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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충남도 종합청렴도 1등급

    각 지역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공공기관 청렴지도’가 나왔다.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남과 충남도가 종합청렴도 1등급이었고 서울과 경북도는 가장 낮은 5등급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8일 중앙부처, 광역지자체, 기초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국·공립대, 공공의료기관 등 공공기관을 총망라해 지도 형태로 만든 공공기관 청렴지도를 홈페이지(www.acrc.go.kr)에 공개했다.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는 지난해 기준 자료이며 1~5등급까지 색상으로 구분했다. 특정 지역을 클릭하면 종합청렴도, 외부청렴도, 내부청렴도, 정책고객평가 등 4가지 분야에서 청렴도 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 광역지자체 중에서 종합청렴도 1등급은 경남도와 충남도로 조사됐다. 반면 서울시와 경북도는 종합청렴도 5등급으로 나왔다. 기초지자체 중에는 경기 부천·광명·안성시, 대전 서구, 충북 보은·옥천군, 경북 경산시, 경남 창녕군·창원시 등이 1등급으로 표시됐다. 서울지역 중앙부처 중에서는 1등급이 1곳도 없었다. 금융위원회, 통일부, 행정안전부가 2등급으로 등급이 가장 높았다. 대전과 세종시에서는 산림청, 통계청, 인사혁신처 등 3개 기관이 1등급을 받은 것으로 분류됐다. 시·도 교육청은 제주, 경남, 경북, 대구, 강원, 세종 등 6곳이 최고 등급인 2등급이었다. 권익위는 앞으로도 매년 공공기관의 청렴도 등급을 반영해 청렴지도를 제작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이다. 또 전년 대비 청렴도가 향상된 기관과 측정영역별 우수기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청렴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임윤주 부패방지국장은 “생활 속에서 청렴 문화가 정착되고 공공기관의 반부패 활동 강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특별한 동행] 사람 싸움에 죽어가는 개들

    [특별한 동행] 사람 싸움에 죽어가는 개들

    “영업보상대상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는데도 계속해서 생활대책용지를 요구해요.” “적절한 보상만 해주면 언제든지 떠날 겁니다.” 식용개를 키우는 농장주들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립 속에 개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LH공사부지에 있는 개 농장을 찾았다. 3000평 규모다. 100여 개의 뜬장 안은 악취와 오물로 가득했다. 좁은 뜬장 안에 갇힌 개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갓 태어난 새끼들도 보였다. 일부는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고, 이미 죽은 새끼도 여러 마리가 눈에 띄었다. 사체 중 일부는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라며 “이미 죽은 개도 있고 며칠 후면 죽어나가는 동물들이 생길 것 같다. 그럼에도 현장은 지금 새로운 동물들을 채워 넣는 상황”이라며 구조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대체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진 걸까. LH관계자는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던 상인들이 하남시 공사 부지를 무단으로 점거했다”고 밝혔다. ‘생활대책용지’를 받을 목적으로 상인들이 3000여 평을 무단 점거했다는 것이다. 이어 “생활대책용지를 보상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보상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며 불법 점유를 한 상황이다. 개를 키우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생활대책용지를 받기 위한 것”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랫동안 개농장을 운영했다는 배영남(59)씨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개를 사육해 왔다. 무단점유는 절대 아니다. 적절한 보상만 이뤄진다면 언제든지 비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처참한 농장 환경에 대해 묻자 그는 “올 3월부터 길이 막혀 개를 사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총 1500~2000마리 정도 되는 개가 있는데, 밥 주는 데만도 6시간이 걸린다. 진입로가 막혀 잔반을 옮기기가 힘들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박소연 대표는 “하남시에 긴급격리조치를 발동하도록 요구할 것”이라며 “(빨리) 동물들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2일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 또는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는 행위로 인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동물을 압수하거나 몰수할 방안은 없다. 박 대표는 “학대자로부터 동물들을 압수할 수 있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동물도 생명체라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할 것 같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곽재순 ssoon@seoul.co.kr▷ ‘특별한 동행’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는 인터뷰 형식의 짧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하면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위험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사연과 현재 모습을 통해 개선되어야 할 점들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 아들·며느리 보육교사 등록…1억원 빼돌린 간 큰 어린이집 대표

    아들과 며느리를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하고 보육교사 근무시간을 부풀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 보조금 1억 1000만원을 빼돌린 어린이집 대표와 원장이 적발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신고를 접수하고 감독·수사기관에 이첩한 결과 서울 소재 어린이집 대표 A씨와 원장 B씨가 기소되고 1억 1000만원은 환수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B씨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해 급여를 지급하고 보육교사들의 근무 시간을 부풀려 보조금을 타낸 뒤 이를 다시 보육교사들로부터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보조금을 빼돌렸다. 원장 B씨도 딸을 어린이집 원생으로 정식 등록하지 않은 채 1년여간 무상으로 방과후교실에서 보육을 받게 했다. 김재수 신고심사심의관은 “보육교사를 허위로 등록하면 실제 근무하는 보육교사가 이들의 업무까지 떠맡아야 해 원아들의 돌봄이 소홀해진다”며 “보조금 부정수급으로 어린이집이 폐쇄되면 기존 교사와 원아들은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하는 피해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편 권익위 복지보조금부정신고센터는 2013년 10월부터 복지시설 보조금 등을 포함해 각종 복지·보조금 부정수급을 신고받고 있다. 신고센터는 올해 5월까지 보건복지 분야에서 1843건의 신고를 접수해 이 가운데 524건을 감독·수사기관에 이첩·송부하고 492억원의 부정수급을 적발했다. 신고자는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신분과 비밀이 보장되고 별도 심의를 거쳐 최대 30억원의 보상금과 최대 2억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아빠친구’ 차 안 흉기서 강진여고생 DNA

    용의자車 트렁크 내 낫에서 검출 1차 부검 외상 없어 ‘사인 불명’ 시신 신원 확인… 정밀감정 예정 휴대전화·유류품 수색도 계속 전남 강진에서 발견된 시신이 실종 여고생으로 판명됐다. 강진경찰서는 25일 강진군 도암면 지석마을 뒤편 매봉산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을 위해 광주국립과학연구원(이하 광주국과원)에서 유전자 감정을 한 결과 실종된 A(16·고1)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정 증거물 중 용의자인 아버지 친구 김모(51)씨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낫(날과 손잡이 사이 자루 부분)에서 A양 유전자도 검출됐다. 광주국과원은 앞서 이날 오전 A양을 부검한 결과 ‘시신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단할 수 없다’는 1차 부검 소견을 받아 앞으로 정밀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힐 예정이다. 부검 결과 골절 등 뚜렷한 외상을 찾지 못해 사인을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오후 2시 53분쯤 강진군 지석마을 뒤편 매봉산에서 발견된 시신은 얼굴과 정확한 키를 눈으로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운 여름 날씨이다 보니 신체 대부분이 심하게 상한 상태였다. 가족들도 육안으로 확신하지 못했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부패에 따른 현상인지, 누군가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인근에서도 머리카락과 A양이 입었던 옷 등은 아직 찾지 못했다. 전남경찰청은 이에 앞서 A양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김씨가 지난 16일 오후 5시 35분쯤 강진읍 집으로 돌아온 뒤 휘발유를 부어 태운 옷가지에 대해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양 시신에서는 왼손 부근의 립글로스 한 점 외 다른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165명을 동원해 시신 발견 지점 주변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등 유류품 수색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오르막 경사가 70~80도에 달할 정도로 지형이 험준해 용의자이자 A양 아버지 친구인 김씨가 A양을 속이거나 위협해 산 위까지 데려갔을 가능성과 살해 뒤 시신 운반 과정에서 공범이 있었는지도 함께 수사하고 있다. A양은 지난 16일 오후 1시 59분 친구에게 “아빠 친구를 만나 해남으로 알바를 간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됐고, 실종 8일 만인 지난 24일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고 했던 김씨는 A양 어머니가 실종 당일 오후 11시 8분쯤 자신을 찾아오자 뒷문을 통해 달아났다가 다음날 오전 6시 17분쯤 집 인근 철도 공사 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외상 없는 강진여고생 추정 시신 ‘사인불명’

    외상 없는 강진여고생 추정 시신 ‘사인불명’

    잘린 머리카락·옷가지도 추적 휴대전화·유류품 행방도 수색 아빠친구 외 공범 가능성 여전경찰은 25일 강진 실종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부검했지만 ‘사인 불명’으로 나와 정밀 감정을 할 예정이다. 전남 강진경찰서는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장성분원에서 A양(16·고1)으로 보이는 시신의 1차 부검 결과 골절 등 뚜렷한 외상을 찾지 못해 사인을 판단할 수 없다는 소견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오후 2시 53분쯤 강진군 도암면 지석마을 뒤편 매봉산에서 발견된 시신은 얼굴과 정확한 키를 눈으로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운 여름 날씨이다 보니 신체 대부분이 심하게 상한 상태였다. 가족들도 육안으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부패에 따른 현상인지, 누군가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인근에서도 머리카락과 A양이 입었던 옷 등은 아직 찾지 못했다. 경찰은 전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긴급 DNA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1차로 채취한 DNA 시료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부검 과정에서 또다시 DNA를 채취했다. 실종 여고생 칫솔에서 나온 DNA와 시신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한다. 전남경찰청은 이에 앞서 A양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김모(51)씨가 지난 16일 오후 5시 35분쯤 강진읍 집으로 돌아온 뒤 휘발유를 부어 태운 옷가지에 대해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양 추정 시신에서는 왼손 부근에 립글로스 한 점 외 다른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165명을 동원해 시신 발견지점 주변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등 유류품 수색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오르막 경사가 70~80도에 달할 정도로 지형이 험준해 용의자이자 A양 아버지 친구인 김씨가 A양을 속이거나 위협해 산 위까지 데려갔을 가능성과 살해 뒤 시신 운반 과정에서 공범이 있었는지도 함께 수사하고 있다. A양은 지난 16일 오후 1시 59분 친구에게 “아빠 친구를 만나 해남으로 알바를 간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됐고, 실종 8일 만인 지난 24일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강진서 발견된 시신, 실종여고생 DNA와 일치…용의자 보관 흉기서도 검출

    강진서 발견된 시신, 실종여고생 DNA와 일치…용의자 보관 흉기서도 검출

    전남 강진 매봉산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전자 감식 결과 지난 16일 실종된 여고생 A(16)양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A양 아빠 친구인 김모(51·사망)씨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흉기에서도 A양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김씨가 A양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시신 수습 과정에서 채취한 유전자(DNA)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실종된 A양으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A양 아빠 친구이자 용의자인 김모(51)씨 승용차에서 발견된 유류품 감정 결과, 트렁크에 있던 낫에서 A양 유전자가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A양 유전자는 낫의 날과 손잡이 사이 자루에서 검출됐다. 다만 A양의 유전자가 검출됐을 뿐, 혈흔이나 김씨의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낫이 A양 사망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A양과 김씨가 직접 만난 주요 증거로 보고 있다. 경찰은 국과수에서 추후 정밀 부검을 통해 A양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앞서 이날 오전 A양 시신을 부검이 이뤄졌으나 국과수로부터 “골절 등 뚜렷한 외상은 보이지 않고, 사인을 판단할 수 없다”는 1차 부검 소견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시신은 얼굴과 정확한 키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신이 인위적으로 훼손된 것은 아니고, 야외에서 부패하면서 알아보기 힘든 상태가 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전날 오후 2시 57분쯤 전남 강진 지석리 매봉산 정상 뒤편 7∼8부 능선에서 A양 시신을 발견했다. 이곳은 김씨 승용차가 목격됐던 산 중턱 농로에서 걸어서 30분 거리로, 오르막 경사가 70∼80도에 달하는 험준한 지형이다. 과거 김씨 부모의 묫자리가 있던 곳과도 가깝다. A양 휴대전화가 꺼지기 직전 마지막 신호가 잡힌 지점 반대편 능선이기도 하다. 시신은 옷이 벗겨지고 부패한 채 발견됐으며 주변에 립글로스 한 점이 함께 발견됐다. 옷가지, 휴대전화 등 다른 소지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경찰은 유류품을 찾기 위해 이날 기동대 2개 중대 등 165명을 동원해 시신이 발견된 현장 주변을 수색했으나 현재까지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을 통제하고 이동 경로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A양은 지난 16일 아르바이트 소개 때문에 아빠 친구를 만나 이동한다는 SNS 메시지를 친구에게 남긴 뒤 소식이 끊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도 정책제안 플랫폼 ‘새로운경기위원회’ 홈피 오픈

    경기도 정책제안 플랫폼 ‘새로운경기위원회’ 홈피 오픈

    경기도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도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정책 공간 플랫폼 ‘새로운 경기 위원회’가 25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도민청원제·도민발안제 도입,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구축, SNS 소통관 확대 등을 공약한 데 따른 조치이다. 새로운경기위원회는 소통과 참여라는 당선인의 도정 철학에 맞춰 도민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도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민주주의 플랫폼으로, 이 당선자의 공약 이행을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및 분야별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경기광장’, 지난 16년간 경기도정을 쥐었던 보수정권의 구태와 부패를 신고하는 ‘도정핫라인’, 도민이 주인인 경기도를 상징하는 ‘이재명 도지사 임명장 수여하기’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도정핫라인’ 코너를 통해 인사·채용 비리, 인허가 및 사업 관련 비리, 예산 남용 및 횡령 등의 내용을 바로 제보할 수 있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도민이 제안한 정책 및 건의사항은 도지사직 인수위, 경기도, 도내 지자체 등의 검토를 거쳐 도정에 반영할 방침이다.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고 나아가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지는 정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당선인의 도지사직 인수위 관계자는 “온라인 정책제안 플랫폼은 그동안 구호로만 그쳤던 도민과의 소통과 참여를 도정 전반에 반영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이라며 “효과적인 소통 방식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정책 제안은 25일부터 7월 30일까지 새로운경기위원회 홈페이지(www.newgg.org)에서 접수할 수 있다. 도민들이 제안한 지역?분야별 정책은 인수위원의 검토를 거쳐 경기도정에 반영될 예정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부검…이르면 하루만에 결과 나올 듯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부검…이르면 하루만에 결과 나올 듯

    경찰이 강진 실종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부검에 착수했다. 25일 강진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장성분원에서 A(16·고1)양으로 추정되는 시신 부검에 들어갔다. 시신은 얼굴과 정확한 키를 눈으로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역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는 상태로 현장에서도 별도로 발견되지 않아 부패에 따른 현상인지, 누군가 머리카락을 자른 것인지 등도 부검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경찰은 A양이 미성년이라 지문이 등록돼있지 않아 치아 기록으로 신원을 파악하려 했으나 간단한 충치 치료만 받는 등 다른 사람과 식별될 만한 특이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전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긴급 DNA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1차로 채취한 DNA 시료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으면 부검 과정에서 또다시 DNA를 채취해 감정할 계획이다. 시신이 부패해 뚜렷한 외상이나 핏자국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부검을 통해 사망 경위도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시신에서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DNA 성분을 확인할 방침이다. 경찰은 시신 상태와 용의자 사망 시점 등으로 미뤄 A양이 실종 당일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은 A양의 휴대전화와 소지품 등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날 시신 발견 현장 주변을 재차 정밀수색할 계획이다. A양은 지난 16일 ‘아르바이트 소개를 해준 아빠 친구분을 만나러 간다’고 친구에게 SNS 메시지를 남긴 뒤 소식이 끊겼다. A양 아빠 친구이자 용의자인 김모(51)씨가 탄 승용차가 실종 당일 A양 집 인근 CCTV에 찍혔고 이후 2시간반 가량 시신이 발견된 현장 부근에 머문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다음 날 오전 집 근처 공사 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은 실종 8일 만인 24일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 매봉산 정상 뒤편 7∼8부 능선에서 수색중이던 경찰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진 실종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 당시 옷가지 없어…공범 가능성도 수사

    강진 실종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 당시 옷가지 없어…공범 가능성도 수사

    전남 강진에서 실종된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야산에서 발견됐다. 여고생이 행방불명된 지 8일 만이다. ●어디서 발견됐나 전남 강진경찰서는 24일 오후 2시 53분쯤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일명 매봉산 정상 뒤편 7~8부 능선에서 A(16·고1)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용의자이자 A양 아버지 친구인 김모(51)씨의 검은 승용차가 목격됐던 산 중턱 농로에서 걸어서 30분 거리다. 이혁 강진경찰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용의자 차량이 주차됐던 지점에서 1㎞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 매봉산 정상에서는 50m 넘어가는 지점에서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혁 서장은 “두세번 걸어보니 성인 걸음으로 20~30분 내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량 위치에서 250m 직선거리로, 매봉산 정상은 경사도 70~80도 되고, 정상에서 직선으로 내려가는 50m 구간도 급경사 지역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은 A양의 소지품 냄새를 익힌 경찰 체취견이 찾았다. ●시신 상당히 부패해 육안으로 신원 확인 어려워 시신은 알몸 상태로 심하게 부패했으며, 머리카락도 대부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들이 1차로 얼굴을 확인했으나 “내 딸인지 알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부패 정도가 심했다. 이혁 서장은 “왼쪽 하체 부분은 거의 부패됐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신장 파악도 정확히 되지 않고 있다. 사체 주변에서 옷가지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한때 ‘청바지와 운동화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혁 서장은 “전혀 확인된 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A양은 실종 당시 검정색 반팔 라운드티, 청바지,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휴대전화나 기타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시신 왼손에서 30cm 떨어진 지점에서 립글로스가 발견됐다. 그러나 A양이 쓰던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신은 발견 당시 매장됐거나 나뭇가지 또는 풀에 덮인 상태가 아니었다. 미성년인 A양의 지문이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경찰은 DNA 감정 등을 통해 시신의 정확한 신원과 사망 시점,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공범 가능성 있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오르막길이 70~80도 경사, 내리막길도 60도 경사로 비교적 험준한 곳이다. 발견된 시신이 실종된 A양이 맞다면 범인이 A양을 위협해 산속으로 끌고 간 뒤 범행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A양이 발견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숨졌다면 험준한 산 정상 부근까지 혼자서 시신을 옮기기 어렵다. 더구나 숨진 A양은 몸무게가 70㎏으로 용의자 김씨보다 2㎏이 더 나간다. 이 때문에 경찰은 또 다른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 김씨는 누구? A양은 지난 16일 오후 2시쯤 강진군 성전면 집을 나서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에게 “아빠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성전에서 해남 쪽 방면으로 이동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 집을 나서기 전 소셜미디어에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다. 떨린다. 큰일이 나면 신고해 달라”는 내용도 남겼다. A양이 집을 나설 무렵 A양 집에서 600m 떨어진 곳에서 용의자 김씨의 승용차가 CCTV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김씨의 승용차는 2시간 30분가량 시신이 발견된 현장 부근에 머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김씨는 강진읍에서 보신탕 전문점을 운영했다. A양 아버지와는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다. 지난 16일 밤 딸의 행방을 찾아다니던 A양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자 뒷문으로 달아났다가 다음날 자택 근처 공사 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시신이 발견된 지석리에서 태어나 주변 지리에 밝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차량이 주차됐던 곳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과거 선영이 있었다가 현재는 이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강진에서는 2000년과 2001년에 현재 25살이 됐을 김하은, 김성주 두 명의 초등학생이 잇따라 실종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어 당시 실종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수상했던 아빠친구…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

    수상했던 아빠친구…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

    옷은 벗겨진채 시신 부패 돼 유전자 정밀감식 신원 확인 중 여고생 것 추정 립글로스 나와전남 강진에서 아르바이트하러 나간 후 연락이 두절된 여고생 추정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된 지 8일 만이다.24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강진군 도암면 지석마을 뒤편 매봉산 수색 중에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키와 체격으로 볼 때 강진군에 거주하는 모 여고 1학년인 A(16)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시신은 우거진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덮여 있었다.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수풀에 있던 시신을 경찰 체취견이 발견했다. 시신 주변에서는 A양 소유로 보이는 립글로스 한 점이 나왔다. 얼굴이 부패돼 유가족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지문감식 대조 등을 토대로 정확한 신원을 확인 중이다. 경찰은 긴급 유전자(DNA) 감정을 의뢰했다. 시신은 해발 250m 높이의 매봉산 정상 뒤 7∼8부 능선 내리막길 우거진 숲속에 있었다. A양 휴대전화가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지점과는 반대편 능선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용의자이자 A양 아빠 친구인 김모(51)씨 승용차가 목격됐던 산 중턱 임도에서 걸어서 30분 거리다. 김씨 차량이 주차됐던 지점에서 1㎞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장소다. 경사가 70∼80도에 달하고 내리막길도 가파른 곳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외진 곳이다 보니 경찰이 지금껏 한번도 찾아보지 않은 지역이었다. 성인 남성 걸음으로 30분가량 걸리는 데다가 산세가 험준해 경찰은 김씨를 도운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 A양은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집을 나서면서 친구와 ‘아버지 친구를 만나 아르바이트하러 간다’고 대화를 나눈 후 행방불명됐다.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고 했던 김씨는 A양 어머니가 당일 오후 11시 8분쯤 자신을 찾아오자 뒷문을 통해 달아난 후 다음날 오전 6시 17분쯤 집 인근 철도 공사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 승용차가 실종 당일 A양이 사는 마을에 오후 1시 56분 들어가서 오후 2시 3분에 나온 모습과 이 차량이 A양 집과 600여m 떨어진 곳이자 약속 장소로 추정되는 공장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혀 김씨의 행적을 조사해 왔다. 숨진 김씨가 당일 오후 5시 15분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의류로 추정되는 물건을 휘발유를 부어 태우고, 자신의 옷은 세탁기에 넣은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그동안 열 감지 장비를 장착한 헬기 1대와 드론 4대를 동원했고 체취견과 기동대, 119특수구조대, 주민 등 850여명이 A양에 대한 수색을 해 왔다. 한편 강진에서는 2000년과 2001년에 현재 25세가 됐을 김하은, 김성주 두 명의 초등학생이 잇따라 실종된 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어 당시 실종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YS·DJ의 ‘킹메이커’… 5·16쿠데타 이끈 ‘영원한 2인자’

    YS·DJ의 ‘킹메이커’… 5·16쿠데타 이끈 ‘영원한 2인자’

    ‘쿠데타의 주역’, ‘풍운아’, ‘영원한 2인자’, ‘처세의 달인’…. 수많은 수식어에서 보듯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2004년 정계 은퇴까지 40여년간 영욕과 부침을 거듭했다.●박정희 정권 2인자… 처삼촌 혹독한 견제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교사를 꿈꾸며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부친의 죽음이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 가세가 기울면서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한 것. 1949년 6월 육사를 졸업한 JP는 육군본부 정보국에 배속됐고, 작전정보실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의 조카딸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딸)을 알게 됐고, 결혼했다. 이로써 상사와 부하인 동시에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연을 맺었다. 1960년 9월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해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정풍(整風) 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의 주모자로 몰려 강제예편됐다. 그러나 이듬해 5·16 쿠데타로 일약 권력의 정점으로 떠올랐다. 5·16의 전면에는 박정희 소장이 나섰지만, 뒤에서 쿠데타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밀어붙인 이는 JP였다. 그의 나이 불과 35세였다. 2인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박정희 정부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으나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려 1963년 2월 공화당 창당을 하루 앞두고 외유에 나서야 했다. 1963년 11월 6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 등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또 외유길에 올랐다. JP 공과(功過)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 1965년 한·일 협정과 산업화다. JP는 8억 달러의 경제 보상과 차관을 대가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보상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 범죄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 협정을 근거로 일본은 지금도 피해자들의 대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그는 산업화 시대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박 전 대통령을 도와 산업화를 이끌었다. 1960년 7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80년 1645달러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가 ‘매국노’란 비판을 들으며 받아온 8억 달러의 식민지 배상금은 산업화의 기반이 된 포항제철·소양강댐·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사용됐다.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JP는 45세의 나이에 최연소 총리로 임명됐다. 1979년 10·26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포스트 박정희시대’를 이끌 대중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까마득한 육사 후배들인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돼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떠났다.●충청맹주로 고비마다 캐스팅보트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35석을 확보, 화려하게 재기했다.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보수대연합’인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으로 변신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가 되는 듯했다. 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진한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2선 후퇴 압력을 받았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임에도 1993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으로 강등됐다.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지역 정서를 자극해 제3당(55석)으로 재기했다. 1997년 내각제를 고리로 ‘킹메이커’가 됐다. 그해 11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극적인 DJP 단일화를 이뤄 낸 것. 보수 성향이 짙은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정권의 축이 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적(政敵)으로 탄압했던 DJ와 손을 잡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6개월간의 총리 서리 등 국민의정부의 한 축을 이뤘던 그는 1999년 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정부를 깼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17석에 그치며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결국 다시 DJ와 손잡았다. 민주당에서 의원 3명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자 공동정부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선거 참패로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으로 10선 등정에 실패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찾은 건 특수훈련된 경찰 ‘체취견’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찾은 건 특수훈련된 경찰 ‘체취견’

    전남 강진 매봉산에서 실종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한 것은 사람 냄새를 맡도록 특수 훈련된 경찰 체취견의 활약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 장기화가 우려된 상황에서 경찰견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푼 셈이다. 경찰은 24일 군견 2마리, 체취견 8마리를 투입해 강진군 도암면 속칭 매봉산 일대를 수색 하던 중 실종된 A(16·고1)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옷이 상당 부분 벗겨진 상태로 우거진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덮여 있었다. A양이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난 데다 그간 경찰 수색 요원 등 많은 인원이 남긴 체취가 현장에 뒤섞인 상태였지만, 체취견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후각으로 A양 흔적을 찾아냈다. A양의 체취를 맡은 체취견은 우거진 풀숲 속에서 희미해진 냄새를 찾아냈다. 체취견은 사람 냄새를 맡도록 전문적으로 훈련된 경찰견의 한 종류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범인 추적은 물론 실종자나 치매 환자 수색, 범죄 피해자 시신 추적 등 각종 실종·범죄 현장 수색에 투입된다. 경찰견은 체취견을 비롯해 마약, 지뢰 등을 찾는 탐지견,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인명 구조견 등이 있다. 개의 후각 세포는 인간의 44배로, 냄새 식별 능력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함을 자랑한다. 잘 훈련된 개는 이처럼 고유한 개개인의 체취까지 구별해 내는 수준이다. 범죄 현장에 남은 미량의 체취를 기억한 뒤 냄새를 추적해 증거물이나 용의자를 찾아내고 실종자를 구한다. 현재 전국 10개 지방경찰청에서 16마리의 체취견을 운용하고, 이 개를 통제하고 운용하는 사람인 핸들러(전문요원)가 있다. 한국 경찰이 개를 수사 분야에서 활용한 것은 1973년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서 개 13마리를 일본에서 들여와 수사·방범 활동에 투입한 것이 경찰견의 시초다. 체취견은 부모 성격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엄선한다. 핸들러에 대한 복종은 기본이고, 부패한 시신과 성분이 같은 인공 시료를 이용해 시신 냄새를 추적하게 하는 연습을 한다. 평지, 산악 등 다양한 지형 조건을 접하게 하고, 군견 훈련소에서 일정 기간 위탁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이용한 과학수사 기법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체취견 활용은 경찰이 주목하는 차세대 기법의 하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진 실종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차량 접근 불가능한 곳

    강진 실종 여고생 추정 시신 발견…차량 접근 불가능한 곳

    전남 강진에서 실종된 여고생으로 추정된 시신이 행방불명 8일 만에 발견됐다. 24일 전남 강진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후 3시쯤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 야산 정상 부근에서 A(16)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우거진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덮여 있었다. 옷은 상당 부분 벗겨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신의 키와 체격으로 볼 때 A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신원과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시신의 부패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현장에서 감식을 진행 중이며, 현재까지 눈에 띄는 핏자국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은 경찰이 체취견을 동원해 수색하던 도중 산 정상 너머 내리막길 우거진 숲 속에서 발견됐다. 시신 발견 장소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500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차량 접근이 전혀 불가능한 곳이다. 해발 250m 높이의 산 정상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도보로 이동하면 1시간가량 소요되는 곳이다. 용의자이자 A양 아버지 친구인 김모(51)씨 승용차가 목격됐던 산 중턱과도 수백m 떨어진 곳이다. A양의 휴대전화 발신음이 끊긴 곳과 상당 부분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은 지난 16일 ‘아버지 친구가 아르바이트 소개를 해준다고 해서 집에서 나와 만났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친구에게 남긴 뒤 실종됐다. 용의자 김씨는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A양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자 뒷문으로 달아났다가 실종 다음날인 17일 오전 자택 근처 공사 현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양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끊긴 지점이자 김씨가 실종 당일 오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도암면 야산 일대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을 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임 고검장들 수사권 조정 의식했나…취임식서 ‘신뢰 회복’ ‘인권 보호’ 한 목소리

    신임 고검장들 수사권 조정 의식했나…취임식서 ‘신뢰 회복’ ‘인권 보호’ 한 목소리

    지난 22일 취임한 5개 고등검찰청 수장들의 공통분모는 ‘신뢰 회복’과 ‘인권 보호’다. 이들은 같은 날 열린 취임식 연설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박정식 신임 서울고검장(57·연수원 20기)은 취임식에서 “국민과 사건관계인의 목소리를 겸허한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을 불신하는 여론을 타파하기 위해 검찰이 먼저 변화하겠다는 취지다. 박 고검장은 이어 “검찰이 부여받은 본질적 책무는 국민 인권을 옹호하고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라며 “부정부패 사범과 구조적 비리는 법질서를 파괴하고 사회 근간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므로 수사력을 모아 흔들림없이 엄정 대처해 나가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황철규 신임 부산고검장(54·19기)도 “국민들은 우려 섞인 눈길로 검찰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검찰에 대한 불신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김호철 신임 대구고검장(51·20기)은 “지금 검찰은 급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검찰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면서 “업무를 수행할 때는 검찰의 제1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인권보호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금로 신임 대전고검장(53·20기)과 박균택 신임 광주고검장(52·21기)도 검찰에 대한 불신을 언급했다. 이 고검장은 “그간 우리 검찰의 부단한 노력에도 국민이 바라보는 검찰의 모습에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며 “기록 한건 한건에 정성을 모아 억울한 사람이 없는지, 중한 죄를 지었는데도 처벌받지 않는 사람은 없는지 잘 살펴 검찰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최근까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이끌어왔던 박 고검장은 “검찰이 사법기관이나 인권옹호 기관이라는 인식 대신에 수사기관, 인권침해 기관, 무소불위 기관으로 인식되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인지사건 건수나 직접 수사 후 구속 건수를 자랑으로 여기는 생각도 이제는 없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에 반대 목소리…“쿠데타 부추기는 행위”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에 반대 목소리…“쿠데타 부추기는 행위”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훈장 추서를 놓고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4일 오후 1시 20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를 반대하는 글이 60여건 올라와 있었다. ‘김종필 국가훈장을 반대합니다’라는 글에는 1937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23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종필 전 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에게 훈장 추서 방침을 밝히면서 반대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낙연 총리는 “한국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셨고, 전임 총리이셨기에 공적을 기려 정부로서 소홀함 없이 모실 것”이라면서 “훈장 추서를 하기로 내부적으로 정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훈장을 추서할지는 내일 오전까지 방침이 정해지면 바로 보내드릴 것이다. 국무회의 의결은 사후에 하는 것으로 하겠다”면서 “화요일 국무회의까지 일정이 안 맞을 수 있고, 과거에도 전례가 있었기에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훈장부터 보내드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서를 검토하고 있는 훈장 등급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이다. 무궁화장은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 훈장이다. 앞서 무궁화대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이는 착오로 밝혀졌다. 무궁화대훈장은 국가 최고 훈장으로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 우방 원수 및 그 배우자, 또는 우리나라 발전과 안전 보장에 기여한 전직 우방 원수 및 배우자에게 수여된다. 훈장 추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정례 국무회의는 장례가 끝난 뒤 예정돼 있다. 그래서 이낙연 총리가 ‘선 추서 후 의결’을 언급한 것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빈소를 방문했다가 훈장 추서 논란에 대해 “특별히 논란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일생 한국사회에 남기신 족적에 명암이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국가에서 예우를 해서 (추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청원 게시판의 여론처럼 반대 목소리는 여전하다. 고상만 인권운동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종필 전 총리는 쿠데타를 성공시킨 공적으로 생애 온갖 부와 영광을 독차지한 하수인이자 제2의 쿠데타 주역”이라면서 “그런 자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쿠데타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민주적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 주모자, 독재주구, 친일 역적행위, 지역감정 조장, 부정부패의 대표적 인물”라면서 “정부는 왜, 무슨 공로가 있어서 훈장을 주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식이면 전두환이 죽어도 훈장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 선생도 해보고 싶었고, 군에서는 정풍(整風)도 해보고 싶었고, 제대해서는 혁명도 해보고 싶었으며,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해 도전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향년 92세.●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 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 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 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8년 말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지만 2010년 초인적인 재활운동 끝에 회복하기도 했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92세.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는 선생을 하고 싶었다. 군에서는 정풍(整風)을, 제대해서는 혁명을 원했다.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한 도전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듯 했으나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입원하기에 이른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회’를 창립하고, 회고록을 내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 학생 고발로 쫓겨나는 中 교사들

    학생 신고 늘자 온라인서도 찬반 양론 “유 교수님, 우리와 함께 탄카키학원에 남아 주세요.” 중국 명문 샤먼대 탄카키학원의 학생들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유성둥(尤盛東·71) 교수의 해고 반대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 16일 수백 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이 모자라 심지어 복도에 서서 마지막 강의를 경청하는 것으로 유 교수는 끝내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평소 개방적이고 용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유 교수가 대학에서 해고당한 이유는 그가 강의실에서 했던 발언을 일부 학생들이 학교에 신고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해고 사유가 된 유 교수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2014년 10월 중국 교육부는 교육자들의 도덕·윤리에 관한 7가지 규제 정책을 제정했다. 교사들은 국가 이익 위배, 표절, 부패, 성희롱, 당규 위반 등의 행위를 하면 강등되거나 해고될 수 있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베이징대, 칭화대 등 14개 명문대에 대해 검사를 벌인 결과 많은 교수가 이념 업무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2016년 천바오성(陳寶生) 중국 교육부장(장관)은 중국공산당 국가기관공작위원회가 펴내는 잡지인 ‘쯔광거’(紫光閣)에 “교육은 당 이념 작업의 선두에 있다”며 “적은 먼저 우리의 대학에 잠입한다”라고 썼다. 대학도 당의 교육 정책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형식적으로만 따른다면 비난받아야 한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베이징대 토목공학 및 건축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쉬촨칭 교수는 지난 4월 학생들이 위챗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 학생들은 쉬 교수가 일본이 중국보다 낫다고 강의 도중 말했다고 했지만 그녀는 혐의를 부인했다. 쉬 교수는 “강의 도중에 많은 학생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기에 열심히 공부했던 한 일본 학생을 본보기로 이야기했다”며 “만약 너희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일본이 중국보다 뛰어난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중난대의 한 교수도 학생들의 고발 때문에 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했다. 고등학교 교사들도 엄격한 당국의 도덕 규율 적용에 예외가 아니다. 올해 초 난징의 진링고에서는 정치 담당 교사가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국유경제를 비판하고 국가소유경제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예전에는 교사들이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처벌받았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의 고발로 강단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는 점이 새로운 현상이다. 학생들이 교사를 고발하는 건수는 점점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교실은 공적인 장소이고 교사들은 교육적 목적에 맞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학생들은 교사에게 의견을 말하거나 비난할 수 있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교수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안 된다”고 우려했다. 산둥사범대와 같은 몇몇 대학에서는 학과당 한 명의 학생이 교수의 강의 계획과 내용, 교수 방법과 태도 및 강의 내용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점점 중국 교단에서의 자유로운 발언을 옥죄는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국회 원 구성 협상 다음주 시작할 듯

    유민봉도 “차기 총선 불출마”… 5명으로 친박계 25일 김성태 퇴진 연판장 돌릴 듯 이르면 다음주 후반부터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여야 협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2일 “다음주 후반쯤 원 구성 협상에 나설 수 있다”며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언론에 밝혔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원 구성 협상 마지노선을 이달 말로 보고 있다”며 “한국당을 제외한 3당이 우선 협상에 들어가면 한국당도 다음 주중으로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 권한대행이 원 구성 협상에 나서는 것은 친박(친박근혜)계의 사퇴 압력을 피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이날도 김 권한대행을 향해 페이스북에 “정치생명을 연명할 생각 말고 쿨하게 사퇴하라”고 했다. 오는 25일 초·재선 연석회의에서 친박계가 김 권한대행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다음주 정면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민봉(비례대표) 의원은 이날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가능성을 시사한 한국당 의원은 김무성·김정훈·윤상직·정종섭 의원을 포함해 5명으로 늘었다. 한편 추미애 대표는 이날 열린 민주당 6·13 지방선거 당선자 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광역의원, 기초의원 구성에 있어 당이 경험 전수 및 가교 역할을 해 주고 부정부패와 연결 고리를 갖지 않도록 엄정하게 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소개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권은희 “검찰, 수사·기소 권한 여전”… 주광덕 “경찰, 檢 종속기관서 독립”

    권은희 “검찰, 수사·기소 권한 여전”… 주광덕 “경찰, 檢 종속기관서 독립”

    서울신문은 22일 검찰 출신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및 경찰 출신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과 각각 인터뷰를 갖고 전날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주 의원은 조정안의 전반적 취지에 공감하면서 비교적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반면, 권 의원은 “검찰이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갖는 안”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표출했다.■ 경찰 출신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사법개혁 아닌 밥그릇만 조정”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총평하면. -검찰과 경찰의 권한만 정리한 지엽말단적인 안이라고 볼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을 넘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돼야 한다. 정부안은 참고하되 이러한 방향성에 맞는 국회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부안이 검찰과 경찰의 권한을 제대로 조정하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정부안대로 한다면 수사 현실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부안의 핵심은 경찰이 1차적 수사종결권을 갖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 전까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까지 검찰이 수사 지휘를 거의 안 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 지휘권을 빼앗겼다기보다는 지금의 수사 현실을 명문화했을 뿐이다. →경찰의 1차적 수사권·수사종결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정부안에 따르면 고소인, 고발인,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경찰은 이의 제기 사건을 검찰에 넘겨야 한다. 수사 현실을 고려하면 고소인 등이 대부분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 예상되기에 사실상 검찰이 다시 수사를 맡아 종결하는 셈이다. 검찰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 보고 언제든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어 검찰이 의지만 있으면 수사 지휘를 할 수 있다. 결국 검찰은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검·경 수사권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경찰은 수사를, 검찰은 기소를 맡아야 한다, 검찰이 수사·기소 다 맡아야 한다 등의 주장은 사법 개혁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 부패·경제 범죄 등 수사가 집중돼야 할 영역에 대해 경찰과 검찰의 수사 인력·조직을 ‘헤쳐 모여’ 해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수사 기관들을 만들어야 한다. 전담 수사 기관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견제가 된다. 경찰과 검찰 두 개의 기관만 두고 모든 영역을 망라해 수사하게 하면 견제하라고 한들 형식적 견제에 그치게 되고,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정부안을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오는 30일로 활동을 만료하는데. -활동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 연장하지 못하면 원구성 후 하반기 국회에 사개특위를 재구성해서 논의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과 경찰의 개혁은 두 기관의 조직 정비가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각 기관의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와 행안위에서 따로 논의하기보다는 사개특위가 형사사법체계 전반의 개혁을 논의해 합의해야 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검찰 출신 주광덕 한국당 의원 … “검·경 견제로 수사 권한 효율적 배분”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에서 여러 논의가 돼야 하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는 근본적인 방향과 취지에 공감한다. 초선 시절인 2010년 18대 국회에서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경찰에 수사 자율성을 주는 동시에 강한 책임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검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뻔한 걸 마지막 물꼬를 틔운 사람이 나다. 경찰에 권한과 함께 책임·의무를 동시에 부과해서 인권침해·불공정 수사가 없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개정 형사소송법에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시한 조항이 들어갔던 것이다. 당시 검찰 출신 의원인데 경찰 편을 들었다고 화제가 됐었다. →조정안에 따르면 경찰이 1차적 수사종결권을 갖는다. 이를 놓고 경찰을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경찰 인력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청탁 수사 등에 노출되기가 쉽지만 그 대신 의무와 책임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12만명 규모의 경찰을 믿지 못하고 종속기관으로만 두는 것은 검·경 다툼 이전에 국가 발전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찰에 흠이 있으니 못한다는 것은 과거 지향적 접근이다. →반면 경찰은 검찰의 개입 여지가 남아 있어 실질적 수사권 독립이 아니라고 불만을 드러내는데. -경찰 입장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얻은 게 별로 없네, 알맹이가 없네라고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검찰 입장에선 자기네들처럼 고도로 전문화되지 않은 (수사)경찰 2만명이 검사처럼 독자적인 수사 권한을 갖게 되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검사로 일할 때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토하다 보면 (피의자가) 억울하다고 해서 살펴보니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심되는 것도 꽤 있었다. 검사 출신 의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반대해 온 것은 이처럼 부정적 경험이 기억에 남은 탓이기도 하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은 자율성을 갖게 된 경찰이 시국 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에서도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다. 이 점을 견제 장치로 국회에서 담아야 한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될까. -예상하기 어렵지만, 경찰과 검찰이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수사 권한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두 기관 간의 기득권 싸움이 아니라 인권침해, 불공정 수사, 청탁 수사를 막으면서 국민을 위한 수사기관으로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한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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