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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인 학생들에게 日학병권유 이광수·최남선 ‘도쿄대담’ 발굴

    일본에 유학중인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병을 권유하는 내용이 담긴 이광수와 최남선의 ‘도쿄대담’이 발굴됐다. 문예 계간지 ‘서정시학’ 봄호는 1944년 1월 도쿄에서 ‘학도출진 특집호’로 출간된 ‘조선화보’ 권두에 게재된 ‘도쿄대담’을 소개했다. ‘신태양’ 사장이던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도쿄대담에서 이광수는 “지난해 11월 메이지대 강당에서 조선 유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 참석했다.”면서 당시 광경에 대해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실현된 것 같은 장면이었다.”고 비유했다. 이광수는 또 “조선의 청소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만을 위한 사소한 것에 ‘끙끙대는 상태’를 멈추고 일본 전체의 무거운 사명, 대동아 전체를 껴안는다는 커다란 기분이 돼 신질서 건설의 주역을 연출한다는 정도의 야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남선은 “일본 무사도와 신라시대의 화랑정신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어떤 학자는 ‘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남선은 학병지원을 의미한 듯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든가, 대동아의 성전에 참가한다든가의 의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한편에는 우리들의 잠자고 있는 혼을 깨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 부흥을 위한 수행에 있어 하나의 계기”라고 덧붙였다.대담에서 이광수는 창씨개명한 이름 ‘香山光郞’(가야마 미쓰오)로 표기됐다.박홍환기자 stinger@seooul.co.kr
  • ‘백제부흥’ 아닌 ‘백제복국’이 맞다

    백제는 660년 신라와 당나라 군대의 기습적인 협공을 받고 항복했다. 하지만 백제 세력은 곧 이어 왜(倭)에 머물고 있던 풍 왕자를 국왕으로 옹립하여 국가체제를 수립한 뒤 조직적으로 나·당군에 항전한다. 그동안 이런 움직임을 백제부흥(復興)운동, 나·당군에 항전하던 세력을 백제 부흥군(復興軍)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백제 부흥’이라는 용어는 왜가 천황권의 역사적 승리를 과시하고 미화시키기 위해 편찬한 ‘일본서기’ 속의 천하관에 보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쓰지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전통문화논총’ 4호에서 “‘일본서기’는 임나제국이나 임나 재건과 관련하여 한결같이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서 “왜의 역할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구절에서 ‘부흥’이 나타나는 만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백제 부흥의 개념은 나라가 망한 뒤 국권을 되찾는 투쟁으로, 한 국가가 쇠퇴했다가 다시 흥기하는 개념의 부흥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면서 “당시 백제의 움직임은 당나라와 신라가 강점하고 있는 자국 영토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일종의 독립투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차라리 ‘부흥’보다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흥복(興復)’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볼 때 부흥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으로, 부흥군은 복군군(復國軍)으로 일컫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백제가 멸망한 뒤 주민들이 국권회복 투쟁을 전개한 것을 부흥운동으로 일컬은 것은 1923년 오다 쇼고(小田省吾)가 ‘조선상세사(朝鮮上世史)’에서 쓴 것이 가장 오래된 용례”라면서 “하지만 이전에 사용한 사례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日 “납치문제 진전없이 北에너지 지원 어려워”

    |도쿄 이춘규특파원|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21일 “(북한의) 납치문제의 진전 없이 6자회담에서 합의한 대북 에너지 지원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교도(共同)통신은 이날 아베 총리가 방일중인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회담을 갖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미·일 공통의 과제로 삼고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체니 부통령은 “납치된 사람의 비극을 해결하는 것은 공통의 과제”라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앞서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조만간 열릴 북·일관계 정상화에 관한 실무협의에서 북한이 납치문제 해결에 성의있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21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아소 외상은 이날 납치문제에 북한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새로운 제재를 취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체니 부통령과의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주일미군 재편의 착실한 이행과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의 가속화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라크 부흥과 안정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지지하면서 항공자위대의 수송지원 계속 등을 약속했다. 아베 총리와 체니 부통령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건설적인 세력이 될 수 있도록 촉구해 나가기로 하는 한편 중국의 불투명한 군비확장이 우려스럽고, 위성 파괴실험 등의 동향을 주시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데도 인식을 같이했다.taein@seoul.co.kr
  • ‘아미티지 보고서’ 2000·2007 비교

    ‘아미티지 보고서’ 2000·2007 비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 미국의 일본 전문가들이 지난 16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통해 발간한 ‘2007년 미·일동맹 보고서’가 워싱턴 외교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 2000년에 발간됐던 1차 미·일동맹 보고서의 개정판에 해당한다. 두 보고서 모두 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2020년까지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을 조망했다. ●1차 보고서 작성자, 대거 부시 행정부로 2000년 보고서 작성에는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들이 초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보고서는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주장했다. 또 ▲동북아주둔 미군을 재배치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을 강화하며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발동 금지’ 해석의 변경 등을 제안해 일본의 재무장과 ‘보통국가화’를 촉구했다. 집필자 가운데 보수적 인사들은 대거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다. 아미티지 부장관과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현 세계은행 총재),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등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다. 보고서 주요 내용도 대부분 현실화됐거나 최소한 시도됐다. 일본은 2001년에 반테러특별조치법,2003년에 유사법제와 이라크부흥지원법 등 보고서가 제시한 정책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또 인도양에 보급함을 보냈고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등 자위대의 ‘지역안보’ 기여도 구체화했다. 보고서는 대표 집필자인 아미티지의 이름을 따서 ‘아미티지 보고서’로도 불린다. ●“일본 무기수출 확대하라.” 이번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일본의 무기수출 통제 완화 ▲탄도미사일 방어에 대한 별도 예산 확보 ▲미 태평양 사령부에 일본대표 파견 등 양국 군사협력 강화 ▲미국의 차세대 F-22 전투기 편대 일본 배치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 ▲테러와의 전쟁에서 일본의 ‘소프트 파워’ 활용 등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지난 2000년의 1차 보고서가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 성격이 강하다면 이번 보고서는 미국 정부에 대한 제안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는 커트 캠벨(신아시아안보센터), 마이클 그린(CSIS), 프랭크 재누지(외교협회), 제임스 켈리(CSIS), 제임스 프리스텁(국방대학), 데이비드 애셔(헤리티지재단) 등 18명이 참여했다. 외교소식통은 “보고서 내용이 현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공화당이나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보고서 내용을 정책으로 채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남북통일” 이번 보고서는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도 담고 있다.2020년까지는 남북통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며, 북한 핵문제의 최종적인 해결도 통일이 이뤄진 후에나 옛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핵 문제가 해결된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남북통일의 시나리오들 가운데 북한의 불안정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경우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관리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남북통일은 또 “한국에 큰 부담을 줌으로써 한국의 민주제도와 경제번영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고, 이런 모든 시나리오에 사전대비해야 한다고 미·일에 권고했다. 주미 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보고서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북핵 해결이 용이하지 않고 ▲미국이 일본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려 하는 움직임 등이라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도올 강의는 신학영역 침범”

    “한국 교회가 교단뿐만 아니라 진보·보수 진영으로 갈라진 채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으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가 비난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한 이용규(65·성남성결교회 담임) 목사는 20일 취임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나 “한국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청산에는 교회의 연합이 무엇보다 시급하며 임기중 한기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교단장협의회를 아우르는 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소감을 밝혔다. “한국교회사의 큰 사건이었던 평양대부흥회 100주년에 더해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중요한 해에 대표회장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평양대부흥회의 근본정신은 회개와 낮춤”이라고 거듭 강조한 이 목사는 “평양대부흥회의 정신을 되찾아 교회의 새모습을 찾는 한편 섬김의 리더십을 갖춘 새 지도자를 뽑는데 첨병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대선과 관련해선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헌법이 정한 기준 안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 검증 차원에서 다양한 기독교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책포럼을 5월중 열어 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새 시대의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포용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연합만 하더라도 가장 어려운 것은 깊이 뿌리내린 판이한 정체성과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충분한 이해심과 겸허한 자세로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나라의 새 지도자상을 알리기 위해 한기총이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김용옥 교수의 EBS 요한복음 강의와 관련해선 “성경에 대한 인식부족과 성서신학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몰이해의 발상”이라며 “대응할 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김용옥 교수가 동서양 철학을 꿰뚫고 있는 해박한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계시로 말미암은 성경을 철학서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신학의 영역을 침범한 교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함께 배석한 최희범 한기총 총무는 “요한복음 강의 논란을 비롯해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마치 교회를 허물려는 모종의 음모처럼 느껴진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용규 목사는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부용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와 전주성결교회 부목사를 거쳐 지난 1979년 1월부터 성남성결교회 담임목사로 사목해 왔다. 총회 이단사이비특별대책위원장, 중부지역총회장, 교단 부총회장,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을 지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활절 예배 박종순목사 설교

    오는 4월8일 새벽 5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올해 부활절연합예배의 설교자로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가 결정됐다. 이와 함께 축도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권오성 목사)에서 추천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맡게 됐다. 연합예배가 끝난 뒤 오후 5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노래와 퓨전국악 공연으로 짜여진 ‘부활절 문화축제’도 열린다.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집행위원회는 최근 연합예배 진행과 관련해 이같이 최종 결정하고 홈페이지(http://easter2007.or.kr)를 통해 교회별 참가신청을 접수하기 시작했다고 14일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올해는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이면서 부활절연합예배 6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연합예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와 북한 동포 등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는 연합예배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교회들은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에 즈음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방한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한은 북한­미국 관계의 변화에 따라 성사 여부가 바뀔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방한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못올 경우 영상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우리금융회장 후보 3명 압축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에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1차관과 황영기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각축하는 가운데 최명주 전 교보증권 사장도 ‘다크 호스’로 함께 거론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 사장에는 유재한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는 13일 시내 모처에서 박 전 차관 등 5명을 상대로 후보 면접을 마치고 박 전 차관과 황 회장 등 3명을 회장 후보로 재경부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우 딜로이트컨설팅 한국 대표와 최영희 전 신한지주 사장도 이날 면접을 끝냈다. 기업은행장을 지낸 김종창 법무법인 광장 고문(행시 8회)은 당초 면접대상에 포함됐으나 행시 후배인 박 전 차관(17회)을 배려해 스스로 물러났다. 박 전 차관과 황 회장의 ‘2파전’이 예상되지만 금융권 일각에선 최 전 사장도 주목하고 있다. 이날 면접은 후보들간 만남을 피하기 위해 넉넉한 간격을 두고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추천된 후보 가운데 2명을 대통령에 제청, 이달 말 대통령이 신임 회장을 임명하게 된다. 12일부터 공모 접수가 시작된 우리은행장 후보로는 한일은행 출신인 이종휘 현 수석부행장과 상업은행 출신인 우리은행 부행장 출신의 최병길 금호생명 사장 등이 각각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선 최 사장이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어 다소 유리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앞서 주택금융공사 사장 후보에는 유재한 실장과 진병화 국제금융센터 소장, 최창호 공사 부사장 등이 추천됐다. 재경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22일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공사 사장이 내정될 예정이다. 현재 유 실장과 진 소장의 맞대결이 거론되는 가운데 진 소장의 ‘연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행시 13회인 진 소장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를 지냈는데 정부가 인사권을 가진 민간 쪽의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이미 거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강종만 금융연구원 선임위원은 공공적 성격이 짙은 공사의 특성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9일 공모를 마감한 기업은행장 후보에는 장병구 수협 대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이명박, 대구서 ‘한반도 대운하 띄우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텃밭’인 대구에서 자신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띄우기에 나섰다.12일 대구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자신의 지지성향 모임인 ‘선진한국 국민포럼’ 주최로 열리는 한반도 대운하 세미나에서였다. 이 전 시장은 이 자리에서 “대운하 사업이 국가 부흥의 큰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또 침체된 대구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세미나에서 이 전 시장의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고려대 곽승준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인한 사회적 총편익은 약 37조 4999억원이며, 총비용은 16조 2863억원으로 총비용 대비 경제적 편익이 최소 2.3배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기질 개선, 주변 경관개선 등 환경적 편익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생태계 파괴를 부추길 뿐 경제 효과가 없을 것이란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 전 시장의 이번 대구 방문은 ‘당심(黨心)’과 ‘민심’을 동시에 겨냥한 행보로 보인다. 최근 이 전 시장측이 자체 조사한 일반당원 여론 조사에서 유독 대구지역에서 박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라는 분석이다.이 전 시장측은 최근 전국 4만 2322명의 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11.1% 차이로 박 전 대표를 따돌렸으나, 대구에서 1010명의 당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3.2%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대구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한국 새 대통령은 외국에 수용적 태도 지녀야”

    “한국 새 대통령은 외국에 수용적 태도 지녀야”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1일 “한국의 새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비전2030 글로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아탈리는 “한국은 기술, 인적자원이 뛰어나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면서 “2030년에도 여전히 10대 주요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령화·빈곤·양극화 문제 해결을” 아탈리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노령화·빈곤·양극화 등 세가지를 지적하고 “이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출산율이 1명대인 점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최우선 순위인 가족정책은 완전히 새롭게 뒤바꿔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실업 급여를 강화해 계약직을 선택했을 때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선을 앞둔 한국이 어떤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필요로 하겠느냐는 질문에 아탈리는 “현재 한국은 외국과 대립할 때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방적인 자세가 부족하다.”면서 “새 대통령은 근대화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유층 세금 늘려 분배 이뤄야” 그는 근대화는 모든 국가가 발전에 필요한 도구라고 규정하고 “한국은 이웃국가로부터의 투자, 이민을 수용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거대 비전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OCED국가 중 GDP대비 사회지출이 현저히 낮다.”지적하고 “2015년까지 미국 수준인 15%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부유층의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부유계층의 세금을 높이는 것이 분배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아탈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화는 시작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세계화는 힘의 중심을 태평양 동쪽으로 이끌 것이며 앞으로 기술력과 사회의 역동성, 개방성을 갖춘 그리고 금융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선두그룹에 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크 아탈리는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로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를 지냈다. 사회당 집권 후인 1981년부터 10여년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했다. 현재는 빈곤퇴치를 위한 소액금융(microcredit)의 가능성을 주목, 국제기구 플라넷파이낸스(PlaNet Finance)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맞는 개신교 움직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맞는 개신교 움직임

    새해 들어 개신교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평양 대부흥운동’이다. 모든 모임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이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 이런저런 행사가 추진되는가 하면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2일부터 14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일었던 기독교 영적 각성운동이자 성령운동.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 한반도 전역으로 회개와 부흥의 불길을 번지게 해 세계교회가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게 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는 왜 이다지도 ‘평양 대부흥운동’에 집착하는 것일까. ●평양 대부흥운동의 핵심은 교회갱신 평양 대부흥운동은 비단 교회의 물적·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한국 교회사적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한국 교회들이 요즘 평양 대부흥운동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은 대형화 일색으로 치닫는 교회들이 ‘빛과 소금’의 종교적 역할을 되찾자는 회개와 반성 측면이 강하다. 그런 때문인지 개신교계의 가장 큰 행사인 올해 부활절연합예배의 초점도 ‘영적 각성과 한국교회의 갱신’이란 주제대로 철저하게 회개와 반성을 통한 부흥에 맞춰져 있다.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오는 4월8일 새벽 5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부활절연합예배에는 평양대부흥회의 정신을 살린 ‘세례의 갱신’ 행사가 들어 있다. 예배에 참여하는 목회자와 신자들이 함께 회개와 갱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최근 개신교계에서 추진 중인 성서학 학술심포지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한국구약학회·한국신약학회와 한국복음주의구약학회·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등 4대 성서해석학회가 5월25∼26일 사랑의교회에서 만나 평양대부흥운동의 의미를 성서와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되살려 갈라진 교회의 화합과 영적 부흥을 다시 찾자는 운동이다. ●북한 교회 재건과 주민 돕기부터 회개와 갱신을 통한 평양대부흥회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운동과 맞물려 북한 교회 재건과 북한 돕기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에 맞춰 올해를 ‘북한을 위한 기도의 해’로 선포한 데 이어 개신교 단체들이 평양에서 추진해온 교회의 준공을 서두르고 있다. 한기총이 지난 12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마련한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 평화통일기도회’에서는 150여명의 국내외 교계 지도자와 실향민, 새터민들이 ‘2007 북한을 위한 기도의 해 선포문’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교회와 신도들에게 북한을 위한 기도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이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4월 중순 평양에서 봉수교회 준공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혀 눈길을 끈다. 지난 2005년 11월부터 예장통합이 북측에 지원해 재건축을 추진해온 평양 봉수교회는 지상3층(연면적 600평)에 12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다. 예장통합은 교회 준공식에 앞서 오는 25일부터 경북 포항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평양대부흥운동 맞이 부흥행사를 개최하며 7∼10월 중 한기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함께 참가하는 연합대성회도 열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00년부터 평양에서 평화회관 건축공사를 진행해온 통일교도 3월초쯤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북한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아베 5월초 방미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는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의 5월 황금연휴 기간에 미국을 방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쪽으로 미국측과 구체적인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취임 후 첫 방미로, 미·일 동맹의 결속을 재확인하는 한편 미 해병대 후텐마 기지 이전을 비롯한 주일미군 재편과 미사일방어(MD)체제 등 양국간 현안, 그리고 북한 및 이라크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또 일본 외교의 최대 숙원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미국의 협조도 요청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이라크 정세와 관련해 오는 7월 말 기한이 만료되는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을 연장, 항공자위대의 수송 지원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방미를 초청했다.taein@seoul.co.kr
  •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부는 우파”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부는 우파”

    국내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65)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를 우파로 규정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집권 이래 장기불황의 극복 전략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농민을 희생시키는 것은 우파이지 좌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0일 ‘자본론´ 번역·출간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한국의 맑스주의 지형연구´ 강좌에서 현 정부의 우파적 성향에 대해 강의한다. 9일 미리 배포한 ‘한국사회와 자본의 세계화´라는 주제의 강의자료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보수대연합 등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제압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모토로 한 정책 정비 ▲비정규직 관련법 제정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운동의 무력화 ▲여러 국가와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재벌을 앞장 세워 한국경제를 부흥시킨다는 아이디어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힐난한 뒤 “재벌은 국내에서 이윤을 낼 수 없다면 언제든 한국 땅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자를 ‘임금노예´로 만들어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면서 “노동자들이 건전한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고용과 임금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럽의 선진국들은 1945년에 이미 복지국가를 건설했는데 한국은 지금도 자살, 범죄, 인권유린이 판치는 야만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내수기반 확충→안정적 경제성장→인권유린과 증오의 해소→사회적 타협의 확대´라는 유럽 선진국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김수행 교수는 대구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 런던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1982년 귀국, 한신대에서 강의하다 87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사회과학 서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은 ‘자본론’”이라고 말할 정도로 국내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이다.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 김홍도 그림으로 시첩 만들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 김홍도 그림으로 시첩 만들다

    송석원시사 동인들은 모일 때마다 시를 짓고 서문과 발문을 붙여 시첩을 엮었는데, 목판이나 활자로 간행하지는 않고 저마다 필사하여 간직했다. 팔기 위해서 만든 책이 아니라, 동인들이 돌려가며 읽고 즐기기 위해 만든 책이다. 사대부들의 모임을 기념하는 계회도(契會圖)를 참석자 숫자만큼 제작한 것처럼, 송석원시사의 시첩도 한번 모일 때마다 여러권 만들어졌다. ●송석원시사 시첩에 그림까지 그날 지은 시와 산문만을 보통 편집했다. 하지만 규장각 서리 임득명(林得明·1767∼?)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날의 모습을 자신이 직접 그려 시첩을 만들었다. 재산이 넉넉한 시인들은 이름난 화원에게 그림을 부탁해 앞에 싣기도 했다. 비점과 도서를 붉은 색으로 찍고 비평을 붉은 글씨로 덧붙여, 시첩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풍조가 생겼다. 김의현의 시에는 “비록 적지만 또한 넉넉하다(雖少亦足).”라는 평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표지를 명필의 글씨로 꾸며 호화로운 서화첩(書畵帖)을 만들었다. 자연히 송석원시사 동인들은 시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글씨에도 공을 들였다. 1791년 6월15일에는 송석원시사 9명이 옥계에 모여 시를 지었다. 이날 지은 글들을 김의현(金義鉉)이 모아 ‘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이라는 시첩을 만들었다. 이 시첩 앞에는 도화서의 동갑내기 화원인 이인문과 김홍도의 그림이 실려 있다. 첫 장에 실린 이인문의 그림 오른쪽 위에 “단원 집에서 그렸다(寫於檀園所).”라는 글이 씌어 있다. 이인문이나 김홍도 같은 화원들이 시인들의 모임에 직접 참석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김의현의 부탁을 받고 두 사람이 김홍도의 집에 모여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원로 위항시인 마성린이 1797년에 김의현의 집에 놀러 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옥계청유첩’을 보고 발문을 덧붙여 써주었는데, 그때 이미 두 사람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김홍도 그림 한점은 900만원 이인문은 송석원에 중인들이 낮에 모인 모습을 그렸고, 김홍도는 밤에 모인 모습을 그렸다. 김의현은 당대 최고의 화가 두 사람의 그림을 같은 주제로 부탁해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유홍준(현 문화재청장) 교수는 “이인문이 구도를 잡을 때 항시 시야를 넓게 펼치는 반면, 단원은 대상을 압축하여 부상시키는 특징이 있다.”고 평했다. 이인문은 화면 전체를 그림으로 꽉 채우지만, 단원은 주변을 대담하게 생략한, 그래서 똑같은 풍경을 그려도 이인문의 산수가 평수에서 훨씬 넓어 보인다는 것이다. 김의현은 평생 인왕산에서 서화와 음악을 즐기며 살았던 위항시인 시한재(是閒齋) 김순간(金順侃)의 아들로 자는 사정(士貞), 호는 용재(庸齋)이다. 대대로 경아전 생활을 하며 집안이 넉넉했기에 당대 최고의 화원 두 사람에게 그림을 부탁해 시첩을 장식했다. 강명관(부산대·한문학)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김홍도는 그림값으로 쌀 60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송석원시사의 후배격인 직하시사(稷下詩社)의 동인 조희룡(趙熙龍·1789∼1859년)이 위항인 42명의 전기를 지어 ‘호산외기(壺山外記)’를 엮었다. 여기 실린 ‘김홍도전’에 의하면 3000전을 주면서 그림을 부탁한 사람이 있었다. 상평통보 하나가 1푼, 열푼이 1전,10전이 1냥이다.3000전은 300냥인데,18세기 쌀 한 섬의 평균시세가 5냥이었으니, 김홍도는 쌀 60섬을 받고 그림 한폭을 그려준 셈이다.2006년 평균 산지 쌀값이 한가마에 15만원이었다고 하니, 요즘 시세로 치자면 900만원쯤 받았던 셈이다. 이 그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그림들은 얼마를 받고 그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 강세황(姜世晃·1713∼1791년)이 지은 ‘단원기(檀園記)’에 의하면 “단원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청하는 사람이 날로 많아져 비단이 무더기로 쌓이고 재촉하는 사람이 문에 가득하여, 미처 잠자고 밥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김홍도의 그림값 자체가 당시 위항문화의 수준을 보여 주지만, 그러한 그림값을 지불해 가며 시첩을 장식했던 김의현의 태도에서도 송석원시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조의 은혜 기려 시첩 제작 그림을 부탁한 김의현은 규장각 서리이다. 문예부흥을 꿈꾸었던 정조는 규장각의 검서(檢書)는 물론 서리까지도 우대하여 대대로 문장을 하는 집안에서 뽑았다. 또한 이들에게 쌀이나 돈도 자주 내리며 격려했다. 규장각 서리들을 다른 서리와 구분하여 사호(司戶)라 부르고, 그들이 근무하는 건물에는 사호헌(司戶軒)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정조는 무예에도 관심이 많고 활쏘기를 즐겼다. 정조가 1792년 10월30일 창덕궁 내원(內苑)에서 활을 쏘고 고풍(古風)으로 쌀 한섬과 돈 10냥을 사호헌에 하사했다. 고풍이란 예에 따라 상관이 하관에게 돈이나 물건을 내려주는 것이다. 규장각 서리들은 이 일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당시 규장각 직각이었던 서영보에게 그 사연을 기문(記文)으로 받아 판각하여 사호헌에 걸었다. 이 현판 끝부분에 규장각 사호와 서사관(書寫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덕구, 김의현, 박윤묵, 임득명, 김낙서 등이 모두 송석원시사 동인들이다. 규장각 서리 가운데 송석원시사 동인들이 많으며, 임금이 이들의 글재주를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 사호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임금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시첩을 만들었다. 서영보의 기문을 판각하게 된 경위를 박윤묵이 쓰고, 유상우·김의현 등이 시를 지었다. 이 글들을 모은 시첩이 ‘어사고풍첩(御射古風帖)’이다. 즉 “임금께서 활을 쏘시고 고풍을 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하여 지은 글들을 모은 첩”이란 뜻이다. 송석원시사 동인들은 모일 때마다 시첩을 엮었다. 김의현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에게 그림을 부탁하여 호화스러운 ‘옥계청유첩’을 만들고, 임금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어사고풍첩’을 만들었다. 일년 사이에 인왕산과 창덕궁에서 만들어진 이 두 권의 시첩은 송석원시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이달말 퇴임 어울림누리 산파역 고양문화재단 이상만 총감독

    이달말 퇴임 어울림누리 산파역 고양문화재단 이상만 총감독

    이상만(72) 고양문화재단 총감독이 3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말 퇴임한다. 그는 고양시 원당과 화정 사이에 있는 대형문화체육공간인 어울림누리를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오는 5월 일산신도시에서 문을 여는 초대형 문화공간 아람누리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했다. 감회를 묻자 이 총감독은 어울림누리와 이웃한 아파트단지 얘기를 먼저 꺼냈다.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신원당마을은 얼마 전 주민들 스스로 어울림마을로 이름을 바꾸었고, 길 건너 달빛마을도 일부가 달빛어울림마을로 이름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울림누리가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 들었고, 어울림누리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음악평론가로 문화정책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어울림누리를 운영한 2년반 동안 질적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공연문화·전시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일관된 의욕을 갖고 추진했다.”고 돌아봤다. 부임 초기엔 지역 인사들과 의견차이도 적지 않았다. 문화공간의 이름을 짓는 일에서부터 그랬다. 그의 한글이름 짓기는 이제 성공궤도에 접어들어 고양시 주민들은 어울림누리와 아람누리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지만, 당초 이름은 덕양문화체육센터와 일산문화센터였다. 큰이름 뿐만이 아니다. 어울림누리의 대극장은 어울림극장, 소극장은 별모래극장이다. 별무리경기장, 꽃우물수영장, 실내스케이트장인 성사얼음마루도 있다. ●문화공간 한글이름 짓기 큰 반향 아람누리도 오페라 전용 한메아람극장을 비롯해 한메바람피리음악당, 새라새극장, 노루목야외극장 등으로 이름지었다. 좌석도 R석,S석,A석,B석으로 구분하는 데서 벗어나 으뜸자리, 좋은자리, 편한자리, 고른자리, 가장자리로 이름붙였다.‘이상만식 자리구분법’은 문화공간 사이에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다. 극장 운영에서도 소신은 적용됐다. 외국 공연단체에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해 줄 것을 당당히 주문했다. 베를린 심포니에도 윤이상 작품의 연주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유명 연주자에게 “서울보다 먼저 고양에서 공연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기도 했다. 연주자를 선정하거나 직원을 채용할 때는 지역색을 배격했지만,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최대한 되살리려 노력했다. 과거 은평, 서대문, 마포, 용산, 성동, 동대문, 성북, 강북, 광진구의 대부분이 고양에 속했으며, 을지로6가에 있던 고양군청이 현재의 고양시청 자리로 옮긴 것이 그리 오래지도 않은 1961년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앞장선 것도 ‘서울의 모태’인 고양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높이겠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명예로운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아람누리는 여전히 적지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 듯했다. ●어울림누리^아람누리는 고양시민 자부심 “아람누리는 극장 전체 좌석수로 예술의전당보다 불과 500석이 적고, 부지는 오히려 넓습니다. 이런 규모의 공연장을 무엇으로 채우고, 어떻게 관람객을 끌어들이느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갱이(콘텐츠)가 있으면 수요는 창출되기 마련이지요.” ●베를린 심포니에 ‘윤이상 작품´ 연주 당당히 요구 이 총감독은 세종문화회관의 예를 들었다. 그는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위원 겸 개관예술제 사무국장을 맡았던 ‘공연장 개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공연 인구는 5만명 남짓으로 추산될 뿐이어서 걱정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내용을 담아놓으니 100일 동안 열린 개관예술제엔 154회 공연에 모두 27만명의 관객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울림누리와 아람누리를 계획하고 추진한 신동영·황교선 전 시장과 강현석 현 시장을 두고 “참으로 배포가 큰 사나이들”이라면서 “이런 규모의 문화공간이 지역에 세워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아람누리가 지역 문화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지혜를 추적하는 한국 문예부흥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상업주의에 잠겨, 그의 표현대로 ‘공연물 도매상’의 역할에 그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학의 ‘레퍼토리 시어터’는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뉴헤이븐의 작은 대학 극장이지만, 미국의 극장문화를 주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람누리의 300석짜리 실험무대 새라새극장도 우리나라 연극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총감독은 퇴임한 뒤, 먼 곳에서라도 아람누리 개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일정은 비워놓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도의적으로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부터는 2009년 제주에서 열리는 델픽(Delphic·문화올림픽)의 준비 작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 유일의 델픽 국제상임위원이다. 고양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 샷] 아마골프 육성없이 프로무대 부흥없다

    도하아시안게임 개막 직전 대한골프협회(KGA) 운영위원회가 뉴서울CC에서 열렸다.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필자도 메달 가능성에 대해 캐물은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협회는 남자 개인(김경태)과 단체전 정도가 금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여자 개인·단체에 대해선 잘해야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딸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한국의 남녀 골프팀은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한국 골프 역사 100년과 아시안게임 출전 24년 만에 처음 나온 대기록이다. 더욱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여자 개인, 단체 금메달은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회가 끝난 뒤 여자 개인·단체 2관왕에 오른 유소연은 “그동안 남자 선수들에 견줘 관심이 없어서 섭섭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여자팀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일본·타이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프로 5관왕을 차지한 신지애가 지난해 12월 국가대표에서 프로로 전향, 전체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은 기량에서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들에 견줘 무서운 정신력까지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증명했다. 문제는 다음 아시안게임 성적이다. 프로 전향 연령이 점차 낮아지면서 우수한 선수들이 프로무대로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여자프로골프(LPGA)만 해도 우리처럼 어린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뛰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 프로로 전향, 그만큼 아마추어층이 얇아지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대표급 선수들이 뛰어난 성적을 내기 위해선 지금보다 선수층이 더 두터워져야 하고, 또 이를 뒷받침할 꾸준한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남녀 프로협회 또한 축구나 야구처럼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곧 프로 무대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선수 자신의 몸가짐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지나치게 상업화에 치우치는 걸 경계해야 한다. 남자 2관왕에 오른 김경태(연세대 2년)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돈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자신의 명예를 택했다. 올 시즌 굵직한 남자 프로대회 2관왕에 올랐지만 아시안게임 뒤로 프로 전향을 미뤘다. 그가 프로로 돌아섰다면 금메달 싹쓸이의 경사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골프는 지난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선수권의 선전에 이어 아시안게임 전 종목 석권이라는 튼실한 열매를 땄다. 그러나 한국 골프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추어 전력의 축적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를 뛰어넘어 더 큰 무대에서 아마추어든, 프로든 한국 골프의 위상을 떨치기 위해서도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견해 육성해야 한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아스라한 전설의 시대, 호주의 남쪽 어느 바닷가에서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 만들어져 뭍으로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다시 물가로 내려가 자맥질을 했다. 또한 새로운 먹을 것을 잡거나 다른 곳으로 건너기 위해 스스로 헤엄치는 요량을 터득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두뇌가 발달됐고 육신이 점차 단련되면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설이다. 이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흐른 근대에 이르러, 영국은 이같은 인간의 원초적 헤엄을 스포츠화시켰고 올림픽의 부흥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1970년 방콕·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조오련 선수가 연이어 2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민적인 ‘수영 붐’을 일으켰다.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윤희 선수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또 한번 불을 댕겼다. 그로부터 24년 후인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박태환. 그는 과거 조오련 선수의 주종목 자유형 200m,400m는 물론 1500m에서 당당히 3관왕을 획득,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그의 쾌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영웅 이언 소프와 비교된다. 인간 어뢰로 불리며 호주 전역을 들끓게 했던 이언 소프의 신드롬처럼 박태환 역시 차가운 겨울철에 뜨거운 ‘수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요즘 각 수영장마다 신기(神技)의 발차기와 잘 생긴 박 선수의 외모는 폭발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영원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5)씨. 일곱살 때부터 헤엄을 쳤으니 아마 조씨처럼 물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도 드물 터. 기네스북 도전과 한국인의 기개를 떨치기 위해 한강 600리 수영, 대한해협과 울릉도∼독도, 도버해협 횡단 성공 등 수많은 바닷길을 열었다. 때로는 해파리떼들과 만나 사투를 벌였고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휘어졌지만 그래도 물살을 가르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추운 날에도 옷을 벗어야 했고, 다들 살 빼려고 하는 대신 오히려 찌워야 하는 정반대의 역정이었다. 이처럼 한국 수영계의 대부로 끝없는 도전을 해온 그는 요즘 남다른 감회에 빠져 있다. 다름 아닌 도하 아시안게임의 3관왕인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하기야 30여년 만에 자신의 주종목에서 금메달을 보란 듯이 따줬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박 선수가 세번째 금메달을 따던 날 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수영의 새로운 희망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귀향해 집을 짓느라 바쁘다.”고 해 지난 13일 조씨의 고향인 해남에서 만났다. 그가 귀향해 사는 곳은 해남군 계곡면 여시골마을. 해남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산골이다. 사방 2㎞ 안에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맑은 물이 곳곳에 솟아나오는 청정지역. 때마침 비가 온 뒤여서 그의 집까지 가는 비포장도로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조씨는 흙 묻은 작업복 차림에다 농부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보시다시피 아직 집이 완성이 안돼 컨테이너 막사에 거주하고 있다. 먼길 오느라 점심도 못했을 텐데….”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데리고 가 직접 삶은 국수 한 그릇을 권한다.6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오래 살아온 솜씨여서 그런지 싱싱한 굴과 큼직큼직한 멸치가 투박하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어 맛이 그만이다.“부엌에서 인부들에게 밥이나 지어주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여전히 특유의 호방한 성격 그대로였다. 언제 귀향했느냐는 질문에 “지난 8월31일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10년 전부터 귀향하려고 땅을 사놨다.”는 즉답이 나온다. 옛날 절터 주변의 땅 2만여평을 매입했단다.“해남을 떠난 지 꼭 38년 만의 귀향이다. 서울나들이를 비로소 이제야 마치고 내려왔다.”면서 “조용한 곳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좀 보고 자서전도 준비할 생각”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전환점에 선 수영의 마라토너답게 거침없이 나오는 바리톤 음성에는 간단치 않은 삶의 철학이 배어 있었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황토집은 내년 3월에 완공된다. 집 앞마당에는 30m 레인 하나 정도 나올 만한 작은 수영장과 낚시터까지 갖춰진다고 했다. 조오련 수영캠프가 아닌 남은 인생을 스스로 조용히 돌아볼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했다.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이제 아시안게임을 제패했으니까 원을 더 크게 그려 베이징올림픽을 봐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독려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제 17세인 만큼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취월장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박태환이라는 총알이 올림픽 과녁을 정확히 맞힐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도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려했던 현역시절이 문득 생각났는지 “나는 수영 선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전국대회에서 3등 정도만 하면 공짜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68년 12월 완행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고 회고했다. 시골 형편이 대부분 그랬듯 가난한 가정의 5남5녀 중 막내로 자랐다. 수영은 일곱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다. 해남고 1학년 때 심부름하러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하계체전 예선전을 지켜봤는데 1등 기록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어 양정고 1학년에 입학했다. 청계천 부근 간판집과 창고지기로 일하면서 틈틈이 종로 2가의 YMCA 실내수영장을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그의 천부적 수영실력은 이듬해 6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수영복조차 없이 ‘사각팬티’를 입은 채 자유형 400m와 1500m에 참가, 내로라하는 장거리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마침 귀빈석에서 관람 중이던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그의 사정을 듣고 태릉선수촌에 입촌시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경기할 때마다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고3 때인 1970년 드디어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2관왕에 올랐다.4년 뒤인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올랐고 은퇴할 때까지 통산 50개의 한국신기록을 세운다. 은퇴 후에는 거친 바다에 도전한다.1980년 13시간여 만에 대한해협을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도버해협(1982년), 대한해협 재횡단(2000년) 성공,2003년 8월15일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수영으로 완주했다. 뿐만 아니라 광복 60주년을 앞둔 지난해 8월 성웅(26·회사원), 성모(22·고려대4) 두 아들과 울릉도∼독도간 93㎞를 18시간 만에 횡단하는 데 성공,‘독도가 헤엄쳐 건널 수 있는 우리 땅’임을 당당히 입증했다. 1986년에 결혼한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수영교실을 열어 집안생계를 꾸려나갔다.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던 조씨 부인은 2001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살다 보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아들 둘도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만큼 다 컸고 결국 이래저래 귀향결심을 하게 됐죠.” 그는 장시간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무아지경을 경험한다. 성철 스님이 무념무상에서 9층탑을 쌓는다고 하면 자신은 3층높이는 될 것이라는 그는 “바다수영은 조류의 흐름과 파도, 수온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억지로 떠오르려고 하면 가라앉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집이 완공되면 주변 땅에서 녹차밭을 가꾸겠다는 그는 내년에 또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예정이다. 독도 둘레가 6㎞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내년 7월 독도 둘레를 수영으로 33바퀴(3·1독립선언문의 33인 상징) 돌 예정이다. 비록 귀향했어도 굽힘없는 도전정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해남 출생 ▲71년 양정고등학교 졸업 ▲76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1년 고려대 사학과 편입졸업 ▲89년 조오련 수영교실 설립 ▲98년 대한수영연맹 이사 ●경기기록 ▲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자유형 400m,1500m 1위 ▲74년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 400m,1500m 1위,200m 2위 ▲78년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 접영 200m 3위 ▲78년 이후 수영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 ▲80년 대한해협 횡단 13시간 16분 ▲82년 도버해협 횡단 9시간35분 ▲03년 한강 600리 종주 ▲05년 을릉도∼독도 횡단 18시간 ●상훈 자랑스런 양정인(03년)외 국민훈장목련장, 체육훈장 거성장, 대한민국체육장 등 다수
  • 儒林(756)-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儒林(756)-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3) 사마천은 공자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공자는 사람을 가르칠 때에도 상대가 스스로 분발해서 배우려 하지 않으면 굳이 계발(啓發)해주지 않았고, 사우(四隅:동서남북의 네 방향) 중에서 일우(一隅)를 들어 깨우쳐 주었을 때 나머지 삼우를 깨닫고 반문해 오지 않았을 때에도 더 이상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도 수제자 안연과 애제자 자로가 죽자 곧 꺼져 버린 듯 보인다. 그리고 거듭되는 불행과 절망으로 마침내 병이 난 듯 보인다. 논어에는 공자의 병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공자께서 병이 심하게 나시자 자로가 문인으로 하여금 공자의 가신(家臣)노릇을 하게 하였다. 병이 약간 차도를 보이자 이를 알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자로가 나를 속여 왔구나. 가신이 없는데도 가신이 있는 것처럼 꾸몄지만 내가 누구를 속이겠는가. 하늘을 속이겠는가. 또한 나는 가신들 손에 장사 지내지기보다는 차라리 자네들 손에서 장사지내지고 싶다. 또 내가 비록 성대히 장사지내지 못한다고 해도 설마 길거리에서 죽게 되기야 하겠는가.” 그 무렵 공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심히 내가 노쇠하였구나. 오랫동안 나는 주공을 다시는 꿈속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탄식하기도 하고,‘봉황새도 날아오지 않고 하도(河圖)도 나타나지 않으니, 나는 끝장이로구나.’라고도 말하였던 것이다. 주공은 공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주나라초기의 예의 제도를 제정했던 어진 인물. 실질적으로 공자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것이다. 또한 봉황새는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새이며, 하도는 황하에서 용마가 지고 나타났다는 중국의 고대문물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도문(圖文)인 것이다. 그러므로 ‘봉황새도 날아오지 않고 하도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공자의 탄식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옛 문물제도도 부흥시켜 놓지도 못하고, 자신의 생애가 끝장에 이르렀음을 절망적으로 나타낸 탄식이었던 것이다. 안연과 자로가 죽은 후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는 바로 자공. 나는 스승의 묘를 6년간이나 지키면서 심었다는 벼락 맞은 나무 곁에 세워진 비석을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비석은 원래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공의 눈물로, 비석이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그런 전설 때문일까.‘자공수식해(子貢手植楷)’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자공은 비록 스승의 임종은 지키지 못하였으나 스승의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제자. 공자가 죽기 일주일 전 자공은 깊은 병에 들어있는 스승을 찾아 병문안을 한다. 이 장면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병이 들었다. 자공이 병문안을 갔더니 때마침 공자는 지팡이를 짚고서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자공을 보자 말하였다. ‘사(賜:자공)야, 어째서 이토록 늦게야 왔느냐.’”
  • ‘대조영’ 날개 달았다

    ‘대조영’ 날개 달았다

    “보다 사실적이고 풍성한 볼거리를 대조영이 보여드립니다.” 사극의 열풍을 타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KBS 1TV 대하드라마 ‘대조영’이 날개를 달았다. 다름이 아닌 지난달 29일 야외 오픈세트장인 설악씨네라마가 완성돼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당나라에서 유민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인 발해를 건국하는 것이 대조영의 하이라이트. 그래서 이번에 오픈한 대조영의 세트장인 속초 설악씨네라마가 더욱 기대된다. 당나라의 ‘황궁’ ‘취성루’ 등을 그대로 옮겨놓은 세트장에서 대조영이 큰 뜻을 품고 발해 건국을 실천에 옮기는 곳이다. 대조영의 김종선 PD는 “지금껏 당나라를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세트장이 완성돼 보다 사실적이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원도 속초시 및 고성군에 위치한 ‘대조영’ 야외 오픈세트장, 설악씨네라마는 6개월간의 공사기간과 70억원의 제작비용을 들여 건립했다. 민간기업인 한화국토개발의 지원으로 약 2만 7000여평의 부지에 고구려와 당나라 시대의 고건축물 120여동을 건립했다.18m 높이의 당나라 황궁, 중국 4대정원의 하나인 졸정원을 모델로 한 측천무후 후원, 당나라 전통주거지인 사합원, 실물크기의 광개토대왕비, 고구려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고구려 관아와 민가들, 그리고 멸망한 고구려의 부흥을 도모했던 고구려부흥 운동지 등 역사적 고증을 거친 사실적인 세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대조영’ 세트장은 단순히 드라마 촬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고구려 군사들의 무예시범과 성문파수병의 교대의식, 왕의 화려한 궁중행렬, 왕실의 궁중혼례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속초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올바른 리더가 조직의 성공을 일궈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인(CEO)의 자질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마을이나 지역의 발전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개인의 발전을 지역의 발전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한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의좋은 마을’ 이복현씨 예로부터 시골에서 양조장이나 정미소, 제재소를 갖고 있으면 ‘3대 부자’로 통했다. 그 자제들은 아쉬울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어 보였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상중리 ‘의좋은 마을’ 이복현(53)씨도 인근 광시중학교의 어엿한 교감 선생님이지만, 동네에서는 양조장집 둘째 아들로 더 잘 불린다. 이씨는 ‘있는 집안’의 거드름 피우는 아들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양조장집 둘째아들’ 별명은 ‘회장님’ 추수가 끝난 가을 밤, 형제가 서로의 빠듯한 살림을 걱정해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는 중간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일화는 1956∼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담으로 여겨졌던 이 이야기가 고려 말 실화라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대흥현 보존회’ 주도로 고증을 거쳐 밝혀졌다. 이씨는 보존회 회장이다. 그는 “형님이 일 때문에 타지로 이사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마을에 보존돼 있던 비석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마을의 역사 복원에 관심을 갖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흥현은 대흥면의 조선시대 명칭이다.1914년 대흥군이 예산군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군소재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때문에 면 단위 지역으로는 드물게 초·중·고교가 지금도 위치해 있다. 하지만 1964년 마을 앞에 예당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당저수지는 330만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농지가 물에 잠겨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씨는 “저수지가 들어선 이후 마을 규모가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 만큼 상전벽해를 실감한 곳”이라면서 “생산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을을 되살릴 길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 보존회는 매년 11월 ‘의좋은 형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마을 인근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나팔형 동기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다. 이씨는 현재 대흥동헌과 대흥향교 등을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창건된 대흥동헌은 2002년 지방문화재로 등록됐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존성 복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노력을 인정해 주셨는지, 지금은 주민 모두가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한 상황”이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하나 뿐인 아들이 ‘고향 지킴이’가 되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예산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문산·동곡마을’ 주형로씨 요즘같은 세상에 자식에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라고 권하는 부모가 있다면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문산·동곡마을 주형로(48)씨는 예외다. 아들 이름을 농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바람인 ‘하늬’로 할 만큼 농촌 사랑이 자식 사랑 못지 않다. 주씨는 “농촌이 발전하려면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 대를 이어 꿈을 일궈나가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촉망받던 배구선수에서 싹수있는 농사꾼으로 주씨는 풀무농고(현 풀무학교) 재학 당시인 1977년 문당리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오리농법을 시도했다. 지금은 문당리 일대 250만평의 농지에서 친환경 농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일반쌀 80㎏ 한가마당 16만원 정도지만, 이곳 쌀은 26만원선에 거래가 이뤄진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도 연간 2만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주씨는 모든 공을 스승인 홍순명 전 풀무농고 교장에게 넘긴다. 주씨는 “중학교 때까지 배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성장이 멈춰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 풀무농고에 진학했다.”면서 “6개국어가 가능했던 홍 전 교장 선생님이 농사와 관련된 각종 외국서적을 끊임없이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특히 주씨는 2000년에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을 세웠다. 문당리는 지금도 모든 일을 계획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계획 수립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업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홍성 환경농업마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정미소·황토방·농촌생활유물관 등을 공동 운영해 이윤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은 물론, 지역교육사업과 친환경농업 보급 등 비영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마을 공동기금만 15억원에 이른다. 주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을 단위 발전계획이 전무하다시피하고, 공동체운동이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활 나온 여대생, 문당리 총각에 빠지다 최근 10년간 문당리를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오히려 같은 기간 10여가구가 이주해 왔다. 농촌 총각들의 결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 총각들은 농활 나온 여대생들과 결혼한 커플만 지금까지 10여쌍에 이른다. 주씨는 현재 노령층과 젊은층이 공존할 수 있는 농촌형 주거공간인 ‘희망나눔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친환경농업과 자연순환을 통해 자립하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이루려면 지도자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지금은 3대가 살고 있지만, 대학생 아들이 돌아오면 4대가 함께 살 것”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홍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풀꽃이랑마을’ 외지출신 주민 3총사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나을 수 있다.’ 마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토박이만이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내기로 간주되는 이주민들이 변화를 몰고 오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고성리 풀꽃이랑마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풀꽃이랑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주민이래봐야 70가구 150명이 고작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안 밤’의 산지이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밤 이외에 소득기반도 신통한 게 없다. 국유림과 고성저수지 등에 대한 환경훼손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됐기 때문이다.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주민이 하나둘씩 늘어난 90년대 말부터다.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서명석(65)씨는 1999년 퇴직 후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최인규(63)씨와 화가인 임성복(64)씨 등도 2000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씨는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동네라, 모든 게 악조건으로 간주됐다.”면서 “하지만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장점을 살려보고자 힘을 모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우선 마을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마을 명칭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팜스테이와 산촌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주민 모두가 팜스테이 운영회원으로 가입할 만큼 원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최씨는 “시골에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가 없다는 의미”라면서 “악조건, 호조건을 논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쯤되면 직업이 장·차관?

    이쯤되면 직업이 장·차관?

    우리나라에서 차관 이상 정무직을 가장 많이 지낸 인사는 진념 전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다. 모두 8차례나 된다. 전윤철 현 감사원장 등 7명은 6회에 걸쳐 차관과 장관을 지냈거나, 지내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 등 20명은 5차례 했다.4회는 45명이나 된다. 이쯤 되면 “직업이 장·차관”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3회는 100명,2회는 279명이나 된다. 4일 중앙인사위가 보유하고 있는 ‘정부수립 이후 차관 이상 각료 임용자 현황’에 따르면,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많이 정무직에 진출한 사람은 진념씨다. 차관급과 자치단체장 경력은 횟수에서 제외했다. 외청장, 처장, 차관, 장관급, 장관 이상 등을 대상으로 분류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관운(官運)을 지닌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국내의 인력풀 자체가 제한적인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고 처신에 문제가 없으면 ‘정권과 관계없이’여러 직위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다시 쓰는’인사가 많았는데,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행되면서 더욱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전에도 회전문 인사가 적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기 위해 검증된 인사를 돌려쓰는 방식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추측이다. 진념 전 부총리는 1988년 3월 노태우 정부 출범과 함께 해운항만청장에 임명된 이후 일부 기간을 제외하곤 2002년 4월 재경부 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 정무직을 지냈다. 해운항만청장 이후 재무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동력자원부장관 등 노태우 정부 5년 내내 4개의 장·차관 자리에서 일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잠시 쉬다가 1995년 5월 노동부장관으로 다시 복귀를 해 2년 넘게 일한다. 이어 기획예산위원장(1998년), 기획예산처장관(1999년), 재정경제부장관(2000년) 등 국민의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전윤철 현 감사원장과 임창렬 전 경기지사,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 7명은 6회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전 감사원장은 참여정부의 고위직 중 정무직 경험이 가장 많다. 수산청장과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재경부장관, 감사원장 등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핵심요직을 거쳤다. 장관급 이상 고위직을 12년째 이어가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교통부장관, 농수산부장관, 내무부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를 2차례 지냈다. 서울시장도 2차례나 해 지방행정 경력까지 포함하면 모두 7차례나 된다. 역대 최고령 장관은 70세 때 정무제2장관을 맡은 조경희(여)씨다. 장관급까지 포함하면 77세 때 방송위원장을 지낸 이상희씨다. 최연소 장관은 1961년 33세 때 부흥부장관을 지낸 박기석씨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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