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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 (2)대구 북구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 (2)대구 북구

    자치단체의 행정착오 등으로 이미 납부한 세금이 다시 부과될 경우 영수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납세자들은 꼼짝없이 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구 북구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구축한 세정업무 전자시스템 덕분이다. 세정업무는 방대한 문서의 양과 데이터간 상호 연계성의 어려움 등으로 자치단체마다 전자시스템 구축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벽을 대구 북구가 깼다. 북구는 세정분야도 종이문서에서 해방되지 않고서는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2003년 7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세정업무 전자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었다. 북구가 생산하는 납세영수필 통지서 등 세정분야 종이문서는 연간 250만장에 달한다. 지방세법상 10년 보관규정에 따라 북구는 종이문서 2500만장, 사과박스 5000 상자 분량의 문서를 장기 보관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체 문서보관소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북구는 종이문서 추방을 위해 우선 세무문서의 디지털 작업에 나서 보관중인 과세자료 등 종이문서는 스캐너를 이용, 이미지화하였고 영수증은 2차원 바코드를 활용한 인식프로그램으로 모두 CD에 담았다. 사과상자 5000박스 분량의 세정 분야 보관문서를 CD 58장에 담아낸 것이다. 데이터 작업후에는 방대한 자료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1초당 6만 5000페이지 검색이 가능토록 해 웹상에서 즉시 필요한 문서를 검색 및 추출, 인쇄를 통해 업무에 활용토록 했다. 과거 과세자료 등을 찾기 위해 먼지나는 문서보관함을 뒤지는 풍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더구나 민원인도 신속하게 자신의 납세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연계한 세정업무 전자결재 시스템도 독자 개발했다. 세정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문서의 생산·관리를 기존의 공통행정업무의 전자결재시스템으로는 활용이 불가능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세 운영시스템과 상호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특히 전자결재의 완벽한 시행을 위해 취득세 및 등록세 신고자 확인을 위한 전자서명기도 도입했다. 신고서를 인쇄후 신고자의 서명을 받아 다시 이미지화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백화점 등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후 전자서명하는 시스템을 도입, 종이문서의 생산을 원천적으로 없앴다. 이같은 전자시스템 구축으로 북구는 종이문서 제작과 보관에 따른 인력을 줄이고 연간 3억 5000여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구는 납세자가 구청을 방문하지 않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세금을 언제 얼마나 납부하였는지, 미납된 세금은 얼마인지 등을 웹상에서 손쉽게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홍순익 세무과 부과2담당은 “세정분야도 종이문서로 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산화가 필수적으로 도입돼야 한다.”면서 “다른 자치단체에서 시스템 구축을 원할 경우 개발한 프로그램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이종화 대구 북구청장 “다른 지자체 요청땐 무상제공” “황무지를 개척한다는 각오로 세정업무 전산화를 과감하게 추진했습니다.”이종화(56) 대구 북구청장은 1일 “세무 민원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전산화가 반드시 필요했다.”면서 “종이문서가 사라지고 모든 업무가 전산화됨으로써 민원인에게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양질의 세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지금도 별 문제가 없는데 왜 바꾸어 일을 어렵게 만드느냐.’는 직원들의 불만과 저항이 뒤따랐다. 이 구청장은 “세정업무도 반드시 혁신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열악한 재정난에도 불구, 개발비를 우선 지원하는 등 직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냈다. 이 구청장은 “전자시스템 구축후 세정업무 효율성이 2배 이상 높아졌다.”면서 “무엇보다 세무담당 공무원들이 종이문서의 생산과 관리, 보관업무 등에서 해방돼 민원인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또 “전산화 이후 여유인력을 고질적인 업무인 체납세 분야에 재배치, 평소대비 10%정도 높은 체납세 정리효과를 거두었다.”고 덧붙였다. 이 구청장은 “시스템 개발후 자치단체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겠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프로그램을 무상제공해 아직 종이문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정업무의 혁신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임동원·신건도 도청 공범”

    “임동원·신건도 도청 공범”

    임동원·신건씨 등 김대중(DJ) 정부 시절 국정원장들이 김은성 당시 국정원 2차장과 함께 주요인사들에 대한 도청을 공모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국정원이 당시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 소속 의원들 및 각종 ‘게이트’ 관련인사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도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DJ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이 정치사찰 수준으로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어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6일 김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임씨와 신씨의 도청 공모 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금명간 이들을 소환, 도청을 묵인 또는 지시하거나 도청내용을 보고받았는지 등을 조사한 뒤 사법처리 수위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2000년 4월∼2001년 11월 국정원 2차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씨 및 신씨와 공모,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인 R2에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 국내 주요인사들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해 부하직원들에게 도청토록 한 뒤 주요 내용을 매일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청을 주도한 국정원 8국은 매일 7∼8건의 주요 도청내용을 대화체로 정리해 A4용지 절반 크기의 보고서로 작성한 뒤 밀봉해 김씨 등에게 보고했다. 김씨 재직기간 동안 무려 4000건 이상을 몰래 도청한 셈이다. 이미 알려진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권노갑 고문 퇴진’ 관련 통화내용과 ‘진승현 게이트’ 관련자들의 통화내용 등 외에 새롭게 5건의 구체적 도청 사례도 드러났다. 검찰은 국정원이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인 최규선씨 및 관련자들간 ‘금전관계, 사무실 운영관계, 여자관계’ 등 통화내용(2000년 10∼2001년 11월) ▲최씨가 누군가와 국정원장 등 고위공직자 인사에 관여하는 통화내용(2001년 4월) ▲민국당 김윤환 대표와 민주당 의원간 정책연합 관련 통화내용(〃) ▲‘황장엽씨 미국방문’ 관련 통화내용(2001년 여름) ▲자민련 원내총무 이완구 의원과 당 관계자간 ‘임동원 통일원장관 해임안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 관련 통화내용(2001년 9월) 등을 도청했다고 전했다. 김씨 등은 특히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8국 산하 R2수집팀에 추가 통신첩보를 수집하도록 독려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김치 안먹어”… 한식당 썰렁

    “김치 안먹어”… 한식당 썰렁

    24일 오후 2시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식품의약품안전청 평택수입식품검사소. 중국과 가장 가까운 물류관문인 평택항 옆에 있는 이곳은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어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전체 직원 4명 중 소장을 포함,3명이 자리를 비웠고 남은 한 명도 빗발치는 전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김치를 담당하는 직원은 이날 오전 컨테이너에 실려온 중국산 김치박스에서 추출한 표본을 들고 안전성 검사를 받으러 출장을 떠난 상태였다. ●평택항검사소 1명이 10만t 검역 평택항은 중국산 김치의 70∼80%가 통관되는 곳. 김치가 배에 실려 동항과 서항에 도착하면 바로 근처 보세창고로 보내진다. 김치가 여기에 머무는 동안 세관과 식약청의 검사가 실시된다. 총 소요기간은 3∼10일. 중국산 김치는 식약청 검사실에서 한국식품공업협회의 식품공전에 따라 고유의 향과 색·모양 및 타르색소와 보존료·대장균 유무 등 검사를 받는다. 한번 검사를 통과하면 다음에는 서류 심사만으로 간소화되기 때문에 수입업자 및 제조업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과정이다. 직원 이장균씨는 “2002년부터 김치 수입이 가파르게 증가해 현재 평택항을 통해 들어오는 하루 500∼600개의 컨테이너 중 10∼20%가량이 김치를 실은 냉동 컨테이너”라면서 특히 “하루 평균 70∼80건에 이르는 검역대상 식품 중 10∼20건이 중국산 김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평택항을 통해서만 10만t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산 김치의 위생상태를 점검하는 직원은 단 한 명뿐이다. 소장을 뺀 나머지 2명은 김치를 뺀 나머지 수입식품을 다루고 김치 담당자도 다른 수입 음식을 함께 맡고 있다. ●학교급식 안먹고 ‘도시락´ 학생 많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된 이후 첫 근무일인 이날 직장인, 학생과 학부모 등도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김치를 거부하는 직장인들이 많았고 갑작스레 학교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오는 중·고등학생들도 적잖았다. 평소 한식을 즐겨 먹는다는 박준영(28·서울 명륜동)씨는 이날 점심 때 평소 자주 찾는 설렁탕 집에서 배추김치 없이 부추김치, 깍두기, 무채만으로 밥을 먹었다. 주인에게 배추김치는 없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배추김치에는 손을 안 대 달라고 해야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 역시 꺼림칙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예 한식집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늘었다. 회사원 홍미영(27·여)씨는 “직장 동료들과 양식이 나오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면서 “앞으로 도시락을 싸오거나 아니면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생 아들은 둔 김모(40·서울 마장동)씨는 급식을 하는 중학생 아들에게 당분간 김치만은 따로 챙겨줄 생각이다. 공연한 불안감도 확산됐다. 서울 종로구 C중학교 2학년 이모(14)군은 “교내 급식 김치가 강원도에서 직접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는데도 친구들 사이에 믿을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초등학교에는 ‘우리 학교 김치는 직접 담근 안전한 국산 김치입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다. 평택 이유종·서울 김준석기자 bell@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위기의 씨름, 스모서 배우자

    |도쿄(일본) 이재훈특파원|닮은꼴 스포츠 일본의 스모와 한국의 씨름이 처한 대조적인 현주소다. 내분과 KBS의 중계 취소로 넉달 동안 국내 대회를 열지 못하며 고사 위기에 내몰려 있는 씨름이 나아갈 길을 스모를 통해 찾아본다. ●기업의 지원과 스포츠마케팅으로 위기 탈출구 찾아야 스모에도 위기는 있었다.1990년대 중반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심각한 불황이 찾아와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이때 스모협회는 기업의 지원을 호소하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용과 거래처 선물용 등으로 스모 입장권을 구입하길 적극 장려한 것. 기업은 기업대로 전통 문화를 선물하며 체면을 세우고 스모협회는 협회대로 불황을 이기는 치유책이 됐다. 스포츠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스모협회는 ‘리키시’(스모 선수)들의 초상권을 모두 확보하고 있어 수건과 과자, 도자기와 부채 등 리키시들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수익을 창출한다. 때문에 스모협회는 1927년 출범 이후 단 한번도 적자운영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재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층 관심 이끌어야 전통 문화에서 멀어져 가는 젊은 세대의 관심은 어린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식으로 이끌어냈다. 스모협회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자주 방문해 스모가 어떤 스포츠인지 직접 시범을 보이고 학교에 ‘도효’(씨름판)를 기부하거나 국기관에서 무료로 대회를 열어줘 자연스레 미래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중·장년층 관중이 대부분인 씨름과 달리 스모장을 찾는 팬층은 젊은 세대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존경받는 스모 선수, 무시당하는 씨름 선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씨름과 스모에 대한 인식의 차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 탓에 모래판을 외면하는 한국의 씨름팬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스모가 소중한 문화 유산이라는 인식과 함께 스모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도 높다. 때문에 운영비의 대부분을 국기관을 찾는 팬들의 입장권 판매 수익으로 충당,54개 팀을 직접 먹여 살리는 스모협회와 달리 씨름연맹은 TV 중계권료에 운영비의 40%가량을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씨름 관계자는 “스모 선수를 존경하는 문화를 가진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씨름 선수들은 둔하다고 지레짐작하거나 씨름은 촌스럽다며 은근히 무시되는 점 등이 씨름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라며 안타까워했다. #장면 1. 전국 54개 팀에 소속 선수 750∼800명.1만 1000명 수용 규모의 전용 경기장이 있고 1만 1300엔(약 10만 3000원)이나 하는 입장권이 평균 70% 정도 꾸준히 팔리는,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문화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요청하면 기업이 다량의 입장권 구입으로 ‘지킴이’에 앞장서는 공동 책임의식. 시간당 2000만엔(약 1억 8000만원)의 중계료를 꼬박 지불하며 전세계 안방에 경기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공영방송. #장면 2. 프로 팀 2개에 연맹 소속 선수 40여명. 전국의 지자체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떠돌아 다니며 경기를 열고 단돈 5000원 짜리 입장권도 제대로 팔리지 않는, 달아오를 줄 모르는 관심. 경기 불황을 이유로 있던 팀도 책임감없이 해체하는 기업과 연간 12억원의 중계권료를 내지 못한다며 중계를 포기한 공영방송. nomad@seoul.co.kr
  • “이공계 과잉… 인문사회+이공 ‘퓨전교육’ 검토”

    “이공계 과잉… 인문사회+이공 ‘퓨전교육’ 검토”

    과학기술 부총리 체제가 지난 18일로 출범 1주년을 맞았다. 과학부총리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1년 사이 국가별 순위가 4∼6단계나 높아졌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국민인식이 크게 떨어지는 등 해결할 과제가 적지 않다.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으로부터 ‘과학입국’을 위한 향후 과제와 비전을 들어봤다. ▶이공계 인력양성이 시급한데 대학들은 이공계 정원의 감축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인구당 대학생 수가 가장 많다. 이공계 대학생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전체 대학생 가운데 이공계 비율이 18%인데 우리는 42%다. 이공계가 중요하다고 무작정 이공계 정원을 늘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이공계 출신이 꼭 과학기술 분야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사회적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는 이공계에 경제·경영·리더십 과정을 넣어야 한다. 전공과정을 심화시키되 일부 과학과정을 교양인을 위한 인문·사회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와 이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인문·사회계에도 과학기술 과정을 넣는 이른바 ‘퓨전식 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국가적으로 과학기술을 아는 리더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영재가 발견되면 적어도 5∼6명의 전문가들이 달라붙는 ‘영재 교육팀’을 생각하고 있다. 인성교육을 포함해 영재를 국가 차원의 인재로 키울 수 있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이다. 과거 천재소년으로 불리던 김모군의 사례를 보고 있다. 일단 천재소년으로 불리는 송유근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24일 아침 송군의 부모들을 직접 만나 정부가 지원하는 문제를 상의할 생각이다. 영재교육 프로그램은 이미 만들어 놨다. 경제적 부담에 상관없이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을 시키자는 취지다. 시스템이 갖춰지면 내년부터 영재교육 수혜 대상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줄기세포 상용화를 위한 과제와 시기는. -국제적인 협력과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바이오 분야에 대한 연구를 적극 지원하려고 한다. 상용화 시점을 예견하는 것은 무리지만 흔히 말하는 10년보다는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문가들이 모여 판단하는 단계다. 민간 차원에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다른 부문의 줄기세포 연구에도 정부가 검토하겠다. ▶중국이 이미 유인 우주선 발사에 두 차례나 성공했는데 우리의 계획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 우주선을 쏜 중국이 정말 부럽다. 우리나라는 아직 유인 우주선을 발사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오는 2007년에 100% 국산 기술로, 우리 땅에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계획이다. 이것만 해도 세계에서 9번째이며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년 4월까지 선발될 한국인 우주인에 여성이 뽑힐 가능성은. -여성이 됐으면 좋겠다. 똑같은 조건에서 여성이 될 확률은 상당히 높다. 영국과 프랑스의 첫 번째 우주인은 여성이었다. 단순히 정책적인 배려보다 자격이나 능력에서 실제 여성이 유리한 측면이 많다. ▶남북간 과학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은. -통일부의 요청으로 협력방안을 만들었다. 북측과 협의를 해야겠지만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내년에 중점을 둘 사업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 가운데 연구개발(R&D) 분야는 올해 7조 7000억원보다 15% 늘어난 9조원으로 편성됐다. 이같은 증가율은 재정지원 분야 가운데 가장 높다. 특히 창조적 인재양성(132%)과 미래 성장동력사업 확충(37.4%)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짧은 시간에 ‘먹거리’ 사업을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국민소득 2만∼3만달러 시대로 가는 지름길을 찾을 것이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 개발을 비롯한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이 우선이다.5년내 새로운 주력산업을 발굴하는 것으로 10개 분야 40개 제품군에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진행중인 한국형 고속열차와 자기부상열차, 대형 위그선 등 6개 분야의 상용화도 추진하고 있다. 나노기술 등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은 10년 뒤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내년에 과학기술 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는데.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2700억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업에 우선 지원할 계획이다. 과학기술 채권 발행은 세계 최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발행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규모가 지금의 10배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채 발행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6% 수준이다. 일본은 16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70%를 갓 넘는다. 우리 국가채무 가운데 세금으로 갚아야 할 부분은 10%도 안 된다. 잘될 수 있는 사업이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투자해야 한다. 무조건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가능성 있는 분야에는 과감히 투자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 ▶LPG 버스 실용화 사업의 지원 여부는. -관계 부처(환경부 반대, 산업자원부 찬성)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하반기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로선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과학기술 관계장관 회의의 역할은. -지난해 11월 이후 10차례 개최됐다. 관계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로 과학기술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범정부적인 기구로 자리잡고 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경우 불가피하게 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때는 직접 전화해서 양해를 구할 정도다. ▶향후 과제를 꼽는다면.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국가경쟁력 및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국민소득 2만달러의 초석을 다질 필요가 있다. 지방의 기술혁신 역량강화,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 등을 통해 국토의 균형발전과 기업간 동반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20년 가까이 장관급 이상의 고위 관료로 재직중인 비결은. -자기가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으면 된다. 때문에 다른 분야는 가지 않으려 한다. 위를 쳐다보기보다 아래를 보고, 마음을 터놓고 부하 직원들과 같은 입장에서 대화해야 한다. 장관으로서 대하면 사무관들은 브리핑조차 제대로 못한다. 몸을 낮추면 좋은 아이디어가 수없이 나오게 마련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건강검진 개인신상 노출 심각

    건강검진 개인신상 노출 심각

    회사원 양모(28·여)씨는 지난 10일 평소 흠모하던 동료 남자직원으로부터 건강검진 결과를 직접 넘겨 받았다. 봉투도 없이 두 장짜리 종이로 전달된 기록지에는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양씨의 체중과 비만도, 생활습관, 과거병력 등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1급 비밀’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양씨는 이후 며칠간 밥도 먹기 싫을 정도의 깊은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다. 중견기업 Y사는 최근 경기도 부천 S병원으로부터 건강검진 결과 기록지를 뭉텅이로 넘겨 받아 총무부 직원들이 개인별로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내용을 보지 말라는 지시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관심 가는 직원들의 기록에는 눈이 가기 마련”이라고 총무부 직원은 말했다. 시중 K은행과 국책 K은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개된 상태로 건강검진 기록을 배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직원들의 항의가 빗발쳐 올해에야 비로소 밀봉된 상태로 진단서를 나눠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2년 주기로 실시하는 건강검진 결과가 상당수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개인들에 전달되고 있어 신상정보 노출은 물론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록지를 광고전단마냥 알맹이만 나눠주거나, 봉투에 넣었어도 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산업안전보건법 43조에는 ‘본인의 동의 없이 개별 근로자의 건강진단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서울 S병원 관계자는 “기업의 요청이 있으면 봉투에 넣어 보내지만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그냥 기록지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기관들이 모든 검진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밀봉을 해서 수검회사에 보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 서울 강남 M병원이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는 D전자 환경안전팀 박모씨는 “지난해까지 기록지가 서류 묶음 형태로 배달됐다.”면서 “이를 각 부서 서무 담당자에게 10∼20장씩 뭉텅이로 전달해 개인에게 나눠주는 통에 여사원들이 볼멘소리를 낼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신체에 관한 한 작은 부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직원들은 아예 건강검진을 거부하기도 한다. 입사 3년차인 회사원 이모(27·여)씨는 “감추고 싶은 몸무게나 키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놀림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난해부터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검진을 기피하면 인사고과 평정 등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건강검진을 안 받으면 질병을 얻거나 불의의 사고를 만났을 때 산업재해 판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법 제정을 위한 연석회의 박준우 간사는 “개인정보 유출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지만 아직까지도 직장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꼼꼼하게 살피는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법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등 이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종 김준석기자 bell@seoul.co.kr
  • [金총장 사표 수리] 대검차장 사퇴설에 한때 ‘술렁’

    청와대가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자 검찰은 휴일도 잊은 채 긴급회의를 여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법무부도 사표 수리 이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위간부들 ‘내부 동요 막기’잇단 회의 대검찰청에서는 16일 검사장급 이상 주요 간부와 과장급까지 출근, 혼란 수습 등 대책을 논의했다. 오후에는 정상명 대검 차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가졌다. 앞서 김 전 총장은 정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시기에 검찰 조직원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모든 짐을 후배와 부하들에게 넘겨버린 결과가 된 것 같아 미안한 심정”이라면서 “다만 검찰의 지휘를 맡은 사람으로서 불기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추호의 흔들림없이 차분히 업무를 수행해 주길 간곡히 바라고 일선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차장은 김 전 총장의 당부를 문서로 일선에 전파하는 한편, 회의에서도 “총장 사퇴의 뜻이 조금이라도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검찰조직 안정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평검사들의 물밑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서울지검 평검사회 관계자는 “총장 사퇴의 의미와 간부들의 의중 파악이 끝나는 17일쯤 평검사회 개최 여부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선 검사들의 ‘검란(檢亂)’ 가능성은 이번 주초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대검은 전날에도 박 중수부장이 긴급회의를 소집,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 전 총장의 사표 수리를 전제로 한 대응책을 집중 논의했다.●법무부 후속 대책 논의 중 법무부는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한 뒤에도 별도의 회의를 열지 않는 등 겉으로는 차분한 분위기를 보였다. 천 장관은 주말인 15일 개인 일정까지 취소하고 출근, 법무부 간부 10여명과 함께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천 장관은 1시간 정도 총장 사표 수리 때 후속대책 등 참모들의 의견을 들었다.천 장관은 회의를 마치고 “사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짧게 답한 뒤 청사를 떠났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삼성, 美서 벌금 3000억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김경두기자|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반도체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3억달러(약 3000억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미국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한 벌금으로는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미 법무부의 토머스 바닛 반독점국장은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가 하이닉스, 인피니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가격을 담합했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벌금으로 3억달러를 납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 미국 현지법인은 1999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다른 반도체 회사들과 D램 칩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지난 3년 동안 미 당국의 수사를 받아왔다. 미 법무부와 삼성전자가 합의한 3억달러 벌금은 미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의 승인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미 법무부는 또 이번 합의가 이 사건과 관련된 삼성전자 직원 7명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기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 당국은 처벌 대상인 7명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형사범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삼성은 하이닉스, 독일의 인피니온, 미국의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과 전화, 이메일, 관계자 면담 등을 통해 메모리 칩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아왔다. 알베르토 곤살레스 미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 합의와 관련,“가격 담합은 자유시장체제를 위협하고 혁신을 저해하며,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경쟁 가격의 이득을 앗아간다.”고 밝혔다. 미국내 반도체 회사들의 가격 담합행위와 관련, 하이닉스는 올해 초 1억 850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으며, 독일 인피니온은 지난해 9월 1억 600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바 있다.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법인(SSI)이 지난해 4·4분기에 1억달러의 충당금을 쌓은 데 이어 올 3·4분기에 추가로 2억달러를 충당했다고 전했다. 추가 충당금 2억달러 부분은 3·4분기 실적에서 지분법 평가손에 따른 영업외 비용으로 반영됐다.dawn@seoul.co.kr
  • 아침드라마가 상쾌해진다

    아침드라마가 상쾌해진다

    ‘아침 드라마가 달라졌어요∼!’ 언제부터인지 아침 드라마는 눈 뜨고 지켜보지 못할 정도의 불륜이나, 엽기적인 고부 갈등, 비정상적인 삼각·사각관계 등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됐다. 자극적인 소재가 아침 드라마의 주시청층인 가정주부들의 눈길을 잡아둘 수 있는 코드라는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잘나왔던 것도 사실. 그런 경향이 짙어지다 보니 시청자들의 아침을 오히려 불쾌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숱하게 받았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살펴보면 그러한 오명을 이제 벗어버려도 될 분위기다. 8월 초부터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시대극 ‘자매바다’는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자매가 각자의 방식으로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초반 아역들의 빼어난 연기로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한 데 이어 지난달 말부터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하며 잔잔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8월 말 TV에 등장한 KBS1 ‘고향역’도 역시 시대극.1960년대 경기도 안성역을 배경으로 시골우체국 여직원이 역경을 딛고 양조장 사업으로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따뜻한 가족애와 함께 버무리며 수채화처럼 담아가고 있다. 지난 10일 첫선을 보인 SBS ‘들꽃’은 부모 대신 동생 3명을 돌보며 일곱 살짜리 이복동생까지 떠맡게 되지만 억척스럽게 세파에 맞서는 30대 여성의 성공 스토리다. 제목처럼 정말 시청하기가 위험했던 ‘위험한 사랑’의 후속인 KBS2 ‘걱정하지마’까지 31일 시작하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소재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걱정하지마’는 18세 연상의 엄마 동창과 결혼하는 스무살 신부의 이야기와, 연하 총각과 사랑에 빠지는 서른아홉 엄마의 이야기를 밝고 건강하게, 코믹 터치로 그려나갈 계획이다. 여성의 성공 스토리라는 점에서 공통된 맥락을 갖고 있고, 이들 모두 이전 아침 드라마와는 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다. 대부분 가족을 강조하고 따뜻한 감성을 보듬는다고 말한다. 방송사 관계자는 “아침 시간대에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점차 방송가에서 사라지고 있다.”면서 “깊이 있고, 따뜻한 드라마가 보는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물론 삼각관계나 불륜 등의 설정이 완전하게 빠져버린 것은 아니다.‘자매바다’는 한 남자가 주인공 자매 사이에서 갈등한다.‘고향역’의 여주인공은 여전히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고, 한 남자를 두고 다른 여성과 삼각관계를 이룬다.‘들꽃’의 여주인공은 기억을 잃어버린 재벌 유부남과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다. 지난해까지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6년 동안 역임했고, 현재 ‘자매바다’를 집필하고 있는 이희우(66) 작가는 “불륜,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등은 드라마 전개를 극적으로 만드는 고전적인 설정으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그것을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왕도로 여기고 남발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또 “요즘 아침 드라마가 불륜 등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좋은 현상”이라면서 “방송사,PD, 작가 모두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도록,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6급승진 경력상위자 전원탈락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360도 다면평가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6급 승진인사 결과 경력 상위자가 모두 탈락하는 등 이변이 속출했다.360도 다면평가제는 자신의 직급과 상·하위 직급 대부분이 참여하는 평가 방식이다.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실시한 6급 승진인사 결과 승진 대상 19명 가운데 승진후보자 순위 상위 5명이 전원 탈락한 반면,30세 후보자가 1등으로 승진하는 등 경력 파괴 현상이 두드러졌다. 예전에는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려면 최소 7∼8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번 인사 결과 3년여만에 승진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특히 지방교육혁신과 고인범(30) 교육행정주사는 3년 8개월만에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했다.5급 사무관 승진의 기본 요건이 6급 재직 4년인 점을 감안하면 30대 중반의 비고시 출신 사무관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평가 결과를 보면 자질평가(20%)와 승진적격자 추천평가(20%) 등 다면평가에서 큰 점수 차이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60% 비중을 차지하는 직무평가 결과는 비슷했다. 단, 혁신평가 결과 하위 20%는 무조건 탈락시켰다. 김영준 혁신인사기획관은 “승진자와 탈락자의 점수가 1300점 만점에서 100점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분명하게 갈렸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는 본부의 6급 50명과 7급 10명 등 60명이 참여했으며, 지역과 실·국간 인원을 골고루 안배했다. 평가 결과는 개인에게 통보해 자기계발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 김 기획관은 “지금까지는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승진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조직문화가 생사기로에 서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승진할 수 있어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이 명실상부하게 함께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14일 실시하는 3급 승진인사 평가와 다음주에 실시할 예정인 5급 승진인사 평가에서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 개발 중인 수시 다면평가 시스템이 내년부터 도입되면 분기별로 한 차례씩 다면평가를 거쳐 이를 누적해 인사에 반영할 계획이다.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5·6급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성과협약제를 도입하고 14일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교육청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급 직원은 개인별 업무 아이디어와 일정 등 직무성과목표를 과(팀)장에게 내고,6개월 단위로 평가를 받게 된다.김재천 이효용기자 patrick@seoul.co.kr
  • [千법무 지휘권 발동 파문] 장고하는 김총장

    헌정 사상 초유의 법무장관 지휘권 발동 사태의 전개와 관련,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4가지로 압축된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수용 또는 거부와 사퇴 또는 현직유지를 조합한 4가지 시나리오 중 택일해야 한다. 우선 수용과 함께 사퇴하는 방안. 김 총장이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를 수용한다면 조직 내부의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결정한 구속수사 방침을 승인했던 김 총장이기에 지휘 수용은 조직원들에게 ‘굴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실제 13일 오전 일부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총장이 (지휘를)받아들인다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두번째로는 수용하지만 현직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참모진들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하다. 천 장관이 법에 규정된 지휘권을 발동했고, 특별히 위법하지도 않아 거부할 명분이 없는데다 이번 사건이 검찰총장직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방안은 ‘내부 반발 무마’라는 부담을 김 총장이 떠안아야 한다는 게 고민이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거부와 함께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지휘권자인 법무장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검찰 내부 인사들로부터 격려받을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검찰개혁이라는 역풍을 조직에 안겨줄 수도 있다. 마지막은 지휘를 거부하면서 현직을 지키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항명’하고도 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시나리오든 선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천 장관 지휘를 수용하든 안하든 김 총장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김 총장이 장고 끝에 어떤 수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행자부 전화친절도 조사“신선하다” vs“지나치다”

    행정자치부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전화 친절도를 조사해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한 뒤 개별통보, 공직사회에 잔잔한 파장이 일고 있다.‘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한 취지로 비쳐져 외부에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부에선 “지나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1등과 꼴찌 점수차 55.5점 행자부 고객만족행정팀은 최근 1205명 전 직원에게 이메일로 전화친절도 결과를 통보했다. 팀과 팀원별로 업무를 면밀히 분석한 뒤 지난 5∼8월까지 4개월간 민원인을 가장한 10명의 조사원들이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 전화를 빨리 받는지 여부와 사안의 설명 태도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물론 조사를 한다는 사실은 공지됐지만, 언제·어떤 식으로 조사가 이뤄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평가결과는 개인별·팀별로 통지됐다. 한 관계자는 “개인에게는 개인별 성적을 알렸고, 팀장에게는 팀원의 성적을 전달했다.”면서 “평가결과는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해 개인별·팀별 성과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행자부 전체의 평균 점수는 86.39점. 하지만 1등과 꼴찌의 점수차는 컸다.1등(8명)의 점수는 가점을 포함해 104점이나 됐지만, 꼴찌 점수는 48.5점으로 무려 55.5점의 차이가 났다. 100점(가점 포함) 이상 받은 직원은 조사대상의 6.7%인 81명이었다. 하지만 평균 미만도 전체의 46.2%인 562명이나 됐고,80점이 안 되는 직원도 19.0%인 229명에 달했다. 오영교 장관은 “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80점에도 못미치는 직원은 기본적으로 자세가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점수가 낮은 팀과 팀원들에게는 재측정과 별도교육을 지시했다. 아울러 일회성 행사가 아닌 연중 측정을 해 점수를 평균 92점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안팎에서 엇갈린 반응 이에 대해 최근 행자부에 전화로 민원을 처리했던 A씨는 “얼마 전 전화할 때 여직원이 너무 친절한 것을 보고 행자부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었다.”면서 “내부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행자부 내부에선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직원 B씨는 “평가를 하면서 친절하게 전화를 받으려는 분위기가 많아졌지만, 각 팀의 업무 과부하가 다르고, 영역도 다른데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평가를 해 공개를 하다 보니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평소 직원과 민원인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측정방식의 문제점도 거론했다. 또다른 직원 C씨는 “친절도 좋지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평가를 해 서열화하는 것은 지나치고 유치하다는 냉소주의가 많다.”면서 “평가방식을 좀 개선했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검찰, 3차례 처벌 경고

    검찰, 3차례 처벌 경고

    국가정보원 불법감청에 깊숙이 연루된 김은성(60·구속)씨가 국정원 2차장으로 재직하던 2000∼2001년 당시 검찰 고위간부가 김씨에게 3차례에 걸쳐 불법감청 행위를 강력히 경고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이는 검찰이 이미 5년 전부터 국정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당시는 검찰이 ‘진승현 게이트’ 등 이른바 권력형 비리 사건의 수사에 매진하고, 김씨는 부하직원 등을 통해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던 때이다. 당시 검찰 고위간부 A(현 변호사)씨는 “국정원이 검찰 간부들에 대해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 등으로 무차별 도청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와 김은성 차장에게 3차례나 공개적으로 경고했다.”면서 “나중에는 김 차장에게 ‘자꾸 그러면 진짜 법대로 처리하겠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A씨는 또 “나를 포함해 당시 검찰 간부들은 모두 전화를 사용하는데 긴장했고, 일상적인 대화도 도청되는 것 같아 언제나 FM라디오 등을 크게 틀어 놓고 회의 등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당시 ‘진승현 게이트’를 수사하던 서울지검 주변에 검은색 도청 차량이 여러차례 목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수사팀에는 휴대전화 사용금지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8일 발부된 김씨 구속영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국정원이 2000년 11∼12월 8국내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수집팀 사무실에서 R2를 이용해 진승현씨의 회사 인수 및 불법대출 관련 통화 내용을 감청했으며, 이를 김씨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는 이미 진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때여서 검찰은 국정원이 검찰 간부들간의 통화를 도청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검찰이 이미 국정원의 불법감청 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국정원의 무차별적 도청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총장이 새로 취임하면 대검 관련 부서에서 자택에 도청방지시스템을 설치해 주고, 퇴임하면 떼내왔다.”면서 “지금도 이런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8일 김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김씨는 국정원 8국 내 R2수집팀이 2000년 12월 민주당 소장파 정치인들의 권노갑 당시 최고위원 퇴진 관련 통화내용을 감청한 통신첩보 보고서를 전달받는 등 2000년 10월∼2001년 11월 R2와 CAS를 이용해 대규모·조직적으로 자행된 불법감청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불법감청에) 정치적 목적은 없었고, 관행에 따랐을 뿐”이라면서 “운영지침을 만들어 남용을 방지하고 나름대로 불법감청을 억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지휘라인을 통해 일일보고 형태로 ‘통신첩보’라는 명칭의 보고서를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 보고서가 그대로, 또는 재가공돼 ‘윗선’이나 유력 정치인들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르면 이번주 중 임동원, 신건씨 등 김씨 재직 당시 국정원장들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 박홍환 김효섭기자 stinger@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설] DJ정부 국정원장들 입 열 차례다

    김대중(DJ)정부에서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씨가 구속되면서 드러난 도청 실태는 충격적이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 내용과 김 전차장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도청은 국정원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그 대상은 여당 국회의원을 포함해 가히 전방위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김 전차장이 도청 행위를 전임자에게서 이어받았으며 본인이 없애자고 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루어 DJ정부 아래서도 국정원 도청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8월 DJ정부에서 도청이 있었다는 김승규 국정원장의 고백이 나오자 관련 당사자들은 혐의를 거세게 부인했으며 국정원장 출신들은 김 국정원장을 방문해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 실무자들이 검찰 수사에서 범행을 자백한 뒤 수사가 급진전돼 김은성 전차장에 대한 구속으로까지 이어졌고, 김 전차장은 현재 도청 행위는 자신이 단독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윗선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을 성역 없이 수사해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할 것을 다시 한번 검찰에 촉구한다. 검찰은 김 전차장 재직시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신건씨를 주중에 소환, 조사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로써 끝낼 일이 아니다. 두 사람 외에 이종찬·천용택씨 등 DJ정부의 여타 국정원장 출신도 조사해야 하며, 김 전차장에게서 도청 결과를 보고 받은 혐의가 있는 `실세 정치인´ 들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임동원·신건씨 두 사람이 이제는 입을 열기를 권한다. 그들이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의 부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청 사실을 인정하는데도 당사자들만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은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실을 시인하고 책임을 달게 지는 모습이야말로 한때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운영한 사람이 국민 앞에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는다.
  • 한정갑 경찰학교장 사표

    충북지방경찰청은 6일 밤 한정갑 경찰종합학교장(치안감)을 청주 동부경찰서로 소환,8시간여 동안 조사를 벌여 청주 서부경찰서 직원의 승진인사에 개입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한 치안감은 2003년 10월 충북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할 당시 부하직원의 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된 전 청주서부경찰서장 김남원(50)씨에게 이 경찰서 경감 승진후보 중 K경위의 승진 추천순위를 앞당겨 달라고 전화 등을 한 혐의다. 김씨는 한 치안감의 요구를 받고 K경위의 승진 추천순위를 7위에서 1위로 고쳐 승진심사위원회에 제출,K씨는 2004년 1월 경감으로 승진했다. 경찰은 한 치안감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으나 혐의 사실을 부인하자 김씨와의 대질신문 등을 거쳐 K씨 승진심사와 관련된 전화를 한 사실 등에 대한 시인을 받아냈다. 한편 한 치안감은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사압력 한정갑 치안감 소환 방침

    충북경찰청은 한정갑(50·치안감) 경찰종합학교 교장이 충북청장으로 재직할 때 일선 서장에게 인사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잡고 소환 조사를 하기로 했다.6일 충북경찰청에 따르면 부하직원으로부터 거액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된 전 청주 서부경찰서장 김남원(50)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2003년 10월 충북청장으로 있던 한 교장이 서부경찰서 경감 승진후보자 가운데 K 경위의 승진 추천 순위를 앞당겨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한 청장의 전화를 받고 K 경위의 추천순위를 7위에서 1위로 고쳐 승진심사위원회에 제출했고,K 경위는 지난해 1월 경감으로 승진했다. 김씨는 서부서장으로 재직중이던 2003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29명의 부하직원 등으로부터 11억 7000여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지난달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김씨가 빌린 돈을 포함, 모두 54억원을 카지노에서 날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에게 돈을 꿔준 경찰관 가운데 5명이 승진한 점으로 미뤄 인사 관련 대가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국정원前차장 김은성씨 “국정원장 지시받아 도청”

    국정원前차장 김은성씨 “국정원장 지시받아 도청”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6일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을 지낸 김은성(60)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검찰은 이르면 7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김씨가 도청사실 등을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동원(71)·신건(64)씨에게 보고했는지를 집중 조사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아 도청을 했고 도청내용도 수시로 보고했다.”면서 “도청은 당시 8국이던 과학보안국에서 정·재계 권력 실세들을 총망라해 이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조사가 끝난 뒤 임씨 등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김씨가 당시 정권 실세 등에게 도청내용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차장으로 재임했던 2000년 4월∼2001년 11월 정치인 등에 대한 도청을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보고받는 등 조직적으로 도청에 관여했다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 김씨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기기(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기기 등 감청기기를 이용한 도청을 지시하고 도청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 전·현직 국·과장급 간부와 실무직원 등에 대한 조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의 철암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김용태(23)선생은 요즘 학교의 먼 변소에 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동교 6년생이던 홍순식(洪淳植)(74)노인이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국어공부 제일 좋아 손자 복습시키고, 산수공부에는 끙끙 앓아 만학(晩學)이라는 말이 숫제 미안해진다. 68세로 국민하교 1학년에 입학을 해서 6년간을 개근하고 졸업을 했으니 말이다. 한국 교육사상 가장 나이 많은 국교졸업생이 홍노인이다. 바로 주요광산지대로 알려져 있는 머리보다 육체노동이 판을 치는 고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홍노인은 2월 10일 제24회 졸업식에서 손자 성덕(13)군과 함께 정든 교실을 떠났다. 제3312호의 졸업장과 6년 개근상과 그리고 군 교육장의 공로표창장과 상품을 한아름 안고 눈길을 걸어 나오는 노인의 얼굴엔 착잡한 감정이 어리고 있었다. 이날 꼬마졸업생 334명에 끼여 홍노인은 남자자리 앞 셋째줄 의자에 손자와 나란히 앉아 귀빈과 학부형들의 눈을 모았다. 재학생 대표 이정아양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답사가 낭독될 때 노인은 두툼한 돋보기 안경을 벗고 노란 손수건을 온통 주름투성이인 얼굴에 연상 갖다 대며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에 눈물을 적시었다. 「70줄을 넘어선 놈」이 손자뻘 되는 꼬마들과 6년간 학교에 다니는 사이에는 홍노인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 손자가 입학한 68년 3월 7일 병에 앓아 누운 애를 업어 갔고 8일 동안을 내처 그렇게 했다. 이때였다. 못 배운 한을 풀자는 소원이 솟구쳐 손자 보호 겸 자기 공부를 위한 입학수속을 취했다. 1, 2학년 때는 학교서 배운 ㄱ, ㄴ, ㄷ이나「참새 한 마리」같은 것이 재미가 있어 집에 돌아와서는 꼬마놈에게 복습을 시키는 등 열심이었다. 그것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사과 반쪽을 칠판에 그려놓고 1/2 혹은 1/3 하는 산수공부가 시작되자 어찌나 어려운지 집에 가서도 손자 앞에 큰 소리 한번 못치고 끙끙 앓아야 하기도 했다. 등교길에 손자와 간판 읽기 경쟁, 학교선 청소하고 불피워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노인이 손자를 앞세우고 집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짓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노인은 즐거웠다. 학교에 가는 길가에 광부모집광고나 영화선전「포스터」가 나붙어 있으면 으레 손자와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고 판가름을 담임선생에게 부탁했다. 노인은 이 내기에서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신이 났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을 청소하고 난로불을 피워놓고 담임선생을 교무실에 가서 모셔왔다. 공부가 끝나면 손자 또래를 모두 집으로 보내고 교실 복도 유리창 변소청소를 도맡았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됐다. 6년 동안 한 책상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공부한 손자 성덕군에게도 여러가지 감상이 없을 리 없다. 성덕군은 졸업생 중의 가장 친한「클라스·메이트」나 길동무로는 할아버지 한 사람밖에 가지지 않는다. 『4학년 때부터는 할아버지가 내 책가방을 들고 가면 창피해서 할아버지 것도 내가 들고 다녔어요. 공부시간에는 할아버지한테서 담배냄새가 자꾸 나서 참는데 혼나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도 구수해졌어요』라고 말한다. - 할아버지는 어떤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니? 『참 우스워요. 할아버진 집에서 국어공부만 자꾸 하자고 조르거든요. 과학 산수 미술 음악 공부는 전혀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시험 때는 내가 할아버지를 도로 가르치느라고 혼이 나기도 했죠』 공부시간에 가끔 담배생각 나는지, 라이터 뚜껑을 잘칵잘칵 - 공부시간에 할아버지가 장난도 쳤니? 『그럼요, 이따금 뚜껑이 떨어져 나간「라이터」를 꺼내 가지고 잘칵잘칵 켜보곤 해요. 담배생각이 나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어요』 체육시간에 손자 또래들이 공차기 시합을 하면 홍노인은 옆에서 지켜 서있는다. 그러다가 애들이 넘어지면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준다. 이 때문에 시합이 잠깐 중단되곤 한다. 노소(老少)가 동락하는 6년이었다. 6학년 담임 김용태 교사는 노인을 깍듯이 모셨다. 맨 처음 담임을 맡아 교실에 쓱 들어섰을 때가 제일 거북했다. 출석부를 부르는데 할아버지뻘 되는 홍노인의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익힌 수법은 눈으로 슬그머니 노인의 모습을 확인하면 그대로 출석란에 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은 출석점호 이름 못부르고 담배도 노인 안보는 곳서 그래서 홍노인은 6년 동안 한 번도 출석부로 호명받지 않으면서도 개근상을 타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민학교생도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담임선생이 거북했던 것은 담배 피우는 장소. 꽤 먼 변소에 가서 피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학급운영, 아이들 싸움, 시설물 유지 같은 까다로운 일은 담임이 나서지 않아도 홍노인이 도맡아 처리했다. 더욱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통에 덕을 본 사람이 김선생이다. 이 학교에 있는 6학년 6개반 중 김선생의 반이 제일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유는 노인이 열심히 공부하는 통에 꼬마들도 덩달아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김교사는『노인이 우리반에 계셨기 때문에 교과서대로의 공부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가 인생을 배운 것은 가르친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노인은 잘못하면 졸업장을 못탈 뻔도 했다. 교직원 중에서 주자는 파는 김준한 교장 단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45명은 반대파였다. 1주일 동안이나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교직원들은 의무교육법상 칠순 노인에게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유권적 해석(?)을 내세웠고 김교장은 배움에 무슨 나이냐고 주장, 끝내 교장의 교육관이 이겨 졸업대장명부에 3312번으로 등록되고 졸업장이 나갔다. 학교에서 3km나 떨어진 곳에서 매일 등교할 때면 3곳의 철도 건널목을 지켜 꼬마들의 안전통학을 보장한 임시교통순경도 홍노인이었다고. 학교의 시설보수, 학풍조성, 문제아동선도 등에 나서 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홍노인이었다. 소원을 푼 노인은 글을 익힌 눈으로 죽을 때까지「소설책」을 많이 읽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날 졸업식을 끝낸 노인은 교문까지 따라 나온 담임선생과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손자 같은 교사에게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는『선생님 감사합니다』였다. <삼척 = 송병훈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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