2013년 가스관 착공, 2017년 가스 공급’은 로드맵이기 때문에 실질적 이행 여부가 중요하다. 러시아 측이 가스 판매에 매우 적극적인 만큼 짚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러 간 극동 시베리아 지역 협력 확대 등 할 일이 많은데. -양국 간 교류·협력이 현재 가장 활발하다. 무역 규모도 수교 이래 90배 이상 늘었다. 러시아에 있어서 극동 시베리아 지역 개발은 매우 중요한데, 러시아 경제가 나아지고 있어 추동력이 생겼다. 특히 전력 송전선 개선과 에너지·가스 협력, 수산·의료 사업 등에서 양국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철도·수력발전 사업도 가시화되면 유망하다. →북핵 문제와 관련, 러시아 측의 대북 지렛대가 있나. -북·러 간 역사·연고 등을 고려할 때 중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향력이 있고, 6자회담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북·러 정상회담 등을 볼 때 북한이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한·러 정상 간 합의처럼, 남·북·러 가스관 및 북핵 공조를 통해 러시아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6자회담이 개시될 때부터 관여했고 최장수 수석대표를 지냈지만 정작 수석대표로서 회담은 하지 못했는데 소회는. 향후 북핵 전망은. -6자회담 개최 자체보다 회담 전 막전막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여한은 없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등 도발과 6자회담 등 대화, 중국 요인, 북한 내부 사정 등을 같이 봐야 한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및 북·미 대화, 사전조치 요구 등 다른 접근이 이뤄진 것은 의미가 있다. 이제는 부분적 합의보다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두 차례의 남북 비핵화 대화로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대화·압박을 이어가야 한다. →러시아어에 능숙한 첫 주러 대사인데 포부는. -1993~95년 탈냉전 초기에 러시아에서 근무한 뒤 16년 만에 대사로 가게 돼 어깨가 무겁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러시아 정부와 접촉해 북한이 당장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했던 기억이 있다. 북핵 문제 등 현안 조율 및 협력 증진을 통해 러시아가 남북 통일과 동북아 안정, 공동번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정일 “전제조건 없이 6者 재개”

    김정일 “전제조건 없이 6者 재개”

    북한 김정일(얼굴) 국방위원장은 19일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 빨리 재개하고 9·19공동성명을 이행함으로써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해 나가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서면인터뷰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24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2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북·미 간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힌 것은 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지침을 준 만큼 북한은 북·미회담이 열리더라도 한·미 양측이 요구하는 선행조치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핵문제와 관련,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핵억지력을 보유하게 됐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과 미국, 일본 간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를 선의로 대한다면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수주일 내에…힐러리, 북·미 추가대화 시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이 취할 광범위한 문제들과 관련해 북한과 계속 접촉할 용의를 가져왔다.”면서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향후 수주일 내에 더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언급, 수주일 내에 북·미 간 추가 대화가 열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13일(현지시간) 국무부에 따르면 힐러리 장관은 지난 11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추가 북·미 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국과 긴밀히 공조해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은 지난 7월 뉴욕 북·미 대화에 이어 2차 북·미 대화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제3국에서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 소식통은 “추가 북·미 대화가 조만간 유럽의 제3국에서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고위당국자 “한·미 정상회담 뒤 북·미 대화”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2차 대화 가능성에 대해 “10월 중 2차 북·미 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오는 13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한·미 간 공조를 통해 북·미 회담 날짜를 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초 이달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북·미 대화가 미뤄지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 워크숍 강연을 통해 이렇게 밝힌 뒤 “과거처럼 북·미(대화)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고 남북(대화)과 북·미(대화)가 상호 추동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7월 발리, 9월 베이징에 이어 남북 3차 비핵화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주목된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 측에 제시한 사전조치와 관련, 그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 문제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며 “비핵화 조치는 이미 조건을 제시한 만큼 양보는 없으며, 북한이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UEP 문제는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며, 6자회담 재개 전 UEP 중단은 필요하지만 6자회담에서도 계속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 방안에 대해 “1차 남북 회담 때 그랜드 바겐을 처음으로 북측에 공식 설명했고, (북측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2차 회담에서 관련 질문도 상당히 해 이해가 높아졌다.”며 “6자회담이 다시 열리면 그것이 그랜드 바겐 협의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랜드 바겐은 비핵화 이후 상황”이라며 6자회담이 사전조치에 대한 보상 없이 먼저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 가스관 연결은 돈과 관련된 사업이라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며 “남·북·러 사업이지만 협상은 주로 북·러 간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일 협의에 대해서는 “일본이 우리에게 응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집요하게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해서는 “내년 4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병기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며, 병기가 퍼지고 나면 단독 표기를 추진할 것”이라며 “병기가 최종 목표가 아니며 단계별 로드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미국의 대북정책, 아전인수식 해석 경계한다/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국의 대북정책, 아전인수식 해석 경계한다/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남북관계를 견인하는 주요 핵심 동력 중 하나이다. 따라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때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 그간의 경험이자 교훈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러한 오류가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추석 연휴 동안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안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북한의 무조건 6자회담 재개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 4월까지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선임국장을 역임한 제프리 베이더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이 해야 할 일들(선결조건이라고도 하는)을 재차 강조함으로써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선거를 앞두고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직에서 물러나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나 그의 비중과 역할에 비춰 오바마 정부의 기본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일부 인도적 지원이나 6·25전쟁 당시 미군 유해 발굴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북한의 소위 ‘통미봉남’이 재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 직무대행인 에드가드 케이건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유화적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특히 중국통인 케이건 직무대행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중국과의 외교적·전략적 협조의 중요성을 한국과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위성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북핵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의견 조율이 심도있게 진행되는 시점이라 그의 발언의 진정성에 공감할 수 있었다. 셋째,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한국 정부가 국방개혁을 통해 대북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대해 지지와 신뢰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시퍼 미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는 2009년 4월부터 현 직책을 담당하면서 천안함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정세 변화와 해법에 관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인물로 한·미, 한·미·일 간 군사적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그러한 억제전략이 대중 포위망 구상으로 오해됨으로써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서는 안 된다면서 오히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북한의 추가 도발 책동을 무력화하는 방안 마련에 한·미 군사동맹의 역할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 밖에 대다수 미국 정책 당국자, 전략가들은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입장을 정략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데 우려를 표명하였다. 특히 지난 7월 말~8월 초 뉴욕에서 이뤄진 북·미 고위급대화에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는 보도를 예로 들면서 이러한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이는 한국 내 여론 또는 한국 정부로 하여금 남북정상회담을 서둘러 개최토록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경계하였다. 미국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논의에 착수하는 수단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북한 역시 그러한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이슈화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며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미관계는 어느 때보다 돈독하고 양국 간 신뢰와 소통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 말 유엔을 방문하고 10월에는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 그만큼 양국 간 비전동맹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통해 양국 간 경제적·사회적 교류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통일부 장관의 교체를 정책의 근본을 바꾸는 계기로 몰고가거나 대북정책과 같은 중요 정책을 사실의 왜곡으로 변질시켜서도 안 된다. 더구나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위상 변화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함으로써 한·미관계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 대북 강경파 카일 의원, 성 김 인준 막았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의 미국 상원 인준을 가로막고 있는 상원의원은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로 대북 강경파인 존 카일(애리조나) 의원인 것으로 12일(현지시간) 알려졌다. 국무부는 최근 이 상원의원이 공화당 존 카일 의원임을 확인하고, 데이비드 애덤스 의회담당 차관보를 중심으로 카일 의원실을 상대로 성 김 대사 후보자의 인준 절차 진행을 위한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존 카일 의원은 성 김 후보자 인준 절차를 보류한 분명한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성 김 후보자 개인의 자질이나 노선 때문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일 의원은 외교, 국방 분야에서 주도적 목소리를 내는 중진 의원으로 지난해 말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비준 당시 백악관으로부터 다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비준 절차를 막판까지 유보시킨 장본인이며, 대북제재를 강조하는 대북 강경파로 분류된다. 카일 의원은 지난 6월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이란·북한·시리아 제재 통합법안’을 공동발의했으며, 올 초 미·중 정상회담 후 6자회담 재개를 비롯, 북·미 간 대화 조짐에 대해 ‘성급한 6자회담 재개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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